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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령검제는 잔결신투의 마혈로 발을 날렸다. 퍼퍽. 그의 발은 제압된 마혈을 여지없이 강타하였다. "으- 억." 잔결신투는 묵직한 비명을 지르면서 힘겹게 눈을 떴다. 그의 눈엔 공포스런 귀령검제의 혈립이 가득했다. "일어나라." "......!" 잔결신투는 불가항력에 벌떡 일어섰다. 귀령검제의 혈립이 약간 위로 치켜졌다. 순간, 사람의 눈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무서운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귀령검제는 그의 목줄기를 움켜 쥐었다. 잔결신투는 바늘로 전신을 찌르는 듯한 예리한 통증에 비명을 내질렀다. "으으앗." 귀령검제는 냉혹한 어조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잔결신투. 지금부터 본 검제가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면 너의 시체는 온전히 남겨 주겠다." 잔결신투는 덜덜 떨며 대답했다. "마... 말씀해 보시오." "너는 이십 년 전 무적미검객(無敵美劍客) 맹석빈의 혈겁을 잘 알고 있지? 모른다고 대답하지는 마라. 노부는 네놈이 그 혈겁을 일으킨 흉수 중의 하나임을 알고 있다." 순간, 목줄기가 잡혀 있는 잔결신투의 거대한 체구가 두어 번 휘청거렸다. 율원양은 귀령검제가 느닷없이 무적미검객 맹석빈의 혈사를 꺼내자 흠칫했다. "맹... 맹석빈......." 맹석빈이란 이름을 되뇌이는 잔결신투의 두 눈에서는 공포와 후회의 빛이 짙게 깔려 갔다. 그는 심히 떨리는 음성으로 힙겹게 말했다. "갈선배님. 선배님이 왜 그 일을 들추......." 귀령검제는 만년한설(萬年寒雪)과도 같이 냉막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너는 맹석빈의 장원이 참살당할 때, 정체 모를 무림인이 구해간 여아를 기억하느냐?" 귀령검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율원양은 몸을 흠칫 떨었다. '아버님이 말씀해 주셨던 그때 그 여아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저, 자는 귀령검제가 아니고 그때의 여아란 말인가.' 귀령검제는 일시에 쓰고 있던 혈립을 벗어 제꼈다. 혈립 속에서 나타난 얼굴은 상상 외로 젊었다. 나이는 이제 겨우 이십 세가 간신히 되었을까? 하지만 세상에 이토록 뛰어난 절세 미남자가 있었단 말인가. 섬세하게 휜 눈썹과 한 쌍의 서릿발처럼 맑고 차가운 흑백이 뚜렷한 눈을 지닌 갸름한 계란형의 얼굴에 곧은 콧날과 자그마하고도 타는 듯 붉은 입술은 멋들어진 조화를 일으켯다. 게다가 백옥을 다듬어 빚은 듯 눈같이 뽀얀 흰 피부를 바탕으로한 그의 얼굴은 규방의 수줍음 많은 소녀들이라도 한눈에 혼백을 앗아갈 듯 보였다. 아니, 차라리 그의 모습은 서시와 같이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여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지경이니 같은 사나이라도 한눈에 반할 지경인 것이다. 그런데, 분명 그는 자신을 여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남자처럼 틀어 올렸던 검은 머리채가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그 빛나는 여인의 모습이란 바라 보는 이의 영혼을 단숨에 멀어버리게 할 정도였다. 의외의 사태에 놀랐던 율원양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보며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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