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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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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같았던 우리의 나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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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단 소감문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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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나에게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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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간의 꿈, 해외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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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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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활동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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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한 인연, 소렉

24

희망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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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금 증액 감사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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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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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캄보디아해외봉사단

통권 제174호 발행처 ADRF 발행인 권이종 발행일 2014년 09월 10일 발송 및 구독문의 ADRF 02)569-1928 편집기획 및 디자인 ADRF 홍보팀 주소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5-109 다모빌딩 1층 아프리카아시아 난민교육후원회(AD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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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RF와 함께 나눔을 실천 할 해외 장기봉사자를 모집합니다

학교 대신 아무도 없는 집안에 방치되는 아이들 연필을 쥐어야 할 어여쁜 고사리 손으로 생계를 위한 현장에서 아동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 아직도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 세계시민의식과 봉사정신을 가지고 ADRF 희망교실에서 함께 봉사할 장기봉사단원을 모집합니다

문의 070 7842 6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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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결연은 희망의 약속입니다

해외아동결연은 후원자가 수혜국 아동과 결연을 맺고 경제적 지원을 통해 아동의 교육과 기초 생활을 지원해주며 사랑으로 아동의 미래를 밝혀주는 희망의 약속입니다

해외아동결연을 통해 아동이 받는 혜택 학비와 제반경비 희망교실 수업 (인성교육) 급식비 및 기초진료비 학용품 및 기타 수업준비물 등

후원자님께서 받는 혜택 아동 사진과 프로필이 담긴 아동카드 아동생활 사진과 편지 또는 그림카드 1년 동안 아동 성장과정이 담긴 연간성장보고서 세금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부금 영수증

아동결연 문의 02 56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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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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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하계 해외봉사단

꿈만 같았던 우리의 나날들 너무도 달랐다. 우리가 생각했던 그 나라 그리고 그 곳의 아이들과 현실은 조금 달랐다. 하지만 그 다름 은 우리에게 너무나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 아이들은 항상 우릴 바라보며 웃어주었고, 먼저 다가와 안아주었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현실 을 비관하지 않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무언가를 나누러 떠났던 우리는 결국 더 많은 것을 얻고, 또 배워왔다. 꿈만 같았던 그 곳에서의 봉사활동이 끝나고, 우리는 한국으로, 현실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아이들을 떠 올리면 그 달콤했던 꿈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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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소감문 이상윤, 몽골

사람의 인연, 그리고 만남에 있어서 이별이란 피할 수 없는

발을 신고 그 험한 길을 걸으면서도 오히려 뒤쳐지는 나를 걱

일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헤어질 때 마다 나는 더 약해지는

정하며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주고 있었다. 희망교실에 가기 위

것 같았다. 해외봉사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하루 전 날

해 이 험난한 길을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 다닌다고 생각하니

홈스테이 아동에게 ‘바이를테’ 라고 몽골어로 작별인사를 하는

한국에서 짧은 거리를 부모님의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학교

순간, 울먹거리며 내 팔을 붙잡고 놓지 않던 아이의 눈빛이 아

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홈스테이 첫날, 아이들의 집에 짐을 풀고 아이들을 따라 나섰 내가 머물던 홈스테이 가정은 아이들이 다니던 ‘다르이히 희

다. 아이들이 사는 동네는 수도시설이 없는 지역이기에 물통

망교실’과 거리가 엄청 멀었다.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고 돌

을 들고 생활용수를 사러 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수도꼭

과 쓰레기 등의 장애물이 많은데다 집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

지만 틀면 콸콸 나오는 게 물이기 때문에 물을 사러 간다는 것

어 두꺼운 양말과 좋은 운동화를 신은 나조차도 다리가 아프

자체가 신기하면서도 이렇게 불편한 환경에 살고 있는 이들이

고, 숨이 가빠왔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와도 너무나 다른, 더

안타까웠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상처투성이 발로, 다 떨어져가는 낡은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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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단 참가자 소감문

빈 물통을 가져가서 물을 가득 채우고 돌아오는데 가볍게 들 고 간 빈 통과는 달리 25L의 물이 들어간 통은 너무나도 무거 웠다. 건장한 남자 두 명이서도 들기 힘든 통 하나를 아홉살 여자아이와 여섯살 남자아이가 힘겨워하는 기색도 없이 웃으 면서 들고 가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고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 도 들었다. 나중에서야 최대한 물을 최대한 아껴 쓰며 살아가 는 이들이 손님인 우리를 위해 물을 사온 것 임을 알게 되어, ‘정말 소중한 물’ 이었음을 인지했고 너무나 감사했다. 사실 이제껏 내가 살아온 집과는 다른 환경의 집에서 생활해 야 하는 홈스테이는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곧 나를 위해 선 뜻 집에서 가장 좋은 잠자리를 내어주고, 서로의 체온에 의지 하며 부둥켜안고 자는 아저씨와 아이들을 본 순간 불편하다는 생각을 한 내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홈스테이 아동에게 미안한 점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홈스테 이 선물을 전해주고 나서 아이들이 선물을 가지고 노는 모습 에 우리들은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들과는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봉사자들이 모여 카드게임을 했다. 게 임을 하다 보니 잘 시간이 되었는데 아이들도 그 시간까지 잠 을 자지 않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해졌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주면서 손을 잡아주니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너무나 환한 미소를 지으 며 내게 달려와 안기었다. 아무리 가치 있는 선물도 진심을 담 아 한번 안아주고 손잡아 주는 것 보다 못한 것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려면 역시 마주보고, 눈높이를 맞추고 서로를 느 껴야 한다. 지난밤 그것을 깨닫지 못해 아이들을 기다리게 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고, 나의 포옹에 응답하는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보며 어느덧 내 입가에는 아빠미소가 번졌다. 지쳐서 구석에 누워있던 나에게 조금 밖에 없는 자신의 간식 을 아끼지 않고, 들고 와서 먹으라고 챙겨주던 아이들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더욱 힘을 내어 봉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말 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에게 웃으면서 다가와 손가락으로 V자 모양을 하고 찍어달라고 조르던 아이 들의 예쁜 미소 덕분에 나는 하루하루 더 힘이 났다. 교육봉사 할 때 본 아이들의 그 초롱초롱한 눈빛은 나를 더욱 자극시켰 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의지에 불타는 아이들을 보면 나 또 한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과 다가 오는 이별이 야속할 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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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단 참가자 소감문

교육봉사를 하던 어느 날, 대만 팀이 교육봉사를 위해 연 재 료를 가지고 와서 아이들과 함께 만든 뒤 직접 날려 보았다. 강

물통처럼, 이 아이들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 바람을 타고 힘차게 날아가는 연을 보니 내 마음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연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난다. 그리고 역풍이 강

사랑 받으며 자란 아이는 사랑을 어떻게 주는지도 안다. 나는

하면 강할수록 더 높고 힘차게 올라간다. 몽골 아이들도 가난

내가 받은 만큼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사랑을 많이 나누어주

과 열악한 교육환경이라는 역풍을 딛고 열심히 공부해서 이

려고 노력했고, 충분히 많은 사랑은 아니었겠지만 해외봉사기

연처럼 높이 그리고 더 높이 뻗어 올라갔으면 좋겠다.

간 동안 아이들이 받은 나의 사랑을 커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들에게 베풀었으면 좋겠다.

