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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 통권 91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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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on

섬기는 이들 문서출판부 부장 : 송현경 편집팀 : 최용석, 박윤희 취재,사진팀 : 성혜진 인쇄, 배부 : 박지영 표지디자인 : 최용석


영락의 목양실에서…

자리지키기 명치호 목사(달라스 영락교회 담임 목사)

“Dirty is out of the place”라는 말이 있습니 다. “더러움이란 자기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라 는 말입니다. 연못 속에서 커다란 고기가 헤엄 칠때에는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물고기가 우리의 침대 위에 누워 있다면 우리는 더럽다고 말합니다. 아름답던 물고기가 혐오스러워지는 것 은 그 물고기의 본질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 합하지 않은 장소에 있기 때문입니다. 논밭에서 는 꼭 필요한 흙이 방바닥에서는 닦아내야 할 더 러운 것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에게 저마다 주어진 자리가 있습니다. 그 리고 그것은 우리의 임의대로 버리고 떠날수 없 습니다.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교 회에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 십시오. 그것은 견고함과 인내와 피나는 노력 이 요구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가 가장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은 제자리를 지 키며 그곳에서 충성스럽게 맡겨진 역활을 해낼 때입니다. 바글바글 요란스럽게 끓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처럼, 파르르 타다가 이내 흰재로 변해버리 는 종이처럼 지속성이 없는 것을 열정이라 하기

에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정을 지속성 이라고 풀어도 될것 같습니다. 성격에 따라서 조 용하신 분도 계시고 활달하신 분도 계십니다. 그 러나 드러나는 모습이 어떠하든지,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중단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곧 열정입니다. 열 정 없이 일어나는 ‘역사’는 없습니다. 열정이 역 사를 이루어냅니다.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 터 킹 목사님이 1959년에 한 연설 중에 이런 부 분이 있습니다. “인류의 진보는 저절로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정의를 쟁취하기 위한 모든 전진 에는 희생, 고통, 투쟁, 즉 개인의 끈질긴 헌신과 열정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영어의 “열정”이란 단어인 “passion”은 “수 난”, “고통”이란 뜻도 있습니다. 열정은 쉬운 길 이 아닙니다. 수난과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하 늘 나라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힘들 고 어려운 과정을 감사하며 기꺼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저마다 묵묵히 내적인 열망과 소망을 잃 지 않으며 주어진 사명의 자리를 지켜갈 때 반 드시 풍요롭고 아름다움 열매가 그 결과로 주어 질 것이라 믿습니다. 모퉁이돌 | 1


성경적인 가정 2 변화평 목사(달라스 영락교회 유년부 담당 목사)

한국에서는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리고 우 리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5월 첫째주와 둘째주 는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로 드려지고 있습 니다. 이번에 함께 나눌 성경적인 가정의 이해 를 가정의 달인 5월에 나눌수 있게 되어 감사 드립니다. 지난호에서는 성경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모델 로 삶기 위해 성경에 나타난 가정들의 모습을 관 찰한 결과 현대의 가정의 이해속에서 정상적인 가정을 뽑을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정들이 깨어 진 모습들만 발견되었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 는 이상적인 가정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할 것인 지에 대한 제 진지한 고민을 말씀드렸습니다. 성 경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가정은 과연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가정 in 창조 그 이상적인 가정은 바로 에덴 동산에서 발견 할수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인 창세기 1장 과 2장에서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 조된 아담과 하와가 이룬 가정을 만나볼수 있습 니다. 즉 첫번째 창조되어진 가정, 바로 그 가정 이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감히 말할수 있습니다. 한번 상상해봅시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 아담 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 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창1:26, 하 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 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의 형상 (첼렘)은 신적인 본질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 리고 모양(데무트)은 하나님을 닮아있는 관계적 2 | 모퉁이돌

인 차원에서의 단어입니다. 즉 타락하기 전 인간 을 창조하신 그 상태는 완전무결한 완벽하게 하 나님의 신적인 본질과 더불어서 하나님과 친밀 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의 형상 을 지닌 인간이었음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 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담의 몸을 이차 재료로 하여 하와를 만들어 하나님께 서 첫 주례자가 되시어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 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를 통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의 보호자가 되 어주셔서 이들에게 당신의 창조물을 모두 다스 릴수있는 권한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창 1:28-30) 무엇보다도 이 가정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장 큰 특권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허락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하 나님과 나누었는지, 하나님께서 친히 이들과 대 화를 나누시고 이들에게 친히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함께 동산을 거 니시는 것까지 보며 느낄수 있었습니다.(창 3:8) 가정 in 타락 그러나 이 이상적인 가정은 이들이 죄를 짓게 됨 (창3)으로 파괴되어버립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담과 하와의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일그러질데로 일그러져버리게 됩니다. 즉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 온전하게 친밀한 관계를 더 이 상 맺을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렸습니다. 하나님 과의 관계가 멀어진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서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그 이상적인 가정의 축복을 누릴수 없게 됩니다.


된 가정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 제야 답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인간은 가정안에서도 남편과 아내가 온전한 관 계를 세울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도 온전한 친밀한 관계를 이룰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진노중에서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임을 우리는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서 발견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을 보시고 그들을 홍수로 쓸어버리시는 진노 가운데(창6) 노아에게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의 은 혜가 이러한 가정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일 을 이루시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세워나가셨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즉 타락한 인간들이 이룬 그 가정에서 벌어진 일들이 바로 제가 구약성경에서 발견 할수밖에 없었던 깨어진 가정들이었습니다. 최초의 가정인 아담의 가정에서 형제 살인이 일어났으며, 가인 의 6대손인 라멕은 처음으로 두 아내를 맞이하 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 마저 깨버립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 발견되어지는 깨어진 가정들의 목록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 브라함 가정의 불임(99세까지), 형제 야곱과 에 서의 반목, 야곱의 네 명의 아내와 아내들의 질 투, 야곱의 편애로 인한 형들의 질투로 인한 요 셉의 애굽 종살이, 사사 기드온의 수많은 아내와 첩,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의 형제 살해, 사사 기 19장의 레위인과 첩의 이야기(강간, 살인, 동 성애), 엘가나의 두 아내의 질투와 반목, 한나의 불임, 엘리 제사장의 가정 (홉니와 비느하스), 사 무엘과 반역하는 두 아들, 다윗의 가정(7아내와 수많은 아들들 반목, 압살롬의 반역, 근친상간), 솔로몬의 수많은 이방여인 아내들, 호세아 선지 자와 고멜의 가정. 왜 성경에서 발견되어지는 이 가정들은 하나 같이 지금 우리의 가정이라는 이해로서 제대로

가정 in 구속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 을 통해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 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의 피로 인 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은 완벽하 지 않지만 회복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말합니다. 구속된 인간들이 이룬 가정은 비로서 그 안에서 믿음의 결실들을 맺어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는 구약 성경 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타락한 가정의 모습들을 발견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런 모습이 논리적 으로도 타당하지 않습니까? 만약 구약 성경에서 발견되어지는 깨어진 가정들의 모습이 너무 빈 번하게 발견되어 진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 가틀 통한 구속 사건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 지 않겠습니까? 즉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 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가정은 더 이상 타락한 가정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많은 가정의 모습을 신약성경에서는 발견하 기 어렵지만 그래도 예를 찾을수 있습니다. 예 수님의 육신의 가정도 참신한 예로 삼을수 있겠 모퉁이돌 | 3


