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u on Google+

남제동 163

남제동 마을자원조사보고서 인제산, 피내골, 상인제마을, 대성이용원, C지구, 아랫장국밥

조사자 : 주지현


남제동 165

2 1

1918년 순천지도 남제동 부분

남제동 마을자원조사 보고

남제동은 본래 순천군 장평면 지역으로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평면의 남정리·신흥리·남제리와 도리면의 지정리 일부를 병합 1 남정리라 하고, 장평면의 2 인 제리는 그대로 인제리라 하여 각각 순천면에 편입되었다. 1931년 11월 1일 남정리, 인제 리는 순천읍에 속했으며 1949년 8월 14일 순천부 신설에 따라 순천부에 속했으며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제 시행에 따라 순천부가 순천시로 바뀌고 동제 실시에 따라 순천시 남 정동, 인제동으로 운영하다가 1964년 1월 7일 순천시의 33개동을 16개동(행정운영동)으 로 조정(시조례 제174호, 1963.12.18)하면서 남제동이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후 1990년 4월 1일 풍덕동 일부, 장천동 일부를 남제동에 편입하고, 남제동 일부를 풍덕 동에 편입(1990. 3.30 시조례제 652호)시켰다. 남정동 신흥 마을은 글자의 뜻대로 새롭게 흥한 다는 뜻으로, ‘신흥쟁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여지도서’를 보면 순천시 이사천에 놓인 다리가 양률교이고 거기에 역이 있었다. 그리고 인 제동이 속칭 ‘역골’이라고 전해오는데, 이것으로 여기에 역이 있었을 것이라고 억측하는 사

2013 마을자원조사보고서 164


남제동 167

람들이 있다. 그러나 ‘순천마을 유래지’(1993년 순천문화원 발행)에는 ‘역골’이 자음역행동 화 현상 때문에 옆골 →엽골 →역골로 변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역이 있었던 것으로 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양률 역원들이 살았거나 목장지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피내골(왜군들의 피가 흘러내리던 골짜기)·억만골·서당골·용지골·큰골 등의 지명이 남아 있으며, 상인제 북서쪽 골짜기인 억만골에는 임진왜란 때 순천이 겪은 비극의 한 역사를 전 해주는 ‘억만골과 피내또랑’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인제산은 해발 346.2m이며,지도상에는 남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남제동의 면적은 순천시 전체 면적의 약 0.28%인 2.56 ㎢이며 남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전형적인 주거지역이며 상 사면, 풍덕, 저전, 장천, 도사동과 접하고 있다. 2008년 11월말 현재 4,901세대 12,658명

인제산과 건달산성

이 살고 남자는 6,382명 여자는 6,276명이다. 지정문화재는 없고 유적으로 방형의 용지(승 평부사가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는 작은 샘)와 박난봉 장군의 사당지(용지가 있는 700여평의

상인제 끝자락에 자리한 인제산이다. 인제산은 정확히 인제동, 저전동, 남정동, 덕월동, 상

평평한 곳, 축대와 기와편들이 있음)가 있다.

사면 흘산리에 걸쳐있으며, 총 해발은 346.2m이다. 다른 말로는 건달산, 혹은 남산이라고

(내용 출처- 남제동 주민센터 홈페이지)

도 불린다. 인제산은 사슴의 형국을 취하고 있는데, 옛날 도선 국사는 이 사슴의 형상을 한 인제산을 보호하기 위해 호랑이의 목구멍에 해당하는 바위에 도선암을 중창하여 순천의 안 녕을 빌었다고 한다. 이 산의 중턱에서 정상부에 걸쳐 토석의 혼합 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건달산성이라고

2006년 순천관내도 남제동 부분, 남제동은 인제동과 남정동 2개 법정동이 합쳐져 만들어진 행정동이다.

부른다. 이 산성은 고려 정종때 박난봉 장군이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진다. 남아있 는 성곽을 직접 찾아보기 위해 산을 올라보았지만 그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순천부의 진산으로 일명 건달산(建達山)이라고 하는데 옛 성터만 남아 있다.’ 라는 인제산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기의 조사기록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삼국시대 에 축성된 테뫼식 산성으로 추정되며 석축과 토축이 혼용된 양식을 보인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출 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인제산성지 [麟蹄山城址]) “성곽의 높이는 1.5~3m 정도이고 너비는 넓은 곳이 9m 정도에 달하며 주위 둘레는 400m 정도 되 는데 전체 형태는 원형圓形에 가깝다. 그리고 성곽 내에는 피내골(왜군들의 피가 흘러내리던 골짜 기), 억만골, 처마골(말을 기르던 골짜기),산죽 베기(화살을 만들던 곳), 서당골, 큰무쟁이, 용지골, 절골 등의 지명이 남아 있고 유적으로는 방형의 용지龍池(승평부사가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는 작 은 샘)와 박난봉 장군의 사당지(용지가 있는 약 700여 평의 평평한 곳, 축대와 기와편들이 있음)가 있다. 이 사당지에는 마가사(摩訶寺)(박난봉 장군께서 공을 들였다고 함)란 절도 있었다고 전해지 고 있다.” (출처 : 동부지역사회연구소, 숨겨진 순천을 찾아서)

