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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 識

불식

연재

어용사전, ’선진국’_현담

불자단상

이름모를 새들의 죽음_경한, 아침풍경_중하

경전이야기

천수경, 3악도, 6도, 8부중


불식 16년 11월호 


” 不 垢

깨끗함과 더러움의 차이는 정확히 어디서 나누어지는 것일까요. 불교에서 는 그것을 구분하는 것으로부터 상당한 불편함이 뒤따른다고 말합니다. 불 편함이란, 불만족입니다. 불교는 고를 가르치는데 영어권 사람들은 이걸 고 통suffering이라고 번역했었는데요, 최근에는 불만족unsatisfactory라고 바꿔 서 번역한답니다. 그러니까 고통이란 외부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상당부분 직접 우리가 만드는 것이죠.

서울에 살 때 제가 다니던 연구소 화장실엔 뜨거운 물로 씻을 수 없는 환경 에서 쓰라고 찻잔용 수세미가 컵하나에 담겨 있었고, “차용 수세미, 아무것 도 묻히지 마세요, 물로만.”이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 不 淨

차를 마시고 말입니다. 뜨거운 물을 부어서 마른 천으로 닦아내는 것이 일 반적인 설거지 법인데, 어떤 이들은 그게 약간은 청결하지 않을거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거품을 내어서 닦으면 좀 더 말끔해질거라고 생 각합니다.

차는 그 향이나 맛에 있어서 매우 미세하고 민감합니다. 찻잔은 세제로 씻 으면 절대 안됩니다. 아무리 깨끗이 헹궈도 대부분 찾잔의 미세한 구멍들에 는 세제가 파고듭니다. 그리고 그 미세한 차의 맛이나 향에 세제향이 들어 가기 때문이죠. 그래서 찻잔과 도구들은 반드시 뜨거운 맹물로 씻고 마른 다포로 닦아야 합니다. 아니면 찬물로 씻을 때도 반드시 맹물로만 닦아야 하죠.

눈에 보이는 부분이 깨끗해 질수록 우리 땅속이 그만큼 더 더러워진다는 생 각 해보셨나요? 하지만 대개 그 생각은 하지도 않고, 할 필요도 없죠. 보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물들 의 일부는 반드시 우리의 마실물로 분명 돌아오겠죠. 너무 당연하게도요.

완벽하게 깨끗하거나 혹은 완전히 더럽기만 한 것이 정말 존재합니까? 그 래서 불구부정입니다. 不識


ภูมิพลอดุลยเดช King. Bhumibol Adulyadej

1927-2016


특별기고 <불자단상>

이름 모를 새들의 죽음 _경한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오늘도 대학교 앞 주차장의 후미진 곳을 돌고 있 다. 바로 대박이의 산책 코스이다. 후미진 곳이 읍습해서인지 유난히 적지 않은 새들이 그곳을 찾아 자기 운명의 마지막을 맞고 있다. 어떤 녀석은 고개가 비틀어진 채로 머리가 땅에 쳐박혀 있다. 보는 이도 불편 할 정도로. 죽을 때 만큼이라도 편안한 자세면 좋으련만. 떼 지어 다니던 그 많던 동료들 은 어디 갔는지 혼자 아무렇게 버려지듯 죽어 있단 말인가? 며칠이 지나다 보 면 어느새 그 죽음의 흔적도 없다. 바람의 짓인가? 비의 장난인가? 자기의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겨 살다가 죽을 때도 역시 미련 없이 자연에 맡긴다. 인간으로서 이만한 수행을 갖출 수만 있다면 가히 도인道人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대들이 살아 있을 때 창공蒼空을 다투는 본적이 없소이다. 하늘을 날다 지치면 앉는 자리가 바로 내 자리이고 떠나면 남의 자리이니 이것이 바로 무소유이겠지요. 그대들은 도를 말하기 전, 이미 도를 이룬 존재들이니, 소유 니 존재니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 개체의 존재의 삶이 자연 그 대로라면 삶과 죽음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사일여의 도란 바로 당 신들이 신천하고 있지 않나?

잘난 인간들이 떠드는 견성성불見性成佛 또한 이들에겐 의미 없는 외침에 불과할 것이다.

