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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는 영국의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작가, 미술가인 윌리엄 모리스가 1891년에 낸 소설 제목

News 『News from Nowhere』 을 우리말로 의역한 것입니다. from Nowhere

nowhere는‘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유토피아’라는 말의 원래 의미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하지요. 이제 노동당의 기관지에‘미래에서 온 편지’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한국 사회의 답답한 현재에 햇살을 들이는 미래의 틈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고 보니 nowhere는 now+here(지금 여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미래가 되기 위해, 이 편지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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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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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띄우며 뒷걸음질은 이제 그만|장석준

지금+여기 노동당 이건희 회장님, 진짜 당황하셨나봐요 6

1인시위 쫓겨나고 현수막 찢어지고|<미래에서 온 편지>

10 “삼성한테 찍히면 한국에서 살기 힘들어져” |프쨩 12

금속노조 삼성서비스지회 위영일 지회장을 만나다“시키는 대로 일만 한 우리가 루저였다”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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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 20년째‘새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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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에서 안철수까지 ; 얼굴만 바뀌는 새 정치|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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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도 새 정치? 말하지 않는 정치인 박근혜|조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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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판 Big Society, 박원순의 비(非)정치|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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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민주노동당 그리고 2013년의 안철수|김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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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진보정치 퇴보사|장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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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무두질에서부터|윤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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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 ■ 자전거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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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가 가는 곳, 누구나 간다|나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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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사람은 인도로, 자전차는 차도로” |<미래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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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정치다① 두 바퀴로 달리는 유럽|조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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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정치다② 창원 공영자전거 누비자, 그 빛과 그림자|김성훈

58 “아~ 그 자전거 후보!”나의 당선 비결은 자전거 유세|나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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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진보정치 열전 2|경기도의회 최김재연 의원 편(1부) |최혜영·김윤희 “2년 이상 한 군데 붙어있기는 난생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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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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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리포트 경쟁체제 도입? 철도 민영화의 우회로다|김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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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포럼 일 좀 덜 하고, 빨간 날은 쉽시다|홍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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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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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단 일기 이 죽일 놈의 개발주의|서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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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파 통신 해외 원정투쟁이 왔다 간 자리, 그 아쉬움에 대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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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집 은평에도 민중의집“랄랄라~!” |채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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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토론 ■ 통합진보당 사태, 노동당의 대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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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판을 짜는 계기 만들어야|남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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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방어는 좌파의 무능 |홍기표

·목차

먼 좌파 이웃 좌파 ③ 이웃 나라 일본의 좌파(1)|장석준

삶과 문화 102

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 제주에서 귤 따고 버스 모는 음악가, 조성일|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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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이석기의‘과대망상?’언론도 과대망상|<미래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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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서재 새로운 중국을 만드는 13억의 날갯짓|양솔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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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평범한 사람|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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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꿈 적기가 노래, 날 좀 그만 내버려둬|민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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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수의 DIY 공작소 LED 당깃발 만들기|곽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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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니 칼럼 가을은 과일의 계절? 버섯의 계절! |이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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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다운 당원들의 유쾌한 청각생활을 지지하는 이달의 음원 다운로딩 가이드|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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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접으며 형, 잘 가! 그리고 미안해|김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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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띄우며

뒷걸음질은 이제 그만 벌써 두 번째 편지입니다. 어수선한 때에 보내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그 어수선함 이 진보정당운동과 직결돼 있어서 더욱 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지난 몇 주 동안의 소용돌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언제고 겪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시련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보 수 우파가 과거 회귀의 극단까지 한 번 달려보는 것도 그렇고, 진보운동 안의 시대착오적 흐름 이 공개돼 혹독한 비판을 거치는 것도 그렇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 시련을 견뎌내길 두려워 하여 현실과의 정직한 대면을 계속 미뤄왔던 게 정말 자성해야 할 대목이겠습니다. 그런 점에 서“실패로부터 배운다” 는 어느 정치인의 이야기는 여전히 부박하게만 들립니다.“실패로부 터 배운다”이전에 먼저 있어야 할“실패를 반성한다”혹은“책임진다” 는 또 다시 뒤로 미뤄지 는 것만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입니다. 이번호 첫 번째 특집은 점점 더 퇴보하기만 하는 한국 정치를 물고 늘어집 니다. 20년째 계속‘새 정치’ 를 외치면서도 도돌이표만 찍는 한국 정치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 봅니다. 남 이야기만 하지 않고 우리 이야기도 합니다. 나름대로는 우리의 아픈 구석도 헤집 어보자는 생각에서 진보정당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도 짚었습니다. 첫 번째 특집이 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반면 두 번째 특집은 소박하지만 발랄합니다. 자전 거가 이야깃거리입니다. 앞으로 <미래에서 온 편지>는 이렇게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것들을 통해‘평등·생태·평화’ 의 이상을 어떻게 실현해나갈지 계속 묻고 답하려 합니다.

어지러운 세월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만 세상이 뒷걸음만 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삼성전 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 소식은 그 아름다운 증거입니다. 스스로 눈치 채지 못하 는 사이에 사실 우리는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덧붙여, <미래에서 온 편지>도 정기구독자 천 명 을 향해 전진하고 있음을 보고 드립니다.

2013. 9. 26 장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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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모집 오늘 우리의 한 걸음이 길을 엽니다. 미래가 됩니다. 우리는 길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 사람과 자연이 공존 가능한 지구생태계, 차별과 소외 넘어 모두가 평등한 세상,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없는 길을 만들고, 스스로 길이 됩니다. 그래서 노동당의 꿈은 곧 <미래에서 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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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노동당

이건희 회장님, 진짜 당황하셨나봐요

1인시위 쫓겨나고 현수막 찢어지고 민원으로 지자체 업무 마비“현수막 좀 떼주세요” 다른 정당 현수막은 멀쩡한데 노동당 현수막만 철거된다. 박근혜 정부 정 책 비판, 서울 다산콜센터 간접고용에 대한 현수막은 그대로인데“이건희 회 장님, 당황하셨어요?” 라고 쓰여진 현수막은 밤 사이 찢겨지거나 계고장 없 이 떨어져나갔다. 재창당 이후 노동당이 첫 사업으로 진행한 삼성전자서비 스지회 노조 연대투쟁에서 벌어진 일이다. 강원도 원주 시내에 달았던 현수막은 사흘만에 모조리 철거됐다. 한 번 걸면 두어 달 아무도 손을 대지 않던 서울 강북구에서도 열흘도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노동당 중앙당 뿐만 아니라 전국 시도당에 구청 공무원들의 전화가 빗발 쳤다.“민원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인데요, 현수막 좀 떼주시면 안될까 요?”상점 간판을 가리거나 보행을 방해하지도 않는데 민원이 쇄도한단다. 누가 민원을 넣었는지 물어도 답이 없다. 삼성이냐 물으면 부정도 긍정도 않 는다. 전국에서 정체불명의‘주민’ 들이 넣은 민원 중에는‘삼성에는 노동조 합이 없어서 현수막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 는 웃지 못할 사유도 있다. 지금+여기 노동당 7


정당법 및 옥외광고물 관리법에 의거한 정당 현수막 게시는 민원이 들어오더라도 함부로 철거할 수 없다. 계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 건 물론이다.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고 CCTV 확인을 요구하면 구청 공무원들은 그 제서야 실토했다.“민원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요”

경비원들의 욕설과 위협, 합법적인 1인시위에 경찰까지 출동해 현수막 뿐만 아니다. 전국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앞 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된 1인시위에 참여한 노동당 당원 들도 봉변을 당했다. 덩치 큰 경비직원들은 1인시위자 를 빙 둘러싸고 욕설과 불법채증도 서슴지 않는다. 부 산에서는 경비원들이‘사유지 침범했다’ 며 경찰에 신 고를 했다. 그런데 정작 출동한 경찰은 1인시위 피켓을 보고“불법파견이 무슨 말이냐”묻고 설명을 듣더니 고 개를 끄덕이면서 떠났다. 서울 구로구에서는 경비원들이 1인시위자와 술래잡 기를 했다. 주민들이 피켓을 볼 수 없도록 경비원들이 가리면 1인시위자는 주민들이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기 기를 여러 차례.“덩치 큰 경비원들이 우르르 같이 몰려 다니니 홍보효과가 오히려 낫던데요?” 서비스센터 지점장이 경적을 빵빵 울리며 시비를 걸 기도 한다. 강원도당은 스피커를 들고 나가서 정당연설 로 응수했다. 건물 안에 노동자들 들으라고 삼성의 노 동탄압을 조목조목 고발하고 노조의 필요성을 설파했 더니 지점장의 표정이 뜨악해져 물러났다. 서울 관악구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두 곳에 집 회신고를 내고 한 달 동안 정당연설회를 열었다. 여기 도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다. 결국 경찰이 출동해서 사 전 신고된 합법집회를 방해하는 서비스센터 측이 오히 려 위법이라고 하니 그제서야 물러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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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있는 자 누구나 수긍한다“당연히 삼성이 월급 줘야지” “한창 연설하는데 누군가 휘리릭 다가오더니 검은 봉지 하나를 샤샤샥 건네주고 후다닥 가더라고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앞에서 정당연설을 진행하는데 노동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얼음과자를 건네주고 가 더란다. 서울 관악당협 이상엽 사무국장의 말이다. 1인시위 피켓 앞을 지나가던 주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이것저것 묻기도 한다. 삼성전자의 불법파견에 대해 설명하면“당연히 삼성이 월급 주는 게 맞지 않어?” “대기업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주는 돈을 아끼면 되나”고개를 끄덕거린다. 부산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은“내가 삼성에서 20년 동안 힘들게 일한 건 어쩌면 삼성에 노조 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했다.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는 매일 살인적인 업무량에 짓눌리며 살다가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노동시간부터 확 줄었다.“올해는 이래 도 되는 걸까”괜히 불안했다고 한다. 불안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A/S 노동자들은 올해 설립된 노조 활동을 통 해 삼성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싸운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다. 전국 삼성전자 서 비스 노동자들 중 절반 이상이 가입했다. 짧은 기간동안 이렇게 조합원이 늘었다는 것은 그동안의 고용관 계가 얼마나 불합리했는지 방증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을 응원한다. 거리에도, 직장에도,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도 든든한 지지자들 이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싸움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더 많은 노동자들, 불 법파견과 간접고용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싸움이기도 하다.

1인시위부터 현수막 테러와 정당연설까지, <지금+여기노동당>에 실린 사진들은 모두 전국의 노동당 당원들이 보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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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노동당

이건희 회장님, 진짜 당황하셨나봐요

“삼성한테 찍히면 한국에서 살기 힘들어져” 프쨩 서울 성북 당원

지난 한 달 아침 일찍 일어나서 1인시위하는 것보다, 피켓만 들었다 하면 쫓아나와 방해하는 경비들의 간섭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부모님이었다. 아침에 삼성전자서비스센터로 곧장 가야 하니 매번 피켓을 갖고 집에 들어가야 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버지도 이건희 개예요?” 아버지는 오랫동안 삼성에서 일했다. 퇴직한 후에도 삼성과 거래하는 작은 업체에서 일하신 다. 그래서일까, 아버지는 평소에도 삼성에 대 한 내 태도에 불만이 많으셨다.“기르던 개도 주 인을 물지 않는데, 김용철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회장님한테 그럴 수 있냐?”언젠가 김용철 변호 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있던 내게 아버 지가 물으셨을 때 나는 철없게도(?)“아니, 그럼 이건희가 주인이고 김용철은 기르던 개예요? 그럼 아버지도 이건희 개예요?”반문했고 한동 안 집안 분위기가 냉랭했었다. 그뿐 아니다. 아버지는 삼성의‘무노조 경 영’신봉자였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이 나 삼성전자 해고노동자 박종태 대리에 대한 뉴 스가 나오면“저 사람들 평소부터 인간성이 안 좋았다” 는 둥,“한 자리 해먹으려다 저렇게 됐 10


다” 는 둥 가시돋친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런 집에 나는 무려‘삼성 불법경영’ 이라느니‘삼성에 노동조합 을 결성하자’ 느니 하는 피켓과 유인물을 들고 들어간 것이다.

삼성의 공포,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엔 아버지의 태도가 달랐다. 냉소가 아니라 정말 근심섞인 목소리로 나를 염려하며 얘기를 하신다.“네가 이런 걸 하고 다니면 우리 회사가 삼성하고 거래 끊긴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너도 삼성한 테 찍히면 앞으로 한국에서 살기 힘들어져”평소라면 그냥 대들텐데 그 말씀에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방안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아버지가 느꼈을‘위협’ 이 기우가 아니라 실재한다는 사실을 그동안 삼성을 둘러싼 여러 싸움들을 보며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활동은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다. 1인시위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의 걱정어린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삼성의 위상이다.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해고를 당한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도 산재인정을 받지 못한다. 비 자금을 폭로했던 언론인과 정치인에게 전방위적인 보복이 가해진다. 이번에 노동조합을 결성한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 핵심 활동가들이 징계를 받거나 해고를 당했다.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은 삼성이라는 대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삼성의 공포를 깨뜨리는 유일한 방법은 싸우는 길밖에 없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한다는 것은 한국사회를 광 범위하게 지배하고 규율하는 삼성의 공포로부터 우리 모두를 해방시키는 첫 걸음이다.

지금+여기 노동당 11


지금+여기 노동당

이건희 회장님, 진짜 당황하셨나봐요

“시키는 대로 일만 한 우리가 루저였다” 금속노조 삼성서비스지회 위영일 지회장을 만나다

박은지 부대표/대변인

‘평범한 노동자가 노조위원장이 됐다’노동진영에서 많이 쓰는 말이지만 누구나 의심하는 말이다. 그 래서 그가 더욱 궁금해졌다. 삼성서비스지회 위영일 지회장은“컴퓨터와 냉장고를 수리하는 서비스기사 였죠. 친절하고 불평불만을 잘 들어주는 평범한 기사였어요” 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10점 만점에 9점이면 대책서를 써야했다 우선 그들의 노동이 궁금했다. 서비스노동자가 가 정방문을 끝내면 소비자는 본사로부터 기사를 평가하 는 전화를 받는다. 그게 어떤 정도의 영향을 받는지 물 었다. “도급계약대로면 우리는 수리만 하면 되는 거잖아 요. 남의 회사 제품인데 왜 우리가 불편을 드려서 죄송 하다고 해요. 모순 아닙니까?” “예전에는 매우만족, 만족, 보통 등으로 분류했는데 최근에는 10점만점에 몇점이냐고 바뀌었어요. 9점 이 하가 나오면 대책서를 쓰게 되죠. 8점은 당연하고요. 5 점 이하는 인신공격을 당하지요. 그 중 상위 10%만 인센티브를 줍니다. 그걸로 인해서 위축이 되고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요인이 됩니다.” 그들의 노동 안에 이미 문제의 해답이 있다. 삼성전자의 서비스를 담당하는 노동자가 삼성의 고용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냥 도급이라면 이들은 굳이 삼성전자의 제품을 옹호하거나 고장에 대한 사과도 할 필요 가 없다. 그저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친절하게 수리를 하면 될 일이다. “서비스 기사를 부르면 소비자들이 항의를 하죠. 그러면‘고객님, 저희 제품을 사용하시는 데 불편을 드 12


려서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최고의 기술로 완벽하게 수리하겠습니다’ 라고 멘트를 합니다. 그 때는 분명히 그렇게 가르쳤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 삼성이 뭐라고 하냐면 내 새끼가 아니라고 해요. 명백 한 도급계약을 하고 있고 위장도급이 아니라고 하면서 왜 저희에게 멘트를 이렇게 가르쳤냐 이거예요.”

“건당 수수료 체계인데 최저임금과 무슨 상관이야?” 시작이 궁금했다. 그 시작은 80여명의 노동자가 고용된 부산 동래 서비스센터의 외근 노사협의회 위원 장을 맡으면서부터였다. 회사 지침으로 GWP(Great Work Place)위원회가 생겼다. 알고 보니 근로자참 여증진법에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노사협의회 조직이다. 투표로 선출된 위원도 없다. 그러다보니 근 로위원들이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을 알 리가 없다. 결과적으로 근로위원들은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게 된 것이다. “이걸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최저임금보장을 안건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했죠. 근데 근로위원들 이 우리는 건당 수수료 체계인데 이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해요. 그래서 대들었죠. 근로자들 편이냐 회사편이냐 공격을 했더니, 어차피 근로위원들도 우리 직원이잖아요. 잘 모르니까 힘들지요. 나는 못하겠 다 너희가 알아서 뽑아서 하라고 해요. 제가 주로 질문을 하고 제기를 하니까 쟤가 좀 아는구나 해서 제가 노사협의회 위원장으로 뽑히게 된 거에요.” 항상 최저임금에 미달하지는 않았다. 넘을 때도 있고 모자랄 때도 있었다. 건당 수수료 체계는 시간외 근무와 주말 노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급여명세서도 없었다. 어떤 노동자의 아내는 남편이 자신 을 속이는 줄 알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밤낮없이 일하는데 어떻게 월급이 이거밖에 안 되냐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었다.

폐업, 집단해고.. 트위터를 통해 2013년의 전태일로 알려지다 “노사협의회 위원장이 돼서 바로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공개질의를 했어요. 위반이라고 답이 왔죠. 사 장은 그때서야 법대로 임금 했어요. 근로시간도 8시간제로 잡고 나머지 시간의 근로에 대해서는 시간외 수당을 달라는 요구를 했죠. 그런 요구들이 80% 정도가 지켜지게 됐어요. 그냥 들어준 게 아니예요. 저희 가 3년 치 체불임금 7억 여 원을 요구하겠다고 하니 하나하나 들어주기 시작한 거예요.” “노사협의회 위원장이 된 뒤 바로 최저임금법 위반을 문제제기했어요. 8시간 근무, 시간외 수당, 우리 의 요구들 중에 80%가 받아들여졌어요.” 최저임금 보장, 시간외 수당 등 급여조건이 나아지자 센터의 실적이 예전 같지 않게 된 건 필연적이었 다. 그렇다고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지점장의 욕심도 있고 삼성전자서비스의 압력도 있었다. 그렇게 사장은 폐업을 결정했고 노동자들은 집단해고 통보를 받았다. “금속노조에 갔어요. 우리 사무실에 와서 노조에 대한 교육을 해달라고 요청했죠. 금속 간부가 너무 대 범한 게 아니냐고 물더라고요. 이렇게 된 판에 눈치볼 게 없었지요. 모든 외근 사원들이 와서 노조 교육을 지금+여기 노동당 13


받았어요. 멍멍한 분위기였죠. 호기심도 있고. 그 다음날 아니나 다를까 삼성 본사에서 간부가 내려옵니 다. 이 사람들을 동래센터에서 수용하라고, 큰 문제가 되기 전에 너희가 떠안으라고 한 거죠.” 다른 노동자들은 흡수고용이 됐지만 위 지회장과 노동자 1인만 해고된 상태를 유지했다. 위 지회장은 자신들의 상황을 블로그에 올렸다. '2013년 또 하나의 전태일 열사가 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삼성전자 서 비스센터 직원들이다'라고. 트위터를 통해 진중권 교수와 이외수 작가에게 리트윗을 부탁했다. 그렇게 부 산 동래센터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이후 언론보도로 확산됐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만 했던 우리가 루저였다” “이마트 비정규직 사태를 보고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사무장이 이야기했어요. 너무 똑같지 않냐며. 저희 이야기를 보고 비대위가 꾸려져서 민변에서 오라고 하니까 설렁설렁 갔어요. 흔히 티비에서 보는 기자회 견장이 있더라고요. 변호사단, 기자단, 국회의원 보좌관, 사회단체, 금속노조, 에버랜드 삼성지회. 살다보 니 텔레비전 나오는 사람들과 같이 서는구나 어안이 벙벙하더라고요. 처음 우리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을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알게 된 날이죠.” 이렇게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고용 근절 및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7 월 14일 노조가 창립을 하게 됐다. 처음엔 노동자들에게 반노조 정서도 많았다. 그러나 너무 오랜 세월동

“회사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일했던

안 기본적 노동권을 탄압 받다보니 그것이 분노로 표출되면서 노동조합이라는 결정을 하게 됐다. 전

우리는 루저였어요”

국 60여개 센터에 1500여명의 조합원이 있다. 한

삼성의 전형적인 불법파견에 맞서기

센터가 전부 조합원인 곳도 많다. 삼성전자 서비스

시작한 하청노동자, 당신들은 더 이상

센터 노동자 절반 이상을 조직화한 것이다.

루저가 아니다.

“삼성 사측은 노조하는 사람들을 사회부적응자, 불평불만 많은 루저로 취급하곤 했어요. 그런데 현

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보니 똑같은 비정규직이고 사내하청인데 그쪽은 10년 넘게 노조를 만들고 투쟁한 거예요. 자본의 논리대로라면 그분들은 실패자여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보다 연봉도 훨씬 많 아요. 회사가 시키는대로 얌전히 일했던 우리가 루저였어요.”

2000년, 삼성 SDI에서 최초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은 징계해고와 납치, 감금과 폭행 까지 차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모진 탄압을 당했다. 벌써 10여년 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제 금속노 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설립 소식은 그 자체로 크나큰 승리다. 위영일 지회장의 포부 앞에서 더 크고 더 긴 승리를 기대한다. 물론 노동당이 이들의 방패가 되고 조력자가 되겠다는 연대의 약속은 기본이다. 가 슴엔 삼성 마크를 달고 다니지만 삼성전자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전형적인 위장도급, 하청노동자, 당신 들은 이제 더 이상 루저가 아니다. 14


특집1

20년째‘새 정치’ 대한민국 정치 퇴보사 ‘새정치’ ‘제3의 세력’ ‘새로운 바람’ ‘세대교체’… 대한민국 정치의 역사를 돌아보면 언제나‘새정치’ 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사라졌습니다. 10년 째, 20년 째 사람만 바뀌는 새정치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노동당이 꿈꾸는 새정치를 이야기합니다.


제14대 대통령선거 벽보 (사진 : 선거정보도서관)

특집 1 / 20년째‘새 정치’

정주영에서 안철수까지; 얼굴만 바뀌는 새 정치 구태정치의 종결을 선언하면서도 끝없이 구태정치로 회귀하고 마는 것은 그들 개인의 역량이나 품성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이나 공약의 정교함이나 완성도의 문제도 아니다. 끝없이‘새얼굴’ 을 소모하면서 기득권을 전혀 건드리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구조가 있 기 때문이다.

박권일『88만원 세대』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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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에는 일정한 파동이 있다. 지난 20년만 돌아봐도 이것은 일종의‘클리셰’ 처럼 보일 정도 로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강고한 기득권 세력이 상수로 존재하는 와중에 새로 등장한 신진세력이 마치 세상을 뒤집을 것처럼 돌풍을 일으키다 순식간에 기성정치의 뱃속으로 삼켜지고 만다. 얼굴도, 정당 명도 제각각인데“낡은 정치를 일소하겠다” 는 사자후를 토하며 등장했다 좌절하고 사라지는 광경은 놀라 울 정도로 엇비슷하다.

정주영에서 안철수까지 첫머리에 놓을만한 사람은 현대그룹 회장이었던 고 정주영 씨다. 정 씨는 1992년 통일국민당을 만들고 대선후보로 바람을 일으켰다.‘신화적 기업인’ 이 현실정치로 뛰어든 일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사건이 었는데, 대통령선거 후보로 급부상하자 정치판 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격랑에 휘말렸다. 모두 알고 있는 결과만 먼저 말하자면, 정주영 씨는 결국 대통령이 되진 못했다. 득표율은 16%. 신생정당의 정치신인으로 선 기적 같은 숫자이긴 하다. 2007년‘신드롬’ 이라고까지 표현된 문국현 후보의 대선 득표율이 5.8%에 그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정주영 후보의 공약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국민학교 및 중학교 무료급식 전면실시’ , 그리고‘전국의 아파트 가격을 절반으로!’ . 진보세력조차도 무료급식(무상급식이 아니다)을 정치의제로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던 시절이다. 대부분의 중고교생이 도시락 싸서 학교를 다녔고 국민학 교 급식비율 자체가 매우 낮았다.‘반값 아파트’ 역시 당시로선 충격적이다 못해 비웃음을 샀던 공 약이다. 부동산 거품이 절정이던 시대였기에 더 비

정주영 후보의 공약은 파격적이었다.

현실적인 몽상으로 치부됐다. 실제로‘인기영합주

‘국민학교 및 중학교 무료급식 전면실

의’ 니‘포퓰리즘’ 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정

시’ ,‘전국의 아파트 가격을 절반으로!’

주영 후보가 직접 숫자를 계산해 보여줘도“가능할 리 없다” 는 반응이 다수였다.“정치를 모른다” “기 업경영과 정치를 혼동한다” 는 비판도 단골 메뉴였다. 당선실패 후 국민당과 현대그룹은 김영삼 정권의 혹 독한 보복에 시달렸고, 결국 1994년 국민당도 해체되고 정치세력으로서 완전히 생명을 다하게 된다. 실패한‘새정치’ 의 최근 사례로는 문국현의 경우도 있다. 소위‘착한기업’ 으로 알려진 유한킴벌리의 대표이사 출신으로 2007년 창조한국당을 창당, 대선에 출마했다.‘중소기업이 중심이 되는 일자리 창출’ 정책은 좋은 평가를 받고 국민들의 호응도 큰 편이었다. 대선에는 낙선했지만 2008년에는 3선 의원인 이 재오를 총선에서 물리치고 은평 을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연합해 정치적 부활 을 꾀했지만 당사랑 채권에 대한 부당이익 논란에 휩싸였고, 대법원 판결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했다. 문국현은 현재 정치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 기업경영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특집1 20년째‘새 정치’17


앞의 두 명은‘실패 사례’ 다. 바람을 일으켰으되 끝내 권력을 쥐진 못했다. 반면 나름대로 성공한 사례 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낡은 정치’ 와 자신을 적극적으로 차별화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한 경우다. 노무현은 기성 정치인이었지만 현실정치의 구도에서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거 의 희박했던 비주류였다. 심지어 대선이 치러진 2002년 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전문가들, 그리고 국민 들이 노무현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광주경선 직후부터 무섭게‘노 풍’ 이 불었고, 노사모라는 전례 없는 팬덤정치, 2002년 촛불시위 등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명박 은 정주영의 실패를 명민하게 분석해 권력을 움켜쥔다.“샐러리맨의 신화” , CEO의 이미지를 이용하면서 도 수년간 서울시장으로 정무적·행정적 경험을 쌓으

이명박은 정치적 지분이 적은 우파 정치인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보여준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

며 시민들과 스킨십을 쌓아갔다. 정치적 지분이 적은 우파 정치인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모범사례’ 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이후엔 안철수가 있다.‘IT 혹은 이공계 버 전의 문국현’ 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중소기업과 일자리 창출을 핵심적 정책으로 내세운 것도 비슷하

다. 안철수는‘현실정치의 때가 묻지 않은 전문가’이미지로 엄청난 대중적 지지를 얻는다.‘정당한 방식 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성실한 모범생’ 이라는 인상은 사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명 박 정권을 경험한 대중들, 특히 신자유주의의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대중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안철수는 2012년 대선에 직접 출마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유력한 대선후보군의 하나다. 아직은 현 재진행형인‘새얼굴’ 이다. 그러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에 비해 약점과 한계가 많이 드러난 상황이 라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얼굴이 아니라 판을 바꿔야 ‘새 얼굴의 새 정치’ 는 각양각색이었다. 그저 말만 번드르르한 경우도 있었고, 실제로 제법 잘 고안된 정책 로드맵이 존재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새얼굴’ 에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다. 공약이 나 정책을 사실상‘위에서부터 아래로 베푸는’위정자의 시혜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정치의 기 형성을 어쩔 수 없는 자연환경처럼 받아들이는 당원, 유권자의 뿌리 깊은 타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렇 기에 백마 탄 메시아가 나타나 불쌍한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식의 정치적 미륵사상은 더욱 강화된다. 소위‘1987년 체제’ 의 직선제 대통령은 타협의 산물이었고, 온전한 의미에서의 의회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다. 의회에 국민의 대표들이 이미 있지만 대중은 그들을 자신의 대표로 존중하기보다 는 무시하고 비하한다. 국회의원은 마치 욕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한편 국민을‘진정’ 으 로 대표하는, 그리고 대표해야 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한국에서 대통령이라는 표상은 사실상 모든 신민 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보듬어 살피는 자애로운 왕, 사실상 절대군주에 가깝다. 대중의 의식 속에서 대통 18


령은 그 모든 고담준론과 당파싸움을 단칼에 중단시키고 모두를 통합시키는 초월적이고 카리스마적 존재 여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봉합할 수 없는 1987년 체제의 균열 혹은 악순환이 드러난다. 폭압적 독재자를 무너 뜨리고 민주적으로 옹립한 리더가 그 독재자만큼 강력한 결단자여야 한다는 것. 요컨대 한국인들이 원하 는 민주주의란 질서정연하고‘영이 선’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본래 온갖 갈등과 차이를 최대한 용인하

한국인들이 원하는 민주주의란 질서

는 체제임을 상기해본다면‘영이 선 민주주의’ 란‘네

정연하고‘영이 선’민주주의다.‘영

모난 삼각형’같은 형용모순이다. 그것은 박정희가 오래 전에 주장한 소위“한국적 민주주의” 와 비슷한 무엇이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시대정신

이 선 민주주의’ 란‘네모난 삼각형’ 같은 형용모순이다.

