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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군주론(​ Principe​) 이탈리아어 원본​ 초벌번역 & 자료집 번역과정 설명 유튜브 영상 완역본 eBook - 김형률 번역 2019.3. 부록 - 군주론에 등장하는 인명(108) & 지명(6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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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국의 종류와 획득 방법 세습군주국 혼합 군주국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한 다리우스 왕국은 왜 알렉산더 사후의 후계자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나 점령되기 전에는 그들의 법에 따라 살아 왔던 도시와 군주국을 통치하는 방법 자신의 군대와 능력으로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 남의 군대나 행운으로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 악행을 통해 군주가 된 사람들 시민군주국 군주국의 세력을 측정하는 방법 교권군주국 민병대의 종류와 용병 지원군과 혼합군과 자체군 군주가 민병대를 통솔하는 방법 칭찬받거나 비난받는 군주의 행동들 군주의 후함과 인색함 군주의 잔인성과 자비심 - 군주는 사랑받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두려움의 대상인 것이 좋은가 군주는 자신이 한 말을 어떤 방식으로 지켜야 하는가? 군주가 경멸과 증오를 피하는 방법 성채와 군주들이 매일 하는 다른 많은 일들이 유용할까 아닐까? 군주는 존경받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군주 곁의 비서들 아첨꾼을 피하는 방법 무슨 이유로 이탈리아 군주 들은 그들의 국가를 잃었나? 운은 인간행동에 있어 얼마나 작용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야만인들의 손으로 부터 이탈리아 해방을 위한 권고

헌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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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문의 위대하신 ​로렌쪼 디 삐에로 데 메디치 (​Lorenzo di Piero de' Medici​)​ 에게 - ​니꼴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군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려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이 갖고 있는 가장 비싼 것이나 군주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소지하고 군주를 만나려 합니다. 그래서 군주들은 그의 위엄에 걸맞는 말, 무기, 금장옷, 보석 장신구등을 선물로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것을 귀하께 바치길 원합니다. 제가 갖고 있는 가장 값진 것은 다름아닌 동시대 사건들에 대한 저의 오랜 경험과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저의 꾸준한 연구에서 얻은 위인들의 행동으로 부터 얻은 지혜 입니다. 저는 이 글을 긴 시간 생각하고 성실하게 검토 하였습니다. 이제 요약하여 작은 책으로 묶어 귀하께 바치려 합니다. 저는 이 책이 귀하께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판단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곤경과 위험속에서 수년간 생각한 것들을 가장 짧은 시간에 이해 하실 수 있도록 쓴 이 책 이외에는 귀하께 드릴 더 좋은 선물이 없고 귀하의 문화에 대한 열망을 알기에 이 책을 좋아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저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운율적 문장이나 가식적이고 웅장한 단어나 외양적 세련과 장식 들로 꾸미는 것처럼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직 글의 모든 내용 자체로서 즉 주제의 다양성과 논거의 엄중함만으로 인정 받거나 환영 받기를 바라 왔습니다. 저는 제가 글을 통해 사회적 계급이 낮고 미천한 사람이 감히 논쟁을 하려 한다거나 군주의 정부를 위한 법제정을 지시하려 한다고 잘못 여겨지는 상황을 절대로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지리학자가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지리학자는 낮은 장소인 평지에서 높은 장소인 산을 생각해가며 땅의 지도를 그립니다. 그리고는 다시 높은 산위에 올라 가장 낮은 장소인 땅을 생각하며 산의 지도를 그립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군주의 위치에서 내려다 볼 필요가 있고 반면에 다른 군주들의 마음을 더 잘 알기 위해선 백성들의 위치에서 올려다볼 필요가 있는 것 입니다. 그러니 제가 이 책을 귀하께 드리는 바로 그 심정으로 귀하께서 이 작은 책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귀하께서 이 책을 깊이 생각하며 읽어 주신다면 제가 귀하의 행운(fortuna)과 모든 인품이 약속하고 있는 그 위대함을 귀하가 성취하시길 얼마나 열망하는지를 알게 되실 것 입니다. ​또한 귀하께서 귀하의 높이 이신 정상에서 때때로 눈을 아래로 돌려 낮은 곳을 내려다 보시게 된다면 제가 이토록 적대적이고 지속적인 운명을 무의미하게 견뎌내고 있는지를 아시게 될 것 입니다.

Capitolo 1. Di quanti generi sono i principati e in quanti modi si acquistano 군주국의 종류와 획득 방법

인간을 지배했던 모든 국가들(Stati) 과 영지(Dominii)들은 공화국들(repubbliche)이거나 군주국들(principati) 중의 하나였고 현재도 그렇다. 군주국은 세습된다. 이것은 오랜 귀족 혈통의 군주나 신생 군주 모두에게 적용된다. 신생 군주에는 ​밀라노(Milano)​의 ​프란체스코 스포르짜(Francesco Sforza)​와 같이 완전히 새로운 자생적 신생 군주가 있고 ​나폴리 왕국(Regno di Napoli)​의 ​스페인 왕(​Re di Spagna)​과 같이 차후에 세습지위 군주 가문에 합류해 영토을 획득한 신생 군주 두 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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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획득된 영토는 이전부터 군주의 지배에 익숙하거나 아니면 자유에 익숙한 두가지 경우가 있고 영토의 획득은 군주 자신이나 타인의 군사력 또는 행운(fortuna) 과 군주 자신의 능력(virtù)에 의해 이루어 진다.

Capitolo 2. I principati ereditari 세습군주국

공화국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에 다른 곳에서 다룬 바가 있기에 생략하기로 하겠다. 이 글에서는 위에 언급한 목차에 따라 오직 군주국에 대해서만 논의하려 한다. 우선 군주국들이 어떻게 통치되고 유지되는지를 살펴보겠다. 오랜 기간 군주 가문에 속한 세습군주국들은 신생 군주국들 보다 국가를 유지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훨씬 적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들은 조상들에 의해 확립된 법적 질서를 소홀히 하지 않고 평상시의 평온을 저해할 수 있는 일시적인 사건들만 제 때에 해결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평균적인 능력만 있다면 국가 권력을 스스로 유지하는데 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비상하게 강력한 힘이 그를 추방하는 예외도 있다. 그러나 그 불법 점유자에게 운명의 반전이 일어나기만 하면 그는 자신의 국가를 도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탈리아에는 ​페르라라 군주(duca di Ferrara)​가 있다. 그는 1484년 에는 베네치아로 부터의 공격을, 1510년에는 ​교황 쥴리오 2세(Giulio II/Julius II)​로 부터의 공격을 견뎌내지 못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지 그의 가문이 고대로부터 그 영역을 통치하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군주국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세습군주는 공격받을 이유나 필요를 적게 갖고 있다. 고로 더 사랑을 받는다. 그는 비상한 악행으로 비난을 받게 되지 않는 한 그의 백성들(sudditi)로 부터 자발적인 환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변화는 늘 다음 변화를 생성시키기 위한 연결고리를 남기기 때문​에 고대로 부터의 기원과 영지의 연속성 속에서 정치적 봉기에 대한 기억과 동기는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Capitolo 3. I principati misti 혼합 군주국

어려움은 새로운 군주국에 존재한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새로운 군주국은 완전히 새로운 군주국이 아니라 기존의 세습군주국의 한 부분으로 병합된 것으로 모두 함께 혼합된(misto) 군주국으로 명명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군주국은 모든 새로운 군주국에서 일어나는, 주로 태생적인 어려움에서 일어나는 봉기들로 시달리게 된다. 사람들은 이전의 생의 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믿음하에 주군을 자발적으로 교체한다. 이러한 믿음은 그들이 당시의 주군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직접 경험을 통해 전 보다 더 못한 조건에 이르게 되었음을 보게 될 때 속았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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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또 다른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필연과 연결되는데 그것은 새롭게 군주가 된 사람은 무장세력이나, 새로운 획득과정에서 생겼던 무한한 다른 상처들로 부터 항상 공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군주국을 차지하기 위해 공격하였던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갖게 되고 지원하였던 사람들을 친구로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예상하였던 만큼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고 그들에 대한 도덕적 채무로 인해 그들을 상대로 강력한 치료약(medicine)​ ​을 사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지배하고자 하는 지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지역민들의 호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프랑스 왕 루이 12세(Luigi XII re di Francia/Louis XII of France)​는 밀라노를 즉시 점령하고 즉시 잃었다. 프랑스 왕을 첫 번째로 물리치는데는 ​밀라노 군주 루도비코(Ludovico) 군대만으로 충분하였다. 프랑스 왕에게 문을 열어준 이들은 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그들의 예상과 뜻이 기만당하였음을 알고는 새로운 군주의 존재가 야기하는 불만들을 참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봉기 지역이 재차 점령된다면 다시 탈환하는데는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이 지역을 재차 점령한 새로운 군주는 봉기를 기회로 잡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 지역을 포기한 자를 징벌하고 의심가는 자들을 색출하고 자신의 약한 부분들을 보강한다. 이와같이 프랑스를 밀라노에서 첫 번째로 몰아 낼 때는 ​밀라노 군주 루도비코(Ludovico)​가 변방에서 탈환의지의 기세만 올리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였지만 두 번째로 프랑스 군대를 패배시키고 이탈리아에서 몰아내는데는 프랑스에 대한 전 세계의 대응이 필요하였다. 이 것은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부터 생겨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나 두 번째나 밀라노는 프랑스 왕을 몰아 냈다. 프랑스의 첫 번째 밀라노 침공​의 일반적인 원인들에 관해서는 이미 설명을 하였다. 이제는 ​두 번째 침공​의 원인들에 대한 언급이 남아있다. 프랑스 왕은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었으며 누군가 그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획득한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가 실행하였던 것 보다 더 나은 해결책을 갖을 수 있을까를 살펴 보겠다. 나는 우선 고대로 부터의 세습군주가 정복하여 그의 국가에 병합한 국가들을 같은 지역 이면서 같은 언어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누어 이야기 하겠다. 같은 지역 이면서 같은 언어인 경우 그들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쉽고, 특히 그들이 자유롭게 사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은 경우가 그렇다. 그 곳을 안전하게 소유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그 곳을 지배하였던 군주 가문을 멸족 ​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엇 보다도 두 곳의 주민들이 오래된 환경과 서로 다르지 않은 관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평화롭게 산다. 프랑스의 한 부분으로 오래전 부터 속해 있던 ​보르고냐(Borgogna/Burgundy)​, 브레타냐(Bretagna/Brittany)​, ​구아스코냐(Guascogna/Gascony)​가 이런 경우이다. 언어에서 약간의 상이성이 있어도 관습이 비슷해서 그들 사이에서 쉽게 화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획득한 영토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두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이전 군주의 가문을 멸족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과 세금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새로 획득한 영토는 가장 빠른 시간에 오래된 그의 군주국과 하나의 몸으로 통합된다. 그러나 군주가 언어, 관습, 정치질서가 상이한 영역을 획득한 경우는 어려움이 생기고 이 영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행운과 대단한 능력이 필요하다. 가장 좋고 가장 선명한 해결책 중 하나는 그 영역을 획득한 군주 자신이 그 곳에서 거주하기 위하여 직접 가는 것이다. 이 방법이 소유를 더욱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만들 것이다. 터키인들이 그리스인들에게 바로 그렇게 하였다. 술탄은 그리스를 유지하기 위하여 실행한 모든 다른 조치들과 더불어 그 곳에 거주하기 위하여 갔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곳을 유지하는데 성공하지 못 했을 것이다. 군주가 현장에 있다면 무질서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즉시 해결할 수 있으나 현장에 없다면 무질서가 더 이상 해결할 수 없게 커졌을 때 알게 된다. 이 밖에도 그 지역은 군주의 관료들로 부터 수탈을 당하지 않아 주민들이 훨씬 만족해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훨씬 쉽게 군주에게 직접 청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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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이 현 상태로 잘 지내기를 원한다면 군주를 사랑할 이유가 많다는 것이고 그들이 다르게 행동하기를 원한다면 군주를 두려워할 이유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토를 외부에서 공격하려는 이는 매우 조심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군주가 직접 살고 있는 영토를 획득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또 다른 좋은 해결책은 그 영토내의 한 곳이나 두 곳의 중요한 거점에 식민이주(colonie)를 보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주를 보내든지 아니면 많은 무장군인들과 보병부대를 주둔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식민이주는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군주는 전혀 돈을 사용하지 않거나 단지 약간의 돈만 사용하여 식민이주를 보내고 유지시킬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식민이주자들에게 나누워 주기 위해 단지 그 영토의 최소 부분에서 그곳의 주민들에게서 경작지와 집을 빼앗기만 하면 된다. 군주에게 경작지와 집을 빼앗긴 이들은 흩어지고 가난하게 되어 군주에게 해를 입힐 수 없다. 모든 다른 이들은 한편으론 공격할 능력이 아예 없거나(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조용히 지내야만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약탈당한 이들과 같은 일이 자신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식민이주는 돈이 안들고, 매우 충직하고 해를 거의 끼치지 않는다. 식민이주자들에게 경작지와 집을 빼앗긴 이들도 흩어지고 가난하여 해를 끼칠 능력이 없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관찰 결과는 인간은 예의를 갖고 대하거나 아니면 박살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작은 공격에는 보복을 하지만 심각한 공격에는 보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인간에 대한 공격은 보복의 반작용을 유발할 수 없을 정도로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식민이주 대신에 그 곳에 군대를 유지하는데는 훨씬 많은 돈이 든다. 왜냐하면 경비 활동에 그 곳에서 걷은 수입 모두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경제적인 면에서 영토 획득이 오히려 손실로 되고 군대 또한 병영과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전 영역에 피해를 끼치게 된다. 누구나 이러한 피해를 입게되고 그래서 그들은 군주의 적이 된다. 이러한 종류의 적은 정복 당한 상태라 해도 그 곳에 정주 하고 있기 때문에 군주를 해칠 수 있다. 그럼으로 ​모든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군대를 이용한 감시는 쓸모가 없고 식민이주가 유용​하다. 모든 것이 상이한 영역을 획득한 군주는 이웃 약소 영역의 우두머리와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는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데 힘써야 하며 동시에 그와 같은 강력한 외국인(forestiero)이 요행히 그 곳에 들어올 수 없도록 방지하여야 한다. 불만이나 큰 야망이나 공포가 생기면 그들이 그와 같은 외국인을 불러 들이는 일은 항상 일어난다. 에톨리아인(etoli/Aetolia)​들이 로마인 들을 그리스로 불러들였던 것은 이미 보았다. 다른 모든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이들도 그 곳의 주민들에 의해 그 곳으로 불러 들여졌다. 일의 순서는 이렇다. 외부 세력이 한 지역에 들어오자마자 그 곳의 약소 세력들이 그들 위에 군림하였던 이전 세력에 대한 질투로 그와 동맹을 맺는다. 이렇듯 약소 세력에 관해서는 그들을 얻는데 어떤 노력도 바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그 영역을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과 스스로 즉시 연합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군주는 단지 그들이 과도한 힘과 권위를 갖지 못하게만 주의하면 된다. 그 영역의 전체적인 결정권자로 남기 위해서 새로운 군주는 그의 권력과 약소 세력들의 호의로 그들의 세력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을 잘 통치 하지 못한 이는 획득한 영역을 곧 잃게 될 것이고 지탱하는 동안에도 끝없는 어려움과 끝없는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로마인들은 그들이 획득한 영역에서 이러한 법칙을 지켰다. 그들은 식민이주를 보내고 약소 세력들이 그들의 힘을 확장시키지 못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강한 세력은 억누르고 종국적으로는 외부세력들이 명성을 얻지 못 하게끔 하였다. 단지 그리스 영역에 관한 예 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로마인들은 ​아카이아인(achei/Achaea)​들과 ​아에톨리아인(etoli/Aetolia​)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고 마케도니아(macedoni/Macedonia) 왕국은 억압하였으며 ​안티오코스(Antioco/Antiochus)​는 추방하였다. 그러나 아카이아인들과 아에톨리아인들과의 우호관계가 그들의 국력 강화를 허락하는 것은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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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필리포 왕(Filippo/Philip V )​의 로마와 친구가 되겠다는 설득에도 로마는 일단 그를 굴복 시켰으며 안티오코스의 세력도 그 영역 내의 일부 지배에 대한 로마의 동의를 얻어 낼 수 없었다. 이 경우에서 보듯이 로마인들은 현명한 군주라면 해야만 할 것들을 모두 하였다. 오직 현재의 문제에 대응한다는 관점에서만 보아서는 안되며 미래에 대응한다는 관점에서도 보면서 전력을 다해 대항하여야 한다. 거리를 두고 예측하면 쉽게 해결 할 수 있다. 그러나 접근할 때까지 기다린다면 질병은 이미 치유가 불가능하게 되어 치료약은 시간을 놓치게 된다. 이러한 경우가 생기는 것은 폐결핵 전공 의사들이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질병은 초기에는 고치기는 쉬우나 알아채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알아채지도 못하고 치료도 못 받으면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알아채기는 쉬우나 치료하기는 어렵게 된다. 국가와 관련된 일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 현명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능력이지만 예측하고 있다면 생겨나는 나쁜 일들이 금방 목격된다. 반면에 예측하지 못하면 그 것들은 누구나 알아차릴 정도로 발전하게 되고 그 때는 더 이상 어떤 해결책도 없게 된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문제점들을 예견하면서 시의적절하게 해결해 나갔으며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그것들이 전쟁으로 까지는 발전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전쟁을 없앨 수는 없지만 적들의 장점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동기에서 로마인들은 ​필리포 왕(Filippo/Philip V )​과 ​안티오코스(Antioco/Antiochus)​와의 전쟁을 이태리가 아닌 그리스에서 하길 원하였다. 그 당시에 로마인들은 이태리에서나 그리스에서나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시대의 현자들이 지루하게 반복하는 “시간의 이점을 즐겨라" 라는 경구를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능력(virtù)과 지혜(prudenza)를 우선시 하였다. 시간은 모든 것을 앞으로 내 몰며 시간과 함께 좋은 것에 나쁜 것이 따르고 나쁜 것에 좋은 것이 뒤따를 수 있다. 이제 프랑스로 돌아가서 프랑스는 방금 이야기 한 것들 중 어느 것을 실행했는지 조사해 보자. ​샤를 8세(Carlo VIII/Charles VIII)​가 아니라 ​루이 12세(Luigi XII/Louis XII)​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다. 루이 12세는 이탈리아에 오랜 동안 영토를 유지하였다. 그래서 그의 행동 양식을 더 잘 볼 수 있다. 그는 상이한 요소로 구성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을 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루이 12세는 베네치아의 야심에 의해 이탈리아로 불려왔다. 베네치아는 루이 12세의 이탈리아 침공을 통해 롬바르디아 영토의 반을 얻기를 원하였다. 나는 루이 12세가 택한 결정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이탈리아에 발을 들여놓기를 원하고 있었고 이 지역에 친구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실제로 이전 샤를 8세​(​Carlo VIII​)의 행동으로 인해 모든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베네치아가 제안한 친선관계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가 택한 결정은 다른 일에서 결정적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롬바르디아를 획득하고 ​샤를 8세​(​Carlo VIII​)가 잃었던 명성을 즉시 회복하였다. ​제노바(Genova/Genoa)​는 항복하고, 플로렌스인들(fiorentini)은 친구가 되고 ​만뚜아(Mantua/Mantova)​군주, ​페르라라(Ferrara)​군주, ​벤띠볼리오​(​Bentivogli​)가문, 포를리의 마돈나(Madonna di Forlì)​군주, ​파엔짜(Faenza) 군주, ​페자로(Pesaro​), ​리미니(Rimini​), 까메리노​(​Camerino​), ​피옴비노​(​Piombino​), ​루까(​Lucca​)​, ​삐자(Pisa)​, ​씨에나(Siena) 귀족들이 모두 그와 친구가 되기 위해 그를 알현하였다. 그때서야 베네치아인들은 그들이 택한 결정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들은 롬바르디아의 요새화된 두개의 도시를 얻기위해 프랑스 왕을 이탈리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영토의 군주로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만약 프랑스 왕이 위에서 지적한 법칙을 지키고 그 많던 자신의 친구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었더라면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명성을 별 어려움 없이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의 친구들은 실제로 숫적으로는 대단히 많았지만 약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교회들과 베네치아인들 모두 왕의 편에 머물 필요가 있었다. 그들을 수단으로 왕은 쉽게 위대함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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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밀라노에 도착하기 이전에 ​교황 알레싼드로 6세(Alessandro VI/Alexander VI)​가 로마냐(Romagna)​를 정복할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위에서 지적한 법칙과는 정 반대의 일을 하였다. 그는 이 결정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약화 시킨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친구들과 스스로 굴러들어온 이들이 그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종교세력에게 권위와 세속적 힘을 보태 줌으로써 교회를 강화 시켰다. 그는 첫 번째 실수를 하고는 어쩔 수 없이 계속 그 길을 가야만 했다. 무엇보다 ​교황 알레싼드로 6세​의 야망에 종지부를 찍고 교황이 ​또스까나(Toscana/Tuscany)​의 군주가 되는 것을 막기위해 그는 이탈리아에 들어와야만 했다. 그의 실수는 교회를 강대하게 만들고 친구들을 떨쳐내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왜냐하면 ​나폴리 왕​이 되려고 ​스페인 왕​과 함께 나폴리 왕국을 분할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이전에 중재자 역할을 해왔던 곳에 동반자를 앉힌 것이다. 이로써 그 영역에 야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나 그에게 불만이 있는 이들은 찾아갈 사람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신하를 왕으로 앉힐 수 있었던 왕국에서 그를 쫓아 내고 대신에 자신을 쫓아 낼 수 있는 사람을 그자리에 앉힌 것이다. 획득을 원하는 열망은 진실로 매우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다. 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했을 때 칭찬을 받거나 최소한 비난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능력은 없는데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획득하기만을 원하는 사람들은 실수하는 것이며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므로 프랑스가 자력으로 나폴리 왕국을 공격할 능력이 있었으면 그렇게 해야했고 능력이 없었다면 그것을 나누지 말았어야 했다. 따라서 프랑스 왕이 베네치아와 롬바르디아를 나누어 갖은 것은 그것으로 인하여 이탈리아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이 허용됐다는 점에서 정당화 되었지만 반면에 나폴리 왕국을 스페인 왕과 나눈 것은 필요성(necessità)에 있어서 정당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로써 루이 12세는 다섯 가지의 실수를 하였다. 이등급 세력들을 약화시켰으며, 이탈리아에서 강력한 국가의 세력을 증가시켰으며, 가장 강력한 외부 세력을 그 곳에 끌어 들였으며, 그 곳에 정주하지 않았으며, 최종적으로 그 곳에 식민이주를 시키지 않았다. 그는 베네치아인들로 부터 국가를 빼앗은 여섯번 째 실수만 안 했어도 그가 사는 동안에는 다섯가지 실수로 인한 공격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를 강력하게 만들거나, 스페인을 이탈리아로 끌어 들이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억누르는 것이 매우 합리적이고 필수적인 일 이었다. 그리고 처음에 이러한 결정들을 하면서 그는 결코 파괴를 허락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들은 강력하였고 그래서 롬바르디아에 관한 일에 외부세력이 낄 수 없게 항상 막아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베네치아인들은 그 곳에 자신 이외의 주인을 허락하지 않았고 또한 다른 세력들도 프랑스로부터 그 곳을 빼앗아 베네치아에게 주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프랑스와 베네치아라는 두 세력에 대항해 싸울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누가 나에게 프랑스 왕 ​루이 12세​가 ​교황 알레싼드로 6세 에게 로마냐를 양보하고 스페인에게 나폴리 왕국을 양보한 것은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근거로 대답을 하겠다.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서 절대로 무질서를 택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전쟁은 종국적으로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단지 결과가 너의 약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 프랑스 왕이 교황에게 그 일을 할 수 있게 허락한 것은 자신의 파혼 허락과 함께 ​로아노(Roano/Rouen) ​추기경 자리와 맞 바꾼 것이라고 덧 붙인다면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아래에서, 군주와 종교에 대해 다룰때, 원칙과 어떻게 그 원칙을 준수해야하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하겠다. 루이 왕은 영역을 정복하고 그것을 유지시키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준수해야 하는 원칙중 어느것도 준수하지 않아 롬바르디아를 잃었다. 이 사실은 전혀 기적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다. 이 일에 관하여 나는 교황 ​알레싼드로 6세​의 아들이자 당시 일반적으로 ​체자레 보르쟈(Cesare Borgia) 불리우던 발렌티노(Valentino)가 로마냐(Romagna)를 정복했을 때 낭트에서 로아노 추기경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아노 추기경은 나에게 이탈리아인들은 전쟁(guerra)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나는 그에게 프랑스인들은 국가(stato)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응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국가를 이해했다면 교회(Chiesa)가 그렇게 전면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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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적으로 보면 이탈리아에서 교회와 스페인의 영향력이 거대해 진 것은 프랑스 때문이고 이탈리아의 몰락도 프랑스에 기인한다. 여기서 결코 틀리는 적이 없거나, 매우 드물게 틀리는 일반적인 법칙 하나를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을 강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능력과 힘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새롭게 강해진 사람은 늘 그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Capitolo 4. Per quale causa il regno di Dario, che fu occupato da Alessandro, non si ribellò ai successori di Alessandro dopo che questi morì.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한 ​다리우스 왕국​은 왜 ​알렉산더​ 사후의 후계자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나?