나는 몽골에 갈 때 약간의 공허함을 가지고 텅 빈 물통처럼 갔지만, 돌아 올 때는 가득 찬 물통처럼 몽골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으로 가득 차서 돌아왔다. 홈스테이 첫날에 물을 사러 갈 때, 갈 때는 빈 통 이였지만 올 때는 시원한 물을 한 가득 채워 왔던, 수도시설이 없는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물 저장소인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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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단 참가자 소감문

ADRF 2014 하계 네팔 해외봉사 소감문

사랑이 나에게 준 선물 유현정, 네팔

설레임 반, 기대 반, 걱정으로 가득했던 네팔 봉사활동. 수도 인 카트만두를 처음 방문 했을 때, 나는 그곳에서 편안함과 여 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수도라면 조금은 화려하면서 도 복잡하기 마련인데, 이 곳 카투만두는 작은 시골 마을 같은 느낌이었다. 네팔 ADRF 사무국으로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카 트만두 시내를 보며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져 갔다. 사무국이 위치한 마을에 도착 했을 때, 이 마을은 전기 공급 이 원활하지 않은데다 사람들의 흔적을 찾기도 조금은 어려 웠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환경이 조금은 당황스럽 고 걱정이 앞섰다. 발칼리안 학교에 향하는 길, 앞으로 만나게 될 아이들에 대한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떨렸지만, 막상 도착 한 학교에서 아이들의 환영을 받으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를 반기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자세히 보고 있자니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너무나 밝게 웃는 아이들을 보니 그와 대조되 는 우리의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웠던 것이 아닐까? 걱정과는 다르게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이끌어 준 아이들의 손길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봉사프로그램 중 아이들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 던 가정방문, 이 시간이 나에겐 너무 특별했다. 사실 현지직원 들이 통역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화를 모두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아이들의 눈을 통하여 그들의 삶을 느끼고, 꼭 붙잡은 손을 통하여 아이들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해외봉 사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조금씩 가까워 질수록 나 역시도 아 이들을 통하여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위 한 교육봉사활동을 한국에서부터 조금 더 신중을 기울여 준비 하고, 수업에 임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는 네팔에서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교육, 그 한계에 너무나 속 상했다.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해주고 싶은 것들을 해 줄 수 없는 작아 보이는 내 모습이 너무 답답했다. 우리 팀원들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서로가 더욱 더 힘을 내 어 두 번째 봉사지인 부미마타 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높고, 깊 은 산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산길이 높고 험해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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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단 참가자 소감문

까지 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산 꼭대기에 다

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서로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을

다라 부미마타 학교에 도착했을 때, 학교 입구에서 본 네팔과

텐데 너무 짧기 만한 시간이 원망스러웠고, 하루하루가 너무

대한민국 국기가 나의 눈을 사로 잡았고, 태극기를 본 그 순간

나도 소중했다. 해외봉사활동에 참여하여 네팔 아이들을 만나

가슴 속 깊이 숨겨져 있던 나의 뜨거운 애국심을 느끼게 만들

면서 봉사를 통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

었다.

었으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과의 스킨십 을 통해 나는 내 가슴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

드디어 아이들과 가장 가까워 질 수 있는 프로그램, 홈스테

으며, 내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고 소중한 생명에 감사할 수 있

이를 하게 되었다. 무섭기도 하고 아이들과 낯선 환경에서 같

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내게 해외봉사활동이라는 기회가 다시

이 지낼 생각을 하니 자신감이 자꾸 떨어졌다. 하지만 매일 위

주어진다면 아이들에게 후회 없는 사랑과 관심을 주고 싶다.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학교와 집을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과

또한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머리가

화목하고 여유로운 그들의 삶에 동화되고 흡수되어 갔다. 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가슴이 울려서 행할 수 있는 진정성 있

아가는 풍습과 문화는 다르지만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서로

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의 미래를 다

를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과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소

시 계획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시간을 가슴 깊이 새

중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부미마타 학교의 아이들을 위한

기고, 네팔 아이들을 떠올리며 삶에 대해 깊게 생각 해보아야

교육봉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네팔 선생님들도 적극적으로

할 것 같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을 가슴 속 깊은 곳에 새

도와주셨고 매시간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들의 진정성 있는 태

기며 지금 느낀 감정들이 나의 삶에 오래 남아 있기를 바란다.

도에 수업의 분위기 또한 진지하면서도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

이번 네팔 해외봉사활동이 내 인생에 의미 있는 한 페이지를

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더라면, 아이들

장식한 것 같다.

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과 우리의 부족 함에 너무 부끄럽고 후회가 된다. 아이들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화려한 환영식과 폐회식을 받 으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무 큰 대우를 받은 것 같다. 사실 몸둘바를 몰랐다. 그 덕에 환영회 이후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 동에 더욱더 열정과 힘이 생기기도 했다. 폐회식과 함께 마지 막 아이들과 헤어짐을 앞두고는 너무 속상했다. 우리에게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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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홍보대사

Adrf 2014 하계 캄보디아 해외봉사 소감문

열흘간의 꿈, 해외봉사 이준영, 캄보디아

열흘 동안 꿈을 꾼 것 같다. 캄보디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는데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그 아이들에게 가급적 눈을 맞

나는 이 해외봉사를 오게 된 과정을 생각했다. ‘왜 세계의 절반

추고 “쭘 리업 쑤어”라는 서툰 인사말을 건네었을 때, 내 인사

은 굶주리는가?’라는 책과 재활학교 도우미 봉사활동이 나를

에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 수줍은 아이, 무뚝뚝한 아이들이 있

해외봉사로 이끈 것 같다. 의무감이랄까 이끌림이랄까, 내 청

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무뚝뚝한 아이들이 더 좋았다. 마음을

춘에 해외봉사라는 경험을 꼭 포함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 결

열려고 하는 머뭇거림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말도

국 2014년 여름 방학에 adrf 캄보디아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걸고, 장난쳤던 것 같다. 쩜로은랏에서의 첫 수업은 객관적으

재정상황 때문에 갈등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된

로 매끄럽지 못했다. 그러나 수업 도중에 처음으로 학생들 하

다는 생각에 철없이 부모님을 설득해 가게 되었다. 내게는 그

나하나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가 통하진 않지만 서로가 마음

만큼 소중한 기회였기에 두려워지기도 했다. 봉사에 최선을

의 문을 조금씩 열어갔던 것이 낭만적인 기억이 되었다.

다할 수 있을지, 이 경험이 단순히 ‘다녀왔다’, ‘해봤다’라는 식 의 기억으로만 남지는 않을지 고민했고, 이 고민에 대한 두려 움을 가슴에 새기고 봉사에 임하리라 다짐했다.

