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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COUVER LIFE WEEKLY

Jan 29, 2010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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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케네디 이야기 ‘바비’

‘바비’는 배우로 활동하면 서 간혹 메가폰도 잡는 에밀 리오 에스테베즈가 오랜만에 발표 한 극장용 영화다. 두 시간 남짓의 영화 는 1968년 6월4일 하루 동안 미국 로스앤젤 레스 소재 ‘앰배서더 호텔’에서 벌어진 수만 가지 일들을 담는다. 왜 하필 68년 6월4일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이튿날 새벽, 같은 장소에서 로버 트 F 케네디가 총에 맞았기 때문이다. 주연 배우 만 대략 스무 명이 넘는 만큼, ‘바비’는 여러 인물 들의 사연을 일일이 주워 담느라 바삐 움직이는 카메라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라틴계 노동자는 야근 탓에 야구경기를 못 봐 화가 났고, 은퇴한 도어맨은 체스로 시간을 보내 고, 젊은 여자는 남자가 베트남전에 징집되지 않 도록 위장결혼을 하고, 백인 사업가는 아내의 허 영에 마음이 쓰리고, 호텔 매니저는 전화교환원 과 바람을 피우고, 중년의 미용사는 알코올중독 에 빠진 여가수와 대화를 나누고, 해고 통보를 받 은 주방관리인은 못된 짓을 벌이고, 젊은 선거운

초호 화 캐

스팅… 앙상블

동원은 마약에 취하고, 체코슬로바키 아에서 온 여기자는 인터뷰를 따내려 극 성이고, 선거책임자는 예비선거를 치르느라 가슴 을 졸인다. 도입부에서 ‘그랜드 호텔’이 언급되는 바, 에스 테베즈는 ‘바비’가 걸작의 재현이 되길 바랐던 것 같다. 1932년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그랜드 호텔’은 베를린의 호화 호텔에 모인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일급 스타들의 존재감과 결합시킨 작품 이다. 젊은 스타부터 연륜이 깊은 명배우까지 작 금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해 다 양한 스펙트럼의 인물을 연기하는 ‘바비’가 ‘그랜 드 호텔’을 탐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분한 시간을 부여하지 않았 다고 내뱉는 험담이 아니다. 감독은 인물마다 고유한 삶이 있 다는 걸 인식하는 듯 보이지만, 스무 명 남짓한 인물들은 오로지 ‘바비’라는 애칭으로 불린 정치인의 죽음 주변에 배치되기 위해 존재 한다. 암살당한 정치인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 리는 것으로 각각의 존재는 목적을 다하고, 아울 러 그들의 문제는 휘발되고 만다. 그나마 기대했던 배우들의 앙상블도 훌륭한 편 은 아니다. 대다수 배우들이 분명 뛰어난 연기를 펼치고 있으나 경력과 스타일의 차이로 인한 들 쭉날쭉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극의 완성도를 저하시킨다. 일례로, 해리 벨라폰테와 앤서니 홉킨스의 안 정되고 우아한 연기와 린제이 로한과 애시튼 커 처의 어색하고 들뜬 모습 사이에서 영화는 어디 에 중심을 둘지 망설인다. 역시 아무나 로버트 알 트먼 같은 대가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쎄 글 은

문제는 영 화의 배경이, 극중 ‘그랜드 호텔’과 나란히 언급된 ‘우리에 게 내일은 없다’의 시대란 점에 있다. 알다시피 당 시는 ‘68혁명이 세계를 뒤흔들던 때’이며, 할리우 드에선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물결이 불어닥치던 즈음이었다. 그런데 굳이 1968년의 6월을 찾았으 면서도 ‘바비’는 사상적 기반을 온건한 이상주의 에 두고, 화려한 고전영화를 지향하면서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낸다. 한 인간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슬픔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로 68년의 혼란, 불안, 꿈을 채우기란 애당초 버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영화는 한 공간에 모인 인물들 각자의 삶에 예의를 다하지도 못했다. 이건 인물마다 충

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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