지요. 나사렛에서 살아간 예수님은 배다른 형제 로 취급 받고 살아오셨습니다. 나사렛을 방문하 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 을 마리아의 아들(막 6:3)로 칭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유대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성 (last name)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구별하기 위 해 지명이나 아버지의 이름을 앞에 붙쳐서 사람 이름을 호명합니다. 당연히 요셉의 아들 예수라 고 불려져야 하지만, 나사렛 사람들은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유년 기부터 청년기까지 삶이 사생아로 주변에서 취 급을 받고 자라왔음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 게 됩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인데, 예수님 께서는 자신의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육신의 어 머니의 봉양을 제자 사도 요한에게 부탁을 하십 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의 첫 아들인 야고보 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되어 육신으로 보면 사생아 형님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가장 앞에서 교 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이해로서는 도 저히 가능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어려서부터 장 성할 때까지 배다른 형제로 주변의 곱지않은 시 선을 받고 자랐던 동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는 이 동생들조차 예수님을 믿지 못 하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막 3:21, 예 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 4 | 모퉁이돌

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수님을 미쳤다고 말하는 자들 친족들 가운데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이 함 께 있었습니다. (막 3: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 와 동생들이 밖에 서서...) 예수님께서는 사역하는 현장에 방문을 온 마 리아와 동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기는 커녕, “누 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 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 12:50)”이라며 당황하게 만드십니다. 예수님께서 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서의 가정의 모습을 확장시켜주고 계십니다. 각설하고 예수 님의 가정에서는 이렇듯 보이지 않는 심각한 갈 등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물론 예수님에게 문 제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들, 야 고보, 유다, 시몬, 요셉 (갈 1:19),에게 문제가 있 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목격한 이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 완전히 구속받은 자들로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살아가게 될때 그 가정이 회복되고 이들은 가장 앞장서서 예수님 의 사역에 큰 일꾼으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야 고보는 사도로 불리우며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 이 되었고, 유다는 나중에 유다서를 기록하게 됩 니다. 비록 처음에는 문제있는 가정처럼 보였지 만 구속받은 자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 회복된 가정의 모습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가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가정도 발견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거하셨던 곳이 바로 마가의 집인데, 그 가정 의 집은 분명한 박해의 현장에서도 사도행전의 사건에 가장 핵심이 되는 장소로 마리아를 통해 제공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마가는 바울과 선교 여행에 잠시 문제가 있었지만 나중에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여 바울사도에게 동역 자라고 칭할만큼 (몬 1:24), 그리고 베드로가 아 들로 칭할 만큼 (벧전 5:13) 장성한 그리스도인 이 됩니다. 이 가정 역시 비록 아버지가 일찍 죽 은 결핍의 가정이지만 그리스도께 구속받은 아 름다운 가정으로 신약 성경이 소개하고 있습니 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의 백부장 고넬료의 가 정, 빌립보 감옥의 간수의 가정, 빌립보의 루디 아의 가정, 브리스기아와 아굴라의 가정, 디모데 의 어머니와 외조모의 가정 등등 복음으로 인하 여 구속받은 사람들로 구성된 하나님과의 관계 가 회복된 가정의 모습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발 견하게 됩니다. 결론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수 많은 깨어진 가정들의 모습에 실망을 하였다가, 하나님의 구 속사적인 렌즈로 가정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 을 때, 가정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속 사건이 라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주신 가정은 하나님 과 맺어지는 친밀한 관계가 없이는 이상적인 가 정을 이룰수 없습니다. 창세기는 에덴 동산의 가 정을 통해 친밀한 하나님과의 관계안에 이상적 인 가정를 이룰수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타 락한 인간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지 못 한 상태에서 이룬 가정은 타락한 가정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수많은 가정의 사례를 통해 발 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노중에라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인간에게 주고 있음도 우 리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고, 우리의 삶을 통해

서도 이해하고 있는 바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의 구속 사건은 개개인의 구속 사건일 뿐 아니 라, 구속된 사람들이 이루는 가정안에 하나님과 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켰음을 신약성경에 보 이는 가정들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가정을 이루고 있는 우리에게 는 우리의 가정 안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를 성경이 말하고자하는 가정을 통해 알게 됩니 다. 즉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으로 가정 안에서 아 버지가 어머니가, 자녀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 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 안에서 만의 관계, 즉 하 나님과의 관계를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부부끼 리만의 관계, 부모자식만의 관계로는 결코 하나 님께서 원하시는 이상적인 가정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머 니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자녀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스스 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리가 가장 먼저 회복하 며 친밀하게 세워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이루는 가정안에 최우선으로 세워야할 관계입니다. 아 버지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하게 세워 지십시오. 어머니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친밀하게 다가서십시오. 자녀들이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도록 힘쓰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가정은 더욱 서로를 사랑하며 더욱 친밀 한 가정으로, 성경이 말하는 이상적인 가정으로 세워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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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2) by 마틴 로이드존스

