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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도 정신의 형성과 변용 : 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 La Naissance et l'evolution de l'esprit chevaleresque au Moyen Age et a la Renaissance 저자 (Authors)

김정희 KIM Jeong-Hee

출처 (Source)

한국프랑스학논집 49, 2005.2, 267-288 (22 pages)

발행처 (Publisher)

한국프랑스학회 Association Corenne D'Etudes Francaises

URL

http://www.dbpia.co.kr/Article/NODE00688509

APA Style

김정희 (2005). 기사도 정신의 형성과 변용 : 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 한국프랑스학 논집, 49, 267-288.

이용정보 (Acc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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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ue d`Etudes francaises 49, 2005.2, 267-28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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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랑스학논집 제 49 집 (2005) pp. 267~288

기사도 정신의 형성과 변용 : 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

1)

김 정 희** < 차 례 > 1. 서론 2. 기사도 정신의 확립과 변용 2.1 중세 기사도 정신의 확립

2.2 기사도 정신의 변용 : 르네상스기의 궁정인 3. 결론

1. 서론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그 연원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은 다각도에서 이루 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프랑스적 가치, 즉 프랑스인이 지향하는 정신적, 도덕적 가치들이 형성된 과정과 그 영향을 분석하는 일은 현재 프랑스 문화연구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은 것은 공화국 정신을 이루는 비종교성, 평등주의, 연대의식 등 프랑스 대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치들 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화국적 가치 외에도 오늘날 프랑스인을 규정하는 가치, 그들 특유의 행동방식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가치 중에는 대혁명 이전의 구체제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갈랑트리, 그리고 연대의식으 로 이어지는 여성 및 약자에 대한 각별한 배려 등이 그 일례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 날 ‘사회 상층부의 사회적 책무’로 이해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프랑스 구체제 하 에서는 ‘귀족 지위에 걸맞는 과시적 지출’을 의미하기도 했던 것처럼 시대가 변하면 서 이러한 용어들이 갖는 의미 또한 변화를 겪는다. 그 점에서 볼 때 프랑스적 가치 들이 최초로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것의 전승과정을 살펴보는 작업은 프랑스 사회와 문화의 상관관계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를 위해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프랑스 사회에서 중시했던 가치들은 시대별로 이상적 행동규범이나 이 상적인 인간형으로 집약되어 나타나거니와, 기사도정신, 궁정인, 오네톰, 댄디 등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얼핏 이들은 상당 부분 비슷한 도덕적 덕목과 사교 적 덕목들의 조합물로 보이지만 그러한 덕목들을 지향하는 사회집단에서부터 그것들 을 통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여준 다. 우리가 관심갖는 부분은 바로 시대별 행동규범 간의 미세한 차이와 그러한 차이 를 유발하는 사회적 변화다. 몇 년 전부터 프랑스적 행동규범을 통시적으로 접근한 * 이 연구는 서울대학교 신임교수 연구정착금으로 지원되는 연구비에 의하여 수행되었음. **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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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들이 나오고 있는데 알랭 몽탕동의 󰡔예절과 삶의 기술 Politesse et Savoir-

vivre󰡕1)은 프랑스 사회를 지배했던 예법들의 유형을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시대 순 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그것이 갖는 사회적 함의, 그리고 전 시대와 다음 시대의 행 동규범 간의 연속성이나 불연속성은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 다. 반면, 로베르 뮈셈블레드의 󰡔문명사회 La Société policée󰡕2)의 경우, 한 시대 의 예법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하고 있으나 연구대상을 16세 기부터 20세기까지로 한정한 까닭에 프랑스 가치체계의 모태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 는 중세가 논의에서 제외된 점이 흠으로 지적될 수 있겠다. 그것은 이 주제와 관련 하여 고전으로 꼽힐 만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궁정사회 La Société de Cour󰡕3) 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궁정문화가 절정에 이르게 되는 17세기만이 집중적으로 분석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시기로서 16세기가 간략하게 다루어지고 있을 뿐, 중세는 거의 소개되고 있지 않다. 본 논문에서는 앞의 연구들에서 미흡하게 다루어 진 부분인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이행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우선 중세의 대표적인 행동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도 정신의 핵심적 가치들을 소개하고, 그 것이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기의 행동규범에서 어떻게 굴절되어 계승되는지, 다시 말해서 봉건사회에서 형성된 귀족문화라고 할 수 있는 기사도 정신이 왕권강화가 본 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인 16세기에 이르러 정치적인 환경변화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그 구체적 양상과 사회적 함의를 살펴볼 것이다.

2. 기사도 정신의 확립과 변용 2.1. 중세 기사도 정신의 확립 일반적으로 한 시대의 이상적 행동규범은 지배계층을 형성하는 특정 사회집단에 소속됨을 알리는 표지로서 그것의 형성과정은 흔히 새로운 권력세력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하게 마련이다. 중세 프랑스의 경우, 기사계층의 탄생과 기사도 정신의 형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프랑크족 군대의 핵심은 보병이었다. 8세 기 초반 사라센과의 전투에서 그들 기병의 위력을 실감한 샤를 마르텔은 기병대의 강화에 힘을 쏟기 시작한다. 전투에서 말을 탄 전사의 역할이 점차 압도적인 중요성 을 갖게 됨에 따라 군사적 역할은 기사들의 특권이 되었다. 그러나 서기 1000 년경 까지는 기사들의 지위가 아직 크게 향상되어 있지 않았으며 복종의 의무 외에는 고 유한 윤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와 역할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 하면서 말을 타고 싸우는 자는 일반인들보다 우월하다는 징후들이 나타났다. 각종

1) A. Montandon, Politesse et Savoir-vivre, Paris, Anthropos, 1997. 2) R. Muchembled, La Société policée, Paris, Seuil, 1998. 3) N. Elias, La Société de Cour, Paris, Flammarion,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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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면제받은 이들은 그들의 출신계층인 농민계층으로부터 서서히 떨어져 나와 지역에 따라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11세기 말에서 12세기 말에 이르는 기간에 프랑 스 대부분의 지역에서 귀족계급과 융화되기에 이른다.4) 기사도 정신이라는 새로운 행동윤리와 삶의 이상을 제시하는 고유의 가치체계가 확립되어 나가기 시작하는 것 은 11세기 말엽이다. 그것은 도덕적 덕목에서 몸짓, 대화법 등 사교적 덕목에 이르 기까지 중세인들에게 있어서 자기표현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기사도 정신은 오늘날 우리 일상생활에서 주로 ‘여성을 비롯한 약자에 대한 배려’, ‘남성의 용기있는 행동’ 등의 의미로 축소되어 언급되지만 원래 중세 기사도 정신은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 성격을 지닌다. 그 전체 윤곽을 정확히 그려내기란 그리 쉽지 않거니와 그것을 이론적으로 집대성한 책이 드물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 수 있겠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중세 기사 집단의 이상은 영웅무훈시나 기사도 소 설처럼 기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중세 문학작품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소개된 것인데 그 안에 나타나는 기사의 모습들은 그리 일률적이지 않다.5) 이것은 기사도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장 플로리의 연구6)가 보여주듯이 기사도에 대해 부분적으로 언급을 하 고 있는 중세 정치 이론서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또 그가 소속된 궁정의 성향에 따라, 혹은 기사 집단에 대한 각기 다른 시대적 요청 을 반영함에 따라 기사에게 부여된 역할 등이 다소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11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동안 점진적으로 새로운 가치들이 추가되고 이것 들이 때로는 기존의 가치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기사도 정신이 윤리적, 도 덕적, 사교적 복합체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사적, 궁정적, 나아가 신학적 덕목의 복합물인 기사도 정신의 변모과정은 중세의 대표적인 기사도 문학작품의 주 인공들인 롤랑-랑슬로-갈라아드로 대표되기도 한다. 본 논문에서 이들 작품과 더불어 중세 기사도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들을 추출하기 위해 참고할 텍스트는 레이몽 륄7)이 1265년에 집필한 󰡔기사도 개설서 Le Livre

