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

제 1 장 사

천 행

사천으로 들어가는 길은 험난했다. 사방에는 산봉우리들이 깎아지른 듯 싸여 있었고 곳곳이 다 산 언덕이 었다. 연도에는 소나무가 길 옆에 즐비한 것이 십리까지 뻗쳐 있었다. 호불귀는 그것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천하에 유명한 장비백일세. 장비가 직접 시믄 소나무라 고 하더군.¬ 사천사람들은 제갈공명을 하늘처럼 숭배한다. 공명이 죽은 후로부터 사 천사람들은 모두 흰 두건을 머리에 매었다. 그 습성은 여지껏 전해 내려왔다. 그리고 모두들 제갈공명을 숭배하므로 장비도 그 덕분에 덩달아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옥심은 어째서 사천에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무산에 가기 위해서였다. 영웅대회에서 그에게 죽은 형비는 자신의 애검인 전백검을 자신의 사부 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그의 사부가 살고 있다는 무산구당협은 마침 대 홍산에서 그리 멀지가 않았다. 그래서 전옥심은 이곳으로 온 것이다. 날은 몹시 후덥지금했고 김은 험했다. 모두들 목이 말랐다. 마침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언덕위에 주루가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그곳으로 갔다.

술은 무척 매웠다. 소도작은 천하에서 가장 매운 술 중의 하나였다. 게다가 안주라고는 고추볶음뿐이었다. 얼큰한 고추볶음을 먹고 소도작을 한 모금 들이킨다면 그거야 말로 기 분좋게 매운 것이었다. 최소한 제일비는 호불귀의 말을 들었을 때 기분 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직접 먹을 때는 상상만큼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꼇다. 그는 매움에 의해서 머리카락이 하나하나 곤두서는 것 같 았다. 하지만 그들외의 다른 손님들은 매운 것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단 안주에다가 고추가루를 더 넣을 뿐 아니라 생고추도 먹었 다. 그런데도 이마엔 땀방울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지방 사람들은 모두들 이렇게 술을 마신다. 사천성을 비롯해서 귀주, 운남 대의 사람들은 모두 고추를 좋아한다. 이곳에서는 고추 이외에는 전혀 다른 안주가 없는 것 같았다.


그것에는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원래 사천이나 귀주, 운남일대에는 습지가 많아서 장기가 심했다. 그래 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운 고추를 먹음으로 해서 체내에 습기나 장 기가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때문에 사천 사람들은 고추를 식탁에서 떼어 놓는 법이 없었다. 이 사람들에게 있어 밥을 먹을 때 고추가 없다는 것은 국물을 끓여놓고 수 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였다. 사천성은 곳곳이 다 산 언덕이라 제일비등이 걸음을 멈추어 술을 마시 고 있는 곳도 언덕이었다. 이곳은 손목만한 두 개의 대나무로 천막을 친 주막이며 사방에 온통 갈 대라서 시춴한 바람이 불어와 무척 상쾌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길을 재촉하느라고 지쳤기 때문에 이런 곳을 찾아 쉴 수 있다는 것 정말 좋은 일이었다. 지금 날시는 비록 무척 덥다고는 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땀 이 샘솟듯 하는 날씨였다.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잠시 쉬 면서 시원한 차나 매운 술을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제일비는 단숨에 그릇에 가득찬 소도작을 들이켰다. 막 한 그릇을 더 주문하려고 할 때였다. 제일비는 두 사람이 언덕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의 거지와 한 사람의 중이었다. 일개일승. 왼쪽에 다리를 절룩이며 걷고 있는 거지는 그야말로 완벽한 궁상맞은 꼴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꽤 고급이었을 옷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아무리 눈이 좋은 사람이라도 도저히 원래의 색까을 알아낼 수가 없을만큼 때로 더 럽혀졌다. 게다가 단 한곳도 기우지 않은 곳이 없을만크 조각조각 누더 기로 변해 있었다. 얼굴에는 때가 덕지덕지 끼어서 시커멓고 두 다리는 맨발인채 갖은 오 물이 어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단 한 곳, 그래도 제 색깔과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거지의 두 손이었다. 기이하게도 그의 두 손은 다른 곳과는 달리 마치 여자의 손처럼 티끌 한점 없이 깨끗했다. 전신의 단 한곳도 땟국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 없 을만큼 꾀죄한 거지의 두 손이 그처럼 하얗고 청결한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거지의 옆에서 히죽히죽 웃으며 걸어오고 있는 중은 더욱 괴이했다. 머 리를 박박 깎고 가사를 걸친 것은 다른 중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나 그가 손에 들고 목탁대신 두드리고 있는 것은 사람의 두개골과 다 리뼈였다. 오른손에 든 뼈다귀로 두개골을 두드리며 제법 고승같은 모 양을 하고 있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중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도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의 양 귓볼에 달려있는 커다란 귀걸이와 목에 걸고 있는 염주였다. 귀걸이는 뼈를 둥글게 잘라 붙인 것으로, 그가 움직일 때마다 뼈끼리 서로 부딪쳐 괴이한 음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염주대신 목에 걸고 있는 것은 사람의 이빨이었다. 수십 개의 이빨은 한 줄로 묶어 목에 걸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뼈로 도배를 해 놓은 듯한 중은 연신 입가에 싱글벙글한 미소를 띄고 거지의 뒤를 따라 주막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이 들어오자 맛있게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우거지 상으로 변했다. 거지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가 그야말로 지독한 것이다. 원래 이곳은 약간 맵지만 그래도 상큼한 고추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헌데 거지가 들어서는 순간 그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세인들로서는 감 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지독한 악취가 얼큰한 고추냄새와 섞여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소름끼치는 냄새를 형성해냈다.

드른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머리에 두른 흰 두건 으로 코를 춤켜쥐고 주막의 밖으로 우르르 나갔다. 그들의 얼굴은 이미 눈물 과 콧물, 침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바깥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자 그제야 그들은 한시름 놓은 큰 숨을 들이켰다. 허나 아무도 감히 다시는 주막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순식간에 주막에는 두 괴이한 인물들과 전옥심 일행만이 남게 되었다. 거지는 갑자기 투덜거리며 중을 바라보았다. ↙돌중아! 우리가 오니까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지?¬ 그가 입을 열자 그의 입에서는 더욱 가공할 악취가 풍겨나왔다. 중은 이미 그의 악취에는 만성이 된 듯 조금도 눈을 찡그리지 않고 마 치 득도한 고승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화자야! 그것도 모르느냐? 이 부처께서 다시 세상에 나오셨는데 몽매 한 인간들이 어찌 존귀한 이 몸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겠느냐?¬ 거지는 멍하니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면 저들은 너 가짜중을 존경하기 때문에 모두 밖으로 나갔단 말 이냐?¬ ↙이를 말이냐.¬ 거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전옥심등이 앉아 있는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런데 왜 저들은 가만히 있느냐?¬


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전옥심과 제일비등을 힐끗 보다가 시선이 늘고 꾀죄죄한 호불귀에게 잠시 고정되었다. 그는 호불귀를 바라보며 싱겁게 웃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어험! 원래 인간중에서는 가끔 별종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 저들이 바로 별종인간이란 말이냐?¬ ↙다른 자들은 모르지만 저기 있는 늙은 염소만큼은 틀림없는 별종이다 .¬ 거지는 호불귀를 바라보며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 였다. ↙그 말은 맞는 것 같군. 저 영감탱이는 턱밑에 난 수염하며 쭉 찢어진 눈이 영락없는 염소같은데 어찌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담.¬ 제일비는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가 우습기도 하고 은근히 약도 올라 호 불귀를 바라보았다. 그는 호불귀가 필시 화를 내리라고 생각했다. 헌데 호불귀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입가에는 기 이한 미소까지 떠올리고 있지 않은가? 호불귀는 빙글빙글 웃으며 거지와 중을 바라보았다. ↙개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빌어먹을 놈의 거지와 망할 중놈 눈에는 내 가 늙은 염소로 보이나 부지?¬ 중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며 껄껄 웃었다. ↙허허..... 몇 년 안본 사이에 늙은 염소의 입이 아주 더러워졌구나. 감히 본 부처보고 망할 중놈이라니......¬ 거지도 땟국물이 주르르 흐르는 얼굴을 콱 찌푸리며 큰 소리로 떠들었 다. ↙제길...... 내가 거지인가? 빌어먹게? 너야마로 빌어먹을 놈의 늙은 염소다.¬ 알고보니 그들과 호불귀는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호불귀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흐흐.... 머리만 깎았다고 다 부천가? 너 가짜 돌중이 스스로 부처라 고 떠벌리다니 지나가던 개가 다 웃겠군. 그리고 이 거지야! 네 놈은 필경 빌어먹고 사는게 분명한데 무슨 딴소리냐? 설마 그새 직업을 바꿨 단 말이냐?¬


거지는 더러운 침을 사방으로 마구 튀겨대며 핏대를 올렸다. ↙내가 왜 거지야? 남한테 빌어먹지 않으려고 이 옷 한가지로 만 삼십 년을 살아온 내가 거지야? 아니면 엉터리 점이나 쳐서 남을 등쳐먹고 사는 네 놈이 거지냐?¬ ↙맞아. 저륵은 염소는 돈도 없을텐데 옷도 번지르르하고 얼굴에는 개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군. 필시 옆에 앉은 젊은 놈들을 사기쳐서 뜯어먹 고 있는 걸거야.¬ 중이 아주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호불귀가 피식 웃었다. ↙그동안 주둥아미란 변태적으로 늘었군. 나같이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 가 어찌 젊은 사람들을 등쳐먹을 수 있나? 헛다리 짚지를 말게나.¬ 호불귀는 입가에 미소를 띄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뭏든 오랜만이군. 예적금강, 무능승 그동안 어디에 처박혀 있다가 이렇게 불쑥 나타난건가?¬ 예적금강과 무능승이란 말에 듣고 있던 중인들이 깜짝 놀랐다. 이제보 니 이들 거지와 돌중은 천하에 이름높은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예적금강과 무능승은 팔대명왕중의 인물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차림을 하고 다닌다는 불가의 예적금강과 마찬가 지로 무림의 예적금강도 더럽기로 말하면 천하제일이었다. 계율을 지키지 않는 불가의 무능승과 마찬가지로 인세의 무능승도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사람들 많이 죽였다. 비단 살인을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인고을 항상 몸에 걸치고 다녔다. 다만 그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씻지 못할 죄를 지은 흉인들 뿐이었다. 그래서 팔대명왕중에서도 이 두 사람은 가장 괴행을 일삼는 인물들로 손꼽혔다. 헌데 그들이 무슨 일로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무능승은 호불귀를 바라보며 싱거운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자네 늙은 염소를 찾아왔네.¬ ↙나를? 무슨 바람이 불어 갑자기 나를 찾는건가?¬ 호불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무능승은 코를 벌렁거렸다. ↙자네가 예뻐서 찾아온건 아닐세. 한 사람의 행방을 알고 싶어서 찾아 온 걸세.¬


호불귀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제길..... 어쩐지 냄새나는 거지와 돌중이 나를 보고 먼저 아는 척을 하더라니...... 결국 내게 부탁할 일이 있어 찾아왔구먼.¬ 예적금강이 더럽기 짝이 없는 머리를 박박 긁으며 입을 삐죽거렸다. ↙호가야! 너무 으시대지 마라. 네놈에게 없으면 너 같은 늙은 염소를 누가 아는 척이나 하겠느냐?¬ ↙생쥐는 곧 죽어도 찍한다더니 부탁하러 온 주제에 큰소리는....... 그래 찾는 사이 누구냐?¬ 무능승의 음성이 약간 진지했다. ↙이언년이란 사람이다.¬ ↙이언년? 약간 생소한 이름이군.¬ 호불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한 사람이 불쑥 무능승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그를 찾소?¬ 무능승은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이 호붉귀의 앞에 앉아 있는 흑의청년 임을 알고는 오히려 되물었다. ↙자네는 그를 알고 있나?¬ 전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무능승과 예적금강은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중원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텐데...... 자 네는 누구인가?¬ 호불귀가 옆에 서 있다가 히죽 웃었다. ↙자네들은 눈이 멀었나?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몰라보다니.... ..¬


예적금강이 입을 삐죽거렸다. ↙천하에서 제일 유명하다니..... 그가 오의광생이라도 된단 말인가?¬ 호불귀는 낄낄거렸다. ↙왜 아니겠나? 그가 바로 오의광생 본인일세.¬ 그말에 무능승과 예적금강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아니 그럼 그가 천하제일의 검마라는 바로 그 전옥심이란 말 인가?¬ 무능승과 예적금강은 눈을 휘둥그래 뜨고 전옥심의 얼굴을 요조리 뜯 어 보았다. 전옥심은 태연히 술자의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갑자기 무능승이 눈을 빛내며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수라교에 찾아가 구양승과 비홍을 죽였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 전옥심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을 뿐이오.¬ 무능승은 그를 빤히 보다가 나직이 탄식을 했다. ↙정말 못 믿겠군. 자네같이 젊은 나이에 그들을 물리치다니...... 무 림 역사상 천하제일검은 많았지만 자네와 같은 나이에 천하제일이라 불 리운 사람은 아직 없었네.¬ 무능승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헌데 자네가 이언년을 알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소. 한 달 전만 해도 그는 나와 함께 있었소. 헌데 무슨 일로 그 를 찾는 거요?¬ 무능승은 잠시 멈칫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에게는 형님이 한 분 계시네. 그 분이 그를 찾고 있네.¬ ↙그가 누구요?¬


↙그 분은 바로 우리의 대형이신 부동명왕이시네.¬ 전옥심의 그 말에 눈을 반짝였다. 그는 물론 이언년이 형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전에 우연 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나는 소식을 알지 못하고 형님의 행방도 알 겸해서 천룡사의 부탁 을 수락하고 무림에 나온 것이네.

헌데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이 바로 팔대명왕중의 첫째인 부동명왕일 줄 은 정말 짐작도 하지 못했다. 부동명왕은 비 팔대명왕의 수좌일 뿐 아니라 신비로 점철된 절정의 고수였다. 알려진 바로는 그의 무공은 천하에 당할 자가 없으며 성격이 괴퍅하고 악을 원수보다도 미워해 마인들은 부동명왕이란 말만 들어도 십리 밖으로 꽁무니를 뺀다고 한다. 허나 전옥심이 뜻밖으로 생각했던 것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부동명왕은 십자맹을 꺾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주자앙이 말했던 세 명의 인물 중 마지막 인물이었던 것이다. 허나 그는 지난 십여 년간 행방이 묘연해 전옥심은 그를 찾을 실마리조 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이곳에서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다.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그가 설마 이언년의 친형일 줄이야........ 이언년은 그의 행방을 찾고 그는 또 이언년의 행방을 찾고 있으니 서로 헤맬 수밖에. 무능승은 전옥심을 바라보며 급히 물었다. ↙자네는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그는 육족존과 금강야차등과 함께 태산으로 갔소.¬ 그 말에 무능승이 작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금가와 못난이가 그와 함께 있단 말인가?¬ ↙그렇소.¬ ↙그런데도 그는 대형을 찾아오지 않았단 말인가?¬ 그가 놀라는 표정이 너무도 진지했기 때문에 전옥은 의아함을 느끼고 그를 주시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무능승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육족존 금성위는 한동안 무림을 떠나 있어서 우리도 만나지 못했지만 금강야차는 얼마 전에 대형의 부탁을 받고 이언년을 찾아 나섰던 것이 네. 헌데 그는 이언년을 만났으면서도 왜 대형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 을까?¬ 전옥심은 눈을 반짝 빛냈다. ↙금강야차가 부동명왕의 거처를 알고 있었소?¬ ↙그렇다네. 사실 대형께선 그동안 새로운 절학을 익히시느라 폐관하셨 다가 얼마 전에야 다시 무림에 나오시게 되었다네. 그분선 우리 둘과 금강야차를 불러 동생인 이언년을 찾게 했지. 헌데 금강야차는 이언년 을 만났으면서도 왜 연락을 취하지 않았을까?¬ 예적금강도 옆에서 듣고 있다가 눈썹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그 못생긴 놈이 하라는 일은 안하고 무슨 엉뚱한 일이라도 저지르고

중인들은 잠시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이언년이 부동명왕의 동생이라는 것도 전혀 뜻밖이었다. 부동명왕은 종리을진과 버금갔던 무적의 고수였는데 실로 오랜만에 그 의 소식을 듣게 되니 놀라운 일이었다. 헌데 금강야차는 그의 부탁을 받고 있었으면서도 무슨 연에서 아무런 내색조차 하지 않은 것일까? 특히 제일비는 이언년과 이비취에게 남다른 각별한 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때 제일비는 무심코 시선을 돌리다가 한 가지 신기한 것을 보고 시선 을 고정시켰다. 언덕 위로 다시 두 명의 인물이 걸어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머리에 커다란 방갓을 쓰고 허리춤에는 검을 차고 있었다. 헌데 기이하게도 두 사람 다 한 팔씩 잘려진 외팔이들이었다. 외팔이 두 사람이 머리에는 방갓을 쓰고 허리에 장검을 찬 채 걸어오고 있는 것은 물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만했다. 허나 제일비가 그들을 보며 신기해 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의 걸음이 어딘지 모르게 이 상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단지 걸음이 느리고 걸음을 비교적 크게 옮길 뿐 얼핏 보아


일반 사람들의 걸음과 별로 다를 점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제일비는 두 사람의 걸음을 보면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고 느 꼈다. 그는 한참 주위를 기울여서야 그 원인을 발견했다. 상례로 보아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걸으면 보조가 거의 같게 마련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유별났다. 왼쪽에 있는 사람은 계속해서 오른쪽에 있는 자가 첫 걸음과 두번째 걸 음을 옮기는 사이에 첫걸음을 내딛곤 했다. 다시 말해서 두 사람의 네 다리는 한 사람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이 걸음이 질서정연했다. 오른 쪽에 있는 자가 첫 걸음을 내딛으면 왼쪽에 있는 사람이 두번째 걸음을 옮기고 오른 쪽에 있는 자가 세 번째 걸음을 내딛으면 왼쪽에 걷는 사람은 어김없이 네 번째 걸음을 옮겼다. 한 번도 순서가 틀리거나 속도가 변하지 않았다. 제일비는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걷는 것을 난생 처음 보므로 아주 신 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전옥심도 물론 주막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두 명의 외팔이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추호도 재미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비단 재미없을 뿐더 러 도리어 가공스럽게 여겨졌다. 두 사람의 보조가 이렇게 기묘하게 배합되어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의 마 음까지도 일종의 해석할 수 없는 기이한 묵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 한다. 그들은 걸음걸이까지 이러 기묘한 배합이 형성되어 있으니 만약 합세하 여 적을 공격한다면 서로의 초식은 더욱 신기한 배합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합공은 왕왕 무시무시한 위력을 나타낼 것이다. 두 사람의 외팔이는 마침내 주막으로 들어섰다. 이미 이곳에 있는 중인들은 그들의 기묘한 걸음걸이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던 참이라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제일비는 어쩐지 그들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 단순히 술을 마시거나 쉬 어가기 위해서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막으 들어선 두 사람의 몸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한 사람의 앞 으로 다가가 우뚝 섰다. 그드르이 멈춰선 곳은 바로 전옥심의 앞이었다. 우측의 키가 조금 더 큰 외팔이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귀하가 바로 오의광생 전옥심이오?¬ 전옥심은 그 목소리를 듣자 고개를 들어 그 빤히 바라보았다. 허나 커다란 방갓이 얼굴을 온통 가리고 있어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 었다. 전옥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바로 전옥심이오.¬


우측의 외팔이는 문득 약간 커다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화산파의 쌍위검사요.¬ 알고보니 그들은 화산파의 인물들이었다. 화산파는 검술로 유명한 문파인데 이런 기이한 외팔이검수들이 있다는 사실은 아직 아무도 들은 사람이 없었다. ↙귀하가 수라교에 가서 구양승과 비홍을 죽이고 수라교을 멸망시켰다 는 소문이 이미 천하를 진동하고 있소. 우리는 그 소문을 듣고 귀하가 이곳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소.¬ 전옥심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귀하를 찾아온 것은 화산파의 명예를 걸고 마지막 대결을 하 기 위해서요.¬ 그는 특히 마지막이라는 말에 힘 주었다. ↙우리의 양의합벽검진을 격파한다면 화산파는 앞으로 두 번 다시 귀하 에게 도전하지 않을 것이오.¬ 양의합벽검진이라는 말에 전옥심의 눈이 더욱 반짝거렸다. 화산파에는 모두 다섯 개의 검진이 있는데 그중 가장 강한 것이 바로 양의합벽검진이었다. 이 양의합벽검진은 화산파 뿐만 아니라 자타가 공 인하는 천하제일검진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 양의합벽검진은 화산파 내에서 가장 검술이 뛰어난 두 사람이 익히고 있다고 했으면 두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직 매화검존 만이 알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전옥심은 묵묵히 외팔이검수를 올려다보고 있다가 문득 탄식을 했다. ↙오형. 내 앞에서 얼굴을 가릴 필요가 뭐 있소?¬ 그 말에 외팔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천천히 방갓을 벗었다. 드러난 얼굴은 과연 매화검 오상이었다. 지난 몇달 동안 그의 얼굴은 만이 수척해 있었다. 허나 어딘지 모르게 기이한 신광이 어려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장중한 느낌이 들게 했다. 오상은 전옥심을 바라보며 불쑥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나?¬ 전옥심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의 외모를 나타내는 것은 얼굴뿐이 아니오.¬ 오상은 이내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럼 내 음성과 행동에서 알아냈단 말인가?¬ ↙그렇소.¬ 오상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달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단 몇마디를 듣고 내가 누군지 알아 내다니 안목이 대단하군. 자네가 나를 몰라보기를 바랬는데.¬ 그는 잠시 전옥심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자네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네. 다만 이 일은 자네와 본 파와 의 일이고 나는 장문이의 명령으로 하는 일일 뿐일세.¬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제껏 말이 없던 왼 쪽의 약간 왜소한 외팔이가 불쑥 입을 열었 다. ↙전옥심은 당신은 나도 기억하 있소?¬ 전옥심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언젠가는 나를 찾아올 줄 알았소. 당신은 절정검 곽위가 아니 오?¬

를 끄덕였다. ↙과연 당신은 눈이 날카롭군.¬ 그는 방갓을 벗었다. 얼굴이 하얗고 준수한 이십 대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처음 전옥심이 출도하였을 때 악양에서 그에게 패해 스로 자신의 팔을 잘랐던 절정 검 곽위! 그동안 그에게서는 어딘지 모르게 성숙한 면모가 엿보였다.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고 몸이 아주 곧았다. 절정검 곽위와 매화검 오상! 그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전옥심에게 의해 팔이 잘려진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석 달 만에 그들은 화산파의 명예를 걸고 다시 그의 앞에 나타


난 것이다. 문득 오상이 전옥심에게 물었다. ↙자네는 좌백을 어떻게 했나?¬ 전옥심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화산파로 가지 않았소?¬ ↙그는 오지 않았네.¬ ↙나는 모르오. 영웅대회 이후 나는 그를 본 적이 없소.¬ 오상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다가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엔가 있겠지.¬ 이어 그는 형형한 안광으로 전옥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네에게 패한 후 우리는 사존에게서 석 달 동안 양의합벽검진을 배 웠네. 이제 우리는 그것을 시전해 보려고 하네.¬ 그가 말하는 사존이란 화산파의 막후인물로 알려진 매화검존이었다. 전옥심은 나직이 탄식을 했다. ↙당신들 두 사람은 꼭 나와 겨루어야겠소?¬ 오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 일을 위해서 우리는 석달 동안 고심참담한 수련을 했네. 이것은 비단 우리 두 사람이 원하는 일일 아니라 사존께서 당부하신 일이기도 하네.¬ 매화검존은 신비하기로 유명한 인물인데 무슨 이유에서 이들을 전옥심 에게 보낸 것일까? ↙양의합벽검진은 그 분께서 수 십 년의 면벽 끝에 창안하신 것일세. 자네가 이 검진을 격파한다면 본 파에서는 자네를 천하제일검객으로 추 앙함과 동시에 두 번 다시 자네를 번거롭게 하지 않겠네.¬ 전옥심은 자신에게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곧 주막의 밖으로 나갔다. 다른 중인들도 얼굴을 굳힌 채 그들을 따라갔다.


----------------------------------------------------------------제 2 장 화

절 학

주막에서 멀지 않은 곳에 널찍한 공지가 있었다. 세 사람은 탁 트인 공지의 중앙에 우뚝 섰다. 오상과 곽위는 전옥심의 앞에 나란히 섰다. 그것을 보고 중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반적으로 두 사람이 한 사람을 합공할 때는 각기 그 사람의 앞뒤에 서있기 마련이다. 헌데 이 두 사람은 그런 규칙을 무시하고 마치 일대 일로 싸우듯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오상과 곽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을 뽑아 들었다. 창! 용이 울부짖는 듯한 청량한 검명과 함께 두 사람은 검을 뽑아 머리높이 치켜 들었다. 그것은 엉성하기 짝이없는 자세였다. 더구나 외팔이 두 사람이 모두 한 손에 검을 들고 마치 도끼를 든 듯 머리 높이 치켜 올리자 보는 이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허나 전옥심은 달랐다. 그들의 엉성한 듯한 자세에서 실로 막강한 긱운을 느꼈던 것이다. 한 순간, 오상과 곽위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홰액! 그들의 몸은 마치 미끄러지듯 허공을 타고 전옥심에게 다가왔다. 여전 히 검을 머리높이 치켜 든 채 무작정 짓쳐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상리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두 사람이 합공을 할 때는 대개 한 사람은 상대의 상단을, 다른 한 사 람은 하단을 노리게 마련이다. 그래야만 서로의 배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데 두 사람은 치 한 사람이 덤벼들 듯 일직선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두사람의 자세는 어찌보면 엉성하기 그지없는 것 같았다. 허나 그들이 검을 도끼처럼 엉거주춤 든 채 똑같은 모습으로 달려오는 순간 전옥심 은 강한 압력이 자신의 주위를 짓누름을 느꼈다. 그들의 자세는 빈 틈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완벽하기 짝이없어 전옥심 믄 일순 헛점을 찾지 못하고 몸을 옆으로 삼 장쯤 날렸다. 전옥심이 상대의 공격을 몸을 날려 피하는 것은 실로 드문 일이었다. 헌데 그의 몸이 미처 허공에서 멈춰서기도 전에 오상의 허리가 절반으 로 꺽이며 검을 쳐든 자세 그대로 그의 앞으로 짓쳐오는 것이 아닌가? 그 속도와 변화는 그야말로 시기적절하여 전옥심은 급히 몸을 아래로 숙이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 순간 이번에는 곽위가 섬전처럼 날아오며 머리위로 들고 있던 장검


을 도끼처럼 내리찍었다. 콰아악! 사람의 마음속을 송두리째 후벼파는 듯한 괴이한 파공음이 울리며 주위 의 공기가 모두 그 검세에 그대로 두 쪽이 나는 것 같았다. 전옥심은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철검을 검집째 쑥 내밀었다. 그가 내민 철검은 그리 빠르지도 않았고 힘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헌데 기이하게도 그토록 엄청난 기세로 떨어져 내려오던 곽위의 검이 아무렇게나 내민 듯한 철검에 가로막히는 것이 아닌가? 곽위는 자신의 검이 전옥심의 철검에 막히자 내리치던 자세 그대로 뒤 로 쓰윽 물러났다. 그 유연한 자세만 보아도 그동안 곽위의 무공이 얼마나 무섭도록 정진 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그가 물러남과 동시에 오상의 검이 다시 허공에서 떨어져 왔다. 쐐애액! 그 두 사람의 물러나고 덤벼들어오는 동작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신속했 던지 마치 한 사람이 두번 검을 내리찍는 것 같았다. ↙앗!¬ 이것을 보고 있던 중인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는 탄성이 흘러 나왔다. 오상이 휘두른 일검은 한 눈에 보아도 태산마저 쪼개버릴 듯 가공스러 운 것이었다. 더구나 전옥심은 내밀고 있던 철검을 미처 회수하지도 않 은 상태였다. 그의몸이 오상의 검에 그대로 두쪽이 나 버릴 순간, 갑자기 전옥심이 내미로 있던 철검을 빙글빙글 돌렸다. 슈르릉! 그의 철검이; 거의 보이지도 않게 그이 손 안에서 빠르게 회전을 했다. 그것은 마치 손에 바람개비를 들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거의 봉지도 않게 빠르게 회전하는 철검은 내리쳐오던 오상의 검과 그 대로 마주쳤다. 콰앙! 고막이 터져 버릴 듯한 폭음이 들리며 엄청안 속도로 떨어져 오던 오상 의 검이 그보다 더 빠르고 높게 솟구쳤다. ↙으음......¬ 오사은 그 충격을 감당치 못하고 검을 쥔 채 뒤로 비틀 물러났다. 헌데 그 순간, 쾌애애액! 비틀대던 오상의 머리 위쪽에서 무시무시한 검광이 전옥심을 향해 내리 꽂히는 것이 아닌가? 오상의 두에 바짝 붙어있던 곽위가 어느새 오상의 머리를 뛰어 넘어 돌 지해 오고 있는 거이다. 그것은 실로 너무도 뜻밖의 일로 오상의 검이 전옥심의 철검과 부칮친 것과 같은 시각에 이미 곽위의 몸은 그들의 머


리위에 있던 것이다. 곽위는 내려오는 기세 그대로 왼팔이 높이 들고 있던 검을 내리 찍었다 . 절대절명의 순간, 전옥심은 오상의 검에 부딪 튀어올라가는 철검을 그대로 허공으로 찔러올렸다. 따앙! 주위가 쩌렁하게 울리는 소리가 터지며 허공에서 무서운 기세로 떨어져 내리던 곽위의 몸이 다시 허공으로 너울너울 솟아 올라갔다. 놀랍게도 떨어져 내리던 곽의 검이 정확하게 전옥심이 들어올린 철검의 끝에 격정된 것이다. 그 순간 다시 검광이 번뜩이며 오상의 검이 더욱 무서운 기세로 덮쳐왔 다. 두 사람의 번개같은 공세. 그것은 그야말로 죽의 수레바퀴처 쉴사이없이 몰아쳐 오고 있었다. 더구나 그 엉성해 보이는 듯한 자세에서 내리치는 검의 위력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막강하여 전옥심으로서도 한 순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 다. 순식간에 그의 몸은 뒤로 오장여나 주르르 물러났다. 그 짧은 순간에 오상과 곽위의 몸은 거 번갈아 십 여차례나 전옥심에 게 짓쳐왔던 것이다. 오상의 무시무시한 검이 짓쳐오고 그것을 피할라치면 어느 새 그의 머 리뒤에 숨어있던 곽위의 검이 질풍노도처럼 밀려왔다. 눈깜박할 새 이십 여초가 지나갔다. 오상은 여전히 검을 머리높이 쳐들은 채 전옥심을 향해 내리찍었다. 그 순 번쩍였다. 그는 오상의 검이 내리찍어오는 것을 더 이상 피하거나 받아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코앞으로 돌지해갔다. 전옥심의 몸이 허깨비처럼 순간적으로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오자 오상 의 눈에 흠칫하는 빛이 떠올랐다. 허나 이때 이미 오상의 검은 전심 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전옥심은 오상의 코앞으로 달려나가던 몸을 그대로 벌렁 뒤로 눕혔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사람의 몸이 그토록 빠른 속도로 달 려옴과 동시에 뒤로 눕혀지다니....... 동시에 오상의 검은 조금전까지도 전옥심 몸이 있었던 허공을 그대로 가르고 말았다. 콰앙! 오상의 검이 땅에 격중되어 흙먼지가 하늘높이 솟구치며 구덩이가 움푹 파여졌다. 그 찰나적이 순간에 거의 땅에 닿을듯 말듯하여 눕혀졌던 전옥심의 몸 이 그대로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허공에는 그의 짐작대로 막 곽위의 몸이 올라오고 있었다.


곽위의 몸이 오상의 등을 타고 머리위쪽으로 올라올 순간 전옥심은 이 미 허공에서 곽우가 라오길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곽위는 검을 머리위로 올리 채 올라오다가 전옥심의 몸이 이미 그의 우 에 와 있자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전옥심은 처음으로 철검을 뽑았다. 번쩍! 곽위는 눈이 부심을 느끼고 들고있던 검을 사력을 다해 내리쳤다. 오상 또한 전옙 솟고치는 순간 사정이 다급함을 느끼고 곽위를 따 라 다시 검을 번개같이 머리위로 들어올렸다가 내리쳤다. 전옥심은 철검을 횡으로 쓸었다. 하늘에서 땅으로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검 두 개. 천지를 둘로 쪼갤 듯 수평으로 그어지는 검광 하나. 차창! ↙크윽!¬ ↙음!¬ 불꽃이 튀기며 비명소기가 들려 왔어도 중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알지 못했다. 검광이 사라지자 장내의 광경이 들어왔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억눌린 듯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전옥심은 어느새 철검을 검집에 집어 넣은 채 우뚝 서 있었. 그의 모습은 조금 전과 다름이 없었다. 허나 안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의 가슴부위 옷자락이 한 치쯤 짖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그의 앞에는 두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허나 우뚝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연신 비틀거리고 있었다. 금시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오상과 곽위였다. 그들의 방갓은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왼쪽 가슴에서 오른 쪽 가슴까지 옷이 길게 찢겨 있었다. 찢겨진 옷자락 사이로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져 있었다. 허나 피가 뿜어나오지는 않았다. 곽위와 오상의 얼굴은 경악, 그것이었다. 그들은 멍청히 선 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전옥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러다가 나이가 많은 오상이 먼저 가늘게 탄식을 했다. ↙양의합벽검진이 깨어지다니...... 과연 천하제일검마답군.¬ 전옥심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를 보고 있었다.


오상의 눈빛은 그야말로 착잡한 것이었다. 어찌보면 허탈해 보이기까지 했다. ↙처음 사존께 이 검진을 하사받았을 때 검진이라면 자네와 싸워볼만하 다고 느꼈네. 최소한 패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네. 헌데 자네의 무공은 그 사이 또 다른 경지에 접어 들었군.¬ 문득 전옥심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양의합벽검진은 내가 본 검진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었소.¬ 전옥심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허나 한 가지 치명적이 약점이 있었소.¬ 오상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엇인가?¬ ↙양의합벽검진은 위력이 강하고 두 사람의 호흡과 초식의 배합이 그야 말로 완벽하오. 허나 바로 그 완벽함에 문가 있었소.¬ 오상과 곽위는 그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전옥심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원래 어떤 검진이든 그 주체는 사람이 되어야 하오. 즉 아무리 완벽 한 검진이라도 그것은 사람이 펼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오. 헌데 두 사람의 양의합벽검진은 사람보다 검진 자체가 더 중요시 되었소. 다 시 말하면 일정한 규칙의 틀 속에 두 사람의 몸이 매어 버린 것이오.¬ ↙아!¬ 오상과 곽위의 입에서 부지불식간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내가 정상적인 공격만을 했다면 물론 양의합벽검진은 깨어지지 않았 을 것이오. 허나 내가 약간 달리 대응을 하자 두 사람은 당황해서 검진 의 변화를 미처 전개하지 못했소. 다시 말해서 임기응변의 변화가 부족 했던 것이오. 이것은 두 사람이 너무 검진 자체의 규칙에만 얽매어 자 유자재로 소화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오.¬ 전옥심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 말했다. ↙아무리 완벽한 검진이라도 그것을 시전하는 사람이 완벽히 소화해 내 지 못하고서는 완벽하다고 할 수가 없소. 만일 두 사람이 이 검진을 완


벽하게 소화했다면...... 나는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오.¬ 오상과 곽위는 멍하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전옥심의 은 그들의 검진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검진은 완벽했다. 다만 그것을 전개하는 오상, 곽위 두 사람의 무공이 검진의 변화를 보 다 능숙하게 변화시키는 데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두 사람은 이 양의합벽검진을 시전하는데 급급하여 이것을 달리 응용하는 것은 아직 생각도 못해본 것이다. 허나 전옥심이 아니고서야 누가 격전하는 그 짧고 긴박한 순간에 거의 완벽한 양의합벽검진의 그 조그만 허점을 꿰뜷어 볼 수 있단 말인가? 오상은 이것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내심으로 감탄을 했다. 그는 한 동안 전옥심을 바라보더니 불쑥 입을 열었 리를 따라 화산으로 잠시 가지 않겠나? ¬ 전옥심은 눈을 반짝였다. ↙무슨 일이오?¬ 오상은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만일 자네가 양의합벽검진을 깬다면 자네를 꼭 모시고 오라는 사존의 분부가 계셨네.¬ 전옥심은 의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신비하고 아직까지 외인에게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는 매화검존이 무슨 일로 그를 마나려 한단 말인가? 허나 전옥심은 이토록 완벽한 양의합벽검진을 창안했다는 그 신비의 인 물이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 기회에 그를 만나두는 것도 손해되 는 일이 아니리라. ↙좋소.¬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쪽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호불귀와 제일 비를 불렀다. ↙호노인! 당신은 일비와 섭형등과 함께 태산으로 가지 않겠소?¬ 호불귀는 히죽 웃었다. ↙그 이언년인가 뭔 하는 사람을 찾으란 말인가?¬


↙그렇소. 그들은 아마 태산을 벗어나 지금쯤 나를 찾고 있을거요. 하 지만 나는 왠지 그들에게 무슨 이링 생길 것만 같구료. 그러니 당신이 두 명왕을 그들에게 인도해주지 않겠소?¬ 호불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스럽게 눈을 깜박였다. ↙어느 분의 명령이라고 감히 거절하겠나? 헌데 자네는 어찌 하려는가? ¬ ↙나는 화산에 들른 후 무산으로 갔다가 다시 중원으로 나올 것이오. 그러나 당신은 그들을 만난 후 다시 나를 찾아오시오.¬ ↙하겠네.¬ 호불귀는 히죽 웃으며 중인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제일비는 전옥심과 잠시라도 떨어져 있기가 몹시 아쉬웠지만 이언년과 이비취가 걱정이 되기도 해서 할 수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전옥심은 그들의 모습이 몰리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다가 몸을 날려 오 상, 곽위와 함께 사라져 갔다.

x

x

x

화산! 천하에 이름높은 화산은 널리 알려진대로 오악중의 서악으로 불 린다. 이산은 섬서성의 화음현에 위치하고 있으며, 진령의 북쪽 지맥으로써, 동서로 달린다. 이 화산의 서쪽에는 소화산이 있기 때문에 이를 구분해서 태화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의 높이는 오천 길에 달하고 넓이는 백 여리나 된다. 이 산 동쪽에는 선인봉이 있고 남쪽에는 낙안봉, 중앙에는 연화봉이 있 어 모두가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을 듯이 우람하게 솟아 있다. 선인, 낙안 두 봉아리는 고고하게 솟아있는데 비해 유독 연화만은 운 대, 공주, 모녀등 세 작은 봉우리가 떠바들 듯 시립해 있다. 마치 여러 봉우리가 자손인 양 솟아 있는 것이다. 이 연화봉 정상에느 상궁이 있다. 이 상궁이 바로 무림의 정통 일파인 화산파의 근원지였다. 이 상궁과 함께 화산파의 상징처럼 불리우며 유명한 곳이 바 옥녀지 였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의 옥녀가 달 밝은 밤이면 강림하여 머리를 감았다. 하여 옥녀지란 이름이 붙은 것이라 한다. 헌데 오상과 곽위가 전옥심을 안내해 간곳은 화산파가 있는 연화봉이 아니라 동쪽에 있는 선인봉이었다.


선인봉은 높이가 연화봉보다 더 높고 험했다. 곳곳에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이고 여기저기에 천연의 동굴이 시커먼 입을 벌이고 있었다. 오상과 곽위는 요리조리 몸을 날려 선이봉의 기임괴석 사이를 누렸다. 오상은 전옥심이 의아해 하는 것을 짐작한 듯 입을 열었다. ↙사존께서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시는지라 상구에 계시지 않고 선인 봉의 만붕동에 홀로 기거하고 계시네.¬ 만붕동은 선인붕의 뒤쪽 절벽틈에 위치하고 있었다. 근처에 동굴이 하도 많아 어느 것이 만붕동인지 알 수가 없건만 용케도 오상과 곽위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중 하나의 동굴로 서슴없이 들어갔다. 그 동굴은 다른 동굴과는 달리 입구가 아주 작았다. 허나 사람이 하나 간신히 빠져나갈 듯한 작 입구를 벗어나자 곧 널찍한 통로가 나왔다. 동굴은 천연적인 것으로 전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같았다. 동 굴안은 바닥에서 천정까지 쌓여올라간 종유석이 곳곳에 있고 이기가 잔 뜩 끼여 있어 사람이 사람 곳 같지가 않았다. 누구도 이런 곳에 천하에 이름높은 매화검존이 기거하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오상과 곽위는 조금도 서슴없이 걸음을 옮겨 동굴 깊숙이 들어갔다. 동굴은 예상보다 상당히 깊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거의 오십 여장을 들어간 끝에 동굴은 갑자기 넓은 공지를 형성했다. 공지는 텅비어 있었다. 숱하게 늘진 종유석과 기암괴석을 제외하고는 생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공지의 맞은 편 끝쪽에 한 개의 시커먼 동굴이 다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동굴속의 동굴이라 할만한 광경이었다. 우르릉! 그 동굴속에서는 괴이한 음향이 울려오고 있었다. 마치 멀리서 우뢰가 치는 듯한 은은한 굉음이 울려오고 있는 것이다. ↙저곳이 만붕동이네.¬ 오상이 손가락으로 동굴을 가리켰다. 과연 동굴의 입구에는 용사비등한 필치로 <만붕동>이란 글씨가 쓰여 있 었다. 오상과 곽위는 동굴 앞으로 다가가지 않고 공지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 었다. ↙자네 혼자 들어가보게. 우는 더 이상 갈 수 없네.¬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붕동의 앞으로 걸아갔다.


만붕동의 앞에 간 전옥심은 몸을 흠칫 떨었다. 우르르릉! 가까이 다가가자 우뢰와 같은 굉음이 더 防嗤 동굴속 에서 사람의 뼈골을 얼릴 듯한 강풍이 불어왔다. 전옥심은 그 강풍이 몸을 스치자 전신에 오한이 이는 것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몸은 이미 한서불침지신에 접어든지 오래였다. 아무리 강한 추위라도 그에게 가벼운 소름조차 돋지 못하는 것이다. 헌 데 단지 바람에 가볍게 스치기만 했는데도 전신이 빙굴속에 들어간 듯 오한이 일어나니 그 강풍이 얼마나 지독한 한기를 담고 있는 걋适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혹시 전설상의 광한강골풍이 아닐까?) 전옥심은 내심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눈을 빛냈다. 광한강골풍이란 천하에서 가장 강한 한기를 띠는 바람으로 일반인이라 면 그 강한 한기에 가볍게 쪼이기만 해도 얼음조각이 되어 버리고 만다 . 허나 이 광한강골풍에게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그것은 만일 이 극한의 한기를 견디고 광한강골풍을 항상 쐬이는 사람 이 있다면 그의 뼈는 강철처럼 단단해질 뿐만 아니라 만일 그 사람의 전신 뼈가 으스러졌다 하더라도 이 광한강골풍 아래에서는 뼈가 서로 단단하게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허나 광한강골풍은 인세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워 전옥심조차도 우연히 주자앙에게서 이런 것이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실제로 이것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 전옥심은 광한강골풍의 바람을 맞으면서도 태연히 한발씩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칠한 몸이 만붕동속으로 사라지자 이제껏 공지에 멀리 떨어져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오상과 곽위도 몸을 날려 사라져 갔다.

제 3 장 매 화 검 존 의 정 체 만붕동은 갈수록 어두침침했다. 동굴의 벽은 조금전과는 달리 마치 깎아 놓은 듯 반질반질했다. 광한강 골풍의 강한 위력때문에 동굴벽이 깎여 이런 형상이 된 것이다. 십여 장쯤 들어갔을 즈음, 전옥심은 전면에 한 인영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 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어둠속에서 앉아있는 인영의 눈빛만이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주


강렬하면서도 예지에 가득찬 눈빛이었다. 인영은 동굴바닥에 앉은 채 빛나는 눈으로 전옥심을 바라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자네가 바로 오의광생 전옥심인가?¬ 전옥심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당신이 바로 매화검존이오?¬ ↙그렇다. 내가 바로 매화검존이다.¬ 인영은 앉은채로 그를 보고 웃었다. 어둠속에서 하얀 이가 반짝 빛났다 . 바닥에는 부드러운 침상이 깔려 있었고 매화검존은 그 위에 단정히 앉 아 있었다. 언뜻 보아 그는 머리를 길게 가르고 수염이 덥수룩해 흉폭 해 보였다. 허나 자세히 보니 그는 젊었을 적에 무척 깨끗하고 영준한 얼굴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수염이 덥수룩하고 거칠은 모습이었지만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 소가 떠올라 있었다. 허나 전옥심의 시선은 그의 얼굴보다도 그의 등에 가 있었다. 그의 드에는 순강으로 된 받침대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는 그 받침대로써 몸을 지탱하고 있는 듯 하며 그 받침대가 없으면 그의 몸은 산산조각으로 부숴질 것만 같았다. 누구라 할지라도 그를 처음 보게 되면 거북살스러운 이상한 낌이 들 것이다. 그것은 형틀에 묶여 고형을 받는 사람을 지켜보는 그런 거북살 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는 왜 쇠받침대를 등에 질머지고 있는 것일까? 매화검존은 홀연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등에 질머지고 있는 쇠받침대가 보기 흉한가? 나도 물론 이런 것을 등에 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네. 하지만 이것이 없어선 안된 다는게 안타까울 뿐이지.¬ 전옥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 묻는 시선을 던졌다. 매화검존은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내 등뼈는 이십 년전 산산조각으로 부숴졌기 때문에 이 받침대가 없 으면 축 늘어진 살덩이가 되고 말지.¬ 전옥심은 그의 모습을 보고 내심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는 이제껏 주자앙보다 더 신세가 비참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 다. 허나 한 사람이 등뼈가 박살난 채로 한 평생 쇠받침대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면 그것보다 비참한 것이 있을까?


이런 사람이 천하에 대명을 떨치며 화산파를 오늘의 거대문파로 만든 매화검존이라고는 아무도 상상치 못할 것이다. 매화검존은 다시 빙긋 웃었다. ↙자네는 내 모습을 보기가 안타까운 모양이군. 하지만 나는 이런 상태 로 이십 년을 살아왔네. 지금은 쇠받침대가 몸의 일부처럼 되어 버려 아무렇지도 않다네.¬ 그의 웃음은 온화했지만 형용할 수 없는 고독이 곁들여 있었다. ↙이십 년전에는 나는 누워있지도 못했다네. 그냥 짚단처럼 포개져 있 었지. 하지만 이곳의 광한강골풍은 부숴진 내 등뼈를 많이 아물게 했네 . 지금은 비록 일어설 수는 없지만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있을 만큼 상 태가 좋아졌네.¬ 전옥심은 다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매화검존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고 있는지는 다. 허나 이런 상태에 있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성격이 얼마나 굳강하고 쾌활한가 하는 것을 여실히 이다. 매화검존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꿰뚫어 본

자세히 알수 없었 있다는 것은 그의 보여주고 있는 것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네가 나에 대해 탄복할 필요까지는 없네. 사실 모든 사람이 나같은 받침대를 질머지고 있지. 단지 그들의 눈에 그것이 보 이지 않아 아무도 알지 못할 뿐이네.¬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보이는 쇠받침대만이 받침대가 아니다. 때로는 불타오르는 원한이나 야망이 그런 쇠받침대보다 더욱 무겁게 사 람의 몸을 지탱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화검존은 부드러운 눈으로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일세. 엄밀히 말 하자면 교환조건이라고나 할까?¬ ↙그게 무엇이오?¬ 매화검존은 전옥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둠속에서 그의 눈이 활활 타오르는 화광처럼 반짝였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을 죽여주게. 그렇게 한다면 나는 자네에게 천하무적의 검초 를 한 가지 알려주겠네.¬


전옥심은 흠칫 놀랐다. 매화검존은 힘있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겠지. 허나 이것은 결코 무리한 부 탁이 아닐세. 단지 자네가 한 사람만 죽여준다면 내가 이십 년동안 고 심한 끝에 창안해낸 검초를 전해주겠네.¬ 전옥심은 그가 창안해냈다는 천하무적의 검초가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죽이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에는 관심이 기울었다. ↙그가 누구요?¬ 매화검존의 눈에서 뿜어나오는 안광이 더 강렬해졌다. ↙그는 나를 이런 꼴로 만든 사람이라네.¬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훌연 불쑥 물었다. ↙자네는 혹시 마도사상 가장 무섭고 무림 역사상 가장 강한 무적의 장 공을 지녔던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전옥심은 눈을 번쩍 떴다. 그토록 무시무시한 인물은 천하에 한 사람밖에는 없다. ↙그는 혹시 만노사 최혼이 아니오?¬ 매화검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내가 죽여 달라는 자는 바로 그 최혼이네.¬ 만노사 최혼은 제 肄쩜悶눼. 그는 평생 적수를 만나지 못했고 그의 유령인은 고금 제일의 장공으로 이름나 있었다. 매화검존의 음성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느 그의 유령인 석 대를 등에 맞고 척추가 완저히 박살나 버렸네. ¬ 유령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고금제일의 장공이었다. 이것은 유령처럼 그 형체나 흔적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번 스치기 만 해 뼈가 으스러지고 만다는 전설적인 장공이었다.


