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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책소개 | ⟪모레⟫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 ⟪육식의 종말⟫ 談⟪어용사전⟫ 연재 | ‘의무교육’현담 談불자와의 인터뷰 | 법안지, 김향란 보살님 問십자말 퍼즐 不 識

불식

2016

12


불식 16년 12월호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습니다. 6조 혜능스님은 자신의 마음이 이미 중생이 아님을 아는 것이 진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광 덕스님은 불공이벤트로 스님들이 먹고 살지 말라고 했고, 사무엘 헌팅턴은 한국 불교가 천년이 넘었지만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해 그 세력 이 초라해 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성철스님은 현대의 불교가 너무 종교화 되

었다고 절에 남아있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2500년 전, 우리의 호프(?) 부처님은 이른 바 그 유명한 전도선언,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낡은 믿음을 버리고”라고 기존의 종교 제식이나 관습을 비판 했죠. 그러나 여전히 많은 불교제도권의 구성원들은 아직도 기존의 형식과 관습에 강력하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것이 때로는 ‘신심’이란 이름으로, ‘관습’이란 이름으로 말이죠. ‘종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뜻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란 말은 이웃종 교의 Religion이란 개념입니다. 모든 우리의 기준이 서구화된 관념 속에서 ‘종교’란 말 은 정확하게 ‘원죄가 있는 우리가 회개하고 신의 품으로 다시 들어간다’란 뜻의 서구 식 생각입니다. 그러니 간혹 이웃종교들이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하면 우리는 펄쩍 뜁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중생, 부처, 진리까지 잊어버 렸을 때 참 보살이 된다고 설했지만, 우리는 금강경을 많이 읽고 빨리 읽고 자주 읽는 것에만 신경쓰고, 그 가르침이 주는 의미에는 정작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 각이 듭니다. 한글로 번역되고 해석된 금강경이 수백종이 되는데도 말이죠.

부처님을 좋아하고, 불교를 좋아한다고 내세우며 교단의 구성원들을 감싸려고만 하 는 사람들은 불교란 이름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지 불교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 니다. 부처님께 하는 종교적인 의례들이 불교의 바탕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나, 관 운장을 모시는 거와 다를게 없겠지요. 불교가 좋은 건가요? 종교가 좋은 건가요? 종교

라는 이름표가 붙은 단단한 상자가 좋으면 그거 붙들고 하던대로 하시고, 그게 아니라

면 ” 불교가 뭘 이야기 하는지에 귀를 기울이세요.


현담現潭의 책 베끼기 2

⟪어용사전⟫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시장경제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역사는 비극과 희극으로 반복된다. 쇠사슬을 잃고 세계를 얻어라. 제 갈 길을 가라.

세번째 단어

의무교육 ( )(가가 법률에 의해 일정한 나이에 이른 어린이를 학 교에 보내어의무적으로 받게 하는 보통 교: : 다음한)사전

“의무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자본주의 이념에 충실한 예비노동자 로다시태어난다.”


옛적 아이들은 여덟 살만 되어도 동생을 돌보고, 열살쯤이면 소에게

육은 국가가 강제하는 의무가 되어 버렸다.

풀을 먹였다. 농번기에는 일손을 거

의무교육을 받는 동안 아이들은

들기도 했다. 웬만한 집안일도 맡아

지배자들이 규정한 행동 방식과 지

서 했다. 이처럼 일찍부터 동네 어른

식을 수동적으로 주입당하며, 자본

들과 언니, 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제

주의 이념에 충실한 예비 노동자로

역할을 터득해나간 아이들은 열대여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의무

섯 살쯤 되면 마을공동체 일원으로,

교육의 수혜자는, 알량한 졸업장을

그리고 어른에 가까운 대접을 받을

받고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이 아니

수 있었다. 옛적의 마을공동체는 그

다. 순종에 길들여진 노동자를 공짜

렇게 유지되었다.

로 뽑아 부려먹는 자본가와 그들의 국가가 진짜 수혜자다, 사실 의무교

그런데 근대화와 함께 학교가 생

육은 ‘강제교육’의 순화된 이름이다.

