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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아빠랑 누가 더 좋아? 애정을 재단하는 질문 중에서 대표 격으로 꼽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어린아이들에게 주로 주어지는 문제였으며 딱 이 질문을 받을 시기에는 아무리 궁리해도 답을 낼 수 없는 난제이기도 했다. 마음이라는 게 성인 이 되어서도 좀처럼 제어하기 힘든 부분이라는 걸 생각했을 때 아이들 에게 주어지기는 잔혹한 질문이었다.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도 진지한 답 을 들을 생각보다 장난치려는 위한 의도가 대부분이었으며 아이들에게 만 먹히는 이 장난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게 망실망실 웃던 얼굴을 단번에 일그러지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사랑하고 좋아하 는 아이들은 한쪽을 선택하지 못하고 애를 먹어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눈물에 젖은 얼굴을 보면서 그 난처함을 즐기던 어른들도 금 방 마음이 바뀌어 아이들을 달래는 데 힘을 더 썼다. 그중에 드물게 대 답을 낸 아이들은 또 그 나름대로의 곤경에 처했다. 그럼 나는 싫어하나 보구나, 부모 중 한쪽이 화가 난 시늉을 하면 아직 부모만이 세상 전부 인 아이들은 당연히 곤란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고 어찌어찌 변명 은 해두더라도 아직 머리가 크지 않은 아이가 논리로 무장한 어른의 반 박을 이길 수는 없다. 금방 난처해져서 울음을 터뜨리는 건 이쪽도 마찬


가지다. 어릴 때 한 번씩은 가지고 있는 기억이자 내가 자라면 하지 말 아야지 하고 회고하게 되는 여러 가지 것 중 하나였다. 데미안은 그 질문을 공교롭게도 한 번 마주해보았다. 대부분 아이가 겪는 것같이 장난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브루스와 탈리아의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엄마와 아빠 중 누가 좋냐고 물어본 건 아니었지만 그건 나 이는 어려도 생각은 많이 자란 소년이 생에 처음 마주한 곤란한 질문이 었다. 탈리아를 따라갈 것인가 브루스를 따라갈 것인가. 그 답을 내기까 지 몇 시간이 걸렸다. 거기까지 도달하기는 몇 년씩이나 되는 교육이 바 탕이 되었다. 브루스와 탈리아 사이에서 이리저리 재어보다가 데미안은 결정했다. 아버지를 따라가겠어요. 탈리아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재능 이 뛰어난 만큼 가르치는 데 성심성의껏 온갖 정성을 들였다. 그 수많은 노력의 산물이 결국 그녀의 품을 벗어난다는 사실부터 끔찍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데미안을 붙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건 전 부 실패했다. 그녀가 아이에게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데미안은 브루스를 바라보면서 감탄했다.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인내, 침착, 계획. 그녀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브루스 웨인은 소년의 눈에 굉장히 위대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떠났다. 탈리아는 이를 득득 갈면서 데미안에게 어떻게든 복수를 하려고 애를 썼다. 데미안은 그녀의 아래에서 계속 한 가지 방침만을 배워왔다. 다른 사람의 도움은 청할 수 없고 모든 걸 그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 기였다. 자객이 뒤에 숨긴 칼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멈칫했을 때, 그 걸 막아준 건 브루스 웨인이었다. 그는 데미안을 내려 보면서 엄하게, 한편은 자상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엄마랑 아빠랑 누가 더 좋아? 데미안은 그 질문, 그 상황만큼이나마 바보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선택을 위해 몇 시간이나 걸렸 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년이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망설임 한 번 없이 고작 삼 초 만에 브루스 웨인의 손을 잡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멍청한 상황에 다시 놓일 리는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데미안 웨인은 세상의 갑작스러움을 어느 정도 간과하고 있었다. 어느 드라마를 보고 말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려도 바로 다음 순간 뉴 스 속보로 더한 게 방영되고 있는 세상의 놀라움을. 웨인의 아들 넷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싫다고 악을 쓰는 제이슨을 끌고 온 팀을 마지막으로 넷은 저택의 소파에 쪼로 록 앉았다. 원래라면 딕과 팀 사이의 자리에 앉아 있어야 마땅하겠지만, 조금 늦다 보니 둘은 끝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팀의 발이 조금 더 빨 랐기에 안쪽 자리를 차지했고 딕은 소파의 손잡이에 앉을 수밖에 없는 제이슨을 보면서 진작 넓은 걸로 바꾸어둘 걸 하는 한탄을 했다. 하지만 그만큼 네 명이 전부 한자리에 모이는 건 드문 일이었다. 얌전한 성격이라고 할 만한 아이들이 아무도 없는 와중이라 알프레드 도 브루스도 딕도 아이들이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안 했다. “빌어먹을, 밀지 마.” 툭툭 대놓고 서로 한 대씩을 주고 한 대씩을 받는 신경질 전이 한동 안 오가다가 결국 제이슨이 먼저 한소리를 했다. 