de l'ordre de chevalerie󰡕8)이다. 남불에서는 북부 프랑스 지방에 비해 훈화문학 4) J. Flori, Chevaliers et chevalerie au Moyen Age, Paris, Hachette 1998, pp. 74 -75. 뒤비는 마콩지방의 경우, 1075년경부터 이미 기사와 귀족이 동일시되기 시작하는 것 으로 보고 있으나 그것이 프랑스 전역에 일반화된 현상은 아니었다. 기사가 하급귀족으로 편입되는 현상이 프랑스 거의 대부분의 지방에서 나타나는 것은 12세기 말엽이다. 5) 비록 기사계급들의 후원으로 쓰여진 작품들이지만 그것은 기사계급의 자기예찬 너머 타계급 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투영되는 공간이기도 하였으며 농노출신의 하급기사로부터 대제 후에 이르기까지 그 세력의 편차가 극심했던 기사계급의 내부갈등, 또 기사계급에 뒤이어 부상했던 상인계급과의 갈등과 몰락의 예감이 문학적 표현을 빌어 불거져나오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6) J. Flori, Essor de la chevalerie, Genève, Droz, 1987. 7) 카탈란 문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레이몽 륄은 기독교 역사와 문화에서 가장 저명한 작가 중 하나이다. 기사로서 궁정생활을 거쳐 30세에는 기독교에 귀의하여, 불신자들을 위한 포교에 헌신했다, 북불 문학과는 달리 남불 문학의 경우 ‘ensanhamen’이라는 훈화문학장르는 행 동지침서에서 아이들의 교육론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왕성한 작품을 생산해냈으며 그 중에서 도 레이몽 륄은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지대했던 저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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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생산되었으며 그러한 경향을 가진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는 레이몽 륄의 이 책은 기사도에 관한 흔치 않은 이론서9)로 간주되고 있다. 15세기에 캑스턴에 의해 번역된 이 책의 인쇄본이 근대까지도 전 유럽귀족의 애독서로 아낌을 받았다는 점에서 중세 기사도 정신이 그 다음 시대까지도 누렸던 대중적 인기의 근 거를 잘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위에서 언급한 자료들로부터 추출한 중세 기 사도 정신의 몇 가지 주요 측면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1.1. 전사적 가치 프랑스에서 기사계급이 처음 형성된 10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기간은 바이킹 과 사라센의 잇단 침입, 그리고 전리품에 눈이 먼 귀족들 간의 상쟁으로 점철된 고 되고 위험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전사들의 도움 없이는 영주뿐만 아니라 교회나 농 민의 생활도 불가능하게 되었고 이러한 봉건적 무정부시대의 사회적 불안은 전사적 가치와 충성심의 예찬으로 이어졌다. 중세 문학은 기사가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는 전투장면으로 넘쳐나거니와, 그 중에서도 󰡔롤랑의 노래 La Chanson de Roland󰡕 에서 기사 롤랑이 보여주었던 바,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용맹성, 투 철한 충성심과 명예의식과 같은 전사적 가치는 기사도 정신의 요체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이몽 륄 역시 기사의 주요 본분이 기독교 신앙, 영주, 땅, 정의 등을 수호하고 유지하는 것으로 그것들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 것”이라 설명한 다. 그리하여 “기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이 영지를 약탈하는 것을 겁내며, 기사에 대한 공포 때문에 왕후장상들이 상호 대적하기를 꺼려한다”10)며, ‘두려움을 자아내는 존재’로서의 기사의 효용성을 지적한다. 기사의 가공할 힘은 비단 신체적 힘뿐만 아니라 용기, 대담함, 희망에서 비롯되며 특히 동료, 무기나 식량이 떨어졌을 경우에는 더욱 더 이러한 덕목이 요청된다고 하고 있다. Si toi, chevalier, tu désires et aimes la chevalerie, il convient de t'efforcer d'avoir la hardiesse, le courage, et l'espérance contre ceux qui

s'opposent à la chevalerie

et cela d'autant plus que viendront à

te faire défaut les compagnons, les armes et le viatique.11)

8) R. Lulle, Livre de la chevalerie, Paris, La Différence, 1991. 9) 서문에 의하면 이 책은 기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젊은이가 모험을 찾아 숲을 헤매던 중 잠결 에 은자가 있는 곳에 이르게 되고 이 은자로부터 건네받은 기사도 독트린을 적은 책이다. 화자는 의학이나 신학 등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기사도의 기원, 기사의 직분과 그의 풍 속 등 기사도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고 책을 통해 전수할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이 젊은 기사 지망생을 통해 이 책을 궁정에 널리 알려 모든 기사들로 하여금 필사하게 하여 기사도를 상 기하도록 하고 있다. 10) R. Lulle, op. cit, p. 33. 11) Ibid.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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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레이몽 륄은 중세 이후 상당히 오랫동안 전사귀족 고유의 활동으로 여겨져 왔던 사냥이나 마상시합과 같은 활동들에 대해 “말을 타고 무기를 다루고 마상시합에 참여하는 것, 원탁회의에 참석하는 것; 칼을 쓰고 사슴이나 곰, 멧돼지, 사자 등을 사냥하는 것12)” 등은 “기사로 하여금 무기 사용에 익숙해지고 기사도를 유지하게 해 주는 것으로 기사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러한 활동들을 소홀히 하는 것은 기사도를 소홀히 하는 것”13)이라 명시한다. 다시 말해 기사도 본 연의 임무에 해당하는 것과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구분하여 나중에 가서 귀족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귀족 특유 의 생활양식이 본래 그것 자체로서보다는 어디까지나 기사 본연의 임무를 위한 부차 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 2.1.2. 궁정적 가치 전사적 가치에 이어 12세기 말부터는 ‘궁정성courtoisie’14)으로 지칭되는 사교 적 덕목들이 기사도 정신에 추가되었다. 흔히 중세적 행동규범의 가장 완성된 형태 로서 언급되는 ‘궁정성‘은 일관성 있고 결정적인 형태로 서술된 독트린을 갖고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12세기 중세 사회가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되 면서 영주 주위로 기사들과 귀부인들을 중심으로 궁정이 형성되고 이들이 이전의 거 친 전사적 풍속에서 벗어나 보다 세련된 풍속을 지향하게 되었을 때 규범화되기 시 작한 행동방식을 지칭한다. 궁정성에 관한 가장 협의의 정의는 호이징거에게서 발견 된다. 그에게 있어 궁정성은 ’궁정적 사랑 l'amour courtois‘과 불가분의 것으로 기 사가 귀부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질들을 지칭한다. 그것들은 󰡔장미의 소설 Le Roman de la rose󰡕에서 이상적인 모습으로 구현되는 덕목들의 총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우아함, 예의바름, 인색하지 않음, 유복함, 쾌락, 젊음, 춤과 노래와 같은 예능에 대한 소양 등이 그 대표적인 가치들이다. 12세기 중반부터 쓰여지기 시 작한 기사도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상적인 기사는 랑슬로나 고뱅처럼 용맹스러울 뿐 만 아니라 잘 생기고 여성과의 대화를 즐기며, 욕망을 절제하되 그렇다고 금욕적이 지 않으며, 겸손하며, 물질적인 것에 결코 연연하지 않는 낭만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다.15) 궁정적 가치 중 어느 덕목에 더욱 비중을 두는가는 텍스트마다 다르다. 기독 12) Ibid., p. 32. 13) Ibid., p. 32. 14) 미셸 쟁크에 따르면 이 용어는 “관습을 알고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하고 품위있게 행동하 고, 사냥이나 전투에 능하고 세련된 대화와 시적 재능을 위한 순발력 있는 정신을 전제로 한다. 또한 사치에 대한 취향을 갖되, 동시에 탐욕과 이윤을 멀리함을 의미한다” M. Zink et ali,. Dictionnaire des Lettres françaises, Paris, Fayard, 1964, pp. 334-341. 15) 궁정성을 이상적으로 구현하는 인물인 ‘쿠르투아 le courtois’의 개념에 있어서는 약간의 이견이 존재한다. 몽탕동은 성자, 기사, 사제를 모두 궁정성의 이상적 모델로 간주하는 데 반해 미셸 쟁크의 경우, 궁정적 인간을 적극적으로 정의하기보다는 궁정성을 가질 수 없는 자를 정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는 12세기 궁정생활의 윤리를 구성하는 덕목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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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적 색채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나는 레이몽 륄의 텍스트에서는 궁정적 가치들 이 기독교적 가치에 수렴해가는 특징을 보이는 반면, 궁정적 연인이 갖추어야 할 덕 목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16) 여기서 궁정적 가치는 우 선 그것과 반대되는 것들에 대한 비난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언급되고 있다. 저 자는 기사가 피해야 할 점들로 “오만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말이 거칠고 의복이 지저분하며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인색하고 불충하고 게으르며 화를 잘 내고 음탕하고 식탐이 많고 맹세를 지키지 않는 것”17)을 들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7죄종18)과 겹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레이몽 륄 이 특히 중시하여 독립적으로 언급하는 궁정적 덕목은 ’물질적인 너그러움, 물질적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움‘이다. 이를 위해 그는 충분한 재산을 기사가 되기 위한 필요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것은 우선 다른 사람들에게 넉넉히 베푸는 미덕으로 표 현된다. 기사로 서임한 자는 새로 기사가 된 자에게, 그리고 새로 서임된 기사는 다 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사할 의무가 있는데 이는 기사도라는 큰 선물을 받은 사람 으로서 당연한 행동이며, 마땅히 베풀어야 할 것을 베풀지 않는 것은 기사의 위계에 위배된다는 것이다.19) 군사적 봉사와 그 봉사에 대한 대가의 교환에 토대를 둔 봉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인 너그러움이 여기서는 갓 서임된 기사 또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제시되는데 이는 물질적 너그러움largesse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기사가 갖춰야 할 덕목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20)

