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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는

가족입니다.

벌써 일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공감'을 편집하게 되었습니다. 일요일을 함께 지내온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처음 만났을 때의 풋풋함 보다는 이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아는 오뚜기 사람들. 팍팍한 삶 속 지친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늘 푸근한 모습으로 맞이해주는 우리의 가족처럼, 한 주간의 모질었던 마음을 녹여주는 곳이 오뚜기입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담아 올해는 '가족'이란 주제로 다섯 번째 공감을 엮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가는 오뚜기인들 2012년 그들의 이야기를 펼쳐볼까요?

마 음 이 머 무 는 곳 칠전팔기 오뚜기 일요학교 공감 다섯 번째(2012년호) http://cafe.daum.net/oddug2


다섯 번째

“공감”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한눈에 보기 오뚜기 한해나기 04_2012년 오뚜기 화보 08_2011학년도 졸업식 및 교사 이ㆍ취임식, "처음 느낌 그대로"_이민주 10_검정고시원서접수, "오뚜기 선생님들에게 맡겨주세요"_정봉우리 14_우이동 교사모꼬지, "아름다운 모꼬지를 다녀오며"_김청림 18_검정고시 시험날, "오늘, 행복하셨나요?"_이민주 20_오뚜기수학여행,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_정해강 22_가을걷이 일일호프, "사람, 이야기, 마음 그리고 음악"_이 향 선생님의 고백 24_Therapeutic Oddug2_손지혜 편지글 26_오뚜기 선생님들께_배유진, 배정현 28_오뚜기와 첫만남, 그리고 현재_김아성 오뚜기 '가족' | 따뜻한 그 이름, 어머니 33_회개_손정애 34_부르고 싶은 엄마_박순이 35_엄마,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_배유진


오뚜기 글밭 37_희망의 담쟁이 덩굴_표말순 38_알밤_손정애 39_박순이의 일기_박순이 40_그까이꺼 대충_정해강 오뚜기 수업시간 42_'동명일기' 오뚜기인들은 어떻게 읽었을까요? 오뚜기 생활기 46_늦깎이 학생들과 대학생 선생님들_임정례 48_오뚜기 야학을 통해 얻은 기쁨과 희망_손정애 49_내가 만난 오뚜기_박순이 오뚜기 졸업생의 자리 50_전국야학협의회 소식지 <광야> 기고글_이현옥 오뚜기 탐방기 54_오뚜기일요학교를 다녀오다_천준호 야학탐방기 | 씨알배움터 58_청소년들을 위한 방과후 무상배움터_손지혜 야학 in | 전성하 전국야학협의회 대외협력처장 62_대전에서도 한마음으로 촛불을 밝혀요_이상수 오뚜기 in | 지정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66_환한 미소가 아름다운 지정순씨와 함께_이민주 오뚜기 묘비명 쓰기 68_당신이 잠들 그곳에


오뚜기 한해나기 | 2012년

04 공감 다섯 번째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05


오뚜기 한해나기 | 2012년

06 공감 다섯 번째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07


오뚜기 한해나기 | 2012년 졸업식, 교사 이·취임식

처음 느낌 그대로! '교사 취임식'을 마치고...

이 민 주 국어선생님

따뜻한 이불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 일요일에 일찍 나오는 것이 아직은 몸에 익지 않아 피곤하면서도 왠지 모를 설렘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오늘은 오뚜 기 교사로서 취임하는 날, 지난주 시범강의를 마치고 이제 정식 교사로서 오뚜 기의 가족이 된다고 생각하니 긴장되면서도 묘하게 흥분되는 복잡한 기분이었 다. 마치 성년식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결혼식 전날의 신부처럼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되면서도 핑크빛이길 기대하는 다소 이상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떨리는 마 음을 가득 안고 도착한 오뚜기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아직 오뚜기와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올 때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을 받곤 했지만 이날은 이상하게 다른 날보다 조금 더 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오뚜기 가족으로 거듭 나는 통과의례를 앞두고 있어서였을까? 떨리는 마음도 어느샌가 조금씩 가라앉 고 있는 것을 느꼈다. 오뚜기의 모습은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선생님들의 열띤 강의와 학생분들의 열의에 넘치는 모습, 이·취임식이라고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금에서 생 각해보면 달라질 필요도, 이유도 없었지만 큰일을 앞두고 있던 터라 유난을 떨

08 공감 다섯 번째


었던 것 같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시작된 이·취임식, 나와 아성이가 새로 교사 가 되었고 우윤식, 박상규 선생님께서는 그만두시게 되었다. 오뚜기 대대로 내려 오는 전통이라며 다른 선생님들은 아성이와 나에게 장기자랑을 준비하라 하셨고 나는 정봉우리, 이상수 선생님과 상하이 로맨스를, 아성이는 정해강 선생님과 함 께 노래를 준비했다. 행사의 앞 순서들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어느새 준비한 것들 을 보여 드릴 시간이 되었다. 많이 부끄럽고 떨렸지만, 학생분들을 재미있게 해 드리자는 마음에 준비한 것들을 남김없이 보여 드렸다. 긴장한 탓에 노래 가사를 잊어 똑같은 부분만 계속 부른 것도 같고 안무를 잊어버려 버벅댄 것도 같지만 모두 칭찬해 주시고 많이 웃어주셔서 즐거웠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침의 복잡한 기분과는 또 다른 느낌 이었다. 아침에 오뚜기로 향할 때 알 수 없는 묘한 흥분을 경험했다면 집으로 돌 아가면서는 왠지 마음 한 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오뚜기 가족의 한 사람 으로서 앞으로 나의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 하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것을 위해 오뚜기 가족이 되었는지, 내가 오뚜기 가족 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 서 한편으로는 조금 두려워졌다. 지금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과연 끝까지 지켜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사람이라면 응당 익숙하고 편한 것을 찾 게 마련이다. 지금은 '처음'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하겠지만, 시간 이 지나다 보면 조금씩 나태해지고 느슨해지는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오늘'의 이 마음을 기억 하고 항상 생각하자는,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처음이라고 생각하자는 약속을 말 이다. 오뚜기 일요학교의 한 구성원으로 지내면서 즐거운 일도 있지만 힘겨운 일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장담할 수 없기에 두려움과 동시에 기대를 해온다. 오뚜기에서 펼칠 내 미래엔 핑크빛만 가득하길 빌어보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일 아닌가. 다만 다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나에게 다가와도 처음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먼 미래에 지금을 돌아 보면서도 처음을 잊지 않고 끝까지 잘 해내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오뚜기의 경험을 자랑스러운 것으로 남기고 싶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첫 날'을 생각한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09


오뚜기 한해나기 | 검정고시 원서접수 하는 날

검시원서접수, 오뚜기 선생님들에게 맡겨 주세요!

정 봉 우 리 역사선생님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 2월, 왕십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기억이 말이다. "상수야. 오데고?", "다 왔어요!" 저기 멀리서 이상수 선생님과 지금은 입대한 김아성 선생이 왕십리역 계단을 엉금엉금 올라오고 있다. 이제 우리가 찾아갈 곳은 "무학여자고등학교". 한 주 전 교양 시간을 비워 학생들이 떨리는 손으로 써준 원서를 받아들고 1차 검정고시 접수를 하러 가야 한다. 지난 2011년에는 1·2차 모두 우윤식 선생과 데이트 겸 접수 겸,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였는데, 이 젠 다소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동생 같은 귀염둥이 신입들과 접수장으로 들어선 다. 그전까진 우윤식 선생님께서 진두지휘(?)를 해 주셔서 별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접수했기 때문에 사실 그날의 원서 접수는 걱정부터 앞섰다. “자, 이제 원서접수를 해 볼까?!” 온갖 학원홍보와 학습지 판촉을 헤치고 들어선 무학여고 강당. 1차 접수는 늘 사람도 많고 분주하다. 넓은 강당, 자리 잡기도 만만치 않다. 테이블마다 앉은 사 람들을 비집고 가방을 놓아두고 엉덩이를 대충 걸쳐 앉은 뒤, "자, 이제 원서접수 를 해 볼까?!" 학생들 한 분, 한 분이 증명사진 2장, 원서지, 최종학력증명서, 고 졸검시는 2만 원, 혹시 모르니 주민등록증을 하얀 봉투에 꼭 담아, 혹시 빠질까 단단히 싸매고 봉투 겉에는 이름, 전화번호, 시험장소를 적어주었다. 이제는 신 경을 곤두세우고 학생들이 복사원서지에 써준 것을 진짜 원서지에 옮겨 적을 시 간이다. 특이한 점은, 중학교가 초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의무교육이므로 고입검정고시 10 공감 다섯 번째


는 무료응시지만, 고졸검정고시에 응시하기 위해선 2만원의 접수비를 지불해야 한다. 접수비는 접수하면서 내는 것이 아니라 원서에 우표처럼 생긴 작은 수입증 지를 붙여 접수비를 대신한다. 학생들에게 현금으로 받은 2만원을 김아성 선생 님께 쥐여주며, "아성아, 가서 수입증지 사온나!", "상수야, 너는 도약반 원서 작 성!" 꼴에 선배교사라고 동생들에게 마구 시켰다. 그러는 사이, 대환이가 왔다. " 대환아, 어떤노! 니 이런데 처음 와 보제? 신기하제?" 대환이가 접수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큰일이다! "어?! 그런데 은미 사진이 한 장밖에 없다!" 큰일이다. 원서접수를 위해서는 원 서에 한 장, 수험표에 한 장 해서 두 장의 사진이 필요하다. 그런데 당시 오뚜기 막둥이를 전담하던 오은미 양의 사진이 한 장밖에 없었다. 그것도 새로 찍었다고 선물로 받은 사진하나… 비상이다. 연락을 해보고 다행히 나름 가까이 있는 김 청림 선생님께도 한 장이 있다고 하여 받으러 갔다.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에서 창덕궁 앞으로 그리고 다시 온 길을 따라 무학여고로……. 잠시 다녀온 사이, 재 미있는 일이 생겼다. 성이냐시오야학 선생님들과의 인연 지난 2010년 겨울이었을까? 똑똑, "안녕하세요?" 오뚜기 교무실 문을 열고 엄 마, 사촌언니와 함께 배남매가 학교에 왔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착한 아이들이 있을까? 평일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안일을 돕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한다는 유 진이와 정현이.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선생님들의 고민 끝에 인근 평일 야학에 보내기로 했다. 졸업생 우건 선생님께서 '대신야학'도 알아봐 주시고, 이상수 선생님께서 본인의 학교 안에 있는 '성이냐시오야학'도 알아 봐 주었다. 그러면서 이상수 선생님은 이냐시오야학 선생님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 는데, 바로 그 날 검정고시 원서접수장에서 이냐시오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 것이 다. 이상수 선생님이 어찌나 신기해하던지… 그 날 만나 뵀다면 좋았으련만……. 아직 유진이와 정현이를 돌봐주고 있는 성이냐시오야학 선생님들을 한 번도 뵙 지 못해 무척 아쉽다. ‘고사장 배정경쟁’ 달리고, 달리고 도약반, 디딤반 원서 작성이 모두 끝났다. 이제 우리가 할 것은 푯말에 적힌 고 사장(학교)에 따라 원서접수를 하면 모든 접수가 끝이 난다. 개인적으로 지금 이 절차가 원서접수의 꽃이라고 본다. 고사장은 많다. 그러나 몰리는 동네는 따 로 있다. 그 고사장이 꽉 차면 가까운 곳에서 응시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첫째 날 접수자가 많고, 특정고사장은 접수가 빨리 끝난다. 이런 조급한 마음 탓에 선 생님들을 닦달 했던 것 같다. "아성아, 니는 디딤반. 자자, 가서 빨리 접수하고 온 나!", "누나! 다 했어요.", "자, 이거 다 썼네. 이것도 하고 온나! 상수야, 니도 빨 리! 대환아 너도 이런 거 이때 아니면 언제 하겠노? 저기 XX고!" 결국 내가 달린 게 아니라 같이 간 교사들이 열심히 달려 그날의 접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11


오뚜기 한해나기 | 검정고시 원서접수 하는 날

매년 6월도 검정고시 원서접수 하는 날 2월에 교무실을 따뜻이 만들던 난로도 복도로 쫓겨 난지 석 달 즈음, 소풍도 다 녀왔고 이제 본격적으로 6월, 여름을 맞 이해야 한다. 사실 한 학기 계획을 짜다 보면 6월이 제일 한가해서 일정을 억지 로 만들어 내는 편이다. 그러다 5월 마지 막 일요일쯤, 깜짝! 놀라며 "상수야! 검 정고시 공고 떴나 봐봐!" 이런 식이라고 나 할까. 올해도 1차 검시 이후, 소풍 이 후 더워지는 날씨에 변해가는 상황에 정 신없어 하다가 급하게 2차 검정고시 접 수일을 확인했다. "이번엔 누가 갈끼고?" 아성이는 운동, 상수는 수업, 청림 선생 님은 일, 해강 선생님도 일, 나도 6월부터 일을 시작하면서 참석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씩씩하게 '할게요!', '치킨', '와!', '좋아요!'를 외치는 민주와 당시는 다소 낯가리던 지혜가 "나 갈 수 있음!"이라고 외쳤다. 대견한 교사들, 진 심으로 그럴 땐 궁디 팡팡! 이번엔 용산공업고등학교입니다! 다행이다. 여차저차 수습기간에 용기 내어, 사실 개념 없이 받은 휴가로 접수에 동행 할 수 있게 되었다. 평일 낮, 용산 그리고 여자 셋이 모여 올망졸망 조금은 어색하게 고등학교로 진격했다. "남고다!!", "귀엽다!!", "와! 자동차 정비소다!!" 그렇다. 강당으로 가기 전 온갖 것에 감탄하면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1차 접 수보다는 가벼운 마음이랄까? 여유롭게 강당으로 입성, 그리고 역시나 1차 접수 보다는 한산한 모습의 접수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여기… 이거 어떻게 적어야 합네까?” 속닥속닥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순조로운 원서접수를 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 옆으로 살포시 앉았다. 깡마른 체구에, 나름 멋 부리고 접수장을 찾 은 남학생이었다. "저기요. 여기… 이거 어떻게 적어야 합네까?" 민주에게 물었 다. 선생님들 아니랄까봐 가르쳐주겠다는 욕구 폭발, 셋 다 눈망울을 동글동글 굴리며 그 학생에게 집중했다. '잘 모르는 학생이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말투와 원서에 표기한 출신 지역이, "북한"이 아니겠는가! '오! 맙소사!' 이런 곳에서 새 터민을 만나다니! 어디서 왔냐고, 어떻게 왔냐고 한국생활이 힘들진 않냐고, 공 부는 어디서 했냐고 너무나 물어보고 싶었다. 또 주변에 학업으로 힘들어하는 새 12 공감 다섯 번째


터민 친구가 있으면 오뚜기에 오라고 말하고 싶었다. 주체할 수 없이 심장이 두 근거렸다. 하지만 티내서는 안 된다, 신기하다고 쳐다보거나 함부로 물어서도 안 된다. 그저 사람으로, 강원도에서 제주도에서 경상도에서 전라도에서 충청도에 서 서울로 온 친구처럼 자연스레 대해야 한다. 오만감이 교차하여 자연스런 질문 도 건네기 전, 귀염둥이 민주가 원서접수를 다 도와주었다. 이런 접수��� 혼자서 해 보아야겠지만 그리고 또 센터에서 관리해 주고 계시겠지만, 그 어린 학생들이 혼자 생경해 하면서 접수장을 찾은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모습의 일부일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최종학력증명서’ 직접 떼기 정~말 어렵다면 부탁하세요! 사실 2차 접수를 하면서 최종학력증명서가 현장에서 발급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최종학력증명서는 졸업증명서, 재적증명서, 합격증명서, 과목합격증명서를 포함 한다. 고입·고졸자격 시험에 적합한 사람인지 판단하기 위한 1차 자료로 쓰는 최종학력서는 시험에 있어 꼭 필요하다. 우리오뚜기는 일요일에만 학교에 나오 다보니, 사실 증명서와 원서 가접수를 위해서는 2~3주 전에 학생들께 안내가 되 어야한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데, 간혹 이 최종학력증명서 때문에 문제가 일어난다. 오뚜기에서의 절차는 이렇다. 공고가 뜨는 그 주에 바 로 안내를 드리면, 학생들은 각자 평일에 인근 학교 및 교육청·주민센터에 가서 최종학력증명서 발급을 요청한다. 학교 행정실에 가면 바로 처리되지만 관공서 는 불친절·무지할 뿐만 아니라 2주의 시간이 걸린다는 큰 단점이 있어 추천하 지 않는다. 이렇게 학생들이 최종학력증명서를 발급받아 오면 원서 접수 전 일요 일 교양시간에 다 함께 가접수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평일 업무 때문에 학 생들이 본인 스스로 최종학력증명서를 떼지 못하거나, 늦어지는 경우가 있으면 참으로 곤란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 접수 당시에도 어떤 학생의 최종학력증명서 와 주민등록 이름이 불일치하여 문제가 생겼다. 어찌나 당황했던지… 여차저차 다행이 300원이면 그 자리에서 최종학력증명서를 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 되어 접수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시간이 걸리고 접수 선생님 들의 일손이 부족하여 추천하지는 않겠다. 교사들에게 원서접수는 평일 낮에 만나는 또 다른 데이트! 선생님들이 오면 '오롯이 일요일은 오뚜기'라는 말을 해 준다. 대신 일요일만 활 동하고 평일은 의무가 아니므로 마음을 편히 하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검정고시 원서접수를 위해 스케줄을 묻게 되면, 묻는 사람도 또 못가는 사람도 미안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바쁜 스케줄의 선생님들을 제외하면 또 다른 구성의 만남이 이뤄지고, 그 날 하루는 일요일과 다르게 함께 한다. 올 해 2월은 공덕동 족발집 에서 넷이 앉아 신나게 소주잔을 비워냈고, 6월은 여느 친구들의 모임처럼 찜닭 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합격을 기원하며 학생들의 원서를 받아든 교사들과 일 요일이 아닌 평일에 친구처럼 만나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오뚜기 생활의 매력 중 하나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13


