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u on Google+

가정예배 2011년 5월 2째주

대한예수교 장 로 회

서울반석교회

Seoulbansuk Presbyterian Church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209-1 ☏ 02)2612-1301 FAX 2688-120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다같이 머리 숙여 묵상기도를 드리므로 가정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시간 드리는 예배를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 시고 이 가정에 주님의 신령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8장(구28장) 혹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영혼의찬양 293장)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긍휼함이 빠지면 우리는 인간의 고귀함을 잃어버립니다. 딤후3:1-4의 말씀을 보면 인간의 무정함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원통함을 풀지 않는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무정은 긍휼의 반대입니다. 우리는 긍휼한 마음을 가지지 못할 때 무정하고 사나운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오늘 주 님은 우리에게 긍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자가 진정한 복을 누린다고 말씀 하십니다. 세상의 역사를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로마나 독일은 그 멸망의 원인이 자기 민족의 자부심만을 강조하고 다른 민족을 말살하고 긍 휼함이 없어질 때 망했던 역사의 증거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긍휼이라는 것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닙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사이의 간격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부자에게 긍휼의 마음이 없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간격이 있었습니다. 죽고 난 후에 그들에게는 건널 수 없는 구렁텅이(눅16:26) 가 있었습니다. 즉 이 지상에서의 긍휼함이 없는 장벽이 지옥과 천국간의 건 널 수 없는 간격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이야기면 무 엇이 될까요? 사랑이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토마 스 왓슨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은 하나님의 품속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좋은 세 자매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조건 없이 거저 주는 것입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거저 베푸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긍휼은 사랑의 마음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긍휼은 불 쌍히 여김 +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 실제로 그들을 돕는 행동을 뜻하는 단 어입니다. 동참함이 없는 것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길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부모와의 관계를 말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부성적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 나 이 긍휼은 좀 더 구체적으로 ‘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모성적 단어입니다. 마9 장에서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는 그것이 긍휼함입니다. 창자가 끊어 질 듯 한 아픔을 가지는 것이 바로 긍휼함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절정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신이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그 것 자체가 긍휼입니다. 내가 너를 구속 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므로 너는 내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긍 휼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하고 본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 저 그분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이성과 한계로 그 크신 하나 님을 경험할 수 없고, 그 분의 계획과 측량할 수 없는 그 분의 은혜를 다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엡5:1-2에서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야 합니 다. 본받는 자는 모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본받을 때 비로소 긍 휼을 베푸는 삶이 가능해집니다. 사랑을 받은 자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긍휼 을 베푸는 자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 저 심령이 가난해 져야하고, 애통해야 하며, 온유하고 겸손하여 하나님의 의를 사모할 때 비로소 그 긍휼을 경험하고 체험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자발적 ‘이동’이 필요합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고통 받는 자리로 이동해 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편안한 삶에서 상처가 있는 삶으로, 그것이 바 로 긍휼입니다. 즉 십자가의 자리이동이 바로 긍휼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비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관심의 중심에서 떠나 다른 사람을 그 자리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 다. 그것이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주고 보살피는 마 음, 이해해주는 마음을 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우리의 이성, 감 성, 의지를 드려 그분의 손과 발이 될 때, 비로소 천국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긍휼의 삶을 살도록 말씀하시니 감 사를 드립니다. 내 자신의 것만을 생각하는 자리에서 떠나, 남을 생각하며 주님을 생 각하는 긍휼에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사랑으 로 저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내 마음 속에는 이웃을, 형제를, 부모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긍휼에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긍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약에서 ‘라하밈’이라는 단어입니다. 주기도문 하신 후에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2011/05/02 wor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