이 있다면 아마 그것이 아닐까. 정치 환경을 근본적 으로 개혁하기보다 끝없이 새 얼굴만을 요청하는 오랜 한국정치의 습속 역시,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최 종적 해결책이라는 사고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공약의 디테일은 중요하다. 그것은 정당의 역량을 재는 결정적 지표 중 하나다. 그런데 정주영의 공약, 문국현의 공약이 나빠서 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공약들을 묶어세우 는 것은 강령이고, 강령은 결국 어떤 정치세력의 계급적 지향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 는 끊임없이 계급적 지향을 은폐하고, 또 은폐하도록 만든다. 부르주아 정치의 본질은 부르주아의 계급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부르주아의 계급 이익을 은폐하는 데 있다. 계급적 적대가 숨겨질수록 가진 자의 이익은 자본주의 자체의 동학에 의해 자연스레 보호될 수밖에 없다.

진보정치, 계몽을 재계몽하라 진보정치는“20년째 얼굴만 바뀌는 새 정치” 를 비판한다. 정주영, 문국현, 노무현, 안철수가 구태정치 의 종결을 선언하면서 끝없이 구태정치로 회귀하고 마는 것은 그들 개인의 역량이나 품성의 문제는 아니 다. 정책이나 공약의 정교함이나 완성도의 문제도 아니다. 끝없이 새얼굴을 소모하면서 기득권을 전혀 건 드리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그 구조는 단순히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제도의 문제만으로 환원될 수 없다. 사회에서 실제로 첨예하게 발생하는 계급 적대, 예컨대 불안정노동과 이주노동 문제 등은 마치 존재하 지 않는 양 억압당하는 반면, 언론이나 SNS 등을 보면 독재세력과 민주화세력이 선악의 아마겟돈을 벌이 고 있다는 식으로 정치적 수사의 과잉이다. 낡은 운동권의 언어와 전술로는‘얼굴만 바뀌는 새 정치’ 를결 코 뒤집어엎을 수 없다. 오늘날의‘계몽된 시민’ 들의 구체적 삶 속에서, 진짜 적대가 폭발하는 현장 속에 서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정치, 즉‘계몽을 재계몽하는’진보정치만이‘판’ 을 바꿀 수 있다.

특집1 20년째‘새 정치’19


박근혜 대통령 시가행진 모습 (사진 : 참세상 김용욱)

특집 1 / 20년째‘새 정치’

침묵도 새 정치? 말하지 않는 정치인 박근혜 박근혜는 침묵하기 때문에 책임질 일이 없다. 정치를 하지 않기 때문 에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상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다.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행사하는 셈이다.

조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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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가 17-18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여러 국회의원 중에 단연 돋보인 인물이 있었다. 17-18대 8년 동안 국회 본회의장에서 단 네 번 밖에 말하지 않은 국회의원이 있었던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격렬한 토론과 논쟁을 주고받은 상임위 활 동을 살펴보면 좀 다르지 않을까? 이 대단한 의원은 8년 간 본회의와 상임위를 통틀어 단 스물 여덟 번 밖 에 말하지 않았다.

8년동안 딱 네 번 입을 연 국회의원 이 대단한 의원이 바로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다.‘국회의원은 말하는 직업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 로 국회의원, 나아가 정치인은 국민을 대변해 토론하고 싸우면서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정 치인들은 무슨 일만 터지면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거나, 견해를 밝히라는 언론과 국민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정치인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죽었다는 의미다. 말하지 않으면 언론에 등장하 지 않고, 언론에 등장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박근혜는 다르다. 언론은 말없는 박근혜를 따라 다니며 박근혜가 한마디 해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어쩌다 한 마디 하면 대서특필하며 박근혜의 의중을 읽어낸다. 박근혜는‘침묵’ 을 통해서 정치를 한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은 정치인보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게가 실린 박근혜 를 더 신뢰한다.‘신뢰’ 와‘원칙’ 의 정치인이라는 호칭은 여기서 나왔다. 가볍고 솔직한 언사로 언론의 질 타를 받은 전임 대통령들하고 확실히 대비된다.

인수위원회 시절 박근혜 당선자 모습(사진 : 참세상 김용욱)

특집1 20년째‘새 정치’21


박근혜는 늘 침묵을 유지하다 한 마디 던지며 정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위에서 소개했듯이 박근혜는 본회의장에서 단 네 번 연설했는데, 그 중 세 번은 교섭단체 대표연설이었다. 다시 말해 박근혜가 자기 생 각을 드러내기보다 공당의 대표로서 연설했다는 뜻이다. 나머지 한 번은‘세종시 수정안’ 과 관련된 연설 이었다. 침묵을 지키던 박근혜가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기 위해 입을 열자, 이명박도 무릎을 꿇을 수밖 에 없었다. 이명박이 하는 일 하나하나를 비판하던 민주당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치하지 않음으로써 정치를 한다 대통령이 되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하다. 박근혜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언론에 박근혜의 모습이 계속 나오기는 하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기업인들도 만나고 국무회의도 하는 것 같은데, 도저히 정치를 하는 것 같지가 않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박근혜는 정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정 치를 한다. 박근혜가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분야는 대북정책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는 프랑스식 이원 집정제의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이원 집정제 아래에서 내치는 총리가 담당하고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만 담당한다. 외교·국방은 내치하고 다르게 전문 분야다. 즉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반대세력과 타협하 고 협상할 유인이 적다. 여론의 영향력도 덜 받는다. 외교관과 군인들이 정보를 독점한 채 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정책을 결정하는 것

깐족대면서 사태를 키우던 전임 대통령과

과 같다.

견주어볼 때, 지배계급으로서는

국정원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 국정

박근혜가 더 고단수다.

원 사건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건 청와대와 박근혜가 아니라 새누리당이다. 이는 국정원 규탄 촛불이 더 이상 커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8년을 떠올려보면, 이명박은 촛불 민심에 적극 개 입했다.‘양초는 누구 돈으로 샀냐’ 며 배후를 밝히라고 말해 비난을 자초하는가 하면 아침이슬을 부르며 눈물 흘려 스스로 희화화의 소재가 되었다. 이명박은 일이 터지면 깐족대면서 일을 키우는 특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박근혜는 다르다. 그런‘내치’ 는 내 일이 아니라는 듯이 침묵한다. 이런 침묵의 정 치를 통해 박근혜는 욕도 먹지 않으면서 동시에 반대 세력이 일정 수준 이상 확장되지 않게 관리한다. 지 배계급으로서는 박근혜가 이명박보다 고단수인 셈이다. 박근혜가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2자 회담 제안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굳어졌 다. 김한길은 국정원 사건을 해결하자며 박근혜에게 2자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황 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끼어들어 3자회담을 하자고 나섰다. 여야 원내대표까지 포함한 5자 회담 제안도 나 왔다. 회담이나 5자 회담을 하면 여야가 맞서면서 대통령이 가운데 서게 된다. 박근혜가 중립적인 중재자 의 소임을 맡게 되는 것이다. 정파 사이의 갈등을 조절하고 국론을 통합하는 대통령! 22


태국의 왕이 떠오른다. 태국에는 군부와 정치인들이 싸울 때마다 한마디 던지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왕이 있다. 왕의 권위는 국가 위기 상황에 발동한다. 평상시에는 늘 침묵을 지키다 군부와 정치인, 또는 여 야가 대립하면 나타나 한 마디 던지고, 그러면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 박근혜의 침묵의 정치, 정치하지 않 는 정치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아. 이 대목에서‘100% 대한민국’ 도 떠오른다.

불리하면 꼬리자르고 도망간다? 무책임의 정치 문제는 박근혜의 정치가‘100% 대한민국’ 이 아니라 무책임한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박근 혜는 침묵하기 때문에 책임질 일이 없다. 정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상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행사하는 셈이다. 대선 기간 때 박근혜는 동생 박지만의 비리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때 박근혜는“동생이 아니라 면 아닌 거겠죠” 라고 말했다. 무책임의 극치다. 박근혜가 침묵했기 때문에 가능한 무책임이다. 마찬가지 로, 박근혜는 4대강에 책임질 이유가 없

‘닭근혜’ 라고? 동의하지 않는다. 박근혜는 모르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침묵으로 무엇보다 강한 정치력을 발휘한다.

다. 박근혜는 4대강에 찬성한 적이 없고, 그건 이명박이 한 일이니까. 박근혜는 이 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도 책임질 이유가 없다. 그건 이명박이 한 거고 오 히려 박근혜도 사찰 당했으니까. 박근혜 는 국정원의 대선개입도 책임질 이유가

없다. 그건 국정원이 한 거고 박근혜는 도움 받은 적 없으니까. 박근혜는 윤창중의 성추행도 책임질 이유 가 없다. 박근혜도 충격이었으니까! 이런 식의 무책임이 판을 친다. 불리하면 꼬리 자르듯 아랫사람들을 자르면 그만이다. 이명박이 광화문을 수놓은 촛불을 보며“아, 저 사람들은 왜 내 진심을 몰라줄까. 내가 잘못한 걸까” 라 며 눈물을 흘렸다면, 박근혜는 지금의 촛불집회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나라가 많이 혼란스럽군. 여야가 화합해서 해결해야 할 텐데” 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몇몇 야권 지지자들은 박근혜를‘닭근혜’ 라고 부르며 박근혜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고 비난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박근혜는 모르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는 이런 행동을 통해 무 엇보다 강한 정치력을 발휘한다. 박근혜의 무책임한 정치를 어떻게 폭로할지 고민이다.

특집1 20년째‘새 정치’23


사진 : 박원순 팬카페

특집 1 / 20년째‘새 정치’

서울판 Big Society, 박원순의 비(非)정치 “사람들은 관료와 정부가 아니라 스스로 공동체에서 문제를 해결한다” 영국 집권당 보수당의 사회전략‘Big Society’ 에서 박원순 시장이 연상된다.

김상철 서울시당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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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회론은 가장 크고 가장 드라마틱한 권력의 재분배다. 일상에서 집에서 이웃에서 그리고 작업장 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사람들은 관료, 지방정부, 중앙정부에서 그들의 대답을 찾기보다는 그들 스스 로, 그리고 그들 자신의 공동체에서 문제를 해결한다. 이것은 정부의 엘리트로부터 거리의 남녀에게 로 권력이 이양되는 일종의 해방이다. 정부의 역할은 큰 사회론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영국의 집권당인 보수당의 카메론 총리가 자신과 보수당의 사회전략인‘Big Society’ (이하 큰 사회론) 를 직접 설명하는 내용이다. 내용만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만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주장이 영국 보수당 의 전략으로 등장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사회’ 를 강조한다는 맥락, 그것이 사실은 정치를 거세 시키고 시장의 폭력을 감추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당의 큰 사회론은, 우리 사회에서 혁신의 대 표주자로 자리매김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연상시킨다.

목민의 정치, 비(非)정치의 출발점 서울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적 자원이 집중된 곳이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점들의 극단을 보여주는 곳이다. 생산하지 못하지만 가장 부유한 도시이기도 하고 소비의 극단에 놓여 있지만 모 든 자원이 풍족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중적인 특징은 정치적 맥락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의 중심이 자, 비정치의 중심이기도 하다. 전(前) 시장이었던 이명박이나 오세훈은 자신의 통치를 정치라 일컫지도, 그렇게 해석되는 것을 원하 지도 않았다. 외려 정치와 행정을 날카롭게 구분하면서 이해타산이 거세된 무균질의 공간에 서울시정을 밀어 넣었다. 한국의 지방선거에서 가장 정치적인 장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 되었으면서도 가장 선명 하게 비(非)정치를 택했다. 이는 지금 시장인 박원순에게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특히 박원순은 자기가 속해 있는 장으로서의 정치와 자기 소명의식을 강조할 때의 정치가 명쾌하게 구분된다는 점이다.

“저는 과거 시민운동을 할 때도 넓은 의미에서는 정치인이었어요. 시민들의 요구를 잘 파악하고 실천 해서 사회변화로까지 만들어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정치인이었고 월급 없는 공무원이었고 공적 지식인 1) 이었죠.”

시장으로서 직무가 정치로 해석되는 것은 꺼리면서 시민운동가인 자신의 삶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인 으로 해석하다니 언뜻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불일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모든 서울시 장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일차적으로는 서울시장이 되는 순간 대통령이라는 다음 자리의 경쟁자가

1) 박원순, 오연호 지음,『정치의 즐거움』오마이북 펴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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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는 점을 고려해볼 수 있고, 이명박이나 오세훈이 취했던 비정치의 근거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러 나 박원순은 거기에 한 가지가 더해진다. 바로 시민운동가에서부터 형성된 그의 독특한 정치관이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박원순이 말하는 정치가의 모습은 현대적이라기보다는 봉건적이다. 굳이 익숙한 말을 끄 집어내자면 조선 말 실용주의적 사대부들이 주장했던‘목민(牧民)’ 과 겹친다. 목민의 정치는 엄밀하게 말하면 문제 해결적 정치를 의미한다.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기보다 현재 발 생하는 문제들의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 한정된다.‘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는박 원순 시장의 말은, 허언이라기보다는 자신

목민의 정치는 엄밀하게 말하면 문제 해결적 정치를 의미한다.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기

이 생각하는 목민의 정치를 정확하게 표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무상보육과 관련된 이슈를 보자.

보다 당장의 문제들에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처음에는 무상보육의 대상을 일방적으로

데 한정된다.

확대한 정부 정책에‘중앙정부도 책임을 지 라’ 는 명확한 요구를 제시한다. 그 과정에

서 추가 예산 확보와 현행 보조율의 변경 등 몇 가지 핵심 요구사항들을 줄기차게 요구한다. 그러다 갑자 기,“2000억원의 빚을 내더라도 무상보육을 책임지겠다” 는 태도로 돌변한다. 무상보육은 동의할 수 있지 만 이를 위해 지방채 발행이라는 최악의 대안을 받아들이는 문제는 숙고가 필요하지만 여기에 일체의 반 론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비슷한 예로 현재 논란 중인 경전철 확대 계획도 그렇다.‘10분 내 모든 서울시 민이 지하철역에 갈 수 있어야 된다’ 는 허망한 교통복지 논리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교지(敎旨)’ 일뿐 이다. 그런 정치는 해결의 과정보다는 해결의 결과에만 주목하게 만든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마을공동체 만들기’ 박원순 시장의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에서‘목민’ 의 정치관은 가장 뚜럿하게 드러난다. 공약 사업이 고 대표 사업이지만 하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모호한 사업이 되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분명하게 해명 되지 않은 것은‘왜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인가’ 라는 질문이다.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대도시 서울에서 지금은 사라진‘마을’ 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업 초기 서울시의 교육자료나 추진 주체였던 성미산 마을 쪽에서 내놓은 문서를 보면 이런 과거 동네/마을에 대한 향수가 짙게 베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서울의 모든 곳 에 마을이 있다고 가정한다. 적절한 지원과 사업이 제시되면 이런 마을의 씨앗들이 생겨나고 종국에는 마 을공동체라는 잃어버린 관계를 복원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마을인지 보여줘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성미산 마을 모델이 끊임없이 가공되고 유포됐다. 즉, 그 모델의 고유성은 사라지고 성미산 마 을에서 추진한 사업들이 마을 까페로, 마을 미디어로 쪼개져서‘보급’ 됐다. 그러다 보니 지금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나무는 보이는데 숲이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초기 자료 26


를 보면‘행정을 변화시키고 주민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행정 거버넌스를 만든다’ 는 사업의 목적이 거듭 강조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주민들이 행정을 배우고 나아가 관료처럼 되는 데 정신이 없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을 비판한다. 노동당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방향이 정말 어긋난 길일까. 박원순 시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서울시 정부가 사실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큰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집행하고 정책을 실현하지만 사실 많은 것들은 시민들의 참여에서 달려있습니다. 저희들이 이제‘원전하나 줄이 기’ 라는 프로젝트를 세우고요. 에너지 절약과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자립도가 높고 기후변화 에 대응하는 이런 도시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절약들은 누가 하나요? 결국 시민들이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하죠.” (SBS CNBC 인터뷰 중)

시민의 관료화 프로젝트? 행정책임은 어디로 박원순 시장은 행정의 한계를 말한다. 그래서 행정의 성공은 시민들의 참여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여 기서 원전 하나 줄이기나 마을공동체 만들기와 같이 자신의 핵심사업에 어떤 투자를 하고, 어떻게 지원하 고 있는지 보다는‘시민이 참여해야 사업이 성공한다’ 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박원순 시장에게 시민참여는 행정의 성공을 보증하는 수단이 되는 셈이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행정의 실패는 곧 시민의 무 책임으로 귀결된다. 최근에 박원순 시장은 마을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지원이 없어도 자생할 정도로 준 비하라, 지원은 곧 끊긴다’ 는 말을 했다고 해서 설왕설래된 적이 있다. 장기적 전망이 필요한 마을 사업에 게는 치명적이지만, 누구도‘시장의 말’ 을 의심하지 않았다. 마을 사업에 걸림

박원순의 서울시에서 시민의 참여는 광범위하

돌이 된 행정의 문제는 사라지고 오로지

지만 궁극적으로는 동원의 대상일 뿐이다. 행정

시민들의 무능력만 타박 받았을 뿐이다. 반면 비판은 이해의 문제가 된다. 문 제성 사업을 지적하면 같이 배석한 공무

의 실패는 시민의 무능 탓이거나 시장의 아이디 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원에게‘왜 제대로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았냐’ 고 나무란다. 말 많은 인사 문제부터, 무분별한 도시농업, 광장사용 독점 등 수많은 지적 에서 불구하고 박원순 시장이 태도를 바꾼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비근한 사례가 경전철 문제다. 지난 9월 초 서울 지역의 많은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경전철 사업에 대 해 우려를 전달하기 위해 시장을 만났다. 40분 가량 이야기를 듣고서 박원순 시장이 한 말은 정확하게‘시 민사회가 오해하고 있다’ 는 것이었다. 자신은 민자사업의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꼼꼼하게 봤고, 이런 저런 문제들도 심사숙고했다, 그런 우려에도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항변이다. 결 국‘내가 그런 비판들을 모르겠나? 나도 잘 살펴봤는데 당신들이 모르는 맥락에서 보자면 이 정도도 최선 을 다한 결과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고 제대로 보면서 나를 이해 해달라’ 는 셈이다. 특집1 20년째‘새 정치’27


이렇게 박원순 시장에게 시민은 참여라는 이름의 동원 대상이거나 혹은 이해라는 이름의 학습 대상일 뿐이다. 이런 사이에 행정은 보이지도 않는다. 서울시 공무원이 달라졌거나 아니면 행정체계 자체가 변했 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이명박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행정의 외피만 단단해졌 다. 정치를 협상의 과정이라고 했을 때 서울에서 가장 찾아보기 힘든 것은 정치 그 자체다.

‘정치’배제한‘사회’ 는 보수주의다 영국 보수당의 큰 사회론은 블레어의 제3의 길에 대한 대처주의의 응답으로 해석된다. 제3의 길이 말 하는 사회투자국가론은 여전히 유능한 국가를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 사회론은 명목상으로 는 공동체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기실 국가를 대체하는 사회의 영역을 계 발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까지 문제가 된 시장의 횡포를 통제가 아니라 사회의 자기 구제로 바꾸 고자 한다. 시장은 시장대로 내버려두고 시장에 관한 관심을 사회로 돌리려는 것이 바로 큰 사회론이 노 리는 전략의 핵심이다. 박원순의 정치는 기존 제도정치를 향한 혐오에

박원순의 정치는 갈등의 정치가 아니라 해답의 정치이며 진보정치가 빠질 수 있는 최고의 함정이다.

편승해 있다. 기존의 정치는 정쟁을 할 뿐이고 문 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는 데 신경을 쓴 낭비였다. 그래서 해결방법만 골몰 하는 정치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 이런 태도는 기 본적으로 이명박이나 오세훈이 보여준 하향식 정

치와 같다. 좌우가 바뀔 뿐 위아래는 바뀌지 않는 거울상이다. 박원순의 서울시에서 시민의 참여는 광범 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동원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시장이 되는데 중요한 정치적 근거였 던 전임 시장들의 과오들은 어정쩡하게 남겨졌다. 지하철9호선이 그렇고 세빛 둥둥섬이 그렇다. 노동당이 꿈꾸는 진보정치는 일종의 해답지가 돼서는 안된다. 문제집 뒷면에 붙어있는 해답지는 단 하 나의 정답일 뿐이지 문제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노동당의 정치는 문제 자체를 바꾸는 것이어야 하며, 문제의 답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 박원순의 정치는 갈등의 정치가 아니라 해답의 정치이며 진보정치가 빠질 수 있는 최고의 함정이다. 노동당의 정치는 일차적으로 유능과 무능을 가르는 선에 놓이 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궁극적인 주체가 시장인가 아니면 시민인가라는 선에 놓여야 한다. 정치의 실용은 결국 대상에 대한 실용적 접근으로 귀결된다. 시민들은 잘 다스려지기를 원하는 신민이 아니다. 결론적으 로 박원순의 정치는 나쁜 과거를 대체하는 좋은 과거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그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 가 생각하는 정치가 낡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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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참세상

특집 1 / 20년째‘새 정치’

10년 전 민주노동당 그리고 2013년의 안철수 민주노동당이 잠시나마 유의미한 진보정당으로 우뚝 선 적이 있고, 우리가 지키려 하는 진보정당운동 노선의 정통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2003년의 민주노동당을 돌아보는 일은 안철수의 오늘을 통찰하면서 우리의 나아갈 바를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특집1 20년째‘새 정치’29


안풍(安風) 몰이, 안철수 신당 출범하나 바야흐로 안철수 무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한‘안철수 신당’ 이 본격적인 조직화 작업을 시작한 모양이 다. 안철수 의원이 각지를 돌며 발언을 하는 빈도가 매우 높아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2014년 지방선거에 안철수 신당의 이름으로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사들의 이름이 주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그 동안 우유부단한 정치 행보로‘간철수(안철수가 간을 너무 본다는 뜻)’ 라는 오명을 얻은 안철수 측이 2014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신당 창당의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하려고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관측 은 이제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안철수 의원의 이 자신감 있는 행보는 자신에게 집중된 정치적 기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지금까 지 한국에서 이른바‘제3세력’건설의 시도는 늘 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른바‘제3세력’ 건설의 시도는 늘 실패로 귀결됐다. 멀 게는‘무균질 정치인’박찬종부터 가 까이는 유한킴벌리 문국현까지.

패로 귀결됐다. 멀게는‘무균질 정치인’박찬종부터 가깝게는 유한킴벌리 문국현까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동력을 활용해 한국정치에서 제3세력으로 남으 려던 지금까지의 모든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그런데도 안철수 의원이 똑같은 시도를 반복하는 까닭은 당연히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이 자신감의 배경에는 안철수 의원을 향한 국민들의 기대가 그야말로 특별하다는 사실이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확인된 안철수 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안풍(安風)이라 불러도 모자랄 것이 없다. 비 록 문재인 당시 후보와 단일화한 뒤 정국에서 소임을 찾지 못해 그 기대 수준이 옛날 같지 않다고는 하지 만, 그래도 안철수 의원의 정치력을 뒷받침하는 이 힘은 지금의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속하지 않은 역대 모든 정치인의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

10년 전의 제3세력, 민주노동당 여기서 짚어보아야 할 점이 있다. 다름 아닌 노동당의 처지다. 안철수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갑자기 의 석 하나 없고, 당 이름을 무엇으로 바꾸든 국민들이 신경도 안 쓰는 당 이야기를 성질나게 왜 지금 하느냐 고 항변하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그렇지만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 비록 안 철수 의원이 받는 정도의 지지율을 획득해본 일은 없지만 진보진영이 한때 유력한 제3세력으로 확고하게 인식된 시기가 있었다. 10년 전인 2003년은 진보진영이, 꽃으로 치면 이제 막 봉우리를 활짝 피우기 직전 의 그런 시기였다. 이쯤이면 독자 여러분도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감을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 민주노동당 이야기다. 민주 노동당 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당 구성원들도 많지만, 어쨌든 민주노동당이 한국사회에 유의미한 진보정당 으로서 자리매김 했고 우리가 지켜가고 있는 진보정당운동 노선의 정통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2003년의 민주노동당을 돌아보는 일은 안철수의 오늘을 통찰하면서 우리의 나아갈 바를 고 30


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03년의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매우 설레는 시기를 맞았다. 2002년 지 방선거의 정당투표에서 민주노동당은 8.13%의 지지를 얻었다. 2012년의 통합진보당을 이미 경험한 지금은 8%라는 수치가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독자적인 정치적 전망을 가진 진보정당이 그 정도 의 지지를 받아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 선거 결과는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민주노동당의 두 가지 득표요인‘계급정치’그리고‘제3세력’ 2003년은 2002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4년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이 시기 민주노동당 내부 에는 기대와 불안이 공존했다. 2002년에 8%가 나왔으니 2004년에는 탄력을 받아 그래도 정당 지지율 15%에는 근접하지 않겠느냐는 기대의 한편으로는, 2002년의 성과 이후 제대로 보여준 전망과 결과가 없 으니 8%의 정당 득표는 그야말로 반짝 성공으로 귀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만만치 않았다. 그 불안과 달리 어쨌든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결국 13.03%의 득표율을 냈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8명과 지 역구 의원 2명을 원내에 진출시켰다. 약간의 허세를 보태서 말하면 이때 민주노동당은 현재의 안철수 의 원하고 비슷한 정도의 정치적 무게감을 획득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정당 찍어라” 2003년 민주노동당은 전형적인 제3 세력론과 더불어 계급정치의 논리를 각인시켜 13%의 지지를 얻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당시 13.03%의 지지를 보낸 국 민들에게 민주노동당이라는 존재를 대안으로 각인시킨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계급정치의 논리다. 이 논리는‘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이라는 구 호로 집약돼서 표현됐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복잡한 얘 기를 들이대도 이 한 마디면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져야

하는 이유가 명쾌하게 정리됐다.“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정당 찍어라!” 두 번째는 전형적인‘제3세력론’ 이었다. 표현하자면 이런 거다.“기성 정치인들은 썩었다, 우리는 깨 끗한 정치를 한다” ,“기성 정치는 무능하다, 우리는 유능한 정치를 한다” . 이런 식의 구호는 한국 정치에 서 제3세력론을 표방한 거의 모든 정치세력이 전용했다.

