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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서울시민연대 1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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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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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연대 1기 평가와 2기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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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그리고 앞으로 2년 ┃ 전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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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연대에 대한 제언 ┃ 임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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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활동, 앞으로의 전망 ┃ 하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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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딸이 커가는 만큼 나도 조금은 큰 듯한데? ┃ 한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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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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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아차산으로 회원 나들이

<표지사진 소개>

를 다녀왔습니다. 아침 비소식에 회원들 이 많이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악천후에 도 소수정예의 나들이 팀이 산행을 강행 했습니다.^^ 점심이 지나니 날씨가 개어 상쾌하게 하산했답니다.

NOTICE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치 회원님들의 이야기로 자 공공성생태 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세요. 사는 이 야기 하고싶은 이야기 등을 우리카페(cafe.daum.net/615simin)이나 페이스북 서울시민연대 그룹에 올려주시면 소식지에 게재하겠습니다.

2011. 3·4월 발행처 서울시민연대 주소

자치공공성생태

통권 7호

발행인 전상봉

발행일 2011년4월1일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427-12 대경빌딩 402호

통권 7호

전화 070-8834-4002

e-mail 카페

00simin@hanmail.net

www.cafe.daum.net/615si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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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 창립총회(2009.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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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활동


★ 강좌사업(2009

~ 2011)

★ 서울시민학교(20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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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여름나기(20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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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년도 총회(20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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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위 수련회(2010,

2011)

★ 신년산행 & 모란공원 참배(201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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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답사(2010,

2011)

★ 연대 활동(2009

~ 2011)


서 울 시 민 연 대2기1차총회

총회안 건

총회프 로 그 램

○ 안건

제1부 총회 - 개회 - 성원보고 - 민중의례 - 전차 회의록 보고 - 안건상정 - 안건토론 - 서기록 확인 - 출범선언문 낭독 - 폐회

1기 사업 평가 및 재정 평가 2기 활동계획 심의의 건 2기 재정계획 심의의 건 대표 및 운영위원 선출의 건

총 회장 소오 시 는길 (13층대 회 의실 )

