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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식 2016

問씜어생 지이생 | 절은 두번해요? 세번 해요? 經금강경 이야기 | 좋은 것도 내려놓자

용흥사 소식지 겸 회보 ⟪불식⟫ 통권21호 비매품 2016년 9월 _ 태국 방콕 | photo_ Wat Khong Kharama, Ratchaburi, 법진

冊책소개 | ⟪연문⟫ ⟪사찰에서 만나는 불교미술⟫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불식 16년 9월호 


2004년 즈음의 일로 기억합니다. 그로부터 6-7년 전 경주

시내의 야학에서 함께 공부하던 학생이 제게 전화가 왔습 니다. 저는 어떻게 잘 되어서 대학도 졸업하고 은사스님의 절에서 소임을 보고 있었지요. 그 친구는 여전히 시험이 잘 풀리지 않아서 계속 그대로인 상태였지요. 나이는 저보다 5-6살 많았지만 사실상 유일한 친구였고, 저는 당시 그 친 구의 프라이드를 몰며 운전을 배우고 면허를 땄습니다. 실 제로도 마음으로도 많이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두 과목의 시험결과는 긴 시간 우리를 만나지 못하게 했고 연락은 가끔 했지만 점점 소원해졌습니다. 7여년 만에 연락온 친구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와서 염 불을 좀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든 생각은 경주까지 가야 하는 교통편과 수없이 다녀본 장례식장에 서 치뤄야 하는 의례의 번거로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것 때문에 절 일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둘러대고 말았 습니다.


이제 그로부터 다시 10년도 더 지났습니다. 횟수가 줄어는 들고 있지만, 여전 히 그 때의 일을 저는 후회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했던 것 말고, 그에게 가지 않았던 것을 말이죠. 유일한 어머니의 장례식. 친구처럼 편했던 유일한 스님. 그리고 잘은 모르지 만 스님이 와서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해주면 어머니가 좀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을 그에게 저는 그 때 없느니만 못한 사람이었죠. 그래서 순간 의 그 번거롭고 불편함을 피했지만, 10년 넘게 마음속에서 때때로 그 일이 마음 을 무겁게 합니다.

‘착한 사마리안의 법Good Samaritan Law’이란게 있죠. 이웃종교의 역사에서 시작된 법이고 또 우리나라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누군가가 큰 곤경에 빠진 것을 발견했는데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내게 큰 불이익이 되지 않는데 도 외면하면 처벌받는 제도입니다. 우리는 다 각자 사정이 있고, 여건이라는게 있죠. 하지만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게 생계수단이라도 가끔은 무상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베풀 필요가 있습니다.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어야 합니다. 그 기회를 받지 못한 사람도 당연히 손해 를 보겠지만, 어느 순간 착한 마음이 생겨났을 땐 그 순간 베풀지 않았음을 계속 후회할 수도 있으니까요.


용흥사, 더 나은 세상 만들기

테이크 아웃 커피 ‘한잔’을 풀옵션(?)으로 마시면 커피, 우유, 설탕, 컵, 그리고 그 포장들, 각각 다른 곳에서 생산된 9종의 물건이 필요하다는군요. 그걸 일일이 다 따져볼 수는 없 을 겁니다. 여튼 각각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나한테 왔다가, 다시 서울, 대전, 대구, 부산으로 돌아가는 셈이죠. 많이 미안한 일입니다. 특히 종이/플라스틱컵과 종이로 만 든 컵홀더는 참 깨끗해 보이지만 한잔의 커피를 다 마신 후에는 바로 더러운 쓰레기로 변하는 것 알고 계시죠? 종이 혹은 플라스틱 컵이 ‘한 잔’의 커피를 위해 내게로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여정은 그 야말로 상상을 초월합니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 하나에는 생명에게 해로운 온갖 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내버려 두면 자연은 그 물건을 다시 있던 자리로 돌려놓지 못합니다. 희 고 깨끗한 종이를 1톤 생산하려면 60년 된 나무 17그루가 필요하며 원래 점이 많고 누 런 나무색을 빼기 위해서 엄청난 표백제와 유연제가 소비되며 그 약품들은 상당부분 강 으로 흘러들어갑니다. 그리고 강은 그 물질들을 깨끗한 물로 바꾸지 못합니다. 공부하는 학삐리(?)들에게 알려진 말이 하나 있죠. “연구를 잘못해서 의미없는 글을 쓰 면 나무귀신이 밤에 목을 조른다”는 겁니다. 고작 그 따위 글을 쓸려고 종이를 소비했냐 는 말이겠죠. 좋은 종이는 그만큼 좋은 나무들의 피를 봐야 비로소 생산됩니다. ‘오늘부터’ 텀블러를 들고 다니면서 컵을 아껴주세요. 손수건을 들고 다니며 화장실에서 손씻을 때 일회용 티슈를 아껴주세요. 에코백을 들고 다니며 비닐봉지를 아껴주세요. 네. 분명히 약간은 귀찮고 번거로울 겁니다.