쩜로은랏의 둘째 날, 교육봉사 시작하기 전 학교의 공기가 많 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첫날에는 수줍어하던 아이들이 먼저 달려와 안기고, 웃어주었다. 쉬는 시간, 세발 뛰기를 하며

쩜로은랏 학교에서의 봉사는 그 걱정을 잊게 해주었던 것 같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그렇게 한바탕 뛰놀고, 수업이 시

다. 도착하고 몇 분 동안은 내가 캄보디아에 봉사하러 온 것을

작되었다. ‘아기 염소’ 동요와 율동을 배우는데 호응이 좋아 들

실감하지 못한 채 노력봉사를 시작했다. 페인트칠이 처음에는

뜬 마음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앞에서 율동을 하면서

서툴렀지만, 익숙해지고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페

아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춰 보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인트칠이 끝날 무렵 학교에 일찍 온 아이들이 우리를 구경했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우스꽝스러운 우리의 동작에도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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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단 참가자 소감문

환하게 웃어 주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수업을

다. 수업이 끝나고, 눈에 익었던 아이들이 와서 나를 꼭 안아주

마치려고 했지만, 아이들은 다섯 번 더하자고 외쳤다. 아쉬움

었다. 나도, 그 아이들도 이별을 실감하고 있었나 보다. 기분이

이 앞섰다. 더해주지 못한 아쉬움이었다. 그때부터 헤어짐을

참 묘했다. “크뇸 쓰롤라인 네악.” 어떤 언어에서도 “사랑합니

감지했던 것 같다. 마지막 날, 만남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처럼

다.”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듯이, 종이에 적힌 이 말을 꼭 써야

이별이 다가오는 것도 실감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페인트칠

겠다고 했었는데,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이 말을 하고 있는 나

을 마무리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노력봉사 막바지가 되

를 발견했다. 같은 아이를 몇 번이나 안아주고, “리어 하으이”,

어도 페인트 칠 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었다. 부지런하지 못

“쏙 서바이” 똑 같은 작별인사를 반복하며 무겁게 버스에 올랐

한 후회와 완성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페인트칠 속도를 올려

다. 눈물이 났다. 버스에 올라타 마지막으로 학교의 모습을 보

열심히 칠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에는 약간의 빈틈이

았다. 문뜩 우리가 떠나간 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이 밝았던

남았고, 처음으로 최선을 다하지 못함에 땅을 치고 후회한 날

분위기가 삶의 무게에 눌려 어두워지지는 않을지, 우리가 다

이었다.

녀간 자국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지, 3일간의 추억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기억될지.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부디 우

노력봉사에 대한 후회를 남기고 마을 방문을 예정대로 하게 되었다. 내가 만난 가족은 할머니 혼자 생계를 꾸려 겨우겨우

리가 함께한 시간이 행복한 기억이고, 가슴 속에 조그만 불씨 가 되었기를 소망하며 이별을 맞이했다.

살아가고 있었다. 도박과 이혼이라는 부모님의 실수로 아이들 의 미래는 어두웠다. 그 속에서도 발그레한 볼을 붉히며 웃었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이듯, 두 번째 봉사지인 프닛학교의 아침

던, 의사를 꿈꾸던 그 아이가 기억난다.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

이 밝았다. 분위기는 매우 달랐다. 주위는 건물들이 아닌 나무

이냐 물었을 때, 아이는 당장 먹을 수 있는 쌀과 학교 갈 때 타

와 넓게 뻗은 땅이었다. 프닛의 노력봉사는 화단 만들기였다.

고 갈 자전거를 이야기했다. 그 찰나에 내가 해주고 싶다는 욕

벽돌 쌓기는 보기보다 더 집중을 요했다. 처음에 제대로 집중

구가 솟구쳤지만 금방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부딪

하지 못해 2층까지 쌓았던 벽돌을 다시 처음부터 균형을 맞추

혔다. 자전거 하나, 그리고 정기적인 후원도 나에게는 쉽지 않

어 쌓게 되었다. 도와주시던 홈스테이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

았다. 참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금 이곳에서 몸이

과 나의 태도가 안일해졌다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싱숭생숭하

부서져라 일하고, 더 활짝 마음을 여는 것. 그 뿐이었다.

였다.

마지막 교육봉사가 시작되고, 우리 팀은 ‘미니 체육대회’ 라는

프닛학교에서의 첫 교육 봉사 준비 때문에 교실에 아이들을

주제로 아이들과의 놀이를 시작하였다. 색판 뒤집기, 무궁화

못 들어오게 하고 있었는데, 한 말썽꾸러기가 나에게 장난도

꽃이 피었습니다, 숫자놀이. 풍선 터뜨리기. “꺄르르” 깨가 쏟

심하게 치고 놀렸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아 잘 받아주지 못하

아지듯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역시 아이들은 뛰어 놀아야 한

였다. 그런데 우연히 교육봉사 시간, 같은 반에서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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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내 머리 속에 있던 ‘말썽꾸러기’라는 인상 을 점차 지워주었다. 나를 기억했는지 눈도 잘 맞춰주고, 수업 에 열중하는 모습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숫 자놀이 시간에는 어느새 나와 하나가 되어 웃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같이 추고 있었다. 나의 오해에도 나를 잘 따라주었던 그 아이로부터,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둘째 날의 봉사를 모두 마치고, 드디어 홈스테이 가정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가는 발걸음은 너무 신났다. 모두가 아는 ‘곰 세 마리’, ‘강남 스타일’을 부르며 춤도 추면서 집으로 향했 다. 나는 우덤의 집으로 갔는데 우덤의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고, 눈도 잘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나 집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좋았던 것 같다. 가게인지라 마을 사람들과 아 이들이 많이 모이곤 했다. 아버지는 항상 가게 일로 바쁘게 뭔 가를 하셨지만 웃는 인상은 보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드셨고, 할머니께서는 항상 먼저 다가와 우리를 챙겨주시는 인심이 마 치 우리 시골 할머니와 닮았다. 사실, 씻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수도 시설이 전혀 없었고, 항 아리에 들어있는 빗물을 이용해 씻어야 했다. 우리가 사용하 는 수돗물과는 다른 탁한 물이었지만 이것도 경험이라는 생각 에 씻었는데, 생각보다 쾌적했다. 동시에 이것은 그들의 환경 이었고, “여긴 왜 이러지?”라는 불평과 거부감은 봉사자의 좋 은 마음가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과 동네를 돌아다녔다. 농촌이라 그런 지 이웃의 집을 넘나들며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평화로운 마을이 부러웠고, 과연 물질적 풍요로움과 선진 화가 사람간의 정이나 평화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 문이 들었다. 잠자리가 불편할까 걱정을 했지만, 봐도 봐도 예 쁜 막내 친친의 얼굴을 바라보며 게스트하우스에서보다 더 깊 고, 긴 잠을 잘 수 있었다. 홈스테이의 마지막 밤이 지나, 떠나 는 아침이 되었다. 우덤은 애써 아닌 척했지만 이별의 속상함 이 느껴졌고, 그걸 보는 내 마음도 너무 아팠다. 또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면서 그 동안 가족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지 않았고, 서로 더 알아가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그리고 걱정 도 되었다. 우리가 그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 그들의 환경을 어 지럽히고, 신경 쓰이게 한 건 아닌지,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닌지. 프닛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은 미니 체육대회였다. 내가 책임 자였던 만큼 기대도 컸고 걱정도 많았다. 나름대로 준비를 많 이 했지만 경험이 없었기에 정신이 없었다. 얼떨결에 체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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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단 참가자 소감문

회는 시작되었고,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다. 캄보디아 봉사자

고, 밝음 속의 어두움을 보고 슬퍼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간

들에게 전달이 잘 안되어 차질이 생기자, 나는 감정적으로 그

으로써 흐트러지는 법도, 진지해지는 법도 배웠다. 이 봉사를

들을 대했다. 아이들도 지치고, 계획대로 운동회가 진행되지

통해 느낀 것은 봉사는 내 자신을 낮추어 그들의 높이에 맞춰

않아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던 것 같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나

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 대학

니 너무 부끄러웠다. 미안했다. 프닛학교에서의 마지막 날 가

생활, 풍족한 의식주, 가족, 하물며 깨끗한 물도 내가 누리는

장 큰 후회를 남긴 것 같아 속상했다.