제2부 출범식 - 내빈 소개 - 대표인사 - 축사 - 축하공연(민애청 노래울) - 영상 - 떡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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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울 시 민 연 대 1기평 가 와2기전 망 서울시민연대가 다사다난했던 1기를 지나 2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2기 총회를 앞두고 1기에 대한 평가와 2기 서울시민연대 그리고 각자가 나 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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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난5년, 그 리고앞 으 로2년 전 상 봉 │ 서울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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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2일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제6기 출범식에서 이임사를 마지 막으로 나의 만 15년에 이르는 청년운동은 끝났다. 1991년 민족통일애국청년 회(민애청)에 가입하여 다음 해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회장과 의 장직만 만 14년째 달고 생활했다. 한청 의장직은 창립부터 내리 5년을 맡았었 다. 물러나면서 생각해 보니 너무너무 오래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오래한 만큼 성과적이지도 못했고, 얽히고설킨 정파의 한가운데서 경기장의 심판처럼 조정만하다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청 의장은 딱 3년이면 족했다. 그리곤 새로운 활로를 찾아서 훌훌 떠났어야 했다. 허나 어쩌랴 이미 시간은 지났고, 함께 했던 많은 벗들마저 없으니. 그 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서울시민모임이라는 소박한 모임을 만들었다는 사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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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1일 서울역 건너편 후암동으로 오르는 오르막길 옆에 있던 통일 연대 사무실에서 15명쯤의 청년회 OB들이 모였다. 주로 민애청과 관악청년회 출신들이었다. 그날 딱히 뭘 논의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이날 서울 시민모임이 시작됐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는다. 그렇지만 모임은 규정력도, 위 상도, 사업도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청년회 졸업생들의 친목 모임정도였다. 그렇게 1년이 흘러 2007년 3월 동국대에서 총회를 개최했다. 대략 15명 정도 모였나? 총회장소인 강의실이 너무 커서 썰렁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그해 11월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이름을 진보와통일을위한시민모임으로 바꿨 다. 누군가는 이 이름을 줄여 ‘진통모’라 불렀다. 진통모라, 어감이 참 거시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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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난5년, 그 리고앞 으 로2년 - 전상봉 대표(다들 아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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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나와 우리들의 고민과 고충은 ‘진통모’에 압축돼 있었다. 문제는 그 고민이 ‘진통’을 동반하고 있었다는 사실. ‘진통’의 실체인즉, 단체의 정체성을 뭘로 하느냐였다. 이런 고민으로 깊어가던 그해 봄, 광장과 거리에는 촛불이 타올랐다. 그렇게 봄과 여름이 지나자 어느 순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건 뭐야? 내심 전개되는 경제 상황에 놀랐고, 도무지 위기를 이해할 수 없 는 무지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경제관련 공부를 해보자는 취지로 20세기 미국 주도로 전개된 자본주의 세계경제사를 정리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 쓰는 작업이 1년을 넘기면서 나는 아뿔싸 이넘의 작업이 나를 옭죄는 족쇄가 되었 구나 하고 탄식했다.(요행히 글쓰기는 지속되어 지금 8부 능선을 막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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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친 다음 진보와통일을위한시민모임은 위상을 재정립했다. 민족성, 공공성, 민주성, 자립성, 생태성을 중심 가치로 하는 공공 성강화를위한서울시민연대로 거듭난 것이다. 명칭을 개칭하고 정식으로 조직 을 창립했다. 그때가 바로 2009년 3월 모일(날짜가 정확히 기억 안남). 지금 사무실 근처인 서교동 문턱 없는 밥집이 위치한 건물의 2층 강당에서였다. 봄의 생기를 얻어서인지 나름 탄력을 받았다. 그해 9월 사무실을 얻었고, 2명 이 출퇴근하는 어엿한 단체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의 태세가 단체의 명칭 중 ‘공공성’과 ‘서울’ 그 중간쯤에서 갈피를 중심을 잡지 못하면서 사무 실은 얻었으나 개점휴업상태이다시피 것이요,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는 사이 간혹 어느 모임자리에 나가 공공성강화를위한서울시민연대라고 이름을 적으려 니 참 길었다. 그래서 든 생각. 에이∼, 다음 총회 때 이름을 확 줄이자고 제 안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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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깨에 힘 빼는 몸 풀기도 끝났다. 이번 총회의 핵심 기조는 ‘단체다운 단체로 활동하자’와 ‘서울에서 영양력 있는 세력이 되자’다... 지긋지긋한 이넘의 정부를 끝내는데 우리 서울시민연대도 일익을 담당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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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제1기 2차 총회에서 우리단체의 이름은 서울시민연대로 단순명료 해졌다. 명칭 개칭과 함께 단체 정체성을 ‘서울’로 분명히 했다. 그리고 핵심 가치도 ‘자치’, ‘공공성’, ‘생태’로 재정립했다. 이쯤되니 뭔가 기대가 된다. 이 런 기대에도 어깨에 조금 더 힘을 빼야하는 준비운동이 필요했다. 2011년 4월 16일 제2기 1차 총회가 예정돼 있다. 이제 어깨에 힘 빼는 몸 풀 기도 끝났다. 이번 총회의 핵심 기조는 ‘단체다운 단체로 활동하자’와 ‘서울에 서 영양력 있는 세력이 되자’다. 그래서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는 뭔 가 존재감을 알려보자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이넘의 정부를 끝내는데 우리 서 울시민연대도 일익을 담당해야 되지 않을까. 이번 총회를 앞두고 조짐이 좋다. 왜냐면 김 아무개 선수의 결의가 충천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회원은 100명은 쉽게 넘어설 태세이다. 그러면 내년엔 서울시민연대의 이름으로 나와 구본훈 부장이 4대 보험에 가입하는 게 실현 가능해 질 것이다.(제발이지 소식지 재정보고란에 ‘복리후생비’ 지출 항목을 만들어 보자!)  

