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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ing Kids: Art : Haring in the Subway /

키스 해링 (Keith Haring, 1958~1990) 낙서화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회화 양식을 창조한 미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간결한 선과 강렬한 색으로 인종차별, 반핵, 동성애자 인권, 에이즈 등의 사회문제를 위트 넘치는 표현으로 시각화하였다. 그의 작품은 거리와 지하철을 벗어나 티셔츠와 배지, 벽화, 공익광고와 포스터 등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Art in Transit


I have been drawing since I was four years old. I learned to

나는 4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 나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draw from my father, who would entertain me by inventing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께서는 여러가지 동물 만화를

cartoon animals. Although he never pursued an artistic ca-

그려서 나를 즐겁게 해 주곤 하셨다. 아버지는 전문적인 미술가는 아니

reer, he encouraged me to continue drawing throughout my

었다. 그렇지만, 학창 시절 내내 내가 미술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

school years. Drawing became a way of commanding respect

로 지지해 주셨었다. 나에게 있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남을 존중하고, 그

and communicatiing with people. When I was eighteen, my

리고 이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 갔다. 내가 열여덟 살이 되던 즈

work, which had been primarily cartoon-oriented, became

음, 나의 그림은 상당부분 만화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으며, 점점 더 추상적

increasingly abstract and concerned with spontaneous ac-

이고 즉흥적인 행태를 나타내게 되었다. 나는 동양의 서예(Eastern Cal-

tion. I became interested in Eastern Calligraphy and the art

ligraphy)에 심취하였고, 제스쳐(Gesture)를 통한 예술에 흥미를 가지게

of the Gesture. When I moved to New York City at the age of

되었다. 20살이 되어 뉴욕에서 살게 되었는데, 이 시절에는 내가 종이를 밟

twenty, I started to experiment with drawing on paper that

고 서서 그림을 그려야 할 만큼 큰 종이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실험적인

was so large that I had to stand inside the drawing. Although

시도도 해 보았었다. 이 시절이 되어서도 나의 그림은 “추상적 (Abstract)”

my work was still “Abstract” at this time, I became aware of

인 성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내어 놓는 작품에 대해 사

the vast differences in people’s responses to the work. Dif-

람들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실감한 것도 이 시절 무렵이다. 내

ferent people saw different things in the drawings. I remem-

가 그린 그림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것을 보았다. 어느 날 오후, 22번

ber most clearly an afternoon of drawing ina studio that large

가로 난 커다란 문이 있는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던 일이 아직도 생생

doors that opened onto Twenty-second Street. All kinds of

하게 떠오른다. 내가 아주 커다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광경을 보

people would stop and look at the huge drawing and many

고,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았으며, 자기 나름의 감상을 거침없이

were eager to comment on their feelings toward it. This was

제시하는 사람들도 결코 드물지 않았었다. 바로 이순간, 적절한 기회만 주

the first time I realized how many people could enjoy art if

어진다면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they were given the chance. These were not the people I saw

있는지, 나는 진정 깨닫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내가 그 동안 미술관이나 화

in the museums or in the galleries but a cross section of hu-

랑에서 만나던 사람들과는 확연히 거리가 있었다. 이들은 모든 계층, 모든

manity that cut across all boundaries. This group of different

배경의 다양한 인간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people living and working together in harmony has always

어울려 같이 일하고, 살아간다는 점이야 말로, 뉴욕이라는 도시가 나에게

been my prime attraction to New York.

가진 가장 큰 매력이었다.

I arrived in New York at a time when the most beautiful

내가 뉴욕에 막 자리를 잡았을 당시,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

paintings being shown in the city were on wheels - on trains

은 모두 바퀴가 달려 돌아다니고 있었다. 박물관에 얌전히 걸린 그림들과

- paintings that traveled to you instead of vice versa. I was

는 달리, 자동차, 지하철에 그려진 그림들이 감상하는 사람들 직접 찾아 다

immediately attracted to the subway graffiti on several lev-

니며 즐거움을 선사하였던 것이다. 나는 지하철 벽화(subway graffiti)가

els: the obvious mastery of drawing and color, the scale, the

가진 몇몇 특성으로 인해 여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우선, 지하철 벽

pop imagery, the commitment to drawing worthy of risk and

화들은 그림의 실력 자체가 뛰어났으며, 그 색상과 비율, 대중문화를 포용

the direct relationship between artist and audience. I had

하는 이미지들과 위험을 감수하는 그림에 대한 열정, 그리고 예술가와 관

no intention, however, of jumping on the bandwagon and

객들이 서로 함께 호흡하며 직접적으로 소통한다는 점은 너무나 크나큰 매

imitating their style.

