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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망 중립성 배진한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미디어의 다양성을 지키는 길

인터넷의 개방성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이란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되는 모든 트래픽을 그 내용·유형·인터넷주 소·제공 사업자·부착단말기 등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팀 우(Tim Wu)는, “공중 정보 통신망의 유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는 네트워크 디자인이 모든 콘텐츠·사이트·플랫폼을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동등한 대우의 주체는 네트워크 사업자 또는 인터넷 접속 서비스 제공 사업자(Internet Service Provider, 이하 ISP) 이고, 그 대상은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 사업자(Content & Application Provider, 이하 CAP), 기기 제조업자 등 인 터넷으로 네트워크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유형 의 사업자들이다. 아울러 ‘동등한 대우’란 특정 콘텐츠· 애플리케이션·서비스에 대한 차단 금지(no blocking)와 차별대우 금지(nondiscrimination)를 뜻한다. 흔히 인터넷의 개방성은 망 중립성을 비롯한 인터넷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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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워크의 기본 디자인 원칙에서 연유한다고 말하는데, 그 렇다면 망 중립성과 인터넷의 개방성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는 얘긴가? 인터넷의 개방성은 초창기부터 인터넷 네 트워크에 적용해 온 핵심 디자인 원칙들, 즉 단대단 원칙 (End-to-End Principle), 모듈 방식(modularity), 층위 구 조(layering) 등에 의해서 확보됐고 여기서 비롯된 개방성 이 인터넷을 혁신 매체로서 오늘날과 같은 엄청난 성공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먼저 단대단 원칙이란, 한마디로 네트워크를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가능한 한 망 종단(終端, end)에 두고 라우터 (router)와 같은 중간 노드(node)에서는 제한적인 기능만 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원칙으로 인해 ISP들 은 단지 트래픽의 중립적 전송만을 담당하고 네트워크 종 단에 있는 최종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콘텐츠와 애플리케 이션을 개발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을 조성했다. 한편 모듈 방식(modularity)은 개별 부분 장치들을 사전 에 합의한 규칙에 따라 통일적으로 만들고, 이 규칙대로 만들어진 어떤 부분 장치를 사용하더라도 동일하게 작동 하도록 함으로써 시스템의 복잡성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여러 기술적 선택 대안들 가운데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골라 완성(mix & match)할 수 있게 해주는 이 방식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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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인터넷 네트워크를 이루는 각 요소와 부문들이 자유롭 고 효율적으로 결합할 수 있게 된다. 층위 구조란 몇 개의 수직적으로 분할된 계층(layer)들을 상호 독립적으로 구 성하는 것을 말한다. 각 계층을 인접한 계층들과 무관하 게 독립적으로 구성한 의도는 무엇보다 한 계층의 변경이 다른 계층, 더 나아가 전체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 자는 데 있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네트워크’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이 층위 구조에 서 나온다. 즉, 독자적 기능의 모듈을 차곡차곡 쌓아 놓 은 듯한 ‘모듈 쌓기형 네트워크(a network of modular building blocks)’에서는 하위 계층에 영향을 주지 않고 상 위 계층의 응용 프로그램이나 프로토콜을 얼마든지 개발 하고 변형할 수 있으며, 반대로 상위 계층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하위 계층에서는 새로운 전송 기술, 교환 기술 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터넷 네트워크 디자인 원칙들을 통해 ISP의 사업 범위 혹은 통제 범위를 물리적 계층에 한정하고 논리 적 계층 이상으로 확대되지 못하도록 제한하자는 논리가 바로 망 중립성이다. 망을 소유함으로써 물리 계층을 통 제하고 있는 네트워크 사업자가 TCP/IP나 SMTP 같은 프 로토콜을 제어함으로써 특정 트래픽을 우선하거나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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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논리 계층까지 통제한다면 네트워크 사업자는 논리 계층을 넘어 사실상 응용 계층의 서비스와 콘텐츠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 막자는 의 도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네트워크 사업자의 네트워크 층위 간 지배력 전이를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인터넷의 개 방성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이용자의 선택권과 복지를 증 진하자는 게 망 중립성의 기본 취지라고 하겠다.