헌데 매화검존이 그 유령인에 석 장이나 맞고도 살아있다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매화검존은 약간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최혼의 유령인은 정말 무섭네. 하지남 나는 다행히 이곳의 광한강골 풍 덕분에 살 수 있었지. 이십 년동안 광한강골풍에 쏘이지 않았다면 내 등뼈는 이미 녹아 없어져 나는 벌써 한 줌의 백골이 되어 있었을 것 이네.¬ 전옥심은 잠시 침음하다가 불쑥 물었다. ↙최혼이 아직까지 살아 있소?¬ 매화검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걸세. 이십 년전 나를 암습할 때도 그 자는 아주 건강했네. 아마 지금은 오히려 반노환동하여 더욱 건강할지도 모르지.¬ 최혼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그의 나이는 거의 배살에 육박할 것이다. 헌데 왜 무림에는 아직까지 최혼의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걸까? 전옥심은 다시 물었다. ↙내가 그를 이길 수 있눗 생각하오?¬ 매화검존은 문득 웃었다. ↙자네가 이곳으로 온 것으로 보아 나는 자네가 양의합격검진을 격파했 다는걸 알 수 있네. 보아하니 자네는 별다른 부상도 입지 않고 그것을 깬 모양이군. 그렇다고 최혼을 이긴다고 장담 할 수는 없지. 허나 내게 한 가지 검초 배운다면 그를 충분히 죽일 수 있네.¬ 전옥심은 내심 궁금해졌다. 매화검존이 이토록 자신만만해 하는 무적의 검초는 대체 무엇일까? 그가 반신반의하자 매화검존은 그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매화검존은 앉은 자세 그대로 오른 손을 들어올려 가볍게 흔들 었다. 그 순간, 우우우웅! 마치 천둥번개가 치는 듯한 울림이 터지며 만붕동이 무너질 듯 송두리 째 뒤흔들렸다. 동시에 전옥심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막강한 압력 때문에 뒤로 비를 물 러났다. 매화검존의 가벼운 손동작에 이토록 가공할 위력이 담겨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매화검존은 그의 놀라는 얼굴을 보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그 검초를 단 일성의 공력으로 시전한 걸세. 만약 전력 을 다했다면 이곳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을 것이네.¬ 전옥심은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이것은 혹시 전설상의 일종인 붕검이 아니오?¬ 매화검존은 뜻밖이떪 표정을 지었다. ↙자네의 안목은 예리하군. 이것은 붕검중의 최고붕인 우주만리붕일세. ¬ 붕검이란 검에 막강한 경력을 담아 상대를 꼼짝 못하게 짓누르는 수법 이었다. 이십대 검류 중에서도 가장 익히기가 어렵고 위력이 강한 것으 로 지난 백여년간 무림에는 나타나지 않은 전설상의 수법이었다. 이 붕검은 극도의 경지까지 연마하게 되면 단지 검을 펼칠 때나는 소리 만으로도 상대를 격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엄청난 검의 위력은 능 히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뒤엎을 수가 있다. 전옥심이 익힌 검초 중 가장 위력 강한 것은 물론 단심혈한이었다. 헌데 조금 전 매화검존이 펼친 초식은 십성으로 시전한다면 과연 자신 이 그것을 받아낼지 의문이었다. 그만큼 매화검존의 우주만리붕은 엄청났던 것이다. 매화검존은 흡족하게 웃었다. ↙이것을 익히기 위해서 나는 근 삼십 십을 허비했네. 그것에는 한 가 지 사연이 있지......¬ 문득 말을 하고 있던 매화검존이 무엇을 보았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 의 시선은 전옥심의 가슴 부근으로 가 있었다. 전옥심은 그의 행동은 의문을 느끼고 있다가 그의 눈이 자신의 가슴에 닿아 있음을 보고 고개를 숙여 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가슴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이것은 조금전 양의합벽검진을 받을 때 찢어진 것인데 조금 전에 매화 검존이 시전한 우주만리붕 때문에 찢어진 옷자락이 더욱 커져 그의 왼 쪽 가슴을 훤히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드러난 전옥심의 건장한 가슴에 선명한 붉은 점 세개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설원에 피어난 선혈처럼 정확히 삼각형을 이루어 피어나 있는 홍 점 세 개. 그것을 보고 있는 매화검존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져 있었고 전신은 갑 자기 벼락을 맞은 듯 격렬히 떨리고 있었다. ↙자네의 성은 전씨인가?¬


갑자기 매화검존이 불쑥 물었다. 전옥심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건 왜 물으시오?¬ ↙묻는 말에만 대답하게.¬ 매화검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의 모습이 너무도 진지하 고 격동했기 때문에 전옥심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아니오. 전씨는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오.¬ 매화검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자네 어머니의 성씨가 전이라고?¬ ↙그렇소.¬ 매화검존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다급하게 되물었 灼袖

혹시

호북성

아닌가?¬ 이번에는 전옥심이 깜짝 놀랐다. ↙아니 그걸 어찌 아시오?¬ 매화검존은 더 한층 크게 흥분하여 그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네 모친의 성명은 전유향이 아닌가?¬ 전옥심은 일순 멍청해졌다. 호북성의 악가구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 사람이라면 물론 자신의 어머니인 전유향을 알고 있을 것이다. 허 나 천하에 이름높은 매화검존이 어찌 그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매검존은 격동하여 몸을 격하게 떨다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어........ 어머님께서 혹시 석무군이란 사람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 시던가?¬ ↙석무군? 그럼 당신이 바로 환상제일검 석무군이란 말이오?¬ 전옥심이 깜짝 놀라 묻자 매화검존은 초조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악가구가


↙그렇다네. 어릿途꼈_ 나에 대해 이야기했군?¬ 전옥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소. 어머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말은 한 번도 하지 않 으셨소. 헌데 당신이 어찌 어머님을 알고 계시오?¬ 매화검존, 아니 환상제일검 석무군은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나....... 나에 대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고?¬ ↙그렇소.¬ 석무군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의 눈가에 굵은 눈 물방울이 고이기 시작했다. ↙유....... 유향! 나를 그토 원망했던가?¬ (유향이라고?) 전옥심은 그의 독백에 몸을 가늘게 떨었다.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을 알고 있는 석무군. 그는 자연 자신과 어떤 사 이일까? 전옥심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석무군은 장탄식을 했다. ↙이것을 보게.¬ 그의 음성이 아주 침통하게 변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풀어 헤쳤다. 그러자 그의 가슴에도 옥심의 가슴과 똑같은 홍점 세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모양하며 크기가 그야말로 빼다박은 듯 똑같았다 . ↙이것은 대대로 석가의 자손에게만 나타나는 삼성홍점이다.¬ ↙그....... 그럼......¬ 석무군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탄식을 토해냈다.¬ ↙내가 바로 전유향의 남편이다.¬ 전옥심은 눈을 크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뚝 서 있었다. 그의 신경은 마비되어 한 순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가 나의 아버지란 말인가?) 어린 시절, 그는 항상 아버지가 없는 것이 한이 되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어 머니에게 왜 아버지가 없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그를 호되게 야단치고 꾸짖었다. 허나 그날 밤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글 껴안고 많이 울었다. 그 뒤로는 그는 절대로 아버지에 대한 것을 묻지 않았다. 아예 자신에 게는 아버지란 존재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어머니가 그의 나이 다섯 살 때 돌아가신 후 그는 자신이 철저한 고아이며 설마 아버지가 있으리 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헌데 이곳에서 그의 아버지를 만나게 될 줄이야........ 석무군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는 나를 꽤나 원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네게 나에 대한 말 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나는 이십 년전에 최혼에게 이런 꼴을 당 해 네 어머니를 찾아갈 수가 없었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거늘 어찌 그녀를 찾아간단 말인가? 더구나 최혼의 부하들이 천하에 깔려 있어 섣 불리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소식을 전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한시도 그 녀를 잊은 적이 없었다.¬

원래 환상제일검 석무군은 악가구 출신이었다. 그와 전유향은 어려서부터 절친한 사이로, 커서 그들은 자연히 사람을 느끼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허나 깨가 쏟아지는 결혼생활의 즐거움도 잠시 뿐, 그들은 서로 헤어져 야만 했다. 우연히 악가구를 지나가던 화산파의 수석장로 육합신검이 석무군의 자 질이 범상치 않음을 발견하고 그를 제자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석무군은 다시 혈기가 꿇고 명성을 얻고 싶은 야망있는 청년이라 그의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허나 그때 전유향에게는 이미 뱃속에서 어린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만삭이 된 몸으로 전유향은 울며 그를 만류했으나 이미 망에 젖어버 린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꼭 천하제일인이 되어 당신을 찾아 오겠소.¬ 석무군은 울며 매달리는 잔유향을 억지로 떼어 놓은 후 화산파로 가서 육합신검의 제자가 되었다. 허나 이것이 두 사람을 갈라놓은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이야...... 당시 화산파는 명성은 대단했지만 천하제일이라 하기에는 거리가 먼 군 소문파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석무군은 우연히 화산의 선인봉 뒷 절벽의 고동세서


화산파 사상 최고의 고수라는 삼백 년전의 검성 소요자의 매화검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공동이 바로 이곳, 만붕동이었다. 그로부터 그의 운명은 단번에 화산파의 제자에서 천하제일을 바라보는 무적의 고수로 바뀌게 되었다. 매화검보를 완저히 익힌 그는 당시 개최돈 제 오차 영웅대회에 출전하 여 당당히 뭇 군웅들을 꺾고 천하제일인의 보좌에 오르게 되었다. 그때 거의 환상적이리만치 뛰어난 그의 검술에 경탄한 무림인들이 그를 환상제일검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영웅대회에서 우승한 후 그는 곧 바로 자신의 조강지처인 전유향을 찾 아 악가구로 달려오려고 했다. 헌데 그때 그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중요한 사건이 일어 났다. 영웅대회에 우승한 이후 화산파에 개선한 그에게 어느 날 한 노인이 찾 아왔다. 그 노인은 비루먹은 망아지를 탄 꾀죄죄한 촌노였다. ↙자네가 이번 영웅대회에서 우승한 환상제일검인가?¬ ↙그렇소.¬ 석무군은 다시 촌노와 상대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상하게도 그에게 서 기이한 신기를 느끼고 그와 대면하게 된 것이다. ↙자네의 검이 천하제일이라고 소문났더군. 한 번 내 검초를 바다 볼텐 가?¬ 석무군은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고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일어 그 노인에 게 검초를 시전해 보라고 했다. 그 노인은 근처에서 아무렇게나 나뒹굴 고 있는 막대기를 하 주워들고 그에게 가볍게 휘둘렀을 뿐이었다. 허나 그 순간, 석무군은 자신이 검의 숲에 갇혀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 다. 무수한 검의 파편이 그의 전신을 뒤덮어 버리는 것 같은 중압감을 느꼈 다. 그는 사력을 다해 그 검초를 깨려고 했으나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검 법으로도 것을 깰 수가 없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노인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비루먹은 당나 귀를 타고 사라진 후였다. 그때부터 그는 그 검초를 깨기 위해서 침식을 잃고 매진했다. 허나 일단 단순해 보이는 것 같은 그 간단한 검초에는 실로 엄청난 힘 이 담겨 있어 천하의 느 초식도 그 검초 앞에서는 격랑속의 나룻배처 럼 풍비박산될 뿐이었다. 그렇게 빠르거나 변화가 많은 검초가 아니건만 능히 하늘을 무너뜨리고 땅을 뒤엎을 무시무시한 위력이 실려있는 것이다.


석무군은 그야말로 미친 사람처럼 되어 이 검초를 깨기 위해 노력을 기 울였으나 좀처럼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대체 천지를 개벽시키는 듯한 그 공할 힘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 그렇게 무심히 세월이 흐르고 있을 때 그는 우연히 한 고수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는 마치 봉황같이 위험있는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나는 후에야 그 가 백검회주인 무적군자검임을 알게 되었지.¬ 무적군자검과 환상제일검의 대결! 그것은 실로 무림역사상 드물게 보는 치열한 대격전이었다. 허나 천여 초가 지나도록 누구도 결정적인 우세를 잡지 못했다. 석무군은 당시를 회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무공이 나보다 약간 높았다. 단지 그의 마음이 너무 관인하여 잔인하게 손을 쓰지 못하는 까닭에 천여 초가 되도록 승패를 가리지 못했을 뿐이다.¬

석무군은 그의 이 충후한 성품과 무공에 감복하여 스스로 패배를 자인 하고 그와 결의형제를 이후

무적군자검은

창립다. 절정의 검수들을 모아 검도를 연구해 보자는 그의 의견에 기꺼이 동의 하여 석무군은 이름을 감추고 백검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배검회에 들어온 것이 알려지면 혹시라도 화산파에 누가 될까 염려되어 무명검사로 불리우길 원했었다.

석무군은 침울한 음성로 말을 이었다. ↙그러던 중 백검회의 부회주가 주최하는 회의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회주와 나를 비롯한 여섯 사람이 독왕지독에 중독되고 다른 네 사람이 우리들에게 칼을 뽑았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 회주인 무적군자검은 그 와중에도 경인할 위력을 발휘하여 네 사람의 반역자를 혼자 막아냈다. 그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졌 다. ↙나도 원래 끝까지 남아 무적군자검을 도와주고 싶었지. 헌데 그때 나 는 한 사람의 습격을 받았다.¬

백검회를


그는 붉은 홍포를 입고 비쩍 마른 노인이었다. 헌데 그의 공격을 받은 석무군은 어이없게도 단 십초만에 그에게 삼장 을 맞고 도망쳐야만 했다. ↙그것은 실로 내가 직접 당했으면서도 믿을수 없는 일이었지.¬ 석군의 입가에 고수가 떠올랐다. ↙당시 내가 독왕지독에 중독되어 전신의 공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 였다고 한 흉포노인의 무공은 정녕 상상을 불허했다. 내가 완전한 상태 였다고 하더라도 그를 당해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었다.¬

나중에야 석무군은 그 흉포노인이 만사 혼이며 그의 장공이 악명높은 유령인임을 알게 되었다. 등뼈가 완전히 박살난 상태에서 그는 사력을 다해 간신히 이곳 만붕동 까지 와서 쓰러졌다. 이곳의 광한강골풍만이 자신의 상처를 치료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 이었다. 그후 그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도 복수를 다짐했다. 자신을 불구자로 만든 만노사 최혼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허나 무슨 수로 만노사 최혼을 꺾는단 말인가? 완전한 상태에서도 그의 상대가 될지 의문이었는데 이제 등뼈가 박살난 처참한 몰골로 그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더욱 석무군을 괴홉혔던 것은 자신이 괴노인의 일초를 영원히 격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바꿔버린 괴노인의 일초를 꺾지 못하고서는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사문인 화산파의 제자들에게 절기를 전수해 주는 한편 그 괴노인의 일초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으므로 화산파에서 가려뽑은 기 재들이 만붕동앞의 공지까지 와서 그에게 절학을 배워갔다. 허나 누구 도 그가 과거의 환상제일검 석무군임을 알지 못했다. 단지 그의 음성만 을 듣고 절학을 배워갔던 이다. 괴노인의 일초는 천하에서 가장 위력이 강한 것이었다. 그 앞에서는 아무리 빠르고 변화무쌍한 검법이라도 제 힘을 발휘할 수 가 없는 것이다 힘을 갖고 있는 검초를 누르기 위해서는 이 검초에 못 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욱 강한 힘을 갖는 검초를 익혀야 한다. 마침 가 기거하는 만붕동의 광한강골풍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바람이 었다. 그는 이십 년의 참오와 광한강골풍의 도움으로 마침내 괴노인의 일초를 깰 방법을 알게 되었다. 허나 이미 등뼈가 부숴진 그의 몸으로서는 이 일초를 완벽하게 익힐 수 가 없었다. 화산파 내에서도 그것은 전수받을만한 기재가 없었다.


제일기제라는 좌백은 너무 오만하고 성품이 고결하여 그 일초를 익히기 에는 미흡했다. 그러던 중 그는 혜성같이 나타나 풍진강호를 질풍노도 처럼 휩쓸고 있는 일대 검마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혹시 하는 마음에 오상과 곽위에게 양의합벽검진을 익히게 한후 소문의 그 검마를 찾아가게 했다. 양의합벽검진은 그가 괴노인의 일초를 변형시킨 것으로, 이것을 깰 수 있다면 괴노인의 일초를 격파할 무적검초를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거라 고 생각한 것이다.

석무군은 긴 이야기를 마친 후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아주 쓸쓸하고 어두웠다. ↙너와 유향에게 달리 할말이 없다. 그녀가 이미 죽었다니 이젠 영원 히 그녀에게 용서를 빌 수가 없구나.¬ 그는 무거운 탄식을 터뜨렸다. ↙한 순간의 야망때문에 두 사람을 평생 괴롭혔으니 내 죄를 어찌 씻을 수 있겠느냐?¬ 전옥심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아릿한 퉁증을 느꼈다. 자신과 그의 어머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 고생을 했다. 그것은 물론 석무군 때문이었다. 허나 젊은이로서 그와 같은 야망을 갖지 않을 자가 누가 있었는가? 더구나 그가 겪어온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자신이 살아왔던 것보다 험 했으면 험했지 결코 편안하지가 않았다. 그러니 어찌 그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한 가지, 그의 마음속에는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석무군이 괴노인을 만난 상황이 주자앙이 당했던 것과 너무도 흡사했다는 것이었다. 비루먹은 당나귀를 탄 촌로! 그는 혹시 주자앙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영향을 끼친 그 괴노인이 아 닐까? 더욱 기이한 것은 두 사람 모두 불의의 암습을 당하여 평생 불구의 몸 이 되었고, 결국은 괴노인의 일초를 깨는 방법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척 상반된 일이었다. 만일 그들이 그런 참변을 당해 불구의 몸이 되지 않았더라도 괴노인의 일초를 깨뜨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 불가능했으리라. 불구가 된 원한과 집념이 嚮喚 결국 수십년의 각고 을 하게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 화복에는 따로 문이 없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운과 불운은 비수와 같은 것이다. 비수의 칼날을 잡든가 아니면 칼자루 를 잡든가 해서 인간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찌기 노자는 불행은 행복위에 서 있고, 행복은 불행위에 누워 있다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전옥심은 문득 물었다. ↙최혼이 왜 암습을 했읍니까?¬ 석무군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도 나중에 제자들을 풀어 안 일이지만 당시 백검회의 배반자였던 탈혼검 최무쌍이 바로 그의 친동생이었다. 최혼은 아마 최무쌍의 부탁 을 받았을 것이다.¬ 탈혼검 최무쌍은 과거의 천하제일마검이었다. 그가 만노사 최혼의 동생 이라는 것은 실로 뜻밖의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석무군은 천천 말을 이었다. ↙당시 다른 사람들은 어찌되었는지 모르지만 회조인 무적군자검은 부 회주와 탈혼검 최무쌍에 암습당해 거의 사경에 처했었다. 마지막에는 최무쌍의 검이 그의 허리를 꿰뚫었지. 허나 그는 결국 도망쳤다.¬ 그의 음성은 나직했으나 진정으로 감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무적군자검은 강한 사람이었다. 무공만을 따진 다면 그는 그야말로 천하제일인이었다. 단지 성격이 유약하고 인정이 많은 것이 유일한 흠이었지.¬ 석무군은 전옥심은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착잡함과 미안함, 유정이 흐르고 있었 다. ↙나는 이제 달리 할말이 없구나. 네가 나를 아버지로 생각하든 하지않 든 오직 네 처분만 기다리겠다.¬ 말을 마치고 석무군은 고개를 떨구었다. 전옥심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의 어머님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그를 저주했을 것이다. 허나 자신 이 어찌 그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어찌보면 석무군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희생을 치르는 사람이 아닌가? ↙소자가 아버님을 뵈옵니다.¬ 전옥심은 그에게 정중히 대례를 올렸다. 석무군은 고개를 번쩍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의 눈에서 뜨거 운 눈물이 샘솟듯 흘러내렸다.


그것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나이의 눈물이었다. 석무군은 슴이 벅차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그는 간신히 한 마디만을 내뱉었을 뿐이다. ↙너는 네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x

x

x

괴노인이 석무군에게 시전한 일초를 편의상 일만뢰라고 하자. 그것은 마치 천군만마가 노도처럼 질주하듯 상대를 짓누르는 것이었다. 일천영이 변화에 초식이라면 일만뢰는 힘의 초식이었다. 어떤 검초라도 짚단처럼 베어버리는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일초였다.

x

x

x

일만뢰를 격파하는 초식은 우주만리붕이라고 했다. 태산마저도 붕괴시킬 듯한 엄청난 힘으로 천군만마를 억눌러 버리는 무 적의 검초였다. 그것은 변화를 무변으로 제압하는 단심혈한과는 또다른면에서 절정에 이른 검초였다. 우주만리붕은 힘을 더 강한 힘으로 억누르는 초식이었다.

x

x

x

↙너는 이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우선 무산에 다녀온 후 만노사 최혼을 찾겠읍니다.¬ ↙그의 행방을 알 수 있겠느냐?¬ ↙제가 그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읍니다. 제 짐작이 틀리지 않 는다면 그도 또한 십자맹의 일원일 것입니다.¬ ↙그럼 너만 이만 가보아라.¬ ↙아버님께서는......¬ ↙그동안 광한강골풍 때문에 내 등뼈도 많이 좋아졌다. 허나 아직도 쇠


받침대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다. 하지만 몇 달간 정성을 다하면 아마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너를 찾아가마.¬

제 4 장 격

검 형

한 사람이 어둠속에서 앉아 있었다. 사방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찰흑같은 함흑이었다. 깊은 정적과 먹물을 뿌려 놓은 듯한 지독한 어둠만이 그의 주위를 에워 싸고 있었다. 문득, 어둠속에서 무언가 희끗한 것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것은 거의 알아차릴 수도 없을만큼 번개같이 짧은 순간에 없어져 버 렸다. 허나 그 섬광이 사라진 순간 짙은 피비린내가 사방을 어지럽혔다. ---------다시 정적이 계속되었다. 이번의 정적은 전번의 것과는 무언가 달랐다. 이번의 정적은 왠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었다. 무엇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무거워진단 말인가? 그것은 살기 때문이었다. 거의 느낄 수도 없을만큼 미약하나 소름이 끼치도록 지독한 살기가 정 적과 어둠속에 잔뜩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 살기는 앉아 있는 인영의 옆에서, 뒤에서, 사방으로 뿜어나오고 있 었다. 문득 어둠속에서 미동도 않고 죽은 듯 앉아있던 인영의 손이 거의 보이 지도 않을만큼 흔들렸다. 그러자 조금전과 같은 짧은 섬광이 다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제보니 그것은 검광이었다. 천하제일의 살인검광! 검광이 사라진 직후, 털썩! 털썩! 분명히 아무 것도 없던 그의 사방에서 무려 여덟 개의 신형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쓰러진 인영들의 목은 정확히 양분되어 있었다. 잘려진 여덟 개의 목에서 뿜어나오는 선혈이 자욱한 피비린내를 풍겼다 . 아! 이제보니 방안은 온통 시체의 천지였다. 앉아 있는 인영의 주위에 거의 셀 수도 없을만큼 수많은 잘려진 시체들 이 뒹굴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모든 시체들이 하나같이 머리가 두동강이 나 있다 는 것이었다. 앉아 있는 인영의 주위는 시체의 산을 이루고 바닥은 핏물로 홍건히 고 여 있었다. 인영의 옷도 선혈에 젖어 시뻘건 홍의가 되어 있었다.


허나 피가 튀기지 않은 그의 유일한 부분인 오른쪽 소매부근의 옷자락 은 하얀 색이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피로 물들기 전에는 인영의 옷은 눈부신 백의였으리라. 인영의 눈에는 아무런 빛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죽어 버린 듯한 눈. 허나 그 눈이 가끔씩 반짝일 때마다 소름이 끼치도록 끔찍한 살기가 뿜 어나오고 있었다. 사방은 여전히 칠흑같은 어둠속에 잠겨 있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그 인영은 빤히 바라보고 있는 두 인물이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앉아 있는 우측 벽의 뒤쪽이었다. 이제보니 방의 우측 벽은 거대한 흑수정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안에 서는 밖을 볼 수 없었지만 밖에 있는 사람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둠속에 앉아 있는 인영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푸른 학창의를 입은 노인이었다. 노인의 주름진 손가락에는 청색 붕새모양의 반지가 끼어 있었다. 한 가지 기이한 것은 노인의 신발에 엷은 날개같은 막이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노인의 옆에는 전신에 검은 흑의를 입고 검은 복면을 한 괴인 하나가 앉아 있었다. 흑의복면인의 손가락은 유달리 길었다. 마치 여인의 손가락처럼 길고 가느다랬다. 허나 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손은 무서운 손이었다. 이런 손은 전문으로 살인을 하기 위해서 쓰여지는 손이었다. 손가락 한가운데는 시뻘건 거미모양의 반지가 끼 여 있었다. 혈주환을 끼고 있는 흑의인의 눈빛은 주위를 꽁꽁 얼릴만큼 싸늘한 것 이었다. 그를 보고 있자니 마치 빙굴속에 빠져든 듯 으시시한 느낌이 들었다. 학창의의 노인은 그를 돌아보고 빙긋 웃었다. ↙어떤가?¬ 복면인은 건너편의 어둠속에 앉아 있는 인영을 얼어붙은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만큼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만에 무림최고의 살인술이라는 흑옥마예를 완성하다니 놀라운 놈이군.¬ 그 음성은 눈빛만큼이나 냉랭한 것이었다. 갑자기 방안에 얼음이 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허나 학창의의 노인은 이미 그의 차가움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다시 물었다. ↙필살유혼에 비하면 어떤가?¬


흑의인의 눈에서 뿜어나오는 냉기어린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본방을 배신한 필살유혼 따위는 그의 반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오. 어 둠속에서라면 저 자는 이미 천하무적이오. 나 자신도 어둠속에서는 저 자에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오.¬ 푸른 학창의의 노인은 흡족하게 웃었다. 그는 이 복면인이 절대로 허언을 할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복면인은 건녀편의 인영을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흑옥마예를 익히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성마저도 버려야 할만큼 혹독 한 고련이 필요하오. 저 자는 대체 무엇때문에 아무도 익히기를 꺼려하 는 그 마예를 익힌 것이오?¬ 학창의의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그가 자신의 심혼을 내걸면서 까지 악마의 살인술이라는 혹옥마예를 익힌 이유는 전옥심에게 영원히 씻지 못할 빚이 있기 때문일세.¬ 복면인은 그를 바라보았다. ↙저자가 누구요. 육노인?¬ 육덕명은 암흑속에 인영을 바라보며 하얗게 웃었다. ↙그는 바로 좌백일세.¬

x

x

x

무산. 무산은 백제성 동쪽으로 강을 끼고 우뚝 솟아있었다. 산아래에는 물결이 세찬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 강이 천하에 이름높은 무산삼협중의 구당협이었다. 무산삼협은 이곳이외에도 서릉협과 무협을 말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그 경지의 빼어남과 물살의 변화무쌍함으로 널리 알려진 천하의 명승지였 다. 구당협은 삼협중에서도 물살이 가장 센 곳으로, 사시살철 결이 구당협의 하마탄과 장군탄, 보자탄, 황

그치지

않는

곳이었다.


장배등은 모두 천하에 이름이 높거니와 그중에서도 유명한 곳이 바로 흑석탄이었다. 흑석탄은 구당협의 가장 아래쪼게 있으며 다른 곳보다도 물살이 유달리 세고 곳곳에 검은 바위들이 둘러싸여 있어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의 관뭄처럼 여겨지고 있는 곳이었다. 아무리 무산삼협을 자유자재로 왕복하는 경험많은 사공이라 하더라도 이 구당협을 지날 때 잠시의 한눈만 팔게 되어도 느닷없이 솟아나 있는 검은 암석에 배가 박살나고야마는 천험의 절지인 것이다. 정오경. 초여름의 햇살이 이마에 절로 땀 솟게 할 무렵. 천하에서 험악하기로 유명한 흑석탄의 강변에 한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 검은 오의, 늘어진 흑발, 허리에는 녹슨 철검을 차고 쓸쓸한 눈빛으로 흑석탄의 하늘높이 튀쳐 오르는 물살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은 당금천하 를 온통 경악과 공포로 몰아 넣고 있는 일대검마, 오의광생 전옥심이었 다. 흑석탄의 물살은 오늘따라 더욱 세차게 부숴지고 있었다. 하늘까지 꿰뜷을 듯 세차게 올라갔다는 햇빛을 받아 은빛을 뿌리며 잘 게 부숴지는 물살은 어느 새 그의 흑의마저도 흠뻑 적셔 놓았다. 전옥심은 흑석탄의 물결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햇살에 잘게 부숴지는 물방울....... 세찬 격랑을 이루며 휘몰아가고 있는 물줄기.......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요란한 굉음....... 그것은 마치 전옥심으로 하여금 폭풍우가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로 있 는 듯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얼마전 도도히 흐르는 장강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치 고여있는 것처럼 유유히 흐르는 장강도 강물이었다면, 지 금 눈앞에 보이는 광란하는 듯한 흑석탄도 역시 강물이 아닌가? 물은 같은 물이지만 그 형태는 같지 않은 것이다. 물이란 신비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저게 갈라지면 이슬방울이 되고 많이 모이면 개천이 되고 그보 다 많이 모이면 장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담는 형태에 따라서 물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가? 전옥심은 노도하는 흑석탄 물결을 바라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물은 아래로만 흐른다. 돌이 있으면 돌을 피하고 바위가 있으면 바위를 피해간다. 그렇다고 물이 반드시 부드럽고 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노하면 모든 땅을 뒤엎어 버리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물이다.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물이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바위도 꿰뚫을 수 있는 것이다. 전옥심은 문득 자신도 모르게 나직하게 얼거렸다.


↙검의 형태도 물과 같이 자유자재롭게 변화할 수 있는 형태여야하지 않을까?¬ 그의 생각은 점점 이어졌다. ↙물이 높은 곳을 피하여 낮은 대로만 흐르듯, 검법도 실을 피하고 허 를 쳐야만 할 것이다.¬ 전옥심이 생각하고 있는 건 유수검도의 논리였다. 허나 단순한 유수검도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더욱 심오한 데가 있었다. 전옥심의 지금 검도는 그가 출도할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정진 해있는 상태였다. 더욱이 석무군으로 부터 힘의 검초인 우주만리붕을 전수받은 다음에는 그의 검도는 어느 새 전혀 새로운 경지에 접어뎔 있었던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심검의 마지막이라는 무형검에 대해 나름대로 논리 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허나 아직까지 자신의 논리를 정연하게 정립해 놓지는 못했다. 그런 경지는 누가 가르쳐준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 오직 자신 이 직접 깨달아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지고의 경지였다. 지금 흑석탄의 물을 보면서 전옥심은 무언가 마음속으로 자신의 논리가 차츰 어떤 형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나 그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하기에는 어딘가 미흡 데가 있었다. 전옥심은 문득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 왔다. 떠오를 듯 떠오를 듯 하면서도 떠오르지 않는 아련한 생각........ 검의 잔상들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문득 그의 등뒤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렸다. ↙검은 형태뿐만 아니라 기세또한 물과 같아야 하네. 빨리 흐르는 물이 위력이 있는 것도 모두 기세가 생긴 때문일세.¬ 전옥심은 그 미지의 음성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 그렇군.¬ 그는 그제야 자신의 검도에서 미진한 부분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깨달았 다. 그가 지금까지 익힌 검의 최고봉은 단심혈한이었다. 물론 우주만리붕도 알고 있지만 단혈한만큼 완벽하게 알고 있지는 못했다. 단심혈한은 변화를 타파하는 검초였다. 어찌보면 천하에서 가장 변화무 쌍한 검초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전옥심은 자신도 모르게 순간에 사물을 볼때마다 변화에 대 해 더 많은 신경을 기울게 된 것이다. 지금 물을 보면서도 그는 흑석탄의 세찬 기세보다는 그 흐르는 형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 때문에 미처 흑석타의 물이 흐르는 그 가 공할 기세, 엄청난 위력의 근원을 잊어버린 것이다. 고여있는 물은 힘이 없지만 흐르는 물에는 힘이 있다. 그 흐름이 빠를 수록 그 위력은 정진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빠리 흐르는 물이 있다면 그 기세또한 가장 강력할 것이다 . 전옥심은 자신의 몸에 한 줄기 격동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감을 느꼈다. 그것은 완벽한 깨달음에 대한 마음속으로 부터의 환희였다. 격동이 스치고 지나간 후 그에게는 오히려 허탈감이 엄습해왔다. 전옥심은 천천히 몸을 돌려 음성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뒷편에 멀지 않은 곳에 한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키가 무척 큰 사람이었다.

빛이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했다. 머리는 헝 클어져 있었으나 누추해 보이지는 않았다. 젊었을 때는 무척 준수했을 모습이었다. 그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용과 같고 봉황같은 기상이 흐르고 있었다. 누 가 보아도 상한 인상이 아니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의 왼 팔이 어깨부터 싹둑 잘려나갔다는 것이다 . 허나 그것으로도 그의 호탕한, 황제와 같이 근엄한 모습을 지우지는 못 했다. 그는 두 눈에 영기가 가득 담긴 눈으로 전옥심의 전신을 쓰윽 흝어보다 가 미소지었다. ↙생각을 깨뜨렸다면 용서하게. 단지 자네가 마음속 고민을 깨지 못하 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한 마디 했을 뿐이네.¬ 그의 목소리는 얼굴과 마찬가지로 고귀했다. 전옥심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단 한 번 보았을 뿐인데도 그에게는 말할 수 없 호감이 느껴졌다. 이 오순의 중늙은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상한 친밀감을 느 끼게 했다. 그것은 그의 천성인지도 몰랐다. 전옥심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정중히 포권을 했다. ↙귀하의 가르침에 감사드리오.¬ 노인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네. 오히려 하잘것 없는 내 한마디가 자네에게 도움이 되었


다니 기쁘네.¬ 이어 노인은 부드러운 눈으로 전옥심을 보며 물었다. ↙헌데 자네는 무슨 일로 이 험한 흑석탄에 왔나?¬ 전옥심은 잘라진 그의 왼팔을 바라보았다. ── 그는 혹시 형비의 사부인 독비웅이 아닐까? 전옥심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형비가 보내서 왔소.¬ 그 말에 인은 눈을 크게 떴다. 노인은 한동안 기이한 얼굴로 전옥심을 바라보다가 나직히 물었다. ↙형비가 보내서 왔다고?¬ ↙그렇소.¬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그는 죽었소.¬ 노인의 눈에는 기이한 빛이 일렁거렸다. 그것은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빛이었다. 어찌보 경악에 찬 것 같 기도 했고 달리보면 한없이 슬픔에 찬 표정같기도 했다. 또 달리보면 기쁨에 넘친 것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허전해 보이기조 차 했다. 문득 노인은 긴 탄식을 토햇다. ↙그는 결국 약속을 지켰군.¬ 그 음성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침통한 것이었다. 전옥심은 천천히 자신이 지금껏 간직하고 있던 형비의 전백검을 풀어 그에게 건네 주었다. ↙이것은 형비으 검이오. 그는 죽으면서 이 검을 자신의 사부에게전하 라고 했소.¬ 노인은 검을 받아 들었다. 그는 착잡한 눈으로 검을 물끄러미 내려보다가 불숙 물었다. ↙자네는 이 검의 내력을 알고 있나?¬


전옥심은 고개를 저었다. 노인은 검을 어루만진 채 고개를 들어 세찬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는 흑 석탄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 얼굴은 전옥심이 영원히 잊을 수 없을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그곳에는 우수와 고독, 광오함, 인자, 분노와 처절한 원한의 감정이 소 용돌이 치고 있었다. ↙이 검은 과검 천하에서 가장 잔인한 자가 쓰던 검일세. 그는 이 검으 로 수백 명을 죽였지.¬ 노인의 음성은 낮게 깔려 있었다. ↙이십 년전 그 자는 이 검으로 한 사람을 습격했네. 그때 그자는 이 검을 상대의 옆구리에 깊숙이 꽂았지. 허나 암습을 당한 사람은 검에 꽂힌 채로 그의 추격을 뿌리쳤네. 그 후로 이 검은 주인을 잃고 말았지 .¬ 전옥심은 눈을 빛내며 노인을 주시했다. 그는 원래 검을 전해주었으므로 이제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허나 왠지 전옥심은 노인과 헤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노인은 천천히 자신의 옷을 풀어 옆구리를 들어냈다. 그곳에는 거의 두 치 길이의 끔찍한 검흔이 나 있었다. 검흔주위의 피부는 시퍼렇게 변해 보기에 끔찍했다. 전옥심은 한 눈에 그 검흔이 내장을 관통하는 치명적인 것임을 알아 보 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을 엄중한 상처 였다. 헌데도 이 노인은 그런 상처를 지닌 채 이십 년을 지탱해 오고 있는 것 이다. 그 상처를 쓰다듬는 노인의 눈길에는 아련한 고통의 빛이 스치고 지나 갔다. ↙때로는 내 자신도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지네 . 하지만 이 상처 덕에 나는 거의 모든 무공을 잃어 버렸지.¬ 전옥심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 노인은 무엇때문에 전옥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노인은 다시 옷깃을 여민 후 전백검을 쓰다듬었다. ↙이 검은 항상 피를 갈구하고 있네. 허나 나는 피를 싫어하지. 그래서 나는 이 검을 저주하네. 그런도 내가 형비에게 이 검을 준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전옥심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소.¬ ↙그것은 이 검이 천하제일의 쾌검인 일광혼을 전개하는데 더없이 적합 한 것이기 때문이지.¬ 노인은 불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전옥심을 주시했다. ↙나는 형비에게 단 일검밖에는 알려주지 않았네. 고금사상 가장 빠른 일 초의 검법, 일광혼 밖에는. 그리고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지. 무 슨 수를 써서라도 이 일광혼을 꺾는 사람을 찾아 내게 데려오라고 말일 세.¬ 노인은 문득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결국 목숨을 내걸고 약속을 지켰군.¬ 전옥심은 내심 탄식이 흘러나왔다. 형비가 바랐던 것은 영웅대회의 우승이나 무림에서의 명성이 아니었다. 피비린내나는 선혈도 아니었고 처절한 승부도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쾌검을 꺾을 사람만을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결국 그는 자신의 목숨마저 내버려야만 했다. ── 하지만 대체 형비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일까? 노인은 전옥심의 마음을 짐작하듯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런 일을 한 것에는 하나의 절대적인 이유가 있네. 그것은 형 비를 통해 검의 절대적인 천재를 찾고자 했기 때문일세.¬ 문득 노인의 음성에 강한 힘이 담겼다. ↙자네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가?¬ 전옥심은 그의 물음에 눈을 빛냈다. 그는 사실 어렴풋이 노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아무 말도 하지않고 노인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노인은 홀연 허공을 려다보다가 담담한 음성으로 말을 내뱉었다. ↙내가 바로 백검회주였던 무적군자검일세. 그리고 나를 암습했던 전백 검의 원주인은 탈혼검 최무쌍일세.¬

무적군자검!


놀랍게도 눈앞의 이 노인이 바로 전설의 인물이 되어 버린 신비의 고수 , 무적군자검인 것이다. (과연 그였군.) 전옥심은 빛나는 눈으로 이 신비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무적군자검은 잠시 아련한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며 독백하듯 중얼거 렸다. ↙백검회는 이십 년전에 멸망해 버렸네. 그것은 회내에 반란이 일어났 기 때문일세. 그 당시 나는 탈혼검 최무쌍에게 거의 치명적인 암습을 당해 거의 빈사 상태에 빠졌지. 용케도 살아났지만 무공이 거의 전폐되 어 복수는 꿈도 꾸지 못했네. 그때 우연히 형비를 알게 되었지.¬

형비는 원래 무산에서 사냥을 하며 살고있는 사냥꾼의 아들이었다. 허 나 어려서부터 몸ㅇ 허약하고 고질이 있어 정상적인 어린아이들처럼 마 음껏 뛰어놀지를 못했다. 무적군자검이 우연히 형비를 만난 것은 그의 나이 십삼세 때였다. 당시 무적군자거믄 최무쌍에게 당한 상처를 거의 치유한 상태였으나 아 직도 무공은 반도 회복하지 못해 실의에 잠겨 있을 때였다. 그때 아버 지와 함께 구당협을 지나가던 형비를 만난 것이다. 그는 단번에 형비의 재질이 범상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형비는 천성적으로 아주 특이한 신체를 타고난 것이다. 그것은 보경연 골체라는 것이었다. 보경연골체는 말 그대로 전신의 신경이 남들에 비해 수백 배 발달된 반 면 뼈가 제대로 굳어지지 않은 기이한 체질이었다. 이런 체질은 백만 명헤 하나 나타날까말까 하는 것으로써 형비는 이 체때문에 다른 아 이들보다 허약했던 것이다. 허나 만일 이 체지릉ㄹ 가진 자가 무공을 익힌다면 비록 내공에서는 많 은 무리가 있겠지만 그 신경의 발달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뛰어나 게 되어 천부의 승부감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무적군자검은 형비와 그의 아버지를 설득하여 결국 그를 제자로 삼게 되었다. 형비의 기이한 체질은 쾌검을 익히기에 적합하여 형비는 고금 제일의 쾌검이라는 일광혼을 완성할 수 있었다. 허나 무적군자검이 형비를 자신의 제자로 삼고 쾌검을 전수한 것은 그 를 통해 복수를 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무적군자거믄 홀연 전옥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네는 혹시 과거에 천하제일기사로 불리웠다가 홀연 사라졌던 한 인 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전옥심은 그의 느닷없는 물음에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고개를 끄 덕였다. ↙물론 들었소. 그는 바로 환우일기사 종리을진이 아니오?¬ 무적군자검은 나직이 탄식을 했다. ↙그렇네. 자 는 그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알고 있는가?¬ 전옥심은 고개를 저었다. 환우일기사 종리을진은 전옥심이 십자맹을 꺾기 위해서는 꼭 찾아야 할 인물이었다. 주자앙의 의형이기도 하고, 제 사차 영웅대회의 우승자로 더욱 유명한 인물이었다. 알려진 바라보는 그는 무공에 관한 한 백년제일검사 남궁 산이후 최고의 기재라고 하지 않던가? 허나 남궁산과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무림에서 신비스럽게 사라지 고 말았다. ─── 무적군자검은 왜 그에 대한 것을 묻는 것일까? 무적군자검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그가 다른 인물로 화했기 때문일세. 천하의 제일기사는 나중 에 무적의 검객이 되어버렸지.¬ 전옥심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무적군자검은 나직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바로 환우일기사 종리을진이네. 무적군자검은 종리을진의 화신 일 뿐일세.¬ 아아......! 무적군자검! 이제는 이미 신화적인 존재로 변해버린 이 신비의 인물이 다름아닌 전 옥심이 그렇게 찾던 종리을진이었던 것이다. 무적군자검, 아니 종리을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무적군자검이 된데는 하나의 이유가 있었네. 그러니까 벌써 이 십 오년전이군...... 그 당시 나는 영웅대회에서 우승하여 천하에 무서 운 것이 없었지.¬

제 사차 영웅대회에서 뭇 군웅들을 물리치고 천하제일의 보좌에 오른


그의 명성은 중천의 해처럼 천하를 떨쳐 울리고 있었다. 천하제일기사의 영예와 수많은 고수들의 선망의 눈초리! 아무도 감히 그의 전도양양한 앞길을 막지 못할 것 같았다. 헌데 어느 날,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머리에 복면을 하고 몸이 비쩍 마른 인물이었다. ↙자네가 요즘 환우의 제일기사로 불리운다는 그 종리을진인가?¬ 그의 음성은 아주 거칠고 탁했다. 허나 종리을진은 곧 그가 음성을 일부러 변화시켰다는 것을 알아 차렸 다. ── 복면인은 무엇때문에 목소리를 억지로 바꾼 것일까? 종리을진은 내심 의아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헌데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오셨소?¬ 복면인은 기이하게 웃었다. ↙자네의 무공이 거의 무적에 이르러 과거의 남궁산에 비견된다고 하던 군. 허나 나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가 않네.¬ 종리을진은 온화한 성격 그대로 부드럽게 웃어 넘겼다. ↙하하...... 강호의 소문은 항상 와전되기 마련이니 귀하가 그렇게 생 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오. 더구나 그 분은 나의 사부이신데 내가 어 지 그분과 감히 비교되겠소?¬ 헌데 복면은 두 눈을 번쩍이며 냉랭하게 말했다. ↙과연 듣던대로 마음이 온후하군. 허나 그런 자비심은 상승검도에 방 해가 될 뿐이지.¬ 동시에 복면이는 오른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아아....... 그 순간의 가공함이란....... 무엇이 어된 영문인지 모른 채 종리을진이 눈을 덨을 때는 어느 새 복면인의 손이 그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그것은 가히 고금제일이라 할만큼 쾌속한 솜씨였다. ↙이...... 이런 쾌검이 있다니......¬ 종리을진은 너무도 경학하여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복면인은 그의 놀람에 가득찬 얼굴을 보며 천천히 손 φ煮 돌연 호통을 쳤다.


↙이것도 막지 못하면서 감히 천하제일을 논한단 말이냐?¬ 종리을진은 수치심과 당혹감으로 얼굴이 벌개져 고개를 수그렸다. 그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을 때는 복면인은 어느 새 사라진 후였다. 허나 종리을진은 자신이 조금 전에 보았던 복면인의 가공할 쾌검이 눈 에 어른거려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 쾌검식을 깨기 위해 골몰했네.¬ 종을진의 말을 듣고 있던 전옥심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이야기는 주자앙과 석무군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주자앙과 석무군의 아펭 나타났던 인물은 비루 먹은 망아지를 탄 괴노인이었던데 반해 그에게는 복면인이 나타났다는 것 뿐이앋. 전옥심은 몇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 괴노인은 그 복면인과 동일인물이 아닐까? ── 만일 그렇다면 그는 무엇 때문에 복면을 하고 목소리를 바꾸었을 까? ── 혹시 그는 종리을진과 안면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것을 감추기 위해 복면을 하고 음성을 바꾼 것이 아닐까? ── 그리고 그는 무엇 때문에 세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일까? ── 그가 주자앙과 무군, 종리을진에게 보여준 각기 다른 천하무적 의 세 가지 검초는 과연 무엇일까? 종리을진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쾌검을 연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네. 허나 도저히 그 쾌검보다 더 빠른 검식을 알아낼 수 없었네. 그 복면인의 쾌검은 단순 히 일 초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그야말로 검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할 만큼 심오한 논리가 담겨 있다네. 결국 나는 혼자서는 도저히 그것 을 격파할 방법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비무를 통해 그것을 찾아보리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나는 당시 천하서 가장 뛰어난 검수들을 찾아다닌 것일세.¬ 고금 최강의 집단이며 신비로 점철된 백검회는 실로 이와같은 연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복면인의 쾌검을 꺾기 위해 천하의 절정검수들을 찾아다니던 종리을진 은 의외로 그들중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인물이 거의 없음 알고 실망에 잠겼다.


허나 곧 그는 한 가지 다른 방안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비록 모두 그에게 패했지만 나름대로 심오한 검도의 논리를 지 니고 있는 절대고수들이었다. 때문에 만약 그들과 함께 검도의 지고한 경지를 연구하게 된다면 의외의 수확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는 그 절정검수들을 모아 백검회를 창안하게 된 것이다.

↙백검회는 그야말로 완벽한 조직이었다. 처음 창단되었을 때부터 나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지. 우리들은 서로 허심탄회하게 상대의 단점을 지적해 주고 보다 나은 검도를 위해 의견을 교환네. 아마 그렇게 몇 년만 더 있었으면 나는 복면인의 쾌검을 격파할 방법을 발견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각기 다른 검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 할 수 있었을 것이네.¬ 종리을진의 음성이 침울하게 변했다. ↙헌데 그때 부회주가 나를 배반했지.¬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몹시 착잡한 것이었다. 전옥심은 그렇지 않아도 대만이라 불리웠던 백검회의 부회주가 누구인 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참이라 그에게 불쑥 물었다. ↙그는 누구요?¬ 종리을지은 잠시 회한과 분노에 찬 얼굴로 허공을 올려다보다가 허탈하 게 말했다. ↙그는 나의 사제인 남궁진웅일세.¬ ↙남궁진웅? 바로 남궁검문의 가주인 그 신주풍운검 말이오?¬ 전옥심이 흠칫 놀라 되묻자 종리을진은 고개를 끄덕여싸. ↙그렇네. 남궁진웅은 나의 사부인 남궁산의 외아들이지. 그와 나, 이 옥산과 천향비자 조심의는 모두 남궁산에게 사사했네. 헌데 남궁진웅 은 항상 나에 비해 진도가 더디었기 대문에 사부께선 늘 나를 대지라고 부르고 그를 대만이라고 부르셨지. 그 뒤로 사형제들은 그를 대만이라 고 불렀다네.¬ 종리을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사부인 남궁산이 어느 날 의문의 실종을 당한 후 우리 사형제는 뿔뿔 히 흩어졌지. 그러다가 몇 년 후 그 복면인을 만난 것이지. 백검회를 처음 창설할 때 나는 남궁진웅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그는 기꺼이 응


했지. 헌데 결국......¬ 종리을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허탈한 표정으로 물결치는 흑석탄을 바라 보다. 신주풍운검 남궁진웅! 당금 강호의 천하제일검문이라 불리우는 남궁검문의 가주이자 매화검존 과 더불어 이대검객이라 칭송받는 그가 바로 백검회의 부회주였던 것이 다. 헌데 그는 대체 무엇 때문에 종리을진을 배반했단 말인가? 종리을진은 한동안 노한 듯 용솟음치는 흑석탄의 물결을 바라보다가 쓸 쓸히 중얼거렸다. ↙과거 그와 나는 약간의 은원관계가 있었다네. 나는 그 일을 거의 개 의치 않고 잊어버렸는데 그는 그것을 앙싱으로 삼았던 모양일세.¬ 그것은 치정에 얽힌 문제였다. 원래 종리을진의 사매인 조심의와 이옥산은 둘다 천하삼미로 불리울 만 큼 미모가 뛰어났다. 허나 두 사람의 성격은 판이했다. 조심의는 차가우리만치 냉정하고 이지적인 성격이었고 이옥삼은 항상 부드러우면서도 조용하고 차분했다. 그래서 남궁진웅은 이옥산을 사모 하게 되었다. 헌데 공교롭게도 이옥산과 조심의는 두 사람 모두 종리을진을 마음에 두고 싸늘한 여성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이옥산에게 더 마음이 끌렸다. 남궁진웅은 이것을 알자 질투에 눈이 멀어 어느 날 음약을 사용해 이옥 산을 강간하려 했다. 그때 마침 남궁진웅을 방문했던 종리을진이 이것 을 알고 그를 쫓고 그녀를 구출했다. 허나 음햑의 약효가 너무 강렬하여 미처 해독하기도 전에 이옥산과 종 리을진 불의의 정사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조심의는 이것을 알게 되자 몹시 상심하여 떠나버렸고 남궁진웅도 자신 의 죄를 뉘우치고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며 물러났다. 헌데 남달리 성격이 중후한 종리을진은 자신 때문에 사형제간의 의리가 끊어진 것 같아 죄책감에 사로잡혀 이옥의 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졸지에 사랑하는 연인과 사형제를 모두 잃은 이옥산은 절망하여 그대로 중이 되고 말았다. 네 명의 사형제는 이렇게 흩어지고 만 것이다. 종이을진은 비록 마음이 아팠으나 더욱 무공에 정진하여 마침내 사차 영웅대회에서 우승하고 천하제일기사의 칭호를 듣게 된 것이다.