“법이 횡행하니 불법이요, 불법이라 하니 정법이라. 무릇 깨달음의 법은 정한 이 없고, 정 한 법이라 함은 이미 법이 아니라.” 不識


특별기고 <불자단상>

아침 풍경 _중하 이웃집 한채가 지닌 숲으로는 다람쥐 가 서식하기에 다소 부족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들의 영토는 뜻밖으로 매우 크다. 집과 집사이의 담장은 물론, 방콕 에 항상 널려있는 수많은 전기줄이 바 로 그들 영토를 잇는 큰 길이다. 대충 그들을 눈으로 추적(?)한 결과로는 사 방 200미터 이내의 집들과 그 사이사이 에 있는 나무 약 50그루가 그들의 생활 터전이다. 그 속에서도 그들이 자주 출 몰하는 곳은 철따라 달라지는데 아마도 나의 아침은 창문 열기에서 시작된다. 내가 거

꽃과 열매가 맺는 시간에 따라 그들의

주하는 방은 8층이고 앞이 탁 트여서 멀리로는

일터도 조금씩 변하기 때문인가보다.

방콕의 하늘색과 동북향 스카이 라인이 보이고

예전에 집 주위 나무에 커다란 비단뱀

가까이로 시선을 떨어트리면 이웃집의 풍경이

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어서 뱀 포획 전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옆집은 500 평 좀 더돼

문가들이 나선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보이는 단독 주택으로 큰 집 두채에 망고, 야자

뱀은 아예 없는 듯하고, 까마귀 등은 직

수, 바나나 등 나무들이 제법 우거진 널따란 정원

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못하는 것 같아

을 가지고 있는데, 아침마다 내가 꼭 찾아보는 것

서 고양이 한마리를 빼면 천적은 없는

은 꼬리가 북슬북슬하다고 ‘꼬북이’라 이름붙인

듯하다. 그래서 꼬북이들의 아침은 시

다람쥐 두마리다.

끌벅적하기 까지 하다.


꼬북이의 전기줄 타는 모습은 방콕 시내에서도 가끔 목격 되지만 절대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좌우를 살펴가며 확실 할 때에는 엄청 빠르게 이동하고, 더러 멈추어서 주위를 살피 기도 한다. 아침마다 나는 창문을 열고선 우선 지붕위, 담장, 전깃줄 위를 두루 살피고 그래도 발견을 못하면 나뭇잎과 가 지가 이유없이 흔들리는 지점을 찾는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 만 저기 있겠구나 하고 주시하고 있으면 어느새 다른 나무가 지로 몸을 날리는 다람쥐를 볼 수 있다. ‘안녕, 꼬북이!’ 꼬북이 의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한 후라야 비로소 창문을 닫고 하루 를 시작한다. 물론 비가 많이 내리거나 늦잠을 자서 뙤약볕이 거세진 후로는 찾기 힘들다.


엊그제 약 열흘간의 일정으로 서울을 다녀왔다. 해서 오늘 아침도 반가운 마음으로 창문을 열고 꼬북이를 찾았는데… 아! 이게 웬일인가. 옆집의 나무 약 20여그루가 베어지고 그 울창(?) 하던 숲은 텅빈 풀밭으로 남아 있는게 아닌가. 무슨 이유에선지 집주인이 나무들을 베어버린 거였는데 속에서 우러나는 소리를 참을 수 없어 내뱉고 말았다. “꼬북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우리 주위에서 이렇게 숲은 새로이 생기기는 커녕 자꾸만 사라져간다. 사라져가는 숲과는 반대로 도시의 황량함은 커져만 가는데 사람이건 짐승이건 숲이건 더불어 살아가려는 지혜와 특단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不識

중하. 2016년 9월에


현담現潭의 책 베끼기 2 


⟪어용사전⟫ 불식 10월호부터 배끼기 신공으로 연재되는 어용사전을 앞으로는 아래와 같 은 큰 챕터로 챕터의 차례를 구분하지 않고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각 챕터에 소 개된 단어를 챕터와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1. 2. 3. 4. 5. 6.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시장경제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역사는 비극과 희극으로 반복된다. 쇠사슬을 잃고 세계를 얻어라. 제 갈 길을 가라.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본 책자에는 각 단어의 사전적 의미의 주석은 없습니다. ⟪불식⟫독자들을 위하여 옮긴이가 사전적인의미를 임의로 첨부합니다.


