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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와 표현 I

=미디어 문예창작학과= =2013260616 김 요 한=


[자기소개서]

제 글이 당신의 삶속에서 (독자 : 언젠가는 출판될 제 글을 읽는 독자) 어릴 적부터 과학자를 꿈꾸며 책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마음 속에는 우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다른 사람에 대한 질문들이 쌓여갔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 각들을 유난히도 궁금해 하던 아이는 심리학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알아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이 되는 심리학. 아이는 심리학을 배우고 심리치료사가 되기 로 마음을 먹게 됩니다. 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던 나날 속에서 친구들의 고 민을 듣고 위로하는 사람이 된 아이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 다. 아이는, 이제는 키도 커지고 생각이 넓어진 소년은. 사람들의 삶이 각자의 고민과 각자의 주관을 가지고 걷고 있다는 것을, 사람과의 소통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하여 짐을 싸들고 기숙학교에 들어간 소년은 수많은 상처와 힐링을 통하여 더욱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즐거운 소통은 오히려 소년의 진로를 심리치료사에 서 방황하는 십대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던 소년은 문득 자신이 어릴 때부터 지금 까지 책과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잃은 줄 알았던 소년에게 작문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글에 대한 꿈을 키우던 소년이었지만, 글로써 먹고살기 에 세상이 너무나 험난해 보였던 소년은 대학 진로를 환경공학자로 바꾸고 원서를 지웠 했습 니다. 그러나 세상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세 번째의 도전에서 드디어 모든 것을 버리 고 작가의 꿈을 생각하며 지원한 문예창작 학과는 소년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소년으로 자라오면서 수많은 좌절과 역경이 있었지만 저는 결국 작가의 자리에 어르려는 작가 지망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제가 가장 좋아했던 책과 세상 속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글을 쓰기위해 준비 중입니다. 이것에서 글의 성질을 배우고 생각을 넓혀서 언젠가 사람들, 제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금 일으키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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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제 글이 당신의 삶속에서 (독자 : 언젠가는 출판될 제 글을 읽는 독자) 어릴 적부터 과학자를 꿈꾸며 책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마음 속에는 우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다른 사람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죠. ‘다른 사람의 생각들 은 과연 어떻게 되어있을까’ ‘혹시 이런 내 생각을 누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항상 사람에 대 해 궁금해 하던 아이는 결국 심리학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알아내고 그 사람 의 마음을 치료하는 심리학. 그러나 심리학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아이는 자신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재능을 살려 친구들의 고민을 듣 고 위로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아이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각자의 삶을 사랑하던 아이. 아이는 생각과 키가 자라난 소년이 되어 사람 들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내성적이었던 소년은 더 많 은 소통과 자신의 세상을 넓히기 위해 기숙학교에 들어갈 결심을 합니다. 기숙학교에서 많은 만남과 관계를 가지던 소년은 사람 각자가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지를 목격하고 그 삶들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세상들을 남들에게 알려 주고 싶던 소년.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소년은 자신의 꿈을 심리학자에서 작가로 바꾸게 됩 니다. 각자 가신 세상들이 자신의 글 속에서 빛나기를 바라면서요. 자신의 꿈이 과연 심리학이 맞는지 방황하며 지내던 시간들, 막연한 심리학에 대한 두려움 에 시달리던 시간들은 시와 소설을 집필하는 시간들과 시와 소설들을 읽어가는 시간으로 바뀌 어 갔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뜻대로 되는 법은 없더군요. 작가가 되겠다고 공부를 포기하 고 전전하던 저에게 성적의 하락과 부모님의 불안이 닥쳐왔고, 소년의 꿈은 방황하게 되었습 니다. 