모두들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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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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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만 은 이 난 조합원 ① 조혜진 웃음소리가 참 좋아

가래떡 같은 베개를 나눠 베고 누워 있다가 새삼스럽게 놀란다. 혜진이가 코를 골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혜진 이 방의 웜톤 맞춤 코랄 커튼이 낯설기 때문이다. 나 언 제 얘랑 이렇게 친해졌지? 하는 생각도 들고, 내 이런 말 들은 혜진이가 나쁘게 생각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습지만 혜진이가 나에게 질렸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든다. 오늘은 함께 목공 수업을 듣고 정은을 만나기 위해 부 천에 있는 카페에 갔다. 정은을 기다리며 혜진이 쪄 온 고구마를 노나 먹었다. 맛있다. 고구마가 맛있어서 갑자 기 엄청난 비밀을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말할까 말까 입술을 비죽비죽 했다. 그냥 말하지 않기로 하고 혜진의 얼굴을 보니, 비밀을 들킬 것만 같아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언젠가 방구처럼 비밀이 뽀옹 새어나 오게 되더라도, 아마 혜진은 놀라거나 화내지 않고, 따지 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 비밀을 못들은 척 해주지 않을 까 하는. 나는 혜진의 웃음소리를 참 좋아하는데, 카페에 앉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 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혜진을 만났을 때 나는 혜진이 참 포근한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수 를 하거나 못난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고 다독거려주고 안아줄 것만 같았다. 누가 싱거운 소리를 해도 그 사람이 민망할까봐 유독 큰 소리로 웃어주고, 대화에 소외된 사 람이 있으면 먼저 질문도 던져 주고 그랬거든. 그런데 알면 알수록 혜진은 내 생각보다는 조금 더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곧잘 양보하지만 마음보다 앞서 쏟아 내지는 않는다는 느낌이다. 쉽게 판단하진 않지만 무작 정 안아주는 법도 없고, 다른 생각에 귀 기울이려고 노 력하지만 본인의 입장을 묻어두지도 않는다. 그래서 혜진에 대해서는 믿음이 있다. 가래떡 베개를 베고 누워서 막 무서운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내가 실수하더라도 그걸 모르고 넘어가 게 되진 않을 거야. 우리 관계가 성글게 마구마구 쌓이 게 두진 않을 거야. 그래서 배가 뜨뜻하고 부르다. (라 면을 먹고 바로 누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요즘 나는 혜진이 모두들에 들어올 날만 손꼽아 기다 리고 있다. 4호집이 생긴다는 것도 너무 신나는 일이고, 4호집에 혜진과 땡땡, 그리고 호야씨가 입주한다는 것 도 참 감사한 일이다. 땡땡이야 말할 것도 없고 호야씨 도 두 번 만났는데 좋은 기운이 느껴졌다. 4호집 집사람 들끼리의 캐미도 기대되고, 더욱 입체적인 이야기들이 고일 모두들의 3월도 기대된다. 나는 마냥 기대되기만 하는데 혜진은 아닌 것 같다. 당 연히 그렇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걱정되다가 즐겁다가, 기대되다가 또 우울해지고. 나는 그런 혜진에게 네가 무엇을 상상하고 걱정하든 그 이상의 사건들이 기다리 고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누구의 말처럼 모 두들이라는 공간은 ‘나’를 만드는 공간이고 그렇기 때 문에 지금의 혜진에게 너무나 필요한 공간이 아닐까 싶 다. 한참을 고생하며 살아온 혜진이 드디어 사표를 던 지고 모두들에 입주한다. 이제 이 곳에서 스스로를 좀 더 다독거리며 살게 되길. 나랑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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