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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사태는 설미령을 힐끗 돌아다보았다. "뭐 해요? 설부인도 어서 나머지 극락노(極樂奴)들을 깨워요." 이를 악무는 설미령의 눈에 한 가닥 비애가 스쳤다. 상대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었으며 내놓고 비난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설미령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표정을 차갑게 굳혔다. 그리고는 절정사태의 지시대로 태연하게 예의 구혼령을 흔들었다. "일어나라, 극락의 노예들이여......." 역시 관뚜껑들이 일제히 날아가며 앞서의 네 구를 제외한 사십일구의 시신들이 일어섰다. 그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 안색이 푸르스름한 청동빛이었으며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신이라고 감안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한 형상이었다. 절정사태가 다시 말했다. "이젠 이 노예들을 신궁으로 데려가는 일만 남았다. 금검령주, 나서도 될 것 같네." 스슷--! 천정에서 하나의 묵영(墨影)이 떨어져 내렸다. 일신에 흑의를 걸친 인물, 그는 바로 허무영이었다. 절정사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금검, 자네의 공이 컸네. 그런데 동검은......?" 그때였다. 스팟--! 빨라도 이렇게 빠를 수가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아마도 번개이리라. 하지만 허무영이 허리춤의 묵봉을 뻗어낸 속도는 적어도 그것을 백 개로 쪼갠 듯 했다. 절정사태가 놀라 몸을 날리려 했을 때는 이미 묵봉이 그녀의 목을 꿰뚫고 뒷덜미까지 관통된 후였다. "크윽! 네, 네가......." 믿어지지 않는다는듯 절정사태는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그런 그녀의 얼굴....... 놀랍게도 그 얼굴은 더 이상 불문에 몸을 담은 비구니의 그것이 아니었다. 흡사 지옥의 야차가 현신한듯 끔찍하게 변해 버린 그 얼굴은 마(魔), 바로 그 자체였다. 딸랑! 절정사태의 손에서 영령이 떨어졌다. 불도를 닦는 대신 죄업(罪業)만을 일삼던 그녀의 육신은 무너지듯 뒤로 쓰러졌다. 츳! 뻗어나갈 때 만큼이나 빠르게 묵봉이 회수되었다. 허무영은 담담한 시선으로 묵봉을 타고 흘러 내리는 선혈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정녕 뜻밖이었소. 사태가 고주였을 줄은......." 문득 창백한 얼굴로 서 있던 설미령이 맥없이 푹 쓰러졌다. "설부인!" 놀란 그에게 밖으로부터 의원 차림의 한 중년인이 걸어 들어오며 말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설부인은 고주가 죽음으로써 체내의 고독이 자멸하게 되자 탈진했을 뿐입니다." 허무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선을 돌렸다. "그럼 저들은......?" 말하다 말고 그는 흠칫 굳어졌다. 사십오구의 시신들이 마치 썩은 짚단처럼 속속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중년인, 즉 장만생은 빙긋 웃었다. "저들도 마찬가지 현상입니다. 다 같이 앞으로 사십구일간만 자고 나면 모두 원상태로 회복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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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호가행 제5권 검궁인 저 42장 뇌정삼식(雷霆三式)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꽤 많은 날짜가 지나고 있었다. "또 그... 고맙다는 말......." 주서혜의 음성이 격정을 띄었다. 그녀는 진일문이 떠날 때면 언제나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