결국 남들보다 더 먼 거리를 걸어서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돌아온 소년은 결국 문 예창작과에 들어가게 되었고, 작가의 꿈을 이뤄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시간들을 걸어오며 아이는 소년이 되고 소년은 제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언제나 좋고, 그들의 삶이 언제나 아름다운 저는 항상 행복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내려 갑니다. 그렇게 글을 쓰고 있노라면 언제나 많은 생각들이 지나가지만, 언제나 변하지 않는 하나가 있습니다. 제 글이, 삶속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한번 씩 생각나며 다시 일어날 힘이 되었으면 합니 다. 삶에 지쳐 내려오는 계단의 층계에서 문득 떠오른 웃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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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글과 삶 (독자 : 언젠가는 출판될 제 글을 읽는 독자) 어릴 적부터 과학자를 꿈꾸며 책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마음 속에는 우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다른 사람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죠. ‘다른 사람의 생각들 은 과연 어떻게 되어있을까’ ‘혹시 이런 내 생각을 누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항상 사람에 대 해 궁금해 하던 아이는 결국 심리학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알아내고 그 사람 의 마음을 치료하는 심리학. 그러나 심리학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아이는 자신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재능을 살려 친구들의 고민을 듣 고 위로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아이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는 생각과 키가 자라난 소년이 되어 사람들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 다. 그래서 그때까지 내성적이었던 소년은 더 많은 소통과 자신의 세상을 넓히기 위해 기숙학 교에 들어갈 결심을 합니다. 기숙학교에서 많은 만남과 관계를 가지던 소년은 사람 각자가 얼 마나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지를 목격하고 그 삶들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세상들을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던 소년.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소 년은 자신의 꿈을 심리학자에서 작가로 바꾸게 됩니다. 각자 가신 세상들이 자신의 글 속에서 빛나기를 바라면서요. 자신의 꿈이 과연 심리학이 맞는지 방황하며 지내던 시간들, 막연한 심리학에 대한 두려움 에 시달리던 시간들은 시와 소설을 집필하는 시간들과 시와 소설들을 읽어가는 시간으로 바뀌 어 갔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뜻대로 되는 법은 없더군요. 작가가 되겠다고 공부를 포기하 고 전전하던 저에게 성적의 하락과 부모님의 불안이 닥쳐왔고, 소년의 꿈은 방황하게 되었습 니다. 결국 남들보다 더 먼 거리를 걸어서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돌아온 소년은 결국 문 예창작과에 들어가게 되었고, 작가의 꿈을 이뤄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시간들을 걸어오며 아이는 소년이 되고 소년은 제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언제나 좋고, 그들의 삶이 언제나 아름다운 저는 항상 행복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내려 갑니다. 그렇게 글을 쓰고 있노라면 언제나 많은 생각들이 지나가지만, 언제나 변하지 않는 하나가 있습니다. 제 글이, 삶속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한번 씩 생각나며 다시 일어날 힘이 되었으면 합니 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 아프고 고달프죠, 이런 아픔 속에서 우리는 알지 못하는 내일이라는 두려움으로 나아갑니다. 이런 아픈 삶속에서 일어날 힘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삶에 지쳐 내려오는 계단의 층계에서 문득 떠오른 웃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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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문]