새로이 획득한 국가를 유지하려면 만나게 되는 어려움 들을 고려해 본다면 누군가는 어떻게 ​알렉산더 대왕(Alessandro Magno/Alexander the Great)​은 수년만에 아시아의 군주가 되고 바로 죽음을 앞두고 정복을 완수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신기하게 생각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의 사후 정복당한 국가들 전체가 저항하였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이성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후손들은 국가를 유지하였으며 그들이 갖고 있던 어려움은 다름아닌 개인들 야망으로 인해 같은 후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기록에 의하면 군주국들은 모두 두가지 상이한 방법에 의하여 통치되어 왔다. 하나는 군주와 많은 신하들(servi)로 구성되어 신하들이 군주의 호의와 인정을 받아 장관들(ministri)로서 왕국의 통치를 돕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군주와 귀족들(baroni)로 구성되며 귀족들은 군주의 호의가 아닌 혈통에 의해 계급을 유지한다. 이 귀족들은 자신의 국가와 자신의 백성들(sudditi)을 갖고 있고 백성들은 귀족을 그들의 군주로 인정하며 군주에 대한 자연적인 애정을 갖고 있다. 군주와 그의 신하들(servitori)에 의해 통치되는 이러한 국가에서 군주는 더 많은 권위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의 영역에서 그 보다 더 높은 인정을 받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주가 누군가 다른 군주에게 복종하게 되면 신하들도 군주의 장관이나 관리로서 그에게 복종한다. 그러나 그에게 특별한 애정을 주진 않는다. 이러한 두가지 상이한 정부의 우리시대의 예로는 터키 제국과 프랑스 왕이 있다. 터어키 제국의 전체 왕가는 하나의 군주에 의해 통치된다. 다른이들은 그의 신하들이며 그의 왕국은 산지아까티(sangiaccati​/​sanjaks) 단위로 나뉘어 진다. 그는 그곳에 다양한 관리들을 파견하고 그의 뜻에 따라 그들을 바꾸기도 하고 다양화 시키기도 한다. 반면에 프랑스 왕은 오래된 과거로 부터 다양하게 이어져 내려온 세습군주들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 내에서 백성들(sudditi)로 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 그들은 세습적인 특권을 갖고 있으며 왕이라도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이들로 부터 특권을 빼앗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두 국가들에 대해 많은 것을 숙고해 본 사람은 터어키를 획득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점령하기만 하면 그 것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쉽게 성공할 수 있다. 터어키 왕국을 점령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외부 세력을 끌어들일 군주들이 왕국내에 없다는 사실과 외부세력이 왕 주변의 반란세력과 자신의 계획을 도모 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부터 생겨난다. 왜냐하면 그의 신하들은 모두 노예들(schiavi)이고 묶여있기 때문에 뇌물로 매수하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매수되었다 해도 별 쓸모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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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미 지적한대로 그들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터어키를 침공하는 사람은 단결된 그들을 상상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봉기 보다는 자신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승리해서 다시는 군대를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패퇴시키고 나면 그는 이제 두려운 것은 오직 군주의 혈통 뿐 임을 느낄 것이다. 그래 왕의 혈통을 제거하고 나면 더 이상 두려워할 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왜냐하면 왕을 제외한 누구도 사람들의 인정을 못 받고 있기 때문이다. 승리자는 승리 이전에 그들중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승리 이후에는 그들로 부터 어떤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 같이 통치되는 왕국에서는 정 반대로 일이 진행된다. 그 곳에는 언제나 많은 불만이 있고 정치적인 봉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귀족들을 얻어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언급한 이유에서 이 귀족들은 그 국가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고 승리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후 그 귀족들을 유지하는데는 승리자를 도운 이들이나 승리자가 억압한 이들과 연관된 끝없는 어려움들이 뒤따른다. 군주의 혈통을 멸족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새로운 정치 변화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이 귀족들이 거기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거나 혹은 그들을 제거할 수 없다면 언제든 기회만 생기면 그 국가를 잃게 된다. 이제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Dario/Darius III)​의 통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 것은 터어키 왕국과 비슷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은 우선 전력을 다해 그를 공격하고 전쟁터에서 그를 패배시켜야 했다. 그리고 승리후 위에서 언급한 사유를 근거로 다리우스를 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알렉산더는 그 국가를 완전히 안전하게 소유할 수 있었다. 그의 후계자들이 단결만 되었다면 그들은 완벽한 평온속에서 그 국가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왕국에서는 알렉산더 후계자들이 야기한 것 말고는 어떤 다른 소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와 같이 조직된 국가를 완전한 평온 속에 소유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에서는 이 국가들 안에서 수시로 출몰하는 군주국들로 인하여 로마인들에 대한 수 많은 반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들의 기억이 지속되는한 로마인들의 지배는 늘 불안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이 로마인들의 권력과 오랜 시간에 걸친 영향력에 의해 사라진 후 로마인들은 그들 국가의 안정된 소유주가 되었다. 그들 끼리 서로 싸울 때는 각자가 이전 그 곳에서 누렸던 권위에 근거해 영토를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오래된 귀족 혈통이 멸종된 이후에는 로마인들 만이 군주로 인정 되었다. 이러한 시각을 모두 고려한다면 아무도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용이함과 또 다른 국가들이 ​에피루스(Epirus)​의 왕 ​피루스(Pirro/Pyrrhus)​를 비롯해 여러 다른 군주국들을 획득하고 유지하는데 겪어야 했던 어려움들에 대해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 것은 승리자의 능력이 위대하거나 부족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상이한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Capitolo 5. In che modo si debbano governare le città o i principati che, prima di essere occupati, vivevano con le loro leggi. 점령되기 전에는 그들의 법에 따라 살아 왔던 도시와 군주국을 통치하는 방법

자신들의 법에 따라 자유롭게 사는데 익숙한 국가를 획득한 후 그 국가를 유지하기 바란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그 도시를 초토화 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군주가 직접 그 곳으로 가서 거주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들이 그들의 법에 따라 사는 것을 허용하면서 공물은 걷고 그 곳을 군주에 우호를 유지할 수 있는 소수 인원으로 구성된 행정부를 창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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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정부는 군주에 의해 창설되었기 때문에 모든 도시들은 군주의 호의와 권력이 없이는 존재 할 수 없다는 것과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유롭게 사는 것에 익숙한 도시는 그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피하고 싶어하는 그 도시 시민들(cittadini)의 도움으로 지배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예를 들 수 있는 것 중에는 스파르타인들과 로마인들이 있다. 스파르타인들은 ​아테네(Atene/Athens)​와 떼베(Tebe/Thebes)​를 소수 개인들로 구성된 행정부(​oligarchia​)의 창설을 통해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곳을 잃었다. 로마인들은 ​까푸아(Capua​), ​카르타고(Cartagine/Carthage)​, ​누만찌아(Numanzia/Numantia)​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 곳을 초토화 시켰으며 그 곳을 잃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스파르타인들이 그리스를 유지했던 방법과 거의 비슷하게 그리스를 자유롭게 하고 그리스인들의 법을 허용하면서 그리스를 유지하길 원했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 지역의 모든 도시들을 초토화 시킬 수 밖에 없었다. 진실로 그 것을 안전하게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그 것을 파괴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자유롭게 사는데 익숙한 도시의 군주가 된 사람이 그 것을 파괴하지 않으면 군주는 그들에 의해서 파괴되는 것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반란 속에는 항상 그들이 피난처에 숨겨두고 있던 자유와 그들의 오래된 정치질서라는 이름이 있다. 그들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그들에게 이익이 주어져도 결코 그 이름을 잊지 않는다. 그 곳 주민들에게 행해지고 주어진 것들과는 상관없이, 그들은 흩어지고 전멸되지 않는다면, 결코 자유와 그들의 정치질서라는 이름을 잊지 않는다. 반란이 가능한 환경이 주어지기만 하면 그들은 즉시 반란을 시도한다. 백년간 플로렌스인들의 지배하에 있던 ​삐자(Pisa)​가 바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군주하에서 자유롭게 사는데 익숙한 도시(città)나 지방(provincie)에서 그 군주의 혈통이 새로운 군주에 의해서 제거 된 경우 그 시민들은 한편으론 새로운 군주에 대한 복종에 익숙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 군주의 혈통도 없어져 그들 중 한명을 군주로 만들 수도 없어 자유롭게 사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매우 천천히 무기를 든다. 그러므로 그 곳을 얻을 수만 있다면 새로운 군주는 매우 쉽게 그 곳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공화국들(repubbliche) 내에는 오랜 자유에 대한 기억을 결코 쉴 수 없게 하는 더 많은 생기와 더 많은 증오와 더 많은 복수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가장 안전한 길은 그들을 전멸시키거나 아니면 군주가 그 곳에 거주하는 것이다.

Capitolo 6. I principati nuovi che si acquistano con le armi proprie e virtuosamente 자신의 군대와 능력으로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

내가 완전히 새로운 군주와 완전히 새로운 국가인 군주국에 관해 말하면서 굉장한 예를 들더라도 너무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들은 거의 항상 다른 사람들이 이미 밟고간 길을 따라 걷고 그들의 행동을 모방하며 나아가지만 다른 사람의 모든 길을 다 따라 걸을 수도 없고 모방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능력(virtù) 에 도달 할 수도 없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항시 위대한 사람들이 밟았던 길로 들어서고 가장 탁월했던 사람들을 모방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의 능력( virtù)이 그들에게 까진 못 미치더라도 최소한 약간의 면모는 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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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궁수 처럼 해야만 한다. 그들은 활의 힘으로 다다를 수 있는 한계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맞추기를 의도한 과녁이 너무 멀다고 생각되면 예정된 과녁보다 훨씬 높은 목표점을 잡는다. 이 것은 그들의 화살로 그 높이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높이 잡은 목표의 도움을 받아 지정된 장소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군주가 들어선, 모든것이 새로운 군주국은 어려움이 많던 적던, 그 곳을 획득한 군주가 뛰어나던 모자라던, 그의 능력에 의해 유지된다. 일반시민(privato cittadino)에서 군주가 된 사건은 그의 능력(virtù) 이나 행운(fortuna)을 추정케 하며 그 둘 중 하나는 수 많은 어려움의 일정 부분을 완화시킬 것이다. 나아가 군주가 행운에 덜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군주군은 더욱 잘 유지된다. 군주가 다른 국가를 소유하고 있지 않아 몸소 그곳에 거주하러 와야만 한다면 그 사실 역시 일을 더 용이하게 한다. 행운(fortuna)이 아닌 자신의 능력(virtù)으로 군주가 된 사람들 중 가장 탁월했던 이들로는 모세(Mosè/Moses)​, ​키루스(Ciro/Cyrus)​, ​로몰로(Romolo/Romulus)​, ​테세우스(Teseo/Theseus) 같은 인물을 들 수 있다. 모세에 관해서는 신으로 부터 그에게 운명지워진 일들의 단순한 집행자였다는 점에서 이 곳에서 거론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신과 대화를 할 정도의 은총만으로도 존경 받을 만하다. 왕국을 획득하거나 설립한 키루스와 그 밖의 인물들은 모두 존경스러운 인물들이다. 그들의 행동과 특별한 수단을 고려해 보면 그렇게 위대한 스승을 갖고 있던 모세에 전혀 뒤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의 행동과 일생을 검토해 보면 그들은 행운(fortuna)으로 유리한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기회는 그들에게 시의 적절한 형상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주었다. 그런 유리한 기회가 없었다면 그들의 능력(virtù)은 소멸해 버렸을 것이고 그런 능력(virtù)이 없었다면 유리한 기회는 헛되이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이러한 기회라는 맥락에서 ​모세​에게는 이집트에서 노예로 억압받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에서 탈출하기 위하여는 모세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로몰로(​Romolo​)는 로마의 왕이자 조국의 건설자가 되기 위해서는 알바(​Alba​) 도시가 매우 좁다고 느끼고 강보에 싸여 버려지는 것이 더 좋았다. 키루스에게는 오랜 평화로 인해 연약하고 무력해진 ​메디제국(medi/Medes)​의 불만 많은 페르시아인들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했다. ​테세우스​는 흩어진 아테네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의 능력을 증명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유리한 기회들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탁월한 능력(virtù)은 그 기회가 유리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그의 조국은 고귀해지고 매우 행복해 졌다. 이들에서와 같이 고난의 길을 지나 군주가 된 사람들은 어렵게 군주국을 획득한 반면에 그 것을 유지하는 것은 수월하다. 군주국 획득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부분적으로 국가와 안전을 확립하기 위하여 시작해야만 하는 새로운 정치 질서와 새로운 방식에 기인한다. 새로운 질서를 시작한다는 것 보다 진행시키기 어렵고, 성공이 불확실하고 관리하기 위험한 일은 없다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려는 사람은 과거의 질서로 부터 이익을 취해온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갖게 되고 새로운 질서로 부터 이익을 취해 보려는 모든 사람들을 미온적인 옹호자로 갖게 된다. 이러한 미온성은 한편으론 법률(leggi)을 자신의 편에 갖고 있는 적들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하고 다른 한편으론 확고한 경험을 하기전에는 정치적 혁신의 성공을 결코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불신에 기인한다. 이러한 이유로 군주의 적인 사람들은 공격의 기회만 생기면 언제나 그들 편 사람들과 함께 열의를 갖고 공격한다. 반면에 다른이들은 새로 도입된 질서를 미온적으로 옹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주는 이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언제든 실패할 수 있는 위험한 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 제대로 토론 하길 원한다면 이 혁신적인 군주들이 충분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홀로 설 수 있는지 아니면 다른이들에게 의지하고 있는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의 작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남에게 도움을 구걸해야 하는지 아니면 남의 도움을 강요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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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있는지를 검토해 보아야만 한다. 첫 번째 경우라면 항시 안 좋게 실행되고 작업을 완수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의지할 수 있고 남의 도움도 강요할 수 있다면 실패할 위험성이 거의 없다. 이러한 이유로 부터 모든 무장한 예언가들(profeti)은 승리했고 반면에 비무장한 예언가들은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사실이 연유한다. 이밖에도 사람의 마음은 바뀐다. 하나의 일에 관해 사람을 설득하기는 쉬어도 그 설득 안에 확고하게 그를 잡아두기란 어렵다. 그래서 그들이 더 이상 믿지 않을 때 힘으로 그들을 믿게끔 할수 있는 방법으로 일을 조직하는 것이 좋다. 모세​, ​키루스​, ​테세우스​, ​로몰로​도 무장을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오랜동안 그들의 법을 준수하도록 만들지 못 했을 것이다. 우리의 동시대에선 이런 일이 싸보나롤라(​Savonarola​)에게 일어났다. 군중들이 그에게 더 이상 믿음을 갖지 않게 되자 마자 그는 그의 새로운 정치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를 믿었던 사람들을 확고히 유지하거나 그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믿게끔 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위대한 인물들은 건국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이 겪었던 모든 어려움은 성공으로 이끄는 길을 따라 늘 함께 했으며 그들의 능력으로 극복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이 어려움들을 극복하자 존경받기 시작했고 그들의 능력을 질투하던 이들이 제거되자 그들은 강력하고, 안전하고, 존경받고 행복하게 남았다. 이렇게 위대한 인물들에 비해 좀 덜 위대하지만 이들과도 관련이 있는 인물을 하나 덧 붙이고 싶다. 이로써 이와 비슷한 모든 예들을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로네 씨라꾸자(Ierone di Siracusa/Hiero II of Syracuse) ​에 관한 것이다. 이 사람은 일반시민(privato cittadino)에서 씨라꾸자(Siracusa/Syracuse)​의 군주가 되었다. 그는 행운fortuna으로 부터 얻은 것이라곤 단지 유리한 기회 뿐 이었다. 씨라꾸자인들은 억압받고 있었고 그래서 그를 군주로 선출하였다. 그는 그들의 군주가 될 만 했다. 그는 개인적인 행운(fortuna)과 함께 모든 능력(virtù)을 갖고 있었으며 그에 대해 기록한 사람은 “ 그가 지도자 되기 위해 부족한 점은 왕국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고 말한다. 그는 옛 민병대를 없애고 새로운 민병대를 창설했고, 옛 친구들을 버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취했다. 그가 친구들과 군인들을 갖게되면 그들은 그의 것이 되었으며 이러한 기반 위에서 그는 모든 건물들을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 안에선 지대한 노력을 하였지만 그 것을 유지하는데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Capitolo 7. I principati nuovi che si acquistano con le armi e con la fortuna di altri. 남의 군대나 행운으로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