망 중립성 논쟁의 전개 과정 미국에서는 ISP를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 즉 기간 통신 사업자로 간주하고 이들이 제공하는 인터넷 접속 서 비스에 대해 커먼 캐리어 규제를 부과했다. 커먼 캐리어 가 부가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자신이 보유한 필수 설비(네 트워크)에 대한 통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부가 서비스 사업자에 대한 차별이나 교차 보조를 할 수 없음은 물론 커먼 캐리어의 기본 서비스 부문과 인터넷 접속 서비 스 부문에 대해 각기 별도의 회계를 운영하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하지만 부시와 클린턴 행정부 시기에 진행된 광 범한 탈규제(deregulation) 정책의 일환으로 ISP의 인터 넷 접속 서비스는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의해 부가 서 비스(Title I)에 속하는‘정보 서비스’로 분류돼 규제가 대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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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됐다. 당시 FCC는 ISP에 대한 탈규제가 인터넷 접속 서비스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편 익을 증진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끝내 정책 실패로 이어지 고 말았다. 예상과는 달리 ISP 간 인수합병의 광풍이 불어 사업자 간 경쟁은 탈규제 이전보다 약화했고, 결국 서비스 가격은 높지만 서비스의 속도와 질은 그에 현격하게 못 미 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얘기다. 이 와중에 FCC는 2005년 미국의 인터넷 소비자와 사업 자 권리를 천명한 ‘망 중립성 4원칙(콘텐츠 접근, 애플리 케이션·서비스 접근, 합법적인 기기 부착의 자유, 경쟁 의 혜택을 누릴 권리)’을 발표했다. 이는 비록 법적 구속력 은 없지만 망 중립성 논쟁을 본격적으로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09년 10월 이 4원칙에 비차별성과 투명성 의 무를 추가한 ‘망 중립성 6원칙’이 채택되면서 망 중립성을 비롯한 FCC의 인터넷 정책의 골격이 갖춰졌다. 하지만 2010년 4월 연방항소법원이 거대 ISP인 컴캐스 트의 트래픽 차단 행위에 대해 FCC가 내린 시정명령을 무 효화하자 인터넷 개방성의 유지를 위해 FCC가 망 중립성 규칙을 도입할 권한이 있는가를 놓고 치열한 논란이 촉발 됐다. 이에 FCC는 2010년 12월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규 제권한을 위원회가 갖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오픈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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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채택하면서 투명성·차단 금 지·불합리한 차별 금지 등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사실 망 중립성 담론은 네트워크 사업자가 콘텐츠 내용 에 따라 다른 요금을 부과하거나 회선속도 및 서비스에 차 별을 두는 시장 전략을 펼침으로써 인터넷의 자유와 활발 한 아이디어의 전개, 자유로운 의사소통 등 시민 사회적 권리와 자유가 침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CAP에 대해 네트워크 사업자가 과금할 수 없다는 논 리로 변질해 가고 있는 감이 적지 않다. 특히 인터넷 접속 시장의 경쟁이 활성화해 있지 않을 뿐더러 규제가 거의 없 는 미국의 관련 논의와 규제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우리 상 황에 대입해 온 점도 없지 않다. 미국은 막강한 글로벌 경 쟁력을 가진 CAP, 플랫폼 기업과 하드웨어 기업들을 보유 하고 그에 걸맞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인터넷 환경 수 준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기형적인 미 국의 ICT 산업 구조는 필연적으로 망 중립성 논란을 초래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논의의 방향은 미국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콘텐츠와 플랫폼 사업자 위주의 관점 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인터넷 접속 시장은 경 쟁적인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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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장 상황을 고려해 2009년 말 KT의 초고속 인터넷 서 비스를 이용약관 인가 대상에서 제외한 사실을 통해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아울러 2004년부터 인터넷을 기간 통신 역무로 편입해 요금과 상호 접속 규제 등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터넷 접속 시장에는 유효한 시장 경쟁 과 촘촘한 규제 체계가 마련돼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전기 통신사업법 등 기존 법령에 망 중립성 관련 규제 근거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실제 인터넷 접속 시장에 실효적으로 적용되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국내 진보적 시민 사 회 진영에서 망 중립성 규제와 관련해 제기하고 있는 비판 들은 관련 법령의 미비에서 비롯했다기보다는 이를 엄정 하게 집행하려는 규제 당국의 ‘의지’나 ‘역량’에 관련해 있 는 측면이 강하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망 중립성 관련 논쟁이 격화된 이 유는 무엇인가? 