16)

17) 18) 19)

20)

질의 총체인 궁정성이 사회적으로 엘리트에게 적용되며 비천한 출신의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쿠르투아의 반대말에 해당하는 ‘천한vilain’에 해당하는 인간형을 먼저 정의한 다. 그에 따르면 이것은 원래 농민을 지칭했으나 점차 직업적 구분을 떠나 도덕적 의미를 갖기 시작하여 탐욕스럽고 거칠고, 소유욕이 강한 성격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천민이 도덕적 의미를 갖게 되면서 기사와 성직자 중에서도 필요한 덕목을 갖추지 못한 자는 궁정적 인간이 될 수 없다고 하겠다. 중세 문학작품의 주요 테마가 되었던 궁정적 사랑의 경우, 기독교적 가치를 가장 우선시하 는 레이몽 륄의 저작에서는 다음과 같이 우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As-tu déjà vu un chevalier qui ne veuille pas protéger son épouse d'un chevalier félon?” R. Lulle, op.cit. p. 40. Ibid, p. 49. 7죄종은 식탐gourmandise, 음욕luxure 인색함 avarice 게으름 paresse 자만심 orgueil 시샘 envie 분노colere이다. 필립 드 콩타민 또한 14세기 Jean Dupin을 인용하여 같은 견해를 표명한다. “il est dit qu'un homme qui n'est pas sage de nature, qui n'est pas ‘nept sans ordure‘, qui n'est pas ’de noble sanc‘ mais aussi qui n'a pas la richesse adéquate ne doit pas chercher à devenir chevalier: à chacun tenir ’son estat‘, en fonction de ses ressources.” Ph. Contamine, La Noblesse au royaume de France de Philippe le Bel à Louis XII, Paris, PUF; 1997, p. 280. 물론 그것은 또 다른 현실에 대한 암시일 수도 있다. 저자는 재산의 중요성을 강조함에 있 어서 단순히 남에게 베풀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기사가 재물을 얻기 위해 사기와 배반, 절 도 등의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데 더욱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출생보다 재산이 오히려 더 기사가 되는 데 있어서 엄격한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 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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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t le seigneur qui arme chevalier doit faire des dons au nouveau chevalier et aux autres nouveaux chevaliers. Le nouveau chevalier doit aussi faire des dons ce jour-là, car qui reçoit un aussi grand don que l'ordre de chevalerie, trahit son ordre s'il ne donnent selon ce qu'il doit donner.21)

2.1.3. 기독교적 가치 앞서 기사들의 가장 큰 역할이 무기로써 제후들을 섬기는 것임을 명시한 바 있거 니와, 기사를 지칭하는 라틴어 ‘밀레스 miles’는 ‘밀리타레 militare’ 즉, ‘섬긴다’는 동사에서 파생한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섬기는 행위 자체는 신분의 열등함 을 의미할 수 있으나 중세 기사들은 그 섬기는 행위를 통해서 보다 우월한 대의에 접근하게 되고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가 같은 대의를 공유하게 됨으로써 궁극 적으로 신분상승의 효과를 거둔다는 점이다. 그 대의는 교회인을 비롯한 약자를 보 호할 임무였다. 기독교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약자의 보호’ 의무는 8세기에서 10 세기에 이르는 동안 교회의 의무에서 왕의 의무로 이전되고, 이어서 제후들, 나중에 는 기사들의 의무가 된다. 솔즈베리의 존은 이와 관련하여 “기사들은 하느님이 세상 을 다스리도록 권한을 부여한 제후들에게 복종함으로써 하느님을 섬기는 격”22)이라 지적하여 기사들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있다. 11세기 초까지 교회는 왕을 비롯하여 권력을 가진 자들의 무기수여에 한하여 개입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점차 기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또한 기사들이 현실 사회에서 폭력과 무질서의 원천 으로 지목됨에 따라 이들 집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기사도 정신에 기독교적 덕 목들을 추가함으로써 기사도를 기독교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우선 교회는 ‘신의 평화 Paix de Dieu’ 운동을 통해서 기사들, 즉 강자에게 무기를 들지 않은 자, 약자들의 보호를 위한 실천지침을 만들었다. 이어서 교회는 기사 서임식에도 관 심을 보여 기사에게 수여되는 칼을 축복하였으며 기사의 칼날에는 신의 가호를 믿는 기사의 신앙을 증거하는 비문이 새겨지게 된다. 레이몽 륄의 이 책이 쓰인 13세기는 기사문화에 교회의 영향이 이미 상당히 침투한 시기일 뿐 아니라 저자 또한 기사로 서 궁정문화에 탐닉했던 젊은 시절을 뒤로 하고 기독교에 귀의한 경력을 가진 만큼 여러 대목에서 기사들은 무엇보다도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화자는 기사가 갖추어야 할 7개의 덕목으로 신앙, 자비, 소망의 3개의 신학적 덕목 과 정의로움, 신중함, 힘, 절제 등 4개의 기본덕목을 들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단적 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힘’은 물리적, 육체적 힘이 아니라 7죄종 에 맞설 수 있는 정신적 힘을 의미한다. Tout chevalier doit connaître les sept vertus qui sont la racine et 21) R. Lulle, op. cit. p. 55. 22) J .Flori, op. cit. p.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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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rigine de toutes les bonnes moeurs et sont la voie et les chemins de la céleste gloire éternelle. De ces sept vertus, trois sont théologales et quatre cardinales: Les vertus théologales sont la foi, l'espérance et la charité. Les vertus cardinales sont la justice, la prudence, la force et la tempérance.23)