팀보다 고작 세 발자국 이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손잡이를 차지하게 된 제이슨은 그렇지 않아도 웨인 저택에 불려오게 된 걸로도 모자라 편한 자리도 아니라고 얼굴에 시뻘겋게 열이 올라 있었다. “팔꿈치로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누군데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나한테 고작 손잡이만 주고 그걸 불평하는 거냐, 드레이크?” 먼저 옆구리를 친 건- 적어도 딕이 보기에는 제이슨이었다. 소파 손 잡이가 널찍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웨인 저택의 소파라도 성인 남성의 엉덩이를 받쳐줄 정도로 아늑하고 넓은 손잡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틀다가 제이슨은 실수로 팀 을 톡 건드렸다.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 머리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얌 전히 앉아 있다가 푹 찔린 팀의 입장은 달랐다. 그가 팀이 아니라 데미 안이었다면 옆으로 전달하듯 화풀이를 하고 기분을 풀었겠지만, 그런 행 동을 안 하기에 팀은 팀이었다. 그 후에도 자리를 잡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팀은 몇 번이나 옆에서 꿈틀거리는 제이슨을 참았다. 브루스도 알프레드도 쉽사리 그들을 부른 이유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참다가 참다가 그 짜증은 원인을 향했다. 제이슨은 팀에게서 옆구리를 세게 얻어맞았다. 그의 입장에서야 자신이 민 기억은 없고 가만히 있는 자신을 편한 자리에 앉아 있는 팀이 툭하 면 밀어냈다는 생각뿐이었기에 당연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대 번 갈아 서로를 찌르고 나서, 제이슨과 팀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으르렁거리면서 고개를 마주했다. “옆에 편하게 앉아 있는 둘은 안 보여?” 애꿎은 불똥이 딕과 데미안에게도 튀었다. 굳이 따지면 제일 먼저 소 파를 차지한 건 딕이었지만, 데미안은 넷이 다 모인다는 사실을 듣고 딕 을 노려보았다. 적어도 웨인 가의 아들들이 전부 모여 있는 자리에서는 제일 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중에서 데미안에게 자리를 양보할 정도로 성격이 유연한 건 딕 혼자밖에 없었다. 딕은 팀과 제이슨이 돌아 와 데미안과 싸움이 나기 전에 친절하게 소년에게 소파의 첫머리를 양 보해주었다. 데미안은 둘이 들어설 때부터 제가 제일 처음 온 사람처럼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로 소파에 여유롭게 기대어 있었다. 그렇게 하길 잘했지, 뭐. 딕은 한숨을 쉬었다. 데미안과 팀 사이에 자 신이 앉아있다는 게 이처럼 다행으로 느껴질 때가 없었다. 원래 팀은 넷 중에 가장 침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지만, 그것도 다른 아이들에 비했을 때 이야기였다. 데미안과도 제이슨과도 매번 얼굴을 마주하면 싸움밖에 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같이 가운데를 절충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원


래 브루스와 알프레드의 앞에서는 다들 제 성격을 자중하는 편이었지만. 지금 둘은 그들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채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모이라는 지시를 받고 이리저리 전한 게 딕이기는 했지만, 그 또한 둘이 그들 전부를 왜 불러 모았는지 몰랐다. 오랜만에 가족 파티라도 하 는 걸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웨인 가에서 가족 파티가 열릴 리 없었 고, 그럴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이슨과 데미안을 그런 이유로 불러 모으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딕은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알프레드에게 제일 먼저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우리 전부가 필요한 거죠? 알프 레드는 드물게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 표정이 심각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다는 건 조금 늦게 알아챘다. 브루스에게 물어보려고 했다가 딕은 멈칫했다. 알프레드는 그의 비하면 뛰어날 정도로 표정 관 리를 잘 하고 있는 셈이었다. 브루스는 평소의 냉정하고 침착한 모습은 어디에 버렸는지 정말 말 그대로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딕은 어쩔 수 없이 동생들에게 그가 본 그대로의 모습을 전했다. 거기에 사견을 한 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심각한 일인 것 같아. 브루스와 알프레드가 나란히 그런 표정을 하다니. 브루스 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밖에 있던 데미안은 순식간에 저택 안으로 날 아 들어왔고 단번에 연락이 닿지 않는 제이슨은 팀이 먼저 나서서 책임 지겠다고 이야기했다. 다들 모이게 되기까지 분쟁이나 따지는 말 하나 없었던 것도 본능적으로 딕의 목소리에서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 문일지 몰랐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제이슨은 그런 분위기를 좀체 견디지 못했다. 조 금 전까지만 해도 바깥에서 신이 나라 휘젓고 다니던 몸이었다. 팀이 그 를 찾아서 앞에 내려서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그러고 있을 터였다. “네가 늦게 왔잖아!”