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행에 편승해 지하철 벽화의 스타일을

For two years, I was an observer. During that time, my art

그대로 답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was going through several changes. I began making videotapes and doing performances. I was introduced to the work of William Burroughs and began experimenting with words and meaning ina similar style. I studied semiotics, the science of signs and symbols. In 1980, I returned to drawing with a new commitment to purpose and reality. If I was going to draw, there had to be a reason. That reason, I decided, was for people. The only way art lives is through the experience of the observer. The reality of art begins in the eyes of the beholder and gains power through imagination, invention, and confrontation. Doing things in public was not a new idea. The climate of art in New York at that time was certainly moving in that direction. It seemed obvious to me when I saw the first empty subway panel that this was the perfect situation. The advertisements that fill every subway panel that this was the perfect situation. The advertisements that fill every subway platform are changed periodically. When there aren’t enough new ads, a black paper panel is substituted. I remember noticing a panel in the Times Square station and immediately going aboveground and buying chalk. After the first drawing, things just fell into place. I began drawing in the subways as a hobby on my way to work. I had to ride the subways often and would do a drawing while waiting for a train. In a few weeks, I started to get responses from people who say me doing it. After a while, my subway drawings became more of a responsibility than a hobby. So many people wished me luck and told me to “keep it up” that it became difficult to stop. From the beginning, one of the main incentives was this contact with people I It became a rewarding experience to draw and to see the drawings being appreciated. The number of people passing one of these drawings in a week was phenomal. Even if the drawing only remained up for only one day, enough people saw it to make it easily worth my effort.


그 후 2년간, 나는 오직 관찰자에 불과하였다. 이 시절 동안 나의 예술작품 활동 역시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 비디오 영상을 촬영하고, 행위 예술에 몰두하기도 했다. 누군가 나에게 William Burroughs의 작품을 소개해 주 었고,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단어 및 의미를 가지고 실험적인 시도를 해 보 기도 하였다. 나는 기호학(semiotics)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기호학은 상 징, 그리고 신호체계에 대한 학문이다. 1980년도에, 나는 새로운 현실과 목표의식을 가지고 회화로 복귀하였다. 당시, 회화로 복귀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 본적 이 있다. 내가 내렸던 결론은 바로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예술 작품은 이 를 감상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그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 예술의 현실은 이를 주시하는 시선으로부터 시작되며, 상상과 창의력, 그리고 직접적으로 관객과 대면함으로써 (confrontation) 그 힘을 얻는다. 공공 장소를 활용한 예술 활동은 그다지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다. 그 당시, 뉴욕 전체의 예술적 기조 자체가 이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처음으로 텅 빈 지하철 판넬(panel)을 보았을 때, 바로 이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하철 내 모든 판넬은 광고의 게재 공간 으로 활용되며, 광고는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광고주를 찾지 못한 공간은 이를 대신 해 검은색 종이가 끼워진다. 타임즈 스퀘어 역에서 텅 빈 판넬 을 처음 발견하였던 순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것을 보자마자 나 는 지상으로 뛰어올라가 분필을 사 들고 내려왔다. 일단 처음 그림을 그리 고 나자, 나머지 과정은 알아서 흘러갔다. 처음에는 출근길의 취미활동으 로 지하철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직업상 지하철을 탈 일이 많았으며, 열차를 기다리는 중에는 항상 그림을 그리곤 했다. 몇 주가 지나자, 내 그림 에 사람들이 계속 하라는 격려로 화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취미로 시작했던 지하철 그림이 이제는 하나의 의무 가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덕담을 건네며 “계속 힘내라”고 주 문했다. 이제는 그만두기도 어려워진 것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사람들의 격려가 그림을 계속 그려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사람들이 그 그림을 인정해 준다는 점 자체가 크나큰 보상이었던 것이다. 매 주 내가 보는 그림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사람들에게 노출되었 다. 그림이 단 하루만 노출되었어도, 이를 본 사람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이는 나의 노력에 대한 크나큰 보상이었다. 지하철 판넬은 며칠에 서 몇 주간의 기간이 흐르면 새로운 광고가 그 위에 걸려버리곤 했다. 그 때 문에 나는 항상 새로운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개발해 내야 하는 처지에 놓 이게 되었다.