모던한 불자들의 엘레강스한 외출 필수품

“손수건, 텀블러, 에코백 ”


635. 오쿠다 히데오, 면장선거 *혜원

567. 호사카 슌지,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 *황순일

809. 가네시로 가즈키, 레볼루션 넘버 3 *이혜빈

712.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길상화

741. 장준하, 장준하 문집 1,2, 3 *법진

640. 김용직,추현호, How to New OPIc *제법

709. 우고 디폰테 외/서현정, 노르웨이의 숲 *길상화

593. 이외수, 벽오금학도 *여지원

715. 월터 아이작슨/안진환, 스티브 잡스 *길상화

618. 신명호, 궁녀 *혜원

807. 마스다니 후미오/이원섭, 아함경 *수정화

용흥사 서재에 새로 들어온 책들


씜어생? 지이생! 


씜, 어케 생각하세요? 지는 이렇게 생각해유!

Q 005 원래 돌아가신 분께는 두 번 절하는거 아닌가요? 어떤 절에서는 두 번 하라 그러고, 어떤 스님들은 3번 절하라고 해요 어떻게 해야 맞는 것이지요? - 익명의 불자

A 005 절에서는 원래 의례를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의례 자체가 매우 종교적인 가르침이고 불교는 그것을 비판하면서 생겨난 가르침이니까요. 하지만 불교도 역시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많은 의식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특히 제사의례 는 오늘날 불교가 사람들에게 해주어야 할 중요한 의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 인 예를 따르는 불교가 제사를 지내면서 많은 방식들은 기존의 방식, 유교 등의 절차를 따르게 됩니다. 과일을 놓는 순서라든지 종류라든지 이런 것들은 사실 중국의 철학에 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불교와는 상관없지만, 불교는 거기에 관한 법칙이 없으니 유교 의 문화를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문제는 이게 어떤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어떤 반 성없이 우리 사이에선 마치 불교의 전통인 것으로 여긴다는데 있죠. 누가 그렇게 말했 는지는 모르지만, 절할 때 사람에겐 1배, 조상에겐 2배, 부처님에게는 3배, 임금님께는 4배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사실 이런데 엄격한 옛날 사람들은 상당히 중시했던 법이죠.


흥선대원군의 일화에 보면 어떤 기치 있는 사람이 대원군을 만나서 절을 했지만 대원 군이 무시하고 자기 할일만 하자, 기다리던 사람은 돌아갈려고 다시 절을 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왜 산 사람에게 재배를 하는가? 나보고 죽으라는 건가?” 라며 대원 군은 소리를 질렀지요. 그러니 이 사람이 그랬다는 겁니다. “아까는 만나뵙고 드린 인 사고, 지금은 돌아간다고 드린 인사지요”

유교문화에서 정확히 왜 재배를 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11세기 송나라 도성스님이 쓴 ⟪석씨요람釋氏要覽⟫이란 책에 이 답이 나옵니다.

세속에서 두 번 절하는 것은 대개 음양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세번 절하는 것은 말과 신체, 생각 으로 짓는 3업을 깨끗하게 해 주기 위한 것이다.

이 해석을 따른다면 우리는 영가전에도 3번 절하는게 우리 기준에 맞는 것이겠지요. 불교식 방식이 분명하다면 굳이 다른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의례란 역시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의례를 통해서 뭔가 이룰 수 없는 것이 이루어 지기를 바 라는 마음은 그 자체로도 불교식이 아니지요. 불교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중시합니 다. 눈에 안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 보다는 말이죠. 그러니 의식은 하나의 절차이지만 결코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유교식으로 2번 절한다고 해서 불교에서 봤을 때 틀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찰에서만나는불교미술 소설 | 알랭 드 보통/정영목 | 대한불교진흥원 | 627 | 법진 책장 한국불교미술을망라하여알기쉽게설명한불교문화서적. 적어도한국불자라면한번쯤은읽어볼만한서적으로우리가어렴풋하게읊어대는한국 의불교문화에관하여어느자리에서도아는척할수있는능력을높여줄수있는서적으 로용흥불자로서의소양을깊게만들어줄만한서적으로권합니다.