조심의보다는


↙당시 남궁진웅이 나를 배반한 것이 그 자신의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최무쌍의 사주를 받는 것인지 잘 모겠네. 하지만 이옥산의 일로 해서 그가 내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일세.¬ 종리을진은 마음이 무거운 듯 음성이 낮게 깔렸다. ↙최무쌍에게 허리를 관통당한 후 나는 간신히 그들의 추적을 피해 이 곳까지 오게 되었네. 그 후 오랜 시간에 걸쳐 상처 치유하고 있는 동 안에 복면인의 쾌검에 대해서 차분히 연구해 불 수 있었지. 그때 나는 내가 왜 그동안 그 쾌검을 격파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네. ¬

복면인의 쾌검은 아주 살인적인 것이었다. 그것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집요한 승부욕과 함께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필승의 신념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이 쾌검은 너무도 빠르기 때문에 한 번 펼쳐지면 도저히 멀출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상대가 쓰러지던지 아니면 자신이 죽던지의 일격필상으 수법 인 것이다. 이런 악독한 쾍머은 격파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마음 모질게 먹어야 한다. 헌데 종리을진은 천헝이 후덕아혀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을 극도 로 억제해 왔다. 오죽했으면 무공을 익힌 후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살 해하지 않아 군자검이란 명칭까지 붙었겠는가? 그런 관인한 마음은 비록 존경스러운 것이었지만 이런 살인적 쾌검을 상대하기에는 가장 부적절한 것이었다. 헌데 백검회의 참사 이후 최무쌍의 검을 허리에 꽂은 채 필사적으로 도 망을 해 이곳에 왔을 때는 그의 마음속에는 원한과 보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살심이 자리잡게 것이다 . 그때문에 종리을진은 복면인의 쾌검을 냉정한 눈으로 볼 수 있었고 결 국 극서을 격파할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복면인의 일초는 검에 혼을 실어 담는 것이네. 나는 이곳 흑석탄에서 거센 물길의 흐름을 보고 그 쾌검을 꺾을 수 있는 무공을 만들었지. 그때 마침 형비를 만났던 것일세.¬ 종리을진의 음성이 차차 담담해졌다. ↙형비는 비록 천부의 기재였지만 내가 창안해낸 새로운 무공을 익히기 에는 미흡했네. 형비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어 승부사라 할 수 있지만 내가 만든 초식은 그런 감각으로는 익힐 수가 없고 오직 검도


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지녀야만 하네. 그래서 형비로 하여금 그 복면 인으 쾌검을 익히게 하고 그에게그 쾌검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달 라고 했지.¬ 종리을진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형비는 신경이 날카롭고 감각이 뛰어났지만 뼈가 단단하지 못해 상승 검도를 익히지는 못했네. 그는 오직 그 일검에만 매달렸지. 결국 그는 그 쾌검을 완성했지만 그 외의 다른 무공에는 전혀 백지상태였네.¬ 전옥심의 뇌리에는 잠시, 검에다 자신의 혼을 내걸었던 일대 승부사, 형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앙상할 정도로 비쩍 마르고 볼품없는 모습으 로 서 있었던 형비, 허나 그의 마른 손에 뿜어나오는 가공할 쾌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찬탄 과 경이를 불러 일으켰었다. 아무리 무서운 고수라도 단 한번의 출수로 상대를 쓰러뜨리던 형비! 그가 왜 종리을진의 제안을 수락는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형비는 자신의 쾌검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는 자신의 쾌검을 이길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종리을진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쓰러졌고, 종리을진은 자신이 애타게 찾던 사람을 발 견했다. 종리을진은 강한 시선으로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불타오르는 듯한 강한 집념과 함께 어떤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일평생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지만 단 세 사람만은 예외일세. 바 로 나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길을 가게 했던 그 신비한 복면인과 나를 배반한 남궁진웅, 그리고 나로 하여금 이십년동안 고통 속에 신음케 한 최무쌍일세. 자네는 나의 한을 풀어주지 않겠는가?¬ 전옥심은 종리을진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 시선을 교차한 채 묵묵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 전옥심의 차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문득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소.¬ 종리을진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엇인가?¬ 전옥심은 미소띈 얼굴로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을 찾고 있었소.¬ ↙나를 찾고 있었다고?¬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눈을 빛내며 생각에 잠기다가 불쑥 물었다. ↙자네는 왜 나를 찾고 있었나?¬ 전옥심은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당신은 혹시 천기수사 주자앙을 기억하고 있소?¬ 전옥심은 놀라는 종리을진을 바라보며 얼굴에 더욱 짙은 미소를 띄다 . ↙나는 마침 그에게 부탁을 받았소.¬

x

x

x

복면인의 쾌검을 일광혼이라고 불렀다. 천년 동안 일광혼은 단 한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빛보다 빠르게 자신의 혼을 검과 함께 쳐내는 이 초식은 동의 극치이며 쾌의 최고봉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천하의 모든 것을 파하는 절정의 경지였다.

x

x

x

일광혼을 격파하는 초식은 격수검형이라고 했다. 이것은 천하에서 가장 험하고 격랑이 빠른 흑석타의 물살의 흐름을 보 고 만든 것이었다. 물의 기세, 그 가공할 빠름과 엄청난 위력을 검에 담아 쳐내는 것으로 가히 무적의 검초라 할만 했다. 그것은 단심혈한, 우주만리붕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절정검도였고 심 검을 완성해가는 마지막 디딤돌이기도 했다.


-----------------------------------------------------------------제 5 장 인

면 구

한 여인이 남자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소식이 왔어요.¬ ↙무엇인가?¬ ↙혁무심이 있는 곳을 알았다고 해요.¬ ↙혈전검 혁무심? 그가 어디에 숨어 있었나?¬ ↙그는 형산의 축융봉 동쪽에 있는 침사곡에 있다고 해요. 우리의 손을 벗어난 후 이십 년 동안 그곳에 숨어 있던 거지요.¬ ↙흐흐...... 그동안 잘도 숨어 있더니 이제야 발각되었군. 그 놈만 처 치하게 되면 백검회 혈사의 내막을 아는 자는 우리외에는 아무도 없게 되지.¬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침삭곡은 형세가 기이해 함부로 습격할 수 없어요. 게다가 신기제갈의 제자와 우내십검의 세 사람이 그곳으로 가 니 쉽게 그를 해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흐흐...... 허나 달리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곳에서 그들 모두를 해 치울 수 있지 않겠나? 더구나 그들은 그가 사매에게 굴복하여 배반한 것을 아직 배반한 것을 아직 모를테니.....¬ ↙그렇겠군요. 그럼 누구를 보낼까요, 사형?¬ ↙혈자호에게 부탁을 해서 오로와 칠성을 보내지. 그들이라면 우내십검 의 몇 사람쯤은 쉽사리 해치울 수 잇을테니까.¬

다른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있는 곳을 알아냈소.¬ ↙그게 정말인가? 그는 어디에 있는가?¬


↙흐흐.......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그는 바로 망혼유곡의 뒤쪽 동굴에 기거하고 있었소.¬ ↙흐음. 걀 천기수사다운 발상이로군. 그러니 그동안 행방을 알지 못 했지. 허나 이제 종적을 알았으니 그도 끝이로군.¬ ↙나에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있소.¬ ↙그게 무엇인가?¬ ↙한 번의 그물질로 두마리 새를 낚는 것이오.¬ ↙자네의 말은 그를 이용해서 다른 자를 끌어들이자는 건가?¬ ↙그렇소. 뿐만 아니라 그 다른 자는 그동안 우리들의 골머리를 썩히게 했던 자일 수 있소. 어쩌면 우리는 의외로 최대의 수확을 거두어 들일 수 있을지 모르오.¬ ↙흐흠. 그럴 듯 한군. 자네는 그렇다면 누구를 보낼 것인가?¬ ↙원래는 오로와 칠성을 보내려 했지만 그들은 다른 곳에 가야 하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려고 하오.¬ ↙자네가? 하긴...... 먼저번에도 자네가 직접 갔으면 그를 살려두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지. 어떤가? 이번 기회에 그를 한번 시험해 보 는 것이.¬ ↙좌백을 말이오?¬ ↙그렇네. 그의 흑옥마예는 거의 완성단계에 와 있네. 그러니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될 걸세.¬ ↙알겠소. 이번에냐 말로 모든 화근의 뿌리를 잘라 벌릴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겠군.¬

x

x

x

형문산. 형문산은 호북성 의도현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양자강 남쪽에 위치 한 이 산은 북쪽 기슭의 호아산과 마주보고 잇다. 양쪽 기슭의 산이 바짝 다가 있는 속을 양장강이 흐르고 있다. 그 모양이 흡사 형(형:초나라)의 문과 같아서 형문라 불리우게 된 것


이다. 형문산의 아래에는 하나의 성시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장양성이었다. 저녁무렵, 한낮의 더위도 제법 가시고 시원한 바람이 땀에 찌들은 몸을 씻어주고 있을 때였다. 석양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장양성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두 인영이 있었다. 우측의 인영은 허리에 철검을 찬 흑의청년이었고 좌측의 물은 키가 헌칠하고 위엄있게 생긴 중노인이었다. 그들은 물론 전옥심과 종리을지이었다. 종리을진은 전옥심으로 부터 백 검회의 생존자인 이언년과 이철심이 태산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부득불 그들을 만나야겠다고 우겨 그를 따라 나선 것이다. 그는 지난 이십 년 동안 흑탄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장양성의 번화한 거리를 보자 내심 감회가 치밀어 올랐다. 길가에 늘어선 수양버들...... 큰 소리로 떠들며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 의 외침소리....... 옷을 곱게 차려입고 장을 보러 나온 아낙네들..... .. 기락에서 소란스레 달려가는 어린아이들의 음소리가 꼬리를 흔들 며 그들의 뒤를 쫓는 강아지의 웅얼거림...... 저 멀리 성밖에는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야릇한 정취를 불 러일으키고 있었다. 종리을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바라보다가 문득 탄식을 토해냈다. ↙거리는 여전하군.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건만 나 혼자 늙어 버렸군. ¬ 그는 손을 들어 성안에 길게 뻗은 대로의 꼬부라진 끝을 가리켰다. ↙저 길을 돌아가면 제법 커다란 주루가 나올걸세. 잇ㅂ 오년전 나는 이곳에 한번 온 적이 있었지. 그때 주루 이름이..... 아! 기억난군. 만 보루였을 것이네.¬ 종리을진은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당시에는 이곳에서 가장 큰 주루였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군 .¬ 그때 돌연 묵묵히 걷고 있던 전옥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있을 거요.¬ 종리을진은 어리둥절해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그것을 어찌 아는가?¬


전옥심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십 여년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었소.¬ ↙그런가?¬ 전옥심의 음성은 담담했다. 허나 어찌보면 약간 울적한 것 같기도 했다 . ↙그때 나는 마침 그 만보루에서 점원노릇을 했었소. 내가 그곳을 나올 때도 주루는 번창했으니 아마 지금도 있을거요.¬ 종리을진은 의외에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자네가 일개 주루의 점원이었단 말인가?¬ 전옥심은 묵묵히 고개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눈빛은 쓸쓸해져 일말의 비애를 느끼게 했다. 장양성은 전옥심의 고향인 악가구에서 멀지않은 곳이었다. 어려서 고아가 된 전옥심은 악가구를 떠나 호북성내를 전전하다가 열세 살 때 이곳의 만보루에서 점원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때 굔 무척 많은 고새을 했고 견디기 힘든 멸시와 냉대를 감수해야 만 했다. 어쩌면 그의 싸늘하고 일견 냉소적인 성격은 그때 형성되었는 지도 모른다. 이제 세월이 흘러 성장한 몸으로 예전의 쓰라린 추억이 어린 곳으로 돌 아오게 되니 그의 마음은 자신도 알 수 없을만큼 미므歐綬 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 다른 감회에 젖은 채 길을 따라 돌아갔다. 과연 멀지않은 곳에 주루가 나타났다. 허나 그들이 상상하고 있는 것 만큼 화려하거나 크지가 않았다. 예전에 호화스럽던 주루는 영락하여 작고 초라해져 있었다. 장양에서 가장 크고 화력한 주루는 명성을 날리던 만보루는 여전히 이곳에 있건 만, 이제는 누구도 거들더 보지도 않는 쓸쓸한 주막이 되고 말았다. 입구에 걸려있는 작고 더러운 주의 깃발이 없었더라면 누구도 주루임을 알지 못할 것이다. 두 사람은 낡고 손때가 잔뜩 묻은 주점의 깃발을 잠시 바라보다가 안으 로 들어갔. 주루는 밖에서 볼 때보다 더욱 낡고 초라했다. 자리라고 해야 기껏 대 여섯 개의 탁자가 있을 뿐이었다. 한쪽 구석에 서 초라한 모습의 중년인이 궁상맞은 모습으로 앉아 국수를 먹고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종리을진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잠시 탄식을 했다.


↙이곳도 많이 변했군. 예전에는 그래도 상당히 크고 아름다룬 곳이었 던 것 같은데......¬ 전옥심은 말없이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탁자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비꺽! 날고 볼품없는 의작 그의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 소리에 손님이 온 것을 알았는지 구석에 있는 조그만 주방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얼굴이 비쩍 마른 노인이었다. 얼굴마다 주름살이 가득했고 두 눈 피로와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허 리는 구부정했고 손은 까마귀의 발톱처럼 깡마르고 쭈글쭈글했다. 더구나 왼쪽 다리는 다쳤는지 절뚝절뚝거리고 있었다. 노인은 절름거리면서도 쉬지않고 전옥심과 종리을진이 앉아 있는 곳으 로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별로 깨끗하도 못한 수건으로 탁 자를 대충 닦으며 물었다. ↙무엇을 드시겠소?¬ 그의 음성은 오랫동안의 피폐와 절망을 말해주듯 탁하고 미약했다. 전옥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기만 했 다. 노인은 그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러다가 흐릇한 눈에 어리둥절한 빛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선가 뵌 분 같은데...... 이 지방 사람이시오?¬ 전옥심은 노인의 주름 가득한 얼굴을 보다가 문득 가늘게 한숨을 내쉬 었다. ↙그동안 많이 늙었구려. 조노인!¬ 조노인은 그 말을 듣자 깜작 놀랐다. ↙아니 어찌 나를 알고 계시오?¬ 전옥심은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를 몰라보겠소?¬ 조노인은 그의 얼굴을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눈이 점점 커졌다. 그는 경악에 가득차 더듬거렸다. ↙자....... 자네는 혹시 소옥이 아닌가?¬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당신이 그렇게도 미워했던 소옥이 바로 나요.¬ 조노인은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만보루의 주인이었던 조당이었다. 조당은 성격이 불같이 급하고 호승심이 많아 점원들을 몹시 득달했다. 특히 그는 전옥심을 아주 밉게 보아 사사건건 그를 괴롭히고 못할게 굴 었다. 지난 십여년 동안 그는 라보게 늙어 과거의 불같던 성미도 사라져 버 리고 호탕한 기세도 없어져 버렸다. ── 무엇이 그들 이토록 늙게 했을까? 조당은 몸을 격하게 덜다가 기침을 심하게 했다. ↙쿨룩..... 쿨룩......¬ 그는 고통스러운 기침을 토하며 그자리에 넙죽 주저앉았다. ↙요...... 용서해 주게.¬ 그는 기침을 하면서도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전옥심의 다리를 부 여잡았다. ↙나는...... 이제 늙고 힘이 없어 어린아이도 당해낼 수 없네. 과거의 원한을 갚으로 왔다면 이 늙은이를 제발 용서하게.¬ 어느 새 그의 주름진 노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전옥심은 아무 말없이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무심하 여 아무도 그의 지금 심사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조당은 두뺨을 눈물로 적시며 회한에 찬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과거에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는 내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네. 그때문에 나쁜 놈이었는지는 내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네 . 그때문에 결국 이렇게 초라한 모습이 되어 버렸지. 이젠 자네같이 젊 은 사람이 상대하기엔 너무 늙고 가치가 없어져 버렸네. 그러니 제발 나를 용서해주게.¬ 전옥심은 내심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물론 마음이 약하거나 인정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허나 이제 인생의 종착역에 와있는 늙은이의 백발을 보자 야릇한 비애 가 솟구치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은 한때는 누구보다도 건장하고 괄괄하던 사람이었다. 장야의 거리를 휘저어 다니며 호통 하나로 다른 사람들을 벌벌 떨게하 던 인물이었다.


허나 이제 몸은 늙고 마음은 병들어 지나가는 어린아 웃음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랄만큼 쇠약해져 있었다. 세월의 흐름을 뉘라서 거역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회한에 젖은 그의 눈들은 일점의 가식도 없는 진솔한 것이었다. 전옥심은 담담히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탓하러 온 것이 아니오.¬ 조당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물젖은 노안은 어떤 기대 감으로 술렁거렸다. ↙그...... 그러면 무엇 때문에......¬ 전옥심은 무뚝뚝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이곳은 주루이니 나는 당연히 식사를 하기 위해 온 것이오.¬ 조당의 눈이 번쩍 뜨졌다. ↙당신은 전부터 고기만두를 잘 만들지 않았소? 나는 오늘 그것을 먹으 러 온 것이오.¬ 조당은 몸을 부르르 떨며 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의 주름진 뺨에 다시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허나 조금전의 눈물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눈물이었다. 그는 닭발같이 쭈글쭈글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알았네. 고기만두를 해오지.¬ 그는 몸을 돌려 절룩거리면서 주방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러다가 주방 의 앞에서 고개를 돌려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엣날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군. 예전에도 항상 겉으로는 싸늘 했지만 누구보다도 인정이 많았지.¬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다시 눈물을 훔치며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전옥심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주루의 밖으로 시선을 돌렸 다. 종리을진은 이제껏 입을 열지 않다가 전옥심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 다. ↙보아하니 저 노인은 자네에게 좋게 대했던 것 같지는 않군.¬


전옥심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종리을진도 더이상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잠시 주루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한쪽 구석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중년인은 입을 다문채 말이 없이 있는 그들이 이상한지 힐끔힐끔 거렸다.

잠시 후 조당은 커다란 쟁반 가득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를 담아 들고 왔다. 그는 절룩거리며 땀을 뻘뻘 흘리며 와서는 고 기만두를 탁자에 올려 놓았다. ↙몸은 비록 늙었지만 이 고기만두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자신이 있지. ¬ 전옥심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웃는 그를 보다가 불쑥 물었다. ↙다리는 언제부터 절게 되었소?¬ 조당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 다리말인가? 모두 인과응보지.¬ 조당은 왼쪽 다리를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가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일세. 그러니까 벌서 십 이년전 일이 군. 그때만해도 나느 자네가 알다시피 성질이 급하고 고약했지. 그리고 만보루도 지금처럼 황폐하지는 않았네. 헌데 그때 우연히 한 사람이 이곳에 왔었다네.¬ 조당은 그 당시 일을 회상하고 싶지 않은 듯 괴로운 얼굴을 했다. 허나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붉은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었다네. 체구가 건장했고 아주 용맹 스러워 보였지 허나 몹시 큰 부상을 당한 듯 옷이 피투성이였고 혈색이 아주 나빴네. 그는 이곳에 들어와서 방을 하나 얻더니 그 안에 들어가 며칠 동안 밖에 나오지를 않았네. 아무리 다른 사람이 방문을 두드려 도 열어주지 않았지. 그래서 당시만 해 성격이 불같던 나는 나흘 째 되던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부수고 방안으로 들어갔네. 그때 나 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서운 광경을 보았지......¬ 조당의 음성이 격하게 떨리며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당신의 공포가 다시 되살아나는 듯 크게 떠졌고 안색이 창백 하게 질려 있었다. 전옥심은 눈을 빛내며 그의 입을 주시했다.


조당은 몸을 떨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홍포중년인은 침상위에 누워 있었네. 헌데 침상 옆에는 생전 처음보 는 노인이 선 채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지. 사방이 꼭꼭 닫혀 있었는데 그 노인이 언제 방안으로 들어갔는지를 모르겠네. 노인은 눈이 독사처 럼 날카롭고 깡말랐다네. 헌데 노인의 손에는 금방 벗겨낸 듯 피가 뚝 뚝 떨어지는 사람의 얼굴가죽이 들려 있는게 아니겠나?¬ 조당은 진저리를 쳤다. ↙나는 깜짝 놀라 침상위에 죽은 듯 누워있는 홍포중년인을 바라보지 . 놀랍게도 그에게는 얼굴이 없었네. 오직 시뻘건 살덩어리와 몇 개의 구멍만이 뚫려 있었지. 그 노인은 홍포중년인의 얼굴가죽을 벗기고 있 던 걸세.¬ 조당은 말을 하다 말고 가슴이 답답한지 주방으로 달려가서 냉수를 벌 컥벌컥 들어켰다. 시원한 물이 가슴 속으로 타고 내려오자 그제야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전옥심에게로 걸어왔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서...... 내가 문을 부수고 들어올 줄은 그 노인도 몰랐던 모양일세.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군. 그 때 노인이 나를 노려보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네. 정말 다시 는 보고 싶지 않은 무서운 눈이었지. 나는 생전 그처럼 끔찍하고 무시 무시한 얼굴표정을 본 적이 없었네. 그는 손에 여전히 홍포중년인의 얼 굴가죽을 든 채 나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왔지. 나는 너무도 겁에 질려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고 있을 뿐이었네. 그때 갑자기 이제까지 죽은 듯 침상위에 누워있던 홍포중년인이 벌떡 일어났 네.¬ 그의 목소리에 긴장감과 함께 그 때의 경악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얼굴가죽이 벗겨진 채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일어선 그의 모습은 정녕 인간의 그것이아니었지. 노인은 설마 홍포중년인이 일어날 줄은 몰랐는지 경호성을 지르더군. 그때 홍포중년인은 미친 듯한 괴성을 지 르며 노인에게 덤벼들었제. 아니 그는 진짜 미쳐 버린 듯 했네. 눈에는 시뻘건 혈광이 가득하고 입인듯한 뚫린 구명에는 침이 질질 흘러나왔 으니까. 그늠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며 노인에게 덤벼 들었네. 노인은 엉겁결에 주춤뒤로 물러났지. 그러자 광인이 된 홍포인은 이번에는 나 에게 덤벼들었지.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 네. 광인이 나에게 덤벼든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너무도 놀라고 공포에 질려 정신을 잃고 쓰러졌지. 아련히 귓가로 광인의 울부짖는 듯한 괴 성과 노인이 쫓아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네.¬ 조당의 고조되었던 목소리가 점차 가라앉다. 그는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며 씁쓸히 다리를 내려다 보았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만보루는 이미 거의 박살이 나 버렸고 나도 혈해 속에 누워 있었지. 광인은 제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행히 나 는 한쪽 다리만 부러진 채 살아날 수 있었네. 그 후로 노인과 홍인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네. 아마 내가 죽은 걸 로 생각했던 모양일세. 나는 그들이 다시 나타날까 두려워 몇 년 동안 피해 있다가 삼사 년이 지난 후에야 안심을 하고 다시 주루를 열었네. ¬ 그의 음성에는 짙은 자학과 허탈한 심정이 담겨 있었다. ↙허나 이미 몸은 병신이 되고 재산도 거의 바닥이 나서 사업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지. 게다가 평소 내가 한 행실을 미워해서인지 인심도 야 박해져서 아무도 내 가게를 이용하려 하지 않았네. 몇 년 전 마누라가 죽은 후에는 나는 근근히 가끔 지나가는 타향의 나근네들을 상대로 장 사를 하며 연명을 하고 있다네. 기게 모두 지난 날의 소행에 대한 댓가 인것 같아 추호도 원망하는 심정은 없다네.¬ 조당은 말을 마치고 잠시 쓸쓸한 표정이 되었다. 전옥심과 종리을진은 그의 굉이한 이야기에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예로부터 인피면구 ジ꼬 흔히 떠들고 있었다. 허나 그 것은 사람의 얼굴가죽을 벗기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피부를 열게 도려내어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피부였다. 인피면구중 가장 좋은 것은 갓 죽은 사람의 엉덩이살로 만든 것이라 한 다. 엉덩이 뼈 피부가 연해서 사람의 얼굴처럼 엷게 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진짜 얼굴가죽과는 차이가 있는지라 안목이 높은 고 수나 밝은 햇살아래에는 아무리 정교한 인피면구라도 발각이 나기 마련 이다. 오직 사람의 진짜 얼굴가죽으로 만든 인피면구만이 아무런 흔적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허나 어느 누구도 감히 사람의 얼굴가죽을 직접 벗겨 인피면구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사람의 얼굴가죽은 굴곡과 요철이 심하고 구멍이 많이 뚫려 있 어 벗기기가 힘이 들뿐 아니라 연하고 얇아서 조금만 소홀히해도 금방 못쓰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가죽을 벗긴다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 다.


── 그토록 잔인하게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가죽을 벗긴 노인은 과연 누구일까? ── 그리고 얼굴가죽이 벗긴 채로 광인이 된 홍포중년인은 또 누구일 까? 전옥심은 문득 조당을 향해 불쑥 물었다. ↙그드르이 생김새를 자세히 말해줄 수 없겠소?¬ 조당은 전옥심이 그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글쎄...... 하도 오래된 일이라서 말일세. 노인의 얼굴은 그래도 꽤 자세히 기억이 나는걸. 하도 무시무시한 인상이라서 지금 생각해도 전 신이 오싹해진다네. 코가 매부리코이고눈이 독사처럼 쭉 찢어졌지. 게 다가 턱밑으로는 반백의 수염이 세 가닥으로 꼬여 있었네. 몸은 호리호 리하고 체구가 약간 작은 축에 했네.¬ 조당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그 홍포중년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는 그 얼굴가죽이 벗겨진 끔찍한 모습뿐이네. 체구는 꽤 건장 한 편이었던 것 같은데.......¬ 조당은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손뼉을 탁 쳤다. ↙아! 이제 기억이 나는군. 그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눈썹이 아주 짙은 사람이었네. 코는 사자코처럼 납작한데 그래도 위풍당당해 보였지. 입 술이 무척 두꺼워 첫 인상이 아주 위맹해 보였네. 헌데 우리 가게에 왔 을 때는 부상을 당해서 그런지 혈색이 아주 백했지.¬ 전옥심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종리을진은 그의 표정이 의외로 진진함을 보고 의아심이 들어 물어 보 았다. ↙혹시 그 중 자네가 아는 인물이라도 있나?¬ 전옥심은 생각에 잠기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허나 달리 입을 열지 는 않았다. 그때 들의 바로 뒤에서 조심스런 음성이 들려왔다. ↙저...... 혹시 전대협이 아니십니까?¬ 전옥심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조금전 까지만 해도 한쪽 구석에 앉아 국수를 먹고 있던 중년인이 어느


새 그들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 커다랗고 코가 우뚝 솟은 인물이었다. 전옥심은 그 중년인이 처음 보는 얼굴임을 알고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귀하가 어떻게 나를 알고 있소?¬ 중년인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알자 기쁘고도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전대협이셨군요. 이런 곳에서 전대협을 만나다니 금생의 영광인 줄 압니다.¬ 그는 정중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하삭검 종구라고 합니다. 저는 일전에 낙양에 간 적이 있었읍니 다. 그때 멀리서 대협이 얼굴을 볼 기회가 있었지요.¬ ↙헌데 무슨 일이시오?¬ 종구는 공손히 머리를 구부리며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며 전 어느 분께서 이곳을 지나가시며 며칠내로 전 대협께서 이곳을 지나가실테니 서신을 전하라고 부탁하셨읍니다.¬ 전옥심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누구요?¬ 종구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품속에 손을 넣어 잘 접은 편지 한장을 꺼 내 공손하게 두 손으로 전옥심에게 내밀었다. 전옥심은 펴지를 받아 펴 보았다. 그곳에는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옥심, 보게나! 자네의 부탁대로 이언년의 뒤를 따라가는 중이네만 그들은 자네의 예상 과는 달리 태산쪽으로 가지 않았네. 처음에는 태산으로 갈려고 마음 먹은 듯 산동성 부근까지 종적이 이어 졌으나 그곳에서 발길을 돌려 호남성으로 향한것 같네. 나는 지금 그들의 종적을 추적중이거니와 무능승과 예적금강이 아무래 도 불길한 일이 일어난 모양이라고 득달이라 자네를 기달릴 수 없어 인 편으로 소식을 전하는 바이네. 내 예상으로는 그들이 장사나 형양으로 간 것 같네.


그러니 속히 그쪽으로 와주게. 호불귀가 달려가며 적네.>

전옥심은 편지를 다 읽자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언년은 이비취와 이철심등과 함게 백검회의 배반자인 오행마검자 서 잠허를 찾아 태산 절혼곡으로 갔다. 전옥심은 물론 서잠허가 그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서잠허는 구양승에 의해 소주의 유원으로 옮겨졌다가 그곳에서 자신의 손에 죽지 않았던가? 허나 이언년등이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때문에 태산으로 가지 않고 도중에 길을 돌려 호 남으로 향했단 말인가. 더구나 자신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아 다급한 일이 벌어졌음에 틀림이 없었다. 전옥심은 편지를 품속에 잘 갈무리한 후 종구에게 포권을 했다. ↙종형께서 바쁘신 중에도 도움을 주신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종구는 천하에서 제일 유명한 인물의 인사를 받자 황송새서 어쩔 줄을 몰랐다. ↙벼...... 별 말씀을...... 미력한 이 몸이 전대협에게 조금의 도움이 라도 되었다니 일생의 영광인가 하옵니다.¬ 전옥심의 이언년등의 안위가 걱정되어 더 이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 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조당을 불렀다. ↙조노인. 이리 오시오.¬ 조당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전옥심은 번개같이 그의 다리를 잡고 손을 흔들어 내리쳤다. 빠빠빡! 수십 개의 수영이 어른거렸다가 눈깜빡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으윽!¬ 조당은 난데없 그의 손질에 감짝놀라 다급한 비명을 토했다. 헌데 전옥심은 어느 새 손을 멈추고 그의 다리를 내려놓는 게 아닌가? 조당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 될 때 전옥심은 그를 바라보았 다. ↙조노인. 앞으로 남은 여생이나마 편안히 사시오.¬


이어 그는 종구에게 포권을 한 후 종리을진과 함께 주루 밖으로 나갔다 . 조당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무의식중에 다리를 움직여 보다. ↙어엇?¬ 조당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놀란 외침이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그토록 오랫동안 그를 괴폽혔던 왼쪽 다리의 통증이 말끔히 가시며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당은 믿기지 않아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리저리 다리를 놀려 보았다. 그토록 온갖 약을 써도 꿈쩍도 않던 다리는 그의 발짓에 따라 자유자재 로 움직였다. ↙이...... 이럴 수가.......¬ 조당은 신기하고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종구는 그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전대협의 무공은 소문대로 뛰어나군.¬ 그 말 조당은 퍼뜩 생각이 난 듯 종구를 바라보았다. ↙그가 누군데 당신은 전대협 전대협 하는 것이오?¬ 종구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당신은 그 분이 누군지도 몰랐던 말이오?¬ 조당은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단지 그의 어렸을 적 이름이 소옥이라 것만 알고 잇을 뿐이오 .¬ 종구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허허 웃더니 입을 열었다. ↙놀라지 마시오. 그분이 바로 천하제일검이신 오의광생 전옥심 전대협 이시오.¬ ↙엑? 아니 그럼 그가 바로 영웅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수라교를 멸망시 킨 그 검마란 말이오?¬ 조당은 대경실색해 부르짖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그런 줄도 모르고 그를 부려 먹었으니......¬ -----------------------------------------------------------------제 6 장 칠 원 성

동 정 서 망 초 강 분, 수 진 남 천 불 견 운. 일 락 장 사 추 색 원, 부 지 하 처 조 상 군. 동정호에서 서쪽을 보면 초강이 나뉘었고, 남쪽에는 수평선에 구름도 볼 수 없다. 해지는 장사에는 가을 빛 멀리 펼쳐서, 어디서 상군을 조상해야 할지 몰라.

강물은 끝없이 푸르렀다. 소강과 상강이 합쳐져서 동정호로 들어가는 소상강은 옛날부터 그 경치 의 아름다움과 전설로 유명햇다. 전설은 상강의 여신인 아황과 여영에 관한 것이었다. 아황과 여영은 요임금의 두 딸로, 모두 요가 후계자로 선정한 순임금의 부인이었다. 순이 남방지역을 순찰하던 도중 창오에서 죽자 두 여인은 그를 사모하여 상강에 빠져 죽었다 한다. 후세 사람들이 그 뜻을 가련하게 여겨 그녀들을 신으로 추대했는데 아 황을 상군, 여영을 상부인이라고 했다. 이런 전설과 함께 유명한 소상의 여덟 가지 경치는 천하에 그 이름을 떨쳐 더욱 사람들의 발길을 끊이지않게 했다. 소상팔경이란 평사낙안, 소상야우, 원포귀범, 동정추월, 산시청람, 어 촌낙조, 연사만종, 강천모설을 말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화가들 이 이것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거니와 그중에서도 특히 목계와 옥간의 소상팔경도는 걸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오무렵. 소상강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는 전신에 황삼을 입은 이십 대의 서생이었다. 눈이 크고 얼굴이 준 수했는데 웬일인지 몹시 조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여름이기 때문에 동정호에 뜨는 가을의 달이나 눈내린 겨울의 강 가를 볼 수 없고, 저녁이 아니기 때문에 어촌에 지는 석양이나 멀리서 포구로 돌아오는 범선을 볼 수도 없었다. 허나 따가운 햇살아래 내려다 보이는 소상의 풍경은 더위를 씻어주는 시원한 강바람만큼이나 보는 이의 가슴을 상큼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황삼서생은 소상의 절경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초조한 모습으 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의 옷은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고 옷자락 사이로는 혈흔이 군데군데 비치고 있지 않은가? 머리도 헝클어져 까치집을 연상케했고 얼굴에는 불안과 긴장감이 잔뜩 담겨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황삼서생은 강을 따라 번개처럼 치달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의 앞에 무언가 날아와서 꽂혔다. 꽉! 그것은 하나의 깃발이었다. 깃발은 특이하게도 별 모양을 한 작은 것이었는데 시뻘건 핏빛이라 왠 지 섬찟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 홍색의 성기를 본 황의서생의 안색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는 몸을 멈춘 채 떨리는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어디선가 음산하기 그지없는 괴소가 울려왔다. ↙흐흐...... 애송이놈! 네놈이 감히 칠원성군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 을 것 같으냐?¬ 동시에 어디선가 핏빛 장포를 입은 괴인이 허공을 훨훨 날아왔다. 그 신법은 그야말로 경인하여 마치 바람 타고 날아오는 것 같았다. 키가 팔척에 달하고 검은 머리가 허리까지 길게 내려온 인물이었다. 그 의 두 에서는 옷과 같은 혈광이 흘러나와 보는이로 하여금 무시무시 한 느낌을 갖게 했다. 황의서생은 홍포괴인을 보자 몸을 부르르 떨다가 이를 악물었다. ↙파...... 파군성군!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홍포괴인, 파군성군은 무표정한 얼굴에 음산한 빛을 띄었다. ↙흐흐...... 본군의 손에 걸린 이상 한 놈도 살아날 수 없다. 네놈이 용케 약은 꾀를 써서 이곳까지 도망쳐 왔다만 이젠 더 이상 피할 수 없 을 것이다.¬ 황의서생은 분노와 절망의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악을 썼다. ↙너....... 너희들은 대체 무엇때문에 우리에게 살수를 쓴단 말이냐? ¬ ↙흐흐...... 알려고 하지 마라. 아마 지금쯤은 네 놈의 사부와 다른 놈들도 모두 저승으로 갔을 것이다. 그곳에 가거든 네 놈의 사부에게나 물어보아라.¬ 동시에 파군성군의 홍포가 어른거리며 그의 몸이 허공을 날아 덮쳐왔다


. ↙애송이! 잘가거라!¬ 그의 양손이 흔들리며 사방이 온통 장영으로 가득찼다. 꽈르르르릉! 우뢰와 같은 굉음과 함께 황의서생의 몸 주위를 노도 같은 경력이 몰 아 닥쳐왔다. 그 기세와 위력이 어찌나 가공하던지 황의서생은 피할 엄 두도 내지 못한 채 절망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이젠 끝인가?) 그의 몸이 장력에 격중되어 피를 뿌리며 쓰러질 순간이었다. 쐐애액! 갑자기 허공에서 써늘한 검광이 떨어 내려오는게 아닌가? 느닷없이 나타난 검광은 그야말로 한가닥 뇌전처럼 파군성군의 목덜미 를 향해 짓쳐들었다. ↙어엇?¬ 파군성운은 깜짝놀라 급히 손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 검광이 어찌 나 빠르고 위력적이었던지 간신히 몸을 날려 피한 파군성군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파군성군이 놀라보니 황의서생의 옆에는 어느 사이에 두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흑의청년과 위엄어린 용모의 노인이었다. 그중 흑의청년의 손에 철검이 들려 있는 것을 보고 파군성군은 싸늘히 외쳤다. ↙웬놈이냐?¬ 흑의청년 그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황의서생 쪽으로 얼굴을 돌 렸다. 황의서생은 그를 보자 반색을 하며 부르짖었다. ↙저...... 전형!¬ 흑의서생은 그를 보며 불쑥 물었 찌된 일이시오?¬ 황의서생은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듯 기뻐하는 중에도 다급하게 파군 성군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보다 어서 저 자를 죽이시오. 절대 살려두어서는 안되오.¬


흑의청년은 그의 말에 내심 흠칫 놀랐다. 허나 그 음성이 너무도 절실 하고 급박했기 때문에 몸을 돌려 파군성군 쪽으로 날아갔다. 스윽! 그의 몸이 마치 흑조처럼 거의 십 여장을 날아 자신에게 덮쳐오자 파군 성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절세검수구나!¬ 그는 한 소리 탄성을 지르며 몸을 솟구쳐 까마득히 공으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흑의청년의 몸이 조금전 자신이 있던 그곳으로 오자 번개같이 그에게 덮쳐갔다. 파군성군의 몸이 허공에서 까마귀를 노리는 매처럼 빠른 속도로 자신에 게 떨어져 내래오자 흑의청년의 입가에 비릿한 냉소가 떠올랐다. 그는 번개같이 허리를 뒤틀며 떨어져 오는 파군성군을 향해 손에 든 철검을 그어댔다. 번──쩍! 단지 가볍게 휘둘렀을 뿐인데도 주위가 싸늘해지며 무시무시한 검광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거....... 검의 귀신이구나!¬ 파군성군은 그 엄청난 검기에 압도되어 감히 맞서지도 못하고 급히 떨 어져 내려오던 몸을 기이하게 뒤흔들어 옆으로 일 장 정도 피했다. 허나 흑의청년은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휘두르던 검을 돌연 방향을 바 꾸어 정확히 파군성군의 목덜미를 찔러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유연하 던지 마치 한 폭의 그림같았다. 쐐액! 주위의 공기가 그 검세에 모두 두쪽으로 갈라지는 듯한 착가이 들었다. 파군성군은 한 줄기 가공할 검광이 자신의 목으로 섬전보다 빨리 다가 옴을 느끼 사색이 된 채 사력을 다해 허리를 굽혔다. 파앗! 검기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그의 이 마가 두 치쯤 찢어져 선혈이 흘러내려왔다. 허나 파군성군은 미처 놀란 마음을 진정할 틈도 없이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 버렸다. 자신의 몸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스치고 지나갔던 녹슨 철 검이 허공에서 눈부시게 선회하며 다시 자신에게 엄청난 빠르기로 덮쳐 오는 것이 아닌가? ↙거...... 검마!¬ 생전 듣도보도 못한 흑의청년의 신의 경지에 달한 검술을 보자 그의 뇌 리에 한 무시무시한 인물의 이름이 떠올랐다. 허나 그 순간 이미 흑의 청년의 철검은 그의 몸을 휩쓸고 있었다.


↙크악!¬ 처절한 비명이 천공에 울려 퍼지며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파군성군은 몸이 굳어져 미처 피하지 못하고 철검에 허리가 두동강이 난채 질펀한 혈해를 이루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실로 흑의청년이 그게 날아가서 그가 두동강이나 쓰러질 때까지는 촌 각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엄청난 위력에 황의서생은 입을 딱 벌렸다. ↙저....... 정말 가공하구나!¬ 흑의청년은 언제 검을 썼느냐 싶게 철검을 허리춤에 찬 후 다시 그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물론 전옥심읍駭. 황의서생은 낙양의 구주제일장에서 그와 헤어져 이언년등과 동행한 삼 절서생 서문광이었다. 헌데 그가 어찌 혼자 이곳에 와 있단 말인가? 서문광은 경탄한 얼굴로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사별삼일이면 괄목상대라고 하더니 그 사이에 전형의 무공은 더욱 놀 라워졌구려.¬ 파군성군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절세의 고수였다. 헌데 그런 그가 미처 제대로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쓰러지고만 것이다. 사실 전옥심의 무공은 화산 만붕동에서 석무군과 만나고 흑석탄에서 종 리을진을 상봉한 후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전옥심은 서문광을 라보며 물었다. ↙헌데 다른사람은 어디에 두고 서형 혼자 이런 일을 당했소?¬ 그제야 서문광의 얼굴이 초조감으로 시뻘개졌다. ↙전형. 큰일났소. 어서 그들을 도와주시오.¬ 그의 난데없는 말에 옆에 있던 종리을진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전옥심은 오히려 침착해졌다. ↙무슨 일이오? 서형. 차근차근 말해보시오.¬ 서문광은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면서 이야기합시다. 그들은 지금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소. 조 금만 더 늦는다면 천추의 한을 남길지 모르오.¬


↙그들은 어디에 있소?¬ ↙이곳에 멀지 않소. 형산의 침사곡에 있소.¬ 서문광은 더 이상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먼저 몸을 날렸다. 항상 침착하고 차분한 그가 이토록 조바심을 내는 것으로 보아 필경 이 언년등에게 막중한 위기가 닥친 것이 분명했다. 전옥심은 종리을진과 얼굴을 마주 보다가 몸을 날려 그의 뒤를 따라갔 다. 서문광은 정신없이 달려가면서도 지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원래 구주제일장에서 나온 후 중인들은 태산 절혼곡으로 백검회의 배반 자인 오행마검자 서잠허를 찾아갔다. 헌데 그들이 막 산동성에 들어설 즈음 그들은 우연히 한 인물을 마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바로 백검회의 우내십검중의 일인이어썬 탈백우사 곽무극이었다. 곽무극과 이언년, 그리고 이철심은 그야말로 반갑게 재 회를 했다. 그들로서는 실로 이십 년만의 만남인 것이다. 헌데 그들이 서잠허를 찾아 절혼곡으로 간다고 하자 곽무극이 씁쓸하게 웃으며 그들을 만류했다. ↙그곳은 이미 내가 먼저 가 보았네. 허나 서잠허, 그 생쥐같은 놈은 벌써 다른 곳으로 내뺐더군. 그러니 가보아야 허탕만 칠걸세.¬ 중인들은 서잠허가 그곳에 없다는 말을 듣고 실망하여 수 없이 발길 을 돌려야만 했다. 헌데 그때 문득 서문광이 그들의 앞으로 불쑥 나섰다.

↙말씀드릴 게 있읍니다.¬ 서문광이 이언년 등과 함께 다닌지는 한 달이 넘었다. 허나 그동안 한 번도 그가 먼저 나서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항상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 뿐 어떤 때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했기 때 문에 그가 나서자 이언년과 이철심 등은 약간 의아해졌다. ↙무슨 일인가?¬ 이언년이 묻자 서문광이 말하기 어려운 듯 잠시 망설이며 이철심의 옆 에서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보고 있는 이환을 슬쩍 바라보다가 결심을 굳힌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가 그동안 여런분을 속인 것이 하나 있읍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중인들이 어리절하여 자신을 바라보자 서문광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저는 제 사부님에 대한 것을 여러분께 알려 드리지 않았읍니다.¬ ↙자네의 사부님이라니......¬ ↙그 분이 누구인지 아신다면 여러분께서는 저를 찢어 죽이려고 할 것 입니다.¬ 중인들은 처음에는 웃 넘기려 했으나 그의 표정과 음성이 너무도 진 지하기 때문에 그의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자네의 사부가 누구인데 그런 말을 하는가? 설마 그 죽일 놈의 서잠 허라도 된단 말인가?¬ 이철심이 통명스런 목소리로 묻자 서문광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 랐다. ↙제 사부님은 섭잠허와 함게 여러분을 배반했던 혈전검 혁무심입니다. ¬ 그의 말에 중인들은 대경실색을 했다. ↙뭐..... 뭐라고? 자네가 혁무심의 제자라고?¬ ↙그렇습니다.¬ 그의 말을 듣자 중인들은 한편으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는 모두 분노에 찬 표정이 되었다. 혁무심은 서잠허, 최무쌍, 부회주와 함께 백검회를 멸망으로 이끈 네 명의 배반자 중 하나였다. 이언년 등은 그동안 그의 행방을 찾아 수 십 년을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했는데 설마 서문광이 그의 제자였을 줄이 야....... ↙이놈! 네놈이 감히 그것을 속이고 우리의 곁에 있었다니......¬ 성미가 급한 이철심이 불같이 노해 그를 일검에 도륙하려 했다. 그때 중인들 중 가장 침착한 이언년이 그를 제지하며 서문광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혁무심의 제자일 줄은 정녕 뜻밖일세. 헌데 이제와서 그런 말 을 우리에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서문광은 감의 눈으로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사부님을 대신하여 여러분께 사부님의 죄를 용서받으려는 것 입니다.¬ ↙자네의 마음은 알겠네. 허나 그 일은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할 일이지 자네가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닐세.¬ ↙잘 알고 있읍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을 사부님께 모시고 가려고 합니다.¬ 이 말에 이언년은 눈을 빛냈다. ↙그는 아직까지 잘 있는가?¬ 서문광의 얼굴에 침울한 빛이 가득했다. ↙사부께선 간신히 연명하고 계십니다.¬ 이언년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한 빛이 되었다. ↙간신히 살아있다니....... 그가 설마 무슨 죽을 병에라도 걸렸단 말 인가?¬ 서문광은 잠시 처연한 표정이 되었다가 입을 열었다. ↙원래 사부님께서 과거 백검회 혈사 이후 다른 자에게 암습을 당하 셨읍니다. 그래서 거의 사경에 처하게 되었지요. 그 후 사부님께서는 이십 년 동안 암습자의 마수를 피해 숨어 계셨읍니다.¬ ↙그가 암습을 당했다고? 그를 암습한 자는 누구인가?¬ 서문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는 바로 부회주였읍니다.¬ 이언년을 비롯한 중인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부회주라고? 그가 왜 혁무심을 암습했나?¬ ↙그 일에는 원래 내막이 있었읍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 부회주의 협 박에 못이겨 그 혈사에 가담하게 된 것입니다. 헌데 혈사 이후 부회주 는 그 내막을 알고 는 사부님의 입을 막기 위해 그분을 암습했던 것


입니다.¬ ↙아니 그럼 당시 백검회를 배반한 것은 부회주가 주동했단 말인가?¬ 서문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부회주와 최무쌍이 주동이었고 서잠허와 사부님은 거의 반강제적으로 가담하게 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서잠허는 최무상과 저 친한 사이라서 나중에도 무사했지만 사부님께서는 그렇지 못해 그들에 게 당한 것이지요. 사부님께서는 그날 이후 그 일을 얼마나 후회하고 계신지 모릅니다. 저를 무림에 내보내신 것도 여러분을 꼭 찾아내어 그 분의 죄를 빌고 여러분을 모시 오라는 이유에서였읍니다.¬ ↙그런 내막이 있을 줄을 몰랐군.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산의

침사곡에

계십니다. 과거 부 회주에게 당한 상처 때문에 아직도 거동이 불편하십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을 만 나 꼭 죄를 빌어야 한다며 저를 내보내셨지요.¬ 서문광은 을 멈추었다가 부연했다. ↙부회주는 당시 사부님을 살해하는데 실패하자 여러차례 사람을 풀어 사부님의 행방을 찾고 있었읍니다. 완전한 살인멸구를 위해서지요. 그 래서 사부님께서는 제가 혹시 사부님의 제자인 것이 알려지면 그 분의 종적이 발각될까 두려워 제 신분을 가급적 숨기게 했었읍니다. 그동안 이 사실을 여러분께 말씀드리지 못해 죄책감이 많았는데 이제는 제 마 음도 한결 개운하군요.¬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서문광은 송구스러움과 미안한 마음 때문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우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 그때 문득 중인들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전 당신이 결코 우리를 일부러 속인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서문광은 고개를 들어 그 말을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이철 심의 손녀인 이환이었다. 그녀는 다정한 음성으로 그에게 소곤거렸다. ↙더구나 그 일은 당신의 사부 때문이니 당신은 우리에게 죄책감을 가 질 필요가 없어요.¬

홀로

기거하고


서문광은 감격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낭자......¬ 이환은 별빛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부끄러 운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탐스러운 뺨에 엷은 홍조가 어려 복숭 아꽃이 되었다.

