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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에서까지 주도권을 뺏기는 건 바라지 않는 일이다. 거기에 조금 짜증까지 난다. 존은 그의 위를 타고 앉아 바지춤을 풀어내리는 셜록을 조금 밀어냈다. 셜록의 고집과 뻔뻔함을 잘 알면서도 한 일이다. 물론 잘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셜록은 그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면서 피식 웃었다. 예상한 곳을 휘젓는 손목을 잡아 침대에 콱 눌러 붙이기까 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존의 한 손을 꾹 누르느라 마찬가지로 셜록도 한 손이 잡혀 버렸다. 셜록은 나머지 한 손으로도 어렵지 않게 바지를 끌 러 내렸다. 존은 그 여유만만한 과정을 보면서 인상을 구겼다. “자네는 여지를 안 주는군. 자비가 없어, 자비가.” “존 왓슨. 사실 자네에게 여유가 필요한지 아닌지는 나와 별개의 일이 지. 어차피 상관없으니까.” “그래, 그 소리를 예상했었어!” 젠장, 그래도 침대 위에서까지 들어먹는 건 짜증 나는데. 조금이 아니 라 아주 많이. 존은 셜록의 손에 잡혀 있는 제 팔을 빼내지 못했다. 셜록 은 존을 잡아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위치만이라도 바뀌었으면, 적


어도 셜록이 아래에 있기만 했으면.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힘은 한계가 있다. 아무래도 체격이 비슷하다면 위쪽에 있는 게 훨씬 유리하다. 생각 만 한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존은 셜록을 몇 번 밀어내려고 노력 하다가 결국 긴 한숨을 내쉬었다. 숨소리에는 막 시작되는 흥분이 어려 있었다. 셜록은 존을 눌러내면서 목덜미를 길게 핥았다. 흥분은 몸을 달아오르 게 한다지만, 존은 이미 셜록을 비키게 하려고 온 힘을 다 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체온이 오르기는커녕 힘을 준 손이 하얗게 질려가기만 했다. 셜록은 창백할 정도로 자신을 꽉 움켜잡고 있는 존의 손을 보고 키득키 득 웃었다. 존은 짜증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도 무엇보다 그 웃음 이 가장 셜록다웠다. “난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했어.” “나도?” “자네가 그 멍청한 사람 중 대표적인 남자지.” 셜록에게 다른 사람을 누르는 일은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굳 이 힘이 필요 없이 입에서 나오는 빈정거리는 말 몇 마디면 사람은 속절 없이 무너졌다. 할 말을 찾지 못하면 사람들은 짜증부터 냈고, 그래서 셜 록은 자신이 부리는 짜증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에게서 돌아오는 불만에 익숙했다. 존도 마찬가지다. 셜록은 제 아래에서 몇 번이나 몸을 움찔거 리는 존을 내려보았다. 슬쩍 찌푸린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러주면서 다시 한 번 키득키득 웃었다. 그 웃음은 꼭 무능력한 타인을 비웃는 것만 같이 보였다. 사람들은 셜록의 웃음에 그래서 내던 짜증만 더 냈다. 존 왓슨이라는 사람이 그나마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면, 사실 마찬가지로 그 표정에 있었다. 셜록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미간 을 눌러주는 것만으로 존은 금방 표정을 풀었다. 얼굴이 한숨으로 점철되 는 것과 그 시선이 셜록을 향해 부드럽게 휘어지는 건 거의 동시에 일어 난 일이었다. 자신의 성격이 꽤나 견디기 어려운 종류라는 걸 알고 있었