‘제3세력’ 에서 겹치고‘계급정치’ 에서 갈라진다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은 있으되 안철수 의원이 표방하는‘새 정치’ 도 이런 전형적인 제3세력론의 하 나로 평가할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은 기회가 될 때마다 새 정치는 진보와 보수로 나눌 수 없으며, 기성 정 치를 바꾸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을 거듭 주장해왔다. 정치가 국민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정치세 력 간에 이념과 견해를 떠나 서로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가 국민들을 외면하고 정쟁만 거듭하는 이유는 각자의 이익만 추구하며 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시 번역하면 안철수의 새 정치는‘깨끗하고 유능하다’ 는 얘기나 똑같다. 곧, 안철수의 새 정치라는 구호는 박찬종이 출연한 우유 광고에 나온‘무균질(사실 이 표현은 우유의 지방 성분이 균질하지 않아 자연 상태에 가깝다는 뜻이지 균 특집1 20년째‘새 정치’31


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라는 어휘나 문국현의‘유한 킴벌리 경영’ 이 유권자들에게 강력하게 각인된 사 례와 똑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 그리고 이 구호는 2003년 민주노동당의 성공 비결 중 하나인‘우리는 깨 끗하고 유능하다’ 라는 메시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제3세력론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2013년 안철수와 2003년 민주노동당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면 차 이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 물음의 답은 바로‘계급정치론’ 이다. 지금의 안철수 의원은 이런 논리 를 내세울 처지도 못 되고 내세울 생각도 없다. 이 논리는 진보정당만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진보정당들은 이런 논리를 내세울만한 처지가 되는가? 다른 당을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러 운 일이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지 않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정의당은 오히려 제3세력론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심상정 원내대표는 안철수 신당을 의식한 발언을 거듭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조직화된 노동 운동에 손을 내밀기보다는‘을(乙)’ 로 표현되는 중소상공인이나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의제에 집중하 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통합진보당은‘이석기 사태’등으로 완전히 코너에 몰려 제대로 된 비전을 보 여주지 못하는 형국이다.

‘내가 제3세력’내세운다고 제3세력 안된다 이런 정세를 고려하면 노동당이 집중해야 할 영역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식상한 이야기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더 계급적인 정당이 되자고 하는 맨날 하는 얘기를 또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지 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은 같을 수 있어도 상투적인 주장과 결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제3세력론은 정세의 산물이다. 기성

새삼 강조해야겠다.제3세력론은 누가 그것을 주장한

정치가 힘을 못 쓸 때 신진 정치세력

다고 해서 국민들에게 인식되는 논리가 아니다. 제3 세력론은 정세의 산물이다. 기성 정치가 더 이상 국민 들의 열망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날 때 제3

이 기회를 얻는다. 지금은 그 수혜자 가 안철수일 따름이다.

세력론은 특정한 신진 정치세력에 새로운 기회로 작 용한다. 지금은 그 수혜자가 안철수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계급정치론은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진보정치 세력만 주장하는 것이며 조직적 성과와 정책적 성과가 실제로 쌓이는 일이다. 다시 말해, 여기에 집중하 며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야만 언젠가 노동당이 제3세력론의 수혜자로서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을 때 진보 정당으로서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노동당이 가져야 할 전망이다. 기성 노동운동에서 외면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이런 연대를 통해 ‘노동당의 노동운동’ 이라는 노선을 만들어 조직된 노동운동의 아래부터 뒤흔들어야 한다. 일회적으로 소 비되고 있는 녹색 의제를 계급정치와 연관 짓고 이것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 흐름을 구성해야 한다. 제각 기 떨어져 있는 다양한 소수자 운동의 부분에서 일관된 노동당적 활동을 만들어 계급정치와 소수자운동 의 연계를 도모해야 한다. 이런 전망을 위해서는, 당분간 제3세력론을 버려야 한다. 32


특집 1 / 20년째‘새 정치’

대한민국 진보정치 퇴보사 되고 싶지만 될 수 없었던‘제3세력’ 한국 사회에서 (진보)좌파가 대중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자면 중도우 파, 즉 자유주의 세력과 경합하지 않을 수 없다. 범민주당 진영의 정치 적 위상과 자산을 해체시키고 그 빈 공간을 좌파 정당이 점해야 한다.

장석준 부대표

특집1 20년째‘새 정치’33


한국 정치는 10년 전보다 한참 후퇴했다. 진보정당으로 한국 정치를 진일보시키고 세상을 바꾸겠노라 고 공언한 우리로서는 참담한 마음 금할 길 없다. 그런데 얼핏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어차피 우리 힘 으로는 뒤엎을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아니었던가?” 2007년 이후의 결정적 퇴보는 사실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가장 커다란 원인이었다. 이건 우리가 어떻 게 할 수 있던 게 아니지 않은가? 주체사상파가 운동권 다수파가 된 것도 그 발단이 1980년대 중반이다. 무려 한 세대 가까이 뿌리 내린 주체사상파의 영향력은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통령 중심제와 소선거구제 일변도의 정치 구조가 있다. 이것은 짧게는 1987년에, 길게는 1948년에 등장했다. 우리 세대 안에 이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한 것 자체가 지나친 낙관이지 않을까? 끝까 지 가면, 결국 분단 체제라는 벽과 마주친다. 거대한 숙명론이 우리를 엄습한다. 그렇지만 2000년대 중반에 민주노동당은 그렇게 별 볼 일 없는 변수만은 아니었다. 진보정당운동이 제대로 전개됐다고 해서 이후 역사가‘좋은’방향으로 갈지‘나쁜’방향으로 갈지 결정되지는 않았을 테 지만,‘최선’ 을‘차선’ 으로 그르치거나‘최 악’ 을‘차악’ 으로 끌어올릴 여력 정도는 분

역사적 순간마다 진보정당이 실제 역사와 다

명 있었다. 중요한 역사적 순간마다 진보정

른 선택을 했다면, 작금의 낭패감이 이 정도

당이 실제 역사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작

의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금의 낭패감이 이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 그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된

다. 옛 이야기나 해보자는 것도 아니고, 허황한 대체 역사물을 써보자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선택들을 돌 아보면, 이제껏 진보정당운동에 결정적으로 무엇이 부족했는지 성찰할 수 있을 성 싶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그런 순간이었는지 제각각 견해가 다 다르겠지만, 대략 세 차례의 갈림길이 떠오른다.

2004년 원내 데뷔,‘열린우리당 2중대’ 인가‘제3의 정치세력’ 인가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기대 이상의 정당 득표율(13%) 덕분에 분에 넘치는 의석(10석)을 확보 했다. 뭐든지 첫 인상이 중요한 법이다. 당시 민주노동당의 처지에서는 등원 이후 첫 활동을 통해 이 당이 어떤 당인지 보여주는 게 관건이었다. 정기 국회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은 핵심 의제들을 정리했다. 4월 혁 명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원내 활동을 시작하니 여러 과제들이 봇물 터지듯 올라왔지만, 어쨌든 대개 노동과 복지 관련 쟁점들이었다. 한편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개폐, 과거사 청산, 언론 개혁, 사립학교 개혁의‘4대 개 혁 과제’ 를 들고 나왔다. 모두 필요한 과제였다. 그렇지만 문제는 우선 순위였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 당은‘민주’개혁에 해당하는 4대 개혁 과제가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다른 무엇’ 이란 아마도 비정규직 문제나 조세 개혁, 복지 확대 등을 의미할 터. 그럼 민주노동당은? 34


민주노동당은 처음에는‘야당 공조’ 를 위해 당시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과 협상했고‘개혁 공조’ 라며 열린우리당하고도 협상했다. 그러더니 정기 국회 개원이 가까워올수록 무게 중심을‘개혁 공조’쪽에 두 기 시작했고,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 과 제가 고스란히 민주노동당의 우선 과제 가 됐다. 누가 봐도 민주노동당은 열린우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 과제가 고스란히 민주

리당과‘한 진영’ 인 모양새였다.

노동당의 우선 과제가 됐다. 누가 봐도 민주노

마침 9월 중순에 비정규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열린우

동당은 열린우리당과 '한 진영'인 모양새였다.

리당 당사를 점거했다. 민주노동당이 열 린우리당, 한나라당과 구별되는 독자적 제3세력이며 무엇보다 노동자와 서민의 대변자라고 각인시키길 원했다면, 이 투쟁에 연대하는 데 전력을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원내에서는 개혁 공조가 의연히 추진됐다. 이후 자주파 중심의 민주노동당 중앙당은 국가보안법 개폐 투쟁에 올인했다. 비판이 일자 자주파 일각 에서는“열린우리당 2중대” 가 되는 것도 감수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굳이 그런 말을 꺼낼 필요도 없 이 이미 대중의 눈에 민주노동당은‘열린우리당 2중대’ ,‘열린우리당 행동대’ 였다. 여기에는 자주파뿐만 아니라‘개혁 공조’ 에 끌려 다닌 의원들도 한 몫 했다. 아무튼 이후 노무현 정권 내내 민주노동당 지지율 은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올라가면 함께 오르고 내려가면 함께 내려갔다. 공동 운명체가 돼버린 것이다.

2007년 대선, 자유주의 세력이 놓친 공간을 차지할 것인가 아니면…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범진보’진영은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져들었다. 노무현 정 부는 정책 실패로 지지층을 잃었고 열린우리당은 와해됐다. 노무현 정부와 한 진영으로 취급되던 민주노 동당은 2006년 말 북핵 위기와 일심회 사건 이후 평등파와 자주파 사이의 긴장과 대립으로 정신을 못 차 리는 형편이었다.《경향신문》 ,《한겨레》 에‘진보의 위기’ ,‘진보의 재구성’운운하는 기획 기사가 실리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었다. 대선은 이런 상황에 일정한 돌파구가 될 수 있었다. 이미 재집권은 물 건너갔다는 체념에 빠진 범민주 당 진영과 달리 민주노동당에는 그래도 출구가 있었다. 아니, 반전의 기회가 열려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로 자유주의 세력이 차지한 정치 공간이 갑자기 공백 상태가 됐다. 진보,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지지 할 대선 후보를 찾지 못해 거대한 무당파 또는 기권층을 형성했다. 민주노동당의 대선 대응 여하에 따라 서는 이 유권자들을 새롭게 진보정당 지지층으로 인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범민주당 진영이 차지하 던 양대 정당 구도의 한 쪽을 무너뜨리면서 명실상부한 제3세력으로 부상할 수도 있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었다. 우선 노무현 정부 실망층에 새로운 대안으로 다가갈 수 있는 참신한 대선 후보 를 내야 했다. 다음으로는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바로 그 지점 즉 노동, 복지, 교육, 주거 등에서 범민주당 특집1 20년째‘새 정치’35


세력과 확연히 구별되는 대안을 제출하고 대선의 주 무기로 삼아야 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실현되지 못했다. 권영길 의원이 대권 삼수생으로 대선에 나섰고, 핵심 구호는‘코리 아 연방 공화국’ 이었다. 결국 원외 시절이던 2002년 대선 때보다 못한 성적을 거뒀고, 급조된 문국현 후 보에도 밀렸다. 당 안에서 자신들의 주도권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자주파가 대중 정치의 요구와 상관없이 권영길 의원을 대선 후보로 조직적으로 지지한 결과였다. 덕분에 진보정당운동은 실질적 제3당의 지위로 진입할 수 있는 다시 못 올 기회(어쩌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오지 않을)를 유실해버렸다. 대선 직후 민주노 동당 분당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사실 이 기회 상실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절망감이었다.

2008년 촛불,‘민주대연합’ 인가‘제3세력화’ 인가 2007년에서 2008년 초로 이어지는 대선, 총선에서 한나라당 왼쪽 정치 지형은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신뢰할만한 정치 세력이 없던 대중은 총선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계기로 직접 거리에 나섰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돌연한 대중 항쟁, 2008년 촛불 항쟁의 시작이었다. 당시 고(故) 이재영 동지가 주목한 것처럼 촛불 시위는 다른 누구보다도 진보정당을 위한 판이었다. 제 도권에서 한 차례 실패한 진보정당들에 재기의 발판은 역시 거리였다. 실제로 촛불 시위 와중에 거리의 여당은 의석 5석의 민주노동당과 원외의 진보신당이었다. 범민주당 세력은 수줍게 얼굴을 들이밀어야 하 는 처지였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15대 대통령선거 벽보(좌), 17대 대통령선거 벽보(우) (사진 : 선거정보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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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일단 가두 투쟁이 수그러들자 상황은 급변했다. 범민주당 세력과 이른바‘진보’지식인, 언론 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 세력들은 대립 전선을‘한나라당 대 민주대연합(당시 용어로는‘MB 대 반MB’ ‘으로 ) 규정했다. 여기에 민주노동당도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이후 2012년 양대 선거 때까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게 될‘민주대연합’구도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 흐름에 맞설 제도권 안의 유일한 거점은 진보신당이었다. 실제로 진보신당은 얼마동안 다른 목소리 를 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적극적이지는 못했다. 강력한 민주대연합 구도에 정면으로 맞섰다가는 현 실 정치에서 완전히 주변화되고 말리라는 공포가 당을 지배했다. 이때부터 2011년의 통합-독자 논란 그 리고 탈당 사태까지는 단지 한 걸음만 남아 있었다. 반면 제도 정치 바깥에서 묵묵히 자신의 정치 공간을 만들어온 다른 세력(?)이 있었

진보신당이 안철수 그룹 같은 정치적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 세력만큼 성공하지는

다. 그세력들이야말로‘민주대연합’ 으로 모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 정치의 상황이

두 환원할 수 없는 촛불의 여러 다른 얼굴들

지금 같지도 않았을 것이다.

을 자기 주위로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한 장기간의 기획적인 정치 활동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지금은 민주당과 경합하며 양대 정당 구도의 한 편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 바로 안철수 그룹이다. 진보신당이 안철수 그룹 같은 정치적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 세력만큼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 다. 그러나 진보 정치의 상황이 지금 같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보정당운동에는 안철수 그룹만큼의 자기 확신도, 기획도, 의지도 없었다.

부족한 것은 항상 독자적 제3세력으로 나선다는 원칙과 의지, 기획 매번 부족했던 것은 보수우파, 중도우파에 맞서 진보정당을 독자적인 제3세력으로 부각시키려는 원칙 과 의지, 그리고 기획이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좌파가 대중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자면 중도우파, 즉 자 유주의 세력과 경합하지 않을 수 없다. 범민주당 진영의 정치적 위상과 자산을 해체시키고 그 빈 공간을 좌파 정당이 점해야 한다. 위에 반추한 세 차례의 역사적 계기마다 진보정당 운동은 정확히 그 정반대의 선택들을 계속해왔다. 그 결과가 현재의 민주당-안철수-진보정당들의 세력 배열이다. 문제는 단순히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할지 말지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의지와 기획이 명확하다 면 전술 구사는 훨씬 다양할 수 있다. 요점은 우리의 현재 역량이야 어떻든 항상 독자적인 집권 전망에 따 라 이를 열망하고 추진하는 세력으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말은 쉽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경 험이 증명하듯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이것이 앞으로 노동당이 수행해야 할‘노동’ 의 핵심이 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

특집1 20년째‘새 정치’37


특집 1 / 20년째‘새 정치’

혁명은 무두질에서부터 노동당이 싸워야 할 대상은‘시간’ 현재 노동당의 수준은 딱‘피(皮)’ 의 수준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날가죽을‘혁(革)’ 으로 탈태시킬 수 있을 것인가? 낙관과 비관이 공존하고 긍정과 부정이 투쟁하는 현 실을 냉정히 들여다보고, 마침내 지향해야 할 가치를 견결히 다듬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윤현식 정책위원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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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을 통칭하여 흔히‘피혁(皮革)’ 이라 한다. 그런데 두 글자 모두 가죽을 말하지만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피(皮)’ 는 살가죽 그대로인 상태이다. 살아있는 짐승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고 죽 은 짐승에서 막 벗겨낸 것일 수도 있다. 아직은 그저 동물 신체의 일부분일 뿐인 것이다. ‘혁(革)’ 은 글자 생김부터가 범상치 않다. 짐승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죽을 좍 펴 놓은 듯한 형태다. 무두질을 한 가죽, 즉 가공처리를 한 후의 가죽을‘혁’ 이라고 한다.‘피’ 의 상태에서‘혁’ 의 상태로 변화 하는 것, 그것은 완전한 새로움이다. 쓸모 없는 것에서 쓸모 있는 것으로 바뀜으로써 같은 가죽임에도 용 처와 가치가 달라진다.‘피’ 가‘혁’ 이 되는 순간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피’ 가‘혁’ 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짐승의 두꺼운 가죽을 살에서 떼어내고, 약품처리 를 하고, 찌고, 바람과 그늘을 찾아 말리는 등의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한다. 현대에 들어와 이 과정의 상당 부분이 기계화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수없이 품이 들어야 하는 것이‘혁’ 을 만드는 과정이다.

노동당의 오늘은? 살점과 가죽을 겨우 분리한‘피(皮)’ 의 상태 지금 노동당은 어떤 상태일까? 아무리 뜯어봐도 현재 노동당의 수준은 딱‘피’ 의 수준이다. 겨우 살점 과 가죽을 분리해낸 순간. 암담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날가죽을‘혁’ 으로 탈태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 암담함 위로 겹쳐지는 회의. 우리는 어쩌면 이제 신념의 결연함보다는 비루한 회고에서 존재의 타당성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얼마나 더 의지로 낙관할 수 있을까? 현재의 빈궁함이 어디서 연유했는지에 대해선 무수한 근거가 제시될 수 있다. 정세와 역량에 대한 문 제, 혹은 주체와 객체의 문제, 노선의 대립과 분열 등 수다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고와 반성이 빈번히 반복되고 교과서적인 결론이 제시된다고 하더 라도 결국 남는 것은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

회고와 반성이 빈번히 반복되고 교

가이다. 낙관과 비관이 공존하고 긍정과 부정이 투쟁

과서적인 결론이 제시된다고 하더라

하는 현실을 냉정히 들여다보고, 마침내 지향해야 할 가치를 견결히 다듬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노동당으로 창당하는 과정에서 우리 당원들은 모

도 결국 남는 것은 그래서 앞으로 무 엇을 해야 하는가다.

종의 책임을 지겠다고 자임했다. 강령으로 선언된 바,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과 결합된 사회주의 공화국” 을 건설하는 역할을 감내하겠다 고 나섰다. 옹골차게 우리를 결박하고 있는, 그리하여‘운명’ 처럼 삶을 봉인하고 있는 구조화된 현실을 극복할 과 업을 자처한 것이다.‘혁’ 은 바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재료이자 수단이다. 당이‘혁’ 으로 거듭날 때 이 목표를 달성할 근거가 마련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듯,“세계의 논리가 초래하는 맹목으로부터, 타자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과들로부터 세계의 논리를 구원할 마지막 기회” 를 놓치지 않기 위해“세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로 특집1 20년째‘새 정치’39


결정” 한 사람들이 노동당의 당원들이다. 바로 우리가 바닥도 알 수 없이 추락하는 진보정치의 한 구석에 서 새롭게 불씨를 만들려 했고 스스로 불씨가 되려 한다.

날가죽에 바늘 꽂을 수는 없는 노릇 이 순간 우리는 보다 면밀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종국에 그‘혁’ 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지금 무두질 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가공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그것은 옷이 될 수도 있고 가방이 될 수도 있 고 구두가 될 수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굳거나 썩거나 혹은 찢어져 못쓰고 버릴 수도 있다. 아예‘혁’ 이 되지 못한 채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이제 막 뜯어낸 그 가죽에 구멍을 뚫고 바늘을 꽂을 수는 없는 노릇 이다. 잘 다듬어진‘혁’ 을 손에 들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위질이 필요하고 구멍 뚫을 연장과 실과 끈과 바늘이 동원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는 빈번하게 패배하고 좌절하고 체념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럴 때마다 냉철하게 그리고 뜨겁게 발 디디고 선 자리를 확인해야 한 다. 몰정세적인 승리적 관점의 자위가 뇌수를 갉아 이성을 마비시키듯이 일상화된 좌절에 파묻히는 것은 결국 심장의 박동을 정지시킨다. 우리는 어쩌면 양쪽 모두를 건사하느라 힘에 겨워 허덕이는 것을 숙명처 럼 받아 안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처지 바로 그 자체가 진보정당의 길을 선택한 그 순간부터 원 죄의 족쇄로 우리를 옭아맨 것이다. 이제 건조하게 무엇을 해야 할지 정리해보자. 매우 소박한 수준에서, 기껏해야 나침반의 바늘 정도의 의미에 불과하겠지만, 최소한 분명하게 구획을 지어야할 몇 가지가 있다.

일상 세계에 스며들어야 실력이다 노동당으로 창당하기 전까지, 당은 스스로의 이념과 장기적인 전망을 대중에게 공공연하게 제출하지 못했다. 당 내부적으로는 단기적이고 임의적인 사업이 과중하게 중첩됨으로써 당원들과 활동가들의 피로 가 누적되었다. 투쟁에 결합해야 한다는 강박은 투쟁을 기획하고 발전적으로 승화시키기는커녕 외부에서 조성된 투쟁에 끌려 다녔다. 당은 공적으로 제도적으로 사안의 의제화를 할 시기를 놓쳤고, 끝내 그럴 능 력마저 상실했다. 우리가 노동당의 진로를 고민하는데 있어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이것이다. 가장 강력한 정치조직으로서 정당은 정치적 의제를 추

명확한 전망과 의제의 설정, 단계적 실천 방안의 설계, 가장 쉽고 작은 일부터의 실천, 이처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방식 들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수하기보다는 선도해야만 한다. 연관하여, 정당의 이념과 정책은 어느 순간, 예컨대 선거라는 시기에 갑작스레 의제가 되면서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니다. 대중의 호응과 선택을 우리 것으로 한다는 것은 일상화 된 사업 속에서 이미 저변을 확보하고 있을 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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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다. 결국 우리의 실력은 얼마나 깊고 넓게 세상 속에 스며들어 있느냐로 판가름 난다. 명확한 전망과 의제 의 설정, 단계적 실천방안의 설계, 가장 쉽고 작은 일부터의 실천, 이처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방식들이 실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편 의회주의 혹은 명망가주의와 같은 회의적 비판에 당혹해하지 말아야겠다. 물론 의회주의와 명망 가주의가 당을 관료화시키고 주변화시키는 주범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획득 없이 우리의 이념을 실체화할 수 없다. 또한 당의 입장을 발화할 수 있는 대중성 있는 대표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부 정적인 측면으로 흐를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과 동시에 더 많은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 역시 당의 역량 이다. 전자에 대한 공포로 인해 후자를 지연하는 것은 정당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다.

노동당이 싸워야 할 상대는 시간 - 서두르지 말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고, 창당 4년 만에 10명의 의원을 의회에 진출시킨 이래, 소위‘진보정치’ 는 너무나도 빠르게 제도권 보수정치의 관행 에 휩쓸렸다. 바닥부터 대중과 함께하면서 의제를 기획하고, 다듬고,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이러한 과정 을 거쳐 대중의 지지와 엄호 속에 대안을 제출했던 모범적인 사업방식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것에 만족하면서 운동정당의 본질은 사장되었다. 오늘날‘진보정치’ 를 현기증 나는 백척간 두에 세운 원인은 바로 이‘야성’ 의 상실이었다. 2000년의 상황보다 지금 이 시기가 노동당으로서는 더 힘든 시기일 것이다. 이미‘진보정치’ 의 일면 을 보았던 대중은 당시의 막연한 기대와 당위적 지지를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 과거에 대한 대중의 부 채의식조차 사그라진 지금,‘진보정치’ 세력은 말 그대로 자신들의 실력으로 평 가받을 수밖에 없다. 보다 급진적이고

2000년대 초반에 세간을 들썩였던 진보정치의

근본적인 변혁세력으로서의 선명성, 그

그 수많은 성과들은 실제로는 수년 혹은 십 수

러면서도 대중들과 괴리되지 않는 유연

년씩 바닥부터 암중모색한 결과였다.

성 양자가 모두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 을 갖추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도 않는다. 2000년대 초반에 세간을 들썩였던 진보정치의 그 수많은 성과들은 실제로는 수년 혹은 십 수 년씩 바닥부터 암중모색한 결과였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지형의 확연한 구획과 우리의 위상을 정립하는 것을 중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보수-중도-진 보’ 의 3분할 구도를 정립하고 우리가 진보의 축을 담당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이 과거에 존재했다. 이러한 기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우리의 힘이 부족하기도 했거니와 더 중요하게는 세력분할의 외 특집1 20년째‘새 정치’41


관과 실질이 3분할 구획을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는 새누리당으로 대변되는 보수집단에 대척하는 것만으로 기타세력은 모두 진보로 분류되었으며, 실질적으로는‘새누리당+민주당’ 이라는 샴쌍 둥이 보수정당이 진보세력을 배제하는 것이 현실이다. 외형적이든 실질적이든 한국 정치지형에‘중도’ 라 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이합집산은 다반사, 단 노동당의 상수는 노동당이어야 노동당은 보수 양당 분할체제가 한국 정치의 근본적 한계임을 폭로하고,‘보수-진보’또는‘우파-좌 파’ 의 구조로 정치지형을 재편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빈번히 해체와 결집을 각오해야 한다.‘정 치’ 라고 하는 역동의 공간에서 이합집산은 다반사이다. 합칠 때도 있고 흩어질 때도 있다.“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보수가 구체적인 현실의 이해관계로 결속되어 있 다면 진보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공간의 무엇을 추구한다. 결국 지켜야 할 것이 명확한 보수와는 달리 진보의 분열은 숙명이자 원죄다. 그럼에

진보의 분열은 숙명이자 원죄다. 다만 선행되어 야 할 것은 막연하고 낭만적인 기대를 버리고 당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도‘진보정치’역시 정치이므로, 욕망의 끈적함이 어떤 농도를 지니느냐에 따라 뭉칠 수도 있고 찢어질 수도 있다. 이 순간, 어떤 종류의 재편이 필요하 다고 할 때, 선행되어야 할 것은 막연하 고 낭만적인 기대를 버리고 당을 중심으

로 사고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당의 오류는 당을 상수로 놓는 것이 아니라 변수로 놓은 상태에 서 재건과 재편을 논의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태도가 당원들의 자존심을 흔들면서 당 내부의 결속을 해체 했을 뿐만 아니라, 기껏해야 변수정도밖에 되지 않는 정당에 대해 외부세력은 신뢰를 보내지 않게 되어 결국 당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정치적 역동의 시기에 배제되어버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보 수-우파 대 진보-좌파’양대 세력으로의 구획을 당이 기획하고 의제를 선점할 때 비로소 당은 주체적 역 량을 근거로 재편의 주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련한 향수로 버무려진 낭만적 회상 속에‘혁명(革命)’ 을 가두어버린 시절이다. 이런 때에 다시‘피’ 와‘혁’ 을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으로 혹은 무모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 이 시간, 이 세계를 다시 두드려 새롭게‘혁’ 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노동당이 수락한 과업이 이것이 다. 우리는 좀 더 스스로를 믿고 강고하게 결단해야 한다. 우리가 바로 노동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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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자전거로 충분하다 사람은 인도로, 자전차는 차도로! 한강 자전거도로를 가득 채운 자전 거들이 거리로, 도로로 뛰쳐나온다 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요?


특집2 / 자전거로 충분하다

자전거가 가는 곳, 누구나 간다

서른, 처음 자전거를 배우다 친구들이 유럽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가 딱 서른. 나 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어릴 적 자전거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한번 태워달라는 그 한마디를 못했다. 시기를 놓치면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이런 기회가 언제 오나 싶어 고민이었다. 그러다 애인이랑 개발주의를 청산하고 생태친 화적인 도시를 만들겠다는 확 고한 철학이 부족하니 장기적

헤어졌다. 그래 가자. 그렇게 자전거 여행은 시작되었다. 북유럽이나 서유럽이 살기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실제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을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다 먹고 살기 좋으니까 하는

비전이 나올리 만무하다. 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의 마무리가 베트남이어서 더 그랬다.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소비

선진국의 여유와 부가 아무런 착취없이 그냥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

하는 것만을 삶의 미덕으로

반감이 여행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삶의 철학을 오랜 시간을 두고 쌓아

여기는 상식과 싸우지 않고

온 유럽에는 확실히 단단한 내공이 있었다.

도시의 체계를 하루아침에 바 꿀 수 없다.

