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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는 루트에게 키스했다. 그녀는 성격처럼 제법 체온이 낮았다. 루트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울 것 같은 얼굴로 눈을 찌푸렸다. 쇼는 입술 끝을 맞대고 나서야 그녀가 따뜻하지 않은 걸 처음으로 알았다. 사민 쇼만 보면 항상 눈을 휘며 웃어주는 사람이었기에 따뜻한 여자라고 내내 생각했다. 그녀를 잡아 철장 안에 있는 힘껏 밀어 넣는 것으로 쇼가 할 일은 전부 끝났 다. 리스가 그녀를 잡는 걸 보면서 쇼는 버튼을 눌렀다. 잠깐 손을 머뭇거리자마 자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딱 멈추었다. 몸을 피하게 하려면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리면 안 된다. 쇼는 버튼을 누르는 손에 힘을 주었다. 한 손에 총을 움켜쥐고, 그들을 노리는 적들이 금방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이코패스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쇼는 여 전히 그녀를 목이 찢어지라 부르는 루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도 사 람을 살리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왜 살려야 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지 만, 그래도 쇼는 리스가 구해낸 사람들이 활짝 웃는 얼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손을 가져다 댔다. 굳이 그들의 안도감에 공감할 필요까지도 없었다. 우리는 이 런 걸 보답으로 받아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소년은 리스의 손을 꽉 잡 고 사탕 하나를 쥐여주었다. 가진 게 없는 가난한 집에서 소년이 줄 수 있는 최 고의 선물이었다. 끈적끈적 녹아 손에 달라붙는 사탕 한 개를 받고도 리스는 부 드럽게 웃었다. “먹을래요?”


“별로.” 사탕과 달라붙어서 제대로 벗겨지지도 않는 포장 때문에 리스는 그 하나에 굉장한 시간을 들였다. 쇼는 턱을 괴고 그런 리스를 구경했다. 결국 카라멜처럼 치덕이는 사탕을 입안으로 밀어 넣은 건 리스가 그날 해낸 최고의 성과였다. 당 신들은 정말 이런 게 좋아서 하는 거냐고 쇼는 물었고, 대답은 듣지 못했다. 여 전히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지금 행동하는 건 효율과 경제성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행동 요원보 다 머리를 쓰는 사령탑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행동하 는 쇼가 살아나는 것보다 지시하는 루트가 살아나는 게 더 효율적인 행동이다. 핀치는 그녀와 리스를 비교한 적이 없지만, 그러지 않아도 쇼는 리스가 훨씬 더 뛰어난 적성을 가졌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가장 약한 사람이 도태되는 것, 그보다 더 경제적인 상황은 없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최대한 구하려고 하 지만, 만약에. 만약에 정말 그러지 못하고 꼭 한 사람이 희생해야 할 상황에 놓 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사민! 사민, 안 돼, 그러지 마, 사민!”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쇼를 보았다. 엘리베이터가 요란한 소리로 내려갔다. 쇼는 잠깐 고개를 돌렸다. 철장에 매 달린 채로 손을 놓지 않는 루트는 금방이라도 그 경계를 몸으로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루트는 언제나 이성적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장기 말처럼 다루는 행동은 쇼가 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녀는 모든 걸 자신의 손아귀에 올리는 걸 좋아했다. 그걸 벗어났을 때는, 쇼는 사실 그 부분은 잘 몰랐다. 그녀 는 루트의 손에서 벗어났던 적이 없었다. 유일하게, 지금을 제외하고. 아슬아슬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끄트머리에서 쇼는 리스가 루트를 억지로 떼어내는 걸 보았다. 쇼가 보는 시선 마지막까지 루트는 빠져나가기 위해서 버 둥거렸다. 