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맺음말 한강이 말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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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게 선비들보다 상인들, 농민들, 천민들이 주로 드나들었으며 온 갖 물산이 모여들어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태종 이방원은 광 나루에 매사냥을 자주 다녔다. 뚝섬나루에는 강원도에서 오는 떼꾼들이 몰려들었다. 떼돈을 번 그들을 상대로 난전과 여각이 발달했다. 송파나루, 동호나루, 동 작나루, 용산나루, 마포나루, 양화나루, 공암나루까지 한강에는 수 많은 나루가 있었다. 나루가 있으니 배가 있고, 나루를 따라 시장이 발달하여 서민들 과 애환을 같이 한다. 나룻배를 저어 사람들을 건네주던 뱃사공, 한 강을 오르내리던 수많은 염선鹽船(소금 배)과 미곡선… 지금은 사라 졌지만 한강은 조운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한강에는 저자도, 여의도, 율도, 난지도 등 수중 섬이 여러 개 있 었다. 이 중에 저자도에서는 돼지와 양 등을 사육했는데 죄인들이나 노비들이 주로 살았다. 좀처럼 육지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유교 의 나라 조선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던 친족 결혼이나 재혼도 서슴지 않았다. 용이 살았다고 하여 가뭄이 들면 나라에서 기우제 를 지내던 곳이기도 했다. 한강은 서강, 용산강, 동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저자도에 는 용산강에 있었는데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낸 곳으로 유 명하다. 이곳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고려 말 재상을 지낸 한 종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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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말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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