2013 마을자원조사보고서 166


피내골, 억만골의 유래

없다고 하신다. 매산 학교 뒷 편에 난봉산성(매곡산성)이 있다며 차라리 그 곳을 찾아보는 편이 나을 것이 라는 조언을 하시는 분도 계셨다. 건달산성의 안내판이 입구에 자리하고 있고, 이 곳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인제동은 현재 상인제와 하인제로 나뉘어 불리지만 원래는 윗 역골, 아랫 역골로 불

인제산성길이라고 이름 붙인 표지판까지 세워두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나보다.

리웠으며 문헌에는 역동(驛洞)이라 표기되어있다. 이 곳 사람들은 인제산 골짜기로

그리고 이 윗길에는 예전부터 마을에서 사용하는 식수원이 자리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이 이 지역의 환경보 호를 위해 차량통제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곳 골짜기에서 흐르던 물은 상인제길과 하인제길 을 따라 동천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복개되어 흐르는 물을 볼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난을 피해 숨어들었다가 죽임을 당했다하여 억만골 이라고 부르고 있 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을 따라 흐르는 냇물에 그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의 피가 흘러 내 렸다 하여 지금도 피내, 또는 피내골이라 부르고 있다. 마치 순천의 운명을 상징하는 사슴(인제산)의 옆구리에 깊은 상처가 생겨 붉은 피가 흘러내린 형국인 것이다. 순천의 역사가 기록된 강남악부에는 이 끔직한 난이 임진년(1592)이나(1593)계사년 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최근에 출간된 향토 사료집에는 1597년 소서행장이 신 성리에 성을 쌓고 동부 6군을 분탕질하여 연자루와 순천도호부의 관아가 불에 탄 시 기로 추측하고 있다. 한편 와룡동의 백영관 씨(62세)는 자신의 조부께서 19세에 동학혁명을 겪었는데 그 때 농민혁명군들이 억만골에서 한 구덩이에 몰려 죽임을 당한 이후 피내골이라는 이 름이 유래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고 한다. ‘난을 피해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순천의 여러 자연마을의 노인들에게 구전되고 있는 만큼 더 늦기 전에 이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고증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출처-[전남동부권 지역정보 순천넷])

2013 마을자원조사보고서 168

남제동 169

산을 오르며 만난 등산객 다섯 분 정도 말을 건네 건달산성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들은 적도, 본 적도


상인제에는 마을 곳곳에 자투리땅이 많다. 그 땅 놀리는 곳 하나 없이 꽃이며 채소 등을 가꾼다. 길을 걷다 쉬어가고 싶을 때 쯤 작은 벤치가 놓여 있고, 집 벽 아래 그 자그만 공간마저 예쁜 꽃을 심어두어 지나는 사람에게 진한 향기로 인사한다. 이 마을은 곳곳에 스스로의 한평 정원이 만들어져있다. 주민들의 부지런함이 이 마 을에 작은 정원박람회를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선 그 누구에게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냥 쉬엄쉬엄 마을을 거닐며 여유를 즐기다, 더위에 지치면 근처 슈퍼 로 들어가 아이스크림 한 개 사서 입에 물고 잠시 앉아 쉬다 가면 그만이다. 골목에는 아직 옛 돌담이 남아있고, 어느 집은 벽을 허물어 지나는 이들 모두에게 자 기네 마당에 놓인 커다란 맷돌을 구경시킨다. 길 옆 자투리땅에는 작은 과수원이 만 들어져 있고, 하얀 꽃이 피어 있는 작은 공원이 있다. 어느 빈 땅에는 녹슨 종 하나가 평생 그 머리를 틀어쥐던 줄을 풀고 내려와 땅에 앉 아 쉬고 있다. 드디어 종은 당목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길 가 밭에는 할매의 땀에 보답하는 호박과 고추가 대롱대롱 달려 있다. 그냥 차로 쌩쌩 무심히 달리며 지나치던 큰길 뒤에 숨어있던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 오면, 소박한 여유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이 마을 전체에 펼쳐지고 있는 정원박람 회를 즐기며 순천의 정취를 느낄 여행자가 많아지면 좋겠다.

