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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추어야만 했다. 이러한 정치적 민주화 운동의 등장 배경에는 매우 광범위하

론 역사를 대하는 그 방식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통일이냐 독립이

고 뿌리 깊은 역량이 존재한다. 이른바 ‘본토화’ 운동이다. 애쉬스 낸디(Ashis

냐라는 ’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역사를 연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

Nandy)의 말을 빌리자면, 본토화 운동이 내포하는 함의는 ‘자아의 상실과 재

역시 궁극적으로는 미완성의 탈식민의 길을 따라 전진하는 과정이었다. 타이완

생이다 ’ .17) 전통의 재발견과 민족(國族) 역사 다시쓰기는 이 운동의 주요한 표

과 비교할 때 남한은 일본과의 식민적 관계를 훨씬 일찍부터 청산하기 시작했

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70, 80년대 이후 남한의 ‘문화부흥’(revitalization) 운

다. 위안부 문제나 역사교과서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이고, 2002년에 한국에서

동과 타이완의 본토화 운동은 모두 정치적 민주화 운동의 문화적, 사회적 기초

제작되어 일본에서 크게 히트한 TV 드라마 ‘겨울연가는 ’ 한일간 화해 무드의 대

가 되었다.18)

표적인 상징물이었다. 더욱 중요하면서도 복잡한 문제로 남한의 노무현 정부

그런데 세계화라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면서, 탈식민이라는 과제는 국가

시기 착수한 미군기지 철수/이전 문제를 들 수 있다. 2005년에는 한중일 3국의

의 독립이 급선무이던 반식민 운동 시기 때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되어 버렸다.

학자들과 교사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 가 정식으로

냉전 시기 동안 누적된 여러 정치적 산물들 때문이었다. 타이완의 경우 다음과

출간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동아시아 지역 내부의 화해무드라는 큰 추세 속

같은 원인이 존재했다. 첫째, 탈식민 운동이 전쟁 후 적시에 곧바로 일어나지

에서 남한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19) 시민

못하여, 타이완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가 깨끗이 정리되지 못했다. 둘째, 국민당

사회의 민주적 역량이라는 측면에서 남한이 타이완보다 훨씬 앞서있는 것은 부

권위주의 체제의 선전기구에 의해 중국공산당의 이미지가 악마와 같은 모습의

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한 역량은 이 지역 내에서 총체적인 변화를 이끌어

공산주의 괴뢰로 고착되었다. 셋째, 미국이 ‘민주주의의 ’ 유일한 모델로 간주되

내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타이완과 남한의 탈식민 운동이

어, 미국에 대한 그 어떤 비판과 반성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 결과 중국 대륙과

어느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논의할 필요가

1949년에 타이완으로 온 외성인(外省人)들은 타이완 민족주의라는 본토화 운

있다.

동의 공격 대상이 된 반면, 일본과 미국은 타이완이 오늘날의 ‘번영을 ’ 누리게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복잡하고 모호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은 일본의 신 분이다. 일본은 전쟁 전의 식민자에서 전쟁 이후 피식민자로 변해버렸다. 식민

해준 은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 요인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금기시되는 영역이었던 일

자로서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미명 하에 저질렀던 제국주의적 침략의 과

본 점령 시대의 역사는 90년대에 들어 타이완에서 각광받는 분야가 되었다. 물

거를 해결해야 하고, 아시아 이웃 국가들에 대해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 반면 피식민자로서의 일본은 미국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매우 모 순적인 애증관계를 해결해야만 한다. 어떤 점에서, 전후 일본의 사상사는 끊임

17) Nandy(1983). 특별히 지적할 점은, 역사적 현실로서의 본토화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게 된 조건을 이해할 수 있으며, 개인적 선호에 상관없이 본토 화는 탈식민의 기본적인 형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정치적 입장에 따라

없는 자아비판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같은 이의 정치사상으로 대표되는 전통은 일본 국민과 국가기구의 공모관계를 바라보는

무조건 본토화 운동을 지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18) 이 운동은 현재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경험적인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타 이완이나 남한 모두에서 본토화 운동은 대규모로 문화의 생산이나 소비 영역으로 진입했고, 일상생활의 의식주 차원에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19) 한중일3국공동편찬위원회(2005) 참조.

세계화와 탈제국,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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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연구 제52권 1호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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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球化與後殖民性(韓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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