엡 2:4 긍훌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  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 이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7 이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그의 자비와 지극히 풍성하 신 은혜를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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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진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놀라우 신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없이는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 하신 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 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 이단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 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1. 하나님의 큰 은혜 천만 장자가 어떤 불쌍한 극빈자를 도와줍니 다. 그것은 참으로 관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부자에게는 그것은 작은 것에 불 과합니다. 설령 1억을 도와주었다 할지라도 그것 은 그 부자에게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가 극빈자를 돕기 위해서 아들을 희생했다면 그 것은 굉장히 큰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측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 발에 신 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셨는지 아십니까?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아 버지의 품에 계셨으며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이 십니다.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분이었는데 바로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너무나 가볍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 기에 얼마나 큰 슬픔과 희생이 숨겨져 있는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들이신 예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 리가 구원의 은혜를 힘입기 위하여서 주님이 얼 마나 큰 희생과 고통을 겪으셨는지를 생각해 보 아야 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웠습니 다.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는 자신을 낮추시되 철저하게 낮추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더럽고 추한 죄악된 도성 에서 산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겠습니까? 여러 분들이 서울 도성을 다니다 추하고 더러운 꼴을 보면서 혐오감을 느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 러분 그 혐오감을 몇만 배로 확대시켜 보시기 바 랍니다. 주님이 바로 그런 혐오감을 참으시고 우 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세리와 창 기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받으시고 침 뱉음과 욕설을 다 들으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십 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마침내 죽어서 사람들은 주님을 무덤에 장사지내었습니다. 여러분은 무 덤 속에 들어가 본적이 있습니까? 그곳이 얼마 나 음산한지, 얼마나 참혹한지를 아십니까? 여러 분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하여 주님에게서 일 어난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 닙니다. 그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 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원대한 구원 계획 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베풀어진 이 큰사랑과 은혜를 늘 기억해 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고통 이 모든 일이 일어났던 당사자인 하나님의 아 모퉁이돌 | 7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깊이 있게 생각할 것 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있습 니다. 하나는 우리가 죄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의 높이와 영광과 위대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힘을 잃는 가장 주된 요인은 바로 이것입니다. 1.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우리는 사도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바 를 사실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실제 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 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놀라 운 사실은 그러한 모든 일이 바로 우리를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설명하고 있는 바 이 모든 일이 실제적으로 예수님께서 육신적으로 경험하신 일 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영적으로 우리에게 동 일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의미에 서 우리는 죽음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 니다. 물론 때가 되면 육체적으로도 그 일이 일 어날 것입니다. 2. 자유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은 정의상 다시는 영적으로 죽음의 위협 아래 있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그러했습니 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 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나오듯이 우 리도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이 우리에게는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망이 우리를 위협할 수 없는 것입니 다. 사도바울이 고백하는 바대로 사망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것입니 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결코 죽음이 위협이 되지 8 | 모퉁이돌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 앞에서 찬송하면서 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율법에 대하여서도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언제나 율 법의 고소에 대응할 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 리는 진실로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율 법 아래 태어나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의 삶 하나 하나가, 우리의 말과 행실 하나 하나 가 다 율법의 눈으로 볼 때에는 저촉되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은혜로 자리를 옮기우게 된 것입니 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은혜의 눈으로 바라 봅니다. 잘못했다고 해서 자녀를 법적으로 대하 는 부모가 없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 제는 법으로 대하지 아니하시고 은혜로 대하신 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 르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다시 말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 가 아닙니다. 우리를 다스리고 이끌어 나가는 것 은 우리의 정욕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의 통치자 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여전히 이 죄악된 세상에 이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살아 가고 있지만,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삶에 깊이 관여하시고 이끄시고 지도하시는 성령님으 로 인해 이제 더 이상 죄된 삶이 아니라는 것입 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닌 것입니다. 3. 새 사람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 있었 습니다.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완전 무지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식하지도 않았으 며,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


께 대하여 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는 하나님께 대해서 전혀 새로운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원 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모하고 소원 합니다. 우리는 이제 간절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더 이상 나무 뒤에 숨을 필 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 까? 이것은 실로 사망에서 생명으로의 변화요 절 대적인 변화요 본질적인 변화입니다. 이보다 더 큰 변화가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참된 소망은 하나님께 더 욱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새로 운 본성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 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새벽 미명이 되 기 훨씬 전부터 일어나셔서 아버지께 기도하곤 하셨습니다. 때론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

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대해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는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새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이 육신과 세상적인 관점에서 생 각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볼 때 이전과 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는 주의 말씀을 묵상하기를 즐겨하는 것입니다. 새 로운 사람은 기도의 소원을 가집니다. 그는 하나 님 앞에 나아가 자기의 문제를 내어 맡기기를 즐 겨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모든 문제를 상의하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즐겨합니다. 그 는 그의 모든 의지와 감정과 지성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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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우리는 삶을 살아나갈 때 이런 저런 일로 고 통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일을 당할 때 너 무나 쉽게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고 원망하기 가 쉽습니다. 사실 우리의 고통의 대부분은 너 무나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 하여 행하신 일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설명 함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 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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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것 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우리의 자세 와 마음가짐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 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위하여 이 큰 일을 하 셨습니까?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의 제일되는 목적과 의도와 목표는 하나 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신 일


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만천하에 보 여줍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 우 리가 관심을 두는 것에만 생각을 집중합니다. 그 러나 이제 눈을 돌려 객관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세계를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인류에 죄라는 것이 들어와서 이 세상이 얼마나 고통스 럽게 변하였는지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하여, 또 우리 불쌍한 인간을 구원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공할 일입니다. 그것 은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 은 하나님 보시기에 훨씬 더 중대한 문제입니다. 거기에는 영생과 영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과 죄악의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하나님 의 성품과 하나님의 계획을 온전히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냄 구원은 그 밖에 다른 것을 행할 수 없는 특 수한 방식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 나님의 성품을 변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 원역사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배우게 됩니 다. 만일 이러한 일이 없었다라면 우리는 하나 님의 성품(온유, 사랑, 자비, 긍휼)을 알 길이 없 었을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길이 없습니 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하나님의 긍 휼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우리는 알 길이 없는 것 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구원 역사를 통하여 하 나님의 그 놀라운 품성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

리는 이제 하나님에 대한 온갖 오해와 편견들을 말끔히 제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교회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 위대한 이 장엄한 일을 우리를 방 편으로 해서 우리를 통하셔서 맨 먼저 행하십니 다. 그는 이 모든 일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 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 서는 교회의 구성원들 한 사람 한사람에게 놀랍 고 풍성한 은혜를 베푸셔서 그것이 계계승승 이 어지기를 소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서 불러 모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 내 보여주십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요한이 환상 중에 어린양 곁에 서 있는 흰옷 입은 무리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 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입니다. 이들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구원받은 성 도들입니다. 이렇게 큰 무리가 모이게 된데는 바 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이 일을 이루셨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나를 구원하는데만 있는 것 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본성을 나타내고 보여 주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하여 먼저 부름 받고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 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크시고 위대하신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구원받는 허다한 무리들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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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앉히사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어떠한 일이 벌 어졌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놀랄만한 사실은 이 모든 것을 과거시제로 기록하고 있다 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 늘에 앉히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1. 하늘에 속하면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전에는 이 세상에 속해 있 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세속적인 사람만을 뜻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입 니다. 학식이 있건 없건 그들 모두는 세상에 속 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과 불신자와의 한가지 차이점은 저 들은 세상에 속하였으나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 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사람들입니다(히11장)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사단의 지배 아래 있지 않습니 다. 우리는 전에 사단에게 속하여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바울은 말하기를 “만 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 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 는 자들의 마음을 미혹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 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 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멸망하게 될 운명에 처해있는 세상입니 다. 이 세상은 심판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 님께서 이 멸망 받을 도성에서 우리를 건져 주 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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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늘의 시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고 향은 하늘 나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통제 아 래 있습니다. 더 이상 악한 영의 지배를 받지 않 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생명이 그의 속 에 있고, 그의 마음은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자신을 나타내시 고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시는 곳입니다. 그것이 하늘이 하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하늘 문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 리고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 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3. 하늘에 앉히사 하늘에 앉힌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부활하시 고 승천하신 주님에게 적용된 말씀입니다. 모든 사역을 마치고 이제는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 는 것입니다. 바로 그 안식을 우리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있음을 아십니까? 하늘의 영 광과 하늘의 노래와 기쁨에 대해서 아십니까? 이 땅에서 받는 환난은 하늘의 영광과 비교하면 정 말 잠시 잠간임을 아십니까? 하늘의 영광은 영원 합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 을 생각지 말라.” ◈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라일(J. C. Ryle)