두번째 단어

선진국 다른 나라보다 문물의 발전이 앞선 나라 : 다음한글사전

“선진국이란이기적번영을누리는양심불량국가를가리키는말이다.”

선진(

)은 먼저 나아간다는 말이다. 남의 밭에 수박 서리 할 때 앞장 서는

놈, 먼저 싸움을 걸어 패싸움을 일으키는 놈, 도박판에 가장 먼저 달려 가는 놈, 철거민의 저항을 가장 용맹하게 두들겨 패는 놈, 의회에서 법안 날치기 처 리할 때 가장 빠른 놈, 땅만 보면 먼저 파헤치려 달려 드는 놈, 놈, 놈 … 모두 선 진적이다.

이런 놈들이 설치며 추,하는 ‘선진국’이란 광범위하게 지,를 약탈하), 온 실가스 배출에 앞장 서), .로써 널리 생명을 해롭게 하는데 앞장서), . ( 과 이기적 번영을 누리), 떡)물에 취한 대중의 지지를 받), 떡)물이 떨어 지면 전쟁에 앞장서), .러다가 내적 모순에 의해 가장 먼저 몰락의 길로 나 아가는 양심불량 국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천수경⟫ 이야기 2

3악도, 6도, 8부중


동남아에서도 우리처럼 절에서 읽

[이 대비주를] 받고 지닌 [우리의] 마음

는 정해진 예경문을 호신경문護身, parita

은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창고가 되

이라고 쓰는데, 옛날 사람들은 경전

을 읽거나 몸에 지니면 여러가지 위 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 각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천수

天龍衆聖同慈護 百千三昧頓熏修 受持身是光明幢

경⟫의 핵심, ⟪대비주大悲呪⟫를 읽으면 수행의 효과도 있다고 본다. 이른바

受持心是神通藏

주력수행이다. 앞으로 수없이 반복 하여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드리겠지 만, 당연히 주력수행은 불교의 한 ‘흐 름’ 중 하나이지 중심은 아니다.

천룡은 '천, 용, 야차, 가루다, 건달 바, 긴나라, 마후라가, 인비인’ 등 흔 히 말하는 8부중部衆의 두 글자만 딴 것이므로 그 의미는 '모든 신들'이다.

하늘사람과 용신 등의 모든 신들과, 성인들이 똑같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우 리를] 보호하고 / 백천가지의 삼매를 순식간에 스며들듯 닦아지게 되니 / [이 대비주를] 받고 지닌 [우리의] 몸은 밝은 지혜를 내세우는 깃발이 되고 /

천天, deva은 대개 하늘 사람이라고 많 이 번역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신' 이다. 용naga는 동남아에 사는 분들은 주지 하다시피 물뱀이다. 우리나라 에서는 용이라는 이미지로 변했는데 문화의 차이로 뱀과 용이 갈라져 표 현되지만 불교적인 맥락에선 사실


하나이다. 뱀의 이야기는 불교신화

한 신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마후

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

라가Mahoraga도 역시 큰 뱀이다. 그리고

에 그 때 다루기로 하자. 야차yakṣa는

인비인

태국에서 귀신을 의미하는 바로 그

와 같은 신이지만 왜 이렇게 다른 형

약yak이다. 인도에서 잘 나가던 신이

태로 제시되는지 알기 어렵다. 혹은

었지만, 아리야인이 들어온 후 사람

기타 언급되지 않은 애매한 신들을

이나 잡아먹는 하찮은 신으로 변했

뭉뚱그려서 표현했을 수도 있다.

은 언어상으로는 긴나라

다는 설이 있다. 가루다는Garuda는 인 도신화에서 세계 유지의 신 비쉬누

이 신들의 이름은 경전마다 다양

가 타고 다니는 새로 독수리와 유사

하게 나타난다. 이름도 그닥 알려지

한 이미지로 표현된다. 건달바gandharva

지 않은 이런 신들의 존재는 참 미미

는 음악의 신으로 기타같은 것을 들

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경전에서

고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불법의 수호천사로 알려졌던 이들이

데, 한국에서 주먹 쫌 쓰는 분들은 자

다. 사천왕들은 이 신들 중 두 명씩

신들의 '건달'이란 용어가 이 건달바

거느리고 있다고 하는데, 큰절 사천

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긴나라kinara는

왕 문 아래쪽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상반신은 사람인데 하반신은 새인

그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아무튼 8

신으로 태국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부신은 모든 신들을 대표한다.