기면서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 면 마을공동체를 떠나게 되었다. 처

* 1819년 프러시아에서 시작된 현

음엔 방귀깨나 뀐다는 집안의 자제

대 의무교육은 첯째 명령에 복종하

들과 공부 소질이 특출한 아이들 몇

는 군인, 둘째 고분고분한 광산노동

몇이 자발적으로 떠났다. 그리고 의

자, 셋째 정부 지침에 순종하는 공무

무교육(compulsory education)* 이 시

원, 넷째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일하

행되면서 아이들은 여덟 살만 되면

는사무원, 다섯째 중요하 문제에 대

또래집단에 통째로 묶여 학교에 갇

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민 등을 길

히게 되었다. 마치 병역의무처럼, 교

러낸다는 분명한 목표에 따라 이루 어졌다. 不識


십자말 퍼즐 


*새로 한번 도전해 보는 코너입니다. 정답은 다음호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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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열쇠 | 1.인드라의 궁전이 있는 천상, 이 궁전에는 인드라망이 있다. 욕계에 속해 있고, 중앙에 하나의 성이 있고 사방에 8개씩의 성이 둘러싸고 있어서 33천이라고 번역하지만 대개 산스끄리뜨 발음을 구부려서 발음한다. 2.동학혁명을 시작한 수운 최제우(1824-1864)가 민중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한글 가사체로 지은 종교, 철학, 정치, 사상을 담은 책. 최근 동학혁명의 녹두장군 전봉준이 시련을 겪고 있다 3.신라 혜초가 저술한 인도의 기록, 1,000년 만에 프랑스 학자에 의해 파손된 필사 본이 발견되었다 4.날이 가고 달이 지나면서 이루고 나아간다는 말로 시간에 흐름에 따라 쉬지 않고 발전함 5.인도스님으로 양무제를 만나 선종을 중국에 전한 스님 7.말로 할 수 있는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말의 길이 끊어졌다는 선종의 고사 오늘날은 말이 안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11.부처님을 뽑는 곳, 조선시대에는 스님들을 국가시험으로 자격을 줄 때 쓰였다. 12. 8부신 중 1 음 악과 향기의 신이며, 이후 중유 혹은 중음신으로 취급되었다. 주먹쓰는 이들이 자신들의 여기서 왔 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3.북유럽 신화에서 오딘의 아들로 알려진 천둥신 토르가 들고 다니는 망치 Thursday(목요일)은 이 쇠망치의 주인 토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4.선종에서 깨달음의 직전에 통과하는 문. 오늘날은 대문을 지칭하기도 15.아프직장인의 현실애환을 다룬 JTBC드라마 ‘욱씨남 정기’는 조선시대 김만중의 소설제목 이것을 모티프로 했다.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한 명인 교씨 는 장희빈이 모델이라고 알려져있다 17.나무아미타불할 때 ‘나무’는 예경을 표현한다는 의미로 오 늘날 인도에서는 같은 어원의 이 말이 인사이다. 18.태국에서 절이나 탑을 표현하는 말 중 하나인 쩨디는 탑을 뜻하는 산스끄리뜨 이 말에서 왔다.