이것은 인간에게 던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 문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사람이 거 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 라』(요3:3)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전 교회 다니거든요. 그러니까, 아마 거듭났 을 거예요.”하는 정도의 대답으론 충분치 못합니 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이 제시한 거듭 남의 표적이나 증거 없이 신앙 생활을 하고 있 습니다. 거듭남의 표적이나 증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 으십니까? 그러면 여기를 주목하십시요. 지금부 터 요한일서에서 그것에 관해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지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Ⅰ.『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요일 5:18). 거듭난 사람은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죄 를 가슴에 품고 다니며 온 의지를 다 쏟아 부어 거기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그도 한때는, 자신의 행동이 죄인지 아닌지 따져본다거나, 악한 일에 탄식하는법 없이 살아가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그와 죄 사이에는 다툼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둘은 사이 좋은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는 죄를 미워하고, 그것 들로부터 달아나며, 대항해 싸우기도 하고, 죄가 불러올 재앙을 숙고해보고, 자기와 관련해 죄가 모퉁이돌 | 13


존재한다는 사실에 강한 중압감을 느끼며, 죄로 말미암아 실족할 때면 스스로에게 탄식을 마지 않고, 모든 죄악들로부터 구출되기를 간절히 소 망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죄는 그에게 더 이상 기쁨이 아니며,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존 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는 그에게 지긋지긋한 혐오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속에 죄가 거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자기 속에 죄 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진리가 그 안에 없는 사람입니다(요일 1:8). 그러나 그 는 진심으로 죄를 싫어하며, 자신의 혼이 죄를 전혀 짓지 않게 되는 것 을 큰 소망으로 삼고 있는 사람 입니다. 때로 나쁜 생각이 일어 나고, 많은 결점들이 자기 속 에 도사리고 있으며, 때때로 말이나 행동 속에 연약하고 미흡한 면들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는 야고보가 『 우리 모두는 많은 일에 실수하나니』(약 3:2)라 고 한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 다.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한 점 거짓이 없는 말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추악한 부분이 매일 자신에게 슬픔과 탄식이 되 며, 온 마음으로 그런것들을 혐오하고 있다고 말 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증거입니다. Ⅱ.『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으며』(요일 5:1).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주 이시며, 그분만이 인간을 용서하실 수 있는 분 이심을 믿습니다. 또한 그분만이 하나님 아버지 14 | 모퉁이돌

로부터 그러한 목적으로 선택받은 거룩한 분이 심을 믿으며, 그분 외에는 구주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속에 가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고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신뢰할 기반을 찾고, 또한 그분을 신뢰함으로 그의 죄들이 모두 용서되었다는 사 실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았음을 믿고 있으며, 앞으로 닥 칠 죽음과 심판 앞에 조금의 두려 움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의심과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 다. 그는 때때로 당신에 게” 나에겐 믿음이 전 혀 없는것 같아요.”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이렇게 한번 물어보십시요. “당신 자 신의 선함과, 나아지려는 노력들, 그 리고 당신이 한 기도와 사역들, 혹은 당 신의 교회에 당 신의 영원에 대한 소망을 두고 안정을 찾아보는 게 어떻습니까?”라고 말입니다. 또,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그만두고 당신의 신뢰를 다른 것에 두어보는 게 어떻습니까?”라고도 물어보십시요. 그러면 그는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제 자신이 연약하고 악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전 그리스도를 저버릴 순 없습니 다.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고귀한 것들을 발견했고, 그분만이 내 혼의 안식처입니다. 그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저의 신뢰가 될 수 없습니 다.” 그는 결코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징표입니다. Ⅲ.『의를 행하는 자는 누구나 그에게서 난 것을 아느니라』(요일 2:29). 혹자가 거듭났다면, 그는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 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려고 분투하며, 하나 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피해 가려고 애씁니다. 그 의 삶의 목적과 열정은 온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고, 또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의 소망은 항상 그리스도를 향해 있으며, 그 리스도는 그의 구주이자 삶의 본이십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께서 명한 대로 살아감으로 자신 이 그분의 친구임을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그 러나 물론, 그렇다고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 리고 이것은 그 누구보다 바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 속에 내재하는 사악함이 자신을 붙 들고 늘어질 때마다 몹시 곤혹스러워 합니다. 그 는 자신 속에 죄의 법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항하 여, 그를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려고 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는 죄의 법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그 법의 존재를 없애지는 못 할 지라도 말입니다. 그에게 수많은 단점들이 있 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의 경향을 따져 보고 평가를 하자면, 그는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의 행 동은 거룩하고, 마음의 성향 또한 거룩하며, 습관 들 역시 거룩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자꾸만 삐 끗하고, 가끔 길에서 벗어나기도 하지만, 바람을 거슬러 나아가는 배처럼, 그의 삶이 향하여 나아 가는 큰 푯대는 하나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 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때

때로 실족하기도 하고, 자신이 정말 그리스도인 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는 존 뉴턴 이 했던 고백을 그대로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의 나는 내가 되고자 소망하는 그 사람 이 아니며, 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의 모습도 아니다. 현재의 나는 내가 소망하고 있는 다른 세상에서 될 그 사람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현재 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리고 현재의 내 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것이 거듭남의 증거입니다. Ⅳ.『우리가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간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이 라』(요일 3:14). 거듭난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 한 애정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 버지처럼, 그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특 별한 마음을 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의 구주처럼, 그도 역시 불쌍한 죄인들을 향 한 연민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그것 과는 또 다른 특별한 애정을 느낍니다. 그는 자 신과 같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으면 그 어느 곳에서보다 더 편안한 느낌을 느낍니다. 또한 그 는, 성도들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 틈에 끼여 있을 때 더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은 학식이나 지력, 혹은 부의 축적 정도나 사회적 지위로 친구를 고를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 람들의 가치 기준은 은혜입니다. 큰은혜를 입어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우리에게 가 장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이 라면, 그런 이들을 한 가족처럼 느낄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동일한 적을 대항해 싸우는 동료 군 모퉁이돌 | 15


사로 생각하고 전우애를 느낍니다. 또한 그들을 같은 길을 걸어가는 길벗으로 생각하고 동료애 를 느낍니다. 그는 그들을 잘 알고 있으며, 그들 또한 그에 관하여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사이에 도 사회적 지위나 신분, 혹은 부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 게 무슨상관이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 스도의 백성입니다. 그들은 한 아버지의 아들들 이요 딸들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겠습니까? 이것이 또한 거듭난 자의 징표입니다. Ⅴ.『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누구든지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요일 5:4). 거듭난 사람은 세상의 의견을 들고 와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는 세 상의 길과 생각들, 그리고 풍조들을 거스르는 것 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하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사고나 행동을 전환시키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의 사랑을 극복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행복이라 부르는 것들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찾지 못합니 다. 그는 세상의 즐거움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그를 피곤하게 할뿐입니다. 그 의 눈에는 그저 헛되고, 무익하며, 하찮기 짝이 없는 것으로 비춰질 뿐입니다. 영원한 것에 비한 다면 말입니다. 그는 세상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를 둘러싼 세상이 불필요하 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행하며 만족을 느낍니다. 세상은 그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 비난은 그에 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세상은 그를 비웃지만, 그는 가던 길을 결코 저버리지 않습니 다. 그는사람들의 존경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더 사모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혐오 거리가 되는 16 | 모퉁이돌