오직 행운(fortuna)의 도움만으로 일반시민에서 군주가 된 이들은 적은 노력만으로도 군주가 되지만 그 권력을 유지하는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은 군주가 되는 도정에서는 어떤 어려움도 만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늘을 날듯이 그 길을 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에 도달하면 모든 어려움들이 생겨난다. 이러한 유형의 경우는 군주가 누군가로 부터 돈이나 특전을 통해 국가를 얻을 때 나타난다. 이러한 경우는 그리스에서 ​이오니아(Ionia)​와 ​헬레스폰트​(Ellesponto/Hellespont)​의 도시들에서 많이 일어났다. 이들은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제(Dario/Darius the Great)​에 의해 만들어진 군주들 이었다. 이들 군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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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왕의 안전과 영예를 위해 군주국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경우는 로마 황제들에게도 일어났다. 이들은 일반시민에서 황제가 된 이들로 군인들의 부패를 통해 권력에 이르렀다. 이들은 오직 그들에게 권력을 허락한 이들의 매우 변화하기 쉽고 불안정한 재량권과 행운 속에 머무른다. 이들은 군주국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고 그 것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대단한 지능과 능력(virtù)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시민으로 줄곧 살아온 사람이 군주국을 통솔하는 능력을 알고 있으리라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이들은 또한 백성들을 우호적이고 충성하게 강제할 무력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군주국을 유지할 수 없다. 아주 짧은 기간내에 생겨난 국가는 짧은 기간내에 생겨나고 자란 자연의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뿌리와 가지를 깊게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이미 언급한 바 대로 순식간에 군주가 된 사람이 행운(fortuna)이 자신에게 가져다 준 국가를 보전하기 위해 재빠르게 준비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다른 군주들은 이미 군주가 되기 전에 만들어 놨던 그런 기초를 건설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virtù)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러한 군주국은 첫 번째 맞게 되는 시련의 시기에 없어져 버린다. 능력(virtù) 또는 행운(fortuna)에 의해 군주가 되는 두 가지 방법에 관해 우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두가지 예로 ​프란체스코 스포르짜(Francesco Sforza) ​와 ​체자레 보르쟈(Cesare Borgia)​를 들어 보겠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짜는 적절한 수단과 대단한 능력(virtù)으로 일반인에서 밀라노(Milano) 군주가 되었다. 그는 천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군주국을 획득한 후에는 별 노력 없이도 군주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에 당시 사람들로 부터 발렌띠노(Valentino) 군주로 불리우던 체자레 보르지아는 자신의 아버지의 운(fortuna)에 따라 군주국을 획득하고 상실하였다. 그는 모든 수단을 이용하였고, 현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군대와 행운(fortuna)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 국가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해야만 할 모든 일들을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전에 기반을 닦아놓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설계의 고난과 건축물의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virtù)이 있는 한 기반을 놓을 수 있다. 체자레 보르지아의 모든 행동 방식을 살펴보면 그가 그의 미래권력을 위해 닦아 놓은 위대한 기반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 관해 토론해 보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새로운 군주에게 주는 교본으로 체자레 보르지아(​Cesare Borgia​) 의 행동방식의 예 보다 더 훌륭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만들어 논 정치질서들이 그에게 이점을 갖아다 주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것은 기이하고 극단적인 불운에 달렸었기 때문이다. 교황 알레싼드로 6세(Alessandro VI/Alexander VI)​는 자신의 아들인 체자레 보르지아를 위대하게 만들려는 바램의 실행과정에서 현재와 미래의 수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 첫 째로 그는 자신의 아들을 교권군주국이 아닌 어떤 군주국의 군주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보았다. 그는 교권군주국을 탈취하려 해도 밀라노 군주와 베네치아인들이 그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파엔짜(​Faenza​) 와 리미니(​Rimini​)가 이미 베네치아인들의 보호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둘 째로 그는 특별히 그를 도울 수 있는 이탈리아의 군대들이 교황의 위대함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손 안에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모두 ​오르씨니(Orsini)가문​과 ​꼴로나(Colonna)가문 아니면,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지휘되고 있어서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그들 국가들의 일부 영역에 안전하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치질서를 흔들어서 그 국가들을 해체시키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에게 이것은 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베네치아인들이 다른 이유로 프랑스인들을 이탈리아로 끌어들이기로 결정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것은 단지 그의 계획을 방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황이 프랑스 왕 루이 12세(Luigi XII re di Francia/Louis XII of France)​의 이혼을 허락해 줌으로써 더욱 쉽게 만들었다. 그래서 프랑스 왕은 베네치아인들의 도움과 교황 알레싼드로 6세(Alessandro VI)의 동의를 얻어 이탈리아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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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이 밀라노에 합류하기도 전에 교황은 로마냐(Romagna) 침공을 위한 군대를 프랑스 왕 으로 부터 지원 받았다. 이것이 그에게 가능했던 것은 프랑스 왕의 명성에 의해서 였다. 이리하여 교황 알레싼드로 6세(​Alessandro VI​)의 아들인 체자레 보르지아(​Cesare Borgia​)는 로마냐(Romagna)를 획득하고 ​꼴로나(Colonna) 가문​의 군대를 격퇴시켰다. 그러나 로마냐를 유지하고 계획을 진행시키는데 있어 체자레 보르지아 군주는 두 가지에 의해 저지를 당하였다. 하나는 그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그의 군대 였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왕의 의지 였다. 그는 아직 까지는 가치가 있는 오르씨니(Orsini) 가문의 군대가 그를 버리고 그가 다른 영토를 획득하는 것을 저지 할 뿐만 아니라, 그가 이미 획득한 영토도 빼앗지 않을까를 두려워 하였다. 또한 프랑스 왕 역시 같은 양상으로 처신하게 될 것을 두려워 하였다. 오르씨니(Orsini) 군대의 희박한 충성심에 관해서는 그가 파엔짜(Faenza)를 침공한 후 볼로냐(Bologna)를 공격할 때 조금씩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이 열의 없이 공격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프랑스 왕에 관해서는 그가 우르비노(​Urbino​) 군주국을 정복하고 또스까나(Toscana/Tuscany)​를 공격할 때 프랑스 왕의 마음을 알았다. 프랑스 왕은 이 전쟁을 포기하였다. 그래서 체자레 보르지아는 더이상 다른 사람들의 군대나 운(fortuna)에 의지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첫 번째 일로 그는 로마의 오르씨니(​Orsini​)가문과 꼴로나(​Colonna​) 가문의 파당을 약화시켰다. 그는 그들의 추종자 였던 모든 귀족들에게 막대한 보수(stipendi)를 주어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그들의 능력에 따라 군대 지휘권과 관직으로 그들에게 보상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몇달 만에 마음속으로 모든 파벌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소멸되었고 그들은 모두 체자레 보르지아를 향해 돌아섰다. 다음으로 그는 꼴로나(​Colonna​) 가문 사람들을 분산 시키면서 오르씨니(​Orsini​) 가문을 전멸 시킬 기회를 기다렸다. 기회는 그에게 제대로 왔으며 그는 이 것을 매우 잘 활용하였다. 오르씨니(​Orsini​) 가문은 체자레 보르지아와 교회의 위대함은 그들의 파멸이라는 것을 매우 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페루쟈(​Perugia​) 영역의 마죠네(​Magione​) 에서 회의를 소집하였다. 우르비노(Urbino)에서의 반란, 로마냐(Romagna)에서의 소동과 끝없는 위험들이 모두 이 회의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체자레 보르지아는 이 모든 것을 프랑스인들의 도움으로 극복하였다. 권위를 되찾은 후 그는 프랑스와 다른 외부의 세력을 불신 하면서도 그들과 충돌 하지 않기 위하여 책략에 의존하였다. 그는 파올로 오르씨니(​Paolo Orsini​) 를 중재자로 삼아 오르씨니 가문과 화해를 할 정도로 그의 마음을 숨길 줄 알았다. 그는 파올로 오르씨니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모든 종류의 정중함으로 그를 대했다. 그에게 돈도 주고 옷도 주고 말도 주었다. 그래서 파올로 오르씨니의 단순함은 체자레 보르지아 군주의 손 안에 있던 씨니갈리아(​Sinigallia​)에 오르씨니 가문의 지도자들을 이끌고 왔다. 오르씨니 가문의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오르씨니 파벌은 자신의 친구들로 끌어들이면서 체자레 보르지아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화 시켰다. 그는 우르비노(Urbino)의 군주가 되었고 로마냐(Romagna)를 소유하였다. 특히 그는 로마냐 사람들로 부터 호의를 얻어 내었고 나아진 삶을 누리기 시작한 모든 사람들을 얻은 것 같이 보였다. 이 부분은 기록할 가치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모방할 만 하기에 나는 생략하고 싶지 않다. 체자레 보르지아는 로마냐를 획득하고 그 곳이 법에 의하지 않고, 그들의 백성들(sudditi)을 헐벗게 하는 무능한 귀족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백성들에게 통합이 아닌 분열의 동기를 주어 그 지역은 모두 도둑과 분쟁과 모든 종류의 무례한 행동들로 꽉 차 있었다. 그는 그 곳을 군주 권력에 복종적이고 평화스러운 영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 하였다. 그래서 그는 잔인하고 성급한 레미로 데 오르꼬(​Remirro de Orco​)를 그 곳에 임명하고 그에게 전권을 주었다. 이 사람은 매우 좋은 평판을 얻어가며 짧은 시간에 이 곳에 평화와 통합을 가져왔다. 체자레 보르지아는 그후 그렇게 과도한 권한은 증오를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에 불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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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지방의 중심에 진실로 탁월한 사람을 의장으로 하는 시민법정(tribunale civile)을 설치하였다. 이 곳에서 모든 도시들은 그들의 대변자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전에 행한 억압이 그에 대한 증오를 불러 올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마음을 모든 적개심으로 부터 자유롭게 하고 그들 모두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잔인한 일이 일어나면 그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레미로 데 오르꼬 장관의 나쁜 성격으로 보여지길 원하였다. 적당한 기회를 잡아 어느날 아침 체자레 보르지아는 ​체제나(Cesena) 광장에서 레미로 데 오르꼬를 두 동강 내어 피묻은 칼과 함께 나무 조각위에 올려 놓았다. 이러한 구경거리의 잔인함은 사람들을 만족시켰고 동시에 놀라게 하였다. 이제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나는 체자레 보르지아가 자신의 방법으로 무장을 하였고, 가까이서 그를 공격할 수 있는 군대들을 많은 부분 제거하였기 때문에, 그는 매우 강력해졌고 부분적으로는 현재의 위험으로 부터 안전해졌다고 말했다. 이제 그가 다른 영토에 대한 획득을 계속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프랑스 왕과의 관계가 남아 있었다. 체자레 보르지아는 자신의 실수를 늦게 알아차린 프랑스 왕이 그가 다른 영토를 획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프랑스인들이 가에따(​Gaeta​)를 포위하고 있는 스페인들에 대항하여 나폴리 왕국에 대한 침략 원정을 시도하자 그는 새로운 우호국을 찾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의 의도는 그들의 중립을 보장 받는 것 이었다. 이 것은 교황 ​알레싼드로 6세​가 살아 있기만 했더라면 그에게는 성공하기 쉬운 일 이었을 것이다. 이 것들이 현재의 일에 관한 그의 행동양식 이었다. 그러나 미래에 관해서는 그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새로운 후계자는 그에게 친구가 아닐 수 있고 교황 ​알레싼드로 6세​가 그에게 준 것들을 빼앗아 가려고 할지 모른다는 점을 두려워 하였다. 그는 모든 불확실성을 네 가지 방법으로 제거하려고 생각하였다. 첫 번째로 교황에게서 기회를 빼앗기 위해서 그가 제거 시켰던 귀족들의 모든 후손들을 제거한다. 두 번째로 로마의 모든 귀족들을 그의 편으로 만들어 그들과 함께 교황을 제어한다. 세 번째로 교황쪽 추기경단 수를 가능한 한 많이 줄인다. 네 번째로 최초의 대결에서 홀로 저항할 수 있도록 교황 알레싼드로 6세가 죽기전에 가능한 한 많은 세력을 획득 한다. 그는 교황 알레싼드로 6세의 죽음 전 까지 이 네 가지 일 중에서 세 가지를 완수 하였고 네 번째 일 역시 거의 완료 하였다. 그는 그로인해 재화를 약탈당한 귀족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 많이 죽였고 극 소수만이 구제되었다. 그는 로마의 귀족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그는 추기경단 안에 대다수의 추종세력을 확보하였다. 새로운 영역 획득에 관해서는 그는 또스까나(​Toscana​)의 군주가 되려고 계획하였다. 그는 이미 페루쟈(​Perugia​)와 피옴비노(​Piombino​)를 소유하였고 삐자(​Pisa​)를 보호령으로 취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제 더 이상 프랑스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삐자(​Pisa​)를 성공적으로 공격하였다. 왜냐하면 프랑스 인들은 이미 스페인 인들에게 나폴리 왕국을 빼앗꼈기 때문에 그들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프랑스와 스페인 모두 그의 환심을 얻으려 하였다. 이후 루까(​Lucca​) 와 씨에나(​Siena​)는 한편으론 플로렌스 인들에 대한 질투와 다른 한편으론 두려움 때문에 즉시 항복하였다. 플로렌스 인들은 저항할 어떤 방법도 없었다. 알레싼드로 6세가 죽은 해까지만 해도 성공하고 있었던 이 일들이 성공 하였더라면, 그는 많은 세력과 많은 명성을 얻어서 스스로 자립하게 되었을 것이고 남의 운(fortuna)이나 세력이 아닌 오직 그의 힘과 그의 능력(virtù)에만 의지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레싼드로 6세는 그가 칼을 잡기 시작한지 5년만에 죽었다. 교황 알레싼드로 6세는 유일하게 안정된 로마냐(Romagna) 군주국과 나머지는 모두 가장 강력한 두 적군들 사이의 공간에 남기고 무엇보다도 중병 중인 체자레 보르지아 군주를 떠났다. 체자레 보르지아 군주는 대단한 잔인함과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얻는 법과 용서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국가에 관해서 그는 짧은 시간에 유효한 기반을 구축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그를 덮친 그 군대들만 없었다면, 혹은 그가 건강하기만 했다면,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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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의 기반이 확고하다는 것을 확신 할 수 이었다. 로마냐(Romagna)는 그를 한달 이상 기다려 주었고 로마에서는 반 쯤 죽은 상태였지만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발리오니(Ballioni)가문​과 비뗄리(Vitelli)가문 그리고 오르씨니(​Orsini​)가문이 로마에 왔지만 그들에게 어떤 적대 행위도 시도하지 않았다. 체자레 보르지아 군주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교황으로 만들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자기가 원하지 않는 사람은 교황이 될 수 없게 할 수는 있었다. 알레싼드로 6세가 죽을 당시 그가 건강하기만 했어도 그에게는 모든 일이 수월 했을 것이다. 그는 교황 쥴리오 2세(​Giulio II​)가 선출될 무렵 나에게 그는 그의 아버지 임종시 이미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생각했으며 그 모든 일에 대하여 해결책을 찾아 놓았으나 임박해 있는 그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고 말하였다. 여기에 기술된 체자레 보르지아 군주의 모든 행동을 돌이켜 볼 때 나는 그를 비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이미 내가 했던대로 그를 행운(fortuna)과 남의 군대의 힘으로 권력에 오른 모든 사람들이 모방 할 수 있는 표본으로 제시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위대한 영혼과 숭고한 목적을 갖고 있었기에 그렇게 행동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계획에 저항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알레싼드로 6세의 단명과 그 자신의 질병 뿐 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새로운 군주국 내에서 적으로 부터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친구들을 얻고, 힘이나 속임수로 승리하고, 사람들로 부터 사랑을 받거나 두려워 하게 만들고, 군인들이 자신을 따르면서 두려워하게 만들고, 자신을 공격할 수 있거나 공격 해야만 하는 이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제도로 구정치질서를 개선하고, 엄격하고 자비롭고 관대하고 자유로운 군주가 되길 원하고, 불충한 민병대를 없애고 새로운 군대를 창설하고, 다른 왕들과 군주들과는 이익을 받으면 호의를 베풀고 공격을 하더라도 존중을 하는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체자레 보르지아 군주의 행동보다 더 신선한 예를 찾을 수 없다. 단지 교황 쥴리오 2세(​Giulio II​)의 선출에 관해서 그가 나쁜 선택을 했다고 비난 할 수는 있다. 말한 바와같이 그는 자기 편의 사람을 교황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없었지만 최소한 어떤 사람이든 교황이 될 수 없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다. 그는 그가 과거에 상처를 준 추기경들 중 한 사람이 교황이 되는 것을 결코 허락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 교황이 되었다면 교황이 체자레 보르지아에게 공포심을 갖게끔 만들었어야 했다. 사람은 공포나 증오로 인해 상처를 준다. 체자레 보르지아로 부터 상처를 받았던 이들 중에는 ​싼 삐에트로 인 빈꼬리(San Pietro in Vincoli) ​추기경, ​죠반니 꼴로나(Giovanni Colonna) 추기경, 싼 죠르죠(San Giorgio) 추기경과 ​아스까니오 스포르짜(Ascanio Sforza)​ 추기경이 있었다. 교황이 될 수 있었던 모든 추기경들은 ​로아노(Roano/Rouen) 추기경과 스페인 추기경들을 제외하곤 모두 그를 두려워 해야만 했다. 스페인 추기경들은 인척 관계에 따르는 의무를 갖고 있었고 로아노(​Roano​) 추기경은 프랑스 왕을 배경으로 한 세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체자레 보르지아 군주는 무엇보다 먼저 스페인 추기경중 한 사람을 교황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것이 불가능 했으면 로아노(​Roano​) 추기경 이었지, 싼 삐에트로 인 빈꼬리(​San Pietro in Vincoli​) 추기경을 허락해서는 않되는 일 이었다. 그리고 ​위대한 인격은 새로운 은혜를 입으면 과거의 상처를 망각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체자레 보르지아 군주는 이 교황선출에서 실수하였다. 그리고 이 실수는 체자레 보르지아 군주의 최종적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

Capitolo 8. Di quelli che per scelleratezze sono venuti al principato. 악행을 통해 군주가 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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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시민에서 군주가 되는 방법에는 여전히 두 가지 길이 있지만 전적으로 행운(​fortuna​) 이나 혹은 전적으로 능력(​virtù​)에 기인한다고는 볼 수 없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공화국(repubbliche)을 다루는 곳에서 좀 더 광범위하게 설명을 하더라도 이 곳에서 언급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방법은 사악하고 잔인한 길로 권력에 오르거나 혹은 일반시민이 다른 시민들의 지지로 모국(patria)에서 군주가 되는 두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 길의 예로 고대와 현대의 예를 각각 하나씩만 소개하고 논의를 깊이 하지는 않겠다. 나는 군주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두 예를 모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시칠리아 사람 아갸또끄레(​Agatocle​)는 오직 개인적인 운(fortuna)으로 최하의 비참한 운(fortuna)에서 부터 씨라꾸자(​Siracusa​)의 왕이 되었다. 그는 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다양한 인생 과정에서 줄곧 사악한 행동양식을 유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악한 행동은 군인의 길을 걷는 동안 몸과 마음의 능력(virtù)을 동반하여 한 단계 한 단계 승진을 거쳐 결국 씨라쿠자의 군대 사령관이 되었다. 그 지위에 오르자 그는 다른 이들의 도움없이 폭력을 통해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군주(principe)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는 ​씨칠리아(Sicilia/Sicily)​에 주둔하고 있던 카르타고 군대의 사령관인 아밀까레(​Amilcare​)와 쿠테라 계획을 모의 하였다. 어느날 아침 그는 공화국(repubblica)에 좋은 일과 연관된 문제를 토론 해야만 하는 것처럼 꾸며 씨라꾸자(​Siracusa​)의 시민들과 원로원(senato)을 소집 하였다. 미리 결정된 신호에 따라 그는 그의 군대를 시켜 모든 원로원 의원들(senatori)과 가장 부유한 시민대표자들을 죽였다. 그는 그들을 죽이고 점령한 후 시민들 사이에서 어떤 논란도 없이 그 도시의 군주국(principato di città)을 유지하였다. 그는 카르타고인들에게 두번 패배하고 마침내 포위되었지만 자신의 도시를 단지 방어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포위를 방어하기 위해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다른 병력으로 아프리카를 공격하여 짧은 시간안에 씨라꾸자(​Siracusa​)를 포위로 부터 풀려나게 했으며 카르타고인들을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했다. 카르타고인들은 씨라꾸자(​Siracusa​) 군주 아갸또끄레(​Agatocle​)에게 동의해야만 했고 아프리카를 소유하는데 만족해야만 했으며 씨칠리아는 아갸또끄레(​Agatocle​)에게 넘겨주어야만 했다. 아가또끄레 군주의 행동과 능력(virtù)을 고찰해본 사람은 운(fortuna)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을 전혀 아니면 아주 조금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누구의 호의 없이 오직 수 천의 곤란과 위험으로 얻어 낸 군대에서 쌓아올린 경력만으로 군주의 지위에 오르고 용감하고 위험한 많은 선택을 해가며 그 것을 유지하였다. 동료 시민들을 죽이고, 친구들을 속이고,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않고, 연민도 없고, 종교도 없이 하는 행동을 능력(virtù)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러한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할 수는 있지만 영광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갸또끄레(​Agatocle​)가 위험속에 들어가고 위험을 탈출하는 과정에서의 그의 능력(virtù)과 그 것을 견뎌내며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그의 정신의 위대함을 고려해 볼 때 그가 모든 탁월한 역량의 지도자들 보다 덜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그의 극악무도한 잔인함과 무수한 다른 악행을 수행한 그의 비인간성은 그가 가장 탁월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찬양받는 것을 허락치 않는다. 그러므로 운(fortuna)과 능력(virtù) 없이 그가 도달하는데 성공한 것을 운과 능력의 결과로 볼 수는 없다. 우리 시대 교황 알레싼드로 6세(​Alessandro VI​) 통치 기간 페르모(​Fermo​)의 오리베로또 에우푸레두치(​Oliverotto Euffreducci​)는 어릴 적 고아가 되었다. 그는 죠반니 폴리아니(Giovanni Fogliani)라 불리웠던 모계 쪽 숙부에 의해 키워졌다. 그는 일찍이 청소년기에 파올로 비뗄리(​Paolo Vitelli​) 부대에 들어가 그 부대에서 훈련받고 일정한 지위에 올랐다. 파올로가 죽은 후엔 그의 형제인 비뗄로쪼 비뗄리(​Vitellozzo Vitelli​) 밑에서 복무하였다. 그는 재주가 많고 몸과 마음이 강건하였다. 그래서 짧은 시간내에 그의 부대의 일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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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노예적 조건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그들 모국(patria)의 자유(libertà)보다 굴종(servitù)을 선호하는 약간의 페르모 시민들의 도움과 비뗄로쪼 비뗄리의 동의를 얻으려고 생각하였다. 이들의 지원으로 그는 페르모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숙부 죠반니 폴리아니(Giovanni Fogliani)에게 숙부와 그의 도시를 보러 가고 싶고, 그가 집을 떠나 여러 해 밖에서 살아 왔기에 어딘가의 자신의 유산도 확인하고 싶다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명예를 얻기 위해 노력해 왔고 고향의 시민들이 그가 얼마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는지를 보아주기를 열망한다는 말도 썼다. 그래 그는 그의 친구들인 백 명의 기사들과 하인들과 함께 명예롭게 고향으로 갈 터이니 숙부도 페르모 주민들이 그를 명예롭게 환영할 수 있게 준비를 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것은 올리베로또에게 영예일 뿐만 아니라 그의 양육자였던 죠반니에게도 영예스런 일이었다. 이러한 논거에 설득되어 죠반니는 조카를 위해 모든 정중한 격식을 준비 하였다. 그는 페르모 주민들로 부터 명예스런 방법으로 영접을 받고 숙부의 집에 묶었다. 몇 일이 지나서 올리베로또는 그의 흉악한 계획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것을 준비해 놓고 매우 엄숙한 연회를 열어 죠반니와 페르모의 지도적 시민들을 모두 초대하였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그런 연회에 일상적인 연회를 즐겼다. 그 시점에 올리베로또는 교황 알레싼드로 6세의 위대함과 그의 아들인 체자레 보르지아와 그들의 위업을 이야기 하면서 교활하게도 심각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죠반니와 다른 연회 참석자들도 이 논의에 부응하였다. 특정 시점에 그는 이러한 토론은 좀더 호젓한 장소에서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하면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죠반니와 모든 연회 참석자들도 그를 따라 갔다. 그들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방의 숨겨진 장소에서 수 많은 군인들이 나와 죠반니와 그들 모두를 죽였다. 이러한 집단 학살 후 올리베로또는 말에 올라 도시를 점령하고 최고행정관청(magistrato supremo)을 포위하였다. 주민들은 겁에 질려 그에게 복종하고 그를 군주로 하는 정부를 세울 수 밖에 없었다.그는 불평 불만으로 인해 그를 공격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이고 새로운 민사와 군사 법령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군주가 된지 일 년 안에 그는 단지 페르모 도시에서만 안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도시 주변 영역에서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었다. 만약에 체자레 보르지아가 씨니갈리아(​Sinigallia​)에서 오르씨니(​Orsini​) 가문 일가와 비뗄로쪼 비뗄리(​Vitellozzo Vitelli​)를 체포할 당시 체자레 보르지아에게 속지만 않았어도 올리베로또(​Oliverotto​)에 대한 공략은 아갸또끄레(​Agatocle​)에 대한 공략처럼 어려웠을 것이다. 그 곳에서 그는 존속살인을 감행한지 일년 후 씨니갈리아(​Sinigallia​)에서 잡혔다. 그는 그의 능력과 악행의 사부였던 비뗄로쪼 비뗄리(​Vitellozzo Vitelli​)와 함께 교살 당하였다. 누군가는 어떻게 아갸또끄레(​Agatocle​)와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셀 수 없는 배신과 잔인한 일을 하고도 그의 국가 내에서 오랜동안 안전하게 살 수 있었으며, 또한 내부의 배신에 대한 두려움 없이 외부의 적을 방어할 수 있었으며, 시민들의 음모로 부터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반면에 같은 정도의 잔인한 행동으로 얼룩진 다른 많은 사람들은 전쟁의 불확실한 시기는 말 할 것도 없고 평화시기에도 국가를 유지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다. 나는 이 것은, 한 경우는 잔인성이 좋게 쓰인 것이고, 다른 경우는 나쁘게 쓰인 것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믿는다. 악에 대해서 좋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잔인성이 좋게 쓰였다고 말 할 수 있는 경우는 적에 대항해 안보를 지켜야할 필요성이 있을 때에 한하여 짧은 기간에 행해지는 경우이다. 그리고는 더 이상 잔인성을 지속 시키지 말고 대신에 백성들의 이익을 최대한 가능케 하는 행동으로 옮겨가야 한다. 잔인성이 나쁘게 쓰이는 경우는, 처음에는 조금 쓰이다가 시간과 함께 줄어드는 대신에 늘어나고 종국적으로 멈추지 않는 경우이다. 첫 번째 경우를 준수한 이들은 신의 은총이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아갸또끄레(​Agatocle​)처럼 그들의 군주국을 위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 경우를 택한 이들은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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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 국가를 점령한 이는 꼭 실행 해야만 할 범법행위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매일 범행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짧은 시간내에 모든 범행을 해 치워야 한다. 그래야 범행을 반복하지 않음으로 사람들에게 안전감을 주고 다양한 혜택으로 민심을 얻을 수 있다. 겁이 많거나 나쁜 충고로 인해 이와는 다르게 행동하게 된 사람은 늘 손에 칼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의 백성들은 그들이 겪는 생생하고 지속적인 모욕으로 인해 그로 부터 안전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런 그의 백성들을 결코 믿을 수가 없게 된다. ​모욕이란 한꺼번에 모두 행해져야 한다. 그래야 짧은 시간 맛보고 덜 상처 받는다. 반면에 혜택은 조금씩 조금씩 행해져야 한다. 그래야 더 맛있게 맛보고 맛이 훨씬 오래간다. 무엇보다도 군주는 백성들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사건도 그의 행동양식의 변화를 강요할 수 없게 된다. 이유는 이렇다. 적대적인 상황이 군주의 행동변화를 요구한다면 군주는 범죄적 행동을 실행에 옮길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군주가 한 선행은 군주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것은 강요된 것으로 판단되어 군주에게 이로운 점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Capitolo 9. Il principato civile 시민군주국

이제 우리는 일반시민(privato cittadino)이 악행이나 견딜 수 없는 폭력을 통해서가 아닌, 다른 시민들의 지지로 그의 모국(patria)의 군주가 되는 경우로 가본다. 이 경우의 국가는 시민군주국(principato civile)이라 불리워 질 수 있겠다. 이러한 군주가 되는데는 모든 능력(virtù)이나 모든 운(fortuna)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얼마간 운(fortuna)의 도움을 받는 명민함이 필요하다. 나는 대중(popolo)의 지원 혹은 귀족들(grandi)의 지원으로 이러한 군주의 지위에 오른 경우에 관해 말해 보겠다. 모든 도시 안에는 두개의 상이한 분위기가 있다. 이 것은 대중(popolo)은 귀족들(grandi)로 부터 지배받거나 억압받기를 원하지 않고 귀족들은 대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를 원하는 데서 비롯된다. 도시내의 이러한 엇갈린 두개의 욕구로 부터 군주국(principato), 자유도시(libertà), 무정부상태(caos)라는 세 개의 결말 중 하나가 태어난다. 군주국(principato)은 이 두 당파 중 누가 상대를 제압할 기회를 잡는냐에 따라 대중(popolo) 혹은 귀족들(grandi)에 의해 설립된다. 귀족들은 대중에게 저항할 힘이 없다고 느끼면 그들 중 한명의 평판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여 그를 군주로 만들어서 그의 보호하에 그들의 욕구를 분출한다. 똑같이 대중(popolo)도 귀족들에게 저항할 수 없다고 느끼면 그들 중 한 명의 명성을 변화시켜 군주로 만들어 그의 권위를 통해 자신들을 방어 한다. 귀족들의 도움으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대중(popolo)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사람보다 그 것을 유지하는데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자신의 둘레에 동등하게 보이는 많은 사람들을 갖고 있는 군주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명령할 수도 없고 자신의 뜻대로 다스릴 수도 없다. 그러나 대중(popolo)의 지지로 군주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홀로 우뚝선 자신만을 발견하고 둘레에는 자신에게 복종할 준비가 안 된 사람이 아예 없거나 아니면 아주 조금 밖에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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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남을 해치지 않고 정직한 방법으로 귀족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대중은 만족 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대중의 목적은 귀족들 보다 훨씬 정직하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억압하기를 원하고 대중은 억압받기를 원치 않는다. 이것 말고도 군주는 적대적인 대중들과는 결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다. 왜냐하면 대중은 숫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반면에 귀족들은 수가 적기 때문에 그들과는 늘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군주가 적대적인 대중에게 예상할 수 있는 더 나쁜 것은 그들로 부터 버림받는 것이다. 반면에 군주는 적대적인 귀족들로부터는 단지 버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군주에 대항해 자신들을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 해야만 한다. 귀족들은 일들에 대비하는 대단한 능력이 있고 매우 교활하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그들을 보존할 방법을 찾고 승리가 기대되는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군주는 항시 똑 같은 대중과 살아야만 하지만 똑 같은 귀족들이 아니더라도 더 잘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군주는 매일 그들을 번복할 수 있으며 자신의 재량으로 귀족들에게 명예를 뺏었다 주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좀 더 명확히 하기위해서 귀족은 대체로 두 부류로 고려되어져야 한다. 그들의 위치에 오르는 과정에서 그들이 모든 면에서 군주의 운(fortuna)에 묶여있었는지 아닌지로 나뉜다. 군주에 묶여있고 탐욕적이지 않은 귀족들은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묶여있지 않은 귀족들은 다시 두 종류로 검토 되어져야 한다. 그들이 묶여있지 않게된 까닭은 겁이 많아서 였던가 아니면 마음속의 천성적 결점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군주는 그들을 좋은 조언자로 복무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번영의 시기에 그들을 명예롭게 하며 역경의 시기에 군주는 그들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망이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묶이지 않는 귀족들은 군주보다 자신들을 더 생각한다는 표시이다. 군주는 이들을 주시해야 하며 마치 이들이 적으로 밝혀진 것 처럼 그들을 두려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리한 상황에선 언제나 군주를 파멸 시키는 것을 돕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의 지지로 군주가 된 사람은 대중을 우호적으로 유지해야만 한다. 이것은 쉽다. 왜냐하면 대중은 단지 억압받지 않기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의 뜻에 반해 귀족들의 지지로 군주가 된 사람은 무엇보다 앞서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시도를 해야한다. 이것은 쉽다. 군주는 단지 대중을 그의 보호아래 지켜주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나쁜 것을 받을 거라고 믿었던 사람으로 부터 좋은 것을 받으면 그 것을 준 사람에게 더 고마워 한다. 그래서 대중은 그들의 지원으로 군주가 됐을 사람보다 더 그 군주를 좋아하게 된다. 군주가 민심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방법에 관한 일정한 법칙을 말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다. 단지 군주는 우호적인 대중을 갖고 있어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역경의 시기에 군주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다는 말을 하며 끝내겠다. 스파르타인들(spartani)의 군주 ​나비스(Nabide/Nabis)​는 모든 그리스(Grecia)의 포위와, 항상 승리하는 로마군대를 견디어 내었고, 그들에 대항하여 그의 조국(patria)과 국가를 방어하였다. 그는 위험이 다가왔을 때 단지 소수의 반대자만을 감시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만약 그가 적대적인 대중을 갖고 있었다면 그 것만 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대중을 기반으로 권력을 세우는 사람은 진흙 위에 권력을 세우는 것이라는 진부한 속담을 인용해가며 이러한 나의 의견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속담이 진실일 경우는 대중위에 기반을 세운 어느 한 시민(cittadino)이 적들이나 행정관들(magistrati)​로 부터 탄압을 받게 되면 대중들이 그를 구출하러 올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로마(Roma)의 그라끼(​Gracchi​)와 피렌쩨(​Firenze/Florence​)의 죠르죠 스깔리(​Giorgio Scali​)에게 일어났던 것 처럼 흔히 기만당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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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대중 위에 기반을 세운 군주라면, 그는 지휘할 능력이 있는 군주이고, 용기 있는 사람이고, 역경에서 놀라지 않고, 만반의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고, 그의 마음과 명령으로 모든 대중에게 행동하려는 열망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군주라는 것을 의미하므로, 대중으로 부터 기만당하지 않을 것이고 그는 권력의 기반을 매우 견고하게 놓았다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군주국들은 시민체제(ordinamento civile)에서 절대권력(potere assoluto)으로 옮겨갈 때 위험하게 된다. 이 경우 군주는 자신의 권위로 직접 지배하거나 행정관(magistrati)를 통한 명령으로 지배한다. 두번 째 경우는 전적으로 정부에 자리잡은 시민들(cittadini)의 뜻에 의지하게 됨으로써 군주국은 대단히 취약한 상태가 되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군주국들은 무엇보다도 역경의 시기에 이들에 의해 국가를 가장 쉽게 탈취당할 수 있다. 그들은 방해하고 불복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국가를 탈취할 수 있다. 이 위험한 순간에 군주는 절대적 권위(autorità assoluta)를 장악하기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상시 행정관들(magistrati)로 부터 명령을 받는 시민들(cittadini)과 백성들(sudditi)은 군주에게 복종하려 하지 않는다. 불확실한 시기엔 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희소해 진다. 이와 같은 상황속의 군주는 시민들(cittadini)이 국가를 필요로 했던 평온한 시기에 보아왔던 사람들에게 기반할 수 없다. 그들은 죽음이 멀리 있을 때는 누구나 군주를 따르고, 누구나 서약하고, 모두 군주를 위해 죽기를 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가 시민들(cittadini)을 필요로 하는 역경의 시기엔 소수만 남는다. 이러한 체험은 오직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질 때 더욱 위험한 것이다. 그래 현명한 군주는 그의 시민들(cittadini)이 항상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군주가 필요하게 끔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들이 군주에게 항시 충성하게 된다.

