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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성 |

컨템포러리 아트 |

| 모던아트

| 이유나 어린시절부터 반짝이고 빛나는 것들에 유난히 집착했다. 방 천장 위에 야광 별들을 붙여놓았던 건 물론이거니와 반짝거리는 모든 글리터 악세서리들, 형광 색 운동화들, 성인이 된 이 후엔 반짝이는 불 빛아래 젊음을 즐기겠다며 금요일 밤마다 클럽에 가기 일쑤였고, 결국 건축으로부터 미술공부하 러 24시간 현란한 빛들로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으로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 반짝임에 대한 집착은 자연스레 미술로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빛을 이용한 아트인 ‘라이트 아트(Light Art)’는 나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대부분의 라이트 아티스트들은 주로 미국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라 이트 아트를 처음으로 접한 건, 미국에 오기 전 일본 오사카로 건축 여행을 떠났을 때다. 한창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의 미니멀하고 차가운 노출 콘크리트 양식과 사랑에 푹 빠져, 크리스마스 와 새해를 안도 타다오의 숨결안에서 맞이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나 홀로 한 겨울에 오사카로 여 행을 떠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09년의 마지막 날 안도의 치추 미술관을 보러 페리타고 나오시마 섬엘 갔다가 비바람 속에 갇혀 나혼자 나오시마 섬 안의 가족단위 캠핑장에서 4인용 몽골 파오를 렌 트해 덜덜 떨면서 2010년 새해를 맞이했던 잊지못할 기억이 있다. 그렇게 2010년1월 1일 새해 첫 날 힘들게 찾아간 미술관이기에, 그 곳에서 처음 접한 브루스 나우먼과 제임스 터렐의 라이트 아트 작품 들은 나에게 더더욱 강렬하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던 트

브루스 나우먼( 미국, 1941 - )은 가장 혁신적인 미국 현대 미술가 가운데 한 명으로 홀로그램, 네온 사인 뿐 아니라 조각, 퍼포먼스 아트, 영화, 사진, 인쇄물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한 작가이다. 치추미 술관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나우먼의 대표작이라고도 불리우는 ’One Hundred Live and Die’ 작품 에서 그는 ‘삶과 죽음’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네온사인이라는, 어찌보면 가볍다고 여겨질 수 있는 매체 를 이용하여 표현하였는데 이는 그가 텍스트를 이용하는 가장 미니멀한 방식으로, Emotion이라는 다 양하고 풍부한 감정들을 가장 맥시멈하게 풀어낸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네온사인이라는 익 숙한 소통 수단을 사용하여 대중에게 개인적인 생각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인터뷰에서 나우 먼은 ‘전체 작품에 관해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테스트다. 마치 당 신이 그것을 믿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 크게 이야기를 할 때처럼, 그것은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와 라이트 아트와의 두번 째 조우는 훨씬 더 크고 강렬했다. 작년 겨울 포트폴리오 리뷰 를 위해 LA엘 방문했고, 바쁜 일정이었지만 LA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MOCA(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엘 제일 먼저 갔다. 때마침 특별전으로 ‘Suprasensorial :Experiments in Light, Color, and Space’ 를 하고 있었다. 이 전시는 라틴 아메리카 충동을 포함하여 이전 10년 이상을 표 명하는1960년대 후반과 70 년대의 캘리포니아 전통을 넘어선 현대 시각 예술로, 주위의 빛과 공간을 확장하여 필드를 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전시였으며 이는 내게 단순히 아트를 넘어서 빛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빛을 이용한 아트는 ‘빛’의 특성상 크기나 색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색을 구분짓는 경계도 없을 뿐더 러 무궁무진한 공간 속으로 확장해 나갈 수 가 있었다. 그리고 많은 컨템포러리 아티스트들이 그런 빛의 장점을 이용하여 많은 실험적인 예술을 해 나가면서 예술의 경계와 영역을 점점 더 크게 확장 해 나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공부도 작업도 주로 낮보다는 밤에 하는, 너무도 야행성인 나에게 라이트 아트는 형광등 혹은 인공의 빛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보다 도 고등학교 시절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겠다는 일념으로 밤새 공부하고 형광등 불빛아래 잠들었던 나이기에, 끝없이 존재하는 빛처럼 항상 무한한 꿈을 꾸고 펼쳐나가는 나이기에, 내게 라이트 아트는 단순히 미술 장르의 한 분야를 넘어서 더욱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나 는 뉴욕이라는 빛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오늘도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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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성 | |시 양계장의 밤 박후기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밤에 적는다.

우리들의 밤은

유산된 채 나오는 언어들은 죄다 불면증을 앓고

당신들의 낮보다 밝아요

있다. 그 불면증은 껍질이 깨진 상태로 진정된다.

