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8-5

Page 5

뇌정도는 그가 진기를 거두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즉시 뇌정환으로 변신해 그의 손목에 감겨 버렸기 때문이었다. 진일문은 감정의 동요가 가라앉자 현실로 돌아왔다. '이 곳에 온 지도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군웅들은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눈에 안쪽의 내전으로 향해져 있는 통로가 들어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 곳을 지나쳐 내전으로 들어갔다.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게 꾸며진 곳. 바닥에는 광택을 자랑하는 천축산의 비단이 깔려 있었고, 벽은 금박으로 도금이 되어 있었다. 기둥에는 해독할 수 없는 문자와 그림들이 잔뜩 새겨져 있어 한층 이색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내전은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그 흔적조차도 ㅊ아볼 수가 없었다. 진일문은 내전을 나와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통로는 단순하게 뻗어 있었으며 여러 개의 내전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가 개중 다섯 번째의 내전에 들어섰을 때였다. '맙소사!' 그는 아연해진 나머지 벌어진 입을 채 다물지 못했다. 내전에는 수십 명의 여인들이 원형의 진세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하나같이 밀납인형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녀들은 누군가에게 사혈이 찍혀 모두 죽은 상태였다. 여인들은 숨이 붙어 있지 않을 망정 속살이 환히 비춰 보이는 투명한 망사의를 입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풍염한 몸매는 유감없이 그 굴곡을 과시했다. 진일문은 그런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슴 한 귀퉁이가 써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대체 누가 있어 이 많은 여인들을 죽였단 말인가?' 손을 대 보니 여인들의 몸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죽은지 얼마 안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진일문은 의혹에 싸인 채 다시 안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 때, 느닷없이 석부 전체가 불안스러운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르....... 어디선가 굉음마저 울려 왔다. 진일문의 안색이 일변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형을 멈추며 청력을 기울였다. 이어 석실의 바닥에도 귀를 갖다대어 본 그는 아득한 곳으로부터 연이어 터지는 폭음을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석부가 무너지려 하고 있다!' 진일문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만일 석부가 이대로 붕괴된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여하한 고수라도 출구를 찾지 못하는 한 꼼짝없이 생매장되는 것이다. 그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쾌속절륜한 신법을 발휘해 몸을 날렸다. 어물어물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판국이되, 그것은 비단 그 자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휘이익--! 바람을 가르듯 통로를 내닫는 동안 진일문은 다시 몇 개의 석문을 만났다. 석문들은 모두 개방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기관장치로 열게 되어 있었으나 기관은 파괴된 지 오래였다. 한참을 달리던 그는 마침내 여러 사람의 호통소리와 병장기 부딪는 소리를 접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약 십여장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는 호통소리 중에서 한 가닥 귀에 익은 음성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 음성은 황룡보주의 음성이 아닌가?' 진일문은 더 없이 다급한 심정이 되었다. 삼가의 가주들이 있다면 그 곳에는 육선고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을 가능성이 짙었다. 그는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