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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썹은 역팔자 올려 뻗었으며 햇빛을 받은 이마와 정수리는 동경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허름한 마의(麻衣)는 그가 오래도록 염원하던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 복수혈전(復讐血戰)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비장해 보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마음은 비장(悲壯)했다. 혁달이 누구인가? 죽마고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친하게 지내온 소림동문이었다. 비록 혁달이 나이가 두어 살 많아 남들 앞에서는 깍듯이 예의를 지키고는 있었지만 둘만 있을 때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번 비무대회에 참가하면 그들은 누가 우승할 건지 서로 내기를 했었다. 만약에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면 자신이 기꺼이 양보하겠노라고 했던 혁달! 자신처럼 고아로 태어나 일곱 살때 동자승(童子僧)이 되어 한 번도 소림사를 떠나본 적이 없었던 혁달! 마종기는 그 누구보다도 슬펐지만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꾹 참아왔다. ② 비무장에 먼저 모습을 드러낸 곡척지 아니 맹발은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마종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를 등진 그는 사양(斜陽)이 비쳐들자 빛이 싫은 듯 둥근테 모자의 차양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마종기는 맹발의 뛰어난 실력을 아는지라 긴장되었다. 운기조식을 통해 몸을 풀었는데도 사지가 금세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심판관이 본부석을 향하라는 지시가 있자 두 사내는 본부석을 향해 돌아섰다. 총심판관은 경과보고를 한 후, 열심히 싸워달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둥둥둥--! 하나로 시작된 북은 여러 개의 소리가 더해지더니 태산이 우는 것 같은 큰소리로 변해갔다. 그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켰다. 먼저 곡척지 즉 맹발에 대한 소개가 있자 환호성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였다. 구경꾼들은 그의 잔인함과 독랄함을 잘 알면서도 일격필살의 살인방식을 즐기는 것 같았다. 마종기를 연호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마종기는 더 이상 그 함성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道 何事不成)! 마종기는 선승(禪僧)이 화두를 곱씹듯 맹발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혼자 서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혼자다! 혼자다....' 그러자 빽빽히 들어찬 구경꾼들이 뒷배경으로 퇴색되어 가더니 차츰 시야에서 사라지는 듯싶었다. 그것은 고도의 정신집중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선정일궤(禪靜一軌)라는 수법으로 정신을 외물(外物)이나 환경에 흔들림 없이 하면 전적으로 자아에 의식을 몰입시킬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의 모공에서 땀방울 하나가 흘러나오는 소리와 움직임까지 포착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잠시지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마종기와 마찬가지로 맹발 또한 움직임이 없었다. 폭풍 전야의 고요라고나 할까.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었다. 일순, 마종기는 내공을 돋우어 호신강기를 몸 주위에 펼친 다음 공격해 들어갔다. 처음엔 상대를 탐색하기 위해 검을 빼어들지 않고 연환퇴(連還腿)를 펼쳤다. 연환퇴란 몇 가지 기법을 연결해서 연달아 차는 것으로서 먼저 쌍비각(雙飛脚)을 앞세워 신형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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