감정의 무게 <영화 [굿바이: good&bye]를 보고> 2013260616 김 요 한 인생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픈 기억이나 숨기고 싶은 자신이 존재한다. 우리들 이 인생이 남에게 받은 수많은 상처들과, 남에게 입힌 셀 수 없는 아픔들로 이뤄졌기 때문이 다. 아픈 상처의 연속인 인생. 영화 굿바이는 그런 인생에게 조용히 한마디를 던져본다 ‘당신 은 인생속에서 얼마나 호흡하고 있나요?’ 주인공 다이고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은 첼로리스트이다. 그 러나 그 정도의 상처로는 부족했는지 상처와 아픔 속에서 간간히 꾸려가던 인생은 악단의 해 체와 함께 막을 내리게 된다. 첼로마저 내려놓은 그. 결국 다이고는 아내와 함께 어머니의 찻 집이 남겨진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고향에 내려와 일을 찾던 그는 우연과 오해로 인해 납관사라는 직업을 얻게 된다. 죽은 사 람을 다루는 꺼림칙한 반감에 그는 갈팡질팡 하지만 전문 납관사 이쿠에이의 엄숙한 모습에 생각을 고치게 되고 납관사라는 직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납관사라는 부정적인 시선과 아 내와의 마찰 속에서 오히려 다이고는 점점 더 전문적인 납관사가 되어가고 아내의 생각마저 바꾸어 낸다. 그러나 아내가 돌아왔다는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그에게 아머지의 사망소식이 들려온다. 고민 끝에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러가고 아버지의 손 안에서 그가 어릴 적에 아버지에게 건넨 돌멩이를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돌멩이. 이 영화에서 나는 사람이 언어를 발견하기 전 자신 의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로 쓰였다던 돌의 전달에 주목하게 되었다. 언어로써 표현할 수 없 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감정.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남의 감 정과의 불협화음, 그리고 마침내 남을 이해하는 메시지는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수많은 장례식장의 모습과 각기 다른 마지막 이별 속에서 다이고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영화의 중반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돌을 기억해낸 다이고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기 억 속에서 아버지는 다이고의 손에 무거운 돌멩이를 하나 얹어준다. 아마 가장의 책임감이나 이미 떠날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을 것이다. 반면 다이고는 작은 돌멩이를 그의 손에 얹어준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그의 마지막 손에 움 켜쥔 작은 돌멩이를 보고 다이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의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버 리고 항구에서 잡일을 하며 살면서 보낸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는 그 돌멩이로 이해했을 것 이다. 그 감정의 이해와 소통이 다이고가 마지막에서야 아버지를 인정하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 또한 내 감정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남들과의 소통과 교류 속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 이 영화는 그 것이 화해와 사랑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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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문]

감정의 무게 <영화 [굿바이: good&bye]를 보고> 2013260616 김 요 한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아픈 기억이나 숨기고 싶은 자신이 존재하게 된다. 우리들이 인생 이 남에게 받은 수많은 상처들과, 남에게 입힌 셀 수 없는 아픔들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픈 상처의 연속인 인생. 영화 굿바이는 당신의 인생에게 조용히 한마디를 던져본다. 주인공 다이고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은 첼로리스트이다. 아 버지에게 받은 상처의 치료제로 음악을 선택했는지, 아니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따라왔는지 는 모르지만 그는 음악을 사랑하는 첼로리스트였다. 그러던 그가 악단의 해체와 함께 꿈을 내 려놓게 된다. 꿈이 없는 자리에는 현실밖에 없었다. 그가 현실에서 마주친 가장이라는 무게는 압박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결국 1억8천만원의 꿈을 팔고 집으로 내려오게 된다. 고향에 내려와 일을 찾던 그는 우연과 오해로 인해 납관사라는 직업을 얻게 된다. 납관사라 는 직업을 이 영화는 많은 시간을 들여 묘사하고 있다. 단순히 죽은 사람을 치장하는 것이 아 니라, 납관사는 죽음사람을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직업이라고 묘사한다. 그 렇기 때문에 그들의 손짓은 단순히 익숙해서, 전문적으로 배워서 나오는 손짓이 아니다. 마음 속 깊은 곳부터 영원한 이별이라는 무거운 감정에 짓눌린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손짓이다. 납 관사의 묘사를 통해 우리는 가장 힘없는 시신을 경건히 다루는, 그런 낮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당신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납관사는 사회에서 부정적인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겨난 아내와의 마찰 속에서 오히려 다이고는 점점 더 전문적인 납관사가 되어가고 아내의 생각마저 바꾸어 낸다. 다이고 는 자신의 직업현장에서 아내의 마음을 바꾼다. 아내에게 납관사의 모습으로써 그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아내의 생각을 바꾸어냈다는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그에게 아버지의 사망소식이 들려온다.