오뚜기 한해나기 | 우이동 교사 모꼬지

아름다운 모꼬지를 다녀오며... 김 청 림 수학선생님 오뚜기 일요학교 교사로 취임한 지 거의 일 년이 되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았는 데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저에게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변화에 있어서 는 일요일은 예전에는 잠만 자고 놀고 했던 시간들이었는데 이제는 제가 하고 싶 어 했던 교육을 하는 아주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학생분들과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고 수학여행 도 가고 일일호프도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행사들을 준비하면 서 예전자료들을 보니 교사들 모꼬지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모임이 없어 져서 물어봤죠. 그래서 긴급제안... 교사 모꼬지 갑시다~!!!! 그래서 준비를 하게 된 모꼬지 선생님들만의 이야기와 시간.. 학교 다닐 때 엠티를 가는 기분이었습 니다. 함께 했던 선생님들이 정해강 선생님, 정봉우리 선생님, 이상수 선생님, 이민주 선생님, 지금은 군대에 있는 김아성 선생님,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시는 정진현 선 생님 예비교사셨던 손지혜 선생님은 집안일로 인해서 함께 하지 못하고 아쉽게 7명이 우이동 민박촌으로 GO~Go~!!!! 모꼬지 당일이 됐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토요일에 회사 일이 밀려 있어서 후 딱 일을 끝내고 가려 했는데 일이 끝나질 않아 중간에 이야기를 하고 땡땡이를 쳤죠. 그리고 출발하고 가는데 선생님 한 분이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다는 소식 바로 막내 김아성 선생님!! 두둥~! 전 종점에서 내려서 김아성 선생님을 찾아 삼 만리~!!! 그래서 통화를 하면서 찾았다니는데 위치를 몰라 계속 헤매고 있었고 그러다 어디선가 어두운 곳에서 나오는 김아성 선생님 그렇게 둘이 힘겹게 만나 서 숙소로 출발을 했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 주변 사람들한테 물었는데 이리 말을 하대요. “거기까지 가려면 택시를 타고 가시는 게 좋으실 텐데요....” 하지만 우리 헬스 김아성 선 생님과 튼튼한 몸을 갖고 있는 저와 그리고 총무부로서의 사명감을 생각해서 열 심히 걸었죠. 10분 지나고 20분이 지나면서 점점 다리에 힘이 풀리고 왜 그 말 14 공감 다섯 번째


을 듣질 않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머리가 나쁘면 몸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소에 도착을 해서 보니 이미 부대찌개가 완성이 되고 밥도 되고 고기도 굽고 있고 이미 상을 다 차려놓아서 어찌나 고맙던지 배고픈 와중이어서 폭풍 흡입을 하기 시작 했고 선생님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갖기 시작 했습니다. 근데 정진현 선생님이 학교 끝나고 바로 오신다고 하셨는데 연락도 안되고 오시지도 않고 하 자 다들 걱정하기 시작을 했죠. 그렇게 선생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음료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나는 정진현 선생님 학교에 일이 있어서 늦었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시간은 다시 시작되었지 요. 하지만 우리 교장 선생님은 몸이 안좋은 관계로 빠르게 꿈나라로 가시고 한 창을 놀던 중 옆집에서 놀러를 나왔습니다. 정확하게는 생각 안나는데 연극영화 과 학생들이라고 했었나, 그랬는데 흠... 제가 상상으로만 그리던 연극영화과하 고는 약간 다른 느낌의 연극영화과 였습니다. 물론 놀기는 잘 놀긴했죠 어느 순 간부터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술도 한 잔씩 하면서 어느 순간인가 사 람들이 갑자기 다 나와서 한 테이블로 모였습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 이런 시간들이 즐겁고 행복했었습니다. 그렇게 잼나게 놀다가 어느 순간 나의 기 억도 사라지고 그렇게 모꼬지의 밤이 지났습니다. 다음날 모두들 초췌한 모습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몇 몇 분들은 어제의 숙취 로 인해서 얼굴들이 모..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그 멀고 먼 버스 정류장으로 유 유히 걸어서 내려오면서 쭈쭈바를 쪽쪽 먹으면서 숙취를 해장하고 버스타고 다 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불붙기 시작한 교사 모꼬 지 “여의도 갈까? 벚꽃 구경하러”... “콜~!!” 했지만 힘이 드신 분들의 표정 은.... 죽겠다는 표정 그래서 정해강 선생님, 김아성 선생님, 이상수 선생님은 집 으로 가시고 남은 우리는 아름다운(?) 벚꽃을 구경했지요. 하지만 다들 지치고 힘들고 그렇게 여의도를 거닐 다가 냉면 먹고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서강대교를 건너... 신촌까지 왜 그랬는지 아직 이 해가 안되지만 즐겁고 행복했 던 교사 모꼬지가 끝이 났습니 다. 선생님들끼리의 모임의 시간 종종 모이면 좋지요. 그렇게 되도록 오랫동안 지금 선생님 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선생님도 많이 많이 들어와서 함께 했으면 합 니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15


오뚜기 한해나기 | 동물원으로 간 봄소풍

즐거운 5월의 봄!

다함께 즐거웠던 봄소풍 이 상 수 사회선생님

때는 5월 13일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기라고 했다. 보통은 4월 검정고 시가 끝나면 바로 소풍을 가곤 했지만, 올해에는 우리 오뚜기의 유진이와 정현이 의 초등 검정고시가 5월에 예정되어 있던지라, 부득이하게 시간을 늦췄다. 올해 봄소풍의 장소는 과천대공원이었다. 사실 필자의 입장으로선 서울에 올 라온 뒤로, 아니 스무 살이 넘은 뒤로 동물 구경을 해본 적이 없는지라 상당히 설 렜다. 도착한 뒤 우리 모두는 처음에 이민주 선생님과 그녀의 친구인 이윤미 양 이 물색하고 알아 봐 놓았던 장소로 과천대공원 특유의 기차를 타고 갔다. 가보 니 이윤미 양과 이민주 선생님, 그리고 뒤에 자유를 즐기고 있는 하마들이 우리 를 반겼다. 16 공감 다섯 번째


장소에 도착한 뒤 우리는 파란 돗자리를 펼쳐 영역 선점을 하고 평상에 올라가 서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필자는 오늘을 위해 준비한 최강의 의복 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바로 '날다람쥐' .. 사실 소풍 광경을 오뚜기 카페의 사진 으로 본 사람들은 사진 곳곳에 있는 정체 불명의 거대한 날다람쥐에 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 생물은 본인이었다. 이날의 일일 MC를 위하여, 특별히 동물 원이라는 컨셉에 맞추어, 날다람쥐 의상을 준비했던 것이다. 내 모습을 본 모든 학생분들은 귀엽고 재미있다고 칭찬을 하셨으며, 교사분들 과 이윤미 양은 가급적이면 아는 척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여하튼 미리 사 온 치킨과 김밥, 과일 등등.. 당초 예상보다 음식들은 매우 푸짐했다. 아, 치킨이 라기보다는 닭강정에 가까웠는데, 그 닭강정.. '매운' 맛의 닭강정이었다. 평소 매 운 맛에 강한 필자도 먹다가 한계를 느낄 만한, 그런 매운 닭강정이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덜 매운 닭강정도 있었으며, 먹어 본 결과 만족할 만한 맛이었다. 자리 선정을 잘 못한 필자의 잘못이었던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 준비한 첫 번째 게임을 시작했다. 바로 퀴즈! 이 퀴즈는 이민주 선생님이 소풍 전 미리 답사를 하면서 동물원 안의 여러 동물들에 대한 정보를 퀴즈 형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는 필자가 특별히 추 가한, 그 당시 입었던 날다람쥐 옷의 가격을 묻는, 다소 특이한 문제였다. 퀴즈의 의의는 사실 각자 동물원을 즐겁게 돌아보자는 데에도 있었지만, 학생분들은 숙 제처럼 생각하셨는지 몰라도 예상보다 엄청 높은 정답률을 보였다. 그렇게 즐거운 탐방이 끝난 뒤, 소풍의 핵인 본격적인 단체 게임이 시작되었다. 준비한 단체 게임은 '초성 퀴즈', '행동으로 말해요', 그리고 '풍선 밟기'였다. 사 실 게임을 준비하면서 과연 얼마나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많은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모든 게임을 재밌게 즐겨주셨다. 특히 인상깊었던 점은 이윤미 양과 이영숙 어머님의 끝나지 않는 풍선 밟기 혈 전이었다. 결국 두 분은 각자의 팀에서 MVP를 수상하여 상품도 획득하였다. 학 생분들의 엄청난 집중력과, MC였던 나의 복장 덕에 "어머, 저기 이벤트 하나 봐!", "맞히면 뭐 주나봐!" 하는 시민들의 높은 관심도가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모든 게임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자니 조금은 아쉬웠지만, 예전부터 어 떻게 진행될까 기대했던 봄소풍이 성공적으로 마무 리된 것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모든 학생분들에게 도 검정고시 공부의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재미있는 소풍 일정으로 날려버렸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음 해의 봄소풍은 누가 주체적으로 기획할지 모른 다. 어쩌면 또 나는 내년에 소풍 전날 날다람쥐 옷을 세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모두 가 즐겁게 소풍을 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내년 소풍이 또 기다려진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17


오뚜기 한해나기 | 검정고시 시험 보는 날

오늘, 행복하셨나요? _ 2차 검정고시를 마치고

이 민 주 국어선생님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제 와 같은 아침이지만 오늘은 사뭇 다른 아침으로 느껴 집니다. 오뚜기에 들어와서 두 번째 맞는 시험 날, 제가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밤잠을 설쳤습니다. 내일 날씨가 험하지는 않을 까, 시험장소를 잘 못 찾는 분이 계시지는 않을까, 문 제가 너무 어렵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 속에서 언제 잠 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능시험장에 학생들을 보내는 교사의 마음이 이럴 까요. 문득 제가 수능 보던 날 교문을 굳건히 지키시던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인생의 첫 시험을 앞두고 너무나 불안하던 그 때, 앞에서 싱긋 웃어주시던 선생 님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가뿐해졌던 기억이 떠올라 조금은 편하게 잠이 든 것 같습니다. 밤잠을 설친 탓에 늦잠을 자 부산스럽게 준비하고 나가는 길, 떨리는 마음으 로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교문 앞에서 웃어주시던 선생님처럼 학생분들의 긴장 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도착하기 까지 얼마나 두근거리던지요. 약속장소에 도착해서도 요동치는 마음을 숨기느 라 혼쭐이 났습니다. 김아성 선생님이나 손지혜 선생님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 까요? 떨리는 마음을 숨긴 채 시험장으로 향하는 길, 미로 같은 골목골목을 지나 들어선 시험장은 굉장히 시끌벅적 했습니다. 예상문제를 나누어 주고, 홍보를 위 해 볼펜이나 휴지를 나누어 주는 광경을 보니 무언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기분이 18 공감 다섯 번째


었습니다. 수능시험장의 소란함과는 또 다른 분위기에 어색하면서도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분들의 결연한 얼굴이나 긴장이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교문의 시끌시끌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우리는 학생분들이 계신 곳으로 향했 습니다. 시험장소가 여러 곳이라 모든 분들을 뵐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분 들을 만났습니다. 학생분들은 마지막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계신 모습을 보니 왠지 뭉클했지요. 책을 열심히 보 시다가 우리를 발견하시곤 환한 미소로 반겨주셨습니다. '긴장하고 있었는데 선 생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이네요!'하시는데 다시 한 번 수능 날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한없이 뛰던 제 가슴이 교문에 서 계시던 선생님을 보고 단숨에 진정되었던 것과 같았을까요, 학생분들의 얼굴에 피어난 미소를 보며 시험장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험장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침보다는 한산해진 길을 ���으며 여 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은 잘 치르고 계시려나, 점심은 잘 드셨으려나 하는 생각의 끝에 오늘 본 시험이 우울한 기억이 아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으 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듯이 시험이 라는 부담감을 덜어내고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로 생각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험이라는 것이 내 앞에 있을 때는 너무나 커 보이지만 또 한 번 겪고 나면 그것만큼 쉬운 게 없잖아요. 재미있는 시험이라는 말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얼마나 좋은 말인지 이제사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다음 주에 학생분들을 보면 이렇게 물어야겠습니다. '지난주 시험은 행복하셨나 요?, 저는 무척 행복했습니다.'하고 말이에요.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19


오뚜기 한해나기 | 여름, 수학여행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정 해 강 수학선생님

예의 그래왔듯 수학여행 즈음의 비예보는 올해도 어김없다. 매일같이 행여 예보가 바 뀔까 기대하지만 하늘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해마다 이런 걸 봐서는 미국의 계략이 분명하다. FBI든, CIA든, 닭이든, 쥐든, 아무리 훼방을 놓아도 우리는 간다. 드넓은 창 공을 가르는 갈매기와 그만큼 푸르른 수평선 아래 물고기야 기다려라. 촌놈이 1차 집결지인 인천공항에 내려보니 외쿡인들이 많아 한 마디 떠들고 싶었지만 오뚜기 식구들의 사회적 체면과 지위를 고려해 짐짓 자제하며 잠진도행 버스에 몸을 실 었다. 버스는 달리고 머리는 날리고 음악이 흐르는 사이 어느덧 선착장인데 아직 낚싯 대를 준비하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경석이형에게 낚싯대를 사오라고 당부했었 지만 나도, 그도 그렇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 여행지는 섬이니만큼 광어를 낚아 쫀쫀한 자연의 맛을 보여주겠노라 농반진반으로 큰소리 쳤는데 그냥 갈 수 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행히 조그만 상점에서 낚싯대를 하나 장만하고 짜여진 각본대 로 경석이형이 계산을 했다. 이제 무의도의 광어는 씨가 마를지어다. 크루즈라기엔 투박하고 휑한 여객선을 타고 잠시 갈 매기떼와 조우하며 한 바퀴 휙 돌고 나니 금세 무의도 다. 선착장 입구부터 늘어선 고기잡이 배와 어부들 특 유의 옷차림을 보니 여느 해수욕장의 번잡한 유흥분위 기와는 다른 '섬마을'의 일상이 눈길을 끌었다. 피서철 인지라 으레 9시뉴스의 해운대 보도 풍경까지는 아니 어도 구정물을 뒤집어쓰고 부대끼는 해변을 상상했기 에 생업에 빠삐 움직이는 어부들의 모습이 조금은 생 경했으리라. 어쨌든 험난한 여정에 마침표를 찍고자 다시금 숙소를 향해 마을버스에 올랐다. 해변을 벗어나자 도랑이 흐르고 우거진 수풀이 녹음을 뽐내며 연꽃이 흐드러진다. 스 치는 풀잎에 메뚜기가 날고 잠자리가 춤춘다. 숙소 마당의 고양이는 시답잖게 들뜬 우 리를 흉보듯 엿가락처럼 늘어진 배를 까고 누워 무심히 쳐다 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던 '어릴 적 내 시골'만큼은 아니지만 익숙한, 그래서 포근한,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 다. 자못 익숙한 풍경에 '내 새끼, 내 강아지'라는 이젠 결코 들을 수 없는 할머니의 그리 운 부름이 들릴 듯하다.