2.1.4. 공동체 의식 위에서 소개한 전사적, 궁정적, 기독교적 가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기 사도 정신이 봉건제 사회의 엄격한 피라미드식 위계질서 속에서도 일종의 수평적 공 동체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플로리는 11세기부터 대제후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용어로 ‘기사’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며 이는 제후와 평 기사 모두 ‘기사’라는 같 은 직업적 범주에 속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한 다.24) 물론 “그 동업자 조합은 불평등하여 제후기사가 그에게 딸린 기사들에게 명령 을 내리는 위계질서가 지배하고 있으나 (...) 그러한 위계질서 내에서도 같은 계급에 속하는 자들 간에는 연대의식이 존재한다”25)는 것이다. 아더왕 소설에서 아더왕과 다른 원탁의 기사들의 관계가 봉건적 위계질서상, 즉 법적, 사회적으로는 주군과 가 신의 관계지만 개인적, 도덕적 차원에서는 ‘동료compagnon’관계라는 부테의 지적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Le statut d'Arthur par rapport aux compagnons de la Table Ronde est donc double : il est d'abord leur suzerain, et le mythe ne saurait ici faire oublier cette exigence première du monde féodal. Il est ensuite compagnon de la Table Ronde, mais exclusivement à titre personnel : le roi est le sommet de la hierarchie féodale, la Table Ronde celui de la hiérarchie chevaleresque ; la première est de nature purement sociale et juridique, la seconde est de nature morale et repose sur des qualités individuelles.26)

기사라는 칭호가 내포하는 이러한 동류의식, 혹은 평등의식을 문학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 바로 상석의 구분이 따로 없는 ‘원탁 Table ronde'의 모티프라고 할 수 있 는 것이다. 왕과 기사 사이에 복종관계와 동료관계를 동시에 설정하는 이러한 이중 성은 신종선서 의식에도 반영되는데 주군은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가신의 손을 감 싸 쥐고 그를 일으켜 포옹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평등한 관계임을 상징적으로 표현 23) 24) 25) 26)

R. Lulle, op. cit. p. 63. Ibid.. p. 113. Ibid., p. 273. D. Boutet, Charlemagne et Arthur ou le roi imaginaire, Paris, Honoré Champion, p.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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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도 정신의 형성과 변용 : 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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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27) 앞서 언급한 기사도 정신의 주요 덕목들이 중세 텍스트에서는 모두 왕이나 하급기사나 다 같이 공유해야 할 공통의 덕목으로 소개되고 있는 점은 이 점에서 주 목할 만하다. 위계질서에도 불구하고 최상층의 황제나 최하층의 평기사가 다 같이 기사신분을 공유한다는 점이 레이몽 륄의 텍스트에서도 명백하게 표현되고 있다. Tant est noble le métier de chevalier que chaque chevalier devrait être seigneur et gouverneur d'une terre, mais si nombreux sont les chevaliers que la terre n'y suffirait pas. Pour signifier qu'un seul Dieu est seigneur de toutes choses,·l'empéreur doit être chevalier et seigneur de tous les chevaliers: mais comme empéreur ne peut à leui seul gouverner tous les chevaliers, il convient qu'il ait sous son pouvoir des rois qui soient chevaliers et qui l'aident à maintenir l'ordre de chevalerie. Et les rois doivent avoir sous leur pouvoir des comtes, des vicomtes des vavasseurs et aussi d'autres grades de chevalerie. Et sous ces grades doivent être les chevaliers d'un écu lesquels sont gouvernés et tenus pas les grades susdits.28)

레이몽 륄은 기사의 아들들이 기사가 되기 이전인 종자 시절에 신하로서 고기를 자르거나 마구를 손질하는 등의 천한 일들을 비롯하여 주군을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자신이 주군이 되었을 때 그 소임의 고귀함을 다 알 지 못하게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29) 군사적 봉사를 포함하여 주군을 ‘섬기는 servir’ 행위는 사회적으로 고착된 신분의 종속개념과 거리를 두고 있으며 기사도에 입문하 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하나의 단계로 인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크레티엥 드 트르 아의 󰡔에렉과 에니드 Erec et Enide󰡕의 에렉, 또 󰡔사자의 기사 Le Chevalier au

lion󰡕의 이뱅은 그러한 ‘섬기는 자’의 직책이 나중에 왕이 될 사람들이 거쳐야 할 일 종의 수련과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들이다. 용맹스럽고 명예에 관해서는 한 치의 타협도 없으며 세련된 대화와 품위있는 행동 27) 사실, 주군과의 관계에 있어서, ‘섬김, 봉사 service’의 의무는 이중적 측면을 지닌다. 봉 건사회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것이 사실이나 그 관계를 엄밀히 살펴보면 일반적 으로 기사가 주군에 대해 갖는 봉사 및 조언의 의무는 주군이 가신을 보호할 의무와 교환 관계에 놓여있다. 즉 쌍방이 서로에 대해 의무를 갖는 쌍무적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 다. 신종선서의식은 주군과 가신의 이러한 동등한 관계를 잘 반영한다. 28) R. Lulle, op.cit. p. 30. 29) "Il convient également qu'il soit sujet avant d'être seigneur et qu'il sache servir un seigneur, car autrement, quand il sera chevalier, il ne connaîtra pas la noblesse de sa seigneurie. C'est pourquoi tout chevalier doit mettre son fils au service d'un autre chevalier pour qu'il apprenne à tailler la viande, à harnacher les montures, et toutes les choses qui appartiennent à l'honneur du chevalier". Ibid., p.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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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익숙하며 물질적인 것에 초연하고 늘 봉사할 자세를 갖고 있으나 그러한 봉사행 위로 인해 그 격이 낮아지지 않으며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사회적으로는 엄격한 위계질서 내에 편입되어 있지만 도덕적 차원에서는 왕과 같은 범주에 소속되 었다는 자부심을 가진 자, 그것이 중세 기사도 정신이 표방하는 이상적인 모델이라 면 이러한 기사도 정신은 전사귀족이 차츰 그 힘을 잃어가는 르네상스기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프랑스에서 기사단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것은 대혁명기지만 기사로 대표되는 전사 귀족이 결정적으로 사양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백년전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30) 백년전쟁을 거치면서 상당수의 귀족들이 사라지고, 또 남은 귀족들의 재산이 소진되 면서 그 입지가 약화되는 동안, 사라진 귀족이 남긴 자리는 다른 계층 사람들에 의 해 충원되었다. 17세기에 가서 재상직으로 진출하며 최상층 궁정귀족을 형성하게 될 대가문들은 이 무렵 급속도로 사회적 상승을 하게 된다.31) 16세기 후반에 귀족작위 를 수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들이 마련되기는 하지만 1660년 이전까지는 꾸준히 매관매직, 혹은 왕의 총애에 힘입어 새로운 사람들이 귀족계급에 진입했다. 별로 동 질적이지 않은 새로운 구성원들로 충원된 프랑스 귀족들은 예전에 중세 기사들이 처 음 귀족층에 진입할 때처럼 공동의 가치를 확인함으로써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시대가 변하여 기사의 실제 위상이 예전같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이 자신에 게 부여하고자 한 공동의 가치는 중세 제2위계, 즉 기사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자는 기사도 소설을 열독했고 무기를 사용할 능력이 없는 자들은 사냥을 통해 상징적으로나마 기사적인 삶을 영위했다. 중세 기사문화는 이렇 게 신흥귀족계급에 의해서만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왕에 의해서도 상당 부분 그 연속성을 보장받았다. 르네상스기의 프랑스 군주32)들은