쇼는 지금 이렇게 급박한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 두 번째였으면 했다. 그러면 그녀에게 조금 더 일찍 말해줄 수 있었을 텐데. 효율도 경제성도 거기에 그녀가 사이코패스인 데다가 명령을 따르는 요원이라는 건 지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알고 있어, 이제 나는 알고 있어. 쇼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아는 모습은 전부 사라질 때다. 한 명이라도 더 자신의 손에서 끝을 맺길 바라며 총 을 겨눌 시간이다. 쇼는 모퉁이에서 고개를 슥슥 들이미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녀가 이들을 맡는다고 가정했을 때 리스의 실력이라면 모두를 무사 히 데려갈 수 있었다. “사민-!” 총소리가 울렸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화끈거리며 몸이 아파왔다. 감정이 적다 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쇼는 이를 악물었다. 다시 한 번 몸 한쪽 이, 이번에는 다른 쪽이. 쇼는 몇 번 총을 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몇 발이나 맞 았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루트, 나는 너를-….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눈앞이 희미해졌다. “이 빌어먹을 게임을 원래대로 돌려놔야겠어.” 소녀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삐걱거리는 자판은 이제 제대로 눌리지도 않았 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강한 사람은 울지 않는 법이야, 샘.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끝에 어렴풋이 붙었던 자신의 이 름이 기억나는 걸 보면 아마 한나가 그렇게나 읽어치우던 책의 한 부분을 알려 준 것일 테다. 샘은 그것보다 바보 같은 말은 없다고 생각했다. 강한 사람과 안 우는 사람이 무슨 상관인데. 그래도 샘은 그녀의 말을 듣는 것처럼 눈을 슥슥 비볐다. 컴퓨터 자판을 타닥이는 소리가 울렸다. 오랜 시간까지는 필요 없었다. 아주 잠깐이면 끝이 났다.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던 스코어는 간단한 키보드 조작 몇 번으로 사라져 버렸다. 루트로 입력되어 있던 플레이어 이름을 지우면서 샘은 허공을 보았다. 목이 조금 아팠다. 한나가 사라진 일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샘은 혼만 실컷 났 다. 조금 혼이 났다고 해서 기가 죽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라 한나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어서 이미 샘은


마을을 한 바퀴 돌아 그녀를 찾아다녔다. 당연히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건 머리의 일이었다. 아직 소녀는 가슴과 머리의 일을 동일시하는 게 어색했다. 잠깐 도서관에 들러서 컴퓨터를 잡은 건 한나가 그 게임에 그렇게 매달리던 기억이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돌아왔을 때 제 순위가 사라진 점수판을 보고 실망이라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샘은 원래로 돌려놓기로 했다. 은근슬 쩍 한나의 위 자리를 차지하던 점수 하나를 지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 재 미없는 게임을 누가 하는지 모르겠어, 하는 사람이 있으니 기록이 남는다. 그걸 알면서도 샘은 종알종알 짜증을 냈다. 쇼가 제 허리만치 오는 작은 소녀와 부딪친 건 도서관 앞에서였다. 앞도 안 보고 성큼성큼 걸어나가던 샘은 쇼와 부딪힌 순간에 걸음을 멈추었다. “뭐에요, 사람 길이나 막고.” 여기서 지체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잠시 가졌던 휴식 시간은 한나를 위한 것이면 충분하다. 샘은 한나가 걱정되었다. 그 와중에 길을 가로막은 사람은 자 리에서 비켜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샘은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노려보았다. 어 린아이에게 부적절한 관심이라도 품은 남자려니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고개를 들어서 본 건 말끔하게 생긴 여자였다. 