것보다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는 것을 더욱 두 려워합니다. 그는 값을 계산하는 현명한 사람입 니다. 세상이 그를 비난하든 칭찬하든, 그건 그 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못됩니다. 그는 거듭난 이후로 더 이상 욕망이나 관습의 노예가 아닙니 다.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 은 그에게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그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거듭남의 증거입니다. Ⅵ.『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자신을 지키나니』 (요일 5:18). 거듭난 사람은 그의 혼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는 그의 혼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지키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죄로 이끌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어합니다. 그는 아무 단체에나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않습니다. 시답잖은 대화들은 마 음을 타락시키고, 악은 항상 선보다 훨씬 더 전 염성이 강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건강은 지키기 어렵지만 병은 너무도 쉽게 전염되듯이 말입니 다. 그리고 그는 시간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는 시간을 유익하게 사 용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는 친구를 사귀는 데도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에게는 친절하다거나 붙 임성이 있다거나 심성이 착하다는 것 등이 친구 를 선별하는 기준의 모든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면들은 물론 좋은 것들입니다.하지만 그의 혼에도 항상 좋기만 한 것일까요? 그는 매일의 습관이나 행동들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세상은 악으로 가득차 있으며, 사람의 마음은 속 기 쉬우며, 마귀는 자신을 해할 기회를 잡기 위 해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 아갑니다. 그리하여 그는 늘 경계를 늦추지 않


습니다. 그는 마치 적국 한 가운데 거주하는 군 인처럼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항상 완전 군장 을 하고서 언제 닥쳐올 지 모르는 유혹에 대비하 고 있습니다. 그는 몸소 겪은 경험을 통해, 자신 의 혼은 적들에게 둘러 싸여 있으며, 그래서 언 제나 주변 정황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겸손 한 자세와 기도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거듭난 사람의 증거입니다. 위의 여섯 가지가 거듭난 사람의 징표들입니 다. 지금까지 저의 글을 주의를 집중해서 읽어 온 이들은, 그 여섯 가지를 마음 깊이 새겨두기 바랍니다. 저는 사람에 따라서 이 징표들의 깊이나 드러 나는 정도에 있어 큰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습 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희미하고 어렴풋하고, 매 우 미약하게 드러나서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 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도 세 차고 뚜렷하며 명백하고 분명해서 눈을 감고 봐 도 명확히 보일 정도일 수도 있습니다. 또 그 여 섯 가지 중에서도 어떤 것들은 이 사람에게좀 더 명확히 보이고, 또 어떤 것들은 저 사람에게 좀 더 명확히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징표들 이 한 사람에게 하나같이 균등하게 드러나기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음 에도, 우리는 거듭남의 증거들을 아주 명확하게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쓴 사도 들의 글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에게 보내는 마지막 일반 서신 중의 하나인 요한일서를 살펴 본 결과, 우리는 거듭남의 증거들로 다음의 여섯 가지를 찾아내었습니다. 즉, 죄를 짓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며, 의를 행하고, 형제

를 사랑하고, 세상을 이기며, 자신을 지키는 등 이 그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 앞에 여섯 가지 증거가 있습 니다. 어떤 이들은 거듭남이란 그저 교회 회원 이 되겠다는 고백을 의미하는 말일뿐이라고 생 각하는데, 그들은 위의 사실들에 대해 무슨 말 을 하고 싶어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군요. 아무 튼, 저는 이제 여기서 한가지 결론에 도달합니 다. 그 결론은, 거듭난 사람만이 저 여섯 가지 증 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증표가 없는 남자와 여 자들은 모두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입니 다. 그리고 저는 이 결론이 바로 사도 요한이 우 리에게 전해 주고자 의도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 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징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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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그 풍성한 사귐 결혼생활이 영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혼인 이후에 남편과 아내가 평생을 함께하며 인 생길을 같이 걸어가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부 가 된 우리는 평생을 그분과 함께하며 같이 길 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배우자가 평 생의 동반자라면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동반자 라 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관계를 부부 관계로 설정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온전히 누리고 사랑 하고 있느냐가 나의 결혼생활을 통해서도 드러 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가서 4장에 기록된 애정 표현은 부부의 관 계를 실제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랑의 실체를 예시해 줍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편안하면서 그윽하 고 달콤하고 격정적이기도 한 복합적 인 감정을 포괄하는 부부의 관계가 흡 사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연합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 다. 그럴 때면, 도대체 사람이 무엇 이기에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실까 감탄하며 송구한 마음에 가슴이 절로 벅차 옵니다. 이런 이유로 성적(性的)인 죄는 그 어떤 죄보다 무섭습니다. 성적인 죄는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동시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는 치명적인 독소가 됩니다. 이 때문에 사탄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공격하 는 영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결혼과 관련된 부 분입니다. 사탄은 불륜과 혼전 관계와 같은 성적 타락을 통해서 현대 사회를 죄와 타락으로 이끌 고 있습니다. 18 | 모퉁이돌


결혼 관계에 관해서 현대 사회가 교묘하게 퍼 뜨리는 거짓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결혼 의 꽃은 신혼 시절이고 그 이후부터는 점차 결 혼의 기쁨과 행복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러 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결혼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지게 마련입니다. 처음 사랑 이후에 사랑이 식어간다면, 실은 처음 사랑 자체가 문제가 많은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다시 신혼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 혀 없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서로를 알 아가느라 시간을 보내고 감정을 소모하기보다는 이미 알아온 모습을 바탕으로 아직도 모르는 서 로의 모습을 계속해서 알아가기 원합니다. 어려 운 시간을 함께 극복하면서 우리 부부가 깨달은 사실은, 우리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이해가 신혼 때의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깊고 충만해졌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신앙생 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처음 만나 뜨겁게 사랑했 던 기억만을 붙들고 신앙을 유지하며 버티는 사 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 거운 첫사랑 이후에 신앙 연륜이 쌓이면서 점 차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이런 상태를 당연 한 것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 까운 일입니다.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그동안 전혀 몰랐던 아 내의 모습이 새롭게 발견될 때가 있습니다. 이 는 실은 아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에 대한 나의 반응을 보면서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의 숨겨진 모습에 대해서도 알아가게 됩 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은 늘 새로운 모험으로 가 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맺음도 마찬가 지입니다. 그분과 같이 걷는 길 가운데는 여전히 새롭고 놀라운 그분의 깊은 사랑을 알 수 있는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의 입 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사랑스런 속삭임 으로 들릴 것이며 사랑하는 이의 음성을 듣고 싶 어 그의 곁에 함께 있기를 소원할 것입니다. 이 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 을 듣기위해 부지런히 그분 곁으로 나가게 될 것 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의 관계가운데 있으며 풍성함은 인격적인 사귐과 교제를 통해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데 있습니다. ◈ 아내 아내는 남편의 갈비뼈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처럼 머리로 지음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부르고 있습니다. 또 발로 지음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아내를 남편의 발 아래 두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은 섬기는 일이 그 본분이지만, 아내는 돕는 일이 그 본분입니다. 만약 아내가 머리가 되어서도 안되고 발 밑에 엎드려서도 안된다면 남편은 아내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남편은 아내를 그의 가슴에 두어야 합니다. 남편의 가슴에 위치해야 하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의 가슴에 있는 것으로 지음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헨리 스미드모퉁이돌 | 19


