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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1. 성빈교회 연혁 2. 성빈교회의 20년 3. 성빈교회 각 기관의 20년

55쪽 (주보디자인편집) 56쪽 백지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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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빈교회 연혁 <1980> 연간 표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1980년 1월 6일 오후3시, 대구시 동구 신암4동 333-1번지에 위치한 건물 2층 약25평을 전 세계약금 100만원을 지불하고 김제민 전도사를 교역자로 모시고 교인 10명이 참석한 가 운데 창립예배를 드림 1980년 1월 13일, 각부예배 시작(주일예배 11시, 찬양예배 주일오후 7시, 수요기도회 오후 7 시, 청년성경공부 토요일 오후 7시) 1980년 1월 18일-19일, 이현공단 야간학교 교사수련회 본교회당에서 모임 1980년 1월 20일 주일 오전 9시, 학생 7명이 예배드림으로 아동부 시작 1980년 1월 20일 주일 오후 2시, 학생 1명이 예배드림으로 중고등부 시작 1980년 1월 27일, 제직 임명(협동장로: 김원석, 권사: 홍위숙, 서리집사: 조원제, 위한규, 이승 렬, 손순희, 김신애), 임시교회운영위원회 모임 1980년 1월 28일-29일, 대구지역 KSCF(한국기독학생연맹) 수련회가 본교회당에서 열림 1980년 1월 31일, 2층 전세금 지불을 위해 500만원 빚을 지다. 1980년 3월 16일, 오르간과 흑판 들어옴 1980년 4월 6일, 첫 부활절, 첫 성례전(입교: 유순화, 김경애, 유아세례: 위인권, 조은래, 조안 래) 1980년 4월 14일-18일, 첫 대심방 1980년 4월 20일, 헌금함 마련 1980년 5월 11일, 어버이주일 첫 야외예배 1980년 5월 30일, 구역예배 시작(금요일 저녁 8시) 1980년 6월 7일, 학생회 조직(회장: 김의태, 총무: 김명일, 서기: 송준호) 1980년 6월 8일, 어린이 주일학교 오후예배 시작(오후 4:30) 1980년 6월 29일, 교회운영위원회에서 매월 첫 주 가난한 이웃돕기주일, 둘째 주 총동원주일, 셋째 주 특별헌금주일로 결정 1980년 7월 6일, 새벽기도 시작(새벽 5시) 1980년 7월 20일, 첫 맥추감사절 1980년 7월 23일-26일, 첫 여름성경학교(교사 8명, 어린이 150명) 1980년 7월 28일-30일, 첫 학생회·청년회 하기수련회 1980년 8월 10일전, 교회부채금 944,000원 청산, 1980년 8월 31일 오후2시, 성빈도서관 개관예배 1980년 9월 6일전, 교회부채금 50만원 청산 1980년 10월 22일, 첫 전교인야유회


58 대구성빈교회 20년사 1980년 11월 2일, 성례식(집례: 구의령 목사) 1980년 11월 16일, 첫 추수감사예배 1980년 12월 7일, 피아노 마련(조원제 집사 가정 봉헌) 1980년 12월 24일, 첫 성탄발표회 1980년 12월 25일, 첫 성탄축하예배(새벽송, 구제행사)

<1981> 연간 전도목표(성인 120명, 학생 70명, 어린이 100명)와 예산 확정(1,300만원) 81 년 선교목표: 성인교인 120명, 모든 모임 다 참석, 신·구약성경 한번 읽기, 1인 1명 전도 1981년 1월 1일-2일, 첫 금식기도회(호렙산기도원) 1981년 1월 2일, 교회 창립 1주년 기념예배 1981년 1월 4일, 정재기 교육전도사 부임(1982년 2월 14일 사임). 1981년 1월 19일-24일, 학생회 주관 성경공부 1981년 1월 18일부터 대학생선교합창단 성서공부 본교회당에서 모임(매주 화요일) 1981년 1월 26일-28일, 학생회수련회(청천다락원) 1981년 2월 1일, 교회운영위원회에서 예장 경북노회에 가입하기로 결의 1981년 2월 25일, 동시찰에서 본 교회 방문(김영수 목사 외) 1981년 2월 29일, 제직임명식 1981년 3월 2일-3일, 기도회(호렙산기도원) 1981년 3월 7일, 청년회 토요성경공부 시작 1981년 3월 8일, 성미 시작 1981년 3월,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에 가입. 1981년 3월 30일-31일, 노회주최 전도수련회 참여(삼덕교회) 1981년 4월 6일부터, 첫 대심방 1981년 4월 12일, 성례전(집례: 구의령 목사, 세례: 김명일, 곽태희, 윤현실, 학습: 유정숙, 김 선희, 윤화자, 김경구, 신상우, 김제비) 1981년 4월 19일, 부활절 촛불예배 1981년 5월 30일, 대출한 은행 부채 모두 청산. 1981년 6월 6일, 동구친선 학생회 체육대회(3위) 1981년 6월 26일, 금요철야기도회(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시작 1981년 7월 27일-30일, 학생회수련회(칠곡 다부동 청년수양관) 1981년 8월 10일-13일, 어린이 여름성경학교 1981년 8월 17일-18일, 학생회 금식기도회(갈멜산기도원) 1981년 8월 30일, 전화 설치를 위한 헌금 1981년 10월 1일, 교회전화 개통(번호 94-7450) 1981년 10월 12일-15일, 대심방 1981년 11월 29일, 성례전(집례: 구의령 목사, 유아세례: 오영섭, 세례: 김경구, 이상재, 유정 숙, 김선희, 윤화자, 이승옥, 김제비, 학습: 황대홍, 박상욱, 이동순, 임정희 김청랑, 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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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1981년 12월 20일, 성경읽기 우수자 시상 1981년 12월 24일, 성탄축하의 밤 행사헌금 구제사업(열 가정 구제, 배영석 형제) 1981년 12월 27일-30일, 부흥선교대회 개최(강사: 고영근 목사).

<1982> 연간 표어: 성전 건축을 준비하자 1. 큰 믿음을 가지자 2. 뜨겁게 기도하자 3. 많은 물질을 드리자 4. 열심히 선교하자 1982년 1월 10일, 건축준비위원회 모임(위원장: 김원석 장로, 총무 오상연 집사, 서기 이승렬 집사, 회계 위한규 집사) 1982년 1월 10일, 청년회 조직 1982년 1월 29일-31일, 유년부 겨울성경학교 1982년 1월 29일, 전교인 건축준비기도회 1982년 1월 31일, 제1차 건축헌금 작정(당일 합계 18,000,000원) 1982년 2월 7일, 임직식(김원석 장로, 홍위숙 권사 취임) 1982년 2월 8일, 반석회 주최 전교인 친목회 1982년 2월 14일, 정재기 교육전도사 사임(군입대) 1982년 2월 15일, 성빈유아원 개원 1982년 2월 21일, 이태호 교육전도사 부임(1984년 1월 29일 사임). 1982년 3월 9일-11일, 경북노회 첫 총대 참석(김원석 장로) 1982년 4월 25일, 갈릴리선교회 조직 1982년 5월 16일, 성례전(집례: 오춘근 목사, 세례: 황대홍) 1982년 6월 6일, 학생회 연합체육대회(우승) 1982년 7월 15일-17일, 청년회 수양회 1982년 7월 29일-31일, 학생회 수련회(청천다락원) 1982년 8월 18일-21일, 어린이 여름성경학교 1982년 11월 21일, 주일대예배 출석 첫 100명 돌파 1982년 12월 26일, 연말시상(성경읽기, 주보 모으기, 전도, 모임 출석, 교회봉사)

<1983> 연간 목표 1. 성전 짓는 교회, 2. 전도하는 교회, 3. 교육하는 교회, 4. 봉사하는 교 회 1983년 1월 10일-14일, 부흥성회 1983년 2월 20일, 성례전(오춘근 목사 집례, 유아세례: 김은한, 위장미, 이주영, 학습: 이진화, 이윤형, 성산도, 강경애, 허삼연, 장옥순, 백복수, 이춘화, 백춘자, 성진남, 세례: 김달연) 1983년 2월 21일-24일, 청년회주최 겨울 성경완독대회(청천다락원)


60 대구성빈교회 20년사 1983년 2월 28일, 반석회 주최 전교인친목회 1983년 3월 13일, 성전부지(대구시 북구 복현동 376-8번지) 140평 계약, 동노회보조 100만 원 결정, 동노회 즉석헌금 128,380원, 김태한 총장 건축헌금 50만원 작정 1983년 3월 25일, 대지구입 중도금 1천만원 지불 1983년 4월 20일, 성전부지 대금 완불. 건축설계 의뢰 1983년 6월 6일, 학생회 연합체육대회(우승) 1983년 6월 21일 10시, 성전건축 기공예배 1983년 7월 27일-30일, 학생회 수련회(군위 내리교회) 1983년 9월 1일, 건축위원장(고 김원석 장로)의 갑작스런 소천으로 골조공사만 끝난 채 교회 건축이 중단되고 부채는 5천만원에 달하게 됨 1983년 9월 4일, 골조공사만 된 예배당에서 입당예배 드림 1983년 12월, 제2차 건축헌금(1,400만원) 작정

<1984>표어: 선교의 불길을 일으키자(막16:15; 선교, 교육, 봉사) 1884년 1월 22일, 통일찬송가 사용 1984년 1월 23일-27일, 부흥회(강사: 부산목양교회 국동출 목사) 1984년 1월 28일-3월 10일, 40일 특별기도회 1984년 1월 29일, 이태호 교육전도사 사임(신대원 진학) 1984년 2월 19일, 성례식(집례 엄광섭 목사, 세례: 김도연, 채일수, 박창욱, 이은주, 학습: 변 해문, 성명숙, 조병욱, 권택상, 박민규, 권정오, 최춘옥, 김정미, 이미영, 최영귀, 정정화, 이주영, 이은미, 홍미정, 조숙희, 김미정, 박영미) 1984년 3월 3일 11시, 성빈선교유아원 입학식 1984년 3월 18일, 제3차 건축헌금(2차 미참여자 350만원) 작정 1984년 5월 8일, 야외예배(밀양 유천) 1984년 7월 25일-28일, 학생회수련회(청천다락원) 1984년 8월 7일, 성가대, 교사 청년회 친목회(칠포해수욕장) 1984년 8월 12일-14일, 선교100주년 대구선교대회(서현교회당) 1984년 8월 13일-15일, 선교100주년 청년선교대회(서울 100주년기념관) 1984년 8월 15일-19일, 선교100주년 선교대회(여의도광장) 1984년 8월 23일-26일, 여름성경학교 1984년 9월 22일전, 성전 지하공사 완공 1984년 10월 28일, 제1회 가족찬송가 경연대회(남선교회 주최) 1984년 11월 18일, 추수감사절, 저녁예배 시 유아원 추수감사절 발표회 1984년 12월 2일, 성례식(집례: 구정학 목사, 세례: 변해문, 성명숙, 조병욱, 김정미, 권택상, 권정오, 학습: 장태영, 최병철, 권경숙, 이강희) 1984년 12월 9일, 제1회 전교인 성경퀴즈대회(학생회 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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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연간표어: 그리스도를 본받자(교육, 봉사, 선교) 1985년 1월 6일, 박만은 전도사 부임(-1987년 10월 4일 사임) 1985년 2월 25일-27일, 학생회 수련회 1985년 4월 21일, 성례식(집례: 김영배 목사, 세례: 박종계) 1985년 5월 19일-23일, 부흥회(강사: 서울대길교회 박용묵 목사) 1985년 5월 22일, 제4차 건축헌금(3,000만원) 작정 1985년 5월 27일(월), 야유회(금강동) 1985년 6월 30일, 제2회 성경퀴즈대회(청년부 주최) 1985년 7월 24일-27일, 학생회·청년회 수련회(현풍 가천교회) 1985년 8월 5일-8일, 아동부 여름성경학교 1985년 10월 20일, 성례식(집례: 김영배 목사, 유아세례: 조형래, 세례: 고오덕, 이주영, 정정 화, 홍미정, 박현철, 변춘용, 이강희, 조병학, 한신자, 한명숙, 권경숙, 김명옥, 최귀정, 손 장호, 학습: 이재성, 전희룡, 이유정, 박은경, 신용현, 김대중, 채동영, 전영미, 박현주, 정 정순, 조영관, 이은주, 진성옥, 정현숙) 1985년 10월 27일, 제2회 가족창경연대회(남선교회 주최) 1985년 12월, 대지 담보 부채를 청산하고 등기 이전하다. 소속교인 350명으로 성장하다.

<1986년> 표어: 든든히 서가는 교회(행9:31) 1986년 5월 4일, 제3회 가족창경연대회(남선교회 주최) 1986년 5월 11일, 성례식(집례: 류관선 목사, 유아세례: 박진성, 세례: 이재성, 이은미, 최춘 옥, 조영관, 이규성, 김광자, 정정순, 진성옥, 학습: 윤현신, 김상철, 박석홍, 권혜정, 박현 숙, 김명숙, 신걸호, 권무자, 안귀향) 1986년 6월 8일, 제3회 성경퀴즈대회(청년회 주최) 1986년 7월 10일-12일, 청년회 수련회(상주 가장교회) 1986년 7월 22일-25일, 학생회 수련회(청송 신성교회) 1986년 8월 18일-21일,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1986년 10월 1일, 제1회 성빈 대운동회(경진초등학교) 1986년 10월 12일, 성경대학 제1기(크로스웨이 성경연구원) 개강 1986년 10월, 지하 및 지상 1층 성전 준공 1986년 12월 31일(수), 성례식(집례: 류관선 목사, 세례: 김성숙, 이춘희, 신걸호, 권무자 외)

<1987년> 표어: 모이자 배우자 선교하자 -성전건축 완공의 해1987년 1월 21일-24일, 학생회 동계수련회 1987년 2월 18일-20일, 청년회 수련회 1987년 3월 30일-4월 3일, 부흥회(강사: 여수 애양원교회 박병돈 목사) 1987년 4월 2일, 제5차 건축헌금(4,000만원) 작정 1987년 4월 19일-6월 7일, 성령강림대망 50일 새벽기도회


62 대구성빈교회 20년사 1987년 5월 10일, 제4회 가족성가경연대회(남선교회 주최) 1987년 7월 21일-24일, 중고등부 하계수련회(풍각제이교회) 1987년 8월 11일-14일, 청년회 하계수련회(문경탄광촌) 1987년 8월 17일-20일, 어린이 여름성경학교 1987년 9월 6일, 2층 본당 완공하여 입당예배 드림 1987년 9월 14일-12월 2일, 성전 입당 감사 40일 연속철야기도회 제1차, 제2차 연속해서 가 짐 1987년 10월 1일, 제2회 성빈대운동회(경진초등학교) 1987년 10월 4일, 박만은 전도사 사임(교회 개척) 1987년 10월 18일, 성례식(집례: 류관선 목사, 학습: 박영숙 외) 1987년 11월 13일-14일, 대구동노회 청년연합회 「청년예수제」 주최(본교회당) 1987년 11월 15일, 크로스웨이 성경연구반 제1기 졸업

<1988년> 표어: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다함께 전도하는 해 1988년 1월 3일, 이종권 교육전도사 부임 1988년 1월 27일-30일, 청년회 동계수련회 1988년 2월 7일, 이장섭 교육전도사 부임(-1990년 11월 사임) 1988년 2월 22일-4월 1일, 수난절 준비 40일 특별새벽기도회 1988년 3월 10일, 김제민 전도사 목사안수 받고 담임목사로 부임 1988년 4월 10일-5월 22일, 성령강림대망 40일 연속철야기도회 1988년 5월 15일, 사택헌금 작정 1988년 5월 22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강효석, 이한솔, 조진실, 학습: 이진 욱, 이정훈, 박현화, 나은정, 김미경, 김지정, 김익태, 허승구, 김경순, 백금옥, 세례: 김일 중, 진호진, 황민기, 채영진, 김대중, 채동영, 신용현, 안영필, 박정희, 김선영, 이연정, 진 선미, 이정화, 조맹순, 박순옥, 김명자, 안귀향, 강경애) 1988년 5월 29일, 제5회 가족성가경연대회 1988년 7월 20일-23일, 유치부·유년부 여름성경학교 1988년 7월 25일-27일, 소년부 여름성경학교(동곡) 1988년 7월 27일-30일, 중고등부 여름수련회(경주 감포초등학교) 1988년 8월 9일-11일, 청년부 여름수련회(청송) 1988년 10월 3일, 제3회 성빈대운동회 1988년 10월 9일, 주일낮예배 출석 200명 돌파 1988년 10월 23일-26일, 부흥성회(강사: 서울세광교회 김윤배 목사) 1988년 10월 26일, 6차성전봉헌헌금 작정 1988년 12월 27일, 사택 구입 1988년 12월 4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김요셉, 세례: 김경순, 권영아,백금옥, 허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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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 12일-31일, 새해준비 연속철야기도회

<1989년> 표어: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1989년 1월 1일-31일, 특별연속 철야기도회 1989년 1월, 성빈유치원 부설 은별탁아원 개원 1989년 2월 5일, 곽금배 전도사 부임(-1990년 12월 16일 사임) 1989년 2월 16일-18일, 청년회 동계수련회 1989년 3월 19일, 제1회 성경암송대회(중등부 주최) 1989년 3월 26일, 경로잔치(남선교회 주최) 1989년 3월 26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세례: 장태정, 신용석, 이유락, 최은영, 최영귀) 1989년 4월 9일, 초급주일성경공부반 개설 1989년 4월 12일, 제1회 구역창경연대회(2여전도회 주최) 1989년 5월 14일, 제6회 가족창경연대회(남선교회 주최) 1989년 5월 21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장예지, 진경미 외) 1989년 5월 28일, 주일낮예배 중예배실 비디오 중계 시작 1989년 5월 28일, 임직식(조원제, 위한규, 이승렬 장로장립, 오상연, 정재용, 서정욱, 김상순, 김영대, 김기순 집사안수, 김문자, 손순희, 한늠이, 최순탄 권사 취임) 1989년 6월 4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박상���, 이효석, 조창대) 1989년 6월 4일, 임직자 건축헌금 작정 1989년 7월 24일-26일, 어린이 여름성경학교(성주군 수륜면 수성교회) 1989년 7월 26일-29일, 중고등부 수련회(성주군 수륜면 수성교회) 1989년 9월 10일, 차량구입헌금 1989년 10월 1일, 제4회 성경퀴즈대회(제2여전도회 주최) 1989년 10월 3일, 제4회 전교인 체육대회 1989년 11월 5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입교: 이상원, 세례: 장길식, 학습: 곽은선 외) 1989년 12월 3일-7일, 부흥사경회(강사: 김항안 목사) 1989년 12월 8일-1990년 1월 30일, 특별새벽기도회

<1990년> 표어: 너희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12:2) 1990년 교회창립10주년 중점사업 농촌교회지원확대 도시빈민선교확대 해외선교사 지원 교회일치운동 협력 확대 사회선교 확대 방송선교 지원 확대 교회 장기발전계획위원회 구성


