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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한 것이었다. 그의 신형은 달빛이 휘영청한 밤하늘을 유성처럼 가르고 있었다. 본능의 충동이 그를 정신없이 내닫게 했다. 휘이이익--! 쏘아진 화살처럼 그어지는 한 줄기의 선(線). 그것은 경신법의 최고봉이라는 어풍비행술(於風飛行術)에 버금갈 정도로 빨랐다.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장만생. 그는 막 잠자리에 들려다가 흠칫 했다. 쾅쾅쾅....... 다급히 문 두드리는 소리에 그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그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맹주!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진일문이었다. 그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잔뜩 충혈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입술은 심한 갈증으로 인해 바싹 말라 있었다. "나... 환락산에......." 진일문은 말도 다 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맹주!" 장만생은 급히 그를 부축하여 내실의 침상에 갖다 눕혔다. 이어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환락산이라면 희대의 미약인데, 맹주께서 어찌......?" 진맥을 해 본 장만생은 혀를 내둘렀다. "정녕 놀랍다. 이 지경이 되도록 욕념을 억제하셨다니,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혈맥과 심장이 터져 즉사했을 것이다." 그는 언뜻 미간을 찌푸렸다. "일각만 더 일찍 왔어도 손을 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늦었다. 방법이라곤 오직......." 무엇을 생각했는지 고개를 드는 장만생의 눈에는 한 가닥 결의가 엿보였다. "할 수 없지, 대를 위해서는 소가 희생되어야 하는 법!" 그는 진일문을 안더니 비밀문을 열고 밀실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기이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방의 한가운데에는 장방형의 욕조가 놓여 있었고, 그 속에는 기이한 향기가 느껴지는 약수(藥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약수에는 한 여인이 잠겨 있었다. 바로 사영화였다. 그녀는 반듯이 누워 있는 자세였는데, 숨을 쉴 수 있도록 코 윗부분만이 약수의 수면 위로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나신이었다. 탄력이 넘치는 처녀지신은 조금씩 흔들리며 약수에 잔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장만생은 그녀의 나신을 보고도 일체 동요가 없었다. 그는 의원으로서 이미 그런 방면은 초월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사영화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 보더니 혀를 찼다. "쯧! 모공을 통해 극락고는 거의 배출시켰거늘......." 그러나 장만생의 얼굴에는 곧 엄숙한 기운이 감돌았다. "용서하시오, 사소저. 진대협의 생사는 향후 무림을 좌지우지하게 될 중대사요. 소저의 청백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소이다." 그는 욕조 안에서 사영화를 안아 올렸다. 유리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살결에서 약수가 방울방울 흘러 내렸다. 힘없이 젖혀진 고개 뒤로는 윤기 흐르는 긴 흑발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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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호가행 제5권 검궁인 저 42장 뇌정삼식(雷霆三式)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꽤 많은 날짜가 지나고 있었다. "또 그... 고맙다는 말......." 주서혜의 음성이 격정을 띄었다. 그녀는 진일문이 떠날 때면 언제나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