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러가고, 아버지의 손 안에서 그 가 어릴 적에 아버지에게 건넨 돌멩이를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돌멩이. 이 영화에서 나는 사람이 언어를 발견하기 전 자신 의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로 쓰였다던 돌의 전달에 주목하게 되었다. 언어로써 표현할 수 없 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감정.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감정과의 불협화음, 그리고 마침내 남을 이해하는 메시지는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수많은 장례식 장의 모습과 각기 다른 마지막 이별 속에서 다이고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영화의 중반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돌을 기억해낸 다이고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기 억 속에서 아버지는 다이고의 손에 무거운 돌멩이를 하나 얹어준다. 아마 가장의 책임감이나 이미 떠날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을 것이다. 반면 다이고는 작은 돌멩이를 그의 손에 얹어준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그의 마지막 ���에 움 켜쥔 작은 돌멩이를 보고 다이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의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버 리고 항구에서 잡일을 하며 살면서 보낸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는 그 돌멩이로 이해했을 것 이다. 그 감정의 이해와 소통이 다이고가 마지막에서야 아버지를 인정하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 또한 내 감정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남들과의 소통과 교류 속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 이 영화는 그 것이 화해와 사랑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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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문]

감정의 무게 <영화 [굿바이: good&bye]를 보고> 2013260616 김 요 한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아픈 기억이나 숨기고 싶은 자신이 존재하게 된다. 우리들이 인생 이 남에게 받은 수많은 상처들과, 남에게 입힌 셀 수 없는 아픔들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픈 상처의 연속인 인생. 상처는 누구에게나 아프기 마련이고 인생은 누구나 아픔 가운데 살기 마 련이다. 이런 상처를 치료하는 약은 어떤 것일까. <굿바이>의 주인공 다이고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은 첼로리 스트이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의 치료제로 음악을 선택했는지, 아니면 아버지가 시키는 대 로 따라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음악을 사랑하는 첼로리스트였다. 그러던 그가 악단의 해체와 함께 꿈을 내려놓게 된다. 꿈이 없는 자리에는 현실밖에 없었다. 그가 현실에서 마주친 가장 이라는 무게는 압박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결국 1억8천만 원의 전문가용 첼로를 팔고 집으로 내려오게 된다. 고향에 내려와 일을 찾던 그는 우연과 오해로 인해 납관사라는 직업을 얻게 된다. 납관사라 는 직업을 이 영화는 많은 시간을 들여 묘사하고 있다. 다이고는 죽은 사람 곁을 지키며 사람 들의 감정이 교류하는 순간들을 지켜보게 된다. 이 가운데 납관사는 손짓은 마음속 깊은 곳부 터 영원한 이별이라는 무거운 감정에 짓눌린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손짓으로 발전하게 된다. 납관사로서 사람들과의 감정교류를 지켜보던 그에게 아버지의 사망소식이 들려온다. 그에게 상처를 주던 아버지. 그는 고민 끝에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러가고, 아버지의 손 안에서 그 가 어릴 적에 아버지에게 건넨 돌멩이를 발견하게 된다. 영화의 중반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돌을 기억해낸 다이고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기 억 속에서 아버지는 다이고의 손에 무거운 돌멩이를 하나 얹어준다. 아마 가장의 책임감이나 이미 떠날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을 것이다. 반면 다이고는 작은 돌멩이를 그의 손에 얹어준다. 세월이 흘러 다이고가 가장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그의 마지막손에 움켜쥔 작은 돌멩이를 보고 다이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의 아버지가 자신 과 어머니를 버리고 항구에서 잡일을 하며 살면서 보낸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는 그 돌멩이 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 감정의 이해와 소통이 다이고가 마지막에서야 아버지를 인정하는 힘 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돌멩이. 이 영화에선 사람이 언어를 발견하기 전 자신의 감 정을 전달하는 매체로 쓰였다던 돌이 소개된다. 언어로써 표현할 수 없는, 자신만이 알고 있 는 감정.