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어둠 속에서 검광이 섬전처럼 허공을 갈랐다. 그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금검이 탄지지간에 발검된 것이다. 그의 눈은 한 곳에 정지되어 있었다. 그 앞에는 백일홍(百日紅)이 어둠이 무색할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스스스....... 백일홍이 갈라졌다. 한 조각, 두 조각....... 꽃잎은 마침내 정확히 열두 개로 갈라져 떨어져 내렸다. 피처럼 붉은 백일홍의 조각들이 그의 가죽신에 고스란히 얹히는 찰나였다. 한 가닥 낭랑한 음성이 그의 고막을 울렸다. "축하하네, 사제. 자네의 구천십지독존(九天十之獨尊) 검법이 십성의 경지에 이르렀다니. 생전의 사부께서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겠는가?" 독고준의 몸이 한 차례 가벼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돌아섰다. 그의 면전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성낙수가 미소띤 얼굴로 서 있었다. "사형께서는 전에 하지 않던 짓을 하는구려. 언제부터 남의 무공시전이나 훔쳐보는 버릇이 생겼소?" 존대를 표방하고 있었으나 그의 말투는 다분히 시비조였다. 그에 반해 성낙수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고의는 아니었네. 그저 우연히 보게 된 것 뿐이지." 독고준은 상대의 이런 면을 지극히 혐오했다. 그 자신도 어느 정도까지의 위선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성낙수를 보면 대개 구역질이 치밀곤 했다. 그는 더 보고 싶지 않다는듯 수중의 금검을 거두며 홱 돌아섰다. "잠깐만! 사제." "무슨 일이오?" 독고준이 돌아서지도 않고 물었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말하시오." 성낙수는 역시 그 특유의 부드러운 어조를 잃지 않았다. "자네, 혹 요즘 사매의 거동에서 느껴지는 것이 없나?" "무슨 뜻이오?" "후후... 내 진즉부터 알고 있었네. 자네가 사매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을. 굳이 나에게까지 숨길 필요는 없네." 독고준은 그제서야 몸을 돌려 그와 마주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안심하게. 나는 사매를 사이에 두고 자네와 경쟁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이 사형은 적어도 스스로의 주제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그 말을 하려고 나를 불렀소?" "하하하... 그건 아닐세. 그저 말이 나온 김에 확실히 입장을 밝히려 했을 뿐이네. 나는 다만 사제가 염려되어서......." 독고준은 실소했다. "염려? 사형께서 나를 말이오?" "글쎄, 과장되이 들렸다면 미안하네. 하지만 나는 정녕 한 가지만은 심히 걱정이 되네. 사매의 관심이 자네가 아닌 외부인에게로 쏠리고 있으니 말일세." 독고준의 안면 근육이 비정상적인 꿈틀거림을 보였다. "외부인......?" "그렇네. 아무래도 그 귀불여란 위인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독고준은 파안대소했다.

b8-5  

영웅호가행 제5권 검궁인 저 42장 뇌정삼식(雷霆三式)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꽤 많은 날짜가 지나고 있었다. "또 그... 고맙다는 말......." 주서혜의 음성이 격정을 띄었다. 그녀는 진일문이 떠날 때면 언제나 고맙다고...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