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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와 표현

내가 쓴 글

2014300019 공공행정학부 박주성


1. 내가 쓴 칼럼 2. 내가 쓴 감상문 3. 내가 쓴 자기소개서


1. 내가 쓴 칼럼 학교 폭력은 누구의 잘못인가?

학교폭력이란 학생 간에서 일어나는 폭행, 상해, 감금, 위협, 약취, 유인, 모욕, 공 갈, 강요, 강제적인 심부름, 명예훼손, 따돌림, 성폭력, 언어폭력 등 폭력을 이용하여 학생의 정신적 및 신체적 피해를 주는 폭력행위 이다.1) 이러한 폭력행위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설문조사 결과 애석하 게도 가해학생 10명중 3명은 장난으로 했고, 2명은 피해학생이 맘에 들지 않아서 1명 은 이유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가해학생들은 피해학생들을 괴 롭혔고 피해학생들은 그저 남몰래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이렇게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 있기에 가해학생을 처벌해야하는데 그 대표적인 처벌 방법으로는 생활기록부 기재가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사전에 예방해야 하는 것이 지 사후처벌로 해결 될 수 없고, 심리치료를 통해 개선시킨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 는 사람들이 많다. 웃긴 점은 올해 경주ot사건 때는 ot를 없앤다고 하고 세월호 사건 때는 수학여행을 없앤다고 하고 게임중독은 게임을 못하게 제지하고 이런 사전 예방 이 과연 득이 있을까? 사전 예방만으로 문제는 해결 될 수 없다. 지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중에서는 범죄행동을 하면 안된다고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범죄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사후 처벌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생활기록부 등재 를 가해학생의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말 어이없는 경우다. 물론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 인권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가해학생도 피해학생도 모 두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생명, 자유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 가 있다. 하지만 이런 천부인권을 타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인간에게도 적용해야 할 까?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인권을 서로 지켜주면서 생활하는 것이 인간의 사회인데 타인의 인권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자가 인권을 보장받을 이유가 없다. 이 학교 폭력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란 것을 인식하고 적어도 미래에 태어난 우리 각자의 자식들에 게 만이라도 학교폭력이 잘못됐음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1)위키백과, 학교폭력, 위키백과, 2014년 5월 23일 http://ko.wikipedia.org/wiki/%ED%95%99%EA%B5%90_%ED%8F%AD%EB%A0%A5


2. 내가 쓴 감상문 미래의 꿈이라고 생각 했던 것은 진짜 꿈이 아니었나 보다.

첼로니스트인 다이고는 오케스트라가 해체되자 아내인 미카와 함께 자신의 어머니가 살던 고향집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 1억8천만 엔짜리 첼로를 되팔게 된다. 고향집에 내 려와서 힐링을 하고 직업을 찾던 도중 구인광고지에서 ‘여행의 도우미’라고 자칭하는 NK에이 전트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곳에 면접을 보러가서 NK에이전트의 뜻(납관)을 알게 되고 어떤 일을 하는지 까지 알게 되지만 돈에 이끌려 일에 뛰어들게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임종을 지키지못한 다이고는 시신을 본적이 없었는데 다이고가 처 음으로 맡게된 일에서 만난 시체는 죽은지 시간이 지난 할머니의 시체였다. 그렇게 처음 시체 를 목격하고 난 뒤 다이고는 목욕탕에 가서 온몸을 구석구석 닦고

집에서 아내의 몸을 더듬

는 약간 야한행동을 한다. 나는 다이고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시체의 차가움에 대해서 느끼 고 살아있는 아내의 체온의 따스함을 느껴 죽음과 시체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처음 시체를 보게 된 다이고는 일에 대해서 망설이게 된다. 그렇게 고민하던 다이고를 사장인 이쿠에이와 밥을 먹고 일을 하러가서 그곳에서 염습을 보게 되고, 사람의 눈물을 보게 되며 고민을 끝낸다. 고민을 끝낸 다이고는 일에 열중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집에 있던 첼로를 가끔 연주하며 지낸다. 그러다가 결국 친구와 아내에게 납관사로 일하는 것을 들키게 되고 아내가 “일을 그만두면 데리러 와.” 라는 말을 남기고 친정으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다이고는 이미 납관사를 그만둘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아내의 문제와 자신의 직업에 대한 내적갈등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달 뒤 아내가 임신했음을 알리며 돌아오는데 그때 목욕탕 주인아주머니가 돌아가신다. 다이고는 그곳에 일을 하러 가게 되고 그곳에서 아내에게 자신의 직업은 인정받고 친구와 화해를 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도중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고 아버지를 보러갈지 안 보 러갈지 갈등을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모습을 보러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에게 염 습을 해드리고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물론 여기서 작은 돌멩이가 등장하며 아버지가 항상 다 이고의 생각을 하고 지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영화가 끝이 났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포인트로 잡은 것은 바로 직업에 대한 고민이다. 다이고는 첼로니스트라는 명예로운 직업에서 NK에이전트의 납관사로 직업을 바꾸 게 된다. 이 감상문의 제목은 NK에이전트의 사장 에이구치가 다이고에게 했던 말이다. 그런 데 왜? 어째서? 많고 많은 대사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대사가 저것 일까? 그것은 저 대사가 어떤 사람이던지 공감할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실제로 생각 했었던 고민이기 때문 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까지 12년 동안 각자가 꿈꾸는 장래희망이 계속해서 바뀌어 왔다. 바뀐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단순히 ‘이 일이 하고 싶어. 재미있을 것 같 잖아.’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때 마다 스스로 ‘내가 정말 커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미있어 보이거나 즐거워 보여서가 아닌 현실에 대해서 내가 그 현실에 쫓아갈 수 있을까? 라는 조금은 심각한 이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나에게 다 시금 나의 지금의 장래희망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는 영화였다.


