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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였다. 만상군자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아이야....... 이리 오너라." 진일문은 지체없이 다가갔다. 그의 가슴 속으로는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음성이 파문을 일으키며 울려 퍼졌다. "이것은 명령이니라. 노부의 천령개를 힘껏 쳐라." "어찌 그런 일을......." 너무도 뜻밖의 말인지라 진일문은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힘이 곧 그의 의식을 이끌었다. 진일문은 어느덧 손을 치켜 들어 마지막 남은 시신, 즉 만상군자의 머리를 내리치고 있었다. 손바닥이 시신의 천령개에 닿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맙소사! 이런 불경(不敬)을 저지르다니.' 의외로 시신은 부서지지 않았다. 대신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본신 진기가 만상군자의 천령개를 통해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빨려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그것은 도무지 불가항력이었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도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아.......' 진일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무력감과 더불어 심한 갈증을 느끼며 절망적인 신음을 발했다. 그 사이에도 의식은 점점 흐려져 그는 종내 혼절하고 말았다. 환혼심령전이대법(還魂心靈轉移大法). 이는 선도(仙道)의 전설적인 대법으로써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 들일 수 있으며, 다시 그 영혼을 산 사람의 영혼에 전이시킬 수도 있는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선도의 절정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종종 이 대법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거나 후세에 유지(遺志)를 남기기도 한다. 반면에 환혼심령전이대법을 사용하려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 대법을 시전하고자 할 경우에는 먼저 우화등선(羽化登仙)할 수 있는 기회를 깨끗이 포기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만상군자는 평생 잡학(雜學)에 능통했던 기인이었다. 만년에 이르러서야 천하도인과 함께 도학(道學)에 심취했는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반선지경(半仙之境)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만상군자는 스스로 우화등선의 기회를 내던지고 환혼심령전이대법을 시전했다. 이로 인해 진일문은 그가 남긴 유지를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진일문이 꼬박 하루가 지난 후에야 의식을 회복했다. 그는 마치 긴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앞에는 이제 시신도, 무엇도 없었다. 단지 세 무더기의 흙먼지 만이 작은 봉분처럼 쌓여 있을 뿐이었다. "아아! 어르신......." 어느 새 진일문의 눈은 또 다시 뿌옇게 젖어 들고 있었다. 그는 먼지로 화한 삼천공의 유체를 향해 공손히 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먼지 아닌 그 세 줌의 먼지를 모아 바닥에 묻었다. "후배 진일문, 목숨을 걸고 어르신의 유지를 따르겠나이다." 진일문은 무엇인가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석실을 빠져 나왔다. 그러다 문득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 곳은 세 분의 유체를 모신 곳이다. 더 이상 그 더러운 자들의 발길이 닿게 할 수는 없다.' 진일문은 돌아 서더니 손바닥을 수직으로 펼쳐 흔들었다. 그러자 무형의 강기가 그의 장심에서 뻗어 나갔다. 다음 순간, 놀랍게도 철문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철문에 이어졌던 천정과 석벽이 미세하게 갈라지는가 싶더니 곧 소리도 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석실은 그렇게 하여 그 입구가 봉쇄되고 말았다. 그것을 보며 진일문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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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호가행 제5권 검궁인 저 42장 뇌정삼식(雷霆三式)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꽤 많은 날짜가 지나고 있었다. "또 그... 고맙다는 말......." 주서혜의 음성이 격정을 띄었다. 그녀는 진일문이 떠날 때면 언제나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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