20 공감 다섯 번째


여장을 풀고 다들 해수욕장으로, 나와 주현이, 정현이는 따 로 ♪고기를 잡으러~♬ 최상희선생님의 차를 타고 광명항으 로 향했다. 셋이 합쳐 낚시 경험 1회의 화려한 내공을 지닌 우리는 선착장(광명항)에서, 다리 위에서, 여기저기서 아무 리 바늘을 던져 보아도 낚일 턱이 없다. 냄새나는 오징어미끼 를 맨손으로 바늘에 끼우는 고통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 지만 한 마리도 낚지 못할 불길한 걱정은 낚시바늘에 꿰인 듯 고통스럽게 했다. 기껏 호언을 날리고 왔으니 썩은 신발이라 도 낚아야 할 텐데... 비록 망둥어라도 남들은 잘도 낚는데 우 리 낚싯대는 참으로 복지부동에 점잖은 걸 보니 아무래도 싸 구려인 탓이다. 그게 아니면 역시 미국의 소행인가. 수많은 세월 헤매다 소무의도 선착장에 가면 전어가 풍년이라는 첩 보를 입수하고 지체없이 바늘을 던져 보았다. 움직인다. 휘 어진다. 당긴다. 낚싯대가 요동을 친다. 이런 게 손맛이로구 나! 던지자마자 전어 4마리가 눈부신 은빛 자태를 드러낸다. 흥분된 마음에 서두르다가 줄이 마구 엉켜버렸다. 초보 강태공에게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일이다. 겨우 정리해서 다시 던졌더니 이번엔 6바늘6마리의 만선이오! 낚싯대도 춤을 추고, 전어도 춤을 추고, 우리도 춤춘다. 이참에 서해안 전어의 씨를 말릴까 했지만 과욕은 금물이요 지속가능한 삶이 21세기의 가치이니 이 정도만 하기로 한다. 낚싯줄이 계속 꼬여 잡을 시간을 다 허 비했다거나 늦으면 헐크로 변신해 수소핵융합반응급 핀잔을 날릴 교장선생님이 무서워 그만둔 건 결코 아니라고, '말'은 하고 싶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추적이는 비에 홀딱 젖 었지만 반짝이는 전어는, 벌써부터 감미로운 향기로 마음을 데웠다. 이미 다들 저녁 식 사를 시작했고 예상대로 교장선생님의 원투스트레이트가 작렬했지만 내 마음은 오직 프로 강태공의 위엄만을 뽐내고 있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시금 둘러 앉았다. 본격적으로 먹고 마시 고, 돌아가며 노래하고 기타도 치며 늘 그렇듯 오뚜기 수학여행 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 흘렀다. 오늘을 기다리며 준비했노라는 주 현이의 야심찬 랩과 노래도, 정현이의 아직은 조금 어쭙잖은 기타 연주도, 촌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어머님들의 트로트 가락도, 무의 도 푸른 바다의 전어떼처럼 풍요롭고 눈부시게 빛났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이다.'라 고 말했다. 내 좌우명이기도 한데, 생각해보면 세상에 전적으로 혼자만의 즐거움은 없다. 아니라고? 잘 생각해 보라. 무엇을 하든 그 즐거움의 근원 혹은 파장이 다른 누군가와 연결돼 있을 게다. 그런 면에서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가 맞을 게다. 즐거움은 나 누면 커진다고 하는 말도 같은 맥락이니 무의도 여행에서 즐거운 그 시간들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그들의 즐거움이 또한 나의 즐거움을 더했음을 실감한다. 그 밤의 별빛은 기억나지 않지만 즐 겁던 그 시간, 그들의 표정은 오늘도 뇌리에 명멸한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21


오뚜기 한해나기 | 가을걷이 오뚜기 일일호프

사람, 이야기, 마음... 그리고 음악 이 향 영어선생님 11월 3일 토요일, 오뚜기 일요학교 일일호프가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버스를 기다리다가 짱짱한 가을하늘을 보았다. '아, 좋다!' 종각에서 내려 안국역까지 걸 어가는 내내 나의 발꿈치가 신나게 들썩거렸다. 그들을 만나러 간다. 그 때 나는 연수도 채 끝나지 않은, 이도 저도 아 닌 오뚜기의 객식구였다. 사실, 나는 교사지원을 하기 전 걱정이 태산이었다. 열정이 붉은 20대도 아니고, 생각이 푸른 30대도 아닌, 슬슬 모나기 시 작하는 40대였고, 게다가 나는 내놓을 것 하나 없 는 어딜 가나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오뚜기에 대한 백만 개의 기대보다 '너 하나만 잘하면 돼'라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지원했다. 그래서 이 날도 예외 없이 '잘 해 보자!' 다지며 시작을 하였다. 우리는 일일호프를 치를 '오크힐'에 1시부터 모 여 행사 준비를 하였다. 오뚜기의 아티스트 유진 양이 그려준 캐릭터 티셔츠도 받아 입고, '신입영 어교사 이향' 이라는 이름표도 자랑스럽게 달았 다. 분주히 각자의 일을 하는 선생님들 사이로 나 는 잠시 뻘쭘히 서 있다가 뒤를 좆아 조금씩 도왔 다. 워낙 선생님들이 준비물을 잘 준비해서 난 그 저 손님들이 오실 때까지 멀뚱거리고 있을 뿐이었 다. 22 공감 다섯 번째


드디어 한 두 분씩 손님들이 들어오셨다. 혼자 만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소개해 주시는 선생님들을 따라 이름표를 붙잡고 얼굴도장을 찍 었다. 곧 반가운 내 지인들도 들렀다. 학교 다니던 시절, 식당에서 몇 년 일을 해봐서, 주문 받고 음 식 나르는 일은 별 거 아니겠거니 했는데, 정신머 리도 몸뚱이도 어찌나 따로 계시던지 속으론 계 속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큰 몸을 움직여 슬슬 몸이 데워질 때쯤, 어느새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메워졌다. 지인이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고개를 둘러 사람들 을 보았다. 적잖은 술에 얼굴이 붉어진 사람들, 짭 짭 쩝쩝 행복하게 먹는 사람들, 기분이 좋아 목소 리가 옆 자리로 넘어가는 사람들, 서투른 종업원 들 덕분으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 술잔을 올리 며 옛날을 추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저 쪽에서 벨 을 누르고 손짓을 하며 무엇인가를 달라고 외치 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오뚜기 일요학교'라 는 한 마음으로 한 자리에 있었다. 난 생각했다. ‘이곳에 오길 잘했어!’ 자정이 가까이 되면서 우리도 조금씩 여유가 생 기기 시작했다. 워낙 말 재주도 없고, 숫기도 없어 아는 얼굴들과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술이 두어 잔 들어가니, 기타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 게 힘 있게 노래도 불렀다. '사람, 이야기, 마음 그 리고 음악…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이곳에 있다!' 일일호프는 오뚜기의 진액 같다. 이 하루에 우리 의 과거도 있고, 현재도 있으며, 미래도 보인다. 사실, 나는 오뚜기에 뚜렷한 목표 의식이나 큰 이 상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좋고, 그 들과 나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으며, 생각보 다는 마음으로 서로 당기는 것을 사랑할 뿐이다. 일일호프는 이 모두를 가지고 있던 오뚜기를 나 에게 보여 주었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23


오뚜기 선생님의 고백

Therapeutic

Oddug2 손 지 혜 영어선생님

6년을 다니다 말다 한 대학은 어느새 적을 유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게 되 었고, 그 6년 중 3년 반을 매진한 시험은 어느새 서로 되는대로 할퀴어 헤집어댄 듯한 상처밖에 남기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메쯤까지는 삶이 나를 비켜가고 있다 며 하릴없이 꺾어져 가는 내 청춘을 가엾이 여기기라도 했던 것 같은데, 언제인 가부텀은 그저 한치 앞이 보이잖는 이 밤이 나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다시 토해내 기만을 숨죽여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혹은 그래서 학교를 졸업했다. 오랫동안 함께한 시험과는 결별하기로 하고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아깝긴 해도 홀가분하리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 저 어딘가 붕 뜬 느낌뿐이었다. 역시 그리고, 혹은 그래서 오뚜기를 찾아오게 되 었다. 그래서라고는 했지만, 결국엔 ‘뭐라도’ 하고 싶어서라거나 ‘어쩌다 가’ 생각에 미쳐서라는 이유가 고작인 것이다. 그런 보잘것없는 결심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오뚜기의 선생님들과 학생분들. 어디선가 시혜라는 단어는 주워들어서 ‘그저 편리할 대로 오고 갈 자기만족적 봉사가 아니라’며 그럴 듯하게 교사지원서를 써냈었지만……. 막상 올 한 해를 24 공감 다섯 번째


돌아보면 스스로의 생활에 그럭저럭 만족하게 하는 큰 요소가 매주 일요일이었 음을 깨닫는다. 이런 의미의 자기만족쯤은 내 것으로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 도, 야학에 대한 고민이 깊거나 가르치는 일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가진 오뚜기 의 선생님들을 보면 여전히 말을 잃고. 영어 전공자도 아니요, 가르치는 실력은 더더욱 미천한 스스로를 재확인 할 때 면, 그래도 이 정도의 과정이면 얼추 수요와 공급이 맞았으니 된 것이 아닌가 애 써 자위해 보지만……. 아이가 간단한 수학문제를 묻는데 가르쳐 줄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는, 아이한테 책을 읽어줄 수 없는 게 슬펐다는 학생분들의 예쁜 동기 들과 “이 나이에 공부를 하려니. 선생님 이 머리는 언제쯤 깨칠까요?”하시는 갸륵한 정성들이 고작 나의 ‘어쩌다가’라는 이유를 만났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럽고. 그렇게 “일요일마다 가는 데가 있는데…”였던 것이 간략하게도 “우리학교 에서…”가 되기까지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그러는 동안에, 월요일에도 전날 학생분들이 하셨던 질문들이나 말씀들이 문득 생각나 저도 모르게 피식대고 있 는 나를 발견한다. 또, 꼭 나같이 표현이 서툴다 못해 아예 부재하는 집안 분위 기에서 자라 데면데면한 나를, 일요일 아침이면 숙희님이 “선생님 안녕?”하며 꼭 안아주실 때, 큰 말 없이도 정애님이 조용히 눈맞추고 웃어주실 때, 순이님 문 자에 부끄러워하면서도 끝내는 나도 주저하며 ‘사랑합니다.’라고 써 보낼 때, 그런 순간순간들에 내가 나눈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위로를 얻고 있음을 깨 닫는다. 꿈꾸는 청춘이라는데, 초조감만이 허락된 권리이자 의무인 것 같았던 스물다 섯을 지나, 스물여섯의 봄, 오뚜기를 만났다. 그리고 지금, 학교 앞 은행나무는 매주 헐벗고 있다. 나무의 일년(一年)이 바닥에 나뒹군다. 그러나 그 이파리들은 제 살을 드러낸 저 나무보다 낡은 것이다. 물론, 저 단단한 나무와는 달라서 나는 여전히 한쪽 다리를 떨고 있는 채이지만, 그래도 오뚜기와 함께할 스물일곱을 이 제는 기다리게 된다.

*therapeutic If something is therapeutic, it helps you to relax or to feel better about things, especially about a situation that made you unhappy. Therapeutic treatment is designed to treat an illness or to improve a person's health, rather than to prevent an illness. (치료상의, 치료법의/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는)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25


오뚜기 학생의 편지 | 배유진 도약반

오뚜기 선생님들께

안녕하세요? 오뚜기 막내들 유진이와 정현이입니다. 저희가 오뚜기에 온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따사로운 5월이네요^^ 오늘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선생님들을 위해 정현이와 제가 조그마한 편지를 준비했어용! 손발이 오그라들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귀엽게 봐주세용!

카리스마 넘치시고 긴다리와 예쁜얼굴의 오뚜기 꽃미녀 봉울쌤! 10점 만점에 10점!!!

꽃보다 남자의 F4를 능가하는 오뚜기 초절정 꽃미남 해강쌤! 도도하시고, 까칠한 성격! 딱 여자들이 좋아하는 나쁜남자 스톼일~ㅋ 하지만 제 스타일은 아니에요~ ㅋㅋ

콜라 광고에 나오는 귀여운 북극곰을 닮으시고 탄산같이 톡톡튀는 매력적인 목소리의 소 유자 청림쌤! 나중에 콜라 한잔 하실래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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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있는 입���으로 오뚜기의 웃음과 미친존재감을 담당하고 계신 상수쌤! 2월 취임식때 추셨던 ‘상하이 로맨스’!! 전 그때 상수쌤의 유연한 몸동작과 열정적인 표정연기를 잊을 수가 없어요~ㅋㅋ 8월에는 저랑 같이 ‘아잉~’하시지 않으실래요?

똑부러진 말투와 밝고 명랑한 성격 거기다 예쁘시기까지한 1등 신부감 민주쌤! 두말할 것도 없이 정현이가 한마디로 정리할거예요~ “누난 너무 예뻐~”

긴머리에 따뜻한 도시 여자 따도녀 지혜쌤~ 차분하고 침착한 말투, 부드러운 표정! 선생님 수업이 넘 궁금해요! 뿌잉뿌잉

눈웃음이 매력적인 살인미소 아성쌤! 키크고 멋있고 몸짱에 항상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넘 보기 좋아요~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해~

그리고 떠나시기 전까지 저희에게 영어에 대한 중요한 부분을 가르쳐 주시려고 애쓰셨던 상규쌤! 항상 쉽고 재미있게 과학을 가르쳐 주셨던 윤식샘! 그 밖의 수많은 오뚜기 선생님 들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이렇게 스승의 날의 편지를 써 드릴 수 있는 선생님들이 생겨서 참 행복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아이~ 부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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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선생님의 편지 | 군인 김아성

오뚜기와 첫 만남, 그리고 현재 김 아 성 과학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성입니다 ㅋㅋㅋ 이 글을 군대에서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저 는 지금 식당청소를 마치고 활동복으로 환복 후, 독서실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기는 이미 눈이 내렸고 날씨도 영하권으로 떨어졌는데 서울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아마 여기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 기억으론 이 정도 추위를 느낄 때 쯤 처음으로 오뚜기에 발을 디뎌 놓았던 것 같아요. 그 때는 청바지에 야상을 입고 있었는데... 뭐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아요. 단지 야상 앞에 '전투복'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을 뿐. 제가 오뚜기를 알게 된 건 정말 의도하지 않은 우연함 그 자체였어요. 피부에 달라붙 는 듯 한 추위가 싫어 집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무심코 클릭한 글이 오뚜기에서 교 사를 모집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었죠. 그 당시 나태함에 빠져 마치 죽은 나무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자주 사로 잡혀 공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움직이면 될 텐데 그 당시엔 왜 멍~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모 르겠어요.) 평소엔 글쓰기를 그렇게도 싫어하던 제가 장문의 교사 지원글을 쓰고 있었 어요. 글을 마치고 메일을 보낸 후,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던 게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답신이 오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예상보다 소식 이 없길래 잠시 아쉬워했던게 떠오르네요. ㅋㅋㅋ 며칠이 지난 후에 일요일이 돼서 오뚜기에 직접 가게 됐는데 생각해보면 첫 만남이 참 힘들었죠. ㅋㅋㅋ 그것도 저만 ! 가기 전에 학교가 어디 있나 찾아보려 했는데 항공뷰, 로드뷰로 찾아봐도 대체 어딘질 모르겠고 카페에 있는 약도를 28 공감 다섯 번째


봤는데 정말로 약도였을 뿐이라 더 미궁에 빠져버리고 ㅋㅋㅋ 학교에 도착하기 전 까지 도심에서 등산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이렇게 어찌어찌하여 교실 앞 에 왔을 때 ! 상당히 분주했었어요. 그 때 저는 여기저기 살펴보기는커녕 분위 기에 휩쓸려서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구인가'하는 상태였습니다. ㅋㅋ 정신차려보 니 눈 앞엔 카레가 있었고 배고파서 먹었을 뿐이고 다 먹고 나니 어느새 종례를 하고 있었고 ㅋㅋㅋ 처음 오뚜기 교실에서 보낸 시간은 마치 시간을 타고 달리는 것 처럼 느껴졌어요. 종례가 끝나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회식자리에 있더라구요. ㅋㅋㅋ 이 때의 회식자리가 제가 '처음'으로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회식자리였습니다. 개인적으 로 숙취가 거의 끝판왕이라서 '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고 학 교 술자리에서 많이 시달려 '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 는데 오뚜기 식구들과 함께 하는 자리 는 낯설지도 않고 오히려 이미 알고 있었 던 친한 사람들과 같이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날 아직도 기억 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상수형 이 '가끔씩 해강쌤과 뽕쌤의 배틀이 벌 어지곤 한답니다.' 라고 말을 해서 '아 그렇군요.' 하자마자 두 분이서 계획한 것 처럼 배틀을 하셨던 거랑(무슨 내용 으로 그랬는진 모릅니다. ㅋㅋㅋ) 두 번째 는 호프로 이동하자마자 얼마 안 가서 뽕쌤이랑 우쌤이랑 뻗으신 거 ㅋㅋㅋ 돌이 켜 봤을 때 나쁘게 말하면 새로운 사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29


오뚜기 선생님의 편지 | 김아성 군인

람이 와도 긴장 없었던 모습들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 정도로 자연스러운 분위기 였기에 제가 이질감 없이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첫 날이 지나가고 설날이 끼어 있어 2주간 대기상태였는데 평소와는 너무 달랐던 일요일이어서 그랬는지 마치 꿈같았습니다. 설이 지나고 두 번째로 오뚜기를 갔을 때 민주누나도 왔고 같이 연수를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아 ㅋㅋㅋ 그리고 초기엔 '하루종일힐해'씨와 친해지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ㅋㅋ 너무 무뚝 뚝하셔서 ㅋㅋ 하지만 알고 보면 정 많은 분이시죠 ㅋㅋㅋ 그게 누군진 본인이 보신 다면 아실 거에요. ㅋㅋㅋㅋ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혜쌤도 오시고 저는 군대에 왔 네요. 응? 내가 군인이라니 ! 이렇게 군에 오기 전 시절을 떠올릴 때면 가끔 군 인 신분이라는 걸 잊기도 해요 엉엉....ㅠㅠ 최근 얘기를 들어보니 새로 오신 분이 한 분 계신다는데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네요. '하나됨을 위하여 !' 행사 때도 함께 하셔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첫 만남부터 저에게 신선함을 가져다 준 오뚜기 ! 아 ㅋㅋㅋ 방금 이 글을 쓰 는 도중에 선임 하나가 들어오더니 춥냐고 물어봐서 춥다고 하니까 선풍기를 틀어주고 가네요. ㅋㅋ 신선하네요. ㅋㅋ 이것도 ㅋㅋㅋ 처음 글을 쓸 때는 내가 오뚜기에서 계속 있을 수 있던 이유를 적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 니까 저기에 대해선 저보단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월드컵이 뭔지도 모르고 몸에 태극기를 휘감은 상태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시절부터 오뚜기에 계셨던 분 이 말씀하시는 게 더 좋을 것 같네요. ㅋㅋ 저는 지금 생각해보면 오뚜기가 저에게 참 소중한 나라를 일깨워줬다고 생 각해요. 녹이 슬어 버린 제 시각에 윤활유를 발라준 것 같은 느낌. 마침표밖에 없던 제 생각 위로 오뚜기는, 오뚜기 가족들은 따뜻한 손길로 느낌표 하나를 얹어줬습니다. 그 뒤로 작지만 큰 변화가 저에게 찾아왔죠. 예전엔 모르는 사 람을 보면 그냥 '모르는 사람'으로 끝났는데 오뚜기의 숨결을 느낀 후 부터는 차 량을 타고 이동하며 눈앞으로 순간순간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비록 내가 모르 30 공감 다섯 번째


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한 가족이고 친구이며 가슴 속에 꿈을 품고 살아가는 사 람!' 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6개월이라는 길지도, 하지만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걸 배웠네요. 앞으로 기동타격대 6번, 유격 2번, 혹한기 2번, 100km 행군 3번, 천리행군, 군지검, 사격집중주 2번, ATT, 헬기레펠 6번을 하면 전역하네요. 이렇게 보 니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보이네요. 종교행사를 71번을 가고 524일이 지나고 밥을 1569끼만 먹으면 전역하네요... 음. 생각하지 말아야겠어요. ㅋㅋㅋㅋ 12월 27일이 휴가 출발인데 벌써부터 휴가 신고하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 리네요. ㅋㅋ 저번에 싸지방에서 일일호프 사진을 봤는데 ㅋㅋㅋ 마치 세상에 존 재하지 않는 사진 같았어요. 다들 어찌나 그리 해맑으시던지 사진을 보는 저 까지 절로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그 뒤에 찾아오는 허망감...orz.... 여기가 시 내에 있는 부대라서 위병소 근무를 설 때면 앞에 거리가 딱 보이는데 근무를 서 는 동안 다리 앞을 지나가는 민간인들을 볼 때면 앞으로 뛰어나가고 싶다는 생 각이 들곤해요. ㅋㅋㅋ 다들 보고 싶어요. 계단 폭이 좁아 총총거리며 올라갔던 학교 계단이 떠오르네 요. 제가 비록 몸은 여기에 있어도 마음만큼은 항상 오뚜기에 있답니다. 일요일 아침에 오뚜기에 오실 때면 제 온기가 느껴지실 거에요.(흐!) 휴가를 나가서 문집을 받아 펼쳐보았을 때 이 글을 볼 수 있길 바라며 그 날 을 기다리겠습니다. 충성! ps. 오유하지 마세요. 있다가도 없어집니다. 2012.11.18.일.16:05 이병 김아성 *싸지방: "사이버지식정보방", 군대의 PC방 *하루종일힐해씨: 김청림 선생님 *오유: "오늘의유머"라는 인터넷 사이트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31


오뚜기 '가족' | 따뜻한 그 이름, 어머니

"엄마! 사랑해요!"