“우리가 더 나중에 들어선 팀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 적어도 너보 다는 서둘렀을 걸, 드레이크! 내가 늦게 오고 싶어서 늦게 온 줄 알아? 네가 늦게 데리러 왔잖아!” “아무리 연락해도 연락을 안 받은 게 누군데? 그럴 거였으면 애초부 터 회선을 잘 붙잡고 있었어야지.” “하, 천년만년 안부 인사 하나 없는 회선을 내가 뭐하러? 그 시간에 술이나 한 잔 들이켜는 게 더 빠르겠다.” “안부 인사? 이런, 제이슨님께서 그런 걸 원하는 줄 차마 모르고 있 는 바람에 잘 잤니, 하는 한마디를 못했네. 내가 자러 가기 전에 잘 자, 배트맨 꿈꿔 한 말 정도는 해 줄 걸 그랬나?” 넷 중에 따지자면 팀이 가장 예민했다. 성격 자체가 예민하다는 이야 기가 아니라 흐르는 감정을 눈치채는 게 가장 빨랐다. 팀은 브루스와 알 프레드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걸 오자마자 알아차렸다. 그들의 굳은 표정을 보고서 ‘다른 곳에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해.’라는 생각 대 신 ‘두 분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하는 생각을 시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게 팀의 재능이었다. 말이 없는 사이에 딕은 팀이 브루스와 알프레드를 연갈아 살피는 걸 보았다. 그러는 와중에 제이슨이 시비를 걸어댔으니, 당연히 팀도 약이 바짝 올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제이슨은 알프레드고 브루스고 관계없이 당장에라도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은 듯 굴어댔다. “자, 자. 그만 싸우고. 제이, 자리 바꿔줄까?” 언제까지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브루스와 알프레드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어서 불안한 건 딕도 마찬가지였지 만, 그렇다고 이걸 놓아두면 조금 후 둘이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둘러 싸 워댄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데미안과 팀을 붙여두는 건 그거대 로 또 불안하기는 했지만, 일단 그 전에 브루스든 알프레드든 이야기를 꺼내겠지 싶어 딕은 손잡이에 앉아 있는 제이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필요 없어!" 제이슨은 딕의 손이 닿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면서 거세게 치워냈다. 짜악, 꽤 큰 소리가 나고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정작 손을 뿌리친 제이 슨도 제가 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딕을 보았다. 손바닥과 손등이 바로 닿아 소리만 조금 크게 났을 뿐 아프지는 않았지만, 딕이 웃음과 함께 얼버무리기도 전에 제이슨이 투덜투덜 먼저 입을 열었다. 확실히 멋쩍었는지 딕에게서 시선을 홱 피한 채였다. 아예 손잡이 부근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제이슨은 무릎에 턱을 괴었다. 다들 브루스를 닮아 고집 이라면 한 가닥씩은 했다. 일단 작정하고 앉아 있는 제이슨이 어지간해 서 비켜주지 않으리라는 건 딕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제이슨은 확실히 기세가 좀 꺾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가 저놈처럼 애새끼인 줄 아나. 그냥 여기 있을 테니까.” “야! 너 지금 나더러 말한 거지?” 딱히 상대를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자리에 가만히 앉아 뻐기듯 고개 를 들고 있던 데미안이 그를 홱 돌아보았다. 제이슨의 입꼬리에 짙은 비 웃음이 실렸다. “난 딱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러는 걸 봐서는 이미 잘 알고 있네.” “아, 정말. 그만 좀 해. 너희 그만 좀 하자.” 달려드는 데미안을 다행히 딱 맞추어 잡을 수 있었다. 딕은 금방이라 고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 제이슨에게 달려들려고 바둥거리는 데미안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데미안은 나름 힘을 더 썼지만 그래도 딕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소년은 자신을 꽉 잡고 있는 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금 방 그만두었다. 그 정도로 풀이 죽는다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빠져나갈 기회만을 노리고 있기는 했지만. 데미안의 행동보다 이번에는 브루스와 알프레드가 이야기를 꺼내는 게 빨랐다. 딕의 희생정신 때문에 소파 손 잡이에서 내려와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제이슨까지 편안한 자세로 기 대고서야 둘은 아이들이 비로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큼큼, 알프레드가 먼저 잔기침을 하면서 목소리를 골랐다. 