서문광은 잠시 그 당신의 일을 회상하듯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고 누 빛은 아련한 빛을 띠고 있었다. 전옥심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그의 사부가 백검회의 배반자인 혁무심이라는 말을 듣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는 슬쩍 자신의 옆에 있는 종리을진을 바라보았다. 허나 종리을진의 얼굴에는 별반 표정이 없어 그의 지금 심정이 어떻한 지를 알 수가 없 었다. 전옥심은 다시 고개를 돌려 서문광을 바라보았다. ↙헌데 그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났소?¬ 서문광은 퍼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 다. ↙뭐라고 하셨소. 전형?¬ 전옥심은 내심 미소가 떠올랐다. (보아하니 그는 이낭자와 각별한 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 그는 다시 조금 전 물어보았던 것을 반복해서 물었다. ↙그 뒤로 당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소?¬ 서문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군요.¬

결국 이언년과 이철심, 곽무극은 직접 혁무심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금강야차와 육족존 금성위는 달리 할일도 없어 그들 과 함께 동행을 했다. 그들과 이비취, 이환은 발길을 돌려 서문광의 뒤를 독 호남성의 형산 으로 갔다.


헌데 그들이 형산의 침사곡으로 막 들어가려 할 때였다. 돌연 십여 명의 인물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협공을 해오는게 아닌가? 그들은 자칭 칠원성군이라는 일곱 명의 괴인들과 기이하게 생긴 다섯 늙은이였다. 그들의 무공은 그야말로 놀라워서 번에 중인들은 위경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다섯 명의 늙은이들은 이언년이나 이철심, 곽무극과 일대일로 상 대해서 오히려 우세를 점할 정도였다. 알고보니 그들은 혁무심을 살해 하기 위해서 온 인물들이었다. 서문광은 다급한 중에도 침사곡에 혼자 있는 병든 사부가 걱정되어 조 바심이 났다. 다행히도 침사곡의 입구는 세인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을만큼 흉혐 서 자신과 사부 외는 아무도 마음대로 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중인들이 위경에 처할 즈음, 이비취가 지략을 써서 칠원성군과 다섯 늙 은이를 따돌리고 침사곡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허나 그들은 그곳으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다시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 다. 곡 입구를 그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화 약을 사용하여 곡의 입구를 허물고 들어오려고 했다. 일단 그들이 곡 안으로 드러오기만 하면 그들의 놀라운 무공으로 보아 곡 안의 사람들은 사경에 처할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비취가 다시 한 가지 계략을 짜내었다. 즉, 밤이 어둑해질 때 다른 사람들이 주위를 소란스럽게 만든 다음 그 사이에 중인들 중 한 사람이 몰래 곡을 빠져나가 전옥심을 부르기로 한 것이다. 전옥심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또 과연 무사히 곡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문이었지만 그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 모두 찬성을 했다. 허나 이언년과 이철심, 곽무극, 금성위, 금강야차 등 다섯 고수들은 모 두 그 괴이한 늙은이들과의 결투에서 부상을 당해 제대로 거동을 할 수 가 없었고, 이환과 이비취는 여자의 몸으로 무공이 달렸다. 결국 침사곡의 지리도 잘알고 비교적 몸도 멀쩡한 서문광이 적임자로 선택 것이다. 서문광은 이비취의 도움으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여 북상하는 도중 상 강유역에서 자신의 뒤를 따라온 칠원성군중의 하나인 파군성군에게 붙 잡혔다. 그때 마침 그토록 찾던 전옥심이 나타나 그를 구해준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전옥심은 몇 가지 의문이 솟아났다. ── 칠원성군과 괴이한 다섯 늙은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 그들의 목적이 혁무심을 살해하고 중인들을 몰살하는 것임은 의심 할 여지가 없다. 그


백검회의 부회주인 남궁진웅이 보낸 자들이 아닐까? ──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어떻게 해서 혁무심이 형산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 그들이 지금까지 혁무심이 형산 침사곡에 숨어 있다는 것을 몰랐 다는 사실을 분명했다. 만약 알았다면 혁무심은 벌써 곡중고혼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중인들이 그곳에 간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혁무심 의 행방을 알았다는 것이 된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토록 공교로운 일을 단순한 우연으로 돌리기에는 어딘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면 해답은 하나 밖에는 생각 할 수가 없다. ── 그리고 그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무서운 일이었다. 전옥심은 여기서 잠시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 왜 남궁진웅은 그토록 혁무심을 살해하려 할까? ── 단순히 백검회 혈사에 관한 것이라면 이제 사건의 전모는 거의 밝 혀진 것이 아닌가? 헌데도 이십 년 동안이나 그의 행방을 집요하게 찾 고 있었다는 것은 혹시 혁무심이 무언가 알아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혁무심과 서잠허는 확실히 쓸모가 없어진 껄끄러운 인물들이었음에 틀 림없다. 서잠허가 죽고 혁무심마저 살해된다면 무언가 중대한 비밀 한 가지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 그렇다면 대체 혁무심이 알고 있는 밀은 무엇이란 말인가? 전옥심과 종리을진의 마음에는 의혹의 먹구름이 가득했다. 허나 그 모든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었다. 빨리 형산으로 가서 더 늦기 전에 혁무심을 만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제 7 장 오 웅 참 마 진 형산. 형산은 오악 중 남악으로 더 유명하며 일명 곽산이라고도 불리운다. 이 산은 호남성 형산현의 서북방 삼십 리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합 칠십 이봉이 하늘을 찌르고 솟아 있다. 형양의 회안봉을 첫머리로 하


여 장사암에 이르기까지 약 팔백 리에 달하여 산맥이 이어져 있다. 형산의 칠십 이봉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축융, 자개, 천주, 여화봉이 며 침사곡은 이중 제일봉이라는 축융봉의 동쪽 아래에 자리하고 있었다 . 침사곡의 주위는 산세가 험악하기로 유명한 축융봉중에서도 가장 절험 해 가히 형산제일험이라 할만 했다. 기암괴석이 온 계곡을 뒤덮고 있고 주위에는 사시사철 짙은 안개가 끊이지 않아 마치 망망대해속에 끝없 이 이어진 군도를 보는 듯 했다.

저녁 무렵. 전옥심과 종리을진은 서문광의 안내를 받아 형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무려 이백 리 기을 한 자절에 달려온 것이다. 온 몸에는 먼지가 뿌옇게 쌓였고 전신은 땀으로 목욕을 한 듯 했다. 허 나 아무도 쉬어가자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형산의 꼭대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산풍에 땀을 씻으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헌데 그들이 축융봉의 중턱부근 쯤 올라왔을 때였다. 꽈르르릉! 꽈꽈꽈꽝! 온 산이 무너질 듯한 요란한 굉음이 울리며 주위가 마구 뒤흔들리는 것 이 아닌가? 서문광의 색이 대변했다. ↙침사곡 쪽이오. 그놈들이 기어코 화약을 쓴 모양이오.¬ 그는 다급히 부르짖으며 더욱 빨리 축융봉의 뒤쪽으로 달려갔다. 전옥심도 과거에 망혼유곡이 화약으로 폭발된 것을 본 적이 있었는지라 절로 마음이 다급해져 그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쯤 갔을까? 형산제일봉인 축융봉을 거의 가로질러 뒷편으로 가자 안개가 자욱이 덮 인 거대한 분지가 나타났다.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이 분지는 안개와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허나 지금 아름답던 곡은 완전히 파괴되어 원래의 형체를 잃었고 매케 한 화약냄새만이 처참하게 변한 곡을 뒤덮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전의 폭발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그토록 주위를 짙게 뒤덮고 있던 안개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아!¬ 달려가던 서문광의 몸이 우뚝 섰다. 분지의 가장자리에는 유달리 깊은 계곡이 있었다. 계곡의 입구는 한 사람이 간신히 빠져나갈 만큼 협소했다. 더구나 입구 의 사방이 한 번 빠지면 새라도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기이한 모래로 덮


여 있어 그야말로 천험의 요새라 할 만 했다. 보통 때는 이 주위는 안개마저 자욱하여 아무도 곡의 입구를 찾는 사람 이 없었다. 게다가 주위에 잔뜩 널려있는 죽음의 침사 때문에 감히 접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문에 이름마저 침사곡이라 지어진 것이다. 허나 지금 안갠ㄴ 모두 걷혀져 버렸고 곡의 입구는 철저하게 파괴되어 수 십명이 한꺼번에 지나갈 수 있을만큼 넓혀진 상태였다. 주위에널려 있던 침사는 바위덩어리에 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곡 안에서 은은한 호통소리와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전옥심은 그 음성중에서 유달리 맑은 기합소리를 듣자 눈을 빛냈다. ↙일비로군. 그들이 왔다면 아직 늦지는 않았다.¬ 전옥심은 멍하니 서있는 서문광의 머리를 뛰어넘어 곡 안으로 날아갔다 . 조금 전의 기합 소리가 제일비의 것임을 알아본 것이다. 제일비가 왔다면 론 호불귀와 두 명의 명왕, 그리고 섭붕과 엽자문도 함께 왔을 것이다. 그들의 이언년등과 힘을 합쳤다면 제 아무리 칠원 성군과 다섯 명의 늙은이들이 무섭다고 해도 절망할 상태는 아니리라. 전옥심의 몸이 거의 곡구에 닿았을 때가 되어서야 서문광과 종리을지는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라 곡으로 달려왔다. 곡의 입구로 들어서니 아직도 화약연기가 자욱하게 피어 있었다. 그리 고 싸움소리도 한층 더 가깝게 들려오고 있었다. 전옥심은 더욱 빨리 몸을 날려 곡안으로 들어갔다. 곡은 입구와는 달리 점점 넓어져서 구부러진 곳을 돌아서자 탁트인 넓 은 공지를 형성했다. 지금 그 공지에는 십 여명의 인물들이 치열하게 혼전을 벌이고 있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각기 하얗고, 검고, 누렇고, 파란 등의 여섯 가지 색의 장포를 걸친 육 인의 괴인들이었다. 그들은 각기 한 사람씩 상대를 잡아 싸우고 있었다. 칠원성의 우두머리인 백포괴인, 탐랑성군과 싸우고 있는 사람은 육족 존 금성위였다. 금성위는 특유의 신묘한 몸놀림으로 탐랑성군의 주위를 돌며 손을 쓰고 있었다. 허나 누가 보아도 무공은 탐랑성군의 적수가 아니었다. 탐랑성군이 한 번 손을 떨칠 때마다 그의 몸은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신묘한 보법이 아니었다면 금성위의 몸은 벌써 탐랑성군의 검에 갈가리 찢겨버렸을 것이다. 흑포괴인 거문성군과 싸우는 있는 사람은 체구가 거대한 패도 섭붕이었 다. 두 사람은 모두 체구가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컸는데 그 때문인 지 싸움도 굉장히 격렬했. 공교롭게도 둘다 모두 칼을 사용해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섭붕이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청포의 녹존성군은 호불귀와 겨루고 있었다. 그것은 녹존성군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호불귀는 재빠른 몸으로 피하


면서 연신 입을 놀려 그의 화를 북돋고 있었다. 그 외에 무곡성군과 문곡성군은 금강야차와 예적금강을 밀어 붙이고 있 었다. 염정성군 또한 무능승을 질풍처럼 위협하고 있었다. 허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치열한 것은 곡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 고 있는 다섯 쌍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제일비의 준수하고도 당찬 모습이었다. 제일비는 용천검을 노도처럼 휘두르며 한 명의 노인과 싸우고 있었다. 제일비와 을 겨루고 있는 노인은 얼굴이 시뻘겋고 체구가 어린아이처 럼 작았다. 게다가 배가 볼록 튀어나와 미륵불을 연상케했고 퉁퉁한 손에는 어린아 이의 장난감처럼 작은 소검이 쥐어져 있었다. 헌데 그 작은 검이 어찌나 빠르고 영활하게 움직이고 있던지 제일비가 연신 뒤로 몰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처럼 작고 뚱뚱한 노인의 검법이 이토록 뛰어나리라고는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노인은 노인대로 제일비의 신묘한 검술에 저으기 졸란 표정이었다 . 그들의 옆에는 청의를 입은 두 인물이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금검을 휘두르는 중년인은 바로 이언년이었다. 그의 상대인 호리호리한 청의노인은 기다란 채찍을 쓰고 있었다. 채찍은 독사의 혓바닥보다도 매섭게 이언년의 전신 구석구석을 파고 들 고 있었다. 그때마다 이언년의 들린 금검이 빛을 발하며 채찍을 막아갔 다. 허나 이언년의 얼굴은 창백하고 몸의 여기저기에는 상처까지 나 있어 위태위태해 보였다. 그들의 옆에는 두 명의 노인이 싸우고 있었다. 우측의 노인은 검사 이 철심이었고 그의 상대는 백의노인이었다. 백의노인의 손에 들린 것은 절정고수들이라면 좀처럼 쓰지 않는 극이었 다. 극은 사용하기가 까다롭고 괴이음독해 고수들은 약간 경시하는 무 기였다. 허나 백의노인의 극을 휘두르는 솜씨는 그야말로 천하제일이라 할 만했 다. 그의 손이 어찌나 빠르고 영활하게 움직이던지 마치 수 십개의 극 을 한꺼번에 휘두르는 것 같았다. 이철심은 때때로 반격을 하고 있지만 누가 보아도 패색이 역력했다. 전옥심의 눈에 익은 곽무극의 음양도포로 보였다. 곽무극은 회색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커다란 통천관을 쓴 도인과 싸우고 있었다. 두 사람의 도인의 대결은 장내에서 가장 치열하여 누구도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곽무극은 우내십검 중에서도 첫째 둘째를 다투는 초절정검 수인데 그와 맞붙어 조금도 밀리지 않고 오히려 그를 조금씩 궁지에 몰 아넣고 있는 통천도인의 무공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마지막 결전은 가장 싱거웠다.


어찌보면 그들은 전혀 싸울 의사가 없는 사람들 같았. 내밀기 싫은 손을 내밀 듯 억지로 장력을 뿌리고 있는 사람은 천하제일 의 살수라고 소문난 필살유혼 엽자문이었고 그와 맞서 역시 싸우는 시 늉만 내고 있는 인물은 키가 홀쭉한 흑의노인이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씁쓸한 표정이 가득했고 어색해하는 기색이 역력했 다. 곡의 구석에는 이비취와 이환이 한 사람을 부축한 채 가슴을 졸이며 격 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들의 부축을 받고 있는 사람은 얼굴에 커다란 검상이 나고 안색이 몹시 나쁜 화의노인이었다. 전체적으로 강퍅한 인상이었는데 얼굴에 침 통한 빛이 가득했다. 옥심 막 장내에 당도했을 때 격전은 그야말로 점점 막바지에 다다르 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여인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버지!¬ 이비취가 비명을 지르며 한 사람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가 달려가는 곳에는 청의중년인이 피바다 속에 누워 있었다. 바로 이언년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금검은 이미 산산이 박살이 나 있었고 그의 가슴에서 하복부까지는 시퍼런 채찍 자국이 끔찍히 나 있었다. 전옥심의 눈에서 신광이 폭사되었다. 그는 번개같이 몸을 날렸다. ↙손을 멈춰라──¬ 날벼락같은 호통이 터졌다. 꽈르릉! 계곡 전체가 무너질 듯한 진동이 일어나고 바위가 뒤흔들렸다.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던 사람들은 모조리 공력이 산산이 흩어지는 것을 느끼고 혼비백산하여 손을 멈추었다. ↙아앗! 하늘이다!¬ 누군가 허공을 가리키며 부르짖었다. 무려 백 여장을 훨훨 날아 허공에서 떨어져 내려오고 있는 인영의 얼굴 을 보는 순간 이비취와 제일비의 입에서는 거의 동시에 엽腑걋 외침 이 터져나왔다. ↙아저씨── !¬ ↙형님── !¬ 그 순간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흑영은 번개같이 번개같이 장내를 휩


쓸었다. 차앙! 검빛이 번쩍이며 흑영이 가장 먼저 덮쳐간 곳은 호불귀와 싸우고 있던 녹존성군이었다. 녹존성군은 무언가 시커먼 물체가 눈앞에 덮쳐온다고 생각한 순간 전신 이 싸늘한 빙굴속에 빠진 착가이 들었다. (이...... 이런 검법이.....) 그가 입을 딱 벌릴 순간 무언가 화끈한 것이 그의 이마에서 턱까지 스 치고 지나갔다. 녹존성군은 영문도 모르고 머리가 두동강 난 채 러졌다. 그의 몸에서 피분수가 뿜어나오기도 전에 흑영의 몸은 이미 금강야차와 싸우고 있던 무곡성군의 몸을 휘덮고 있었다. 무곡성군은 사색이 된 채 손을 들어 흑영을 막으려 했다. 허나 그것은 몰아치는 태풍을 한 잎 가랑잎으로 막으려는 것과 다를바가 없었다. ↙크아악!¬ 검빛이 번쩍이자 그의 몸은 머리에서 사타구니까지 정확하게 두동강이 나 버렸다. 쐐애액! 흑영은 멈출줄도 모르고 예적금강과 무능승과 싸우고 있던 문곡성군과 염성성군을 동시에 몰아쳐갔다. 두 성군은 이미 두 명의 동료가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쓰러진 것 을 보았는지라 이를 악물며 두 손을 세차게 휘둘렀다. 허나 그 순간, 쑤아아악! 흑영의 손에 무려 오장 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검기 가 쭈욱 일어났다. 그 가공할 광경을 보자 문곡성군과 염정성군은 손을 휘두르는 것도 잊 고 멍하니 서 있었다. 어찌 이런 무공이 잇을 수 있단 말인가? 쫘아악! 비단폭이 찢어지는 듯한 음향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상하로 양 분되었다. ↙크악!¬ ↙케에액!¬ 처절한 비명이 계곡을 울려퍼졌다. 이제 더이상 싸우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의 시선은 경악으로 부릅


떠진 채 이 검은 태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졸지간에 네 명의 성군을 도륙해 버린 검은 인영은 조금도 멈춰서지 않고 섭붕의 앞에 있던 거문성군에게 몰아쳐갔다. 휘이익! 마치 온 천하가 그에게 덮쳐가는 것 같았다. 거성군은 그 가공할 위세와 속도에 압도당해 피하는 것도 잊어 버리 고 멍청히 서 있었다. 칠원성군의 수좌인 탐랑성군이 그것을 보고 안색 이 대변해 덮쳐왔다. ↙둘째야! 피해라!¬ 그제야 거문성군은 퍼뜩 정신이 든 듯 손에 커다란 칼을 사력을 다해 휘둘렀다. 동시에 탐성군도 검광을 번뜩이며 날아왔다. 허나 검은 태풍은 조금도 멈추지 않은 채 두 사람을 휘감아 버렸다. 쟁반같은 시퍼런 검기가 둥글게 일어났다가 공모양으로 아주 자게 수축 이 되었다. 구슬크리로 작아진 거기 덩어리는 질풍노도처럼 두 성군에 게 쏘아 갔다. 차차창! 주위가 아주 잠간 환하게 밝아졌다 다시 어두워졌다. 비명소리도 없었다. 단지 혈우만이 장내에 내릴 뿐이었다. 탐랑성군과 거문성군은 그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무림 사상 최초로 나타난 쇄검의 마지막 경지, 검환에 의해 전신이 산 산조각으로 흩어진 것이다. 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검을 든 사람은 검을 든채, 채찍을 든 사람은 채찍을 든채 망연자실 서 있었다. 뒤따라 오던 서문광과 종리을진도 이 가공할 광경에 할 말을 잊었다. 실로 눈깜박할 사이의 일이었다.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쉴 동안에 천하를 떨쳐 울리던 칠원성군의 여섯 사람이 검하고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누가 이 사실을 믿으려 하겠는가? 훅영이 지나간 자리에는 피바다만이 널려있을 뿐이었다. 흑영은 멈춰선 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다란 흑발은 허리까지 늘어져 있고 손에는 낡을 대로 낡은 철검을 들 고 있었다. 허나 아무도 감히 그 철검이 녹슬었다고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장내가 죽음같은 침묵에 휩싸일 대 가장 먼저 입을 연것은 엽자문과 장 난처럼 손을 휘두르고 있던 흑의노인이었다. 흑의노인의 얼굴은 어느 새 무표정한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전옥심을 바라보며 불쑥 물었다.


↙자네가 바로 천하제일의 검마로 불리운다는 오의광생 전옥심인가?¬ 전옥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흑의노인은 잠시 철검을 바라보다가 이어 그의 손에 어이없이 쓰러져 버린 여섯 명의 성군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소문보다 훨씬 독한 솜씨로군.¬ 전옥심은 대꾸하지 않았다. 문득 흑의노인의 눈에서 싸늘한 한광이 피 어 올랐다. ↙노부는 수 십 평생 살수의 길을 걸어왔지만 이토록 잔인하게 손을 쓴 적이 없었네. 또 이토록 무서운 무공을 본 적도 없었네. 하지만 자네 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네. 어쨌든 약육강식은 무림의 철칙이니까.¬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오늘 우리는 크게 낭패를 보겠군. 허나 우리 다섯 늙은이는 단 한 번에 자네와 건곤일척의 승부를 해보고 싶네. 어떤가 응해주겠 나?¬ 전옥심은 여전히 입을 다문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불쑥 물었다. ↙귀하는 누구시오?¬ 흑의노인의 입에 씁쓸한 고소가 어렸다. 그는 문득 옆에 있던 엽자문을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자네 때문에 본 방을 배반한 저 아이의 사부라네.¬ 전옥심은 눈을 번쩍 빛냈다. ↙그럼 당신이 전대의 필살유혼 이귀란 말이오?¬ 흑의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이귀는 엽자문의 전대에 천하제일 살수로 이름 높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흑응방의 창시자중의 한 사람이었고 엽자문을 키우고 일선에서 물


러서기 전가지는 누구도 넘볼 수 없던 살수계의 제왕이었다. 전옥심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다른 인물들을 가리켰다. ↙저들은 누구요?¬ 가장 먼저 이언년을 쓰러뜨렸던 청의노인이 여전히 기다란 채직을 든 채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노부는 편신 전자방이라 하네.¬ 전옥심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다가 번쩍 고개를 들어 그 를 바라보았다. ↙서강지방에 대대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채찍의 신이 있다고 한던 데 당신이 혹시 그 사람이 아니오?¬ 청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견문이 대단하군. 노부는 이십 년간 서강에서 한 발도 나온 적이 없 었는데..... 이번에 부름을 받고 나오지 않았다면 노부는 천하제일의 검술을 보지 못할 뻔 했었군.¬ 전옥심은 천천히 그에게서 옆의 체구가 작은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그 노인은 제일비와 겨루고 있던 노인이었다. 노인은 장난감처럼 생긴 소검으로 볼록한 배를 콕콕 찌르며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노부는 검치동자 동곽이네.¬ 전옥심의 눈에 언뜻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 검치동자 동곽은 이미 삼십 년전부터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내십검은 송두리째 서열이 바뀌어지고 말았으리라. 그는 항상 희희낙락하며 싸움을 해서 아무도 그이 본실한 무공을 추축 해 내지 못했다. 허나 오십 년전부터 이십 여년간을 무림을 종횡하면서 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것만 보아도 그의 무공이 얼마나 가공한가 를 잘 알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이철심과 싸우던 백의노인의 앞으로 나섰다. 노인의 손에 들린 극이 석양을 받아 붉은 빛을 반짝거다. ↙나는 무적천자극 양등선이라 한다.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귀하는 지난 사십 년간 무림에 나타나지 않았었는데 설마


이번에 나타날 줄이야 뜻밖이오.¬ 그는 말은 담담하게 했지만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적천자극 양등선은 극을 쓰는 인물로는 유일하게 천하제일인을 바라 보았던 인물이었다. 허나 사십 년전, 백년제일검사 남궁산에게 천 초만 에 패한 후 무림에서 사라져 버려 많은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켰던 절대 의 고수였다. 그는 극을 대홍락의 경지까지 연마한 최초최후의 인물이라고 했다. 마 지막으로 곽무극과 가장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통천관의 도인이 고개 끄덕이며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빈도는 공동의 복마산인이라 하네.¬ 전옥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조금전 곽무극을 수세로 몰아넣었던 엄청난 무공으로 보아 절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필살유혼 이귀와 함께 가장 무서운 상대인지도 몰랐다. 복마산인은 곽무극이 가장 처음 적을 두었던 공동파의 인이었다. 그가 있을 당시 공동파는 그야말로 천하제일도문으로서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곽무극이 가장 먼저 공동파를 찾았던 것도 복마산인 때 문에 공동파의 명성이 가장 뛰어났기 대문이었다. 허나 복마산인은 그 후 무림에 뜻을 잃고 잠적해 버렸다. 그 후 곽무극이 공동파를 뛰쳐나오고 천하의 모든 도문을 돌아다니며 무공을 익혀 탈백우사라고 호칭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복마산인은 곽무극으로 인해 수 많은 도인들이 죽고 공동파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자 그를 처치하기 위해 다시 무림 그때 마침 곽무극은 백검회의 혈사로 인해 실종되었던 직후인지라 곽무극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면 곽무극의 인생은 어쩌면 좀더 비참해 졌는지 모른다. 필살유혼 이귀, 편신 전자방, 검치동자 동곽, 무적천자극 양등선, 복마 산인── ! 이들 다섯 사람은 그야말로 개개인이 천하무적을 다툴만한 개세의 고수 들이었다. 누구도 이들중 한 사람을 꺾는다면 불후의 명성을 얻게될 것 이다. 헌데 그들 다섯사람의 합공을 감히 누가 꺾을 수 있단 말인가? 중인들은 당연히 전옥심이 그들의 도전을 거절 하리라 생각했다. 심지 어 몇몇 사람들은 이귀가 감히 염치도 모르고 후배를 억압한다고 까지 생각했다. 허나 의외로 전옥심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는 것이 아닌가? ↙좋소. 그렇지 않아도 당신들의 이름은 구가 따갑게 들어왔던 터요.


이런 대결이라면 오히려 내쪽에서 부탁을 하고 싶소.¬ 이귀는 뜻밖인 듯 눈을 크게 크게 뜨고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정말 단신으로 우리들의 합공을 받겠단 말인가?¬ 전옥은 단호하게 말햇다. ↙그렇소.¬ 이귀는 잠시 기이한 눈으로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가 평생 처음으로 고수다운 고수를 만나는군.¬ 이귀는 계곡의 중앙에 있는 빈터로 가서 우뚝 섰다. 편신 전자방이 전옥심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오른 손목에 기다란 채 찍을 둘둘 말은채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자네는 비록 우리의 적이지만 내가 본 중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일세. 이번 싸움은 좋은 싸움이 될 걸세.¬ 이어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이귀의 우측에 우뚝 섰다. 검치동자 동곽은 항상 죽히죽 웃는 모습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주 진지 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전옥심을 빤히 바라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나는 아직까지 팔 십년을 검 한 가지만 익혀왔지만 아직도 그 오의를 잘 알지 못하겠네. 자네는 검의 뜻이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전옥심은 그를 바라보다가 돌연 오른 손을 주먹을 쥔 채 불쑥 내밀었다 . ↙이게 곧 검의 뜻이오.¬ 동광은 흠칫 놀라 그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전옥심은 천천히 주먹을 폈 다. 그의 주먹에는 아무 것도 있지 않았다. 동곽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더니 무엇을 깨달았는지 갑자기 대소를 터 뜨렸다. ↙크하하..... 멋지군. 자네야 말로 검의 뜻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일세.¬


검의 뜻이란 있을 수 없다. 펼치는 사람의 마음이 곧 검의 뜻이 아니겠는가? 전옥심은 빈주먹을 내보임으로써 검의 뜻을 논한다는 것이 허공을 움켜 잡은 빈 주먹과 같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것을 말해준 것이다. 동곽은 다시 헤헤거리는 얼굴이 되어 깡총깡총 뛰어 이귀의 좌측에 가 서 섰다. 이번에는 무적천자극 양등선이 전옥심에게 다가왔다. 그는 강한 시선으로 전옥심의 전신 찬찬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 다. ↙잘 닦인 몸이로군. 자네는 언제부터 무공을 익혔는가?¬ 전옥심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칠 년전 부터요.¬ 양등선은 눈을 휘둥그래 뜨다가 돌연 탄식을 했다. ↙과연 뛰어난 기재로군. 칠년 만에 천하제일의 자리에 오르다니...... 노부는 평생 자네와 같이 뛰어난 검의 천재를 두 번째로 보았네.¬ 전옥심은 눈을 빛냈다. ↙처음의 기재는 누구요?¬ 양등선의 얼굴에 갑자기 고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아홉 살 때부터 검을 익혔지 나이 십 육세에 무림에 출도하여 십 세에 이미 강남제일검이 되었네. 내가 그를 만났을 때는 그의 나 이 삼십이었는데 그때 벌서 천하무적이었지.¬ 전옥심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혹시 백년제일검사라는 남궁산이 아니오?¬ 양등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가 살아 있다면 자네의 좋은 적수가 될 걸세.¬ 전옥심은 잠시 침음하다가 불쑥 물었다. ↙그와 내가 겨룬다면 둘 중 누가 더 나을 것 같소?¬ 양등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모두 노부가 처음보는 고수들이라 쉽게 우열을 가늠 할 수가 없지. 허나 굳이 말한다면 남궁산에게 점수를 더주고 싶군. 아무래도 그는 자네보다 훨씬 오래전에 천하제일에 올랐으니 말일세. 그가 지금 까지 살아 다면 검이 신이 되어 있을걸세.¬ 말을 마친 후 그는 걸음을 옮겨 동광의 옆에 섰다. 이제 네 사람이 원을 그리며 우뚝 섰다. 양등선과 전자방의 중간 지점 에 한 자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복마산인은 자신이 설 그 자리를 바라보다가 전옥심에게 말했다. ↙내가 왜 저 자리로 가지 않는지 아는가?¬ 전옥심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소.¬ 복마산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저 자리로 가서 일단 서게 된다면 아무도 지안으로 들어가거나 나올 수가 없게 되네. 그래서 나는 자네가 진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저 자리에 가지 않는 것일세.¬ 전옥심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일렁거렸다. ↙그렇게 저 진이 무섭소?¬ 복마산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우리가 이런 방법으로 자네를 상대하는 것에 반대하네. 이것은 실로 너무도 불공평한 일이라 승부가 판가름난 것과 마찬가지일세.¬ ↙내가 패한단 이오?¬ 복마산인 끄덕였다. ↙절대로 자네가 패할 걸세. 일대 일이라면 여기있는 우리들은 모두 자 네의 적수가 되지 못할지 모르지. 허나 다섯이 모이면 문제는 달라지네 . 우리의 이 절진은 오웅참마진이라는 것이지. 이름이 무척 인상적이라 고 생각하지 않나?¬ 오웅참마진이란 다섯 명의 영웅이 마두를 벤다는 말이 아닌가?


전옥심은 일명 검마라고 불리우니 결국 전옥심이 그들에게 죽는다는 말 이었다. 복마산인의 얼굴에 고소가 떠올랐다. ↙이 진은 원래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일세. 그는 우리를 이곳에 보낸 사 람이지. 가 이 진을 만든 것은 전적으로 자네를 상대하기 위함이었네 . 그래서 만약에 자네가 이곳에 오게 된다면 이 오웅참마진으로 자네를 죽이라는 거였지.¬ 전옥심은 내심 그들을 이곳으로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묻고 싶었다. 전옥심이 이곳으로 올 것을 예상하고 이런 절진까지 만들었을 정도면 그의 용의주도함이란 새삼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 헌데 복마산인은 왜 이런 말을 그에게 하는 것일까? 복마산인은 눈을 빛내며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원래 나는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네. 우리 어차피 적이 니 서로 검을 겨누어야만 하지. 하지만 적이 된다는 것과 서로 존중한 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세. 나는 우리를 여기로 보낸 사람의 명에 따 르고 있지만 그를 존중하지는 않지. 하지만 자네는 내가 존중하고 싶은 사람이네.¬ 전옥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복마산인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허나 그의 눈에 서는 부드러운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앙에 서 있는 이귀를 비롯한 다른 네 사람도 모두 전옥심을 보고 있 었다. 그들의 눈에서도 복마산인과 같은 빛이 또오르고 있었다. 모두의 마음에는 한 가닥 기이한 감동이 흐르고 있었다. 친구간에 상호 존중한다는 것은 매우 고귀한 것이었다. 하지만 적대시하는 사람끼리 서로 존중하나다는 것은 매우 보기드문 일 이며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런 장면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허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한 장면들이 더욱 더 진귀해 보이는 것이다. -----------------------------------------------------------------제 8 장 드 러 나 는 진 상 전옥심은 문득 몸을 돌려 이비취를 바라보았다. 이비취는 전자방의 채찍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는 이언년을 안은채 큰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분은 어떻느냐?¬ 이비취는 그를 올려다보다가 조그맣게 소근거렸다. ↙심맥을 다치셔서 의식을 잃으셨어요. 하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예요.¬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하길 다행이군. 너는 그 분을 잘 모시고 있거라. 머지않아 네 큰 아버니가 오실 것이다.¬ 이비취는 눈을 깜박거렸다. ↙부동명왕 이홍광 대협 말이지요?¬ ↙그렇다.¬ 이비취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빛은 밤하늘의 유성보다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가지 물어볼게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 이비취는 한쪽에 서있는 종리을진을 가리켰다. ↙저 분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요?¬ 전옥심은 눈을 빛냈다. ↙왜 그에 대해 알려고 하느냐?¬ 이비취의 커다란 눈에는 총명한 빛이 가득했다. ↙만일 저 분이 제가 생각한 그 분이라면 전 이번 싸움에서 아저씨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요.¬ 전옥심은 다시 물었다. ↙네가 각하기엔 그가 누구 같으냐?¬ 이비취는 전옥심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소곤거렸다. 전옥심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비취는 그런 모습을 보자 불안한 빛을 떠올렸다. ↙제 짐작이 틀렸나요?¬ 문득 전옥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로서 드물게 보는 격의없 는 웃음이었다. ↙아니다. 난 다만 네 머리가 어째서 그렇게 똑똑한가 궁금했을 뿐이다 .¬ 이비취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정말로 저 분이......¬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바로 그분이시다.¬ 이비취는 얼굴이 불게 상기되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제일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형님. 저 분이 누구시기에 비취가 저렇게 좋아합니까?¬ 전옥심은 피식 웃었다. ↙궁금하면 네가 가서 직접 물어보아라.¬ 제일비는 멋적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에이. 형님도...... 제가 어떻게 그런걸 물어봅니까?¬ 그때 돌연 뒤에서 걸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오랜만이군.¬ 곽무극이 그에게 다가왔다. 전옥심은 정중히 포권을 했다. ↙그동안 잘 게셨읍니까?¬ 곽무극의 얼굴에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그 사이 자네의 명성은 하늘의 해를 가릴 정도가 되었더군. 이제는


나같은 늙은이는 자네와 감히 견주어 볼 마음도 버려야겠네.¬ ↙이게 모두 선배님 덕분입니다.¬ 곽무극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전옥심은 천천히 몸을 돌려 진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엽자문이 삐 삐쭉 그에게 다가왔다. ↙저....... 형님.¬ ↙무슨 일이냐, 자문?¬ 엽자문은 난천한 듯 잠시 망설이다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말해보려무나.¬ ↙저......¬ 엽자문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몹시 어색해 했다. 그는 이귀를 힐끗 바 라보다 힘겹게 말했다. ↙저분은 제게는 친아버님같은 사부이셨읍니다. 흑응방의 그 엄격한 규 율속에서도 저를 친아들처럼 보살펴 주셨지요. 더구나 저 분은 이젠 연 로하셔서...... 자식도 없으신데다 저까지 그 분의 기대를 저버렸으니. .....¬ 전옥심은 더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그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알겠다. 그에게는 심하게 손을 쓰지 않으마.¬ 엽자문은 송구스러운 듯 고개르 떨었다. ↙죄송합니다.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무리한 부탁 을 해서.....¬ ↙괜찮다.¬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이미 서 있는 네 사람의 가운데로 들어서자 그제야 한쪽에 서 있 던 복마산인이 마지막 한 자리로 몸을 날렸다. 드디어 다섯 사람이 모두 제자리에 서고 오웅참마진이 발동된 것이다. 헌데 그 순간,


우우웅! 갑자기 기이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며 오웅참마진을 형성하고 있는 다 섯 사람의 주위를 자욱하게 가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오웅참마진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있던 전옥심의 모습까지 보이 지 않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미친듯이 회오리치는 선 풍 뿐이었다. ↙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중인들은 모두 놀라 눈을 휘둥그래 뜨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허나 아무도 감히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위이이잉! 소리만 들어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무시무시한 회오리바람이었다. 그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사람의 몸이 산산조각으로 나 버린다는 것도 너무도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득 곽무극이 탄식을 터뜨렸다. ↙정말 놀랍군. 저들의 무공이 설마 저 정도까지 이를 줄이야.¬ 이철심이 옆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네는 어째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 그들의 모습을 가리는지 그 이유를 아는가?¬ 곽무극은 침중한 눈으 엄 한 채 소용돌이치는 선풍을 바라보았다. ↙저것은 단순한 회오리바람이 아닐세. 저것은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강기무공의 일종이라네.¬ ↙강기무공이라고?¬ ↙그렇네. 바로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용권강벽이라는 것일세.¬ 이철심의 얼굴이 경악로 물들었다. ↙용권강벽! 아니 그럼 정말로 그런 무공이 있었단 말인가?¬ 곽무극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믿지 않았었는데 지금 눈앞에 그것이 있지 않은가?¬


이철심은 가공하게 휘몰아치는 회오리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 거렸다. ↙나는 그것은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이론상의 무공인 줄만 알았는데. .....¬ 그드르이 표정이 너무도 심각하자 호불귀가 보다못해 불쑥 물었다. ↙용권강벽이니.... 그게 무슨 쥐잡아먹을 무공인가? 난 금시초문인걸. ¬ 이철심은 예전부터 호불귀와는 안면이 있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해 주 었다. ↙호늙은이. 용권강벽이란 정말 무서운 것일세. 이것은 최소한 사갑자 이상의 공력을 지닌 고수들만 펼칠 수 있는 것일세. 공력이 사갑자 이 상에 이른 고수가 네 명 이상 모이게 되면 서로의 강기를 합하여 하나 의 가공할 강기막을 형성하게 되지. 그것이 바로 용권강벽이라네.¬ 호불귀는 작은 눈을 동그랗게 치켜 떴다. ↙아니 사갑자의 무공을 가진 자가 네 명이나 모여야 한다고? 그게 어 디 가능한 일인가? 무림을 통통 털어도 사갑자 이상의 고수는 열 명도 안될텐데......¬ ↙그래서 단지 이론상의 무공이라고 한 걸세. 헌데 지금 사갑자가 넘는 고수들 다섯 명이 그것을 펼치고 있지 않은가?¬ 이철심은 심각한 표정으로 전면을 가리켰다. 그제야 중인들도 심상치 않은 것임을 알고 모두 얼굴에 불안의 그림자 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철심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명 이상의 절대고수들이 뿜어내는 강기들은 서로 공중에서 회오리 를 쳐 천하에서 가장 강한 바람벽을 형성하네. 그 회오리속에 빨려 들 어가는 것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견뎌내지를 못하.¬ 호불귀가 걱정스러운 듯 발을 동동 굴렸다. ↙아니 그럼 저 안에 들어가 있는 옥심은 어떻게 되겠나?¬ ↙나도 모르겠네. 허지만 내가 알기로는 인간의 몸으로는 그 용권강벽 을 견디지 못할걸세.¬


↙아니 그게 무슨 불길한 소린가? 그럼 옥심의 몸이 이미 가루가 되어 버렸단 말인가?¬ ↙그렇기야 하겠냐만 저런 강력한 회오리속에서라면 제아무리 검술이 뛰어난 그일지라도 제대로 검을 펼치기가 거의 불가능 할걸세.¬ 호불귀는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마먕 몸을 달달거렸다. ↙제길...... 그러면 어떡하지......?¬ 그는 안달복달을 하다가 괜히 옆에 멀쩡히 서 있는 제일비를 발로 툭툭 쳤다. ↙야 임마! 네 형님이 죽게 생겼는데 무슨 수 좀 생각해봐라.¬ 헌데 의외로 제일비는 태연자약하기 이를데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형님은 아무런 탈이 없을테니까요.¬ 호불귀는 그의 천연덕스러 말에 신기한 동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 요놈봐라. 아주 신선 호도까먹는 소리하고 앉았네. 그럼 네놈은 옥심이 무슨 비법이라도 펼쳐 저 무서운 강기막을 뚫고 나온다고 생각 한단 말이냐?¬ 제일비는 여전히 태평하게 대꾸했다. ↙그런 건 모르지만 절대로 안 집니다.¬ 그의 어조가 너무도 당당했기 때문에 호불귀는 혹시난 하는 기대감에 눈을 빛냈다. ↙그래? 그렇게 믿고 있는 이유라도 있느냐?¬ 제일비는 히죽 웃었다. ↙믿고 자시고 할게 있읍니까? 형님은 아직까지 한 번도 남에게 지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저들을 물리칠 수 있을 거예요.¬ 호불귀는 무슨 새로운 사실이라도 들을까 했다가 제일비의 말을 듣자 얼굴을 우거지상으로 콱 찌푸렸다. ↙난 또 뭐라고, 이 녀석은 뱃속에 보살을 넣고 다니나? 왜 이렇게 태


연자약해? 뭐 항상 이겼으니 오늘도 이길거라고? 네 놈은 조금 전 이노 괴가 한 말도 듣지 못했느냐? 저 용권강벽이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그런 시렁잡배들의 무공인줄 아느냐?¬ 호불귀가 마구 제일비를 득달하고 있을 때 중인들 틈에서 갑자기 위엄 어린 음성이 들렸다. ↙그 아이의 말이 맞소. 이번 싸움은 옥시미 승리할 것이오.¬ 중인들은 놀라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언제부터인지 용같고 봉황같은 노인이 우뚝 선 채 그들을 바 라보고 있지 않은가? 중인들은 그가 전옥심과 함께 온 인물인줄은 알았으나 아무도 정체를 모르고 있던지라 그가 입을 열자 관심 집중되었다. 호불귀는 그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옥심이 이긴다는 것을 어찌 아시오?¬ 그의 용모가 하도 위엄이 어렸기 때문에 항상 익살맞은 호불귀도 이번 에는 깍듯이 존칭을 사용했다. 노인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천의무봉하고 의검멸아한 경지에 이르렀소. 그 러니 아무도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을거요.¬ 호불귀는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다면 옥심의 무공이 이미 천하무적이란 말이오?¬ ↙오직 한 사람이 그의 상대가 될 수 있소.¬ ↙그게 누구요?¬ 허나 노인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호불귀는 그가 더 이상 말하지 않자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돌연 눈을 빛냈다. ↙헌데 귀하는 누구시오?¬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점잖게 웃기만 했다.


헌데 그때 이환에게 부축을 받고ㅗ 있던 얼굴에 검상이 있는 노인이 그 의 얼굴과 태도를 자세히 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며 그에게 걸어왔다. 서문광은 그가 억지로 걸음을 옮기자 급히 그를 부축했다. ↙사부님. 가만히 계십시오.¬ 그는 바로 서문광의 사부인 혁무심이었던 것이다. 허나 혁무심은 그를 뿌리치고 노인에게 다가갔다. ↙호...... 혹시.....¬ 혁무심은 그를 보며 무어라 말을 하려 했다. 그 순간 노인의 얼굴에는 위엄이 가득했다. 그 얼굴이 어찌나 근엄하던 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압도되어 입을 열지 못했다. 혁무심 얼굴을 실룩거리며 그를 바라보더니 마침내 눈가에 눈물을 주 르르 흘러내렸다. ↙사...... 살아 계셨군요.¬ 노인은 갑자기 나직이 호통을 했다. ↙나인줄 알면서도 감히 서 있는 것이냐?¬ 그 음성은 마치 천상의 황제처럼 광오하면서도 독보적인 데가 있었다. 혁무심은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죄..... 죄인이 회주를 뵈옵니다.¬ 회주라는 말에 이철심과 곽무극의 몸이 뇌전을 맞은 듯 부르르 떨렸다. ↙회..... 회주라고?¬ 노인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곽이, 이사! 그새 나를 잊었느냐?¬ 그 음성..... 그 태도...... 두 사람은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다가 그 잘에 넙죽 엎드렸다. ↙저..... 정말 회주님이셨군요.¬ ↙무극과 철심이 회주님을 뵈옵니다.¬ 곽무극은 백검회시절 우내십검중의 이호검사였기 때문에 곽이라 불리웠


고, 이철심은 사호검사였기 때문에 이사라 불리웠다. 나 천하에서 감히 그들을 곽이와 이사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뿐이었다. 이제는 한의 신화가 되어 무림에 전해내려오는 사람! 백검회의 회주이자 영원한 천하제일검! ── 무적군자검! 중인들은 이 노인이 바로 전설의 주인공, 무적군자검임을 알고 벌린 입 을 물지 못했다. 원래 무적군자검은 항상 복면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그의 진실한 정에 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혁무심은 백검회 혈사때 복면이 찢겨 드러난 무적군자검의 얼굴을 우연히 보았을 뿐이었다. 혁무심과 곽무극, 이철심은 감루를 흘리며 무적군자검 앞에 엎드 있 었다. 종리을진의 얼굴에도 잠시 감회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미 이십 년이 흘렀고 회는 깨어졌건만 당시의 인물들은 아직도 그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무림이 존재하는한 무적군자검이란 다섯 글자는 영원히 무림인들의 기 억 속에서 사뗍痴 않을 것이다. 종리을진은 가볍게 탄식을 했다. ↙그만 일어들 나게.¬ 곽무극과 이철심은 노안을 축축히 적시며 공손히 일어났다. 허나 혁무심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서문광 또한 사부의 옆에 무릎을 꿇은 채 종리을진에게 절을 하고 있었 다. 두 사제의 얼굴에는 모두 눈물이 가득했다. 종리을진은 착잡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많이 늙었군, 무심!¬ 혁무심은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회주께서 살아계실 줄을 믿었읍니다. 회주께서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 라 어딘가에 살아서 꼭 이 죄인을 찾으실 줄 알았읍니다.¬ 종리을진은 잠시 어두워오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에는 성좌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고 있었다. 밤하늘에 빛나는 저 별들처럼 백검회의 명성도 찬란했던 적이 있엇다. 백명의 검객들은 곧 별 자체였고 모든 무림인들의 우상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모든 성좌를 통솔하는 북두성었다. 허나 별들은 떨어졌고, 그토록 찬연히 빛나던 북두성도 빛이 바랬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늙어버린 몸뚱이와 가슴속에 담긴 원한 뿐


이었다.