유럽 자전거 여행,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다 50일 동안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를 자전거로 여행했다. 모 든 길을 자전거로 갈 수 있었다. 노을을 바라보며 밀밭 길을 가로지를

나동혁 서울 서대문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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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도, 고속도로를 따라 나란히 달릴 때도, 운하와 강을 건너고 바다로 내달릴 때도 어디에나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대부분 자전거 전용 안내


판이 따로 있었고, 심지어 암스테르담에서는 교통 신호 체계가 차와 자전거로 이원화돼 있었다. 자전거가 일상이 된 세계 속에서는 위협감이나 조급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대도시로 갈수록 자전거 타기가 조금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렇지만 암스테르담, 헤 이그, 브뤼헤, 쾰른 등 유명하다는 도시도 대부분 크기가 작아 서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자전거 도로가 잘 돼 있고 대부분 도로가 왕복 2차선을 넘지 않을 만큼 차가 많지도 않다. 그러다 파리에 들어오니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도시는 번화하고 차량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자전거가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도시 규모 가 커지고 큰 규모의 삶을 지향할수록 자전거는 일상에서 멀어진다. 걱정이 됐는지 한 현지인이“파리에 서 자전거 여행은 너무 위험하다” 라 걱정했지만 서울에 단련된 우리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물론 나는 마 냥 웃지 못했다)

자전거가 이동하기 편한 세상은 모든 사람이 이동하기 편한 세상이다 십여년 전,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로 촉발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 그 덕분에 요즘은 모든 지하철에 엘 리베이터가 설치됐다. 장애인은 물론 노약자와 임산부도 이용하기 편리하고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에게 도 도움이 된다. 장애인 이동을 위해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게 비효율적이지 않냐는 질문에 “장애인이 이동하기 편한 세상은 모두가 이동하기 편한 세상이다” 는 말로 답한 건 지금 생각해봐도 참 멋 지다. 이 말을 고스란히 차용하자면 자전거가 이동하기 편한 세상은 모두가 이동하기 편한 세상이다. 보행자 에게는 조금 억울할 수 있는데 자동차 중심의 세상에서 보면 그렇다. 패니어(자전가 가방)를 달고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70대 노부부. 자전거 도로 를 이용해 어디든 갈 수 있는 장애인 전동 차. 평균 속도가 느려질수록 삶은 더 여유 로워진다.

불편함이 상식이 되기까지 자전거 교통분담률 통계는 저마다 제 각각이지만 대충 평균을 내보면 이렇다. 네덜란드는 27~30%, 덴마크 19~23%, 일본 12~14%, 독일 15% 근접, 스위스 9%, 벨기에 8%, 스웨덴 7% 정도. 한국은 3% 미만이다. 한국에서는 제1의 자전거

유럽 자전거여행 당시. 모든 길을 자전거로 달릴 수 있었다.(사진 : 나동혁)

특집2 자전거로 충분하다 45


도시로 꼽히는 상주가 21.6% 수준이며 진해 10%, 창원 7.3%이다. 대도시 중에는 서울 2.58%, 대전 3.9% 등으로 부산지역이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저 통계 수치를 보면서 사람들은 효율성, 경제성, 실현가능성을 예로 들며 한국에서는 안 된다고 한 것 이다. 이런 의문을 불식시킬 좋은 예가 많이 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네덜란드는 1950년에서 1970년 사이 자동차 수가 20배 이상 늘었고, 자동차 이동 거리는 5배 이상 증 가했다. 대중교통 분담률은 20% 밑으로 떨어졌다. 직접적인 계기는 1973년 석유파동이었다. 도로 신설 계획 일부를 백지화하고 도시 중심부에 자동차 주차를 억제하는 대신 자전거 도로를 늘렸다. 초기에는 정 부가 시범 사업으로 곳곳에 자전거 도로를 늘리는 방식이 많았다. 물론 중간에 부작용도 많았다. 자전거 사고가 늘고, 자동차 이용자들과 상인들의 불만과 저항이 계속 됐다. 잠깐 늘어나는 듯한 자전거 이용이 정체됐고 자동차 이용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여기에 네덜란 드 정부와 의회는 위축되지 않고 역으로 자전거의 위상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갔다. 자전거 이용을 장 려하는 지자체에 재정을 지원하고 자동차 억제책을 강하게 밀어부쳤다. 승용차와 연료 구입에 높은 세금 을 부과했고 자전거 이용자에게는 역으로 세금을 환불했다. 이렇게 30년 정도를 노력한 끝에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두게 됐다. 불편함이 상식이 되기까지 노동당, 녹색좌파당, 사회당 등 진보정당이 꽤 많은 정치 지분을 확보하고 있으며 일관된 정책 기조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설득하는 일에도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 시작하자 한국에서도 지자체들이 유행처럼 자전거 붐을 조성하고 있다. 대부분 4대강 자전거 도로처럼 개발주 의에 편승한 전시성 행사의 일환으로 끼워파는 일이 많다. 상황이 이러니 자전거를 일상적인 이동 수단으 로 쓰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값비싼 레저 도구로 만 활용하는 꼴이다. 새로 만든 자전거 도로는 무용지물

지금 시작해야 조금 더 쉽게 바꿀

이 많고 그나마도 수시로 깔았다 엎기를 반복하고 있다.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 모두

개발주의를 청산하고 생태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겠다는

그렇게 시작했다.

확고한 철학이 부족하니 장기적 비전이 나올리 만무하 다. 더 많이 노동하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소비하 는 것만을 삶의 미덕으로 여기는 상식과 싸우지 않고 도

시의 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 과밀한 한국의 도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지금 주저한다면 영원히 바꿀 수 없다. 지금 시작해야 조금 더 수월해진다. 지금 시작해야 조 금 더 쉽게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 모두 그렇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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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출퇴근 tip

● 출퇴근 전에 다양한 경로를 사전답사해 봅니다. 자전거 도로가 제대로 나 있는 곳이 거의 없고 도로 사정도 제각각. 인도가 위 험한 곳도 많아요. 턱이 진 곳에서 펑크가 많이 납니다. 더욱이 출퇴근 시간에는 차량도 많고 사람도 많아 후덜덜. 최대한 안전 한 경로를 찾아 미리 길을 인지해두는 게 좋습니다. 무엇보다 공포심은 막연한 상상에서 오니까요. 많이 준비할수록 더 용기 낼 수 있습니다.

● 급작스런 충돌 위험 내지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나올 때. 초보 자들은 대체로 위험을 피하려고 위험을 향해 달려갑니다. 참 신 기하게도 대부분 그렇습니다. 불안하고 상황 파악이 잘 안될 때 는 일단 멈춤. 간단합니다, 일단 멈춤.

● 기본적인 장비를 갖춥니다. 저는 귀찮아서 잘 안하는 편이지만 최소한의 장비는 갖춰주세요. 헬맷하고 장갑은 완전 필수. 야간 라이딩을 대비해 앞등과 뒷등 정도는 꼭 달아주시구요. 너무 완 벽하게 갖추려 하면 오히려 시작을 못하니까요. 최소한의 장비 들만. 나머지는 타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걸 찾아가면 됩니다.

● 직접 수리하는 일은 처음에는 대부분 잘 못합니다. 어떤 부분은 영원히 못할 수도 있구요. 근처에 자전거포가 있으면 수리 맡기 시고요. 탐구정신이 뛰어난 분들은 펑크 때우는 연습 정도는 직 접 하면 좋습니다. 정 다급할 땐 그냥 지하철 타시고요. 안된다 고 제지하면 최대한 불쌍한 표정. 거의 다 봐줍니다.

● 주위에 작은 그룹을 만드세요. 일상적으로 교류할만한 사람들 이 없다면 커뮤니티 가입하셔도 좋고요. 주위 친구 중에 함께 자전거를 탈만한 사람이 있으면 가장 좋지요. 당원이나 그 주변 인들 모임이 만들어진다면 참 좋을텐데요.

특집2 자전거로 충분하다 47


특집2 / 자전거로 충분하다

대담 : 노동당 당원들의 심야 잔차질

“사람은 인도로, 자전차는 차도로”

"도시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 만나서 얘기 좀 합시다" 자전거 좀 탄 다는 노동당 당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선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마다 반가움과 울분(?)이 묻어난다. 쌓인 게 많다. 할 말 정말 많다. 지난 9월 3일 저녁, 서울 한강변에서 노동당 당원들의 첫 번째‘떼잔차질’ 에 이어 긴급대담 자리가 만들어졌다.

“칠십 대 노부부가 평화롭게

목숨 걸고 차도로 나가요

자전거 타고 거닐고 바구니에 아이들 태우고 산책하는데 정 서 순화가 되지 않겠어요?”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쓰려면 차도로 나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야 말로 모험이다. 사고도 많이 난다. 승용차는 정차할 때 깜빡이라도 켜지 만 승객이 갑자기 내리는 택시나 버스를 피하다 사고가 터진다. 터널로 들어서면 뒤에서 빵빵대는 경적소리가 증폭되어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 지만 어쩔 수 없다, 저 터널을 지나지 않으면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대담참여(가나다 순) 나동혁(서울 서대문) 노 정(서울 은평) 신동열(경기 광명) 유검우(서울 동작) 이현정(서울 관악) 조대희(서울 양천) 채훈병(서울 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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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옆을 지나가려다 급하게 앞브레이크를 밟고서 그대로 공중 일회 전, 길바닥에 처박힌 적이 있어요. 앞니 세 개를 싹 갈았죠. (이빨 보여 주면서) 이게 다아 내 이빨이 아니예요" (좌중 경악) “트럭 운전사들은 보통 갓길에 차 대고 차도쪽으로 내리잖아요. 그런 데 한 번은 인도 쪽으로 문을 열고 나오는 거예요. 정말 만화처럼, 트럭 문짝에 댕- 부딪치고 한 바퀴 굴렀어요." “대방 지하차도 건널 때가 제일 무서워요. 쓩 내려갔다가 쓩 올라가


반포 한강공원을 지나는 당원들(사진 : 조대희)

잖아. 경사로 올라갈 때 속도가 안 나니깐 뒤에서 차들이 마구 경적을 울려요. 소리가 증폭되서 굉장히 무 서워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자전거 들고 육교 건너고 이러는 거 막 기분 나뻐. 자존심 상해. 이동수단을 왜 내 가 들어서 이동시켜야 돼? 응? 자동차 들어서 옮기는 거 봤냐고. 자전거로 어디든 갈 수 있다며?(좌중 폭소)" 근교로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흔히 만나는 덤프트럭도 위협적이다. 트럭이 옆으로 스쳐지나갈 때엔 자 전거가 통째로 흔들린다. 더군다나 갓길은 온갖 돌멩이와 잔물질이 모여있어 타이어에 펑크가 나기 일쑤 다. 그래서일까, 도심 한복판에서 우람한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자전거도로도 안전하지 않다 차도에서는 자전거가 약자다. 그렇지만 인도로 다니면 자전거가 가해자가 된다. 그래서 더더욱 인도로 다니기가 꺼려진다. 인도에 선 하나 그어놓고‘자전거도로’ 라고 만들어줘봤자 쓸모가 없다. 앞만 보고 걷 는 보행자들의 눈에 그런 선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 “원래 인도니까. 그건 자전거도로도 아니고 인도도 아니예요. 더군다나 포장마차나 행상들이 그 공간 을 점유하기가 일쑤죠. 그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어떻게든 가판을 내놔야 하는데, 이런저런 고려 없이 그냥 선만 하나 죽 그어놓죠.” 차도에‘선 하나 죽 그어놓은’자전거도로도 유명무실하긴 매 일반. 자동차가 세워져 있거나 심지어 가 로수를 심어놓아 곳곳에 길이 뚝뚝 끊긴다. 한강 자전거도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들 만큼 잘 만 특집2 자전거로 충분하다 49


들었지만 문제는 어느 지자체를 지나느냐에 따라 시설 차이가 현격하다. 한강의 남단과 북단은 가로등 개 수부터 다르다. 밤에 헤드랜턴 정도는 갖춰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구간이 부지기수. 10년 전만 해도 한강 북단은 자전거도로 자체가 없었다. 노숙인들이 술병을 들고 휘청거리며 다가왔다. 지금도 가로등 없는 곳 은 자전거도로가 아니라 우범지대다. 운 없으면 날아오는 공에 맞아 죽기도 한다. 몇년 전 서울 안양천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던 사람이 인근 축구장에서 날아오는 공을 맞아 사망했다. 체육시설과 자전거도로 사이에 울타리를 쳐달라고 자전거 이 용자들이 요구했지만 묵살됐다. 홍수가 났을 때 유속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몇만 분의 일이 긴 하지만 자전거도로에서도‘죽을 수 있다.’

마구잡이 자전거도로 공사에 반대한다, 자전거의 이름으로 이명박 집권기에 자전거는‘환경의 적’ 이 됐다. 자전거도로를 놓겠다며 팔당 두물머리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농민들이 쫓겨났다.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강원래 프로젝트’ 에서 영상 작업을 했던 이현정 당 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자전거와 유기농의 싸움처럼 흘러가버려 마음이 아팠어요.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며 이런 공사 를 하는 건 말이 안돼요. 그때 만든 영상 제목도 <자전거의 이름으로>예요. 실제 교통수단으로서의 자전 거와 4대강 자전거도로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별개의 문제예요.” 더군다나 지금 만들어놓은 구간을 자 세히 들여다보면 굳이‘4대강 자전거도

강변 자전거도로는 생태 재앙의 씨앗이 되기도

로’ 라고 이름붙일 필요도 없다. 고속도

한다. 특히 도림천처럼 작은 하천에 자전거도로

로를 증설하면서 더 이상 자동차가 다니

를 만들면 물새들이 숨을 곳이 없다.

지 않게 된 국도와 국도를 이어 만든 구 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강변 자전거도로는 생태 재앙의 씨앗

이 되기도 한다. 특히 도림천처럼 작은 하천에 자전거도로를 만들면 물새들이 숨을 곳이 없다. “노동당 나경채 구의원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했어요. 강변 한쪽은 물새와 물고기들을 위 해 자전거도로를 깔지 말고 비워두자고. 그런데 무산됐죠. 지금 가보면 한쪽은 산책로, 한쪽은 자전거도로 를 만들어놨어요. 도림천을 찾는 물새들이 숨을 데가 없어요, 관악산 말고는.”

비싸도 너무 비싼 장비 … 필요한 만큼만 구비하면 된다 한강 자전거도로 얘길 하다 보니 '장비'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철인삼종 경기도 아니고 고작 한강 라이딩 50


하면서 왜 그렇게들 초호화 아웃도어 상품을 걸치고 나오는 걸까? "한국 특유의 문화가 있어요. 자전거 얼마짜린지 꼭 물어보고, 딱 달라붙는 선수용 져지 입고 헬멧에 장 갑까지 고가 장비를 갖췄죠. 그런데 정작 언덕길에서 내려서 자전거 끌고 가는 사람들 자주 보게 되요. 몸 은 단련이 안됐는데 장비부터 갖추는 거죠. 자전거는 사람의 몸이 엔진이예요. 몸이 단련되지 않으면 아 무리 고가 장비 갖춰도 자전거를 제대로 탈 수가 없어요. “ “아니 무슨 바지 한 벌이 육만오천 원이야. 비싸도 너무 비싸” “아웃도어 상품이 비싸죠. 유럽은 중저가도 있거든. 가만 생각해보면 기후의 문제도 있어요. 유럽은 한 국처럼 폭우가 쏟아지지도 않고 건물에 처마도 없거든요. 대충 방수되는 점퍼 입고 타고다니다가 비 오면 그냥 비 맞으면서 가요. 기후에 맞추어 라이프스타일이 만들어지고 아웃도어 상품이 생긴 거죠. 그런데 이게 한국 들어오면서 고가의 호화 상품이 된 거예요.” 단, 복장을 갖추어 입으면 편한 건 있다. 통풍이 잘 되고 땀이 빨리 마르기 때문에 장거리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져지가 필수적이다. 또 하나 있다. 헬멧 쓰고 져지 갖춰입고‘나는 라이더’표시가 확실하면 차도로 나섰을 때 의외로 운전자들이 선선히 비켜준다. 괜히 비싼 자전거 치었다가 돈 물어줄까봐 두려운 걸까? “무엇보다도 후미등과 전조등은 꼭 갖춰야 해요. 장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예요. 맞은편에서 오는 상대방이 내 존재를 식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죠.”

자전거도로만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총체적 변화가 필요해! 지도를 펴고 각자 자전거로 움직이는 거리를 색연필로 표시 해봤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통학길을 겹쳐 그리듯이. 여섯 사람 중 유검우, 채훈병 당원의 출퇴근 코스가 모두를 경악케 했다. 서울의 절반을 가로지르 다니. “사실 이렇게 장거리를 달려 출퇴근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예요(좌중 낄낄낄). 일터 근 처에서 살아야 여가시간이 늘어 나죠.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니

모두를 경악케 한 유검우·채훈병 당원의 출퇴근 거리

특집2 자전거로 충분하다 51


일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하게 되고. 결국 미친 부동산이 미친 출퇴근을 낳은 거죠.” “80년대 구로공단에서 일할 때는 자전거 타고 다니거나 걸어다녔다고.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공단이 성남, 안산, 시흥 쪽으로 이전되고 나서는 한 시간 걸려 출퇴근을 하면서도‘이게 뭐야’싶었는데, 이젠 출 퇴근시간 한 시간은 기본이야.” “ ‘동네’ 가 생활반경이 되어야 해요. 일도 동네에서 하고 친구도 동네에서 만나고, 모든 생활이 마을 안 에서 이뤄지는 곳에서는 착하게 살아야 돼. 그러면 범죄문제도 해결이 돼요(웃음). 게다가, 칠십 대 노부부 가 평화롭게 자전거 타고 거닐고 바구니 에 아이들 태우고 산책하는데 정서 순화

“ ‘동네’ 가 생활반경이 되어야 해요. 그리고 모

가 되지 않겠어요? 한국 봐봐,‘어-디 자

든 생활이 마을 안에서 이뤄지는 곳에서는 착하

전거가 차도로, 빨리 인도로 안 올라가?

게 살아야 돼. 그러면 범죄문제도 해결이 돼요.”

XX’이러는데 세상살이 팍팍해지지 않 을 도리가 있겠어요?”(좌중 폭소) “지하철에 자전거 들고 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아요. 출퇴근 러시아워에 자전거 들고 지하철 타면 난리날 걸요. 서울에 사람이 너무 많이 사는 것도 근본적인 문제예요. 인구분산이 필요한 거죠.” “그리고 왜 오밤중에 잔차번개야? 응?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여섯 시간만 일하자고, 여섯 시간만. 적게 먹고 적게 일하고, 피곤하니까 일찍 자아. 많이 일하니 많이 스트레스 받고 많이 술처먹고, 이게 뭐하는 짓 이냐고.” 어이쿠,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 시간에 맞춰 번개 약속을 잡았다가 된통 야단을 맞았다. 자전거 얘기로 시작해서 도시화, 노동시간 단축, 범죄문제까지‘통합적 대담’ 이 이어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번듯한 자 전거도로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 바퀴로 혁명을 : 노동당 떼잔차질 모임 https://www.facebook.com/groups/redbikers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 먼지 쌓인 자전거를 다시 굴리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있 다. 매달 첫주 불타는 금요일 밤, 전국 곳곳에서 노동당 당원들의 불타는 잔차질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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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 자전거로 충분하다

자전거는 정치다 ①

두 바퀴로 달리는 유럽 정책과 실천의 결과

자전거 천국으로 불리는 유럽 도시들에서 마주치는 풍경은 우리의 자전거 풍경하고 무엇이 다를까? 도로 공유의 정신으로 넓게 펼쳐진 자 전거 도로와 열심히 페달을 밟는 사람들의 물결일까? 물론 넓고 길게 뻗은 자전거 전용 도로와 출퇴근길도 부럽다. 하체에 착 달라붙는 저지 와 알록달록한 상의, 럭셔리한 산악 자전거들이 자동차 사이를 곡예처 럼 비집고 달리는 한국의 도시 풍경과도 사뭇 다르다. 유럽에서 도시들이 이렇게 친 환경 대안 교통 수단으로서

아이 태우고 짐 싣고… 자전거는 일상이다

자전거가 일상이 된 까닭은 자동차 증가에 따른 삶의 질

무엇보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자전거 가방, 바구니, 유모차처럼

저하에 대항해 꾸준히 준비하

아이들을 싣고 자전거 뒤에 연결하는 키즈 트레일러였다. 보통 자전거

고 실행한 친환경적이고 통합

여행을 위해 자전거의 앞뒤에 부착하는 여행용 가방을 페니어 가방이라

적인 교통 정책 덕분이다.

고 부르는데, 독일의 도시에서 이런 가방과 키즈 트레일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그 외에도 자전거 앞바퀴 쪽을 개조 해 아이들을 태우거나 짐을 실을 수 있는 카고 자전거, 뒷자리에 아이들 용 전용 안장이 부착된 자전거 등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렇게 짐을 실을 수 있는 가방과 아이들을 함께 태우고 달리는 자전거 풍경은 유럽 도시에서 자전거 타기가 생활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처음 방문한 유럽의 도시는 2007년 여름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에 코토피아 자전거 여행’ 에 참여를 하려고 도착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였

조대희 서울 양천 당원

다.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면서 마주친 것들은 지하철 안의 자전거족 들, 자전거 전용 신호등과 이정표, 무엇보다도 잘 닦인 자전거 전용 도 특집2 자전거로 충분하다 53


로였다. 이후 자전거 여행 중에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했는데,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전용객차가 있는 기차도 있었고, 멋진 강변을 끼고 달리는 포루투갈의 한 기차에는 자전거를 무료로 실을 수 있다는 안내 스티커도 볼 수 있었다(현재 한국의 기차에는 공식적으로 전용 가방에 넣은 자전거나 접이식 자전거만 실 을 수 있다. 고속버스는 짐칸에 어떤 자전거든 실을 수 있다) 평일에도 지하철이나 버스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었는데, 보통 출퇴근 시간대는 피해야 한다. 이후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 뮌헨,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마주친 두 바퀴의 풍경은 정말 자전거 천국이 따로 없을 듯하다. 특히, 올여름에 방문한 코펜하겐은 시내 곳곳에 자전거가 주차돼 있고, 길을 건 널 때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더 조심해야 할 정도로 도시 전체가 두 바퀴의 자전거 도시였다(코펜하겐의 자전거 출퇴근 비율은 무려 50%정도다).

친환경적이고 통합적인 교통정책 이렇게 친환경 대안 교통 수단으로서 자전거가 일상이 된 까닭은 자동차 증가에 따른 삶의 질 저하에 대항해 꾸준히 준비하고 실행한 친환경적이고 통합적인 교통 정책 때문이다. 자동차와 동등한 대접을 받 는 자전거 도로망 구축, 자전거 이용자들이 쉽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하철역과 정류장에 대규 모 자전거 주차 시설을 설치하고, 자전거를 전철, 버스, 트램, 기차 등에 실을 수 있게 했다. 아울러 독일과 덴마크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자전거 교육과 교통 안전 교육이 필수 과목으로 돼 있어 어릴 때부터 자전거 문화에 친숙하다. 최근에 눈에 띄는 변화는 소유의 개

자동차 증가에 따른 삶의 질 저하에 대항해 꾸

념에서 함께 쓰는 공유개념으로 바뀐 점

준히 준비하고 실행한 친환경적이고 통합적인

이다. 공공 자전거 무인 대여 서비스의

교통 정책으로, 자전거는 일상이 되었다.

확산을 말한다. 공공 자전거 무인 대여 서비스의 시초는 1964년 네덜란드 암스 테르담에서 루드 시멜페닝크의 주도로

시작된 무료 자전거 운동인‘하얀 자전거 운동’ 으로 이후 1994년 미국 포틀랜드의‘노란 자전거 운동’ , 1995년 덴마크 코펜하겐의‘시티바이크’ 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파리의 벨리브(Velib), 독 일의 콜바이크(Call bike),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비싱(Bicing) 등 공공 자전거 무인대여 서비스는 유럽뿐 만 아니라 북미와 아시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각 도시들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경남 창원시가 2008년 처음으로‘누비자’ 라는 이름의 공공 자전거 무인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울시에서는 여의도 와 상암동에 공공 자전거 서비스를 하고 있고, 서울 몇 개 자치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통합 적인 시스템의 부재로 이용 실적은 저조하다. 서울의 한강과 그 지류의 자전거 전용 도로는 최근 몇 년 사이 어느 나라 도시보다도 자전거 타기에 좋 54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자전거 타기 행사(스리티컬 매스) (사진 : 조대희)

은 환경으로 변했고, 자전거 이용 인구도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자전거 수송 분담률은 1.7%대 (2010년 기준)로 일본 14%, 네덜란드 약 40%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아직은 대체 운송 수단보다 레저 스포츠 형태의 자전거 이용자가 더 많다.

자전거 타고 몰려나와 싸워서 얻은 결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매년 4월 22일(지구의 날)과 9월 22일(국제 차 없는 날)에 엄청난 규모의 크 리티컬 매스 행사를 연다. 2008년 지구의 날에는 참가자가 약 8만 명이었다고 하니, 자전거족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부다페스트의 크리티컬 매스 행사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크리티컬 매스 는 세계 300여 개 나라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여는 자전거 타기 행사로 199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 작했다. 크리티컬 매스라는 용어는 물리학에서 시작된 개념으로‘임계질량’ 으로 번역되는데, 보통 사회 운동 부문에서는‘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필요한 결정적인 수’ 란 뜻으로 쓰인다. 한국에서는‘두발 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 라는 뜻의 줄임말로‘발바리’ 로 불리는 행사가 매월 서울과 부산, 수원 등지 에 열린다) 위에서 살펴본 유럽의 자전거 중심 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찾아온 것은 아니다.‘무료 자전거 운동’ ,‘자전거타기 운동’등 도시의 교통난, 에너지 문제 등 소비중심의 사회에 대항하는 작은 실천을 통 해 일어났으며, 미래의 도시에서 자동차를 완전히 배제하는 운동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 정부에서는 2016년까지 자전거 수송 분담률을 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는데, 아직 두 바퀴의 세상은 멀게만 느껴 진다. 대체 교통 수단이라는 두 바퀴 혁명을 위해 바람을 가르며 떼지어 페달을 밟아 보자. 속도 경쟁할 필 요도 없다. 자전거는 느림 그 자체이니까. 특집2 자전거로 충분하다 55


특집2 / 자전거로 충분하다

자전거는 정치다 ②

창원의공영자전거‘누비자’ 그 빛과 그림자

창원은 자전거교통수송분담률 1위인 상주에 이어 자전거 도시로 전 국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1977년 호주 캔버라시를 모델로 전국 최초의 계획도시를 설계할 당시부터 주요 도로에 자전거 도로가 설계되어 자전 거 도시로의 입성은 이미 예약되어 있는 상태였다. 다만,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을 뿐이다.

공영자전거인 누비자를 적자

공단 중심으로 누비자 이용률 급상승해

해소라는 명분으로 민간에 위 탁하려는 창원시의 정책은 반

이미 기반이 마련된 상태에서 출발한 창원시 공영자전거 시스템인

드시 재고되어야 하며, 보다

누비자는 2006년 박완수 창원시장이 공영자전거 시스템 도입을 선언한

많은 시민들이 보다 안전하고

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2013년 현재 186개

편리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

노선에 총연장 472.2km의 자전거 도로를 기반으로 연회비 2만 원의 회

는 도시환경을 조성하는 데

원제로 운영되며, 창원 시내 241개 터미널에 설치된 5천대의 공공 자전

모든 정책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거를 이용할 수 있다(실제 가용대수는 3,500대). 현재 누비자의 회원은 약 7만 명(누적 25만명)이다. 하루 평균 이용인원은 지난해 말 기준 2만 5천 명에 달할 정도로 이용률이 높다. 창원 시민들은 아침·저녁에는 학교 등·하교와 출·퇴근용으로, 낮 에는 시장을 보거나 근거리를 이동할 때 애용하며 만족도도 대체로 높

김성훈 경남도당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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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실제로 2012년 실시한 설문에서는 창원시민의 95.6%가 자전거타 기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1일 이용횟수도 매년 2배 이상 증가


(2010년 6천 118회, 2011년 1만 2천 688회)했다. 창원시청 누비자 담당공무원은 최근 들어서 창원공단에 위치한 대공장을 중심으로(자전거 터미널이 대공장에 위치) 누비자 이용률이 급상승했다고 한다. 바야흐로 자전거 타기가 노동자에게도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닌 보편적 일상이 된 것이다.