'순이어머님'을 '순이씨'라 부르게 될때까지 교사들은 학생들이 누군가의 어머니인 줄만 알았습니다. 순이씨도 누군가의 딸이며 그리운 "어머니"가 있다는 걸 이제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우리엄마, 보고싶은 어머니. 세상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오뚜기인의 가족이야기 함께 펼쳐요. 32 공감 다섯 번째


회 개 손 정 애 도약반 시장터 한 귀퉁이 장사하는 엄마 돕는 예닐곱살소녀보며 발길 멈추고 바라보네 넋을 놓고 바라보네 가뭄처럼. 힘겹던 세월 혼자 감당하시기엔 힘겨웠던 어머니 그믐달 바라보며 한숨짓던 그 아픔을 왜 몰랐었던가 따뜻한 봄바람은 되지 못하고 늘 쌩쌩 찬바람으로 엄마 속 앓게 했을까 내 자식장성해도 마음은 깨진 그릇 같으니… 제 철 없던 무례함을 가슴 저리게 사무치며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딸 정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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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가족' | 따뜻한 그 이름, 어머니

부르고 싶은 엄마 박 순 이 디딤반

엄마 엄마 많이 엄마를 부르고 싶다. 우리 엄마 지금은 시골에서 혼자 계신 엄마 아버지는 먼저 천국으로 이사를 가셨다. 자식은 많지만 다들 배움이 짧아서 힘든 일만 한다. 힘으로 하는 일, 기술로 하는 일. 우리 모두는 엄마 한 분도 책임을 못 진다. 우리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했을 텐데……. 우리는 내 자식을 위해서는 다 하지만 엄마를 위해서는 서로 눈치를 본다. 언니니까 누나니까 아들이니까 오빠니까 서로 먼저 엄마를 챙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도 나이를 먹는다. 부모님께 효도해야 우리도 아들, 딸한테 효도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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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배 유 진 도약반

으~ 춥다 추워~ 요즘 날씨가 많이 춥지 엄마? 벌써 겨울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나 엄마도 그렇지? 추우니까 밖에 나갈 때 꼭 따뜻하게 입고 다녀 엄마 알았지? 히히 있잖아. 엄마... 나 엄마한테 고맙고 미안한 게 너무 많아. 사실 처음에 엄마랑 셋이서 다시 시작했을 땐 엄마도 나도 정현이도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 겁도 나고 무서웠어. 그런데 엄마가 우리 불안해 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보고 힘 낼 수 있었어. 두렵고 무서워도 참고 견딜 수 있었어. 우리보다도 엄마가 더 힘들었을 텐데도 그런 내색 안하고 꿋꿋이 버텨내 줘서 고마워 엄마. 나랑 정현이 손 놓지 않고 지금까지 와 줘서 고마워. 엄마 아니었음 우린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어. 아직도 생활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하나씩 해 나가고 있는 우리가족 보면 나 요즘 무척 행복해 살 맛이 난다고나 할까? 엄마 우리 앞으로 더 열심히 살자! 세상이 험하긴 하지만 우리 셋이 똘똘 뭉치면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그치? 엄마도 파이팅! 정현이도 파이팅! 나도 파이팅! 하자. 엄마 사랑해 2012.11.15 엄마의 겸둥이 딸 유진올림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35


오뚜기 글밭

오뚜기의 별미 "누룽지"

누룽지 처럼

구수하게 익어가는 오뚜기인의 36 공감 다섯 번째

글 솜씨


희망의 담쟁이덩굴 표 말 순 도약반 60이 지나고 70하고도 2살이 되니 내 인생이 너무나 허무해서 나는 무엇을 했 나, 누구를 위하여 살았나, 무엇을 하기 위해 살았나, 아무것도 한 게 없다. 허무 한 마음이 가을과 겨울을 지나는 사이에 나를 더 힘들게 한다. 그런데 예쁘게 벽 돌 담장에 걸려 있는 담쟁이덩굴을 보며 내 마음을 달래 본다. ‘그래, 이 세상에 서 제일 힘들게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 너는 누구를 위하여 그 딱딱한 벽돌담에 흙 한줌 없는 담장 위에, 기와지붕에 뿌리를 내리고 무더운 삼 복더위에도 물 한 방울 주지 않아도 시들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는지.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그렇게 예쁜 색깔을 하고 우리의 눈을 즐 겁게 한다. 나도 너처럼 누구를 즐겁게 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 본다. 희망을 줄 수 있는 담쟁이덩굴, 나도 너를 보며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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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글밭

알밤 손 정 애 도약반 알밤 보내준 순자씨 마음 껍질깐 알밤 같네 그 마음 안에 나눔이 들어있네 그 마음 안에 사랑이 담겨있네 굵은 그 알밤을 오뚜기 가족 먹이려고 애써 쪄 온 분도 보내준 정성 담아 우리에게 나눠줬네 똑 깨물며 감사하네 그 알밤 속에 웃음과 기쁜 사랑이 담긴 그 밤을 다시하나 톡 깨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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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이의 일 기 박 순 이 디딤반 난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부터 아기보기를 했다. 이 집 저 집을 다니면서 아기보기를 했다. 겨울에는 외가에서 여름에서 우리집에서 동생들을 봐주고 그러다가 12살 먹고는 공장에서 심부름을 했다. 대전 옷 공장에는 이모가 있었다. 그 공장 안에는 학교도 있었다.중학교, 하지만 난 한글을 몰라서 중학교에는 갈 수가 없었다. 언니들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러 가면 무척 부러웠다. 난 점심시간이면 밥도 안 먹고 혼자 있는 시간이 있으면 이모 미싱에서 미싱을 배웠다. 그리고 이모가 점심 먹고 오면 난 이모한테 점심대신 욕을 먹었다. 하지만 난 기술이 밥이다 하며 3년을 한 공장에서 기술을 배웠고 16세에 서울로 왔다. 하지만 누가 그랬지 서울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지 하지만 한글도 모르는 난 매우 힘들었다. 돈으로 살 수 있으면 글을 사고 싶었다. 난 누군가 돌아가시면 그 사람한테 속으로 말을 했다. ‘저에게 글 좀 주고 가세요. 저에게 모두 주고 가세요.’ 하며 ‘저 정말 글을 알고 싶어요.’ 하며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은 공부라는 것을 나��� 이제야 내 마음을 써 본다. 앞으로 많은 글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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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글밭

그까이꺼 대~충! 정 해 강 수학선생님 산山 하늘로 내딛은 마디 마디마다 날카로운 세월의 비바람에 어제의 메아리를 되뇐다 그냥 거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풀도, 나무도, 새도, 누구도 부른 적은 없다 그저 거기서 차가운 햇살을 모았을 뿐이다 어젯밤 휘날리던 창조의 채찍은 오늘도 지겹도록 달콤한 올가미의 한 올 한 올을 되새김질한다 따스한 햇살들은 끝나가는 오랜 설렘이 어제의 무딘 어둠으로 말라버린 계곡에 이제야 넘실대는 물결을 담는다

< 가수 이승환은 한 때 '가르마 이론'을 설파하고 다녔는데 내용인즉슨 예민하게 신경써서 가르마 를 살짝 바꾸고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 거라는 기대는 자기중심적인 우주관에 기인한 착각임을 지각하라는 이론으로서 1997년 에 세계적 과학잡지인 Nature에 실린 적은 없지만 너무 남들 시선에 민감해져 자신의 행동을 제 약하거나 포장하지 말고 편하게 살자는 교훈을 담고 있다. > 고교 시절, 이육사 선생의 '광야'를 배 울 때, 칠판이며 책이며 오색찬란한 필 기로 요란했던 기억이 난다. 단어마다 거창한 상징적 의미를 지녀 꼭 외워둬 야 하는 '정답'들로 가득한, 고교생으로 서 '관동별곡'과 더불어 꼭 넘어야 할 장대한 인생의 관문이기도 했으니 말 이다. 40 공감 다섯 번째

그런데 나는, '과연 이육사 선생께서 우리가 배우는 의미대로 '광야'를 썼을 까?'가 '매화'의 숨겨진 의미보다 훨씬 궁금했었다. 정해진 룰에서 벗어나면 실격이요 낙제인 제도권 교육이니 다 른 해석과 이해는 용납하지 않으면서 도 한편으로는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 는 독자의 감상이 옳다고 배우는 모순


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릴없는 '광야'에 대한 의구심을 풀어 보고픈 마음에 직접 '광야'처럼 난해 한 시를 써서 친구들이 내가 의도한 바 를 제대로 해석하는지 실험해보기로 했다. 마침 매년 발행하는 교지에 실 릴 글을 공모하는 기간이었으니 더 많 은 친구들에게 보여줄 천우신조였다. ' 산'이라는 시였는데, 지금 보면 일부 식상하고 진부한 표현과 어색한 문장 들에 살짝 민망하긴 하지만 계획을 실 행하기엔 충분했다. 물론 '우리의 이해 가 이육사 선생의 의도와 일치하는가?' 라는 의문에 대해 '내 시를 제대로 이 해한다면 광야에 대한 이해도 옳다.'는 검증 논리가 억지스럽고 비약적이긴 했지만. 다행히 '산'이 교지에 실리게 되었고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많은 친구 들이 '산'을 읽고 내게 질문을 던질 게 다. 서로 자신의 해석이 옳다며 옥신각 신 할 때, 도도하고 거만한 표정으로 비웃으며 정답을 말해줄 테다. 그런 한 편으로 너희들의 감상 또한 의미있다 며 포용과 관용의 미덕 또한 베풀어주 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고는 의기양양 하게 우리가 배웠던 '광야'의 해석 또한 그릇될 수 있음 역설할 참이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해석은 커녕 읽 어 본 친구조자 없던 것 같다. 그도 그 럴 것이 고리타분한 디자인의 300쪽 이 넘는 폐품으로 쓰기 딱 좋을 책을 꼼꼼이 읽을 고교생이 있다면 그건 분 명 활자중독이거나 가상인물일 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네 타고 우주여행 하는 것만큼 황망한 기대였다. 실험은 그렇게 처참히 실패했고 덕분에 그 폐 품은 버리지도 못하고 십 수 년째 고이 모시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참 예민했던가 보다. 남들은 별 생각없이 신경쓰지 않고 무 심히 넘길 일에도 종종 예민하게 파고 들어 스스로를 너무 피곤하게 할 때가 많다. 가령 공사중인 담벼락 흙 사이로 새어나오는 물을 보고는 '저 물은 어디 서 오는 걸까, 흙을 통과했으니 깨끗하 려나, 먹어볼까?' 이런 식이다. 실은 초 등학교 3학년 때 등굣길의 공사현장을 보며 했던 고민이다. 공사가 끝나는 1 년 내내 의문을 가졌고 결국엔 풀지도 못하며 괴롭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래서 '광야 실험'을 통해 '내가 신경 쓰는만큼 남들도 신경쓰리라 생각하 는 것은 착각'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게 천만다행이다. 실험에 대한 의구심은 풀지 못했지만 현실의 보편적인 사람 들의 시선과 관점에 대한 수위를 깨달 을 수 있었던 기념비적인 사건이랄까. 그렇지 않았다면 유난히 예민하고 까 탈스러운 천성에 또 얼마나 괴롭혔을 지 끔찍하다. 덕분에 '가르마 이론'과 그 때의 일들을 상기하며 매사 조금은 편하게 생각해보려 애쓰곤 한다. 물론 예로부터 체면을 중시하는 민족인지 라 겉치레나 남들 시선에 예민하고 그 로 인해 느끼는 정신적 피로가 비단 나 만의 것은 아닐 게다. 허세스런 명품에 대한 집착이나 과소비, 본말이 전도된 물질적, 외양적 가치의 득세 또한 그것 과 맞물려 있지 싶다. 그것이 세심한 배려와 같은 긍정적인 행태로 발현되 기도 하지만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범주에서라면 까짓것 때론 무심하게 ' 가르마 이론'을 따르는 삶을 권해본다. 사유와 고뇌를 진부한 시대착오적 구 태로 몰아가는 몰가치 시대의 극단적 허무주의만 아니라면, '그까이꺼 대~충!'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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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수업시간

東溟日記 오뚜기인들은 어떻게 읽었을까요? 국어 시간에 함께 공부한 <동명일기> 기억나시나요? '동명일기'는 '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의 일부분으로 의유당 남 씨가 관북지방을 여행하고 남긴 기행문입니다. 특히 해 뜨는 장면을 아름답게 묘 사하여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지요. 조선시대 여인의 눈으로 바 라본 해 뜨는 장면, 궁금하지 않으세요? 오뚜기인들이 느낀 <동명일기>의 일출 장면은 어떤 모습일까요?!

<동명일기> 해석본 홍색紅色이 거룩하여 붉은 기운이 하늘을 뛰놀더니, 이랑이 크게 소리를 질러 나 를 불러, 저기 물 밑을 보라고 외치거늘,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홍운紅雲을 헤 치고 큰 실오라기 같은 줄이 붉기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眞紅 같은 것이 차차 나와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위로 작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가 호박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하기는 호박보다 더 곱더라. 그 붉은 위로 훌훌 움직여 도는데, 처음 났던 붉은 기운이 백지白紙 반 장 너비만 큼 반듯이 비치며, 밤 같던 기운이 해 되어 차차 커가며, 큰 쟁반만 하여 불긋불긋 번듯번 듯 뛰놀며, 적색赤色이 온 바다에 끼치며, 먼저 붉은 기운이 차차 없어지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주 하며, 항아리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로 뛰놀며, 황홀 히 번득여 두 눈이 어질하며, 붉은 기운이 명랑하여 첫 홍색을 헤치고, 하늘 한가운 데 쟁반 같은 것이 수레바퀴 같아서 물 속에서 치밀어 받치듯이 올라붙으며, 항아 리, 독 같은 기운이 없어지고, 처음 붉게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의 혀처럼 드리 워 물 속에 풍덩 빠지는 듯싶더라. 일색日色이 조요하여 물결에 붉은 기운이 차차 없어지며 일광日光이 청랑하니, 만고천하에 그런 장관은 견줄 데 없을 듯하더라. 42 공감 다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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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수업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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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생활기

오뚜기일요학교 늦깎이 학생들과 대학생 선생님들 임 정 례 도약반 사계절을 春夏秋冬 내가처음 망설이다 큼지막한 홈페이지 그다음에 검은것은 애고애고 엄마학생 어려워도 기쁨으로 교과서의 애그애그

마다않고 한결같이 봉사하는 오뚜기의 선생님들 그모습은 계절마다 감격하네 만났을때 학교소풍 날이었네 찾아가서 학교교실 두드리니 열쇠잠겨 말못하고 돌아왔네 검색하니 소풍간다 쓰여있네 찾아가서 면담한후 입학하고 첫수업을 시작했네 글씨이요 흰색바탕 종이일세 부끄러라 무슨내용 무슨말을 하시는지 소심해서 질문조차 할수없네 그동안의 서글픔을 극복코자 출석하여 지나보니 발전있네 내용들이 눈에띄고 귀트이네 즐거워라