종리을진은 가는 한숨을 쉬며 혁무심을 바라보았다. ↙얼굴의 검상은 부회주에게 당한 것인가?¬ 혁무심은 쓸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계셨군요.¬ 그는 회한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백검회의 혈사가 벌어진 다음 날 부회주가 저를 찾아왔읍니다. 저는 그렇지 않아도 부회주와 최무쌍에게 다른 묵계가 있다는 것을 짐작했었 읍니다. 그래서 조심을 했지요. 허나 부회주의 무공이 워낙 높아 일검 을 격중당하고 가슴에 삼검을 맞았지요. 다행히 미리 탈출구를 만들어 놓았기에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읍니다.¬ 종리을진은 잠시 침은하다가 자신이 지제까지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당시 일을 주동했던 인물은 부회주였나, 최무쌍이었나?¬ 혁무심의 얼굴에 진지한 빛이 떠올랐다. ↙그것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읍니다. 회주게서 혹시 십자맹이란 이름을 들어보였읍니까?¬ 종리을진은 눈을 빛냈다. ↙십자맹이라고?¬ ↙그렇습니다.¬ 종리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옥심에게 십자맹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는 터였다. ── 헌데 그게 이번 일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혁무심은 말을 이었다. ↙부회주와 최무쌍은 모두 그 조직에 가입한 상태였읍니다. 저는 우연 히 그 비밀 조직이 십자맹이며 팔남이녀로 조직되었고 그 주동자가 부 회주임을 알게 되었읍니다.¬


↙부회주가 십자맹의 주동인물이라고?¬ 종리을진은 흠칫 놀랐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맹주라든지 수인물이 없읍니다. 그저 똑같 은 권위를 나누어 가지고 있지요. 허나 그중 가장 발언권이 강한 사람 은 부회주였읍니다. 그 이유는 그가 바로 열 명의 무적고수들을 모아 들여 십자맹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종리을진은 의외에 말에 깜작 놀랐다. 십자맹은 그 이름조차 무에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집단이었다. 허나 십자맹의 존재를 알고 있는 모든 인물들은 그토록 강한 열 명의 무적고 수들이 하나의 집단아래 모일 수 있다는 것을 불가사의로 여기고 있었 다. 헌데 부회주가 바로 그 십자맹을 주창한 인물이라니...... ↙부회주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검회를 타도할 생각이었읍니다. 그래서 천하에서 뜻이 맞는 아홉 명의 고수를 모아 십자맹을 조직한 것이지요. 당시 백검회 혈에 가입한 사람은 그 열 명의 고수들 중 다섯 명이었 읍니다. 부회주와 최무쌍외에도 세 사람이 더 개입을 했지요. 그들중 한 사람인 구천환유 고자군은 다른 인물을 포섭하는 역할을 했읍니다. ¬ 혁무심은 당시 일을 회상하듯 몸을 가늘게 떨었다. ↙고자군은 저와 서잠허를 찾아와서 협박과 회유로 설득을 했지요. 저 는 당시 십자맹이 얼마나 가공할 집단인가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결 국 그에게 굴복하고 말았읍니다.....¬ 잠시 혁무심의 얼굴에는 고통과 회오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회주님과 다른 검수들에게 독을 쓴 독마 서문 표였읍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우내십검주에서도 무공이 가장 신비한 무명검사를 상대하기 위해서 온 홍포노인이었읍니다. 그의 정체만은 저 도 확실히 모르겠으빈다. 다만 오만하고 냉혹한 최무쌍이 그 노인에게 만은 공손한 것으로 보아 십자맹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인물임을 알았읍 니다. 부회주와 최무쌍은 회주님을 상대하고 저와 서잠허는 그 외의 다 른 고수들을 상대하기로 했지요.¬ 혁무심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시의 계획은 완벽해서 원래는 백검회의 인물들은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읍니다. 허나 약간의 착오가 있어 거의 모든 인물들이 살


아날 수 있었지요. 첫째는 그들은 회주님의 무공을 너무 경시했다는 것 입니다. 그들은 독왕지독에 중독된 이상 부회주나 최무쌍 한 사람 만으 로도 충분히 회주님을 죽일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헌데 회주님의 무공 이 상상을 초월하여 그들도 무척 당황을 했읍니다.¬ 종리을진은 여전히 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담담하 기 그지없어 조금도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허나 그의 마음속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두 번째로는 너무 독왕지독의 위력을 믿어 십자맹의 다른 인물들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자군이나 서문표만 해도 직접 손을 쓰 지는 않았지요. 그들이 만약 부회주와 최무쌍과 힘을 합해 손을 썼다면 아마 한 사람도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모든 말을 마쳤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때 이철심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마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을걸세.¬ 곽무극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엇인가?¬ 이철심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혁무심을 바라보았다. 그의 냉혹하던 인상은 어찌된 일인지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난 지금까지 한 가지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었네. 허나 이제는 확실히 알겠군.¬ 이어 그는 씁쓸히 웃었다. ↙과거 백검회 혈사때 나와 이언년을 상대했던 사람은 바로 혁무심이었 네. 헌데 어찌된 일지 그는 충분히 우리를 죽일 수 있었 岵 순간에 손길을 자꾸 늦춰 결국 그와 나는 도 망칠 수 있었네. 지 난 이십년간 나는 그게 의문스러워 영문을 알지 못했네. 허나 지금 생 각하니 확연히 알겠군. 그때 혁무심이 일부러 우리에게 심하게 손을 쓰 지 않았다는 것을......¬ 곽무극은 탄성을 질렀다. ↙아! 그런 일이 있었나?¬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다. ↙하긴...... 당신 나와 천환검 조사현은 서잠허의 습격을 받았는데 당 시 그 놈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검을 휘둘러 나는 얼굴에 검상을 입고 조현은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지. 자네오 이언년만 별로 다친 곳도 없이 무사해서 신기하다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 혁무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철심은 문득 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무심. 일어나게. 자네 때문에 한 목숨 건진 것도 모르고 그동안 많이 원망했었다네.¬ 혁무심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처...... 철심! 나를 용서해 주겠나?¬ 이철심은 강퍅한 얼굴에 씁쓸한 미소를 띄웠다. ↙용서하고 말고가 어디 있나? 자네가 일부러 놓아주지 않았다면 이언 년과 나는 벌서 고혼이 되었을 텐데...... 회주님께서도 자네를 더이상 꾸짖지 않을실 걸세.¬ 혁무심은 손을 내밀어 그의 비쩍 마른 손을 힘어 움켜잡았다. ↙고...... 고맙네......¬ 혁무심은 이철심의 도움을 받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이어 그는 가벼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나는 고자군의 강권에 못이겨 가담을 했지만 마음속에는 후회와 죄책감이 가득했다네. 생각 같아서는 다른 사람 모두를 구출하고 싶었 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었네. 다행히 무극과 회주님이 무사하시니 이제야 마음 속의 무거운 짐이 조금 덜어지는 것 같네.¬ 이어 그의 시선은 종리을진에게 향했다. 종리을진은 아까부터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연히 암천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는 왠지 고독한 기운이 가 득 느껴왔다. 종리을진은 부회주가 이미 오래전부터 백검회를 격파하기 위해서 십자 맹을 조직했다는 말을 듣고 하늘을 올려다본 채 시선을 내릴 줄 몰랐다 .


남궁진웅은 이미 마음 속으로 종리을진을 없애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회주직을 승낙하고 그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사제! 그렇게도 내가 미웠느냐? 아니면 군림천하의 야망이 그렇게도 강했느냐?) 종리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착잡함과 침통으로 가득차 있었다. 남궁진웅은 그보다 다섯 살이 어렸다. 그래서 옛날부터 종리을진은 그를 친동생처럼 아끼고 귀여워했다. 사부 인 남궁산이 실종되었을 때도 그는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하며 남궁진웅 을 위해 무언가 할 일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기도 했었다. 이옥산과의 일만 아니었더라면 종리을진은 아직까지도 궁진웅의 뒷바 라지를 해주고 있었을 것이다. 헌데 그런 그가 자신을 배반하다니...... 그것은 순가적인 감정이나 남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오 래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해 왔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이다. 헌데 그때 문득 제일비의 탄성이 들려왔다. ↙아! 저길 봐요.¬ 중인들은 깜짝 놀라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지금까지 강한 회오리바람에 가려 보이지 않던 전옥심과 오로의 대결장이었다. 헌데 그토록 강하게 불어와 한치앞도 보이지 않던 회오리바람이 거의 걷혀 장내가 들여다보이는 것이 아닌가? 중인들은 놀라 정신없이 장내를 바라보았다. 허느 새 회오리바람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허나 여전히 중인들은 사정을 알 수 없었다. 사람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단지 허공세서 대 여섯개의 희끗 한 인영들이 서로 교차되며 비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단지 뿌연 선만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가바자기 그 중 한 인영이 허공에서 마구 돌며 강하게 회전을 일으켰다. 그것은 너무도 빠르고 강력해 마치 조금 전의 회오리바람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그 순간, 털썩! 털썩! 털썩! 그 회오리바람에 스친 다른 인영들이 허공에서 화살맞은 기러기마냥 땅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순식간에 다섯 인영은 아래로 떨어져 버렸고 오직 한 인영만이 여전히 강하게 회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회전이 멈추며 인영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


중인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인영은 바로 전옥심이었던 것이다. 중인들은 다시 허겁지겁 땅에 쓰러져 나뒹굴고 있는 인영들을 바라보았 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위풍당당하던 다섯 명의 절세고수들은 참담 한 꼴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다섯 사람중 다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양등선과 전자방은 양 팔이 완전히 잘려 나간 채 피바다 속에 누워 있 었다. 그 중에도 이귀만이 안색이 창백하고 입가에 실날같은 선혈을 흘 리고 있을 분 별로 다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이귀는 억지로 끙끙거리며 이러나려고 애를 썼다. 전옥심은 천천히 煞 그의 앞으로 내려섰다. 이귀의 얼굴은 오직 경악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전옥심을 바라보더니 문득 탄식을 토해냈다. ↙오...... 오웅참마진이 깨어지다니..... 우리가 자네를 잘못 보았군. ....¬ 이귀의 음성은 그야말로 참담한 것이었다. 그는 신음을 흘리며 피바다 속에 누워 잇는 자신의 절친한 동료들을 바 라보다가 억눌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왜 내게는 손속에 사정을 두었나?¬ 그의 음성에는 일말의 분노마저 어려 있었다. ↙설마 이 느 몸뚱에게 자네가 손을 쓸 가치조차 없었단 말인가?¬ 전옥심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귀의 얼굴은 수치심과 패배감으로 침통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길게 탄식을 터뜨렸다. ↙이젠 나도 늙었군. 결국 이런 결말을 맺게 되었군.¬ 그는 약간 가라앉은 눈으로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자네의 무공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네. 단신으로 오웅참마진을 격파하 는 사람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 그는 품속에서 편지 한장을 꺼내 전옥심에게 건네주었다.


↙받아 보게.¬ 전옥심은 어리둥절했다. ↙이것이 무엇이오?¬ 이귀는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를 이곳에 보낸 사람의 지시일세. 만 하나라도 자네가 우리의 오웅참마진을 격파한다면 자네에게 이 편지를 전하라고 했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설마 자네에게 이 편지를 전하게 될 줄은 몰랐네.¬ 전옥심은 눈을 빛내며 편지를 펼쳐보았다. 그 안에는 실로 놀라운 사실 이 적혀 있었다.

<오의생 전. 자제가 오웅참마진을 깨리라곤 믿지 않지만 만분지 일의 가능성을 고려 해서 이 편지를 쓰네. 우리는 이미 자네의 사부라고 할 수 있는 주자앙이 있는 곳을 발견했네 . 이 편지가 전해진 후 정확히 삼 일 되는 날 우리는 주자앙을 찾아갈 걸세. 만약 자네가 우리보다 늦게 주자앙에게 간다면 자네는 망혼유곡의 뒤쪽 동굴에서 한구의 시신만을 발견하게 될 걸세.> 그 밑으로는 서명 대신 자색 벌 모양의 인장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전옥심은 그 편지를 읽는 자신의 손끝이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것을 느 꼈다. 주자앙은 그에게는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친한 인물이었다. 그의 정신적인 사부라고 할 수도 있고 석무군이 해주지 못한 혈육의 정 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항상 만보차에 의지해 살아야만 하면서도 외눈 가득 부드러운 정을 느 끼게 했고 태도는 온하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그의 차분한 음성과 이 지에 가득찬 눈빛은 전옥심의 인격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가 있다. 전옥심이 무림에 출도한 후 주자앙은 홀로 망혼유곡의 뒤쪽에 있는 은 밀한 동굴에 기거하고 있었다. 달리 찾아갈 만한 사람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기에 주자앙은 전옥심이 십자맹을 쳐부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쓸쓸히 살고 있는 것이다. 헌데 그 종적이 마침내 십자맹의 눈에 발각되었다. 전옥심은 자신이 왜 좀 더 진작에 그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 놓


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의 안색이 너무도 침울했기 때문에 종리을진이 다가와 그의 뒤편에서 편지를 읽어보았다. 그의 안색도 침울해졌다. ↙이것은 대만의 글씨로군.¬ 종리을진은 한 눈에 그 필치가 낯익은 것임을 발견했다. 십자맹의 자봉인 자자호는 바로 남궁진웅이었던 것이다. 종리을진은 잠시 침음하다가 전옥심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것은 자네를 유인하기 위한 함정일세.¬ 전옥심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리을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은 그곳에 죽음의 함정을 파고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 걸. 자네 가 그곳에 간다면 화약을 진 채 불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것나 다름이 없네.¬ 전옥심은 말없이 우뚝 서 있었다. 종리을진은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주자앙은 자네가 그를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 호굴로 뛰어들기를 바라 지 않을 걸세.¬ 전옥심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그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가 어찌 가지 않을 수 있겠소?¬ 종리을진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탄식을 토했다.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장부의 길은 멀고도 험한 걸세.¬ 전옥심은 문득 이귀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상 당신들에게 손을 쓰지 않겠소. 그러나 부디 무림을 떠 나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오.¬ 이귀는 얼굴을 실룩이다가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는 쓰러져 있는 친구들을 부축했다. 다행히 동곽과 복마산인은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일어날 수 있었다. 이귀는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 양등선과 전자방을 안고 걸음을 옮겼. 엽자문은 한쪽에서 무언가 말할 듯이 그를 바라보았으나 끝내 그를 부


르지 못했다. 이귀 또한 일부러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유일한 제자에게 사부의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인지도 몰 랐다. 과거 천하를 떨쳐 울리던 다섯 명의 절세검수들은 쓸쓸히 서렇 부축

. 중인들은 말없이 그들의 뒤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제 과거의 인물들은 무대 저쪽으로 퇴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 새로운 필살유혼, 새로운 천하제일검이 그들의 뒤 를 대신할 것이다. -----------------------------------------------------------------제 9 장 부 동 명 왕 헌데 그들의 몸이 막 언덕너머로 사라지려할 때였다. 갑자기 계곡 저편에서 피처럼 붉은 구름이 무서운 속도로 몰려오는 것 이 아닌가? 홍운은 눈깜박할 사이에 그들의 몸을 휩쓸어 버렸다. 휘리링! 붉은 구름이 그들의 몸을 덮치자 피분수가 일어나며 처절한 비명이 메 아리쳤다. ↙크아악!¬ ↙크윽!¬ 놀랍게도 다섯 명의 노인들은 마치 짚단처럼 피분수를 뿌리며 날아가 버렸다. 실로 믿을 수 없느 일이었다. 비록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그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세의 고수들이었다. 헌데 창졸지간에 그들을 모두 쓰러뜨려 버리다 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중인들은 놀라 그들이 쓰러진 곳을 바라보았다. 이미 한 사람도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질펀한 피비린내만이 싸 늘히 식은 그들의 시신을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동시에 어느 사이엔가 시신들의 앞에 한 인물이 우뚝 서 있었다. 그는 피처럼 붉은 홍포를 입을 중년인이었다. 두 눈은 사자의 그것처럼 활활 불타오르고 체구는 마치 태산을 보듯 우 람하고 당당했다. 그가 바로 조금전의 무시무시한 붉은 구름의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일순간에 다섯 명의 절세고수들을 고혼으로 만들어 버린후 광오하 게 외쳤다. ↙감히 본 명왕의 동생을 건드린 자는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 그는 부리부리한 호목으로 중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아직도 정신을 일고 이비취의 품속에 쓰러져 있는 이언년을 바라보고 그곳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비취를 바보며 물었다. ↙네가 바로 비취냐?¬ 이비취는 큰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요. 실례지만......¬ 홍포중년인은 그녀가 더이상 묻기도 전에 굵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 을 가리켰다. ↙내가 바로 너의 큰아버지다.¬ 이비취는 눈을 반짝였다. ↙그럼 바로 팔대명왕중의 수좌인 부동명왕이세요?¬ ↙그렇다. 내가 바로 부동명와 이홍광이다.¬ 이비취는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그를 바라보더니 일어나서 날아갈듯 절 을 올렸다. ↙비취가 백부니을 뵈옵니다.¬ ↙그만둬라. 언년에게 어린 딸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네가 이토록 컸는 줄은 몰랐구나. 헌데 그의 상세는 좀 어떠냐?¬ 이비취는 씁쓸히 웃었다. ↙심맥을 다치셔서 한동안은 의식을 찾기 힘들것 같아요.¬ 이홍광은 다가와 이언년의 상세를 살피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은 편신 전자방의 영사편강의 자국이군. 전자방 따육 감히 내 동생을 건드리다니......¬


그때 돌연 누군가가 불쑥 나서서 싸늘히 내뱉었다. ↙그래서 당신은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오?¬ 이홍광은 고개를 번쩍 쳐들고 자신에게 말한 사람을 노려 보았다. 그는 바로 엽자문이었다. 이홍광은 자신의 한참 후배뻘인 청년이 비꼬는 투로 말하자 인상을 찌 푸렸다. ↙어린 놈이 건방지군. 네 놈의 사부는 누구냐?¬ 엽자문은 그의 손에 쓰러져 시체가 되어버린 이귀를 가리켰다. ↙사부님은 이미 남과 싸울 수 없을만큼 다쳐서 무림에서 은거하시려던 참이었소. 헌데 그분을 살해하다니.....¬ 이홍광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신광이 흘러나왔다. ↙알고보니 이귀의 제자였군. 그렇다면 용서할 수 없지.¬ 그는 이언년을 이비취의 품에 뉘여놓고 벌떡 일어났다. 엽자문도 이미 사부의 죽음때문에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 참이 라 이를 갈며 앞으로 나섰다. 헌데 일촉즉발의 순간 돌연 위엄어린 음성이 들려왔다. ↙자네는 언제부터 그렇게 함부로 손을 휘두르게 되었나?¬ 이홍광은 흠칫놀라 음성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종리을진이 뒷짐을 진 채 그를 바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자 이홍광은 깜짝 놀라 반색을 했다. ↙이게 누구요? 종리형이 아니시오?¬ 종리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군. 내가 종리을진이네.¬ 그의 말에 중인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들은 그제야 백검회의 회주인 무적군자검이 천하제일기사였던 환우일 기사 종리을진과 동일인물임을 알게된 것이다. 이홍광은 반가 어쩔줄 모르며 그에게 다가왔다. ↙아니 지금가지 어디 있었길래 소식도 없다가 이렇게 불쑥 나타난 것 이오?¬


종리을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만한 사정이 있었네. 자네의 그 불같은 성미는 여전하군.¬ 이홍광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마인을 보면 참지 못하는게 내 성미인 줄은 종리형이 더 잘알고 있지 않소? 더구나 하나밖에는 없는 아우가 위험에 처했다는 말 을 듣고 마음이 급했던 참이오.¬ 종리을진은 부드러운 가운데 위엄있게 말했다. ↙저 아이는 우리의 일행이네. 그의 사부또한 이제는 무림을 떠나기로 결심을 굳힌 터이네. 자네의 행동은 너무 성급한 것이었네.¬ 이홍광은 그까지 나서서 그런 말을 하자 쓴 입맛을 다셨다. ↙일이 그랬다면 미안하게 됐군.¬ 엽자문은 그 싸늘히 바라보았다. 사람을 죽여놓고 미안하다고 하면 그만인가? 허나 그가 막 쏘아붙이려고 하는 순간 시기적절하게 무 이 앞으로 나섰다. ↙대형을 뷥니다.¬ 그들이 너서서 고개를 수그리자 이홍광은 눈을 빛냈다. ↙참, 오치광은 어디 있느냐?¬ 오광은 금강야차의 어릴적 이름이었다. 헌데 주위를 둘러보던 중인들은 어리둥절한 빛이 되었다. 금강야차의 모습이 어느새 보이지 않은 것이다. 바로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그의 모습을 보았던 중인들은 흠칫 놀라 주 위를 두리번거렸다. ↙저쪽이다!¬ 누군가가 탄성을 질렀. 입구쪽으로 한 사람이 죽어라고 도망가고 있지 않은가? 그는 놀랍게도 금강야차였다. 부동명왕이 나타난 순가부터 사색이 된 채 눈치를 보던 그는 주위의 시


선이 이홍광과 엽자문에게로 쏠리는 틈을 타서 몸을 내 뺀 것이다. 이홍광의 눈에서 화르르 화광이 흘러나왔다. ↙네 놈이 감히 나를 속이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거구가 허공을 훌훌 날아갔다. 무려 백 여잔을 거의 숨 몇 번 들이쉴 동안에 날아가는 그의 모습은 그 야말로 붉은 구름, 그것이었다. 종리을진조차도 감탐하여 탄성을 터뜨 렸다. ↙굉장하군. 그 사이 그의 무공은 놀랍도록 정진되었군.¬ 금강야차는 죽어라 도망가다가 등뒤에서 무언가 강한 기운이 덮쳐옴 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홍포를 펄럭이며 가공할 기세로 허공을 날아 덮쳐오는 이홍 광의 무시무시한 모습이 들어왔다. ↙아..... 대형!¬ 그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허나 이미 이홍광의 몸은 그의 등뒤 에 도달해 있었다. ↙어디를 가려느냐, 오치광?¬ 이홍광은 커다란 손을 번개같이 내밀어 그의 목덜미를 채왔다. ↙어헉!¬ 금강야차가 깜짝 놀라 몸을 피하려 할 순간 이홍광의 손은 이미 그의 목덜미를 덥석 움켜 잡았다. 동시에 그는 다른 한 손으로 금강야차의 전신 혈도를 번개같이 제압해 버렸다. 실로 눈깜박할 사이에 그강야차는 꼼짝도 못하게 된 것이다. 이홍광은 금강야차를 마치 어린아이 들 듯 손에 든 채 다시 중인들 앞으로 날아왔다. 그가 몸을 날려 금강야차를 제압하고 다시 돌아오기 까지는 실로 촌각 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무공은 가공한 것이다. 이홍광은 금강야차를 땅위에 매몰차게 내팽개쳤다. ↙이놈!¬ 쾅! ↙어이쿠!¬


금강야차는 눈앞에 별이 반짝이는 것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허나 이홍광은 조금도 사정을 보지 않고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감히 나를 배반하고 친구를 팔아넘기려 하다니.....¬ 빡! 금강야차의 턱이 홱 돌아가며 입에서 부러진 이빨들이 우수수 흘러나왔 다. 금강야차는 너무도 고통스러워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의 입가로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중인들은 이홍광의 거친 손길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아무도 저지하는 사 람은 없었다. 금강야차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금성위가 보다못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형!¬ 이홍광은 그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이놈을 용서해 달라는 말이라면 애초에 하지도 말아라!¬ 금성위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그럼 뭐냐?¬ 금성위는 씁쓸하게 말했다. ↙금강야차는 수십년 동안 저희들과 의형제를 맺어온 친구입니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친구와 대형을 배반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에게도 해명할 기회를 주는것이......¬ 이홍광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해명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해명이냐? 이 놈이 내가 언년을 눈이 빠 지게 찾고 있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알리지 않고 더구나 조금전 내빼는 행동을 보지 않았느냐?¬ 금성위는 착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입으로 직접 사정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무능승과 예적금강도 애원하는 눈으로 이홍광을 바라보았다.


이홍광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다. 나도 치광이 나를 배반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대체 무슨 마가 쒸워 이놈이 나를 배반했는지 알고싶다.¬ 이어 그는 금강야차를 바라보았다. ↙치광. 내가 너에게 평소에 섭섭하게 해준 것이 있느냐?¬ 금강야차는 눈물을 글썽이다가 이 멘 채 고개를 수그렸다. ↙아닙니다.....¬ ↙그럼 나에게 불만이 있었느냐?¬ ↙아닙니다...... 대형!¬ 이홍광은 탄식을 했다. ↙나는 평생 불같이 행동했지만 너희들에게는 친형처럼 대해왔다고 자 부했다. 너는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약하고 거짓말을 할 줄 몰 라 나는 너만은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내동생을 찾는 일도 너 에게 먼저 부탁한 것이다. 헌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네가 나를 배신하다니......¬ 금강야차는 추한 얼굴을 눈물로 적시며 후회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잘못했읍니다. 형님. 제가 죽 놈입니다.¬ 이홍광은 슬픔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왜 나를 배반했느냐?¬ 금강야차는 얼굴에 피와 이 된 채 흐느끼다가 조그맣 게 입을 열었다. ↙제가 눈이 멀었읍니다. 잠시 한때의 정을 못잊어 친구를 배반했으니 죽어도 할 말이 없읍니다.¬ ↙한때의 정이라니......¬ 금강야차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했다.


↙형님께 부탁을 받고 이언년을 찾으러 갈 때였읍니다. 우연히 한 사람 이 저를 찾아왔읍니다.¬ ↙그가 누구냐?¬ 금강야차는 우물거리다가 자포자기한 음성으로 말했다. ↙천향비자 심의였읍니다.¬ ↙천향비자? 아니 그녀가 웬일로 너를 찾아왔단 말이냐?¬ 이홍광은 눈을 크게 떴다. 천향비자 조심의는 과거 천하삼미중의 한 여인이었다. 항상 냉정하고 차가우면서도 재지가 탁월해 천하제일기녀로 불리우기도 했다. 금강야차는 한때 그녀에게 열중하여 정신없이 따라다닌 적이 있었다. 금강야차는 후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저를 찾아와서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었읍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해 그녀에 대한 제 정이 사라진 줄 알았읍 니다. 헌데 그녀를 다시 만나고 보니 저도 제 마음을 알 수 없을 정도 로 야릇한 심정이 들었읍니다. 그녀는 제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한다면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했읍니다. 그것은 이언년을 죽여달라는 것 이었지요. 그렇게 한다ㄴ면 제가 말하는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준다고 했읍니다.¬ 금강야차는 처연한 표정이 되었다. ↙전 그녀의 말에 귀가 멀고 정신이 마비되었읍니다. 여인이 남자에게 모든 부탁을 들어준다는 것은 저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읍니다. 그 녀는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다. 추후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사라졌 읍니다. 그 후 저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아직도 이비취의 품에 쓰러져 있는 이언년을 안스러운 눈으로 라보았다. ↙그러다가 낙양에서 이언년을 만나게 되었읍니다. 그를 대형에게 데리 고 가야할지 아니면 천향비자의 말대로 암살을 해야할지 몰라 저는 많 은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읍니다. 허나 형제를 배반할 수는 없었읍니다 . 그렇다고 제 평생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유일 한 기회를 저버리고 싶지도 않았읍니다. 그래서 고민에 한가지 결정 을 내리게 되었지요. 그때 마침 천향비자의 제자인 유소파라는 소녀가 저에게 접근해 와서 의중을 물었읍니다. 저는 제 생각을 말했지요. 즉 이언년을 직접 죽이지는 않되 그를 모종의 장소로 인도할테니 다른 사


람의 손을 쓰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 의 방책이었읍니다.¬ 금강야차는 차마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다가 다시 말을 이었 . ↙그래서 저는 영웅대회 후 그와 행동을 같이한 것입니다. 먼저 태산으 로 갔을 때 그녀에게 알리려고 했으나 다시 방향이 바뀌어 이곳으로 향 했지요. 전 이곳에 혁무심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곧 그것을 편지로 적어 조심의에게 보냈읍니다. 그녀는 모든 일이 끝나면 제 부을 들어주겠 다고 했읍니다. 허네 의외로 무능승과 예적금강이 이곳에 나타났고 다 시 대형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한때 여색에 눈이 멀어 형제들을 배반 한 이놈을 죽여 주십시오.¬ 그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중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허나 그에 대한 분노보다는 오히려 연민의 심정이 들었다. 금강야차는 그 추한 외모때문에 평생 여인의 손목 한 번도 잡아보지 못 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천하제일의 기녀라는 조심의를 따라다닌 것은 자신의 얼굴에 대한 열등감을 반발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허나 결국 그때문에 그는 영원히 길 수 없는 정의 굴레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포기하다시피한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잡게 되었을때 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중인들은 여인의 정에 넘어간 금강야차에 대한 분노보다도 정에 약한 그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던 조심의에 대한 분노가 가슴에 가득찼다. 종리을진은 문득 나직이 탄식을 했다. ↙심의사매는 항상 냉정하고 남자에게 무관심했는데 설마 자신의 미색 을 이용해서 순진한 사람을 유혹할 줄이야..... 그녀가 그 정도로 타락 했단 말가?¬ 그는 자책하는 심정이 되었다. 조심의가 평생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은 바로 종리을진 뿐이었다. 허나그가 이옥산과 불의의 관계를 맺게되자 그녀는 절망하여 떠나고 말 았다. ── 그 후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종리을진은 답답한 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그때 전옥심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것은 그녀가 십자맹의 일원이기 때문이오.¬ 종리을진은 흠칫하는 빛을 떠올렸다. ↙그녀가 십자맹의 일원이라고?¬ ↙그렇소.¬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 해 주었다. ── 전옥심의 은인이었던 신풍귀견수 장무기는 과거 구양승과 천향바자 가 만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결국 죽었다. ── 그 일은 아무도 알아서는 안되는 비밀주으이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 ── 단수니 남녀간에 정을 통하기 위해서 만났다면 그렇게까지 비밀로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 그들이 만난 것은 남녀간의 정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중대한 의논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 당시 수라교는 무언가 중대한 계획을 하고 있었다고 조령당이 말 한 적이 있었다. 그 중대한 계획이란 수라교의 십자맹 귀속이 아닐까? 그것은 수라교주인 구양승과 삼대거두의 수뇌인 만리신통 비홍이 모두 십자맹의 인물인 것으로 보아 거의 확실한 일이었다. ── 그렇다면 구양승과 만나 모종의 일을 의논한 천향비자 또한 십자 맹의 인물일 것이ㅏ. 이것은 논리정연한 귀결이며 정상적이 사고의 흐름이었다. 헌데 전옥심으로서는 한가지 의문이 있었다. ── 하필이 천향비자는 다른 많은 사람을 놔도고 왜 이언년만을 그 토록 죽이려고 했을까? 이언년은 비록 절세고수이지만 곽무극이나 금성위에 비하면 약간의 손 색이 있다. 또한 위치로 보아도 이비취의 아버지란 점 외에는 그다지 중요한 인물도 아니었다. 헌데 천향비자는 자신의 자존심을 죽여가며 미인계를 쓰면서까지 그를 없애려고 한 것이다. ──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전옥심이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홍광은 금강야차를 내려다보며 탄식을 하고 있었다. ↙팔대명왕은 평생 악을 물리치고 정도를 지키기 위해서 피땀을 흘려왔 는데 이제 너때문에 정절을 더럽혔으니 대형된 나로서 어찌 하늘을 보 고 살 수가 있단 말이냐?¬


그의 어조는 침통했다. 금강야차는 송구스러움과 죄책감으로 고개를 떨구었고 금성위와 무능승 등도 처연한 빛이 되었다. 이홍광은 잠시 착잡한 얼굴이 되었다가 입을 열었다. ↙내 심정같아서야 너를 백번 천번 죽이고 싶다만 그동안 함께 지내온 형제의 정을 끊기가 어렵구나. 너에 대한 처벌은 팔대명이 모두 모인 자리에 전부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겠다.¬ 금강야차는 고개르 푹 수그렸다. 종리을진은 잠시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전옥심에게 다가왔다. ↙이제 모든 일의 원흉은 남궁진웅임이 드러났네. 헌데 자네는 망혼유 곡으로 가려는가?¬ 전옥심은 고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렇다면 함께 가세. 우리들이 모두 가면 그들이 제 아무리 무서운 함정을 파놓았더라도 물리칠 수 있을 걸세.¬ 허나 전옥심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소. 나는 혼자 가겠소.¬ 제일비가 듣고 있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형님. 저라도 따라가겠읍니다.¬ 전옥심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에 관한 것이다. 이런 일 때문 에 대세를 그르칠 수는 없다. 십자맹은 아직도 절반 이상이 남아 있다.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엉뚱한데 힘을 낭비할 수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말하지마라. 함께 간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 혼자 라도 감당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괜히 사람만 많이 몰려가서 번거 로움을 자초할 뿐이다.¬ 제일비가 한숨을 내쉬쓴.


그는 그동안 전옥심을 따라 다녔기 때문에 그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일단 무엇을 하기로 결심을 하면 하늘이 두쪽이 나 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오직 그가 무사히 주자앙을 구해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십자맹은 아직도 절반 이상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제 10 장 떨 어 진 별 망혼유곡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숲은 우거졌고 기암괴석은 예전의 질서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푸르고 울차한 수림...... 여기저기 뽐내듯이 솟아나 있는 바위들..... . 계곡의 중앙을 흐르는 조그마한 시내에서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샘물 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니 시릴 듯 파란 하늘이 눈을 찔렀고 그 사이로 솜처럼 하얀 새털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이곳의 초목, 바위 하나하나에 추억이 담겨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너무도 낯익은 모습, 낯익은 계곡이었다. 허나 지금 전옥심은 그런 추억을 회상하기에는 너무도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잠시 망혼유곡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곡의 뒷편으로 걸어갔다. 주위는 아주 조용했다. 이따금 울어대던 산새들도 짖지 않고 바람도 멈 춰버린 것 같았다. 허나 전옥심은 웬일인지 서늘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흑삼을 펄럭이며 망혼유곡을 가로질러 계곡 뒷편으로 향했다. 망혼유곡이 끝나는 절벽부근에 눈으로 보아서는 잘 알 수 없는 조그마 한 소로가 나 있었다. 소로는 절벽의 양 옆에 솟은 커다란 두 개의 바위에 가려있어 제아무리 안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는 이런 길이 잇다는 것 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소로의 작은 틈새를 십 여장 걸어가면 반경 오장 쯤 되는 공지가 나 오고 공지의 맞은편에 동굴이 뚫려 있었다. 이 동굴이 바로 주자앙이 기거하고 있는 곳이었다. 전옥심이 동굴의 앞에 있는 공지로 올 때까지 아무도 나타나는 사람이 없었다. 전옥심은 동굴의 바로 앞에 서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돌 하나, 풀 한 포기도 없어지거나 바뀐 것이 없었다. 헌데도 또 다시 왠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햇살은 이곳까지 미치지 못해 주위는 약간 어두침침했다. ── 살아 나가서 다시 햇살을 볼 수 있을까? 전옥시믄 동굴 입구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들


어 갔다. 동굴은 컴컴했다. 습기가 가득 차 있었고 매캐한 끼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허나 전옥심은 조금도 인상을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음속에 는 잠시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 내음을 맡자 그 사람의 얼굴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 그는 과연 무사히 있을까? 동굴은 깊었다. 점점 들어가자 어두컴컴해져 마침내는 찰흑같이 캄캄해졌다. 허나 전옥심은 눈을 감고도 이 동굴속을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의 지리에 훤했다.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동굴이 꼬부라지고 그곳에서 십 여장쯤 가면 주자앙이 기거하는 석실이 나오게 된다. 전옥심은 꼬부라진 곳을 지나 석실로 다가갔다. 석실이래야 돌굴의 벽 을 좀더 넓게 판 곳에 불과했다. 주위에 등빛이 없어 아무것도 불 수 없었지만 전옥심은 손을 내밀어 익 숙하게 석실의 문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갑자기 미약한 빛이 흘러나왔다. 석실의 중앙에 꺼질 듯 약한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주위를 밝히는 데는 충분한 것이었다. 전옥심은 석실로 들어섰다. 한 사람이 석실의 한쪽 벽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전옥심은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다가 몸을 굳혔다. 하나의 부드러운 눈동자가 그를 보고 있었다. 만보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그는 차디찬 석실의 한쪽 귀 퉁이에 보기 흉한 몸뚱이를 어설프게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돌아왔구나.¬ 주자앙은 전옥심을 보자 특유의 온화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여기 오지 않기를 바랬다. 허나 네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짐작 했지.¬ 전옥심도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우울할 수 없을만큼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전옥심은 주자앙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려 굼 가슴을 향했다. 주자앙의 가스은 쩌억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한 가운데에 별빛 모양의 검흔이 선명이 나 있었다. 그 검흔은 과거에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유성검흔! 검흔은 주자앙의 심장 바로 위까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주자앙은 전옥심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단숨에 나를 죽이지 않았다. 내가 너의 얼굴만이라도 볼 수 있 게 해달라고 빌었기 때문이지. 그 대신에 나는 반항하지 않고 그에게 붙잡혀 주었다.¬ 전옥심은 울적한 눈으로 그 검흔을 바라보다가 거의 들리지도 않는 목 소리로 물었다. ↙그는 탈혼검 최무쌍입니까?¬ 그의 음성은 낮게 갈려 있어 흡사 목이 쉰 것처럼 들렸다. 주장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리고 그가 바로 혈자호였다.¬ 전옥심은 눈을 빛냈으나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허나 그의 얼굴은 찬백하게 굳어 있어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주자앙은 그의 마음을 다 래주려는 부드럽게 웃었다. ↙내 목숨은 이미 십 여년전에 죽은 것이다. 이제까지 살아 있던 것만 으로도 운이 좋았지.¬ 이어 그는 유쾌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 모습을 보니 네 무공이 전보다 훨씬 더 고강해 진 것 같구나. 네 가 이만큼 성장한 것을 본 것만으로도 나는 아무런 유감이 없다. 죽은 엽소천과 장무기를 생각하면 나는 불펼할게 없지.¬ 전옥심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주자앙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허나 그는 조금도 색하지 않고 온 화하 옥심.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느냐?¬ 전옥심은 우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주자앙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당시 너는 체구가 작고 아주 우울한 소년이었지. 나는 네 얼굴에 웃음을 띄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 나는 그것이


지금도 아쉽구나.¬ 전옥심은 나직이 대꾸했다. ↙그건 당신이 몰라서 그렇습니다. 나는 요즘 자주 웃습니다.¬ 주자앙은 다시 예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내 앞에서 웃을 수도 있지 않느냐?¬ 전옥심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 했다. 허나 가슴속이 답답하고 메어지 는 듯해 도저히 웃음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주자앙은 그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다시 웃었다. ↙그것보아라. 너는 아직도 웃는게 서툴구나. 하하.......쿨룩!¬ 그는 짐짓 쾌활하게 웃다가 기침을 했다. ↙쿨룩...... 쿨룩......!¬ 기침을 할 때마다 그의 코와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 나왔다. 전옥 심은 암울한 눈빛을 떠올리며 그엑 다가왔다. 주자앙은 고개를 설레설 레 저었다. ↙그런 표정을 짓지마라. 천기수사가 그렇게 나약한 사람만은 아니다. ¬ 전옥심은 탄식을 했다. 그의 탄식은 낮고 무거웠지만 주자앙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나는 비록 이렇게 되었지만 너를 키운 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최무쌍의 말을 들어보니 십자맹은 너 때문에 뿌리째 뒤흔들린 듯 하구 나...... 쿨룩......¬ 그가 말을 할 때마다 기침이 나왔고 핏물이 함께 흘러나왔다. ↙말씀하지 마십시오.¬ 전옥심은 침울하게 그를 말렸으나 주자앙은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만보차를 내주고 순순히 잡히면서까지 너를 보려고 했던 것은 반드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주자앙은 돌연 눈을 빛내고 그를 불렀다.


↙옥심!¬ 그의 음성은 너무도 진지했기 때문에 전옥시은 더 이상 그를 만류할 수 없었다. 주자앙의 외 눈은 어둠을 밝혀주는 찬란한 등불같았. ↙너는 일전에 네게 연환구구탈백검을 가르쳐 주었던 그 괸인을 기억하 냐?¬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괴인은 전옥심으로서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얼굴가죽이 벗겨지고 양손의 손가락마저 모두 잘린 채 정신마저 미쳐버 려 쇄혼동에 갇힌 채 평생을 마쳐야만 했던 사람. 천하무쌍의 독보적인 연환절기인 연환구구탈백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름 한 자 남기지 못한 그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주자앙은 음성을 낮게 깔고 말을 이었다. ↙네가 무림에 출도한 후 나는 그의 정체를 조사해 보았다...... 쿨룩. .... 달리 할일도 없었고 그의 정체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지. 그래 서 나는 결국 그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전옥심은 그가 왜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면서까지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려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주의깊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주자앙은 진지하게 물었다. ↙느는 전에 그의 몸을 조사해본 적이 있느냐?¬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앞가슴에 어린 아이의 손바닥만한 파랗고 작은 손자국 이 찍혀 있다는 것도 알겠군?¬ ↙그렇습니다.¬ ↙너는 그 손자국이 무엇인지 아느냐?¬ 전옥심은 고개를 저었다. 주자앙은 눈을 빛내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그것은 바로 고금제일의 장고이라는 만노사 최혼의 유령인의 흔적이 다.¬ 전옥심은 흠칫 놀랐다. ↙유령이늬 흔적이라고요?¬ ↙그렇다. 최혼의 유령인에 격중당하면 그런 자국이 생기지. 그 괴인은 유령인에 격중당해 심맥을 크게 다친 것이다. 그런데다 얼굴가죽이 벗 겨질 때 청난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결국 미쳐 버린 것이지...... 쿨 룩...... 이젠 기침이 조금씩 멎는군.¬ 주자앙은 잠시 숨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최혼이 직접 손을 쓸 정도라면 괴인의 정체가 필시 범상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더욱 조사를 한 끝에 다른 한가지 사실을 알 게 되었다. 그것은 괴인의 발가락에 관한 것이지.¬ ↙발가락이라요?¬ 전옥심은 문득 괴인의 발가락이 모두 가짜 발가락이었음을 기억해 내고 눈을 빛냈다. ↙괴인의 발가락은 모두 상아로 만든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괴인은 발 가락이 없 셈이지. 나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고심한 끝에 결국 알아 내고야 말았다. 괴인의 발가락이 업어진 것은 그가 스스로 자신의 발가 락을 잘라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괴인이 스스로 발가락을 잘랐다고요?¬ ↙그렇다.¬ ↙그가 무엇때문에 그런 짓을 했읍니까?¬ ↙그것은 천하에서 가장 신기한 한 가지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그게 무엇입니까?¬ 주자앙은 홀연 음성에 힘을 주었다. ↙그것은 하나의 보법이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으며서도 천하의 모 든 무공을 피해낼 수 있는 ! 그 보법은 발바닥을 이용


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신체의 다른 부위는 제외하고 오직 발바닥 만을 사용하지. 그래서 익히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특히 발가락이 크게 방해가 되지. 그래서 그는 자신으 발가락을 잘라 버린 후 그 보법을 완 성한 다음 다시 가짜 발가락을 끼운 것이다.¬ 전옥심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보법이 있읍니까?¬ 주자앙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에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이다.¬ 전옥심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주자앙의 눈에 기이한 빛이 일렁거렸다. 그는 잠시 침음하다가 입을 열 었다. ↙바로 부동신다. 그것을 익힌 사람은 천하에 단 한사람 밖에는 없지 .¬ 전옥심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렸다.

그는 가만히 주자앙을 바라보았다. 주자앙은 외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주장은 낮게 소곤거렸다. ↙괴인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앙은 나직하게 끄덕였다. ↙그러면 됐다......¬ 동시에 그의 몸이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전옥시믄 급히 그를 부축했다. 주자앙의 얼굴은 창백해질대로 창백해 백지장같았다. 그리고 입과 코에서는 검붉은 핏덩어리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최무쌍의 유성검흔에 의한 상처가 도질대로 도진 것이다. 전옥심은 그의 몸을 안아들고 그를 내려다 보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부......¬ 주자앙은 피를 한사발이나 토해내다가 힘없이 눈을 떴다. ↙나...... 나를 사부라고 불렀느냐?¬ ↙그렇습니다.¬ 주자앙은 희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온하하게 웃었다. ↙내 마지막 부탁을....... 드....... 들어 주겠느냐?¬ 전옥심은 탄식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십시오.¬ 주자앙의 입에서는 거의 꺼질듯한 미약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 앞으로는 자주 웃어라.....¬ 주자앙은 힘겹게 소곤거렸다. ↙네...... 네 무공은 이미 천하제일이다. 하..... 하지만 성격이 너무 우울한게 흠이지.....¬ 전옥심은 그를 바라보며 억지로 웃었다. ↙알겠읍니다.¬ 주자앙은 그 음을 바라보다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 그렇지..... 그렇게 웃어야 한.....¬ 그는 말을 맺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허나 그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전옥심은 싸늘히 식어가는 그의 몸을 안아 든 채 가만히 있었다. 천기수사 주자앙! 천하제일 두뇌를 가졌으면서도 평생을 불운과 고독속에 살다가 간 희 대의 천재! 생각하면 그의 일생은 파란만장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처음 괴노인을 만난 순간부터 그는 가시밭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 그 후 고자군의 배신과 십자맹과의 처절한 혈투로 그의 전신은 상하 지 않은 곳이 없고 만보차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 조차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허나 그는 단 한 번도 웃음을 잃거나 실망에 빠져 본 적이 없었다. 항 상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띄고, 험난한 인생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단신으로 고금최강의 집단, 십자맹과 대항하기 위해서 기재를 찾아 헤 맸던 그. 이제 필생의 소망인 십자맹 퇴치가 이루어지려는 순간에 그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버렸다. 나 비록 그느 사라졌지만 그의 뜨거운 마음은 전옥심을 통해서 영원히 살아있게 될 것이다.

헌데 전옥심이 그의 시신을 잡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였다. 스윽! 무언가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석실로 뛰어들어왔다. 동시에, 파앗! 석실을 간신히 밝혀주던 촛불이 갑자기 꺼지며 주위가 칠흑같은 어둠에 잠겨 버렸다. 전옥심은 흠칫 놀라 주자앙의 시신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몸을 굳혔다. 촛불이 꺼지자 주위는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이 되 어 버렸다. 미치 태초의 혼돈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잡 을 수 없는 어둠인 것이다. 그때 문득 전옥심은 어둠속에서 기이한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피비린내였다. 그의 후각은 남달리 예민했다. 피비린내는 물론 주자앙이 죽기전에 토 해낸 핏덩어리에서 나는 것이었다. 허나 어딘지 모르게 약간 이상했다. 그의 코를 찌르는 비린내는 아주 강렬한 것이었다. 비단 강렬할 뿐만 아니라 점점 지독해져서 나중에는 온 석실이 피비린내로 가득 차 버렸 다. 피비린내는 사방에서 나는 것 같았다. 마치 온 동굴이 피비린내속에 잠 겨 버린듯한 이 지독한 피비린내가 단지 주자앙이 뱉어낸 핏덩어리에서 만 나는 것일까? 전옥심은 무의식중에 몸을 약간 움직였다. 바로 그때였다. 파앗! 소리도 없었다. 다지 무언가 화끈한 것이 였다고 생각한 순간 전옥심은 한 줄기의 거 의 느낄 수 없는 미약한 냉기가 자신의 허리춤을 향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검기였다. 전옥심은 비록 볼 수는 없어도 느낄 수는 있었다. 허나 그가 느끼고 몸을 날려 피하려 하는 순간 검기는 이미 그의 허리 를 베고 지나가 버렸다. 팟! 옆구리가 쭈욱 찢어지며 선혈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전옥심은 감히 신음을 내지 못했다. 상대의 검법은 그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전옥심은 이토록 바르고


정확할 뿐만 아니라 무시무시한 검기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전옥심은 비록 상대를 보지 못했지만 자신이 일생일대의 무서운 적수를 만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상대는 철저히 어둠속에 모을 감추고 있었다. 비단 몸을 감추었을 뿐만 아니라 호흡을 멈추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체내의 온기마저 감춰버렸다. 이것은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옥심은 과거 실명했던 적이 있었다.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후각과 청각이 예민했다. 헌데 그런 그로서도 상대가 어디 있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어둠속에서는 먼저 종적을 발각당하는 쪽이 치명적으로 불리하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조금전 상대의 일검으로 보아 그의 무공은 전옥심 에 조금도 못지 않았다. 전옥심은 어둠속에 우뚝 선 채 미동도 하지 >沮 허리가 시큰거리며 계속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나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상대 또한 일검을 격중시킨 후 더이상 공격하지 않고 숨을 죽인 채 숨 어 있었다. 죽음같은 침묵이 장내를 감쌌다. 누구도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전옥심의 허리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이 그의 옷을 흠뻑 적시 고 다시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또옥! 그 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않만큼 미약한 것이었다. 허나 그 순간, 파앗! 다시 어둠속에서 소리도 없이 검광이 불을 토했다. 전옥심은 선혈이 땅에 떨어질 때 이미 몸을 옆으로 피하고 있었다. 헌 데도 검광은 정확히 그의 목덜미를 향해서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 속도의 가공함과 악랄하리만큼 정확한 검세는 정녕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전옥심은 찰나적인 순간에 목을 옆으로 두 치쯤 이동시켰다. 그의 반사신경은 이미 천하제일로 공인된 터라 그 살인적이 검광을 충 분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비록 검광에 목덜미를 찔리는 것은 면했지만 검날이 목에 스쳐서 목에서도 디시 핏줄기가 훌러내리기 시작했다. 전옥심은 그 와중에도 몸을 다른 곳으로 소리없이 이동시켰다. 암습자는 일거믈 날린 후 다시 손을 멈추고 잠적해 있었다. 전옥심 또 한 미동도 않은 채 상대의 행방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허나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은 역시 그였다. 그의 목과 허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이 그의 행방을 상대에게 정


확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지혈을 해도 핏방울은 계속 떨어져 내렸 다. 전옥심은 이마에 자신도 모르게 땀방울이 맺혔다. 또옥! 다시 그의 목에서 핏방훌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읏! 예외없이 어둠속에서 불쑥 검날이 그의 몸을 향해 쪼개져왔다. 전옥심은 이미 몸을 구르며 다른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허나 이번에는 그의 어깨쪽에서 다시 핏줄기가 뿜어졌다. 분명 완전히 피한 것 같은데도 상대의 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의 몸을 격중시키는 것이다. 전옥심이 이미 감각도를 완성시킨 초인의 몸임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실 로 가공스러운 일이었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전옥심이 상대의 검에 쓰 러진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했다. 전옥심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그는 허리춤에서 철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주위가 워낙 조용했던터러 검이 뽑혀지는 소리가 석실을 요란하게 뒤흔 들었다. 쉬익! 다시 예의 살인검광이 그의 몸을 향해 쏘아져 왔다. 전옥심은 피하지 않고 철검으로 쏘아져 오는 검광을 향해 마주쳐갔다. 차창! 불꽃이 튀기며 그의 철검으로 거의 정확하게 상대의 검을 막아 버렸다. 거의라고 한 것은 그 사이에 전옥심의 몸에 다시 하나의 핏줄기가 그어 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어둠 속에서 상대의 불의의 일검을 완전하게 막 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상대는 전옥심이 설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그의 검 을 막아낼 줄은 몰랐던지라 흠칫하는 기색을 떠올렸다. 그 기척은 극히 미약했으나 전옥심은 놓치지 않고 그쪽을 향해 검을 찔 러갔다. 쐐액! 무시무시한 검기가 피어 올랐다. 허나 철검은 텅빈 허공만을 찔렀을 뿐이었다. 그 대신 공을 찔러 미 처 중심을 잡지못한 그이 등 뒤로 섬칫한 살기가 다시 다가왔다. 전옥심은 이번에도 피하지 않고 번개같이 몸을 돌리며 선전건곤을 펼쳤 다. 챙! 요란한 쇠소리와 함께 다시 전옥심의 허리에 핏줄기가 그어졌다. 허나 전옥심은 다시 또 상대의 살인적이 일검을 아낸 것이다. 이것은 얼핏 무모한 방법같지만 이 상태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 라고 할 수 있었다. 어둠속에서 상대의 거밍 날아오는 방향을 정확히 예흑하고 완벽하게 막 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피하기만 해서는 도


저히 승산이 없었다. 두 번의 공격이 거푸 막히게 되자 상대도 신중을 기하는 듯 섣불리 공 격을 해오지 않았다. 전옥심은 검을 든 채 온 전신의 신경을 집중시켰다. 여전히 상대가 어 디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이제 피비린내는 더욱 짙어졌다. 피비린내는 전옥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냄새와 어우러져 진하게 코 를 찔렀다. 그때 문득 전옥심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냄새는 약간 신선한 것이었다. 하면서도 느끼하거나 비리지는 않았다. 허나 그전부터 풍기던 피비린내는 약간 달랐다. 그것은 시체가 썩는 듯한 느끼한 악취를 담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혈해 속에 빠졌을 때는 나는 듯한 그런 냄새였다. 전옥심은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떠올라 몸을 움직여 보았다. 스읏! 예의 섬칫한 살인검광이 느닷없이 그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전옥심은 번개같이 철검을 들어 그 검광을 막아냈다. 찡! 검광은 간신히 막아냈으나 그의 몸에서 다시 핏줄기 하나가 새로 그어 졌다. 허나 그 순간 전옥심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알아냈다. (과연 그렇군.) 전옥심은 눈을 빛내며 몸을 두 장쯤 이동했다. 팟! 어느 사이엔가 살인검광은 그의 눈앞에 불쑥 나타나 머리를 향해 다가 오고 있었. 전옥심은 조금도 물러서거나 피하지 않고 오히려 부 분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는 전력을 다해 철검을 그 부분을 향해 횡으 로 휘둘렀다. 번──쩍! 어둠이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며 전옥심의 이마위에 있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살인검광에 라져 나갔다. 허나 그 순간 전옥심은 자신이 휘두른 철검에 무언가가 베어지는 듯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크윽!¬ 쥐어짜는 듯한 미약한 신음이 울리며 어둠속에서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 어졌다.