3. 내가 쓴 자기소개서 내 인생의 황금기와 흑역사

안녕! 미래의 나. 나는 너의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나야. 나는 지금 대학생이 됐어.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네가 까먹게 될지도 모른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알려주기 위해서야. 그 당시 내 인생 최고의 선택과 흑역사를 너의 기억에 확실하게 집어넣어 줄게. 그때는 고등학교 1학년 기말고사를 한 달 정도 남겨둔 때 였어. 그때 나는 혼자서는 도저히 공부할 수가 없을거 같아서 친구들에게 학원을 소개 받았어. 그게 바로 m학원이야. 그리고 그 학원에서 공부를 한뒤 국영수가 각각 30점 가량 올랐지. 그 이후부터 공부하는걸 싫어 하 지는 않게 됬어. 그러면서 공부를 좀 하려는 의지를 보였지. 그때 처음으로 수학 쌤이 나에게 칭찬을 하시면서 처음으로 ‘성님’이라고 부르셨지. 수학 선생님이 나를 ‘성님’,‘주성성님’ 이라 고 부르자 내 친구들도 따라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시간은 흘러 고2가 되었지. 고2 때는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지. 동아리에서 부장을 맞게 되자 ‘부장님’이라고 부르고 심지어 학원에 다니지 않는 내 친구들 까지도 나를 ‘성님’이라고 불렀지. 그렇게 점점 교내의 친구들에게 퍼지면서 어느덧 2학기가 되었지. 2학기 때는 선생님의 부탁으로 반장선거에 나가 서 부반장에 뽑히게 되었지. 그렇게 고2를 보내고 가장 강력했던 고3이 되었어. 고3 때는 특히 같은 반에 친한 친구들이 다 몰려 있었어. 그리고 현재까지 진행중인 주성교 가 탄생하지. 나도 그게 어떻게 해서 탄생한 건지 몰라. 그렇게 매일매일 애들에게서 나를 신 격화 하는 말을 듣게 되고 시간이 지나서 해탈의 경지에 오르게 됐어. 그게 어느 정도냐면 네 가 무슨 말만 해도 그 말로 신격화를 했지. 그렇게 1학기가 끝나고 2학기가 됐지. 2학기 때는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지. 원래 반장을 맡기로 한 애가 과거에 징계 받은 적이 있어서 반장이 되지 못하자 그 대신 내가 반장이 됐지. 내가 반장이 되자 애들은 모두 나를 ‘회장님’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그리고 내가 대학생이 되고도 아직도 나를 회장님이라고 불러. 그래도 졸업 한지 시간이 꽤 흘러서 그런지 지금은 많이 줄었지. 줄은거지 아직도 한다. 지금 까지 들어보면 내가 막 시달린거 같았지? 하지만 사실 애들의 행동이 나에게 도움이 됐어. 일단 가장 큰 도움은 성격의 변화야. 나는 원래 소심하고 소극적이 였는데 이런 성격이 동아리 부장과 부회장 ,회장을 해보니 적극적이고 조금은 덜 소심해졌어. 그리고 그 다음은 역시 성적이야. 난 원래 5,6등급을 받았었어. 그러다가 애들과 학원선생님이 나를 ‘성님’ 이라 고 부르면서 기대를 하기 시작했지. “성님 이니까 이 정도는 금방이겠지.” 등등 이런 기대가 나를 공부하게 만들어 주었어. 그래서 그 덕분에 성적도 많이 올랐지. 그 덕에 대학도 올수 있었던거 같아. 그 칭찬의 채찍이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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