PS ; 총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호프 구본훈 부장 왈, 내게 2014년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게 만들겠단다. 얼씨구나 이게 무슨 소 리. 허나 어쩌랴, 나는 2013년 1월 30일까지 집행유예 기간이고, 이 기간이 끝나면 다시 3년간의 자격정지 기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오호 애재라 원 통하고, 절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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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울시 민 연 대에 대 한제언 임 황 석 │ 서울시민연대 회원

구본훈 부장에게 청탁을 받고 글을 쓰기로 한 이유는, 아마도 그간의 저조한 활동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니, 내가 서울시민연대의 구체적 상황도 알 수 없고 제언을 하면 ‘그럼 난 뭘 하겠다’ 하는 결의(?) 세웁니다. 그러나 곧 이 런 함정 같은 청탁에 빠진 비통함에 후회가 밀려듭니다. 아무튼 A4 한 장 채우라고 하니 쓸데 없을지 모르겠지만 제언을 해 봅니다. 마케팅 툴 한번 이용해 보겠습니다. STP라는 것이 있는데 Segmentation, Targetting, Positioning 입니다. 상품을 만들 때 ‘우리 상품은 남녀노소 누구나 쓰고 싶어하는 제품이야’ 하 면서 팔진 안잖아요. 그러니 우리 상품은 특정한 세대, 특정한 기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팔아야지 하는 게 segmentation입니다. 그래서 그 세분화 된 사람들 가운데 어떤 부류가 우리 제품을 좋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결론으로 우리에 대해서 어필할 수 있는 정의를 내리는 것이 STP입니다. 소비자로서의 정치성향은 여러 분류가 있겠지요. 한나라당 지지자,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국참당 등 많은 정당 중에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은 반한나라당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세대별로는 기존 386식 학생운동을 경험 한 사람들과 새로운 촛불세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중 저는 새로운 촛불세대 보다는 기존 학생운동을 경험해 본 3, 40 대로 서 현재 패배주의, 회의주의로 인해 어떤 활동도 하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노려야 할 유력한 소비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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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이나 관심 분야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를 모색하는 대안적 모임으로 - 임황석회원과 딸

자리매김해야 한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우리 모임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려야 할 까요? 기존 운동권 대중운동단체들이 기반이 없어졌고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소위 진보정당은 대중들의 참여와 활동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는 골방에서 빡센 책 보면서 패권적 그루빠 정파 운동하는 사람들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이나 관심분야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새로 운 진보를 모색하는 대안적 모임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낍니 다. 지금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솔직히 기존 자신의 청년회를 기반으로 끼리끼 리 교류하고 있는 소규모 모임이라는 비판적 평가가 드네요.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어떠해야 할까요? 우선 저부터 기존의 서울시정모임에서 활동하거나 대안적 부동산연구모임을 제안하는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네요.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제안하고 싶은 건 모임이나 뒤풀이에서의 폐쇄적 분 위기, 새로운 사람이 뻘쭘한 분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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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난활동 , 앞 으로 의전 망 하 재 기 │ 서울시민연대 회원