쿵! 더욱 진한 피비린내가 화악 전옥심의 코를 찔렀다. ↙크으으......¬ 상대는 어둠속에서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을 토하며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전옥심은 천천히 화선지를 꺼내 불을 켰다. -----------------------------------------------------------------제 11 장 영 원 한 잠 주위가 환하게 밝아오며 장내의 광경이 드러났다. 전옥심의 전신은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 없었다. 특히 허리와 목덜 미에서 제법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흑의는 여기저기가 찢어져 혈흔이 비치고 있었고 머리는 헝클어져 조금 전의 격전이 얼마나 흉험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실로 전옥 심으로서는 드물게 겪어보는 힘든 싸움이었다. 그의 앞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주위는 온통 혈해였다. 그의 가슴은 쩌억 갈라져 내장이 거의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크으으.....¬ 그는 미약하게 신음을 토하며 몸을 뒤척거렸다. 그때마다 그의 가슴에 서 내장이 조금식 더 삐져나오고 있었다. 전옥심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고 입으로는 피를 콸콸 흘리고 있었다. 허나 전옥심은 그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전옥심의 눈이 아주 우울해졌다. ↙당신이었군, 좌백!¬ 상대는 피를 토하다가 흐릿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은 예전처럼 밝고 빛나는 눈이 아니었다. 탁할대로 탁하고 거의 죽어있는 듯한 눈이었다. 허나 흐릿하게 꺼져가는 그의 눈에서는 조금 씩 예전의 발고 빛나던 눈빛이 되살아 나고 있었다. ↙과..... 과연 전형답군......¬ 그의 음성은 거의 꺼질 듯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전옥심은 그가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알고 마음이 어두워졌다.


↙당신이 펼쳤던 것은 혹시 악마의 살인술이라는 그 흑옥마예가 아니오 ?¬ 좌백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옥심은 그를 내려다보다가 무겁게 탄식을 했다. ↙흑옥마예는 인성을 말살하고 혼백을 앗아가는 것인데 그것을 익히다 니..... 그토록 내가 미웠소?¬ 좌백으니 눈은 거의 감길 듯 했다. 허나 처음처럼 죽어버린 눈이 아니라 조금씩 예전의 화산고학의 눈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생명의 빛이 꺼져감을 따라 그의 몸과 영혼을 지배 했던 흑옥마예의 힘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다...... 당신이 미워서가 아니었소.¬ 좌백은 입으로 피를 쏟으면서도 중얼거렸다. ↙다...... 단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한 번은 당신을 꺾고 싶었을 뿐이오...... 악마에게 혼을 팔아서라도...... 당신을 이겨보고 싶었소 .¬ 전옥심은 준수한 용모로 여인들의 방심을 들끊게 하고, 또 한때는 천하 제일의 기재로 불리우며 인의 부러움과 감탄을 받았던 그의 처참한 말로에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좌백은 그를 올려보며 물었다. ↙어..... 어떻게 내 종적을 알아냈소?¬ 전옥심은 그를 내려다보다가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좌형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이었소.¬ 좌백은 흠칫했다. ↙냄새라니.....¬ 전옥심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처음 좌형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 진한 피비린내가 났었소. 나는 처음 에는 그것이 주자앙의 몸에서 나는 것인줄 알았소. 헌데 내 몸에도 피 가 흘러 냄새가 나자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소. 내 몸의 피내음 과 처음의 피비린내가 약간 달랐던 것이오. 굳이 말하자면 주자앙과 내


몸에서 나는 것은 갓 흘러내린 신선한 피였고 처음에 났던 피비린내는 오되어 썩어버린 듯한 것이었소. 그래서 나는 그 피비린내가 당신의 몸에서 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소.¬ 두 개의 서로 다른 피냄새를 구별한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전옥심의 후각이 남들보다 몇 배 뛰어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불가능했 으리라. 전옥심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이것을 확인해 보기 위해 일부러 몸을 움직여 보았소. 당신이 나를 공격했을 때 나는 내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소. 왜냐하면 당 신이 내게 덮쳐왔을 때 보통 때보다 조금 더 진한 피비린내가 느껴져 왔기 때문이오. 그래서 나 한 번 더 몸을 움직인 후 어둠 속에서 조 금 더 진한 피비린내가 나는 곳을 향해 검을 휘두른 것이오.¬ 좌백은 듣고 있다가 힘없이 웃었다. ↙흐...... 흑옥마예를 익히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죽였소. 그때 아마 내 몸에 그 피냄새가 밴 모양이오. 허나 나는 내 몸에서 그런 냄새가 난다는 것을 몰랐소. 그 냄새 대문에 패하다니..... 이것이 바로 인과 응보이겠군.¬ 그의 눈빛이 갑자기 밝아졌다. 전옥심은 이것이 목숨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 빛을 발하는 회광반조의 현상임을 알고 탄식을 했다. 좌백은 약간 또렷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전형은 내가 꼭 사귀어 보고 싶었던 사람이오. 나를 친구로 생각해 주겠소?¬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벌써 오래 전부터 전형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소.¬ 좌백은 눈을 빛냈다.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 좌백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다가 그의 눈에서 급격히 빛이 꺼져갔다. ↙저..... 전형.....¬


↙말하시오.¬ 좌백은 거의 사그러져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 육덕명을 조심하시오. 그는 당신을 노리고 있.......¬ 그의 고개가 푹 꺾였다. 전옥심은 잠시 그의 몸을 안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별다른 감회가 일어 나지 않다. 이곳, 애뇌산의 이름모를 고동에서 과거의 천하제일기재였던 천기수사 주자앙과 현재의 천하제일기재였던 유성검 좌백이 쓰러진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에 충실했던 사람들이었다. 각자를 위해서 자신의 몸과 영혼을 바쳤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목적한 바를 얻었고 다른 한 사람은 얻지 못했다. 허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최선을 다했다는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일생은 보람있다고 말할수 있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아무런 여한이나 후회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전옥은 두 사람의 시체를 석실의 한 가운데 모아 놓았다. 잠시 그들 의 시신을 내려다 보다가 화섭자의 불을 끄고 그는 조용히 석실을 벗어 났다. 전옥심은 컴컴한 동굴을 따라 걸었다. 급하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 지 않았다. 꼬부라진 곳을 지나자 점점 밝아져 오며 동굴의 뮌 보였다. 그는 천천히 동굴을 벗어났다. 주위는 아주 조용했다. 헌데 전옥심은 동굴을 나오자마자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단단하게 동여맸다. 양쪽 소매도 펄럭거리지 않게 꽉 조였 고 발목도 간편하게 조여매 움직이는데 걸리적거리지 않게 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허리춤에서 철검을 뽑아 들었다. 동굴 앞의 공지는 반경이 오 장쯤 되었다. 공지의 서쪽에는 망혼유곡으 로 빠져나가는 좁다란 소로가 보였다. 이곳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는 대 략 십 여장쯤 되었다. 평상시라면 한 번 몸을 날림으로써 충분히 날아갈 수 있는 거리였다. 허나 전옥심은 몸을 날리지 않고 철검을 손에 든 채 한 걸음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그가 세 걸음째 걸을 때였다. 파악! 그의 등 뒤쪽 땅속에서 갑자기 한 인영이 번개같이 튀어나오며 그에게 덮쳐왔다. 인영의 손에서는 시퍼런 빛을 발하는 독도가 쥐어져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그대로 절명해 버리고 마는 극독이 묻어 있음에 틀림없었다.


독도가 닿기도 전에 전옥심의 몸이 번개같이 회전을 했다. 쫘앙! 비명도 없었다. 도와 몸뚱이가 동시에 전옥심의 철검에 동강이 나버렸다. 피분수가 뿜 어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천하제일의 검마와 최고의 살수, 백팔귀와의 처절한 대결전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전옥심의 몸이 뒤로 돌려진 순간에 다시 양쪽 땅속에서 두 명의 흑의인 이 튀어나왔다. 그들의 전신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가 시커먼 흑포로 두덮여 있어 흡사 무덤 속에서 갓 튀어나온 귀신 같았다. 전옥심은 돌리던 몸 그대로 철검을 휘둘렀다. 차창! 피비가 튀기며 두 명의 흑의인은 허리가 양단되어 쓰러졌다. 그들은 허리가 동강나는 순간에도 비명을 지를지 않고 도를 찔러댔다. 전옥심은 슬쩍 리를 돌려 피하며 다시 한 걸음 전진했다. 파파팍! 이번에는 땅밑과 허공에서 동시에 네 명의 흑의인이 덤벼들었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게 불쑥불쑥 나타나 그에게 덤벼드는 흑의 인들의 살수는 악독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은 조금 도 돌보지 않고 오직 전옥심을 격살하기 위해 덮쳐왔다. 전옥심은 무심한 얼굴로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철검을 종횡으로 그어 댔다. 파악! 극독을 묻힌 시퍼런 독도가 조각이 나 날아가고 네 명의 흑의인들은 머 리끝부터 사타구니까지 잘려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허나 그들의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다시 네 명의 흑의인이 땅속에서 솟아나왔다. 전옥심은 종횡으로 그었던 철검을 유연하게 내리며 바닥을 향해 휘둘렀다. 차차찯! 파편이 우박처럼 떨어지며 피보라가 일어났다. 전옥심은 다시 한 걸음을 전진했다. 보보마다 살기가 중첩했고 사방에 독도가 난비했다. 별로 크지도 않는 공지에 이토록 많은 흑의인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 거 의 불가사의하게 여겨졌다. 전옥심의 몸이 한 걸음 전진할 때마다 흑의인들의 살수는 끊임없이 계 속되었다. 전옥심이 밟고 있는 것이 땅이 아니라 흑의인들의 잘려진 몸뚱이와 시 뻘건 핏물이었다. 주위는 아주 조용했다. 단지 도가 잘려지는 소리와 사람이 쓰러지는 음향만이 허공에 공허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전옥심은 철검을 종횡으로 그어대며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고 있었다. 사람을 베고 있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는 불을 보고 덤벼드는 불


나방을 쫓고는 듯한 느낌이었다. 땅에서 하늘에서 덤벼드는 흑의인들을 향해 거의 무심하게 철검을 휘두 르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그의 전신은 흑의인들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선혈로 시뻘겋게 젖 어 있었고 온 몸은 땀으로 목욕을 한 듯 했다. 좌백의 검에 당했던 상 처가 다시 터지며 그의 몸에서도 선혈이 흘러나왔다. 허나 걸음을 멈추거나 손을 늦추지는 않았다. 쭈아악! 다시 다섯 명의 흑의인이 그의 일검에 양단되어 쓰러졌다. 그 순간 전옥심의 이마에서 흐르던 땀방울 하나가 그의 눈 속으로 들어 갔다. 전옥심은 순간적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그 찰나에 흑의인 여덟명이 한 꺼번에 덤벼들었다. 전옥심은 반사적으로 철검을 열십자모양으로 그어 댔다. 일곱 명이 피비를 뿌리며 사라졌다. 허나 마지막 한 흑의인은 그의 검세를 피해 바짝 접근하며 독도를 휘둘 렀다. 전옥심은 몸을 뒤로 활처럼 굽다. 쐐액! 독도가 그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며 가슴이 뜨끔해 왔다. 전옥심은 뒤로 굽혔던 몸을 벌떡 일으키며 흑의인에게 철검을 휘둘렀다 . 비명도 없이 흑의인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허 또한

자의

독도에

시커먼 피가 흘러 내고 있었다. 전옥심은 서슴없이 독도에 베어진 가슴 부위의 살을 한움큼 잘라냈다. 이미 검게 변한 살덩어리가 어린아이 주먹만큼 잘라졌다. 그제야 다시 시뻘건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독도에서 흘러나오는 극도이 그의 심장으 로 침범했을 것이다. 허나 그가 약간 지체하고 있는 동안 다시 여덟 명의 흑의인들이 노도처 럼 밀려들어왔다. 전옥심은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빙글 돌리면서 선전 건곤을 연속 두 번 펼쳐내었다. 파──앗! 여덟 명의 흑의인들이 한 순간에 열 여섯 개의 몸뚱이가 되어 나뒹굴었 다. 허나 이번에도 전옥심의 왼쪽 어깨에 독도가 스쳤다. 그는 조금도 머뭇 거리지 않고 어깨의 살을 한 덩어리 잘라 버렸다. 다시 다섯 걸음을 걷는 동안에 스물 네 명의 흑의인들이 쓰러졌고 전옥 심은 세 번이나 자신의 살덩어리를 잘라버려야만 했다. 이제 그의 몸은 흑의인의 피뿐만 아니라 자신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

베어져


다. 흑의인들은 끝없이 몰려오는 것 같았고 소로로 향하는 길은 한없이 멀 게만 느껴졌다. 전옥심은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네 개의 칼이 땅속에서 그의 발다닥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그는 슬쩍 발의 위치를 바꾸어 철검을 땅속에 쑤셔넣고 휘저었다. 땅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 순간 허공에서 네 명의 흑의인들이 떨어져 내려왔다. 전옥심은 철검을 땅에 꽂은 채로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물구나무를 섰 다. 흑의인들의 독도가 아아슬하게 그의 몸을 스치며 흑의가 쭈욱 찢겨 나갔다. 허나 이미 전옥심의 철검은 땅에서 뽑혀지며 그들의 몸을 가르 고 있었다.

이제 공지의 끝과는 단지 네 걸음이 남았을 뿐이었다. 허나 그 길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전옥심의 왼발이 다시 한 걸음 전진했을 때 여덟개의 시퍼런 칼날이 그 의 몸을 짓쳐 들어왔다. 전옥심은 내밀었던 왼 발을 축으로 하여 몸을 빙들 돌렸다. 피비가 뿌려지며 여덟 개의 수급이 날아갔다. 허나 그의 몸이 미처 고정되기도 전에 다시 두 개의 독도가 섬칫한 빛 을 뿌리며 그의 앞뒤로 날아들었다. 전옥심은 돌리던 몸을 그대로 아래로 눕히며 철검을 앞뒤로 내저었다. 두 개의 목이 잘려져 나갔다. 동시에 전옥심의 팔뚝에도 검은 선이 그 어졌다. 전옥심은 서슴없이 팔뚝의 살을 한움큼 도려냈다. 그 와중에도 그의 몸은 다시 두 걸음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이제는 오직 한 걸음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한 걸으만 더 내딛게 되면 이 공전절후의 살인적인 살수를 피해 좁다란 소로로 들어설 수 있게 되 는 것이다. 허나 그 순가나, 우우우웅──! 하늘이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무려 열 여섯 개의 독도가 허공과 땅에 서 덤벼들었다. 사방이 온통 칼나로 뒤덮인 것 같았다. 전옥심은 이를 악물고 몸을 돌리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쭈아악──! 시퍼런 검기가 하늘높이 솟구치며 피비를 불렀다. 시커멓게 몰려들던 흑의인의 공세가 씻은 듯이 사라지며 주위가 다시 드러났다. 전옥심은 몸을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 독도 하나가 시퍼런 빛을 뿌리며 꽂혀 있었다. 허나 열 여섯 명의 흑읭린은 그 댓가로 목숨을 내놓아야만 했다. 전옥심은 휘청이던 몸을 멈춰 세우며 독도를 뽑았다.


파앗! 검은 피가 쭈욱 솟구쳐 나오며 독도가 뽑혔다. 전옥심은 흑의를 찢고 옆구리를 들여다 보았다. 옆구리에는 검은 구멍이 뚫렸고 주위는 벌써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었다 . 전옥심은 철검을 들고 옆구리를 도려재기 시작했다. 이번의 독도는 상당히 깊이 박혀 있어 거의 발만큼 살덩이를 오려내 서야 빨간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전옥심의 안색은 아주 창백해졌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그를 보고 예전의 준수했던 모습을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검은 머리는 피에 물들어 시뻘겋게 변해 있었고 흑는 이미 혈의가 된 지 오래였다. 게다가 독도에 맞은 곳을 도려낸 상처가 일곱 군데에 달했고 자잘한 상 처는 셀 수도 없었다. 특히 옆구리의 상처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가 설 수 있다는 것만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의 등뒤에는 한편의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 백명이 넘는 살수들은 시체의 산을 이루며 혈해 속에 잠겨 있었다. 조금전의 그 끔찍한 혈투는 전옥심으로서도 무림에 출도한 이후 처음 당해보는 흉허만 것이었다. 이토록 좁은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 살수들이 집단적으로 살해당했다는 것도 무림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리라. 전옥심은 억지로 몸을 세운 후 심호흡을 하고 다시 전면을 바라보았다. 공지는 끝나고 망혼유곡으로 향하는 좁다란 소로가 이어졌다. 소로는 한 사람이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만큼 좁디 좁았다. 그리고 소로의 한 가운데는 한 사람이 우뚝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가 서있자 소로는 꽉 막혀 버려 아무도 나아갈 수 없었다. 소로 밖 으로 약간씩 흘러 들어노는 햇살은 눈부셨건만 그의 흑의는 어둡고 침 침했다. 흑의인은 혈해 속을 힘없이 걸어오고 있는 전옥심을 싸늘한 눈으로 보 고 있었다. 그는 키가 다른 사람보다 머리하는 컸고 넓은 어개와 긴 팔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돌부처를 보듯 무표정했고 눈은 독사의 그것보다도 더 욱 날카로웠다. 허나 전옥심의 시선은 그의 얼굴이 아니라 손을 향했다. 그의 손가락은 무척 길고도 가느다랬다. 허나 약해보이지는 않았다. 오 히려 왠지 보는 이에게 섬칫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가운데 손가락에는 시뻘건 혈주 모양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전옥심은 그것을 보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당신이 흑응방주요?¬ 그의 음성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지치고 피곤한 것이었다.


흑의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리고 탈혼검 최무쌍이도 하지.¬ 그의 음성은 무뚝뚝 했지만 사람의 마으에 소름을 돋게 하는 것이었다. 십자맹의 혈자호, 천하제일의 살수집단인 흑응방의 방주, 그리고 전대 의 천하제일 마검. 그들은 모두 한 사람이었다. 바로 백검회이 배반자였던 탈혼검 최무쌍 이었던 것이다. 최무쌍은 혈인이 되어 있는 전옥심의 몸을 싸늘한 눈으로 쭈욱 훑어보 았다. ↙백팔귀대를 단신으로 격파하다니 놀랍군.¬ 전옥심은 사실 제대로서 있기 조차 힘들 정도로 탈진한 상태였다. 허나 그는 담담하게 물었다. ↙육덕명은 어디 있소?¬ 최무쌍의 입에서 문득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좌백이 죽기전에 입을 연 모양이군. 그는 남궁검문으로 갔다.¬ 전옥심은 눈을 빛냈다. 최무쌍은 말을 계속했다. ↙이미 무적군자검과 팔대명왕들이 백검회의 생존자들과 함께 남궁검문 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허나 그들이 남궁검문에 도착한 순간이 바로 그들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물론 너의 제삿날은 오늘이다.¬ 전옥심은 입을 다문 채 그를 주시했다. 최무쌍은 냉랭하게 웃었다. ↙주자앙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몸이 그렇게 되고서도 우리의 눈을 피해 너같은 고수를 길러냈다 경탄하지 않을 수 없지. 그래서 그를 즉사시키지 않았다.¬ 그는 싸늘하게 말했다. ↙서서히 고통에 신음하며 죽을 수 있도록 특별히 자비를 베풀었다.¬ 그의 말은 전옥심의 마음을 송곳처럼 것이었다.허나 의외로 전옥심의 얼굴에는 서서히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최무싸은 그의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너는 왜 웃는 것이냐?¬ 전옥심은 미소를 거두지 않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자앙은 죽기전에 나보고 자주 웃으라고 했소.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었는데 이제 그것을 알 것 같소.¬ 최무쌍은 시 물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전옥심은 담담히 말했다. ↙그는 당신이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오. 그는 내가 자칫 분노하여 이성을 잃게 될까보 그것을 억제시키려고 했 던 것이오.¬ 최무쌍의 얼굴에 서서히 살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흐흐...... 과연 주자앙답군. 허나 그런 것도 모두 공염불이 될 것이 다.¬ 그 순간 전옥심은 그의 등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슬쩍 돌아보았다. 지옥도를 이루며 쓰러져 있던 시체더미에서 한 인물이 일어나 그에게로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그의 가슴은 쩌억 갈라졌는데도 이상하게도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흑의인은 손에 독도를 든 채 섬칫한 안광을 뿌리 전옥심의 뒤로 다가 와서 우뚝 섰다. 최무쌍이 미소지었다. ↙흐흐....... 놀랍느냐? 그는 백팔귀대의 대장인 귀후 사마흔이다. 그 는 금마지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전신이 두 조각으로 잘라지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금마지체란 금강불괴와 마찬가지로 전신을 도검불침의 강철과 은 신 체로 만드는 마도의 초절정마공이었다. 백 여년 동안 무림에는 금마지체를 이룬 인물이 없었는데 오늘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최무싸은 천천히 웃음을 거두었다. ↙너는 내가 본 중에서 최고의 고수다. 허나 그런 몸으로는 내 탈혼유


성과 사마흔의 귀령참홍을 막아낼 수 없다.¬ 그의 음성에는 강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이곳은 사람 하나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좁다란 협도였다. 헌데 앞뒤로 각기 두 절세고수가 전옥심을 막고 있는 것이다. 통로가 너무 좁고 위가 막혀 있기 때문에 몸을 솟구칠 수도 없고 달리 피할 수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앞뒤에서 검이 날아 들어온다면 도저히 막을 길이 없는 것 이다. 더구나 전옥심은 지금 서 있기 조차 힘든 상태였다. 제대로 검을 펼칠 지도 의문인데 두 절세고수의 합공을 막을 수가 있을까? 최무쌍은 검집에서 검을 빼들었다. 그의 검은 얇고도 가늘었다. 중앙에 시뻘건 혈서니 그어져 있어 마치 피를 갈구하듯 무시무시해 보였다. 등뒤에 서 있는 사마흔의 무표정한 얼굴에서도 서서히 살기가 솟아 올 랐다. 그는 독도를 들고 상단을 겨누었다. 그이 독도에서는 전과는 다른 기이 한 도광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도 제일의 도법이라는 귀령참혼도를 펼치기 우한 자세였다. 최무쌍은 반대로 천천히 검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죽기 전에 잘 보아두어라. 이것이 바로 탈혼유성이다.¬ 그의 늘어뜨린 검끝에서 서서히 검광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전옥심은 여전히 철섬을 허리에 꽂은 채 묵묵히 서 있었다. 어찌보면 자포자기한 모습같았다. 최무쌍과 사마흔의 눈에서 지독한 살광이 번뜩였다. 어느 한 순간, 파앗! 최무쌍의 검이 보잊도 않게 쳐들리며 돌연 별빛이 피어 올랐다. 동시에 허공에 손바닥만한 별 모양이 수십 수백개가 나타났다. 그것은 거의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늘에서 은하가 쏟아지듯 수백 개의 성흔은 폭포수처럼 전옥심의 전신을 향해 폭사되었다. 그와 같은 순간 사마흔의 독도서도 시퍼런 도광이 악마의 혓바닥처럼 전옥심의 등을 향해 쏘아져 갔다. 유성검광과 귀령도광은 섬전같이 전옥심의 몸을 갈라 버렸다. 아니 갈랐다고 생각할 순간이었다. 팔을 늘어뜨린 채 꼼짝도 않고 있던 전옥심의 오른 손이 거의 흔들리지 도 않게 움직였다. 그리고 피어오른 찬란한 검광 하나! .......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침묵만이 주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전옥심은 여전히 철검을 허리춤에 꽂고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는


조금도 몸을 움직인 것 같지 않았다. 허나 그의 가슴과 등에서는 다시 새로운 핏줄기가 뿜나옥 있었다. 최무쌍은 검을 앞으로 쭉 내민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전옥심의 등뒤에 있던 사마흔 역시 독도를 펼치던 자세 그대로 몸이 굳 어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거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문득, 사마흔의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것은 거의 느낄 수도 없을만큼 미약하다가 점점 세차게 흔들리기 시 작했다. 탕!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독도가 땅에 떨어졌다. 이어 그의 이마에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혈선은 이마를 타고 내려와 콧등의 지나 턱으로 향했다. 이어 목구명의 인후혈을 지나 아래로 쭈욱 그어져 내렸다. 혈선이 그의 몸을 완전히 그었다고 느껴질 순간, 털썩! 그의 몸은 두쪽이 나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진한 피비린 都. 놀랍게도 금강불괴에 버금간다는 마도의 전설적인 금마지체를 이룬 그 의 몸이 그대로 양분된 것이다. 최무쌍은 천천히 내밀었던 검을 거두었다. 그의 눈은 전옥심을 향하고 있었. 문득 생전 열릴 것 같지 않던 그의 입이 거의 느낄 수도 없을 만큼 조금 열렸다. ↙이것이 무슨 검초인가?¬ 전옥심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종리을지의 격수검형이오.¬ 최무쌍은 나직하게 되물었다. ↙종리을지의 격수검형이라고? 과연 그답군.....¬ 그의 말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이마에서 붉은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그의 얼 굴 전체로 확산되었다. 그러더 그는 마침내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신음도 없었다. 최무쌍은 눈을 뜬 채 싸늘히 식어갔다. 격수검형! 물은 아무리 미세한 틈 사이도 파고 든다. 또 격하게 흐르는 물은 천하의 무엇보다도 빨리 움지인다.


이처럼 아무리 미세한 틈도 파고 들고 한 번 펼쳐지면 천하의 무엇보다 도 빠른 것이 바로 격수검형이었다. 탈혼유성과 귀령참홍이 몸에 떨어질 순간 전옥심의 검은 두 검세의 거 의 알아챌 수 없는 미약한 틈을 노려 파고들어간 것이다. 격수검형의 또 하나의 특지은 단심혈한이나 우주만리붕같은 과도한 진 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때문에 전옥심은 거의 탈진상테에 이르렀으면서도 그들을 격살 수 가 있었다. 전옥심은 천천히 쓰러진 최무쌍의 몸을 넘어 소로를 벗어났다. 그의 걸음은 느릿느릿했고 아무런 힘이 없었다. 허나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터벅터벅 걸어 소로를 완전히 빠져나가자 몸을 돌려 자신이 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조금전의 그 끔찍해던 혈투가 떠올랐다. 가느다랗게 이어진 소로의 저쪽에는 오직 시체의 산과 피의 바다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전옥심에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준 사람, 주자앙이 잠들어 있 는 곳이기도 했다. 그는 그곳에서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있을까? 갑자기 전옥심은 이를 악물고 철검을 뽑아 휘둘렀다. 쫘아악! 계곡이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섬광이 이러나며 소로를 가리고 있던 두 벽과 그 사이에 솟은 바위들이 부서져 내렸다. 우르르르르릉──! 꽈꽈꽈꽈꽝!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며 주위가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먼지가 사라지자 소로는 보이지 않았다. 무너져 버린 돌덩이와 바위로 인해 이제 소로는 완전히 막혀버린 것이다. 이제는 천하의 어느 누구 이 뒤쪽에 작은 길이 있으며 그 길을 따라 가면 오장 크기의 공지가 나온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공지의 한 쪽에 뚫려 있는 작은 동굴과 그 속에 있는 석실을 절대로 발견하지 못 할 것이다. 그리고 설실 속의 시신도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처음으로 주자앙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편안하고 조용한 잠을 잘 수 있으리라! 전옥심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죽고 나서 어디에 묻힌들 상관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호화로운 관속이 건 초라하고 차디찬 동굴바닥이건 상관없다. 영원한 잠속으로 빠져들어간 그. 동굴이건 관속이건 그에겐 한줌의 부토같은 것이다. 어떻게 죽었건 어 디에 넘어졌건 상관말고 영원한 잠속에 빠져들면 되는 것이다.

전옥심은 망혼유곡을 벗어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활짝 갠 공기가 신선하고 맑은 날이었다.


아득히 멀리까지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주자앙이 간 곳 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제 12 장 잇 따 른 변 고 남궁검문은 강소성 금릉에 있다. 형산에서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강서성을 지나 안휘성을 거쳐 가는 길 이 가장 빠르다. 특히 장강을 따라가게 되면 길은 더욱 쉽게 된다.

강소성이 얼마 남지 않은 안휘성의 깊숙한 곳에 낭계가 있다. 낭계는 장강의 지류가 흐르는 곳으로 전형적인 강남지방의 풍경을 띄고 있었다. 종리을진을 비롯한 한떼의 인영이 이곳을 들어온 것은 오후의 햇살이 숨을 헐떡이며 서산으로 달음박질치고 있는 저녁 무렵이었다. 그들은 낭계에서는 가장 큰 객잔인 안락객점의 후원 전체를 빌려 투숙 을 했다. 전옥심은 떠나기 전 일주일 내에 이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만일 일주일 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게 되면 더 이상 그를 기다리지 말고 남궁검문 으로 쳐들어 가기로 한 것이다. ↙옥심은 과연 무사할까?¬ 호불귀는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중인들의 얼굴에도 무거운 빛이 떠올랐다. 허나 단 한 사람, 종리을진만은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중인들 중 전옥심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오직 그 뿐이었다. (고생은 하겠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종리을진은 전옥심보다도 오히려 이언년이 더 걱정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이언년은 형산에서 쓰러진 후 다시는 일어날 줄을 몰랐 다.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건만 좀처럼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들 그를 걱정했다. 특히 이비취와 제일비는 에게 붙어서 떠나지를 않았다. 전자방의 영사편강에 당한 상처는 물론 위중했다. 허나 그것도 대충 치 료가 되었는데도 그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큰일인데......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시다니.....¬ 제일비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침상에 죽은 듯 누워있는 이언년을 바 라보았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다른 상처가 있는 게 아닐까?¬ 그가 이비취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비취는 큰 눈에 시름이 가득했으나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진 않아요.¬ ↙그런데도 왜 못 일어나시는 것일까?¬ ↙아마 넘어지실 때 머리를 심하게 다치신 모양이예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틀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의식이 없으시다니.... ..¬ 제일비는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이비취 또한 울적한 기색이 되어 이언년의 옆에 꼭 붙어 앉았다. 중인들은 안타까웠지만 그가 빨리 깨어나기만을 바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허나 다음 날부터 닥쳐오는 무서운 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 지 못했다.

x

x

x

시체. 혀를 길게 내민 채 목을 대들보에 대롱대롱 매달고 있는 시체 하나. 중인들은 그 시체를 앞에 놓고 말을 잊어버렸다. 시체는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혀를 길게 내민 채 푸르뎅뎅한 얼굴로 늘 어져 있었다. 허나 아무리 안목이 는 사람도 이 시체가 눈을 까뒤집지 않고 혀를 내밀지도 않고 또 얼굴이 푸르뎅뎅하지 않더라도 결코 잘생긴 얼굴이라 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사실 이 시체는 살아생전 가장 못생긴 사람의 대명사와 같은 인물이었 다. 시체는 바로 금강야차였다. 그는 밤사 자살을 한 것이다. 금강야차의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그의 옆 방에 있던 금성위 였다. 해가 중턱에 걸려도 아무런 기척이 없길래 들어가 보았더니 금강 야차는 대들보에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대형이 모든 일을 용서했건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바보 같은 녀석!¬ 금성위는 평소의 해학넘치던 모습 답지 않게 눈가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는 금강야차와 가장 친했기 때문에 슬픔이 더욱 컸다. 금강야차는 형제들을 배반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한 것이 분명했다. 마음이 어리고 순박했던 그로서는 아무래도 자이 한 행동 을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항상 자신만만한 부동명황 이홍광 또한 얼굴에 처연한 빛이 떠올랐다. ↙내가 너무 그를 심하게 다루었던 것 같군. 그의 성격이 유약해서 이 런 결과를 예상했어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침묵을 지켰다. 금강야차가 자살을 한 것은 확실히 뜻밖이었다. 허나 이홍광의 말대로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중인들의 마음이 모두 더욱 무거워진 것만은 사실이 었다. 허나 그 와중에도 이비취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름을 억제할 수 없었다 . ── 과연 금강야차는 죄책감에 못이 자살을 한 것일까?

x

x

x

다음 날, 팔대명왕중의 세 사람이 그들을 찾아왔다. ↙이곳에들 있었군.¬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몸이 비쩍 마른 채 얼굴이 신경질적인 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은 팔대명왕 중에서 가장 짜증 잘 낸다는 군다리명왕 한무외였다. 그의 뒤에는 온화한 얼굴에 등이 커다란 도를 맨 청의노인과 말상을 한 중년인이 서 있었다. 청의노인은 눈빛이 남달리 서늘하고 용모가 수려했다. 그가 바로 팔대 명왕 중에서 서열이 두번째인 항세삼존이었다. 말상의 중년인은 전옥심의 앞에 나타난 적이 있었던 마두관음이었다. 중인들은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허나 그들도 금강야차가 자살했다는 말을 듣자 깜짝 놀랐다. ↙아


迷飴杉鳴? 그게 정말인가?¬ 군다리명왕 한무외는 위태로울 정도로 호리호리한 몸을 흔들며 눈을 부 릅떴다. 그와 평소에 가 친하고 가까운 예적금강이 입을 삐죽거렸다. ↙제길. 귀가 멀었나? 왜 한 번 말하면 못 알아듣나?¬ ↙아니 그가 왜 자살을 했단 말인가?¬ 예적금강은 툴툴거리면서도 사정 이야기를 자세히 해 주었다. 한무외는 더욱 놀랐다. ↙아니 치광이 그런 일을 했단 말인가? 믿을 수 없군. 그 순하디 순한 녀석이 감히 대형을 속이려 하다니......¬ 그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자살을 하다니... ...¬ 예적금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마디 하려고 했다. 이홍광은 그렇지 않아도 금강야차의 일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던 지라 화제가 자꾸 그쪽으로 돌아가자 얼굴에 않좋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예적금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일은 이제 더 이야기하지 않는게 좋겠다.¬ 예적금강은 그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하는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읍니다, 대형!¬ 허나 그는 여전히 시선을 한무외에게 고정시켰다. 그와 한무외는 남달리 친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났던 터라 반가움이 굉장히 컸다. 그래서 예적금강은 한무외의 어깨를 툭툭 치며 히죽 웃었 다. ↙그나저나 이 말라빠진 귀신아! 지금까지 어디 있었길래 소식도 없다 가 대형이 부르시니까 불쑥 얼굴을 내미나? 난 또 지옥에라도 끌려간 줄 알았지.¬ 한무외도 신경질적인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어디있긴..... 자네의 그 보기 해도 신물이 넘어오는 냄새를 피해


서 잠시 산좋고 물좋은 곳에 가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했지. 그러니 자 네느 되도록이면 내 옆에 얼씬거리지 말게. 냄새가 몸에 밴단 말일세. ¬ 예적금강은 더러운 얼굴을 콱 찌푸렸다. ↙이런 제기랄....... 내 몸에서 나는게 어째서 악취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옷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가 옷을 펄럭일 때마다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허나 예적금강은 아무 렇지도 않은 듯 오히려 얼굴에 자랑스러운 빛을 띄었다. ↙자 한번 맡아보게. 이 얼마나 향기롭고 우아한 냄새인가?¬ 그는 자신의 옷자락 중 가장 더러운 소매를 한무외의 코앞에 불쑥 내밀 었다. 그곳에서는 실로 듣도 보도 못한 악취가 풍겨오고 있었다. 한무외는 도저히 그 악취를 견디지 못하고 예적금강의 몸을 홱 떠다밀 렀다. ↙예끼...... 어서 저리 가게.....¬ 예적금강은 창졸지간에 그에게 밀려 바닥에 쓰러졌다. 헌데 이상하게도 바닥에 쓰러진 그는 일날 줄을 몰랐다. 한무외는 처음에는 그가 장난을 하는 줄 알고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엄살 그만 부리고 일어나게. 자꾸 그러면 진짜 화를 낼걸세.¬ 헌데 여전히 예적금강은 바닥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무능승은 누워있는 예적금강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함을 느낡 그의 몸을 흔들었다. ↙화자야. 그만 일어나라. 저러다가 저 신경질 많은 한가 녀석이 정말 로 화를 내겠다.¬ 헌데 그가 흔드는대로 예적금강의 머리가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무능승은 깜짝 놀라 그의 몸을 뒤집어 보았다. ↙아..... 주...... 죽었다......!¬ 그의 입에서 비명같은 외침이 흘러나왔다. 중인들은 깜짝 놀라 쓰러진 예적금강을 바라보았다. ↙으음.....¬


↙저...... 정말 죽었군......¬ 모두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한 눈에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예적금강은 입에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채 죽어 있는 것이다. 무능승은 멍하니 예적금강의 몸을 잡고 있다가 갑자기 사나운 눈초리로 한무외를 노려보았다. ↙한가야! 화자는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한 것인데 감히 공력을 일으켜 그를 죽이다니......¬ 한무외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나....... 나는 공력을 일으키지 않았네. 그냥 밀었을 뿐일세.¬ 무능승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어찌 화자가 피를 토하고 죽었단 말이냐?¬ ↙나...... 나도 모르는 일일세......¬ 무능승은 수상쩍다는 눈초리로 한무외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러지 않았다면 화자가 혼자 저절로 피를 토하고 죽었단 말이 냐?¬ 한무외의 얼굴은 진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그는 실로 이와같은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수십년만에 만난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손에 떠밀려 죽을 줄이야... ... 그의 머리는 너무도 큰 놀라움과 슬픔으로 어지럽혀져 아무런 생각 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반쯤 넋이 나간 듯 멍청해 있었다. ↙나..... 나는 정말 죽이지 않았어......¬ 그는 돌연 버럭 외침을 토하더니 무능승을 밀치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어어......?¬ 무능승이 비칠거릴 때 한무외의 비쩍 마르고 기다란 몸은 이미 중인들 의 눈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네째야!¬ 항세삼존이 깜짝 놀라 그를 불렀으나 그는 뒤로 돌아보지 않 . 무능승은 자리에서 비실비실 일어나며 볼멘 소리로 말했다. ↙놔두십시오. 미안하니까 괜히 저러는 겁니다. 어디가서 마음을 가라 앉히고 돌아오겠지요.¬ 항세삼존은 눈살을 찌푸리며 꾸짖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한 것이 아니냐? 그가 어찌 일부러 예적을 죽였겠느냐?¬ 무능승은 그렇지 않아도 홧김에 신경이 날카로운 그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참이라 고개를 푹 수그렸다. 항세삼존은 한마디 더 뭐하고 하려다가 그의 그런 맒응 보자 꾹 눌러 참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싸늘히 식어져 버린 예적금강의 시체를 바라 보았다. ↙그나저나 이상한 일이군. 그는 조금전 까지만 해도 갓 잡아온 생선처 럼 싱싱했거늘 어찌 갑자기 쓰러져 죽었단 말인가?¬ 중인들도 모두 그 점이 궁금했던 참인조 그의 시체를 자세히 살펴 보 았다. 허나 그의 몸은 조그마한 상처는 커녕 흠집조차 보이지 않았다. 중인들은 의혹에 가득 찼으나 별 수 없이 그의 시체를 객점의 한쪽 방 에 잘 보관했다. 헌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그 날 밤이 도록 밖으로 뛰쳐 나간 한무외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해가 넘어가자 항세삼존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 다. ↙안되겠군. 아무래도 이 신경질적이 녀석이 무슨 일을 저지른 모양인 데.....¬ 항세삼존은 걱정을 참지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중인들도 제기 흩어져 한무외를 찾기 우해서 낭계의 구석구석을 돌아 다녔다. 한무외의 시체를 발견한 사람은 금성위였다. 그는 낭계의 뒤쪽 동산에서 머리가 박살난 채 쓰러져 있었다. 주위는 숲이 우거졌는데 싸우거나 다툰 흔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오 른손은 자신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한무외같은 절정고수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남에게 살해당했다


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는 조금도 공력을 일으 키거나 무기를 빼들려고 한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상황으로 보아 그는 예적금강을 죽여다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 로 머리를 박살낸 것임에 틀림없었다. 중인들은 그의 시체를 자 놀라움보다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하룻 밤 사이에 천하를 떨쳐 울리던 팔대명왕중의 세 사람이 제각기 다 른 이유로 죽어버렸다. 두 사람은 자살을 했고 한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 넘어졌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무능승은 한무외의 시체앞에 주저앉은 채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너를 죽였구나..... 내가 너를 죽였어......¬ 그는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예적금강의 죽음으로 한무외를 가장 득달한 것이 자신이 아니었던가? 항세삼존 또한 한무외의 죽음을 보자 새삼 무능승이 원망스러웠다.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제 이, 제 삼의 한무외를 만들 수 없 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한무외의 시체를 들고 힘없이 돌아왔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그 들에게 다가옴을 감지한 것이다. 허나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짐작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일이 다음날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더욱더 짐 작하지 못했다.

x

x

x

두 사람은 우뚝 선 채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반쯤 끌어안 은 상태였다. 우측의 인물은 청의를 입은 온화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노인의 오른 손에는 커다란 칼이 쥐어져 있었다. 칼은 앞의 인물의 가 슴을 꿰뚫고 등뒤까지 삐져나와 있었다. 칼에 찔린 인물은 가사를 입은 중이었다. 중의 에는 사람의 이빨을 묶어 만든 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귀에는 인 골로 만든 귀걸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중은 칼에 꿰뚫린 채로 양손을 내밀어 청의노인의 늑골을 부여 잡고 있 었다. 얼마나 힘주어 잡았는지 그의 손은 청의노인의 옆구리에 거의 손목까지 박혀 있었다.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굳어 손목이 시뻘겋게 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에게 친근한 척 끌어안으며 각기 살수를 전개한 것 이다.


시체는 이미 싸늘하게 굳어져 있었고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그들의 옷깃을 적신채 말라붙어 있었다. 중인들은 두 사람의 시체를 보며 망연자실, 할 말을 잊었다. 청의노인은 항세삼존이었고 가사를 입은 중은 무능승이었다. 팔대명왕중의 두 사람이 서로 상잔을 한 것이다. 중인들은 경악보다는 의혹이 먼저 앞섰다. ── 대체 무엇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상대를 죽이게 되었을까? 더옥 이상한 것은 두 뻑汰 얼굴 표정이었다. 그들의 눈은 부릅떠진 채 경악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흡사 네가 나에게 손을 쓸 줄이야 하는 표정이었다. 우습게도 그들은 상대를 죽이기 직전까지 상대가 자신에게 손을 쓸 쭐 은 몰랐던 것이다. 허나 아무도 웃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중인의 마음은 무거운 납덩이를 달아놓은 듯 침통하기만 했다 . 항세삼존은 어 대해서 무능승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 었다. 그래서 그는 밤늦게 무능승을 찾아가서 그를 문책했던 것이 아닐까? 무능승 또한 한무외이 죽음 때문에 심한 자책감에 빠져 있다가 그의 꾸 중을 듣자 순간적으로 반발심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서로 상대로 죽이게 되었을 것이다. 허나 결정적인 순간 에 까지도 그들은 설마 상대가 자신을 죽이려 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 이것은 가장 그럴듯한 해석이었다. 허나 중인들의 가슴에 있는 의혹의 먹구름은 이런 해석으로도 완전히 가셔지질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던 것이다. 누구나가 그들의 죽음에 대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더욱 중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어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팔대명왕중의 다섯 사람이 이틀 동안에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인들이 마음속에 있는 먹구름만큼이나 분명한 것이었다.

그날 저녁, 다섯 명왕들을 낭계의 뒷산에 있는 양지바른 언덕에 함께 묻었다. 시체가 다섯 구나 되어 더 이상 보관하기가 힘이 들었던 것이다. 다섯 명왕을 묻고 돌아오는 중인들의 마음은 싸늘히 식어버린 시신들만 큼이나 차갑게 굳어 있었다. ↙종리대협!¬


객잔으로 돌아왔을 때 이비취가 아무도 모르게 슬쩍 종리을진을 불렀다 . ↙잠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종리을진은 그녀의 눈짓을 받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후, 모두들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신들의 방으로 갔을 때 종링르진 은 살짝 빠져나와 이비취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종리을진이 들어가자 이비취가 제일비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이비취는 큰 눈을 깜박거렸다. ↙긴히 의논드릴 것이 있어서요.¬ 종리을진은 그녀의 앞에 앉았다. 그는 이미 이 눈만 커다란 소녀에 대해서 전옥심에게서 들은 적이 있으 므로 그녀의 재치가 보통이 아님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그녀 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신을 부른 것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음을 짐작했다. 이비취는 지혜가 담긴 눈을 반짝였다. ↙종리대협께서는 지금까지 벌어졌던 일들이 어딘지 이상하다고 생각하 지 않으세요?¬ 종리을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실 그 일에 대해 서 너와 한 번 이야기 하고 싶었다. 네 의견은 어떻느냐?¬ 이비취는 야무지게 말했다. ↙이건 절대로 우연히 벌어진 상황이 아니요.¬ 종리을진은 그녀의 말시가 너무 단호하므로 눈을 번쩍 빛냈다. ↙네 말은 지금까지의 연이은 사건들이 자연발생적이지 않단 말이냐?¬ ↙그래요. 그렇지 않고서는 한 두명도 아니고 다섯 명씩이나 죽어갈리


가 없지요. 이 일에는 뭔가 색다른 것이 있어요.¬ ↙색다른 것이라니?¬ 이비취는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뭔가 작위적인 냄새가 겨요.¬ 종리을진은 잠시 침음하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느냐?¬ 이비취는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금강야차의 자살부터 뭔가 이상했어요. 그 분은 물론 자신의 행 동에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자살했다는 것은 무 심했어요. 그 분은 죽음이 두려워 도망을 가려고 했던 분인데 함부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수 있겠어요?¬ ↙그럼 네 말은 누군가가 그를 살해하고 자살을 위장했단 말이냐?¬ ↙그래요.¬ 종리을진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눈을 빛냈다. ↙네 말은 그럴 듯 하다만 어디까지만 가설에 불과하지 않느냐?¬ ↙물론 그 일 뿐이라면 저도 이상하게 생각은 했겠지만 종리대협에게 말씀드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헌데 더욱 이상한 것은 예적금강의 돌연 한 죽음이예요. 그 분은 무림의 절정고수이시니 갑자기 죽는다는 건 이 해가 되지 않아요.¬ 종리을진은 어느 새 그녀가 열 다섯도 안된 어린 소녀라는 것을 잊어버 리고 다시 물었다. ↙그럼 네게 무슨 다른 의견이라도 있단 말이냐?¬ 이비취는 큰 눈에 총명한 빛을 뿌리며 말했다. ↙그 분은 물론 건강한 분이니 급살을 맞거나 가밪기 병이 도졌을리는 없어요. 그렇다면 한 가지밖에 없지요.¬ ↙그게 무엇이냐?¬


↙무공을 익힌 고수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 암 습을 당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어요.¬ 종리을진은 흠칫 놀랐다. ↙너는 설마 군다리명왕이 그를 암습했다고 생각하느냐?¬ 이비취는 고개를 살래사래 저었다. ↙물론 그 분은 암습하지 않았어요. 제 생각에는 예적금강이 누군가의 암습을 받고 이미 심맥이 치명적으로 손실했는데 그때 마침 한무외가 그를 건드려 심맥이 터져 죽은게 아닌가 해요. 다시 말하면 그때 예적 금강을 건드린 사람이 누구였건 예적금강을 건드린 사람이 누구였건 예 적금강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종리을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네 말은 옳지 않은 것 같다. 만약 예적금강이 이미 암습을 당했다면 어찌 그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행동할 수 있었겠느냐? 더구나 많은 사 들이 보고 있는 데 누가 감히 그를 암습할 수 있겠느냐?¬ 그의 질문은 핵심을 찌른 것이었다. 허나 이비취는 조금도 자신의 생각 을 바꾸지 않았다. ↙그건 암습자의 솜씨가 너무도 절묘하여 다른 사람들은 물론 예적금강 자신도 미처 자신이 암습당한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예요. 게다가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예적금강으로서도 설마 자신이 중인들이 보고 있 는데서 암습을 당할 줄은 몰랐던 지라 전혀 대비를 하지 않았고 또 무 언가 이상함을 느꼈더라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을 거예요.¬ 종리을진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가 눈을 번쩍 빛냈다. ↙네 말을 들어보니 너는 암습자에 대해 무언가 짐작하는게 있는 것 같 구나.¬ 이비취는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건 잠시후에 말씀드리지요. 다음에 한무외의 자살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것은 종ㅇ리대협께서도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예적 금강이 죽었다고 스스로 머리를 박살내 자살하다니..... 그건 있을 뮈.¬ 종리을진은 다시 눈가에 주름을 잡았다.