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영화는 삶의 마지막 순간 이라는 극단적인 배경 안에서 감정의 교류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교 류가 실패해서 슬퍼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장례식장의 모습과 각기 다른 마지막 이별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감정 교류를 지켜보게 된다. 삶의 마지막순간에서야 간신히 교류되는 경우도 있을 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 은 정말 어렵고, 또한 내 감정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남들과의 소통과 교류 속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 이 영화는 그것이 화해와 사랑으로 가는 첫 번 째 단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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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갑(甲)의 지속력과 을(乙)의 소통 미디어 문예창작학과 2013260616 김 요 한 최근 갑의 횡포는 많은 이슈를 낳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갑들을 욕하거나 비난만 할 뿐 그 깊은 속내까지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롯데백화점으로 시작한 갑의횡포. 그리고 최근에 터진 윤창중의 성추행 까지. 을(乙)들은 과연 이런 갑의 횡포에 어떤 대처를 하고 있을까. 힘이 없으니 서로 모이자, 힘이 없으 니 대화를 하자. 과연 우리는 이런 말처럼 대응하고 있을까. 윤창중 사건이 터진 건 최근의 일이다. 많은 을들이 분노에 찼고, 수많은 비난이 쏟아져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가수 싸이와 감장훈 같은 사람들이 수많은 노고를 해가며 이룩해 놓았던 국격을 하루아침에 떨 어트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만류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를 결국 대변인에 앉혔던 박근 혜 정부에게 실망하고, 정부의 결정에 한숨을 쉬었다. 그게 5월 8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직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5월 27일에 발표한 주간정례 여론조사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상승세를 보였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 보도가 줄어들자마자 지지율이 반등한 것이다. 이것뿐일까 남양 유업의 주가는 아직도 꾸준히 기관들의 매수세가 유지되고 있으며, 가격도 크게 떨어 지지 않고 선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국민 연금기금이 가지고 있는 5.02%도 아직 매각되지 않았다. 남 양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며, 제대로 된 사과 없이 대리점주 들과의 협상만 이리저리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복장이 터지는 일은 더 있다. 이 와중에 BGF리테일은 남양과 같은 횡포를 보이다 네티즌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필자는 인터넷을 하다 이런 글을 발견했다. ‘저는 삼 성제품을 안 쓴지 10년이 되었습니다. 농심의 라면은 지금까지 먹지 않았고요, 삼양라면만 먹은 지 5년 이 되어가네요. 최근에는 남양 제품도 선택지에서 제외 하였구요.’ 과연 이 사람이 잘못되었던 걸까. 지 금의 남양만큼은 아니지만 우리의 사회에서 수많은 갑의 횡포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하며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갑도 무너트리지 못했다. 원인이 과연 결집하지 못한 을에게 만 있을까. 수많은 불매운동과 수많은 파업, 집회들이 과연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냄비근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을까. 필자는 최근 국정원 사태에 많은 생각을 두고 있다. 뉴스에서도, 신문에서도 나오지 않지만, 많은 사 람들이 이미 유엔에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의견을 보냈다. CNN에 한국의 부정선거라는 수많은 논란 이 쏟아지고, 미국의 단체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국정원이 박근혜정부를 위해 알바를 고용하거나 국정원 직원을 시켜 선거 운동을 방해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고, 박원순 서울 시장은 일을 하면서 방 해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을들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소통을 과연 누가 가져가고 있을까. 지금까지 을들은 신문과 방송에 많이 의존해왔고. 그럼에 도 불구하고 솔직히 현재 우리나라의 신문과 방송이 깨끗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신문과 방송에 실망한 을들은 인터넷을 선택했고,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 생겨난 것이 촛불 집회였다. 새로 운 소통매체가 을들의 모임을 이루어 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인터넷 포털은 NHN과 DAUM에 양분되어 있고, 이들은 점점 통신 대기업들에게 사로잡 히고 있다. 필자는 이런 상황이 진행되면서 나온 일베의 현상. 