것 중 하나이다. 그러나 봉사하러 왔다면, 자신의 생활도, 고 정 관념도, 습관도 최대한 비어내어야 한다. 교육의 부재, 부족

봉사 마지막 날, 희망교실 아이들과 프놈시소와 동물원을 견

한 의식주, 질병 등을 우리의 시선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

학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많이 지쳐 했지만, 그래도 항상 웃

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을 제대로 이

어주고, 손을 놓지 않았던 것이 고마웠다. 이렇게 순수한 아이

해할 수 있고,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캄보디아의 이

들과 작별을 해야 하다니, 마음이 착잡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아이들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우리보다 훨씬 더 높

별은 불쑥 찾아왔다. 또 한 번의 이별에 한 명 한 명에게 여러

은 경지에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의 생각과 마음가짐을 이

번 인사를 하며 나오는 눈물을 참았다. 그 중에서도 우덤, 쩐다

렇게 바꾸어 놓았듯이 말이다. 처음 캄보디아 행 비행기에서

인과의 작별 인사는 정말 슬펐다. 속상함이 남아있을 법한데

했던 다짐은 봉사를 마치는 이 시점에 필요한 것 같다. 이 봉사

도 사랑한다고, 잘 가라고 안아주었던 그 아이들이 모습이 나

가, 그 아이들이 나의 가슴에 무언가를 남겼다면, 이제 단순한

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던 그 형제

추억거리가 아니라 거름이 되어 그 아이들을 위한 일을 생각

를 잊지 못할 것이다.

하며, 내 삶에 감사하고,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봉사를 되돌아 보니, 정말 인생에서 짧은 꿈을 꾼 것 같다. 정 말 많이 웃었고, 가슴 벅찬 행복감을 느꼈다. 후회한 것도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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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단 참가자 소감문

빈곤아동가정방문

그 아이의 집 희망교실에서 만난 그 아이의 미소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아

론 깨끗한 물조차 없는 아이들의 생활을 보며, 우리가 왜 이들

이의 집에서 마주한 이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아이의 집

에게 보건위생교육을 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고, 저녁에

에서 만난 아이는 우리가 알던 그 모습, 희망교실에서의 모습

도 공부할 수 있도록 전기는커녕 자신의 방과 책상조차 없는

과는 달랐다.

아이들을 보며 희망교실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당장 필 요한 것이 쌀이라는 아이의 말에 우리가 왜 급식봉사를 하는

먼 길을 걷고 또 걸어 아이의 집으로 갈 때에는 내리쬐는 뜨

지도, 무엇보다 이들이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나 미래에 보다

거운 태양과 싸우고, 땀을 흘려가며 힘겹게 다다른 아이들의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학교와 교육이 얼마나 필

집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희망교실에서 만나는

요한지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 우리는 먼저 이들이 처한 현실을 알고, 이해해야 했다. 그 동안 우리가 당연시 여기며 누려왔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낡고 허름한, 혹은 집인지 조차 알기 어려운 그 곳에서 아이 들은 그 무엇도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화장실은 물

감사했고, 우리가 받은 혜택을 이들에게 나눌 방법에 대해 고 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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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소식

몽골, 강지은 나는 이들 보다 가진 것은 많지만 늘 더 욕심 냈고, 생활하면서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늘 불평 불만이 가득했 고, 모든 것이 힘들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몽골에서 만난 모 든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그 누구보다 행복 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봉사를 한다고 왔지만, 과연 내가 무엇을 줬는가 라는 생 각이 들었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많이 배워가고 얻어가게 된 것 같다.

몽골, 박제휘 다르이히 희망교실이 있는 언덕에서 빈민촌의 수많은 게르들 을 내려다 본 적이 있다. 이 게르들에 사는 가족들의 아픔을 내 가 하나 하나 다 돌봐줄 수 없다는 생각에 내 능력이 한심하고 아쉽게 느껴졌다. 그 후 직접 그 게르를 방문하여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후 원물품을 전달하게 되었을 때는 내가 이제까지 이 분들의 어 려움들을 편안한 방 안에 누워 TV를 통해 바라보듯 먼 일로 생 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우리의 부족한 수업에도 기뻐해주는 아이들과 봉사를 하러 온 우리가 쉬고 있는 그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는 몽골 스태프들과 나를 너무나 따뜻하게 반겨준 홈스테이 가족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교육을 하던 한국, 대만, 중국 팀원들을 보면서,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몽골사람들이 짊어진 어려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 지만 이들을 도와주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 또한 나를 비롯 하여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모두가 지금처럼 힘을 합쳐서 돕는다면 처음에 내려다봤던 모든 게르의 아픔을 다 감싸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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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소식

캄보디아, 고효정 쩜로은랏에서 기억나는 가장 큰 한가지는 바로 마을방문이었 다. 이혼한 부모님 때문에 할머니 손에 자라고 있는, 의사가 꿈 인 여자아이의 집에 방문하였다. 하나에 1달러에 불과한 해먹 을 만들며, 온전히 막아지지 않는 벽들 안에서 할머니와 아이 들은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렇게 힘든 상황이면 교육을 시키기 힘드실 텐데 교육이 아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믿으시냐는 질문에,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하시는 할머니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가정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 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교육이 캄보디아 전 체에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 다.

캄보디아, 이주희 쩜로은랏에서의 마을방문이 기억에 남는데 내가 갔던 아이 집 은 쩜로은랏 희망교실에 도착한 뒤 제일 먼저 눈 마주치며 인 사하고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아이의 집이었다. 집에 갔는데 외관도 멀쩡하지 않아 비가 오면 온전히 그 구멍 으로 빗물이 다 들어올 것이고 엄마 아빠는 아프신데다가 일 정한 수입이 없어 약 값은커녕 그 날 당장 세끼 식사를 다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처지였다. 만약 나였으면 허름한 우리 집 을 누가 구경 온다고 하면 창피하고 싫었을 텐데 아이는 그런 표정 한 번 짓지 않았다. 아빠가 아프시면 말하지 않아도 먼 길 을 걸어 약을 사오는 착하고 일찍 철든 아이였기에 집도 부끄 러워하지 않았을까.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 웠다. 그리고 학교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내 손을 잡으며 사랑 한다고 말을 하는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밝고 따뜻한 마음 을 가지고 있는 게 기특했고 이렇게 예쁘게 자라준 아이에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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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소식

도희, 그녀의 라오스 파견이야기 내가 찾은 라오스의 희망 한국의 홍보팀에서 일하던 그녀는 라오스 해외봉사단에 다녀온 어느 날, 라오스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사랑을 주고자 갔던 라오 스에서 그곳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왔기에 다시 사랑을 나누어주러 가겠단다. 그리고 벌써 그녀가 라오스로 떠나 간 지 5개월. 조금은 까맣고 마른 모습으로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라오스에서 희망을 찾았다는 한마디와 함께. 최도희 홍보팀

ADRF와 어떻게 연이 되어 라오스까지 가게 되었는지, 그 시작 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현장에서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 은데, 현지 사람들과의 '소통'이라는 부분에서 어려운 점은 없 었나요?