이제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분위기만 내리깔고 있던 둘이었기에 이야 기를 꺼내려는 기색을 보이자마자 네 명은 바짝 긴장했다. “딕, 제이슨, 팀, 데미안.” “이렇게 네 분 도련님들이 한자리에 모였군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래. 제이슨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행인 건 그 말을 소리 내어 하지 않았다는 정도뿐이었다. 데미안은 브 루스의 목소리에 네, 아버지 하고 대답하느라 알프레드의 말을 끊어먹었 다. 눈치 진짜 없다. 소곤거리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들으라고 하는 것임 을 그 자리의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데미안은 고개를 홱 돌려서 팀을 노려보았다. 딕이 소년을 안은 팔에 힘을 세게 주고 나서야 데미안은 흥, 작은 콧소리를 내면서 브루스와 알프레드를 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너희들의 결정이 필요하다.” “저는 이 저택을 나갈 생각입니다. 최대한 웨인 가의 유지를 잇기 위 해 노력은 해 보았지만, 이제 제 나이도 그렇고 슬슬 힘이 드는군요.” “아, 이런.” 딕이 제일 먼저 안타까운 목소리를 뱉어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알프레드는 웨인 가의 일원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오랜 시간을 같이 지 낸 사람이었다. 그는 딕이 저택에 들어오기 전부터 브루스 웨인의 옆에 서 집사라는 이름을 걸고 모든 걸 돌보아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릴 적 부모를 잃은 딕에게는 섬세하게 그를 챙겨줬던 알프레드가 부모와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심지어 그건 브루스에게도 제이슨에게도 팀에게도 데미안에게도 다르지 않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짧았던 데미안조차 그의 말에 얼굴을 왕창 구겼다.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네 명을 다 불렀 는지 간신히 이해가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알프레드가 나가는 이 야기라면 당연하지. 급하게 소집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너무 갑작스 러운 감은 있었지만 그들은 잠시 동안 아무런 말없이 각자 그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아쉽네요, 알프레드. 당연히 오래 함께 해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래도 웨인 가의 일이 힘든 부분이 많죠. 같이 더 고생해달라고는 이야기 를 못 하겠네요.” 팀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자리에서 일 어나서까지 인사하려는 팀을 말린 건 뜻밖에 브루스였다. 그제야 그들은 둘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헤어진다는 일에 관한 아쉬움보 다는 미묘한 통탄이 어려 있었다. 아쉬움이라는 단어와 약간 걸맞지 않 은 표정이었다. 브루스가 입을 열려는 걸 알프레드가 손으로 막아 세웠 다. 원래라면 그런 행동은 예의가 아니라고 꺼리던 그였지만, 나가기로 하자마자 그와 같이 사소한 건 전부 던져버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딕 은 브루스의 말문이 막히는 걸 오랜만에 보았다. “네 분 도련님들,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저는 일 에서 은퇴하는 게 아닙니다.” 영문 모를 말에 넷이 나란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데미안은 브루스가 한 말을 그 사이에 되새겨 보았다. 결정이 필요하다. 그 말은 어딘가 이상했다. 이미 나가기로 했다면 굳이 그들 넷의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없었다. 브루스가 한 이야기는 무언가의 대답을 넷에게 강요 하는 말이었고. 데미안이 고개를 반대로 갸웃거릴 때. “도련님들께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주셔야 하겠습니다.” “…둘 중 하나?“ 제이슨은 조금 멍청하게 물었다. “브루스 주인님과 저, 알프레드 페니웍스 중. 둘 중 하나 말입니다.” 그런 표정의 제이슨은 처음이었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이어지 는 알프레드의 말에 다 같이 비슷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브루스 는 알프레드의 말에 확신을 주듯 덧붙였다. 지금 그들 네 명이 브루스와 알프레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Xx sa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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