64 대구성빈교회 20년사 1990년 1월 1일-1월 4일, 교회창립 10주년 특별집회 1990년 1월 7일, 창립 10주년 기념예배(11시)와 성전봉헌 및 김제민 목사 위임식(오후 3시) 1990년 1월, 심방용 승합차(그레이스) 구입 1990년 1월 21부터, 성경300독 읽기대회 1990년 1월 29-31일, 중등부 동계수련회 1990년 1월 29-31일, 고등부 동계수련회(청천다락원) 1990년 3월 25일, 경로잔치(남선교회 주최) 1990년 3월 25일, 제2회 구역창경연대회(2여전도회 주최) 1990년 4월 15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세례: 김동필, 강태상, 강강희, 김정숙A, 민미연, 권진희, 박현화, 성진옥, 최은정, 류근희) 1990년 5월 6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박민규, 장병욱, 곽하민, 정의엽, 강수연, 최지민, 이상민, 서영빈 외) 1990년 5월 13일, 제7회 가족창경연대회(남선교회 주최) 1990년 5월 26일부터 4주간, 예배부 주최 기초성가강좌 1990년 7월 3일-8월 2일, 김제민 목사 성지연수교육 1990년 7월 23일-25일, 유치부, 아동부 여름성경학교(4,5,6학년은 금릉군 남면 운남교회) 1990년 7월 25일-28일, 중·고등부 여름수련회(금릉군 남면 운남교회) 1990년 8월 2일-4일, 청년부 수련회(영해·칠포간 행군, 구계교회와 칠포교회에서 각 1박) 1990년 8월31일-9월 30일, 특별새벽기도회 1990년 9월 30일, 목회용 승용차 봉헌(이옥식-김순임) 1990년 10월 14일, 제5회 성경퀴즈대회(2여전도회 주최) 1990년 10월 7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입교: 이형우, 세례: 전강수, 윤연옥, 이현기, 학 습: 박인섭, 신성화 외) 1990년 11월, 이장섭 교육전도사 사임 1990년 12월 3일-7일, 부흥사경회(강사: 장차남 목사) 1990년 12월 13일, 대구동노회 청년연합회 주관 청년예수제(본교회당) 1990년 12월 16일, 곽금배 전도사 사임(청송 도동교회로 이임)

<1991> 표어: 복의 근원이 되는 교회(창12:2) 1991년 1월 6일, 김덕수 전도사 부임(1992년 3월 29일 사임) 1991년 1월 6일, 이순기 교육전도사 부임(1992년 11월 29일 사임) 1991년 1월 12일전, 전자오르간 구입 1991년 1월, 성빈유치원 폐원 1991년 1월 30일-31일, 고등부 동계수련회(청천다락원) 1991년 2월 25일-26일, 중등부 동계수련회(주암산기도원) 1991년 3월 31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입교: 박연성, 학습: 최혜숙, 김광남, 세례: 김정 혁, 배진웅, 도대희, 이태우, 김정순, 김은영, 김지영, 김학정, 문연향, 이해진, 정성희,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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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숙) 1991년 3월 31일, 제3회 구역창경연대회(2여전도회 주최) 1991년 4월 7일, 성전부지확장헌금 작정(263,000,000원) 1991년 5월 19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이신승, 박민희, 이재경, 김은솜 외) 1991년 5월 19일, 제8회 가족창경연대회(남선교회 주최) 1991년 5월 24일-26일, 청년회 카리스 마당(14일: 김춘기 목사 초청 강연, 25일: 찬양과 경 배, 성극, 26일: 헌신예배 1991년 6월 30일, 성찬식 1991년 7월22일-24일, 유치부, 유년부 여름성경학교 1991년 7월 22일-24일, 소년부 수련회(영천군 화산면 석천교회) 1991년 7월 25일-27일, 중고등부 수련회(영천군 화산면 화산교회) 1991년 7월 31일-8월 3일, 청년회 수련회(문경군 문경읍 당포교회) 1991년 8월 12일-16일, 영적 성장을 위한 산상수련회(고령군 수륜면 동일수련원 「영적 운동 대성회」 참석) 1991년 10월 6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입교: 김지혜, 세례: 김광남, 박인수, 박판수, 김 재옥, 김상옥, 김순분, 김지정, 배명수, 이경숙, 이정자B, 이필랑, 최혜숙, 최홍연, 학습: 임 보근, 이선옥, 조정옥) 1991년 11월 12일부터, 성빈성경대학 제2기 개강 1991년 12월 25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1991년 12월 29일, 이순기 교육전도사 사임

<1992년> 표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교회(사6:8) 1992년 2월 17일-18일, 대구동노회청년연합회 신앙사경회(본교회당) 1992년 1월 28일-30일, 중고등부 겨울수련회 1992년 2월 22일, 카르포스의 밤(중고등부 주최) 1992년 2월 24일-25일, 청년회 동계수련회(갈멜산기도원) 1992년 2월 29일, 성가대 세미나 1992년 3월 2일-3일, 교사수련회(강사: 신문덕 목사) 1992년 3월 22일, 찬미선교단 찬양집회 1992년 4월 5일, 김덕수 전도사 사임(포항 오천교회로 이임) 1992년 4월 12일, 교회 사찰로 한늠이 권사 부임 1992년 4월 19일, 학습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세례: 조재광, 김미경, 김점순, 조현경) 1992년 4월 19일, 이종권 교육전도사가 전임전도사로 부임(1994년 9월 25일 사임) 1992년 4월 26일, 경로잔치(2남선교회 주최) 1992년 5월 3일, 제4회 구역창경연대회(2여전도회 주최) 1992년 5월, 교회 옆 부지(복현동 376-7번지) 38평을 구입(8800만원)


66 대구성빈교회 20년사 1992년 5월 10일, 임종필 교육전도사 부임(1994년 8월 31일 사임) 1992년 5월 24일, 윤형택 교육전도사 부임(1994년 4월 30일 사임) 1992년 5월 26일, 가정생활세미나(2여전도회 주최, 강사: 조상국 교수) 1992년 6월 28일, 제9회 가족창경연대회(2남선교회 주최) 1992년 7월 23일-25일, 전교인 여름수련회(비슬산기도원, 260명 참가) 1992년 8월 17일-19일,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1992년 9월 1일-31일, 특별새벽기도회 1992년 10월 25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입교: 김지은, 학습: 한옥순 외, 세례: 김정호, 김해선, 권성남, 박숙경, 방은미, 백진주) 1992년 12월 25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진태랑, 김도완, 최현민, 윤혜민, 장서연, 황혜진, 이찬희)

<1993년> 1993년 1월 25일-30일, 성경통독사경회 1993년 2월 22일-24일, 중고등부 동계수련회(대구산기도원) 1993년 3월 6일, 성가대수련회(강사: 이철상 장로) 1993년 4월 4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학습: 김태현, 박태홍, 진재형, 류성진, 김선희, 세 례: 김창혁, 김형구, 장정은, 장선희, 장은지, 정봉화, 차옥순, 진재민, 문봉희, 한옥순, 강 순조, 이문숙, 문경준) 1993년 4월 11일, 임직식(장로: 김상순, 오상연, 정재용, 김기순, 안수집사: 방종호, 이옥식, 박기태, 류강선, 이정환, 박종계, 배영근, 정응해, 김유수열, 권사: 김옥례, 황분조, 김영수) 1993년 4월 27일, 김제민 담임목사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 연수 떠남 1993년 5월 9일, 이웃어른 초청예배 1993년 5월 9일, 제10회 가족창경연대회 1993년 5월 7일-9일, 청년회 카리스 마당(7일: 강연회, 8일: 불우이웃돕기 일일찻집, 9일: 헌 신예배) 1993년 7월 26일(월)-28일(수), 전교인 여름신앙수련회(군위군 의흥면 동부초등학교) 1993년 8월 16일-18일,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1993년 9월 12일-10월 27일(추석주간 제외), 40일특별새벽기도회(주제: 시도-성령-승리) 1993년 10월 10일, 성례식(집례: 박맹술 목사, 유아세례: 류리지, 학습: 성운경 외) 1993년 10월 23일(토), 가정생활캠프(남선교회 주최, 팔공산 대봉교회 수련원) 1993년 11월 21일, 제5회 구역창경연대회

<1994년> 1994년 1월 1일부터, 365일 연속금식기도회(전교인 하루씩 한 끼 금식, 기도제목: 성령의 역 사가 가정, 교회, 민족 위에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1994년 1월 23일(주일)부터 26일까지, 심령부흥사경회(강사: 대구동신교회 김창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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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2월 21일-26일, 제2차 성경통독사경회 1994년 2월 25일-26일, 중고등부 동계수련회(청천다락원) 1994년 3월 24일, 성찬식(집례: 박맹술 목사) 1994년 5월 1일, 윤형택 교육전도사 사임 1994년 5월 13일-15일, 청년회 카리스 마당(13일: 주제강연, 14일: 무의탁노인돕기 일일찻 집, 15일: 헌신예배) 1994년 6월 13일, 교육관 공사 시작하다. 1994년 6월 26일, 김충렬 목사 부목사로 부임(1995년 2월 16일 사임) 1994년 7월 21일-23일, 중고등부 여름수련회(영천군 신령면 화산교회) 1994년 7월 24일-26일, 유년·소년부 여름수련회(군위군 의흥면 동부국교) 1994년 8월 1일-3일, 청년부 수련회(안동 광덕교회 수련원) 1994년 8월 18일-20일,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1994년 9월 4일, 주일낮 예배를 1부(7시 30분), 2부(11시)로 나누어 드리기 시작 1994년 9월 4일, 교육관 완공(1층 유치부실, 2층 고등부실) 1994년 9월 10일, 중고등부 카르포스의 밤 1994년 9월 25일, 이종권 전도사 사임 1994년 9월 25일, 임종필 전도사 사임 1994년 10월 2일, 서영석 교육전도사 부임(1999년 12월 31일 사임). 1994년 10월 2일, 김명일 교육전도사 부임(1995년 1월 22일 사임). 1994년 10월 2일, 임은희 교육전도사 부임(1997년 4월 13일 사임) 1994년 11월 20일, 부활절, 성례식(집례: 김충렬 목사, 유아세례: 진태성, 김다열, 이지훈, 입 교: 장재항, 류세영, 박우경, 위인권, 김동준, 김대원, 학습: 김병연, 김영혜, 이정희, 김순 이, 방선영, 조정래, 김지은, 김석효, 정재렬, 이종수, 김현진, 배지은, 이은숙, 정지영, 문 경희, 세례: 황민섭, 류성진, 정승락, 박태홍, 정은희, 진재형) 1994년 11월 20일, 제6회 구역창경연대회

<1995년> 1995년 1월 22일, 김명일 교육전도사 사임 1995년 2월 16일, 김충렬 목사 사임(제주 서호교회로 이임) 1995년 2월 17일-18일, 제1청년회 수련회 1995년 2월 24일-25일, 제2청년회 수련회 1995년 2월 27일-28일, 중고등부 동계수련회 1995년 3월 13일, 도기봉 전도사 부임(1999년 12월 31일 사임) 1995년 4월 9일, 성례식(집례: 이용원 목사) 1995년 4월 23일, 전교인 성가경연대회(청년회 주최) 1995년 5월 14일, 경로잔치 1995년 5월 20일, 무의탁노인돕기 일일찻집(청년회 주최)


68 대구성빈교회 20년사 1995년 5월 21일, 전교인 헌혈행사 1995년 7월 1일, 김제민 담임목사 미국연수 마치고 귀국 1995년 7월 24일-26일, 유치부, 유년부 여름성경학교 1995년 7월 24일-26일, 소년부 여름수련회(청도 매전) 1995년 7월 24일-26일, 중고등부 여름수련회(영일군 기계면 봉좌산기도원) 1995년 8월 7일-9일, 청년회 여름수련회(청도군 금천면 수목원 캠프장) 1995년 8월 6일, 이재철 교육전도사 부임(1997년 사임) 1995년 9월 14일, 중고등부 카르포스의 밤 1995년 10월, 김제민 담임목사 목회학박사 학위(미국 캘리포니아 신학대학원) 취득 1995년 10월 22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권현탁, 정영승, 이은혜, 입교: 조은 래, 조안래, 세례: 김병련, 김석효, 이종수, 정재열, 홍경석, 김현진, 문경희, 배지은, 이은 숙, 정지영, 정영옥, 조현남, 정영란, 김순이, 학습 등 합계 38명) 1995년 11월 4일, 엘찬양단 가을음악회 1995년 11월 19일, 제7회 구역창경연대회 1995년 12월 31일, 손순희 권사은퇴식

<1996년> 표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교회 1996년 1월, 정미숙 교육전도사 부임(1997년 2월 23일 사임) 1996년 1월 15일-16일, 교사수련회 1996년 1월 31일-2월 1일, 고등부 동계수련회 1996년 2월 22일-24일, 청년회 동계수련회 1996년 2월 26일-27일, 중등부 동계수련회 1996년 3월 25일-4월 6일, 특별새벽기도회 1996년 4월 7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입교: 오영섭, 박현욱, 전진, 전세계, 류세미, 세 례: 김형민, 배성균, 박선욱, 박봉숙, 조수연, 정지혜, 이혜정, 류신지, 이명영, 한옥련, 류 헌주) 1996년 4월 21일, 기도대 조직 1996년 4월 30일, 전도대 조직 1996년 5월 5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김현모, 문예은, 방유림, 임예슬, 이슬기, 전하나) 1996년 5월 12일, 경로잔치 1996년 5월 18일-19일, 청년부 카리스마당(18일: 일일찻집, 19일 헌신예배) 1996년 7월 22일-24일, 유년부 여름성경학교 1996년 7월 22일-24일, 소년부 여름수련회(청도) 1996년 7월 22일-24일, 중고등부 여름수련회(영천군 자천면 정각분교) 1996년 7월 31일-8월 3일, 청년부 여름수련회(청옥산 임간수련원) 1996년 8월 19일-21일,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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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14일-15일, 중고등부 카르포스의 밤 1996년 10월 6일, 교회신축부지헌금 작정 1996년 11월 3일, 선교바자회(2여전도회 주최) 1996년 11월 17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세례: 김종승, 석종환, 민병권, 우미애, 이경수) 1996년 11월 17일, 제8회 구역창경연대회 1996년 11월 20일, 교회신축부지(복현동 315번지) 1,120평 매입 1996년 12월 25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김은철, 이용득, 하진욱, 권빛나, 김정인, 이기수, 이지은, 하효정)

<1997년> 표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교회 1997년 1월 30-31일, 고등부 동계수련회 1997년 2월 23일, 정미숙 교육전도사 사임(결혼) 1997년 2월 24일-25일, 중등부 동계수련회 1997년 3월 23일, 최명식 교육전도사 부임(1998년 사임) 1997년 3월 30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입교: 김헌정, 위장미, 황혜원, 김도훈, 세례: 박 원영, 강지윤, 박수현, 우정순, 손정아, 이소영, 이해지, 이수희, 이유리, 조수인, 황예지, 한정화, 신민정, 김효진, 황희영, 박원진, 손상덕, 은현수, 박상욱, 한욱재, 손승덕, 김성민, 김명신, 김순진, 김죽선, 홍경화, 김현조) 1997년 4월 13일, 임은희 교육전도사 사임(결혼) 1997년 4월 27일, 선교바자회 1997년 5월 4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금민수, 이초원, 김지오 외) 1997년 5월 11일, 경로잔치 1997년 5월 25일, 김재곤 교육전도사 부임 1997년 6월 15일, 제1회 전교인탁구대회(갈보리선교회 주최) 1997년 7월 19일-21일, 고등부 여름수련회(경산 복음수양관) 1997년 7월 20일-22일, 유년부 여름성경학교 1997년 7월 24일-26일, 중등부 여름수련회(성주 양정교회) 1997년 8월 4일-6일, 청년부 여름수련회(봉화 춘양 분천교회) 1997년 8월 18일-20일,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1997년 8월 18일-20일, 소년부 여름수련회(군위 화수교회) 1997년 8월 31일, 이재철 교육전도사 사임 1997년 10월 3일, 대구동노회 교회대항체육대회 준우승 1997년 10월 5일, 김건동 교육전도사 부임 1997년 10월 5일, 석근복 교육전도사 부임 1997년 10월 26일, 선교바자회 1997년 11월 2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세례: 권종창, 오원섭, 김지애, 박수향, 하영임, 입교: 이상흔, 조영민, 조영훈)


70 대구성빈교회 20년사 1997년 11월 16일, 제9회 구역창경연대회 1997년 12월 25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1998년> 표어: 모이는 교회 · 흩어지는 교회 1998년 1월 1일-2일, 성경통독사경회 1998년 1월 20일, 소년부 겨울성경학교 1998년 2월 13일-14일, 청년부 동계수련회(경산 안디옥교회) 1998년 2월 26일-27일, 중등부 동계수련회 1998년 2월 26일, 유년부 예절학교 1998년 3월 8일, 초청간증집회(강사: 김순권 교수) 1998년 4월 8일, 도기봉 전도사 목사 안수 받으면서 부목사로 부임 1998년 4월 12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세례: 금낙연, 오명화, 학습: 조민우, 입교: 김은 한, 김광은, 안성환, 이주영, 조형래 외) 1998년 4월 25일, 아동부 친구초청큰잔치 1998년 4월 26일, 선교바자회 1998년 5월 3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권현준, 전일성) 1998년 5월 10일, 경로잔치 1998년 5월 24일, 이웃돕기 사랑의 이어달리기(청년부 주최) 1998년 5월 31일, 제2회 전교인 탁구대회(갈보리선교회 주최) 1998년 7월 18일-19일, 고등부 여름수련회(건천 OK그린 연수원) 1998년 7월 23일-25일,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1998년 7월 20일-22일, 소년부 여름수련회(군위 화수교회) 1998년 7월 20일-22일, 중등부 여름수련회(주암산수양관) 1998년 7월 24일-26일, 유년부 여름성경학교 1998년 7월 26일, 초청간증집회(강사: 김영길 한동대 총장) 1998년 8월 5일-7일, 청년부 여름수련회(수태골 곽병원연수원) 1998년 10월 17일, 중고등부 카르포스의 밤 1998년 10월 25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1998년 10월 31일, 불우이웃돕기 바자회 1998년 11월 1일, 최명식 교육전도사 사임(청운교회로 이임) 1998년 11월 15일, 이웃노인초청잔치 1998년 11월 15일, 제10회 구역창경연대회 1998년 12월 20일, 신성재 교육전도사 부임 1998년 12월 25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1998년 12월 31일, 서영석 교육전도사 사임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1999년> 표어: 생명을 살리는 교회 1999년 1월 3일, 서영석 전도사 포항 성빈교회 개척예배 1999년 1월 10일, 박현철 교육전도사 부임 1999년 1월 10일, 정용하 교육전도사 부임 1999년 2월 5일-6일, 고등부 동계수련회 1999년 2월 19일-20일, 청년부 동계수련회(곽병원연수원) 1999년 2월 28일, 초청간증집회(강사: 탤런트 이영후 장로, 1남선교회 주최) 1999년 2월 24일, 유년부 겨울성경학교 1999년 2월 27일, 소년부 겨울성경학교 1999년 2월 26일-27일, 중등부 동계수련회(곽병원연수원) 1999년 4월 4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입교: 황혜경, 세례: 배대석, 한지훈, 황보준) 1999년 4월 5일-4월 11일, 특별새벽기도회 1999년 4월 12일-15일, 부흥성회(강사: 과천교회 김찬종 목사) 1999년 5월 2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안형진, 권은지 외) 1999년 5월 9일, 경로잔치 1999년 5월 30일, 불우이웃돕기 사랑의 이어달리기(청년부 주최) 1999년 6월 20일, 제3회 전교인탁구대회(갈보리선교회 주최) 1999년 7월 20일-22일, 유년부 여름성경학교 1999년 7월 22일-24일, 중등부 하계수련회(경주 의곡교회) 1999년 7월 22일-24일, 고등부 하계수련회(청천다락원) 1999년 7월 26일-28일,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1999년 8월 4일-6일, 소년부 하계수련회(계림수련원) 1999년 8월 9일-11일, 청년부 하계수련회(광주·전남지역 성지순례) 1999년 9월 6일-11일, 특별새벽기도회 1999년 10월 3일, 성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1999년 10월 10일, 성경퀴즈대회(제3남선교회 주최) 1999년 10월 23일, 선교바자회 1999년 10월 23일, 중고등부 카르포스의 밤 1999년 11월 21일, 제11회 구역창경연대회 1999년 12월 25일, 유아세례식(집례: 김제민 목사, 유아세례: 이연우 외) 1999년 12월 31일, 도기봉 목사 사임(필리핀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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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대구성빈교회 20년사

