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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사영화는 느닷없이 오열을 터뜨리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무릎이 바닥을 향해 무력하게 꺾이고 있었다. "사낭자!" 진일문은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그에게 또 다른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토록 도도했던 명가의 자존심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도와 주세요!" 사영화의 입에서 튀어나온 절박한 한 마디가 진일문의 가슴에 마치 육중한 둔기인양 세차게 부딪쳐 왔다. "대체 무엇을......?" "저를 뻔뻔스럽다 욕하시겠지요. 아니, 설사 때리신들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그러나 저로서는 이 방법 외에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없어요. 가문의 위세를 믿고 그토록 거만을 떨었건만 무림 사대신가의 명예는 땅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이고, 천하에서 저를 도와줄 사람은 누구도 없어요." 일단 말이 터져 나오자 사영화는 일사천리로 내달았다. 어렵사리 입을 떼놓은 만큼 그녀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눈물은 비오듯 쏟아져 내려 그녀가 쓰고 있는 면사를 비롯해 온 얼굴을 적셨다. 진일문. 그는 계속 묵묵히 사영화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춤을 추듯 격렬하게 들먹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녀린 어깨는 또한 선명하게 그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44 장 황룡사가보(黃龍査家堡)의 변고(變故) 최근 황룡사가보에서는 비밀리에 회합이 이루어진 바 있었다. 보주인 사운악이 명첩을 돌려 삼대신가의 가주들을 초빙했다. 그것은 워낙 은밀히 진행되어 천하에서 오직 그들만이 아는 일이었다. 그들 나름의 중요한 관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관건이란 다름이 아니라 천사곡에서의 사건 이후로 고심해왔던 자신들의 입지 문제였다. 사실상 그때부터 그들은 무림 내에서 암암리에 배척을 당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역시 한 때 마교에 협력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마교와 연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비록 당금에 이르러 전락해 버렸다고는 하나 소위 명문정파로써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 온 그들이 아닌가? 결국 그들 중원사대신가는 한 가지로 뜻을 모았다. 그것은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서로 힘을 모아 무림 내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차제에 삼성림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들과 동등한 위치로 나아갈 것이며, 칠대문파와도 본래 가지고 있던 적정선의 교류를 되찾아 보자는 것 등이었다. 특히 악가보의 보주인 악군보가 만겁수라동에서 죽은 이후로 그런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악가보에서도 신임 보주인 섬전신검(閃電神劍) 악군혈(岳君頁)이 사대검장(四大劍將)을 대동하고 와 동의를 표했다. 사대신가의 가주들은 이런 취지 아래 한 밀전에 모여 구체적인 논의로 들어갔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사안은 극비에 붙여졌던 것이다. 그런데 의문의 괴사(怪事)가 발생했다. 사흘이 지나도록 그들이 밀전에서 나오지 않자 사가보에서는 이상하게 여기고 총관(總管)인 황보인을 밀전 안으로 들여 보냈다. 황보인이 밀전에서 목도한 것은 실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의당 회의를 진행하고 있어야 할 사대신가의 가주들이 놀랍게도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전신을 살펴 보아도 아무런 상처 하나 없었으며, 이렇다할 싸움의 흔적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 의자에 앉은 자세 그대로 절명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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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호가행 제5권 검궁인 저 42장 뇌정삼식(雷霆三式)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꽤 많은 날짜가 지나고 있었다. "또 그... 고맙다는 말......." 주서혜의 음성이 격정을 띄었다. 그녀는 진일문이 떠날 때면 언제나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