태양보다 밝은 전구가

불면증의 진정은 백야다. 밝은 밤이다. 우리는 밝 은 밤으로 투신을 한다. 투신하는 법은 달걀들에 게 배운다. 닭들은 모두 투신하면서 태어났다. 생

머리 위에서 빛날 때 우리는 불빛과 섹스를 나누고

각보다 잘 깨지지 않는다. 산새도 될 수 없는 우

전구를 닮은 알을 쏙쏙 낳지요

리의 민무늬여. 밤의 얼굴이여.

해가 지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내일이 없다는 말과 같아요 슬픔은 항생제도 듣질 않아 우린 밤새도록 우울한 부리로 쇠창살 그림자를 쪼아대며 종(種)의 격리를 견디지요 밤이면 밤마다 모래주머니 속에 모래알 같은 시간을 넣고 삭히다 알을 낳을 수 없는 그날이 오면, 우린 모두 끓는 기름 속 혹은 숯불 위로 몸을 던져 소신공양을 하지요 •

다 읽으니 닭이 된 기분이다. • 오, 비스티보이즈 같은 닭이여. 당신들은 왜 양계장에 사나요! 옴므파탈의 수탉 이여, 팜프파탈의 암탉이여, 청춘의 병아리여, 조숙한 달걀이여.

검은 행복 김종연, <검은 행복> 4월 2일 FaceBook 담벼락 집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사람처럼 먹었다. 계란도 한 판 샀다. 계란들이 다 내 새끼 같다. 얘들이 부화해서 30마리 병아리가 되고, 아 방금 두 개 후라이 했으니까 28마리 병아리가 되고, 28마리 닭이 되고, 계란을 숨풍숨풍 낳아서 28년 동안 계란 걱정 없이 양계장. 아 어쨌든 정말 계란이 너무 사랑스럽다. 보일러 빵빵하게 틀어주고 싶지만 그네들은 아스라이 멀리 냉장고에 있다. 미안하다. 너희들은 추워야 싱싱하다. 어느 봄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분명 부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실패할 것이다. 왜냐면 계란 다 먹었다. 내가 낭비할 수 있는 지면의 양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밤은 원래 낭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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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테크닉 홍길동 지난밤은 첫 연애의 느낌이었다. 오늘부터는 권태가 시작된다. 계절에 관계없이 밤이 더 길다. 연애 가 시작되는 고백은 형식주의다. 고백의 순간 시작되는 또 하나의 시간성이 밤이라고 하고 싶다. 자유 로운 원고라고 했지만 사실 생각만큼 자유롭지는 않다.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계란의 개수를 밝히거 나, 내는 밤마다 에센스와 로션과 나이트크림과 아이크림과 수분크림을 바르고 잠든다는 사실을 얘기 하는 건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지금 아무리 글자를 촘촘하게 쳐도 여백이 남는다. 또 그게 밤이다. 밤 은 뭐 그렇다. 내 생각에 밤은 밤이라고 불리는 걸 싫어한다. 나도 내 이름을 싫어하니까. 그러니까 밤 은 이름은 놔둔 채 몸을 자주 바꾼다. 바꿔서 눈을 감는 순간마다 밤인 것처럼 찾아온다. 그러니까 하 루에 두 개씩의 계절이 바뀌는 셈이다. 지금이 딱 그렇 다. 아침에 반팔을 입고 나오면 밤에 후회한다.

*미국 방언협회 선정 2006년의 단어. 명왕성

밤이 후회하라고 있는 건 아니지만 밤은 몇 번씩 고쳐 쓰는 일기의 계절이다. 동의어로 일기예보의 일

(Pluto)은 태양계 행성 지위를 박탈당했으며, 태

기까지 허용된다. 지금 이 일기는 일기를 닮았다. 닮은 건 일기가 아니다. 이것이 일기가 되지 않으니

양계로부터 소외받았다는 의미.

명왕성 되다

plutoed)

(

밤을 놀고 싶다. 굳이 분류하자면 세 번 놀 거다. 이재훈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밷어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 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풍경은 서서히 물드는 것.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꽃으로 사라진다. 나는 단조의 노래를 듣는다. 끊

밤과 낮

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 소리.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 도 만나지 않은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 내 입술과 몸에도 푸른 멍자국이 핀다. 아무리

이민하

하품을 해도 피로하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 내 속의 거대 한 허무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린다.