자만은 금물, 여전히 자동차가 중심이다 그러나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법. 창원시가 국내서는 어깨에‘뽕’ 이 좀 들어갈지는 몰라도 해외의 유 수한 자전거도시와 비교하면 갈 길이 한참 멀다. 총연장 472.2km나 되는 자전거 도로 중 전용도로는 100.2km에 불과하다보니 자전거 이용자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자전거사고도 급증했다. 교통정 책 또한 자전거교통수송분 담률 2위라는 것이 부끄러 울 정도로 여전히 자동차 우 선 도로정책 위주로 구성되 어 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고 보완해야 할 점이 많지만 많 은 시민들이 자전거를 하위 교통수단이 아닌 대안 교통 수단으로 인식하게 만든 창 원시의 노력은 그런대로 합 격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공영자전거인 누비자를 시

창원 공영자전거 누비자를 타는 시민들 (사진 : 창원시)

장논리에 맡겨 적자해소라 는 명분으로 민간에 위탁하려는 창원시의 정책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하며, 누비자를 넘어 보다 많은 시민 들이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시환경을 조성하는 데 모든 정책적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 창원시는 구창원, 구마산, 구진해시가 통합되어 2010년 7월 1일 출범했다. 누비자는 통합 이후 구마산시와 구진해시 지역에 터미널이 각 33, 34개소가 신설되었다. 자전거 전용도로100.8km 전 구간은 구창원시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

특집2 자전거로 충분하다 57


특집2 / 자전거로 충분하다

“아~ 그 자전거 후보!” 나의 당선 비결은 자전거 유세 2006년,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지방선거에 구의원 후보로 출마하 게 되었다. 선본에서는 기본정책을 정리한 후에 후보의 이미지를 만든 다며 연일 회의를 하고 있었다.‘비리잡는 암행어사’ 라는 이미지 컨셉 을 확정할 즈음, 이 이미지를 전면화 하기 위해 선거운동을 유세차량이 아닌 자전거로 해 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당시 관악당협 위원장이던 이 봉화 현 부대표의 제안이었다. 정치에 자전거를 활용하는 정 치인은 여러 명이 있다. 4대

진보정당 후보에게 봉건왕조시대 국왕 직속 감찰관의 이미지를 씌우 겠다니. 심드렁했던 나는‘자전거’선거운동을 하자는 얘기에 귀가 번

강 사업의 주역 중 한 명인

쩍 뜨였다. 일사천리로 준비에 들어갔다. 공대 다니는 당원이 자전거를

이재오 전 의원이 그렇고, 서

어떻게 뜯어고칠지 설계하고 자전거 수리업체와 철공소를 직접 찾아다

울 난개발의 주인공인 오세훈

니며 조언을 구했다.

전 시장도 유명한 자전거 매 니아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 적 행보는 결코 자전거의 본 질과 부합하지 않는다.

자전거 뒷좌석을 개조해서 앰프를 달다 우리는 자전거 뒷좌석 부분을 개조하여 철골을 세우고 그 안에 소형 앰프를 장착했고, 그 철골외부에 현수막을 붙여서 선거홍보용 자전거를 완성했다.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나는 양복바지에 구두, 노타이에 소매 를 걷어 올린 와이셔츠를 입고 자전거를 탔다.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음

나경채 서울 관악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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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득한 다른 후보들의 유세차량은 외면했으나, 우리들의 자전거 유 세차량에는 호의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16.6%를 득표하여 당선은 하지


못했지만, 선거가 끝나고 신림동 사람들은 나를‘자전거 아저씨’ 로 기억하게 됐다.“아, 그 자전거 후보!” 원래 자전거 타기를 즐기지 않았지만 사실 이때부터 자전거 매니아가 됐다. 그리고 다시 4년 뒤 2010 년, 새로 구성된 선본은 이번에야말로 당선을 노리는 선거이니 유세차를 사용해야 한다는 논의를 시작했 다. 한마디로 당선가능한 후보로 인식되려면 자전거는 위험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후보의 자전거와 운동원들이 타는 서너 대의 보조자전거가 행렬을 이루었 을 때 그 규모는 무시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젊고 참신한 이미지, 그리고 꼼수 안 쓰고 직접 발로 뛰는‘정 직한 정치’ 의 표상을 만드는 데도 자전거는 적격이다. 무엇보다 선거운동 자체가 역동적이고 유쾌하게 진 행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선본을 설득했다. 우리는 국내와 세계 여러 곳에서 이루어진 캠페인용 자전거의 사진을 수집하여 분석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활용했던 자전거선거운동의 여러 기법들도 확인하고 적용했다. 자전거의 특성에 맞게 이동 중 무선핀마이크로 짧은 인사말을 할 수 있도록 준비도 했다. 그리하여 2006년식보다 훨씬 깔끔하고 세련된 유세용 자전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자전거 유세는‘이색 선거운동’그 이상이다 자전거 유세는 나와 선본원들에게‘이색 선거운동’ 의 의미 그 이상이었다. 돈을 덜 쓰 고 요란스럽지 않은 방식으로도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 었다. 자동차나 유세용 트럭이 아니라 자전 거 또한 선거유세의 훌륭한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웅변함으로써 교통수단으로서도 자 전거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동네 구석구석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악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자전거로 유세를 다닌 나경채 의원 (사진 : 관악당원협의회)

전고투한 끝에 나는 당선이 되었다. 정치에 자전거를 활용하는 정치인은 사실

여러 명이 있다. 4대강 사업의 주역 중 한 명인 이재오 전 의원이 그렇고, 서울 난개발의 주인공인 오세훈 전 시장도 유명한 자전거 매니아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부시 전 대통령도 자전거를 사랑하는 정치인이 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적 행보는 결코 자전거의 본질과 부합하지 않는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노동당 깃발이 달린 자전거가 전국 곳곳을 누비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이를 통해 우리 당의 교통정책과 생태`환경 정당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멋지지 아니한가!

특집2 자전거로 충분하다 59


여성 진보정치 열전 2

경기도의회 최김재연 의원 편 (1부)

2년 이상 한 군데 붙어있기는 난생 처음이야! 뻔하고 지겨운 건 싫다. 2003년‘평등결혼식’ 을 올리면서 최김재연은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식장 바깥에 나와 신랑과 나란히 서서 하객들을 맞이했다. 하얀 웨딩드레스는 순결주의의 상징이어서 싫었고, 신부 대기 실에 꿔다 논 보릿자루마냥 다소곳이 앉아있기는 더더욱 싫었다. 새색시 가 감히 식장 바깥을 휘휘 젓고 다니는 모냥새를 생전 처음 목격한‘아빠 친구들’ 은 쌍욕에 삿대질을 했지만‘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 인터뷰 : 최혜영·김윤희 여성위원회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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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 멋스러운 실크 블라우스에 정장바지 차림의 최김재연이 들어선다. 늘 이렇게 입지는 않는다. 도의회 출근할 때 입는 단 두 벌의‘도의회 회기용’작업복 중 하나다. 비(非)회기 스타일은 민소매에 핫팬 츠, 또는 티셔츠와 청바지. 겨울에는 무지개색 현란한 무늬의 털옷을 입은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아무나 소화하기 어려운 빠리지앵-패션이되, 이 또한 속아서는 안된다. 겨울옷이 몇 벌 되지 않거니와 별뜻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입어서다. 찰칵찰칵, 사진기를 들이대자 그제서야 립스틱을 꺼내든다. "저 이거 좀 바르고 시작해도 돼요?" 그러 고 보니 화장기 없는 민낯이다. 인터뷰는 더 난감하다. 팟캐스트였으면 '삐이-' 경고음으로, 기사에는‘땡 땡(○○)’ 으로 대신해야 할 비속어가 쉬지 않고 쏟아진다. 함께 온 김정현 보좌관의 얼굴에서는 흡사 '이젠 포기했다'는 초연함이 읽힌다. 조명을 의식하고 토씨 하나도 골라 쓰는 대중 정치인의 이미지와 거리가 한 참 멀다. 친구들은 최김재연을‘깨굴’ 이라 부른다. 똥그란 눈이 돌출형(?)인 탓도 있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어디로 튈지 몰라서’ 란다. 예측불가능한, 경기도의회 최김재연 의원을 서울 모 대학 앞 카페에서 만났다.

“어디 신부가 나돌아다녀?”욕 실컷 얻어먹은‘평등 결혼식’ 미대를 졸업하고 건축학과에 편입해 3년을 더 공부했다. 90년대 초반 한국의 여느 운동권들처럼 데모 도 나갔다. 최루탄 쏘고 곤봉이 날라드는 데모 현장에 꽃단장 하고 나갔다는데 그 이유가 또 기막히다. 화 장했을 때랑 후줄그레할 때 경찰이 각각 어떻게 대응하는지‘테스트’해보고 싶었단다. 졸업하고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에서 무급으로 자원 활동을 했다. 먹고 살려고 건축사무소 일도 병행 하던 시절이었다. 철저히 장인 체제로 운영되는 건축업계에서 설계 노조를 만들려다 들통이 나서 관뒀다. “뭐 하나를 2년 넘게 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 4년째 도의원 하는 거, 이거 내 인생에서는 진짜 대단한 사 건이예요. 건축 사무소 일 그만 둔 건 사실 설계 노조 만들려다 엎어진 것도 있지만, 내가 지겨워서 관두기 도 했어요.” 뻔하고 지겨운 건 싫다. 2003년‘평등 결혼식’ 을 올리면서 최김재연은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식장 바 깥에 나와 신랑과 나란히 서서 하객들을 맞이했다. 하얀 웨딩드레스는 순결주의의 상징이어서 싫었고, 신 부 대기실에 꿔다 논 보릿자루마냥 다소곳이 앉아있기는 더더욱 싫었다( “내가 무슨 보쌈 당했냐고!” ). 새 색시가 감히 식장 바깥을 휘휘 젓고 다니는 모냥새를 생전 처음 목격한‘아빠 친구들’ 은 쌍욕에 삿대질을 했지만‘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마당에서는 재즈, 풍물, 밴드 공연이 이어졌는데‘여는 마당’ 이너 무 길어지는 바람에 정작 결혼식은 30분 늦게 시작됐다. “결혼식이 아니라 집회였어, 집회. 김혜경 당시 민주노동당 부대표가 주례였거든. 주례를 보셔야 되는 데 하객들 앉혀놓고‘민주노동당 지지해라’ 부터 시작해서(좌중폭소)‘운동하면서 만났으니 쭈욱 운동하면 서 살아라’일장연설을 하셨지. 그때 김혜경 고문이 신랑신부 두 사람한테‘평등 서약서’ 를 써오라고 숙 제를 내준 기억이 나요. 나는‘분리수거를 성실히 하고,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보일러를 틀 62


지 않으며,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아주 구체적으로 열 개 정도 썼는데 남편은 엄청 두리뭉실하게 썼어. 어딘가에 있을 텐데…”

“난 왜 안 잡아가요?”김인규 교사 구속에 항의, 누드사진전 참여 2003년 임신을 했을 땐 만삭의 몸으로 남편과 함께 누드 사진을 찍고‘김인규와 친구들’ 이 여는 전시 회에 동참했다. 현직 미술교사였던 김인규 씨가 만삭의 아내와 함께 찍은 누드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린 죄로 해직 당하는 등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곤욕을 치른 전 근대적‘외설 논쟁’ 에 관한 강력한 항의의 표현이었다. 또 있다. 최김재연 역시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복합적인 감 정을 경험해야 했다. 모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면서‘에일리언 이 뱃속에 있는 기분’ 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배가 불러올수록 살이 터지고 온몸에 지렁이가 기어다녔다. 모성에 관해 사회적 으로 형성된 관념과는 별개로, 여성 개인에게는 너무나 낯선 그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었다. “기관지에 실어도 되냐고? 당근 되지, 예술 사진인데! 찍을 땐 굉장히 재밌었어요, 콘돔을 불어서 고추에 대고 찍기도 하 고.‘앗싸’하면서 전시회에 제출했는데 난 안 잡아가길래 경 찰서에 전화도 했어요, 왜 안 잡아가는지 물어보려고. 그랬더 니 니네 사진은 스튜디오에서 조명 받으면서 찍은 거라 성기 부위에 명암을 줘서 잘 안 보인다 이거야. 김인규 선생네 사진

임신 당시 최김재연이 남편과 함께 찍은 누드사진 (사진 : 박해욱)

은 집에서 후레쉬 대충 켜고 찍은 거라 굉장히 리얼하거든. 결국 노출 부위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음란성 의 기준이었나 봐. 웃기는 거지.”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 <기적의 도서관>을 함께 세우다 ‘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해?’ ‘누드 사진이 뭐가 어때서?’자신의 삶을 독특한 궤적으로 그리는 데 한 몫 한 그녀의 상상력이 건축 설계에서 찬란하게 꽃피우게 된 시절 또한 2003년이다. 한국 건축계에 ‘공공 건축’ 의 화두를 던진 걸출한 건축가 정기용 씨1)와 함께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최

1) 건축가 정기용은 2012년 제작된 다큐 <말하는 건축가>의 주인공이며 영화 <건축학개론>에 등장한 건축학과 교수의 실 존 모델이기도 하다. 노인들이 사는 시골 마을의 동사무소에 목욕탕을 지었고 아이들이 뒹굴거리며 놀 수 있는 어린이 도서관을 설계했다. 지난 2011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여성 진보정치 열전 63


김재연은 지금도 정기용 씨를 자신이 가장 존 경하는‘선생’그리고‘멘토’ 라 부른다. “문화연대에서 처음 만났어요. 공간환경위 원회 위원장이 정기용이었거든. 건축하는 사 람들은 원래 사회에 관심이 좀체 없어요. 근 데 거기(문화연대) 사람들은 사회를 향해 계 속 발언했어요.‘책읽는사회’ 라는 모임에서 어린이 도서관에 관해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 보던 와중에 MBC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 ‘기적의 도서관’코너를 제안한 거야. 이것만 전담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합류한 거죠. 정기용 선생이랑 사장과 직원 관계가 되면 사이가 나빠질까봐 처음에는 안 가려고 버텼어요. 돈을 잘 버는 건축 사무소도 아니 었고. 아니나다를까, 돈은 진~짜 쪼끔 주더만 (웃음). 근데 진~짜 잼있었어요.”

뭐가 그렇게‘진~짜’잼있었을까. 그때까 지만 해도 한국에 어린이 도서관은 딱 한 곳 있었다. 그것도 간판만‘어린이 도서관’ 이지 일반 도서관과 매양 다를 바 없었다. 더군다 나 그때는 도서관의 고정관념이 확고했다. 우 선, 떠들면 안된다. 책을 볼 때는 자고로 정자 세로 앉아야 하고, 책과 거리는 30센티미터를 유지하매 등등.‘기적의 도서관’ 은 그 고정관 념을 산산이 깨뜨렸다. 기본적으로‘기적의 도서관’ 은 다 온돌 시 스템이다. 도서관은 쥐죽은 듯 조용하고 엄숙 한 공간이 아니라, 신발 벗고 들어가서 뒹굴 뒹굴거리며‘책이랑 노는 곳’ 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였다. 책꽂이 하나 책상 하나까지 최김재연이 설계담당으로 참여한 순천 기적의 도서관 모습과 설계 스케 치. <위>는 설계 스케치, <아래>는 스케치가 완성된 기적의 도서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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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키높이, 눈높이에 맞추는 일도 물론이 다. 엄마랑 아기가 책을 보는 공간, 아빠와 함


께 하는 공간 등 각각의 공간에 컨셉을 만들었다. 혼자만 틀어박혀 놀 만한‘다락방’같은 곳, 숨바꼭질할 구석 하나하나까지 기획하고 구현해냈다. “정기용 선생이‘얘들은 우주인이고 여기는 우주선 안이야’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휙휙 스케치를 휘갈 겨서 나한테 던져줘요. 그러면 난 선생이‘찍찍 그린’그림을 갖고 실제 건물과 구조로 그려나갔어요, 캐 드라는 프로그램으로.” 그 두 사람의 작업 과정을 아무리 상상해보려 해도 좀체 그려지지 않는다.‘얘들은 우주인이고…’시처 럼 모호하고 알쏭달쏭한 이야기와 함께 급하게 찍찍 그린 스케치 한 장을 받아서 구체적인 공간을 설계한 다? 다행히, 지금도 현대 미술관에 상설 전시 중인‘정기용 아카이브’ 를 가보면 당시의‘기적같은’설계 과정을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도면까지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파리에서의 건축 유학, 설계공부 실컷 하고 술도 실컷 먹고 임신한 몸으로 2003년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에 함께 한 뒤, 아이를 낳고 키우던 최김재연은 다시 공 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하면 안되는 것들 투성이’ 의 한국을 훌쩍 떠났다. 홀홀단신 프랑스 파리 로 날아가 2년 동안 건축학 공부를 시작했다. 파리는 젊은 시절 최김재연이 배낭여행 갔다가 함빡 반한 도 시다. 지저분한 거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고 전세계 인종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잡탕 문화에 빠져들었다. 동네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와인 한 병 들고 공연 실컷 보고, 드럼도 배웠다. “학교에서 하는 얘기는 하나도 못 알아듣고 술집에서만 알아들어. 술 먹어야 불어가 나오고. 졸업전에 서 설계 발표하는데 말이 안 나올까봐 술먹고 들어갔어(좌중폭소). 뭐라뭐라 물어보는데‘학교용 불어’ 라서 잘 못 알아들어서 대충 하고 나왔어요(또 폭소). 수업할 때는 설계 잘한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지도 교 수 설계 사무소에서 8개월 정도 다니면서 돈도 벌고… 그걸로 술도 먹고(계속 폭소).” 주야장천 술만 먹다 온 듯 너스레를 떨지만 기실, 최김재연은 2년 동안 파리 유학을 통해 도시 전체를 조망하고 개별 학문을 잇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대개의 한국 유학생들이 3년을 공부하고 졸업전을 하는 수순을 밟는데 최김재연은 학위를 포기하고 설계 수업만 2년을 들은 뒤 졸업전 발표를 마치고 귀국했다. “파리에서 2년 딱 살고 와서 젤 먼저 느낀 거? '하지 말라는 게 왜 이리 많어?' 버스 정류장에서 담배피 지 말라고 하고. 이것도 저것도 하지 말라는 캠페인도 많고. 지하철 탈 때도 줄 서고. 보행 신호 켜질 때만 길 건널 수 있고. 자기 검열도 심하고. 재미가 없어. 뭘 해도 눈치 봐야 되고.” 자유분방한 영혼,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의 소유자인 최김재원을 꼼짝없이 4년 동안 발묶는 사건이 터졌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덜컥, 당선이 된 것. “그때 심정이 어땠냐고?‘큰일났다!’ ”

(2부에서 계속) 여성 진보정치 열전 65


노동 리포트

경쟁체제 도입? 철도 민영화의 우회로다 김 철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철도 민영화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철도산업 발전방안’ 이라는 이름을 걸고 우회적으로 진행 중이다.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의 운영권을 민간 사업자에게 넘 기는 작업이 2012년 국민들의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혀 좌초되자, 철도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대선 때 공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은‘코레일이 독점하는 철도 운영을 복수의 경쟁 체제 방식으로 바꾸어 나가겠다 는 입장’ 을 천명하고 지난 6월 26일「철도산업 발전전략」 으로 명명된 단계별 철도 민영화 방안을 발표했 다. 박근혜 정부 임기 안에 코레일이 전담하고 있는 사업을 쪼개 분야별 자회사를 둔 지주회사로 만들고, 2017년까지 완공되는 원주~강릉 노선 등 4개 노선의 운영을 민간자에게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수서발 KTX의 운영권을 코레일이 출자한 자회사가 지니게 되고, 일단 민간 자본의 참여를 배 제했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장의 반발을 잠재우며 단계적으로 경쟁체 제 도입을 관철시키려는 우회적 민영화 방안이다. 연금기금 등으로 채워진 자회사의 정부 지분은 언제든 지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러한 안은 기본적으로 철도에 경쟁체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비효율 성의 근거로 제시되는 철도공사 부채의 상당 부분은 운영의 비효율성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 아서 발생했다. 더욱이 철도산업은 경쟁이 성립하기 매우 어렵다. 특정 시간, 특정 지역에 가는 노선은 독 점 형태로 존재하는 탓이다. 수서발 KTX 역시 강남이나 수도권 동남부 지역의 고속철 수요를 흡수하면서 지역 독점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국토부는 이번 철도산업 발전방안이‘독일식 지주회사 모델’ 이라며 영국식 분할 민영화와는 차이가 있 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의 지주회사 모델도 사실은 철도 민영화를 위해 추진했으며, 인력 구조조정을 비롯한 많은 폐해를 낳았다. 정리해고 속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강도 높은 노동을 견뎌야 했고, 현장 인력이 부족한데다 철도 시설에 기술적 문제가 발생해도 자회사들이 관련 기관에 보고를 하지 않으면서 열차 탈선 사고, 운행 중단이 잇따랐다. 이러한 사례들은 분할 민영화를 통한 비용 절감이 시민들과 노동 66


8월 24일 서울역에서 열린 철도 민영화 반대 집회 (사진 : 박성훈)

자의 목숨을 담보로 진행됨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부는 민영화 정책을 포기하기는커녕 좀더 은밀하고 교묘하게 추진하고 있다. 철도산업이 대 표적이다. 이에 올해 초 3월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109개 시민단체들이 모여 공공부문·민영화 반대·공 공성 강화·공동행동을 출범시켰고, 각 지역단위로도 속속 구성되어 시민들의 힘을 모아나가고 있다. 이 미 철도노조와 KTX 민영화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2012년부터 수서발 KTX 문제를 비롯하여 철도산 업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들은 하반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8월 19일 민영화 저지 집중 투쟁 기간을 선포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민영화 저지를 위한 시민저항운동(가칭)’ 을 본격 화하고 있으며, 민영화 저지를 위한 서명운동이나 파업ㆍ집회도 예정되어 있다. 또한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기존 제도적 틀을 활용한 다양한 압박도 조직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지방정부 차원에서 단체장의 민 영 철도 통과 금지 선언 등을 이끌어내고, 지방의회의 결의ㆍ건의 추진, 그리고 국민감사, 가처분 신청 등 의 법적 조치 검토가 그것이다. 기만적으로 진행되는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시민들의 깨어있는 의식과 적극적 인 참여가 필요한 때다.

노동리포트 67


정책포럼

일 좀 덜 하고, 빨간 날은 쉽시다 휴(休) 한국사회 : 노동시간 단축 프로젝트 홍원표 정책위원회

OECD 35개국 중 35위,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노동시간은 길다. 2011년 한국의 노동시간은 1인당 연간 평균 2,090시간으로 OECD 36개국 중 35위다. OECD 평균(1,765시간)에 비해 300시간 이상 길고, 북유럽국가(1,400시간 내외)에 비해서는 6~700시간 길다. 그런데, 노동시간 국제 비교에 흔히 사용하는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대표적 통계 임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시간이 다르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다양한 원인을 보여주지는 못 한다. 연평균 노동시간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 원인은 노동시간별 고용 비중이다.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비슷하게 적게 일한다면, 전체 평균 노동시간 역시 적게 나 타날 것이다. 반면, 단시간 비정규 직 노동자의 규모가 크거나 반대로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노동자

장시간 노동자의 규모가 크면 그에

들이 비슷하게 적게 일한다면, 전체 평균

따라 평균 노동시간도 줄거나 늘어

노동시간 역시 적게 나타날 것이다.

나게 된다. <그림 1>은 노동시간별 고용 비 중 유형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3

개국을 나타낸 것이다. 사례로 든 국가의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네덜란드가 1,382시 간, 프랑스가 1,482시간이다. 한국의 경우 단시간 노동자 비중이 낮고 전반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균 노동시간이 길게 나타난다. 반면 네덜란드는 각 노동시간대 별 고용 비중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높은 단시간 노동 비중으로 인해 평균 노동시간이 짧게 나타나는 유형이다. 프랑스는 34시간 이하 노동자 비중은 매우 적지만 35~39시간 노동자 68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프랑스의 노동시간이 짧은 이유는 전체 노동자가 고르게 노동시간을 줄였기 때문이다.

<그림 1> 노동시간별 고용비중 (출처: OECD. 단위: %)

유급휴가 보름에 유급휴일 하루 연평균 노동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휴일/휴가 일수다. 당연히 휴일/휴가가 많으면 노동 시간은 줄어든다. <그림 2>1)는 법이 보장하는 유급휴일/유급휴가를 국가별로 비교한 것이다. 일부 국가에 서는 유급휴가를‘주말 포함 4주’또는‘달력으로 한 달’같은 식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아래 그래프는 유 급휴가에서 주말을 빼고 1주일을 5일로 환산하여 비교한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유급휴가가 가장 긴 나라는 30일을 보장하고 있는 프랑스고, 그 뒤로는 영국(28일), 덴 마크/핀란드/스웨덴(25일)이다. 대체로 20일 이상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유급휴일은 공휴일이나 기 념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하는 경우를 비교한 것인데, 오스트리아/포르투갈(13일)이 가장 많고, 스페인(12 일), 독일/벨기에/뉴질랜드(10일) 순이다. 유급휴일과 유급휴가를 합쳐보면, 오스트리아/포르투갈(35일), 독일/스페인(34일), 프랑스/이탈리아

1) Rebecca Ray, No-vacation Nation Revisited, May 2013, 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 <그림 1> 을 토대로 한국 데이터를 별도 삽입하여 재배열함.

정책포럼 69


(31일) 순으로 휴일/휴가가 보장된다. 최하위인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유급 휴가나 휴일에 대한 법적 보장을 하지 않지만, 단협이나 개별 근로계약을 통해 유급휴가와 유급휴일을 보장한다. 한국은 유급휴가 15일, 유급휴일 1일로 비교 대상국 중 최하 3위다.

<그림 2> 유급휴일 및 유급휴가 국제비교 (단위: 일)

노동시간 단축의 두 축 : 노동시간 상한제와 휴일/휴가 확대 노동시간을 줄이는 가장 대표적 방법은 법정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시간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대다수의 국가가 이용하고 있는 정책 수단이지만 이 정책 수단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2000년 오브리법을 통해 주 35시간제를 적극 도입했고 엄격한 노동시간 상한제를 실 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노동시간 상한제는 일 단위, 주 단위, 연 단위에 각각 적용된다. 일 단위 노동시간 상한은 1일 10시간이며, 12시간까지 연장하기 위해서는 단체협약을 맺어야 한다. 또한 1일 노동시간 상한과 별도로 1 일 휴식 시간을 최소 11시간 이상 보장토록 하고 있어 탄력근로 등으로 인한 노동시간 연장을 사실상 차단 하고 있다. 주간 노동시간은 최대 48시간을 넘을 수 없으며 12주 평균 44시간을 넘어서도 안 된다. 연간 노동시간 상한은 기본 1,607시간이다. 220시간 연장 노동이 가능하며 이를 넘어설 경우 단체협약을 체결 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법정 노동시간이 2000년을 전후해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었고 연장노동을 주당 12시 70


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제도 도입 이후 연간 노동 시간이 2,400시간대에서 2,100시간대까지 단축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주40시간을 채택한 다른 나 라에 비해 여전히 높은 노동시간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연장 노동에 대한 규제가 매우 미약하기 때문이 다. 주당 12시간 연장 노동 제한 규정을 두고 있으나 휴일 근무를 주간 연장 노동 한도에서 제외한다. 근로 시간 특례제도, 탄력근로 등으로 인해 사실상 아무 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 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시간 제한으로 실노동시간을 단축 하기 위해서는 기본 법정 노동시간 단축보다는 연

노동시간 제한으로 실노동시간을 단축 하기 위해서는 기본 법정 노동시간 단

장노동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 우선, 휴

축보다는 연장노동에 대한 규제가 강

일 근무를 연장노동에서 제외하고 있는 현 고용노

화되어야 한다.

동부의 규정부터 개정되어야 한다. 이는 주간 노동 시간 상한을 규정한 법제정 취지를 왜곡하고 무력화함으로써 장시간 노동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현행 연장 노동 제한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근로시간 특례를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하고, 나아가 프랑 스와 같이 노동시간 상한제를 입체적으로 설계하여 실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또 다른 방법은 휴가/휴일의 확대다. 앞서 살펴본 유급휴일/휴가는 법이 보장하는 휴가/휴일이다. 실제 사용하는 휴가/휴일은 법제도와 노동시장의 관행에 따라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미 국의 경우 휴가/휴일에 대한 법적 보장은 전혀 없지만 단협이나 근로계약을 통해 휴가와 공휴일 유급휴일 이 보장되며, 노동자의 휴가 사용을 고유한 개인권리로 인정하는 인식과 관행이 정착되어 있어 휴가 사용 률 또한 80% 이상에 달한다. 한국의 경우는 법이 보장한 휴일/휴가 및 공휴일을 쉰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휴가/휴일 일수는 130일 내외다.2) 하지만 2011년 노동자가 실제 쉰 날은 연 평균 109.4일이다.3)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보면, 5~9 인 사업장이 101일, 10~29인 107일, 30~99인 109.4일, 100~299인 109.4일, 300인 이상 119일이다. 통 상 쉴 거라 기대한 날에 쉬지 못 한 것이 20일에 달하며, 영세 사업장의 경우 무려 29일에 달한다.