막연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가진 사랑을 나누어주는 일 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취업을 준비하다 NGO 에서 직접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ADRF 와 연이 되어 홍보팀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죠. 그러다 저도 현 장에 직접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1월 해외봉사 단 라오스팀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어요. ADRF를 통해 만난 라 오스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로부터 기대하지 못했던 많은 사랑 을 받고 왔죠. 2주간 라오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사 랑 받는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지 고 있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한 동안 그 사랑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요. 그러서인지 라오스라는 국가 그리 고 그곳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희망교실’이 점점 더 궁금해지 기 시작했죠. 한국보다 먼저, 현장에서 일 해보아야겠다는 결 심이 섰어요. 결국 제 삶의 우선 순위들을 잠시 내려놓고 라오 스와 좀 더 친해지기를 결심했고, 어느새 저는 라오스에 다시 와있었어요.

라오스 지도를 보고 라오스의 역사를 공부하고, 라오스 사람 들 그리고 희망교실 아이들과 소통하며 그렇게 저는 라오스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어요. 생활 면에서는 한국에서의 생활 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너무 나 당연했던 일상들이 라오스에서는 당연하지 않았어요. 물과 전기를 사용하는 것부터 쉬는 날의 여가생활까지 모든 것들이 다 한국과는 달랐고 때로는 제가 한국에서 당연시 여기며 누 리던 많은 것들이 그리울 때도 있었어요. 당연한 것이겠지만 처음에는 문화와 언어가 달라 많이 힘들었 죠. 라오스의 파견이 결정되고, 라오스에 오기 전 제가 다짐했 던 것이 있는데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였어요.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언어뿐 아니라 문화도 너무 많이 다른 거에요. 너무 다르다 보니 어디까지가 내가 이해해야 하 는 부분인지 혼자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다행인 것은 저와 함께 하는 현장의 스텝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같은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다른 언 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라 는 공통된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열쇠더라고요. 의견이 맞지 않을 때나 작은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지?’ 라고 말 을 꺼내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훨씬 수월했어요. 서로간의 소 통과 공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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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소식

현장에서 어떤 어떤 업무를 했는지 궁금해요.

평소 국제개발과 원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현장에서도 다양한 업무를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업무

라오스에 오기 전 제가 쓴 일기와 글들을 보면 개발과 원조, 나

는 ‘희망교실(NEW HOPE CLASS)’ 운영과 관리에요. 한국에

눔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이 보여요. 우리가 이들을 도와줘야

서 일할 때는 제가 홍보팀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온라인으로

하는 이유는 뭘까,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라는 고민이었는데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됐는데 현장에 오니 단순히

라오스 현장에서도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했어

모니터 앞에서 글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과, 희망교실 소식을

요. 그리고 5개월간의 짧은 파견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

전해들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온 지금, 저는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사랑과 진심에서 우러나

제가 한국에서 사진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로 가득

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죠.

한 ‘희망교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노력을 필요로 했어요. 아이들의

라오스는 현재 최빈국을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변화와 발전을

인성교육과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교안 작성부

거듭하고 있어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물질적인 원조를 받

터, 아이들을 위한 급식과 교구 준비, 아동 상담 및 관리, 봉사

고 있죠. 하지만 저는 단순히 물질적인 원조만으로 이들이 더

자교육 및 관리 등 희망교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관리하고,

나은 삶과 행복한 미래를 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희망교실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주 업무였어요.

현장에서 그 나라와 사람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 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확 인하는 것보다 그 변화를 이끌어 낼 현지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들의 문화와 현실에 맞게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변화의 기 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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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소식

라오스는 교육최빈국이라고 들었어요. 실제로 현장에서 교육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힘이 되는 부분은 바로

사업을 진행해보니 어떠셨나요? 그리고 ADRF의 희망교실이

아이들의 변화된 모습이 아닐까 해요. 언제 가장 힘이 나고, 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요.

람을 느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라오스는 UN이 지정한 최빈국에 속해 있어요. UN에서는 연

희망교실 아이들을 보면서 그 동안 제가 하고자 했던 일, 그리

간 개인소득이 900불 이하인 나라를 최빈국으로 분류하는데,

고 앞으로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찾았어

라오스는 최빈국을 선정하는 여러 가지 기준 중 특히 교육에

요. 해외봉사단 이후 파견을 통해 다시 라오스 희망교실로 돌

있어 취약점이 많다고 해요.

아온 날, 복도를 지나가는 저를 알아보고 박수 치며 좋아하는

정규수업은 국어, 수학, 예절, 자연, 미술 등이 있지만 자연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잘 왔구나 생각했죠. 다른 무엇보다도

미술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

이 아이들이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의 이유에요.

라 다른 예체능 수업은 전무해요.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제게 물어보곤 했어요. 왜 이 일

구하기 어려움은 물론이고요. 학생수에 비해 학교도 선생님도

을 선택했는지, 굳이 먼 라오스까지 온 이유는 무엇인지. 저도

너무 적은 상황이에요.

가끔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 때문에 속상할 때가 있곤

또한 라오스는 많은 것을 수입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고 아

했는데, 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모든 질문의 해답을 찾았어요.

이들은 어려서부터 외국제품(태국, 중국)을 쓰며 태국방송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이 아

보며 자라요. 생활의 작은 부분부터 문화까지 외국의 의존도

이들의 모습이 이 모든 질문의 해답이었어요.

가 높은 편인데 빠른 개방은 의존도를 더 심화시키고 있어요.

희망교실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결과를 빨리 보려고 욕심부릴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라오스 사람들을 지나치게 여유

때면 일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아무래도 교육사업

롭고 의존적이기 때문에 공부나 자기 발전에 흥미가 없다고

이라는 것이 다른 개발원조사업과는 다르게 일의 결과가 빠르

평가하죠.

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

하지만 제가 만난 희망교실 아이들은 언제나 작은 것 하나에

고 가끔 섭섭하기도 하더라고요.

도 열정적이고 감사할 줄 아는 아이들이었어요. 자기 나라를

그럴 때마다 현지 스텝들과 희망교실 보육교사들, 아이들을

사랑하고 국가를 위해서, 그리고 세상에 더 많은 사람들을 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아이들을 위해 매주 희망교실

해서 그리고 가족과 친구를 위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

교안을 만들며 노력하는 스텝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달려

했어요. 물론 각자의 ‘훌륭한 사람’의 정의는 달랐지만요. 처음

와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사랑스런 아이들, 학교 시험과 희망

부터 이 친구들이 이런 꿈을 가지고 있진 않았어요. 희망교실

교실 숙제 검사가 끝나면 쪼르르 달려와 자랑하는 아이들, 수

그리고 그곳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인성교육을 통해 아이들도

업 시간 필기가 담긴 공책을 찢어 만들어 건네준 아이들의 작

현지 스텝들도 점점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은 선물 하나하나가 제게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힘이 됐

거죠. 이렇게 점점 변화하는 아이들과 현지 스텝들을 보면, 라

어요. 내가 보고 있는 이 아이들이 이유이자 우리의 결과이니

오스는 최빈국이라기 보다 무분별한 개발에서 지켜야 할 국가

조급해 하지 말자고 생각했죠.

이고, ADRF의 희망교실과 이를 통한 교육이 가장 필요한 국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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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소식

아이들과의 추억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돌이켜보 면 전 정말 아이들에게 해준 것이 없는데 아이들은 제게 너무 나 많은 것을 줬어요. 아직도 아이들의 웃는 얼굴, ‘아짠 도이’ 라고 저를 부르며 달려와 안기던 아이들, 그리고 장난스럽게 옆구리를 찌르고 도망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당일 날, 사무실에서 제 물건들을 정리하

파견이 끝난 후 앞으로의 계획과 변화가 있다면?