기 때문에 셜록은 그런 존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존은 셜록의 허리를 붙잡았다. 이미 밀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 손에는 힘이 전부 가셔 있었다. 존 왓슨이 포기가 빠른 사람은 아니었 지만, 포기 대신에 학습이 빨랐다. 그는 셜록과 함께하면서 그의 성격을 누구보다 빠르게 학습했다. 심지어 그의 형이었던 마이크로프트 홈즈보다 도. 셜록은 존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만, 그와 동시에 언젠가는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했다. 지식은 배워서 익히는 종류지만, 지혜는 아무리 학습해도 좋아지지 않았 다. 인내심은 원래 사람이 타고나는 종류였으며 포용은 나이가 들수록 조 금씩 줄어드는 관대함이었다. 존은 셜록이 머리에 가득 채운 지식만이 없 을 뿐 나머지 것을 전부 다 가지고 있었다. 존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 만 셜록은 그를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살다 보면 모든 일이 기가 막힐 만큼 뜻대로 술술 풀리는 운 좋은 날 도 한 번쯤은 있게 마련이다. 존 왓슨에게는 오늘이 바로 그런 날 중 하 나였다. 존이 그의 친구이자 연인인 셜록과 낭만적인 시간을 제대로 보낸 날은 손으로 꼽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 이유에는 낭만이란 걸 잘 이해 하지 못하는 셜록의 성품 탓도 어느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의 이유는 순전히 불운이었다. 존의 제안으로 두 사람이 데이트 일정을 잡자마자 급한 사건이라면서 레스트라드가 찾아온다든가, 거실 안을 메우 던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기류를 허드슨 부인이 노크 한 번으로 와장창 깨버린다든가. 무슨 마가 끼었는지 두 사람의 낭만적인 계획은 곧잘 악의 없는 방해를 받곤 했다. 그런 이유에서 오늘은 두 사람이 낭만적인 하루를 보내기 좋은 완벽한 날이었다. 어제부터 오늘 점심까지 내내 아무런 의뢰도 들어오지 않자 존 은 셜록에게 외출이나 해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셜록이 순순히 동의하 자 존은 어쩐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겉옷을 챙겨서 플


랫을 나섰다. 외출이라고 해봤자 두 사람이 특별히 대단하고 거창한 데이트를 한 것 은 아니다. 날씨가 좋다는 핑계로 의미 없이 공원이나 번화가 같은 곳을 거닐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분위기가 그럴듯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하나같이 데이트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평범한 일이었다. 어쩌다가 존 과 그런 데이트를 할 때마다 셜록은 그런 일들을 항상 따분하다고 평했 었다. 하지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외출하는 동안 셜록은 지루하 다 따위의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외출 동안 유일하게 한 부정적인 말은 보고 나온 영화가 끔찍하게 재미없었다는 혹평뿐이었다. 존은 영화 얘기를 적당히 흘려들으며 셜록의 손을 잡고 언제 함께 가 보고 싶던 식당으로 향했다. 셜록은 식당에서도 별다른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와인을 들며 생각보다 제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존은 셜록의 말에 대답하는 목소리에서 신나게 들뜨는 기분을 가라앉히기 어 려웠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플랫 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오늘은 두 사람 모두 여유 있게 걸어가고 싶어 했다. 늦은 시간의 거리는 조용했다. 이따금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 와 사람들의 걸음 소리가 조용한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가로등과 창문 너머의 불빛이 어두운 길 위를 비추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 도 오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상대의 눈이나 손을 흘끗 보다가 시선을 돌 렸다. 그들 답지 않게 서로 눈치를 보는 행동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던 말과 행동이 지금은 모두 다르게 느껴졌다. 그 다른 느낌 을 셜록은 이상하다, 존은 수줍다고 해석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 기가 감돌았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먼저 깬 것은 셜록이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가죽의 감촉에 존은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셜록이 손을 잡고 있었다. 고 개를 들어 셜록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셜록은 고개와 시선을 왼쪽으로


약간 틀어놓고 있었다. 조금 전에 같이 마셨던 술 탓인지 아니면 단순히 기분 탓인지 존은 셜록의 뺨이 평소보다 붉게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 다. 어떻게 봐도 늘 보던 것과는 다른 모습에 존은 소리 없이 웃었다. 소 리 내서 웃는다면 이 어린 친구는 곧바로 자신의 손을 놓아버릴지도 몰 랐다. 존은 왼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존이 손을 맞잡자 셜록은 시선을 살짝 돌려 존의 얼굴을 살폈다. 기분 좋다는 듯이 웃는 표정을 확인하자 셜록은 내심 안심하며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돌려 놓았다.


Mercy melo sam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