스스로 기사의 모델을 제시

하고자 노력했다. 프랑수아 1세는 전쟁터에서 바이아르 Bayard에 의해 기사로 서임 됨으로써 전사귀족들이 수호하고자 한 정체성에 위엄을 부여한 바 있으며 축성식에 서도 칼이나 박차와 같은 기사도적 상징을 사용하여 ‘매우 기독교적’ 왕의 소명과 전 사적 소명을 연관시키기도 하였다. 󰡔아마디스 드 골 Amadis de Gaule󰡕에 심취했 던 그의 아들 앙리2세가 끝내 마상시합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16세기 프랑스 30) 인적 자원 측면에서, 크레시 전투나 아쟁쿠르 전투 등 백년전쟁 중의 대전투들은 중세귀족 의 수효를 급격히 감소시켰다. 물적자원 측면에서도 백년 전쟁은 전사귀족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가져왔다.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왕이 농민에게 거두는 세금이 무거워지고 흑 태자를 위시한 영국군의 약탈행위가 프랑스 지방을 초토화시킴에 따라 영주들의 수입원이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사의 무장이 보다 완벽을 기하게 되면서 이에 소요되는 엄 청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사들이 전쟁에서 포로의 몸값을 지나치게 요구하거나 약탈행 위에 나서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31) J. Meyer, La Noblesse française à l'époque moderne (XVIe-XVIIIe siècles), Paris, PUF, p. 19(QSJ). 32) 비록 이 시기에 기사왕royauté chevaleresque에서 궁정왕royauté de cour으로 이행이 이루어지지만 엘리아스의 표현대로 이들은 아직은 기사왕에 가까운 유형인 것이었다 N. Elias, op. cit, p.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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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도 정신의 형성과 변용 : 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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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에 만연했던 중세 기사도 취향의 절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중세 기사도 정신이 본래 봉건시대의 산물이라면 프랑스에서 왕권이 점진적으로 강화되어나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는 르네상스기에 이러한 봉건적 기사문화의 존속 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과거 봉건적 전통으로 회귀하는 것이 이 시대의 왕 이 지향했던 목표였을까? 마이어는 “이러한 귀족 구성원의 변화, 정치권력 구도의 변 화가 기사도적 이데올로기에 있어서는 극히 미약한 변화만을 가져왔다”33)고 지적한 다. 뒤비의 말대로 이데올로기는 하부구조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훨씬 더 느리게 변화하기 때문일까?

우선 ‘극히 미약한 변화’라는 것이 어떤 부문에서 감지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미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 중세 기사도 정신과 16 세기 궁정인의 이상 간에 존재하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2.2. 기사도 정신의 변용 : 르네상스기의 궁정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중세 기사 문화와 더불어 프랑수아 1세와 앙리 2세 시대에 프랑스 귀족문화가 형성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이탈리아 궁 정문화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르네상스에서 루이14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프랑 스 귀족 남녀가 애독했던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의 󰡔궁정인󰡕(1528년)의 영향은 매우 지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34) 카스틸리오네는 우르비노 궁정을 무대로 하여 1507년 3월 3일에서 7일까지 나흘간 군인, 외교관, 성직자, 예술가 등이 나누는 대 화형식을 빌어 걸음걸이부터, 싸움, 운동, 의상, 무용, 대화, 농담, 여성과의 관계, 군주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존재양식을 통해 본 이상적인 궁정인의 모습 을 제시하고 있다. 카스틸리오네의 책이 17세기 프랑스에서 쓰여진 예법서35)의 모 델로서 ‘오네톰 Honnête homme’라는 프랑스 17세기 이상적 인간상이 형성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이 쓰여졌던 16세기 당시 프랑스 궁정사회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궁정인󰡕은 당시 프랑스 궁정문화의 현실에 대한 언급을 적지 않게 포함하 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책을 집필하기 전 카스틸리오네가 프랑수아1세와 만났으며, 비록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의 1쇄가 프랑수아1세에게 헌정될 예정이었다는 점 에서 그것이 당시 프랑수아1세가 지향한 궁정의 기능, 궁정귀족의 모습과도 무관하 지 않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엘리아스에 의하면 프랑스에서 15세기와 16세기, 이 두 세기는 왕의 궁정이 여느 봉건제후들의 궁정보다 더 우월한 권력의 구심점이 되어가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시 33) J. Meyer, op. cit,. p. 21. 34) 보편적인 궁정문화코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1537-1538년 사이에 프랑스에서만 3쇄가 인쇄되는 성공을 거둔다. I. Cloulas, Les Châteaux de la Loire au temps de la Renaissance, Paris, Hachette, p. 157. 35) 17세기 프랑스 궁정사회의 대표적인 예법서로 꼽히는 Nicolas Faret의 L‘Honnête homme ou l'art de plaire à la court (1630)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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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였다. 엘리아스는 르모니에를 인용, “16세기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귀족사회société aristocratique이다. 이들이 봉건제도를 결정적으로 대체하는데 그것은 하나의 혁명이다”36)라고 표현한다. 프랑수아 1세 시대에도 대규 모 영지를 소유한 영주세력들이 여전히 존재했으나 왕은 그 소유자들에게 어떠한 독 립성도 허용하지 않았고 부르주아 출신인 왕의 법관과 법원들이 점진적으로 봉건적 행정 및 사법체제를 대체해 나갔다. 프랑수아 1세는 전사귀족과 더불어 새로 귀족칭 호를 얻게 된 사람들을 거느렸고 그들 간의 서열은 더 이상 소유지의 규모가 아니라 왕에 의해 결정되었다. 달리 말해 이 시기는 중세적 봉건기사문화와 근대적 군주제 하에서의 궁정귀족문화가 혼재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은 이 두 문화가 어떻게 길항작용을 일으켜 가치체계의 변화를 가져오는가를 보는 것이다. 흔히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은 중세 기사도 정신과 르네상스 위마니슴을 종합해 낸 것으로 파악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궁정인󰡕의 분석을 통하여 중세 기사도 정신 의 핵심적인 가치들이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어떻게 변 용되는지를 보도록 하겠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이행하면서 중세 기독교적 가치가 전면에서 사라지는 현상은 널리 알려져 있거니와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중세 기사도 정신 중 전사적 가치와 궁정적 가치, 공동체 의식이 어떻게 왕과 귀족 관계 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변화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볼 것이다. 2.2.1. 전사적 가치 카스틸리오네는 궁정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무기를 잘 다루는 법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 중세 기사도 정신의 본령이었던 전사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카스틸리오네는 일단 이렇게 무기사용에 능할수록 궁 정인은 더 큰 칭송을 받을 것이라고 운을 뗀 다음, 그런 것에 대한 완벽한 지식은 용 병대장에게나 합당한 것으로 그 가치를 폄하한다. 중세 기사와 귀족은 거의 동일시 될 수 있는 성격인데 비해 카스틸리오네는 군사적 역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직업 군인과 군사적 소양이 하나의 교양정도로 요구되는 궁정귀족을 구분한다고 할 수 있 겠다. Plus le Courtisan excellera donc en cet art, plus il sera digne de louange; je n'estime pas cependant qu'il lui soit nécessaire de posséder cette parfaite connaissance des choses et ces autres qualités qui conviennent à un capitaine37);