교리를 가르치는 일의 절대적 중요성과 가치

한 희생’, ‘우리의 타락’, ‘중 생’, ‘무조건적인 칭의’. 이런 것들은 진리의 성전을 지탱 하는 중요한 기둥들인데, 이 것들이 없으면 성전은 유지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 을 보든, 교회 역사를 보 든 간에, 교리 교육이 얼마나 중요 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이 장기간 결핍될 때 발생하는 비극적인 결 과들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교리를 가르치는 이유는 성도의 이해를 밝게 해주며, 지성을 훈련하며, 판단력을 불어 넣어 주 기 위함이다. 교리는 감사의 동기를 마련하여 주 며, 선행에의 동기를 마련하여 준다.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교리를 전혀 배우지 않았거나, 이해하 지 못하는 사람의 믿음이 건전할 수가 없다. 근 본적인 교리를 “하나님 말씀의 초보”(히 5:12), 혹 은 ‘성경의 기본진리’라고 하는데, 이는 구원에 이 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성령의 감동과 성경의 권위’, ‘영원토록 복되 신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한 인격 속에 내재 하는 두 가지 본성들’, ‘그분의 완전하고도 충분 20 | 모퉁이돌

옛적에 하나님은 탄식하셨다.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베임을 당하는도다)” (호 4:6) 그리고는 선언하셨다.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 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목마를 것이 며..”(사 5:13) 하나님께서는 “내가 또 내 마 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 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렘 3:15)고 하신 다. 여기서 지식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계시의 교 리를 통하여 제일 먼저 전달되어졌다. 교리적인 기독교가 되어야만 실제적인 기독교가 될 수 있 다. 왜냐하면 영적인 생활의 원동력이 감정이나 충동적인 어떤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바 로 이 원리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 엇을 깨닫고 바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진리에 의해서이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 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시43:3) 우리는 진리의 지식(요 17:3, 딤전 2:4)과 진리


에 대한 믿음(살후 2:13)에 의해 구원받는다. “영 생은 곧 유 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하 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 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 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 룩하게 하심과 진리의 믿음 안에서 구원을 이르 게 하심이니.”(살후 2:13) 또한 우리는 진리에 의 하여 자유(요 8:32)케 되고 성화(요17:17)된다.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 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우리의 하나님 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 의 은혜도 증가한다.(벧후 1:2, 3:18) “하나님과 우 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 욱 많을지어다”(벧후 1:2),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 라 가라”(벧후 3:18) 우리를 보존하는 것은 은혜 와 진리이다.(시 61: 7, 잠 21:28) “그가 영원히 하 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 사 그를 보호하소서”(시 61:7), “거짓 증인은 패 망하려니와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느 니라” (잠 21:28)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잠 2:11) “터가 무너 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시 11:3) 이 질문은 매우 적절한 질문이다. ‘터’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구약성경에 딱 한번 나오는데 이사야 19:10에 나 온다. “애굽의 기둥이 부숴지고 품꾼들이 다 마 음(히브리 원어는 ‘터’)에 근심하리라”(사 19:10) 우리의 계획과 행동이 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처 럼, 2차적인 진리들이 도출되는 곳이 바로 ‘1차 적인 원리(터)들’ 이다. 모든 교훈의 기초가 바로

이 진리들인 것이다. ‘의인의 믿음과 소망은 신앙 의 원리들 위에 설립된다.’(메튜 헨리) 이 기초들 은 완전히 그리고 궁극적으로 요동치 않는 것이 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끔 그것을 시험해보신다. ‘ 신앙의 기초들이 무너질 때 의인들이라면 마땅 히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들은 거룩한 성전 안에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시 는 하나님께 그들의 신앙의 기초를 뒤흔드는 자 들의 계획들과 시도들을 중지시켜 달라고 간구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성도들은 이 거룩한 믿 음 위에 서기 위하여 서로 협력해야 한다.’(존 길)

지난 세기 동안 교리교육은 눈에 띄게 쇠퇴하 여 갔다. 주의와 신조들이 무가치한 것들로 인식 되었다. 신학공부보다는 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 에 대한 공부에 열심 내었다. ‘우리에게 기독교 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달라!’ 는 요청이 있었다. 이 요청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표면적으로는 그 요구가 영적이며 적절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러나 실제적으로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며 어 떤 중요한 의미도 내포하지 못한 가상의 구분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양성적 인격, 중보자적 특징, 택함 받은 자와의 공적인 특징과 그들에 대한 구 속사역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그분의 신성, 독특 한 인성, 약속의 머리되심, 그리고 그분의 삼중직 을 인정할 때만 형성될 수 있다. 그들은 여러 번 모퉁이돌 | 21


반복되어 나오는 ‘그리스도 교훈’(요이 9)에 충분 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분리(‘기 독교’와 ‘그리스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스도 교훈은 주님의 신비한 인격과 그 큰 구원에 관한 성경의 모든 교훈들을 이해하게 해 준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비밀(신비)’(골 4:3)에 대해서도 소홀히 여겼다. 그리스도의 신 비는 진리의 말씀 속에 계시하신 하나님의 깊은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영광뿐 아니라 기독교 의 거룩한 기원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들이 교리 에 나타나고 있는데, 교리는 인간의 고안물이 될 수 없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어려운 삼위일체 교리,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왕자의 죽으심, 그분이 순종하시고 제물이 되셔서 하나 님의 의를 만족시키심으로써 우리의 죄가 사해졌 다는 사실,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시는 성령님, 우 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 등은 가장 최고로 고상 한 거룩하고도 신비한 진리들로서 유일한 이성의 최고봉을 훨씬 능가하는 진리들인 것이다. 그리 스도의 진리들은 전체적으로 완전한 조화를 이 루고 있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 와 우리들을 향하신 요구들과 그것을 실천하게 해주는 원동력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 교리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은 진리에 대한 개별적인 이해, 그것들의 상호관계, 그 주제 의 일치성, 영광의 주님의 대한 찬미 등을 이해 하게 될 때 분명하여 진다. 어떤 이들에게 그리 스도의 교리가 일관성이 없게 보이는 이유는 그 들이 교리의 부수적인 것들만을 보았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전체적인 이해와 안목 이다. 그런데, 그것은 부지런하고 끈질긴 적용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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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많지만, 슬프게도 교육은 거의 없다. 하 나님의 권고의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선포하 고, 그 각각의 관계를 설명하며, 진리의 전 영역 을 보여주여야 하는 것이며, 균형에 따른 안정감 을 얻게 하며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조화가 나타 나게 해야 될 것이다. 그들은 공언할 뿐만 아니 라, 증명도 해야 하며 확신시키려는 것 뿐 만 아 니라, 자기가 확신하는 바를 입증할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 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 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했다”(행 17:2,3) 는 말씀을 읽는다. 그는 선천적으로 그리고 은혜 로 말미암아 그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 라 똑똑하고 배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자기의 이성적인 능력을 상당히 많이 이용했다. 그는 자 기가 전하는 것을 증명도 하지 않고 믿으라고 강 권하지는 않았으며 자기가 강권하는 것에 대해 서는 증거를 내세웠다. 그는 복음의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교리들을 전파했는데, 그때마다 쉽고도 결정적인 논리로써 그것을 증명해야겠다고 느꼈 던 것이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 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행18:4) 강론 이 악용될 수 있다고 해서 강단에서 그 강론을 그쳐서는 안 된다. 이성적으로 잘 생각하면, 올바른 원리들로부터 정확한 결론들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며, 명쾌 하고도, 확실한 주장들을 추론해 낼 수도 있다. 어떤 명제의 진리들을 효과적으로 추론하기 위해 서는 먼저, 그것을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지지발 언을 하며, 반대되는 진술에 대해 대답한다. 바로 그것이 사도 바울의 방법이었는데 그것은 사도행 전과 바울서신을 볼 때 명백하다. 모든 종교에 있