키도 크고, 얼굴도 훤칠하고. 게다가 첫 인상부터가 이런 시골에 박혀 있을 만한 얼굴이 아니다. 막상 따지려고 생각하 다가 샘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아- 안 도와줄 거면 비켜요.” 그녀는 낯선 사람이었다. 좁은 마을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모를 수가 없었다. 외지인은 표가 났고, 그녀는 그렇지 않아도 온몸으로 내가 바깥에서 왔다고 주 장하고 있었다. 패션이라고 해봤자 넙데데한 천 조각을 뒤집어쓰고 있는 게 최 선인 마을에서 딱 붙는 바지와 가슴이 패인 셔츠를 입은 사람은 그녀밖에 찾을 수 없을 거다. 실제로 도서관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도 전부 다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미인이기까지 했다. 한나를 찾는 일이 급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 샘 또한 속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바람처럼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불운


한 일도 있고, 불쾌한 일도 있고. …가끔은 눈물을 머금을 정도의 죽음도 있었 다. 샘은 그녀의 앞에서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걸 전부 그 탓으로 돌렸다. “…그, 그러니까- 이게.” 쇼는 혼란스러웠다. 허벅지의 감각은 타는 듯 뜨거웠다. 총을 가슴을 살짝 빗 나가 맞았는지 숨을 들이쉬기가 괴로웠다. 색색 마지막 숨을 가까스로 마시면서 도 쇼는 흐린 시선으로 앞을 보았다. 철컥, 철컥. 총부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눌 러도 총알이 다 떨어진 총은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없었다. 마지막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우습게도 그녀가 끝에 가서 손을 얹은 곳은 총을 맞은 다리도 가 쁜 가슴도 아니었다. 쇼는 마지막으로 루트의 입술이 얹혔던 얼굴 위에 손을 가 져다 댔다. 냉기는 떨어진 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루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속삭이는 사랑만큼 의미가 없는 일은 또 없다. 눈앞이 희 미해졌다. 그녀는 까맣게 의식을 잃었다. 무릎께에 부딪치는 작은 충격에야 그녀는 눈을 떴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사실이 제일 먼저 들고, 다음에야 눈을 감기 전까지 그렇게 아팠던 상처가 생각 났다. 쇼는 저절로 눈을 찌푸렸다. 햇볕은 강했다. 반쯤 감은 덕분에 눈이 부시 지 않아 소녀가 바로 보였다. 그녀의 절반만 한 여자아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 키를 하고 있었다. 쇼는 한동안 여자아이를 내려 보다가 주변을 살폈다. 왔다 갔 다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유로웠다. 길가에 놓인 나무는 제멋대로였다. 바닥은 풀 로 덮여 있고 길은 다듬어지지 않았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모습이었다. 총을 그렇게 맞았는데 이상하게 어느 곳도 아프지 않았다. 가장 멀쩡할 때의 몸 상태와 같았다. 사로잡히지도 않고 묶이지도 않고. 게다가 갑작스레 알지 못 하는 시골 마을에 뚝 떨어져 있었다. 긴장이 가시지 않아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 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굳이 잡히는 시선이 있다면-. 짜증 나, 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옆으로 멈추어 있는 남자들의 헤벌린 시선이 들어왔다. 한두 번 받아보는 시선이 아니라고 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나 쁜 거였다. 평소에는 그런 사람을 가만두지 않고 반드시 한 방 먹이고 말 터였 지만, 지금같이 영문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다짜고짜 경계심 부터 끌어내서 좋을 건 없다.