2. 성빈교회의 20년 (1) 여명기 달란트회와 성빈회 해방 이후 한국교회사의 얼룩진 역사인 1959년 한국 장로교의 양대 교단(통합, 합 동)으로 분열된 10여 년 후 계명대학 운영권을 둘러싼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측) 경 북노회의 분규가 한창이던 1970년대 초 그 소용돌이의 현장인 계명대학에서 신학과 교회에 관심 있는 소수의 학생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 이들이 <달란트회> 를 조직하여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바람직한 교회상을 꿈꾸던 중 1974년 유신독재 정 권 체재하의 민주화 투쟁과정이 간간이 전개되던 즈음 암울한 시대를 바라보고 좌시할 수 없어 기독 청년들로서 그 당시의 가두시위 방식이 아닌 매주 화요일에 있었던 교내 채플 시간 중 달란트회 주관으로 10월 23일 구국기도회를 가졌는데, 그것이 연유가 되 어 달란트회가 강제 해체되었다. 학교 당국으로선 문교부와 정보기관의 사주로 도리가 없었겠지만 그 당시 경북노회 분규의 계명대 측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해 온 달란트 회원들의 주된 의견들이 재단(학교)측에게는 가시 같은 존재일 수도 있었다. 당시 지도 교수였던 교목실장(이후 한국신학대학으로 옮김) 이장식 목사가 지어준 <성빈회>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달란트회는 순수한 신앙과 신학을 표방하며 개혁적 인 교회를 꿈꾸며 연구와 기도를 계속하며 학교 내에서 학교 밖으로 나와 대구 제일교 회에서 성경공부를 계속해 오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참 교회상을 구상하였다. 현 교회 가 소홀히 하고 있는 대사회적인 사회사업 센터 역할을 염두에 두고 성빈 양로원, 성 빈학교, 성빈학사(学舎), 성빈재활병원 등을 건립하기 위해서 회원 각자가 각기 처한 곳에서 십일조를 모아 적금하기로 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교회의 모범을 구현하기로 하 였다. 당시 회원들의 기금으로 신학공부를 해서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김제민 형제가 교역자로 봉사하기로 하고 1980년 1월 첫 주일을 교회 창립일로 정하고 예배 처소를 위해 1979년 6월 6일 김호희 형제 결혼식 날 건축헌금을 작정했다. 당시 회원들은 대부분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이었고, 일부 회원들은 졸업을 해서 교 사로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긴 했지만 큰 꿈을 실현시키기에는 상당한 어려온 형편이었 다. 그러나 매년 여름과 겨울에는 정기적으로 수련회를 열어 성경 연구를 통해 미래 교회를 위한 자질 함양에 정진해 왔으며, 기도용 회원 패넌트를 제작하여 탁상용으로 사용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서정욱 형제가 작사작곡한 성빈회가를 제창하기도 했 다.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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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빈회가 (1절) 젊을 때에 부름 받은 한 거룩한 가난의 무리 진리 사랑 높은 뜻을 생명 걸고 따르려 하네 (2절) 어두워진 이 세상서 우리 할 일 그 무엇이랴 십자가의 복음 위해 용맹하게 싸우려 하네 (후렴) 주 예수 우리 회장 그의 길 우리의 길 기도로 굳게 뭉친 성빈 동지회

1973년 달란트회로 시작된 이래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일부 회원들의 견해차로 교회 창립에 적극 참

성빈회가 <성빈의 노래>

여하지 못함으로 사기가 저하된 채 교회가 시작되었다. 1980년 1월 교회창립에 즈음한 설립 취지문에 그 당시의 미래를 향한 교회상이 표 현되어 있다. 성빈교회 설립 취지문 1. 우리는 생명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 거 하는 것을 최대의 사명으로 한다. 2. 우리는 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따라서 신 앙을 삶의 현장에서 구체화 하며 역사화 한 다. 3.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 할 신앙의 인물을 기르기 위해 전력을 다하며 그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 줄 수 있도록 힘쓴다. 4. 우리는 하나이 되라 하신 예수의 뜻을 따라 교파주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예수 그리 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과 자유로 운 교제를 가짐으로서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지향한다. 5. 우리는 가난한 민중과 함께 아픔을 나누 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다. 6. 우리는 진리를 거스리는 교권, 정권, 그 리고 어떠한 세력에도 과감히 싸울 것을 선언 한다. 7. 우리는 어느 시대에서나 교회와 사회 속 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세력 으로부터 출애굽을 감행한다. 8. 우리는 세상 속에서 어둠의 세력이 지어 성빈교회 설립 취지문 내는 모든 죄악을 향하여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며 사회정의를 외친다. 9.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느 누구나 평등한 백성임을 믿으며 어떠한 차별도 배격한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질 것을 확실히 믿는다. 1980. 1. 6


74 대구성빈교회 20년사

창립예배 성빈회 일부 회원들의 소극적인 참여가 있었으나, 남은 회원들을 중심으로 각고의 노력으로 대구시 동구 신암동 4구 333-1번지에 위치한 이층 약 25평에 사택용 방 2 칸을 포함해 예배당을 계약금 100만원을 지불하고 전세 600만원에 계약하고 1980년 1월 6일 오후 3시에 80명이 모여 창립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주로 성빈회원들의 가족 들, 친지들, 친구들이었고 성빈회의 고문이었던 구의령 선교사(William A. Grubb)가 ‘새로운 공동체’ 제하의 설교를 하였고 2년간 당회장으로서 성례전을 담당했다. 기도는 노의령 선교사, 축도는 계명대 교목실장 최성찬 목사가 맡았다. 특송으로 성빈회원들의 성빈회가 제창이 있었다. 조원제 선생이 경과보고를 할 때는 감격의 눈물을 흘려 참석 교우들의 눈시울을 또한 적셨다. 저녁 찬양예배는 7시에 10명이 모여 마 5:13-16을 본문으로 ‘세계 속에 선 성빈교회’ 제하의 담임 교역자인 김제민 전도사의 첫 말씀이 선포되었다. 첫 주보의 교회 소식란에는 “헌금은 모든 인간적인 사고를 배제하고 하나 님과의 관계만 고려하여 헌금함을 사용합니다”라고 안내되어 있었는데 그 관행이 오늘 날까지 지켜왔고 20년이 지난 지금에 도 몇몇 교회에서만 시도되고 있어서 당시로서는

개혁적인

모범이었다고

여겨진다. 성빈(聖貧)의 의미는 예수님의 산 상설교의 ‘마음이 가난한 자’이며 이 는 아무나 될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에 속한 것으로 교회가 국가 사회를 위하여 믿음으로 봉사하고 살 겠다는 사람의 마음이며 곧 예수님의 삶과 마음이 성빈이라고 이장식 목사 는 이름이 지어진 동기를 밝혔다

성빈교회 주보 제1권 제1호

초기 교인 구성 창립 멤버들의 인맥을 통해 피라미드식으로 성빈교회의 주춧돌이 된 교우들이 기억 난다. 김호희 선생(현 미국 나성성빈교회 목사)의 신학교 친구인 위한규 집사(현 YJ유통 대표)가 서울에서 대구로 와서 창립예배 전에 교회당 커튼을 설치해서 안온한 예배 분 위기를 창출했다. 그 이후 위 집사는 커튼, 방석 등을 수시로 교체할 때마다 도맡아 헌 물했으며 복현동 성전 건축 완공 때까지 초대 건축위원장이었던 고 김원석 장로에 이 어 건축위원장을 맡았다.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75

김상환 선생(현 캐나다에서 목회사역 중)은 대명동에서 노모를 모시고 예배에 참석 했으며 약혼자인 이순천 선생은 영주 동산여중 교사로 있으면서 십일조를 보내왔고, 두 처제(이승옥, 이동순)들도 고등부 예배에 출석시켰으며, 김경민 그리고 영주 동산교 회 김 장로님 자제들인 김신선, 김신애, 김의태 삼남매들도 출석했다. 당시 고등학생이 었던 김경민(현 대구YMCA 사회부장)은 성빈교회 최초의 고등부 학생이었다. 정재열 선생(현 영남신학대학 신대원 재학)은 당시 문경 동로중학교 교사로서 교회 창립 이후 동생 정재기(당시 영남 신학교 재학)를 참여시켰고, 이듬해부터 정재기 전 도사가 교육전도사로 봉사하게 되었다. 또한 종제인 정재용(심혜숙) 집사, 정재화(녹원 교회 사모), 정석주(포항여고 교사) 남매가 출석했다. 군복무 중이었던 서정렬 선생(현 대전신학대학 교수)의 동생 서순향은 동산병원 간 호사로 있으면서 동료, 후배들을 인도했고 그 중 석명자 양은 김상환 선생이 인도한 김상일 선생(당시 계명대 직원)과의 결혼으로 성빈교회 CC(Church Couples) 1호가 되 었다. 이승렬 집사는 포항 영일고 교사로 있으면서 매주 대구로 와서 첫해 주일학교에 봉 사했고, 이듬해 대구 동국고로 직장을 옮겨서 학급 학생들을 교회로 출석하게 하여 몇 몇은(박창욱, 박종식, 손장호 등) 학생회 임원직까지 맡았다. 성빈교회 배가운동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조원제(김신애) 집사는 모친 홍위숙 권사와 쌍둥이 두 딸(은래, 안래)과 함께 교회의 기초를 이루었다. 당시 선산 장천 오상고에서 영천 금호고로 옮겨 교사로 있으면서 동료 교사들에게 어떻게 감동시켰는지 성빈교회 의 사업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구제사업에 일익을 담당하여 백미 20Kg씩 매달 헌물한 무명의 교사들도 있었다. 또한 조 집사 친구 신태문 집사(동심교회)도 물심양면으로 참여했다. 또 잊을 수 없는 선배는 중앙교회 이태길 집사(현 미국 거주)인데 강대상 밑바닥(단상)을 나무로 목공 작업하며 집에서 쓰던 난로 등 집기들을 가지고 와서 큰 힘이 되었다. 최순홍 선생은 영일 장기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건축헌금을 보내왔고, 동생 최유 화 선생은 충남 보령, 아산 등지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십일조를 보내왔으며, 최신한 선 생(현 한남대 교수)은 군 복무 중에 있었다. 그 부모님인 신광교회 최칠석 장로(박남 순권사)로부터 그리고 신광교회 여전도회로부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박승호선생(현 서울여대 교수)은 서울대 대학원 재학 중에 김필연 집사와 그녀의 딸 이문옥(현 서울가톨릭대 교수), 이문숙 자매들을 통해서 헌금을 보내왔고 박승호 선생 은 첫해 오르간(리드)을 기증하기도 했다. 초창기 교인들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담임 교역자인 김제민 전도사의 가족 들이었다. 고 김원석 장로와 손순희 집사 그리고 김전도사의 동생 김경애 선생이 멀리 군위 우보에서 매주 예배에 참석했다. 대전의 누님 가족과 동생인 부산 온천제일교회 김성애 사모, 봉화에서 교사로 있었던 김현애 선생으로부터도 헌금이 왔다. 김 전도사 의 친구로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던 김광수 집사도 오랫동안 헌금을 보내왔다. 그리스도교 신학대학 유춘락 선생, 한국신학대학 이장식 교수(현 케냐 장로교 신학


76 대구성빈교회 20년사 대학 교수 선교사), 계명대 김태한 장로(현 명예총장)로부터 늘 관심과 지도 그리고 헌금도 보내 왔다. 김 전도사 신학시절 봉사하던 서울 효동교회(유부웅 목사 시무)에 서도 관심을 가지고 헌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당시의 교회 활동은 개척교회 이층 상가건물이라 지역주민들이 안온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찾아오는 형태보다 담임 교역자의 대외적인 활동을 통한 사회선교의 역할이 큰 몫을 차지했다. 이현공단 야간학교의 교사 수련회를 본 교회에서 담임 교역자가 인 도했고, 대구지역 한국기독학생연맹(KSCF) 수련회 장소로 교회를 개방했으며, 대학생 선교합창단 성경공부 지도를 담당하는 등 대외활동을 통해서 성빈교회를 찾는 타 교회 소속 교우들이 상당히 많았다. 대구제일교회 청년회장을 역임한 담임교역자의 인맥으 로 많은 청년들의 방문과 헌금봉헌이 있었다.

교회운영위원회 장로교의 간판을 걸고 교회가 창립이 되었고, 협동장로 1명, 협동권사 1명, 서리 집 사 5인을 제직으로 임명했지만 교인 전체 인원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폭넓은 의견 수 렴을 학면서 교회를 운영해 나가기 위해서 교회운영에 관심이 있는 성도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교회운영위원회”를 매월 첫 주에 정기적으로 열었다. 담임교역자가

한국기독교

장로회(기장측) 직영 신학대 학인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 기 때문에 성빈교회의 교단 선택을 1981년 3월에 대한 예수교장로회(통합측)

경북

노회(3노회로 분립되기 전) 에 가입하기로 결정을 함에 따라 통합 교단 직영 신학대 학인 영남신학교에 편입학을 해서 학업을 계속하기로 했 다. 성빈교회 태동 이전부터 신학적인간적 조언을 많이

교회운영회 청원서 1호

제직임명 동의서 1호

받았던 이장식 목사께는 미안한 점이 있었지만, 초기 교인들의 정서상 통합측 교단에 가입하게 되었다.

선교와 봉사 성빈교회의 이름에 걸맞게 초창기부터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에 앞장서 왔는데 매월 마지막 주일은 구제주일(봉사주일, 선교주일)로 정하고 신암동 일대 빈민 가정들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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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직접 방문하여 쌀 10kg 한 부대씩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이를 계기 로 현재까지 도시빈민 가정들을 대상으로 구제해왔다. 1981년 성탄절 헌금은 평소에 돕던 열 가정과 배영석 청년을 위해 사용되었는데 배영석 청년의 형이 교역자를 찾아 와서 울면서 우리 아버지가 나 몰라라 버린 제 동생을 제발 도와달라고 애원하면서 구 제의 손길을 요청했었다. 1982년 1월 4일 안타깝게도 결핵으로 사망하여 교회에서 장 례를 치러 주었다. 아마도 그의 형은 하나님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느꼈으리라. 이러한 구제 선교에 관심을 가진 국내외 성도들이 격려와 헌금을 보내왔다. 특히 미 국에서 신윤옥 사모의 가족들을 통해서 그리고 동양선교교회에서도 계속 헌금을 보내 왔다. L.A 소망교회 소망반 어린이들이 구제헌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또한 담임교역자의 활동으로 <갈릴리 선교회>를 조직하여 교도소 재소자들을 방문 하여 상담하고 갱생보호 활동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선교회비를 작정하기도 했 다. 그 후 미전향 장기수를 면담하면서 전도하던 일화를 자주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김 일성을 향한 일편단심의 믿음(?)을 우리들의 신앙과 비교하면서 측은한 마음과 함께 일면 그들의 돈독한 신념을 엿볼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1981년 당시 교회의 선교목표는 <1. 성인 교인 120명, 2. 모든 모임 다 참석, 3. 신. 구약 성경 한번 읽기 4. 1인 1명 전도>였는데, 예배 때마다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 방에서 베드로가 설교할 때의 당시 120문도(사도행전 1:15)를 생각하면서 전도 목표 수로 기도 제목으로 삼았 다. 1981년 12월 27일에 서 30일까지 고영근 목사 (목민선교회 회장)를 강 사로 부흥선교대회를 열 었는데 “기독교인의 나아 갈 길”이라는 책자를 비롯 해서 문서선교로 당시 한 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 들을 향한 호소력 있는 메시지로 알려져 있었던 분으로 유신 체재 하에서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던 예언자적인 목회자의 모 범이었던 분이었다. 구제

부흥선교대회 안내장 (1981.11, 강사: 고영근목사)

부흥선교대회 팜플렛 1면 (1981.12.27-30)

와 전도에 관한 에피소드 가운데 장기(신장) 이식 수술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지금도 감옥 에 가라 하면 또 갈 수 있어도 장기 기증은 선뜻 내키지 않는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 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구제가 2등이라면, 전도는 1등이랄 수 있고, 순교는 특등이라고 하면서 적극적이고 고결한 신앙 수준을 강조했다.


78 대구성빈교회 20년사

성례전 초대 당회장이었던 구의령 선교사는 매년 한 차례 성례식을 집례했는데 1980년 4월 13일 최초로 입교 2명, 유아세례자 3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1981년 4월 21일 에는 세례 3명, 학습 6명 등 많은 학생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 당시 교육전도사로는 정재기(현 울산정자교회), 이태호 전도사가 각각 열성적인 봉사를 하였다. 1982년 이 후로는 대구 동노회 북시찰장이 임시 당회장(오춘근목사, 류관선 목사, 엄광섭 목사, 구정학 목사)으로서 세례를 베풀었다. 1984년 2월 19일에는 세례 4명, 학습 17명이었 고, 1984년 12월 2일에는 세례 6명, 학습자 4명이었다.

첫 임직식 1982년 1월 13일 공동의회에서 임시 당회장 오춘근 목사의 사회로 김원석 장로의 장로 취임과 홍위숙 권사의 권사 취임에 대한 가부를 묻는 투표에서 통과되어 1982년 2월 7일 오후 2시에 취임식을 가졌다. 이로써 명실공히 조직교회로 발전하게 되어 3월 노회 때부터 성빈교회 총대로 김원석 장로가 파송되었다. (정리: 이승렬 장로)

(2) 건축기 성전 건축 1980년 1월 6일 교회창립 이후 동구 신암동 333-1에 이층 건물 약 25평을 전세 600만원에 있으면서 부채금 500만원이 미지불된 상태여서 부채 청산을 위한 특별헌금 을 하는 등 도처로부터 약간의 헌금을 보내왔는데 1982년 “성전 건축을 준비하자”는 표어를 내걸었고 건축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김원석 장로가 위원장을 맡았다. 1982년 1월 31일 제1차 건축헌금을 작정(1800만원)하고, 신암동교회당으로 부터 나와서(출애굽) 새로운 부지를 물색하던 중 북구 복현동 376-8번지의 대지 140평을 새 성전 부지로 계약을 하였다. 1983년 6월21일 10시 기공식 예배를 드리고 황상필 장로(동촌제일교회)가 1층 시공을 맡아서 골조 공사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9월 1일 김 원석 장로의 갑작스런 소천으로 공사가 중단된 채 1층 골조공사만 된 예배당에서 입당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장례식은 노회장(老会葬)으로 임시당회장 엄광섭 목사의 집례 로 행해졌고 군위군 우보면 선영에 모셔졌다. 새 성전이 비록 창문은 없었지만 우리 땅에 새롭고 넓은 건물이 만장 같았다. 고 김 원석 장로의 소천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성도들에게 더욱 결속력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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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도우심을 더욱 의지하게 하려는 섭리로 받 아들이고 성전을 완공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 게 되었다. 1983년 6월 매입한 성전부지의 기 존 초가집을 헐면서 김원석 장로, 위한규 집사, 이승렬 집사, 이진화 성도와 자장면을 먹으면서 김 장로님의 말씀이 성전 건축을 위한 일이라면 극단적으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보상금이라도 받 았으면 하는 애절한 소망 아닌 소망을 말하였다 고 장례식 후 당시의 안타까움을 호소했다고 하 니 과연 김 장로님의 성전 건축을 향한 열정에

고 김원석 장로가 사용하던 성경

고개 숙여진다. 그러나 당시 부채가 5,000만원에 달했는데 1983년 12월 제2차 건축헌금을 작정(6 명 참여 1,400만원)하고, 1984년 3월 18일 제3차 건축헌금을 작정(2차 에 빠진 자들 참가, 350만원)하고, 1985년 5월22일 제4차 건축헌금을 작정(3,000만원)하여 1985년 12월에는 대지 부채를 청산하고 땅 등기 이전을 완료하기에 이르렀다. 할렐루야! 에벤에셀의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1986년 10월 지하 및 지상 1 층을 준공하게 되었다.