Capitolo 10. In che modo si debbano misurare le forze di tutti i principati. 군주국의 세력을 측정하는 방법

군주국들의 특징을 검토할 때는, 군주가 불가피(necessità)한 경우 홀로 지탱할 수 있는 국가를 갖고 있는가, 아니면 늘 다른이들의 보호가 필요한 국가를 갖고 있는가를 관찰을 하는 것이 좋다. 이 부분을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하여, 나는 홀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이란, 누군가 그를 공격하러 왔을때 충분한 인력과 돈으로 적절한 군대를 조직하여, 전쟁터에서 전투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있음을 말해 둔다. 마찬가지로 나는 항시 다른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란, 전쟁터에서 적을 대면할 능력이 없고 성벽안에 피신하여 성벽 뒤에서 자신을 방어해야만 하는 사람이라 판단한다. 첫 번째 경우에 관해서는 이미 이야기 하였다. 차후에 필요하면 다시 이야기 하겠다. 두 번째 경우엔 달리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단지 그 군주에게 자신의 도시를 요새화 하고 성벽을 쌓고 영지(contado)는 고려에 넣지 말라고 제안한다. 자신의 도시를 잘 요새화 하고, 백성들(sudditi)에 대한 통치에 있어서, 위에서 언급한대로 그리고 아래에서 언급하게 될 방법대로 처리해온 사람은 항상 대단한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어려움으로 가득차 보이는 일을 싫어하며, 강력한 요새를 갖고 있고 백성들(sudditi)로 부터 미움을 받지 않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게르마니아(​Germania​)의 도시들은 최고로 자유롭고, 영지(contado)도 조금밖에 갖고 있지 않고, 황제에 대한 복종도 그들이 원할 때만 한다. 그들은 황제 뿐만 아니라 그들 주변의 다른 어떤 강자들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구나 그들을 정복하는 것은 길고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요새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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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많은 해자(fossati)와 적절한 성벽(mura) 그리고 충분한 대포(artiglierie)를 갖고 있다. 그들은 항상 일년간 먹고 마시고 사용할 수 있는 음식과 땔감을 공공창고(magazzini pubblici)에 보관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그들은 공적인 돈의 손실 없이도 평민들(plebi)을 부양하기 위하여, 시민(cittadina)의 삶과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직업을 평민들(plebi)에게 일년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그들은 명성이 자자한 군사훈련(esercizi militari)을 유지하고 이와 관련하여 그 것을 유지하기 위한 많은 법규들(ordinamenti)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요새화된 도시를 갖고 있고, 비난도 받지 않고 있는 군주는 공격받을 수 없다. 만약 그를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치욕스럽게 물러나게 될 것이다. 세상의 일들은 너무 다양하지만, 포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군대와 함께 일년간 한가하게 머무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거의 불가능 하다. 성벽 바깥에 그들의 재산을 갖고 있는 대중이 그 것이 불에 타는 것을 본다면, 인내심을 잃게 될 것이고 긴 포위기간과 그들 자신들의 관심은 군주를 망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강하고 용기있는 군주는 백성들(sudditi)에게 때론 악마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때론 적의 잔인성에 대한 두려움을 불어넣으면서, 때론 매우 대담하게 보이는 이들의 기민함으로 그들을 확신시켜 가며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응답하겠다. 또한 적은 도착하자마자 영지를 불태우고 폐허로 만들기로 결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이 때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 뜨겁고 방어에 잘 준비된 때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몇 일이 지나면 마음이 식고, 손실은 이미 일어났고, 피해는 받아들여지고, 이제 더이상 어떤 해결책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사람들은 군주와 함께 더욱 단결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군주를 방어하기 위하여 그들의 집이 불타고 재산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군주가 그들에게 의무를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자신이 받는 이익에 대해서와 같이 자신이 만드는 이익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낀다. 그러므로 모든 상황을 잘 고려 한다면, 군주가 시민들(cittadini)과 함께 살고 함께 방어하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한, 포위기간 동안 무엇보다도 시민들(cittadini)의 마음을 확고하게 유지시키는 것이 현명한 군주에게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Capitolo 11. I principati ecclesiastici 교권군주국

이제 살펴 볼 군주국의 종류는 오직 교권군주국(principato ecclesiastico)만이 남아 있다. 교권군주국에 관한 모든 어려움은 교권군주국을 획득하기 이전에 발생한다. 교권군주국은 능력(virtù)이나 행운(fortuna)에 의해 획득되고, 획득 후에는 능력이나 행운이 없이도 유지된다. 왜냐하면 교권군주국은 고대로 부터 종교(religione) 내에서 다져진 규정들(ordinament)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정은 매우 강력해서 군주의 행동과 삶의 방식에 상관없이 군주국을 통재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교권군주국의 군주는 국가를 소유할 뿐 방어하지 않고, 백성들(sudditi)이 있지만 그들을 통치하지는 않는다. 교권군주국은 무방비 상태임에도 탈취되지 않는다. 그리고 백성들은 지배받지 않으니 걱정거리가 없고, 그렇다고 스스로 군주로 부터 소외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그들 스스로 군주로 부터 자신들을 소외시킬 능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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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오직 교권군주국만이 안전하고 행복하다. 교권군주국은 인간의 마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높은 뜻에 따라 통치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교권군주국의 통치에 관해서는 언급을 생략하기로 하겠다. 교권군주국은 신(Dio)에 의해 찬양되고 유지된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주제넘고 무모한 인간이나 할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교회가 어떻게 그토록 막강한 세속적 권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물어볼 수는 있겠다. 교황 알레싼드로 6세 (Alessandro VI) ​이전 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의 세력가들(potentati) - 세력가로 불리웠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공작(barone)과 모든 신분이 낮은 모든 귀족(signore) - 은 교회를 세속권력(potere temporale)이라는 관점에서는 매우 약하다고 평가했었는데 지금은 프랑스 왕이 교회권력에 떨고 있다. 교회의 위세는 프랑스 왕을 이태리에서 몰아낼 수 있었고 베네치아의 세력을 파괴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을 좀더 상세히 기억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 왕 샤를 8세(Carlo VIII/Charles VIII)​가 이태리를 침공하기 이전에 베네치아인들(veneziani), 나폴리 왕(re di Napoli), 밀라노 군주(duca di Milano)와 플로렌스인들(fiorentini)은 교황의 정치적 영향력 하에 있었다. 이 지역의 세력가들(potentati)은 두 가지의 주된 걱정거리를 갖고 있어야 했다. 하나는 외국인(forestiero)이 군대와 함께 이탈리아를 침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영토를 점령하는 것 이었다. 가장 우려되는 외국인(forestiero)은 교황과 베네치아인들 이었다. 베네치아인들의 침략적인 목표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페르라라(Ferrara) 방어에서 처럼 모든 다른 국가들의 연합체가 필요하였다. 교황을 그의 영토안에 묶어 놓기 위해서는 로마의 공작들(baroni)을 이용해야 했다. 그들은 ​오르씨니(Orsini)가문​과 ​꼴로나(Colonna)가문​으로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반목할 동기가 있었다. 그들은 교황의 눈 앞에서 무기를 손에 들고 약하고 병든 교황을 지켰다. 교황 씨스토 4세(Sisto IV) ​처럼 용감한 교황이 나타나곤 하였지만 행운(fortuna)과 지식이 그를 불편함에서 해방시켜 줄 수는 없었다. 재임기간이 짧은 것도 이유였다. 평균적으로 10년인 재임기간 동안 두 세력중 하나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 이었다.

언제나 때때로 이러한 교황의

예를 들면 한 교황이 꼴로나(Colonna)가문을 거의 제거시키더라도 오르씨니(Orsini)가문에 적대적인 다른 세력이 나타나 꼴로나(Colonna)가문의 재기를 지원하게 되고 교황은 오르씨니(Orsini)가문을 제거할 시간을 갖을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탈리아(Italia)에서 교황의 세속적 권력은 낮게 평가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여지껏 임명된 모든 교황중에서 처음으로, 교황도 돈과 군사력의 도움을 받으면 얼마나 승리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 ​알레싼드로 6세​가 나타났다. 그는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공한 기회를 이용하여 내가 위에서 자세하게 설명한 ​바렌티노 군주 (Valentino duca)​의 행동을 수단으로 모든 일을 이루어 내었다. ​바렌티노 군주​의 의도는 교회를 강대하게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 일은 교회의 강성화로 귀결되었다. 그가 죽고 그의 군주국도 소멸하자 교회가 그의 업적의 상속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교황 쥴리오 2세(Giulio II/Julius II)​가 등장하였다. 그는 강대해진 교회를 물려 받았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든 로마냐(Romagna) 지역을 소유하게 되고 교황 알레싼드로 6세의 진압으로 파벌이 소멸된 로마 공작들(baroni)의 영향력이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전 교황 알레싼드로 6세는 한번도 실행에 옮겨본 적이 없는 돈을 축척할 수 있는 독창적인 방법의 열린 길을 발견하게 된다. 교황 쥴리오 2세는 교황 알레싼드로 6세의 계획을 이어갔을 뿐만 아니라 확대 시켰다. 그는 볼로냐(Bologna)를 얻고 베네치아를 제거하고 이태리에서 프랑스인들을 몰아내려는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모든 그의 실행은 성공하였고 모든 일을 개인적인 사심없이 교회 세력과 특권의 확장만을 위해 실행한 만큼 그에 대한 칭송도 커져갔다. 그는 오르씨니와 꼴로나 파벌도 그가 만든 새로운 개념에 따라 계속 유지하였다. 그들 중에는 당시의 상황을 변경시켜 보려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는 두 가지는 확고하게 지켜냈다. 하나는 그들을 경악시킨 교회의 강대함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 사이에서 항시 분란의 촉발 원인이 되어 왔던 그들 가족의 일원을 추기경으로 만드는 일을 못하게 한 것 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메디치 가문의 새로운 ​교황 레오 10세(Leone X de’ Medici/Leo X)​는 가장 강력한 교황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다른 교황들이 무기를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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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융성을 이루었다면 그는 그의 선량함과 무수한 능력(virtù)으로 칭송 받아가며 교회를 가장 위대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Capitolo 12. Di quanti generi sia la milizia; e i soldati mercenari 민병대의 종류와 용병

시작부분에서 내가 다루어 보기로 제안하였던 군주국들의 특성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마치고자 한다. 나는 위에서 군주국들 안에서 일어났던 선(bene)과 악(male)의 원인들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그리고 나는 군주국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법들도 보여 주었다. 이제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 하였던 군주국들 모두 갖을 수 있는 공격과 수비의 수단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살펴 보는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군주는 백성들(sudditi) 안에 좋은 기반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파멸을 맞게 된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신생군주국이든지, 오래된 군주국이든지, 아니면 혼합 군주국이든지, 모든 군주국들의 기본적인 기반은 좋은 법과 좋은 군대이다. 왜냐하면 좋은 군대가 없는 곳에는 좋은 법이 존재할 수가 없고 또한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대개 좋은 법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법 부분은 남겨두고 군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군주가 자신의 국가를 방어하는 군대의 종류는 자기 자신의 군대 이거나 아니면 용병(mercenarie)이거나 아니면 지원군(ausiliarie) 이거나 아니면 용병과 지원군이 섞인 경우로 나뉘어 진다. 용병과 지원군은 쓸모가 없고 위험하다. 용병에 기초한 국가는 안정적 일 수 없고 안전할 수 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열되있고 야심이적 이며 규율​ ​(​disciplina)과 충성심이 없다. 그들은 친구 앞에선 용감하고 적 앞에선 비겁하다. 그들은 신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다. 그들은 적에 대한 습격 시기를 미루는 만큼 적을 파괴하는 시기도 지연 시킨다. 그리고 평화시에는 그들로 부터 약탈 당하고 전쟁시에는 적들로 부터 약탈 당한다. 그들이 이러한 이유는 적은 급여 말고는 그들이 전쟁터를 지켜야 할 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급여는 그들이 군주를 위해 죽기를 원하도록 만들기엔 충분치 않다. 그들은 군주가 전쟁을 하지 않는 동안에만 군주의 군인이길 원한다. 그러나 전쟁이 다가오면 탈출을 가거나 전쟁터에서 도망을 간다. 나는 그들의 행동이 이렇다는 것을 별 어려움 없이 증명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 이탈리아의 폐허들이 수년간 용병에 의지한 사실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겐 약간의 성공을 가져다 주었고 그들 사이에선 용감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인이 나타나자 그들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 주었다. 이런 이유에서 ​프랑스 왕 샤를 8세(Carlo VIII di Francia/Charles VIII of France)​는 전투없이 이탈리아를 점령할 수 있었다. 프랑스 왕은 이러한 원인은 이탈리아인들의 죄(peccati)라고 말 하였는데 그는 진실을 말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이탈리아인은 사실 우리들 전체가 아니고 내가 위에서 설명한 이들이다. 왜냐하면 용병을 이용한 것은 군주들의 죄이고 군주들 역시 이로인해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군대의 부적절함을 좀 더 보여주고 싶다. 용병대장은 탁월한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일 수 있다. 만약 그가 탁월하다면 군주는 그를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고용주인 군주를 압박하거나 아니면 군주의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압박하면서 항시 자신만의 위대함을 열망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용병대장이 탁월하지 못하다면 그는 군주를 통상적으로 망하게 할 것이다. 용병이던 아니던 누구나 손에 무기를 갖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래서 무기는 군주나 아니면 공화국(repubblica)에 의해서만 사용되어져야 한다고 응답할 것이다. 군주는 자신이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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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역할을 해야만 한다. 공화국은 전쟁에 그들의 시민들(cittadini)을 보내야 한다. 그중 전쟁에 재능을 보이지 못한 이는 교체하고 재능이 증명된 이는 서명을 어길 수 없도록 법적으로 묶어 두어야 한다. 경험적으로 군주가 직접 지휘하거나 공화국 군대가 참전한 전쟁은 최고의 전과를 올린 반면 용병이 참전한 전쟁은 피해만 끼쳤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의 무기로 무장한 공화국 군대는 외부의 무기로 무장한 군대보다 자신들 중의 하나인 대장에 대한 복종심이 훨씬 강하다. 로마(Roma)와 스파르타(Sparta)는 수세기 동안 자신의 군대를 갖고 있었고 자유로 왔다. 스위스는 가장 잘 무장 되어 있었고 가장 자유로 왔다. 고대 용병 군대의 예 중에는 카르타고인들(cartaginesi)이 있다. 로마와의 첫 번째 전쟁 끝 무렵 지휘관들은 카르타고 시민들(cittadini)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용병들에 의해 억압당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고대 그리스 ​테베(Tebe/Thebes)​의 장군 에파미논다스​(​Epaminonda/Epaminondas)​가 죽은 후 테베인들(tebani)에 의해 ​마케도니아의 필리포 2세(Filippo II di Macedonia)​가 그들의 지휘관이 되었다. 그는 승리후에 테베인들의 자유를 빼앗았다. 밀라노인들은 ​필리포(Filippo Maria Visconti) 군주가 죽은 후 ​프란체스코 스포르짜(Francesco Sforza)​를 베네치아인에 맞서기 위하여 용병대장으로 고용하였다. 그는 ​까라바지오(Caravaggio) 전투​에서 적을 압도한 후 적들과 공모하여 그의 고용주인 밀라노를 억압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무찌오 스포르짜(Muzio Sforza)​는 ​나폴리 여왕 죠반나(Giovanna/Joanna I of Naples)​의 용병대장 이었는데 갑자기 그녀를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알퐁소 아라공 왕(Alfonso V d'Aragona)​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지난 날 베네치아인들과 플로렌스인들은 용병을 이용하여 세력을 확장였으나, 용병대장이 군주를 방어하였지 스스로 군주가 된 적은 없었다고 반문 한다면 나는 그 것은 플로렌스인들의 행운이라고 답하겠다. 왜냐하면 두려워 할 만한 유능한 용병대장들 중 몇몇은 승리를 하지 못했거나 강한 저항에 부딪쳤으며 다른 이들은 자신의 야망을 다른 장소로 돌렸기 때문이다. 승리하지 못한 용병대장은 ​죠반니 아우꾸드(Giovanni Aucut/John Hawkwood) ​였다. 그의 패배로 인해 그의 충성심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가 만약 승리하였다면 그는 플로렌스인들을 자신의 뜻대로 했을 것이란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스포르짜(​Sforza​)에게는 그에게 늘 적대적인 ​브라치오 다 몬또네(Braccio da Montone)​의 사람들이 있어서 서로를 견제 하였다. 그래서 프란체스코(​Francesco​)는 그의 야망을 ​롬바르디아(Lombardia/Lombardy)​로 돌렸고 브라치오는 교회와 나폴리 왕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섰다. 이제 얼마전 일어났던 일로 가보자. 플로렌스인들은 개인적인 행운으로 대단한 명성을 얻은 가장 현명한 사람인 파올로 비뗄리(​Paolo Vitelli​)를 그들의 용병대장으로 임명하였다. 이 사람이 ​삐자(Pisa)​를 점령하였다면 플로렌스인들은 그의 유임에 지대한 이해관계를 갖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플로렌스 적국의 용병이 되었다면 구제책(rimedio)이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그를 지켰다면 그에게 복종하도록 강요되었을 것이다. 베네치아인들이 그들의 성취를 반추해 본다면 그들은 그들 자체의 수단으로 전쟁을 수행 했을 때는 확신과 영광을 갖고 수행 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그들이 본토(terraferma)에 눈을 돌리기 이전 이었다. 그들은 무장한 귀족(gentili)과 평민(plebe)군으로 진실로 고결하게(virtuoso) 전쟁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본토에서의 전투를 시작 하자마자 이러한 능력(virtù)을 버리고 이탈리아 전쟁의 관례를 따랐다. 그들의 본토에서의 영토확장 초기에는 영토가 많지 않았고 자신의 위대한 명성에 기대어 용병대장에 대한 큰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용병대장 ​까르미뇰라(Carmignola)​가 침략전쟁을 확장시켜 감에 따라 그들의 실수에 대한 지혜를 발휘하였다. 그들은 까미뇰라가 밀라노의 군주를 패배시켰기 때문에 그가 매우 유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전쟁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그들은 그의 지휘하에서는 더 이상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승리를 원하지 않고 그들 또한 그간 획득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를 해임시킬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해를 끼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그를 죽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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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들의 용병대장은 ​바르톨로메오 다 베르가모(Bartolomeo da Bergamo)​, ​로베르토 다 싼 쎄베리노(Roberto da San Severino)​, ​삐띨리아노(Pitigliano)​와 이와 비슷한 인물들 이었다. 베네치아인들은 이들로 인해 영토를 확장한 것이 아니라 손실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바일라(Vailà) 전투​이다. 이 단 한번의 전투에서 그들은 8 백년 세월 동안 모든 노력으로 얻은 것을 잃었다. 용병부대로 부터의 산출은 더디고, 늦고, 빈약한 반면 손실은 갑작스럽고 경이적 이었다. 위에서 나는 수년간 용병 군대에 의해 좌우되었던 이탈리아에 관하여 예를 들어가며 설명 하였다. 이제 나는 이들에 대하여 좀 더 일반적인 설명을 이어가려 한다. 그들의 기원과 진행된 과정을 살펴 보아야 그들을 좀더 낫게 개선시킬 수가 있다. 그러려면 우선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최근에 이르러 이탈리아의 힘이 빠지기 시작 하였고, 교황은 세속적 권력에 있어서 더 많은 명성을 얻었으며, 이탈리아는 더 많은 국가들로 분열 되었다는 점이다. 대도시의 상당수가 이전까지 황제의 지원를 받아가며 그들을 억압하던 그들의 귀족들(nobili)에 대항해 무기를 들었다. 반면에 교회는 세속적 권력에서 명성을 얻기위해 그들을 지원하였다. 시민들(cittadini) 중 많은 이들이 군주가 되었다. 그래 이탈리아의 대부분이 교회(Chiesa)와 공화국(Repubblica)의 손에 들어갔다. 그 성직자들(preti)과 시민들(cittadini)은 군대에 관하여 아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외국인들(forestieri)을 고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군대에 처음으로 명성을 가져다 준 용병대장이 로마냐 출신 알베리고 다 꼬니오(Alberigo da Conio) ​였다. 그의 군사학교(scuola militare)에서 배출된 용병대장들 중에는 그들의 시대에 이탈리아의 중재자 역할을 하였던 ​브라치오 다 몬또네(Braccio da Montone)​와 프란체스코 스포르짜(​Francesco Sforza​) 가 있다. 이들 이후로 다른 수 많은 용병대장들이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이 군대를 지배하였다. 이들의 명성은 프랑스 왕 루이 12세 (​Luigi XII​) 에 앞선 ​프랑스 왕 샤를 8세 (Carlo VIII/Charles VIII) ​의 이탈리아 침공과 ​아라공 왕 페르디난도 2세 (Ferdinando il Cattolico) 의 약탈과 스위스에 당한 치욕으로 종말을 고하였다. 그들이 견지하였던 지침은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보병부대들(fanterie)의 명성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했던 것은 그들은 국가도 없고 단지 그들의 직업만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이다. 적은 수의 보병은 그들에게 명성을 가져다 주지도 못하고, 많은 수의 보병은 그들이 적절하게 유지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군대는 명성을 가져다 주는,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기병대로 축소 되었다. 심한 경우 2만명 규모의 군대에 보병의 수는 2천명도 안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 밖에도 그들은 자신들과 군인들이 전쟁에서의 공포와 피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강구하였다. 용병들은 전투에서 서로 죽이지를 않고 서로 포로로 잡았으며 몸값도 받지않고 서로 풀어주었다. 그들은 요새화된 도시를 밤에는 공격하지 않았고 도시 역시 군대야영지를 공격하지 않았다. 군대 야영지 둘레에는 울타리도 세우지 않았고 구덩이를 파지도 않았다. 겨울에는 전투를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를 노예와 치욕으로 몰아넣은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군사지침에 의해 허용되었으며 전쟁의 피로와 위험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Capitolo 13. I soldati ausiliari, misti e propri 지원군과 혼합군과 자체군

