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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廣場). 사방이 백장여쯤 되어 보일 정도로 넓었다. 툭! 그곳에 한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엽고운이었다. 그가 마침내 사로를 통과하여 이 광장에 당도했다. 삼십육 개의 기관 매복과 칠십이 종의 암기, 또한 열두 개의 절진 중 그 어느 것도 종내 그를 막지 못했던 것이다. 엽고운의 몸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오르고 있었다. 약 두 시간여에 걸친 사로와의 치열한 접전에 그는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그의 안색은 밀랍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쿵! 꼿꼿이 서 있던 엽고운은 마침내 힘없이 주저 앉았다. 이어 그는 품 속에 손을 넣어 밀랍에 싸인 단약 한 알을 꺼냈다. '마지막 남은 금령대주천단(金靈大周天丹)이다. 이것을 복용하면 소모된 진력을 금세 회복할 수가 있다. 정말... 끔찍한 관문이었다.' 엽고운은 단약을 삼킨 후, 대략 이각에 걸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의 몸을 둘러싸고 오색영롱한 환이 떠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광경은 어느 순간부터 더욱 더 신비한 기현상으로 발전되었다. 그의 이마 위에서 영출된 환은 점점 커지더니 종내에는 그의 몸 주위로 다섯 겹의 막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 조화지경이 삼화취정(三和聚精)이나 오기조원(五氣朝元)인지, 혹은 반박귀진(返璞歸眞)을 뛰어넘어 등봉조극(騰縫造極)인지 확실하게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다만 오색의 다섯 겹 막이 천원무극단공의 절정경지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허(虛)가 곧 실(實)이요, 실이 곧 허인지라 엽고운은 무심에 이른 채 허구와 실제 사이에서 환영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일체의 잡념이 제거된 무아지경의 상태라고나 할까? 끝으로 엽고운의 몸을 감싸던 오색막은 찰나적으로 혼돈과도 같은 기광을 뿜어내더니 이내 연기처럼 스러져 버렸다. 엽고운이 감았던 눈을 뜬 것은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눈빛이 거기에 있었다. 고요하고 맑기만 할 뿐 전혀 기(氣)가 없는 듯한 눈빛, 엽고운은 마침내 천원무극단공의 초극 단계에 이르러 내공의 정화를 깊숙이 갈무리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는 당년의 천원상인 석중헌(石中軒)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로써 가히 무종(武宗)으로 추앙받아야 마땅한 성취였다. 스슷! 엽고운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스스로의 능력이 불과 하루 전에 비해도 몇 배나 진보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천외기환단(天外奇幻丹)의 오묘불가사의한 약력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엽고운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으음!" 고요했다. 그러나 정(靜) 속에는 무서운 살(殺)이 있었다. '마지막 관문도 만만치 않겠군.' 엽고운은 새삼 긴장을 다져야 했다. 지금 그가 있는 곳, 즉 백장 넓이의 광장에는 사방으로 여덟 개의 통로가 뻗어 있었다. '이른바 팔로독황절지(八路毒荒絶地)가 이곳인가?' 엽고운은 와중에서도 일단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혔다. 그러자 그의 뇌리에는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는 앞서의 삼관을 통과해 내면서 어렴풋이나마 이 금마궁의 관문 속에 한 줄기 보이지 않는 암도(暗道)가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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