과부의 두 렙돈 성빈교회 성전 건축의 핵과 같은 폭발을 일으킨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임입암 할아버 지였다. 신암동 작은 토굴에서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한번은 교역자를 찾아와서 호주 머니에서 꼬기 꼬기 비닐에 말아 보관해두었던 거금 5천원을 건축을 위해 헌금했던 미 담은 그 이후 늘 설교에 예화로 등장되었고 들을 때 마다 감동을 주곤 했다. 1984년 4 월 15일 칠곡 복음양로원으로 가셨는데 이를 계기로 후일 복음양로원은 여전도회의 방 문지가 되었다. 1983년 대지를 계약할 당시 동노회 회기 중에 노회 석상에서 즉석헌금 128,380원을 비롯하여 노회 건축헌금 보조금으로 100만원이 결정되었고, 노회 상회비 면제 청원이 허락되었고 담임교역자가 동노회 산하 각 교회를 순회하면서 설교를 하고 호소를 하여 건축보조금을 후원받기로 허락을 받게 되었다. 여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 기간 중 신광 교회당에서 성전건축기금 마련을 위한 음료수 판매를 통해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장식 목사, 김태한 장로, 서울효동교회(유부웅 목사 시무)로부터 건축헌금이 보내어 왔다. 고등부 출신 재경교우들, 충남보령 최유화 선생, 강원도 지태경, 대구제일교회 김 경희 청년, 서울 최봉연 집사, 50사단 최성원 집사, 서울에서 최신한, 박승호, 이문옥 선생, 신광교회 윤학이 집사 형제, 신광교회 최칠석 장로, 박남순 권사, 이금애 권사, 신광교회 제1여전도회, 동문교회 권정순 집사, 남산교회 김동순 성도, 침산교회 정봉남 집사, 경주에서 정재기 전도사, 봉화(영주)에서 김현애 선생, 미국 시카고 김광수 집사,


80 대구성빈교회 20년사 이창모 집사, L.A 소망교회 신재순 집사, 신세정, 캐더린 김, 미국 동양선교교회 김재 숙 집사 등으로부터도 건축헌금이 왔다. 1983년 10월 1일, 10월 3일 공휴일에는 교인들이 몸소 성전건축에 참여하기 위해 시멘트 질통을 지고, 또는 벽돌을 나르며 계단공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이 시멘트 한 포(당시 2,200원)를 헌물로 드리기로 해서 156포를 모금했다. 그 외에 오상 연 집사는 유리 전부를 헌납하였고, 칠, 방석, 커튼 등(위한규 집사)을 그리고 종탑, 종, 성가대 가운(이수옥 집사), 성전 바닥공사(윤학이 집사 형제), 피아노(조원제, 서정 욱), 난로(유정숙), 케비넷, 의자(서정욱, 정분예 집사, 김중희, 한영자 부부), 마이크 (미국 신재순 집사) 등을 헌물로 드렸다. 성빈교회 성전건축과 선교에 큰 디딤돌이 된 것은 1984년 3월 선교유아원 개원이었 다. 이명숙 집사(김기순 집사) 가정에게 교회를 평일에 유아원으로 임대 사용하면서 건축을 완공하는데 박차를 가하게 되면서 9월 23일에는 지하공사가 완성되어 선교유아 원으로 활용하고 주일에는 교회 교육의 공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명숙 집사의 헌 신적인 봉사로 많은 원아들이 선교유아원을 통해서 교회학교 유치부에까지 전도되었 고, 믿지 않던 학부모들이 교회 출석을 하게 되는 역사가 있었다. 온 성도들의 기도와 아낌없는 헌금과 외지교인들의 성원과 헌금, 노회를 비롯한 각 교회의 관심과 지원뿐 만 아니라 특별히 친정이 미국에 있었던 신윤옥 사모가 교역자 의 가정에서 작정한 건축헌금(2만불)을 감당하기 위해 3년간이나 가족을 떠나 미국에 서 일하여 건축헌금을 드림으로써 부도 직전까지 갔던 교회건축을 완공하는데 큰 역할 을 담당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예배와 교육 창립예배 때 저녁예배에 10명이 참석하고 초창기에는 담임교역자가 수요예배 때 교 인 한 명을 대상으로 설교를 해야 하는 힘 안 나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시작은 심히 미약하나 창대케 되리라는 말씀과 같이 1980 년 1월 20일 학생 1명을 시작으로 중고등부가 시작되었고, 아동 7명을 시작으로 아동 부가 시작되었다. 1982년 1월 10일부터 청년회가 조직되었다. 새벽기도회는 1982년 1 월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되었고, 1984년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교회창립기념부흥회 (강사: 부산 목양교회 국동출 목사) 이후에 40일 특별기도회를 처음 시작하여 3월 30 일 까지 참석자를 시상(13명)하기도 했다. 그 때 한 주간 연인원이 최고 180명이 될 때도 있었다. 초창기 구역예배는 대구 전역이 한 구역이었고 1985년 2월부터 금요구역 예배가 다시 시작되었다. 송구영신예배는 1985년 1월 1일부터 시작했고, 금요철야기도 회는 1984년 5월 25일 밤 12시부터 했다. 1980년 5월 전교인 첫 야외예배가 하양 강변에서 있은 후 해마다 이어졌다. 1984년 5월 6일청도 유천에서 있었다. 1984년 1월 29일 남선교회 창립총회가 있었고, 10월 21일 가족찬송가 경연대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1984년 2월 19일 여전도회 첫 헌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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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있었고 철야기도회를 주도해 나갔다. 1984년은 한국선교 100주년을 맞는 해로써 전 교단이 통일 찬송가를 사용하게 되어서 1월 22일부터 일괄 구입해서 사용하게 되었 다. 한국 기독교 100주년기념 선교대회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렸고 우리 교회의 표 어도 “선교의 불길을 일으키자”(막 16:15)였다. 1985년 3월부터 담임 교역자의 장신대 목연과정 이수차 서울에서 학업중이라 수요예배 설교는 박만은 전도사가 대신했고 주 간 심방도 담당했고 주일 교회학교 교육 전반에 걸쳐 헌신적인 봉사를 했다.

담임교역자 목사 임직 영남신학대학에 편입학하여 졸업을 한 후 목사 안수를 위해 1985년 3월부터 서울에 있는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1년간 목회연구과정을 밟은 후 목사고시를 거쳐 그간 교회 개척 당시부터 전도사로서 주일 설교를 담당해 오던 김제민 전도사의 영광의 목사 안 수식이 1988년 3월 10일 목요일 오전 11시 신암교회당에서 열렸던 3월 정기노회 석 상에서 성빈교우들의 기도와 성원으로 행해졌다. 전도사로서 명설교를 하였지만 주변 의 전입 교인들이 출석했다가 축도를 못 받고 돌아가게 되는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 는데 이제 명실공히 목사의 직임이라는 날개를 달고 상승효과를 가지고 더욱 힘차고 심령골수를 쪼개는 말씀이 선포되어지게 되었다. 김제민 목사의 주례로 처음 행해졌던 결혼식이 안수 받던 그 주 토요일에 있었는데 성빈교회 초대 교인이었던 서순향 양의 결혼식이었다. 그동안 미조직 교회의 교역자로 교회법상 교회의 치리와 성례전을 베풀 수 없었으나 5월 22일 성령강림주일에 학습세례 10명, 유아세례 3명, 세례 18명

총31명이 담임목

사의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 해 세례자의 3분의 2가 학생들로 당시 이종권 교육전도 사의 열성적인 지도와 다양한 청소년 프로그램으로 신앙훈련을 했던 것이었다.

두번째 임직식: 조직교회의 당회 구성 1988년 10월 9일 공동의회에서 조원제, 위한규, 이승렬 집사가 장로로 피택되었고, 오상연, 정재용, 서정욱, 김상순, 김영대, 김기순 집사가 안수집사로 피택되었고, 김문자 권사가 권사시무 허락을 위한 찬반투표에 부쳐 허락되었고, 손순희, 한늠이, 최순탄 집 사가 권사로 피택되어서 당회 지도하에 6개월의 직분자 교육을 거쳐 1989년 2월 20일 대구동노회 고시위원회의 장로고시를 거쳐 5월 28일 임직하기에 이르렀다. 1989년 7월 30일 첫 당회는 위한규 장로의 기도와 딤전 4:12-15 말씀에 근거하여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본을 보여라”는 제하의 김제민 목사의 설교가 있은 후 성빈교 회의 숙원인 김제민 목사의 위임목사 청빙을 위한 조원제 장로의 동의에 대해 만장일 치로 가결하고 8월 13일 주일 저녁 예배 후 대리 당회장 류관선 목사(신광교회)의 주 재로 공동의회를 열어 9월 정기노회에 김제민 목사 위임목사 청빙의 건을 결의하게 되 었다.


82 대구성빈교회 20년사

1989년 임직식 팜플렛

교회창립 10주년 기념예배 1989년 9월 정기노회에서 위임목사 청빙 허 락을 받은 후 10월 정기 당회에서 익년인 1990년 1월 7일 주일에 교회창립 10주년 기념 예배 및 헌당식과 김제민 목사 위임식을 갖기 로 하였다. 1990년 1월 7일 교회 창립 10주년 주일에 동노회 북시찰장 김영배 목사(성북교회)를 위 임국장으로 한 노회원들과

내빈들의 축하를

받으며 위임식을 가진 후 성전 봉헌식을 가지 고 제2의 10년을 향한 새 출발을 다짐하며 교 회창립 10주년 중점사업을 세우고 성빈교회 설 립 취지문을 다시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창립 10주년 중점사업 1. 농촌교회 지원 확대 (6개 보조교회) 2. 도시빈민 선교 확대

교회창립10주년 김제민 목사위임 및 성전봉헌식 팜플렛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3. 장학 사업 확대(교회 내외에서 선정) 4. 해외 선교사 지원(아프리카 가봉 김충렬 선교 사 지원) 5. 교회일치운동 협력 확대(KNCC, WCC를 통한 일치운동) 6. 사회선교의 확대(인권운동, 양심수, 교도소, 고 아원, 양로원, 청소년선도...) 7. 방송 선교 지원 확대(기독교방송 사옥건축 및 선교후원) 8. 담임 목사 해외연수 교육 실시(교역자 성장교 육)

담임목사 성지연수 성빈교회 개척 이후 학업과 교회 건축에 몸소 노심초사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목회에 전념해 온 10년을 지나오면서 김제민 목사의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1990년 7월 4일부터 8월 2일까 지 서울신학대학에서 주관하는 성지연수를 다녀

선교편지(1990, 김충렬 선교사)

왔다. 그 후 담임목사의 설교는 성지에서의 견문을 바탕으로 한층 더 회중들의 이해를 돕는 신뢰성 있고 석의(exegesis)에 충실한 설교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성지에서 가져온 겨자씨를 비닐로 코팅해서 자필 싸인을 하여 나눠 주어서 책갈피로 사용하도록 했으며 성 지에서 가져온 밀떡으로 성찬식을 하기도 했 다.

부흥성회와 특별기도회 건축에 온 힘을 쏟는 가운데서도 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거의 해마다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부흥성회를 가졌다. 1984년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부산 목양 교회 국동출 목사를 강사로 부흥회를 가졌고, 1985년 5월 19일부터 23일까지는 서울 대길 교회 박용묵 목사를 강사로 하여 부흥회를 가졌다.

교세통계표(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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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대구성빈교회 20년사 1987년 3월 30일부터 4월 3일까지 여수 애양원교회 박병돈 목사를 강사로 부흥회 를 가졌으며, 1988년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는 서울 세광교회 김윤배 목사를 강사로 부흥성회를 가졌다. 1989년 12월 3일부터 7일까지 글로리아선교회 대표 김항안 목사를 강사로 부흥사경 회를 가졌으며, 교회 창립 10주년인 1990년에는 12월 3일부터 7일까지 부산온천제일 교회 장차남 목사를 강사로 부흥사경회를 가졌다.

부흥사경회 안내장(1989, 강사: 김항안 목사)

부흥사경회 안내장(1990, 강사: 장차남 목사)

1986년 10월 12일 성경대학 제1기가 시작하여 크로스웨이 성경연구원으로 운영되 었다. 1987년 11월 15일 제1기 수료식을 갖게 되었다. 1987년 4월 19일부터 6월 7일까지 성령강림대망 50일 새벽기도회를 가진 것을 계 기로 해마다 특별기도회를 갖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2월 22일부터 4월 1일까지 수 난절준비 4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진데 이어, 4월 10일부터 5월 22일까지 40일 연속 철야기도회를 가졌다. 1989년 1월 1일부터 31일까지 특별연속 철야기도회를 가졌고, 12월 8일부터 이듬해 1990년 1월 30일까지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졌다.

세 번째 임직식 1992년 3월 노회에서 장로 4인 증선을 허락받아 3월 8일 주일 저녁 예배 후 공동의 회에서 장로 4명(김상순, 오상연, 정재용, 김기순 집사), 장립집사 8명(이옥식, 박기태, 류강선, 이정환, 박종계, 배영근, 정응해, 김유수열 집사), 권사 3명(김옥례, 황분조, 김 영수 집사)를 선출하고 방종호 집사를 장립집사 취임을 위한 신임 투표로 선출하였다. 장로 임직식은 “6개월 이상 당회 지도하에 직분자 교육을 받아”에 대한 1992년 총회유 권 해석에 따라 1993년 1월 26일 임시노회에서 장로고시에 합격하고 1993년 4월 11 일 임직식을 갖게 되었다. 이제 성빈교회 당회는 장로가 7인으로 늘어나서 소규모 교 회의 면모를 벗어나 중규모의 교회로 발전해 가게 되었다.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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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임직식 팜플렛

김제민 목사 안식년: 미국 연수 교회는 목회자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개척 이후 열 네 해째 목회하면서 영육이 지쳐 있었고 대망의 2000년대를 향한 교회의 원대한 비전을 실천하기에는 재 충전과 안식을 필요로 했기에 교우들의 양해를 간절히 바라면서 조심스럽게 담임 목사 안식년을 제의했던 바 온 교인이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1993년 5월부터 1994년 4월까 지 김제민 목사의 목회 연수 및 안식년을 갖기로 했다. 그 당시로서는 큰 교회에서도 드물게 실시했던 소규모 교회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담임 목사의 안식년 중 강단 은 증경총회장이었고 대봉교회 원로목사였던 박맹술 목사에게 의뢰하게 되었다. 그동안 성빈교회 창립 이래로 청년 목회자에서 중년 목회자로 성숙된 설교를 해 온 진취적이고 웅변적인 힘찬 설교를 해왔고 목회자 자신의 검소하고 청교도적인 삶에서 배어 나온 체현된 설교가 객관적으로 볼 때 힘 있고 예언자적인 의식을 일깨워주었지 만 14년째 같은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 교인들로써 적지 않은 부담과 어떤 면에서 때론 위로의 메시지를 갈구하고 있었으리라. <여호와이레>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증경 총회장을 역임한 박맹술 목사의 설교는 원 숙한 설교 바로 그것이었다. 위로와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고 심령을 울리기도 하고 아 브라함의 축복을, 그리고 그의 믿음을 우리가 가질 것만 같았다. 간간히 영남신학대학 김춘기 교수의 설교를 통해서 새로운 시각의 메시지를 듣기도 했다. 저녁예배 설교는 주로 전임전도사인 이종권 전도사의 마태복음 강해 설교로 왕으로


86 대구성빈교회 20년사 오신 예수에 초점을 맞추었다. 새벽기 도회와 수요기도회 설교를 비롯해서 담임목사의 공백을 99% 매워가며 단 독 목회를 하는 심정으로 목회에 전념 했다. 당회장의 공석으로 당회가 공식 적으로 회집되진 않았지만 교회운영위 원회라는 이름으로 매월 마지막 주일 에 장로들과 전임교역자인 이종권 전 도사가 함께 교회의 전반적인 의논을 하며 담임목사의 공백을 의식해서 더 욱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1993년 12월19일 김제민 목사의 일

1992년 전교인 여름수련회 팜플렛

시 귀국으로 그간 목회통신으로 주고받았던 회포를 담임목사의 간만의 설교를 통해 안 식년 경과보고와 미국 생활에서의 하나님의 은혜 체험담을 그리고 성빈 교우들에 대한 사랑 등을 재확인하는 정겨운 시간이 되었다. 당초 계획은 1년간 안식년을 갖기로 했 으나

미주

장로교신학대학

목회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캘리포니아주

로즈메드

(Rosemead)에 있는 캘리포니아 신학대학원(Californ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 목회학 박사과정 이수를 위해 1년간 더 연장하기로 결의한 바(1993년 12월 26일 당 회 결의) 목회자와 교우들이 다시 한번 단단한 각오와 기도로 각기 맡은 소임을 다 해 야만 했다. 1994년 6월까지는 그동안 설교목사로 수고한 박맹술 목사의 대봉교회의 설교 계획 사정상 계속할 수 없어서 또 한번의 위기를 맞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예비하사 성빈교 회 창립멤버였고 아프리카 가봉에서 총회파송 선교사로 봉사하다가 일시 귀국하여 서 울 천성교회 부목사로 시무하던 김충렬 목사를 부목사로 청빙하여 설교와 목회를 전담 하기로 결의하였다.(1994년 7월 24일 당회 결의, 7월 31일 제직회 결의) 이후 열성적 으로 시무한 김충렬 목사는 1995년 2월 16일 고향인 제주서호교회 담임목사로 임지를 옮기기까지 강단을 지켰다. 김충렬 목사는 아프리카에서의 선교사로서의 경험과 어학 적 재능과 음악적 재능을 십분 발휘해 재미있는 교회, 신나는 교회로서의 면모를 일신 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성실한 설교와 유머로 한껏 목회 기량을 발휘했다. 금요 철야기 도회 때는 클라리넷과 디지털 오르간으로 직접 반주도 하며 아프리카 노래도 가르쳐 주곤 했다. 특히 주일 낮 예배를 2부로 나누어, 1부는 7시 30분에, 2부는 11시에 드리 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김충렬 목사의 사임으로 설교 담당을 영남신학대학교 총장인 이용원 목사로 결정하 였다. 이용원 목사는 영남신학대학교 교수로 지방 교회 집회 인도하러 가는 도중 교통 사고로 사경을 헤매는 위기 가운데 기적적으로 살아난 지역 교회의 살아 있는 하나님 의 전령인 인재로 몸이 다소 회복이 덜 된 상태라서 발음이 약간 어눌했지만 역경을 딛고 선 삶의 체험에서 우러난 교수 목사로서 지성과 영성을 겸비하고 있어서 영적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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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을 보충하고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치기에 충분했다. 1994년 9월 사임한 이종권 전도사 후임 전임 교역자로 도기봉 전도사(봉화 춘양교 회)를 청빙하니 1995년 3월 13일 부임하여 저녁예배와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그리 고 목회 전반에 걸쳐 담임 목사가 귀국할 때까지 전담하였다. (정리: 이승렬 장로)

(3) 성장기 이 기간(1995년~1999년)은 미국으로 유학 갔던 담임 목사가 귀국하여 목회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예배 참여 인원수 증가, 교회학교 교육의 활성화, 교회 재정이 매년 10% 이상의 예산을 초과 달성하는 등 여러 면에서 교회가 성장을 거듭하던 시기 라고 하겠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세 번째 예배당의 건축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 행되었는데, 1996년 9월 20일 드디어 복현동의 1,120평 녹지를 매입 계약하였다.