주변을 한 바퀴 관찰하고 나서야 아이를 내려볼 여유가 생겼다. 쇼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만들어진 그늘 때문에 아이의 얼굴이 더 잘 보였다. 아직 어린 시선에서 쇼는 단번에 그녀가 알고 있는 누군가를 찾아냈다. 사만다 그로브스. 그녀의 루트. 어린 태밖에 없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루트를 부르려다가 쇼는 입을 꾹 닫았다. 그녀가 알던 것보다 어려졌다. 세상에 머신의 존재가 있다고는 해도, 어려지는 약의 존재까지는 없다는 걸 알 았다. 언젠가 개발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이게 무슨 만화 같은 이야기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쇼는 습관적으로 팔을 올려 그늘을 만들 었다. 훈련받은 몸은 훈련받은 그대로 착착 돌아갔다. 고통의 후유증도 총격의 트라우마도 그녀는 전부 모르는 일이었다. “도와줄까?” “네? 도와줘요?” 사실 쇼는 그녀에게 이름을 물어보려고 했다.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혼란스 럽게 하려는 루트였지만, 그녀의 본명은 알고 있었다. 핀치가 매일 같이 그리 불 러대는데 외우지 못할 멍청이는 없다. 하지만 뭔가 걱정이 들어 있는 소녀의 시 선과 마주한 순간, 스스로도 생각지 못한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제의를 받은 소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원래의 루트라면 여유롭 게 비웃어줄 테지만, 그 생각을 했다가 쇼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앞 에 서 있는 건, 원래 이름이 어쨌든 간에 아직 어린 소녀였다. “저를요? 그러니까- 당신이 저를?” “이상한가?” “엄청- 엄청 이상하죠.”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심하는 것처럼 시선이 가늘어졌다. 샘은 아래위 로 쇼를 훑어보았다. 어제까지는 보지도 못했던 낯선 사람에, 마주치자마자 갑작 스럽게 베푸는 호의. 샘은 다른 사람보다 감정에 정확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한나를 따르는 것도 쓰레기처럼 내려보는 많은 시선에서 유일하게 맑은


호의와 함께 다가와 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제 기억이 이상한 게 아니면, 저는 당신을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응, 그럴 거야.” “외지인이죠?” “음, 그렇지. 여긴 시골이네.” “그럼 제가 뭘 믿고 당신에게 도와달라고 하죠? 처음 보고, 외지인인 데다가.” “굳이 말하자면 이곳의 어른들이 널 도와주지 않으니까?” “…정답이네요.” 무심한 어조에 상처받을 수도 있지만, 샘은 그렇게 마음이 여린 소녀가 아니 었다. 쇼는 주위를 스륵 둘러보면서 어렵지 않게 답을 알아차렸다는 것처럼 그 녀에게 말했다. 부정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정확한 이야기였다. 여자가 샘에게 보이는 건 호의였다. 그건 좀 드문 경험이었다. 오늘 아침까지 만 해도 샘은 거짓말이나 살살 하고 다니지 말라면서 뺨을 맞았다. 어린아이를 세게 때리기에는 일말의 양심이 남아 상처는 나지 않았지만, 가라앉은 붓기에도 불구하고 맞은 뺨은 아직까지 얼얼했다. 샘의 침묵은 길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끄덕여 그녀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 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 번 그러겠다고 결정하고 소녀의 행동은 빨랐다. 샘은 쇼에게로 바짝 붙었다. 쇼는 습관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이에게 잘 대해주는 일에는 사실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핀치와 리스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너무 냉정하다느니, 아이들이 무서워한다느니. 온갖 핑계가 비난하듯 달려드는 걸 들 으며 쇼는 한숨을 쉬었다. 효율적으로 그 소리를 계속 듣느니 손을 한 번 뻗어 주는 편이 나았다. 그것도 하다가 보니 습관이 되었다. 샘은 쇼의 손을 바로 잡아오지 않았다. 대신에 먼저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나한테 도움이 필요한 거.” “그럴 것 같았어.” “그럴 것 같았어-는 무슨.” 별거 아닌 대답이었지만 형식으로 치장한 말에 비하면 훨씬 더 그녀의 마음 을 가라앉혀주었다. 샘은 그제야 쇼가 내민 손을 잡았다.