지원군(​ausiliarie​)은 또 다른 쓸모없는 군대로 지원 요청을 받은 군주가 지원과 방어를 해주러 그의 군대와 함께 온다. 이러한 최근의 예로는 교황 쥴리오 2세(​Giulio II​)가 ​페르라라(Ferrara) 전투​에서 자신이 고용한 용병(​mercenarie​)의 불리한 전황을 보고 지원군을 불러 들였다. 교황은 ​스페인 왕 페르디난도(Ferdinando re di Spagna)​와 그의 군대와 그의 사람들이 교황을 도울 것을 합의 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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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자체로는 유용하고 좋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원군을 부른 사람에게 이 군대는 거의 항상 해롭다. 왜냐하면 지원군을 부른 사람은 패배하면 패배한 채로 남고 승리하면 지원군의 포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고대사에 수없이 많지만 그럼에도 나는 교황 쥴리오 2세(​Giulio II​)의 최근 예를 무시하고 싶지 않다. 그의 결정은 더 할 수 없이 경솔했다. 페르라라(​Ferrara​)를 정복하기 위하여 모든 것이 외국인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행운 (fortuna)이 세번 째 일을 만들어 내어 그는 나쁜 선택의 열매를 따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지원군은 라벤나(​Ravenna​)에서 패배하였고 그와 다른 사람들의 예상 밖으로 스위스 용병이 나타나 승리자를 몰아내었다. 그래서 그는 도주하는 적군이나, 자신의 군대가 아닌 남의 군대로 승리하게 된 그의 지원군의 포로로 남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전혀 무장이 되어 있지 않은 플로렌스인들은 삐자(​Pisa​)를 점령하기 위하여 만명의 프랑스 병사를 삐자(​Pisa​)로 이끌었다. 이 결정으로 인하여 그들은 그들이 모든 시기에 겪었던 도전들 보다도 더한 위험을 가져왔다. 콘스탄틴 대제(L’imperatore di Costantinopoli/Constantine the Great)​는 주변국들과 싸우기 위하여 그리스에 만명의 터키인들을 보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들은 그곳을 떠나길 원치 않았다. 이것이 그리스가 이교도들하에서 노예화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므로 승리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원군이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지원군은 용병보다 훨씬 위험하기 때문이다. 지원군은 확실한 파멸을 보장한다. 그들은 모두 단결돼 있고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충성한다. 반면에 용병은 적을 패배시키고 자신들을 고용한 군주를 공격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더 좋은 기회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치되어 있지 않고 고용한 군주에 의해 징집 되고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고용한 군주가 그들의 수장을 임명한 경우 고용한 군주를 공격해서 성공시키기 위한 모든 권위(autorità)를 즉시 획득할 수가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원군에 있어서는 그들의 능력(virtù)이 가장 위험한 반면에 용병에 있어서는 그들의 태만(ignavia)이 가장 위험하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군주는 항상 이 군대들을 피하고 자신의 군대로 눈을 돌렸다. 그들은 남의 군대로 승리하는 것보다 자신의 군대로 지는 것을 원하였다. 왜냐하면 외국군대로 얻은 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체자레 보르지아(​Cesare Borgia​)와 그의 행동의 예를 덧붙이는 것을 결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이 군주는 모두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지원군(ausiliarie)을 이끌며 로마냐(​Romagna​)로 들어갔다. 그는 이 지원군대로 이몰라(​Imola​)와 포를리(​Forlì​)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 지원군이 믿을만 하지 못하다고 느끼고는 용병(mercenarie)이 덜 위험하다는 판단하에 용병으로 눈을 돌려 오르씨니(​Orsini​)와 비텔리(​Vitelli​) 가문의 용병을 고용하였다. 그리고는 그들을 지휘하다 그들이 의심스럽고 충성스럽지 않고 위험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들을 없애고 자신의 군대로 눈을 돌렸다. 여기서 누구나 이 군대들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직 프랑스인들을 갖었을 때 부터 오르씨니와 비텔리를 갖었을 때를 지나 그 자신의 군대에 머물며 그 군대의 주인(padrone)이 였을 때 까지 군주의 명성이 어떻게 좋게 변화 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명성은 항상 증가하였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그가 그의 군대의 완벽한 주인임을 보았을 때 보다 그가 더 존경 받았을 때는 없었다. 나는 이탈리아와 보다 최근의 예를 떠나긴 싫었지만 앞에서 언급하였던 그리스 시대 ​시칠리 왕 이에로네 디 씨라쿠자(Ierone di Siracusa/Hiero II of Syracuse)​를 뒤에 남겨놓고 싶지는 않다. 시칠리인들의 군대 수장이 된 그는 곧 용병이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당시 용병 대장(condottieri)은 우리 이탈리아의 용병 대장처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용병을 유지할 수도 없고 그냥 놔 둘 수도 없어서 모두 죽여버렸다. 그후 그는 외국인 부대가 아닌 자신의 군대로 전쟁을 하였다. 나는 이 주제에 적합한 구약성서(Vecchio Testamento)의 한 인물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다비드(​David​)는 바울(​Saul​)에게 ​필리스틴(filisteo/Philistines)​의 선동자(provocatore)인 ​골리앗(Golia/Goliath)​과 싸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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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겠다고 제안하였다. 사울은 다비드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그를 자신의 무기로 무장시켰다. 그러나 다비드는 무장을 해 보자마자 그 무장은 하면 자신의 무기를 잘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며 거절하였다. 다비드는 자신의 새총과 칼만으로 적과 싸우기를 원하였다. 한마디로 남의 무기는 벗겨지거나 무겁거나 불편하다. 루이 11세(Luigi XI/Louis XI)​의 아버지인 ​샤를 7세(Carlo VII/Charles VII)​는 그의 행운(fortuna)과 능력(virtù)으로 프랑스를 영국으로 부터 해방시키면서, 자신의 군대로 무장할 필요성을 실감하고, 자신의 왕국내에서 기마병(genti d’arme)과 보병(fanterie)을 징집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후 그의 아들인 ​루이 11세(Luigi XI/Louis XI)​는 보병(fanti)을 없애고 스위스 용병을 고용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이들도 따라했던 이 실수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듯이 사실 프랑스 왕국을 위협하는 위험들의 원인이다. 그는 스위스 용병에 명성을 가져다 주었고 그래서 모든 그의 군대의 사기를 떨어 뜨렸다. 그는 보병부대를 해체하고 기병부대 에겐 다른 국가에 복무를 강요하였다. 그의 군대는 스위스 용병과의 군사행동에 익숙해져 그들 없이는 승리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프랑스인들은 스위스인들과 상대하기엔 충분치 않고 스위스인들이 없이는 다른 국가들과 상대해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 보일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프랑스의 혼합군(eserciti misti)은 그래서 부분적으로는 용병이고 부분적으로는 자체군이었다. 이러한 군대는 모두 합치면 단순한 지원군이나 단순한 요병보다 훨씬 낫고 자체군 보다는 훨씬 못하다. 한 예로 충분하다. 만약 ​샤를 7세(Carlo VII/Charles VII)​의 규율(ordinamento)이 확장되고 보전되었더라면 프랑스 왕국은 넘어설 수 없는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명하지 못함으로 인해 처음의 좋은 맛 때문에 독을 품고 있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게 하는 일을 시작한다. 나는 한참 전에 폐결핵의 열에 관한 예를 들었었다. 그러므로 군주의 지위에 있으면서 언제 악마가 태어나는지 모르는 사람은 진실로 지혜롭지 못하다. 이러한 지혜는 소수에게만 주어진다. 로마제국의 첫번째 폐허를 생각해 보면 그 것은 바로 고트족(​goti​)을 채용하기 시작했을 때 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부터 로마제국의 힘은 쇠진하기 시작하였고 그들로 부터 발생한 모든 능력(virtù)이 고트족에게 주어졌다. 나는 자체군을 갖지 않고는 어떤 군주국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렇지 않고는 역경에서 군주국을 방어할 어떤 능력(virtù)도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운(fortuna)의 손에 놓이게 된다. 자신의 힘에 근거하지 않은 명성과 세력처럼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이 없다는 것이 항상 지혜로운 사람들의 의견이고 판단이었다. 자체군은 백성들(sudditi)이나 시민들(cittadini)이나 군주의 신하들(sottoposti)로 구성된다. 다른 모든 것은 용병들(mercenarie) 아니면 지원군들(ausiliarie)이다. 자체군(armi proprie)을 조직하는 방법은 내가 위에서 언급한 네가지 법칙을 토론해 보고,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와 많은 공화국들과 군주들이 어떻게 무장하고 조직하였는지를 보게 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법칙들을 완전히 신뢰한다.

Capitolo 14. Quello che a un principe conviene fare circa la milizia. 군주가 민병대를 통솔하는 방법

그러므로 군주는 다른 목적이나 다른 생각을 갖거나, 전쟁을 위한 조직과 훈련의 기술(arte)외에 어떤 다른 기술을 취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이 갖추어야할 유일한 기술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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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다. 세습군주는 이러한 기술이 있어야 군주국을 유지시킬 수 있고 일반시민들(cittadini privati)이 군주의 지위에 오르게 하는 능력(virtù)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은

반면에 군주가 군대보다 사소한 것들을 더 생각하게 되면 군주는 그의 국가를 잃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국가를 잃게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전쟁의 기술을 등안시하기 때문이고 국가를 획득하게 되는 이유도 전쟁의 기술을 전문적으로 익혔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짜(​Francesco Sforza​)는 군대 덕분에 일반시민(cittadino privato)에서 밀라노의 군주가 되었다. 그의 아들들은 군대 유지의 어려움들을 회피했기 때문에 군주에서 일반시민이 되었다. 무엇보다 비무장은 군주에게 피해를 준다. 왜냐하면 군주가 경멸을 당하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보게 되듯이 경멸은 군주가 반드시 유념해야할 불명예 중 하나이다. 무장한 군주와 비무장 군주 사이엔 어떤 균형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장한 사람이 비무장한 사람에게 자진해서 복종을 한다거나 비무장한 사람이 무장한 신하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것은 이성적인 생각이 아니다. 한 사람 안에는 경멸이 있고 다른 사람 안에는 의심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런 두 사람은 잘 협력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민병대(milizia)를 이해 못하는 군주는 위에서 언급한 불행 이외에도 자신의 병사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군주는 그들을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전쟁 훈련에 관한 생각을 떠나서는 않되며 전쟁시 보다 평화시에 더욱 훈련을 해야 한다. 전쟁훈련은 두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다. 하나는 실제훈련을 통한 몸으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론을 통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전쟁훈련시 군대의 조직과 훈련을 잘 유지하는 것 외에 곤경한 상황에서 신체를 적응시키기 위한 실전 사냥 훈련을 항시 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산들이 어떻게 솟아있고 계곡에는 어떻게 들어가는지 평지는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그 지역의 자연을 배워야 하며 강과 습지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일은 최고의 심혈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러한 지식은 두가지 면에서 유용하다. 군주는 우선 자기나라의 지형을 배워야하며 그것을 방어하는 방법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장소에 대한 지식과 실전연습을 통해 그는 어떤 다른 장소를 새롭게 탐험하게 되더라도 보다 쉽게 그 장소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또스까나(Toscana)에 있는 언덕, 계곡, 평원, 강과 습지들은 다른 지방들의 그것들과 일정한 유사성을 갖고 있는 만큼 한 지역의 지형에 대한 지식으로 부터 다른지역의 지형에 대한 지식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러한 전문성이 결여된 군주는 지휘관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지식이 결여된 것이다. 이러한 지식은 적군을 발견하고 주둔지를 택하고 군대를 지휘하고 전투를 준비하고 유리한 지역을 점령하는데 활용된다. 아케아인들​(Achei/Achaeans)의 군주 ​필로포에멘(Filopemene/Philopoemen)​에 관한 기술에 의하면 그는 평화시에도 전쟁 방법에 관해서만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는 친구들과 야외에 있을 때면 늘 다음과 같이 전쟁에 관한 상의를 하였다고 한다. “적들이 언덕위에 있고 우리가 우리들의 군대와 함께 이 곳에 있다면 누가 유리할까? 어떻게 전열을 유지한채 그들을 공격할 수 있을까? 우리가 후퇴하길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들이 후퇴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추적해야 할까?” 그리고 그는 친구들과 계속 걸으면서 군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들을 그들에게 제시하고 그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의 의견을 이성적으로 강화시켰다. 이러한 지속적인 숙고의 과정 덕분에 그가 군대를 지휘할 땐 그가 이미 대비책을 세우지 않은 어떠한 사건도 생길 수가 없었다. 군주는 마음을 수련시키기 위하여 전투를 기술한 역사책을 읽어야 한다. 역사속의 훌륭한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이 전쟁속에서 어떻게 행동하였는지를 보고 그들의 승리는 모방하고 패배는 피하기 위하여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보다 앞선 칭송받고 찬양받던 인물들을 모방한 이전의 훌륭한 인물들이 행동한 것처럼 행동해야 하며, 늘 그들의 처신과 행동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 ​알렉산더 대왕(Alessandro Magno/Alexander the Great)​은 ​아킬레스(Achille/Achilles)​를 모방하고 ​케사르(Cesare/Caesar)​는 알렉산더 대왕을 모방하고 ​스키피오(Scipione/Scipio)​는 키루스(Ciro/Cyrus)​를 모방하였다고 전해진다. 크세노폰(Senofonte/Xenophon)​이 기술한 ​키루스​(Ciro/Cyrus) 전기를 읽은 사람들은 스키피오(Scipione/Scipio)​의 생에 있어서 키루스에 대한 모방이 얼마나 많은 영광을 갖어다 주었는지, 금욕과 겸양과 인류애와 관대함에 있어서 크세노폰이 기술한 키루스의 행동들과 스키피오가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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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하는지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현명한 군주는 이들과 유사한 길은 따라야 하며 평화시에도 절대로 게을러서는 안된다. 환경이 바뀌고 운(fortuna)이 변해도 그에 대항해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군주는 근면하게 늘 연습을 해야한다.

Capitolo 15. Le azioni per le quali gli uomini e soprattutto i principi sono lodati oppure biasimati 칭찬받거나 비난받는 군주의 행동들

이제 군주의 백성과 협력자들(collaboratori)에 대한 태도와 행동에 대해 살펴보는 일이 남아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써왔다는 것을 알기에 나 또한 이 주제를 다룬다면, 더우기 나는 이 주제에 있어서 다른이들의 입장과는 완전히 거리를 두고 있기에, 무례하게 여겨질까 두렵다. 그러나 나의 목적은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유익할 것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상상하는 것보다 직접 실제적인 현실을 다루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많은 이들이 현실에선 볼 수도 없고 인정될 수도 없는 공화국들(repubbliche)과 군주국들(principati)을 상상해 왔다. 사람들이 사는 법(si vive)과 살아야 하는 법(si dovrebbe vivere)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서, 해야만 하는 것(si dovrebbe fare)을 위해 하는 것(si fa)을 등한시 한 사람은 자신을 보전 하기 보다는 피해를 입게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모든 경우에 선하게 행동하고자 하는 사람은 선하게 행동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 고로 권력을 유지하길 원하는 군주는 선하지 않게 행동하는 법을 배워 필요한 경우 이 능력을 사용하는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군주에 대한 상상이 아닌 진실에 대해 논의하자면 모든 남자들, 특히 최상층부에 위치한 군주들은 비난이나 칭찬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판단 된다. 어떤 사람은 관대하고 어떤 사람은 비참(misero)하다고 (토스카나어로는 강탈도 불사하고 부자가 된 사람은 인색하다고 하고 지나치게 검소한 사람은 비참하다고 표현) 평가된다. 어떤 사람은 선물을 줌에 있어 관대하고, 어떤 사람은 탐욕스럽고, 어떤 사람은 잔인하고, 어떤 사람은 가엾고, 어떤 사람은 계약을 깨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키고, 한 사람은 약하고 겁이 많고, 다른 사람은 결단력이 있고 용감하고, 한 사람은 친절하고, 다른 사람은 거만하고, 한 사람은 음탕하고, 다른 사람은 정숙하고, 한 사람은 진실하고, 다른 사람은 교활하고, 한 사람은 완고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스럽고, 한 사람은 결정에 있어 확고하고, 다른 사람은 경박하고, 한 사람은 신자이고 다른 사람은 비신자이고 등등으로 평가된다. 이 모든 성품중에서 좋게 평가되는 것들만 갖고 있는 군주를 누구나 칭송할 것 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군주가 이러한 모든 좋은 성품을 갖추고 또한 완벽하게 유지시킨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조건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주는 국가를 잃게 될 정도의 악행에 대한 불명예를 피할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하고 가능하면 악행을 행하는데 있어 국가를 잃지 않을 정도로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가능하지 않다면 악행을 즉시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군주는 국가를 유지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악행으로 인한 불명예를 염려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모든 일들을 잘 살펴보면 도덕(virtù)으로 보이는 일을 따르면 파멸에 이르게 되고 부도덕(vizio)으로 보이는 일을 따르면 안전과 번영을 가져다 주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Capitolo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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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liberalità e la parsimonia del principe 군주의 후함과 인색함

위에서 언급한 첫번째 성품에 관하여 말하자면 베품에 있어 후하다는 평판은 좋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숙고한 방법으로 이용된 후함도 군주에게 해가 된다. 왜냐하면 군주가 선행이 실행되어야 하는 방법대로, 도덕적인 방법으로, 실행한다면 선행은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군주의 적대자들로 부터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군주가 사람들 사이에서 후하다는 평판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뒤에 허세를 부린다는 인상을 남기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즉 매우 많은 돈을 써야만 한다. 이러한 명망 있는 군주는 항상 유사한 일들에 자신의 모든 부를 소비한다. 그래서 종국적으로는 후하다는 평판을 유지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으로 무거운 부담을 지우게 되고 돈을 모으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일들을 하게 된다. 백성들은 군주를 가증스럽게 보기 시작하고 누구나 군주를 얕잡아 보게 된다. 그리고 군주는 가난해 진다. 이러한 방법의 군주의 후함은 다수를 공격하고 소수에 보상하게 되어 군주는 모든 사소한 일에도 불만을 느끼게 되고, 모든 사소한 위험에서도 위험에 빠지게 된다. 군주가 그것을 인식하고 후함을 철회하려 할 때 그는 즉시 극도로 인색한 욕심많은 구두쇠라는 비난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피해를 입지않고 후하다는 평판이 널리 알려질 수 있는 방법으로 후함을 사용할 능력이 없는 군주는 그가 현명하다면 구두쇠 같이 인색하다는 평판을 괘념치 말아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후하다는 평판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절약으로 누가 그에게 전쟁을 걸어와도 방어할 수 있을 정도로 수입이 충분하게 되면, 백성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도 후함을 베푸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주로 부터 약탈을 당하지 않고 베품을 받은 사람들은 무수히 많아지고 군주가 인색하게 아무것도 주지않은 사람들은 적어진다. 우리는 우리시대에 인색하다는 평판을 받지 않고 위대한 일을 행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반면에 우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소멸해 가는 것을 보아 왔다. ​교황 줄리오 2세​는 교황이 되기 위하여 후하다는 평가를 받기위해 공헌하였지만 전쟁을 하기 위하여 더는 그 명성을 유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현재의 프랑스 왕은 그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의무를 지우지 않은채 많은 전쟁을 수행하였다. 왜냐하면 단지 그는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않고 꾸준히 검약을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스페인 왕도 후하다고 평판이 났다면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백성을 강탈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가난해 지거나 멸시 받게 되지 않기 위해서, 탐욕적으로 되길 강요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색하다는 평판에 빠지게 되는 것을 조금도 괘념치 말아야 한다. 이것은 통치하기 위한 부도덕한 행위중 하나이다. 누군가 ​케사르(Cesare/Caesar)​는 후함으로 권력에 이르렀고, 국가의 높은 지위까지 오른 수 많은 후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한다면 나는 현재 군주가 권력을 잡고 있는 경우와 아니면 권력을 쟁취하는 도정에 있는 경우로 나누어 대답하겠다. 첫번째 경우에는 후함은 위험하다. 두 번째 경우에는 후하다는 평판이 필요하다. 케사르는 로마의 군주가 되기를 원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가 권좌에 오른 후 생존하였다면, 그리고 지출을 자제하지 않았다면, 그의 권력은 무너졌을 것이다. 누군가가 많은 군주 들이 그들의 군인들에게 최고로 후하게 베풀면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다시 말한다면, 나는 그 군주가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의 재물을 썼는지 아니면 남의 재물을 썼는지를 되물을 것이다. 첫 번째 경우라면 검약해야만 하고 두 번째 경우라면 후함을 실행함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약탈과 전리품과 보상금으로 먹고사는 군대와 함께 출전중인 군주는 다른이들의 재산을 관리한다. 이 경우 군주에게 후함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군인들이 군주를 따르지 않는다. 군주의 것도 아니고 군주의 백성의 것도 아닌 것이라, 군주는 최고로 후하게 베푸는 자가 될 수 있다. 군주는 키루스(Ciro/Cyrus)​, ​케사르(Cesare/Caesar)​, ​알렉산더 대왕(Alessandro Magno/Alexander the Great)​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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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후하게 베풀 수 있다. 다른이들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것은 군주의 명성을 깍아내리지 않고 드높인다. 오직 군주자신의 재물을 낭비하는 것 만이 군주를 해하는 것이다. 후함과 같이 빠른 소비는 없다. 후함을 실행하는 동안에 재력이 사라진다. 그래서 군주는 가난해 지고, 백성들에게 멸시당하게 되거나, 아니면 빈곤을 탈출하기 위해서 탐욕스럽게되어 백성들로 부터 증오를 받게 된다. 모든 것 중에서 군주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백성들로 부터 멸시를 당하거나 증오를 받게 되는 일이다. 후함은 군주를 백성들로 부터의 멸시나 증오로 이끈다. 그러므로 군주는 단지 비난만을 야기시키는 인색하다는 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군주를 탐욕에 빠지게 강요하는 후함은 종국적으로 백성들로 부터 증오를 동반한 비난을 갖어 오기 때문이다.

Capitolo 17. La crudeltà e la pietà; e se sia meglio essere amati o temuti, oppure il contrario 군주의 잔인성과 자비심 - 군주는 사랑받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두려움의 대상인 것이 좋은가?