인터넷의 태동기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CAP들의 진입과 성장이 인터넷 네 트워크의 가치를 증가시켜 인터넷 가입자의 폭발적 성장 에 기여했고, 이에 따라 CAP와 ISP 간 갈등이 표출되지 않 았다. 하지만 가입자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고 ISP의 매출 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인터넷 트래픽의 급성장에 따른 네 트워크 혼잡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한편 네트워크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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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드 비용의 분담을 요구하는 ISP의 목소리가 커지면 서 ISP와 CAP 간 갈등이 점차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 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통신사업자의 전통적 수익원과 인터넷 신규 서비스 간 충돌 문제도 논쟁이 격화되는 데 일조한 측면이 있다. 통신사업자의 전통적 수익원인 음성 전화와 단문메시지(SMS) 서비스가 인터넷 전화나 MIM (Mobile Internet Messenger) 등 신규 서비스와 경쟁관계 에 놓이면서 통신사업자의 CAP에 대한 견제가 심화했고 이것이 망 중립성 논쟁으로 비화했다는 얘기다. 또한 라 우팅 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 네트워크를 흐르는 패킷의 서비스 유형뿐 아니라 패킷의 내용(페이로드)까지 ISP가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심층 패킷 분석(DPI, Deep Packet Inspection) 등이 발전하면서 ISP가 인터넷의 게이 트키퍼(gate-keeper)로서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 이버시를 침해할 위험성이 고조됐고, 이를 둘러싼 진보적 시민 사회 진영과 ISP 간 갈등이 증폭된 것도 망 중립성 논 쟁의 한 축을 이루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망 중립성 규제를 둘러싼 찬반 양론 핵심은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서 통신사업자의 의무는 무 엇이고,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의 범위는 어디까지 용인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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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가다. 즉, 네트워크의 공공성, 혁신의 기반으로서 인터넷의 개방성 등을 근거로 해 강한 수준의 망 중립성 규제를 주장하는 측과 네트워크 고도화를 위해서는 통신 사업자의 재산권을 인정하고 그 운용에 일정한 자유를 보 장해 주는 게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트래픽 관리 행위 에 대한 사전 규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환언하면 망 중립성 규제를 옹호하는 측은 혁신과 소비 자 이익의 관점에서 네트워크 사업자의 중립적 트래픽 처 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이며, 인터넷을 하나의 언 론 미디어로 보고 중립적 인터넷을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 의의 실현을 위한 필수 전제로 간주한다. 따라서 망 중립 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사업자들의 차별적 트 래픽 관리 행위를 규제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즉, 인터넷은 도로·항만·전력 등과 같은 사회적 필수 하 부구조로서 산업혁명 이후 최대의 혁신을 가능케 한 사회 적 자산이며, 이런 뜻에서 네트워크 사업자에 대한 커먼 캐리어 규제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모든 미디어 들이 인터넷으로 수렴되는 All-IP 시대에 ISP들의 트래픽 관리를 무분별하게 허용할 경우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 이념적 의사표현이 차단되고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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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할 위험성이 크다는 게 망 중립성 규제 옹호론자들의 입 장이다. 한편 망 중립성 규제를 반대하는 측은 인터넷 접속 서 비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뿐더러 규 제가 오히려 접속 시장의 성장과 혁신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기본적으로 인터넷 네트워크는 개별 기업의 사적 재산이므로 망 투자비용 회수와 이윤의 추구 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 트래픽 폭 증에 대응하기 위한 ‘합리적’ 트래픽 관리는 ISP에 반드시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기존의 최선형 인터넷 (best-effort Internet)과 함께 품질보장(QoS: Quality of Service) 관리형 서비스도 허용해야 인터넷이 한층 더 도 약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망 중립성의 쟁점과 전선(戰線)이 다차원적이라는 점 을 고려하면 찬반 양론 모두 일정 부분 합리성을 갖추고 있고 긍정과 부정의 측면이 혼재해 있다는 생각이다. 하 지만 그 무엇보다 네트워크 사업자의 트래픽 관리에 관한 투명하고도 정확한 정보 공개가 논란을 종식시키는 첫걸 음이라고 하겠다. 