2005~2006년 서청 사무처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과 2007년 서청 총회에서 회원들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10년에 가까운 청년회 활동을 마감하였다. 대학 5년 그것도 중간에 휴학없이, 그리고 졸업 후 곧바로 청년회 활동 시작. 시민 연대 여러 선배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쉬지 않 고 데모질을 한 셈이다. 15년이란 세월을 나의 삶보다 조직의 삶으로 살아오 다 한순간 자유의 몸이 되자 남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청년회 활 동을 안하는 대신 일에 파묻히고 말았다. 이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청년회 활동 당시 나의 정신적 지주이셨던 전 상봉 형님께서 노구(?)를 이끌고 어제의 용사들을 하나씩 규합하던 중 급기야 나에게까지 그 손길이 뻗쳐온 것이 2007년 말. 뭐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없이 바로 총회에 참석하고 활동을 시작. 곧바로 명박이가 미친소 수입이라는 대형 사고를 터트려 몇 년간 침체했던 시민사회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순간, 나는 마누라와 함께 일본으로 휘리릭 떠났다. 그리고 그 다음해 주희의 탄생으로 나의 사고 중심은 활동에서 가정으로 이동 했다. 사무실에서 상근하고 있는 대표님과 본훈이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지난 2년 간 데모도 참가안하고 시민연대 일정에도 아이 때문에 빠지면서 참 편안한 시 간이었다. 내가 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동안 ‘반미’, ‘통일’만 붙들고 살다가 갑자기 ‘공공성’, ‘생태’ 이런 이야기를 하니 뜬 금없는 소리로 들리고, 별로 내 마음을 확 끌어 당기지도 않았다. 시간이 흐르 면 흐를수록 회원들의 관심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고, 이러다가 조만간 문 닫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상 근자를 두는 것 자체가 무리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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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재기, 김정은, 하주희 가족

솔직한 얘기로 지난 4년의 시간동안 우리 단체는 회원들에게 우리가 지향하 는 것이 ‘이것이다’라고 제시를 못했고 어제의 용사들의 친목공간 수준이 아 니었나 생각된다. 그건 단지 대표, 운영위원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모두의 문 제라 생각한다. 어떻게 십수 년 이상을 활동을 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대표 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는 이 상황이 난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나도 마 찬가지고. 1기를 지나 이제 2기의 전망을 써 달라고 하는데 참 난감하다. 1기 동안 아 무리 돌이켜 봐도 내가 뭘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2기 전망이라니. 지난달 대 표님께서 나더러 새롭게 운영위를 하라는 말에 나는 별로 망설임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생활인으로 전락한 것도 반성이 되기도 하고, 상근하는 두 분께 미안함도 있고. 내가 안하면 마누라한테 운영위를 시킬 것 같고, 그러면 애는 그 시간에 내가 봐야 되고, 결국 우리집에서 누군가는 한명이 총대를 메 야되는 것 같아서. 2기는 우리 단체의 지향을 명확히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서 울’이라는 주제가 있긴 하지만 너무 광범위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환경운 동연합처럼 한정시키자니 우리의 오지랖이 그걸 또 허락하지는 않는 것 같고. 내가 운동을 하는 기간동안 인터넷의 등장, 카페·블로그의 등장, 싸이월드의 등장 등 많은 정보기술의 변화가 거듭되어 왔고, 그때마다 이러한 새로운 기 술을 운동에 접목시켜 보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다. 하지만 우리들의 방식은 따라가기에 급급하고 전혀 세련되지 못해 결국 우리의 활동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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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술을 운동에 접목시켜 보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다. 하지만 우리들의 방식은 따라가기에 급급하고 전혀 세련되지 못해 ...이제는 이런 것들을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TGIF(Twitter, Google, I-phone, FaceBook)라고 불리는 시대가 왔다. 이건 분명 이전의 기술과는 다르다. 새로운 기술을 익힐 필요도 없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것들을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다는 생 각이 된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천만인 상황이다. 회원들이 십시일반해서 울 대표님 스마트폰으로 바꿔 드리자. 물론 요금까지도. 울 대표님 원래 스마트 하신데 스마트폰까지 쓰시면 더 스마트해지시지 않을까. 2기는 대선이 포함되는 기간인 만큼 차기 대선 후에 우리도 뭔가 가슴 한구 석에 흐뭇함이 남을 수 있도록 무언가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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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을돌아 보 며

아 들과딸 이커가 는만 큼 나 도조금 은큰듯한 데 ? 한 대

웅 │ 서울시민연대 시정연구모임 대표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잠깐 생각해 본다.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변화하고 발전했을까 바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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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우리 세대의 평균 수명이 대략 90살 이라고 봤

을 때 나는 거의 절반을 살았다. 몸의 체력은 이미 꺾어진지 오래.