2013 마을자원조사보고서 170

남제동 171

상인제마을의 풍경


순고 뒤편, 지금은 복개된 옛 하천 길을 따라오다 보면 70년대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발소가 보인다. 바로 대성이용원이다. 여기 서서 사진을 찍다보니 빼꼼히 문이 열리며 한 소 리 하신다. 마을자원조사를 하러 왔노라고 인사를 드리고 안으로 들어서니 손님이 두 분 계 셨다. 한 분은 이발을 다 하시고 마무리 세발을 하고 계셨고, 한 분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 며 나만큼 나이가 들었을 법한 소파에 앉아 계셨다. 이발소 곳곳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으며 십여 분을 머물렀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아주 어렸을 적엔 나도 이런 이발소에서 이발을 했었다. 하얀 거품을 구레나룻에 발라 칼로 슥슥 밀어주면 참 시원하고 좋았다. 얼른 나도 어른이 되어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겠노라고 다짐을 했었다. 80년대생인 내겐 얼마 있지도 않은 이발소의 추억을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잠시나마 떠올리게 해준 살아있는 현대 문화유산 ‘대성이용원’. 이제 얼마나 더 이곳에 있어 줄지 모를 일이다. 대성이용원을 취재한 다음의 기사가 있다. <전라도닷컴> “운명지을 때까정 자네한테 이발을 헐라네” / <오마이뉴스> “전화기 없는 이발관 대 성이용원”

2013 마을자원조사보고서 172

남제동 173

대성이용원


남제동 175

방치된 빈집

테니스장

이 동네에는 사용하지 않아 흉물이 된 건물이 자주 보인다. 사진 속에 있는 폐가는 작년까지

위에 보이는 모습은 흉물이 된 테니스장이다. 제일대학교 학생생활관에 위치하고 있다. 흉

한 모자가 살던 집이라고 한다. 그 모자는 저 무너진 집구석 작은 공간에서 계속 지내 오다 1

물로 방치된 이곳을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로 개방하여 활용한다면 이쪽 동네가 보다 활기

년전 이 집을 어떤 젊은 사람에게 팔아버리고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찬 모습을 찾을 수 있을듯 싶다. 이런 공간을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둔다면, 마을

없지만, 이 집 아저씨가 언젠가 사라지고 난 후부터 모자만 남아 계속 살아왔다는 사실 정도

의 흉물이 되어 미관을 흐리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가 될 것이다.

만 알 수 있었다. 덧붙여 이 집이 계속 흉물로 남아있어 동네 분위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 친다며, 하루빨리 철거되었으면 좋겠다는 어느 동네 주민의 말씀을 들었다. 아래 보이는 집은 마당에 서있는 나무가 멋진 집이다. 대문 앞에 쓰레기가 쌓여있고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없어 알아보진 못했지만 꽤 오래 비어있는 집인 것 같다.

경전선이 지나는 철길 건널목 : 인제건널목, 풍덕건널목 호남 철도 교통의 중심지이며, 철도 관광 상품인 내일로의 여행자들이 자주 들르는 도시답 게 순천에는 유인 철도 건널목이 여럿 남아있다. 그 중 남제동을 지나는 철길에는 두 곳의 유인 건널목이 자리하고 있다. 상인제길을 따라 내려오던 길은 큰길을 건너면서 하인제길이 된다. 이 하인제길을 따라 아랫장 쪽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유인건널목이 바로 인제건널목이다. 풍덕건널목은 이름과 달리 풍덕동이 아닌 남제동에 자리하고 있다. 남제동을 가로 지르는 큰 길인 우석로에서 동천방향으로 이어진 남산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만날 수 있다.

2013 마을자원조사보고서 174


남제동 177

1962년 순천수해와 C지구

1962년 8월 27일 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해 그 다음날인 8월 28일 순천 곳곳의 저수지 가 터지며 수마가 시가지를 휩쓸어 시내의 2/3을 침수시킨 큰 수해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2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700여 동의 가옥이 피해를 입었으며, 3000여 가구 총 약 14,000여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정부와 순천시는 당시 집을 잃은 수재민들을 위해 동외동의 A지구, 장천동의 B지 구(B지구는 실현되지 않았다), 남제동(당시에는 풍덕동이었다)의 C지구를 지정하여 주택복 구사업을 벌였다. 사진 속의 광경은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는 수해복구, 이재민 천막, 구호물자 배급, 다양한 모습이다.