이제 위에서 언급한 다른 성품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다. 모든 군주는 잔인하지 않고 자비심이 많다는 평판을 받기를 염원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비심을 잘 못 사용하지 않도록 유념해야만 한다. 체자레 보르지아(​Cesare Borgia​)는 잔인하였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의 잔인함은 로마냐(​Romagna​) 지역을 재편성하고 통일시켜 평화를 회복시키고 정부에 충성하도록 만드는데 공헌하였다. 잘 생각해 보면 그는 플로렌스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동정심이 많았다고 결론 짓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잔인하다는 평판을 피하기 위하여 당파 사이의 분쟁이 ​피스토이아(Pistoia) ​지역을 파괴하도록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백성들을 통합시키고 그들의 충성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잔인하다는 평판을 괘념치 말아야만 한다. 이러한 최소한의 잔인한 행동이 과도한 자비를 위해 살인과 약탈을 초래하는 폭동이 일어나도록 허용하는 것 보다 훨씬 자비로운 것이다. 이러한 폭동은 통상적으로 모든 시민들을 해치게 되는 반면에 군주에 의한 처형은 오직 개개의 시민들만을 해친다. 모든 군주들중에서 특히 신생군주는 잔인하다는 평판을 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신생국은 수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버질(Virgilio/Virgil)​이 ​디도(Didone/Dido)​의 입을 통해 이와 같은 말로 표현하였다. “정치적 필요성(necessità)과 왕국의 새로운 건국이 나를 그러한 일들로 내몰았고 모든 내 영토를 주의깊게 감시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는 위험의 존재를 인식하고 행동하는데 있어서 신중해야 하고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군주는 현명함(prudenza)과 인간애(umanità)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과도한 자신감으로 경솔 해져서는 안되며 다른이들에 대한 불신으로 자신을 견딜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선 안된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군주는 사랑 받는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좋은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가 좋은 것일까? 답은 이렇다. 군주는 사랑받고 동시에 두려운 대상이 되는것이 옳다. 그러나 사랑도 받고 두려움의 대상도 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를 택한다면 사랑받기 보다 두려움이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인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은혜를 모르고, 변덕이 심하며, 모의를 잘하고 위선자이며 위험앞에서는 비겁하고 소유욕이 강하다. 군주가 그들에게 잘 해 주는 한 그들은 군주의 편이다. 군주가 그들을 필요로 할 시기가 멀리 있을 땐, 그들은 위에서 말 한 바와 같이 피와 물질과 생명과 자식들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시기가 가까워 지면 그들은 거절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기초한 군주는 위기의 순간 어떤 방어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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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을 맞이하게 된다. 왜냐하면 마음의 위대함과 고결함이 없이 이익만을 줌으로써 획득한 우정은 구매된 것이지 진실로 소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순간에 사용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인간들은 자신을 두렵게 만든 사람보다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 사람을 해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도덕적 연결위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슬프게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충할 땐 언제든지 깨진다. 반면에 두려움은 결코 포기되지 않는 처벌에 대한 공포와 매우 견고하게 엮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는 백성들로 부터 사랑은 못 얻더라도 최소한 증오는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두렵게 여겨져야 한다. 왜냐하면 군주는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도록 잘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군주가 시민들(cittadini)과 백성들(sudditi)의 재물과 그들의 부인들로 부터 거리를 두기만 하면 항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군주 자신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한다면 적절한 정당성과 명백한 이유가 있을 때 실행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른이의 재물에 손을 대면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유산(patrimonio)의 손실보다 아버지의 죽음을 더 쉽게 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물을 빼앗기 위한 구실은 결코 결핍되지 않는다. 강탈로 살기 시작한 사람은 남의 재물을 전유하기 위한 구실을 항상 찾는다. 반면에 살인의 구실은 매우 드물며 국가가 안정되면 더욱 희귀해 진다. 그러나 군주가 군대와 함께 수천의 군인들을 통솔할 때는 잔인하다는 명성을 특히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명성 없이는 군대의 통합을 결코 유지시킬 수 없고 어떤 전투에도 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니발(Annibale/Hannibal)​의 훌륭한 업적중에는 수많은 인종들로 구성된 대군을 이끌고 외국에서 전투를 지휘했음에도 운이 나쁠 때나 좋을 때나 그의 군인들 사이에서나 장군들에 대항한 어떤 불화도 폭발하지 않았다는 점도 포함된다. 이것은 오로지 그의 비인간적인 잔인성에 의존했다. 이것이 그의 무궁한 군사적 능력과 함께 그의 군사들이 그를 두렵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것 없이 다른 군사적 능력만으로는 그러한 결과를 얻어내는데 성공하지 못 하였을 것이다. ​티투스 리비우스(Tito Livio/Titus Livius)​와 같은 통찰력이 부족한 역사가들은 한편으론 군대의 단결을 칭송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것의 주된 원인을 비난한다. 한​니발(Annibale/Hannibal)​의 다른 능력(virtù)만으로는 충분치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은 그의 시대 뿐만 아니라 그 이전 역사를 통틀어서도 개인적으로 비상하게 뛰어났던 ​스키피오(Scipione/Scipio)​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진실이다. 스페인에서 스키피오의 군대는 그의 명령에 불복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은 그의 지나친 관용에 기인하였다. 그는 군대 규율에 적합한 것 보다 더 많은 자유를 군인들에게 주었다. 이러한 그의 처신은 그를 로마군대를 타락시켰다고 고발한 ​파비우스 막시무스(Fabio Massimo/Fabius Maximus)​에 의해 원로원에서 비난을 받았다. 배신한 ​로크리(Locri) 지역 주민들이 그의 부하에 의해 불법으로 학살당하였을 때도 시피오는 그 주민들에게 복수하지도 않았고 그 부하의 무례함을 교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러한 그의 유순한 천성의 노예(schiavo)로 남았다. 그래서 원로원에서 그를 변호 하기를 원했던 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 보다는 잘못 자체를 피하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더 쉬울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사피오가 그러한 방식으로 지휘를 계속하였더라면 그러한 마음가짐은 시간 속에서 그의 명성과 영예를 손상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원로원의 지배하에서 행동하였기에 그러한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성품은 무해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영예의 원인이 되었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느냐 사랑받느냐 라는 문제로 다시 돌아가서 결론을 말하자면 사람들은 그들의 의지에 따라 사랑을 하고 군주의 의지에 따라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에 기초해야만 한다​. 그리고 오직 백성들의 증오를 피하는데 충실해야만 한다.

Capitolo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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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che modo i principi debbano mantenere la parola data. 군주는 자신이 한 말을 어떤 방식으로 지켜야 하는가?

누구나 자신이 한 말을 지키며 교활하지 않고 정직(integrità)하게 사는 군주를 칭송할 만 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최근의 경험에서 보듯이 위대한 일들을 한 군주 들은 자신이 한 말에 유념하지 않고 교활하게 인간들의 지능을 우회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종국에는 정직에 기초한 군주 들을 제압 하였다. 그러므로 군주는 두가지 종류의 전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는 법(leggi)으로 하는 전투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forza)으로 하는 전투이다. 첫 번째 것은 인간에게 특유한 것이고 두 번째 것은 짐승에게 특유한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것은 많은 경우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두 번째 것에 의존하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군주는 짐승(bestia)과 인간(uomo0을 잘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원리는 고대의 작가들에 의해 비유적으로 군주들에게 가르쳐 졌다. 이들은 아킬레스(Achille/Achilles)​와 다른 많은 고대의 군주들이 반신반인의 ​키론(Chirone/Chiron)​에 의해 양육되고 그는 이들을 그의 학교에서 가르쳤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것은 반은 짐승이고 반은 인간인 존재를 지도교사로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군주는 짐승과 인간의 본성을 모두 이용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하나만 배워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짐승을 잘 다루는 법을 알기 위해서는 여우와 사자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자는 덫으로 부터 자신을 방어할줄 모르고 여우는 늑대로 부터 자신을 방어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덫을 사용할 줄 아는 여우가 되고 늑대를 위협할 수 있는 사자가 될 필요가 있다. 사자만 연습한 사람은 정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약속을 한 이유가 사라졌을 때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역효과를 낼 수 있을 때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킬 수도 없고 지켜서도 않된다. 인간들이 모두 선하다면 이러한 교훈은 좋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악하고 군주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군주 역시 그들과의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 군주가 약속을 준수하지 않음을 정당화시킬 적법한 동기는 결코 결핍되지 않는다. 이에 관해서는 작금에서도 무수한 예를 들을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평화와 서약들이 군주들이 자신이 한 말들을 준수하지 않음으로써 무용지물이 되고 공허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여우를 더 잘 이용할 줄 아는 자가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군주는 이러한 본성을 숨길줄 아는 것이 필요하고, 아닌 것을 그런 것처럼, 그런 것을 아닌 것처럼 할 줄 아는 최고의 기만자가 될 필요가 있다. ​인간들은 매우 단순하고 순간의 필요에 매우 잘 복종하기 때문에 속이고자 하는 사람은 속임 당함을 허락하는 사람을 항시 찾을 수 있다. ​최근의 예로 ​교황 알레싼드로 6세​를 들어 보겠다. 그는 사람을 속이는 일 이외에는 다른 어떤 일도 하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항시 속임을 허락하는 대상을 찾아내었다. 누구도 그 보다 더 설득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으며, 누구도 지키지 않을 일을 그처럼 강건한 서약으로 확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기만은 항시 성공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본성의 이러한 부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성품을 반드시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일 필요는 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러한 성품을 갖고 항시 준수한다면 그것은 군주에게 해롭고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군주에게 이롭다. 군주는 자비롭고, 공정하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신앙심이 깊은 것처럼 보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품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품을 갖어서는 안될 필요가 있을때 군주는 자신의 마음을 바꿀 줄 아는 능력도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군주는, 특히 새로운 군주는,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준수 할 수 없음을 이해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국가를 유지하기 위하여 종종 자신이 한 말과 반하여, 자선과 인간애와 신앙심에 반하여 행동해야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운명의 바람과 상황의 변화가 그에게 부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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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에 따라 마음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할 수 있는 한 선으로 부터 멀어져서는 안되지만 필요가 강요한다면 악으로 들어서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성품으로 충만하지 않은 것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기 위해 대단히 조심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를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모든 자비와 공평과 정직과 인간애와 신앙심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이 마지막 성품인 신앙심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만지는 것 보다는 보는 것에 기초해 판단한다. 모든 인간들은 일의 외적인 면을 보고 소수만 그 뒷편에 있는 것을 이해한다​. 누구나 보여지는 대로 군주를 보고 소수만이 군주를 안다. 그 소수도 그들을 방어해 주는 국가의 다수를 차지하는 의견에 반대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 인간들의 행위, 특히 군주의 행위에 대하여 불만을 호소할 법정(tribunale)이 없는 곳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살펴 보도록 하겠다. 그러므로 군주는 오로지 승리하고 국가를 유지하는데만 전념해야 한다. 수단은 항상 모든이 들에게 영광과 칭송으로 판단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매한 대중은 항상 실제 진실이 아닌 보여짐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세상엔 오로지 우매한 대중(volgo)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수가 기댈 곳이 있는 한 다수는 결코 소수를 따르거나 경청하지 않는다. 누구라고 명명하는 것은 좋지 않은, 우리시대의 한 군주는 오직 평화와 정직만을 설파하고 이 두 가지 모두를 가장 증오한다. 만약 그가 이 두 가지를 준수하였다면 그는 이미 여러 차례 그의 명성과 국가를 잃었을 것이다.

Capitolo 19. In che modo i principi debbano fuggire il disprezzo e l’odio 군주가 경멸과 증오를 피하는 방법

위에서 언급한 성품 들중 가장 중요한 성품에 관해 이야기 했으니 이제 같은 규칙하에 다른 것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논의해 보겠다. 군주는 위에서 부분적으로 언급한 바와 같이, 군주를 증오하게 만들고 경멸하게 만드는 행위 들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한 행위를 삼갈때 마다 군주는 그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며 다른 불명예스러운 행위를 해도 위험에 빠지지 않게 된다. 내가 말했듯이 군주를 특히 증오하게 만드는 것은 백성들(sudditi)의 재물과 부녀자들을 약탈하고 강탈하는 일이다. 군주는 이러한 일을 삼가야만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군주가 재물과 명예를 침해하지 않으면 늘 만족하며 산다. 그리고 군주는 오직 다양한 방법으로 용이하게 제어할 수 있는 소수의 야심에 대항해 싸우기만 하면 된다. 경멸감은 군주를 불안하고, 경박하고, 나약하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게 느끼게끔 만든다. 군주는 이 모든 것들로 부터 바위처럼 보이도록 해야만 한다. 군주는 그의 행동에서 장대함(grandezza), 적개심(animosità), 장중함(gravità), 강건함(fortezza)이 보여 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백성들의 사적인 분쟁에 있어서 그의 결정은 거역할 수 없게 해야만 한다. 군주는 자신의 그러한 인상을 유지시켜 아무도 그를 속이거나 배신할 생각을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인상의 군주는 높게 평가 받으며, 훌륭한 평판의 군주에 대해서는 음모를 꾸미기도 어렵고 공격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매우 우수하며 그의 백성으로 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군주는 두가지 두려움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나는 내부의 백성들(sudditi)에 대한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의 세력가들(potentati)에 대한 두려움이다. 외부의 세력가들과의 관계는 군주가 좋은 군대와 좋은 친구들을 갖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좋은 군대를 갖고 있으면 항상 좋은 친구를 갖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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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에 의해 어지러워 지지 않는한 외부가 조용하면 내부도 늘 조용하다. 그리고 외부가 움직일 때라도 군주가 내가 말 한대로 규율있게 살았다면, 그가 포기하지 않는 한 내가 언급했던 스파르타의 나비스(Nabide spartano/ Nabis) ​가 한 것 처럼 항상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그러나 백성들에 관해 말하자면 외부의 움직임이 없더라도 군주는 백성들이 비밀리에 음모(congiura)를 꾸미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한다. 군주는 백성들이 그에게 만족할 수 있게 행동하면서 그들의 증오나 경멸을 받지 않게 각별히 조심해야만 한다. 내가 한참 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군주는 백성들의 만족을 획득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군주가 음모에 대항해서 갖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치책중 하나는 백성들로 부터 증오를 받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항시 군주를 죽임 으로써 백성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군주를 해치기로 생각했을 때, 그와 같은 결단을 실행할 마음을 갖지 못하는 까닭은 음모자들이 감당해야할 어려움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많은 음모자들(congiure)이 있어 왔지만 소수만이 좋은 결말을 얻었다. 음모자는 혼자 일 수가 없고, 불만자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동지로 택할 수도 없다. 또한 음모자가 불만자에게 다가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으면, 그것은 불만자에게는 만족하게 되는 기회, 즉 음모자를 배신할 기회가 된다. 왜냐하면 불만자가 음모자를 고발하면 그는 모든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의 확실한 이득과 다른 한편의 의문스런 이득과 많은 위험을 재어 보다가 대개는 아주 드물게 군주의 철천지 원수만이 신의를 지키게 된다. 단순히 말하자면 음모자 편에는 오직 공포와 시기와 그를 두렵게 하는 형벌의 혐의가 있다. 반면에 군주 편에는 법과 그를 방어하는 국가와 친구들의 지지라는 군주국(principato)의 위엄(maestà)이 있다. 여기에 대중적 호의 마저 첨가된다면 누군가 음모를 무모하게 실행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음모자는 사악한 일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수천의 번민을 한다. 이 경우 그는 실행된 음모의 후사도 두려워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는 대중(popolo)을 적으로 갖게 되었으며 그들로 부터 어떤 피신처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일에 관해서 무수한 예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아버지들의 기억 속에 아직 살아있는 오직 한 예로 만족하겠다. 현재 ​안니발레(Annibale II Bentivoglio)​의 조상인 ​안니발레 벤띠볼리오(Annibale I Bentivoglio)​는 볼로냐(​Bologna​)의 군주였다. 그는 ​깐네스키(Canneschi) 가문의 음모에 의해 암살되었다. 그의 가문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강보에 싸인 ​죠반니(Giovanni II Bentivoglio)​뿐 이었다. 살인 이후 즉시 대중이 들고 일어나 까네스키 가문을 멸족 시켰다. 이 것은 당시 ​벤띠볼리 가문(famiglia Bentivogli)​이 누리던 대중적 호의의 결과였다. 이러한 호의는 안니발레의 죽음이후 볼로냐에서는 누구도 국가를 통치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였다. 그러나 볼로냐 사람들은 피렌체에 그 때 까지 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믿어왔던 벤티볼리 가문의 상속자가 있다는 단서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피렌체로 가서 그를 데려와 볼로냐를 통치하게 하였다. 볼로냐는 죠반니가 통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랄 때 까지 그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군주는 대중이 그에게 우호적 일 때는 음모를 덜 염려해도 되지만 대중이 군주를 적으로 여기고 증오할 땐 군주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두려워 해야만 한다라고 결론 짓겠다. 규율이 잘 잡힌 국가와 현명한 군주는 귀족들을 절망으로 내몰지 않으면서, 대중을 만족시키고 그들의 행복을 유지시키기 위한 모든 배려를 고려해 왔다. 이 것이 군주가 수행해야만 할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다. 우리 시대에서 훌륭한 규율들(ordinati)로 통치되는 왕국은 프랑스이다. 그 곳에는 수 많은 좋은 제도들(ordinamenti)이 있다. 자유(libertà)와 왕의 안전(sicurezza)은 그 것으로 부터 연유한다. 그것들 중 첫 번째는 의회(parlamento)와 그 것의 권위(autorità)이다. 이 왕국을 체계화 한 이는 세력가들(potenti)의 야심과 그들의 오만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것을 교정하기 위해 그들의 입에 제어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다른 한 편으로 그는 귀족들(grandi)에 대한 대중의 공포에 기초한 일반적인 증오도 역시 이해하고 있었고 그들을 안심시키기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 일이 국왕의 특정한 업무가 되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군주가 대중을 편애 한다면 귀족들 사이에서 야기되는, 또한 귀족들을 편애 한다면 대중들 사이에서 야기되는, 그에 대한 비난의 부담을 제거하였다. 그는 제 3의 심판관인 파리 의회(​Parlamento di Parigi​)를 건립하였다. 이 것은 왕을 어떤 비난에도 연류시킴 없이 귀족들을 패배시키고 대중의 편에 서게 하는 책무를 맡았다. 이 보다 더 좋고 현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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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것은 왕과 왕국을 위한 최선의 안보의 근거가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다른 규칙 하나를 끌어낼 수 있다. 군주는 증오를 유발하는 결정은 남이 하도록 하고 자신은 남이 고마워할 결정에 제한해야만 한다. 다시 요약하자면 군주는 귀족을 존중해야 하지만 대중으로 부터 증오를 받지 않게 행동 해야만 한다. 로마 황제들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나의 의견과 대치되는 예들이 있었던 것 처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평생을 아주 훌륭하게 살았고, 훌륭한 능력(virtù)을 보여주었으며 권력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자신에 대항해 음모를 꾸민 측근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도 않은 이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견에 대답을 해 보겠다. 몇몇 황제들의 성품을 논의해 보고 그들의 파멸의 원인이 내가 이제껏 예증하였던 것 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밝혀 보겠다. 특히 그 당시 사건들을 읽어 본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일들을 검토해 보겠다.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o Aurelio/Marcus Aurelius) 부터 ​막시미누스 트락스(Massimino/Maximinus Thrax) 까지 권력을 승계하였던 모든 황제들을 선택해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그의 아들 ​콤모두스(Commodo/ Commodus)​, 페르티낙스(Pertinace/Pertinax)​, ​율리아누스​(Giuliano/Julian)​, ​세베루스(Alessandro Severo/Severus)​와 그의 아들 ​안토니누스 카라칼라(Antonino Caracalla/Antoninus Caracalla)​, ​마크리누스​(Macrino/ Macrinus)​, ​헬리오가발루스(Eliogabalo/Heliogabalus)​, ​알렉산더 세베루스(Alessandro Severo/Severus Alexander)​와 ​막시미누스 트락스(Massimino/Maximinus Thrax)​ 이었다. 먼저 주목할 것은 군주국의 군주는 오직 귀족들의 야망과 대중들의 무례함과 싸우기만 하면 되지만, 반면에 로마의 황제들은 세 번째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군인들의 잔인함과 탐욕을 견뎌내야만 했다. 이 것은 많은 황제들의 파멸의 원인이 되었을 정도로 어려운 일 이었다. 왜냐하면 군인들과 대중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평온을 사랑했고 그래서 온화한 군주를 사랑했다. 반면에 군인들은 전쟁을 좋아하는 오만하고 잔인하고 탐욕적인 군주를 사랑하였다. 군인들은 그들의 급여를 배가시키고 그들의 탐욕과 그들의 잔인성을 분출시키기 위하여 군주가 주민들(popolazione)에게 강력한 재정적 압박을 실행하기를 원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천성적으로나 혹은 인위적으로나 대중들과 군인들을 제어할 수 있는 훌륭한 평판을 갖고 있지 못한 황제들을 항시 파멸에 이르게끔 하였다. 이러한 상이한 기질의 두 집단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군주들의 대부분은, 특히 새롭게 군주의 지위에 오른 이들은 대중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 고려 없이 군인들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향한다. 이러한 결정은 불가피한 것 이었다. 군주들은 특정 사회계층으로 부터의 증오를 예방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첫 번째로는 모든 사회계층으로 부터 증오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면 두 번째로는 가장 강력한 사회계층으로 부터의 증오를 피하길 위해 모든 수단을 써야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군주로서 각별한 우호세력이 필요했던 황제들은 대중보다는 군인들에 의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가 군인들 사이에서 신망을 유지할 줄 알았던 정도에 따라 군인들은 군주에게 유익하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위에서 지적한 원인들에 따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o Aurelio/Marcus Aurelius)​, 페르티낙스(Pertinace/Pertinax)​, ​세베루스 알렉산더(Alessandro/Severus Alexander) 황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만 제외하고 모두 슬픈 종말을 맞이 하였다. 그들은 모두 절제된 삶을 살았고 정의를 사랑하였으며, 잔인함의 적이었고, 온화한 인간들이었다. 오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만이 영원한 영광속에 살다 죽었다. 왜냐하면 그는 직접 세습에 의해 권좌에 올랐기 때문에 군인들이나 대중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었다. 그밖에도 그는 그를 숭배의 대상으로 만든 많은 능력(virtù)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는 동안 항상 대중들과 군인들을 자신의 통제하에 유지 할 수 있었고 결코 증오를 받거나 경멸을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페르티낙스(​Pertinace​)는 군인들의 의지에 반하여 황제로 임명되었다. 그들은 콤모두스(​Commodo​) 황제 하에서 부도덕 하게 사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페르티낙스황제가 그들을 절제시키는 정직한 삶을 지지할 수 없었다. 그로인해 황제는 군인들로 부터 증오를 받게 되었으며, 또한 그의 늙은 나이로 말미암아 경멸까지 당하게 되었다. 이 결과로 그는 그의 정권 초기에 파멸을 맞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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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여기서 반드시 지적해야할 점은 증오는 악행으로 뿐만 아니라 선행으로도 얻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가를 유지시키기 원하는 군주는 종종 선하지 않기를 강요당하는 것이다.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계층이, 그것이 대중이던 군인들이던 귀족들이던 부패 하였을 경우 군주는 편이에 따라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좋다. 이러한 경우 선한 행동은 군주의 적이 된다. ​세베루스 알렉산더(Alessandro/Severus Alexander) 황제의 예로 가보자. 그는 그에게 부여된 다른 칭찬들 중에서 무엇 보다도 선의의 표상이었다. 그의 제국 통치 십 사년 동안, 그는 정식 재판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도 처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약하고 그의 어머니에 의해 통치되도록 한 인간으로 평판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경멸의 표상이 되었다. 그의 군대는 그에 대한 음모를 꾸며 그를 살해 하였다. 이제 이와는 반대되는 성품의 황제들에 대한 논의를 하자면 콤모두스(​Commodo​),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ttimio Severo), ​안토니누스 카라칼라​,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를 찾아 볼 수 있겠다. 그들은 가장 잔인하였고 가장 탐욕스러웠다. 그들은 군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대중들에 대하여 감행 할 수 있었던 모든 종류의 위해를 실행 하였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를 제외하고 그들 모두는 슬픈 종말을 맞이 하였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ttimio Severo​) 는 많은 능력(virtù)을 갖고 있었다. 대중들은 그로 부터 억압을 받았다 해도 그는 군인들을 친화적으로 유지 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그는 항시 행복하게 통치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그런 능력(virtù)은 군인들과 대중들의 눈에 존경스러워 할 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놀라고 경이스러워 할 정도로 그를 숭배하였고 만족하였다. 새로운 군주로서 그의 행동들이 훌륭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얼마나 여우와 사자의 복면을 잘 사용할 줄 알았는가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길 원한다. 나는 한참 위에서 군주가 어떻게 이러한 본성을 모방해야만 하는지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ttimio Severo​) 는 ​율리아누스​(Giuliano/Julian) 황제의 태만을 인식하고 황제 친위대의 군인들에 의해 살해된 페르티낙스(​Pertinace​) 황제의 죽음에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그가 장군으로 복무하고 있던 슬로베니아(Schiavonia) 지역의 군대를 설득하여 로마로 진군하였다. 그는 제국의 권력에 대한 야망을 나타내지 않은채 이러한 구실로 그의 군대를 로마를 향해 이동시켰다. 그의 출발이 알려지기도 전에 그는 이탈리아에 도착하였다. 로마에 도착하여 그에게 협박당한 원로원(senato)은 그를 황제로 선출하였고 그는 ​율리아누스​ 황제를 살해하였다. 이러한 출발 이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는 국가 전체의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장애를 극복해야만 했다. 하나는 아시아 군대의 수장으로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페셰니오 니그로(​C. Pescennio Nigro/Pescennius Niger) ​이었으며, 그는 자신을 스스로 황제로 지칭하였다. 다른 하나는 서쪽으로 그 곳에는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C. Settimio Albino/Clodius Albinus) ​가 있었다. 그는 똑같이 제국의 권력에 대한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 둘 다에게 적으로 밝혀지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하에 페셰니오 니그로​를 공격하고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를 속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후자에게 자신은 원로원에 의해 황제로 선출되었으며, 그 지위를 그와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는 편지를 쓰고, 케사르(​Cesare) ​직함과 그와 함께 권력을 연합한다는 원로원의 승인장을 보냈다.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는 이 모든 것을 진실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페셰니오 니그로​에게 승리하고 그를 죽이고 동쪽 일을 평정한 후에 로마로 돌아와 원로원에서 클로디우스 알비누스가 자신으로 받은 이득에 전혀 감사해 하지 않고 자신을 암살하려는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불평하였다. 그래서 그는 클로디우스 알비누스의 배은망덕을 응징하기 위해 출병해야만 했다. 그는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를 찾으러 프랑스로 가서 그의 국가와 생명을 제거하였다. 누군가 이 사람의 행동들을 분석적으로 검토해 보게 될 사람은, 가장 잔인한 사자와 가장 교활한 여우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경외하며, 군대로 부터도 증오 받지 않는 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인간이 그토록 많은 권력을 획득하는데 성공한 것에 대해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의 위대한 명성은 그의 약탈로 인해 대중이 그에게 품었던 증오로 부터 항시 그를 방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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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들 ​안토니누스 카라칼라(Antonino Caracalla/Antoninus Caracalla) 역시 대중의 눈에는 경이적으로 보이고, 군인들로 부터 환영 받았던, 진실로 탁월한 성품을 지닌 인간 이었다. 그는 군인이었고, 모든 노고도 어떤 어려움 없이 견뎌내고, 호사스런 음식 같은 모든 유약한 것들을 경멸하였다. 이러한 성품은 그를 모든 군인들로 부터 사랑받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개인적 살인 이후 많은 수의 로마 대중과 알렉산드리아 대중을 몰살시킨 그의 만행과 잔인성은 너무 광범위하고 전례가 없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를 가장 증오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 사람들 조차 그를 두려워 하기 시작 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의 군대 내에서 한 부대장에 의해 살해 되었다. 이에 관해서 지적해야만 할 것은 이러한 종류의 죽음은 결연한 마음의 결정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군주를 해칠 수 있기 때문에 군주는 그 것을 방지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많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군주는 안토니누스가 한 것 처럼 자신이 직접 부리는 그의 주변에서 군주국(principato)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심하게 해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그는 난폭한 방법으로 그가 매일 위협하던 한 부대장의 동생을 살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를 자신의 근위병으로 유지하였다. 이 무모한 결정은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그에게 일어났다. 이제 콤모두스(​Commodo​) 황제에게로 가보겠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o Aurelio​)의 아들로서 직접 세습에 의해 최고 권력을 매우 쉽게 얻었다. 그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였다. 그리고 그 것은 군인들과 대중을 만족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잔인하고 야수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다. 대중들을 향한 그의 강탈욕구를 풀기 위해, 그는 그의 군대의 환심을 사서 그들을 방종하게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다른 한편으론 품위에 대한 어떤 고려도 없이 그는 종종 검투사들(gladiatori)과 격투를 하기 위해서 극장 안으로 내려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제국의 위엄에 비추어 전혀 가치가 없는 가장 비열한 행동들을 하였다. 그래 군인들도 그를 경멸 하게 되었다. 한편으론 증오를 받고 다른 한편으론 경멸을 받으면서, 음모가 있었으며, 그는 살해 되었다. 막시미누스 트락스(Massimino/Maximinus Thrax) 황제의 품성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남아 있다. 그는 전쟁을 맹렬히 사랑했던 인간이었다. 내가 한참 위에서 말 한 바와 같이 군인들은 ​세베루스 알렉산더 황제의 유약함에 화가나 있었다. 그래서 그를 살해하고 ​막시미누스 트락스​를 국가의 최고 지위로 선출하였다. 그는 오랜기간 집권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두 가지가 그를 증오와 경멸을 받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가장 비천한 출신 성분들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트라챠(Tracia/Thrace) 지역의 양치기 목동 이었다. 이 점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모든 사람들로 부터 원초적인 경멸을 야기 하였다. 두 번째로는 군주의 지위에 오른 초기에, 제국의 왕위에 즉위하기 위한 로마 입성을 연기하였기 때문이다. 이 점은 그에게 매우 잔인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의 부하 지역사령관들(prefetti)이 행한 로마와 제국 전역에 걸친 수 많은 잔인한 행위를 통해 그의 인상이 얼룩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태생적인 비천함에 대한 경멸에 더해, 온 세상은 그의 잔인함에 대한 공포에 기초한 증오에 사로 잡혔다. 아프리카에서 먼저 반란이 일어났고, 연이어 로마의 아쿠이레이아(​Aquileia​) 도시를 포위하고 있던 그의 군대 역시 그 도시를 정벌하는데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반란을 일으켰다. 그의 군대는 그의 잔인성에 화가나 있었고 그에 대항하는 많은 적들을 보고는 별 두려움 없이 그를 살해 하였다. 나는 헬리오가발루스(​Eliogabalo​), ​마크리누스​, ​율리아누스 황제에 관하여 논의하길 원치 않는다. 그들은 모두 널리 퍼진 경멸과 충돌하였고 곧 제거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결론을 내리겠다. 오늘날의 군주들은 그들의 통치에 있어서 합법하지 않은 특별한 수단으로 군인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곤경에 처하는 일이 적다고 말할 수 있겠다. 군주가 군인들에 대하여 일정한 존중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곧 해결이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군주 들은 누구도 로마제국의 군대 처럼 지방의 시민정부와 군사 정부를 먼 옛날 부터 운영해온 군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중보다 군인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더 필요했던 것은 군인들이 대중들 보다 더한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터어키와 이집트의 술탄을 제외한 모든 군주들은 군인들 보다 대중들을 만족 시키는 것이 더욱 시급 하다. 왜냐하면 대중들이 군인들 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위에서 터어키의 군주를 제외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항시 그의 주위에 그의 왕국의 안전과 요새가 의지하고 있는 만 이천명의 보병과 만 오천명의 기병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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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어키 군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모든 고려는 옆으로 밀어놓고 군인들을 친구로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이집트의 술탄왕국도 모든 것이 군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술탄 왕국의 군주 역시 대중에 대한 고려 없이 군인들을 친구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 술탄 왕국은 모든 다른 군주들과는 다르고 기독교의 교황과 비슷하다고 지적할 수 있겠다. 기독교의 교황을 세습군주나 새로운 군주라 부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늙은 군주의 아들들이 후계자들이 아니고 오직 귀족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선출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그 지위에 선출된다. 그리고 이러한 규칙은 먼 옛날부터 공고화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군주라고도 불리워 질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교황은 새로운 군주에게 고유한 어려움들도 마주치지 않는다. 군주는 새롭다 하더라도 이 국가의 구조는 오래되어 세습군주 처럼 군주국을 접수하는데 규율이 잡혀있다. 이제 다시 우리들의 주제로 돌아 가겠다. 이제까지의 논의나, 혹은 지금의 결론을 고찰 하는 사람은, 누구나 증오나 혹은 경멸이 새로 임명된 황제들의 파멸의 원인 이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증오의 경우나 두번째 경멸의 경우에, 어떠한 이유로 누구는 행복한 종말을 갖었고 반면에 모든 다른 이들은 불행한 종말을 갖게 되었는지도 역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군주 페르티낙스 황제와 ​세베루스 알렉산더 황제가 세습으로 곧 바로 왕위에 오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모방하려 했던 것이 왜 쓸모 없고 해가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안토니누스 카라칼라 황제와 ​콤모두스 황제, 그리고 ​막시미누스 ​황제에 있어 세베루스 황제를 모방 하려 한 것이 왜 해가 되었지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의 발자취를 충분히 따라 할 모든 능력(virtù)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새로운 군주국의 새로운 군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행동들을 모방 할 수가 없고 세베루스 황제의 행동들을 따라 할 의무도 없다. 그대신 새로운 군주는 세베루스 황제로 부터는 국가의 기초를 놓는데 필요한 행동들을 취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로 부터는 이미 오래전 부터 안정되고 공고화된 국가를 보전하는데 있어서 용이하고 영광스러운 행동들을 취해야만 한다.