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초보적인문제인 하나님 존 재를 설명할 때, 바울은 간단하면서도 인상 깊게 강론했다.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 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 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것이 아니라”(행 17:29)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 에 분명히 보여알게 되나니...”(롬 1:20) 그는 인 간의 타락에 관한 교리를 말할 때, 먼저 이방세 계 특성과 행위를 길게 증명한 후, 구약을 인용 하여 결론짓기를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 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롬 3:9) 우리의 마음은 이해력과 양심에 의해 움직 이는 것이기 때문에 설명하고 증명하고 적용해 야 하는 것이 교사의 임무이다. 사도 바울은 벨

릭스 앞에 섰을 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 을 강론하여” 그 로마의 관리를 두려워하게 만 들었다.(행 26:25) 그러나, 슬프다! 이처럼 성경을 강론하고 설명 하며, 교리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이제 옛날 일이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경험만 외쳤으 며 교리의 지식은 무시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 결 과가 얼마나 개탄할 일인가 보고 있는데, 우리 세 대는 심지어 진리에 대한 신학적인 지식조차 결 핍하고 있다. 소위 경험적이며 실제적인 설교들이 신학적인 강론을 대신하게 되었고 복음의 커다 란 근본들은 모욕을 받고 있다. 한번 개신교 국 가가 되었던 지역에 다시 가톨릭이 들어가곤 했 었다. 바로 그 때, 경험으로는 그들을 물리칠수 가 없었을 것이다. 건전한 교리만이 힘을 발휘할 모퉁이돌 | 23


수 있을 것이다. 실제적인 거룩은 그 행위의 원 천이 되는 뿌리가 마르고 시들게 될 때에 쇠미하 게 될 것이 분명하다. 믿음의 교리가 없는 곳에 서 믿음의 순종은 기대할 수 없다. 반면에 행위 없는 교리 또는 단순히 신학적이고 사색적인 지 식들은 실천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다. 교 리와 실천은 병행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 고 또 행하기 위해서는 교리를 가르치고 실천하 는 일이 꼭 필요하다. 처음 불을 밝힌 자는 또 다른 불에 이를 것이 다.’(존 길) 그것이 바로 디모데후서 3:16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먼저) 교 훈과 (그 후에)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 기에 유익하니”라는 말씀의 순서이다. 바울은 디 모데에게 교훈하고 있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 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6) 마찬가지로 디도에게도 분부하고 있다. “이 말( 딛3:3-7의 교훈)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 러 것에 대하여 기쁘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 익하니라”(딛 3:8) 슬프다! 그리스도의 교리를 가르치되, 그 줄기 24 | 모퉁이돌

와 가지, 그 대의(大意)와 효력을 다 가르치는 자 는 너무도 적다. 영적인 진리를 바르고 명쾌하게 이해하는 것 보다 더 멋지게 영적인 마음을 꾸미 는 교양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실수를 멀리하는 것도 거기서 시작된다. 영적인 결실도 거기서 시 작된다. 교리는 하나의 틀(모형)이다. 거기에 우리 의 마음을 던져 우리 마음의 모양을 얻는 것이다 (‘교훈의 본’, 롬 6:17). 뿌려진 씨가 어떤 씨냐에 따라 추수할 것이 결정되는 것처럼 늘 배우는 것 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문하생의 삶이 결정된다. 16,17세기의 기독교를 상징했던 그 순결성, 그 독 실함, 그 열심, 인간 앞에서의 의로움,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개혁자들 과 청교도들의 설교는 주로 교리적이었다. 하나 님의 은혜로 그 결과는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나 타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계명과 교 훈을 포기하느니 그들의 생명을 내어 놓았고 수 많은 박해와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의 행동이 선하기만 하며, 그가 무엇을 믿든지 상 관없다고 하는 것은 극히 잘못된 것이다. 진리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하나님께 옳지 않은 마음 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지난 세기 동안, 하나님이 가장 높이 들어서 사용하시던 사람들은 이 청교 도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지적 해야겠다. 찰스 스펄젼, 시이저 맬런, 로버트머리 멕체인, 그리고 영국 국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스코틀랜드 자유교회 지도자들은 설교할 때마다 교리 전파에 최선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 -아더 핑크의 ‘실천적인 기독교’ 중에서-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세계교회 협의회)의 정체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

세계교회 협의회(WCC)는 세계적 으로 통일된 교회를 건설할 목표로 1948년 네델란드 암스텔담에서 44개 국, 147개 교회의 대표자들 351명이 모이면서 창설되었다. 세계 교회협의회에서 맨 처음에 에 큐메니칼(종교통합) 운동을 시작할 때는 기독교 안에서 성령의 하나되 게 하심을 따라 교파를 초월하고 교 회들이 연합하여 교회의 일치를 이 룬다는 정신으로 시작하였다. 하지 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숨겨 져 있던 베일이 하나씩 벗겨졌다. 일 차적으로는 교파간의 담을 헐어버리고 교회들이 연합하였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는 종교간의 담 을 헐고 서로 대화하고 있다. 세계교회 협의회는 종교 통합의 방향으로 분명하게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세계교회 협의회는 로마 카톨 릭과 뜻을 같이하고 있으며 동일한 종교 통합( 에큐메니칼) 운동을 양면에서 추진하고 있다. 이

러한 교회연합운동과 교회일 치운동의 영향으로 인하여 기 독교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 음의 유일성이 희석되면서 바른 교리와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성경은 성도들이 “평안의 매는 주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엡4:3) 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령의 하나됨은 그리스 도 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을 참으로 믿고 깨달 은 성도들 사이에만 가능하다. 만일 믿는 성도 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한다면 이는 마 치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하려는 것과 같다. 따라서 성경은 성전과 우상이 함께 할 수 없다 고 말씀하신다. (고후6:14-16) 하지만 지금 세계교회 협의회는 믿지 아니하 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세우신 교회와 사탄의 우상을 일치시키면서 하 나(One Unity)가 되자고 주장하고 있다. WCC 가 시작된 이후 일어난 다음의 사실들을 보면 세 계교회 협의회가 주도하고 있는 종교 통합운동 모퉁이돌 | 25