冊 齋 書

edit|현담

연문 소설 | 렌죠 미키히코/김현희 | H&book | 305 | 이지은 책장

작가는각각의이야기마다나오는결코평범하지않은인물들을통해 “이러한것도사랑이다“라고말합니다. 그리고우리는결국깨닫게됩니다.

더사랑하는자가더외롭다는것을,그리고더행복하다는것을.

edit|혜원

완벽하지않은것들에대한사랑 에세이 | 혜민 | 수오서재 | 808 | 수정화 도서

사람이라면누구라도한번쯤겪어야했던문제를불교적시각에서명쾌하게풀어낸혜민 스님의최신작!누구라도이해할수있도록혜민스님특유의종교를뛰어넘는공감과위 로를담았습니다.삶에지쳤을때 한번쯤읽어봐야할책으로추천합니다

edit|제법


⟪금강경⟫ 이야기 9

좋은 것도 내려놓자 과거심도, 현재심도, 미래심도 찾을 수 없다


사는 이가 보살인가”라는 질문에 대 한 답변이다.

그런데 수보리 입장에서는 사람들 ⟪금강경⟫의 끝없는 반복구, 중복되

을 대표해서 질문을 했으니 이 이야

는 이야기들을 모두 걸러내고 새로

기를 완성시키려면 이후, 그러니까

운 주제들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지

지금 이 ⟪금강경⟫을 읽고 있는 우리

만, 여전히 그말이 그말 같다. 노파심

들이 이 내용을 이해하기는 조금 어

과 잔소리는 질문자인 수보리와 답

렵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

변가인 부처님 두 사람 모두 상당했 지만, 그정도의 반복이 이루어지지

그래서 그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않으면 어쩌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

어떻게든 이해를 하겠는데, 이후의

이 이 ⟪금강경⟫인지도 모르겠다. 수

사람들이 이 난해함을 극복할 수 있

보리가 맨 처음 웅성거리는 사람들

을까 하는 질문을 한다. 부처님의 대

사이에서 손을 들고 부처님에게 질

답은 분명하다.

문을 할 때를 이제 되돌아 보아야 한 다. 분명 ⟪금강경⟫은 “보살이 어떤 마 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하자면 “어떤 마음으로

如來滅後 後五百歲 有持戒修 福者 於此章句 能生信心 以此 實 當知是人 不於一佛二佛三


四五佛 而種善根 已於無量千萬

닦은 사람이니 아무나 이해하지는

佛所 種諸善根 聞是章句 乃至

못할 거란 역설이다. 여기서 계율과

一念生淨信者 [석가모니라는] 여래가 사라진 후 5 백년이 지난다 해도 계율을 지키고, 복 을 닦는 이가 있으니 이 가르침의 구절 에 대해서 이해하고 믿는 마음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한분, 두분, 세분, 네분, 다섯 분의 부 처님께 [가르침을 듣고] 선행의 씨앗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천만 부처님

복덕이란 부처님이 보통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한 대목이다. 출가한 제자 들에게는 어려운 이야기들을 많이 했지만, 보통사람들, 그러니까 재가 불자들 대부분에게는 사회윤리와 사 회봉사를 열심히 하라고만 말씀했 다. 당시 출가자란 불교에 있어서 전 문가가를 의미했고, 재가자란 생업 에 종사하는, 그러니까 불교를 전문 적으로 공부할만 한 현실적인 여유

께 [가르침을 듣고] 온갖 선행의 씨앗

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 이

을 [심은] 사람어서 이 가르침을 듣고

대목에서 계율을 지키고 복을 닦으

는 단번에 올바르게 [이해하고] 믿을

라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이야기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하던 부분이다. 이제 오늘날 재가불 자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분명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

오늘날은 재가와 출가자가 상관없이

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해하는 사람

불자들은 불교의 전문가가 되어야

은 이미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복을

하는 시대이다.