지나가는 사람이 내 머리를 매달고 있다. 그의 눈이 깜박일 때마다 나는 가볍게 배포된다. 계단에도

벤치에도 내가 붙어 있다. 그가 사육하는 좀벌레들이 기억의 갈피마다 서식한다. 전단지처럼 떼어내 며 껌처럼 긁으며 나는 그의 뒤를 밟는다. 목구멍에 걸린 첫 키스의 탄환처럼 맴도는 거리. 화장터 지

지나간 모든 밤들을 기억할 수 없다. 밤과 낮을

나 불이 번지는 지평선 너머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총구처럼 입을 벌리고 나는 하루를 건넌다. 대

순환선으로 이해한다. 매일 내게 떠오르는 행성

답을 거른 채 당신에게로 오는 길이 어둠 속이다. 자리에 누워 해몽에 몰두하는 당신은 그 사이 늙었 다. 다른 꿈을 꾸었으나 나도 노파가 되었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 당신은 빨갛게 녹물이 흐르는 빛살 로 내 머리를 빗질한다. 부스스 어깨를 털며 나는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정하게 악수를 나누고 마 지막으로 교환하는 불발탄의 혓바닥. 서둘러 빠져나오는 얼굴이 과녁처럼 부푼다. 창가에 선 당신이 침착하게 바라본다. 지나가는 내 목 위에 당신의 머리가 놓여 있다. • 나는 하루를 건넌다. 하루에는 너무 많은 빗금이

또 읽는다.

그어져있다. 하루를 걷는 동안 나도 모르게 몇 개

의 국경들을 넘었다. 국경들은 하나같이 모호한

꿈이 정말 해몽될 수 있다면 내 얼굴이 당신의 얼굴이 되어도 괜찮았을 텐데.

태도를 가지고 있다. 어디까지가 밤이고 어디까 지가 낮인가. 하지만 정의를 하면 안 된다. 우리 는 어려서부터 알고 자랐다. 정의는 지켜줘야 하

• 얼마 전에 강남에 나갔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오! 패션피플! 낮에도 밤이

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당신을 알기 전에 이별하

좋은 비스티Boys&Girls들이여. 내 머리를 매달고 걸어주세요.

는, 그것, 그것에 대해서.

• 사실 그들에게 골든리트리버 한 마리씩 쥐어주고 싶었다. • 나는 10년째 개를 키우고 있다. 오해하지 말아 달라.

아. 그 행성에 가기 위해 나는 이 행성에서 퇴출 당했다. 잘 놀았다.

잘 가라, 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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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재우고 난 뒤 | | 서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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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도 엉망이고 개요도 없고 서사도 없는 글이었지만 잘 짜인 소설만큼이나 마음에 드는 문학의 한 장르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 해 여름 라이언 맥긴리들의 사진을 쭉 본 적이 있었다. 친 구가 미국에서 라이언 맥긴리 사진집 ‘You and I’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이 미친 벌거벗음들. 방해받 지 않는 피사체들과 자유분방의 색감들은 내 눈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얼어붙을 것을 걱정하던 검정치마의 소년소녀들은 2집을 통해서 좀 더 성숙한 자아를 통과했고 그런 소년소녀들 중 하나였던 유아인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통해서 방관했던 젊음의 찌꺼기를 연기했다. 여전히 라이언 맥긴리는 젊은 소녀들의 젖가슴과 말라비틀어진 소년들의 나체를 사랑했다. 꾸밈없이 내뱉는 그 공기 반 소리 반의 기막힌 조화가 이 삼박자를 통해서 다시금 느껴질 때, 카페인

야행성 |

에 의지하지 않아도 밤은 먼저 자고, 먼저 일어나 오랫동안 나를 응시했다. 내가 더 긴 하루를 보낼 수

| 에세이.하나

있었던 꾸밈없는 패키지 속에 검정치마, 유아인, 라이언 맥긴리.

- 예술과의 모닝 섹스를 위한 오밤중 디럭스 키드 꿈꾸기

예술이라는 말처럼 거창하게 느껴지는 말도 없지 않을까 싶은데, 어쨌거나 당신에게 잘 보관된 통조 형식 없는 이야기와 재운 밤들을 깨우지 않도록 치켜 든 까치발들을 위한 글

림 하나 정도 있다면 그건 크게 성공한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잠이 든 후 당신의 옆자리에서 자다가 깨어나기 전에 사라져버리는 어떤 대상은 당신과 섹스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아침엔 너무 밝아서 부끄

재난을 생각한다. 밤이 더 이상 오지 않는 그런 대낮의 지루함이 연속되는 시간들을. 언젠가 나는

러워지니까. 너무 늦게 일어난 당신이 그 밤을 후회해도 그 밤은 당신을 오랫동안 기억해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밤이 사라지고난 뒤 하루 종일 대낮인 그런 풍경에 대해 쓴 적 있었다. 글렌 굴드도 라이

디럭스 사이즈로 자라나버린 당신의 키득거리는 키드들이 자아들을 위한 만찬을 꾸며 줄 것이다. 그

언 맥긴리도 김종삼도 소녀시대에게도 밤이 사라졌다면 오늘날 무슨 일이 생겼을까? 밤을 한 번이라

렇기 때문에 통조림은 당신의 찬장을 차지하고 선 당신의 또 다른 밤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당신의 아

도 지새운 사람들은 다음 날 피로에 시달리고 잠을 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지 않

침을 위해 졸인 설탕물을 내놓을 수도 있겠다. 당신의 밤. 당신의 밤은 무척 소중하다. 그것이 새벽이

기 위해 레드 불을 사다 마시고 커피를 들이킨다. 왜 밤을 먼저 재우려고 하는가? 당신은 아직도 뒤

되는 일과 아침이 되는 일은 더없이 귀중하다.

