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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빛을 발하는 진남호의 눈이 그녀를 정시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군. 어쩌면 반아우보다 더." "호호... 오라버니가 들으면 화를 내겠군요." 두 사람의 입술은 다시 부딪쳤다. 최후의 선까지는 넘지 않았으나 그들은 어느 새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무릇 인간의 육체란 사랑을 표현하는 훌륭한 도구다. 그들은 그것을 십분 활용하여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외인이 들어올 수 없는 은밀한 곳, 즉 반희빈의 규방에서 그들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서로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조용한 침입자(?)가 있었다. '아!' 아앵이었다. 그녀는 차를 끓여 가지고 왔다가 방안에서 벌어진 광경을 목도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전처럼 놀라거나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다만가슴이 마구 쿵쾅거려 내심 이렇게 부르짖고 있었다. '다행이야. 문을 살짝 열어서.' 그녀는 될수록 빨리 돌아서 나가고 싶었으나 어찌된 셈인지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몹시도 당황했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결국 나름의 용인(容認)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진남호에 대한 반희빈의 마음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아앵은 이미 항거를 포기했었다. 다만 그때까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진남호가 자신이 모시는 아가씨에 비해 너무 격이 떨어지지 않나 싶은 아쉬움 뿐이었다. 하지만 그 면에 있어서도 아앵은 점차 시간이 흐르자 자신과 타협을 보고 있었다. 마치 산짐승처럼 보이던 사내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심중에 부딪쳐 왔던 것이다. 이제 아앵은 진남호가 무섭기는 커녕 그를 대하면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진남호에게서 난생 처음으로 남자를 느낀 것이었다. 그리고 반희빈과 그가 한몸을 이루며 입술을 나누는 광경에 아앵이 흥분한 것도 따지고 보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중원의 법도상 시비는 항상 주인과 마음까지도 같이 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그녀는 반희빈이 느끼는 감동과 희열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단지 아앵은 무척이나 부끄러웠는데, 이는 그녀가 남녀의 육체적인 언어에 대해 너무도 무식(?)했기 때문이었다. '아! 내가 왜 이럴까?' 아앵은 총총걸음으로 반희빈의 처소를 벗어나며 중얼거렸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자신이 찻잔을 방안에 놓지 않고 도로 들고 나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날 이후로 아앵은 사람이 달라져 버렸다. 걸음도 전처럼 빨리 걷지 않았으며, 목소리도 다소곳 하게 낮추어져 있었다. 심지어 크게 웃는 법도 없었다. 이렇듯 갑작스럽게 요조숙녀로 변해 버린 아앵에게 오죽하면 반희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은 적도 있었다. "아앵, 왜 그래? 너 어디 아프니?" "진형님, 죄송하외다. 소제 때문에......." 반희빈. 그녀는 지금 반희문이라는 가공의 인물이 되어 진남호와 마주 하고 있었다. 장소는 여전히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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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호가행 제5권 검궁인 저 42장 뇌정삼식(雷霆三式)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꽤 많은 날짜가 지나고 있었다. "또 그... 고맙다는 말......." 주서혜의 음성이 격정을 띄었다. 그녀는 진일문이 떠날 때면 언제나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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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호가행 제5권 검궁인 저 42장 뇌정삼식(雷霆三式)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꽤 많은 날짜가 지나고 있었다. "또 그... 고맙다는 말......." 주서혜의 음성이 격정을 띄었다. 그녀는 진일문이 떠날 때면 언제나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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