은 성경과 예수 그 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진리를 훼파 하는 사탄적인 연합 운동이며 영원히 저 주받을 무서운 죄악 이다. 그리고 WCC가 이렇게 역사 속에서 등 장하였고, 많은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용인하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상황이 사도 바 울이 경고한 종말의 배도의 시대임 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 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 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 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 니”(살후 2:3) 역사적 기독교 또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WCC는 분명 탈기독교적이며 비 성경적 요소들이 많다. 다음 글은 한국기독교 WCC반대 대책위원회에서 WCC의 참 모습을 드 러내고자 발간한 “WCC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들이다.(편집부) 종교대화주의 WCC는 모든 종교를 동가로 본다. 하나님은 기독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 모든 역사적 인 종교인들을 공평하게 사랑한다고 한다. 모 든 종교인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형제 자 매이다. 함께 순례하는 사람이며, 서로에게 배 26 | 모퉁이돌

워야 한다.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만물 을 창조하고, 그것 들은 소유하는 분이 며 편애하는 분이 아 니다. WCC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타종교 와 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해왔다. WCC에 따르면, 기독교 와 타종교들과 세상의 모든 것 이 창조주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 다. 타종교인은 개종의 대상이 아니다. 함 께 진리를 찾아가는 동료이며 영적인 순례자이 다. 하나님은 종교가 다르다고 하여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속 사업은 기독교 를 초월한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 다”라는 말로 하나님의 구속사업을 제한하는 성 경의 배타적인 진술은 기독교인의 ‘자기이해’ 곧 다른 종교를 모르는 기독교의 ‘신앙의 증언’에 지 나지 않는다. 이것이 WCC의 종교간의 대화 신 학의 핵심이다. WCC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종교들은 신에 대한 봉헌과 예배, 자기부정의 진리와 실천을 지 니고 있다. 타종교인과의 대화의 목적은 회심, 개 종, 복음전도가 아니다. 모든 종교가 계시, 경건 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계시와 성경을 절대화 하는 것은 독선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기독교인 들의 경전이지 인류의 보편적인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이 아니다. WCC는 기독교의 사명이 “그리스도안에 제 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데 있다고 한 다. 기독교인들은 대화 파트너인 타 종교인들을


판단하지 않아야 하고, 상대방을 회심시키려고 도 하지 않아야 한다. “대화는 기독교인들이 예 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증 거”하는 일이다.이 경우 기독교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나 성경적 진리 계시가 아 니다. 증거는 기독교 서클 안에서 경험한 개인 의 주관적인 종교 이야기를 타 종교인에게 들려 주는 것이다. WCC가 작성한 “살아 있는 신앙들과 이데올로 기들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안내서(Guideline on Dialogue, 1979)가 말하는 종교 간의 대화는 선교차원의 만남이 아니다. 상호 이해와 협력 또 는 접촉점을 모색하는 의사소통이 아니다. 정치, 문화, 사회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담론도 아니다. 평화 공존, 박애활동, 인권신장, 민족통일을 모색 하는 활동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소개하는 복음전도 활동이 아니다. WCC가 말하는 종교 간의 대화는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구원의 길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기독교를 상대화하여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로 여긴다. 이러한 견제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고 대 화 가운데서 참 진리를 찾고자 한다. WCC의 초기 지도자들은 복음에 기초한 에큐 메니칼 운동을 염두에 두었다. 십자가 없는 선 교, 중추 없는 선교를 옳은 것으로 여기지 않았 다. 상대주의와 혼합주의를 거부하는 선교신학 을 유지했다. 기독교 복음의 모든 것을 망라하는 일반 종교 체제와 아우르는 것은 부적절하다도 보았다. 기독교는 모든 가치와 진실의 기준이며,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다른 종교를 얕잡 아 보거나 타종교인들의 영적인 삶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었다. 그러나 WCC는 세계교회들의 일치를 희망할 뿐, 규제와 권징 기

능이 없다. 울타리가 없는 협의회적 교제체이다. 맹수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출범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달라졌다. 스웨덴 웁살라에서 모인 WCC제4차 총회 (1968)는 “대화”를 규정하기를 상대편을 인간적 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접근하고 자신의 견 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태도라고 했다. 이런 관 점에서 WCC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는 여러 종 교들의 대표자들을 좀 더 깊은 단계에서 만나는 모임을 주선했다. 자기 자신의 진리를 기꺼이 포 기하겠다는 태도로 임했다. 기존 신념을 바꾸려 고 노력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타종교와 대화 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WCC는 대화와 관련하여 기독교인은 타종교 인들을 개종, 회심시키려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 조한다. 타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 신앙에 더 욱 돈독해지도록 돕고, 자기의 종교 경험을 들 려주는 일을 해야 한다. 모든 종교는 동등한 자 세로 임하면, 대화에서 참 진리를 찾아내야 한 다. 서로에게서 배우며 인간화와 해방투쟁 활동 에 연대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드 러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알 려진다고 한다. WCC의 종교대화의 신학의 핵심 은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상대화이며, 타종교에 도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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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 소식 선교적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눅 10:27)

NEWS

5ㆍ6월 교회행사 ● 5월 5일...................... 교사 주일 ● 5월 8일...................... 교사 헌신예배 ● 5월 8일...................... AWANA 종강 ● 5월 11일.................... 새가족 환영회 ● 5월 12일.................... 어버이 주일, 순장모임 ● 5월 18일.................... 한글학교 종강 (18일) ● 6월 2일...................... 졸업예배(연합) ● 6월 2일...................... 제직회 ● 6월 3일...................... 여름학교(Summer School) 1학기 시작 ● 6월 11일.................... 중반기 성경공부 시작 ● 6월 9일~13일.......... 유치부/유년부 VBS ● 6월 30일.................... 교구모임


● 예배안내● 주일 1부 예배....................오전 주일 2부 예배....................오전 수요예배..........................오후 새벽기도회 (주일-금)...........오전 특별새벽기도회 (토요일)........오전 금요기도회.......................오후 청년부 금요모임.................오후 EM예배............................................오전

9시 (본당) 11시 (본당) 8시 (본당) 6시 (고등부실) 6시 (본당) 8시 30분 (본당) 6시 30분 (사역자 가정) 11시 (EM Worship Center)

● 성경공부 ● 화요 Q.T. 나눔 (화요일).........오전 EM 성경공부 모임 (주일)........오후 청년 주일 모임 (주일)...........오후 중·고등부 모임(토요일)...............오후

10시 (새가족실) 1시(EM WC) 12시 30분 (청년부실) 5시 (중고등부실)

달라스 영락 장로교회 / 발행인 : 명치호 / 발행처 : 영락 장로교회 문서출판부 / E-mail : yncdoc@gmail.com 850 Lexington Dr. Plano, TX 75075 · T. 972-424-5400 · F. 972-424-5477 · E. yncdallas@gmail.com · www.dallasyoungna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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