척이고 있는가?

나는 궁금하다. 당신의 밤을 동공만큼 확장시켜주는 객체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먼저 재운 밤은 당신 옆에서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밤은 통조림에 담을 수 있다’에 대한 증언

실험 결과 밤은 통조림에 담을 수 있다. 물론 거짓말이다. 눈에 보���지 않는 것을 믿기 시작한 인간들 의 역사는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샤머니즘이 지배했던 시대적 인간의 무능함과 욕망들은 그럼에도 예술을 읽어내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예술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드러나지만 결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후문은 보이지 않는 작품 뒷면에서 생각하게 된 다. 그리고 그 작품이 상징하며 이 지구라는 굴레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에 대한 것들도 보이지 않는 다. 밤은 그렇다면 어떻게 통조림에 담기는가? 대부분 길어진 밤은 아주 많은 사람들과 있을 때거나 아니면 아주 왜소한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을 때인데, 내가 밤의 영역을 동공만큼이나 확장시키는 방 법으로 후자를 즐겨 사용한다. 문제는 통조림에 담기는 밤은 무엇을 하든 후회할 수 있을 만큼 지나치 게 되는 짙은 농도를 갖게 된다. 연애편지를 쓰거나 시를 쓰거나 지금은 망한 싸이월드에 글이라도 남 기는 순간, 다음 날 아침 열어 본 통조림은 열자마다 증발해버릴 위험이 있다. 통조림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충분히 밤은 기억된다. 잠과 가까워지면서 내가 내가 아닐 때, 건강과 불온 사이에서 정신없이 헤매는 유령이 될 때 통조림은 봉인된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아 침에 열자마자 홀연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가끔 그 통조림으로 몇 년을 먹고 살 수 있 을 만큼 풍부한 뭔가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 증언의 마지막. 평생 써보지 않는 말들과 생각들과 나를 이루는 무기질의 관계와 괜히 센치해지지만 그 농도가 너무 진해 시럽을 찾게 되는 감정들과, 모든 것 이 담기기 때문에 그 통조림. 꽤 좋다.

-실험 통과된 통조림 함유 성분 : “검정치마를 들으면 유아인이 생각나고 라이언 맥긴리가 보고 싶 어” 그리고 취급주의

내 첫 통조림 속에는 검정치마가 있었다. 사랑해 마지 못하는 검정치마의 1집 타이틀 곡 ‘ANTIFREEZE’는 나에게 아주 시원한 밤을 제공했다. 이 노래를 처음 듣게 된 것은 유아인의 미니홈피에서 였다. BGM에서 유유히 흘러나오는 조휴일의 목소리는 내 밤을 자꾸 자꾸 넓혀주었다. 그 시간, 내가 유아인의 미니홈피를 배회했던 것은 그의 글들 때문이었다. 특히 황병승 시인의 ‘러브 앤 개년’이라는 시를 게재한 그의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직설적이었고 내가 하지 못했던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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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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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진

야행성 | | 에세이.둘

살다보면 그런 날이 있다. 괜히 무기력하고 조금만 걸어도 힘이 드는 날. 내게 어제가 그랬다. 볼일

반성 16

을 마치고 얼른 집에 가서 쉬려는데 동네 형한테서 술 먹자는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온 연락이라 거 절하기가 곤란했다. 몸이 피곤했고 다음날 아침 수업이 잡혀있던 나는 조금만 마시고 일어나려 했으 나, 형은 자꾸만 술을 권했다. 술을 마시는 동안 형은 자꾸만 웃었고, 어느새 나도 따라 웃고 있었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형이 나를 부축해서 데려온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걸어온 것 같기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첨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도 했는데 아무튼 깨고 보니 집이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수업 들어갈 시간이 한 참 지나 있었다. 머

술이 깨니까

리가 욱신거리고 속이 쓰렸다. 나는 어제 술을 먹은 것을 후회했다. 그런데 이 감정 낯설지가 않다.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내 술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대학로 근처에 위치한 실기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 학원에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큰 행사가 있었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는데, 바로 산으로 바다로 수련회를 가는 것이었다. 문예창작학과 입시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련회답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게 주변 환경을 보며 백일장을 하거나, 초청된 현역 문인들의 강연을 듣는 것 정도를 빼고서는 지금 까지 학교에서 가왔던 보통의 수련회와는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이 행사에 처음 참가한 나로서는 약 간 맥이 빠지는 일이었다.