그리고 그 일베가 정치적으로 특정 집단 을 지지하는 현상이 단지 개개인의 을들이 모여서 생겨난 목소리라고 믿지 않는다. 실제로도 일베의 배 경에는 많은 의문점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인터넷에 갑의 힘이 조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을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소통의 창구를 갑에게 계속 빼앗기고 무너지 고 있다. 신문을 빼앗기고 방송을 빼앗기고 인터넷을 빼앗기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의 소통을 빼앗기면 안 된다. 소통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우리나라의 을들에게 가 장 시급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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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과제]

허공을 울리는 칼과 삶의 진정한 가치 김훈 『칼의 노래』 2013260616 김 요 한 현대를 사는 우리는 삶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대부분이 우리의 삶을 슬픔과 아픔으로 느 끼고 있는 듯하다. 수많은 자살들과 인터넷에 쏟아지는 하소연들은 우리의 하루가 슬픔과 아 픔으로 이루어졌다는 하나의 증거물이 될 수 있겠다. 이런 우리의 삶.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 한 영웅 이순신도 이러한 슬픔과 아픔 속에서 살았다면 어떨까.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이순신과는 거리가 멀다. 『칼의 노래』는 임금에 게 경계당하고 왜구들의 공격 이 빗발치는 전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비참히 견뎌나간 하나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 우리의 영웅 이순신은 아들의 죽음에 소리죽여 눈물을 흘리고 식은땀에 젖은 악몽을 꾸는 하나의 인간이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에게 다가오는 현실은 고통과 이 해할 수 없음이다. 이순신은 『칼의 노래』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임금의 질투와 적의 침공이유에 대해 고뇌하고, 왜구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둔다. 이런 비극적 삶을 보여주면서 『칼의 노래』 는 결국 우리의 삶이 무가치 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삶이 무가치 하다는 것은 우리를 자살 과 절망으로 이끄는 것 같지만 우리는 이순신의 삶이 비극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칼의 노래』는 일부러 비극이 되기 위해 많은 장치를 가지고 있다. 『칼의 노래』는 일부러 역사소설이 흔히 선택하는 3인칭이 아닌 1인칭을 선택해 독자들이 이순신에게 더욱 몰입하며 이순신과 공감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순신이 인 생의 문제들과 부딪히며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쓰러질 때, 이순신이 인생의 고난 앞에서 개인 으로 분투할 때 우리는 각자의 이순신이 되며 이순신의 죽음에 공감하며 아파한다. 이순신 개 인의 비극은 독자 개개인의 비극이 되며, 우리는 이 비극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금 살아나 갈 힘을 얻는 것이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의 절망을 통해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지만 이 부

정의 힘으로 우리의 삶을 단련시키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 바로 이순신의 괴로움과 죽음을 통해 우리의 괴로움과 죽음을 내려놓는 것. 이것이 비극에서 나오는 카타르시스의 효과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의 칼은 언제나 허공을 벤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그 전장에서 허공을 베며 전진하는 칼은 결국 우리의 삶을 닮았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우리가 휘두르는 팔 은 아무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두려운 내일로 나아갈 뿐이다.

『칼의 노

래』는 우리에게 임진외란이라는 소재를 설명하려고 우리에게 이순신을 보여준 것이 아니다. 이순신이 임금에게 경계당하고 왜구의 머리를 베며 고뇌하던 까마득한 임진년부터 불안한 현 재를 사는 우리의 오늘까지, 언제나 우리는 인생의 문제들 앞에서 혼자라는 개개인으로 부딪 쳐왔고, 그 부딪침으로 성숙해왔다. 개인의 삶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키워왔다. 이제 숨을 거둔 이순신의 앞에서 우리는 무엇 할 수 있을까. 그의 삶의 무게와 슬픔의 깊은 곳을 보면서 통곡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의 고난과 슬픔위에 이제 우리의 고난과 슬픔을 던져 넣어야 한다. 그래서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알 수 없는 내일로 갈 때, 이순신의 고 난들은 마치 십자가처럼 의미를 얻고 우리의 삶속에서 살아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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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와 표현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