소녀가 찾는 건 한나라는 사람이었다. 물론 쇼는 그 한나라는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어떤 일을 당했는지 속속히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가에 걱정을 물고 손가락 끝을 톡톡 씹는 소녀에게 그걸 그대로 말해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상대 가 루트라고는 해도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를 배려한다는 건 쇼에게 있을 수 없 는 행동 방침이었지만. 상대가 뭐, 루트니까. 루트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쇼는 스스로의 이상행동을 전부 용납했다. 쇼는 샘의 말을 전부 믿었다. 어린아이가 하는 말에 신뢰성이 없다는 사실은 안다. 그랬기에 샘은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쇼를 의문 스럽게 보았다. 소녀에게 쇼는 이리저리 신기하고 갑작스러운 사람이었다. 어린아이 하나가 돌아다니면서 수소문해봤자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었 다. 게다가 샘은 마을에서도 꽤나 터부시되던 사람이었다. 아침부터 돌아다녀도 쓸만한 대답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이나 하고 다니지 말란 것이었다. 그녀의 옆 에 쇼 한 명이 끼어들게 되는 것만으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한나 말이지? 밤 이후로 못 본 것 같은데. 그럴 줄 알고 있던 대답이지만 예 상만 하는 것과 직접 귀로 드는 건 또 달랐다. 쇼는 팔짱을 끼면서 대답한 여자 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초리는 얼굴에 맞지 않게 꽤나 싸늘했다. 작업을 걸려 고 하던 남자들도 막상 대답 한마디 없이 노려보는 시선을 받으면 뒤로 주춤주 춤 물러섰다. 평소 마을에서 그를 괴롭히던 스미스 아저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무슨 여자가 저래, 욕설을 지껄이며 황급히 도망치는 뒷모습 꼴을 보고서 샘은 한나가 사라진 후로 드물게 깔깔 웃어댔다. 공통적인 대답이라고 해봤자 한나 프레이가 오늘 하루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래도 착실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걸 까. 그나마 그녀를 걱정해준 사람은 한나가 매번 집을 나설 때 지나가고는 하는 팬케이크 집 주인뿐이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하는 그녀 또한 한나가 어디에 있는지는 짐작도 못 하는 눈치였기 때문에 샘은 순순히 걸음을 돌렸다. 고맙다 고 인사한 건 샘이 잘 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 마을에서 한나에 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역시 샘이었다. 그녀가 갈 만 한 곳은 이미 말해주지 않아도 제일 처음 알아서 둘러보았다.


샘은 한숨을 푹 쉬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온 마을을 순회하느 라 식사 한 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무리 어른이라고는 해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순순히 그녀의 뒤를 따르기만 해준 건 쇼 또한 마찬가지였다. 샘은 솔직히 그녀가 얼마 도와주지 않고 중간에 가 버릴 줄로만 알았다. 바쁜 일이 있어서, 어른들이 하는 그런 말은 항상 그랬다. 끝까지 도와줄 것처럼 이야기하고 항상 지친다는 이유로 먼저 모습을 감추었다. 꼬르륵, 온종일 굶었다는 이유로 배는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샘은 참을성이 많은 아이였다. 조금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구석이야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멍청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동그 란 구멍에 들어가지도 않는 네모를 억지로 욱여넣는 모습을 종일 보고 있다면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쇼는- 잠깐 자신의 어릴 적을 생각했다. 맞지 않는 블록 조각을 끼우다 말고 신경질 내는 사람들을 망설임 없이 총으로 갈겨 죽여 버렸다. 그런 자신에 비해서 루트는 의외로 성실한 아이였다. 벌써 몇 번째 소녀 의 배가 꼬르륵 꼬르륵 울리고 있었다. 배가 고픈 기색이 역력했지만, 한나 프레 이의 행방을 찾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는지 샘은 배고프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옆에 도와줄 사람이 있는데도 그랬다. 그나마 마을이 작아서 다행이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방문하지 않은 곳이 없 었다. 쇼는 지저분한 상자에 상처투성이 체리를 잔뜩 모아놓고 파는 자그마한 트 럭에서 체리를 한 바구니 샀다. 체리가 가득 든 봉지를 받아들면서 돈에 대한 생 각은 조금 늦게 했다. 그게 돈이 필요한 작전은 아니었지. 쇼는 마지막을 생각하 면서 희미하게 한숨지었다. 