시집『반성』민음사 1987

그러나 계획된 모든 스케줄이 끝나고 밤이 되자 3학년 선배들이 하나 둘씩 숙소를 빠져나갔다. 그리 고는 다들 양손에 커다란 비닐봉지들을 들고 돌아왔다.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은 놀랍게도 술이었다. 순 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2학년 선배들이 술자리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술을 마시면 후회를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술을 마신다. 당장 어제

생각해보면 놀라운 것이, 고작 고등학생들이 벌이는 술자리였는데도 불구하고 초라하게나마 구색이

의 숙취 때문에 궁시렁거리며 원고를 하는 나부터도,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아마 다시 술이 마시고 싶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종이컵도 맥주를 따라 마실 일반 종이컵부터 소주 전용의 조그만 종이컵까지

어 속이 근질거릴 것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찾을 것도 없다. 술이 웬수다. 이 악의 근원을 없애버리는

인원수대로 구비되어 있었고, 안주역시 단 과자부터 쥐포까지 다양한 종류로 구성되었다.

수밖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세계 평화를 위해 이 세상 모든 술을 다 마셔버리려 노력 중이다.

그 다음부터는 뭔가 기억이 들쑥날쑥이다. 나는 소주를 마셨고 맥주도 마셨고 나중에는 그 둘을 섞 어도 마셨다. 마시다보니 기분이 좋아서 사람들과 술자리 게임도 했고 벌칙으로 옆 숙소에 가서 노 래도 불렀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소주 한 병을 잔도 없이 바로 원 샷 했을 때였다. 달디 달던 소주 의 향이 갑자기 비리다고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먹었던 모든 것들 을 변기에 토했다. 후에 그 자리에서 나를 챙겨주던 누나의 말에 의하면, 나는 기도하듯 변기를 붙잡 고 죽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씨발 다시는 술 안 먹어.” 내가 그때 느꼈던 감정 역시 후회였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 이후로 술을 안 먹었던가? 그건 또 아니다. 후회의 감정은 그때뿐이었다. 나 역시 2학년이 되자 수련회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술 자리를 세팅했고, 3학년 때는 앞장서서 술을 사왔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때였다. 이제 합법적 성인으로 술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나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화장실에서 먹은 것 을 게워냈고 말실수를 했으며 생전 처음 보는 곳에서 잠을 깼고 헤어진 옛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하 는가 하면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술 때문에 늘어진 뱃살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이렇게 다짐하곤 하는 것이다. ‘내가 다시 술을 마시면 개다.’ 그렇게 나는 지금 훌륭한 개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이것이 비단 나만의 일 은 아닐 것이다. 김영승 시인의 유명한 시 하나를 소개한다.

이것이 내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술을 마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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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성 |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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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먹은 밥이 제대로 소화 되질 않아 늦은 시간까지 속이 불편한 날이었

수리야 나마스까라 행법을 마친 뒤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 잠시 휴식을 취했

다. 다른 때 같았더라면 저녁 요가 수련이라도 나가 몸을 움직이고 왔을 텐데,

다. 때마침 요가 수련실 안에 울리던 음악이 바뀌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듣자 마

하필 원고 마감일이라 밤늦도록 작업실에서 원고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다행

음이 곧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엎드려 누운 내 몸이 바닥 가까이 스며드는 느

히 자정 즈음 작업을 마무리 지어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나서야 자리에 앉아

낌, 그리고…….

요가 동작을 서너 개 정도 취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호

나는 곧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두 팔을 양 옆으로 나란히 벌리고 턱을 바닥에

요가와 소설 그리고 나의 쓰기 |

흡을 크게 하며 빨리 소화가 되기만을 바랐다.

| 김혜나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에도 낮에 먹은 음식물이 계속 올라오는 듯했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곧장 요가원부터 가야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가 알람에 맞춰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겨우 세 시간의 수면으로 전날의 피로가 풀릴 리 없을 터. 몸을 일으켜기가 평상시보다 훨씬 어려웠지만 고되고 피로한

댔다. 오른쪽 무릎을 접어 오른손으로 발목을 잡은 뒤 들어올리는 ‘아르다 다 누라 아사나(반 활 체위)’를 하려고 다리를 뒤로 넘기자 갑작스레 눈물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소설을…… 너무나 많이 사랑해 왔다. 그 사랑을 이루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치 기와 집착을 부리던 나날들. 하나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소설은 나에게서 더 멀리 달아나기만 했고, 그러므로 나는 늘 좌절과 절망에 휩싸여 살아야만 했다.