가로열쇠 | 6.너무 예리하여 털을 날 위에 올려놓고 불면 잘려나간다는 칼, 혹은 그 예리함. 8.부처 님의 가르침은 하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수준에 맞춰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밤 에 강이 천 개가 있으면 강물에 비친 하나의 달이 천개라는 구절, 다른 이름으로 ‘월인천강’이라고도 한다. 9.선종의 망아지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8세기 스님의 이름, 그는 6조 혜능의 손자 제자이며 ‘하 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먹지 말라’로 유명한 백장회해의 스승이었다. ⟪불식⟫15년 9월호에서 다룬 적이 있다. 10.조선창업의 철학적인 제도와 문화를 담아서 쓴 정도전의 책. 이 책은 이후 ⟪경국대전⟫ 의 주요한 바탕이 되었다 12.불상을 조성할 때 나무를 깎아 만들면 목불, 동으로 만들면 동불이다. 이 양식은 먼저 나무나 흙으로 큰 틀을 만들고 삼베를 붙이고 바르기를 반복해서 만든 다음, 틀을 빼 내 버리는 양식의 불상이다 14.인도에 유학갔다가 불경을 들고와서 번역했던 당나라 시대 대표 삼 장법사. 돌아와서 장안, 지금 서안에 대안탑을 세웠다. ⟪서유기⟫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16.’열반’의 산스끄리뜨의 원래 발음 19.아프가니스탄의 불교유적이 발견된 지명, 중국이 광물 채굴권을 구매하 는 바람에 언제 문화유산이 파묻혀 버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현재 용흥사 미술관에도 소 개되고 있다 20.세 가지 배워야 할 것(3학)의 덕목들, 윤리, 선정수행, 지혜함양의 3가지


아프가니스탄,잃어버린문명 사회 | 이주형 | 사회평론 | 470 | 혜원 문고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 - 듣기에도 생소한 이슬람 국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굴된 불교 유적과 그리스 유적 발굴 과정, 도굴과 탈레반의 횡포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고대 유적의 현주소를 잘 표현한 책. 또한, 현재 진행 되고있는 천문학적 비 용이 드는 바미얀 대불 복원 작업이 심각한 가난을 격고 있는 이 나라에 과연 우선 적으로 꼭 필요한 일인지와 관련한 저자의 고뇌가 마음에 와닿는 책이다.

edit|정윤

육식의종말 사회 | 제러미 리프킨/신현승 | 시공사 | 284 | 법진문고

우리가족식탁에오르는맛있는소고기.그소를키우는사료엔시멘트와플라스틱이들

어있다?!말만들어도끔찍한가축농가의비용절감,빠른발육을위해그들이선택한비

육방법.그리고우리식탁으로오기까지의과정을읽고있자면소들의생생한비명소리가 귀에서울리는듯하다.이유있는채식권유.

書 齋

edit|정윤

모레1,2,3 소설 | 앨런 폴섬/황보석 | 넥서스books | 310-312 | 이지은-이상혁 문고

어린 시절 목격한 아버지의 살인사건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 살아온 남자가 그 살 인범을 우연히 프랑스에서 마주치게 된다. 불분명한 법에 의지하는것 대신 직접 복 수를 결심한 남자의 추적과 복수, 그로인해 살인사건의 배후가 서서히 들어나게 되 는데...

edit|정윤


불자와의 인터뷰_열 두 번 째 만남,

법안지法安智, 김향란 보살님

⟪불식⟫ 6월호 이후 미루고 미루다가 - 밀리고 밀리다가가 맞겠지만 - 장장 6개월만 에 귀한 인터뷰 했습니다. 용흥사 공양을 챙겨주고 계시는 법안지 보살님 인터뷰입니다.

盡一切善根安底善根 盡原善根海就善根智功善根智 第法成功善圓菩根善根 慧現根善善根底一切成慧一切


⟪불식⟫ 가끔 보시는지 소감좀 말씀해 주시죠 네. 음4 마음이요4 이렇게 절에 다니 고, 또 6끔 ⟪불식⟫ 보면4 시8이 날 때 8혹 봅니다. 그러면 마음이 좀 편 해지고 왠지 좀 남들에게 좀 착하게4

6 요리를 하고 누군66 맛있게 드시 면 그 이상 더 좋을 것도 기쁠 것도 없 고요 조금만 힘을 쓰면 기쁜건 큰데요. 할 때 마다 그래요. 오늘도 다 맛있게 드시나 이렇게 (살펴) 봤어요. 제6 할 수 있는게 이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선량하게 좀 살아야겠다는 생7이 들 지요. 말씀만 그렇게 표현하시는 것 아닙니 까 진짜예요. 만… 그런 게 없다면 아마 절에 안다닐 겁니다. 솔직히 다 보지는 못하지만 빠지지는 않고 다 보고 있습

보살님은 중국에서 사셨는데 그 동네 이야기 좀 해주세요. 중국이요1 저는 연길에 있었어요. 뭐 중국에는 절에 6는 사람 별로 없어요. 교회6 더 많이 있고요4 저도 이제 떠 난지 ),년 되어서 잘은 모르겠어요. ( 년에 한 두번 다녀오니까요.