담임 목사 귀국 1995년 1월 1일 제직회는 김충렬 목사 부목사 계속청빙 건을 결의하였지만 김충렬 목사는 한 달 후인 2월 16일 고향인 제주도 서포교회로 갑작스럽게 부임하게 되었다. 그는 6개월 여 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깔끔한 외모에 아프리카 선교 이야기, 원주 민들의 노래, 춤 등을 소개하여 웃음 자아내게 하였으며 교회학교 어린이들로부터 연 세 많은 성도님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김충렬 목사 사임 후 같은 해 10월 초순 김제민 목사가 귀국하기까지 도기봉 전도사 가 약 7개월 동안 교회를 전담하였다. 이종권 전도사에 이어 1995년 3월 13일에 부임 한 그는 건장한 체구, 부리부리한 눈에 걸맞게 설교 또한 연신 땀을 훔쳐가며 사자후 를 토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은혜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했는데, 가끔씩 농촌 교회 단독 목회 경험과 DMZ에서의 군대 생활 이야기를 예화로 들어 귀를 솔깃하게 하 였다. 9월 3일 주일부터는 그 동안 외주를 주어 인쇄하던 주보를 자체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는 시간에 맞추어 원고를 보내고 교정 하는 일이 매우 번거로웠을 뿐 아니라 경비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업무는 장길식 집사가 직장 일로 바쁜 가운데도 자원 봉사하였다. 1995년 10월 8일, 2년 6개월간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담임 목사를 모시고 첫 예 배를 드렸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본 초대교회 케리그마」란 논문으로 캘리포니아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설교 중 미국 이야기를 예화로 많이 들 어 우리들로 하여금 청교도적인 미국 성도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88 대구성빈교회 20년사 송구영신 예배와 표어 해마다 새해는 23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송구영신 예배와 더불어 맞이하였다. 온 가 족이 한 데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복된 시간,

‘올 한 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게 해 주십사’ 기도를 드리고 소원을 아뢰는 복된 시간이었다. 교회서는 ‘새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 책갈피용 카드를 준비하 여 헌금 주머니에서 제비뽑듯 하나씩 집어내도록 하였다. 송구영신예배의 설교말씀은 주로 새해 표어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간 표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6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교회> 1997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교회> 1998년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 1999년 <생명을 살리는 교회>

예배당 건축 부지 구입 교인수가 늘어나면서 주일낮 2부예배 때에는 1층 중 예배실을 자모실로 활용하고도 자리가 부족하여, 지하 소예배실도 활용하기로 하고 1995년 6월말 소예배실에 에어컨을 추가 설치하고 전기 승압 공사를 하였다. 하지 만 중예배실과 소예배실은 화면을 통해 예배를 드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교회 학교 역시 공간에 따른 애 로사항이 많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1997년 제직세미나 팜플렛 (주제: 하나님의 나라, 강사: 김제민 목사)

1996년 9월 20일,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또 하나, 요단강에 발을 들여 놓는 일을 하게 되었다. 마침 복현여중(현재, 경진 중) 옆 자연 녹지 매물이 나오게 되어 예배당 건축 부지로 계약하게 된 것이다. 그다 지 높지 않으면서도 대구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 좋으면서도 아늑 한 공간, 바로 담임 목사가 ‘여호수아 기도’를 하던 그 자리, 세 번째 예배당이 설 터전 이었다. 김 목사는 오랜 기간 이 땅을 얻기 위해 여호수아처럼 터를 돌면서 기도해왔 다고 뒤에 술회하였다. 5억 5천만 원에 계약하였고 우선 장기발전위원회 재정(잔고 약 2억 8천만원)으로 중도금 납부를 하고, 잔금은 사택을 비롯한 7가정의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납 부하게 되었다. 10월 둘째 주일에는 전교인을 대상으로 1998년 말 까지를 기한으로 성전부지구입헌금을 작정하였는데, 작정 액은 부족한 3억원을 초과하였다. 1996년 11월 20일, 드디어 복현동 315-5번지 교회 건축 부지 1,120평을 계약대로 매입하였다. 그곳에는 수십 그루의 복숭아 나무가 있었는데, 농사 경험이 있는 권병석 집사, 서정을 권사 내외가 농사를 지어 수확의 기쁨도 덤으로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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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부흥과 주요 활동 유치부, 유년부, 소년부, 중등부, 고등부, 청년부(1․2청년부)의 6개 교육부서에는 각 각 전담 교역자를 배치하여 교회학교 교육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였다. 아마 교세에 비 례하여 우리 교회만큼 교육전도사가 많은 교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 결실의 하나로 매 년 6월 6일이면 열리던 동노회 아동부연합회 주최 각종 경연 대회에서의 수상을 들 수 있겠다. 우리 교회 아동 3개부는 구연동화, 성경 경시, 성경 암송, 글짓기, 노래 부르기 등 여러 분야에서 상을 독차지하다시피 하였고, 그 중 노래 부르기나 구연동화 부문 수상자는 주일 저녁 예배 시 어른들 앞에서 다시 발표하도록 하여 만장의 웃음을 자아 내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교회학교는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열었다. 1997년을 보면, 유치 부는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우리 교회에서, 소년부는 같은 기간에 산내 대현교회에 서, 유년부는 7월 20일부터 22일까지 우리 교회에서, 중등부는 7월 24일부터 26일까 지 성주 양정교회에서, 고등부는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하양 복음수양관에서, 청년부 는 8월 4일부터 6일까지 춘양 분천교회에서 가졌다. 1999년에는, 유치부와 유년부는 7월 22일부터 24일까지 우리 교회에서, 소년부는 8월 4일부터 6일까지 자인 계림수련 원에서, 중등부는 7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산내 의곡교회에서, 고등부는 중등부와 같은 날짜에 청천다락원에서, 청년부는 8월 9일부터 11일까지 광주광림교회를 중심으로 광 주 전남지역 선교사적지 순례를 하는 것으로 하였다. 그 때 흘린 수고의 땀방울과 헌 신 봉사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잘 알고 계실 것이다.

더욱 활발해진 선교와 봉사 우리 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꾸준히 선교와 봉사활동에 힘을 기울여 왔는데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재정규모가 늘어나고 자치회도 더 증가함에 따라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 다. 1993년 이후 해마다 5월 둘째 주 어버이주일에는 경로잔치를 열었다. 제2남선교회 주최로 주변 아파트 경로당과 인근 지역 어른들이 많이 참석하여 예배를 함께 드리고 정성껏 마련한 식사를 함께 나누었는데, 정작 음식 준비하랴 설거지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는 여 성도님들이었다. 조원제 장로가 인도한 특별순서 때는 참석한 노인 들 모두가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청년부는 매년 5월 셋째 주를 청년주일로 지키면서 특히 해마다 무의탁노인돕기 일 일찻집을 열어 그 기금으로 구제행사를 하였다. 특히 1995년 5월 21일 주일에는 청년 부 주최로 전교인 헌혈행사를 가졌는데 많은 교인들이 참여하여 육신적인 생명 살리기 운동에 동참했다. 그리고 1998년부터는 전교인 대상 이웃돕기 사랑의 이어달리기 행사 를 개최하여 많은 교인들이 선교 활동에 동참하도록 하고 성빈 청년의 기상을 주민에 게 알렸다.


90 대구성빈교회 20년사 94년 2월 우리교회 부흥회 강사로 오신 김창렴 목사 가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선교헌금이 시작되었다. 헌금 기간은 1년간으로 95년 3월 마감하기로 하였으나, 헌금이 계속되는 관계로 1년 더 연장하여 96년 2월 종 결하기로 하고, 그 이후는 일반재정에 넣기로 결의하였 다. 96년 3월까지 모아진 헌금액은 18,753,190원에 달 하였다. 1995년의 선교와 봉사 상황을 활동 내역별로 보면, 농 촌 및 개척교회인 성곡교회, 대산교회, 매곡교회, 나호교 회, 기리교회, 현풍새교회, 영선교회, 작은교회, 여명교 회, 봉천교회, 명진교회, 구미영은교회, 샘터교회에 매월 10만원씩, 도시 빈민 선교는 구역별로 20가정을 선정하 여 5만원씩, 사회 선교는 연합 방송, 인권단체, 교도소, 사회 복지 시설 지원, 학원 선교, 장학금 지급, 해외 선 교는 가봉의 김충렬 목사, 오스트리아의 배재욱 선교사, 러시아의 박경수 선교사에게 헌금을 정기적으로 보냈고 그 외 2개 남선교회, 3개 연전도회는 각 자치회별로 매 월 1개 이상 교회에 선교 헌금을 보내는 한편 청구혜양 원, 안나 요양원, 복음 양로원, 천광 보육원 등 사회 복

1998년 이웃돕기 사랑의 이어달리기대회 팜플렛

지시설을 방문하였다. 1998년부터는 남선교회와 여전도회는 각각 1개씩 늘어나서 돕는 교회도 늘렸다. 제1남선교회 : 청송덕천교회

제2남선교회 : 군위동창교회

제3남선교회 : 포항성지교회

제1여전도회 : 군위고매교회

제2여전도회 : 엘림교회

제3여전도회 : 청도흑석교회

제4여전도회 : 임불교회

그리고 지원하는 농촌 및 개척교회도 포항성지교회, 대구영선교회, 대구동교회, 대구 대광교회, 경산벧엘교회, 청도대산교회, 군위매곡교회, 현풍새교회, 청송덕천교회, 대구 작은교회, 안동명진교회, 대구신서교회, 구미영은교회, 아름다운교회, 청도풍각제2교회 로 몇 교회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1996년 11월 2일(토), 우리 교회 처음으로 여전도회 주최 선교바자회가 복현광명아 파트 동편 인도를 따라서 열었다. 며칠 전부터 도토리를 주우러 가고, 안 입고 있는 옷 을 교회로 모으고, 임불교회에 유기농산물을 주문하고 등등 분위기를 띄우더니, 하루 전에는 현수막을 걸고, 청소를 하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찍 성도들의 차를 인도 앞에 주차하는 등 개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드디어 당일, ‘성빈기업’은 도토리묵, 호 박죽을 비롯한 모든 품목에서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보소서 주인님이 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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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달란트로 다시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이익금은 전액 지역선교사업에 사용되 었다.

예배와 전도 1998년 11월 19일부터는 영아부가 문을 열었다. 주일 낮 2부 예배시간(11시) 부모 들이 예배에 전념할 수 있도록 1부 예배를 드린 교사들이 별관 교육관에서 지도하는 모임이었다. 매월 1회 정도 주일저녁예배는 자치기관에서 드리는 헌신 예배였는데 강사를 초빙함으로써 우리는 다양한 설 교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1998년 3월 8일 저녁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 초청간증 집회, 1998년 7월 26일 김영길 한동대학교 총장 초청간증집회, 1999년 2 월 28일 제1남선교회의 탤런트 이영후 장로 초청 간증 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1999년 4월 12일 저녁부터 15일 새벽까지는 과천교회 김찬종 목사를 강사로 부흥 성회를 열어 전도에 대해 큰 도전을 받고, 훗날 전도대 는 직접 과천 교회를 방문하여 전도 방법을 현장 체험하 였다. 1995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주일 우리 교 회 처음으로 은퇴식을 가졌는데 그 주인공은 목사님의 어머니인 손순희 권사였다. 현 교회법상 모든 항존직은

김영길 총장 신앙간증집회 팜플렛(1998)

일흔이 되면 은퇴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을 금 닷 냥 상당의 위로금을 전 달하는 것으로 달래며 그 동안의 수고에 고마움을 표했다. 1996년 4월, 음부의 권세를 뒤흔드는 2개의 대(隊)가 조직되었으니 바로 기도대와 전도대이다. 기도대는 매 주일 낮 2부 예배 전 본당 모여 예배와 교회, 병들거나 가난 한 성도,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에 전력하고, 전도대는 매주 수요일 훈련을 받고 노방 전도에 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였다. 전도대는 방문전도뿐만 아니라 길거리 청소, 경 로당 봉사 등 봉사활동을 동반하면서 전도에 힘써, 생명을 살리는 성빈교회의 선봉역 을 담당하였다. 7월 7일, 교회 전기를 110볼트에서 220볼트로 승압하고, 교회관련 토 지, 건물의 명의를 김 목사에게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유지재단으로 옮겼다. 9월 1일에 는 교회 승합차 ‘그랜드살롱’을 구입하였다. 축구, 테니스 등 동호회가 생기고, 자치기관별로도 다양한 행사를 주관하여 교회는 더욱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1997년 6월 15일 갈보리선교회 주최 제1회 전 교인 탁구대회가 부부 및 커플대항전을 열리고 10월 3일, 대구공고 운동장에서 열린 대구동노회 교회대항체육대회에서는 본 교회가 종합준우승의 성적을 거두었다. 1994년부터 교육전도사를 맡아오던 서영석 전도사도 우리 교회를 사임하고 포항성


92 대구성빈교회 20년사 빈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개척예 배는 1999년 1월 3일 오후3시 우 리 교회에서 많은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제민 목사의 설교로 진행 되었다. 성빈의 이름이 포항 땅에 새롭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1998년 4월 8일 신성교회당에서 열린 142회 대구동노회 마지막 날 도기봉 전도사가 목사 안수를 받았 고, 계속해서 본교회 부목사로 청 빙되어 시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기봉 목사는 다음 해 1999년 12 월 31일, 약 1년 9개월 동안 부교

포항성빈교회 설립예배 팜플렛 (1991.1.3)

역자로 시무하던 우리 교회를 사임 하고 필리핀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힘찬 설교를 들을 수 없어 아쉬움이 많지만 교적 이 우리 교회에 남아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정리: 정재용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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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빈교회 각 기관의 20년 (1) 성가대 1) 시온성가대 찬양은 믿음의 발로로써 성도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구원의 감격을 선율에 담아 표 현하고, 감격하며 은혜를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리라. 성빈 교회 초기에 많은 믿음의 일군들이 있었지만 뇌를 스치는 것들이 있다. 풍금이 없이 예배드리는 것에 박승호 선생(당시 서울대 대학원 재학)이 리드 오르간을 한 대 기증하면서 “나와 같은 음치(?)가 없도록 풍금을 통해서 하나님 찬양이 잘 되기를 바 란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그 후 조원제, 김신애 집사 가정에서 아껴 쓰던 피아노를 교회에 헌납해서 명실공히 피아노 있는 교회가 되었다. 초대 반주자로는 영주 동산교 회 출신 김신애 선생(정재기 목사 사모)이 성실하게 봉사했고 졸업 후 교사 발령 받은 후 김해숙 선생이 서툴지만 이어 받아 열심히 배우고(기독음악대학) 헌신적으로 봉사 하여 온 교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1983. 9.4 현 위치로 새 교회당 입당을 하면서 성가대가 조직이 되었고 이승렬 집사 가 지휘를 맡아 3년간 봉사했다. 첫 찬양곡은 당시 개편 찬송가 171장 “주는 저 산밑 에 백합”이었다. 첫 찬양의 설레임과 미처 공사가 덜 마무리 된 1층 중예배실(그 당시 는 너무 넓게 보였지만)에서의 입당 감사의 감격과 고 김원석 장로의 작고로 슬픔을 위로 받고자하는 소망 등이 어루어져 드려진 찬양이었다. 1986년 교회가 조직적으로 체계가 잡히면서 성가대도 전문적인 지휘자를 필요로 하 여 권희진 선생이 초빙되었다. 처음으로 곡중 solo를 시도한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조 현주(성빈 유아원 교사) 그리고 허순자 집사가 기억된다. 1988년후 이삼용 집사(현 부광교회)가 부임하면서 체계적인 성가대가 운영이 되었 고 성가대 수련회를 처음으로 복음수양관에서 가졌다. 당시 대장인 이승렬 집사, 지휘 자가 순서를 맡아서 공동체 프로그램(파트너 입회원서 작성해주기, 자기 평가서 작성 하기 등)을 진행하면서 사명감 다지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여름철은 은해사, 수 태골 등지 야외에서의 돼지고기, 수박 파티 등이 추억으로 남는다. 기억나는 대원으로는 서정욱 집사가 대장을 맡아 성가집 편집, 연수용 회보 발간 등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음악적인, 신학적, 언어학적 재질이 뛰어나 특강자료 들을 많이 보급했고 성가곡 중 가사 표현이 잘못된 것을 낭창하게 꼬집어내 주는 세심 한 면이 있었다. 서정욱 집사와 조원제 장로는 새 피아노를 헌납하기도 했다. 1987년 교회당이 완공되어 이층으로 입당하면서 정재용 집사 가정에서 새 피아노를


94 대구성빈교회 20년사 헌납하여 새롭게 찬양을 하였다. 그리고 김해숙 선생의 오르간 레슨 이후로 새로운 예 배 분위기를 가져온 것은 전자오르간 구입이었다. 그러나 오르간을 성가곡과 협연하여 활용한 것은 김용규 지휘자가 부임하고 난 후였다. 처음으로 관현악이 반주에 협연했 고, 김창혁, 이종수, 조형래, 김라혜, 황혜원, 황혜경(바이올린)과 김라영, 민병권(첼로) 과 조안래, 강지윤(플룻) 등이 오늘날까지 맥을 유지하고 있다. 성가곡으로 모차르트를 비롯한 명성가곡들을 반복 연습하여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 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열심 또한 대단하여 특별새벽기도회 때는 지휘자가 직접 회 중 찬송 반주까지 맡아 했다. 그 믿음의 전이가 오늘도 박선자 집사의 경우 매일 새벽 기도회에 반주로 봉사한다. 김용규 선생과 함께 온 박순덕 집사의 봉사는 오늘까지 이 어지고 있으며 김경원 선생은 낮예배 시간 김해숙 선생 후임으로 전자오르간 반주를 해 오고 있다. 1996년 권덕준 집사의 부임으로 성가대의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 성악전공자 지휘 자는 처음이었는데 종래 지르는 식의 발성에 비해, 소리를 만들어가는 두성발성법 성 가로, 곡선정은 비록 평이한 것을 중심으로 했지만 발성 수준은 한 단계를 업그레이드 했다고 할 수 있다. 지휘자가 직접 수련회의 특강을 실시하였으며 이주왕 집사, 권영숙 집사, 조원제 장로의 solo 등으로 다양한 solo 곡들을 다루었다. 여총무제 도입으로 입체적인 성가대 자치회가 활동적으로 전개되었고 자체 친교가 활발했으며 정재용 장로의 대원 동정 소개와 3분 스피치 등으로 대원 피차간에 영적 친교를 위해 발전적인 계기가 되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 셋을 요약하면 김해숙선생의 열심과 조은진 집사��� 헌신, 조원제 장로의 20여년에 걸쳐 살아있는 위시개 소리일 것이다. (정리: 이승렬 장로)