그는 무기의 능란한 사용이 이상적인 궁정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이긴

36) N. Elias, op, cit., p. 171. 37) B. Castiglione, op .cit. p.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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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만이 자신의 본분이라 생각하여 궁정에서의 대화에서도 늘 용맹성을 과 시하거나 공연히 매서운 눈빛을 하여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 시킴으로써 전쟁터에서의 덕목과 궁정에서의 덕목이 별개의 것임을 강조한다. 특히 궁정에서 춤을 청하는 귀부인에게 그러한 경박한 여흥은 그의 본분에 맞지 않는다며 마치 여인 대신에 갑옷과 결혼한 것처럼 구는 것을 어리석은 오만이자 촌스러운 행 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아래 에피소드는 싸우는 것을 자신의 유일한 소임으로 생각 하는 기사가 평화로운 르네상스기의 궁정이라는 새로운 문화공간에 적응할 필요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 la dame lui demanda : “Quel est donc votre métier?” ; et il répondit avec un visage rébarbatif : “Combattre.” “Je pense”, répondit aussitôt la dame, “que maintenant que vous n'êtes pas à la guerre ni sur le point de combattre, il serait bon que vous vous fassiez bien graisser et ranger dans une armoire avec tous vos harnais de guerre jusqu'à ce qu'on ait de nouveau besoin de vous, de peur que vous ne deveniez plus rouillé que vous n'êtes.“38)

여기서 저자는 궁정이 전사적 코드가 더 이상 지배적인 것이 될 수 없는 공간이 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중세 프랑스의 도처에 세워졌던 방어적 목적의 성 채들이 르네상스기에 이르러 이탈리아식의 안락함과 쾌락, 사교를 주 목적으로 하는 쾌적한 주거용 성39)으로 바뀌어 나가는 현상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특히 무기를 다루는 기술의 경우, 저자는 궁정인들에게 실전에서는 그리 섬세한 기술이 필요치 않으며 그러한 용도보다는 오히려 다른 귀족과의 결투를 염두에 두고 기술을 연마할 것을 주문한다. 이는 이미 기사가 전쟁에서 더 이상 유용하지 않으며 현실에서 그들의 전사문화가 근근히 유지되는 것은 고작 결투라는 방식을 통해서임 을 시사한다.40) 이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오면서 왕을 위시하여 귀족집단이 기 사도 문화를 표방하긴 했지만 중세 기사도 정신의 핵심을 이루는 전사적 가치의 중 요성이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말과 칼, 창을 주 무기로 사용했던 전투에서 높이 평가되었던 육체적 힘, 개인적 용기, 엄청난 가격 을 유발했던 기사들의 중장비는 총포술이 도입된 전투에서 예전과 같은 가치를 갖지 못했다. 프랑수아 1세가 파비전투에서 돌아와 “명예를 제외한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한 말은 기사를 주축으로 한 프랑스 군사력의 허상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38) Ibid., p. 43. 39) 엘리아스는 왕의 궁정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수효는 계속 증가했고 치세 초기에 프랑수아 1세 소유의 성들의 규모로는 수용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새로운 성의 건축으로 이어지 게 된다고 지적한다. op. cit. p. 173. 40) 그것은 사소한 일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스러져가는 전사귀족의 명예심을 충 족시켜주는 수단에 불과했다. 이는 단지 이탈리아에 국한된 상황이 아니며 당시 프랑스에 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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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다. 전쟁터에서는 용맹스럽되 그 외의 곳, 즉 궁정에서는 “인간적이고 온건하며 사려깊 고”, “과시를 피하고 쓸데없는 자찬을 하지 않음으로써 듣는 이들이 역겨워하지 않도 록 할 것”을 충고하는 카스틸리오네가 타산지석으로 삼은 이들이 바로 프랑스 귀족들 이었다. 카스틸리오네는 전사적 가치만을 전적으로 숭배하는 이 프랑스 기사들을 문 예에 무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철저히 무시하는 사람들로 소개하고 있다. Mais, outre la bonté, je pense aue le vrai et principal ornement de l'esprit

de

chacun,

ce

sont

les

lettre,

bien

que

les

Français

connaissent seulement la noblesse des armes et ne fassent aucun cas du reste, de manière que non seulement ils n'apprécient pas les lettres, mais même ils les abhorrent; et tiennent tous les lettrés pour les plus vils des hommesm et il leur semble qu'ils font une grande injure à quelqu'un quand ils l'appellent clerc.41)

프랑스 현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이 대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책을 집필 하기 전에 이루어진 카스틸리오네와 프랑수아 1세의 만남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거니와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이 담고 있는 내용이 프랑수아1세의 정치적 상 황과 완전히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 나아가 프랑수아1세의 정치적 필요성에 부응 하는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 대목은 프랑스 전사귀족들이 문예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다분히 고의적이었음을 시사한 다. 무셈블레드의 지적대로 16세기 프랑스 군주가 왕권을 강화해나가는 과정에서 즉, 향후 루이14세가 그랬듯이 궁정을 군주가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권력수단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것은 비록 경제적으로 약화되긴 하였으 나 그리 순종적이지 않은, 어느 나라보다도 독립성이 강한 프랑스 전사귀족들이었다. 인문주의적 소양을 쌓는 데 열성적이었던 지식인이나 관료층과는 달리 혈통귀족은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굳이 그런 새로운 문화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 이다. 이는 앙굴렘 영주(프랑수아1세)가 프랑스를 통치하게 되면서 전사적 가치의 독주 가 완화될 것이며, 문예가 그간 무예가 누렸던 영광 못지않은 영광을 누리며 찬란하 게 개화할 것이라는 카스틸리오네의 예측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Si la bonne fortune permet que Mon seigneur d'Angoulême ainsi qu'on l'espère, succède à la couronne, j'estime que, de même celle des lettres devra y fleurir pareillement avec un éclat incomparable. (...) Il me fut dit qu'il aimait et appréciait au plus haut point les lettres, qu'il blâmait les Français eux même d'être si éloignés de cette 41) B. Castiglione, op .cit. p.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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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ession(...).42)

여기서 프랑수아 1세의 즉위와 더불어 개화할 것이라는 문예와 무예의 대립은 단 순히 르네상스와 중세적 취향의 대립으로만 간주될 것은 아니며 지하게 될 새로운 문민 엘리트의

성격43),

프랑수아 1세가 의

군주와 그들 간의 역학구도의 관점에서 보

아야 할 것인 것이다. 중세 기사도 정신의 핵심을 이루었던 용맹성을 궁정인이 갖추 어야 할 하나의 귀족적 소양 정도로 변질시킨 󰡔궁정인󰡕은 프랑수아1세가 의도하는 강력한 왕권을 지향하는 군주제 사회에 걸맞는 귀족상이기도 하다. 귀족과 왕의 위 세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 그것은 귀족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전사귀족의 전 사적 가치의 입지약화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2.2. 궁정적 가치 카스틸리오네가 제시하는 궁정인의 이상적 행동방식을 특징짓는 것은 ‘우아함 grâce’이다. ‘우아함’은 중세 궁정적 연인을 특징짓는 대표적인 자질이기도 하지만 여 기서 ‘우아함’은 한 개인의 내재적 특성이라기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그 사람이 그 점을 인정하고 호의를 베풀도록 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Grâce, c'est ce que possède un individu ou une chose, et qui fait qu'ils vont plaire à quelqu'un d'autre, si bien que cet autre sera reconnaissant et accordera ses faveurs.”44)

