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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를 빠져나오며 (走出迷墙)


1 비즈니스 빌딩을 나와 고개를 드니 하늘이 보였다. 흰 구름 이 보이지 않을 만큼 혼탁했다. 늦봄의 햇살은 이미 따뜻하 고 훈훈한 기운을 띠고 있었지만 도대체 어제와 오늘이 뭐 가 다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또 점심시간이다. 지유셍틴(趙承天)은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이 물 흐르듯 이렇게 흘러가는 것일까? 점심시간이 되면 밥 먹는 곳마다 수많은 남녀로 북새통 을 이룬다. 가엾은 샐러리맨들, 매일 힘들게 싸우고 있는 것 이 다 이 밥 때문이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느긋하게 밥을 먹 을 수는 없다. 그는 대부분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운이 좋아 자리를 차지하고 막 숨을 돌린 뒤 고개를 숙인 채 두 입 이나 먹었을까, 어느새 누군가가 그의 옆에 서서 공손히 기 다리고 있어 그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 사람은 호 시탐탐 자리를 노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 그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여기 기 다리는 사람 있습니다. 그는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자신 도 모르게 꿀떡 삼키고는 자리를 양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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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배를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점심 식사는 사실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했다. 그럴 때 렝엥(玲瑩)은 언 제나 그에게 말했다…. 사내대장부가 밥 한 공기만 먹고 되 겠어요? 당신도 참. 사랑스러운 말투다. 그는 웃었다. 점심을 그렇게 배불리 먹어서 뭐하게? 너 무 배불리 먹으면 소화도 안 되고 오후에 졸려서 일을 할 수 도 없어. 렝엥은 입을 삐죽거렸다. 당신은 사장에게 왜 그렇게 충 성이에요! 솔직히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있을까요? 대충 대충 하면 그만이죠. 자기 몸이나 챙겨요.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 다. 너도 참, 언제쯤이면 좀 성숙해질는지? 그도 자우(鄒) 사장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자우 사장이 아랫사람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기 때문이었다. 심지 어 주말 점심 때 사장은 퇴근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사무실 이쪽에서 저쪽까지 구두를 바닥에 ‘딱딱’ 두드려 소리를 내 고 다니면서 길게 말하곤 했다. 다들 왜 퇴근하는 거야? 서 부 전선 이상 없다는 건가? 그도 말대꾸하고 싶었다. 주말 오후엔 근무할 필요 없잖 아요. 법으로도 다 규정되어 있고요. 하지만 말은 입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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맴돌 뿐이었고 결국엔 삼켜 버렸다. 그는 자기와 상관도 없 는 이런 문제로 사장에게 반박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그 는 주말 오후에도 사무실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렝엥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말했다. 뭐 때문에 당신은 이렇게까지 사장 비위를 맞추는 거죠? 이렇 게 한다고 그가 당신 월급을 올려 줄 것 같아요? 그는 이미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주말 오후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데, 그렇게 보내 버리면 스탠리(赤柱)에 가서 쇼핑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후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 시 이후엔 새처럼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었다…. 렝엥은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토요 일도 휴일이란 말이에요. 우리만 이렇게 까다롭게 굴어요! 그는 웃었다.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지 마. 주말 오후도 힘들게 얻어 낸 거야. 노동부에 신고한다고 말하고서야 겨 우 쉬게 된 거지.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쉬기로 했으면서도 정정당당하 게 퇴근할 수 없잖아요. 난 도대체 왜 잔업이 좋은지 알 수가 없어요. 매일 잔업을 해야 하는 사람은 능력이 없는 사람이 라 생각해요. 결국엔 일은 다 해내지 못하면서 어떻게든 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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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만 대잖아요? 그는 황급히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당신은 능력이 탁 월해, 그렇지? 그녀는 분개하며 말했다. 내가 만약 사장이 되면 잔업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부터 우선 해고하고 말 거예요! 그래, 그래. 그렇게 되면 당신이 대대적인 정비를 해야 지. 그러면 마침내 박렝엥 시대가 출현하게 되겠지. 그렇지? 렝엥은 뒤돌아보며 웃었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 니에요. 당신이 믿지 못하겠다는 건 알겠지만 세상일에 절 대적인 것이란 없는 거예요. 그는 그녀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겐 운 도 있었다. 내가 언제 못 믿겠다고 했어? 만약 그렇게 되면 당신은 날 어떻게 대우해 줄 거야? 당신? 그녀는 그를 곁눈질로 힐끗 쳐다보았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어떻게 대우할 거라 생각해요? ‘참모’ 하지 뭐! 난 어떤 직함을 원하는 게 아니야. 먹을 밥 있고, 당신의 관심만 있으면 충분해! 요구 사항이 그렇게 간단해요? 그럼 그렇게 해요! 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단순한 게 복이지. 잠시 후 그는 뻔뻔스럽게 말했다. 참, 혹시 가능하다면 미래의 당신 사무실에 딸린 작은 방 안에 침대 하나 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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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의 어깨를 때렸다. 저기요. 당신 생각하는 게 너무 엉큼해요! 엉큼한 게 아니라 진심을 말하는 거야. 약간 철면피 같긴 하지만 내가 한 말은 진심이야. 일부러 꾸며 대고 싶진 않아.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처세할 때 가끔은 환상을 품는 것도 필요해요. 자신을 느슨하게 할 필요도 있고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살겠어요? 살아가는 건 원래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떠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한다면 그뿐이다. 그 당시 그는 그녀가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고 어렴풋이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그녀가 사장이 될 것이라 고 확신한 것도 아니었다. 설령 그녀에게 벼락출세할 날이 올 것이라는 걸 내가 벌 써부터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어찌 감히 그때의 사랑하는 감정을 이용해 나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 할 수 있었겠 는가? 그는 팀장이었고 그녀는 그의 조수였다. 그는 그녀를 우 러러보지도 않았고 그녀를 우러러볼 필요도 없었다. 가장 편안한 느낌은 서로가 똑바로 앞을 보는 것이다. 그 찰나에 불꽃은 일어난다. 그는 렝엥이 처음 왔을 때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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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에 웃음 띤 모습이 너무나 순진하게 보였다. 그녀는 다정 하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박렝엥이라고 해요. 처음 왔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그때 옆에 있던 사장이 끼어들었다. 당신들, 앞으로 잘 협력해 봐요. 렝엥이 그를 쳐다보는 시선은 마치 망망한 넓은 벌판에 서 길을 잃은 아이가 도움을 구하는 것처럼 보였고, 전광석 화처럼 순식간에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둔 연정을 불 러일으켰다. 마치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싱싱한 풀이 꿈틀 거리며 대지를 뚫고 나오는 것만 같았다. 와아! 사내대장부…. 렝엥은 그 후에 말했다. 의지가 강한 남자에게도 연정은 있는 법이다. 비록 난 의 지가 강한 남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당신은 의지 가 강한 남자가 아니라 용감한 남자예요. 위로의 말이 분명해. 너도 참! 당신도 참, 칭찬과 욕도 구분하지 못해요? 당신을 치켜세 워 주는데도 당신은 상대방의 호의를 감사히 여기지 않네 요. 양심도 없어요, 정말! 말주변이 얼마나 뛰어난지, 난 당신을 말로 당해 낼 수가 없어. 거봐요, 거봐. 말도 안 되죠? 그렇죠? 말로 당해 낼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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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저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