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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독부의 천금소저(千金小姐)가 사냥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희빈은 화려한 궁장을 벗어 던져 버렸다. 대신 그녀가 걸치고 있는 것은 간단한 흑의경장이었다. 소매가 좁고 몸에 착 달라붙어 활동하기 편한 단삼과 바지 차림이다. 만일 반희빈의 이런 모습을 그녀의 모친이 안다면 당장 날벼락이 떨어질 일이었다. 실제로 아앵은 지난번 똑같은 일로 마님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반희빈을 만류했다. "아가씨, 제발....... 마님이 아시면 어쩌시려고요?" 의장을 갖춘 반희빈은 빙긋 웃으며 돌아섰다. 궁장을 입었을 때와는 전혀 상이해 보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차림을 해도 그녀의 타고난 아름다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세필로 그려 놓은 듯한 아미(我眉)와 날씬하게 뻗어 내린 콧날, 게다가 도톰하게 맞물린 입술은 짙붉은 색을 띄고 있어 그녀가 뜨거운 정열의 소유자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흑요석처럼 반짝이고 있는 눈은 무엇이든 다빨아들일 것 같은 강렬한 흡인력을 발산해 내고 있었다. 그녀의 키는 여인치고는 꽤 큰 편이었다. 그런데다가 흑의경장을 입고 있자 그녀의 모습에서는 야성미(野性美)라는, 또 다른 매력이 전달되고 있었다. "호호... 이제야 살 것 같다. 아앵, 너만 입을 다물면 대체 누가 알겠니? 그동안 한 달이 가깝도록 방안에 갇혀 수( )만 놓고 있었잖아? 난 갑갑해서 죽는 줄 알았어." "아가씨......!" 아앵은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반희빈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불쌍해 보일 정도로 굳어 버렸다. "글쎄, 너만 아무 소리 안하면 된다니까. 호호호......." "아가씨, 사냥같은 건 원래 거친 사내들이나 하는 비천하고 야만적인......." 아앵은 말하다 말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표현이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정작 반희빈은 화를 내기는 커녕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홋! 아앵, 네 말이 맞아. 사냥은 비천하고 야만적이지. 그런데 나는 말이다, 고귀한 척 얌전을 빼거나 방안에 앉아 뭉기적거리며 재미도 없는 수를 놓는 것보다는 그 쪽이 훨씬 좋단다.아! 시원스럽게 야산(野山)을 달리며 활을 쏘는 그 기분이란......." "아, 아가씨께선 어찌 그런 말씀을......!" "호호홋! 어쩌겠니? 원래 그게 나인 걸. 호호호......." 반희빈은 아앵의 창백하게 변한 얼굴을 바라보며 연신 웃어 제꼈다. 아울러 그녀는 벽장 속으로부터 깊이 감추어 놓았던 활과 전통(箭筒), 장검 등을 꺼내 부지런히 몸에 착용했다. 이윽고 준비를 다 마친 그녀는 서슴없이 밖으로 향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누가 이런 그녀의 이런 말투와 행동을 보고 도독부의 천금소저라 여기겠는가? 묘봉산(妙峯山). 굽이굽이 이어지는 계곡이 더 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그 사이로 흐르는 맑고 차가운 계류는 가히 장관을 이루었고, 이로 인해 이 곳은 일찍부터 북경의 명소로 손꼽혀 왔다. 대찰명사(大刹名寺)가 많아 평소에 북경의 관리들이나 귀공자들이 마나님과 더불어 자주 오르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최근 들어 폭설이 길을 끊어 놓아 누구도 오를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사실 묘봉산은 산세가 수려한 반면 무척 험준했다. 끝을 알 수 없는 까마득한 계곡과 절벽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으며, 때로는 무서운 맹수가 출몰하기도 했다. 휙--! 묘봉산 기슭을 빠르게 날아 올라가는 것이 있었다. 흡사 한 줄기 바람을 연상시키는 그것은 전신이 피처럼 붉은 말(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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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호가행 제5권 검궁인 저 42장 뇌정삼식(雷霆三式)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꽤 많은 날짜가 지나고 있었다. "또 그... 고맙다는 말......." 주서혜의 음성이 격정을 띄었다. 그녀는 진일문이 떠날 때면 언제나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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