Capitolo 20. Se sono utili o no le fortezze e molte altre cose, che ogni giorno i principi fann 성채와 군주들이 매일 하는 다른 많은 일들이 유용할까 아닐까?

국가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군주 들은 그들의 백성들(sudditi)을 무장해제 시켰으며, 다른 군주들은 그들의 신하들(soggette)로 부터 토지(terre)를 분리해 유지하였다. 어떤 군주 들은 자신들에 대한 적개심(inimicizie)을 북돋았으며, 어떤 군주 들은 그들의 정권 초기 시절 그들을 불신하였던 사람들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선회를 하였고, 어떤 군주 들은 성채를 건설하였고, 다른 군주 들은 성채들(fortezze)을 폐허로 만들거나 파괴시켰다.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던 국가들의 세부사정을 알아보지 않고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료에 근거한 일반적인 방법으로 말해 보겠다. 새로운 군주가 그의 백성을 무장해제 시키는 일은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백성들이 무장되어 있지 않았을 때 군주는 항시 그들을 무장 시켰다. 왜냐하면 그들을 무장시킴으로써 그 무기들은 군주의 것이 되고, 군주를 불신하였던 이들은 군주에게 충성하게 되고, 충성했던 백성들은 백성에서 군주의 충성스런 유격대원(partigiani)이 된다. 모든 백성을 무장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무장시키는 사람들에게는 이익을 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안전을 보장받게 된다. 이러한 차등을 아는 무장된 백성들은 군주에게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좀 더 위험한 일에 책임을 진 사람은 좀 더 많은 이익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군주의 차별 대우를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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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백성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은 백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군주가 백성에 대해 겁을 먹어서 든지, 백성들에 대해 신뢰가 없어서 든지, 그들을 불신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자든 후자든 이러한 정서는 군주에 대한 증오를 야기한다. 그리고 군주는 비무장 상태를 지속시킬 수 없기 때문에 쉽게 용병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용병과 그 것의 속성에 관해서는 한참 위에서 설명한 바 있다. 용병이 좋을 경우에도, 그 것은 강력한 적들이나 믿을 수 없는 백성들에 대해 군주를 충분히 방어해 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내가 언급한 바와 같이 새로운 군주국의 새로운 군주는 항상 군대를 조직하였다. 이러한 예는 역사 속에 무수히 많다. 그러나 군주가 그의 오랜 군주국의 일원으로 합쳐진 새로운 국가를 획득한 경우엔, 획득 과정에서 그의 편으로 전향한 지지자를 제외하곤 그 새로운 국가를 무장해제 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회가 되는 대로 차차 전향한 지지자들 역시 약하고 유순하게 만들어, 군주국의 모든 무기들은 군주의 오래된 국가안에서 군주의 주변에 살고 있는 군주 자신의 군인들이 소유하는 방법으로 조직해야 한다. 우리의 선조들과 현명하다고 평가되었던 사람들은, 피스또이아(​Pistoia​)는 정치적 파벌들(fazioni politiche)을 이용하고 삐자(​Pisa​)는 성채 (fortezze)를 이용해서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곤 하였다. 이를 위해 그들은 상이한 지역을 용이하게 소유하기 위해서 그 지역의 백성들에게 맞는 상이한 양분을 공급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이탈리아가 일정하게 균형(bilanciata)을 이루고 있던 시절엔 잘 작동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엔 이것을 교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나는 분열(divisione)이 좋게 작동하리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적이 접근할 때 분열된 도시는 순식간에 잃게 된다. 왜냐하면 그 도시의 약한 분파는 항시 외부 세력에 연합하고, 다른 분파는 지탱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대로 베네치아인들은 위에서 지적한 이유를 근거로, 자신들에 종속된 도시내의 구엘페(​guelfe​) 당파와 기벨리네(​ghibelline​) 당파를 조장 하였다. 그들은 이 두 당파가 혈투에 이르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점령된 시민들(cittadini)이 베네치아에 대항해 연합 할 수 없게 그들 사이의 분쟁을 조장 하였다. 그러나 이 것은 보다시피 베네치아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베네치아인들이 바일라(Vailà) 전투​에서 패하자 마자 그들 중의 한 당파가 용기를 내어 그들로 부터 국가 전체를 탈취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법은 군주의 약점으로 증명되었다. 그래서 강력한 군주국들 에서는 이러한 분열들을 절대로 허용치 않을 것이다. 이런 분열들은 오직 백성들을 용이하게 관리할 수 있는 평화시에만 이로움을 준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 이러한 질서는 전적으로 그것의 부적절함을 보여준다. 의심할 여지없이 군주 들은 어려움과 그들에 대한 저항을 극복할 때 위대해 진다. 무엇보다도 행운(fortuna)이 새로운 군주를 만들기를 원할 때는, 새로운 군주는 세습군주보다 더 한 명성을 획득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행운(fortuna)은 새로운 군주가 될 사람에게 적들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는 그에게 적들에 대응하는 일들을 만든다. 이를 통해 새로운 군주가 될 사람은 그 적들을 제압하는 기회를 얻게 되고, 그는 그의 적들이 이를 위해 그에게 제공한 사다리 보다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은 현명한 군주는 기회를 갖게 되면 자신에 대한 적개심(inimicizia)을 교묘하게 조장해 승리한후 위대한 명성를 획득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새롭게 군주가 된 이들은, 군주국의 초창기 시절 절친하였던 친구들 보다 초창기 시절에는 믿을 수 없다고 여겼던 이들에게서 더 많은 충성과 효용성을 발견하였다. ​씨에나(Siena) 군주 빤돌포 뻬뚜루치(​Pandolfo Petrucci​)는 그의 국가를 다른 사람들 보다 그에게 더 신의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통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를 일반화 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군주는 군주국의 초창기 시절엔 적 이었던 사람들을 항시 매우 쉽게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지킬 것이 많은 지위에 있는 적들은 군주에게 의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들에 대한 군주의 부정적 견해를 행동을 통해 지워야만 한다는 인식이 강해질 수록 군주에 대해 충성으로 봉사하게 된다. 이리하여 군주는 군주의 과도한 신뢰하에 봉사하는, 그래서 군주의 일을 등안시 하기도 하는 사람들 보다도 오히려 이들로부터 늘 훨씬 많은 유용함을 얻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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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과 연관되어 내가 최근에 내부로 부터의 호의에 힘 입어 국가를 획득한 군주에게 반드시 상기하길 원하는 것은 그들이 군주를 선호하게 되었던 이유를 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군주에 대한 자연스런 애정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국가에 대한 불만족 이었다면, 군주는 그들을 우호적으로 유지시키는데 큰 노고와 어려움이 따를 것 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와 현대의 사건들을 예로 이러한 이유들을 잘 고찰해 보면, 군주는 이전 국가에 대한 불만족으로 군주가 그 국가를 점령하는데 있어 그에게 우호적이었던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이전 국가에서 만족해 왔던, 그래서 그의 적이었던 사람들을 우호적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용이 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국가를 더욱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성채를 세우는 것은 군주의 관습이다. 성채는 군주를 공격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제어와 방어가 되고 불시의 공격에 대한 안전한 피난처이다. 나는 고대로 부터 사용되어 왔던 이 방법을 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동시대의 니꼴로 비뗄리(​Niccolò Vitelli​)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까스뗄로(​Castello​) 도시안의 두개의 성채를 파괴해야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르비노(​Urbino​)의 군주 ​구이도 우발도(Guido Ubaldo)​는 체사레 보르지아(​Cesare Borgia​)에 의해서 쫓겨난 후 자신의 영지로 다시 돌아 오면서 그 지역의 모든 성채들을 철저하게 파괴 시켰다. 그는 성채 없이는 두 번 다시 국가를 잃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벤띠볼리(​Bentivogli​) 가문 역시 볼로냐(​Bologna​)로 돌아 오면서 같은 방법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성채가 유익한지 아닌지는 시간에 달려 있다. 한편으론 군주에게 이롭지만, 다른 한편으로 군주를 해치기도 한다. 이에 관해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외국인들 보다 자신의 백성을 더 두려워 하는 군주는 성채를 지어야 한다. 그러나 백성들 보다 외국인들을 더 두려워 하는 군주는 성채를 버려야만 한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짜(​Francesco Sforza​)가 밀라노에 세운 밀라노 성채(​castello di Milano​)는 스포르짜(​Sforza​) 가문에게 어떤 다른 그 국가 내의 소요들 보다도 많은 분쟁을 만들어 내었고 앞으로도 만들 것 이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성채는 백성들로 부터 증오를 받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군주가 성채를 갖고 있더라도 백성이 군주를 증오하면 성채는 군주를 구해주지 못하고 백성들이 비무장한 상태라도 그들을 도울 외국인들은 결코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성채가 군주에게 이익을 가져다준 적은 포를리(​Forlì​)의 군주 부인 예를 제외하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녀는 남편 ​지로라모 리아리오(Girolamo Riario)​가 살해되었을 때 백성들의 공격을 피해 성채에서 머물며 밀라노로 부터의 지원을 기다려 국가를 탈환할 수 있었다. 이 경우는 외국인들이 백성을 지원할 수 없었을 때였다. 그러나 체사레 보르지아가 그녀를 공격하고 그녀의 적인 백성들이 외국인들과 연합 하자, 성채는 조금도 소용이 없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나 그 이전이나 그녀를 위해서는 성채를 갖고 있는 것 보다 백성들로 부터 증오를 받지 않는 것이 더 안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나는 성채를 세우거나, 세우지 않는 군주를 모두를 칭찬하겠지만 성채를 믿고 백성들로 부터 증오를 받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군주는 비난 하겠다.

​Capitolo 21. Che cosa deve fare un principe per essere stimato. 군주는 존경받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위대한 정벌과 드문 예를 만드는 일 만큼 군주를 존경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 우리 시대 에선 현재 스페인 왕인 아라공의 페르디난도(​Ferdinando di Aragona​)가 있다. 그는 거의 새로운 군주라고 불리울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는 무기력한 왕에서 명예와 영광을 위해 기독교 세계를 대표하는 최초의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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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행동들을 고찰해 보면 그것들은 모두 위대하고 약간은 비범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의 통치 초기에 그는 그라나다(​Granada​) 왕국을 공격하였다. 그 정벌은 그의 국가의 기초가 되었다. 우선 그는 이 정벌을 방해 받을 염려 없는, 내부적으로 평화의 시기에 실행하면서, ​카스틸(Castiglia/Castile) 귀족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들은 전쟁에 대해 생각하느라 그에 대한 음모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명성과 그들에 대한 권위를 획득하였다. 그는 그의 군대를 교회와 주민들의 돈으로 유지할 수 있었고, 그를 존경하는 그의 군대를 긴 전쟁을 통해 훈련시킬 수 있었다. 이 밖에도 그는 중요한 정벌들을 수행하는데 항상 종교를 이용하였다. 그는 그의 왕국에서 ​무어인들(marrani/Moors)​을 제거하고 추방하는데 자비와 동시에 무자비 실천에 자신을 바쳤다. 이 보다 더 큰 자비의 예나, 더 특이한 예는 있을 수가 없다. 그는 이와 똑 같은 구실로 아프리카를 공격하였고 이탈리아를 정벌하였고 마침내는 프랑스를 공격하였다. 그는 항상 이러한 방법으로 위대한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항상 백성들의 마음을 흥분과 감탄속에 머물게 하고 이 일들의 결과에 주목시켰다. 이러한 그의 행동들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그래서 일과 일 사이에서 누구도 그에 대항해 충분한 평정심을 갖고 무엇을 도모해 볼 공간을 결코 갖을 수 없었다. 밀라노 군주 ​베르나보 비스꼰띠(Bernabò Visconti)​에 관한 이야기 처럼, 내정에 있어 보기 드문 예를 보여주는 것은 군주에게 매우 유익하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비상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상을받든 벌을받든, 백성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많이 회자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군주는 모든 행동에서 위대하고 뛰어난 인간이라는 명성을 얻기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고 군주는 진실한 친구거나 진실한 적으로 처신할 때 존경 받는다. 이 것은 어떤 다른 고려 없이 누구에 대항해 누구를 선호함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중립을 유지하는 것 보다 언제나 유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변의 두 강대국이 서로 싸우거나, 둘 중 하나에 승리하게 되면, 군주는 승자를 두려워 하게 되거나 아니면 승자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두 가지 경우 중 누구 편인지 분명히 밝히고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항상 유익하다. 자신을 분명히 밝히지 않을 경우에는, 항상 승자를 기쁘게 하고 만족스럽게 해 주어야 하는 승자의 먹이감 이 될 것이고, 군주를 방어하거나 보호해줄 어떤 이유나 수단을 갖지 못할 것이다. 승리한 사람은 곤경에서 그를 도와주지 않을 의심스런 친구들을 원치 않는다. 패배한 자도 군주를 받아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군주가 손에 무기를 들고 그의 운명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티오코스(​Antioco​/Antiochus IV Epiphanes)​는 로마인들을 쫓아내 달라는 아에톨리아인들(etoli/Aetolia​)​의 요청으로 그리스로 갔다. 안티로코스는 로마인들의 중립을 설득하기 위하여 ​아케아(​Achei​/Achaea)​로 로마인들의 친구인 사절단을 보냈다. 반면에 로마인들은 그들에게 군사를 일으켜 그들과 합류 할 것을 권유하였다. ​결정은 아케아인들의 평의회(assemblea)에서 내려졌다. 그 곳에서 안티오코스의 특사는 그들에게 중립을 유지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대해 로마의 특사는 다음과 같이 응수하였다. “우리들의 전쟁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의 국가를 위해 이로울 것이라는 말 보다 더 틀린 말은 없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복자로부터 어떠한 호의나 보상 없이 남겨질 것 이기 때문이다.” 군주의 친구가 아닌 이는 항상 중립을 모색하려 할 것이고 군주의 친구인 이는 군주가 무장을 하길 요구 할 것이다. 우유부단한 군주 들은 현재의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대부분의 경우 중립의 해결책을 따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파멸을 맞이한다. 그러나 군주가 대담하게 한 편임을 밝히고, 군주가 연합한 사람이 승리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강력하고 군주가 그의 재량권 하에 있다 하여도 그는 군주에게 의무를 지게 되고 군주와 친선관계가 수립된다. 인간들은 결코 그를 탄합 하여 배은망덕의 예가 될 정도로 부정직 하지는 않다. 그리고 승리라는 것들이, 특히 정의에 대하여 어떤 고려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명확한 것은 결코 아니다. 군주가 연합한 사람이 패배 하더라도 군주는 그로 부터 환영 받고 그가 할 수 있는 한 군주를 도울 것이며 군주는 다시 소생 할 수 있는 운명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두 번째 경우는 함께 싸우는 이들이 어느 편이 이겨도 군주가 승자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경우이다. 연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경우이다. 왜냐하면 군주가 현명하다면 다른 한편과 싸우지 않았어야 할 한 편을 도와 다른 한편을 패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승리하면 그는 군주의 재량권 하에 놓이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군주가 도움으로써 승리를 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드시 지적 해야 할 점은 군주는 위에서 언급한 피치 못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이를 공격하기 위하여 자신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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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력한 자와 연합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선견지명이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승리할 경우 그의 포로가 되기 때문이다. 군주는 가능한 한 다른이의 재량권(discrezione) 하에 놓이게 되는 것을 피해야만 한다. 베네치아인들은 밀라노 군주에 대항해 프랑스와 연합하였다. 그들은 이 연합을 피할 수 있었다. 이 연합은 그들의 몰락을 야기하였다. 그러나 플로렌스인들에게 일어난 것 처럼 피치 못 할 경우도 있었다. 교황과 스페인이 롬바르디아를 공격하기 위하여 그들의 군대와 함께 출병하였을 때 플로렌스 군주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그들과 연합해야만 했다. 어느 국가도 안전한 쪽을 선택할 수 있다고 절대로 믿지 말고 실제로는 선택한 쪽을 모두 의심스럽게 생각해라. 왜냐하면 하나의 어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시도는 반드시 또 다른 어려움을 야기시킨다는 것이 일들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명함은 어려움의 정도를 인식할 줄 아는 데, 즉 덜 나쁜 것을 선택하는 데 존재한다. 군주는 능력(virtù)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내보여야 하며 기술(arte)에 있어 뛰어난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군주는 그의 시민들이 상업과 농업과, 모든 다른 인간의 활동에서 그들의 전문적 활동을 평온하게 실행 할 수 있도록 북돋아 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재산을 증식시키는데 있어, 빼앗길 두려움이 없고 상점을 여는데 세금에 대한 공포가 없게 해야 한다. 반면에 군주는 그러한 활동에 전념하길 원하는 사람과 어떤 형태로든 그의 도시(città) 와 국가(stato)를 아름답게 만들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준비해야만 한다. 이 밖에도 군주는 일년중 편한 시기에 축제와 오락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끌어야만 한다. 그리고 모든 도시는 동업조합과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므로 군주는 그러한 단체를 염두에 두고 그들과 가끔 모임을 갖고 스스로 인간애(umanità)와 관대함(munificenza)의 예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군주는 항상 그의 지위의 위엄을 확고하게 유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것은 어떤 일에서도 절대로 부족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Capitolo 22. I segretari che i principi hanno al loro fianco. 군주 곁의 비서들