일상 중 유일한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것이 요가 뿐이라서 기꺼이 몸을 일으켜

완벽한 절망의 어둠 속에 갇혀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고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

자리를 털고 나섰다.

던 순간들. 그 모든 욕망과 절망과 치기와 집착의 시간이, 내 안에서 어느새 다

새벽 요가 수업은 흔히 ‘태양 경배’라고 불리는 ‘수리야 나마스까라’로 시작되

사라져 있었다. 욕망을 이룸으로써 평정을 찾은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소설을

었다. 인도의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수리야Surya’는 태양 즉 양의 에너지

욕망하지 않음으로서 애초의 욕망을 뛰어넘고 평정을 되찾은 ‘나’가 내 안에 자

를 뜻하고, ‘나마스까라Namaskara’는 존경과 합장, 예배 등의 의미를 가진다.

리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평정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까지 오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며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대부분의 요가 좌법과는 달리

롯이 존재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소설을 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연속적인 동작의 흐름을 통해 몸의 양기를 북돋고 뇌 기능을 향상시켜 주어 평

살면 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소설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나에게 커

상시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행법이다. 최근 들어 부쩍 더워진 날씨 탓

다란 위무를 안겨다 주었다. 반대쪽으로 몸을 틀어 같은 동작을 반복한 뒤 완전

에 나는 웃옷부터 벗고 수련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쩐 일인지 평상시보다 훨씬

한 활 자세 ‘다누라 아사나’를 취하려는데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만 자리

산만한 기운이 감돌았다. 수리야 나마스까라는 하면 할수록 골반과 아랫배에 뜨거운 기운이 모이게 마련인데, 해답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생각들만 자꾸 떠 올라 몸과 마음이 갑갑했다. ‘좌법坐法’이라고 번역되는 요가 ‘아사나Āsana’는 흔히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들 한다. ‘명상瞑想’이란 내 안에 떠오르는 상 즉 이미지와 생각을 지우고 내면

에서 일어나 휴지로 눈물을 닦아내고 나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가벼운 활 자 세로 아사나를 마무리 지었다. 그러고는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요가 수련의 마 무리 단계인 ‘비빠리따(역전)’ 체위들을 행하고, 마지막 ‘사바 아사나’ 송장 체 위로 누워 몸의 힘을 완전히 뺀 채 두 눈을 감았다. 몸속에 남아 나를 괴롭히던 음식물과 생각의 덩어리들은 모두 사라져 그야말 로 나는 텅 빈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와 동시에 비어 있으나 빈 것이 아닌 ‘

의 의식을 청정하게 만드는 것. 글쓰기로 인한 질병과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꾸

순야아순야Sūnyāśūnya’가 느껴졌다. 이윽고 사바 아사나까지 마친 뒤 서서히

준히 해 온 요가 수련이지만, 수련이 깊어질수록 끝없는 사유와 상상력을 원천

몸을 일으켜 다시 처음의 자세로 앉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서둘러 작

으로 하는 창작활동에는 사실상 방해가 됐다. 명상의 반대말이라고 규정할 수

업실로 달려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내 상태를, 글로 쓰고 싶었

는 없지만 그와 대치되는 개념이 바로 ‘상상想像’이기 때문이다.

기 때문이다. 더 이상 소설에 연연하지 않게 된 나 자신과, 오직 나 자신으로서

어렸던 시절부터 나는 유독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미래

존재하고 있는 이 순간에 대하여, 나는 미치도록 쓰고 싶었다. 그랬다. 나는, 글

에 대한 걱정 혹은 설렘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저런 상상

을, 쓰고 싶었다. 소설과 글쓰기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게 된 지금 이 순간에 가

과 공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다니느라 매 순간에 제대로 집중하질 못했

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글쓰기라니. 이 커다란 모순에 나도 모를 웃음이

다. 나이가 들어서부터는 생각의 덩어리가 더욱 거세게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터져 나왔다. 하나 욕망이란 결국 그것에 연연하지 않게 된 순간에야 비로소 이

것을 감당하기 위해 나는 글을 써야만 했다. 글을 써야만, 써 내야만, 두서없이

루어지는 것. 그러니 이것은 모순된 것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순

떠오르는 사유의 덩어리들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가 있었다. 이따금씩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면 머리가 마치 터져버릴 것 같이 아팠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기도 했다. 하여 글쓰기는 나에게 배설과 정화의 행위로서 오래도록 자리매 김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요가를 하면서부터는 구태여 글쓰기를 통해 생 각을 비워낼 필요가 없었다. 빠딴잘리가 『요가 쑤뜨라』를 통해 요가란 ‘마음