니다. 두만강과 토문강과는 가까운 곳인가 법회 때 공양준비와 모든 공양간 소임 과 관리를 다 부탁드렸는데, 일도 바 쁘시고 할텐데 번거롭고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

요? 두만강은 멀리 있고요, 토문강 하고는 6깝죠.

때로는 일이니까 왜 안 번거롭겠어요. 맞죠. 하지만 남들을 위해서 할 수 있 는게 이것 말고는 없잖아요. 그래서 내

두만강과 토문강을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다르죠 투먼쟝이라고 부르는데 두만

 어요. 태국에 온게 0*년도인6 그러

강은 중국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

니까42

르겠네요. 두만강은 바다와 연결된 북 한 쪽의 전혀 다른 강이지요 햇9릴 일 이 없어요.

북한 출입하실 때는 어떻게 하셨어요 우리는 통행증이 있어요. 규정상 연 ( 회지만 대체로 더 많이 다녀요. 저는 ((

과거에 우리가 영역을 정할 때 백두산 정계비에 ‘서쪽으로는 압록강을 경계 로,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한 다’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토 문강을 토문강이라고 당연히 받아들 이지만, 중국측에서 발음이 비슷하다 는 걸 들어 두만강을 토문강으로 읽 어서 우겼고, 그것이 우리가 간도를 빼앗기게 되는, 그러니까 지금 보살님 계시던 연길이 위치한 그 쪽 간도를 빼 앗기게 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현지 사 는 분들은 어떤가 싶어 여쭤본 것입니 다.

번‘ 다 으니까. 힘들게 살았어요. 삼

태어나면서 중국에서는 계속 살았지

니 지금은 6족 셋이 다 여기 와있지

만 연길에서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

요. 처음에 왔을 때는 …장사 했어요.

어요. 거기 있으면서 북한으로 돈벌러

…만 싣고 왔는데 처음 태국 내리니 돈

많이 왔다갔다 했어요. 8.년도 부터 다

도 없고 말도 안통하고 …도 ()'''위

합에서 회령으로 넘어9 때는 자기 손 수레를 끌고 6요. 짐 싣고4 건널 때 통행증 보여주고 짐 검사 마치고 4 대 개는 두만강 넘어6는 차6 있어요. 그 게 너무 지겹고 고달파서 태국으로 오 게 되었지요. 이래저래 와서 비행기 티 켓 끊을 만큼만 여유6 되면 바로 돌아 6려 했는데, 여기서도 돈벌고 하다보

안치를 ?고 왔는데, 공항에서 반은 뺏


기고4 그런데 팔 수6 있어야죠. 팔

지요 555그 돼지밥(카오 카무) 있잖

수6 없어요. 그래서 야왈라에 6서 길

아요 그거 사준대요. 그런데 한 그릇

거리에 내 놓고 파는데 글자도 숫자도

사줘서 배6 부르겠어요1 8에 기별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에서 ('까지 적