한주동안 엄마학생 그열정은 그동안의 콩나물에 거리에서 쉬지않고 손주에게 기다려라

여름방학 모시고서 식지않네 나의발전 물주듯이 영어간판 노력해서 영어동화 아가들아

초겨울에 행사있네 46 공감 다섯 번째

그시간도 선생님들 쉬지않고 수학여행 다녀오네 디딤에서 듣고나서 쉬운것은 은발할미 읽어주리 너무나도

도약으로 교실옮겨 수업받네 곧잊어도 남은것은 많이있네 읽어가네 되었을때 멋진모습 은발


오뚜기의 나는벌써 지난해는 졸업하신 토요일에 서빙하는 선생님은 모든것을 졸업하신 후원친목

오랜전통 두번째로 시청앞과 선배님과 만나려니 선생님들 슈퍼맨과 해내는분 선배님들 기다려요

후원의밤 참석하네 이번에는 재학중인 내가슴은 고마움에 원더우먼 기특하고 많이와서

열린다네

한겨울에 다음주에 털실내화 하고싶은 임기마쳐 부임하신 같은나이 내새끼들 배고프면 같은나이 스승의길

엄마학생 등교하니 신어보니 내공부에 가는선생 선생님께 같은세대 내조카들 일어나니 선생님들 아무에게

발시렵다 들으시고 털실내화 사오셨네 마음따듯 발등따듯 자녀선생 조카선생 콧등시큰 서운하고 눈물나게 고마웁고 살고있는 젊은이들 쉬는날은 늦잠자다 속터져서 죽을지경 몸바쳐서 우리위해 열리지는 아니하네

털실내화 망설이고 이루려던 상급학교 남은시간 나의봄은

겨우내내 망설이다 내꿈향해 진학의꿈 힘을다해 오고있네

힘이되어 나의목표 이루는날 다가오네 공부하기 시작해서 졸업날은 다가오고 일주일에 한번수업 너무나도 기다려져 부족했던 부분마저 모두채워 졸업하네 春夏秋冬 몇번지나

안국역의 주변이네 엄마학생 두근두근 가슴뭉클 고마워라 우리선생 힘주세요

가슴깊이 뭉클하네 너무고생 하고있네

이렇게도 다르던가

봉사하니

사각모자 검은가운 걸쳐입고 졸업할 때 모두축하 해주세요 나의선생 엄마학생 오뚜기의 동기생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47


오뚜기 생활기

오뚜기 야학을 통해 얻은 기쁨과 희망 손 정 애 도약반 오뚜기 학교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던 것 같다. 고졸 학력 검시를 볼 때 처음 고입검시를 볼 때와는 다른 어떤 감정. 긴장과 초조함이 있으면서 도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 시험을 끝낸 시간에는 답을 맞추고 썩 좋은 결 과는 아니지만 무언가 뿌듯한 느낌. 디지털 대학으로 오라는 팜플렛을 받으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 오뚜기 선생님들께서 애써 가르쳐 주신 영 향 때문일 것이다. 오뚜기 선생님들에게 넘쳐 나오는 긍정의 힘, 밝은 미 소. 올 여름같이 징그럽게 덥고 가물었던 여름(나중엔 장마가 많은 사람을 슬프게도 했지만) 땀을 줄줄 흘려가면서 열성을 다해 수업시간마다 각 자의 맡은 과목을 가르칠 때에 열정을 쏟으며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열성을 다해 가르친 그 수고로움의 댓가로 좋은 결과 는 나오지 못한 과목은 무척 미안하고 죄송했지만 고졸검시 볼 기회가 또 있다는 희망. 합격할 때까지 다녀도 되는 오뚜기 야학. 조급해 하지 말자 스스로 위로 하면서 선생님들의 모습을 한 분 한 분 떠올려 봤다. 보수는 무일푼인데도... 그 가치가 얼마나 큰 지를 우리 학생들에게 보이시면서 우리에게 더 큰 가치 있는 것을 하라고 알려주시는 분들. 진정 행복의 가치를 느끼시면 서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땀을 줄줄 흘리시면서도 입가엔 언제나 시원한 바람이 되는 미소를 띄우며 열성을 다하는 그 모습들... 본인들이 가지고 계신 재능들을 계속 오뚜기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면 서 오뚜기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며 실천하는 모습은 진정 아름다운 꽃보 다 더 아름답습니다. 배움이 부족해 움추러 들기만 했던 날들 오뚜기로 와서 공부하며 가슴 활짝 펼 날을 고대하며. 일요일만 되면 오뚜기 학교 로 가벼운 발길 옮기네. 그 맑고 청명한 소리만큼이나 곱게 들리는 오뚜 기학교 수업 들으러 가네. 그 소리 멀리멀리 퍼져나가 오뚜기 교실을 가 득 채우면 좋겠네. 오세요, 오뚜기로. 희망과 기쁨이 있는 오뚜기 야학으로 오세요. 아는 것이 힘이다. 그 아는 것을 몸소 실천으로 옮기며 오뚜기 야학을 빛 내주시는 선생님들께로 꼭 오세요. 48 공감 다섯 번째


내가 만난오뚜기 박 순 이 디딤반 오뚜기 문을 노크했다. 가족 같은 오뚜기 선배님들 선생님들 모두 따뜻 한 손을 잡아주었다. 배움이 이렇게 행복인지 몰랐다. 오뚜기에서 이 년 동안 공부하고 보니 이제는 내가 오뚜기를 떠날 수가 없다. 배움이 사람 을 만들고 배움이 말을 만든다. 이제는 모든 말과 행동도 생각하며 한다. 그래서 많이 배우고 조금 배우고 차이가 나는가 보다. 아니 우리의 삶을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일하면서도 느낀다. 만약에 내가 글을 알았다면 공장보다는 버스 차장을 했겠지. 그리고는 미용 기술을 배웠겠지. 한글 을 몰라서 차장도 못했다. 이제는 나도 오십대이다. 공부하고 싶었다. 그 래서 배워가는 과목마다 참 재미있다. 공부는 정말로 신기하다. 과학은 빛과 파동, 반사, 빛의 굴절, 전기, 전류, 저항, 전압 등을 모두 배워서 나 도 이젠 조금씩 머릿속에서 알 수 있다. 영어는 A, B, C 외우기 힘들고 국어는 많이 글을 읽어야하고 수학은 무척 재미있고 사회, 국사는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 배우고 또 배우고 싶다. 내가 지금 10대라면 참 좋겠 다. 항상 배움이 고프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49


오뚜기 졸업생의 자리 | 전야협 소식지 <광야> 기고

내가 만난

오뚜기

이 현 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제 마음 깊은 곳에 고이고이 간직해온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꿈은 언젠가는 대학교에 들어가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죄는 더더욱 아닐진데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었던 건 사실이 었습니다. 배움이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식으로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좀 더 보람된 삶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 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수는 없습니다만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할 때 결 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꿈은 꿈을 꾸는 자 만의 것이기 때문입니 다. 결혼 전엔 나���대로 책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며 살았지만 결혼 후 엔 거의 책을 읽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서 다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퇴근 하는 차 안에서 책을 접하게 되면서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50대 후반의 늦은 나이지만 용기를 내어 야학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60이 넘으면 더 용기를 내지 못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과 그럼 그땐 더 후회 할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가르침과 더불어 열심 히 노력한 결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일을 하고 있기에 방송통신대에 가게 되었 습니다. 제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준 곳이 바로 오뚜기 야학 이었습니다. 제가 오뚜기 야학에 처음 올 때의 마 음은 속히 대입검정고시만 합격하는 것이었습니다만 오뚜기에서 몇 주 지나다보니 어느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오뚜기인들과 슬그머니 정이 들 고 말았습니다. 50 공감 다섯 번째


선생님들은 대학생들로 학교생활과 더불어 일요일엔 자신들의 귀중한 시간을 오뚜기에 모인 배움에 목마른 늦깎이 학생들을 위해 혼신을 다하 는 모습에 훌쩍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오뚜기의 학생들은 10대부터 60 대까지 다양한 연령으로 늦게나마 자신들의 꿈을 이루고자 모인 분들이 랍니다. 목적은 한 가지 배우고 싶은 간절함이지요. 오뚜기 야학은 일요 일에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5~6분의 선생님이 고등과정 수업을 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번 영화 감상하는 기회도 만들어 주셔서 학생들 의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기도 한답니다. 오뚜기의 가장 즐거움의 한 가지는 점심시간이랍니다. 학생들이 돌아 가면서 당번을 정하여 반찬을 만들어 오기도 하고 재료만 사오면 수업 을 끝낸 선생님이 요리를 한답니다. 시계가 1시의 방향을 가리키기가 무 섭게 점심시간 종이 울리고 어느새 밥상은 그럴듯하게 차려져 있답니다. 잘 차려진 밥상에 학생들은 숟가락만 들고 맛나게 먹었으며 그런 모습에 선생님들은 흐뭇해 하셨지요. 모두다 우리들의 아들 딸 같은 나이지만 마음 씀씀이는 저희들보다 연상이랍니다. 오뚜기의 규칙은 2년을 출석하여야 졸업식과 졸업 반지를 받을 수 있 는데요 졸업반지는 졸업생 한분이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에 입학 하신 분들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뚜기 자 체에서는 지급하지 않습니다. 야학은 정부의 보조금과 오뚜기를 거쳐 가 신 '구' 교사들과 졸업하신 분들의 적은 액수지만 정성어린 손길로 운영 을 하고 있기에 감히 장학금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지만 오뚜기를 후 원하시는 분이 계셔서 가능한일이랍니다. 후원하시는 선생님 이야기를 하려면 30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겠네요. 오뚜기 야학 초창기에 당시 17세 된 소년이 오뚜기를 찿아 왔습니다. 당 시에도 초등 과목을 가르치진 않았지만 교사들은 그 소년을 위하여 초 등 과정을 별도로 지도해 주었습니다. 복도에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고 특별지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 소년은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오뚜기에 서 마쳤으며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 하였습니다. 그 후 영어 선생님이 되었으며 오뚜기 야학에 교사로 오시어 봉사도 하셨답니다. 그 선생님은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51


오뚜기 졸업생의 자리

자신의 어린 시절 너무도 절박하게 배움의 길을 갈구 하였을 때 오뚜기 를 만났으며 오뚜기에서 받은 사랑과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오뚜기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꾸준히 후원자로서 몇 갑 절의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 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오뚜기 인들이 있 어 저도 장학금을 받아서 대학생의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제 대학생으로서 한 학기를 마쳤습니다. 대학공부는 정말 어렵습니 다. 정신없는 가운데 여러 번의 시험과 기말고사를 쳤지만 결과는 좋지 않아 과락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순간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한 가지씩 배워간 다는 것은 제겐 즐거움과 더불어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다니 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렵게 시작한 만큼 보람도 더 크리라 생각합니다. 몇 년이 걸려서 졸업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십년이 걸리면 어떻습니까. 끝까지 한다는 것이 저에 게는 더 중요하니까요. 이 다음 졸업을 한 후에는 서투른 글이라도 글을 쓰면서 노후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딸에게 저의 글 모음집 한권 쯤은 남겨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책읽어주는 봉사자의 길을 걸어보고도 싶습니다. 그리고 더 큰 소망이 있다면 작가의 꿈도 꾸어 보고 싶습니다. 세상공부와 인생 공부를 다 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늦은 나이의 대학 생활은 20대의 풋풋한 설렘 보다는 성숙된 자세와 귀한 마음가짐으로 공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이 늙지 않음에 서 글프다고 생각 할 때가 있었습니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많은 차 이가 있다는 걸 느끼며 지금의 저는 20대의 나이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왜? '대학생' 이니 당연한 일이죠?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죠. 늦은 나이 에 시작한 대학생활은 힘들고 고달픈 길이지만 그 길을 다 걸어갔을 때 의 기쁨은 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방송대학교는 입학하기는 쉽지만 4 년 만에 졸업하기는 하늘의 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합니다. 어렵 고 힘든 그 길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을 것입니다. 십년이 걸려서 그 별 을 딴다면 더 값진 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느덧 오뚜기를 떠나 온지도 반년이 지났습니다. 정말 행복하고 소중 한 시간 이었습니다. 오뚜기에는 일반 정규 학교에서 행하는 것처럼 봄 52 공감 다섯 번째


소풍과 여름수학 여행도 간답니다. 비록 야학생이지만 학창 시절의 추억 을 만들어 주고 싶은 선생님들의 따뜻한 배려이지요. 그리고 학생들의 글을 실은 문집도 1년에 한 번씩 발간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글 쓰는 솜 씨들도 대단하답니다. 꺼내기 어려운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써 서 올린 글을 읽을 땐 어느 유명한 분들의 글보다 더 가슴 뭉클하지요. 학생 한 사람마다 있는 그 모습을 이해하며 자신들의 가진 지식을 나눔 으로 이웃사랑 실천에 한몫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어 오뚜기는 넘어 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명소 덕수궁 돌담장길 에 낙엽이 뒹굴 고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리워지는 가을이오면 일일 호프의 행사를 열어 서 오뚜기 하나됨과 행사 후 이익금으로 학교기금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일일호프 행사를 위해 선생님들은 몇 달 전부터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연 습과 장기자랑을 준비하여 학생들에게 즐거운 추억 한 가지를 더 안겨준 답니다. 지금도 오뚜기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향하여 열심히 공부 하고 있는 어린 남매가 있습니다. 그 옛날 한 소년을 위하여 선생님들이 특별 관리를 해 주셨듯이 어린 남매를 위하여 오뚜기 선생님들은 특별한정성 과 사랑을 쏟고 계시 답니다. 그 남매도 분명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고 그리 멀지 않아 예전의 그 소년처럼 자랑스러운 오뚜기 인이 될 것입니다. 오뚜기는 가고자 하는 길을 빠르고 정확하게 걸어갈 수 있도 록 도와주는 따뜻하고 밝은 불빛입니다.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빛을 비 추고 있었기에 우리가 오뚜기를 만날 수 있었듯이 앞으로도 오뚜기를 만 나고자 하는 그 누군가를 위하여 그 자리에서 변함없는 밝고 따뜻한 빛 으로 남아 있어 주기를 바라봅니다. 오뚜기 힘내세요.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53


오뚜기 탐방기 |

오뚜기 일요학교를 다녀오다

천준호 선생님

방문목적

안을 했지만, 나는 이제는 밥벌이를

어오는 곳이었다. 도착하니, 교장선

걱정할 나이라고, 야학은 임용시험

생님으로 계신 봉우리(그 분의 한글

오뚜기 일요학교를 다녀왔다. 이곳

을 통과한 이후에나 하겠다고 선뜻

이름)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은 이화여대 근처에 위치한 일요일

거절했다. 겨우 두 번 밖에 안갔지

여자분이셨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1

마다 열리는 야학이다. 사실 이 곳을

만, 나의 오뚜기 일일학교 야학 방문

살 아래인 분이셨다. 처음에는 전체

방문한 목적은 토요일에 신촌에서

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이러

야학사를 짧게 개관해주시고, 그런

놀다가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이유

한나의 부채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다음 오뚜기 일요일 학교 역사를 말

에서였다. 과제를 위해서 잠깐 사진 만 찍고 오려고 했었는데 점심 먹고,

씀해주셨다. 야학은 일제 강점기 공

야학의 역사

립학교에 대항해서 민족정신을 교 육하고 대변했던 곳이다. 일제하의

저녁까지 먹고 돌아왔다. 게다가 그 다음 주에도 또 한 번 방문하게 되었

오뚜기 일요학교는 이화여대역에

공립학교가 일제의 이익을 위해서

다. 내가 있는 곳에서 신촌까지는 왕

서 10여분쯤 걸리는 곳에 있었다.

봉사했던 반면, 야학과 사립학교는

복으로 3시간 거리이다. 산적해있는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에 한

나라의 해방과 민족의 운명을 개척

많은 과제와 곧 있을 기말고사가 나

곳인 신촌지역에도, 이런 집들이 있

하려면 노동자의 정치적 각성 및 그

를 압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었구나 싶을 정도로 그 주변 지역은

운동을 위해 설립되었다. 일제하 야

번째 일요일에도 나를 그 곳으로 이

달동네 같은 인상을 주었다. 건물도

학의 또 다른 배경은 교육정책의 미

끌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서울 노인학교 건물의 4층 교실만

흡 때문이었다. 3.1운동 후 민족적

바로 더 이상 도시에서는 쉽게 보기

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시

저항의 무마책으로 설립된 공립고

힘든, 아무런 계산 없이 무언가를 나

설은 상당히 열악해서 라디에이터

등학교, 고등보통학교, 여자 고등부

누고 받을 수 있는 오뚜기 일요학교

나 온풍기 대신, 기름식 난로를 사

통학교는 학력아동의 1할도 수용할

공동체에서 받았던따뜻함 때문이었

용하고 있었고, 선생님들이 있는 곳

수 없었으며, 그나마도 비싼 월사금

다. 사실 예전부터 야학을 한 번 해

은 여름에는 뙤약볕이 그대로 내리

때문에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에게

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가지고 있

쬐고, 겨울이면, 찬바람이 그대로 들

는 그림의 떡이었기 때문이다. 그러

었다. 내가 가장 존경했던, 나를 선 생님이라는 꿈으로 이끌어주셨던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은 대구의 한 야학의 교감선생님으로 계셨었다. 아무에게도 자신이 한 일을 드러내 거나 자랑하진 않으시는 분이다, 다 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그 분이 20 년간이나 야학에서 활동하고 계시 다는 말을 들었다. “가난한 사람들 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한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말처럼, 나는 교사란 ‘ 정의’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그런 교사가 되기 위 해서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받는 사 람들을 만나는 일은 가장 선행되어 야 할 일이다. 그러나 결국 나의 이 러한 자의식은 그저 실천 없는 헛된 말에 지나지 않았었다. 올해 봄, 친 구가 함께 야학을 가지 않겠냐고 제

54 공감 다섯 번째

“예전부터 야학을 한 번 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줄곧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장 존경했던, 나를 선생님이라는 꿈으로 인도하셨던 분도 야학의 교감선생님이셨다.


므로 우리 힘으로 만든 초등교육기 관이 근로 대중에게는 필요했다. 야 학의 성격은 시대별로 조금씩 달랐 는데 60년대 야학은 검정고시 교육 을 담당하였고, 70년대에는 유신 이

오뚜기 일요학교의 수업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좀 더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었다.