한국불교는 최근 100년간 나라살

문화는 섞이면서 더 좋은 것으로 만

림의 어려움과 함께 전문성을 너무

들어지는 것이니 더없이 좋은 것이

많이 잃어버렸다. 한 때 한국과 불교

다. 그러나 사회적인 문제가 주어졌

의 지식인들의 불교 이해는 놀라울

을 때 불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

만큼 뛰어났지만, 언제부터인가 언

는지 알지 못하면 세상에 부처님이

어와 문자 논란에서 헤메다가 언어

아무리 훌륭하고 불교가 아무리 좋

와 문자를 깨치고 내던지는게 아니

다고 한들 그걸 어디다 쓰겠는가.

라 어떤 면에서 배척했고, 전문성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로 얼마나 많은

부처님이든 불교든 그게 좋고 나

이들이 마음의 평온을 얻었는지는

쁘고는 각자의 선택이다. 내가 불자

모르겠지만, 불교가, 부처님이 정확

니까, 오랜동안 불교를 믿어왔으니

하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는지 알아

까 나는 불교교단이 어쨌든 그래도

내는 것을 소홀히 한 댓가로 불교에

편을 들어주겠다는 것은 의리있는

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이들조차도

자세이긴 하지만 정의로운 행동은

상당수 자신이 생각하는 불교의 메

아니다. ‘신심’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시지가 유교에서 온 것인지, 도가에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통해

서 온 것인지, 무속에서 온 것인지, 심

서 비판하고 편들고 하는 단순한 행

지어 표면적으로 그토록 배척하는

동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확히

기독교에서 온 것인지도 구분할 줄

판단 하려면, 알아야 하는 것이다.

모르는 이들도 수없이 많다. 역사와


이웃 종교 성자의 말을 한 번 빌려 와 보자.

라져서 서로에게 날을 세우는 것 말 고 우리가 기존의 상황과 사태를 제

惟仁者 能好人 能惡人

대로 분석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스스로가] 어진 사람일 때만 누군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는가? 출가자

가를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 재가자나 전문성이 부족하니 한 때 반짝 날을 세울 뿐 달라질게 없다.

이 맥락에서 딱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논어⟫에 있는 표현이 다. 물론 거기서는 인자仁者와 지자知

불교에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불자는 불자가 아니다. 물론 필 자도 출가자지만 출가자는 더욱 그

者를

구분하고 있긴 하지만, 불교를

럴 것이다. 불자들은 기억하고 있는

제대로 모르고 어떻게 불교에 대해

지 모르겠다. 2013년 바로 복간되기

이야기 하겠는가. 그야말로 “해 봤

는 했지만 10년이 넘은 한국불교의

어?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말어”다.

유일한 대중적 불교학술지인 ⟪불교

사부대중四部大衆이 하나로 되어있

평론⟫이 경허스님에 대한 비판적인

다고 항상 그러면서도 최근 현각스

논문이 실렸다고 2012년에 폐간이

님의 발언으로 스님들과 종단이 시

이루어진 적이 있다. 경허선사의 일

끌시끌해져도 기껏 할 수 있는 일이

대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왜 그토

라곤 스님들은 변명하고, 재가자들

록 근대불교의 고승으로 취급하는지

은 비난하고, 그렇게 두 세력으로 갈

모를리 없을 것인데, 그런 지성들이


제대로 된 반박논문 한편을 기고할

고 하는 고정된 모습/모양에 집착하지

능력이 안되서 그렇게 어리석은 짓

않기 때문입니다.

을 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 다.

그리고 그렇게 ⟪금강경⟫을 이해하 는 엄청난 수준의 사람은 부처님이

다시 돌아가서, 이 ⟪금강경⟫을 부

다 볼 것이라니, 지난 번 부처님에게

처님한테 듣지 않아도 이해를 할 사

존경받는 제자가 될 것이란 말 다음

람들은 이미 그 내공이 어느정도 쌓

으로 부처님에게 듣고 싶은 말일 것

여야 가능한다는 말이 되겠다. 그리

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더

고 그 내공이란 그냥 쌓인게 아니라

잘 이해하게 되면 나를 부처님이 존

자그마치 많은 부처님들을 거치며

경하고, 내 공덕이 엄청남을 당신이

배운 수준이다.

