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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량은 안타깝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난 죽더라도 가야 해." 가슴에 기대다시피 한 주한성의 핼쓱한 얼굴에 서린 의지는 강인했다. 노미량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가슴 시리도록 파고든 것이다. 이러다 정말 죽는 것이 아닐까? "그런 말이 어디 있니? 가면 가는 거지 왜 불길하게 죽는다는 거야?" 주한성은 묵묵히 태산을 바라보았다. 단우, 그는 마도인이지만 허언을 하지는 않는다. 저 태산에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누나, 내 주변 사람들을 잃기 싫어." 주한성의 음울한 목소리였다. 노미량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 가자. 무엇이 두렵겠니. 그곳에는 아버지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산 모퉁이를 돌아서서 태산 관일봉으로 난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 정상에 다다르자 구름처럼 운집한 거대한 인파가 시야에 들어왔다. 수천 명은 될 듯한 사람들이 모여 있건만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두 사람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정관효와 단립이었다. 노미량은 대치한 두 사람을 둘러싼 일단의 군웅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녀가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지? 사방을 주시했지만 노천악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서인가 생각한 노미량은 주한성을 옆구리에 끼고 솔개처럼 허공을 날아 단숨에 태산 관일봉의 정상에 내려섰다. 주변을 살피던 그녀의 시선은 한 곳에 그대로 붙박혔다. 사람들과 떨어진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검휘를 발견한 것이다. 아니 그녀의 시선은 전검휘의 옆에 누군가의 옷으로 덮어놓은 시체 한 구에 고정되어 있었다. 전검휘는 부상당한 주한성과 그녀를 보자 어색하게 웃었다. "웬일이오? 오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 했는데!" 어눌한 그의 목소리를 듣는 노미량이건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 시신은 누구죠?" 대답을 듣기보다는 마음 속에 이는 불안감으로 그녀는 주한성을 내려놓고 시신을 덮은 옷을 거둬냈다. "악!" 짧은 토막 비명과 함께 노미량은 양 손을 푸들 푸들 떨었다. -전검휘가 잘 생기긴 했다만, 손주 녀석이 나를 닮았으면 한다. 그 아버지의 얼굴이 없었다. 푸들거리며 떨던 노미량은 맥없이 스르륵 무너졌다. 전검휘가 몸을 날려 안아들었다. 노미량의 입술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니죠? 저 시신이 아버님이 아니죠?" 전검휘는 대답하지 못했다. 노미량이 시선을 돌렸다. 정관효와 대치하고 있는 단립을 본 그녀의 입가에 흐르는 피가 더욱 짙어졌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아버지와 대적할 만한 단 한 사람의 고수! 단립, 그를! 한편 주한성도 망연자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가 있는가? 심장이 뻥 뚫린 오비도인의 시신. 창백한 얼굴에 떠오른 통한의 분노! 주한성은 보광대사를 향해 다가갔다.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는 이미 상처에 대한 고통을 잊게 하고, 그의 피를 덥히고 있었다. 분노를 용출하기 위해 심장이 쾅쾅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 소림승들과 함께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보광대사는 주한성을 보더니 쓸쓸하게 웃었다.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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