↙나도 미심쩍은 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살외에는 달리 생각할 방도가 없지 않느냐? 설마 한무외같은 고수가 다른 사람이 자 신의 리를 부술 때까지 멍청히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겠느냐?¬ 헌데 의외로 그녀는 냉큼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있을 수도 있지요.¬ ↙뭐라고?¬ ↙들어보세요. 암습자는 단순히 무공으로 그를 제압하려 했다면 그도 반항을 했을 거예요. 허나 그렇지 않고 암습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한무외가 전혀 짐작하지 못해다고 하면 어떻게 되죠?¬ 종리을진은 그녀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네 말은 암습자가 한무외와 잘 알고 있는 인물이란 말이냐?¬ ↙비단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죠. 그렇기 때문에 한무외는 상대가 자신의 머리를 내리칠 때까 지도 전혀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던 거예요.¬ 종리을진은 갑자기 나직이 탄식을 했다. ↙그건 정말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군. 허나 한무외가 단순히 자살했 을 확률도 지 않느냐?¬ 이비취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렇지 않아요. 전 한무외의 시체를 한 번 보는 순간 그가 절대 자살한 것이 아님을 알았지요.¬ ↙그건 무엇 때문이냐?¬ ↙한무외의 머리가 박살나 죽었고 그의 오른손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 었지요?¬ ↙그렇다.¬ ↙굅 바로 맹정이예요. 전 그걸 보고 한무외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피살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종리을진은 다시 멍청해졌다.


그는 머리가 둔한 사람도 아니고 강호 경험이 없는 신출내기도 아니었 다. 헌데도 이상하게도 눈앞의 눈이 커다란 소녀와 말을 하게 되자 자 신이 몹시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는 다시 불쑥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구나. 그게 무어가 이상하단 말이냐?¬ ↙일반적으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부수게 되면 그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손에 잔뜩 묻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렇다.¬ ↙허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가 정말로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쳐 부셨다면 그의 손에는 오히려 피가 거의 묻지 않게되요. 이 것은 병을 깨뜨려보면 알아요. 물을 가득 담은 유리병을 방망이로 쳐서 깨뜨리게 되면 막상 방망이에는 거의 물이 묻지 않아요. 사람의 머리 도 유리병처럼 두개골로 싸여 있어서 손으로 쳐서 깨뜨리게 되면 피가 튀기기는 하겠지만 많이 묻어나지는 않지요. 이것은 두개골이 깨어질 때 그 조각들이 핏물로 부터 손을 막아주기 때문이예요.¬ 종리을진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성을 발했다. ↙아, 그렇겠군!¬ 그는 탄성을 토하면서도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이 이론은 예리한 관찰력에 의한 것으로써 보통 사람이라면 제아무 리 골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었다. 헌데 이제 나이 어린 소녀가 이런 추리를 할 수 있다니 어찌 놀라지않 겠는가? 이비취는 계속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에 시체로 발견된 무능승과 항세삼존이 서로 상잔했다는 것 은 더욱 어색한 일이예요. 그것 또한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죽이고 그 런 상황을 연출한 에 지나지 않아요.¬ 종리을진은 이미 그녀에 대해 충분히 감탄하고 있었으므로 서슴없이 물 어보았다. ↙그것은 어째서 그렇느냐?¬ ↙그건 서 있는 두 사람의 자세만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이어 그녀는 제일비를 바라보았다.


↙일비오빠. 잠깐만 아가 항세삼존이 취하고 있던 자세대로 서 보실래 요?¬ 제일비는 다가와서 그녀의 말대로 아침에 보았던 항세삼존의 모습과 똑 같은 모양으로 우뚝 섰다. 두 다리를 어깨만큼 벌리고 한쪽 손은 앞으로 쑥 내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는 종리을진을 바라보며 상냥히 웃었다. ↙종리대협께서 잠시만 이쪽으로 오셔서 무능승의 자세를 취해주시겠 어요?¬ 종리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와서 제일비의 앞에서 무능승처럼 양 손을 벌려 제일비의 허리를 붙잡는 시늉을 했다. ↙조금만 더 앞으로 다가오세요. 일비오빠는 고개를 좀더 숙이고...... 됐어요. 지금 두 분이 취하신 자세가 바로 오늘 아침 항세삼존과 무능 승이 시체로 발견되었던 바로 그 모습이예요.¬ 이비취는 다시 빙긋 웃었다. ↙종리대협께서는 이 모습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시지 못했어요?¬ 종리을진은 제일비의 허리춤을 잡은 자세로 고개를 내저었다. ↙글...... 별로 못느끼겠는걸.¬ 그녀는 이번에는 제일비를 바라보았다. ↙일비오빠는?¬ 제일비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별 다른 점을 못느끼겠다. 비취야.¬ 이비취는 고개를 까닥거리더니 제일비에게 불쑥 말했다. ↙그럼 이제 칼을 뽑아 보세요.¬ ↙뭐라고?¬ 제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녀는 태연히 말했다. ↙항세삼존은 긴 칼을 무능승의 가슴에 꽂았으니 그 칼을 뽑는다고 가 정하고 칼을 뽑아보시란 말이예요.¬


그제야 제일비는 그녀의 씀₂뼉貶“ 붙잡힌 상태에서 그의 허나 없어 그가

가슴에서 칼을 뽑는 시늉을 했다. 몸이 너무 종리을진과 바짝 붙어있는지라 오른 손을 뒤로 뺄 수 칼은 커녕 작은 소도조차도 뽑을수가 없었다. 어색하게 낑낑거리자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됐어요. 이번에는 반대로 칼을 꼬즌 시늉을 해보세요.¬ 제일비는 그녀의 말대로 긴 칼을 꽂는 시늉을 했다. 허나 그역시 종리 을진의 몸에 걸려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됐어요. 두 분은 그만 하셔도 돼요.¬ 종리을진과 제일비는 자세를 풀고 다시 그녀의 옆에 앉았다. 종리을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절묘하군.¬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이제 아셨어요? 그들이 서있던 자세는 항세삼존은 절대로 무능승의 가슴에 칼을 꽂을 수가 없어요. 흉수는 보다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 해 일부러 상잔한 것처럼 꾸민것에 불과해요.¬ 종리을진은 감탄했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너는 어떻게 그런 걸 알았느냐? 무림에서 평생을 보낸 나 자신도 미 처 몰랐는데.....¬ ↙그건 모두들 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만 너무 신경을 써서 그들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또 실제로 상잔을 했을 때 그런 자세가 가능 한지를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죠. 흉수도 바로 그 점을 노 렸기 때문에 두 사람을 그런 자세로 꾸민 것이죠. 또 한가지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두 사람의 시체에서는 너무 피가 적게 흘러나왔어요. 실제로 그런 일 이 벌어졌다면 방안은 온통 두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피바다 를 이루었을 거예요. 허나 두 사람은 옷에만 약간 피가 묻었지요. 그것 은 그들이 이미 죽은 다음이라 피가 굳었기 때문에 칼이 찔리고 옆구리


에 구멍이 나도 피가 거의 흘러내리지 못한 것이지요. 이것만 보아도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살해된 후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종리을진은 거듭 그녀에게 감탄어린 눈빛을 보냈다. 이런 사소한 일은 사실 그 당로써는 어느 누구도 눈여겨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헌데 그녀는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실로 놀라운 진상을 파 악한 것이다. 모두들 또같은 것을 보았지만 남들이 본 것은 허상이었고 그녀가 본 것 이 바로 살상이었다. 이것이 본 자와 못본자의 차이인 것이다. 종리을진은 아부터 가장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대체 이런 일을 저지른 흉수는 누구란 말이냐?¬ 이비취의 눈에서 혜성과 같은 빛이 번쩍였다 사라졌다. ↙누구의 눈에도 들키지 않고 예적금강을 암습하고, 한무외로 하여금 아무런 의심도 하지 못하도록 믿음 주고, 항세삼존과 무능승이 방비 하지 않은 틈을 타서 그들을 살해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어요. ¬ ↙그게 누구냐?¬ ↙바로 그들이 대형이지요.¬ 종리을진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네말은 그들은 죽인 인물이 바로 부동명왕 이홍광이란 말이냐?¬ 이비취는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사실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어요. 그들은 설마 자신들의 대형이 그들을 죽일 줄은 몰랐던지라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다가 당했 던 거예요.¬ 종리을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네 백부가 아니냐?¬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 이비취는 문득 방의 한쪽 침상에 아직도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이언년 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 왜 아닉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 이죠.¬ 종리을진은 갈수록 오리무중이라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아니 그게 무엇이냐?¬ ↙아버님은 다른 사람의 암습을 받아 뇌를 다치셨기 때문이예요.¬ 이비취는 이언년에겍 다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들추며 머리 한 가운데를 가리켰다. 종리을진은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 보았다. 과연 이언년의 머리 중앙에는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조그마한 구명 이 뚫려 있는 것이 아닌가? 구멍은 그야말로 미세하여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낼 수 없었다. 구멍이 뚫린 곳은 가벼운 타격만 입어도 뇌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힌다 는 뇌호혈이었다. 이비취는 씁쓸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분은 전자방이 채찍에 쓰러졌지만 그렇게 치명적인 부상은 아니라 서 곧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헌데 누군가가 그분이 쓰러진 후 그 분의 뇌호혈을 손상시켜 아주 의식을 되찾지 못하게 한 것이죠.¬ ↙그가 누구냐?¬ ↙그분이 쓰러진 전 그분의 곁을 떠난 적이 없어요. 당연히 다른 사 람은 그분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가 없지요. 허나 단 한 사람, 예외 가 있었어요.¬ 종리을진은 우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를 느낀 듯 눈을 빛냈 다. ↙그가 바로 부동명왕이란 말이냐?¬ 이비 였다. ↙그가 처음 나타났을 때 쓰러진 아버님을 보고 제게서 그분의 몸을 빼 앗다시피 안아 살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아버 님의 몸에 손을 댈 기회가 없었어요.¬


종리을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너는 네 백부를 의심하는 것이냐?¬ 이취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저도 물론 이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이일외에는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어요. 부동명왕은 아버님의 의식을 잃게 하고 다른 다섯 명왕들을 살해한 것이예요.¬ ↙하지만 그가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제게 다른 생각이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 ↙전 그가 왜 아버님의 의식을 잃게 했을까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 득 천향비자가 아버님을 해치려고 했던 일이 떠올랐어요. 두 일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묘하게 공통점이 있어요. 즉 그들은 아버님의 존재가 껄끄러웠던 것이지요. 그들은 무슨 수를 쓰던간에 아버님을 없애려고 했어요. 의식을 잃게 하던지 아니면...... 죽이던지 말이예요.¬ ↙대체 아버님의 무엇이 그토록 그들에게 껄끄러웠을까요? 무공때문이 라면 아버님보다 강한 무공의 소유자는 무림에도 많아요. 그리고 아버 님은 남다른 세력이나 신분도 가지고 계시지 않아요. 있다면 오직 한가 지 뿐이예요.¬ 종리을진과 제일비는 그녀의 입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바로 부동명왕 이홍광대협의 친동생이라는 것이지요.¬ 종리을진은 그녀의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어 다시 물었다. ↙그것이 이 일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 ↙친동생이라면 자신의 형에 대해 남드리 모르는 여러가지를 알고 있을 게 아니겠어요? 예를 들면 어려서부터의 습관이라든지 그들끼리만 통하 는 비밀스런 말이라든지...... 그래서 친형제끼리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알아볼 수 있어요.¬ 그제야 종리을진은 그녀의 말뜻을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네 말은.......


이비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만일 아버님이 깨어나 있으셨다면 지금의 부동명왕에게서 무 언가 허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얼굴이나 음성으 로 속일수 있지만 친혈육만큼은 그것으로 안되지요. 전 부동명왕이 다 른 사람의 변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토록 아버님 을 없애려고 했던 거지요.¬ 종리을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홍광의 얼굴은 역용이나 인피면구의 흔적이 조금도 없다. 만일 그가 인피면구를 썼다면 내 눈을 속이지 못했을 것이다.¬ ↙보통 인피면구를 사용했을 땐 그렇지요. 하지만 인피면구도 한 가지 경우일때는 제 아무리 안목이 높은 사람도 알아볼 수 없어요.¬ 종리을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그 한가지 경우가 어느 때 인지를 알았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웃음소리가 들리며 문이 벌컥 열렸다. ↙하하...... 정말 똑똑한 아이로군. 신기제갈이 가르치긴 잘 가르쳤군 .¬ 웃음소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은 바로 부동명왕 이홍광이었다.

-----------------------------------------------------------------제 13 장 만 노 사 최 혼 종리을진은 안색이 약간 변했으나 역시 강호를 주름잡았던 인물답게 곧 침착을 회복하고 담담히 물었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웬일이오?¬ 이홍광은 얼굴에 기이한 미소를 띄웠다. ↙나는 종리형께서 이 귀여운 아이와 무슨 이야기를 그토록 오래할까 궁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소.¬ 그때 돌연 이비취가 눈을 빛내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백부께선 방문밖에 오래 계셨어요?¬ 이홍광은 음침하게 웃었다. ↙약 일 각정도 되었느니라.¬ 종리을진은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우리들 이야기를 다 들었겠군.¬ 이홍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이 아이의 흥미진진한 추리를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다 들었소.¬ 종리을진은 그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의 말에 대해 이형은 어떻게 생각하오?¬ 이홍광은 얼굴에 의미심장한 빛을 떠올렸다. ↙이 아인 아주 영리한 아이요. 하지만 예로부터 머리가 뛰어난 사람은 수명이 짧다고 했으니 그것이 안타깝구려.¬ 종리을진은 눈을 반짝 빛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아이의 말을 모두 시인한단 말이오?¬ 이홍광은 두 눈에 음침한 빛을 띄었다. ↙나는 원래 이 역할을 좀더 하고 싶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도 계속하고 싶은 생각은 없소.¬ 이어 그는 이비취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점점 붉어지며 잔인한 기 운이 스며 나왔다. ↙넌 정말 죽이기는 아까운 아이다. 네 나이에 너와같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일찌기 본적이 없다. 나는 원래 오래전부터 부동명왕을 죽이고 그로 분장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나 그중에서 가장 걸리적 거리는 사람은 부동명왕의 일거일동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그의 동생이었지. 그래서 그를 제거하려 한 것이다.¬ 그의 음성 또한 점차 변하여 갔다. 처음이 굵고 카랑카랑한 음성에서


점점 음산하게 변하더니 나중에는 듣기만 해도 절로 소름이 쫘욱 끼치 는 살기띄 목소리가 되어버렸다. ↙내가 부동명왕으로 변해 이곳에 온 것은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는 팔대명왕과 나머지 인물들을 모두 없애버리기 위해서 였다.¬ 종리을진은 그의 말에 불쑥 물었다. ↙우리라니...... 그럼 당신도 십자맹의 한 사람이오?¬ 이홍광은 음침하게 끄덕였다. ↙그렇다. 나는 십자맹중의 회자호다.¬ 이이된 일인지 그는 정체를 드러낸 다음부터 종리을진에게도 하대를 했 다. 헌데 그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이홍광, 아니 회자호는 사악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금강야차를 죽였다. 그를 살 해한 후 자살한 것처럼 꾸며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놨지. 과연 모두들 별 다른 의심을 하지않고 넘어가더군.¬ 회자호는 이미 모든 사실을 밝히기로 결심했는지 태도가 아주 여유만만 했다. 허나 오히려 종리을진의 마음속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상대가 자신의 계획을 알려준다는 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절대로 살려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그리고 그의 여유자적한 모습으로 보아 그는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회자호는 뼈골을 얼릴 듯한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 다음에 예적금강을 해치운 것은 내가 생각해도 절묘한 일이었다. 그 일은 한무외등이 나타났을 때 퍼뜩 떠오른 것이었지. 그와 한무외는 친한 사이이므로 만나게되면 필시 서로 가벼운 장난을 고 받을 것이 라고 짐작했지. 그래서 나는 적당한 기회에 예적금강의 어깨를 두두려 주는 척 하며 내가진기로 그의 심맥을 거의 으스러 뜨려 놓았다. 단지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그는 피를 토하며 쓰러지게 해놓은 것이지. 과연 예측대로 한무외가 장난을 하다 그를 떠밀어 오兮腑▼ 죽고 말았다. ¬ 그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마치 벌레 한 마리 죽이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했다. ↙한무외를 처치하는 것은 더욱 쉬웠다. 나는 중인들이 예적금강의 시 체를 운반하는 사이 살짝 객점을 빠져나와 한무외를 찾았다. 그는 예상


대로 산에 올라가 혼자 울고 있었다. 나는 그를 달래주는 머리를 부셔놓았지. 그리고는 자살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에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듬뿍 묻혀 놓았다. 그 후에 로 돌아왔지. 이 일은 원래 완벽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점을 발견할 줄은 정말 몰랐다.¬

척 다가가서 그의 오른손 살짝 객점으 아이가 그 맹

그는 다시 이비취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거의 무표정하고 투명했는데 은은히 혈광이 어려있어 섬뜩해 보였다. 그 헐안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항상 침착하던 이비취도 으시시 함을 느끼고 가볍게 진저리를 쳤다. (저 눈은 현마의 혈마안 같은데..... 설마 이 자가.......?) 회자호의 무시하면서도 싸늘한 음성이 이어졌다. ↙그날 밤에는 무능승과 항세삼존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과연 잠을 이 지 못하고 있더군. 나는 우선 무능승을 찾아가 살해한 후 다시 항세삼존을 죽였지. 그리고는 두 사람을 서로 상잔한 것 처럼 여기게 하기 위해 약간 수작을 부렸다. 나는 이 일을 할때 약간 서둘렀는데 그 때문에 이 두 사람의 자세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 . 그것을 알아내다니...... 과연 시기제갈의 문하답다.¬ 그녀는 그가 말끝마다 자신에게 신기제갈의 자라고 하자 더욱 의심이 들었다. (혹시 이 사람은 사부의 가장 큰 숙적이었던 현마의 제자가 아닐까?) 그때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던 종리을진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일전에 나는 장양의 어느 주루에서 아주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소.¬ 회자호의 눈에 번쩍 혈광이 났다. 허나 그는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종리을진의 말을 들었다. ↙그때 주루주인은 자신이 십여년 저에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소. 그의 말은 당시 웬 홍포중년인이 한 노인에 의해 얼굴가죽이 벗겨지고 광인 이 되었다는 것이었소. 나는 그 일을 무척 괴이하게 여겼는데 당신은 혹시 그 당시 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소?¬ 회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나 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 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당시 홍포중년인의 얼굴 가죽을 벗겼던 사


림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지.¬ 종리을진은 눈을 번쩍 빛냈다. ↙그렇다면 당신의 홍포중년인이 바로 부동명왕이란 말이오?¬ ↙그렇다. 그가 바로 진짜 이홍광이다.¬ ↙그는 어떻게 되었소?¬ 회자호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른다. 당시 그는 완전히 미쳐버려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나는 촉망중에 그의 뒤를 쫓았으나 황산 부근에서 그를 잃어버렸다. 아마 어딘가에서 죽어버렸을 것이다.¬ 종리을진은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부동명왕 이홍광과 전부터 안면이 있었다. 이홍광은 비록 성질이 급하고 불같았지만 본심은 아주 정의로운 사람이 었다. 악을 보면 참지 못하는 그 성미때문에 마인들이 지옥의 염라대왕 보다도 더 무서워했짐나 정파의 협의지사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많은 존 경을 받고 있던 대협객이었다. 그런 그가 얼굴가죽이 벗겨지고 한낱 광인이 되어 황산에서 이름모를 백골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어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겠는가? 회자호는 혈광이 이글거리는 눈을 사악하게 번쩍였다. ↙팔대명왕중 이제 두 명밖에는 남지 않았으니 내 뜻대로 된 셈이지. 게다가 신기제갈의 제자와 무적군자검을 죽인다면 다른 인물들은 모두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제일비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싸늘히 말했다. ↙흥. 당신 뜻대로 모든 일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회자호는 투명한 눈으로 제일비를 바라보았다. ↙아이야. 너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느냐?¬ ↙그렇소.¬ ↙그럼 어디 덤벼보아라. 내가 하늘 높은 것을알려주겠다.¬ 제일비는 싸늘히 노려보다가 용천검을 뽑아들고 그에게 덤벼들었다.


쑤아앙! 검빛이 방안을 환하게 밝혔다. 제일비의 무공은 갈수록 일취월장하여 이제는 절정고수의 대열에 끼여도 조금의 손색도 없었다. 허나 회자호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피하지 않고 손을 장난처럼 가볍게 휘둘렀다. 스윽! 별다른 파공음도 들리지 않았다. 허나 그 순간 제일비는 자신의 주위에 실로 막강한 압력이 다가섬을 느 끼고 이를 악물었다. 꽝! 가벼운 폭음과 함께 제일비의 몸이 뒤로 주르르 밀려나갔다. ↙우욱!¬ 제일비는 참지 못하고 입가에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회자호는 언제 손을 썼느냐 싶게 조금의 미동도 없이 선채 잔인한 빛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안광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법이군. 노부의 삼성 공력을 막아내다니.....¬ 삼성이란 말에 제일비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조금전의 압력은 실로 그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무서운 것이었다. 헌데 그것이 겨우 삼성으 공력이었다니...... 그렇다면 그의 실제 공력은 대체 얼마만한 것인가? 회자호는 다시 차가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너도 알고 있어야 한다. 부동명왕조도 나를 당하지 못하고 얼 굴가죽이 벗겨졌는데. 너같은 아이가 감히 노부를 당할수 있단 말이냐? ¬ 이비취는 제일비와 다. 헌데 회자호는

아까부터 방문을 자꾸 바라보았다. 회자호의 싸움에서 일어난 폭음으로 중인들은 잠을 깼을 것이 왜 한 사람도 그들을 구하러 달려오지 않는단 말인가?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듯 음산한 미소를 띄었다.

↙흐흐..... 아이야. 다른 사람은 기다릴 생각은 아에 말아라. 이곳의 음파는 이미내가 공력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그의 말에 이비취 뿐만 아니라 종리을진 또한 안색이 변했다. 공력을 돋우어 강기의 막을 만들어서 음파를 차단하는 것은 절고수라 면 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강기의 막을 만들면서도 마음대로 입을 열 어 말하고 더구나 다른 사람과 겨루기까지 한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도 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종리을진조차도 자신의 무공이 정상이었더라도 그럴 수 있 . ── 대체 회자가 누구이기에 이런 가공할 공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 가? 종리을진은 불쑥 물었다. ↙귀하는 누구요?¬ 회자호는 사악한 웃음을 떠올리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흐흐..... 그건 알 것 없다. 이제 지옥구경을 할 시간이다.¬ 그의 비쩍 마른 손이 점차 시퍼런 빛을 띠었다. 우웅! 마치 벌떼가 우는 듯한 음향이 울리며 그의 손이 두 배쯤 커졌다. 제일비와 종리을진은 그것을 보자 상대가 이미 살심을 굳힌 것을 알고 바짝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제일비는 용천검을 뽑아 들고 회자호를 노려보았다. 종리을진은 아직 무공이 회복이 안된 상태이고 이비취는 지혜는 뛰어났 지만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소녀였다. 그러니 오직 그가 나서자 그들을 지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흐흐...... 잘가거라. 아이야!¬ 회자호는 푸른 빛으로 변한 손을 흔들었다. 쉬이이이..... 마치 유령의 호곡소리같은 음향이 들려오며 무언가 괴이한 기운이 제일 비를 향해 쭉욱 일어났다. 회자호는 멀리서 손을 휘두르고만 있는데도 제일비는 감당할 수 없 막강한 기운이 자신의 몸을 뒤덮어옴을 느꼈 다. 그는 안색이 굳어지며 용천검을 들어 사력을 다해 맞서갔다. 바로 그때였다. ↙맞서지 마라! 그것은 최혼의 유령인이다!¬ 별가같은 외침이 들리며 한 인영이 방문을 뜷고 제일비의 앞을 가로막 았다. 제일비는 유령인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급히 물러섰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인영은 허공을 향해 검을 그어댔다. 쓰윽! 마치 물이 갈라지는 듯한 음향이 일어나며 회자호가 떨쳐낸 무형의 기 운이 인영의 검신을 타고 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파악!


미약한 파공음과 함께 바닥에 먼지가 피어올랐다. 제일비는 그것을 보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바닥에 마치 어린아이의 손자국만한 손도장이 선명히 찍혀 있는 것이다 . 그 두께는 무려 한 장에 달했다. 그것이 한마터면 자신의 몸에 떨어졌을 것을 생각하니 제일비의 등골에 는 식은 땀이 자를 흘렀다. 회자호는 인영이 검으로 가공할 장세를 바닥으로 유도한 것을 보고 흠 칫 놀란 표정이 되었다. ↙굉장한 접인지기로군. 검으로 이런 접인지기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그는 눈을 들어 인영을 보다가 얼굴이 약간 변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인영을 보다가 얼굴이 약간 변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인영은 시뻘건 홍의를 입고 있었다. 아니 그것 원 래는 홍의가 아니었다. 사람의 피로 물들어 시뻘겋게 된 것이다. 원래는 검은 흑의임에 틀림이 없었다. 인영의 길게 늘어진 머리는 핏물이 달라 붙어 있어 보기 흉하게 헝클어 졌고 전신은 상처와 피로 얼룩져 혈인을 방불케 했다. 허나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손에 들린 녹심 철검과 인영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그 독특한 우수어린 눈빛...... ↙혀....... 형님!¬ 제일비가 반색을 하며 부르짖었다. ↙아저씨!¬ ↙옥심...... 마침내 돌아왔군!¬ 이비취와 종리을진도 그가 전옥심임을 알자 얼굴이 활짝 퍼졌다. 그러다가 그의 몸에 가한 끔찍한 상처를 보자 입을 다물었다. 제일비는 전옥심의 여기저기에 움푹움푹 파인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걱정이 가득한 눈빛이 되었다. ↙형님, 많이 다치셨군요.¬ 전옥심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나는 괜찮다. 늦기전에 돌아와 천만다행이다.¬


전옥심은 망혼유곡에서 이곳까지를 단 이틀만에 달려온 것이다. 그 멀 고 험난한 행로를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회자호는 그를 보다가 안색이 변해 물었다. ↙네가 살아 돌아오다니..... 최무쌍은 어떻게 되었느냐?¬ 전옥심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를 그곳에 남겨 두었소.¬ 회자호는 말뜻을 알아듣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죽었단 말이냐?¬ ↙그렇소.¬ 그의 눈에서 끔찍한 살광이 와를 쏟아져 나왔다. ↙네 놈이 감히 내 동생을......¬ 그 말에 종리을진이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럼 정말로 최혼, 본인이란 말이오?¬ 전옥심이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저 자가 바로 만노사 최혼이오.¬ 이어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과거에 얼굴 가죽이 벗겨지고 손가락이 모두 잘린 괴인에게서 무공을 배운 적이 있었소. 그는 최혼의 유령인에 격중당해 결국 죽게 되었소. 나는 나중에야 그가 부동신보를 익혔다는 것을 알았소. 부동신 보를 익힌 사람은 드넓은 중원 천하에서도 오직 한 사람 밖에는 없소. ¬ 종리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동신보는 부동명왕 이홍광의 독문절기지.¬ ↙그렇소. 그래서 나는 그가 부동명왕임을 안 것이오. 그는 이미 죽었 으니 당연히 이곳에 있는 사람은 그를 죽이고 얼굴가죽을 벗겨간 만노


사 최혼인 것이오. 그것을 알고 나는 더 늦기전에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이틀 밤낮을 달려왔소. 다행이 아주 늦지는 않은 모양이구료.¬ 최혼은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그러다가 천천히 얼굴에는 인피면구를 벗었다. 매미날개처럼 얇은 면구 가 벗어지자 그의 가짜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눈빛이 사악하고 고목처럼 마른 노인이었다. 코가 남달리 뾰족하고 얼굴 전체에는 왠지 모르게 사이한 분위기가 풍 기고 있었다. 한번 본 사람이라면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그런 잔인한 용 의 노인이었다. ↙내가 바로 만노사 최혼이다.¬ 만노사 최혼! 이차 영웅대회의 우승자이자 이미 사십 년 전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마 도제일인으로 군림해 왔던 무적의 고수! 고금제일의 장공이라고까지 불리우게 된 독보적인 유령인으로 천하를 공포에 떨게 했던 그가 바 회자호였던 것이다. 최혼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쫘악 끼치는 잔인한 눈으로 전옥심을 바라 보았다. ↙네 놈이 무쌍을 죽이다니......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게 죽여 주마! ¬ 그는 성큼 전옥심의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전옥심은 망혼유곡에서의 처절한 혈투 이후 쉬지 않고 길을 달려 온 때문에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게다가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전신에서 성한 곳이 없는 형편이었다. 허나 그는 서슴없이 철검을 뽑아들고 최혼과 마주 섰다. 한쪽은 이차 영웅대회의 우승자, 다른 한쪽은 육차 영웅대회 우승자! 한쪽은 이미 사십 년전부터 무적으로 공인된 하제일마, 다른 한쪽은 혜성같이 나타나 당금 강호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천하제일검! 두 절대고수가 마주 서자 중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마주 서자 중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마주 선 채 잠시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서서히 최혼의 비쩍 마른 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어느 새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푸르스름하게 변한 손! 그것에서 시전되는 유령인은 고금제일의 장공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 지 않은가? 전옥심은 철검을 늘어뜨린 채 묵묵히 서 있었다. 숨막히는 정적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최혼이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두 손을 기이하게 흔들었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삼장이었다.


삼 장의 거리는 물론 그들과 같은 절대고수들에게 있어서는 지척과 같 은 거리이다. 허나 장력을 떨치려면 아무래도 가까이 접근을 해야만 한 다. 그런데도 최혼은 그런 상규를 무시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혼자 연습을 하듯 허공을 향해 손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헌데 정작 이상한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전옥심이 갑자기 몸을 움직여 뒤로 날아가는 것이다. 뒤로 날아가던 그 의 몸은 갑자기 꺽이며 다시 죄측으로 이 장쯤 날아갔다. 그러다가 다 시 허공에서 몸을 빙글 회전하며 우측으로 삼 장을 움직였다. 그 모습은 어찌보면 실성한 사람이 혼자 깡총깡총 뛰고 있는듯 했다. 최혼은 분명 그 자리에 우뚝 서 있건만 전옥심은 혼자서 여기 저기 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령인의 무서움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허나 허공을 향해서 손을 휘젓고 있는 최혼은 분명 유령인을 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장공은 소리도 없고 들리지도 않고, 또 한 번 시전되면 격중될 때까지 상대를 따라다닌다. 더구나 그 악독한 장세에 한 번이라 도 스캇綬 해도 전신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이다. 그 형상이 흡사 보이지 않게 사람을 따라다니는 유령과 같다하여 유령 인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지금 전옥심은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데 최혼의 가벼운 손짓에 따라 무언가 가공할 기운이 자신에게 쉴사이 없이 덮쳐옴을 끼고 있었다. 그는 계속 몸을 움직였으나 그 기운은 자신의 몸에서 멀지거나 사라지 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더 몸을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심은 보이지 않는 허깨비를 피해 이리저리 날아 다녔다. 허나 점점 몸을 움직이기가 힘이 들어졌다. 전옥심은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쏴아악! 가벼운 손짓인데도 무수한 검기가 일어나며 허공을 가랐다. 허나 형체 없는 유령처럼 그의 몸을 짓누르는 기운든 조금도 사그러들지 않았다. 스윽! ↙음!¬ 전옥심은 계속 몸을 움직이다가 무언가 차가운 것이 어깨부근을 스치고 지나감을 느끼고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어느새 어깨부근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어깨부근의 살 이 시퍼렇게 변했다. 허나 전옥시은 오히려 눈을 빛내며 최혼에게 달려들었다. 최혼은 손을 휘두르다가 그가 달려들자 뒤로 슬쩍 몸을 후퇴시켰다.


전옥심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며 검을 휘둘렀다. 쑤아앙! 괴이한 검기가 치밀어 르며 최혼의 왼쪽 어깨에 핏무링 뿜어졌다. 최혼의 안색은 무표정했으나 약간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가공스러운 쾌검이군!¬ 최혼은 중얼거리며 오른손과 왼손을 교차로 흔들었다. 스르르..... 마치 거대한 벽이 미끄러지는 듯 하며 전옥심에게 막중한 기운이 다가 왔다. 파앗! 전옥심의 옆구리가 터지며 피가 흘러 나다. 허나 전옥심은 조금도 피하지 않고 그 기운속으로 뛰어들며 검을 흔들 었다. 우우우웅! 기이한 파공음과 함께 그의 검이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렸다. 전옥심의 검은 유령인의 가공할 장세속을 뚫고 최혼의 몸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최혼은 다시 두 손을 십자모양로 휘둘렀다.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허나 전옥심은 자신의 몸을 뒤더던 기운이 한층 막강해짐을 느꼈다. 그 기운이 얼마난 강력했는지 검을 들어 올리기 조차 힘이 들었다. 그 리고 그 와중에 다시 어깨부근의 흑의가 먼지가 되어 날리며 시퍼런 손 작국이 희미하게 새겨졌다. 전옥심은 눈을 번쩍 빛냈. 그는 손을 흔들고 있는 최혼에게 사력을 다해 몸을 날리며 검을 휘저었 다. 갑자기 그의 검이 천근만근 무거워진 듯 했다. 동시에 은은한 우뢰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르르르르릉──! 방이 금시라도 무너질듯 뒤흔리며 전옥심과 최혼의 중간지점에서 폭발 이 일어났다. 쾅! 동시에 최혼의 몸이 태풍에 날리는 가랑잎처럼 뒤로 쭈욱 밀려났다. ↙크윽!¬ 그의 입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전옥심은 놓치지 않고 그의 몸을 바짝 따라가며 검을 그어댔다. 번──쩍! 어둠속에서 뇌전이 치듯 하얀 번개가 피었다가 사라졌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전옥심은 검을 멈추고 우뚝 서 있었다.


그의 상처가 터져 그는 아예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더구나 막중한 진기의 소모때문 그의 얼굴은 백지장보다 더 창백했고 입가로는 쉴 사이 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허나 전옥심은 쓰러지지 않고 우뚝 선 채 전면을 바라복 있었다. 최혼은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다만 그는 기이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눈은 경악과 불신, 짙은 회의에 가득차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조 그맣게 입을 열었다. ↙이..... 이게 무슨 검초냐?¬ 입을 벌리는데 그의 입에서 시커먼 핏물이 잘려진 내장조각과 함께 흘 러 내렸다. 조금전의 일초는 그야말로 우뢰가 치는 듯한 위력이 있어 그의 유령인 을 순식간에 박살내고 그의 몸 짓누른 것이다. 전옥심은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것은 우주만리붕이라고 하오.¬ ↙우...... 우주만리붕......!¬ 최혼의 이에서 검붉은 핏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의 내장은 이미 상대의 막강한 압력에 의해 모두 터져 버린 상태였다 . ↙이..... 이렇게 무거운 검법이 있다니......¬ 최혼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털썩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수십 년동안 천하를 공포에 떨게 했던 천하제일의 마인의 최후치고는 너무도 허무했다. ↙으음......!¬ 그제야 전옥심도 몸을 휘청거렸다. ↙형님......!¬ ↙아저씨.......!¬ 제일비와 이비취가 급히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종리을진은 절대고수이기 때문에 전옥심이 억지로 진력을 돋우어 무리 한 검초를 전개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전옥 심을 바라보았다.


↙괜찮은가? 마지막 일초는 공력의 소모가 극심한 것 같은데.....¬ 전옥심은 억지로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욱......!¬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울컥 피를 토했다. ↙혀...... 형님!¬ 제일비가 울상을 지으며 전옥심의 몸을 잡았다. 허나 오히려 종리을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군.¬ ↙예? 다행이라뇨?¬ 종리을진은 걱정으로 가득 찬 제일비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남자 놈이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쓰겠느냐? 걱정마라. 이건 체내에 응결해 있던 죽은 피를 토해낸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속이 개운하다. ¬ ↙정말입니까?¬ 전옥심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한 후 쓰게 웃었다. ↙그렇다. 사실 유령인을 두 장 맞았지만 그렇게 정통으로 맞은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많은 진력을 소모했기 때문에 내상이 도진 것 뿐이 지.¬ 그제야 제일비는 어색하게 웃음을 띄었다. ↙난 또 그것도 모르고 형님께서 돌아가시는 줄 알고.....¬ 전옥심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보고 싶으냐?¬ 제일비는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씀 마십시오. 형님이 돌아가시는 걸 보느니 차 라리 제가 죽는 게 낫지......¬


전옥심은 슬쩍 이비취를 바라보았다. ↙그런 말을 함부로 하다가는 비에게 혼이 날거다.¬ 이비취가 옆에 있다가 의아한 듯 큰 눈을 깜박거렸다. ↙제가 왜 일비오빠에게 화를 내겠어요?¬ 전옥심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얼굴가득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렇지 않느냐? 장래 신랑감이 혼자서 죽겠다느니 살겠다 느니 하는데 어찌 화를 내지 않겠느냐?¬ ↙뭐라고요?¬ 그제야 이비취는 전옥심이 자신을 놀린 것임을 깨닫고 큰 눈을 상큼히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허나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게 엷은 홍조 가 어려 있었다. 종리을진이 그 모습을 보고 껄껄 웃었다. ↙하하...... 일비가 마음에 있긴 있었군 그래. 얼굴지 빨개지다니.. ....¬ 이비취의 얼굴이 더욱 홍당무가 되었다. ↙하하하......!¬ 전옥심과 제일비는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대소를 터뜨렸다. 이비취는 제일비가 멍청하게 전옥심을 따라 웃자 호가 치밀어 그의 옆 구리를 세게 꼬집었다. ↙뭐가 좋다고 헤헤거려요?¬ ↙아얏!¬ 제일비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도 멍청 보여서 이비취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호호..... 저럴 땐 멍텅구리 같다니까......¬ 제일비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비취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나는 원래부터 총명한 사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는데.....¬ ↙하하하......¬ 중인들은 모두 대소를 터뜨렸다.

x

x

x

↙자네 더 치료하지 않아도 되겠나?¬ ↙주자앙의 감각도를 익히면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소.¬ ↙그게 무엇인가?¬ ↙아무리 심한 부상이라도 하루나 이틀 쉬고 있으면 저절로 나아버린다 는 것이오.¬ ↙그것 참 다행이군. 이언년도 오늘 저녁이면 정신을 차릴걸세. 그렇다 면 바로 남궁검문으로 쳐들어가세.¬ ↙그 전에 한 군데 들러야 할 곳이 있소.¬ ↙그것이 어디인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소주요.¬

-----------------------------------------------------------------제 14 장 예기치 않은 일 ! 소주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달이 뜨지 않은 밤인데도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휘영청 늘어진 청루의 등불. 거나하게 취해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파락 호들의 큰 목소리가 골목골목 메아리를 만든다. 밤이 깊어갈수록 화려해만 가는 소주성의 깊은 곳이었다. 마치 철탑처 럼 우뚝 솟아있는 오층거각이었다. 전옥심은 조용히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처음 왔을 때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벽에 걸린 목계의 원학도도 여전했고 은은히 풍기는 여인의 향내도 전 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방안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오셨군요.¬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속삭였다. 방은 어두웠건만 근처에 밝혀진 등불이 방안으로 스며들어 그녀의 모습 을 떠올리고 있었다. 전옥심은 방안으로 들어와 그녀의 앞에 우뚝 섰다. 어둠속에 비치는 그녀의 눈이 유성처럼 반짝거렸다. ↙당신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기에 언젠가는 오실 줄을 알았어요.¬ 전옥심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두부인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맨발로 분홍꽃무늬가 수놓아진 실내 화를 신고, 저녁 놀빛같이 그윽한 나의를 입고 있었다. 엷은 나의는 속이 은은히 내비쳐 그녀의 몸매를 선명히 떠오르게 했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보고 싶었어요.¬ 녀는 나직이 소곤거렸다. 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안기며 입술을 그의 입술에 갖다대 었다. 그녀의 혀끝이 그의 혀끝에 닿았다. 길고 긴 시간이 흐른 다음에 머리를 뒤로 뺐지만 팔은 여전히 그의 목 을 감고 있었다. 황홀하여 초점을 잃은 듯한 눈동자였다. ↙안기고 싶었어요.¬ 그녀는 다시 소곤거렸다. ↙당신이 떠나버린 후 하루도 깊은 잠을 잔적이 없어요. 때로는 꿈속에 서 당신을 만났다가 헤어져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그때마다 퍼뜩 잠 에서 깨어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곤 했어요. 그런데 어쩔 때는 이대로 영원히 당신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 그녀는 나직하게 물었다. ↙당신은 제가 보고 싶지 않았나요?¬


전옥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반짝거려 마치 진주를 박 아놓은 듯 했다. 잠시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연 전옥심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당신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오. 한가지 해 결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오.¬ 그녀는 그윽 음성으로 물었다. ↙그게 무언가요?¬ 전옥심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나직하게 말했다. ↙십자맹에 관한 것이오.¬ 그녀는 눈을 반짝거렸다. 전옥심의 품에 안긴 부드러운 살결이 조금 싸 늘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깜박거리다가 거의 느낄 수 없을만큼 나직하 탄식을 했 다. ↙그럼 당신은 알고 계셨군요?¬ ↙그렇소.¬ 전옥심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죽여달고 부탁했던 사람이 서잠허임을 안 다음부터 나는 이미 당신이 십자맹의 일원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소.¬ 그녀는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다. ↙서잠허는 십자맹내에서 눈의 가시같은 존재였소. 그가 백검회 혈사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허나 그는 최무쌍과 절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비록 껄끄러운 존재였지만 당신들은 그를 직접 죽일 수가 없었소. 그래서 내 손을 빌어 그를 살해한 것이오.¬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수그렸다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불쑥 물었다.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아세요?¬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같이 아름다운 여인은 결코 흔하지 않소. 더구나 두씨 성도 흔한 성이 아니지. 나는 전에 당신같이 아름다우면서도 두씔봉 가지고 있 는 여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소. 당신은 환혼선자 두보유가 아니오? ¬ 그녀의 눈은 어둠속에서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그녀는 갑자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내가 바로 환혼선자 두보유예요. 그리고 십자맹중의 백자호 이기도 하지요.¬ 환혼선자 두보유는 천향비자 조심의, 무림옥녀 이옥산과 함께 천하삼미 중의 하로 손꼽히던 절세의 미녀였다.

── 천향비자는 차갑고, 무림옥녀는 고결하며, 환혼선자는 부드럽다!

한때 이런 말이 천하에 나돌 정도로 염명을 떨쳤던 여인이었다. 두보유는 가느다란 탄식을 흘렸다. ↙과거의 환혼선자는 이제 한낱 주루를 영업하는 부인이 되어버렸어요. .....¬ 그녀의 음성은 씁쓸했다. 전옥심은 그녀의 음성을 듣고 있다가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십자맹에 가담하게 되었소?¬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에 사촌언니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었지요?¬ ↙목계의 그림을 좋아한다는 여인 말이오?¬ ↙그래요. 그녀가 바로 천향비자 조심의예요. 그녀는 제 고모의 이지 요. 일전에 우연히 그녀가 제게 찾아와 비밀결사에 가입하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때 나는 마침 남편이 죽고 적적했던 참이라 그녀의 제안을 별다른 생각없이 수락했지요.¬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


↙허나 별로 무림의 일에 간여하고 싶은 생각은 었어요. 또 그들의 능력으로 보아 달리 내 힘이 필요할만큼 제가 대단한 존재도 아니라는 걸 알았지요.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이 중원제일루예요.¬ ── 중원제일루는 천하에서 가장 유명하고 거대한 주루였다. ── 그러니 당연히 중원제일루에는 각양각색의 무림인들이 출입하게 될 것이다. ── 많은 무림인들이 들락달락거리게 된다 당연히 온갖 강호의 소식 들이 흘러들어오게 될 것이다. ── 십자맹같은 거대한 문파를 이끌려면 당연히 무림의 소식에 정통해 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중원제일루의 주인이었던 그녀를 포섭한 것이 다. 전옥심은 묵묵히 있다가 다시 물었다. ↙십자맹의 다른 인물들은 누요?¬ ↙최혼도 당신에게 죽었다면서요?¬ ↙그렇소.¬ ↙그렇다면 저를 제외하고는 오직 세 사람이 남았을 뿐이예요. 우선 정 파의 제일인자라는 장선생 육덕명이 있지요. 그는 청자호예요. 그리고 남궁진웅과 천향비자가 있지요. 그들은 각기 자자호와 녹자호예요. 그 들은 남궁검문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가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그들을 찾아갈 생각이세요?¬ ↙그렇소.¬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소곤거리듯 말했다. ↙처음에 십자맹에 대항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어이 없기도 하고 또 무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십자맹이 어떤 사 람들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헌데 어느 새 십자맹은 거의 와해 되었군요.¬ 전옥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별밫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이제 저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전심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대로 무림을 잊고 물러난다면 나는 당신을 절대로 막지 않 을 것이오.¬ ↙나를 용서해 주겠다는 말씀이군요.¬ 전옥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빛내고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은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는 냉혹고 무정했는데 나를 용서해주 려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내가 아름답기 때문인가요?¬ 전옥심은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아니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인가요?¬ 그녀는 쉴새없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이렇게 나를 용서해주면 내가 감격해서 당신품에 저절로 안길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전옥심은 돌연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이오?¬ 전옥심은 약간 격앙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십자맹의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그들과는 거의 아무런 연관 도 없다고 했소. 나를 해치려 하지도 않았고 내 일에 개입을 하지 않았 소. 그래서 나는 물러나려는 거요. 내가 아무나 죽이고 다니는 살인귀 로 보이오? 당신이 씀㎢芽姆瑩 나를 사랑하고 있다든지 그런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소. 단 지 외로웠을 뿐이겠지. 나도 그쯤은 알고 있소. 이런 일로 당신에게 접 근하여 당신과 무슨 일을 벌여보겠다는건 생각해 본 적도 없소.¬ ↙제가 너무 경솔군요.¬ 그녀는 얼굴을 약간 붉혔다. ↙그렇다고 화내지 마세요. 전 당신의 마음을 알고 싶었을 뿐이예요.¬


전옥심은 다시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화를 내는 것은 아니오. 단지 당신과는 어떤 면으로든 이번에 완전히 매듭을 짓고 싶었을 뿐이오.¬ 그녀는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요?¬ 그녀는 그의 팔에 목을 돌려 그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입술을 내밀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로 반쯤 벌려진 채 그의 입술에 밀착되었다. 뜨거운 혀가 그의 입술을 뚫고 들어왔다. 잠시 황홀한 시간이 늄 흘러갔다. 전옥심은 그녀의 혀를 빨다가 문득 그녀의 입속에서 무언가 향긋한 것 이 자신의 목구멍속으로 넘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사향덩어리같이 향기가 강하고 말랑말랑한 것으로 침이 닿자 금 세 녹아 물처럼 목구멍속으로 넘어갔다. 전옥심은 흠칫 놀라 입술을 떼었다. ↙육 무슨 짓이오?¬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도 강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용서하세요. 하지만 꼭 한 번은 당신 품에 안기고 싶었어요.¬ 그녀는 중얼거리며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전옥심은 그녀의 매끄럽고 나긋나긋한 몸이 와 닿자 아랫배에서 불끈 뜨거 기운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삼킨 것은 돌부처라도 흥분시킬 수 시는 강렬한 춘약이었다. 전옥심은 자신의 몸이 서서히 뜨거워짐을 깨닫고 나직이 탄식을 했다.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있겠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손을 아래로 내려 무언가를 잡 당기 자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망사가 흔들거리며 열렸다. 그 안은 오월의 아침처럼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전옥심은 탄식을 토하면서도 그녀가 자신의 품속에 알몸으로 파고드는 것을 막지 않았다. ↙침대에 눕혀줘요.¬ 그녀는 호흡을 거칠게 하며 말했다. 전옥심은 그녀가 말한대로 행동했다. 두 팔을 돌려 그녀의 품만하면서도 부드러운 살갗에 대고 들어올려 댓


걸음 구석에 있는 침대위에 내려 놓 는 뜨거운 신음을 토하며 두 팔을 돌려 그의 목 에 감은 채 침상에 쓰러졌다. 그의 몸도 덩달아 그녀와 함께 침상에 나뒹굴었다. 거치름 호흡이 그녀의 목에서 울렸다. ↙으음......¬ 그녀는 몸을 비틀고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와 같은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이런 유혹을 받으면 누구든지 뇌쇄당 하고 말리라. 더구나 전옥심은 그녀가 목구멍을 통해 흘린 춘약이 발동 하여 더 이 견디기가 어려웠다. 전옥심은 그녀의 몸을 껴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그녀의 몸을 애무 하기 시작했다. ↙으음......¬ 그녀는 몸을 활처럼 굽혔다. 전옥심은 천천히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x

x

x

아침햇살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눈을 뜨자 열린 창문사이로 엷은 안개가 낀 파란 하늘에 나뭇가지 끝이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전옥심은 천천히 몸을 반쯤 일으켰다. 모포가 흘러내려 그의 건장한 가슴이 드러났다. 그녀는 옆에 보이지 않았다. 간 밤에 그토록 뜨겁게 불타올랐던 그녀의 은 아침 안개와 같이 사라 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알몸을 덮고 있던 모포를 걷고 침상에 내려섰다. 전옥심은 창문에 바라보다가 천천히 한쪽에 벗어 두었던 흑의로 손을 내밀었다. 어젯밤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던 흑의는 곱게 접혀 있었고 그 위에 종 이쪽지가 놓여 있었다. 전옥심은 쪽지를 들고 펼쳐보았다.

<전랑. 이렇게 부르는 나를 용서하세요.


지난 밤의 일은 모두 제 잘못입니다. 하지만 당신께 잘못을 빌고 싶지 는 않습니다. 저는 욕심이 많은 여자라서 당신의 극히 일부분이나마 가지고 싶었을 뿐입니다. 허나 더 이상 욕심은 부리지 않겠읍니다. 남궁검문에는 고수들이 많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쌍왕과 육사라는 괴인들을 조심하세요. 그들은 남궁진웅이 가장 믿고 있는 무서운 고수들입니다. 아무쪼록 전랑의 무운을 빕니다. 보유.>

전옥심은 그 쪽지를 내려놓고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를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간밤의 일은 비록 그녀의 유혹을 받았지만 그로서도 얼마쯤의 책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허나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짐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가느다란 한숨을 쉬며 천히 흑의를 걸쳤다. 방문을 열자 한 사람이 문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엽자문이었다. 전옥심은 그를 힐끗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어갔다. 엽자문은 그를 따라 왔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금릉의 철심교에서 형님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그는 잠시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전옥심의 눈치를 힐끗 보고는 조심스 럽게 입을 열었다. ↙누님을 탓하지 마십시오. 그녀는 진정으로 형님을 사랑하고 있읍니다 .¬ 전옥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엽자문은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누님은 언제나 아이가 없는 것을 아쉬워 했지요. 그녀는 이곳을 떠나 고향으로 갔읍니다. 형니께서 찾아가시겠다면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읍 니다.¬ 허나 전옥심은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엽자문은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밖을 나오자 햇살이 눈을 찔렀다. 아주 말고 차가운 날씨여싿.