후 학생의 참여로 야학의 흐름이 바 뀌었다. 80년대는 사회모순의 심화

구수하게 섞어서 부르셨다. “영숙

수업이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작

로 사회운동적인 성격을 더욱 강하

씨, 한 주 사이에 머리가 기신 것 같

년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나가있을

게 띠었다. 그러다가 문민정부 들어

아요. 순자씨, 아까 교양시간에 빵빵

때 봤던 드라마라서 굉장히 감명 깊

와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수립되고,

터지는 거 보고 좋았어요. 기석씨랑

게 봤었다. 한참 아메리칸 드림, 즉,

국제적으로 소련, 동구사회주의의

정자씨는 안 보이시네. 둘이 나들이

미국에 이민가고 싶다, 영어를 어떻

몰락과 진통은 노동자 운동뿐만이

가셨나? “순자씨. 왜 그동안 안 나오

게 정복할까와 같은 욕망에 가득 차

아니라 야학의 성격도 바뀌게 했다.

셨어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어

있을 때, 이 드라마를 통해 한글이

즉, 야학또한 노동자 교육단체로서

머니뻘 되는 학생이지만, 그곳 학생

얼마만큼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

의 활동보다 민주시민적 자질의 배

한 분, 한분의 특성을 꿰고 있었다.

로 창제되었는지를 보면서(비록 허

양과 자신의 인간다운 삶을 주체적

거기다기 굉장히 구수한 경상도말

구적인 이야기가 많이 더해졌지만)

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교육의 장

투로 얘길 하니 참 간만에 정겨운 교

한국어에 대한 생각을 새로이 가지

으로 전환해 가고 있다.

실 풍경을 본 것 같아서 훈훈했다.

게 되었다.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그리고 본격적으로 수업으로 들어

심어준 드라마를 이렇게 야학에서

갔다. “아까 <화려한 휴가> 잘 보셨

또 보게 되다니 왠지 감격스러웠다.

어요? 여러분들, 그 때 뭐하셨어요?

두 번째 갔을 때 했던 수업도 “독립

이렇게 야학의 역사를 듣고 나니

연애하셨어요?”라는 약간은 장난기

신문 창간사”였는데 거기에 보면 이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이곳 야학의

있는 질문으로 시작을 했다. 어머님

런 구절이 있다. “한문 못한다고 그

학생은 대부분 어머님분들이셨는

분들은 당시에 20대, 30대 이셨기

사람이 무식한 사람이 아니다. 국문

데 점심과 저녁 또한 이 곳 어머님

때문에 ‘삼청교육대’에 관해서 많이

만 잘하고 다른 물정과 학문이 있으

분들이 직접 손수 마련해서 오신 거

들었다는 얘기나, 전두환 안 죽이고

면 그 사람은 한문만 하고 다른 물정

였다. 어머님분들은 처음 보는 나에

뭐하나하는 반응을 보이셨다. 특히

과 학문이 없는 사람보다 유식하고

게도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요즘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연관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다. 조선의 아

가지고 오신 밤을 건네주시기도 하

지어서 수업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

녀자들도 국문을 잘하고 여러 물정

시고, 홍시를 건네주시기도 하셨다.

다. 예를 들면, 당시 전두환이 보도

과 학문을 배워 소견이 높고 행실이

그렇게 점심을 먹고, 가는 날이 장날

지침을 내리고 언론을 통폐합하면

정직하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그

이라고 오늘이 한 달에 한 번 있는 ‘

서, 그 당시 표방했던 게 “복지국가,

부인이 한문은 잘하고도 다른 것을

영화 보는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

자유정의국가”였었다는

모르는 귀족 남자보다 높은 사람이

들 근처에 영화관이라도 같이 나들

하면서 요즘 대선에서 복지가 이슈

되는 법이다.”

이 가시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빔프

인 것과 “경제 민주화”와 연관 지

당시 수업참관을 하는 입장으로 들

로젝트를 쏴서 영화를 함께 교실에

어서 설명을 했다. 또한, 최근에 극

었었는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서 보는 것이었다. 영화는 1980년

장가에서 상영되고 있는 [남영동

했다. 한문의 자리에 영어를 대입하

광주 민주항쟁을 다룬 “화려한 휴

1985]와 [26년]이라는 영화도 연

면, 바로 요즘 내가 가지고 있는 생

가”였다. 어머님분들은 영화를 보시

관 지어 소개를 해주었다. 1987년 6

각을 꾸짖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

는 내내, 전두환에 대한 분노를 터

월 10일 항쟁을 설명하면서는 요새

렇듯, 야학의 수업은 지금 우리가 발

트리셨다.

도 6월 10일에 집회를 한다는 것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좀 더 깨어

언급하면서 살아있는 역사수업이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내용

역사수업

되도록 이끌었던 점이 인상 깊었다.

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이어진 시간은 역사수업이었는데

국어수업

선생님과의 인터뷰

1980년대부터 87년까지 민주화운

그 다음 수업은 국어수업이었는데,

그렇게 그 주의 수업이 끝나고, 다른

동을 다루었다. 교장선생님이 바로

이 날은 “훈민정음”에 관해서 가르

중,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선생님

역사선생님이셨는데, 처음에 출석

치는 날이었다. 드라마 [뿌리 깊은

이 종례를 하셨다. “말순씨, 가져다

을 부르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 분이

나무]에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주신 김치 잘 먹었어요.”와 같은 얘

경상도분이셔서 경상도의 사투리를

반포하는 부분을 보여주는 것으로

기와 함께. 종례가 끝나고 학생분들

야학탐방기

이야기를

역사수업에서는 영화와 연관지어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55


오뚜기 탐방기 | 천준호 선생님 이 다 가시고 선생님들은 남아서 방

주 일요일에도 방문을 했다. 이 날은

업으로 진행되었던 건데요. 개인적

풍용 솜을 붙이신 뒤에야 학교를 나

궁금했던 부분들을 모아서 한 선생

으로 역사도 삶이고, 문학도 삶이라

왔다. 그렇게 학교 앞에서 함께 선생

님과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인

고 생각을 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

님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그동안 야

터뷰 내용이 길어서 지면관계상 몇

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학에 관해서 궁금했던 부분들을 물

부분만 소개를 한다.) Q부분은 내가

지 궁금해서 그런 질문을 던졌었었

어보았다. “7-80년대에는 야학이

질문한 것이고, A부분은 국어선생

죠. 그리고 이제 저보다 굉장히 많

사회운동으로의 한 일환으로서 존

님이해주신 답변이다.

은 시간을 살아오신 분들이니까 혹

재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그 당

시 제가 놓친 부분들을 더 통찰력 있

시와는 다르게 공통적인 과제-민주

Q: 지금 8개월 정도 하셨던 거잖아

게 바라보시진 않으실까 하는 생각

화운동이라든지, 노동운동- 같은 게

요? 어떻게 보면, 일요일을 하루 종

을 했었구요. 또, 한편으로는 문학이

어떻게 보면, 없을 수도 있고, 굉장

일 다 쓰시는 거잖아요? 일요일마다

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평소엔 많

히 다양화되고 세분화되었다고 생

이렇게 시간을 투자해야 되나? 같은

이 하진 않잖아요? 한 번쯤은 그런

각을 하거든요. 환경운동이라든지,

그런 슬럼프를 겪었던 시기는 없나

당연한 걸 되물어봄으로써, 문학에

성적 소수자운동이라든지, 하나의

요?

대한 생각을 환기시키고, 문학에 좀

프레임으로만 묶기는 힘들다고 생

A:다른 사람이 보면, 굉장히 큰 일

더 가까워지고자 하는 생각을 했어

각을 해요. 그래서 제가 궁금한 건,

이잖아요. 그런데 여기 있다 보면,

요. 제 문학수업의 목표는 항상 그거

오늘날 야학은 어떤 목표를 지향하

별 거 아니예요. 저도 그 때 모집 광

예요. 저는 문학은 가까이 있다고 생

고 있는 건가요? 좀 더 개인적인 목

고를 보고나서 굉장히 고민을 했었

각해요. 저는 이런 글들도 다 문학이

표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나요? 예를

는데요. 특히 수업시간에도 보셨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책상 위

들면, 검정고시 패스 같은 거요.”

만, 어머님분들이 굉장히 수업에 열

에 있는 메모, 간단한 일기를 가리

선생님 중의 한 분이 대답을 해주셨

의 있게 임해주시기 때문에 저는 오

키면서) 근데 사람들은 자기는 문학

다. “야학은 오늘날에도 제도권 교

히려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여기

이랑 동떨어져있다고 생각을 하거

육에서 소외 받은 분들을 위해 존재

에서 다시 충전을 받고 가는 거 같아

든요. 소설도 어렵고, 시도 어렵고,

해요. 그리고 교육과 부는 대물림되

요. 딱히 힘들고 그렇진 않아요. 정

또 책을 잘 안 읽어요. 우리나라 사

잖아요? 가난한 사람들이 교육을 받

말 재밌고, 즐거워요. 오히려 더 힘

람들이 생각보다. 되게 어렵다고 생

지 못해서 계속 가난한 상태로 남아

을 받는? 그런 상태에요. 되게 많이.

각을 하고.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우

있잖아요? 저는 그런 점에서 야학

치유를 받는다고 느끼고 있어요.

리랑 되게 가까이 있는 거다. 재밌는

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좀 더 가야

Q: 박완서의 전쟁문학을 가르치시

거다, 쉬운 거다. 그래서 제가 수업

한다고 생각하고, 그 학생들이 자신

는 피피티를 봤었는데요. 그 때보니

시간에 항상 하는 말이 “어려운 거

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

까 맨 마지막에 “문학이란 무엇일까

아니라구. 다 알고 계시는 거라구..”

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 날

요?”라는 질문을 남겨놓으셨더라고

다 그런 뉘앙스로 하는 말들이예요.

의 기억이 강해서였을까. 나는 오뚜

요. 문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

Q: 문학은 사람들의 하루하루 일상

기 일요학교의 사람들에 관해서 좀

요?

에서 느끼는 행복의 측면에서 삶을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 다음

A: 그 수업은 역사와 문학의 통합수

다룬다고 생각해요. 민주씨가 어머

어머님분들이 굉장히 수업에 열의있게 임해주시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여기에서 다시 충전을 받고 가는 거 같아요. 딱히 힘들고 그러진 않아요. 정말 재밌고, 즐거워요. 오히려 힘을 받는? 그런 상태에요

인터뷰 중이신 이민주 선생님. 이 날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56 공감 다섯 번째


님분들에게 문학을 가르치시면서

지나 그런 치유 같은 만족감이 더 크

틀 째 갔던 날, 점심시간에 한 선생

어떤 걸 전달하고 싶으세요?

기 때문에 돈이랑은 상관이 없는 거

님이 기타를 들었다. 그 선생님은 이

A:그냥 가까워지시길 바라는 마음

같아요.(웃음) 되게 좀 특이하단 말

곳에 10년 째 일하고 계신 분이다.

이예요. 가까워져서. 어떻게 보면,

은 많이 듣는 거 같아요. 그런 가치

일요일 오후. 내가 있는 이곳은 바

일상성이 박완서 작품의 가장 큰 장

가 더 중요한 거 같아요. 그 교육에

깥에서는 겨울바람이 창틈으로 들

점이잖아요?? 개인적으로 박완서

대해서도 많이 생각을 하는데 저는

어오는 3평 남짓한 공간의 교무실이

쌤을 되게 좋아하기도 하구요. 되게

그렇게 훌륭한 교육자는 아니예요.

었다. 이 허름한 공간을 채우는 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어머님들이

학원에서도 그런 고민을 해요. 여기

광석의 <서른 즈음에>, 김광진의 <

랑요. 박완서 선생님도 50대에 등단

서는 학습자분들이 워낙 훌륭한, 양

편지>,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 그

을하셨고, 자신의 느낀 일상성의 이

질의 학습자들이셔서 그 부분이 더

노래 가사와 그 안에 담긴 80-90년

야기를 적으셔서 인정받으신 분들

큰 거 같아요. 그렇습니다.

대의 정서는 이 곳 오뚜기 일요학교

이시니까. 그런 욕심도 있었어요. 어

Q: 어머님분들의 이야기는 조금 아

에 딱 맞는 선곡이었다. 나에게는 너

머니분들도 이렇게 한 번 도전을 해

시나요? 가정형편이 라든지.

무나도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였다.

보시라는. 약간은. 그래서 박완서 문

A: 그런 걸 글로 써서 주시는 분들도

올해 5월 미국에서 돌아온 후, 모든

학은 되게 삶하고 붙어있다는 생각

있긴 한데 따로 묻진 않아요. 과거에

것이 전쟁이었다. 토익시험, 토익스

을 느꼈어요. 그래서 그 분을 더 골

배우셔야 할 때 그 때 어려우셔서 공

피킹 시험, 학점, 직장 잡는 일. 모

랐던거 같아요. 제가 문학은 삶이다.

부할 시기를 놓치신 분들이예요. 공

든 게 경쟁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

그런 생각은 하니까. (하하.)

부할 시기를 놓친 분들 그리고 어머

큼은 그러한 것들로부터 완전히 벗

Q: 70-80년대엔 노동자계급의 각

님들이 다 이제 연세가 어머님, 아버

어나있었다. 이 평화로움을 모두 기

성, 민중운동의 주역이다 같은 사회

님 나이니까 다 어느 정도 자리 잡으

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휴대폰으로

적 차원의 목표가 있었잖아요? 그런

시고 개인적으로 내실 수 있어서 오

기타를 연주하며 김광석 노래를 읇

데 지금은 그 때와 비교해보면, 개

신 거라고 생각을 해요.

조리는 선생님과 그 선생님 옆에서

인적인 차원의 목표잖아요? 그런 점 에서 그 때와 비교해서 오늘날의 야 학은 어떤 걸 지향해야 된다고 생각 하시나요? A: 교양수업도 많이 해보고, 문학작 품도 같이 나누고 해보고 그러는 게 솔직히 우리가 어디 가서 그런 걸 해 보겠어요? 한시 같은 것도 읽고 노 동문학도 읽고요. 함께 무언가를 하 고, 함께 무언가 같은 목표를 위해서 가고, 함께 무언가를 나누는 걸 중요 하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하는 건 좀 부차적으로 생각하구요, 공동체 적인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족 같 죠? 매번 같이 밥 먹고. 하하. 전 그 런데다가 좀 더 가치를 두는 거 같아 요. 부끄럽다. 하하. Q: 일요일에, 학원에서 일을 하면, 9 시부터 7시까지 일하시면, 돈을 벌 수 있는데 그런 욕심은 없으셨는지? A:이건 제 특성인 거 같아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한데.. 저는 별로 돈 욕심이 없어 가지고. 제가 필요로 하 는 곳에서, 제가 나눌 수 있는 게 더 큰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건 평일에 많이 하면 되니까요. 돈에서 얻는 만족감보다 정신적인 것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더 크잖아요? 수업 에 들어가서 느끼는 긍정적인 에너

기타를 배우는 16살의 남학생, 그리

마치며 그렇게 인터뷰를 녹음해서 집에서 녹취를 적으면서, 참 오랜 만에 사 람냄새를 느꼈다. 인터뷰를 하기 전 에 가지고 있던 많은 의문들이 풀렸 다. 여기 배우러 오시는 분들은 학 원에 갈 형편이 안되는(좀 더 정확 히 말해 고등학교 등록금이 없어서 진학을 못하는) 남매와 70-80년대 에는 일하느라 공부를 못하셨던 아 주머니와 할머니 분들이다. 전태일 에 관한 수업을 하다 알고 보니, 그 당시에 평화시장에서 직접 일하신 분도 있다고 한다. 이 분들은 무엇 때문에 공부가 하시고 싶으신 걸까? 그리고 왜 검정고시학원이 아닌 이 야학으로 오시는 걸까? 처음 방문했 을 땐, 이런 궁금증부터 시작해서 참 많은 질문거리를 안고 있었다. 일요 일의 한나절을 함께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 까? 그러나 비록 두 번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여기 어머님분들이 얼마나 공부에 목이 마르셨었는지. 67세 되 는 나의 할머니뻘 되는 분에게도 배 우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이

고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하시는 어 머님분들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문 득 오지은의 <인생론>이라는 노래 가 생각났다. 거기에 보면 이런 가 사가 있다. “우울한 모던락 소년소녀도/ 고독한 고양이과 사람들도/ 혼자가 좋을 리 는 없어요/ 모두 다 힘들고/ 사실은 외롭고/ 새침은 더 이상 떨지 말고/ 사랑해요” 어떻게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도 있는 가사지만, 우리는 사실 다 외로운 별이 다. 인터뷰해주셨던 선생님이 일요 일에 오는 거 힘들지 않다고, 오히 려 여기 와서 더 치유를 받고 간다고 하셨던 그 말 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오뚜기 일요학교는 그렇게 서울 한 복판에서 몇 안 되는 ‘경쟁의 논리’ 와는 비켜난 곳이었다. 이곳은 누군 가에게는 마음의 안식처였고, 누군 가에는 젊은 시절에 배우지 못했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요일의 일 상이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그곳 에서 나는 교육은 ‘땀’이고, ‘숨결’이 라는 것을 배웠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57


야학탐방기 | 씨알배움터 손지혜 선생님의 야학 탐방기

청소년들을 위한 방과후 무상배움터

씨알배움터

부쩍

쌀쌀해진 11월 중순의 토요

째 휴강 중이란다.) 또한 이 모든

들 누구나 교육비 부담 없이 자신

일 오후, 야학탐방을 위해 혜화로

수업들은 개별적으로 수강신청이

에게 필요한 공부를 마음껏 할 수

터리에서 모인 우리는 저마다 한껏

이루어진다. 즉, 학생들이 자신에

있게 하자는 취지다.