리임을 또한 알 수가 있었다. 요가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 머리로 받아들이는 올바른 지식보다 가슴으로 전달되는 뜨거운 감동의 문학에 사로잡혔던 내가, 요가를 통해 생각을 비우고 눈물을 흘리고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깊은 요가 수련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머릿속에 두서없이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의 갈래를 지우고, 청정한 마음의 상

(재질) 작용의 제어Yogaś Citta Vŗtti Nirodhah’라고 기록한 것처럼, 산란하게

태로 내 안에 떠오르는 진정한 사유와 글쓰기와 소설을 살기 위해, 자리에 똑바

움직이고 흔들리는 우리의 내면을 ���가를 통해 가만히 바라보고 고요하게 만

로 앉는다. 양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코끝을 바라보며,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들어 통제하는 상태가 이루어지니 말이다.몸과 마음이 청정해지고 가벼워지면,

숨과 빠져나가는 숨을 지켜보았다. 요가를 하는 것, 글을 쓰는 것, 더 나아가 진

나로서는 딱히 글을 쓸 까닭이 없었다. 글로써 풀어야만 했던 불편과 불만, 생

정한 내 삶을 사는 것 모두가 나의 업이자 행운이었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받아

각 따위가 나에게 남아 있질 않는 것. 후회도 걱정도 두려움도 없는 지금 이 순

들이며 천천히 숨을 쉬었다. 속이 무척 편안한 날이었다.

간의 평정한 상태에 영원히 머물고만 싶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갈망해왔던 소 설과 글쓰기로부터 도망쳐 오로지 수행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만큼의 용기와 자 신 또한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극명한 차이를 가진 요가와 문학의 길 앞에 서 나 는 어느 쪽으로도 선뜻 나아가지 못하고 초입만 계속 서성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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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성 |

‘우린 야행성이 아니에요.’

| 퀴어문화

가 왜 여기에 있어?”

리나라에 비해 선진국임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니었고, 반어법도 아니었고, 마치 “오늘 아침엔

몇 %일까, 아니 알아볼 확률은 몇 %일까. 쉽

그 순간에는 내가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

동성애자 자살 사건 등의 어두운 면도 많았다.

시리얼을 먹었어.”와 같은 자연스러운 말. 특별

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게이다(게이+레이다=

했었다. 의도하지 않은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그래서 내가 동아리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나

한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으면서 내뱉곤 하는 그

게이를 알아보는 능력을 말한다) 작동법도 모

어떤 상황이든 섬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R은

있을지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말에 어느 날은 나 역시 여유롭게 대꾸했다.

르는 둔감한 여성 게이인 나 역시 지금까지는

여유롭게 계속 춤을 추면서 어서 들어와 어울리

그러나 매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모

제로. 그랬던 내가 한 눈에 게이를 알아보는 상

기를 재촉했고,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던 내 뒤로

여 쇼 프로그램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중간고

황이 발생했다. 그것도 마치 세계의 모든 인종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A였다. “내 친구

사를 걱정하고, 어느 날은 호텔 연회장을 빌려

동아리의 마지막 모임이 있던 날, 오전 수업

을 모아둔 듯, 국적 구분조차 쉽지 않은 동네인

인데 너랑 같은 아파트에 살아.”라며 R이 나를

게이 프롬(Prom:사교 파티)을 열어 신나게 춤

이 끝나고 나와 교정을 걷고 있었는데 동아리

하와이에서.

소개하자 그가 두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

을 추고, 그러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친구인 M이 멀리서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평

매력적인 금발의 A를 처음 보았을 때는 ‘Club

너 거기 좋아해? 싫어한다고 해도 괜찮아. 왜냐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선진국이기에 가능하다

소에도 활발한 친구였는데, 오랜만에 만난 그

Carnival’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동아리 홍보 행

하면 난 정말 그 곳이 싫거든! 내 이름은 A야.”

고 여겨지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것이 그들이

는 그날따라 더 신이 난 것 같았다. M은 혼자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이었다. 영화 <소년, 소년

가 아니었다.

사가 있던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건물에서

그들의 대화를 탐,하다.

대한민국의 야행성 소녀가 만난 벌건 대낮의 성소수자들.

당신이 길을 걷다가 성소수자를 만날 확률은

“Me, too.”

나오다가 화려하게 치장한 야외 부스를 정면에

A는 동아리의 임원이었다. 첫 만남, 나는 어

을 만나다.>와 <친구 사이?>를 만든 김조광수

서 마주했다. “Safe sex!”를 외치며 힘차게 무

떻게 내 소개를 할지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는

감독이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지개 색깔의 깃발(무지개는 성소수자를 상징한

데 그가 모두에게 작은 종이 한 장씩을 나눠주

‘베를린에서 본 외국 퀴어영화의 특징. 서구에

어쩜 그렇게 순수하고도 환한 웃음을 지으면

다)을 휘두르고, 콘돔을 나눠주던 A가 두 눈 가

었다.