<표> 상용직 노동자 연간 휴가/휴일 수 (단위 : 일)

휴가/휴일 수

5~9인

10~29인

30~99인

100~299인

300인이상

전체

101

107

109.4

109.4

119

109.4

2) 104일(주2회 휴일)+11일(주말 제외 공휴일, 2011년 기준)+15일(연차) 3) 고용노동부, 2011, <사업체노동력조사> 중 5인 이상 상용직 노동자의 월간 노동일수를 12개월로 환산한 후 연간 휴일/ 휴가일 수를 역산했다. 임시 일용직의 경우 휴일/휴가 외에도 실직의 따른 노동 손실일이 포함되기 때문에, 상용직만 을 대상으로 했다.

정책포럼 71


유급휴일 법제화의 필요성을 알린 9월 5일 정당연설회 모습 (사진: 박성훈)

이처럼 보장된 휴가/휴일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법적으로 보장된 유급휴 가를 조직 문화 등의 이유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 공식 통계에 나타나는 연간 연차 사 용일수는 11.4일, 미사용일수는 4.4일이다.4)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평균 연차부여일 수 15.3일이고 이 중 사용일수는 7.1일로 사용률이

공휴일은 법적 유급휴일이 아니다. 우 리가 흔히‘빨간날’ 이라 부르는 공휴일 은 사실‘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 에 따라 관공서가 쉬는 날이다.

46%에 불과하다.5) 대다수의 노동자가 30~50%의 휴가를 사용하지 못 하는 것이다. 둘째, 공휴일이 법적 유급휴일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빨간 날이라고 부르는 공휴 일은 사실‘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 에서 정한 날로, 관공서가 쉬는 날이다. 기업 규모가 큰 경우

에는 단협이나 취업규칙을 통해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지정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법으로 지 정된 유급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주가 별도로 휴무하지 않으면 출근해야만 한다. 또한 일부 사업주는 공휴일을 별도 유급휴일로 정하지 않고 개별 노동자의 연차 사용으로 대체하고 있어 공휴일을 쉬는 대신

4) 고용노동부, <’ 11년 기업체노동비용조사> 5) 이성태, 2012,「기업 휴가이용 실태조사 및 휴가문화 개선방안」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고용노동부의 통계는 사업주를 대상으로 한 것이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통계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72


사용할 수 있는 연차가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71쪽의 표에서 사업장 규모에 따라 최대 18일까지 휴가/휴 일 수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기업 규모에 따라 휴가/휴일에서도 양극화 현상 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빨간 날 유급휴일 법제화의 필요성 최근 정부는 휴일노동을 연장노동에 포함시키고, 대체휴일제를 도입한다는 노동시간 단축 방향을 제 시했다. 수년간 OECD 최장 노동시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다. 하지만, 휴일노동의 연장노동 포함은 현행 노동법이 주당 연장노동 상한을 두고 있는 취지를 생각한 다면, 이미 시행했어야 하는 당연한 일이었다. 반면에 대체휴일제의 도입은 실제로 유급휴일을 늘려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지만, 공휴일이 유급휴일로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대체휴일제의 효과는 반감할 것이고, 나아가 휴가/휴일 양극화를 확대시킬 수도 있다. 왜냐 하면 이미 공휴일 유급휴일을 보장받는 노동자의 경우는 대체휴일제 시행으로 휴일이 늘어나지만, 공휴 일 유급휴일을 보장받지 못 하는 노동자에게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공휴일 유급휴일 법제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책포럼 73


골든브릿지 노동자들의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희망나눔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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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현장에서


의원단 일기

이 죽일 놈의 개발주의 전주 도심부의 종합경기장 부지, 시민들의 녹색쉼터로 지켜나가야 서윤근 전주시의회 의원

지방자치 수준의 척도, 주민투표 세계적으로 지방자치의 성숙도를 계측할 수 있는 척도 중의 하나가 주민투표의 시행빈 도다. 주민투표가 일상화된 것으로 유명한 유럽의 스위스에서는 지난 3월, 주민발의에 의 한 국민투표를 통하여 기업의 CEO 보수규제법안이 국민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된 바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4년 전북 부안에서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문제를 두고 자발 적인 주민투표가 시행되어 결국 부안 방폐장 유치를 무산시킨 사례가 있다. 이처럼 주민투 표는 지역의 주요정책을 주민이 직접결정하게 하

지난 1년간 나는 전주시 주민투표를 두 번 제안

는 주민직접참여제도이

했다. 한 번은 최근 진행된 전주시와 완주군의

며 대의민주주의의 보완

행정통합이다.

제로서 대한민국을 비롯 한 다수의 국가에서 채택 하고 있다.

나는 지난 1년 사이에 전주시장에게 전주시 주민투표를 두 번 제안했다. 한번은 최근에 진행되었던 전주시와 완주군의 행정통합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만들어졌던 지방행정통 합특별법에 의거하여 전국적으로 다수의 시군 통합이 추진되었고 전주시와 완주군도 그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완성도 낮은 특별법에서는 지자체의 통합의사확인 방법을 안전행 정부 장관이 결정토록 한 것이다. 그리하여 장관은 완주군은 주민투표를, 전주시에는 의회 의결을 권고했다. 이에 나는 사안의 중대함을 거론하며 전주시민들이 직접투표라는 자기 의사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지역 다수의 언론에서도 이에 동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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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서윤근 의원은 전주MBC 토론에 출연해 전주종합경기장 이전개발사업의 허상을 낱낱이 밝혔다. (사진 : 전주MBC)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닥치고 통합’식으로 행정통합을 정략적으로 밀어붙이던 전주시는 주민투 표가 통합추진에 도움이 안 된다며 이를 묵살했다. 결국 완주군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전북도와 전주시, 완주군의 정략적 통합추진을 무산시켰다.

노른자위 땅을 롯데에게 주자고? 또 한번의 주민투표 제안이 있었다. 전주시 종합경기장 이전개발사업. 지리적으로나 교통상으로나 전 주시의 노른자위 땅으로 일컬어지는 전주종합경기장 부지에 초대형 롯데쇼핑몰을 유치하겠다는 전주시 의 개발정책에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제안한 것이다. 1년전 소관 상임위원장으로 진지하게 제안했던 주민 투표 역시 집행부에 의해 가볍게 묵살되 었다. 아직껏 이 나라의 지방정부는 민 주주의에 대한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

두 번째는 전주시 종합경기장 이전개발사업. 전

이 내 생각이다. 적어도‘민주’ 라는 이름

주시의 노른자위 땅에 초대형 롯데쇼핑몰을 유

을 가진 정당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치하겠다는 데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제안했다.

독점하고 있는 이 지역만큼은. 이 종합경기장 개발사업은 지금 현재 전주시의 뜨거운 쟁점사항으로 부상했다.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전주시, 사업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 를 내고 있는 시민사회진영, 생존권사수와 결사반대를 외치는 지역상인들 그리고 이 사이에서 전주시의 지역에서 현장에서 77


회는 최종결정권을 쥔 채 고심하고 있다. 122,975제곱미터 부지면적을 갖춘 현재의 전주종합경기장은 육상경기장과 야구장 등을 중심으로 1980년에 완공된 체육시설이다. 시설이 노후되었고 육상경기장이 전국체전을 열 수 있는 1종 규격을 갖 추지 못한 탓에 오래전부터 종합경기장을 시 외곽지역으로 이전하고 현 부지를 대체시설로 개발하는 사 업이 추진되어왔다. 특히 전주시는 전시 컨벤션센터 건립을 우선적 현안사업으로 결정하고 이 부지에 눈 독을 들였다. 이 과정에서 전주시는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기부 대 양여’방식을 구상했다. 육상경기장과 야구경 기장을 민간자본 유치를 통해 외곽으로 이전하고 이 댓가로 전체부지의 52%에 해당하는 64,000제곱미 터를 민간사업자에게 양여하여 개발권을 주는 것이다. 또한 나머지 48%에 해당하는 부지에는 호텔과 컨벤션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것이다. 호텔은 민간사업 자가 건립하여 20년간 사업권을 보장받게 되며, 컨벤션센터는 국비와 시비를 통하여 자체사업을 추진하 는 것이다. 컨벤션센터 건립문제부터 이 사업의 타당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난립하고 있는 대규모 컨벤션센터 11곳 중 9곳이 과잉공급과 출혈경쟁으로 인하여 매년 적자를 기록하며 지방정부 재정 운용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컨벤션센터 건립문제는 현재 이 논란의 중심축이 아니다. 문제는 호텔을 제외하고도 연면적 230,238제곱미터의 규모를 자랑하는 유통재벌 롯데의 초대형 쇼핑 몰이 전주시 핵심부지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쇼핑몰과 각종 전문관, 백화점, 영화관과 호텔을 포함하는 이 복합쇼핑몰은 서울에 있는 김포공항 롯데몰과 영등포 타임스퀘어 쇼핑몰과 비슷한 규모이다. 영등포 타임스퀘어의 1일 평균 방문객 수가 20만명, 1년 매출액이 1조4천억 수준이라 한다. 인구 65만명 수준의 전주시를 넘어 전라북도 지역상권의 파탄을 걱정하는 것이 과장된 우려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전주시는 초대형 쇼핑몰과 호텔을 포함한 컨벤션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 전주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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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영세상인보호와 지역상권보호를 외쳐대던 전주시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지역상권을 고사시키 고, 도심교통체증을 확대하며, 지자체의 세수입감소를 유발시키며 벌어들여진 롯데쇼핑의 돈은 서울로 올라가서 지역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뿐만이 아니다. 대형쇼핑몰이 들어섰을 때 구도심 공동화현상이 가 속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전주 구도심 공동화를 막아내겠다며 십년동안 구도심 지역에 1백 수십억을 쏟아 붓고, 도심재생사업단을 설치하고 다양한 도심활성화사업을 벌였던 전주시는 또 어디로 갔는지 모 를 일이다. 전주시는 새로운 경기장을 건립에 필요한 1천3백억 예산을 확보할만한 재정적 여력이 없으니 민간자 본 유치는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괜한 엄살이 아니라 한다면 거짓말이다. 쉬운 계산방식으로 약 5년간 의 기간을 두고 건립사업이 추진된다고 했을 때, 연간 250억원 수준의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1년 예산 1조 2천억 수준의 예산을 운영하는 전주시에 있어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또한 전주시 경기장은 전북도와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전북의 현안문제이기도 하다. 전북도와 협의를 통하여 광역특별회계 등의 예산지원이 충분이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고 한다면 행정의 무능일 뿐이다.

녹색쉼터 만들어 개발주의 뿌리 뽑아야 그렇다면 전주시는 왜 이렇게 이 사업에 목을 매는 것인가? 모르겠다. 사실 나도 궁금하다. 그것은 뼛속 깊이 각인된 개발제일주의가 아닐까. 개발주의에 경도된 이들에게 금싸라기 같은 전주시 도심부지를 겨우 나무나 풀이 자라는 목초지로 놔두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 될 수 있는 것 이다. 또한 번듯하고 화려한 건축물을 도 심 한가운데 건립해 낸 유능한 시장으로

개발주의에 경도된 이들에게 금싸라기 같은 전

이 사업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정

주시 도심부지를 겨우 나무나 풀이 자라는 목초

치적 계산이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그러 니 시장이 대형쇼핑몰을 전주시의 랜드 마크로 만들어가자는 경악스런 발언를

지로 놔두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악 일지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주시가 자랑하는 한옥마을에 여름휴가철 방문객 수가 뚝 떨어졌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폭염도시의 오명 탓이다. 전주시의 입장에서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있는 콘크리트도 걷어내 고 나무를 심고 풀밭을 만들어야 할 상황이다. 이제 종합경기장의 시멘트를 걷어내고 전주시민 모두의 쉼 터로 만들어가야 할 때다. 새들이 지저귀고 푸른 초원과 울창한 숲과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녹색쉼터를 만들어가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생각해본다. ‘지역낙후를 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개발하고 팽창해야 한다’ 라는 개발론을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진보적 지방자치는 요원한 꿈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역에서 현장에서 79


구라파 통신

해외원정투쟁이왔다간자리, 그 아쉬움에 대해 경호 유럽당협 사무국장

A : 원정투쟁에서 느껴지는 그 뭔가 아쉬움 있잖아요. B : 그치? 뭐랄까, 대한제국 시기 만국박람회에 밀사 보내는 느낌이죠. C : 국제 사회의 이성에 호소하면 뭔가 사태에 진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A : 사실 현지 운동권들과 제대로 연대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원정투쟁이 국제연대 로 잘 이어지기보다 현지 단체들의 선의와 온정에 기대는 1회성 이벤트가 되는 것도 같아요. B : 그냥 규탄만 하다 끝나는 것도 아쉬워. 누구 들으라고 하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고 말이야. 다른 회원국인지, 프랑스 시민인지, 국제시민사회… 뭐 그런 게 있 다면 말이지? C : 하루하루 투쟁에 쫓기는 사람들이 그런 스케일의 기획을 할 수가 없으니 문제죠. 여건이 안 되는 걸. A : 여건이야 언제나 어렵죠. 에휴. 활동가들은 당장의 과제가 너무 많아서 호흡이 짧고, 우리는 해외에서 여건상 활동은 못하고 생각만 많으니…. 답이 없네요. C : 그러게. 그래도 자꾸 의견이라도 주고받다 보면, 방귀가 잦으면 똥이 되지 않을 까요? A : 그럼 당신이 백서 같은 걸 써 보던지. 허허. B : 뭐야,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인가? 금요일 오후 날씨가 좋긴 하지만 오늘은 이만 일어납시다. 자기가 맡은 유인물 번역도 주말까지 해야 한다며.

2009년 늦봄, 민주노총본부와 기륭전자,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의 원정투쟁 맞 이를 준비하던 중 유럽 당원들과 나눈 대화입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의장국이 된 대한민국이 ILO(국제노동기구) 권고안을 이행하지 않는 것을 규탄하는 원정투쟁이었던 것 80


2007년 가을, 민주노총 화섬산업노조 우진지회(라파즈-한라 하청업체) 프랑스 원정투쟁 당시 모습 (사진 : 경호)

으로 기억합니다. 유럽의 당원들 뿐만 아니라 뜻을 함께 한 유학생들이 연대했습니다. 유럽에 있다 보면 가끔 원정투쟁단을1) 맞이합니다. 한국노동운동사에서 원정투쟁은 주로 수출자유지 역에서 위장폐업을 하고 철수하는 외국자본을 상대로 이뤄졌습니다. 그렇지만 요즈음 한국자본이 해외에 서 하는 활약들, 예컨대 동남아 노동자들이 한국자본에게 겪는 말 못할 고초를 생각해보면 이제는 우리가 국외로 원정투쟁을 떠나기보다 국내에서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원정’투쟁을 가려면 그 투쟁의 대상이 그만큼 못돼먹어야(?) 하고, 그 투쟁이 그만큼 절박한 경우일 터,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투쟁 중 대부분의 경우는 아예 비행기를 타고 원정투쟁을 올 여력이 없습니 다. 사안도 있고 여력도 되는 것, 이것도 한국(운동지형)의 특징일까요? 물론 한 팀의 원정투쟁단을 해외 로 보내기 위해서는 많은 동지들이 힘을 모아내야 하며 이에 앞서 지난한 투쟁이 계속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한국인들은‘원정’ 을 가지‘불법이주’ 를 하진 않으니까,‘여력’ 이라고 해도 세계적 차원에서 그렇 게 어폐는 아닙니다.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국정원 정치개입과‘내란음모’사건의 와중에 이

1) 당시 민주노총의 이창근 국제국장은 "원정"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정복'과 '공격'의 의미 때문에 "해외 방문투쟁"이라는 표 현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원정단의 고난과 절박함, 그리고 국내외 동지들의 지원 과 연대를 담아내기에 '방문'이라는 표현은 좀 밋밋하게 느껴진다. 보다 적절한 표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지역에서 현장에서 81


무슨 한가한 소리냐 하겠지만, 그래도 한국 노동자들은 함부로 해외에서 투쟁을 했다가 본국 정부와의 관 계가 엉망이 되어 망명을 해야 할 지경은 겪지 않으니까요. 물론 우리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나라가 많다 는 사실이 한국 상황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국적을 기준으로 자본과 노동,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하나의 범주에 넣어 분류하는 것이 온당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몽골이나 베트남 정부가 하는 걸 보면 본국 노동자보다는 한국 자본가에게 더 유리하게- 혹은 본국 엘리 트(?)집단에게 더 유리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례들이 보이니 말이죠. 그러니 세계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나 자본과 노동과 국적에 대한 추상적인 이야기는 접어두고, 실용(?)적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1인시위, 선전전, … 누구에게 말 걸고 무엇을 얻기 위함인가 원정투쟁은 매번 비슷한 궤적을 돌곤 합니다. 악덕 자본의 본사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시내 요충 지에서 집회나 선전전을 엽니다. 현지 운동단체와의 연대활동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다음에야, 이러한 활동들은 모두 투쟁의 대상을 압박하기 위해 이뤄집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지나는 시민들에게 뿌리는 유인물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현지 주민들을 선동하여 그 힘을 모아서‘아래로부터의 국제연 대’ 를 일구기 위해서일까요? (설마 그 단기간에?) 혹은 현지 시설을 물리적으로 타격하거나 대상을 압박 하여 현지 언론에 나가기 위해서일까요? 투쟁 대상이 한국 언론을 무서워하는 건 아닐 터, 한국 언론에만

한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나누어주는 유인물을 받아 읽는 현지 주민들 모습 (사진: 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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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 시내에서 열린 집회 (사진 : 경호)

보도된다면 한국에 있는 동지들에게‘우리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소’ 라고 알려주는 의미 이상이 없을 것 입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OECD 회담장 주변이나 초국적 자본 본사 앞은 전철역도 별로 없고 인적이 드문 고급 주택가였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강남 청담동 주택가와 비슷합니다. 1인시위를 하거나 선전전을 할 여건이 안 되니, 현지 언론에 뿌릴 보도자료나 뭔가 보도할 가치가 있는‘꺼리’ 를 같이 궁리하다가 막막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파리는 자국민부터 이주민, 외국인들까지 숱한 시위가 일상적으로 열립니다. 그냥 ‘황인종들’ 끼리 뭔가 벌여봤자 파리 시민들에게는 별로 신기할 일이 없습니다. 어지간히 준비하지 않으 면 현지 주민들은‘싸우스코리아’ 의 대통령이 김정일인지,‘꼬레뒤노르’ 에서 일본말을 쓰는지도 관심이 없습니다.‘지나가는 사람 A’ 에게 남한 모 자본의 횡포를 폭로하는 팜플렛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끝납니 다. 더군다나 현지어가 아닌 영어로 된 유인물이라면 더더욱 환영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끝내버리기엔 비 행기 표가 좀 많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지서명 받고 항의서한 보내달라 요청하고… 정말 이게 전부일까? 그나마 좌파연 하는 현지 주민을 만나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때가 많은 힘이 됩니다.‘이곳에는 사회 주의자가 많다, 힘내라’ 는 말을 곧이곧대로 통역하니 오히려 한국에서 온 노조원이 화들짝 놀라기도 했 지역에서 현장에서 83


죠.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내가 어떻게 힘을 보태어 연대를 할 수 있겠소?’물어오기도 합니다. 연대활동 을 안내하고 하다못해 항의서한을 보낼 (이메일)주소라도 없었더라면, 그 찰나의 교감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온 것인가 허탈해지는 노릇입니다. 나중에는 어디에 쓸지 계획도 없이 일단 급한대로 청원 서도 만들었습니다. 용처도 딱히 묻지 않고 흔쾌히 지지서명을 해준 현지 주민들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본국의 단체와 연계하여 활동한다는 스리랑카의 사회주의자라는 이와 유인물을 교환하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무슨 배낭 여행객들이 기념품 교환하듯 맞바꾸려고 만든 건 아닐 터. 한국 기업체나 총리실에 항 의전화나 메일을 보내달라고 전화번호나 인터넷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는 것도 생각해보면 무망한 일입니 다. 비싼 국제전화를 걸어달라는 뜻이거니와, 한글만 가득한 인터넷 게시판에 들러봤자‘글쓰기’버튼을 찾지도 못할 테니까요.

당사자들이 떠나는 이별… 남은 사람들이 할 일은 만남 뒤엔 이별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철거촌이나 희망버스나 외부인이 찾아왔다가 가고 당사자들 이 남아서 투쟁을 계속합니다. 유럽에서는 당사자들이 떠납니다. 그냥 좋은 사람들끼리 모였다가 흩어지 고‘좋은 추억’ 만 남길 것이 아니라면,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뭘까요. 라파즈-한라의 경우에는 같 이 활동했던 현지 분들이 힘을 모아 39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고장난 문porte en panne>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그저 운동권에 한해 저렴하게 혹은 무료로 봉사하는 가이드나 통역/코디네이터가 아니 라면, 현지의 교민사회나 연대단위, 그리고 한국의 투쟁에 관심을 가지게 된 현지인들과 어떻게 관계 맺 어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원정투쟁에 어떤 조직적 성과를 남겨야 할지… 고민거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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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에도 민중의집 “랄랄라~!”

민중의 집

채훈병 서울 은평당협 공동위원장

덜컥, 그러나 이미 준비해 온‘랄랄라’ 덜컥 시작을 해버렸다. 게다가 감히 민중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수년전부터 지역 거점공간에 대한 논의나 구상은 계속 해왔지만 치밀한 준비는 부족했다. 지역 정치를 하려 면 민중의 집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의무감, 막연한 욕구와 희망이 컸다. 물론 종 잣돈을 모으기도 했는데 작년 총선 때 그 돈을 뭉텅 잘라서 중앙당에 선거지원금으로 써버 렸다. 그래서 공간을 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안과 밖을 꾸미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드 디어 개소식까지 준비하게 될 때까지 일사천리로 추진할 수 있게 한 것은 그 막연한 욕구와 희망의 힘이었다. 그 과정을 돌이켜 보건대 당원들이 모이면 밤늦도록 헤어지기 싫었고 함 께 상상하고 함께 무언가를 모의하고 싶었던 열망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민중의 집이란 것을 해왔던 것 같다. 은평당협에서 오년 가까이 매 달마다 해오던 행사가 있다. 지역의 여러 단체들과 함께 꾸려 온‘은평, 우리동네에서의 자 립과 공존을 위한 벼룩시장과 캠페인’ 이란 긴 이름의 장터이다. 쓰던 물품과 재능을 나누 고, 칼을 갈아주고 우산을 고쳐주고 어린이 책 교환도 이루어졌다. 달마다 주제를 바꾸어 가며 길거리 강좌를 하고 캠페인도 벌였다. 그 속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모색하고 우 리의 정치를 고민했다. 한 달에 한 번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벽과 지붕이 없는 분명, 또 다 른 형태의‘민중의 집’ 이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지자체와 시민단체의 화려한 장터, 바자 회들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을 고민해야 할 때‘랄랄라’ 가 만들어졌다. 당협 사무실 이사 전날 저녁 당원들이 모여 짐을 꾸렸다. 잔뜩 쌓인 문서들을 두고 사수 파와 폐기파가 나누어졌다. 최근의 회의록부터 민주노동당 때의 자료집까지 많은 사람들 의 꿈과 좌절의 흔적들은 가끔씩 폭소를 안겨주었고 자주 한숨 짓게 만들었다. 지조와 변절 을 거듭하는 동안 그 많던 서류뭉치들의 갈 곳이 정해졌고 자정이 넘어서야 소동은 마무리 지역에서 현장에서 85


책장과 책상도 직접 만들었다(왼쪽). 드디어 완성된 '랄랄라' 내부 모습(오른쪽).

되었다. 당협 사무실에 액자에 들어있는 사진이 딱 하나 있었다. 2008년 당협 창립총회 때의 기념촬영 사 진이다. 사진에 있는 인물들 중 여럿을 지금 당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름 소중한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해서 적당한 곳에 걸어 두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랄랄 라’ 에는 덩그러니 빈 액자만 남아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 못 견디게 가슴 아팠던 당원이 치웠을 것이다.

은평의 새 유행어‘랄랄라스럽게’ 마땅한 공간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장애인 접근권을 고려하여 과감하게 1층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 고 (이전 당협 사무실은 4층이었다.) 그 결정은 곧 돈 문제가 최우선의 해결 과제라는 것을 의미했다. 손은 숙 공동위원장이 여러 날 다리품을 팔았지만‘싸고 목 좋은’곳은 없었다. 기다림이 커질수록 우리의 눈높 이도 높아만 갔다. 결국 마음을 비우고 무기한 연기를 선언해야 할 무렵, 신사동 25-6번지는 홀연히 나타 났다. 부담스러운 보증금 따위는 권리금이 없다는 행운을 이유로 살짝 잊기로 했고 공간을 둘러 본 당원 들은 행여 마음이 변할 새라 서로서로 칭찬에 바빴다. 그 장면에서 홀로 고독했던 이는 당협 재정을 담당 하는 김명화 당원이었을 것이다. 당명 결정 과정의 복잡함 만큼이나‘은평 민중의집 랄랄라’ 도 이름을 얻기까지 어려운 과정이 있었다. 제안을 한 사람의 수보다 투표자의 수가 적은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겪었다. 내부공사를 다 마치고도 간 판을 달지 못했다. 결국 공모된 아름들을 가지고 당원의 날 때 정하기로 했는데 '문 잠그고 개 풀자 ‘는 각 오가 무색하게 쉽게 결정이 나버렸다.‘랄랄라 ‘라는 이름은 당원이 아닌 노동당의 열렬 지지자인 김서연 86


당원의 동생이 지어주셨다. 지금 은평에서는‘랄랄라스럽게’ 가 새로운 유행어로 뜨고 있다. 제 모습을 갖춘 '랄랄라'에는 많은 당원들의 땀과 손길이 배어있다. 공간 마련을 기획했을 때부터 내부 공사는 구로 민중의 집과 종로 혁이네 공사를 하셨던 구로의 유영기 당원의 몫이었다. 당원들의 눈높이를 맞추느라 공사비가 처음 예산보다 한참을 초과하자 유영기 당원은 당신의 잘못인양 공사 내내 마음고생 을 하셨다. 쓸 만한 물건을 누가 준다는 소식을 듣기만 하면 어디든 가서 가져왔

쓸 만한 물건을 누가 준다는 소식을 듣기만 하

다. 양천의 김영도 당원은 모처럼의 휴일

면 어디든 가서 가져왔다. 찻숟가락부터 에어컨

을 반납하고 폭우 속에 트럭을 몰았고 박

까지 개미처럼 부지런히 모았다.

선경 당원의 멋진 경호원은 다마스를 가 진 죄로 시도 때도 없이 불려와 물건을 날랐다. 찻숟가락부터 에어컨까지 개미

처럼 부지런히 모아서 공간을 채웠다. 방충망을 달고 유리에 그림을 그리고 의자를 용접하고 손바느질로 커피 잔 받침과 커튼을 만들었다. 급기야‘랄랄라’앞에는 삼성로고를 새빨갛게 덮은 에어컨 실외기가 탄 생했다.