안6지요. 그래서 이왕 사준 김에 하나

어놓고 외웠어요. 얼마냐고 물어보면

더 사주라 했어요. 그렇게 두 그릇 먹

손6락을 밑에 6려서 3능썽쌈씨하' 헤

고 나니까 그 뻣뻣하게 안움직이던 눈

아려서 알려주고 그랬지요. 그렇게 하

알이 도는거에요. 그렇게 배고픈 고생

다6 또 경찰들한테 단속해서 쫒기

도 해 봤고 또 우리6 태국에 처음에

고4 그래서 야왈라에 싸구려 숙소에

왔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없고 말을 못

들어갔는데 한 방에서 다 자요, 이쪽

하니까4 그 때 둘이 왔어요. 근데 연

반은 여자들, 저��� 반은 남자들, 그런

변에서 온 택시 아저씨를 한 사람 만난

데서 자는거에요. 그런데 밥을 세 끼를

거에요. 어휴 제6 신랑을 만나도 그렇

먹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일찍 일어나

게 반갑겠어요1 그 택시6 우리를 6시

면 배고프잖아요. 그러면 늦게 자야 돼

8을 데리고 다 어요. 숙소 어디6면

요. 점심 때쯤 늦게 일어나려면. 그런

비싸니 못있는다 그러면 딴 데 갑시다

데 피곤하고 졸리잖아요. 그러니까 훌

그렇게 해서 싸구려 숙소에 데려다 준

라를 하는거에요. 그렇게 해서 한 일주

거에요. 사람이 얼마나 착하고 좋은지.

일 되니까 정말 눈알도 안움직이는 거

그런데 그렇게 긴 시8 다 으니 차비

에요 그 때 누6 산삼을 팔아왔다6 산

줘야할 거 아니에요. 돈 없으니 …으로

삼이 아닌데 양삼을 산삼이라고 판 거

라도 쳐주겠다 했는데 안받겠다고 그


냥 달아나버린 거에요. 딱 그 때 부터

또 나와서 스피커 회사도 들어갔다 나

한국 거쳐서 오는 길림 사람들이 있었

오고, 또 이**식당에 들어6게 되었는

어요. 딱 그 때 부터였지요. .(쪽 쭈욱

데. 거기서 음식을 배웠죠. (년 몇 달을

들어6면 또 싼집이 있어요. 그 때 자

있었는데 제6 칼질은 좀 해요. 그런데

은 보살님 동생이 우리를 많이 도와줬

칼질 하다6 손을 다친거에요. 피6 줄

어요. 밥도 사다주고, 그러다6 당구장

줄 나오는데 주인이 오더니 무슨 남자

에 취직을 했죠. 그러다6 이제 식당에

생7을 하다6 그렇게 되었냐고 타박

취직했지요. 한국 음식을 전혀 몰라서

을 해요 그래서 큰 도마 위에 큰 칼 탁

고생했어요. 또 뭐랄까 설움도 좀 많이

꽂아놓고 그자리에서 나왔죠. 사람들

당해봤고 그 때 주인이 (년 채우고 나

은 열심히 살아요. 아침엔 된장찌개 저

6면 비행기 티켓도 다 마련해 주겠다

녁엔 김치찌개 딱 그렇게만 먹어요. 고

고 해서 (년 채우고 몇 달이 지났는데

기집인데 고기를 안먹어요. 꼭 버스타

…속 지키기6 싫어서 괴롭히는 거에

고 다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

요. 그런데 또 나오면 일할 곳이 없을

렇게 다녀요. 그런데 돈은 많아요. 그

것 같고 그러다6 너무 괴로워서 나와

래서 이렇게 땀 흘리지 말고 택시 타시

서 광** 식당에 들어6게 되었어요.

지 하면 혼자 다니는데 아깝게 택시를

사장님이 참 잘해줬는데 다른 사람이

타냐고 하는 거에요. 그 때 생7했죠

괴롭히는거에요. 음식이 안맞아서 남

돈 저렇게 많아도 안쓰는데 나도 열심

쁠라에 대파를 볶아 먹는데, 대파값 비

히 벌고 아껴야겠다고. 그래서 이래저

싸다고 못먹게 하는거에요. 그러다6

래 하다6 제 사업 시작하게 되었어요.