국내외 거대 ISP들은 트래픽 급증 문제 는 단기적으로는 합리적 트래픽 관리를 통해서, 장기적으 로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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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화 비용 분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 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ISP들의 이러한 주장이 정당 화하기 위해서는 실제 트래픽의 발생량과 네트워크 부하 정도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투명한 정보 공개가 선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ISP들은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가령 2012년 2월에 일어난 KT에 의한 삼성전자 스마트 TV 네트워크 차단 사례라든지 같은 해 6월 카카오톡이 출 시한 모바일 인터넷 전화 애플리케이션 ‘보이스톡’에 대한 통신사업자들의 망 차단 경고에서 드러나듯이 스마트 TV 나 모바일 인터넷 전화 애플리케이션이 실제 네트워크에 얼마만한 부하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공개 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트래픽을 많이 유발하는 서비스 가 문제라면 무선 인터넷 트래픽의 70퍼센트를 점하는 것 으로 알려진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부터 차단해야 할 일이 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결국 네트워크 사업 자들의 주요 상품과 경쟁 관계에 있는 서비스들에 딴죽을 걸고 있다는 의혹의 눈길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인터넷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 ��� 중립성 논쟁의 당사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인터넷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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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라는 말을 입에 올리고 있지만 그야말로 구두선(口頭禪) 에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인터넷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해법 찾기에서 공생(symbiosis), 공진화(co-evolution), 협력적 경쟁(coopetition)을 핵심 개념으로 하는 진정한 생태적 발상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터넷 생태계가 남획되고 훼손되면서 그 건강성 을 잃어가는 징후를 곳곳에서 목격한다. 인터넷 네트워크 에서 수익을 올리는 다양한 사업자들에게 인터넷은 단지 이윤 창출의 장(場)이자 수단일 뿐 최소한 질서 의식과 책 임 의식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CAP들은 트래픽 폭 증에 의한 네트워크 과부하 문제에 애써 눈길을 주지 않으 려 하고, 당면한 가입자 유치에 눈이 어두워 3G 무제한 요 금제를 경쟁적으로 출시한 네트워크사업자들도 자충수를 뒀음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포털들의 폐해도 인 터넷 생태계 훼손에서는 그 누구에 못지않다. 독과점의 지 위를 누리고 있는 소수 포털들의 폐쇄성이나 저널리즘 공 간의 훼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광고 수입에 의존하 는 비즈니스 모델을 감안하더라도 포털 광고의 선정성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여북하면 이들 포털에 ‘슈퍼 갑(甲)’이 라는 부끄러운 별호가 붙었겠는가. 애플과 구글 등 글로벌 OS 플랫폼 사업자들도 자신들이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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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기기에 선(先)탑재하도록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이용 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 또한 국내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 해 엄청난 이익을 거둬가고 있음에도 망 사용에 대한 어떠 한 부담도 지지 않으려 한다. 일부 헤비 유저(heavy user) 의 데이터 과다 사용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반(反)생태계 적 행위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인터넷은 사적으로 소유되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활용이 가능한, 그래서 누구도 남보다 앞서 아끼고 보존 하려 하지 않는, 그냥 먼저 써 버리고 말면 그만인 공유 자 원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반생태계적 사 고와 행태가 인터넷의 모든 플레이어들 사이에 만연한다 면 인터넷 생태계는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에 빠지고 말 것임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총체적으로 제어할 철학적 논 의와 정책적 논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유·무선을 포괄하 는 인터넷 생태계의 보존과 지속적인 진화를 위해서는 제 한적인 망 중립성 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적 가치 개 