2

아이들의 키가 5cm 이상 큰 것은 내 나이가 꺾어지는 곡선의 꼭지점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딸 준아와 아들 준완이는 매일매일 쑥쑥 큰다. 키가 작은 나는 항상 생각한다. 어덯게 하면 유전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 을까? “두 녀석의 키를 더 키우기 위해 무엇을 먹여야 하나.” 이 생각은 지 난해 보다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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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그만두고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이건 내 개

인 생활에서 가장 큰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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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자면 육체적으로는 올해가 지나가면 내 몸은 확실하게 후반부 인생

이고(이미 몸이 그런 것을 많이 느낀다. 만성적인 허리 디스크 등), 환경적으 로 나는 실업자, 아니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아 안정된 삶을 꾸리고 싶은 사 람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원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주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나 와 내 주변 환경들이 변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나와 내가 참가하는 모임(서 울시정연구모임)의 변화는 조금 다르다. 내 생각과 서울시정연구모임은 확실히 주체적으로 조금 변화, 발전했다고 생 각한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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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가 작은 한대웅 대표

거창한 이름의 문패와 멀리 보이는 조그만 희망의 빛 올해 초만 해도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이 있었다. 물론 그 두려움은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서울시민연대’라는 거창한 문패와 그 문패를 세우는데 동의해서 참가한 한 씨성을 가진 나. 2010년 이전까지 별로 하는 일 없이 그리 주체적이지도 않 개 활동을 해 온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첫 번째는 내 개인의 문제. 그러니까 생계를 위해 직장을 다녀야 하고, 또 가족도 부양해야한다. 두 번째는 목표 의 부재 일 것이다. 고지가 보여야 진격을 한다. 아무 곳을 향하여 진격했다 가 “여기가 아닌 개비여”하며 내려 올수는 없는 일. 인생이 얼마나 짧은데. 올해 그 두려움의 일단을 해소 할 수 있었다. 나중에 평가해 보아야겠지만 조금은 안개가 걷힌 듯하다. 지난해 초인가 나는 영화모임을 과감히(내 딴에 는) 해소했다. 회원들의 힘듦과 나의 의지 부족 등의 이유도 있지만, 그래서 아쉽지만, 나는 영화모임이 지금 당장 서울시민연대라는 새로운 옷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먼 훗날은 필요할 것이다. 지금은 좀 더 정치적인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의지에 따라 서울시정연구모임에 참가했다. 처음 모임 이름은 ‘서울시정감시단’ 정도였는데, 이건 우리가 감시만 하고 대 안을 제시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느껴지므로 ‘감시단’이라는 이름을 ‘연구모 임’으로 바꿨다. 나름 잘 한 것 같다. 이제껏 모임에 나온 사람은 효식, 태훈, 덕기, 본훈이 그리고 나까지 모두 다섯이다. 독수리 오형제의 파워로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지만 나 름 성실함과 삶의 진지함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언젠가 서울이라는 거 대 시스템의 불합리한 요소에 작지만 큰 돌멩이를 던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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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섯이다. 독수리 오형제의 파워로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지만 ...서울이라는 거대 시스템의 불합리한 요소에 작지만 큰 돌멩이를 던질 수 있지 않을까?