서 제작된 퀴어영화들에선 성소수자로서의 정

서 옆에 있는 남자 친구를 자랑하던지. 그 모습

체성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할 시

이 정말 예쁘고 기뻐서 나도 모르게 하하하 웃

대는 지났다는 것처럼!’

어버렸다. 하와이의 강렬한 햇빛이 무척이나 잘

득 들어왔다. 드디어 나의 첫 게이다 손님이 등

“이번 학기 첫 모임이니까, 각자 이 지구상

장한 것이었다. 사실 누구든 알아보지 못하는

에 존재하는 모든 질문 중 딱 하나씩만 적어 보

것이 이상할 정도다. 뒤따라오던 한국인 친구

자. 그리고 돌아가면서 대답하는 시간을 갖는

가 헉, 소리를 내더니 내 귀에 속삭였다. 세상

거지!”

에, 진짜 게이야?

그리고 나는 이를 실감하는 중이다. 이들과 만 나는 시간은 정체성에 대한 논쟁을 하고 고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는 그 말이 굉

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단 한 번도 누군가 다른

A에 대한 첫인상은 의구심 그 자체였다. 한국

장히 낯설었는데, 어쨌든 나는 여기 있는 사람

사람이나 나에게 ‘왜’ 게이가 되었는지 혹은 ‘언

의 학교에서 성소수자들은 어두운 시각에 몰래

들의 이름을 알고 싶다는 글을 적었다. 아직 그

제부터’, ‘어떻게’ 게이인 것을 깨달았는지를 물

나와 신입회원 모집 벽보를 붙이고, 문화제 준

들을 잘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그렇기에

은 적이 없었다. 그것이 내게는 굉장히 의미심

비 기간이 되면 탈을 뒤집어쓰고 부스를 꾸며야

차근차근 진지한 대화를 열고 싶었던 약간의 고

장하게 다가왔다. 살아오면서 가졌던 수많은 고

했다. 쉬운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만 내가 태어

집이었다. 모든 쪽지를 돌려받은 후 무작위로

백의 경험과는 상반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난 한국에서 열린 성소수자로 생활한다는 것은

하나를 펼쳐든 A가 소리쳤다. “디즈니 만화에

있을 때는 성소수자들이 모인 테이블에 앉아있

결코 순탄하지 않다. 용기 있는 많은 인권운동

서 어떤 공주가 제일 좋은지 말하시오!”

으면 누군가가 반드시 물꼬를 텄다. 그것이 통

가들이 활동하고는 있지만 소시민일 뿐인 나는

이럴 수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는데 A는

과의례라고 여기든, 아니면 그저 궁금했던 것이

노출이 두렵다. 그렇기에 나는 정말로 A를 만나

나를 제일 처음으로 지목했다. 도대체 누구를

든, 어디선가 질문이 터지면 앉아있는 사람들

고 싶었다. 여기에 있는 동안 조금은 열린 게이

말해야 하지? 당황한 내 옆에서 누군가가 “혹시

이 차례차례 각자의 정체성 이야기를 꺼내는 것

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고, 결국은

피오나?”라고 물었다. 피오나는 디즈니가 아니

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이 조금은 불편했던

덜덜 떠는 개미 심장을 쥐고 동아리방을 찾아갔

라 드림웍스라며 질책하는 A 덕분에 낄낄거리

것 같다.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다들 어

다. 그러나 첫 걸음부터 난관에 봉착했으니, 문

며 시간을 벌게 된 나는 늠름한 캐릭터 한 명을

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에 분위기가 마냥 가벼

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하필 프랑스어 수업을 같

떠올렸다. “뮬란!”

울 수는 없었다.

이 듣는 친구인 R과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아

그래서 나는 이들의 ‘육하원칙이 반 토막 난’

니, 마카리나 춤을 추다가 내 이름을 친근하게

사실 동아리에 가입하기로 마음먹으면서도

대화에 매력을 느끼며 귀 기울여 듣기를 좋아했

부르는 그녀를 뒤늦게 알아채고 경악한 사람은

염려했던 것은, 내가 미국의 퀴어문화에 대해서

다. 그 중에서도 R은 뜬금없이 “I am a happy

나였고, 우리는 극과 극의 톤으로 동시에 입을

는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미 여

gay.”라는 말을 종종 했는데 이 말이 굉장히 오

열었다. “Hey~ 오늘 퀴즈 어땠어?” “세상에 네

러 주(州)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 했을 정도로

랜 여운을 남겼었다. 어떠한 각오의 어투도 아

“Hey hey hey~ 나 애인이 생겼다구. 만난 지 3일 됐어!”

어울리는 사람들. 그들은 야행성이 아니었다.


fffffffffffffffffffff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