념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사업자의 자유로운 진 입을 위해 인터넷 생태계가 개방성을 더욱 확대하고, 한발 더 나아가 네트워크 고도화를 통해 이용자의 복지를 증진 함과 동시에 생태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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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용자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망 중립성 원칙에 대한 사회 적 합의가 전제돼야만 궁극적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 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망 중립성 개념과 관련된 10개 주제를 다루고 있 다. 먼저 인터넷의 개방성을 지탱해 온 인터넷 네트워크 의 몇 가지 핵심 디자인 원칙들을 살펴봤다. TCP/IP, 단대 단 원칙, 커먼 캐리어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을 토 대로 네트워크 사업자의 사업 범위 혹은 통제력의 범위 설 정을 통해 그 지배력이 인터넷의 다른 층위들로 전이되지 않도록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인터넷의 개방성을 확보하 고 이용자의 선택권과 복지가 증진했음에 주목했다. 다음으로는 망 중립성 규제의 핵심인 ‘트래픽 관리’와 연 관된 주제들을 살펴봤다. 자칫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최근의 인터넷 트래픽 폭증의 문제, 심층 패킷 분 석, 투명성, 트래픽 관리와 같은 주제들이 여기에 해당한 다. 각종 소셜 미디어가 생산해 내는 엄청난 규모의 비정형 데이터, 인터넷 동영상 등 대용량 트래픽의 급증에 따라 인 터넷 네트워크가 ‘공유지의 비극’을 맞이할 것이라는 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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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전망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트래픽 폭증에 맞서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네트워크를 관리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을 자신들에게 허용해야 인 터넷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는 논리를 설파 하고 있다. 심층 패킷 분석, 투명성, 합리적 트래픽 관리 등 의 의미와 필요성 그리고 그것이 인터넷 이용자의 복지와 어떠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봤다. 그다음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 시 문제를 다뤘다.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 (Tim Berners Lee)는 “인터넷에서 결코 검열을 허용해서 는 안 된다. 인터넷 사용 자체가 하나의 인권이며, 인터넷 검열과 사용 제한 곧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침해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노동· 여가 등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인터넷이 차지하고 있는 엄청난 위상을 고려할 때 인터넷 공간은 더 이상 ‘가상의 공간’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런 뜻에서 최근 인터넷 공간 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거대 ISP들이 민주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어 떻게 위협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왜 망 중립성 이 필요한지에 대해 검토했다. 특히 ISP가 망 중립성의 근 본 정신을 훼손하면서 DPI기법 등을 동원해 인터넷 패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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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내용까지 들여다보려는 작금의 상황은, ‘합리적 트래픽 관리’의 범위를 벗어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검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봤다. 끝으로 최근 방송·통신의 융합, All-IP화의 흐름에 따 른 기존 미디어 생태계가 겪고 있는 격변의 양상과 그 전 망을 망 중립성의 문제와 결부해 살펴봤다. 전통 미디어 들이 인터넷 망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최근 미디어 환 경 속에서 모든 미디어는 유무선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콘 텐츠 사업자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러한 미디어 빅뱅시 기에 망 중립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거대 미디어 기업으 로 탈바꿈한 통신 사업자들이 콘텐츠 생산과 유통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통제력을 행사함으로써 미디어 다양성 이라는 공공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음에 주목했다.

참고문헌 Stiegler, Z.(2013). Regulating the Web. Lexington Books: Lanham. 배진한 옮김(2013). 󰡔망 중립성과 열린 인터넷의 미래󰡕.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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