지갑이 들어 있는 대신에 손에 차가운 금속이 잡혔다. 총이었다. 쇼는 그 마지막 격전에서 총알을 다 썼다는 것도 같이 기억해냈다. 아이의 눈앞에서 사람을 쏴 죽일 생각은 없었기에 쇼는 체리값을 달라고 성 화하는 상인의 머리에 장전도 하지 않은 총을 겨누었다. 순식간에 남자의 얼굴 은 사색이 되었다. “그거 총이죠?” 샘은 쇼가 건네는 체리 봉지를 받아들기 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온전한 체 리 값보다는 조금 부족하지만. 꼬깃꼬깃 접힌 달러 몇 장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자의 손에 쥐여주고 난 후에야 샘은 체리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쇼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난 후에야 총을 남자의 머리에서 치워주 었다. 그 상황에서 부족한 돈을 더 달라고 이야기하는 건 어지간한 강심장이지 않고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샘은 체리 봉지를 금방 비웠다. 쇼는 아이가 깜박 잊었다는 듯 자신에게 건네 주는 체리 꼭지를 정중하게 사양했다. 허겁지겁 과일을 먹어치운 탓에 샘의 입 가는 빨갰다. “언니는 내 이름 안 물어봐요?” “너도 안 물어보잖아.” “그럼 언니 이름은 뭔데요?” “난 먼저 이름을 밝히는 걸 안 좋아해.” “이거 물어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고작 과일에 불과하지만 이만큼 쌓여 있는 양을 먹어치우고 나자 샘의 얼굴 에도 생기가 돌아왔다. 샘은 과일즙으로 빨개진 손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그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경찰도 오지 않고 체리 팔이 남자도 오지 않았다. 샘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조금 기운이 빠진 목소리가 처음으로 쇼에게 이름을 물었다. “사민이라고 불러.” 쇼는 대답했다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샘이 막 사민이라고 입을 떼는 순간. “아니, 쇼가 좋겠어.” “쇼 사민이 당신 이름?” “사민 쇼지만. 쇼라고 불러.” 사민! 사민! 가지 마! 아니, 날 혼자 두지 마! 그 가는 팔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루트는 손톱을 세웠다. 리스 정도나 되는 남자이니까 그녀를 그렇 게 쉽게 떼어놓았지, 있는 힘없는 힘을 다 써 가며 달라붙는 사람을 간단히 제 압할 수 있을 리 없다. 쇼는 귀를 틀어막았다. 가슴에 남아 괴롭다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오직 세상에서 한 명, 루트만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몇 번이나 좋아한다고 말하며 장난스레 웃는 얼굴에 대답이라도 해줄 걸 그랬다고 생각했 다. 언니, 뭐해요? 옆에서 톡톡 찌르는 작은 손길에야 쇼는 손을 떼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쇼는 소녀의 머리를 폭 눌러 주었다. “쇼.” “응.” 해가 떨어지다 못해 가로등도 꺼졌다. 몇 시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어 두웠다. 집에 아예 안 들어갈 수는 없었다. 샘은 앉아 있던 울타리 위에서 일어 섰다. “내일도 날 도와줄 거예요?” 샘은 쇼를 돌아보았다. 집까지 가는 방향은 아주 반대였다. 그녀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소녀에게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쇼, 쇼. 지금 처음 들은 이름이지만, 왠지 그 이름이 그렇게 예뻤다. 사람에게는 직감이라는 게 있다. 사만다 그로브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도서 관에서 창문을 잡고 바깥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차에 타던 한나를 보았 다. 마을을 뒤져도 그녀는 없었다. 번호판을 이야기하다가 뺨을 맞았다. 대놓고 물어볼 용기는 없어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헐레벌떡 달려가 러셀의 집 창문으 로 안을 들여 보았다. 집안에는 한나의 흔적은커녕 러셀의 신발조차 보이지 않 았다. 힘껏 부른 이름에는 답이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샘 은 손을 꽉 말아쥐었다.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을 참고 그녀는 쇼를 빤히 보았다. 마찬가지로 그녀를 보고 있던 쇼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네가 날 필요로 한다면.” “…사만다 그로브스, 그게 내 이름이에요. 하지만 괜찮으면.” 루트라고 불러주세요.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샘은 조그맣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제까지 컴퓨터를 다루는 순간 그녀가 써 왔던 유일한 닉네임이었다. 비웃음이라도 들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쇼는 오히려 조금 그 리운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래, 루트. 