‘경숙이’ 와 함께 불온한 정치를 ‘랄랄라’뒤편 주차장에 길고양이 네 마리가 살고 있다. 어미와 새끼 세 마리이고 그 중 어미 고양이 이 름이‘김경숙’ 이다. 김지애 당원이 지은 이름인데 그 이 름에 얽힌 기구한 사연은 아직 듣지 못했다. 경숙이는 ‘랄랄라’ 를 서슴없이 드나들면서 기꺼이 당원들의 친구 가 되어주었다.‘랄랄라’ 를 지키는 당원이 날마다 끼니 를 챙겨주는 일이 일상이 되었으니 이제 한 식구가 된 셈 이다. 두 주에 한번 금요일에는 랄랄라 극장이 열리는데 첫 상영작이 길고양이가 주인공인 다큐‘고양이 춤’ 이었 다. 이런 공간이 안 만들어졌으면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 을 하며 지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랄랄라’ 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당원들이 모인다. 함께 밥을 지어서 나 눠 먹고 노래를 부르고 수다를 떤다. 가을 텃밭을 어떻게 가꿔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날의 데모를 위해 피 켓에 글씨를 쓴다. 동네 주민들을 어떻게 꼬실 수 있을까

랄랄라의 식구가 된 길고양이 경숙이

지역에서 현장에서 87


은평 민중의 집 랄랄라 전경

고심을 한다.‘랄랄라’ 에선 날마다 일상 속의 정치가 무엇인지 정치 속의 일상이 무엇인지 성황리에 학습 중이다. 야심차게 시작했고 흥겹게 꾸려가는 중이지만 앞으로 마주칠 고민도 만만치 않다.‘랄랄라’ 가 달성한 첫 번째 사업인,‘재정난의 일상화’ 라는 고단한 숙제가 그 중 하나이다. 공간을 채울 내용에 대한 기획이 부족한 것은 별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함께 모여 지지고 볶으면서 여백을 채워 온 것이‘랄랄라’ 를 시작하 고 움직여 온 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고민은 바로 우리들 자신에 대한 것이다. 자칫 우리의 사고와 상상이 사각의 공간에 갇혀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온한 공간 안에서는 불온함을 꿈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공간이 따뜻할수록 우리가 대면해야 할 세상의 모순과 질곡에서 멀어질 수 있고 우리가 세운 소박한 울타 리가 다른 어떤 이들에겐 걸음을 막는 장벽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층에서 1층으로 내려온 의미를 우리는 결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공간을 막 마련할 무렵 우리의 소중한 동지 하나가 세상을 떴다. 그의 이름은 권문석이다. 그가 있었다면 랄랄라에서 그의 꿈과 우리의 꿈에 대해 자주 이야기 나누었을 것이다. 랄랄라에서 책 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할 때 마다 그가 끝자리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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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토론

통합진보당 사태, 노동당의 대응은? 1. 새로운 판을 짜는 계기 만들어야 2. 종북 방어는 좌파의 무능


쟁점 토론

통합진보당 사태, 노동당의 대응은? ①

새로운 판을 짜는 계기 만들어야 남종석 부산 동래당협 부위원장

이석기 그룹의 위기는 과연 진보좌파에게 기회인가? 제 도정치권에서의 통진당의 몰 락은 진보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인가를 냉정하게 따 져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간 단하게 답만 말한다면 필자의 전망은 매우 부정적이다.

시대착오적인 경기동부, 그 경악스러운 태도 이석기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속전속결로 국회는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표결했다. 이것으로 대선 개입으로 위기에 몰렸던 국정원은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위기에서 손쉽게 벗어났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여론재판에 편승하면서 스스로 친북이냐 반북이냐의 프레임 에 걸려들고 말았다.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많은 글들에서 나왔듯이 인권과 민주주의, 사상의 자유 측면에서 이 석기 그룹에 적용된 내란음모죄나 반국가단체(RO) 구성 혐의는 실질 적인 근거를 지니지는 못한 것 같다. 이석기 그룹의 모의는 지하당 조 직으로서는 너무나 느슨한 모양새이다. 그들이 토론한 내용은 현존하 는 위험이라고 볼 수도 없으며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난 것은 없다는 점에서 내란음모가 성립할 수도 없을 것이다. 통진당의 핵심세력인 경기동부의 정세인식과 북한에 대한 태도는 우리를 경악시키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우리는 북한정권 및 북핵에 대한 태도, 전쟁을 맞이하는 자세, 군사적 대응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그들의 정세인식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북한 전체주의에 대한 무조 건적인 복종과 방위 수단으로서 핵무기를 정당화 하는 논리, 평화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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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지 등 통진당은 민주화 이후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는 접하기 힘든 정세관, 정치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시대착오적인 퇴행한 운동권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통진당의 조직력은 여전히 굳건하고 운동진영 내부에서 이석기그룹 사태를 접하는 태도는 매우 상이하다. 통진당은 여전히 모든 것이 날 조, 조작, 왜곡이라고 떠들고 있다. 내부정치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국 정원이 주도하는‘공안탄압’ 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도 조직적 오류도 없다. 그들은 위기에 직면한 국정원 이 무리하게 이석기의원 체포를 주도했고, 민주당과 정의당은 국정원과 종편이 주도하는 마녀사냥에 동 참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진보를 배신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내부를 다지며 새로운 반전 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통진당 주류의 대응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일진회 사태와 조직의 패권적 운영으로 인해 민주노동당이 분당되었을 때도 그들은 내부단속 중심으로 대응했다. 그들은 분당 위기를 굳건히 버텨내 며 운동진영 내의 다수파로서의 지위를 견고하게 유지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약진하면서 조직 토대 는 더 넓어졌고 이후 3당 통합의 중심세력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2012년 총선 경선 부정과 폭력사태로 통진당이 분리했을 때도 그들은 내부정치를 중심으로 조직 복원에 성공했다. 비록 여론지지도는 폭락했 지만 통진당은 2013년 촛불 투쟁을 주도하면서 조직적 반전을 시도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당 지지도는 곤두박질쳤고 야권연대는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제도정치권에서 확 보했던 통진당의 기반은 상당부분 붕괴될 것이다. 그러나 통진당과 경기동부는 제도정치권 외부에 있는 다양한 사회운동 단체, 시민단체를 장악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활동가를 재생산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 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 자체가 붕괴되지는 않을 것임을 우리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최대정 파인 전국회의는 아무런 조직적 손상도 없으며 광주전남연합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제도정치권에서는 당 분간 배제될 것이지만 조직적으로 여전히 굳건한 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좌파의 기회다?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다 그렇다면 이석기 그룹의 위기는 과연 진보좌파에게 기회인가? 제도정치권에서의 통진당의 몰락은 진 보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인가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간단하게 답만 말한다면 필자 의 전망은 매우 부정적이다. 비록 북한체제와 맞물려 있는 상황인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번 사태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적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하게 알았다. 북한을 추종하는 무리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 진보적 논객들의 조롱,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 언론들의 광란에 찬 기사들은 이를 증명한다. 이런 반응은 북한과 쟁점토론 91


의 대결 상황, 북한정체에 대한 대중의 혐오와 깊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여론재판의 광풍은 놀라운 수준이다. 이것은 단지 NL세력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창언 선생의 레디앙 기고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국정원이 기획하는 것은 단지 통진당의 고립만이 아니다. 이번 사태는 반체제세력 일반을 비정상적인 시 대착오 집단으로 표상함으로써 제도정치권 내부에서는 개량적인 진보만을 인정하겠다는 강한 의도가 작 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상황은 민주

이번 사태는 반체제세력을 비정상적인 시대착 오적 집단으로 표상함으로써 제도청치권 내에 서는 개량적인 진보만을 인정하겠다는 강한 의 도가 작용하고 있다.

사회주의 진영뿐만 아니라 체제 이행을 지향하는 반체제 운동 전반을 퇴행적인 집단으로 배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작 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에 나타난‘소위’진보적 지식인들의 태

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들은 진보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정상적인 진보’ 라고 하는 집단은 대부분 서구 사민주의 정당이다. 아시다시피 오늘날 서구 사민주의 정당들은 보수정당과 근 본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대외정책에서는 반동적이기 조차 하다. 이런 정당들을 모델로 삼아 한국 진보를 재편하려는 것이 국정원의 진정한 의도인 것이다. 여기에 진보적 지식인 일부가 부화뇌동 하고 있다. 이 프레임에는 사회운동정당, 급진주의 정당이 들어설 곳은 없다. 정의당 일각의‘헛발질’ 은 이런 국정 원의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다. 헌법질서 외부의 진보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심상정 의원의 발언은 이 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의당 지도부는 이미 국정원이 의도하는 프레임 갇힌 채 여론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일 뿐이다. 물론 심상정 의원의 반응을 정의당 일반으로 확대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자위적 반응’넘어 진보좌파의 새 판을 짜는 계기 되어야 노동당의 반응이 실망스러운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노동당 당원들 상당수는 통진당의 패권주의, 종북주의, 오도된 정세관을 접하면 늘 비웃음과 조롱, 한심하다는 투로 반응한다. 일반 당원들만 그런 것 이 아니라 당 지도부나 상근자들조차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통진당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우리 와 무관한 것이고, 저 집단은 종교적인 광신도와 반민주주의로 똘똘 뭉친 비정상적인 정치집단이라는 것 이다. 그러면서 노동당은 북한체제에 반대하고, 북핵에 반대하며, 반전평화를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남한 고유의 운동정당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더불어 과거 통진당과 통합을 시도했거나 지금 다시 진보재 편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오류를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우리가 통합하지 않고 홀로 있기 때문에 우 92


리의 순수성은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객관적 상황은 이런‘자위적 반응’ 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아시다시피 비제도권 운동진영의 다수파는 통진당이다. 솔직히 말해서 노동당은 독자적으로 집회 하나 박을 수 없다. 대중 집회에 나서면 주변층으로 전락할 뿐이다. 운동진영 전체에서 발언권도 매우 한정되어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지금 원외 정당이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국정원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반체제적인 정당을 원내에서 배제함 으로써 이들을 소수화, 주변화 시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원외 운동권은 경기동부와 통진당이 주도하고 원내에서는 개량주의자들의 진입만이 허용되는 그런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현재상황이 굳어진다면 노동당이나 진보좌파의 지반은 더욱 협소해질 것이다. 노동당은 반체제세력이 지만 원내 정당으로 진입하여 개혁 정치를 실천하려고 한다. 한편으로 사회운동을 성장시키면서 다른 한 편으로 제도정치 내부에서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 당 은 그럴 기회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동당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소위 비(非)통진당 계열의 진 보좌파 전체가 그런 상황으로 몰릴 수 있는 것이다. 노동당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분위기는 노동당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사회운동정당으로서 노동당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당원들이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노동당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현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노동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 한다고 해서 현 정세를 독자적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처럼 반체제 세력들에 대해 시대 착오적이라는 정서가 확대되고 진보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상태라면 그 전망은 더 더욱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노동당과 진보좌파가 새로운 개입전 략을 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다양한 진보좌파들이 연합된 힘을 구성할 수 있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석기 사태 이후 진

을 때 우리는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한 현 국면

보좌파가 통진당과 연합할 수 있는 시대

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는 지났다는 점이다. 우리는 제도정치 외부에서 통진당세력, 경기동부, 전국회 의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운동연합을 구성해야 한다. 이번 민주노총 선거는 그와 같은 가능성의‘단초’ 를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노동당은 제도정치권 내에서 급진적인 개혁을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노동당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줌도 안 되는 진 보좌파들끼리 갈라치기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우리는 최대한 유연한 자세로 진보좌파를 새롭게 구성 할 수 있어야 한다. 제도정치권 내부에서 통진당의 몰락은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다. 물론 통진당의 고립 으로 열려진 공간을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이 있다면 말이다. 다양한 진보좌파들이 연합된 힘을 구 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한 현 국면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쟁점토론 93


쟁점 토론

통합진보당 사태, 노동당의 대응은? ②

종북 방어는 좌파의 무능 홍기표 서울 서대문 당원

통진당과 선긋기에 실패하는 순간, 우리 당도 같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좌파의 대중정당은 한낱 공허한 꿈으로 끝날 것이다.

우파 논객이 통진당 해체에 반대하는 이유 이석기 사건 와중에 TV를 보다가 매우 재밌는 장면을 목격했다. 방 송에 출연한 어느 우파논객이“꼭 통합진보당을 해체할 필요가 있겠느 냐!”면서 은근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평소 강력하게 우파의 목소리 를 대변하던 그가 왜 통합진보당의 해체에 반대했을까? 통합진보당의 존재를 매개로 좌파 전체의 성장을 꽁꽁 묶어둘 수 있 기 때문이다. 지난 60년간 이 전략은 아주 잘 먹혔다. 통합진보당을 살 려두면 주기적으로 종북 파동을 일으켜서 계속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 는데 미쳤다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냐는 뜻이다. 내가 볼 때 이 것은 매우 정확한‘정치적 판단’ 이다. 최근 이석기 파동을 놓고 혹자는 왜 하필 국정원이 이 시점에 터트 렸냐고 묻지만, 내가 볼 땐 약간 어리석은 질문이다. 종북 사건은 전혀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그냥 주기적인 사건이다. 민주노동당 시절 제일 많이 듣던 말 중에 하나가“다음 달에 조직사건 터진대..” 였다. 이석기 사건에 대해 일부에선‘국정원이 쟁여둔 곶감을 빼먹었다’ 고 말하기도 한다. 실로 정확한 비유다. 국정원에게 종북세력이란 가끔 한 번씩 뽑아먹는 쟁여둔 곶감이자, 일감 몰아주기로 정기적 매출을 올 려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쯤 되면 웬만큼 머리 나쁜 사람도 우파 논객이 통진당 해체에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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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는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의 책상 좌파는 이와 같은 정치적 인 식이 부족하다.

왜 주사파를 방어하다 대중정치 방기하나 아마 종북세력을 방어하는 일로 인생을 낭비하는 것처럼 공허한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이것은 종북 세력과 주기적으로‘분당’ 과‘합당’ 을 반복하는 것 만큼이나 통탄할 일이다. 특히 좌파에게 더 그렇다. 왜 그럴까? 『한국의 48년 체제』 라는 책(저자 박찬표)이 있다. 2차대전 이후 많은 나라에서 좌파와 우파가 서로 공 존하며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체제를 발전시켜 나갔지만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좌파의 존재가 거의 형성되지 못한 채 우파가 절대적 지분을 갖는 우파 패권주의가 반세기 넘게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굳이 48년 체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국사회가 좌우 균형의 결핍에 시달리고 있음은 우리 모두 절감 하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대중정치의 영역에서 좌파가 거의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구조적 공포에 의해 남한에서는 좌파의 형성 자 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결국 좌-우 대립구도가 아니라 우파1과 우파2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만약 우파가 아직까

의 변형된 대립구도가 정착해 버렸다.

지도 전두환을 방어하기 위해 용쓰고 있다면

그렇다면 왜? 무려 60년 동안이나 좌 파는 48년 체제를 돌파하지 못하는 것일

지금처럼 대중정치를 장악할 수 있을까?

까? 그것은 좌파의 지독한 무능 때문이다. 여기서 좌파의 지독한 무능이란“털어버려야 할 것들을 제때에 털어버리지 못하는 무능” 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만약 우파가 아직까지도 전두환을 방어하기 위해 용쓰고 있다면 지금처럼 대중정치를 장악할 수 있을까? 그런데 반대 측면에서, 좌파는 왜? -좌파의 전두환인-‘주사파’ 를 방어하 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면서 대중정치를 방기하는 것일까?

사상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그리고 농담의 자유 종북세력을 방어하는 유일한 논리는‘사상의 자유’ 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라 는 이름으로 주사파를 방어해야한다는 논리는 심각한 자기모순이 있다. 주사파야 말로 사상의 자유를 근 본적으로 부정하는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주사파를 방어할 수 있는 보다 합리적인 논리는 사상의 자유가 아니라 종교의 자유다. 물론 통합진보 쟁점토론 95


당에 허(許)해야 할 것은 사상의 자유도 종교의 자유도 아닌 농담의 자유로 밝혀졌지만, 어쨌든 주사파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사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만약 주사파에게 사상의 자유를 보장 받을 권리가 있다면 전두환이나 박정희도 사상의 자유라는 우산 밑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 폭력혁명론은 군사쿠데타 론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설사 사상의 자유를 짓밟을 자유 즉 폭력혁명과 1당 독재에 대한 사상의 자유를 인정한다 해도 그것은 학교나 교회 같은‘의회 밖에서’생각할 자유일 것이다. 폭력혁명론 자들이 의회에 앉아있을 권리는 없다. 의회는 모든 사회적 투쟁을 수렴하기 위한 계급타협기구이기 때문 이다. 폭력혁명론자의 의회진출 그 자체가 모순덩어리이고 대중에 대한 기만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 당대회 때 빚어진 일련의 폭력사건을 되새겨 보자! 주사파에게 과연 사상의 자유란 말이 어울리는지! 그들에게 사상의 자유란 그냥 자기들이 불리할 때 쓰는 말에 불과하다. 종북세력이 추 종하는 북한 체제는 사상의 자유는커녕 인터넷 할 자유나 거주이전의 자유도 별로 없는 나라다.

노동당은 종북방어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 우리가 지금 걱정해야 할 핵심은 통진당 학습효과다. 이게 무슨 말일까? 나는 민주당 왼쪽표의 규모를 13% 정도로 판단한다. 2004년에 민주노동당이 비례로 얻은 표가 그 정도 되기 때문이다. 2012년 총선 결 과 역시 비슷하다. 당시 통진당이 거의 10%에 가까운 정당 비례를 얻었고, 진보신당 등 다른 정당의 득표 율을 합치면 대략 2004년에 13%로 나타났던 민주당 왼쪽표의 존재가 어느 정도 재확인 된다. 우리 당이 출범 초기 국면에서 당의 존립을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구역이 바로 이 민주당 왼쪽표 구역이다. 문제는 연이은 통진당 사태로 좌파의 희망인 이 13% 구역이 거의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사람들은 과거의 민주노동당 같은 정당이 나타나도 걱정이 돼서 표를 줄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자신의 지지 당원들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출처 : 참세상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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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 당의 존립과 성장에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이 지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돌파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대 당의 발전 전략을 작성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통진당과 선긋기에 실패하는 순간, 우리 당도 같 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좌파의 대중정당은 한낱 공허한 꿈으로 끝날 것이다. 물론 이석기 파문의 와중에서 종북방어에 나선 분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 간적으로 존경할만한 부분이 많다. 비꼬는 말이 아니다. 약자의 편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야말로 진실로 존경할만한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의 말로 인용되는 문구가 있다.“나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그 의견 때문에 억압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얼핏 듣기에 감동적인 이 프랑스 성인군자의 말은, 다분히 원론적이고 이론적인 말이다. 말자체로는 맞는 말이겠지만 24시간 안에 정세가 바뀌면 24시간 안에 전술도 바뀌어야 하는‘정치적’입장에선 한가 한 소리인 측면이 있다. 종북방어에 인생을 낭비할 정도로 시간이 많고 여유로운 분들은 개인적으로 이런 방침을 따를 수 있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 차원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당은 종북방어에 인생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

좌파의 무능에 따른 피해는 좌파만의 몫 아냐 종북세력을 잘라내지 않은 채 계속 품고 가는 것은 마치 썩은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 몸 전체가 죽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다. 종북방어야 말로 성 인군자들의 원론에 집착하는 무능의 극치 이며, 당의 미래에 대한 무책임하고 안일

종북세력을 잘라내지 않은 채 계속 품고 가는

한 방침이다.

것은 마치 썩은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 몸 전체

오히려 당은 전략적 차원에서 주사파

가 죽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다.

를 짓밟고 진격해야 한다. 당은‘정치의 도구’ 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 당은 일반적 인 시민단체 혹은 운동단체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냥 시민 단체는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켜 대중의 직접적인 평가를 받지 않는다. 당에 대한 평가가 득표율로 환산되지도 않는다. 오직 유일하게 선관위에 등록한 합법정당만이‘표’ 를 얼마나 얻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독특한 경 험을 갖게 된다. 이 고유한 역할과 위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좌파의 대중정치를 추구할 수는 없다. 좌 파의 무능이 좌파의 역사적 성립을 방해하고 있다. 특히 대중정치 공간에서 좌파의 몰락은 우파 단일 패 권주의를 유지하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무능한 좌파로 남을 수 없다. 좌파의 무능에 따른 피해는‘좌파’ 가 감수 하는 것이 아니라‘역사’ 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쟁점토론 97


먼 좌파 이웃 좌파 ③

이웃 나라 일본의 좌파(1) 장석준 부대표

실종된 동아시아 국제연대의 전통 좌파 정치의 오랜 미덕 중 하나는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국제연대의 전통이다. 동아 시아에도 20세기 전반에는 이런 전통이 살아 있었다. 우리 항일혁명운동사만 봐도 중국, 일본의 좌파와 연대하며 동아시아 전체의 변혁을 위해 싸운 선배들의 기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좌파 정당들은 자국 정치의 맥락 안에 갇혀 있을뿐 더러 교류도 활발하지 않다. 더구나 동아시아가 점점 더 지구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데 반해 이 지역의 좌파 정치는 오히려 과거보다 쇠퇴하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점점 더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가 그 런 인상을 던져준다.

오래된 일본의 좌파 정치의 역사 일본은 본래 뿌리 깊은 좌파 정치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1920년대에 노동운동, 농민운 동 등의 성장을 바탕으로 좌파 대중정당들(흔히‘혁신정당’ 이라 불렸다)이 활발하게 등장했 다. 사회민중당, 일본사회당 그리고 노동자농민당이 그런 정당들이었다. 남성 보통선거제 가 도입된 덕분에 이들 정당은 의회에 진출해 활동하기도 했다. 조지 O. 타튼의『일본의 사 회민주주의 운동』 [한울, 1997]을 보면, 당시 이들의 활동상을 생생히 접할 수 있다. 다만 공 산당만은 철저히 탄압 받았다. 천황제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패전 이후 한 동안은 좌파 정치의 전성기였다. 전쟁 전의 혁신정당 흐름들이 결집해 사 회당을 창당했고, 공산당도 드디어 활동의 자유를 얻었다. 우파가 전쟁 책임을 지고 있었던 데다가 패전 후 비약적으로 성장한 대중운동 덕분에 사회당, 공산당 모두 전에 없던 인기를 누렸다. 1947년에는 사회당의 가타야마 데쓰 총리가 이끄는 좌우연정이 들어서기도 했다. 98


▲1960년대 신좌파 학생들의 가두 투쟁 모습 ▶60년대 신좌파운동 당시 농성 투쟁이 벌어진 도쿄대 야스다 강당

이 시기를 다룬 책으로는 존 다우어의『패배를 껴안고 :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일본과 일본인』 [최은석 옮 김, 민음사, 2009]이 좋다.

이 짧은 전성기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냉전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곧 끝나버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 동안 좌파는 일본 사회의 무시할 수 없는 주요 축이었다. 원내에서는 사회당이 늘 1/3 이상의 의석을 점하 며 자유민주당의 냉전 드라이브를 막았다. 노동조합운동도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전투적 기풍을 견지했 다. 무엇보다 1950년대-60년대 내내 학생운동이 활발히 지속됐고 그래서 좌파 청년 세대가 끊임없이 배 출됐다.

지나친 총평 의존 속에 조로한 일본 사회당 문제는 좌파 전반의 부족(部族)화에 있었다. 여기에는 주류 좌파의 책임도 있었고, 신좌파 세대의 문제 도 있었다. 우선 사회당은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약칭 총평)의 배타적 지지 방침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 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노동자들의 몰표를 받기는 했지만, 당 자체의 기반은 극히 취약했다. 제1야당임 에도 불구하고 당원 수는 전성기이던 1960년대 말에 3만 명에 불과했다. 굳이 당원을 확대하지 않아도 총 평이 조직과 재정을 책임져줬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 내 좌파, 그 중에서도‘사회주의협회’ 라는 정파가 당의 골간을 장악했는데, 그들은 낡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했다. 사회주의협회의 노선은 일본 자본주의의 발전 상황과도 맞지 않 았고 신좌파 청년들에게도 별로 매력이 없었다. 그래서 서유럽의 신좌파 세대가 1970년대를 거치며 주류 먼 좌파 이웃 좌파 99


좌파 정당에 입당해 당 내 좌파 흐름을 강화한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사회당이 조로(早老)해 버리고 말았 다. (사회당을 포함해 전후 일본 정치 전반에 대한 개론서로는, 야마구치 지로 외,『일본 전후정치사』 [박정 진 옮김, 후마니타스, 2006]이 좋다.)

스탈린주의의 유산, 공산당의 자폐성과 신좌파의 정파주의 한편 공산당 역시 자폐적 성격이 강했다. 공산당은 한국전쟁 시기에 농촌 게릴라 전술을 추진해 일본 사회에서 고립된 적도 있지만, 이후‘인민적 의회주의’ 라는 이름 아래 대중 정치의 길을 꾸준히 개척해왔 다. 사회당과는 달리, 일간지 <아카하타(赤旗)>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조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 기도 했다. 하지만 공산당은 스탈린주의를 부정하기는 했지만 스탈린주의의 어떤 요소들, 가령‘무오류의 전위정당’ 신화를 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과거 일본 공산당이 범한 여러 오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공산당 정통론을 고집하는 측면이 있다. 국내에도 DVD가 나온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일본의 밤과 안개』 (1960년작)를 보면, 이런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한편 참고할만한 책으로는 고야마 히로타케의 <전 후 일본의 공산당사 : 당내 투쟁의 역사』 [최종길 옮김, 어문학사, 2012]가 있다). 이런 태도가 공산당과 신좌 파 사이의 균열과 대립을 낳았다. 나중에는 아예 서로 폭력을 행사하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이탈 리아 공산당이 신좌파와 긴장을 빚으면서도 그 에너지를 흡수해 1970년대에 한때 집권 목전까지 갔던 것 과는 사뭇 다르다. 일본에도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스탈린의 죄상이 폭로되고 곧이어 헝가리 혁명이 일어 나자 공산당에서 이탈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신좌파가 형성됐다. 그 자신 신좌파운동 참여자였던 가라 타니 고진은 대담집『정치를 말하다』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0]에서 당시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한다.

일본 신좌파 정파들 중 하나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혁마르파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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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만 따지면, 일본의 신좌파 세대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서독에 못지 않았다. 흔히 서유럽에 비해 일본 신좌파는 너무 커다란 패배를 겪어서 이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하는데, 사실 패배한 걸로는 서독도 마찬가지였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서독 신좌파의 상당수는 1970년 대 후반 녹색당 건설 운동에 합류해 대중 정치의 새 흐름을 만들었던 데 반해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 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는 일본 신좌파 사이에 유독 심했던 정파주의였 다. 어찌 보면 공산당의 스탈린주의 문화가 스 탈린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신좌파 세대에게 도 고스란히 반복된 셈이었다. 신좌파들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기 는 하지만 연합적군파의 아사마 산장 사건을 분석한 퍼트리샤 스테인호프의『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 [임정은 옮김, 교양인, 2013] 에 그 충격적인 양상이 소개돼 있다. 신좌파 세 대가 일본 사회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파 간 폭력 사태로까지 치달은 병적인 정파주의(그에 비하면 한국 운 동권의 정파주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때문에 세력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나마 진지하게 방향 전환을 모색한 이들도, 비록 생활협동조 합이나 지역운동에 뿌리를 내리기는 했지만, 전국적 정치 흐름을 만들지는 못했다. (신좌파

연합적군의 아사마 산장 사건을 다룬 코지 와카마츠 감독의 영화 포스터

일부가 생협운동 등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요코다 카쓰미,『어리석은 나라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시민 : 생활클럽 운동그룹과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의 모델 만들기』 [나일경 옮김, 논형, 2004]에 잘 소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일본 정치에는 우경화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마치 우리의 지난 몇 년을 연상시키는 사태가 일본 좌파를 덮쳤고, 그 결과가 지금의 우경화한 일본 정치 지형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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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

제주에서 귤 따고 버스 모는 음악가, 조성일

“조금 느리게, 보다 천천히” 인터뷰·정리 : 나도원 문화예술위원장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작고 노란 버스가 오르막길을 휘돌아 올라온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자의 낯이 익다. 지난 14년 동안 ‘희망의 노래 꽃다지’ 에서 노래한 민중 음악인이자, 제주도로 이주하여 얼마 전에 솔로 음반『시동을 걸 었어』 를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조성일이다. 노동당의 당원이며 문화예술위원회 회원이기도 한 그와 반갑 게 인사를 나누었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위치한 새싹어린이집에 도착해 버스의 시동을 끄고 내린 조성일과 함께 어 린이집 아래편, 감귤 농장에 아담하게 자리한 작업실로 걸어 내려왔다. 카메라와 무거운 가방을 둘러맨 박성훈 중앙당 홍보실장과 나는 그렇게 제주 이민자의 삶터를 둘러보며 일상의 걸음을 따라나섰다. 조성 일이 출퇴근 시에 이용하는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내로 이동하면서 인터뷰는 이미 시작되었다. 102


서울에선 감기를 달고 다니던 아들 현빈이 건 강해진 이야기, 연고도 없이 찾아온 제주도에서 감귤 밭과 어린이집 통학버스 기사와 같은 일자리 를 주선해준, 여미지식물원 노동조합 전 위원장 양창하 씨의 이야기, 지역사회의 문화운동 현장과 끈이 되어준 민주노동 제주본부장에 대한 고마움 등이 주 내용이었다.