2) 호산나성가대 호산나 성가대는 1990년 청년성가대로 운영되어 오던 것을 1992년 호산나성가대로 개편 출범하였다. 당시 성가대 김용규 지휘자의 제의로 시온성가대와 호산나성가대로 이름을 나누어 붙이게 되었다. 1992년 첫 해는 이승렬 장로가 대장 겸 지휘를 맡았고 김경원 선생이 반주자로 수고하였다. 호산나 성가대는 이승렬 장로가 당시 청년들을 중심으로 찬송가에 있는 잘 부르지 않던 찬송들을 보급할 양으로 조직되었다. 1절 2절은 성가대에서 부르고 간주 후에 3 절과 4절은 회중들과 함께 찬양 드리는 특이한 형태의 찬양이었다. 지금은 체계 잡힌 성가대로 건재하지만 첫 찬양 연습에는 지휘자 이승렬, 반주자 김경원 그리고 대원 박 순덕 세 사람이 기도하고 시작되었다. 1993년에는 위한규 장로가 대장을 맡았고 지휘는 당시 영남대학교 합창단에서 활동 을 하고 있던 김용찬 선생이 담당했다.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패기 있게 그러면서도 열심히 예배 봉사를 감당했다. 1994년에는 조원제 장로가 대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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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부터는 배종필 선생(현재 집사)가 지휘를 맡고 박순덕 선생이 반주를 맡아 현재까지 수고하고 있다. 배종필 선생은 대구지역 유수의 보아스합창단에서 주역으로 수고하고 있었던 바 성악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대단히 수준 높은 지도력을 발휘하여 호산나성가대의 위상을 시온성가대에 버금갈 정도로 높여 놓았다. 특히 늘 환한 미소 로 대원들을 잘 이끌고 있다는 칭찬을 듣고 있다. 박순덕 선생(현재 집사)은 피아노과 출신 전공자로서 주일 낮 시온성가대 반주로 수고함과 동시에 저녁예배 시에는 호산나 성가대 반주자로서 수고해 오고 있는데, 항상 맑은 모습이 대원들과 교인들 모두에게 편안함을 주었고 성실한 봉사는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두 사람은 98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룸으로써 호산나성가대의 ‘화합의 본’(?)이 되기도 했다. 1995년부터 장년부에서도 호산나성가대에 봉사하는 인원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현재 는 오히려 장년 중심으로 활성화되어 운영되고 있다. 1996년부터 대장을 맡은 김유수 열집사의 헌신적인 노력 또한 호산나성가대의 성장을 가져 온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 다. 현재 연습은 주일 저녁 5시에 모여서 하고 있다. 1997년부터는 호산나성가대의 늘 어난 식구들의 관리와 사무를 돕기 위해 총무가 선임되어 수고해 오고 있는데 장금석 집사(1997), 이문숙 선생(1997), 채귀매 집사(1998)가 봉사하였고, 현재 장길식 집사 (1997-현재), 김영숙(1998-현재) 집사가 봉사하고 있다. (정리: 편집부)

3) 한빛중창단, 학생성가대 교회 창립 초기부터 중고등부 회원 중심으로 헌신예배 때나 기타 예배 시에 특송을 해 오던 것이 1986년 한빛중창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86년 중창단으로 발전하던 첫 해 대장은 조병학 선생이 맡았고 박만은 전도사가 지휘를 하고 진선미 선생이 반주 를 맡았다. 출범하여 운영되어 오다가 1990년부터 학생성가대로 개편되었다. 젊은 패 기가 항상 웃음이 넘치게 하였다. 1988년에는 이승렬 집사(현재 장로)가 대장을 맡고 김용찬 선생이 지휘를 하였고, 1990년과 1991년에는 대장이 정재용 장로로 바뀌고 반주자도 김미경 선생으로 바뀌었 다. 1992년부터는 호산나성가대로 개편되어 예배 성가를 맡는 공식 성가대로 발전했다. (정리: 편집부)

4) 다섯달란트 찬양단 학생성가대가 호산나성가대로 개편된 뒤 고등부 예배 때 찬양부가 찬양 인도를 맡게 되었는데 이 조직이 발전하여 1995년에는 다섯달란트란 이름의 찬양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다섯달란트는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말씀을 토대로 1995년에 학생들 자 체적으로 만든 찬양팀이다. 이후 매년 동,하계 수련회에 찬양집회를 인도하고 있으며 고등부 내에서 찬양을 활성화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96 대구성빈교회 20년사 제1기는 진재민(당시 고등부 회 장), 김창혁, 김형구 등 당시 고등 부 임원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했고, 1996년에는

류세영,

1997년에는

은현수, 1998년에는 류세미가 리더 를 맡았다. 1999년에는 안성환, 조 형래, 황혜원 등이 주축이 되어 이 끌었고, 2000년에는 황희영을 리더 로 하여 맥을 이어 가게 된다. 다섯 달란트 찬양단은 전자기타와 키보 드 등 악기를 동반하여 찬송가 보 다는 찬양곡을 중심으로 연주를 하 였다. 특히 수련회와 발표회(카르포

다섯달란트 소식지 제2호(1999.8)

스의 밤 행사)에서 실력 발휘를 하였는데, 특히 1996년 여름 중고등부 연합 여름수련 회(영천 정각분교)의 기도회에서 다섯달란트의 찬양 인도는 참석한 모두에게 은혜 충 만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놀라운 기억을 진하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또한 매년 한차례 CCM 콘서트를 통해 찬양의 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현재 다섯달란 트의 초창기 멤버들을 중심으로 '하늘사람들'이 구성되어 현재는 다섯달란트의 출신이 자연스레 하늘사람들로 이어져 저녁예배 찬양시간을 섬기고 있다. 고등부 아주 바쁜 시간임에도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이들의 찬양에 관한 열정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하리라 생각된다. (정리: 편집부)

5) 샬롬샬롬 성가대 성빈교회 소년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소년부 성가대이다. 1989년부터 조 직되어서 20여 명의 소년부 아이들과 지휘자, 그리고 반주자 선생님들이 힘을 합쳐 찬 양을 연습하고 그것으로 소년부 예배를 돕고 있다. 처음 조직된 초창기에는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하던 김해숙 선생님이 지휘를 맡아 하셨고, 매주 아침 예배가 시작되기 전 삼십 분의 연습과 주일오후의 연습, 그리고 특 별한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평일 방과 후에도 모여서 매일 연습하는 등 성가대의 기량 이 극대화된 시기였다. 그 당시 성가대원으로서 혹독한 훈련을 받은 어린이들은 지금 은 청년회에 소속되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배대석, 김형구, 김창혁, 진재민, 류 세영, 박태홍, 정승락, 조안래, 정지영, 김현진, 배지은, 류세미 등등 찬양단에 소속되어 활동했거나 찬양으로, 반주로 섬기는 등 찬양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 당시엔 동노회 어린이 대회, 초교파 어린이 대회 등 여러 대회에 참가하고 대구 어린이 회관 꾀꼬리 극장에서 발표하는 등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한 시기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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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반주자로는 진선미, 김경원 등이 수고하였다. 2대 지휘자로는 지금 현재 소년부 부장인 김신애 집사님으로서 그 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엄한 지 휘자였던 김해숙 선생님과 달리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은혜로운 복음송가를 합창곡 으로 도입하였고 학교에서 합창을 지휘한 경험을 살려 아이들을 지도하였다. 한편 아 이들의 상황도 그 전과 많이 달라져서 학원에 다니는 등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게 되었 다. 따라서 주중에 모여 연습하는 합창보다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기량을 발굴하는 독 창지도로, 동노회 대회, 전국대회에서 채영현, 조창대가 금상을 수상했다. 반주자로는 배지은 청년과 박선자 집사님께서 수고하였다 3대 지휘자로는 현재 봉사하고 있는 조안래 청년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찬 양,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래 기억되는 찬양” 이라는 목표로 곡을 선곡하고 함께 연습한 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좋다’ 라고 여겨지는 레퍼토리에서 벗어나서 아이들을 위해서 작곡된 곡, 아동들이 쉽게 익힐 수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로서 감동을 줄 수 있는 곡을 찾아서 들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98년, 소년부 전도사님이셨던 최명식 전도사님이 인사를 할 때, “샬롬”(평안)이라고 하면, “샬롬”이라고 대답한 데에서 지금 의 샬롬샬롬이라는 성가대 이름이 붙여졌다. 한 때 성가대 출석 아동 수가 8~9명 밖에 안되는 등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많은 소년부 선생님들의 관심과 기도 덕분에 다시

20명 이상의 아이들이 성가대 석을 메우게 되었다. 반주자로는 박선자 집사님이 수고 하셨고 현재는 정지혜 청년이 봉사하고 있다. 아이들을 달래가며, 많은 수의 아이들이기에 때로는 야단쳐 가며 성가대를 이끌어야 하는 등 여러 어려운 점들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맑은 영혼들인 아이들과 함께 찬양 하는 일은 여전히 아주 매력적인 일이다.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서 겪게 될 삶의 힘든 순간마다 성가대에서 함께 찬양한 곡들을 기억하며 부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정리: 조안래, 현 지휘자)

6) 성빈찬양단 1990년부터 소박하게 운영되어 오던 청년성가대가 1992년 호산나성가대로 본 궤도 에 오르게 되면서 1994년까지는 청년들이 호산나성가대의 주축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후 호산나성가대가 장년층 중심으로 예배성가를 맡게되면서 자연스럽게 청년 중심의 찬양단이 새로 구성되게 되었다. 1994년 출범한 청년부 찬양단은 첫 해에는 이수락 청년이 리드하였고, 1995년에는 김대중 청년이 리드하였다. 1999년 김형구 청년의 리드하에 에는 하늘사람들이란 이름 을 내걸기 시작하였고 청년회 모임뿐만 아니라 주일저녁 찬양예배 시간에 앞서 15분간 성도들과 함께 찬양하는 시간의 인도를 맡기 시작했다. 그동안 청년부에 부속된 자치 회 형식으로 운영되던 것은 2000년부터는 조원제 장로가 대장을 맡고 조대호 청년이 리더를 맡아 공식적인 찬양단으로 활동의 수위를 높여 출범하였다. (정리: 편집부)


98 대구성빈교회 20년사

(2) 주일학교(아동부) 1980년 1월 6일 성빈교회가 창립되고 2주가 지난 1월 20일(1월 셋째 주일) 오전 9 시에 아동 7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어린이예배를 드리면서 성빈교회 어린이주일학교가 시작되었다. 같은 해 6월 8일 주일부터는 오후예배(16:30)도 모이기 시작했고, 7월 23 일부터 26일까지 첫 여름성경학교에는 교사 8명, 어린이 150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었으며, 12월말에는 30여명의 어린이로 늘어나 중고등부와 함께 성탄축하발표회도 가지게 되었다. 초대 부장은 위한규 집사(현재 장로)였고, 1984년에는 오상연 집사(현 재 장로), 1985년부터 1988년까지는 조원제 집사(현재 장로)가 부장을 맡아 이끌었 다. 1981년 정재기 교육전도사의 부임으로 어린이예배는 활기를 띠며 부흥되었고, 여 름성경학교도 해마다 열었다. 1982년에는 ‘아동부 주일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태호 교육전도사가 부임하여 지 도를 맡았다. 1985년부터는 박만은 교육전도사가 아동부 지도를 맡았고 1988년에 이 종권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1989년에는 취학 전 어린이 교육을 전담하는 ‘유치부’와 초등학교 학생 교육을 전담 하는 ‘아동부’로 분리하였다. 이후 유치부는 이명숙 집사가 부장을 맡아 독립하였고, 아 동부는 김상순 집사(현재 장로)가 부장을 맡고 이정환 집사가 총무를 맡아 성장과 부 흥을 이끌었다. 이후 아동부가 계속 빠른 속도로 부흥하면서 교사도 20여명으로 늘어 났다. 아동부의 부흥에 따라 이승렬 장로가 아동부의 재분리 제안을 하게 되었고, 이를 수 용하여 1991년에는 ‘아동부’를 ‘유년부’와 ‘소년부’로 다시 분리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상 아동부 주일학교의 변천과정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제1기: 어린이 주일학교(1980년-1981년) 제2기: 아동부 주일학교(1982년-1988년) 제3기: 유치부·아동부 주일학교(1989년-1990년) 제4기: 유치부·유년부·소년부 주일학교(1991년-현재) 분리하기 전 아동부의 주요 행사들은 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략 아래와 같다. 면 매년 1월에, 신년예배와 친목회, 3월에 성경고사, 4월에 부활절예배와 발표회, 5월 에 모범어린이 표창, 대외행사 참가, 어버이주일 행사, 6월에 성경고사, 7월에 교사강 습회, 헌신에배, 8월에 여름성경학교, 동노회 어린이대회 참가, 9월에 성경고사, 10월 에 야외예배, 불우이웃돕기, 11월에 추수감사예배, 교사세미나, 12월 성탄발표회, 수료 예배 등을 가졌다. 교육에 대한 평가와 대외활동이 왕성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상 정리: 편집부)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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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치부 1988년까지 아동부 주일학교로 운영되던 중 1989년 미취학 아동을 분리하여 유치부 주일학교가 출범하였다. 첫해 부장은 이명숙 집사가 맡았고 교사로는 강영애, 김옥련, 지은희 선생이 수고했다. 1984년 3월부터 이명숙 집사가 맡아 운영해 오던 선교유아원이 1989년 교회 부설 유치원으로 발전한 것이 유치부 주일학교의 성장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유치원생들이 자연스레 주일학교에 출석하게 되었고, 이는 지금까지 성빈교회 각급 주일학교의 왕성 한 모습의 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1991년까지)는 전담 교역자 없이 타부서 교역자들이 교대로 예배 인도를 하였 다. 1989년과 1990년은 곽금배 전도사(고등부), 이종권 교육전도(중등부), 이장섭(아 동부) 교육전도사가 담당하였고, 1991년에는 김덕수 전도사, 이종권, 이순기 교육전도 사가 함께 담당하였다. 1991년 성빈유치원이 폐원하면서 유치부 주일하교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게 되었 고, 이듬해 1992년에는 김덕수 전도사가 유치부 전담교역자로 배정되어 유치부가 새로 운 재출발을 하게 되었다. 1992년에는 조은진 집사가 부장을 맡고 백춘옥 집사가 총 무, 이은희 집사가 서기를 맡았으며 교사도 10여명으로 확충하여 유치부의 부흥을 이 끌었다. 1993년에는 이종권 전도사, 1994년부터 1995년까지는 임은희 교육전도사, 1996년에는 김제민 목사, 1997년부터 1999년까지는 도기봉 전도사(1999년에 목사 안 수)가 담당하였고, 2000년 새해에는 박승규 목사가 맡게 되었다. 유치부의 성장과 발전은 1993년부터 현재까지 부장을 맡고 있는 김유수열 집사와 1992년부터 현재까지 총무를 맡아 온 백춘옥 집사 두 사람의 수고를 빼어 놓고는 설 명하기 어렵다. 미취학 아동이라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챙기면서 주일학교를 운영하는 어려움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 어려움을 온전히 헌신으로 감당한 두 사 람의 공이 오늘 성빈주일학교의 왕성한 부흥의 대단히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할 것이 다. 유치부 주일학교에는 학모들이 자원하여 다수 교사로 수고하고 있고, 청년들도 찬 양율동 인도, 반주, 서기로 여럿 자원하여 수고하고 있다. 예배와 교육은 중예배실에서 갖다가 1994년 9월 교육관이 준공되면서 교육과 1층으 로 장소를 이동하였고 현재는 유아들의 화장실 사용과 교육기자재 활용의 편리를 위해 다시 1층 중예배실로 이동하여 갖고 있다. 년간 주요행사는 해마다 다소 다르지만 대략 아래와 같다. 1월에 신년예배, 신입생환 영행사, 2월에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외우기, 3월에 찬송가 부르기대회, 4월에 친구초청 잔치, 5월에 야외예배, 6월에 학부모 공개수업, 7월에 여름성경학교, 8월에 찬송가부르 기대회, 9월에 반별친목회와 노방전도, 10월에 성경요절외우기, 11월 추수감사주일 행 사, 12월 성탄절 발표회와 수료예배 등이다.


100 대구성빈교회 20년사 2) 유년부 유년부 주일학교는 1980년 이후 ‘어린이 주일학교’, 1982년 이후 ‘아동부주일학교’란 이름으로 운영되다가 1989년 유치부와 아동부로 분립하였고, 1991년부터는 다시 유년 부와 소년부로 분립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유년부주일학교’로 분리 출범한 초기, 교육은 이종권 교육전도사가 담당하였고(1992 년까지) 이후 임종필 교육전도사(1992년-1994년), 김명일 교육전도사(1994년-1995 년), 임은희 교육전도사(1996년-1997년)가 맡아왔고, 1998년부터 현재까지 김재곤 교육전도사가 맡아 지도하고 있다. 소년부와 분립한 초기, 즉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이승렬 장로가 부장을 맡아 이끌 었고, 권록이 집사와 신용석 선생이 총무를 맡아 각종 사무를 보조하였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7년간은 류강선 집사가 부장을 맡아 이끌고 있으며 조은진 집사가 1997년부 터 총무로서 살림을 총괄해 오고 있다. 찬양율동 인도, 반주, 서기로 청년들이 다수 수 고 하고 있으며 현재 보조교사 포함 교사 약 15명이 11개 반을 맡아 지도하고 있다.

유년부 주보 (1999.1.31)

연간 행사내용은 해마다 다소 다르지만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월에 신년예배, 반별친교회, 2월 겨울성경학교, 3월에 친구초청 또는 전도대회, 4월에 부활 절예배, 달란트잔치, 5월에 야외예배, 어버이주일 행사, 동노회어린이대회 참가, 6월에 성경고사 또는 퀴즈대회, 요리대회, 7월에 여름성경학교, 8월에 영남어린이대회 참가, 9월에 반별 발표회, 10월에 야외예배 또는 운동회, 11월에 추수감사예배와 성경고사, 12월에 성탄발표회와 수료예배 등이다. 동노회 어린이대회와 영남 어린이대회에는 매 년 구연동화, 성경고사, 글짓기, 그리기, 성가, 암송 등 각 분야에서 다수의 입상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이가은 어린이는 전국대회 구연동화부문에서 은상을 획득하기도 했 다. 특히 여름방학 중 가져오던 여름성경학교는 1990년부터 외부 장소로 이동하여 여름 수련회로 갖기도 했다. 1990년에는 금릉군 남면 운남교회에서, 1991년은 본교회에서, 1992년은 전교인수련회로 달성 비슬산기도원에서, 1993년 역시 전교인수련회로 군위 의흥면 동부초등학교에서, 1994년에는 소년부와 연합하여 군위 의흥면 동부초등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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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여름수련회를 가졌다. 그러나 유년부는 아동들이 아직 어리므로 저녁에 부모를 찾 는 경우가 많고 학부모들도 교회에서 수련회 개최하기를 원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1995년 이후에는 본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지고 있다. 1998년부터는 동계수련회도 갖 기 시작했다. (정리: 편집부)

3) 소년부 1980년 1월 20일 ‘어린이예배’로 시작한 주일학교의 전통은 1982년부터 ‘아동부주일 학교’로 개칭되었고, 1989년 ‘유치부’와 ‘아동부’로 분리한 뒤, 1991년부터 ‘아동부’가 다시 ‘유년부’와 ‘소년부로 분립하면서 소년부 주일학교의 역사가 시작하게 되었다. 1991년 초등학교 4,5,6학년 30여명과 교사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년부 주일학교 가 출발하게 되었고, 초대 부장으로 김상순 집사, 초대 담당교역자 이순기 교육전도사 로 시작하였다. 소년부는 자체 ‘꽃동산 주보’를 처음으로 만들게 되었고, 첫해 여름성경학교는 김상 순 집사댁 우사로 쓰던 청도 농가에서 열였다. 장마철이라 비가 오는 가운데 소똥 냄 새가 진동하는 축축한 시멘트 바닥에서 찬양을 드리고 조별발표회도 가졌는데 당시 참 석자들은 아직까지 그 기억을 생생히 갖고 있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윤형택 교육전도사가 지도를 맡았고, 1994년부터 1995년까 지는 김명일 교육전도사가 지도를 맡았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정미숙 교육전도사 가 지도를 맡았다. 1997년 후반부터 1998년까지는 최명식 교육전도사가 담당하였고, 1999년부터 신성재 교육전도사가 부임하여 소년부를 지도하고 있다.