*4 후지 있는데 거기서 식당을 하다6

우리도 탈북자들 많이 도와줬어요. 치

그만두고 …방을 하게 되었어요. …방

앙마이에서 넘어오면 우리집이 4층 건

을 8년 했어요. 그 때 조류독감이니 싸

물인데 밥주고 김치도 사주고 그랬는

쓰니 다 맞았죠. 거기는 *년치‘ 집세

데 여기서 이민국 문제6 생기면 재판

를 냈는데 )''만‘이었어요. 그만 둬

을 하는데 거기서 말이 안통하니까 통

야 하는데 집세6 없는 거에요. 불경기

역해달라고 전화6 와요. 그렇게 그렇

란 불경기는 다 맞고 )(에 있는 장수도

게 이제 돈도 많이 벌어봤고, 또 떼이

돈 빌려8 사람 것이라 어떻게 인수를

기도 많이 떼여봤고요. 생7해보면 ?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거기 건달들도

고 왔던 누룽지 그게 아까워서 조금‘

빚이 있는 거에요. 인수 못한다고 훼방

조금‘ 컵에 넣고 아껴 먹고 그랬는

놓고 하는걸 경찰에 신고해서 내 이름

데4 그래서 이제 다시는 (밧 짜리 하

으로 계…했어요. 그리고는 매일 와서

나도 안빌려 주겠다고. 사람들은 제6

괴롭히는 거에요. 그래서 돈 벌어서 떼

성격이 못됐다고 하는데 나름대로 제

주고 인돈 받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

6 정이 있어요. 죽인다고 했다6도 또

죠. 그러고는 안오더라고요. 그런데 그

죽을 것 같으면 또 돈빌려 주고4

러다6 그냥 하기 싫어서 노래방에서 일도 하고는 했는데 술집에서 일한다

지금 식당은 얼마나 하셨습니까 장수 란 이름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한데요

고 또 별로 사람들이 안좋아 하더라고

)(에 있던 것 8년 했고, 지금 것은 4년

요 그래서 지금 자리잡은게 지금 장수

됐지요. 이름은 인수했던 원래 식당이

에요.

름이 장수였어요.


생활하시면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

네. 우리 작은 애6 두 돌 되기 전에 왔

힘든거요4 6끔 손님이 왔다6 교포

으니까요. )4년 됐네요.

인걸 알고 무시할 때6 많아요. 6게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면서 법적인 문제들도 잘 할 수 있 고4 실질적으로 그것 말고는 특별히

쇼핑해요. 나6서 몇 만밧 확 써버려 요.

힘들게 없어요. 이제는 곁에서 도와주 는 사람들도 있고4 그게 상처6 돼요.

뭐 사십니까 ㅎㅎㅎ

뭐 저도 돈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지

여자들이 뭐 옷사고 6방사고 그렇죠

만 그래도 이런저런 일 하면서 자기는 라면도 근근히 먹으면서도 제 앞에서 는 저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어요. 욕도 하고 사람을 함부로 대해요. 중국 사람 들은 우리한테 그렇게 안하거든요. 한 국 사람들이 그런 편견이 있어요. 물론 못된 사람들 일부6 그러지만요. 수쿰 빗 플라자 내에서는 그런 사람 없어요. 손님으로 온 이쪽을 잘 모르는 사람들 이 그러지요.

용흥사와 인연맺으신 것은 오래됐죠. 초창기일 거에요. 처음엔 한 마음선원엘 갔어요. 거기서도 싫은 사 람이 있으니까 여기로 오게됐죠. 중8 에 못나올 일도 있기는 했지만4 사실 원래는 교회를 9라고 했었어요. 이래 저래 절에 6보는게 낫겠다 싶어서4 …방에서 같이 계시던 분이 용흥사 다 니셔서 한 번 6보자 해서4 지금은 접 고 베트남 6버리셨어요. 뭐 절에 왔다

그렇게 잠깐 계시려던 것이 이렇게 오래 계시게 된 것이군요.

6면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제6 성격


이 못됐거든요. 그런데 절에 오면 왠지 좀 베풀어야 되겠다, 사람들한테 나쁜 마음 ?지 말아야겠다는 생7이 들거 든요 해야된다 하면서 잘 안되기는 하 지만요. 노력은 하고 있어요.

인생이란 행복이 더 많은가요 불행이 더 많은가요? 행복이 더 많죠. 좋은 일이 생기면 부 처님께 감사드려요. 나쁜일이 생겨도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게 아닌6 생7 하고요.

