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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위가 없지만." 그는 침울한 얼굴로 덧붙여 말했다. "아무튼 대도독 나리께서 누이와 희문의 부친이시니 나는 꼭 닭 ㅉ던 개 꼴이 되어 버렸군. 후후... 그럼 나는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친구를 잃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져 버렸으니 영락 없는 결박 당한 신세가 되지 않았소?" 진남호의 한탄은 대번에 반희빈을 격동으로 몰고 갔다. "가가......." 그녀는 말할 수 없는 자책에 휩쓸리며 자신도 모르게 진남호의 품에 몸을 던졌다. 뜻밖인 것은 진남호의 반응이었다. 그는 나긋한 여인의 몸이 안겨 들자 흠칫하더니 그녀를 밀었다. "가가, 왜......?" 반희빈은 충격을 받은듯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이런 모욕은 난생 처음이었다. 미소 한 번에도 인색했던 그녀가 자청하여 안겼는데도 진남호는 되려 그녀를 밀어낸 것이었다. 그는 무뚝뚝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희문 아우를 잃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오. 어차피 우리는 신분이 다른 사람이니 피차에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나중에 또 마음이나 다치고 말지, 별 수 있겠소?" 반희빈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무지할지는 몰라도 상대에 에 대한 배려만은 누구보다도 지극한 위인이라는 것을. 실상 진남호라는 인물은 그녀의 판단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남자다운 남자였다. 완벽한 그녀가 바라던 이상형, 즉 교활하지 않으며 변심할 줄 모르고, 또 매사에 초지일관한 데다가 타고난 도량까지 갖추고 있는 남자....... 반희빈은 이런 남자가 눈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더우기 간호를 하는 동안 그녀는 무수히 그의 맨살과 접했으며, 그 과정을 통해 그와 자연스럽게 가까와져 있었다. 반희빈은 가슴이 벅차 오른 나머지 내심 중얼거렸다. '이 분은 단지 좋은 여건에서 자라나지 못했을 뿐이다. 만일 이 분에게 새로운 환경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녀의 눈이 불현듯 이채를 발했다. 이어 그녀의 입가에는 모종의 의미가 담긴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바보 같은 진가가." 느닷없이 튀어 나온 그녀의 말에 진남호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곧 그는 탄식을 불어냈다. "그렇소, 나는 바보요." "정말 바보가 틀림 없군요. 자신이 왜 바보인 줄도 모르는 그런 바보란 말이에요." "흐음?" 멍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반희빈은 와락 달려 들었다. 이번에는 안긴 것이 아니라 그의 목을 얼싸 안고는 입술을 맞추었다. "읍!" 얼떨결에 입술을 도난 당한 진남호는 괴상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피하지는 않았다. 그도 남자다. 그는 반희빈의 입술을 세차게 빨아 들이는 한편 휘감겨 오는 여체를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입술과 입술이, 혀와 혀가 얽히며 남과 여의 본능은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그들 두 사람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장벽이 비로소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두 남녀는 그렇게 한 몸이 된 채 오랫 동안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 한 순간이 영원이기를 바라는 그들은 서로의 입술을 탐닉하며 황홀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한참 후에야 두 사람의 입술이 떼어졌다. 반희빈은 여전히 진남호에게 안긴 채 그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속삭였다. "알겠어요? 내 진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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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호가행 제5권 검궁인 저 42장 뇌정삼식(雷霆三式)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꽤 많은 날짜가 지나고 있었다. "또 그... 고맙다는 말......." 주서혜의 음성이 격정을 띄었다. 그녀는 진일문이 떠날 때면 언제나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