소년부 주보 (1998-1호)

초대 김상순 부장에 이어 1994년부터 현재까지 이정환 집사가 7년간 소년부 부장을 맡아 이끌고 있으며, 10여명의 교사가 분반 담임을 맡아 수고하고 있고, 청년들이 서기 로 협력하고 있다. 소년부의 주요 행사는 해마다 여름방학기간 중 야외로 나가서 갖는 여름수련회이다.


102 대구성빈교회 20년사 1991년에는 영천군 화산면 석천교회에서, 1992년에는 전교인 연합수련회로 비슬산기 도원에서, 1993년(전교인 연합)과 1995년에는 군위군 의흥면 동부초등학교에서 가졌 다. 1996년 여름수련회는 청도군 매전면 강가 별장 창고로 쓰던 공간에서 가졌고, 1997년과 1998년에는 군위 화수교회에서 가졌다. 특히 이 때 야간 행사로 마귀들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요단강을 건너 천국에 이르러 면류관을 쓴다는 <센타 학습>이 있 었다. 깜깜한 밤에 마귀들로 분장한 채정수 집사, 이명복 집사 등 교사들의 모습에 감 쪽같이 속은 순진한 소년부 아동들이 “나는 예수님이 좋아요”, “마귀는 싫어요” 하면서 울부짖던 일, 강을 건너 면류관을 쓰고 찬양을 부르면서 좋아서 울던 일, 캠프파이어를 하려고 강건너 산에서 불을 내리다가 나뭇가지에 걸렸을 때 화재가 날까봐 가슴 졸이 며 어린이와 교사 모두 한마음이 되어 기도하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아빠와 함께 한 조별 발표회 시간에는 이옥식, 정재규, 장금석 집사를 여자로 분장시키며 머리에 핀 을 꽂아, 온 캠프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1999년에는 경산 계림수련원에서 수련 회를 가졌다. 매년 열리는 동노회어린이대회와 영남지역 어린이대회 참가 역시 소년부의 주요 행 사였다. 특히 동노회대회에서 해마다 좋은 성적으로 입상하면서 영남어린이대회 참가 자가 많아졌고, 특히 전국어린이대회에서도 여러 입상자를 배출하는 우수한 성적을 거 두었다. 조창대 어린이는 1996년 전국어린이대회 독창부문에서, 장호성 어린이는 1998년 전국어린이대회 동화구연에서 각각 금상을 획득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9년 신성재 교육전도사 부임 후 매주일 오후마다 복현여중 운동장에서 축구교실 을 열어 이웃 교회와 시합을 하기도 하면서 남자 어린이들의 친교를 다져 나가고 있 다. 현재 소년부에는 ‘샬롬샬롬찬양대’라는 어린이 찬양대가 있고 10여명의 교사와 40여 명의 어린이가 소속되어 교육받고 있다. 소년부에서 믿음생활을 한 친구들이 지금은 청년부와 중고등부에 소속되어 있고 교회의 각 부서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으며, 믿 음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정리: 김신애 집사, 2000년 소년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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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일학교(중고등부) 주일학교 중고등부는 1980년 1월 6일 교회 창립 후 3주째인 1월 20일 주일 오후 2시에 교사1명 학생 1명 이 참석한 가운데 예배를 가지면서 출범하였다. 출석 회원이 10여명으로 늘어나게 되면서 그해 6월 7일 학 생회 임원을 선출하여 초대 회장으로 김의태, 총무로 김영일 서기로 송준호를 뽑아 자치 조직을 갖추었다. 서정욱 선생이 지은 성빈학생의 노래를 부르며 헌신을 다짐하였다. 아직 자체 규모가 적었기에 첫해 여름수련회는 청년 회와 연합으로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가졌다. 1980 년 8월 30일 개관된 성빈도서관은 중고등부 학생회의

성빈학생의 노래

발전을 가져온 주요 근거가 되었다. 주말이나 여유 있는 시간에 는 의례 학생회원들이 도서관에 모여서 책을 읽으면서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1981년 정재기 교육전도사가 부임하여 지도를 맡으면서 중고 등부가 활성화되었다. 1월 26일부터 28일까지 중고등부 학생회 첫 동계수련회를 청천다락원에서 가졌다. 겨울 방학 중 출석 회 원이 꾸준하게 늘어나서 전년도까지 평균출석 10여명이던 학생 회가 평균출석 30여명으로 급성장하였다. 4월 12일 주일 저녁예배를 처음으로 중고등부학생회 헌신예 배로 드렸고, 6월 28일, 8월 23일 주일에도 헌신예배를 드렸다. 6월 6일 동구 학생회친선체육대회에 참가하여 3위를 차지했다.

성빈학생여름수양회 팜플렛(1981.7)

7월 5일 주일부터 주보가 6면으로 개편되면서 그 중 2면이 학 생회로 배정되어 예배순서와 소식을 교회주보로 함께 발행하기 시작했다. 7월 27일부터 30일까지 칠곡 다부동 청년수양관에서 학생 34 명 교사 10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를 죽여 그리스도를 살리자」 라는 주제로 두 번째 여름수양회를 가졌다. 1981년 8월 17일 중고등부 학생회 금식기도회를 갈멜산기도원에서 가졌고 9월부 터는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 토요기도회 모임을 시작하였다. 1981년 중고등부학생회의 기타 주요 행사를 보면 부별탁구대 회, 성경고사, 찬송가경연대회, 퀴즈대회, 하이킹, 교회대청소, 전도, 회지 발간, 성탄발표회, 친목회 등이었다. 신앙훈련과 전도

학생회지 성빈학생 제2호(1981)


104 대구성빈교회 20년사 및 친교 모두에 힘쓴 활기찬 모습을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재기 교육전도사가 군입대 사유로 사임 하게 됨에 따라 이태호 교육전도사가 부임하 여 1982년부터 1984년까지 학생회 지도를 맡았다.

1982년에는

조원제

집사가

부장

(1983년까지)을 맡고 서정렬, 서정욱 집사가 교사를 맡아 중고등부 교육이 강화되었고, 연평균 출석회원도 40명선으로 성장하였다. 2월 21일 주일을 졸업축하예배로 드렸고, 상 반기에 신입생환영회, 찬송가경연대회, 금식

학생회지 성빈학생 제3호(1982.12)

학생회지 성빈학생 제5호(1984.12)

학생회지 성빈학생 제6호(1985.12)

학생회지 성빈학생 제7호(1986.12)

기도회, 부활절촛불예배, 헌신에배, 체육대 회, 등산 등 행사를 가졌다. 세 번째 여름수 련회는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청천다락원 에서 가졌다. 하반기에는 성경고사, 산상기도 회(주암산기도원, 30여명 참석), 헌신예배, 회지 발간, 성탄축하행사 등을 가졌다. 1983년에는 교사로 이승렬 집사, 김경구, 정석주 선생이 지도를 맡았다. 상반기에 졸 업예배, 산상기도회, 고난주간 금식기도회, 찬송가경연대회, 헌신예배, 전도대회, 야외예 배, 총동원주일, 체육대회, 성경퀴즈대회 등 의 행사를 가졌다. 6월 6일 가진 연합체육대회에서는 우승을 하였다. 1983년 하계수련 회는 군위 내리교회에서 가졌다. 8월에 성경퀴즈대회와 전도대회, 9월에 헌신예배, 10 월에 총동원 주일 행사, 11월에 추수감사잔치, 12월에 총회를 갖고 성탄축하행사 및 친목회를 가졌다. 1984년에는 서정욱 집사가 새로 부장을 맡아 연간 산상기도 회, 성경고사 및 전도를 강조하였다. 특히 여름수련회는 청천다 락원에서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고(요3:30)」란 주제로 가졌 다. 7월부터는 토요성경모임이 강화되어 기도회와 성경읽기순 서로 진행되었으며, 12월 둘째 주 성서주일에는 제1회 전교인 성경퀴즈대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는 박만은 교육전도사가 학생회 지 도를 맡았고, 위한규 집사가 부장을 맡아 이끌었다. 기도와 전 도를 강화하였는데 특히 박만은 교육전도사가 지은 전도가를 주제가로 삼아 전도에 힘썼다. 학생회지도 매년 꾸준히 발간하 였다. 출석회원도 꾸준히 증가하여 1985년 하반기에는 평균출

학생회 「전도가」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105

석 50여명, 1986년에는 60여명, 1987년에는 70여명으로 발전하였다. 식구수가 늘어남 에 따라 교사진도 중등부와 고등부로 구분하여 확대 운영하였다. 그러나 늘어난 규모 를 감당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1988년부터 중등부와 고등부를 분립하게 되었다.

1) 중등부 성빈교회 중등부는 1987년까지 중고등부로 통합 운영되다가 1988년 중등부로 분립 하였다. 1988년 1월 3일 교사 포함 26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등부 첫 번째 예배를 드 렸고 현재 평균 50여명이 출석하고 있다. 중등부는 1997년까지 오전 9시에 모였으나 1998년 이후 고등부와 시간을 바꾸어 오후 2시에 모이고 있다. 첫해부터 1991년까지는 이종권 교육전도사가 담당하였고,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는 임종필 교육전도사, 1994년 후반부터 1995년 중반까지 서영석 교육전도사, 1995년 말부터 1997년 중반까지 이재철 교육전도사, 1997년말부터 1998년까지, 석근복 교육 전도사가 지도를 맡았고, 1999년부터 정용하 교육전도사가 담당교역자로서 이끌고 있 다. 초대 부장은 김기순 집사가 맡았으며, 첫해 교사로는 정재화, 김용찬, 최귀정 선생이 수고하였다. 1990년에는 오상연 집사가 부장을 맡았고, 1992년부터 현재까지 박기태 집사가 부장을 맡아 이끌고 있다. 그동안 김미성, 정창모, 조병학, 김선영, 도주은, 함상 석, 주남옥, 박외화, 배영근, 최태숙, 이계연, 김창환, 장현기, 장영숙, 배영석, 권록이, 이유락, 권영아, 정태균, 김해선, 김미정, 여남경, 우병철, 김지혜, 신용석, 김찬진, 박숙 경 선생이 교대로 수고하였고, 2000년 새해 교사로는 이계연 집사, 김미정, 김정혁, 김 지혜 선생 등이 수고하게 되었다. 중등부는 교역자의 변동이 많아서 연간 행사의 내용도 연도별로 차이가 상당이 있지 만 연간 주요 행사들을 보면 대체로 아래와 같다. 1월과 2월에 신입생환영회, 동계수련 회, 3월과 4월에 찬양발표회, 전도대회, 5월과 6월에 야외예배, 체육대회, 성경고사, 7 월과 8월에 하계수련회, 성경퀴즈대회, 기도회, 9월과 10월에 체육대회, 카르포스의 밤, 11월과 12월에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행사, 중3위로회, 정기총회 등이다. 카르포스의 밤 행사는 1989년 중고등부연합발표회로 처음 출발하여 1999년 현재 제 11회째 이어지고 있는 주요 행사이다. 프로그램은 중고등부가 분담하여 참여하였다. 성 시, 수화찬양, 율동, 성가찬양, 신앙콩트, 성극 등 그해 그해마다 다양한 순서들로 편성 되었다. 해마다 여름방학 중에 준비하여 가을에 발표회를 가졌으나 1991년에는 봄방학 을 이용하여 발표하기도 했다. 방학을 이용하여 외부 장소에서 가져 온 동계수련회와 하계수련회도 중등부의 주요 행사이다. 하계수련회의 경우 초기에는 중고등부 연합으로 행사를 가졌는데, 1988년에 는 경주 감포초등학교에서, 1989년에는 성주 수륜면 수성교회에서, 1990년에는 금릉 군 남면 운남교회에서, 1991년에는 영천 화산교회에서 수련회를 가졌다. 1992년은 전 교인수련회로 달성 비슬산기도원에서, 1993년 역시 전교인수련회로 군위 의흥면 동부


106 대구성빈교회 20년사 초등학교에서 가졌고, 1994년에는 영천 화산교회에서, 1995년에는 영일군 기계면 봉 좌산기도원에서, 1996년에는 영천군 자천면 정각분교에서 중고등부 연합 여름수련회를 가졌다. 1997년부터는 중등부 독자적으로 여름수련회를 가졌는데, 1997년에는 성주 양정교회에서, 1998년에는 주암산수양관에서, 1999년에는 경주 의곡교회에서 가졌다. 1990년부터 시작한 동계수련회는 주로 중등부 단독으로 본교회에서 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외부장소에서 수련회를 갖기도 했는데, 1991년에 주암산기도원, 1993년에 대 구산기도원, 1994년에 청천다락원에서의 예를 들 수 있다. 정용하 전도사 부임 이후에는 중등부 전도운동을 강화하여 6월과 11월에 총동원전도 주일 행사를 갖고 있는데 중등부의 부흥을 가져오고 있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2) 고등부 성빈교회 고등부는 1987년까지 중고등부로 통합 운영되다가 1988년 고등부로 분립 하였다. 1988년 1월 3일 교사 포함 27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고등부 예배를 드렸고, 현재 40여명이 출석하고 있다. 고등부는 1997년까지 오후 2시에 모였으나 현재는 중 등부와 시간을 바꾸어 오전 9시에 모이고 있다. 고등부 담당교역자로는 1988년에 이종권 교육전도사, 1989년부터 1990년까지 곽금 배 전도사, 1991년 이순기 교육전도사, 1992년 이종권 교육전도사, 1993년부터 1994 년 4월까지 윤형택 교육전도사, 1994년 10월부터 1999년말까지 서영석 교육전도사가 맡아 수고하였다. 고등부로 분립한 첫 해 부장은 위한규 집사가 맡았고, 1989년에는 조원제 장로, 1990년부터 1992년까지는 정재용 집사, 1993년에는 김기순 집사가 맡아서 수고하였 고, 1994년부터 현재까지 배영근 집사가 부장을 맡아 고등부를 이끌고 있다. 교사로는 초기에 서정욱, 이승렬, 박기태, 이찬경, 정재화, 강강희, 김미성, 김동필, 이영근, 이정환, 이명숙, 김순자, 신영옥 선생 등이 수고하였고, 서영석 전도사가 부임 한 1994년 이후에는 김대중, 김상협, 박복미, 이미숙, 최춘옥, 김광식, 김용찬, 김종건, 도주은, 최영귀, 김태수, 이승렬, 조진호, 이명복 선생 등이 수고하였다. 2000년 새해에 는 권정오, 김종건, 김정순, 도주은, 이명복, 이수락, 조진호, 최영진 선생이 8개 학급을 맡아 고등부를 지도하게 되었다. 연간 주요행사를 보면 1월에 신입생환영회, 동계수련회, 2월에 반별친목회, 3월과 4 월에 찬양대회, 체육대회, 5월에 야외예배, 6월에 연합체육대회, 7월에 하계수련회, 8 월에 야유회, 9월에 카르포스의 밤, 10월에 성경퀴즈대회, 11월에 고3위로회와 총회, 12월에 성탄축하행사와 졸업예배 등이 있다. 카르포스의 밤 행사는 1989년 중고등부연합발표회로 처음 출발하여 1999년 현재 제 11회째 이어지고 있는 주요 행사이다. 프로그램은 중고등부가 분담하여 참여하였고, 고 3졸업예정자들, 교사들의 특별순서가 들어가기도 했다. 성시, 수화찬양, 율동, 성가찬 양, 신앙콩트, 성극 등 그해 그해마다 다양한 순서들로 편성되었다. 해마다 여름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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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 준비하여 가을에 발표회를 가졌으나 1991년에는 봄방학을 이용하여 발표하기도 했다. 주로 토요일 저녁을 이용하여 친구들을 초청하여 전도집회의 성격을 겸한 행사 로 가졌으며, 중고등부 중심의 축제로 진행되었다. 방학을 이용하여 외부 장소에서 가져 온 동계수련회와 하계수련회도 고등부의 주요 행사이다. 하계수련회의 경우 초기에는 중고등부 연합으로 행사를 가졌는데, 1988년에 는 경주 감포초등학교에서, 1989년에는 성주 수륜면 수성교회에서, 1990년에는 금릉 군 남면 운남교회에서, 1991년에는 영천 화산교회에서 수련회를 가졌다. 1992년은 전 교인수련회로 달성 비슬산기도원에서, 1993년 역시 전교인수련회로 군위 의흥면 동부 초등학교에서 가졌고, 1994년에는 영천 화산교회에서, 1995년에는 영일군 기계면 봉 좌산기도원에서, 1996년에는 영천군 자천면 정각분교에서 중고등부 연합 여름수련회를 가졌다. 1997년부터는 고등부 독자적으로 여름수련회를 가졌는데, 1997년에는 하양 복음수양관에서, 1998년에는 건천 OK그린연수원에서, 1999년에는 청천다락원에서 가 졌다. 1997년 여름수련회에서는 주변 야산을 이용하여 천로역정과 세족식을 가졌는데 김경구 집사를 비롯한 도우미들의 헌신적인 수고로 더불어 참석한 모두가 구원의 열망 을 진하게 나눠가졌을 뿐만 아니라 사랑과 봉사의 실천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후 해마 다 여름수련회에서 저녁 특별순서로 가진 캠프파이어, 그리고 1999년 청천다락원에서 가진 미션 등반대회 등도 기억에 생생 하다. 특히 대부분 수련회 때마다 식사 지원을 위해 동행하여 수고해 준 권사 님들과 집사님들의 노고도 잊을 수 없 다. 1990년부터 시작한 동계수련회는 주 로 본 교회에서 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외부장소에서 수련회를 갖기도 했는데, 1990년에 청천다락원, 1991년에 주암 산기도원,

1993년에

대구산기도원,

1994년에 청천다락원에서의 예를 들 수 있다.