그런데 절에서는 "어떻게 하면 돈 많이 법니다" 이렇게 가르쳐 주면 좋은데 항 상 “내려 놓으세요” 이렇게 말하잖아 요. 아니요 마음이 편하잖아요. 그리고 내 6 돈 이렇게 벌면 누군6에게 좀 줘야 겠다 그런 생7하게 되잖아요. 그리고 요. 제6 절에 안나온 시8들을 돌이켜 보면 사고를 많이 쳤어요. 사람을 때리 기도 하고4 그래서 한인회에서 저 추 방시킨다고 하고 그랬어요. 사람한테 함부로 하고 그러지는 않는데요, 누6 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하면 6만 안두 지요. 뭐 물론 이제 나이도 들었는데 꼭 누6 뭐라해서6 아니라 그렇게는 하지 말아야겠지만요.2

절이나 부처님이나 스님이나 뭘 좀 해 줬으면 하는게 있다면 바라는 건 없어요. 내6 뭘 할 수 있을 까. 뭘하면 스님이나 불자님들이나 맛 있게 드실까4 바라는 건 없어요. 제6 노력해서 얻는 거지요. 근데 절에 오면 아직 못알아듣는 말이 많아요. 아까 주 신 인등표도 처음에 이게 뭐지 했어요 물어 보자니 그것도 모르고 절에 다니 냐 할 것 같고42 그런데 요새는 그런 생7이 듭니다. 뭐6 잘 안되면 아 내 욕심이 지나치구나. 내 믿음은 적은데 바라는게 너무 많아서는 안되겠구나 그래요. 근데 아직 6자면 멀죠. 많이


노력해야지요. 그렇게 생7은 있는데

맛있는 것도 만들어 먹고, 사먹기도 하

잘 되지는 않네요. 55

고, 저를 위해서 해주는 것은 아끼지

혼자서 차마시는 시간도 있으신지 차 잘마시죠. 저녁에 잠깐 시8날 때, 혹은 집에서도 지난날도 좀 돌이켜 보 고요 어떻게 해야할까 계획도 생7하 고, 돈도 있으면 좋지만 옛날만큼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7은 없어요. 남을 위

않습니다. 좋은 것도 많이 먹고요 55 법회시간 강의 너무 어렵지 않으신지 어렵지는 않아요. 그러다6 어떤 말을 들으면 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겠다 이런 생7을 하게 되고 남들한테도 잘 해줘야 하는구나 그렇게 생7해요.

해서 좀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7 들 하면서요. 절에서 나눠주는 차도 많 이 6져6요. 저녁에 한잔‘ 하기 좋아 요. 차 컵도 많이 있어요. 또 사고 또 사 고 차는 건강에도 도움이 많이 돼요. 요새 없어서 왜 그런6 했어요.

바쁜시간 쪼개서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불식⟫ 많 이 아껴주시고요, 우리가 감사드려야 할 부분이 많은데… 아니요 제6 더 노력해서 할게요. 9길 이 멀고요. 없이 살았을 때는 못했지만 남을 위해 좋은 일, 좋은 말 많이 좀 하

계속 있으니까 조금 변화를 줄려고 한 번씩 비워뒀습니다. 이제 다시 채워야 죠. 그럼 본인 스스로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겠습니다. 다음 인터뷰이를 정해 주셔야 합니다. 정윤법우6 해주면 좋겠네요.2 .不識