전옥심은 천천히 푸른 하늘을 올려 보다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살인을 하기에 좋은 날씨로군.¬ 이처럼 푸 날에 살인을 한다면 운치가 있을 것이다. 전옥심은 남궁검문에 가서 무거운 자신의 마음을 발산하고 싶은 욕망으 느꼈다. -----------------------------------------------------------------제 15 장 남 궁 검

금릉의 종산은 신비스럽고 위엄이 있어 보였다.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은 용이 꿈틀거리는 것 처럼 보였고, 계곡에서 흐 르는 물소리는 평화로움을 알려주는 듯 했다. 그곳에는 주위를 돌담으로 축성한 육조시대의 궁전이 있었다. 집터의 흔적도 호화스럽고 번창했던 옛날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금릉은 옛 오나라의 도읍으로 처음 이름은 건업이라 하였고 동진이후 남조의 제도로서 건강이라고 불리웠다. 그후 많은 변천을 거쳐 명나라 초기의 제도였으나 영락제가 도읍을 북 평으로 옮겼으므로 이곳을 달리 남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금릉에는 남달리 유적이 많았고 강산이 기려했다. 특히 진나라때 만들었던 진회하는 많은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 는 곳이었다. 진회하에서 동쪽으로 십 여리쯤 가면 하나의 아름다운 산이 나타난다. 이산은 천하에 유명한 종산이었다. 계곡이 울창하고 풍경이 수려한 종산의 중턱에 하나의 거대한 장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천하에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강남제일세가, 남궁검문 이었다. 남궁검문은 예로부터 그 부귀와 권세로 이름이 높았거니와 당금에 이르 러서는 능히 천하제일가로 불리우고 있기도 하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 무렵, 강산이 수려한 남궁검문의 정문에 한때의 인영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가장 선두에 있는 사람은 종리을진이었다. 종리을진은 남궁검문에서 처음 무공을 익혔으므로 이곳의 지리에 매우 익숙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감개무량한 표정이 되었다. ↙이곳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 이십 년전에도 주위의 경치가 아름다 웠지.....¬


그들은 천천히 남궁검문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꾸르르릉! 요란한 굉음과 함께 굳게 닫혀있던 남궁검문의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 가? 동시에 한떼의 인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수는 근 백여 명에 달 순식간에 중인들을 완전히 에워싸 버렸 다. 그들은 푸른 청의무복을 입고 있는 남궁검문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전옥심을 둥글게 에워싼 채 우뚝 서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의 가운데에 길이 뚫리고 그곳으로 세 명의 인물들이 걸어 나왔다. 우측의 노인은 푸른 학창의를 입은 장선생 육덕명이었다. 가운데의 인물은 체구가 건장하고 검은 수염을 기른 청수한 인사의 중 년인이었다. 눈빛이 남달리 서늘하고 코가 우뚝했다.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을 풍기 고 있었다. 좌측의 인물은 호화로운 궁장을 한 중년미부였다. 머리를 틀어올리고 피부는 백옥을 보듯 새하얗고 투명해 보이기 조차했 다. 아직도 전신에는 미태가 자르르 흐르고 있는데 단지 인상이 너무 싸늘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들은 천천히 다가와서 중인들의 앞에 우뚝 섰다. 종리을진은 가운데의 중년인과 궁장미부를 보자 표정이 침울해졌다. ↙오랜만이군.¬ 가운데의 중년인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줄은 뜻밖이오.¬ 그의 목소리는 낭랑했으나 차가운 감정이 깔려 있었다. 종리을진의 안색은 우울해 보였다. ↙자네가 십자맹의 주동인물이었다니 믿어지지가 않네.¬ 중년인은 바로 남검문의 문주인 신주풍운검 남궁진웅이었다. 남궁진웅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도 사형이 이곳까지 올 줄은 몰랐소. 허나 이제 사형의 끈질긴 목 숨도 멀지 않았소.¬

종리을진은 자신의 친동생보다 더 아꼈던 그로부터 이와같은 말을 듣자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다. 그는 침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 옆에 서 있는 궁장미부


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종리을진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종리을진은 탄식을 했다. ↙사매, 그 동안 설마 이 사형의 얼굴을 잊은 건 아니겠지.¬ 그의 말에 그녀는 억지로 시선을 그엑 돌렸다. 허나 그녀의 얼굴또한 남궁진웅과 마찬가지로 냉랭하기 그지없는 것이 었다. ↙오랜만이군요.¬ 그녀는 무뚝뚝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는 종리을진의 사매인 천향비자 조심의였다. 그녀는 과거 종리을진을 거의 미치도록 사랑했는데 이토록 그를 무정히 대하다니 세월의 흐름은 여인의 마음마저 바꾸어 놓는 것인가? 종리을진은 모든 난관을 뚫고 그들의 앞에 서게 됐지만 막상 그들을 직 접 보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천성이 충후한 그로서는 자신이 친동생처럼 아끼던 사제와 사매를 대하 자 원한보다는 거의 정이 먼저 되살아났다. 종리을진은 나직이 탄식을 하며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남궁 진웅에게 말했다. ↙자네에게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 남궁진웅은 물어보는 시선을 그에게 던졌다. 종리을진은 그동안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왜 나를 배신했나? 내가 그토록 미웠나?¬ 문득 남궁진웅의 무표정한 얼굴에 일말의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싸늘히 입을 열었다. ↙그렇소. 나는 전부터 당신이 미웠소.¬ 그의 너무도 무정한 말을 듣자 종리을진의 얼굴은 더이상 처량할 수 없 을만큼 침울해졌다. 남궁진웅은 이를 악물며 그를 노려보았다. ↙어려서부터 사형은 항상 나를 앞서갔소. 아버님 앞에서 처음 검을 잡 고 검술을 익힐 때도 사형은 아버님의 칭찬을 독차지했소. 나는 언제나 사형에게 뒤져 대만이란 놀림을 당해야했지.¬


그의 음성은 비록 차가웠지만 가늘게 떨리고 있어 그가 얼마나 격동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무공을 익히는 것이 뒤지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수가 있 었소. 그런 것은 천부의 재질을 필요로하니 사형보다 재질이 뒤떨어진 것을 탓해야지. 허나.......¬ 남궁진웅의 눈에서 한광이 뿜어나왔다. ↙내가 오직 사랑했던 한 여인 옥산사매마저 사형에게 빼앗기고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소.¬ 종리을진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허나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남궁진웅은 주먹을 움켜쥐고 처절한 부르짖음같은 음성을 흘렸다. ↙사형은 내게서 모든 걸 빼앗아 갔소. 천하제일기재의 영예도, 아버님 의 정도......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까지도...... 그러니 내가 어찌 사 형을 미워하지 않겠소?¬ 바로 그때였다. 돌연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이 어찌 그의 잘못이란 말인가요?¬ 중인들은 흠칫 놀라 음성이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부터인가? 종산의 바위언덕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두 인 영이 있었다. 우측의 인물은 은의무복을 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미모의 역ㅁ사였 다. 그녀는 놀랍게도 검후 이한상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승복을 입고 머리에는 커다란 방갓을 쓴 여승이 서 있었 다. 조금전 일갈을 터뜨린 사람은 바로 그 여승이었다. 두 사람은 중인들의 이목이 자신에게로 집중되자 몸을 날려 그들의 앞 으로 날아왔다. 스윽! 그들의 신법이 너무도 표홀했기 때문에 중인들 틈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당신은 누구요?¬ 남궁진웅은 방갓을 쓴 여승을 바라보았다.


여승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남궁진웅! 당신은 그새 내 목소리도 잊었군요.¬ 그 말에 남궁진웅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비단 그 뿐만 아니라 조심의와 종리을진까지 격동을 금치 못했다. 남궁진웅은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호...... 혹시......¬ 여승은 조용히 방갓을 벗었다. 의외로 그녀는 머리를 깎지 않고 길게 기르고 있었다. 아주 고아하게 생긴 중년의 여인이었다. 눈빛이 티 한점없이 말고 깨끗 했으며 얼굴 전체에서 풍기는 인상이 그윽하고도 우아한 데가 있었다. 누구도 그녀의 앞에 서 있으면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남궁진웅과 종리을진, 조심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몸을 떨었다. ↙옥산사매.....!¬ 그녀는 바로 그들의 사매였던 무림옥녀 이옥산이었다. 아니 신검절염니 라고 해야 옳으리라. 그녀는 종리을진이 자신을 떠나자 상심하여 남해 청조각으로 가서 신검 절염니가 된 것이다. 그녀의 맑은 시선은 남궁진웅을 향했다가 다시 조심의를 거쳐 종리을진 에게 고정되었다. 종리을진은 격동하는 신색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옥산사매...... 살아 있었군.....¬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음성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회가 어려 있었다. 이옥산의 눈빛도 왠지 모르게 가볍게 흔들렸다. ↙사형도 여전히 건재하시군요.¬ 종리을진은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매가 걱정해준 덕분에 한 목숨 부지할 수 있었소.¬ 그들은 서로 마주 보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 려버렸다. 더 이상 마주보고 있다가는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자 남궁진웅과 조심의의 눈에서는 일제히 질투의 불길이 타오 르고 있었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일이건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가정의 응어 리가 풀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옥산은 돌연 남궁진웅을 돌아보았다. ↙진웅! 당신이 감히 사형을 배반할 수 있어요? 당신을 그토록 아껴주 었는데.....¬ 남궁진웅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매.....¬ 그녀는 엄숙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형과 내가 결합했던 것은 결코 사형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그 원인 은 당신에게 있었어요. 그건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거예요. 그런데도 사형을 원망할 수 있나요?¬ 남궁진웅은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옥산은 냉엄한 눈으로 를 바라보다 문득 탄식을 토했다. ↙그 일만 없었더라면 우리 사형제는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정말 당신이 그토록 파렴치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남궁진웅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몸을 가늘게 떨다가 이를 악물었다. 그는 고개를 번쩍 쳐들며 큰 소리 말했다. ↙맞소. 옥산사매. 나는 파렴치한 놈이오. 허나 나는 그만큼 당신을 사 랑했었소. 당신을 얻기 위해서라면 지옥의 불길 속으로라도 뛰어들 만 큼 당신을 사랑했었소. 헌데도 당신은 나의 애끊는 마음을 몰라주고 오 직 사형만을 바라보았지. 그럴 때마다 내 심정이 땠는지 아오?¬ 이옥산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아 무리 그렇더라도 제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었어요?¬ ↙그 일이 없었더라도 당신은 사형의 품에 뛰어들었을 거요.¬ ↙진웅. 어찌 그런 말을......¬ ↙그건 틀림없을 거요. 당신은 사형을 목숨보다도 더 사랑했었으니까. 그러니 결국


記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오? 사 형제 간의 정 따위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요.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긴 놈에게 무슨 감정이 남아 있겠소?¬ 그의 음성은 비통했고 절귶에 가까웠다. 그는 불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종리을진과 이옥산을 바라보았다. ↙내 마음은 이미 싸늘히 식어 버렸으니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소. 절 대로 당신들을 살려보내지 않겠소!¬ 그는 손을 번쩍 쳐들었다. 차앙! 주위가 온통 흔들리는 듯한 검명과 함께 그들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백 여명의 검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들의 검에서 뿜어나오는 휘황한 검기로 보아 그들은 모두 일당백의 절정검수들임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남궁진웅의 뒤에서 여덟 명의 인물들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가장 우측의 두 인물은 홍포와 흑포를 입을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바로 쌍왕이었다. 홍포를 입고 위명하게 생긴 노인이 혈왕 나문표였고, 흑의를 입고 냉혹 하게 생긴 노인이 귀왕 목극동이었다. 그들의 옆에는 여섯 명의 괴인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각기 사자, 용, 호랑이, 매, 표범, 늑대 모양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들이 바로 육사였다. 광사, 노룡, 폭호, 독응, 날표, 분랑의 육사는 한 눈에 보아도 무서운 고수들임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남진웅은 무서운 살기띈 눈으로 종리을진을 바라보았다. ↙종리을진! 이제까지 운이 좋았다만 그 운도 이젠 끝이오!¬ 남궁진웅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쌍왕육사를 포함한 백 여명의 검수들이 노도와 같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차창! ↙와──! 죽여라!¬ 백여명의 절정수들이 일제히 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모습은 그야말 로 엄청난 것이었다. 허나 중인들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무림의 최절정고수들이 아닌가? 왕년에 천하를 주름잡던 우내십검중 이언년과 곽무극, 이철심, 혁무심 의 네 사람이 주동이 되고, 그 뒤에 팔대명왕중 생존자인 금위와 마 두관음, 제일비. 엽자문, 섭붕, 서문광 등의 신진고수와 호불귀가 있었


다. 그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몰려드는 군웅들을 맞서갔다. 쨍! 쨍! ↙으──악!¬ ↙와아아악!¬ 청의검수 몇 명이 무모하게 덤벼들다 순식간에 도륙이 나 쓰러지자 노 도처럼 덤벼들던 상대들도 주춤거렸다. 그제야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끄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귀를 찢는 검의 울부짖음 소리. 하늘높이 솟구치는 검풍과 사방으로 튀기는 불똥이 얼마나 치열한 격전 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전옥심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천천히 남궁진웅에게 다가갔다.

육덕명이 그와 앞을 가로막았다. ↙오랜만일세.¬ 전옥심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육덕명은 뒷짐을 지었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 ↙자네가 나의 사형인 최혼을 죽였다고 들었네. 자네의 무공이 당대제 일임을 솔직히 시인하네. 하지만 혼자로는 우리 세 사람의 합공을 막을 수 없을 걸세.¬ 헌데 바로 그때였다. ↙하하..... 그렇다면 내가 대신 맞서주지!¬ 하늘을 진동하는 듯한 굉량한 외침과 함께, ↙으윽!¬ ↙크아악!¬ 그토록 거세게 밀어닥치던 청의검수들의 일각에서 비명이 터지며 검진 이 무너졌다. 마치 해일이 덮쳐 방파제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 한떼의 백의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가슴에는 매화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 달려오고 있는 인물은 무척 괴이했다. 얼굴은 청수하기 그지 없었는데 등 뒤에는 커다란 쇠기둥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바로 환상제일검 석무군이었다. 그리고 백의인들은 그가 데리고 온 화산파의 정예고수들인 것이다. 석무군은 훨훨 날아 그들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옥심. 화산파의 정예들이 모두 왔다. 이 자는 내가 맡을테니 너는 남 궁진웅과 천향비자를 상대해라.¬ 전옥심은 느닷없이 나타날 줄은 몰랐는지라 반가움과 함께 걱정이 들었 다. ↙괜찮으시겠읍니까?¬ 석무군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우습게 보지 마라. 이래봬도 육덕명 정도는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다.¬ 이어 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육덕명에게로 몸을 돌렸다. 육덕명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듯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석무군. 아직까지 살아 있었군. 허나 그런 몸으로 감히 노부와 대결 하려 하다니.....¬ 석무군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측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소. 내 검은 조금도 녹슬지 않았으니.....¬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쑤아아악!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엄청난 검영이 밀려왔다. 육덕명은 그의 무공이 오리려 과거보다 더욱 뛰어났음을 알아차리고 입 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허리를 뒤틀어 검영을 피하며 두 손을 마구 휘둘렀다. 파아아아..... 무시무시한 장공이 허공을 마구 휘저었다. 석무군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며 환상제일검이란 외호답게 검으로 수 많은 검화를 그려대며 맞서갔다. 삼차 영웅대회의 승자와 오차 영웅대회의 우승자와의 격돌! 그것은 실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찬탄이 들게 하는 대격전이었다. 전옥심은 그들의 격전을 보다가 마음을 안정시켰다.


(패하시지는 않으시겠군.) 그는 천천히 남궁진웅과 조심의에게 다가갔다. 남궁진웅은 냉기가 감도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바로 검마라고 불리우는 전옥심이냐?¬ 전옥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네 무공이 부친이래 최고라고 들었다. 어디 소문만큼 대단한지 한 번 보자.¬ 이어 그는 번개같이 검을 뽑아 휘둘렀다. 번──쩍! 마치 뇌전이 이는 듯한 음향과 함께 번개가 폭죽처럼 피어올랐다. 전옥심은 조금도 피하지 않으며 철검을 앞으로 쑥 찔렀다. 아주 가벼운 동작이었는데도 검기가 오장이나 쭉욱 일어났다. 쾅! 번개와 검기가 마주치며 주위를 뒤흔드는 폭음이 일어났다. ↙으음......¬ 폭음속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남궁진웅은 충격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그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나의 섬전십삼검뢰를 이토록 쉽게 물리치다니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 군.¬ 그의 음성에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그의 섬전십삼검뢰는 지금까지 가장 빠르고 무서운 검법으로 알려져 있 었다. 이것은 십이대 검류중의 뇌검의 최고봉인 것이다. 헌데 그 무시 무시한 섬선십삼뢰가 전옥심의 가벼운 손짓에 밀려나고 말았으니..... 남궁진웅은 조심의를 돌아보았다. ↙사매, 합세하자!¬ 조심의는 한쪽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종리을진과 이옥사믈 힐끗 쳐 다보았다. 두 사람은 한쌍의 정다운 원앙새처럼 바짝 붙어 있었다. 누구의 눈에 보다도 그들은 잘 어울리는 한쌍의 남녀였다.


조심의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질끈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차앙! 두 사람은 각기 검을 뽑아들고 전옥심에게 덮쳐갔다. 쫘아아──! 하늘이 온통 두 사람이 검영에 가려 버리는 것 같았다. 전옥심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철검을 휘둘렀다. 쐐액! 노도처럼 밀려오던 검영이 반으로 갈라지며 전옥심의 철검이 그들의 코 앞으로 밀어닥쳤다. ↙정말 무서운 쾌검이군!¬ 남궁진웅과 조심의는 안색이 시퍼렇게 굳은 채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둘 렀다. 차차창! 창졸간에 그들의 검이 허공에서 열 두번이나 맞부딪쳤다. 남궁진웅과 조심의는 손아귀가 떨어지는 듯 해 잠시 주춤거렸다. 허나 전옥심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들에게 바짝 다가오며 검을 흔들었 다. 우우웅! 용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검광이 해일처럼 두 사람의 몸을 뒤 덮었다. ↙해시신루구 은 한 소리 외침을 토하며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섬전십삼검뢰 를 떨쳐냈다. 조심의도 질새라 몸을 표홀하게 날리며 예리한 검기를 쏘 아냈. 허나 누가 보아도 두 사람의 열세가 확연히 구분되었다. 이옥산은 그들의 격전을 구경하고 있다가 그들이 오히려 전옥심에게 밀 리자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바로 천하제일검객으로 불리우는 오의광생 전옥심인가요? ¬ 종리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옥산은 기이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소문보다 더 고강한 것 같군요. 두 사람이 밀리다니.....¬ ↙그의 무공은 이미 천의무봉에 올라있소.¬ ↙사형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군요.¬ 종리을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옥산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다 문득 한쪽을 가리켰다. ↙사형은 저기 저 아이가 누구인지 아세요?¬ 종리을진은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키가 헌칠한 은의미녀가 눈부시게 검을 휘두르며 혈왕 나문표 와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문표는 이미 삼십 년전부터 명성을 떨치고 있던 마도의 최절정고수였 다. 헌데 은의미녀의 검이 얼마나 날카롭던지 그는 연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종리을진의 눈에 가벼운 놀랍의 빛이 떠올랐다. ↙여자중에서 저처럼 검술이 뛰어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 당신의 제자요?¬ ↙한편으로는 그렇지요.¬ ↙한편이라니?¬ 문득 이옥산의 얼굴에 엷은 홍조가 어렸다. ↙그녀는 바로 내 딸이기도 해요.¬ 종리을진은 그녀의 말에 그야마로 깜짝 놀랐다. ↙뭐..... 뭐라고?¬ 그는 몸을 부르르 떨다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 그럼 그녀가.....¬ 이옥산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부드러운 유정의 빛이 떠올 라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리을진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은의미녀, 이한상을 바라보


았다. 이한상은 바로 이옥산과 종리을진의 딸이었던 것이다. 이십 여년전, 우연히 남궁진웅의 음약에 중독된 그녀와 단 한번 이룬 정사에 대한 결과인 것이다. 이옥산은 종리을진이 떠난 후에 청조각으로 들어왔다. 허나 그녀는 곧 자신이 그의 아기를 가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문에 그녀는 머리를 깎는 것을 포기하고 몸만 비구니가 된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어여쁜 딸을 낳았다. 허나 그는 한편으로는 부끄럽기 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리을진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어 그녀가 자 신의 딸임을 알리지 않고 제자로 삼았다. 그래서 성도 종리씨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성씨인 이씨를 붙인 것이다. 이한상은 그녀가 자신으 어머니인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자랐다가 나중에 무림에 출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한상은 전옥심을 사랑하게 되고 여인의 순결마저 그에게 바 치게 되었다. 그녀는 사문에 돌아가 이옥산의 앞에서 모든 일을 고해바치고 처분을 기다렸다. 헌데 의외로 크나큰 벌을 내릴 줄 알았던 자신의 사부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닌가? 이옥삼은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그녀의 어머니임 을 알주고 그녀와 자신은 평생 불가에 몸담고 있을 처지가 아님을 일 깨워 준 것이다. 그래서 이한상과 이옥산은 다시 중원으로 나오게 되었다.

종리을진은 문득 눈가가 축축이 젖어옴을 느꼈다. 그녀가 이한상을 낳고 얼마나 자신을 원망했는지, 아버지 없는 자식을 볼 때마다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이 모두 자신의 잘못 아니건만 종리을진은 그녀에게 죄책감이 들 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옥산의 고운 손을 덥석 잡았다. ↙옥산. 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료.¬ 이옥산은 그에게 잡힌 손을 뿌리칠 생각도 하지 않고 얼굴을 사르르 붉 혔다. 중년의 나이이건만 그녀에게는 아직도 소녀다운 취향이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부드러운 눈으로 서로 마주 보았다. ↙크아악!¬ 그러다가 그들의 옆에서 청의검수 하나가 화산파의 제자의 손에 의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바람에 그들은 퍼뜩 정신이 들어왔다. 싸움은 이미 절정에 달해 있었다.


혈왕 나문표는 이미 이한상에 의해 거의 사경에 처해 있었다. 또 다른 쌍왕중의 하나인 귀왕 목극동은 화산파의 오상과 곽위가 시전 하는 양의합벽검진에 갇혀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쩔쩔 매고 있었다. 그 외에도 광사는 제일비와, 노룡은 엽자문, 폭호는 곽무극, 독응은 이 철심, 날표는 금성위, 분랑은 마두관음과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 그 중에서 날표와 분랑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제일비드에 의해 일방 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백 여명에 달했던 남궁검문의 청의검수들도 화산파의 검수들에 의해 거의 도륙이 난 상태였다. ↙크윽!¬ 그들이 둘러보고 있을 때 이한상과 싸우던 나문표가 마침내 그녀의 검 을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이한상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며 검을 집어 넣었다. 그때 누군가 . ↙한상아. 이리 오너라.¬ 그녀가 보니 이옥산이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급히 그녀에게 날아갔다. ↙어머니...... 부르셨어요?¬ 그녀는 수십 년간 사부로만 알고 있던 엄격한 그녀가 자신의 친어머니 임을 알고 있지만 어쩐지 어머니란 마을 하기가 약간 쑥스러웠다. 이옥산은 온화하게 웃으며 옆에 있는 위엄있는 노인을 가리켰다. ↙인사하거라. 네 아버님이시다.¬ 이한상은 그 말에 눈을 번쩍 떴다. 노인은 봉황같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이 분이 환우일기사 종리을진이시란 말씀입니까?¬ 종리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한상은 눈을 크게 뜨다가 바닥에 엎드리며 날아갈 듯 대례를 올렸다.


↙아버님!¬ ↙허허허..... 내게 이토록 어여쁜 딸이 있다니......¬ 종리을진은 눈물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한상 또한 천애고아인 줄 알고 있던 자신이 어머니가 있는데다 아버 지까지 만나게 되니 기쁨과 함께 눈물이 솟고쳐 올랐다. 그때 누군가 웃으며 다가왔다. ↙하하...... 회주께서 이런 어여쁜 딸이 있었다니 뜻밖이오.¬ 종리을진이 보니 이언년이 이비취와 함께 다가왔다. 싸움은 이미 대충 끝난 형편이었다. 귀왕 목극등은 시세가 불리하자 양의합벽검진을 간신히 뚫고 도망쳤다. 그외에 광사와 노룡, 포호, 독응은 이미 쓰러졌고 날표와 분랑은 사로 잡혔다. 싸우고 있는 것은 전옥심과 남궁진웅, 천향비자, 그리고 석무군과 육덕 명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석무군과 육덕명의 격전은 그야말로 치열하여 한치의 우열 도 가름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석무군의 장검이 갑자기 천근만근 무거운 변화를 일으켰다. 육덕명은 그 검초가 이제까지의 검초와는 판이함을 깨닫고 사색이 되어 사력을 다해 장을 휘둘렀다. 허나 검은 그의 장세를 간신히 뚫고 들어왔다. 콰르르릉! 벼락같은 폭음이 터지며 육덕명이 입에서 피분수를 뿜으며 날아갔. ↙크아악!¬ 그의 심맥과 내장은 이미 짓눌려 터진 후였다. 석무군의 이 검초는 우주만리붕이었다. 이것은 천하에서 가장 힘이 무 거운 검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장을 위주로 하는 최혼이나 육덕명에게는 거의 극성이라 할 수 있었다. 석무군은 간신히 육덕명을 쓰뜨린 후 피곤한 듯 검으로 몸을 지탱했 다. ↙휴우!¬ 그로서는 실로 이십 년만에 싸워본 싸움이었다. 더구나 아직도 등에 쇠 받침대를 짊어지지 않고는 제대로 행동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싸움은 더욱 힘이 들었다. 그가 땀을 닦고 있을 때 한 떼의 인영이 그에게 몰려왔다.


↙살아있었군, 무군!¬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백검회 시절 그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이언년 이었다. 이어 종리진은 반갑게 다가왔다. ↙자네가 아직 죽지 않았을 줄 알았지.¬ 석무군은 이언년과 반갑게 악수를 하다가 종리을진을 보자 감개무량한 표정이 되었다. ↙종리형, 무사하셨군요.¬ ↙하하.... 모든 일이 꿈만 같네. 이렇게 보고 싶었던 사람을 모두 만 나게 될 줄이야......¬ 석무군과 종리을진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언년은 그들을 보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아까 보니 옥심을 알고 있던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가, 무군?¬ 석무군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 사실 그 아이는 바로 내 아들일세.¬ ↙아니 그게 정말인가?¬ 중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아암. 내가 비록 아비노릇은 제대로 못했지만 그는 친아들이 분명하 네.¬ 이언년은 멍청히 있다가 갑자기 장난스러운 웃음을 띄며 한쪽에 서있는 이한상에게 말했다. ↙이소저. 무엇하고 계시오? 시아버님께 인사를 올리지않고?¬ 이한상은 정숙한 얼굴에 홍조가 어렸다. 석무군은 어리둥절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어년은 히죽 웃었다. ↙어서 인사를 받게. 이분 소저는 옥심과 보통 사이가 아니라네.¬


그제야 석무군은 입가에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그때 종리을진이 불쑥 나섰다. ↙인사를 하려면 옥심이 먼저 나에게 하여야 하네.¬ ↙아니 왜 그렇소?¬ 종리을진은 득의만면하게 웃었다. ↙사위가 당연히 장인에게 먼저 인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나?¬ ↙사위라니?¬ ↙아니 이 아이는 내 딸인데 그럼 말도 없이 내 딸을 가져가려고 했나? ¬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네.¬ 그제야 중인들은 이한상이 종리을진과 이옥산의 딸임을 알고 더욱 놀라 고 기뻤다. -----------------------------------------------------------------제 16 장 삼십년 동안의 고독 그때였다. 차창! 검광이 하늘을 가릴 듯 피어오르며 두 가닥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음.....¬ ↙윽!¬ 중인들이 깜짝놀라 보니 전옥심과 두 절대고수와의 대결은 이미 끝나 있었다. 전옥심은 철검을 든 채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남궁진웅과 조심의는 그의 앞에 피투성이가 된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남궁진웅의 얼굴이 경악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이.... 이 정도라니.....¬ 전옥심은 묵묵히 그들을 보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히히힝! 어디선가 말음음 소리와 함께 언덕너머에 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 인영은 비루먹어 금시라도 쓰러질 듯한 당나귀를 탄 노인이었다. 헌데 노인이 가볍게 당나귀의 배를 한번 걷어찬 순간 당나귀는 어느새 눈깜박할 새 백 여장을 달려와 그들의 지척에 당도해 있는 것이 아닌가 ? 실로 어느 누구도 이처럼 늙고 초라한 당나귀가 이와같이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나귀는 늘고 초라했지만 그 위에 올라탄 노인은 더옥 눌고 초라했다. 헌데 그 노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종리을진과 이옥산의 얼굴이 대변했 다. 노인은 당나귀에서 힘없이 내려 남궁진웅의 앞에 우뚝 섰다. 남궁진웅과 조심의는 반색을 하며 그의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소자가 아버님을 뵈옵니다.¬ 노인은 시큰둥한 얼굴로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흥, 쓸모없는 녀석! 어린아이 하나도 당해내 못하다니.....¬ 그는 고개를 돌려 종리을진과 이옥산을 바라보다 그들이 멍청히 서있자 버럭 호통을 질렀다. ↙너희들은 설마 눈이 멀었단 말이냐? 아니면 그새 내 얼굴을 잊어버렸 단 말이냐?¬ 그 호통을 듣자 종리을진과 이옥산은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두 사은 남궁진웅과 마찬가지로 급히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을진과 옥산이 사부님을 뵈옵니다.¬ 그제야 노인은 싸늘한 얼굴을 거두었다. 중인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의 이 초라한 노인이 바로 백년제일검사라고까지 불리웠고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검, 남궁산이었던 것이. 그는 삼십년전 신비스럽게 사라져 천하를 경동시키지 않았던가? 그가 돌연 이곳에 무슨 일로 나타났단 말인가? 헌데 중인들 중 한 사람이 불쑥 앞으로 나서며 차갑게 물었다. ↙당신이 정말 남궁산이란 말이오?¬


중인들이 놀라 보니 그는 바로 석무군이 아닌가? 노인은 를 보자 히죽 웃었다. ↙자네는 아직까지 살아 있었나?¬ 석무군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그렇소. 당신이 죽지 않았는데 어찌 내가 먼저 죽을 수 있겠소?¬ 종리을진이 급히 그를 제지했다. ↙석노제. 이분은 내 사부님이실세.¬ 허나 석무군은 태도를 변화하 않았다. ↙그런건 중요한 게 아니오.¬ ↙그럼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중요한 건 그가 바로 내게 잊을 수 없는 치욕을 준 괴노인이란 사실 이오.¬ 중인들은 그의 말에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때 노인, 남궁산이 대소를 터뜨렸다. ↙허허.....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군.¬ 이어 그는 종리을진을 바라보았다. ↙너는 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부!¬ 남궁산은 갑자기 목소리를 변형시켜 물었다. ↙네가 요즘 한창 이름을 얻고있는 환우일기사 종리을진이 분명하냐?¬ 그 음성을 듣자 종리을진의 안색이 홱 변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굵직굵직하고 카랑카랑한 음성을...... 그것은 자신을 전혀 다른 길 가게 한 그 흑의복면인의 음성이 아닌가 ?


↙사..... 사부께서 설마.....¬ 남궁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바로 그 당신의 흑의인이다. 석무군에게는 이런 모습으로 찾아 갔지만 너는 내 얼굴을 아니 복면을 했던게지.¬ 종리을진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사부께서 왜 그런 짓을.....¬ ↙하하..... 그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너는 진웅이 십자맹을 만들어 너를 암습한 것을 몹시 원망하는 모양인데 그럴 필요가 없다. 진웅에 게 십자맹을 창안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종리을진은 물론 중인들은 그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십자맹이 바로 남궁산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 졌다니...... 남궁산은 태연한 신색으로 말했다. ↙너는 내가 왜 삼십 년전 실종되었는줄 아느냐? 그 당신 나는 이미 천 하제일검으로 성가를 드높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하나의 비급을 입수하게 되었지. 그것은 천년전의 무적고수였던 검신의 검신유급이었 다. 나는 그 비급을 입수하자 그 무공과 내 무공을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 나는 최소한 그에게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비급 에는 오직 세 가지 검초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바로 절대삼검이었 다.¬ 절대삼검! 그것이야말로 천년무림사상 최고 고수라는 검신이 자신의 모든 무공 을 집대성한 무적의 검초였다. 일천영! 일만뢰! 일광혼 각기 변, 파,

쾌에서 무적이었고

달리 그 짝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남궁산은 자신이 아는 모든 무공을 동원하여 그 세가지 검초를 꺾으려 고 했다. 허나 그중 단 한가지도 꺾을 수가 없었다. 남궁산은 심한 좌절에 빠지고 말았다. 천하제일임을 부하던 그의 검학이 한낱 천 년전의 인물의 그것에도 못미침을 알았을 때 자부시이 가득하던 그의 마음은 산산 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그것이 남궁산으로 하여금 실종하게 하고 또 십자맹을 만들게 된 원인 이었다. 남궁산은 십여 년간 홀로 참오한 끝에 나름대로 절대삼검을 꺾을 수 있 는 무공을 창안해 냈다. 허나 그에게는 한가지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 과연 내가 창안한 무공이 절대삼검보다 뛰어나고 명실상부한 천하 제일의 검초일까? 그는 고민을 해보았으나 생각만으로 도저히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혹시 이보다 더 뛰어난 무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한가지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 좋다!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세 명의 기재에게 각각 절대삼검의 한 가지 초식을 연구하게 하자. 그들이 그 파해식을 발견했을 때 그것 과 내가 창안한 무공을 비교해 보리라! 그리하여 그는 기재를 찾기 시작했다. 다 몇 년이 흘렀을 때 그는 자신이 원하던 세 명의 절대기재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찾은 기재는 두 사람이었다. 다른 한 사람의 기재는 그가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점찍었던 인물이었기 때 문이다. 그들이 바로 천기수사 주자앙, 환상제일검 석무군, 그리고 남궁산이 마 음속으로 가장 기대로 걸고 있던 그의 제자, 환우일기사 종리을진인 것 이다.

↙세 사람은 각기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기재들이었다. 허나 각기 커다 란 단점이 한 가지씩 있었다. 주자앙은 너무 오만하여 당시 자만심에 빠져 있었지. 석무군은 접하는 무공이 오직 화산파에 한정되어 있어 보 다 폭넓은 무공을 섭렵할 수 없었다. 종리을진은 마음이 너무 유약하여 절대의 재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것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너희들을 자극하기 위해 나는 십 자맹을 창안하게 된 것이다.¬ 고금최강의 집단이라는 십자맹은 실로 남궁산의 이와같은 개인적인 욕 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백검회의 타도도 아니었고 천하무림의 석권도 아니었다. 십자맹의 인물들 조차도 잘 알지 못했던 그 진실한 목적은 바로 세 절 대기재를 분발시켜 절대삼검을 꺾을 파해식을 창안하게 하는 것이었다. 십자맹의 인물은 남궁산이 직접 선정을 해서 남궁진웅에게 알려주었다. 남궁진웅은 그의 말대로 아홉 명의 고수들을 모아 십자맹을 결성했던 것이다. 그들을 불러들일 때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그들은 각기 커다란 야심 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열명의 절대고수가 모 힘을 합하자는 의견에 즉각 동의하게 되었다. 허나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궁산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꼭둑


각시처럼 되업 버리고 말았다.

남궁산은 허공을 올려다보며 강한 음성으로 말했다. ↙세 기재들에게는 자극이 필요했다. 오직 필생의 신념으로 무공에 정 진할 수 있는 강렬한 자극이. 그래야만 그들은 절대삼검을 꺾고 나와 겨루어 볼수 있는 무공을 만들게 될 것이다. 주자앙은 애초부터 십자맹 의 명단에도 끼어 있지도 않았다. 허나 나는 진웅에게 명령해서 일부러 고자군을 그에게 보냈지. 고자군은 그를 십자맹의 인물로 초청을 했고 당연히 주자앙은 거절을 했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그에게 십자맹의 존재를 알리고 남궁진웅을 보내 그를 암습하게 했다. 진웅은 내 말대로 그의 팔과 다리를 잘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원한을 심어 주었다. 허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도록 일부러 그를 놓친 척 했다. 초식을 만들 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그의 머리였으므로 그는 살아 있어야만 하 는 것이다. 결국 주자앙은 도망쳐서 십자맹에 깊은 원한을 갖게 되었고 그것으로 일천영을 꺾을 초식을 발견하게 되었지.¬ 전옥심은 그의 말을 듣자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천기수사 자앙! 그 절대천재의 원한과 복수의 집념은 철저히 계산된 한 인간의 음모의 소산에 불과한 것이다. 남궁산은 그의 그런 마음에는 아랑곳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몇 년 전에 그가 망혼유곡에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십자맹 에 들어왔다. 허나 그때 나는 그가 파해식을 창안했는지 아닌지를 정확 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진웅을 시켜 일부러 십자맹의 절정고수가 아 닌 이류급 고수들을 파견토록 했지. 그래야만 주자앙이 살 수 있을 테 니까.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주자앙은 천하의 기재를 발굴하여 이미 일 천영의 파해식을 전수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남궁산은 슬쩍 고개를 돌려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전옥심은 흑발 사이로 두 눈을 빛낸 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두 절대고수의 눈이 잠시 허공에서 마주쳤다. 전옥심의 눈이 활활 타오는 불길이라면 남궁산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은 무심한 눈이었다. 남궁산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석무군

가입을 지. 그 문파의 절대로

지다. 그는 내게 당한 후 백검회에 했 때문에 그는 편협한 화산파의 무공에만 빠지지 않고 다른 많은 검법을 견학할 수 있었지. 그가 백검회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일만뢰 파해식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을진은 내가 가장 아


끼던 제자였다. 나는 그가 나와 비교할 수 있는 절대기재라고 생각했지 . 허나 그는 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지. 성격이 너무 관인했기 때문 이지. 그래서 나는 복면을 하고 그를 찾아간 것이다.¬ 종리을진의 얼굴에 고통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하늘처럼 존경하고 믿었던 사부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을 아직도 믿기 어려웠다.

허나 진실은 받아들여져야 한다. ↙나는 을진이 회를 조직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그가 고수를 찾아다니며 비무를 하다가 백검회를 조직하자 나는 내심 흡족했지. 허 나 그의 마음이 아직도 너무 유약하여 백검회의 좋은 풍토에서도 일공 혼을 꺾을 파해식을 창안하지 못했다. 사실 일광혼을 꺾으려면 승부에 대한 강한 집념이 있어야 하는데 종리을진에게는 그것이 절대로 부족했 다. 그래서 나는 십자맹으로 하여금 그들을 습격하도록 한 것이다. 허 나 내 궁극적인 목표는 살인이나 무림패권이 아니므로 불필요한 살상은 가급적 자제를 했다. 그래서 백검회의 인물 중 당시 실제로 죽은 사람 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부상을 입었으나 살아날 수 있었지. 그들은 자 신들이 운이 좋았다고 느꼈겠지만 그것은 내가 진웅에게 명령해서 십자 맹의 다른 인물들이 그 일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억제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찌 모두 살아날 수 있었겠느냐?¬ 종리을진을 맡은 사람은 남궁진웅과 최무쌍이었다. 허나 남궁진웅은 거의 손을 쓰지 않고 최무쌍이 종리을진을 공격하는 것을 구경만 했다. 그러다가 최무쌍이 종리을진의 옆구리에 검을 꽂고 종리을진이 사경에 처하자 그는 종리을진에게 손을 쓰는척하며 최무쌍 의 앞을 가로막아 그가 도망칠 수 있게 했다. 석무군 또한 최혼으로 하여금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했지만 남궁산 자 신이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최혼을 방해해 석무군이 살아날 수 있도록 했다. 이 일은 모두 남궁진웅과 남궁산 외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당사 자들 자신도 일이 이렇게 된 것이 모두 남궁산의 철저한 계획에 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결국 그의 계획대로 종리을진과 석무군은 구사일생하여 깊은 원한을 갖 게 되었고 더욱 무공에 정진하여 드디어는 일광혼과 일만뢰으 파해식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나의 삼십 년 동안의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아 나의 마음은 아주 흥 겹다. 더욱 기꺼운 것은 그들 세 사람의 모든 진전이 결국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남궁산은 뒷짐을 풀고 천천히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중인들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결국 십자맹, 그 거대무비한 힘이 생기게 된 동기는 한 사람의 무공에 대한 호승심 때문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무공을 천하제일로 입증받기 우해. 아니 자신의 무공과 견줄만 한 무공을 만들기 위해 열명의 절정고수들을 모으고 세 사람의 절대기 재를 파탄의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 중에는 그가 가장 아끼던 제자도 있었고 그의 하나뿐인 아들도 있었 다. 남궁산은 전옥심을 바라보았다. ↙너는 내가 한 일이 너무했다고 생각하느냐?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무 인이라면 모름지기 무공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나는 내 무공을 입증해 볼 상대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의 음성에느 강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이제 네가 그들 세 사람의 모든 진전을 이어받았으니 나의 좋은 상대 가 될 것이다. 삼십 년에 걸쳐 결국 내 소원을 이루었으니 나의 마음은 한없이 흡족하다. 네 생각은 어떻느냐?¬ 전옥심은 담담히 말했다. ↙귀하의 말에도 일리는 있소. 허나 사람의 생명은 다른 무엇보다도 귀 한 것이오. 무도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 결과는 너무도 비참했소.¬ 남궁산은 껄껄 웃었다. ↙허허..... 쓸모없는 생명이라면 벌레만도 못한 것이다. 나는 최고의 무도를 위해 그들의 숨을 희생시킨 것이므로 조금도 아깝지가 않다. 천하제일은 고독한 것이다. 검신의 절대삼검을 꺽음으로써 내 무공은 천하제일이 되었다. 아무도 내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너는 정상에 선 자 의 고독을 아느냐?¬ 남궁산은 열기띈 음성으로 말했다. ↙모든 것을 이루었을 때 문득 자신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그 비참 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느냐? 십여년을 고생한 무공을 창안했으나 그것 을 시전해 볼 상대조차 없는 그 허무함을 한낱 세인들이 어찌 알겠느냐 ? 그동안 나는 너무도 외로웠다.¬ 그의 음성은 점차 가라앉았고 열기를 띄고 있던 눈도 낮게 침잠되었다. ↙너는 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너라면 내가 완성한 광검을 받을 자격이 있다. 삼십 년동안 나는 너무도 간절히 너를 기다려 왔다. 이제


내 소원을 이루게 되었으니 나는 조금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 그는 천천히 전옥심의 앞으로 걸어왔다. ↙너는 나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않겠지?¬ 전옥심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조금전처럼 남궁산을 미워하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추구했던 것은 무인으로서의 가장 높은 이상이었다. 그는 그 이상 을 우해 자신의 몸과 마음, 제자와 자식가지도 등한시했다. 어쩌면 남궁산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무인이 아닐까? 그런 무인과 겨룰 수 있다면 자신으로서 더 이상 바랄게 무엇이 있겠는 가? 전옥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는 남궁산을 보고 마주 섰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 있었다. 그들은 검을 뽑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바라본 채 우뚝 서 있 을 뿐었다. 허공에 침묵만이 가득했다. 중인들의 가슴은 쇠망치를 달아놓은 듯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문득 종리을진은 두 사람의 결투가 단 일초가 끝날 것 같은 예감 이 들었다. 맑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문득 남궁산은 손을 앞으로 쑤욱 내밀었다. 버──어──언──쩍!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밀어진

순간, 세상은

물결 속으로 빠 져 든 듯 했다. 그 빛은 너무도 광대하고 강렬하여 중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다. 허나 종리을진은 필사적으로 눈을 뜨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것은 전설의 태양광검이다!) 태양광검! 아직까지 단 한번도 무림에 나타난 적이 없는 전설 속의 무공이었다. 눈부시게 찬란한 태양이 피어나듯 온 누리를 비추는 순간, 상대는 영문

온통

빛의


도 모르고 쓰러진다는 신화 속의 검! 그것이 바로 남궁산에 의해 완성될 줄이야...... 종리진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 아무것도 태양광검을 막을 수 없다......!) 헌데 그 순간 종리을진은 거의 눈을 뜰 수도 없는 빛의 폭풍속에서 전 옥심의 손이 조금 들린것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철검은 여전히 그의 허리춤에 꽂혀 있었다. 그의 손짓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의식적인 행동같았다. 허나 그 순간 그토록 찬란하게 세상을 밝히던 빛의 물결이 씻은듯이 사 라져 버렸다. 중인들은 영문도 모르게 허겁지겁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손을 거둔 채 조금 전의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누구도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때 문득 남궁산의 입에서 미소가 떠올랐다. ↙너는 정말 뛰어난 아이다. 네가 설마 전설적인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 을 줄은 몰랐다.¬ 무형검이란 말에 중인들은 눈을 부릅떴다. 전옥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문득 남궁산의 이마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허나 남궁산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나..... 나는 이제 외지 않다.......!¬ 털썩! 그의 몸은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아버님!¬ 남궁진웅은 달려와 그의 몸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허나 남궁산의 몸은 이미 차디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남궁진웅은 그의 시체를 안고 눈물을 떨구다가 가바직 이브로 피를 흘 리며 쓰러졌다. 사제!¬ 종리을진이 깜짝 놀라 그에게 달려왔다. 남궁진웅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고 입가로는 끊입없이 선혈을 흘리 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심맥을 끊은 것이다. 종리을진은 그의 몸을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제...... 이..... 이런 무모한 짓을 하다니......¬ 남궁진웅은 간신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사..... 사형!¬ ↙사제!¬ ↙사형에게 한 가지..... 소....... 속인 것이 있었소.¬ 남궁진웅은 입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힘겹게 말했다. ↙사..... 사실은 사형을 단 한번도 미워해 적이 없었소...... 사형 을 친형보다도 더 좋아했소......¬ ↙사...... 사제......¬ ↙아..... 아버님이 사형을 배신하라고 했을 때 내 가슴은 찢어지는 듯 했소..... 허...... 허나 아버님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소.....¬ 종리을진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의 몸을 안았다. ↙알고 있네..... 자네는 보기 드문 효자였지.....¬ ↙아...... 아버님은 내게는 하느님같은 분이셨소..... 내게는 항상 엄 격하시고 재질이 그 분의 기대에 못미친 것을 탓하셨지..... 하지만 난 그분을 원망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소.¬ 남궁진웅은 거의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사형은 항상 모든 걸 내게 양보만 했소..... 오.....옥산사 매도 사형은 내게 양보를 하려고 했지. 그녀는 사형을 사랑하는데 말이 오....... 난 변변치 못한 놈이지만 염치가 없는 놈은 아니오..... 옥 산사매를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사형에게 양보를 받으면서까지 그녀를 취하고 싶지는 않았소. 그...... 그래서.....¬ 종리을진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궁진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그래서 일부러 사형을 부른 다음 옥산사매에게 음약을 쓴거 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나 때문에 결합하지 못하는 것이 안 타까웠던거요. 그 덕분에 난 비록 사랑하는 여인을 잃어버렸지만..... 하...... 한번도 그때 일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소..... 사형과 옥산사


매가 서로 잘 살기를 바랬지.¬ ↙..... 사제......¬ 종리을진은 그의 몸을 꽉 움켜 잡았다. 남궁진웅은 거의 꺼져가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 사형..... 나를 탓하지는 않겠지......?¬ ↙내..... 내가 어찌 자네를 탓하겠는가?¬ ↙너...... 너무 착한 사형...... 항상 모든 걸 용서만 하는구료....¬ 남궁진웅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하...... 한가지 부탁이 있소.¬ ↙말하게...... 사제.¬ ↙심의사매는 아직도 사형을 사랑하고 소. 그녀를 버리지 마시오.... .¬ ↙사...... 사제.....¬ ↙오...... 옥산사매는 착하니가 이해를 해줄겁니다..... 나와 약속해 주오..... 그녀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야...... 약속하겠네.¬ 종리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남궁진웅의 입가에 처음으로 온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형은 거짓말을 안하는 사람이니 믿겠......¬ 그의 고개가 푹 꺾였다. 종리을진은 그의 몸을 끌어안은 채 뜨거운 눈물만 흘리고 있 옥산과

조심의도

흘리고 있었다. 전옥심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모든 일이 끝났건만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허나 하늘은 그런 그의 마음과는 아랑곳 없이 푸르기만 했다. 하늘 저 멀리 고독했던 사이, 남궁산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는 것 같

다가와

눈물을


았다. 허나 그 얼굴은 변해버려 주자앙의 얼굴같기도 했다. 주자앙은 그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옥심!

부드럽게 웃던 그의 . 아니면 그가 언젠가 지 만가지의 영상을 다. 따가운 햇살이 그의

얼굴은 다시 엽소천으로 변하고 장무기로도 변했다 사랑했던 인의 모습이기도 했다. 전옥심은 천가 떠올리는 구름을 보며 언제까지고 멍하니 서 있었 전신을 따사롭게 비춰주고 있었다.

<대 미>

b41-4  

사천으로 들어가는 길은 험난했다. 사방에는 산봉우리들이 깎아지른 듯 싸여 있었고 곳곳이 다 산 언덕이 었다. 연도에는 소나무가 길 옆에 즐비한 것이 십리까지 뻗쳐 있었다. 호불귀는 그것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사 천 행 제 1 장 그가 입을 열자 그...

Read more
Read more
Similar to
Popular now
Just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