카스틸리오네가 제시하는 궁정인에게 있어서 군주는 ‘그의 마음에 들어야 할’ 대 상, ‘호의’를 얻어내야 할 대상이다. 중세 기사는 영주가 되기 전에 가신이 되어 영주 를 섬기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자신이 영주가 되었을 때 그 고귀한 소임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궁정인과 군주의 관계는 더 이상 그처럼 쉽게 신분전환 이 이루어지는 관계로 인식되지 않는다. 결코 대등할 수 없는 군신관계, 17세기 루 이 14세 시대에 이르러 거의 완벽하게 완성될 구도인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 미 프랑스의 군주들이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한 일방적인 관계는 ‘우아함’이 지 향하는 목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중세 기사의 덕목이 평 기사에서 황제에 이르기 까지 동일하게 적용될 성격인 데 비해 카스틸리오네는 노래, 춤, 세련된 화법, 의상, 42) Ibid. p. 81. 43) 뮈셈블레드는 프랑수아 1세의 후원 아래 활동했던 롱사르가 쓴 시나 샹보르성과 퐁텐블로 성을 지었던 이탈리아 예술가들 작품의 주요 기능들 중 하나가 상징적인 방법을 통해서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같이 되기를 기대하는 군주의 열망을 표현 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op. cit. p. 55. 44) B. Castiglione op. cit. p. x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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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치, 그림, 조각 등 ‘궁정성의 꽃’으로 간주되는 궁정인의 사교적인 덕목과 선행을 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 등 ‘궁정성의 결실’로 간주되는 군주의 도덕적 덕목을 구분 한다. C'est pourquoi j'estime que, de même que la musique, les fêtes, les jeux et autres manières plaisantes sont pour ainsi dire la fleur de la courtisanerie, entraîner et aider son Prince à agir bien et le garder du mal, en est le véritable fruit.45):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줄 모르거나 말을 멋지게 탈 줄 모르거나 춤을 추지 못하는 것은 궁정인으로서는 결격사유일 수 있어도 군주에게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중세 기사들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했던 궁정적 덕목인 정의, 관 대함, 절제 등의 덕목은 궁정인에게는 더 이상 필수가 아니며 오로지 군주의 덕목으 로 제시되고 있다. Et ainsi le Courtisan, s'il a en lui la bonté que ces seigneurs lui ont attribué, accompagnée de la connaissance des lettres et de tant d'autres choses, saura à tout propos faire voir à son Prince, de manière avisée, quel honneur et quel profit il peut tirer, lui et les siens, de la justice, de la libéralité, de la magnanimité, de la mansuétude et des autres vertus qui conviennent à un bon Prince; et au contraire, quel déshonneur et quel dommage proviennent des vices contraires à ces vertus.46)

중세 궁정적 가치가 대부분 16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면 이것들은 궁정인이 군 주에 대해 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16세기 궁정에서는 궁정의 여러 주체들 간에 새롭 게 분배되며 그리하여 군주와 궁정인 간에 거리를 두는 데 기여한다. 이 점에 있어 우리는 다시 한번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이 프랑수아 1세의 정치적 의도에 부합될 수 있는 면을 발견하게 된다. 2.2.3. 복종과 훈육의 이중적 관계 위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왕과 전사귀족이 기사라는 같은 호칭으로 불리며 하나 의 공동체 의식을 가졌던 중세와는 달리 카스틸리오네가 바라보는 르네상스기의 궁 정사회에서는 군주와 궁정인 간에 완전히 수직적, 종속적 관계가 고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종속적인 관계는 이 책의 말미에서 궁정인이 이렇게 45) Ibid., p. 328. 46) Ibid., p.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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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낸 호의faveur를 이용하여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밝혀짐으로써 얼 핏 완전히 전도되는 듯이 보인다. 카스틸리오네는 궁정인이 군주의 호의를 얻기 위 해 온갖 자질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이유가 다름 아니라 군주에게 직언을 할 수 있도 록 하기 위한 것, 나아가 군주를 훈육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중세 기사가 영주에게 봉토를 받는 대신 조언과 군사적 도움을 주는 것을 의무로 한다면 르네상스 궁정인의 경우, 그가 줄 수 있는 군사적 도움은 앞서 본 것처럼 극 히 미미해지고 대신에 조언자의 기능, “군주의 무지와 오만”47)을 깨우치고 진실을 말 하는 자로서의 기능이 극대화된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궁정성의 꽃’이 ‘궁정성의 결실’을 유도해 내는 방식이다. 중세 기사의 덕목이 자기 개발, 자기 완성의 측면이 있었다면 카스틸리오네는 궁정인의 덕목들이 결코 단순히 궁정인 자신만을 위한 것 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다른 고귀한 목적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여자들을 즐겁게 해주 거나 사랑놀이에나 맞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나약하게 만들고 젊음을 손상시키며 방탕한 생활로 이끌 수 있다”48)고 말한 다. 여기서 말하는 고귀한 목적은 이러한 덕목을 수단으로 삼아 군주의 마음을 사로 잡고, 군주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함 없이 군주가 알아야 할 것을 늘 진실대로 말하는 것, 그리고 군주가 모든 나쁜 의도를 멀리하고 덕행을 행할 수 있도록 감히 군주의 말을 반박하기 위해 이러한 덕목을 정직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La fin donc du parfait Courtisan, donc on n'a pas parlé jusqu'ici, est à mon avis de gagner par le moyen des qualités qui lui ont attribuées par ces seigneurs, la bienveillance et le coeur du Prince au service duquel il se trouve au point qu'il puisse lui dire et lui dise toujours la vérité sur toutes chose qu'il convient à ce dernier de savoir, sans crainte ou danger de lui déplaire; et quand il sait que l'esprit de celui-ci est enclin à faire ce qui ne convient pas, qu'il ait la hardiesse de le contredire, et de se servir d'honnête manière de la faveur qu'il a acquise grâce à ses qualités pour le détourner de toute intention mauvaise et le conduire sur le chemin de la vertu.49)

중세 기사의 궁정적인 자질들이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무엇보다도 이상 적인 연인의 자질로 소개된다면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적 가치는 이렇게 해서 사교적 인 역할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 차원을 갖게 된다. 이렇게 우아함을 획득하려는 궁 정인의 노력은 보다 야심찬 목표를 동반하거니와 군주의 계도를 통해 민중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궁정인의 역할은 군주에게 완벽성으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것으 로 그의 교육을 받은 군주는 거의 인간의 한계를 넘어 오히려 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47) Ibid., p. 370. 48) Ibid. p. 327. 49) Ibid., p.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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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리기에 합당할 정도의 영웅적인 덕목을 획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même s'il n'est pas d'une espèce plus qu'humaine, comme vous avez dit à propos du roi des abeilles, s'il est aidé par les leçons , par l'éducation et par l'art du Courtisan que ces seigneurs ont formés si prudent et si bon, il sera très juste, très continent, très tempéré, très fort et très sage, rempli de libéralité, de magnificence, de dévotion et de clémence ; en somme, il sera très glorieux et très aimé des hommes et de Dieu, par la grâce de qui il acquerra cette vertu héroIque qui le fera dépasser les limites de l'humanité, au point qu'on pourra l'appeler plutôt un demi-dieu qu'un homme mortel50):