새이다. 낀kin은 의문사이고 나라nara는 사람으로, 사람인지 아닌지 불확실


이런 많은 신들과 또한 성인들이

‘돈’, 이게 문제다. 돈점

이란 말

한마음으로 보호 해준다니 일단 ⟪천

을 들어봤을 것이다. 돈은 한방에, 점

수경⟫ 은 읽어야 할 것 같다.

은 점차적이란 뜻인데, 수행을 하면 깨달음이 돈이냐, 점이냐 하는 것은

불교에서 숫자가 나오면 원래 곱

오랜 논쟁이다. 이 논쟁은 중국에서

하기다. 백천삼매는 그러니까

부터 있어왔던 이야기지만, 우리나

100x1,000=100,000쯤 되겠다. 하지

라에서 이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인 것

만 아시겠지만 구체적인 숫자를 의

이 성철스님이다. 선종에 있어서 이

미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엄청 많다

돈이란 말은 중요한 화두가 되어왔

는 과장이다. 삼매란 의식의 흐름이

지만, ⟪천수경⟫ 이야기를 하고 있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감각기관들이

우리가 크게 신경써야 할 만한 주제

작동을 멈출만큼의 집중상태이다.

는 아닐 것이다. 한 가지 더, 뒤따라

사실 불교에서 명상이란 그런 어떤

나오는 훈 이란 말은 ‘훈제’란 말 때

특정한 상태가 아니라 의식의 흐름

문에 잘 알겠지만 연기를 쬐다는 의

을 관찰하고,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

미한다. 불냄새를 옷에 쐬고나면 아

상태를 요구하니 삼매란 불교가 추

무것도 안보이지만 탄내가 나는 것

구하는 목표는 아니다. 다만 오랫동

처럼, 가랑비 이슬비에 옷이 젖는 것

안 써 오던 말이라 대개 '수행'이나 '정

과 같이 은근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신적인 단계'를 의미하는 말로 쓰기

이 ‘돈’과, ‘훈’이 함께 있는 것이 참 묘

는 한다.

한 조합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요건 각자 화두로 붙잡아 보는 걸로 하자.

그런데 그런 세계가 있고, 나는 죄 를 많이 지었으니 그곳을 어떻게 피 할까를 걱정하고, 두려워 하고, 그러

<매트릭스>란 영화가 나왔기 때문

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면 지옥이

인지 이제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지

란 그 사람에게는 지옥이 존재하게

옥이 어떤 공간에 실재로 있느냐고

된다. 실제로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

물어보는 사람이 한 때 참 많았다. 가

이.

본 적이 없고, 누군가가 가 보았다 하 더라도 돌아와서 말해주지를 않았으

알 수 없는 지옥을 피하기 위해, 정

니 있는지, 없는지, 어떤 모양인지 알

말 피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는 기도

도리가 없다. 또한 알 수 없는 차원의

를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살아있는

영역이니 우리 기준으로 있다거나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고, 살아있는

없다고 잘라서 표현할 수도 없지 않

자신의 오늘을 만족감으로 채우는게

겠는가. 신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것

더 낫지 않을까.

은 다양한 세상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세계가 있다고 믿든, 없

다양한 세상은 어쩌��� 우리의 현

다고 생각하든 그건 자유이고, 거기

실세계를 반영한다. 그리고 이제 ‘실

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

천’의 부분, '발원'의 대목이다.