당시 순천수해의 상황과 복구계획을 담은 그림이 다. 아래 사진에서 원형 안이 수해이후에 새로 조 성된 C지구이다.

C지구의 중심에 자리한 종로약국과 금성방앗간의 모습이다. 금성방앗간의 내부에 들어서자 방앗간 특유의 구수한 냄새와 함께 동네 손님들과 주인어르 신의 흥겹고 정겨운 대화가 들려왔다. C지구는 전반적으로 노후 되어 지저분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정내 난다. 굳이 드라마 세트장까지 가지 않아도 오래된 마을의 향취를 느낄

2013 마을자원조사보고서 176


순천에는 중앙시장, 웃시장, 역전시장, 아랫시장 등 총 4개의 시장이 있다. 이 중에서도 웃 장과 아랫장은 순천의 대표적인 전통 5일장으로 아랫장은 2,7일마다, 웃장은 5,10일마다 장이 선다. 그 중 아랫장은 1일 이용객이 2만여 명이 넘고, 부지면적이 약 33,000제곱미터 에 이르는 굉장히 큰 시장이다. 아랫장은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큰 길을 중심으로 풍덕동과 남제동으로 나뉘는데 사진에 보 이는 곳은 전부 남제동에 속한 지역이다. 진짜배기 아랫장은 사실 풍덕동 쪽에 속한 지역이 다. 사진에 보이는 남제동 권역은 사실 아랫장의 새끼와도 같다. 길 건너 풍덕동에 속한 진 짜배기 아랫장과 달리 사진에 보이는 남제권 아랫장은 상시 운영되는 상점들이 주로 자리하 고 있다. 식당, 철물점, 마트, 떡집, 방앗간 등 장날이 아닌 날에도 이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든다. 기존에 자리한 상가들 앞에 떡하니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보인다. 2,7일 아랫 장이 서는 날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방앗간 앞에서 생선을 팔고, 철물점 앞에서 화분을 파는 등 다양한 장사가 일어난다. 아���장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풍덕동에 자리한 진짜배 기 아랫장을 벗어난 이 곳 남제권 아랫장 상가 안쪽 골목 구석구석까지도 물건을 파는 상인 수 있다. 이 곳 특유의 낡은 향기를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노후된 미관을 공공미술을 통해 조 금만 다듬어 순천을 찾는 관광객들이 꼭 걸어 보고 싶은 정겹고 따뜻한 여행지로 알려지면 좋겠다. 옛 정취가 남아있는 골목길을 한가로이 거닐다 방앗간의 구수한 냄새에 끌려 들어 가 떡 하나 사 먹으며 주인 내외와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골목여행 어떤가.

순천만을 들렀다 떠나는 연 수백만의 여행자들이 마을 곳곳의 골목여행지를 다니며 주민들 물 건을 팔아주고, 숙박을 하고, 밥을 먹게 되면 마을에 얼마나 큰 경제효과가 발생할까. 인위적 으로 조성한 관광지는 식상하다. 살아있는 골목 여행지는 도보 여행자에게 꿀 같은 공간일 것 이다. 제주 올레길은 제주의 경관자원을 그대로 활용한 도보여행지이다. 우리에겐 그러한 자연경 관자원은 없지만,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오래된 골목 경관 자원이 가득하다. 이러한 경관 자원을 활용하여 이 나라 어디에도 없는 도심형 골목 도보 여행지를 만든다면 얼마나 멋질 까. 일부러 꾸미고 조성하려 할 필요 없다. 그냥 표지판과 코스를 만들고 스탬프를 찍을 동 네 작은 가게들을 섭외하고, 전국에 홍보하면 끝이다.

2013 마을자원조사보고서 178

들로 그득하다.

남제동 179

아랫장, 아랫장국밥


마을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자원을 찾아내기엔 빠듯하다 싶은 짧은 시간동 안 생판 남의 동네였던 남제동을 맡아 조사하였다. 조사기간 내내 어느 정 도의 깊이까지 파고들어야 할지,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조사해야 할지 굉 장히 막연하고 난감한 날들 속에 헤메이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마무리 단 계에 들어섰다. 나와 아무 연고가 없고 내 살던 동네가 아닌지라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남제동 골목을 한 바퀴 쓰윽 둘러보며, 뭔가 특이해 보이는 사항을 억지로 순천의 대표 맛집 건봉국밥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장터국밥. 웃장에 자리하는 국

찾아 기록하고,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거란 믿음으로 골목의 여러 모습을

밥골목과 달리 이곳 아랫장에는 다양한 국밥집이 대로 곳곳에 산개해있다. 그 중 사진 속 건

억지로 사진에 우겨 담으면서도 이곳에서 도대체 어떤 특별한 자원을 찾

봉국밥은 전국적인 맛집으로 떠오르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점에 사로잡혀 멘붕의 나날을 보냈다.