조용히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왠지 기 분이 이상해져서. 샘은 몸을 홱 돌렸다. 집까지 시간에 맞추어 가려면 있는 힘껏 뛰어야 했다. 잘 가라 잘 있으라는 인사는 한마디도 안 했지만 샘은 뒤로 와 닿 는 시선이 꼭 그런 인사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쇼는 그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울타리 위에서 일어섰다. “루트.” 그건 그리운 울림이었다. 지금 순간뿐만이 아니라, 사실 쇼에게 항상 그리웠 던 이름. 그리움을 느끼던 순간조차도 그걸 모르고 있던 것뿐이다. 내일뿐만이 아니었다. 십 년쯤 지난 후라도 마찬가지였다. 루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 쇼는 언제라도 그녀에게 제 자신을 맡길 생각이 있었다. 그녀를 알 아보고 그녀를 찾고. 손안에 멋대로 휘두르면서 결국 마음마저 가져간 여자. 그 녀는 루트라는 호칭이 꼭 맞았다. 사람의 머리끝에서 항상 멋대로 조종했다. 까 만 커맨드 창 위에 사랑이라고 적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놀릴 수 있을 거라고, 쇼는 그녀의 모습을 그리 생각했다. “보고 싶어.” 그녀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어둠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눈을 뜨나 눈을 감으 나 보이지 않았다. 루트가 없는 세계는 그녀에게 어둠 같은 곳이라는 걸 알아차 리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루트에게도 그녀가 없는 세계는- 마찬가지 로 어둠 같은 곳일 거다. 잡아줄 사람도 끌어당겨 줄 사람도 없는 멍청하고 바 보 같은 세계. 한나 프레이가 죽었다는 건 리스에게서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었다. 아직 그 위에 시멘트가 얹히지는 않았겠지만,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눈을 감아 버린 이 후였다. 그녀는 어린 사만다 그로브스의 유일한 친구였다. 혼자 남아 버린 샘이 조금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쇼는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루트와 그녀가 만나기 위해서 필요했던 시간만큼이 지나 면. 어린 샘에게는 쇼라는 미래가 남아 있었다. 지금 그녀가 돌아가지 않으면 루 트에게는 그녀라는 미래가 사라진 채로 절망에 잠기게 된다. 몸 사방에 총알을 맞았지만 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돌아갈 거라고 마 음을 먹으면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확신만이 들었다. 쇼는 그래서 눈을 감고 입술을 꼭 문 채 간절히 빌었다. 루트에게 나를 돌려보내줘. 그녀가 있을 자리는 그곳이었다.


12시. 신데렐라가 본 모습을 찾는 시간이다.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루트는 문득 졸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잠깐 낮잠에 빠져 버렸다. 그녀의 눈가에는 졸음이 가득했다. 그녀가 사민 쇼를 찾았을 때 쇼는 이미 기절해 있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지 시간이 많이 지났다. 리스도 핀치도 전부 쇼가 죽었다고 단정 짓는 와중에서 도 루트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루트 는 쇼의 옷을 들추었다. 그녀가 보았던 마지막 순간, 총알이 쇼의 몸을 꿰뚫던 광경이 몇 번이나 되감겼다. 루트가 기억하는 장소와 상처 자국은 꼭 맞아 들었 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곳에 더 나 있는 상처는 쇼가 그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 지 서 있었다는 증거였다. 루트는 쇼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그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 았다. 루트의 울음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전해져 왔기에 무슨 일이 생겼나 황급 히 달려온 리스가 눈을 크게 떴다. 루트는 쇼를 뺏어가지 말라고 그에게 매달려 떼를 썼다. 그녀를 부축하는 사람이 같은 편이라는 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몇 번 뺨을 톡톡 건드리는 손에야 루트는 숨을 들이켰다. 한시라도 빨리 쇼를 제 옆에 두고 싶었다.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쇼는 일어나지 않았다. 총을 맞아 죽은 것처럼 쓰러지고 그로부터 몇 달이 흘렀다. 그 몇 달이라는 시간 동안 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 는지 짐작할 방법은 없었다. 루트는 쇼의 옆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축나는 몸을 보면서 핀치는 몇 번이나 그녀를 설득했다. 루트의 고집이 대단하다는 사실만 재차 확인하고 고개를 저으면서 물러났다. 그들이 그나마 루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식사 시간에 맞추어 끼니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어떤 것이든 루트 에게는 별다른 상관이 없었다. 억지로 입안에 욱여넣느라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에게 유일하게 위안이 될 만한 사실은 쇼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었다. 죽지 않고, 결국에 살아남은 채로. 루트는 몇 번이나 쇼의 뺨을 쓰다듬었 다.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품었던 소망은 조금 더 커졌다. 눈을 떴으면 좋겠