고 있는데, 아이들이 사무실로 들어와 편지와 꽃 등 선물을 건 네줬어요. 편지봉투가 없어 직접 만든 편지 봉투 안에 공책을

다녀와서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에요. 앞으로 다

찢어 써준 편지, 자기가 제일 아끼는 인형을 선물로 준 아이도

시 한국사무국에서 일하면서도 제가 라오스에서 눈으로 직접

있었죠.

본 것과 그곳에서 느낀 감정들을 잘 간직하고 또 더 많은 사람

전 정말 해준 게 없는데 제가 자신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홍보팀에서 일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

는 것을 안다며 아짠 도이가 준 모든 것, 모든 사랑을 기억하겠

게 제가 느낀 것을 전할 수 있겠죠.

다고 쓴 아이의 편지를 읽으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가슴 속에

라오스는 그 어떠한 개발과 발전보다는 사람과 문화를 중시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너무나 많은 말들이 떠올랐는데 그 순

하는 교육, 이들을 올바른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간만큼은 제가 라오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어요.

ADRF의 인성교육이 꼭 필요한 국가에요. 현장에서 존재와 필

희망교실을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밝고 긍정적으로 바뀌는 아

요성을 느끼고 나서도 모른 체 한다면 저는 그곳에 가지 않은

이들, 자신의 꿈을 자신 있게 말하는 아이들, 자신의 것을 나

것만 못하겠죠. 그래서 앞으로도 제가 만난 라오스의 ‘희망’들

누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을 위해서, ‘콘 까올리(한국사람)’ 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

꿈을 모두 이루어주고 싶다는 현지 자원봉사자와 같은 비전을

게 받은 큰 사랑을 보답하기 위한 길을 또 찾아 나설 거에요.

품고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는 스텝들. 5

마지막으로 비전과 가치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 삶

개월간 라오스에서 제가 찾은 '희망'은 바로 이 사람들이에요.

인지 깨닫게 해준 희망교실 아이들과 멀리서 라오스 아이들을

교육을 통해 이들의 삶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제

위한 도움의 손길을 주신 수많은 후원회원님 덕분에 힘들고

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느끼면서 보람을 느꼈어요.

외로운 상황에서도 진정으로 즐겁고 행복할 수 있었다고 감사 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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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소식

해외아동결연 이야기

그는 말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간다고. 그에게는 단순

나의 소중한 인연, 소렉

년간 열정을 쏟았던 직장을 떠나 스스로를 찾아 떠나는

히 처음 가는 해외, 그리고 해외봉사단이 아니었다. 다 여정이자, 마음으로 낳아 키우고 있는 그의 아이 소렉을

이혁 후원회원님

만나러 가는 여정이었고, 누군가에게 나눔을 실천하러 가는 여정이었다. “너무나 기대되고 흥분돼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무엇을 할지는 하나도 걱정되지 않아요. 제가 캄보디아에 가서 소렉을 만나면 어떤 느낌일지, 그리고 해외봉사를 통해 나는 어떻게 변화할 지가 가장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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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그리고 시작 힘들게 취업문을 뚫고 직장생활을 한지 어느덧 5년차가 되 니 이젠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리고 이제는 조금이라도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 었어요. 하지만 생각만 했을 뿐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았고 그 냥 그렇게 막연히 생각만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죠. 그러던 어 느 날,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 본 프로그램에서 부모에게 버 려져 꿈을 꾸는 것은 사치로 느껴지고, 삶의 고통이 죽는 것보 다 클 것만 같은 아이를 보았어요. 그리고 배고픔에 굶주려 길 거리에서 동냥을 하는 아이, 한 순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잘못된 선택을 해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아이 등 우 리와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했 어요. 며칠간 고민을 한 끝에 후원을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어 야겠다고 생각했고, 어떤 아이를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 지, 우리나라의 NGO단체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그 러던 중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병을 치료해 주고, 우물을 만들 어 주는 등 단기적인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교육=희망’이라 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지속 가능한 지원을 하는 ADRF를 알게 되었죠.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ADRF의 활동이 마음에 들어 ADRF를 통해 후원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 소식지랑 후원카드를 받았을 때, 내 후원금으로 어떤 아 이를 돕는지, 어떤 활동이 이루어지는지를 알게 되니 너무 뿌 듯했어요. 4만원이라는 돈이 이렇듯 아이들의 삶을 보다 긍정 적으로 바꿀 수 있으니 너무 좋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아동카드에 담긴 아이의 사진을 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중간 에 끊지 말고 끝까지 책임지고 후원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 짐하게 되었죠.

한 아이와의 인연 후원을 통해 인연을 맺은 아이는 캄보디아에 사는 11살의 ‘룬 소렉’이라는 소년이에요. 어려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 기 되기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죠. 여느 시골아 이처럼 순박하고, 미소가 아름다운 아이에요. 그래서인지 소 렉의 사진을 볼 때마다 그 미소에 빠져 나도 모르게 저절로 기 분이 좋아지고, 처음 소렉의 가족사진, 편지를 받았을 때는 말 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함과 감동이 밀려왔어요. 연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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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럽게 쓴 글씨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왜인지 모를 먹먹 함을 느끼기도 해요. 해마다 아동성장보고서를 받으면서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성장하는지를 보며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하지만 소식 지, 아동성장보고서, 편지 등을 받았을 때만 소렉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매달 자동 이체되는 후원금을 보며 나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스스로 만족했어요. 저도 모르게 캄보디아를 가서 소 렉을 만나고 싶다, 아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보다 단순 하게 끝까지 후원을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소중한 인연의 끈을 내 스스로 놓아버리려 했던 것 같 아 소렉에게 새삼 미안해지네요.

소렉을 만나다 소렉이 보내온 편지에 언젠가 꼭 보고 싶다고, 자신을 보러 캄보디아에 오지 않겠냐는 말이 써있었어요. 그 편지를 볼 때 만 해도 제가 실제로 캄보디아에 가서 소렉을 만날 수 있을 거 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삶에 지친 제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일을 쉬면서 나를 찾고 싶었 고 이왕이면 의미 없는 여행보다는 해외봉사단을 통해 봉사활 동을 하며, 소렉도 만나보고 싶었죠. 마침, 제가 후원하고 있는 ADRF 캄보디아 해외봉사단이 시기를 비롯해 모든 것이 딱 들 어맞았어요. 소렉을 만나러 가라는 운명처럼 느껴졌죠. 그 동 안 꾸준히 후원해 왔지만, 물질적인 것만 주는 후원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언젠가 내가 직접 몸으로 움직이고 체험하는 나 눔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캄보디아 해외봉사단에 참가하 게 된 큰 계기가 되었어요. 캄보디아에 도착해 소렉을 만나기 하루 전, 설렘과 기대감에 잠을 이룰 수 없어 결국 이리저리 뒤척이며 뜬눈으로 밤을 지 새웠던 기억이 나요. 몽롱한 정신 상태에서 학교에 도착한 첫 날, 저는 150여명의 아이들 중에서 소렉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어요. 제 생각보다 체구가 더 작았지만 그 아이가 제가 후 원하는 아이, 소렉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죠. 미소가 아름다운 소년이었어요. 소렉을 보자마자 와락 끌어 안으며 ‘크뇸 쓰롤 라인 네악(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하고 속삭였는데 가슴이 왜 이렇게 쿵쾅쿵쾅 뛰는지 심장이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 았어요. 마치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 고 어색해 하던 소렉도 곧 저를 안으며 미소를 보여주었어요. 수업 시작 전이라 몇마디 나누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알고 있 던 가족처럼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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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 제게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잡아주는 소렉의 행동 에 마음 속까지 따뜻해졌죠. 홈스테이를 통해 만난 소렉의 가족은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대가족이었는데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챙겨주고 아끼는 모습은 정말 부러웠어요. 우리는 언 어가 달라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과 몸짓을 통해 서로 를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소렉의 집에서 하루 일을 마무리하 며 자려는 순간 소렉이 제게 다가와 함께 자도 되는지 수줍게 물어보는데 그 모습이 어쩜 그렇게 예쁜지 저도 모르게 미소 가 지어지더라고요. 나란히 누워 서툰 캄보디아어, 그리고 영 어와 손짓으로 대화하다 마주보며 잠이 들었어요. 내가 후원 하는 아이와 대화하고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요?