웃장처럼 국밥을 파는 식당이 모두 붙어있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은 아니지

도무지 특별한 것이라고는 아무리 찾으려 억지를 써봐도 얼마 되지 않았

만, 산개해 있는 여러 국밥집들 모두 건봉국밥 만큼이나 맛이 좋기 때문에 잘 연합하여 아랫

던 탓이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답사가 겹쳐지며 좀 더 이 마을에 대해 알

장 국밥을 홍보한다면 아랫장 전체 국밥집이 모두 전국적인 맛집으로 떠오를 지모를 일이

아갈수록 내가 굉장한 착각 속에 빠져 있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마을자원

다.

조사는 무언가 특별한 자원을 찾아내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순천의 전통 재래시장에는 국밥집이 유난히 많이 있는데, 웃장의 국밥은 2인분 이상 주문시

이곳도 내 사는 마을처럼 사람 사는 그냥 평범한 마을이었고, 평범한 내

수육이 함께 나오고, 콩나물이 들어있으며 국밥의 종류가 단편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아랫

이웃, 나와 다를 것 없는 그 들이 그냥 똑같이 숨을 쉬고 있는, 그냥 그런

장은 이와 달리 수육이 함께 나오지 않고, 콩나물이 들어있지 않으며, 국밥의 종류가 다양하

평범한 동네였다.

다는 특징이 있다. 두 시장의 성격이 약간 달라서일까? 아랫장과 웃장의 국밥이 왜 이런 차

다시 시선을 돌리고 살폈다. 평범한 내 이웃들이 만든 소소한 풍경이 가득

이를 보이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했다. 여기 저기 자그마한 자투리땅마다 너도나도 꽃을 피워냈고, 경로당 과 방앗간에는 사람들이 모여 정답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튼 이곳 아랫장 국밥은 유명 쉐프 에드워드 권이 생애 최고의 맛이라고 극찬할 만큼 맛

허름한 어느 집 앞에는 대문 기둥에 묶어두었던 열쇠를 찾아 그 대문을 열

이 좋다. 순천의 국밥을 아랫장과 웃장으로 나누어 특징과 맛을 나열한 후 순천의 특색있는

어내는 집주인의 헛수고가 있었고, 내 친구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그 학

음식으로 알려, 타지 사람들에게 순천 하면 ‘닭갈비?’ ‘고추장?’이 아닌 ‘아~ 국밥?’하는 대

교가 키워낸 사람들이 그 동안의 세월을 추억하기 위해 만든 기념관이 있

답을 듣고 싶다. 춘천의 닭갈비처럼 순천의 국밥을 브랜드화시켜 국밥타운을 반드시 들르게

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뒷산의 평범한 골짜기에 담긴 가슴 아픈

하는 것도 좋겠다.

이야기를 기억하며 그 곳에 이름을 붙여 함께 슬퍼해 주었다. 마을을 다니며 계속 들던 생각이 있다. 마을마다, 골목마다 특색에 맞는 루트를 개발하여 제주 올레길 같은 도보 여행지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 이었다.

2013 마을자원조사보고서 180

남제동 181

조사후기


대자연이 준 선물은 우리 순천에 그다지 많지 않지만, 우리가 사는 이 도 시에는 우리의 부모들과 이웃들이 살아낸 삶의 풍경들이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일관성 있고, 다양한 여행루트. 인위적이지 않은, 억지스럽게 특별함을 꾸미고 과장하지 않은, 담백하고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지는 골목여행지. 이야기가 있는 골목여행지가 바로 그것이다. 특별한 것은 좀처럼 눈에 띄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평범함 속에 묻힌 특별함은 그냥 봐선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찬찬히 살펴보고 여유 를 갖고 곰씹다 보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어진 마을자원조사 기간 동안 내가 맡은 남제동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찾아내진 못했다. 이번 마을자원조사기간은 내게 항상 보고 지냈던 소소 하고 정겨운 풍경이 진정 특별한 것이었다는 사실 정도만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파랑새 이야기를 다시 되새기게 해주었다. 앞으로 이 마을자원조사가 누군가에 의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그 조사 활동을 통해 소소함속에 숨겨진 정겨운 이야기들이 많이 꺼내어지길 바 란다. 특별한 보물을 기대하며 찾아다니기보다는 그냥 보이는 모습 그대 로 발견하며 기록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조사자 주지현)

2013 마을자원조사보고서 182


보고서8 남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