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교전으로 시작된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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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를 돌아본다 ⓛ] 교전으로 시작된 악연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민족과 미국의 관계를 미군이 38도선 이남을 강점한 1945년 9월 8 일로부터 찾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한반도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군사적으로 접근했던 시기 는 이보다 한 세기가 빠른 19세기 중엽부터였다. 19세기 극동에서 서구열강들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불평등 통상조약을 강요해 수탈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서구열강들은 함대를 동원하여 무력시위를 하는 등 군사력을 이용하여 아시아 국가를 공격하여 불평등한 조약을 강제하였다. 미국 역시 제국주의 팽창정책에 따라 조선과 교전하였는데, 이 사건이 바로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이어진 신미양요이다.

미국의 19세기 대외정책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예외주의, 팽창주의를 추구하였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가를 특별한 국가라고 규정하였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예외주의 는 ‘유럽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대륙’, ‘신대륙은 유럽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하는 선한 곳’으 로 선전하였고, 이른바 ‘미국의 팽창은 자유의 팽창이고 미국은 자유를 다른 영토에까지 전 파하여 미국문명을 심어야 한다’며 그들의 팽창을 정당화하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미국의 예외주의는 19세기 초반, 미국의 아메리카 대륙 내부 영토 확장을 정당화하고 이후 팽창정 책의 기초를 닦는 논리였다. 미국은 예외주의에 기반하여 자신의 팽창주의를 정당화 하였는 데 그들은 자신들의 팽창주의를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으로 해석하였다. 미국은 신대륙 국가로서 탄생부터 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자유의 영역을 팽창할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1)이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식민지 개척정책을 교묘하게 포장했다. 미국은 북미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하자 해외진출에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바로 아시아-태 평양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미국은 영토를 확장하고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산업이 발달하여 잉여 공산품의 생산이 늘어나 새로운 시장 개척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북미 대륙에서 영 토 확장이 어느 정도 완료된 미국에게 새로운 시장은 바로 해외를 의미했다. 때문에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여러 약소국가들을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적 상품시장으로 만들기 위 한 침략책동에 나서게 되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함포외교’였다. 일단 미국은 무력을 앞세워 1844년 중미통상협정, 1854년 미일화친조약 등을 체결하였다. 극동지역에서 침략할 곳을 물색하고 있었던 미국에게 조선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특히 조선은 지정학적으로 볼 때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최적의 전초기지, 교두보였다. 1853년 동래부 용당포, 1855년 강원도 통천 등지에서부터 미국함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의 아시아 접근이 빈번해지 자 조선 근해에서 미국 배의 출몰과 정박이 잦았던 것이다. 미국이 조선에 처음으로 통상개방 가능성을 타진한 것은 1832년이다. 일본과의 통상교역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려 했던 로버츠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미일간의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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