고등부 주보(1999.2.24)

고등부는 ‘다섯달란트’란 이름의 찬양단이 조직되어 고등부 예배시에 찬양을 인도하 고, 수련회나 연합체육대회 등 행사시에도 찬양 인도를 맡고 있다. 동원되는 악기도 늘 어나고 있으며, 수시로 닦은 실력을 연말에 발표회로 공연하고 있다. 고등부는 최근 급성장하여 교육관 고등부실이 비좁아 예배 때마다 서로 끼어 앉아 예배를 드리는 불편함이 있는데, 속히 교회가 신축되어 늘어난 고등부 식구들이 좀더 여유롭게 예배와 교육활동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정리: 김종건 집사, 고등부 교사)


108 대구성빈교회 20년사

(3) 청년부 성빈교회 청년회는 성빈교회 개척 이전가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4월 계 명대학교에서 10여명의 신앙공동체가 교목실장이던 이장식 목사를 지도교수로 하여 ‘달란트회’란 이름으로 출발한 데서 출발한다. 이 ‘달란트회’가 구국기도회 건으로 1974 년 강제해체되었다가 1977년 3월 ‘성빈회’란 이름으로 재출범하여 김제민 회장(현재 성빈교회 담임목사)활동을 재개하였고, 이 ‘성빈회’가 사실상 성빈교회 성립의 모체가 된 셈이다. 1980년 1월 성빈교회 설립 이후 초기에는 청년들이 교회를 이끄는 주축이었으므로 교회학교로서의 청년부가 바로 조직되지 않은 채 비공식적인 모임을 갖는 성빈교회 청 년회로 운영되었다. 1980년 7월에는 중고등부와 연합으로 하기수련회를 가졌으며, 1981년 3월 7일부터 서정렬 선생의 지도하에 토요성경공부모임을 가지면서 청년부로 의 발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마침내 1982년 1월 10일, 청년부장 위한규 집사(현재 장로), 회장 서정욱 선생, 회 원 10여명으로 청년부가 정식 발족하게 되었다. 1982년 5월에는 팔공산 등반대회를 가지면서 친목을 다졌고, 7월 15일부터 3일간 청년부 첫 여름 수양회를 가졌다. 1983 년 2월에는 청년부 주최로 성경완독대회를 청천다락원에서 가졌는데 사실상 첫 동계수 련회라고 할 수 있다. 1983년 여름방학기간에는 수련회를 대신하여 교회 건축에 협력 하였고, 1984년에는 선교100주년 선교대회에 참여에 주력하였다. 1985년 6월에는 전년도 학생회가 시작한 성경퀴즈대회의 주최를 맡아 이듬해까지 진행하였고, 1985년 여름수련회는 중고등부와 연합으로 현풍 가천교회에서 가졌다. 1985년 7월 청년회지 성빈 청년 제1호를 발간하였다. 제 호 밑에 “성(聖:): 내가 거룩 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빈(貧): 심령이 가난 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이라는

성빈교회의 주제 성구가 제시 되어 있어 성빈교회의 이념을 성빈 청년이 앞장서서 이끌 것 임을 다짐하고 있다. 4면에는 1973년 달란트회로부터 비롯 된 성빈청년회의 연혁과 청년 회 조직표 및 성빈의 노래가

성빈청년회월보성빈청년창간호(1985.7.21)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109

실려 있다. 활발했던 당시 청년들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청년월보는 지금까지 전통 이 이어져 오고 있다. 청년부의 역사는 아래와 같이 4개 시기로 구분하여 정리할 수 있다. 제1기: 제2기: 제3기: 제4기:

1980년부터 1982년부터 1992년부터 1996년부터

1981년까지 비공식 모임 청년회 1991년까지 청년부 1995년까지 제1청년부와 제1청년부 분립기 현재까지 통합 청년부

1986년부터 지도교역자가 임명되었는데, 1986년에는 박만은 전도사, 1987년에는 김 제민 전도사(현재 담임목사), 1988년부터 1990년까지는 이장섭 전도사, 1991년에는 김덕수 전도사가 담당교역자로서 청년부를 이끌었다. 1985년부터 1986년까지는 서정 욱 집사가 청년부장을 맡아 이끌었고, 1987년부터 1989년까지는 오상연 집사(현재 장 로), 1990년부터 1991년까지는 김영대 집사가 부장을 맡아 수고하였다. 12청년부로 분리된 이후 제1청년부는 담당교역자로 1992년 김제민 목사, 1993년 부터 이듬해 8월까지 이종권 전도사, 1994년 10월부터 1995년까지 서영석 교육전도사 가 지도하였고, 부장으로는 1992년, 1994년 및 1995년에는 위한규 장로, 1993년에는 김기순 장로가 맡아 이끌었다. 분리된 제2청년부는 담당교역자로 1992년 7월부터 윤형택 교육전도사, 1994년 10 월부터 김명일 교육전도사, 1995년 8월부터 연말까지 이재철 교육전도사가 지도하였 고, 부장으로는 1992년에 조원제 장로, 1993년부터 1995년까지는 오상연 장로가 맡아 서 이끌었다. 12청년부가 통합된 이후 담당교역자로는 1996년 도기봉 전도사, 1997년 이재철 교육 전도사가 수고하였고, 1997년 10월부터 현재 까지 김건동 교육전도사가 맡아 지도하고 있 다. 통합된 청년부 부장으로는 1996년에 오상 연 장로라 맡아 수고하였고, 1997년부터 이승 렬 장로가 맡아 이끌고 있다. 1998년부터 교 사진을 강화하여 김경구, 김종건 집사가 교사 로 임명되어 수고하고 있다.

청년부 월보(1999-1호)

청년부의 연간 주요행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1월에 신입생환영회, 2월 동계수련회, 3월 친교회, 4월과 5월 불우이웃돕기, 카리스 마당 및 헌신예배, 6월 연합체육대회, 7 월 교회학교 수련회 지원, 8월 하계수련회, 9월 친교체육대회, 10월 야외예배, 11월 총 회, 12월 성탄절행사 등이다. 1986년에는 여름수련회를 상주 가장교회에서 가졌고, 1987년 8월에는 문경탄광촌에 서 봉사활동을 겸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고, 1988년 여름수련회는 청송에서 가졌다. 1990년 여름수련회는 동해안(영해에서 칠포까지) 행군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고, 1991


110 대구성빈교회 20년사 년에는 문경 당포교회에서 가졌다. 1992년 동계수련회는 갈멜산기도원에서 모였고, 1992년과 1993년 여름수련회는 전교인여름수련회에 참여하였다. 1994년 여름수련회 는 안동광덕교회 수련원에서 모였고, 1995년에는 청도 금천면 수목원에서, 1996년에 는 청옥산 임간수련원에서, 1997년에는 봉화 춘양 분천교회에서, 1998년에는 팔공산 곽병원연수원에서 가졌다. 1999년 여름수련회는 “경계를 넘어” 라는 주제로 광주전남지역 성지순례 프로그램으 로 진행하였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적지, 이현 필 생가, 여수 애양원 등과 기타 문화유적지를 순례하면서 선교의 꿈을 다지는 첫 발을 내디 뎠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부활절 저녁예배를 청년부 주최 시와 찬양의 밤으로 준비하여 발 표회를 가졌다. 1989년부터는 5월 청년주간에 청년부 주최

1999년 청년부 여름수련회 팜플렛

‘카리스 마당’을 열었는데, 이 전통은 지금까지 5월 청년주간을 전후하여 청년축제로 계승되고 있다. 1991년의 경우, 첫날에는 김춘기 목사 초청 특강을 듣고, 둘째 날에는 찬양과 경배 및 성극 공연을 하였으며, 셋째 날 주일저녁예배를 헌신예배로 드리는 청 년축제를 가졌다. 1993년과 1994년에는 특강, 불우이웃돕기 일일찻집행사 및 헌신예 배로 3일간 진행하였다. 1995년과 1996년에는 불우이웃돕기 일일찻집과 헌신예배로 이틀간 행사를 가졌다. 1998년과 1999년에는 불우이웃돕기 사랑의 이어달리기대회와 헌신예배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다. 일일찻집과 이어달리기 등 모금행사에 전교인이 적극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 상가나 일반인들도 동참하여 많은 성금이 모였으 며, 이 기금은 무의탁 노인 등 불우이웃에게 전달되었다. (정리: 김종건 집사, 청년부 교사)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111

(5) 남선교회 1) 제1기(1980년-1991년) 교회 창립 초기에는 식구가 적었던 만큼 장년교인의 자치회가 따로 운영되지 않았 다. 남선교회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반석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반석 회>는 설 명절이나 기타 적절한 때에 전교인 친목회를 열어 장년 교인들의 친교와 화 합을 주도하였다. 성빈교회 남선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것은 1984년 2월이다. 초대 회장으로 위한 규 집사(현재 장로), 총무로 정재용 집사(현재 장로)가 선임되어 본격적인 남선교회 활동이 시작되었다. 첫해 연간 주요 사업은 구제, 심방, 전도의 3개 부문이었고, 경로잔 치, 친목회, 헌신예배, 주일학교 행사 지원, 교회 청소 등의 사업도 함께 하였다. 이런 사업 기조는 이후 계속 유지되었다. 1984년 남선교회 주최로 실시한 가족창경연대회는 1993년 제10회 대회까지 이어졌 고, 이 행사는 이후 청년회 주최 전교인 성가경연대회로 전환되었다. 1986년과 1987년에는 성전건축을 위한 기도회를 주도하였고, 1986년부터 시작된 성빈���을운동회 행사도 주축이 되어 이끌었다. 교회 성장과 더불어 남선교회의 규모도 커지게 되자 1992년부터 제1남선교회와 제2 남선교회로 분리 개편되었다.

2) 제2기(1992년-1997년) 1992년 난선교회의 분리 개편에 따라 45세 이상 회원은 제1남선교회로, 45세 미만 의 회원은 제2남선교회로 구성되었다. 제1남선교회는 분립한 첫 해 회장 박종계 집사, 부회장 류병선, 방종호 집사가 맡아 출범하였다. 이후 1994년에 류병선 집사, 1995년 방종호 집사, 1996년 김상순 장로, 1997년 김광남 집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다. 주요 사업으로는 우선 농촌교회 지원사 업을 들 수 있는데, 지원한 농촌교회는 1992년과 1993년에는 성곡교회, 1994년부터 청도 흑석교회였다. 기타 연간 주요 사업으로는 도시빈민가정 방문, 주일학교 후원, 산 상기도회 등이 있었다. 1994년부터는 하계신앙친교회, 산상등반기도회 등의 행사가 추 가되었다. 제2남선교회는 분립 첫 해인 1992년 회장 오상연 집사(현 장로), 부회장 배영근 집 사로 출발하였다. 이후 1993-4년 이승렬 장로, 1995년 조원제 장로, 1996년 이정환 집사, 1997년 박기태 집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다. 주요 사업으로는 미자립교회지원 사업을 들 수 있는데, 1992년부터 매곡교회를 지원하였고, 1995년부터는 포항성지교


112 대구성빈교회 20년사 회를 지원하였다. 또한 사회선교사업으로 1993년부터 청구혜양원 지원 사업을 계속하 였다. 이밖에 연간 주요 행사로는 매년 5 월에 개최한 경로잔치, 연합체육대회 참 가, 예배당 정비, 가정생활캠프, 친목행사 등이 있었다.

3) 제3기(1998년-현재) 1998년에 남선교회가 다시 한번 조직 개편이 있었다. 50세 이상의 회원은 제1 남선교회, 43세 이상 49세까지의 회원은 제2남선교회, 35세 이상 42세까지의 회원 은 제3남선교회로 3분되었다.

제2남선교회 소식지(1994.1.9)

제1남선교회는 1998년에 박병금 집사, 1999년에는 위한규 장로가 회장을 맡아 이끌 었다. 2000년에는 회장 배영근 집사, 부회장 류강선, 이현기 집사가 맡아 이끌게 된다. 주요사업은 대외선교활동으로 청송덕천교회 지원을 하고 있고, 복지기관 지원도 병행 하고 있다. 기타 주요 활동으로는 산상기도회, 주일학교 지원, 친교행사 등이 있다. 제2남선교회는 1998년에 이은우 집사, 1999년에 김용수 집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 다. 2000년에는 회장 손태호 집사, 부회장 정재용 장로가 맡아 이끌게 된다. 대외선교 사업으로는 군위동창교회 지원 및 청구혜양원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어버이주 일 경로잔치, 산상기도회, 등반대회, 주일학교 지원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제3남선교회는 1998년에 채정수 집사, 1999년에 장금석 집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 다. 2000년에는 장길식 회장, 김종건 부회장이 맡아 이끌게 된다. 대외선교사업으로는 포항성지교회 지원과 복지기관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기타 주요 활동으로는 예배당 정비, 산상기도회, 노방전도, 주일학교 지원, 친교행사 등이 있다. (정리: 편집부)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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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전도회 1) 제1기 (1984년-1987년) 성빈교회 여전도회는 1984년 창립되었다. 초대회장으로는 추손수 집사, 부회장에 이 수옥 집사, 총무 김신애 집사가 맡아 출범하였다. 1985년에는 김성순 권사, 1986-7년 에는 김문자 권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다. 초창기 주요 활동으로는 성미 운동, 철야기 도회, 꽃달아주기(어린이주일, 새신자), 주일학교 행사 지원, 고아원방문 등을 들 수 있 다. 이밖에 주일 교회 식사 및 강사 접대 등으로 봉사하였고, 교회 김장이나 장담그기 도 여전도회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2) 제2기 (1988년-1992년) 1988년부터 여전도회가 둘로 분립되었다. 40세 이상의 회원은 제1여전도회, 40세 미만의 회원은 제2여전도회로 편성되었다. 제1여전도회는 분립 첫 해인 1988년 회장에 이계연 집사, 부회장 김영순 집사, 총무 한늠이 집사(현 권사)로 출발하였다. 1989년에는 이계연 집사, 1990-1년에는 김문자 권사, 1992년에는 황분조 권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다. 주요 활동으로는, 철야기도회, 산상기도회, 전도지 돌리기, 장담그기, 김장, 예배당 청소, 주일학교 행사 지원 등이 있 었다. 1991년부터는 미자립교회 지원사업으로 안동 명진교회를 지원하였다. 제2여전도회는 분립 첫해인 1988년 회장에 김경녀 집사, 부회장 오연화 집사, 총무 이양순 집사로 출발하였다. 1989년에는 조은진 집사, 1990년에는 권태자 집사, 1991 년에는 허순자 집사, 1992년에는 도주은 집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다. 주요 행사로는 성경다독대회, 산상기도회, 구역창경연대회, 수련회 지원 등을 들 수 있다. 1989년 제1 회 구역창경연대회를 주최하여 이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1992년부터 농촌교회 지원사업으로 나호교회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3) 제3기 (1993년-1997년) 1993년부터 여전도회가 셋으로 분립되었다. 50세 이상 제1여전도회, 40세부터 49세 까지 제2여전도회, 39세 이하 제3여전도회로 개편되었다. 제1여전도회는 1993년 황분조 권사, 1994년 김문자 권사, 1995년 김영수 권사, 1996년 강강희 집사, 1997년 김문자 권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다. 이 기간 농촌교회 지원사업으로는 안동 명진교회를 지원하였고, 사회선교사업으로는 복음양로원을 지원 하였다. 이 밖에 연간 주요 행사로는 산상기도회, 조국을 위한 기도회, 전도대회, 교회 장담그기, 김장하기, 바자회 등을 들 수 있다. 1996년부터 시작한 바자회는 여전도회 연합행사로 현재까지 매년 개최되고 있다.


114 대구성빈교회 20년사 제2여전도회는 1993-4년 박복미 집사, 1995년 강득남 집사, 1996-7년 정영혜 집 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다. 이 기간 농촌교회 지원사업으로는 나호교회를 지원하였고, 사회선교사업으로는 1993년에 구라선교회, 1994년부터는 안나요양원 지원을 하였다. 기타 주요 사업으로는 산상기도회, 노방전도, 세미나, 주일학교 지원, 교회대청소, 바자 회 등을 들 수 있다. 제3여전도회는 1993년 권록이 집사, 1994-5년 조맹순 집사, 1996년 이은희 집사, 1997년 민미연 집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다. 이 기간 농촌교회지원사업으로는 기리교 회를 지원하였고 사회선교사업으로 천광보육원을 지원하였다. 교내 주관행사로는 구역 창경연대회를 1993년 제5회 대회부터 주최하였다. 기타 주요활동으로는 산상기도회, 주일학교 지원, 전도대회, 바자회 등을 들 수 있다.

4) 제4기 (1998년-현재) 여전도회는 1998년부터 셋으로 분립되었다. 56세 이상 제1여전도회, 47세부터 55세 까지 제2여전도회, 41세부터 46세까지 제3여전도회, 40세 이하 제4여전도회로 개편되 었다. 제1여전도회는 1998-9년에 황분조 권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다. 농촌교회 지원사 업으로 고매교회를 지원해 오고 있으며, 기타 사업으로는 복지기관지원, 산상기도회, 6·25금식기도회, 교회 장담그기, 김장하기, 바자회, 주일학교 지원 등이 있다. 2000년 새해에는 회장 김문자 권사, 부회장 홍위숙 권사가 맡아 이끌게 된다. 제2여전도회는 1998년에 백춘옥 집사, 1999년에 김경녀 권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 다. 미자립교회 지원사업으로 1998년에는 엘림교회를 지원하였고, 1999년부터 포항성 빈교회를 지원하고 있다. 사회선교사업으로는 사랑의 집을 후원해 오고 있다. 기타 주 요활동으로는 삼일절기념예배, 산상기도회, 6·25금식기도회, 연합산상수련회, 주일학교 지원, 교회대청소, 교회김장, 바자회 등이 있다. 2000년 새해에는 회장 오연화 집사, 부회장 권무자 집사가 맡아 이끌게 된다. 제3여전도회는 1998년에 심혜숙 집사, 1999년에 박석순 집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 다. 미자립교회 지원사업으로 청도흑석교회를 지원해 오고 있고, 사회선교사업으로 복 음양로원 후원을 하고 있다. 기타 주요 행사로는 산상기도회, 6·25금식기도회, 연합산 상수련회, 주일학교 지원, 교회대청소, 교회김장, 바자회, 친목등반대회 등이 있다. 2000년 새해에는 회장 이종희 집사, 부회장 권외자 집사가 맡아 이끌게 된다. 제4여전도회는 1998년에 조경희 집사, 1999년에 조순래 집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 다. 미자립교회 지원사업으로 임불교회를 지원하고 있으며, 사회선교사업으로 천광보육 원과 호동원을 후원하고 있다. 교회내 행사로 구역창대회를 1998년 제10회 대회부터 주최하고 있다. 기타 주요 활동을 보면 삼일절기념예배, 6·25금식기도회, 연합산상기도 회, 주일학교 지원, 교회대청소, 경로잔치, 바자회 등이 있다. 2000년 새해에는 회장 김윤경 집사, 부회장 김경옥 집사가 맡아 이끌게 된다.

(정리: 편집부)


. 성빈교회 20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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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갈보리청년선교회 갈보리 청년선교회는 35세 이하 부부들을 회원으로 1996년 출범하였다. 초대 임원 은 회장 김상협 집사, 총무 권덕준 집사, 서기 이주왕 집사, 회계 정석암 집사였다. 1997-8년에는 김경구 집사, 1999년에는 문경준 집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었고, 2000 년 새해에는 정석암 집사가 회장을 맡아 이끌게 된다. 갈보리 청년선교회는 본 교회 유일의 부부선교회로서 위로는 각급 남선교회와 여전 도회가 주관하는 행사에 적극적으로 지원활동을 하고, 아래로 각급 주일학교의 활동에 도 열성적인 지원활동을 해 오고 있다. 특히 청년회와 연합행사(체육대회 등)를 갖고 있으며, 전교인 부부탁구대회를 1997년 제1회 대회를 주최한 이래 현재까지 계속 주최 를 맡아오고 있다. 기타 주요 행사를 보면 산상기도회, 친목체육대회, 신앙친교회 등을 들 수 있다.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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