대담, 정리_법진


알주 겸 편집장 통신 2016년이 마무리 되네요. ⟪불식⟫은 물론 한 달 정도 빨리 갑니다. 정확히 일 년 전 15년 결산호 를 쓰던 기억이 아직 완전히 날아가지는 않았습니다만, 또 올해는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되돌 아 볼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뭐 무엇보다 태국에서는 라마9세 국왕이 서거하신 사건이겠군요… 용흥사는 작년에 만들었다가 완성을 보지 못한 로고를 완성했습니다. 정행 거사님께서 보리 수 잎과 원형으로 예쁘게 만들어 주셔서 도서라벨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유리문에 그려 서 모시기로 했던 대범천과 제석천을 예쁘게 그려넣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서 다시 업데이트를 해야 할 때가 왔지만, 그날 여러 불자님들께서 그려 넣어 주셨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네요. 인등과 백중 영가 위패도 매년 바꿀 수 있는 시스템으로 올해부터 시작 되었 습니다. 특히 백중과 일년 영가이벤트를 하나로 묶는 작업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영가 위 패 코팅 용지는 인쇄가 어려운데 수정화 보살님이 작업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초파일 등을 기획하고 제작하는데는 50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획과 제작에는 현담거사님의 일주 일 넘게 야왈라와 이케아를 쫓아다니면서 기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저녁 한달여 간 경한거사님과 정윤법우님의 수고도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리고 많은 등줄과 설비들, 눈에 보이지 않는 관리는 항상 정산거사님이 해주고 계신데, 아파서 힘들었던 시간들 잘 견디시느 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공양간을 책임져 주셨던 여연보살님이 긴 방콕시간 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셨습니다. 이후 오랜 공백기와 혼란기를 거쳐 법안지 보살님이 공양물에 대한 소임을 맡아주시고, 새로운 공양주 꿋 보살님이 떠나고 동생인 난 보살님이 청 소며 정비와 후원을 맡아주고 계십니다. 우리절 젊은 신도였던 제법법우가 용흥사 최초로 템 플 스테이(?)를 약 2달간 지내고 귀국했습니다. 있는동안 일정표를 그려줘서 좋았는데 가고 나니 금방 아쉽네요. 우리 도서관에는 명예의 전당에 6분이 이름을 올렸고, 이후에도 꾸준히 책보시를 해주신 덕에 책이 800권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도서목록은 스마트 패드를 통해 관리 됩니다. 아, 그리고 시범전 중이긴 하지만 교육용 작은 미술관이 생겼습니다. 조금씩 보수하다 보면 좀 더 많은 작품을 통해 교육관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존에는 스님아이디를 썼지만 이제 용흥사 전용 이메일, 페이스북 계정, 애플 아이디들 이 모두 갖춰졌습니다.

기존에 법회 후 나눔했던 과일이나 떡 등은 이제 각자 알아서 포장해 가시는 구조로 바 뀌었습니다. 그리고 공양간도 부폐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릇 고르고 사느라 서연, 청원 두 불자님이 하루종일 고생하셨지요. 그리고 수요학당이 시작되고 1년여가 되었습니다. 일요일에 움직이기 힘드신 보살님들께 좀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군요 그리고 알주 월급이 25% 인상되었습니다. 절 살림이 빠듯한데 죄송한 부분이군요. 1년 동안 자연스럽게 배였던걸 새삼 기억하려니 마치 옛날 일을 끄집어내는 것만 같군요. 그 렇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은 자연스럽게 되었지만, 알주가 불자님들과 구분되어 있 던 스님상을 빼고 불자님들과 한 밥상에 앉는데 무려 1년이나 걸렸습니다. 하나씩 사소 한 것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가다 보면, 분명 좀 더 나은 순간들로 삶을 채우게 될 것입 니다.

지난 열 두번의 ⟪불식⟫제작에 들였던 시간들은 명목상 불자님들을 위한 것 같지만 무엇 보다 제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좀 더 명확해지는 것들, 풍성해지는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자님들이 마치 불자님들을 위해 이렇게 해준다는 감사와 염 려의 마음까지도 덧붙여 받으면서 작업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그 복의 크기야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천성이 게으르고 느려서 어디가나 그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주제인데 도 여기서 대장시켜주시니 알주인 저 법진은 또 한 해를 용흥사 불자님들과 함께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시점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한분 한분 용흥사의 주인이신 불자 님들, 말로만이 아니라 여기가 내 공간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이 공간에 있는동안 만큼은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불식⟫16년 12월 결산호를 마무리 합니다.


https://www.facebook.com/groups/YHSBKK/ | yhsa64@icloud.com

용흥사 | 42/2, Sukhumvit soi 64, Bangjak, Phrakanong, Bangkok 10260,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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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sik 불식(24) 1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