봐 준다고 약속했으니 우리가 상상

如來悉知悉見 是諸衆生 得如是

하는 실제 부처님을 만나려고 할 필

無量福德 何以故 是諸衆生 無

요도 없고, 어떤 복을 쌓아서 그 공덕

復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無

을 챙기려고 할 필요도 없게 된다.

法相 亦無非法相 여래는 이와 같이 [그의] 복덕이 헤아

대개 우리는 상대를 판단하면서

릴 수 없음을 모두 알고, 다 보니, 왜냐

그 내공이 얼마나 되는지를 저울질

면 이런 중생은 다시 나라는, 중생이란,

하려 하고, 나도 높은 내공의 소유자

사람이란, 수명을 가진 이란, 법의 형태 가 없다거나, 법 아닌 것의 형태도 없다

가 되려 하지만 별로 자신의 삶을 업 그레이드 시키려 하지 않는다. 1년, 5


년, 또 10년이 지난 후에 어떤 기억나

이 모든 경계에서 자유로운 것 같기

는 한 순간의 과거가 분명 지금의 내

도 하고, 또 목소리에서 기품이 여겨

가 할 수 있는 생각의 영역보다 더 작

지기도 하고, 눈빛이 그윽하기도 하

아보여야 하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저 사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

람은 마음 쓰는게 역시 오래된 불자

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은 깊

구나”라고 느낌을 준 사람은 솔직히

어지고 마음이 넓어지는데는 끝이

본적이 별로 없다. 그것이 비단 내게

없다. 몇 년 전의 이해하지 못하고, 품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서만은 아닐 것

지 못했던 것을 지금도 여전히 그렇

이다. 불교를 접하면서 뭔가 많은 것

다면 삶이 어떻게 나아졌는지는 몰

을 얻기는 했는데 여전히 업그레이

라도 마음은 빈곤한 것이다.

드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불자

불자로 살아온지 10년, 20년, 30년

라면,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옳고 그

이 지난 사람들 부처님을 생각하는

름도 때로는 휙 던져 버릴 수 있어야

마음이 지극하고 흔히 하는 말로 신

한다. 하기야 불교를 전업(?)으로 하

심도 한없이 깊고, 그동안 읽은 경전,

는 출가자마저도 그러니 무엇을 기

앉아서 명상했던 시간, 만나본 큰스

대하겠는가마는.

님들, 절했던 횟수가 상상을 초월한

이득과 손실, 옳고 그름을 생각하

다. 그런 불자들을 나는 수없이 봤다.

지 않을 때 그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무언가 도를 얻은 초연한 사람처럼

넓고 깊어질 수 있는지는 아마 해보

행동하기도 하고, 걸림이 없는 것 같


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힘들

가 아닌 것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

것이다.

까]

그래서 ⟪금강경⟫은 종국에 ⟪금강

우리에게 고정된 틀로 다가오는

경⟫마저 던지고 부처님의 말씀도 던

여러 상들, 고집들, 이게 아니면 안된

져 버린다. 그게 무슨 큰 깨달음을 얻

다는, 이것만이 옳다는 그 돌처럼, 엿

은 사람이 아니라 ⟪금강경⟫을 설하면

처럼 굳어버린, 그 것을 상이라고 하

서 부처님 당신이 직접 하는 이야기

고 그게 어떻게 산산히 부서져야 하

다.

는지를 계속해서 이야기 해왔다. 그

是故 不應取法 不應取非法 以

리고 다시 그런 진리, 부처님 말씀, ⟪

是義故 如來常說 汝等比丘 知

금강경⟫조차도 역시 하나의 상이니

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

다 읽었으면 붙들고 있지말라는 이

況非法

가르침은 글쎄, 개인적으로는 ‘신심

그러니 진리도 붙잡지 말고, 진리 아

돋는’데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닌 것도 붙잡지 마십시오. 이런 이유로

결국 부처님은 당신의 설법이 우

여래는 항상 그대들 비구들은 나의 설

리의 인생에 해줄 수 있는 것은 강을

법에 대해 마치 땟목의 비유하는 것과 같이 알라고 거듭 말하는 것입니다. 진 리도 오히려 버려야 하니, 하물며 진리

건너게 해주는 작은 배 정도에 지나 지 않으니 그렇게 강을 건너면 거기 서 더 걸어가라고 말씀한다. 강 건넜 을 때 타고 온 작은 배에 대해서는 과 감히 잊어버리고. 이게 성자의 스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이 평