󰡔궁정인󰡕에서 궁극적으로 카스틸리오네가 도달하는 결론은 바로 ‘인간보다는 반신 (半神)에 가까운 군주’, 이 대목이다. 완벽하고 우아한 궁정인을 위한 교육론의 모습 을 가지고 있었던 󰡔궁정인󰡕은 이렇게 책 말미에 가서 군주론적 성격을 드러낸다. 군 주를 교육시킬 수 있는 자는 군주보다 더 훌륭하고 더 위엄이 있어야 하거니와 군주 보다 젊은 나이에 그런 모든 것을 습득하기는 불가능하며 군주보다 나이가 더 많은 경우에는 춤과 노래, 오락, 사랑 등 카스틸리오네의 책 전반에 걸쳐 언급된 그 모든 사교적 덕목과 재능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역설이 발생한다.51) 이는 우르비노 궁정에 모여 나흘에 걸친 대화를 통해 이들이 구축했던 궁정인 모델을 무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군주의 호의를 얻기 위해 필요한 우아함을 획득하기 위한 모든 노력은 사교적 덕목들만으로는 결국 군주를 거의 신적인 존재로 만들어 줄 이상적인 ‘훈육자’의 기 능을 충족시켜줄 수 없다는 사실의 확인으로 끝나버린다. 며칠 밤을 새워 형상화한, 너무나 완벽해서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궁정인의 상은 거의 신적인 군주를 위 해, 거의 신적인 군주에 의해 그 존재를 보장받는 일군의 궁정인들이 벌인 덧없는 유희였을 뿐인 것이다.

3. 결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비롯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전 유럽을 풍미했던 ‘궁정인’이라는 모델은 그것이 계승한 중세의 기사도 정신과는 상당 부분 거리를 두고 있다. 그 두 모델의 차이는 문예와 무예에 부여하는 비중, 사회적 신분 에 걸맞는 궁정적 덕목, 그것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 목표, 나아가 이상적인 궁정인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분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왕이 ‘귀족 중 제1인자 primus

inter pares’에 불과했던 중세 봉건사회에서 이상화되었던 모델이 점차 모든 권력이 50) Ibid., p. 347. 51) Ibid., p.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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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에게 집중되어나가는 과정에서 변용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앙리2세 가 1578년에 창설한 성령기사단의 상징물이 군주의 상징인 푸른색과 백합문양이었 다는 사실은 봉건기사 문화의 군주제적 사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거니와 왕들은 상 층귀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새로운 기사단을 창설하면서 기사도적 가치에 집착하는 구 귀족의 모든 상징적 힘이 자신들을 행하도록 하고자 했다. 독립성이 강한 봉건귀족을 왕에게 종속되고 봉사하는 궁정귀족으로 만들어가기 위 한 귀족문화의 재구성 작업에서 󰡔궁정인󰡕은 매우 적합한 책이었다.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이 신흥 궁정귀족층이 형성되어 나가던 프랑스에서 그리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프랑수아 1세가 이 책을 늘 자신의 머리맡에 두도록 했다면 이는 단순히 이탈 리아 르네상스의 화려한 궁정생활코드에 대한 프랑스 왕과 신흥귀족의 모방심리 때 문만은 아니며 귀족들을 왕에게 철저히 복종시키고자 했던 왕의 의도에 부합했기 때 문이기도 한 것이다. 프랑수아1세는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프랑스에 와서 지은 성의 곳곳에 왕을 거의 신격화하는 모티프를 조각해놓았듯이,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 또한 귀족으로 하여금 군주제적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효과를 발휘하기를 기대 하지 않았을까?

참고문헌 1. 텍스트 B. Castiglione, (traduit. et présenté par A. Pons), Le Livre du Courtisan, Paris, Flammarion 1991. R. Lulle, (traduit et présenté par P. Gifreu), Livre de l'Ordre de

chevalerie Paris, La Différence,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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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XII, Paris, PUF, 1997. F. Collard, Pouvoirs et culture politique dans la France médiévale

(Ve-XVe siècles), Paris, Hachette, 1999. N. Elias, La Société de Cour Paris, Flammarion, 1985. J. Flori, L'Idéologie du Glaive ; préhistoire de la chevalerie; Genè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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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oz 1983. J. Flori, L'Essor de la chevalerie XIe-XIIe siècles, Genève, Droz 1986. J. Flori, Chevaliers et chevalerie au Moyen Age, Paris, Hachette 1998. J. Flori, La Chevalerie, Paris, Gisserot, 1998. J-L. Fournel, "Ambiguïtés courtisanes et savoir-vivre politiques : Notes et hypothèses sur le lexique du livre IV du Livre du Courtisan" dans De la Politesse à la politique, Caen, Presses universitaire de Caen, 2001, pp. 51-66. J. Guidi, "Les différentes rédactions du Livre du Courtisan" dans De la

Politesse à la politique; Caen, Presses universitaire de Caen, 2001, pp. 19-30. J. Meyer, La Noblesse française à l'époque moderne(XVIe-XVIIIe siècles), Paris, PUF, 1991(Que sais-je). A. Montandon, Politesse et Savoir-vivre, Paris, Anthropos, 1997. R. Muchembled, La Société policée, Paris, Seuil,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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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ésumé>

La Naissance et l'évolution de l'esprit chevaleresque au Moyen Age et à la Renaissance

KIM Jeong-Hee

Notre article consiste à étudier l'évolution du système de valeurs françaises et son rapport avec le changement des données politiques et sociales. Nous nous sommes intéressées ici notamment au transfert des valeurs médiévales à la Renaissance. Les valeurs qui sont chères aux hommes médiévaux étant représentées sous forme de l'esprit chevaleresque, nous avons essayé dans un premier temps de définir les éléments essentiels qui le constituent à l'aide du Livre de l'ordre de chevalerie de Raymond Lulle, texte appartenant à la littérature morale du XIIIe siècle. Ce sont des valeurs militaire; courtoise; chrétienne et une sorte de égalitarisme au sein de l'hiérarchie féodale. Ensuite nous avons e procédé à la comparaison de ces valeurs à ses variantes du XVI siècle :

à savoir le courtisan: nouveau modèle de comportement proposée par le

Courtisan de Baldassar Castiglione, texte qui a été très en vogue au temps de François 1er. Ce travail comparatif nous a permis de constater que ces valeurs ont suivi des transformations qui reflètent le nouveau rapport de force entre le roi et la noblesse, allant dans le sens de renforcer la subordination de la noblesse au roi. La valeur militaire par exemple, qui constituait l'essence de l'esprit chevaleresque et la fierté des nobles d'épée est maintenue, mais quelque peu dévalorisée au profit des lettres, armes des nouveaux élites montants sur lesquels s'appuie François 1er pour renforcer son pouvoir. Et Il en va de même des valeurs courtoises. Ils sont maintenues mais la répartition change. Les vertus; conseillées communément à tous les grades des chevaliers au Moyen Age sont désormais réparties en deux catégories qui excluent l'un l'autre : à savoir le roi et la noblesse de cour. Le courtisan qui semble se situer sur le prolongement du courtois médiéval s'en diverge ainsi sur tous les plans et tous ces changements se tirent dans la direction de mettre en exergue et idéaliser un roi tout puissant; un roi qui n'est plus féodal; mais roi de c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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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어(mots-clés) : 프랑스적 가치체계(système de valeurs françaises), 기사 (chevalier), 기사도 정신(l'esprit chevaleresque), 궁정인 (Courtisan), 궁정귀족(noblesse de Cour) 논문투고일 2004년 11월 30일 2005년 1월 10일 심 사 일 2005년 1월 13일 심사완료일 2005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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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도 정신의 형성과 변용 : 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 - 김 정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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