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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무공에 뜻이 없는 친구였지. 그런데 받고 보니 그 비급은 삼백 년 전, 한 자루의 판관필로 천하를 휩쓸던 일대 기인의 것이었다." 영호걸은 눈을 반짝이는 한편, 수중에 들려 있는 금필을 내려다 보았다. 모용황의 말인즉 그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노부는 그 비급에 적힌 무공과 본문의 육대 장문사존이 남기신 무형천공필(無形天空筆)을 합쳐 도합 일곱 초의 천절신필법(天絶神筆法)을 만들게 되었다." "아! 그렇다면 사부님의 천절신필법은 오히려 사존의 무형천공필보다도 그 위력이 막강하겠군요?" 그 말에 모용황은 대답 대신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는 곧 영호걸에게 천절신필의 초식들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유자 모용황의 명성답게 무척이나 현묘(玄妙)한 수법이었다. 익히기도 얼마나 까다롭고 복잡한지 영호걸은 어지간히 진땀을 빼야 했다. 거의 네 시진이 걸려서야 그는 간신히 구결과 동작들을 암기했을 따름이었다. 반면에 모용황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영호걸, 이 아이는 정녕 천생의 귀재(鬼才)로구나.' 7 장비무대회(比武大會)의 최후승자(最後勝者) ① 사흘 째의 비무대회. 영호걸은 기이한 고독감을 안은 채 대 아래 자리잡고 있었다. 모용황은 전날 밤 천절신필을 전수해 준 후, 날이 밝자마자 천축으로 떠났다. 게다가 천중삼신도 지금은 그의 곁에 없었다. 개방의 총단에 잠시 다녀 오겠다며 나선 것이었다. '사부님이야 기약도 없이 가셨지만 세 분 할아버님께서는 이틀 후에는 돌아 오신다고 하셨다.' 무릇 존재의 가치란 마주하고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더욱 절실한 법이다. 본시 다감한 성격의 영호걸은 그들 네 기인과의 부딪침을 통해 바야흐로 이 점을 통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이런 심경으로 망연히 비무대 위를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옆에서 한 가닥 향기가 전해져 왔다. '음, 이 향기는.......'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는 익히 알만한 인물이 웃고 서 있었다. 사영룡이었다. 그는 포권을 하며 짐짓 점잖게 말했다. "영호형,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소." 영호걸은 단지 고개를 끄덕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영룡이 가까이 다가들며 은근히 물어 왔다. "옆자리에 좀 앉아도 되겠소이까?" "앉으시오." 영호걸에게 있어 사영룡이란 천중삼신의 자리를 메울 만한 인물이 결코 못되었다. 그의 미간이 보이지 않게 슬쩍 찌푸려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이 여인이 대체 무슨 속셈으로 자꾸 내게 접근해 올까? 더구나 정체를 들킨 후로도 여전히 딴청이니.......' 남장여인 사영룡은 자리에 앉으며 다시 물었다. "세 분 노선배께서는 어디 가셨소?" "그렇소." 영호걸은 이번에는 돌아 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잘라 말했다. 비무는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모두가 만만치 않은 실력들을 가지고 있어 최소한 눈요기 감으로는 충분했다. 영호걸이 그 쪽으로 시선을 뺏기고 있는 사이, 사영룡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영호형, 오늘은 사문기가 나올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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