제가 부처님의 설법한 뜻을 이해하

생 진리라고 전달한 가르침조차 가

기로는 그 어떤 진리라고 정해진 것도

볍게 배쯤으로 스스로 치부해 버리

없는 진리를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또

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스

는 정해진 것이 없는 진리라고 부를 뿐

승이 대체 어디있단 말인가. “붙잡지 말라, 그게 진리든, 진리가 아닌 것이 든”

於意云何 如來得阿 多羅三 三菩提耶 如來有所說法耶 須菩 提言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 名阿 多羅三 三菩提 亦無有 定法 如來可說 如來所說法 皆 不可取 不可說 非法 非非法 所 以者何 一切賢聖,皆以無 法 而有差別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래가 최상의 깨 달음을 얻었습니까? 여래가 설법하였습 니까?

입니다. 여래께서 말씀하기를 여래가 설한 진리에 대해서는 모두 잡을 수 도, 말할 수도 없고, 진리도 아니며, 진 리가 아닌 것도 아니니, 모든 현인과 성 인은 모두 무위법으로 구분될 뿐입니 다. 그 스승에 그 제자, 수보리는 이 대 목에서 이미 완전히 종지부를 찍는 다. ‘무유정법無有定法’ 뭔가 정해져 있 는거라면 그것은 절대 진리일 수 없 다. 움직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진리 다.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 진리니 어 떤 정해진 상을 들이밀고 틀에 끼울 려면 안되는 것이다. 무위無爲, 불교에 서 무위는 번뇌가 없다는 의미이다.


번뇌란 결국 좋아함이 지나치고, 증

過去心 不可得 現在心 不可得

오가 지나치고 갈등하고, 잠못이루

未來心 不可得

는 마음의 어떤 상태를 말하는게 아

과거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고, 현

닌가. 그러니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

재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으며 다가

해지면 그게 무위, 열반이다. 성인이

올 마음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라면 현인은 약간은 부족한 사람을 의미한다. 합쳐서 현성이라 고도 하고. 여튼 중생과 부처를 가를 수 있는 것은 마음이 고요하냐 그렇 지 않으냐의 차이밖엔 없다. 나도 사라지고, 진리도 사라지고, 금강경도 사라졌다. 무슨 의미일까? 중생과 부처와 시비를 가르는 모든 기준을 다 빼란 말이다. 그 기준과 구 분은 우리가 했던 것이니, 그야말로 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가면 바다란 이름과 짠맛 말고는 없다. 그리고 종 국에는 그 생각조차, 마음조차 사라 져 버린다. 그렇게 ⟪금강경⟫은 버려 지면서 완성된다.

용흥사에서 ⟪금강경⟫을 시작한 것 이 2015년 7월이었습니다. 그리고 복 습으로 ⟪불식⟫에 복습삼아 연재를 시 작한게 2016년 1월입니다. 이제 연재 를 마치면서 돌아보니 아홉번의 시 간만큼 시간도 몇 달이 흘렀군요. ⟪금강경⟫의 해석에 관해서는 정말 이지 수없이 많은 번역본이 출판되 어 있고 좋은 강의도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굳이 선택하지 않으려는 편 인데 용흥사 불자님들이 유일하게


처음으로 먼저 요청하신 것이라 또 하게 되었었군요. 중복되는 내용도 거의 잘라내고,가능하면 오늘의 상 황에 맞는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 해 드리고 싶었고, 또 조금은 과감한 해 석도 시도 했고, 어쩌면 약간은 불경 스러운(?) - 경經말고 - 어투도 많이 쓰긴 했는데, 그래도 책 속에 있는 글 자로 된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 생각 에, 마음속에 뭔가 의미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준 비를 한 것입니다. 제 마음이 조금이 라도 유효했으면 하는군요. 이제 ⟪금 강경⟫을 다시 공부한 만큼, 어제보단 오늘 좀 더 넉넉한 마음을 가진 불자 로서 사시기를 기대합니다.

다음부터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강의 천수경, 반야심경이 이어집니다.


용흥사 | 42/2, Sukhumvit soi 64, Bangjak, Phrakanong, Bangkok 10260,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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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sik 불식(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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