군주에게 장관들(ministri)을 선택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좋고 그렇지 않음은 군주의 현명함에 달렸다. 군주의 통치능력에 관한 첫 번째 추측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보는 것 이다. 그들이 능력있고 충성스러우면 항상 군주는 현명하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그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들을 충성 스럽게 유지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엔 군주는 항상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첫 번째로 한 잘못은 그들을 선택한 것 이기 때문이다. 씨에나(​Siena​) 군주 빤돌포 뻬뚜루치(​Pandolfo Petrucci​)의 장관으로 ​베나프로(Antonio Giordani da Venafro)​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빤돌포를 매우 유능한 사람으로 판단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베나프로를 장관으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치능력에는 세 가지 다른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스스로 이해하는 독립적 유형이고, 두 번째는 단지 남이 이해 한 것을 이해하는 유형 이고, 세 번째는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남의 도움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유형이다. 첫 번째 유형은 참으로 뛰어난 것이고, 두 번째 유형은 단지 뛰어난 것이고, 세 번째는 쓸모없는 유형이다. 그러므로 빤돌포(​Pandolfo Petrucci​)는 첫 번째 등급은 아니더라도 당연히 두 번째 등급에는 속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결론적으로, 군주가 장관의 옳은 행동과 그른 행동을 평가할 줄 알아야만, 스스로는 독창적인 사고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장관이 행하거나 말하는 것의 좋고 나쁨을 인식할 수 있다. 군주는 좋은 것은 칭찬하고 나쁜 것은 교정할 줄 알아야 한다. 장관의 입장에선 군주를 속이려는 희망을 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충성을 유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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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장관을 알아보는 결코 틀릴 수 없는 방법이 있다. 군주 보다 자신을 더 생각하고 모든 행동에서 자신의 이익을 쫒는 장관은 결코 ,그런 성격으로는, 좋은 장관이 될 수 없다고 결론 지을 수 있다. 군주는 나의 이 말을 믿게 될 것이다. 군주로 부터 지위를 얻은 자는 결코 자신을 생각해서는 않되며, 항상 군주를 생각해야 하며, 군주와 관계되지 않은 일은 결코 관여해서도 않된다. 반면에 군주는 장관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배려를 해야만 한다. 군주는 그의 명예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며, 부를 쌓게 해야 하며, 군주에 대해 책임을 느끼게 해야하며, 그와 명예와 책임있는 임무를 공유해야만 한다. 장관은 오직 다음과 같아야 군주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낀다. 상승하는 명예 만이 그가 다른 명예를 바라지 않게 만들 수 있고, 증가하는 부 만이 그가 다른 부를 바라지 않게 만들 수 있고, 그에게 주어진 특권적 임무 만이 그가 가능한 지위 변동을 두려워 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장관과의 관계에서 장관과 군주가 이러한 특징들을 갖고 있을 때 그들은 서로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을 때는 종국적으로 항상 군주 혹은 장관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Capitolo 23. In che modo si debbano fuggire gli adulatori. 아첨꾼을 피하는 방법

나는 군주가 매우 현명하지 않거나 좋지 않은 선발을 한 경우 그 실수로 부터 자신을 방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될 중요한 점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아첨꾼(adulatori)에 관한 것이다. 궁정은 언제나 그들로 차있다. 사람들은 이 흑사병균 같은 해로운 종족에 의해 자신의 일에 대해 흡족해하며 그들로 부터 자신을 지켜내는데 어려울 정도로 속게 된다. 반면에 그들로 부터 자신을 방어 하려 하면 경멸의 대상이 될 위험에 빠지게 된다. 아첨꾼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방법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너에게 진실을 말 할때 그 것이 너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누구나 너에게 진실을 말 할 수 있게 되면 너는 존경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제 3의 처신을 취해야 한다. 그의 국가에서 현명한 사람들을 선택해서 오직 그 사람들 에게만 너에게 진실을 말할 자유로운 의지를 용인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것은 다른 주제가 아닌 군주가 묻는 주제에만 한정 해야 한다. 그러나 군주는 모든 일에 대해 물어야 하며 그들의 의견을 주의깊게 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군주 스스로 자신의 방식대로 결정해야 한다. 이 조언을 바탕으로 군주는 누구나 자유롭게 말 할 수록 더 잘 받아들여 진다고 인식하게 끔 처신해야 한다. 주제 밖의 것들은 어떤 의견 이던 어떤 관계 이던 듣기를 거부 해야만 한다. 수용된 결정은 따라야만 하고 그 것을 충직 하고 완고하게 지켜야만 한다. 이와는 다르게 처신하거나, 아첨꾼 때문에 파멸하거나, 의견 수정을 위해 신념을 자주 바꾸는 이들은 모두 존경을 덜 받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현대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현재 독일 황제인 ​막시밀리안(Massimiliano/Maximilian I)​의 신하인 ​루카 리날디(Luca Rinaldi) 주교는 그의 주군에 대해 말하길 그는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고 어떤 일도 자기 방식대로 행하지 않았다고 기록하였다. 이 것은 위에서 지적한 것과 반대로 처신 했다는 사실에 기인했다. 황제는 모든 것을 홀로 결정하는 사람 이다. 그는 그의 계획을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그에게 주어진 조언 들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면서 그것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마자 항상 더욱 강력한 저항이 그의 측근 들로 부터 일어난다. 그는 얄팍한 사람이라 그 계획을 단념한다. 이로부터 그가 오늘 하는 일이 다음 날 없던 일로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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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파악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종국적으로 아무도 그의 결정을 믿을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항상 조언을 청해야 한다. 그러나 군주의 협력자들(collaboratori)이 원할 때가 아닌 군주가 원할 때 이어야 한다. 실제로 군주가 특별히 조언을 청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들이 함부로 조언을 줄 수 없게 해야한다. 그러나 군주는 폭 넓은 질문 들을 해야 하며 매우 끈기 있게 답변을 경청해야 한다. 반면에 누군가 군주에 대한 존경 때문에 답변에 있어, 폭이 넓지도 않고 철저하지도 않다고 느껴지면, 군주는 불안 해야 하며 즉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많은 이 들이 현명하다는 인상을 주는 군주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조언자들(consiglieri)에 의해 그런 평판을 받게 된 것 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은 오해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현명하지 못한 군주는, 군주를 모든면에서 조정할 수 있는 매우 현명한 조언자를 운명적으로 이미 갖고 있을 때 만 긍정적으로 조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틀릴 수 없는 일반적 원리 이다. 이런 경우라면 좋겠지만 오래 가지는 못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조언자가 짧은 시간 내에 군주로 부터 국가를 빼앗을 것 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 이상으로 부터 조언을 받는 군주라 하더라도 현명하지 못한 군주는 결코 통합된 조언을 얻지 못하고 조언자들을 통합 시킬 줄 모를 것이다. 조언자들은 각자 자신의 재산 만을 생각하고 군주는 그들을 교정 할 줄 모를 뿐 만 아니라 인식 조차 할 줄 모를 것이다.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발견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강제로 선하게 만들어지지 않고는 언제나 군주를 비참하게 만드는데 성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렇다. ​좋은 조언들 이란 누구에게서 나왔던 필연적으로 군주의 현명함에서 태어난다. 좋은 조언들로 부터 현명한 군주가 태어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Capitolo 24. Per quale causa i principi italiani hanno perso i loro stati. 무슨 이유로 이탈리아 군주 들은 그들의 국가를 잃었나?

위에서 지적한 것들을 현명하게 준수하면 새로운 군주라도 오래된 군주처럼 보이게 만들고, 오래 전 부터 공고화된 국가에서 보다도 군주를 더 안전하고 확고하게 만들 것이다. 새로운 군주는 그의 행동에서 세습군주 보다 훨씬 더 주목 받는다. 그리고 새로운 군주가 능력 있다고 인정받게 되면 오래된 핏줄의 세습군주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영향력을 얻게 된다. 사람들은 과거보다는 현재의 일에 훨씬 더 열중하고 현재에서 좋은 것을 찾으면 그것을 즐기고 다른 것을 찾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은 그들에게 다른 것에서 부족함이 없을 때는 군주를 전력을 다해 옹호한다. 그리고 그것은 두배의 영광을 가져다 준다. 하나는 새로운 군주국의 시작 이고 다른 하나는 군주국을 빛나게 하고 지원하는 좋은 법과 좋은 군대와 좋은 친구들과 좋은 모범이다. 이와 동시에 그 것은 세습군주와 자신의 현명치 못함으로 국가를 잃은 군주에게 두 배의 치욕을 준다. 우리 시대에 이탈리아 에서 국가를 잃은 나폴리 왕과 밀라노 군주와 그 밖의 군주들을 생각해 본 사람은 그들은 첫 번 째로는 군대에 관한, 위에서 검토한 이유에 근거한, 공통적인 결점을 갖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는 그들 중 누구는 대중(popolo)을 적으로 갖고 있거나 혹은 우호적인 대중을 갖고 있지만 귀족들(grandi)을 장악하지 못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결점이 없다면 전투에서 군대를 유지할 충분한 용기를 갖고 있는 국가를 잃을 수가 없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가 아닌 ​티투스 퀸크티우스(Tito Quinto/Titus Quinctius Flamininus)​에게 패배한 마케도니아의 필립(Filippo il Macedone/Philip V of Macedon)​은 그를 공격한 로마와 그리스와 비교해, 크기에 있어서 작은 국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군인 이었고, 대중들을 환대하고, 귀족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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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를 얻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의 전쟁을 수 년간 수행할 수 있었다. 어쨌든 종국에는 몇몇 도시의 지배권을 잃었지만 왕국을 잃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군주국에서 수년간 머물렀던 우리시대의 군주들이 국가를 잃을 것은 운(fortuna) 이 아닌 그들의 무지(ignavia) 탓이다. 그들은 평화시에 반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들의 공통적인 결점은 태풍 전야의 고요에 대응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적대적인 시간이 왔을 때는 방어할 생각을 하지 않고 도망갈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정복자들의 무례함에 굴욕을 느낀 백성들이 그들을 부활 시키길 기대하였다. 다른 전망들이 없을 땐 이러한 판단도 좋다. 그러나 그 것을 위해 다른 구제책들을 포기하는 것은 매우 해롭다. 누군가 자신을 구조해 줄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추락을 원해선 안된다. 그런 일은 안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더라도 너의 안전을 위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방어는 무익한 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또한 너에게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너자신과 너의 능력(virtù)에 의존하는 방어 만이 좋고, 확실하고, 지속적 이다.

Capitolo 25. Quanto può la fortuna nelle azioni umane e in che modo debba essere affrontata 운은 인간행동에 있어 얼마나 작용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나는 세상 일은 운(fortuna) 이나 신(Dio)에 의해 다스려 지기 때문에, 인간은 그들의 현명함 으로도 그 것을 변경할 수 없고, 어떤 해결책도 갖지 못 한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믿어 왔고, 또한 믿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고, 운명(sorte)에 의해 다스려 지게 놔 둬야 한다고 믿어 왔을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가 보아 왔고 또 매일 보고 있는 인간의 예측 능력을 넘어선 정치상황의 거대한 변화로 인해 특히 우리시대에 고백되고 있다. 이 것을 생각 하며 나도 때때로 이러한 믿음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자유의지(libero arbitrio)는 부정 되지 않기에, 나는 운(fortuna)은 우리들의 행동들 중 절반의 결정자이고, 다른 절반은 우리에게 남겨 두는 것이 진실 일 거라고 판단한다. 나는 이 것을 파괴적인 강과 비교한다. 강은 화가 나면 범람하여 제방을 무너 뜨리고, 평지를 물에 잠기게 하고, 나무들을 뿌리채 뽑고, 건물들을 파괴하고, 토사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긴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저항하지 못하고 누구나 그에 앞서 도망가고 누구나 그 기세에 굴복한다. 자연은 이렇게 폭력을 행사 하지만, 조용한 시간이 오면, 인간들은 피난처와 제방으로 대비책을 세우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방법으로 강물이 다시 범람 할 때, 인간들은 수로를 통해, 물의 분노는 분산시키고, 그렇게 제어 될 수 없고 위험한 폭력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운(fortuna)도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운은 자신에 저항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능력이 없는 곳에서 자신의 힘을 보여준다. 운(fortuna)은 운을 제한하기 위한 제방과 피난처를 건설하지 않은 곳을 알아서 바로 그곳에서 자신의 힘을 발휘한다. 만약 이탈리아를 생각해 본다면, 이탈리아는 제방도 없고, 피난처도 없는 땅 임을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탈리아가 독일, 스페인, 프랑스와 같이 적절한 군사력으로 방어가 되었었더라면, 이러한 홍수와 같은 외국인들의 점령이 항상 거대한 변화를 초래하지 않았거나, 아예 홍수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운(fortuna)에 대항하는 방법에 관하여 이미 말한 것으로 충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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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경우로 좁혀 보자면, 우리는 오늘 좋은 결과를 얻은 군주가, 천성을 변화시키거나 혹은 어떠한 변화를 보여줌이 없이 내일 멸망하는 것을 본다. 나는 이 것이 첫 째로 위에서 길게 논의된 이유들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완전히 운(fortuna)에 의존하는 군주는 운이 변하자 마자 파멸로 들어간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이 설정한 목적인 명예와 부에 이르는 행동속에서 다양한 행동양식을 취한다. 누구는 조심스러운, 누구는 충동적인, 누구는 폭력적인, 누구는 예술적인, 누구는 끈기있는, 누구는 성급한 행동양식을 취한다. 각자는 서로 다른 행동양식으로 명예와 부에 도달할 수 있다. 두 명의 현명한 개인도 한 명은 그의 목적을 성취하고 다른 한 명은 실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런 사람과 충동적인 사람 같이 서로 다른 행동양식을 적용한 두명의 개인이 동등하게 좋은 결과를 획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것은 단지 그 시대의 성격(caratteristiche dei tempi)이 관련된 행동양식에 맞는가에 달려 있다. 똑 같은 행동양식을 취한 두명 중 한명은 목적을 이루고 다른 한명은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인간의 운(fortuna)의 변화 역시 시대성격에 좌우된다. 왜냐하면 군주가 조심성과 인내심을 갖고 통치하고 시간과 사정이 그의 통치양식이 좋은 것으로 바뀌면 그 군주는 좋은 결과를 얻는다. 그러나 시간과 사정이 변하면 그는 파멸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할 줄 아는, 그렇게 현명한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천성이 우리를 향하게 하는 방향으로 부터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항상 안전한 길을 걷다가 그 길을 포기하도록 자신을 설득하는 것은 성공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심스런 성격의 사람이 충동성이 유행하는 시절을 만나면 충동적으로 행동 할 수 없기에 파멸한다. 반면에 시간과 사정의 변화에 따라 천성을 변화 시킨다면 운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황 쥴리오 2세(Giulio II/Julius II)​는 모든 일을 충동적으로 했다. 그리고는 그의 행동양식과 합치하는 시간과 환경을 찾아 항상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가 ​죠반니 벤띠볼리오(Giovanni II Bentivoglio) 생존시 볼로냐에서 행한 첫 번째 원정을 생각해 보자. 베네치아인들은 이 원정을 승락하지 않았고, 스페인 왕 조차도 승락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와는 교섭중 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모하게 충동적으로 이 원정을 친히 감행하였다. 이러한 그의 움직임은 스페인을 나폴리왕국을 탈환하려는 욕망 때문에 확고하게 만들고 베네치아인 들을 공포때문에 불확실 하게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프랑스 왕도 끌어 들였다. 프랑스 왕은 행동하는 교황을 보면서 베네치아를 타도하기 위해 그를 친구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교황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교황을 도와주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므로 ​교황 쥴리오 2세(Giulio II/Julius II)​는 그의 충동적인 행동으로 다른 교황들이 모든 인간적인 신중함을 가지고도 얻을 수 없었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모든 다른 교황들이 했던 것 처럼 합의가 이루어지고 상황이 정돈된 후에 로마를 떠나려고 기다렸더라면 그런 결과를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 왕은 수 천의 변명을 했을 것이며 다른 이들은 수천의 위협을 했을 것이다. 나는 이와 똑 같았던 그의 다른 행동들은 생략하겠다. 짧았던 그의 생애는 그가 상반된 결과를 체험하게 만들지 않았다. 만약 신중한 행동양식을 요구하는 시대가 연결 되었더라면 그의 파멸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천성적인 그의 행동양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운(fortuna)은 변하고 인간들은 자신의 행동양식을 완고하게 고수하기 때문에 이 것이 운과 일치 하는 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더 이상 일치 하지 않을 때는 더 이상 얻을 수 없다. 내 판단으로는 조심스러운 것 보다는 충동적인 것이 더 낫다. 왜냐하면 운은 여자이다. 여자를 자신의 의지에 복종시키기를 원한다면 그녀를 때리고 미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자가 차갑게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보다 충동적인 사람들 에게 더 쉽게 정복을 허락하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여자와 같이 운도 항상 젊은이들의 친구이다. ​젊은이들은 덜 신중하고 더 충동적이고 더 단호하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덜 대담한 성숙한 인간들 보다 더 대담하게 운(fortuna)을 지배한다.

Capitolo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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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ortazione a pigliare l’Italia e a liberarla dalle mani di barbari. 야만인들의 손으로 부터 이탈리아 해방을 위한 권고

내가 위에서 논의된 모든 것들을 의식하면서, 현재 이탈리아 상황이 새로운 군주 선포에 유리한가, 그 환경이 신중하고 용감한 사람에게 그에게는 명예를 주고 모든 이탈리아인들에게 이로운 새로운 정치적 질서 도입을 허락할 수 있을 것인가를 내 안에서 반추해 보면, 나에게는 이와 관련하여 더 적절한 순간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군주에게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는 많은 요소들이 있어 보인다. 내가 말한 바와같이 ​모세(Mosè/Moses)​의 용기를 보기 위해선 유대인들이 이집트인들의 노예 였던 것이 필요했다. ​키루스(Ciro/Cyrus) 대제의 마음의 위대함을 만나기 위해서는 페르시아인들이 메데스인들(medi/Medes)​에 의한 억압을 받는 것이 필요했다. ​테세우스(Teseo/Theseus)​의 위대한 능력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테네인들의 혼란과 불안이 필요했다. 그래 지금 이탈리아인들의 용맹한 성격을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는 현재 상황으로 까지 축소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인은 유태인들 보다 더 노예 였고 페르시아인들 보다 더 하인 이었으며 아테네인들 보다 더 혼란스럽고 불안전 했던 것이 필요하였다. 이탈리아는 지도자도 없이 무질서에 포획되어 적군들에 의해 정복되고, 약탈되고, 파괴되고, 짖밟혔던 것이 필요 하였다. 이탈리아는 모든 종류의 파괴를 감내하였던 것이 필요하였다. 현재 까지 몇몇 사람 속에서 신으로 부터 이탈리아를 구원 하라는 임무를 받은 것으로 사려 되는 징조를 볼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등장인물들이 임무수행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에 운(fortuna)으로 부터 버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마치 죽어 있는 것 같았던 이탈리아는 상처를 치유하고, 롬바르디아를 황폐화 시킨 약탈과 나폴리 왕국과 토스카나가 지불해야만 하는 공물에 종지부를 찍어서 오랜동안 열려있는 쓰라린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을 기다린다. 외국 세력들에 의해 자행된 잔학과 폭력으로 부터 이탈리아를 해방시켜줄 누군가를 보내달라고 이탈리아가 얼마나 신에게 기원하는지를 볼 수 있다. 또한 이탈리아는 누군가 깃발을 들고 앞장서면 모두 뒤따를 준비가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이탈리아가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저명한 당신의 가문 밖에 없음을 본다. 신과 교회의 은총으로 교황이 배출된 당신의 가문은 재력과 담대함으로 외국으로 부터 이탈리아 해방을 인도하고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것은 이미 당신 가문의 사람들이 해 왔던 행동들과 삶을 모범으로 삼으면 매우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보기 드물게 비범한 사람들 이었지만 그들도 역시 인간들 이었다. 그들 각자는 현재의 기회 보다는 덜 유리한 기회를 갖었고 그들의 모험적 행위도 이 번 보다는 덜 정당했고 덜 쉬웠으며 신도 지금 당신에게 보다 그들에게 덜 우호적 이었다. 여기에 가장 위대한 정의에 관한 문구가 있다: “절실한 사람을 위한 전쟁은 정의롭고, 무기 이외에는 희망이 없는 곳에서 무기는 신성하다.” 이탈리아 사람은 외국인들에 대항해 무기를 들어도 될 만큼 약탈 되었다. 메디치(Medici) 가문이 내가 모범으로 제안한 사람들의 예를 택한다면 이토록 전쟁의 유효성이 가장 큰 이탈리아 사람들을 뒤따르게 만드는 것은 큰 어려움이 될 수 없다. 이 것 말고도 여기에서 신(Dio)의 권능에 의한 전례 없는 비범한 사건들을 본다. 바다가 열리고, 구름이 당신에게 길을 보여주고, 절벽이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여기 은총의 비가 내린다. 모든 것이 당신의 영광과 성공에 공헌한다. 당신은 나머지만 하면 된다. 신은 모든 일을 하길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신은 우리들에게 속한 자유의지(libero arbitrio)와 영광의 한 부분을 빼앗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 거명한 이탈리아인들 중에 저명한 당신의 가문이면 할 수 있으리라 기대 할 수 있는 것을 누구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많은 혁명들과 전쟁 같은 군사 행동들은 항상 군사적 능력(virtù)이 소진 되었던 것 처럼 보인다. 이 것은 오래된 질서가 좋지 않았고 새로운 질서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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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서 출현 한 인간에게 있어 자신이 찾아낸 새로운 법과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수립하는 것 보다 더 명예로운 것은 없다. 이 것이 잘 정착되고 그 속에 위대함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는 존경받고 칭찬받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도입할 수 있는 모든 양식들에 대한 자료가 전혀 부족하지 않다. 이 곳에는 능력있는 지도자들이 결핍되어 있지만 참모들 안에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결투나 작은 규모의 전투에서 보면 이탈리아인들은 체력, 기술, 지력에서 상대보다 우월하지만 그들이 군대로 들어가면 그 수준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지도자들의 유약함에 기인한다. 이 것을 아는 이들은 지도자들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그리고 알다시피 지금까지 능력(virtù) 덕분이던 아니면 운(fortuna) 덕분이던 다른 군주 들이 그에게 굽히고 따를 정도로 성공한 군주는 없었다. 지난 이십년간 치렀던 많은 전쟁에서 많은 경우 이탈리아인들로만 구성된 군대가 전장에 투입되기만 하면 항상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 여기에 기인한다. 이를 증명하는 전투는 무엇보다도 따로(​Taro​), 알레싼드리아(​Alessandria​), 까뿌아(​Capua​), 제노아(​Genoa​), 바일라(​Vailà​), 볼로냐(​Bologna​), 메스뜨레(​Mestre​)에서의 전투 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저명한 가문이 그들의 지역을 탈환할 능력이 있었던 뛰어난 사람들을 따르길 원한다면 모든 다른 것에 앞서 모든 정벌의 기초로서 자신의 군대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 이다. 왜냐하면 군인들 보다 더 신뢰할 수 있고, 정직하고,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군인들 각자가 좋을 수 있지만 그들이 군주에 의해 지휘되고, 명예롭게 되고, 대접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되면 그들은 모두 함께 더 좋은 군대가 된다. 그러므로 이탈리아의 능력(virtù) 으로 외부로 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이러한 군대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위스와 스페인의 보병대가 무시무시 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해도 둘 다 약점을 갖고 있다. 이 약점을 근거로 한 제 3 형태의 군대는 그들에 대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패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스페인 군대는 기병대(cavalleria)의 공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위스 군대는 전투에서 상대의 보병대(fanteria)가 자신들 같이 완강하다는 것을 감지하면 반드시 두려움을 갖는다. 그러므로 경험상 보아왔듯이 스페인 군대는 프랑스 기병대의 공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위스 군대는 스페인 보병대의 공격에 궤멸될 것이다. 이 경우를 경험해 보지는 못 했지만 스페인 보병대가 스위스 군대의 전투대열과 똑 같이 포진한 독일 군대와 충돌하였던 라벤나 전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스페인 군대는 신체의 민첩함과 방패의 도움으로 독일 군대의 창 사이로 뚫고 들어가 독일군대에게 재정비할 틈을 주지 않은채 안전하게 독일 군대를 공격 할 수 있었다. 기병대가 끼어들어 그들을 공격하지만 않았더라면 스페인군대는 독일군대를 몰살 시켰을 것이다. 양쪽 보병대의 약점을 알았으니 보병대를 두려워 하지 않고 기병대에 저항할 능력이 있는 새로운 보병대를 설립할 수 있다. 이 것은 새로운 군대와 새로운 편성을 도입하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것들이 새로운 군주에게 명성과 위대함을 가져다 줄 혁신들이다. 그러므로 이탈리아가 그토록 오랜 시간후 마침내 구원자를 볼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가 외부로 부터의 홍수로 인하여 고통을 받은 모든 지역에서 얼마 만큼의 사랑과 복수에 대한 갈증과, 확고한 신뢰와, 자비와 눈물로 환영받을 지는 표현하기 불가능 하다. 어떤 문들이 그의 앞에서 닫힌 채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어떤 백성들이 그에 대한 복종을 거부할 수 있을까? 어떤 이탈리아인들이 그에 대한 존경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 야만의 땅은 누구에게도 악취를 풍긴다. 당신의 저명한 가문은 당신의 깃발아래 조국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하여 정의로운 정벌을 수행한다는 마음과 희망을 갖고 이 과업을 움켜 잡아라. 아래 ​뻬뜨라르까(Petrarca/Petrarch)​의 금언이 이 과업의 길조를 확인한다. “야만들의 광포(furore)에 대항해 이탈리아인들의 능력(virtù)은 무기를 들 것이다. 전투는 짧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탈리아인들의 심장 속의 고대 로마인들의 가치(valore)는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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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colò Machiavelli - Principe : 마키아벨리 군주론 이탈리아원본 완역본 - 김형률 번역  

김형률 번역 2019.3. - http://wke.lt/w/s/bJu34

Niccolò Machiavelli - Principe : 마키아벨리 군주론 이탈리아원본 완역본 - 김형률 번역  

김형률 번역 2019.3. - http://wke.lt/w/s/bJu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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