내 후원이 소렉에게 미치는 영향 해외봉사활동을 통해 소렉을 직접 만나고, 소렉이 희망교실 에서 공부하는 것을 보면서 작지만 나의 후원이 소렉에게 희 망이 되고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소렉 은 의사라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 해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어요.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인지 성적도 점점 더 좋아지더라고요. 제 후원을 통해 받 는 희망교실의 인성교육과 다양한 수업, 급식봉사, 현장학습 등을 함께 해보니 단순히 학술적인 지식만 쌓는 것뿐 아니라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요. 그 경험을 통해 소렉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멋지 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 후원을 시작했을 때는 단순히 후원금만 매달 꾸준히 내면 내 몫은 다 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소렉을 만나고 나 니 후원금은 제가 아이에게 주어야 하는 것들 중 극히 작은 일 부분이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 관심과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해 배움의 기회조차 없던 아이들이 후원을 통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요. 그 교육과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아이들은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희망과 꿈을 갖게 되겠죠. 후원, 사랑과 관심 그리고 교육이 아이들이 자신의 존 재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왜 배워야 하는지 스스로 느끼고 변화하는 소렉의 모습을 보니 부족하지만 나의 작은 사랑과 관심이 큰 도움이 되고 있 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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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시작 안녕은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

껏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한 것을 배우며 성장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껴보니 이 아이 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해외봉사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소렉을 비롯 한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더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

우리나라는 과거에 우리가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았다는 생

회가 너무 커요. 내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봉사에 임했는지, 적

각이 들어요. 우리나라는 우리 힘으로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극적으로 참여했는지 반성을 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이번

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제가 조금이나마 다른 사

봉사활동을 통해 제가 아이들에게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

람, 그리고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또 다른 아이를

은 것 같아요.

후원하며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이에게 희망을 나누어 주어 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어요.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일들은 다 했지 만 그럼에도 늘 불만이 많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했어요.

해외봉사활동 기간 내내 봉사에 임하는 그의 자세는 남달랐

하지만 캄보디아 아이들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늘 웃

다. 물론 맏형으로서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에 앞

으며 밝게 지내고 있었어요. 자기 자신보다 항상 남을 먼저 생

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나 프로그램 하나 하나를 준비함에

각하며 배려했고, 더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보

있어서도 보다 신중했다. 소렉을 대하는 그의 얼굴의 미소는

다는 지금 삶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살아가고

소렉이 그가 마음으로 낳은 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했다.

있었죠. 이러한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제 마음 이 정화되었어요. 먼저 다가와 웃어주고, 안아주고 장난치고.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기 마련인데, 함께 있는 동안 더 많

아이들을 통해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의 일상 속에서는 느끼지

은 것을 나누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소렉과 헤어지

못했던 평온함을 느꼈어요. 과연 이러한 평온함을 다시 느낄

는 날, 함께 앉아 희망교실 수업을 들었는데 곧 다가올 이별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요. 앞으로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짐작해서인지 소렉이 애써 울음을 참는 모습을 보았어요. 저

언어가 다르다고 소극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야겠어요. 또, 돈

도 감정을 억눌러야 했죠. 헤어질 때는 서로 울음을 참고 애써

으로만 후원 하는게 아니라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웃으며 안녕이라고 인사했죠. 꼭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소렉에

찾아야겠다고 느꼈어요.

게도 제 자신에게도 약속했어요. 캄보디아 아이들과 제 후원 아동 소렉을 만나러 꼭 다시 오겠다고요. 소렉이 언제나 지금

처음엔 나눔을 행동으로 옮기려니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도

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았죠. 그 불안함과 걱정이 해외봉사단에 가기 전엔 기대감

항상 건강하구요. 저도 언제나 소렉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

이 되었고 이제는 행복이 되었어요. 아이들을 통해 제가 이제

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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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홈스테이를 짠티 세라이 네 집에서 했는데, 세라이의 첫 인상은 의젓하고 착한 맏아들이었다. 한창 자기 자신밖에 모를 열 두 살인데, 즐겁게 놀고 있던 와중에도 한 살 박이 여동생이 울면 가서 어르는 모습을 보여 나를 감동시켰다. 하지만 나와 놀 때 는 작은 장난에도 즐거워했고,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도 계속 놀고 싶어하는 것 이 영락 없이 순수한 아이다워서 나도 더욱 애착이 갔다. 마지막 날 밤,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옆에 누운 세라이가 내 손을 꼭 잡고 흐느끼는 것이 아닌가? 행여 내 잠에 방해라도 될까, 다른 한 손으로 연신 눈을 훔치며 곧 다가올 이별을 슬퍼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미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비록 삼일 뿐인 만남이었지만 이미 나는 이 아이를 진심으로 가족처럼 사랑하고 있구나. 나 도 지금 굉장히 이 아이와 헤어지는 것이 슬프고 안타깝구나. 그리고, 난 확신했다. 나 는 앞으로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랑을 하고 싶다고. - 캄보디아, 박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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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RF와 함께하는 청소년 녹색장터 ADRF는 지난 7월 12일부터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여의도 한강공원 입구에서 녹색장터를 진행하고 있 습니다. 한국 청소년들의 바른 인성과 글로벌 시민의 식 함양을 위해 다양한 교육 및 봉사 프로그램의 일 환으로 ‘ADRF 녹색장터’ 운영을 통해 아동 및 청소 년이 함께하는 중고품 재활용 장터를 운영하여 자원 재사용의 의미와 사회적 경제 활동 그리고 나눔에 대 해 알아갈 수 있는 생생한 교육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녹색장터 참여문의 070 7842 2272