The panel remains from a few days to a few weeks before a

이미지는 현대인이 가지는 집단 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의 일부

new advertisement is posted on tip of it. This constant re-

분이다. 국제 면에 걸림직한 세계적인 사건으로부터 새로운 기술의 개발,

plenishment forces me to keep inventing new images and

그리고 신과 진화론에 대해 엇갈리는 사람들의 입장 등, 이러한 이미지의

ideas.

원천이 되는 사건들은 다양하다. 모든 그림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읽어

The images are part of the collective consciousness of mod-

낼 수 있는” 이미지들을 사용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대중문화(popular

ern man. Sometimes they stem from world events, some-

culture)의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다.

times from ideas about technology or people changing roles

회화는 원래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상상력을 끌어 낼 수

in relation to God and evolution. All of the drawings use im-

있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작품에 대해 정확하게 못박아 놓은 정의는

ages that universally “readable”. They are are often inspired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작품을 자기 나

by popular culture.

름대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때로는, 나의 지하철 그림에 대해 불편

The drawings are designed to provoke people to think and

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의 그림이 그려진 자리는 원래 광고가

use their own imagination. They don’t have exact defini-

걸려야 하는 곳이다. 광고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생각해야 하

tions but challenge the viewer to assert his or her own ideas

는지 명시적으로 전달한다. 때로는, 그림을 그릴 판넬 옆에 걸려있는 광

and interpretation. Sometimes, people find this uncomfort-

고들이 작품의 영감을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아이러니한 공생관계의 탄

able, especially because the drawings are ina space usu-

생인 것이다.

ally reserved for advertisements which tell you exactly what

내가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광고가 걸려있지 않은 검은색 판넬에 누군가

to think. Sometimes the advertisements on the side of the

자신의 흔적(tag, 서명)을 미리 남겨 놓았다면, 나는 이러한 흔적의 주변 혹

empty panels provide inspiration for the drawings and often

은 사이에 나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다른 사람이 남겨 놓은 흔적 위에는 결

create ironic associations.

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지하철의 화가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암묵적인

When there are grafitti “tags” (signatures) on the black panel

상호 존중이 가능했지만, 그 범위를 조금만 벗어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

before I arrive, I usually draw around and in between the

도 꽤 많았다. 내가 그린 그림에다가 자기 서명을 대신 적어 놓은 사람들도

signatures. I would never draw over other people’s tags.

있었고, 아예 지워버리거나 X표를 그어 버리거나, 혹은 그림 자체를 훔쳐

This mutual respect among graffiti writers, however, does

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 외에는 지하철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데

not extend to other people. Sometimes other people sign my

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drawings after I’ve left. Sometimes they erase them, cross

지하철 작품은 빠르고, 간단히 그려야만 했다. 보는 사람이 “읽어 낼 수 있

them out, or even steal them. These are the only things that

도록” 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체포 당하지 않는 것이 1차 목표였

inhibit my work in the subway.

다. 법적으로는 내가 그린 그림 역시 지하철 “낙서(graffiti)”에 불과하였던

The drawings are by necessity quick and simple. This is not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쉽게 지울수 있는 분필로, 그것도 임시로 걸려

only for easy readability but also to avoid getting arrested.

있는 흑색 판넬에만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이를 공공기물파손에 해당한다

Technically they are still graffiti. Because they are only chalk

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걸리는 경찰마다 반응은 제 각각이었다.

and the black ads are only temporary, it is hard to call them

그림을 그리다 현장에서 발각 당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어떤 경찰은 10달

vandalism; however, different policeman respond in differ-

러짜리 벌금딱지를 발급하고 마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경찰은 수갑을 채

ent ways. I have been caught many times. Some cops have

워 나를 끌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풀려날 때쯤이면 모두들 그림 자체

given me a $10.00 ticket, some have handcuffed me and

는 마음에 든다는 말을 꼭 해주었었다. 직무상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

taken me in. By the time they let me go, most of them tell

었다는 말도 곁들이면서 말이다. 깐깐한 경찰관에 붙들려 수갑을 차고 지


me they like the drawing, but they’re just doing their job. More than once, I’ve been taken to a station handcuffed by a cop who realized, much to his dismay, that the other cops in the precinct are my fans and were anxious to meet me and shake my hand. I have been drawing in the subway for three years now, and although my career aboveground has skyrocketed, the subway is still my favorite place to draw. There is something very “real” about the subway system and the people who travel in it; perhaps there is not another place in the world where people of such diverse appearance, background, and life-style have intermingled for a common purpose. In this underground environment, one can often feel a sense of oppression and struggle in the vast assortment of faces. It is in this context that an expression of hope and beauty carries the greatest rewards. Keith Haring