움츠러든 채 씨알배움터를 찾아 걸

게 필요한 과목만을 선택해서 들을

었다. 의외롭게도 학교가 위치한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수업이

현직 고등학교 교사이신 걸로 알고 있

곳은 한 아파트 단지 안의상가이

끝나 자리를 옮긴 우리는 한동안

다. 학교 밖에서 이런 일을 시작하시게

다. 마치 소규모 공부방 같은 분위

‘화기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함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다면?

기의 공간 안으로 들어서자 온기가

께 식사를 했다. 식사 내내 대화와

삽시간에 몸을 녹인다. 둘러 앉은

정적이 놀라울 정도로 규칙성 있게

아주 친했던 장애인 친구가 있었

네 명의 어린 친구들과 한 성인 남

교차한다. 어른들이 짐짓 그 정적

다. 공부를 해서 자기는 사회복지

성이 외국인 선생님과 함께 ‘Just

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양 의연

사가 되고 싶다고 했던 친구인데,

the way you are’을 따라 부르고

하게 앉아있으려 애를 쓰는데, 학

그를 위한 공간이 없었다. 또 우

있었다. 미리 알고 오기는 했지만

생들이 “또 조용해 졌다.”며 불

리학교도 마찬가지이지만, 교육양

야학에서 원어민 선생의 영어회화

시에 소근거리곤 천진하게 웃었다.

극화가 너무 심하다. 그런데도 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풍경이 다소

다음은 식사와 함께, 그리고 그 후

교에서는 철저하게 이른바 ‘우열

생경하다. 매주 토요일 팝송을 한

다시 학교로 자리를 옮겨 진행된

반’을 나눠서교육을 한다. 나머지

곡씩 배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한상철 선생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는 쉽게 말하면 다 버리는, 들러리

영어회화 수업이 끝났고, 뒤에서

정리한 것이다.

를 세우는, 소외시키는 시스템인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우리는 마 침내 씨알배움터 식구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함께 수업을 듣고

거다. 그게 참 싫었다. 그렇게 그 씨알배움터는 어떤 구상으로 시작된 학

장애인 친구, 그리고 공부를 하고

교인가?

싶은데 더 물어볼 데가 없는 친구 들을 보며 이런 배움터를 시작하게

있던 남성이 바로 이 학교의 공동 대표, 한상철 선생님이시다.

우리사회의 사교육 문제와 교육 양

되었던 것 같다.

극화 문제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 2007년 아현동에서 문을 연 씨알

게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직접

인터뷰를 위해 씨알배움터에 대해서 예

배움터는 청소년들을 위한 무상교

체험되는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한

습해온 바로는 2007년 시작하실 때부

육에 초점을 둔 야학이다. 현재는

다. 해서, 교육에서 소외된 저소득

터 지금의 체계를 비교적 잘 잡고 시작

명륜동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곳

층 학생들에게 무료로 교육을 제공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닌가?

에 다니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인근

하는 무상배움터를 만들고 싶었다.

의 고등학교들에 재학 중이다. 수

즉, 적어도 배움을 원하는 청소년

아니다. 시행착오도 굉장히 많이

업은 평일 저녁과 주말 오후에 걸 쳐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목 이 과정별로 각 한 반 내지 세 반 으로 나뉘어 이루어진다. (물론 그 밖에 우리가 운 좋게 들어볼 수 있 었던 영어회화 수업이 진행되고 있 으며, 인기 강의였다는 기타 수업 은 담당 선생님께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시어 한달

58 공감 다섯 번째

“아주 친했던 장애인 친구가 있었다. 공부를 해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를 위한 공간이 없었다. 그렇게 그 친구와 공부를 하고 싶은데 더 물어볼 데가 없는 친구들을 보며 이런 배움터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후에, “여기에 와서 좋았다.” 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이다. 물론 건강하게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된다면 더 좋겠다.

들을 파악하고 야학운동의 역사를 알고 하는 게 맞다. 관련 세미나에 많이 참가하면서 생각한 건데, 간 단하다. 구성원들 모두가 책임감 이 있어야 한다. 또 그 가운데 구 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

겪었다. 예컨대 교사회의도 일주

도 웬만하면 다 다닐 수 있다. 오

일에 한번이던 것이 한 달에 두 번

히려 거기서 스스로 이탈하는 친구

이 되고, 지금은 한 달에 한번이

들이 문제이지. 그런 학생들은 대

되었다. 또한 국,영,수 말고 논술

안학교를 찾으면 된다. 물론 그런

과 같은 수업을 통해 사회를 바라

친구들이 우리 배움터를 찾아왔던

보는 관점을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

적도 있었지만, 적응을 잘 못하더

해서 그런 수업들도 진행했었는데,

라.교실 내 양극화 문제들의 해결

아이들이 외면하더라. “이런 수업

을 위한 ‘대안무상학원’ 정도의

왜 받아야 하나요? 시험에도 안 나

개념으로 접근하는 야학도 필요하

오는데.” 그렇다면 굳이 할 필요

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품화된 교

는 없는 거라 생각한다. 다만 아이

육이 아닌 것을 해보겠다는 생각

들에게 바라는 것은, 후에 “여기

을 했던 거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에 다녀서 좋았다.”라고 생각할

형태의 야학, 사업들이 더 늘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이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된다면 더 좋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현재에 와서는 일

은 거고. 실제로도 아이들이 이 곳

제강점기 시기, 산업화 시기에 야학이

선생님들의 영향을 조금씩은 받는

담당하고자 했던 부분들과는 다른 문

다. 같이 놀고, 맛있는 거 먹고,

제, 즉 경제적 여력에 따라 교육 격차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아

발생하는 부분들이 점점 더 많은 이들

이들은 많이 달라진다. 그러다 보

이 겪는 교육과정에서의 어려움일 것이

면 학생들로써도 애정이 생기고,

다. 가끔 오뚜기에 계시는 몇몇 선생님

또 그러다 보면 공부도 더 하게

들이 앞으로의 야학이 나아가야 할 방

되고 그러는 것 같다.

향은 그런 부분이 될 것이라 이야기하 시는 것을 듣기도 했다. 씨알배움터는 야학으로서는 상당히 특이한 형태이다. 씨알배움터가 앞으로 야학이 감당해야

씨알배움터는 야학인가?

고, 다른 선생님들도 현재 모두 2 년 이상 계셔온 분들이다. 야학 하 시는 분들이 대부분 대학생들이 많 고, 때문에 선생님들이 다소 안정 이 덜 된 부분이 많다. 교육적인 측면이든지 시스템의 측면이든지, 높은 수준으로 쌓이는 성과물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각개로 단발 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일의 반 복이 많았다. 하지만 이것이 이어 져 나가려면, 경험들이나 교육적 노하우들이 쌓여서 성과를 만들고, 그것을 나누고, 그게 다시 하나의 큰 흐름으로 변해가야 한다. (씨알

물론 건강하게 사회를 바라볼 수

특별한 야학, 씨알배움터

의 경우, 나는 그냥 버텨주는 것이

할 부분,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어떤 단초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 야학에도 종류가 많다. 생 활야학, 검정야학, 노동야학. 물론

씨알배움터를 처음 시작할 때, 그

어디까지나 그 위에서 출발해야 하

냥 시작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교

는 것이지만, 시대가 변했고 새로

육운동의 흐름

배움터와 같은 야학이나 공부방들 이 이러한 어떤 흐름으로 변해가기 위해서는) 그런 이어지는 책임감들 이 필요할 것 같다. 씨알배움터 생활 배움터의 대상 학생들은 대부분 (인근 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다. 왜 인가? 사교육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사 실은 고등학교에서이다. 고액의 과 외나 학원과 같 이 고등학교 과정을 위한 사교육 이란 워낙 상품화되어 있다. 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부분이다. 그런 데에 갈

운 종류의 교육소외계층은 계속해 서 발생한다. 탈북청소년이라든지 다문화가정의 자녀들과 같이 말이 다. 그러한 가운데, 현재 우리 사 회가 대학에 가야지만 더 많은 기 회들을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대 입과정에서 심각한 교육불평등 문 제가 존재함을 주목하는 우리 같은 학교도 있는 것이다. 예전처럼 학 교를 못 다니는 분들이 많았던 시 기와 지금은 다르다. 중학교는 무 상교육으로 이루어지고, 고등학교

“교실 내 양극화 문제들을 해결을 위한 ‘대안무상학원’ 정도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야학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품화된 교육이 아닌 것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던거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형태의 야학, 사업들이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59


야학탐방기 | 씨알배움터 수는 없지만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

시는 분들도 있고, 여기 계시는 선

키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대상이다.

학원에 못 다니는 학생들을 위한 대안

생님들의 지인들이 소개를 받아 오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해

무상학원이라면, 학원수업과 경쟁할 수

시는 분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내

서 수준을 높일 수 있게 하기 위함

있을 만큼의 양질의 수업을 확보하는

가 개인적으로 알던 분들도 모셨

이다. 어떻게 하면 교육을 통해서

문제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

다. 보통 1년에서 2년 정도 하시는

사회의 이동을 활성화 시킬 수 있

것 같다. 거쳐가신 선생님들은 무

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결과다.

그렇다. 큰 고민 중의 하나이다.

척 많다. 주요 관심사는 어떻게 학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최고의 선생님들이 접근해와서 이

생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다닐 수

의지이지만. (웃음)

친구들과 함께 있어줘야 하는데.

있도록 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주로 근처 학교 선생님들께서 직접

그렇다고 그저 단순하게 수학을 잘

하면 선생님들 스스로도 기쁨을 느

챙겨서 보내주시거나, 학부모님들

푸는 사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일

끼며 오래 다니실 수 있도록 할 수

께서 이 곳에 대한 정보를 알고 보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나 정서적

있을까이다.

내주신다. 내 경우에는 학교에서

으로 학생들과 함께 활동을 해 줄

기초생활수급자라든지 차상위계층

수 있는 양질의 선생님들이라는 것

학생들도 수업 별로 다르고, 선생님들

명단을 받아 그 중에서 올 만한 학

은 사실 어렵다. 테스트를 할 수도

도 자신의 수업이 있는 날만 나온다.

생들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구청,

없는 일이고. (웃음) 기본적으로

학교 전체차원에서의 단합이라든지 교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분들을 통해

수업은 그 선생님의 것이다. 완전

사들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어떻게 명단을 받기도 했는데, 쉽

히 다 맡긴다. 아이들 수준을 빨리

문제들이 발생하지는 않는가?

지 않더라.

파악하고, 그에 따른 교육과정을 만들어서 제시하는 것. 그걸 제시

그래서 캠프나 소풍 등 계절별로

학교를 안 다니는 학생들이 찾아오진

할 수 있다면 선생님은 누구나 가

하나 정도의 활동을 하려고 한다.

않나?

능하다.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교사들간의 소통은 사실 굉

모든 시민은 사실 교사다. 사회의

장히 어렵다. 매일 술을 마실 수도

처음에는 있었다. 학교를 안 다니

선배가 가르친다는 측면에서, 누구

없는 일이고.

는 학생들도 오고, 장애인분들도

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웃음) 최대한 시간을 조정해서 한 달에 한번은 교사회의를 하려고 한

찾아오시더라. 그런데 장애인 교 육은 굉장히 어렵다. 어디서부터

그렇다면 현재 계시는 선생님들은 주로

다. 그러나 사실 일주일에 한번 (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그래

어떤 분들인가?

수업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만해

서 노들야학을 소개시켜드리고 있

씨알배움터에 다녔던 학생들이 졸

도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는 상황이다.

업 후 찾아와 다시 선생님으로 계

교사회의 경우, 못 나온다 해도 상

청소년들이 꿈을 이루고 자신의 삶과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려면 누구나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충분히 계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60 공감 다섯 번째


관 없다. 나이가 있으신 선생님들

마치며

중에는 그냥 전화로 “선생님 알아 서 하셔요.”하시는 분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씨알배움터를 시작하신 후

상당히 느슨하다. 하지만 오히려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든가 가장 기억에

이렇게 해야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남는 학생이 있다면 말해 달라.

인터뷰 내내 들려오는 교육양극 화, 교육불평등이라는 단어가 씨알 배움터와 한상철 선생님의 주된 고

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게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첫 해에 다녔던 학생들 중에 수시

민과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

여기에 올인 해야 한다고 하면, 계

로 가장 먼저 대학합격을 한 학생

다.“청소년들이 꿈을 이루고 자신

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있었다. 그 직후, 언론사에서도

의 삶과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려면

해당 학생과 우리 배움터에 관심

누구나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충분

말씀하신 계절별 행사 내지 활동을 소

을 갖고 많이 찾아왔었다. 어떻게

히 계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개해 달라.

보면 우리 학교를 많이 알린 학생

한다.(씨알배움터 홈페이지, 한상

이다. 실제로 기사들이 나가고 갑

철 선생님의인사말 中)”는 믿음

봉사활동의 의미를 넣어서 가기도

자기 사람들이 막 찾아오기 시작

으로 시작된 아름다운 청소년들의

하고, 물론 그저 즐겁게 놀기도 한

했다. 학원인 줄 알고. (웃음) 대

배움터, 씨알배움터. 그곳의 내일

다. 올해의 경우, 봄에는 교사학

체로 두 세 번 오다가 다 가버렸

또한 기대된다.학생들과 함께 수줍

생한마당이라고 해서 꿈찾기여행

지만. 하지만 정작 그 학생은 우

게 노래를 부를 때와는 달리, 두

을 다녀왔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

리 학교에서 잘 키우고 심지어 등

시간여 만에 부쩍 수척해 지신 한

면서 걷고,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

록금도 어떻게 마련해주어 대학은

상철 선생님.“난 꼭 테니스를 치

다. 여름에는 원래 자연과 사람이

갔어도, 본인이 여기 다녔다는 것

러가야 한다.”,“정(봉우리)선생

라는 주제로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을 창피해하고 알려지고 싶어하지

님 연락은 이제 안받아야겠다.”

했는데, 여수 바람에 휩싸여 박람

않았다. 그런 식으로 이곳의 시스

는 선생님의 너스레(?)와 함께 매

회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는 인

템은 철저히 이용하고, 반면에 그

우 쌀쌀했던 그 날의 훈훈한 만남

생 최악의 여행 기획이었다. (웃

걸로 끝이다라는 식의 학생들도 있

이 마무리되었다. 초짜 인터뷰어가

음) 그리고 바로 얼마 전(가을)에

다. 그런가 하면 우리 배움터를 졸

두서없이 질문을 남발하느라 식사

는 농활에 다녀왔다.

업하고 선생님으로 다시 찾아오는

후 자리를 옮겨서까지 한 시간 남

학생들도 있고. 어느 쪽이나 기억

짓 계속된 괴롭힘(인터뷰)에도, 연

에 남는다.

신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진지한 답변과 좋은 말씀을 들려주 신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감사의 말 을 전하며 야학탐방 글을 맺는다.

씨알배움터 가을농활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61


야학 in | 전성하 전국야학협의회 대외협력처장

전성하 선생님:) 대전에서도 한마음으로 촛불을 밝혀요! 이 상 수 사회선생님 때는 11월 17일 추운 토요일. 전날 오뚜기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지라 매우 피곤해져 있었지만 아침에 성실하게 일어나 대전으로 향했다. 문집 인터뷰를 위해, 그리고 내 개인적인 레포트 작성을 위해 대전 한마음야학의 터줏대감이시자 전국야 학협의회의 대외협력처장을 맡고 계신 전성하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혼자 내려간 길이었고 아무래도 처음 진행해보는 인터뷰라 약속을 잡는 것부터 상당히 전국야학협의회 대외협력처장 걱정했지만 다행히 전성하 선생님은 소탈하고 털털하신 성격의 소유자라 시간을 정하 전성하 선생님 고 인터뷰를 하는 데에 있어서 다행히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전역 앞에서 전성 하 선생님을 만나고 선생님의 사무실로 가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오뚜기 일요학교의 교육부장 이상수입니다. (웃음)아니 무슨 귀한 시간까지야. 반갑습니다. 저는 전성하이고요. 대전 한마음 야학에서 명예교장을 맡고 있고, 전국야학협의회에서 대외협력처장을 맡고 있습 니다. 근데 이거 저를 무슨 인터뷰할 게 있다고... 저희 오뚜기에서 매년 문집에 전야협 분과의 인터뷰를 싣고 있습니다. 아참! 이거 하나 보시겠습니 까? 이건 저희 작년 문집인데, 작년 인터뷰는 사무처장 임승택 선생님이었습니다. 아이고 이걸 언제했대...허허허(실제로 아주 재밌어 하셨습니다.) 그럼 먼저, 전성하 선생님이 계신 한마음야학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희 한마음야학은 대전에 있는 평일야학입니다. 한글반, 초등반, 중등반, 고등 반, 그리고 주간반으로 나누어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1989년에 문을 열어서 현 재까지 내려오고 있지요. 한마음야학 나이를 보니 저와 같은 해에 태어났군요. 친구를 보니 반갑습니다. 정말 반이 많네요? 그 리고 주간반이라면, 주간에도 운영하십니까? 그렇죠. 아무래도 건물을 주간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가만 놔두는 게 마음에 걸렸고 또 주간에만 시간이 나고 그 때 교육이 필요한 분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래서 주간반도 운영하고 있지요. 아직 주간반의 교사는 저를 포함해 두 명밖에 없지만...하하 그럼 혹시 한마음야학의 교사와 학생은 몇 명인가요? 교사가 35명, 학생이 60여 명입니다. 정말 규모가 크군요 놀랍습니다! 혹시 수업 과목도 국영수사과/국사로 동일한가요? 62 공감 다섯 번째