이화여대 ADRF 봉사동아리 ‘이화나슬’ 농촌 봉사활동 프로그램 진행 지난 8월 11일부터 2박3일 간, 이화여대 ADRF 봉 사동아리 ‘이화나슬‘ 7명이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으로 농촌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이화나슬은 학 기 중 중학교대상 나눔교육 및 동화책번역활동 등 다 양한 ADRF활동에 참여하는 봉사동아리입니다. 아동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준비한 나눔교육과 아이 들이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과학키트를 통한 교육봉 사뿐 아니라 이틀 동안 2곳의 노인정을 방문하여 어 르신들께 피부관리와 네일아트, 안마 및 문화공연을 하며 사랑스러운 손녀의 역할까지 맡아 적적하신 마 음을 조금이나마 채워드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농촌 일손돕기 봉사로 콩밭메기, 고추따기 등의 노력 봉사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희망드림 3기’ 해외사업장에 상반기 번역동화책 전달 희망드림3기의 따뜻한 마음과 뛰어난 재능으로 번 역된 동화책들이 ADRF 해외봉사단을 통해 해외사 업장으로 전달되었습니다. 희망드림은 영어라는 특 기와 봉사정신을 갖춘 220여명의 청소년으로 이루 어진 ADRF 동화책 번역동아리입니다. 지난 3월부 터 해외빈곤아동들을 위한 동화책번역작업을 진행 하며. 먼저 모든 작업이 완료된 120여권의 책을 인 도네시아, 네팔, 캄보디아, 몽골 총 4개국으로 전달 하여 희망교실 아동들의 수업교재로 활용되고 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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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교 자유학기제 진행 2학기가 시작되는 8월 말, ADRF는 나눔실천의 의 지를 가진 국내 청소년을 대상으로 ‘글로벌 리더쉽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봉은중학교, 언남중학교, 여 의도중학교, 용강중학교 총 4개교에서 해외 빈곤아 동 교육지원 전문 기관으로서의 전문성을 활용해 사 회적 문제와 이슈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청소년 들이 능동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접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나눔교육을 진행하고 있 습니다. ADRF가 가진 국내외사업 인프라와 정보를 제공하여 활동에 대한 구체적 목표 설정을 돕고 사업 지원 방향 설정과 실질적 사업 시행, 해외 교육봉사 활동 참여까지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캄보디아 프닛 초등학교 소풍 지난 8월 11일 ADRF 캄보디아 프닛 희망교실에서 는 소풍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70여명의 희망교실 아동들은 '치소 산'과 '동물원을 방문했습니다. 오랜 만에 밖으로 나온 탓인지, 아이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연신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날의 소풍을 통해 프닛 희망교실 아이들은 템플의 역사를 배우고 동물들과 자연을 어떻게 보호하고 사 랑해야하는지 배우는 시간이되었습니다. 특히 이 날 소풍은 한국에서 온 ADRF 하계 해외봉 사단원들이 함께하여 프닛 희망교실 아이들에게 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라오스 탄미사이 희망교실, 수돗가 증설 지난 7월 28일, 라오스 탄미사이 희망교실에는 수 돗가가 새롭게 증설되었습니다. 그동안 라오스 탄미사이 희망교실 아이들은 학교에 서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없어 어려움이 많았는데 새롭게 증설 된 수도시설을 통해 아이들은 깨끗한 물 은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연결된 수도시설덕분에 희망교실 근처 탄미 사이 주변 마을 가정들까지도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태랑중학교의 김종실 선생님의 도 움으로 진행된 것으로, 탄미사이 마을 및 교육부에서 는 김종실 선생님과 ADRF라오스에 고마운 마음을 담은 감사장을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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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금 증액 감사 메세지

후원금 증액 감사 메시지

ADRF 후원회원님, 감사합니다.

변함없는 사랑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동들을 위한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후원회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난 호 소식지를 통해 안내드린 바와 같이 수혜국가의 물가상승으로 인해 해외아동결연 사업에 어려움을 느 껴 ADRF에서는 불가피하게 2013년 1월 이후 해외아동결연을 신청하시는 후원회원님의 월 후원금을 월 4만원 으로 변경했습니다. 이에 더해 3만원 이하로 후원하시는 기존 아동결연 후원회원님께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홈 페이지와 전화, 문자 등을 통해 후원금 인상 동의 절차를 받았고 다수의 후원회원님께서 후원금증액캠페인에 동 참해 주시고 계십니다. 아동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후원금 증액에 동의해주신 모든 후원회원님께 깊은 감 사를 드립니다. 빈곤이나 사회적 차별로 인하여 다양한 교육의 기회로부터 소외되었던 한 아동은 후원회원님을 만나, 보내주신 후원금을 통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꿈을 실현해 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받게 됩니다. 또한 이번 후원금증액 캠페인을 통한 회원님의 후원금 증액덕분에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후원아동들은 기존의 교육혜택을 지속적으 로 지원 받게 됩니다. 아프리카아시아 난민교육후원회는 후원회원님의 사랑을 통해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고 가정과 지역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더욱 투명하 고 효율적인 후원금 사용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후원금 증액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동의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아프리카아시아 난민교육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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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님의 사진을 선물해주세요!

희망교실 아이들을 위해 후원자님은 어떤후원해주세요 분이신가요? 학용품을

* 후원자님의 사진은 10월 말 후원아동에게 일괄적으로 전달 됩니다. 2014.10.17

제게 사진을 보내주실 수 있나요? 제 방에 걸어두고 매일매일 보고 싶어요! 후원아동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후원자님의 얼굴이랍니다. 후원자님의 최근 사진을 아동에게 선물해주세요. 아동을 행복하게 해줄 멋진 선물이 된답니다. 후원아동에게 사진 보내는 방법 1. 대표번호(02-569-1928)를 저장한 후 ADRF 카카오톡으로 보 낸다. 2. 이메일(sponsorship@adrf.or.kr)로 보낸다. * 메시지를 보내실 때, 후원자님 성함을 꼭 적어주세요.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5-109 다모빌딩 1층 Tel.02)569-1928 Fax.02)569-2229 홈페이지www.adrf.or.kr 블로그 http://blog.naver.com/adrf_hope E-mail adrf1994@adr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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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나눠요

아이들의 꿈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주시는

후원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신규후원 회원님 7월

8월

강미정 강상길 강 석 권영덕 권오현 권희택 김기정 김남진

강 민 김미정 김은희 김일환 김 철 남가민

김도훈 김선호 김성탁 김소진 김수미 김슬기 김아름 김영석

대경당 박수연 박준홍 이두호 이민숙 이민영

김재현 김정아 김진아 김채윤 김평호 김형인 김희정 남순일

이병찬 이봉선 이주현 임석규 임설화 임지은

동은비 박규자 박성남 박세이 박송임 박 승 박영훈 박춘홍

정민구 정예진 지갑영 채승윤 채민수 최내화

서병희 서선경 손선혜 신수미 양대훈 양은주 양현석 엄준희

최달주 최재권 해동서예학회

연희모 오승철 오주희 원민우 유경수 유양숙 유현하 이상원 이선희 이시아 이애숙 이연옥 이종환 이현선 임선우 임수지 장영민 장재승 정연옥 정연화 정영미 정우석 조민규 조용진 지수현 최권석 최용호 최종웅 한병례 한성민 함기영 황문하 황우흔 황일곤 경기외고 Once upon a time 대창콤프레셔 우에야마 치에코 (주)동주에너지 (주)렌트카매니아 충남영양교사 헬프투게더

물품후원 7월

뮤트컴퍼니 서대전여고 엘리트용인 국가대표 용인대 선일태권도 지구나무 퀸텀스토리

8월

광주광역시청 뮤트컴퍼니 바이크존(대전지사) 송지윤 조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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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아직도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수많은 미소가 있습니다. 아동결연, 한 아이의 미소를 책임지는 소중한 약속입니다.

아동결연 문의 070 7842 6639

ADRF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동들의 교육지원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후원문의 02)569-1928

홈페이지 www.adrf.or.kr

E-mail adrf1994@adrf.or.kr

후원계좌 국민은행 814-01-0391-339 (예금주: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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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ADRF 희망소식 9+10월호  

2014 ADRF 희망소식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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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ADRF 희망소식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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