서로 끌려갔는데, 같이 일하는 다른 경찰관이 나타나 내 그림의 팬이라며 악수를 청하는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하는 경우도 여럿 보았다. 지하철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비록 바깥세상에서의 나는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그래도 내가 그림을 그리기 가장 좋은 공간은 여전히 지하철이다. 지하철,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는 뭔가 강력한 “현실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렇게 다양한 외모, 배경, 생활 습관 을 가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목적으로 모이는 장소는 지하철 말고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이 지하세계에서, 때때로 사람들은 억압받는 심정을 느 끼고, 그리고 수없이 주변을 가득 메운 얼굴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제 갈 길을 가게 된다. 바로 이러한 환경이야 말로, 희망과 아름다움을 담은 그림이 가장 보람 있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키스 해링


Frame 6061 DB Alloy 700C

Shift Lever Acera

TIRE KENDA K193 28C

Front Fork Alloy Aero-Blade Fork

F/Derailleur Acera

SADDLE VELO Competition Saddle

BRAKE TEKTRO Mini-V Brake

R/Derailleur Acera

Chainwheel PROWHEEL Alloy

HUB SHIMANO RM60


Frame 6061 DB Alloy 20"

F/Derailleur N/A

BRAKE TEKTRO Caliper Brake

R/Derailleur N/A

Chainwheel CNC Fixie Crank

HUB Alloy

Shift Lever N/A

SADDLE VELO Competition Saddle


Frame 6061 DB Alloy 20"

F/Derailleur N/A

BRAKE TEKTRO Caliper Brake

R/Derailleur SHIMANO Tiagra

Chainwheel CNC Fixie Crank

HUB Alloy

Shift Lever SHIMANO ST-R440

SADDLE VELO Competition Saddle


Frame Alloy

wheel Alloy Rim w/Stainless Spoke

BRAKE Roller Brake

R/Derailleur SHIMANO NEXUS INTER-3

PEDAL Aluminum Non-slip

HUB SHIMANO 3-Speed HUB

Shift Lever SHIMANO Revo Shift

TIRE KENDA 26"*1-3/8"

SADDLE VELO w/Keith Haring Logo Embroidery


Frame Alloy 26"

F/Derailleur N/A

BRAKE TEKTRO Caliper Brake

R/Derailleur 2300

Chainwheel PROWHEEL Pioneer

HUB KT Alloy

Shift Lever SHIMANO ST-R440

SADDLE VELO

GRIP VELO


Frame Alloy 26"

F/Derailleur N/A

GRIP Brooks Leather grip

BRAKE TEKTRO Caliper Brake

R/Derailleur 2300

BAG Brooks Challenge Tool Bag

Chainwheel PROWHEEL Pioneer

HUB KT Alloy

Shift Lever SHIMANO ST-R440

SADDLE Brooks B17s Standard saddle


Frame Alloy Cruiser type frame

R/Derailleur SHIMANO 7spd

Rim Color AERO Rim w/Side CNC

SADDLE VELO Spring Saddle

Fender Plastic fender with Mudflap Chaincase Plastic Case


Frame Alloy 20" Folding

TIRE 20"*1.75 with Reflector Line

BRAKE V-Brake

SADDLE Velo Saddle with LED Light

Shift Lever Microshift 8-speed Grip shift R/Derailleur SHIMANO ACERA


Frame Alloy 16" Folding

HUB SHIMANO 3-Speed HUB

BRAKE V-brake

TIRE 16"*1.75

Shift Lever Shimano Revo shift

SADDLE Spring saddle

R/Derailleur SHIMANO NEXUS INTER-3


Frame Alloy

WHEEL Alloy with Twist spoke

Front Fork Suspension Fork

SADDLE Grossy Pattern saddle

PEDAL Non-slip Pedal

TIRE 18"*1.75

BAG Cross Bag for Handlebar


Frame Alloy

HUB Alloy

Front Fork Suspension Fork

SADDLE Grossy Pattern saddle

PEDAL Non-slip Pedal

BRAKE LEVER Safety lever for Kids

BAG Cross Bag for Handlebar

TIRE 12"*1.75


www.icorex.com

Keith Haring Bicycle Catalog another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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