네. 그렇죠. 그 외에 한글반도 있고요, 교양 수업으로 생활영어나 팝송영어, 한 문, 컴퓨터 등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일야학은 보통 교사들 본인의 수업시간에만 맞춰 나오는 것 같던데 한마음야학도 그런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저희도 상근 인원은 없어요. 수업 관련 준비 때문에 자기 수업 일정과 상관없이 종종 찾아가거나 하는 경우도 있죠. 저는 일요야학인으로서 그게 제일 궁금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서로 수업시간에만 왔다 가고 하면, 특 히 교사가 35명이나 되면 교사간의 결속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뭐 그렇긴 하지만 행사할 때는 서로 다 만나기도 하고, 독서반이나 산악반이나 동아리가 갖춰져 있어서 학교 시간 이외에도 서로 결속력을 갖출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동아리라....여러모로 놀라게 되네요! 한마음야학은 정말 여러모로 규모도 그렇고 다양한 부분이 많 군요. 아까 봤지만 1년에 한 번씩 문화제도 하고... 오늘 신세계를 많이 겪게 됩니다! 놀라워요! 정말 우수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항상 운영이 잘 되었던 건 아니에요. 저희 야학도 몇 년 전만 해도 교사가 다섯 명에 학생이 아무도 안 온 적도 있습니다. 학생이 아무도 없다면... 존속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랬지요. 그래서 저희가 딱 모여서 생각했습니다. 한 번 대전에 있는 모든 야학 을 다 돌아보고, 그러고 나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자고요. 대전에도 이 근처에 야 학 몇 몇 군데 있거든요. 그렇게 돌아보고 나서 한 번 우리가 제대로 다시 해보자 고 해서 점점 다시 살아났습니다. 시설의 변경도 그렇죠. 지금 저희 시설은 상당 히 크고 좋아요. 근데 옛날 시설은 영 좋지 않았습니다. ( 이 말씀을 하실 때 저는 왠지 눈물이 흘렀습니다...시설...) 물론 저희도 돈이 많이 없었기에 섣불리 할 결정은 아 니었습니다만, 미래를 위해 시설을 좋게 한 거죠. 그리고 시설이 깨끗하고 잘 정 돈되어 있으니 학생분들과 교사분들도 점점 많이 오게 되더군요. 시설에 관한 부분은 저희가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군요. 그러면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보도록 할게요. 사실 저희가 잘 모르는 부분인데, 전국야학협의회의 대외협력처장을 맡고 계십니다만 솔직히 구체적 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명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홍보라고 할 수 있죠. 전국야학협의회에서 하는 여러 가지 행사 라거나, 워크샵 같은 것들을 전국야학협의회에 가입된 여러 야학들에 알리고, 그 리고 기타 저희들이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다른 검정고시 총동문회라든가? 이 런 곳에 알리고 소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요. 어떤 역할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근데..검정고시 총동문회...가 있나요????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63


야학 in | 전성하 전국야학협의회 대외협력처장

그럼요. 옛날엔 검정고시로 학교를 통과한 청소년들이 상당히 많았던거 아시죠? 검정고시 총동문회에 정치인들도 많고 꽤 큰 곳입니다. 그렇군요. 정말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시 항상 묻게 되는 질문인데 야학을 처음 하게 된 계기가 혹시 무엇이신가요? 이 질문은 말하는 사람마다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 16년동안 야학을 했습니 다. 어..근데 처음 야학을 시작한 계기는 간단했어요. 야학을 하고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 거기 가면 예쁜 아가씨 있다고 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계기가 있지만 상당히 당황스러운 계기네요. 그리고 야학을 하다가 임기를 채우고 그만 뒀었어요. 그러다 다시 시작해서 지금 에 이른거지.. 저희 오뚜기에도 11년된 분이 계시긴 하지만.. 16년이나 하신 분을 보니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 다! 근데 이 부분은 제 과제와도 관련된 질문이기도 한데, 제가 레포트를 쓰느라 야학에 대한 자료를 조사했는데 이상하게도 야학의 초기, 즉 일제시대에 관련된 논문과 현대의 야학의 모습에 대한 논문 은 있는데 이상하게 1960~80년대의 야학에 대한 자료는 없더라구요. 그래서 제 주제가 야학의 변천 사에 대한 것인데 조사할 때 너무 자료가 붕 뜨더라구요. 혹시 전성하 선생님께서는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 시절이라, 저도 그 시절에 야학을 딱히 한 건 아니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 지만 저도 보고 들은 건 많긴 해요. 참고할 수 있는 책자도 있긴 한데... 여튼 야 학에 대한 건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일제시대에야 당연히 민족주의, 교육계몽운 동 이런 쪽과 관련이 많이 되어 있었고 자연히 야학인들도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겠죠? 그리고 1960~70년대쯤은 청소년야학, 노동야학이 활기를 띠고 있었 습니다. 그렇기에 사회운동적인 측면이 많이 발달했고, 현대에 와서는 아무래도 그 시절 학교를 다니지 못하신 50~60대의 그리고 주로 어머님들이 많은 거예 요. 사회가 변하니까 자연스레 야학이 변하게 되는 겁니다.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인식을 해야 하는 거군요. 잘 알겠습니다! 64 공감 다섯 번째


사실 제가 아까 전야협에서 하는 워크숍 같은 것을 언급했는데, 이런 건 정말 필 요하다고 봐요. 요즘 대학생들 생각해봐요. 우리 한마음야학에도 교사가 35명 있고 대학생들도 있는데, 목적은 각자 다르지. 정말 봉사시간만 채우려고 막연 히. 교사 같은 것도 해보고 싶다고 막연히. 이렇게 온 사람들도 있을 거란 말이 죠. 그런 걸 나쁘게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취직도 힘든 시대고, 사람들의 생 각도 바뀌고 하니까 그런 건 어쩔 수 없어요. 중요한 건 각 야학 자체가 그렇게 생각하고 온 사람들도 야학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자기만의 의식을 구축 할 수 있게끔 노력을 해야 하는 거에요. 그래서 워크숍 등등 야학이라는 것 자체 에 대한 교육과 연구, 생각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봉사라는 학교 과목 때문에 처음 야학을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야학이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게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은 공감이 가네요. 아직 저도 갈 길이 많은 것 같 습니다. 실은 최근에 봉사활동시간 인증을 받으면서 저 스스로도 ‘봉사시간 받으려고 오뚜기를 한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괴로웠거든요. 그건 지나친 걱정 같아요. 각자 바쁜 시간 내는 건데 그렇게 외부적으로 야학을 통해 자기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다면 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싶어요. 그런 것을 통해 또한 야학의 저변이 확대될 수 있고, 야학인들이 야학을 어떠한 마음 으로 하는 가는 분명 야학을 같이 이끌어 가는 사람들끼리 고민할 문제일 뿐 그 런 이득을 얻는다고 순수성에 대해 의심하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 히려 요즘 야학은 홍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져야죠. 그래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야학이라는 것이 어쩌면 필요할 수 있는 사람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네, 개인적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지 금...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요. 어떤 건가요? 정말 개인적으로 궁금한건데, 아까 예쁜 아가씨 있다고 해서 야학을 시작하셨다고 했는데... 있었나 요? (전성하 선생님 외 사무실에 계신 사장님 폭소, 사장님 曰, "마음에 공을 새겼겠지!") 뭐, 이쁜 아가씨들 있었죠. 뭐 다 이쁘지 않습니까. 네.. 저도 마음에 공을 새긴 사람으로서, 알겠습니다. 여튼 귀중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마음야학을 방문했던 저는 그곳의 정말로 좋은 시설(학원 같더군요!)에 다시 한 번 감탄하고 수많은 자료를 받고 또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인터뷰에 흔쾌히 협조해주신 전성하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다음에는 서울에 오실 때 저희 오뚜기도 방문 해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65


오뚜기 in | 지정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오뚜기人, 어떻게 지내세요? - 오뚜기 졸업생의 대학생활, 환한 미소가 아름다운 지정순씨와 함께 이 민 주 국어선생님 기분 좋았던 그날 밤 조금씩 추워지던 11월의 어느 밤, 기 분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뚜기일요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배움터에서 배 움을 이어가시는 멋진 오뚜기인을 만났 습니다. 오뚜기를 벗어나 한국방송통신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다니시는, 얼마 전 멋진 기타공연으로 우리들을 놀라게 하신 지정순씨와의 만남. 늦은 시간, 추 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어주시 던 지정순씨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두 런두런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좋 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마 음 맞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왜 이 리도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눈 깜 짝할 새에 지나가버린 그날 밤을 생각하 며, 몇 자 적어봅니다. 국어국문학도, 정순씨 개인적으로는 오뚜기를 졸업하고 상급 학교에 진학한 것 보다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국 어국문학'이 제가 공부하고 있는 학문이 기도 하지만 언뜻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학문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요새 친구들 은 '국어국문학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 거든요. 하지만 지정순씨는 무척 당연하 다는 듯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어렸 을 때부터 생각한 일이기 때문에 자연스 럽게 대학에, 특히 국어국문학과에 진학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 하시는 모 습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우리 문학을 좋아했고 66 공감 다섯 번째

자연스럽게 국문과에 진학하게 되었으 니까요. 함께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는 생각에 괜시리 더 가깝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부가 재미있다며 웃던 정순씨의 미소 하지만 동시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 다. 제가 경험한 국어국문학과의 공부 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거든요. 방송통신 대학교의 국문과 수업은 빡빡하게 짜여 있었습니다. 전공 뿐 아니라 컴퓨터, 영 어, 한문 교양수업까지! 대학생활의 낭 만을 즐기기도 전에 공부에 질리시지는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에 '공부하기 힘들 지 않으세요?'하고 묻자 정순씨는 만날 때 보았던 환한 미소로 답해주셨습니다. '조금 힘들지만 너무나 재밌어요!, 컴퓨 터나 영어, 한문 같은 교양수업은 힘들 지만 재미있네요!'하시는데 괜한 질문을 드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 를 열심히 하고 싶은데 글자가 작아 힘 이 든다고 말씀하시면서 부끄러운 듯 웃 으시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멋쩍게 웃 으시며 살며시 말씀하시는 그 모습이 왜 이리 아름답게만 보이는지, 역시 오뚜기 식구들은 모두 아름다운 사람만 있는 가 봅니다. 대학생활, 또 하나의 즐거움 '여섯소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문득 정순씨의 대학생활이 궁금해졌습니다. 대학에서는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


른 활동들도 다양하게 이루어집니다. 동 아리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취미를 찾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대외 활동을 통해 숨겨져 있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 다. 대학생활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정순 씨는 또 다��� 무척이나 환하게 웃어주셨 습니다. 그러면서 기타동아리 '여섯 소 리'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으셨습니다. 미녀 명가수와 기타 오뚜기의 명가수로 원래 노래 부르기 를 즐기셨다는 정순씨는 대학에 들어가 고 나서 기타동아리에 가입하셨다고 합 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조금씩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보니 너무나 재밌으셨다 고 해요. 특히 이번에 공연을 하면서 실 력이 많이 느셨다고 수줍게 이야기 해주 셨습니다. 정순씨의 손가락을 보니 굳은 살이 굳건히 박혀있는 모습에 얼마나 많 은 시간을 연습하셨을지 짐작 할 수 있 었습니다. '미녀와 야수'라는 팀 이름을 직접 지으셨다고 자랑을 하시는데 그 뿌 듯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제 마음도 든든해졌습니다. 앞으로도 더 욱 기타에 매진하겠다고 하시는데 그때 정순씨가 보여주신 어린아이 같은 천진 난만한 표정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정순씨에게 '대학'이란? 길지 않은 시간 정순씨와 이야기를 나 누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과연 ' 대학'은 어떤 공간일까하는 생각이요. 어 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학을 선택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 들은 정말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의 문 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오직 취업을 위 해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열심히 놀기 위해서!) 대학을 찾기 도 합니다. 정순씨께 '대학'이 어떤 의미 를 가지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져 "정순 씨께 대학은 어떤 곳인가요?"라는 다소

어려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순씨는 잠 시 생각하신 후 또 전의 그 화사한 미소 를 보여주셨습니다. '오뚜기가 항상 마음 에 남는 곳이라면, 대학은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갈 곳이 생기는 곳이라고 생각 해요. 나이 들어 갈 장소가 참 없잖아요, 탑골공원 같은데 말고는……. 대학은 내 가 나중에라도 갈 곳을 만들었다는 점에 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씀 하시는데 정순씨가 얼마나 오뚜기와 대 학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습니 다.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정순씨의 눈빛 이 까만 밤하늘 샛별처럼 반짝반짝 빛나 고 있었으니까요. 오뚜기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준비해간 질문을 드렸습니 다. '대학교에 진학한 선배로서 오뚜기인 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뭐라고 이야기 해 주시겠어요?'라는 다소 상투적인 질문에 정순씨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 오뚜기 사람들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공 부했으면 좋겠습니다. 공부의 길은 끝 이 없는 것 같아요. 시험 이후에도 계속 해서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기 타와 공부를 사랑하는,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지정순씨는 마지막까지 뜨거 운 열정을 남김없이 보여주셨습니다. 이 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 가 그친 11월 어느 날의 밤거리는 정순 씨의 미소만큼이나 환하게 우리의 마음 을 채워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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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묘비명 쓰기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바보처럼 살다간 김옥순

無名子의 墓 잊혀진 그대에게 1987 - 2005 어느 한 추운 겨울 바닷가 오두막에 편히 잠들다 김주현

나의 꿈을 이루고 간 위대한 사람 배정현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이란 '모두 죽음에 내 던져진 존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때로는 원하는 대로, 때로는 이끌려가며 자신의 삶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오뚜기인들은 지금 어떤 삶을 그려가고 있을까요? 죽음 뒤에 남겨질 자신의 묘비에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은지 오뚜기인들에게 물었습니다.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하고, 진지한 대답이 나왔는데요. 여러분도 보시면서 자신의 삶 뒤에 어떤 말을 남길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68 공감 다섯 번째


학문의 길을 끝이 없다 기회 있을 때 최선을 다하자 임정례

나는 책임은 다했노라 열심히 살고 나는 간다 다른 세상에도 아름다운 꽃이 있는가? 평생 꽃하고 살다 꽃의 거름이 되고 싶다 김상순

樂 정해강

이 세상에 태어나 정말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했다 아들아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 한다 박순이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 박순이 우리가족을 만나서 행복했다 박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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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묘비명 쓰기

잘 놀다갑니다 천천히 오이소 손지혜

당신과 함께이기에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정봉우리

재미나게 살다가 갑니다 ㅋㅋ 후회도 미련도 없어요~ 할말이 없네요~ ㅋ 빨리 다시 태어나고 싶어욧! ㅋ 다음 생엔 얼짱 훈녀로 태어났으면…ㅋㅋㅋ 꺄~르르르 히히 배유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겠습니다 김청림

한 마디씩은 하고 가세요 무슨 말이라도 여기서도 궁금한게 많거든요 이 글을 쓸 때의 저는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죽지 않은 저와 대화 하고 있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어디의 누구신가요? 히히 이상수

70 공감 다섯 번째


1분 1초도 아껴가며 내 삶의 마지막 까지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나 여기 편안히 잠들다 내 생의 무거운 짐을 이곳에 내려놓다 정동숙

無語別 이민주

열심히 살다 가자 최선을 다하다 가자 포기는 없다 안현임

당신이 선물해 주신 이 멋진 세상에서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게 살다가 당신 곁으로 갑니다 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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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묘비명 쓰기

사랑하는 딸에게 아주 힘들게 살고 있는데 엄마한테 기쁜 일이 생겼어 한 생명이 찾아 왔단다. 그건 바로 오빠였지. 엄마는 오빠를 아주 힘들에 낳았어. 기뻐할 시간도 없었어. 하룻밤을 병원에서 자고 아침이 되었지. 그런데 오빠는 경기를 한거야.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지. 그래서 오빠를 소아아동병원으로 아빠가 입원을 시키고 왔어. 엄마는 혼자 집으로 오게 되었지. 아빠는 다음 날 병원으로 갔어. 오빠는 인큐베이터에 있었지. 오빠는 검사를 받았단다. 검사를 받았는데, 오빠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거였어. 주변 사람들은 포기하라고들 했지. 그때는 의료보험도 없었고 돈도 많이 들었단다. 그래도 아빠는 병원으로, 직장으로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오빠는 이십여일 만에 퇴원을 해서 집으로 왔어. 잘 자라 주었지.

72 공감 다섯 번째


엄마는 오빠만 키우면서 살기로 했어. 엄마는 오빠를 유치원, 학교에 보내면서 참 많이 울기도 했고, 마음도 항상 아팠어. 그런데 11년 만에 딸인 네가 엄마한테 온거야. 엄마는 너를 수술을 해서 낳았어. 엄마는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고 물었지. 아이는 건강하고 손가락 발가락 다 정상이라고 간호사님이 건강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엊그제 낳은 것 같은데 벌써 사춘기를 겪고 있네. 딸 힘들지? 엄마가 해줄게 없네. 사실은 아들, 딸에게 항상 미안해. 이 글을 쓰는 건 우리 딸이 힘들어도 오빠를 잘 보살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야. 아들, 이 다음에는 장애 없는 세상에서 멋지고 늠름한 엄마랑 다시 꼭 만나자 엄마는 만약 천년이라는 세월을 준다면 너희들을 위해 쓸거야. 아들, 딸 사랑해! 딸아, 이 다음에 엄마가 없어도 ... 눈물이 다 마른 줄 알았는데 또 울고 있네. 이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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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일요학교 문집 2012년호 | 공감 다섯 번째, 오뚜기는 가족입니다 오뚜기일요학교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로24바길 36-16(우) 121-871 T. 02)713-3478 홈페이지 http://cafe.daum.net/oddug2 발행일 2012년 12월 30일(통권 5호) 발행인 오뚜기일요학교장 편집장 정풍녀 편집부 상수풍뎅이, 핑크찹살떡, 깐깐한노인 디자인 술풍녀, 수석작가김대환 인쇄발간 청림댁(주)유성프린팅


오뚜기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