我若向刀山 刀山自催折 我若向火湯 火湯自消滅 我若向地獄 地獄自枯竭 我若向餓鬼 餓鬼自飽滿 我若向畜生 自得大智慧

우리가 태어나는 다양한 세계 중 가장 안좋은 곳 중 세 곳인 ‘삼악도 '가

나왔다. '지옥(도산, 화탕)', '아

귀', '축생'의 3가지다. 책에는 지옥 은 고통 받는 곳으로 칼이 산처럼 꽂 혀있고 그곳을 맨발로 걸어다니게 하고, 불타고 물이 끓는 화탕이라고

내가 도산지옥에 대한 마음을 내면 칼산이 저절로 무너져 내리고 내가 화탕지옥에 대한 마음을 내면 끓는 물이 저절로 사라져 버리고 내가 지옥에 대한 마음을 내면 지옥 은 저절로 말라 버리고 내가 아귀에 대한 마음을 내면 아귀 들의 배고픔이 사라지고

쓰여 있다. 아귀

는 배가 고프지만

느린 동작, 산만큼 큰 배, 바늘 구멍같 은 목구멍의 크기 때문에 계속 배가 고픈 귀신, 그리고 동물

들은 사람

과 같은 지혜가 없는 존재라고 설명 한다. 사실 이런 주장들은 인도사람 들이 일반적으로 믿던 이야기를 불 교가 상당부분 옮겨온 것이다.

내가 축생을 향하면 짐승들은 큰 지혜를 얻게 하소서.

죄의 자성이 없어 그 무거운 죄책 감을 버리고 뉘우치고 다시는 누군 가의 몸과 마음에상처를 주지 말라


고 사람들을 달래고 설득하는 가르

서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실재하기

침이다. 그런데 부처님이 이런 권선

때문이니.

징악을 장려하고 더욱이 당신이 직 접 나서서 “행동에 조심하고 내 말 잘 듣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말씀하셨

觀世音菩薩 / 大勢至菩薩 千手菩薩 / 如意輪菩薩

겠는가.

大輪菩薩 / 觀自在菩薩 3악도니 6도니 하는 다른 차원의

正趣菩薩 / 滿月菩薩

존재여부가 모호한 세상들에 대해서

水月菩薩 / 軍茶利菩薩

알아야 하는 것은 더 이상 그 진실공

十一面菩薩 / 諸大菩薩

방이 아니라 2,000년 동안 발전시키

南無本師阿彌陀佛

고 여러 사람들이 공감해 왔던 문화 적인 요소, 혹은 여러 이야기들의 소 ⟪신묘장구대다라니

재들이 거기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 이다. 그러니 진짜와 가짜란 단순한 도식으로 판단해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세상에는 지옥 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욕심을 채 우지 못하여 고통받고, 지혜가 없어

- 가능하면 ⟪대비주⟫란 제목으로 부 르면 더 좋겠지만 - 앞에 나오는 보 살들의 이름은 여럿인 것 같지만 대 부분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들이 다. 그리고 그 각각의 다른 캐릭터들 은 6도에 대비된다. 그러니까 천수보


살은 지옥을, 여의륜보살은 천상을,

따라 보여주는 인스턴트같은 것이 '

십일면보살은 아수라를 담당한다.

방편'이라고 여기지만 실은 이미 깨

나중에 저 뒤에 나오는 준제보살은

달음을 얻고 유능한 이들이 다양한

인간을, 그리고 천수경에는 안나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베푸는 능력이

지만 성관자재보살은 아귀를, 마두

방편이다. 그래서 방편이 지류이고,

관음은 축생담당이다. 그래서 6관음

깨달음이 원류가 아니라 정확히 그

이다.

반대이다. 그래서 '깨달음을 뛰어넘

洗滌塵勞願濟海 超證菩提方便門 我今稱頌誓歸依

어 방편으로 들어간다'는 문장처럼, 성인은 '세상일'에 유능해야 한다. 세 상일로부터 떠나서 독야청청하려는 불자는 대승이 아니다.

所願從心悉圓滿 번뇌를 깨끗이 씻고, [고해를] 건너기

원만이란 깨달음일 수도 있고, 혹

를. / 깨달음을 초월하여 방편으로 들

은 깨달음과 방편 두 가지를 다 의미

어 가기를. / 내 이제 [대비주를] 칭송하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후자의 의

고 귀의하기를 맹세하니 / 모두 완전

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不識

한데 이르기를 원합니다.

'깨달음'을 하도 강조하다보니, 진 리가 아닌 액션을 그 때 그 때 필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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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groups/YHSBKK/ | yhsa64@icloud.com

용흥사 | 42/2, Sukhumvit soi 64, Bangjak, Phrakanong, Bangkok 10260,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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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sik 불식(23) 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