다섯 명이 이심전심, 십시일반으로 참여함에 따라 모임은 일정 부분 안정이 된 듯하다. 하지만 최소 10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시정연구모임은 서 울시 예산분석 4주 공부, 기타 서울시에 관한 자료 읽기와 타 단체와의 연대 와 교류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것을 더욱 단단하게 굳히는 계 기를 조그맣게나마 만든 듯하다. 다른 단체를 만나보니, 확실히 우리의 갈 길 이 무엇인가에 대한 희미한 불빛이 더 많이 보이는 듯도 하다. 이 느낌이 맞 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 맞지 않더라도, 아니면 맞았는데 우리가 거기에 도달 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모색하고, 고민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나를 비롯한 모임의 구성원 각자의 삶과 인생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올해의 목표 - 회원 10명 이상으로 확대한다. - 구체적인 실천사업의 전형을 만들어 낸다. - 서울과 그 주체인 나와 시민들이 서울의 진정한 주인으로 태어날 수 있도 록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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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영 위 원주 요결 정 사 항 및활 동보 고

살림살이

- 2기 총회를 준비하면서 1기 평가와 2기 계획안을 토론하였습니다. - 2기 총회 일정과 프로그램을 확정하였습니다. - 2월 12~13일 운영위원 수련회를 다녀 왔습니다. - 2월 20일 월례강좌(2011년 정세전망과 서울시민연 대의 과제, 소셜과 진보를 준비 진행하였습니다. - 3월 20일 아차산으로 산행을 다녀 왔습니다. -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기로 하고 그 일환으로 페이스

1월재 정보 고 수

북 서울시민연대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에 등록하였습니다. 지

합계 : 1,484,121원 - 이월금 : 27,841원 - 12월 회비 : 1,106,280원 - CMS 회비 : 1,096,280원 계좌이체회비 : 10,000원 - 전대료 : 300,000원 생명살림연구소 10만원 열다섯의 공감 10만원 새롭게 다르게 10만원 연료비 : 5만원

합계 : 1,323,100원 - 임대료 : 690,790원 - 활동비 : 60만원 - 인터넷·전화료 : 32,310원 - 인터넷 : 29,200원 - 전화료 : 3,110원

을 대폭 바꾸어 보았습니 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기 분이 좋았으면 하는 바람 입니다.

2월재 정보 고 입

합계 : 1,608,410원 - 임대료 : 684,410원 - 활동비 : 80만원 - 소식지5호 제작발송비 81,740 원 - 인터넷·전화료 : 42,480원 인터넷 29,460원 전화료 13,020원

잔액 : 252,310원

다음

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 다. 소식지를 꼼꼼히 보 시다 보면 깨알같은 유머 코드가 있습니다. 음, 굳 이 이름을 붙이자면 ‘숨 은 유머 코드 찾기’ 정도 가 되겠습니다. 우울한 소식들이 많았습 니다. 이번 봄은 모쪼록 생명이

움트는,

생명을

살리는 계절이었으면 합 니다. - 여백을 채우기 위한 후 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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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는

더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 지

합계 : 1,910,720원 - 이월금 : 211,021원 - 12월 회비 : 1,049,699원 CMS 회비 : 1,039,699원 계좌이체 회비 : 10,000원 - 전대료 : 300,000원 생명살림연구소 10만원 열다섯의 공감 10만원 새롭게 다르게 10만원 연료비 : 5만원 - 후원금 : 300,000원

소식지 이번호(7호)는 틀 다. 소식지를 받아 보시

잔액 : 161,021원

편 집후 기


since 2009

서울시민연대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서울시민연대_ 2009년 4월 11일 창립 주권 확립으로서 자치, 사회의 공공성 강화, 지속가능한 공동체 형성으로의 생태를 추구합니다.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 서울, 나아가 시민이 주인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준비하고 있습니다.

회원 가입_ 회비 납부는 월1회 이며 금액은 1,000원이상 자유롭게 정해주시면 됩니다. cafe.daum.net/615simin, 회원가입란(남겨주신 정보는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 문의 ❘ 070. 8834. 4002 (서울시민연대 사무실), 010. 9198. 9003 (기획부장 구본훈)


자치공공생생태  

서울시민연대 소식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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