어, 나를 바라봤으면 좋겠어. 혹시 그녀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게 될까 봐 루트는 쇼에게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다. 자는 것도 먹는 것도 그녀와 함께였다. 그래서 쇼가 눈을 떴을 때는 루트가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잠기운이 남아 있 는 눈을 비비고 있었다. 희미하게 마지막을 치는 종소리가 들렸다. 너무 오래 누 워 있었기 때문에 온몸에 힘이 없었다. 쇼가 루트를 위해서 한 건 그녀가 잡은 손을 움찔 움직여주는 것뿐이었다. 루트는 그대로 멈추었다. 한 번 더, 고작 그 한 번의 움직임을 더하기 위해서 쇼는 있는 힘껏 힘을 주어야 했다. 다시 한 번 손가락이 움직였을 때 루트는 홀린 얼굴로 쇼를 내려 보았다. 서로 마주한 시선 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 지냈냐는 물음, 시간이 얼마나 갔느냐는 물음. 그 대신에 루트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 떨어졌다. “사, 사민……. 사….” 루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물을 삼키지 못해서 목이 탔다. 한마디 하려고 했을 뿐인데도 쩍쩍 갈라지는 것 같았다. 화끈거리는 목을 잡고 도 쇼는 간신히 루트에게 말을 걸었다. “루트, 나를 좋아해?” 볼품없이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되었다. 루트는 몇 번이나 쇼를 불렀다. 그 위 로 쓰러지듯 고개를 숙이면서 루트는 엉엉 울었다. 시트의 구석이 조금씩 짙게 젖어 들어갔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사민. 사민 쇼, 좋아해, 좋아해…….” 너를 기다렸어, 계속 기다렸어. 루트는 쇼의 손을 꽉 잡았다. 오랫동안 누워 있던 사람인 걸 잊어버리기라도 한 양손에는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쇼는 그 녀의 손을 마주 잡아주지 못하는 게 굉장한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말 한 마디를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행운이었다. 눈을 감는 그 순간부터 그녀에게 지독하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루트, 사랑해. 난 너를 사랑해.” 그래서 네 곁에 너무 오고 싶었어. 그 말을 너무 해주고 싶었어. 어린 그로브 스의 옆에 서 있어 주었듯이, 그녀의 옆에 서서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말처럼 이용해도, 멋대로 손안에서 조종해도. 전부 다 고개를 흔쾌 히 끄덕일 만큼 그녀를 사랑한다고.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던 것처럼 루트는 고개를 홱 들었다. 두 눈으로 그녀 는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를 물어보고 있었다. 쇼는 그녀를 바로 쳐다보면서 다 시 한 번 말했다, 사랑해. 루트는 쇼를 꽉 끌어안았다. 쇼는 루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목을 죄는 힘이 조금 아플 정도였지만, 쇼는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평생 울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지금 순간은 막을 수도 없이 얼굴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팔은 이미 쇼를 붙잡고 있는 일에 두 쪽 모두 써버렸다. “돌아왔어, 루트.” “너무, 너무 오래 걸렸잖아…….” 쇼가 깨어난 사실을 안 핀치가 리스와 함께 헐레벌떡 문을 박차고 들어올 때 까지, 루트와 쇼는 언제까지 한 몸이기라도 할 것처럼 힘껏 끌어안고 있었다. Í

END

POI

키스가 세상을 바꾼다 날짜 ┃ 2016년 08월 15일 CP ┃ 루트x쇼 이 책은 POI의 2차 창작으로 작품 및 등장인물과 어떤 현실적 관계가 없는 허구입니다. 4 시즌의 내용이 기반이며 그 이후의 설정과는 다소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내용은 원작이 아니며 이 글에 사용된 설정은 2차 창작을 위한 변경 및 재해석을 거쳤음을 안내드립니다. 동네 2.5D 어워드에서 배포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Copyrigh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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