서울의 조성일 _ 떠밀려 나가다 노래패 한울림에서 활동한 청년 조성일은 병역 을 마친 후 고민에 빠졌다. 취업 공부는 시작했는 데 어느 순간, 도서관 열람실에서 나와 토익 책 대 신 영화와 사진 잡지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 다. 후배들과 밴드를 결성하여‘제1회 동학농민창 작가요제’ 에 참가해 상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민중가요의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의 진

1998년, 꽃다지 오디션에 다시 응모하

로를 생각하던 중에 꽃다지에서 가수를 구한다는

여 3: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꽃다지

소식을 접했다. 오디션을 보기로 하고, 마침 김제

가 음악적 변화를 모색하면서‘결이 다

에 온 꽃다지에게 자신의 노래를 담은 테이프를

른’목소리를 찾던 때였다.

직접 전달한 때가 1997년이다. 결과는 탈락이었 다.‘아주 예의 바르게’거절 받은 이듬해에 다시

오디션에 응모하여 3: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조성일은 자신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당시에 정윤경 음 악 감독과 함께 음악적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한 꽃다지가 남들과는 결이 다른 자신을 택한 결과라고 술회 한다. 정윤경 음악 감독의 색다른 시도에 처음에는 동의하기 힘들었으나 차차 이해하며 신뢰를 품게 된 조성 일은 가수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중요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를테면 꽃다지의 앨범『노래의 꿈』 에 실린 <길 위에서>와 <Fighter>처럼 힘과 서사가 넘치는 곡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곡들은 몸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낸 결과였다. 그는 지치고 힘이 빠진 상 태였다. 몸과 마음이 모두 방전되어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무대에 서는 것조차 두려웠다. 쉬어야 했다.

삶과 문화 103


나 또한 그런 날 보며 끊임없이 자학을 했지, 변할 줄 모르는 내 자신에게 잔인하게 욕을 해댔지 무기력하게 시들어가는 절망 속에 지쳐만 가는 안쓰러운 나를 보았지 조성일 <나에게로 가는 길>

제주도의 조성일 _ 상처가 있기에 사람을 품어주는 섬 “아참, 여기는 횡단보도가 없지!” 조성일이 안내한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를 지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도로 앞에 서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는 주요 도로를 제외하고는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없다. 이따금 천천히 지나 가는 차량을 살피고 건너면 되는 곳에서 우리는 지방 도시의 여유로움을 잠시 잊을 정도로 수다를 떨고 있 었다. 근래 제주도의 큰 변화 중 하나는 문화이민자의 증가다. 사실 음악 쪽에서는 조동진·조동익·장필순 그리고 윤영배와 같은 이들이 진즉에 터를 잡은 바 있다. 조성일의 경우는 달랐다. 그의 새 노래 중에서 도 시 중심의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이야기를 담은 <떠밀려 나간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어 슬 쩍 물었다.“떠밀려 온 것인가요?”조성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귤밭 앞에 아담하게 자리한 조성일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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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택을 한 것도 있지만 밀려난 면도 있죠. 생존을 위해 왔어요. 문화이민자들과는 좀 달라요. 아 직은 아등바등 살고 있다고 봐야죠. 살아온 역사를 공유할 사람도 적어요.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쉽지 않고요. 그래서 외로움이 가장 힘들죠.”

왜 하필 제주도를 선택했을까. 조성일은 2년 전 추석 때에‘양가에 거짓말을 하고’가족여행을 와서 제 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제주도에 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4~5년 전에 꽃다지와 함께 오키나와 에서 열린 평화대행진에 참가한 경험이 한몫했다. 오키나와의 풍광과 나하시의 좌판시장, 그리고 레게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모습에 이끌렸다. 비슷한 면을 제주도에서도 발견했다.

“서귀포시도 올레시장과 이중섭거리가 마주보고 있잖아요. 자유로움과 자연 그리고 문화의 어우러짐 이 여기에 있었어요.”

제주는 고려 때에 한국사에 편입되었다. 오키나와를 포함하는 류큐는 1879년에 일본에 병합되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간 미군의 점령 하 에 있다가 1972년에 반환되었으니 일본의 일부로 있었던 기간은 무척 짧다. 일본 반환 전에 개별적인 국 가로 인식되어 1950년대 말에 국제회의(아세아민족반공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류큐에선 제2차 세계대전 때에 49만의 인구 중 15만 명이 일본군에 의하여 죽었으며, 제주는 4·3항쟁 당시에 3만 명 이 상이 죽임을 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미에 6만의 일본군이 주둔하던 제주도에 미군이 상륙했다면 더욱 참혹했을 것이다. 더구나 류큐에서도 미군기지뿐만 아니라 자위대 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예정지 인 요나구니 주민의 의견이 반반으로 갈리며 갈등까지 빚는다고 한다. 이마저도 닮았다. 우리는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제주도와 오키나와에는 상처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그래서 섬이 사람을 품어 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조성일의 고향은 논산이지만 가족사의 아픔 이 상처로 남았기에 고향을 지웠다. 굳은살은 생겼어도 가끔씩 쑤시듯 아프다. 어쩌면 그래 서 제주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그가 작업실을

제주에 와서 작업실을 구하러 다니던 중 밭일을 하던 할머니들을 만난 적이 있다. 할머니들은 마땅한 건물을 찾자며 밭에서 긴급회의를 열었다.

구하러 다니던 중 밭일을 하던 할머니들을 만 난 적이 있다. 할머니들은 조성일에게 마땅한 건물을 물색해주겠노라며 밭에서 긴급회의를 열기까지 했 다. 그 마음이 정겹고 따스했다. 삶과 문화 105


출발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동을 걸어요 『시동을 걸었어』 에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작곡을 하는 태도가 예전과 달라져서 자신의 곡을 낳는다 는 책임감도 커졌다. 사적인 부분에 예민해지고, 그로써 세상을 향하여 안 테나가 일어서는 느낌을 받았다. 전과 는 반대로 개인에서 세상으로 넓혀가

어린이집 차를 몰고 들어오는 조성일

는 방식으로 음악을 풀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힘을 빼고 나니 오히려 힘이 솟았다. 특히 제주도에 온 이후로 치 유가 몸으로 느껴졌다. 이야기를 듣다가 이런 말을 건넸

“조급해지면 우리가 비난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 아질 겁니다. 여유를 잃지 말았으면 해요. 상처가 많기에 포용할 줄 아는 섬처럼”

다.“내려놓는 순간 손에 쥐어지는 것 들이 있습니다. 너무 많이 담으려 하 면 그릇이 넘어갑니다. 큰 사람은 그릇이 크다기보다는 자기 그릇의 넓이와 깊이를 아는 사람이 아닙니 까.” 조성일이 화답했다.“뚜껑이 열리는 느낌이었죠. 무언가 확 풀리는 느낌이랄까. 전에는 그렇게 힘들었 는데 제주도에 와서 대부분의 곡들이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정말 자연의 힘을 느낍니다.” 솔로음반을 만들면서 비영리 프로젝트인‘뷰티풀 데이 뮤직’ 을 세웠다. 꽃다지의 후원자를 일컫는 꽃 사람 김춘광의 제안과 도움으로 디자이너 여희은 그리고 시인 송기역과 공조하는 작업은 소통과 공감이 함께했고,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꽃다지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꽃다지의 민정연 대표는 뷰티풀 데이 뮤직의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고,『시동을 걸었어』 에는 음악감독 정윤경의 손길이 보태어졌다. 사적인 노래만 만들고 부른 건 아니다. 귀에 바로 들어오는 후렴구를 지닌 <망치와 칼날> 그리고 <땀 흘려>는 자본주의와 노동해방에 대한 외침으로 들린다.

“지금, 시작의 확인이 필요하지 않나요? 망치와 칼날, 땀이 시작이었죠. 자본의 것이 되어버린 것들의 처음을 되돌아보자는 거죠. 여럿이 노동하며 흘리는 땀, 노동의 대상인 자연과의 소통, 파괴가 아니라 소 통을 말입니다. 우리는 시작을 잊고 있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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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민과 함께 제주도의 또 다른 이슈는 중국 자본의 유입과 골프장의 섬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그 리고 해군기지가 있다. 분쟁지역인 한국은 지금도 군사비 지출에서 세계 11위에 올라있다. 무장과 동원을 통하여 평화를 지키겠다는 중무장평화주의는 모순이다. 제주도에 대한 노래가 있을 법한데도 새 음반에는 실려 있지 않다. 문정현 신부에 대한 곡을 만들려고 도 했지만 함부로 덤볐구나 싶어 내려놓았다. 제주도에 대한 사연도 마찬가지였다. 충분히‘자기화’ 하기 전에는 힘들다고 느꼈다.

“오히려 몇 해 전이라면 가능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의 현재에 대한 솔직함을 그리고자 했죠. 다 른 목적이 있다면 거짓말하게 돼요. 거짓말하기 싫었어요.”

강정마을 바로 윗동네인 하원마을, 그러니까 차로 5분 거리에 사는 조성일은 노래활동가 쏭이 객석에 있는 자신을 알아본 덕에 2012년 평화활동가대회부터 주변에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레 접근하 고자 한다. 물론 두 개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공연하는 불복종 활동이다. 다른 하나는 지인이 이중섭거리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강정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로 전하는 것이다. 조성일은 더 느리게 만나고 천천히 교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도 느리게 자신을 알려 주고 천천히 남을 알아가며 그렇게 자연의 운율을 따라가고자 마음먹고 있다. 당원들에게 하고픈 말은 없 는지 물었다.

“여유를 잃지 말았으면 해요. 당이 어렵고 진보 진영이 어렵지만 여유를 잃으면 구석에 몰리지 않을까 요? 뜻과는 다르게 실수하게 되고, 그 실수가 습관이 되겠죠. 조급해지면 우리가 비난하는 어떤 이들의 모 습과 같아질 겁니다. 그래서 더 멀리, 더 넓게 봤으면 해요. 우리는 상처가 많잖아요. 하지만 어려울수록 자신에게 여유의 시간을 줍시다. 상처가 많기에 포용할 줄 아는 섬처럼….”

내 지갑 속 묵혀 있던 운전면허증 십년 만에 꺼내 들고 길을 나섰네 지도를 펴고 길 찾아 조금씩 앞으로 가려져 있던 세상을 만나러 가는 길 시동을 걸었어, 나만의 길을 찾아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조성일 <시동을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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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이석기의‘과대망상?’ 언론도 과대망상 <미래에서 온 편지>

이석기‘내란음모’사건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얼마나 오래갈지, 그 파장이 얼마나 클지 판 가름조차 안 되는‘광풍’ 이다. 어떤 이들은‘종북’세력을 몰아내자고 소리치고, 어떤 이들은‘조작’ 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를 살피고 있다. 이 광풍을 주도하는 집단은 단연 국정원이다. 하지만 국정원 혼자 이 광풍을 일으킬 수는 없다. 많 은 언론이 국정원의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가 쓴 기사인지 기자가 쓴 기사인지 구별 이 안 가는 기사들이 넘쳐난다.“내란음모죄가 통하지 않을 것 같으니 언론에 정보 흘리면서 여론 재 판 한다” 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불만이 이해가 간다.

대한민국 언론에 있는‘네 가지’ 이석기 광풍을 이끄는 언론의 첫 번째 자세는‘단독’남발이다. 대한민국에 특종 기자가 이렇게 많 았나 싶을 정도로 언론들은 이석기와 통합진보당, RO 관련‘단독’ 을 쏟아내고 있다. 채널A는 지난 28일 이석기 의원이 압수수색을 피

이 광풍을 주도하는 집단은 단연 국정원이다. 하지만 국정원 혼자 이 광풍을 일으킬 수는 없다. 많은 언론이 국정원의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다.

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도주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채널A <뉴스특보> 에 출연한 박민혁 기자는“이석기 의원이 압수수색을 하기 직전에 변 장을 하고 집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일부 카메라에 포착이 됐다” 며“영장이 발부가 안 된 건데 굳이 왜 피한건지, 실제 문제가 있어서 피한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고 전했다. 그러자 TV조선이“변장을 한 후 택시를 탔다” 는 내용을 추가했고,‘단독’ 기사로 내보냈다. 수많은 언론이 이 소식을 받아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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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29일‘이석기 수도권 은신처에’ 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내보냈다. 이번에 는‘공안당국 관계자’ 의 말을 빌렸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이 변장하고 도주한 적도 없으며 국회에 있다는 반론이 나왔다. 언론이 단체로 오보를 했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아무도 해명 하는 이들이 없다.

국정원의‘의심’ 에만 근거 한, 사실 확인이 안 된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JTBC는 28일 이석기의 선거광고 대행사 CNP 산하 회사의 관계자가 중

채널A <뉴스특보>가‘이석기 변장-도피’ 를 단독보도하자 TV조선이‘변장을 한 후 택시를 탔다’ 는 단독보도를 또 내보냈다. 수많은 언론이 이 소식을 받 아썼다. (사진 : 채널A, TV조선 보도화면)

국에서 고위급 북한 인사와 접 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의혹 이상의 근거는 없었다. 채널A는 30일 아침뉴스에서‘단독‘지금 은 전시 상태’이석기 의원, 北측과 사전 교감 있었다?’ 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하지만 내용은“이석기 의원의‘전시 상태’규정에 북한 측과의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국정원의 의심” 이 전부다. 한국일보도 5일 지하조직 RO와‘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한대련)이 연관 있다는 국정원의 의심을 기사로 내보냈 다.

언론의 두 번째 자세는 무분별한‘확대해석’ 이다. 몇몇 언론들은 이석기 집에서 발견된 현금에서 러시아 화폐가 나왔다며 북한과 관련 있다는 듯 보도했지만 근거는 없었다. 이석기의 집에‘이민위천’ (以民爲天)이라고 적힌 족자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전하며“김일성 북한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조한 좌우명과 같다” 고 말했다. 하지만‘이민위천’ 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사마천도 종북 좌파였단 말인가?

언론의 세 번째 자세는‘쓸데없이 떠들기’ 이다. 언론은 이번 사건과 별 관련도 없는 사생활과 가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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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기사를 쏟아냈다. 몇몇 언론은 이석기가 이혼했고 자식이 유학을 갔다는 사실을 새로운 이슈인 것 처럼 보도했다. 이번 사건으로 이혼한 것도 아니고 이번 사건 때문에 자식들을 해외로 보낸 것도 아닌 데, 도대체 이번 사건과 이석기의 집

많은 언론은 이석기 녹취록을‘21세기에 어울 리지 않는 과대망상’ 이라 비웃었다. 과대망상 에 빠진 언론들에게도 그대로 돌려주어야 할 말이다.

안 사정이 무슨 상관일까? 조선일보 는 이석기가 차고 다니는 시계가 주 목을 받고 있다며 이 시계의 가격이 80만원이라고 전했다. 대체 누가 이 석기의 시계에 주목한다는 걸까? 조 선일보 빼고 아무도 관심 없을 것이

다. 많은 언론은 이석기 녹취록을 보고‘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과대망상’ 이라고 비웃었다. 그 말을 이석기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에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언론은 과대망상에 빠져 기사를 쓰고 있다.

언론의 네 번째 자세는‘베끼기’ 이다. 한국일보가 이석기 녹취록을‘단독 입수’ 해 보도했는데, 조선 일보와 세계일보는 이를 그대로 베껴‘단독’ 을 붙였다. 한국일보는 오타까지 그대로 베꼈다며 법적 조 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냥 기사를 우라까이1) 하는 것도 아니고‘단독’베끼기라니, 이석기 광풍에 완전히 이성을 상실했다.

언론,‘법적 책임’이전에‘도의 적 책임’ 져라 언론은 이미 이석기와 통합진보당 을‘내란범’ 으로 확정지었다. 압수수 색 단계였던 29일, 다수 언론은“법원 도 현역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 줄 만큼 확실한 증거가 확보 된 상태” ,“법원도 범죄 혐의가 충분 히 소명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는 국정원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당

YTN은‘내란세력 시정 참여’ 라는 선정적인 타이틀을 내걸었다. (사진 : YTN 보도화면)

1) 남의 기사를 교묘하게 짜깁고 베끼는 것을 일컫는 언론계의 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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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히 유죄라는 식의 태도였다. 국정원이 이런 식의 이야기를 언론에 슬슬 흘리고, 언론이‘여론 재판’ 을 해버리면 법원도 부담을 느껴‘정치적인 판결’ 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YTN은 이번에 체포된 통합진보당 인사가 수원시 무상급식에 관여했었다는 사실을 전하며‘내란 세력 시정 참여’ 라는 타이틀을 걸었다.‘내란 의심세력’ 도 아니고‘내란세력’ 이라니, 지나친 표현이 다. 법원에서 판결이 난 것도 아닌 데, 본인들이 이미 판결을 내려버렸 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혹자들은 이 석기와 통합진보당이‘법적’ 으로 내

‘법적 책임’이전에‘도의적 책임’ 을 져야 한다 는 말은 이석기 사건을 보도한 언론에게도 그대 로 적용된다.

란음모죄를 판정받기 전에‘정치 적’ 이고‘도의적’ 인 책임을 져야한 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을 사과하고, 말을 바꾸면서 오 락가락한 점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적 책임’이전에 ‘도의적 책임’ 을 져야한다는 말은 이석기 사건을 보도한 언론에게도 그대로 적 용될 수 있다.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측은 언론의 허위보도에 대해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 지만 기사 가치가 없고 확인도 안 된 단독을 남발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의심을 쏟아 부으며 피의자를 범죄자로 낙인찍은 언론이야말로‘법적’책임 이전에‘도의적’ 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석 기와 통합진보당을‘괴물’ 처럼 묘사하는 언론들, 사실 본인들이 괴물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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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서재

새로운 중국을 만드는 13억의 날갯짓 중국을 인터뷰하다 이창휘,박민희 엮음 / 창비 / 2013년8월 / 20,000원 양솔규 기획실 교육국장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이론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유명하다.“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날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킨다.”자연과학에서의 하나의 비유가 현실이 되었다.

13억 나비가 날갯짓을 한다. 이 날갯짓에 전 세계 구석구석은 훈풍이 불기도, 서리 가 내리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미래, 사회주의의 미래, 인류의 미래, 심지어 지구 의 미래까지, 우리는 이‘거대한 나비’ 를 빼놓고는 미래의 구체적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세기의 재판, 보시라이 사건 2012년에 시작된‘보시라이(薄熙來) 사건’ 은 중국 대륙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하 고 있는 중이다. 충칭시 당서기였던 보시라이(薄熙來)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 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살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보시라이는 수사 를 지휘하고 있던 공안국장 왕리쥔을 해임하였고, 왕리쥔은 청두 미 영사관에 망 112


명을 신청했다. 현재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 등에 대한‘세기의 재판’ 이 진행되 고 있다. 보시라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의 성 상납을 받았다느니, 보시라 이와 구카이라이의 관계가 어땠냐느니 하는 것은 호사가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검열과 통제가 심한 중국 언론의 보도가 얼마만큼 진실을 담고 있을지 알 수 없 다. 더군다나 린뱌오 사건(부주석 린뱌오가 71년 9월 몽골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 사한 사건) 이후 중국에서 가장 큰 정치적 스캔들이 아닌가. 다만 이 재판이 중요 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바로‘중국과 세계의 미래’ 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보시라이, 충칭모델, 중국은 어디로? 중국 혁명1세대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특권 그룹인‘태자당’출신인 보시라이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 충칭시 당서기였다. 그는 2007년 10월, 제17기 당 중앙정치 국 위원이 되었다. 또한 2012년 11월 선출 예정이던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한 명에 선출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야말로 중국 권력의 핵심이었다. 보시라 이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만들어 낸 이른바‘충칭모델’ 이 중국 신좌파들의 노선 이었으며, 보시라이는 중국 신좌파들의 정치적 대표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보 시라이는 황치판 충칭시장과 함께 국유자산과 시장원리의 창조적인 결합, 혁신적 인 토지정책, 도시농촌 통합발전 등 혁신적 정책을 펼쳤고, 농민공들을 위한 대규 모 공공주택 건설과 호구정리 등을 했다. 이러한‘충칭모델’ 은 시장보다는 국가, 성장보다는 분배, 자유주의가 아닌 마오이즘(또는 신좌파)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보시라이는 중국

아직은, 아니 아직도 중국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신좌파들의 정치

미국의 세계체제론자 아리기는『베이징의 아담스미스』 를 통해 중국이‘자본주의

적 대표자로 간

화’ 된 것이 아니라‘시장화’ 가 되었다면서, 이러한 중국의 발전이 서방의 제국주

주된다. 그가 만 든‘충칭모델’ 은 시장보다 국가, 성장보다 분배에 방점을 둔다.

의에 대항할 만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반면 마틴 하트-렌즈버 그는 중국의 계급관계 등을 분석하면서 중국이 사실상 자본주의화 되었다고 주장 한다. 중국의 공식적인 규정인‘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그 어떤 하나의 속성 으로 설명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하다. 보시라이의‘충칭모델’ 과 같은 이른바‘신 좌파의 길’ 도 있고, 홍콩과 중국의 관계, 마카오와 중국의 관계와 같은 일국양제 의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삶과 문화 113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인‘광둥모델’ 이 존재하기도 한다. 어쨌든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이루어진 지도 이미 20년이나 흘렀다. 중국 내부의 변화발전이 거대한 대륙 중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탐 구해 봐야 할 시기가 되었다.

새로운 중국을 만드는 11인의 궤적 지난 달 발간된 창비의『중국을 인터뷰하다』 는 한겨레신문 기자인 박민희와 ILO 분석관 이창휘가 중국의 대표적인 인물 11인을 인터뷰해 엮은 책이다. 이창휘는 80년대 쟁쟁했던 PD의 대표적인 이론가로서「현실과 과학」 의 필진이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11인 중에는 현대 중국을 움직이는 실천가들이 있다. 예컨대 한둥팡 (韓東方)은 철도노동자로 일하던 중 우연히 민주화시위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89 년 6월4일 톈안먼사건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최초 의 독립노조인 베이징노동자자치연합회를 만들었다가 투옥과 추방을 겪기도 했 다. 그는 현재 홍콩에서 중국 노동운동을 지원하는‘중국노동통신(China Labour Bulletin)’ 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맑스주의 학술지「New Left Review」(2005.7-8월호)는 그의 삶의 궤적과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인터 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인터뷰 대상자 중에는 가수 쑨헝(孫恒)도 있다. 음악선생이던 그는 98년 베이징으

이 책에 실린 11 인 중에는 현대 중국을 움직이는 실천가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로 상경해 고된 노동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농민공’ 들을 위한‘노동자의집’ 을 만들고‘신노동자극장’ 을 만들었으며 노동자박물관과 도서관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의“임을 위한 행진곡” 을 번안하기도 했고, 중국 노동가요를 작곡 하고 있다. 2011년 스물 세 차례 열린 그의 공연에는 9만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 다고 한다. 노동자들에게 자부심과 정체성을 심어주고, 권리와 연대 의식을 불러

중국, 새로운 동

일으키며, 무엇보다 노래를 통해‘사투리의 벽을 넘어’대륙의 노동자들이 단결

아시아를 만들고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있다. 아포 레웅(Apo Leung Po Lam)은 홍콩의 NGO 활동가로 동아시아의 노동자인 권단체로 유명한 AMRC의 대표이다. 그는 대륙과는 사뭇 다른 관점과 입장에서 114


활동을 해왔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 내에서 한때 마오주의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톈안먼 사건 당시에는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의 100만명 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이 책에는 현대 중국을 이끄는 사상가들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얼마 전 한국에 역작1)이 연달아 번역 소개된 첸리췬(錢理群)과 같은 대표적인 중국의 사상가도 있 고, 충칭모델을 실천적으로 지지하는 중국 신좌파의 대표적인 지식인 추이즈위안 (崔之元)의 인터뷰도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개혁개방을 통해 단웨이체제(單位體制)가 해체된 후의 과도기 적 시기가 지나고 이제 새로운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 진단 에 있어서는 11명의 입장이 같지는 않다. 예컨대 추이즈위안은 신좌파의 입장에 서 충칭모델을 신봉하지만, 첸리췬은 이를‘마오시대의 마오주의’ 라며 그 의미를 폄하하고,‘광둥모델’ 에 진정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주 체로 하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11명의 중국인들은 거대한 대륙에서 일어난 격동의 시간들을 온몸으로 경험한 이 들답게 특유의‘낙관주의’ 를 공히 지니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공통된 태도를‘만 이불식(慢而不息, 천천히 가되 멈추지 말라!)’ 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인민과 함께(어떤 의미에서는 마오와 함께) 멈추지 않는 항로를 가는 이들. 이 책의 부제 처럼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가고 있는 11명의 인물들은 동시에 새로운 동아시아와 새로운 세계를 이 시간에도 부지런히 만들고 있다.

<더 읽을만한 글> 「중국 문화대혁명을 다시 사고한다」 /백승욱/ 『문화과학』67, 2011.9 「중국 팍스콘 노동자 연쇄 투신자살과 혼다자동차 파업의 경과 및 주요 쟁점」 / 황경진/한국노동연구원,『국제노동브리프』8(7), 2010.8 「개혁개방 이후 중국 노동정책의 변화」 /장영석/ 『마르크스주의 연구』6(3), 2009.8

1)『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 1949~2009 상,하』 (한울). 『망각을 거부하라』 (그린비), 『내 정 신의 자서전』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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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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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이적 표현물로 판시한‘혁명동지가’ ‘적기가(赤旗歌)’등을 합창하거나 반 국가 단체 북한의 활동을 찬양해 왔다.”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구서를 보니 여전히 금지곡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꽃다지도 2011년에 4집『노래의 꿈』 에 수록된 <Hey, Mr. Lee>가 방송심의에서 방송 불가 선고를 받았는데도, 금지곡 시 대의 수치와 악몽을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붉은 깃발> 영국을 넘어 러시아와 남아공, 한국에까지 와닿다 1889년 어느 날 서른 후반의 짐 코넬이라는 사람이 기차간에서 순식간에 6연 44행 의 노랫말 <붉은 깃발 The Red Flag>을 지었다.

이른바‘노가바’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에 의해 탄생한 <붉은 깃발>은 급속도로 퍼 져 나갔다. 영국을 넘어 러시아 무정부주의자들에게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광부들에게도, 급기야 지구 반대편 일본과 한국에까지도 전파되었다. 영국 노동당 은 1945년 총선에서 이겼을 때 하원 의사당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승리를 자축했다 하니 전 세계적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1920년대에 일본에 전해진 <붉은 깃발>은 처음에는 <노동자여 단결하라>(勞動者 團結せよ)로 소개되었고 이후 아카마쯔라는 사람이 7·5조 운율로 번역하면서 제 목도 원곡을 직역한 <아까하타노 우타>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3박자였던 노래가 4박자가 되었고 바로 이 버전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적기가>다.

1930년대에 한국에 전해진 <아까하타노 우타>는 <적기가>로 직역되어 항일무장투

노 래 의

적기가

민정연 문화기획자

노래, 날 좀 그만 내버려둬 118


쟁을 하던 조선 공산주의자 들에 의해 불리게 된다. 해방 직후에도 노동운동가와 혁 명가들에 의해 계속 불리던 <적기가>는 북쪽에서는 여 전히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혁명가로 불렸으나 남쪽에 서는 1948년 정부수립 후 금 지곡이 되어 공식적으로는 잊힌 노래가 되었다. 이후 <적기가>가 한국에서 공식 석상에서 언급된 것은 영화 <실미도>에 삽입되었다는 이유로 강우석 감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 발되면서다. 그리고 또 다시 잊혀졌다가 이석기 의원의 찬양 및 이적 동조의 증거로 제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적기가>를 부른 것이 찬양·이적 행위인지 여부를 이 글에서 다투지는 않겠다. 이 글 의 주인공은 한국 땅에 와서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는 <적기가> 노래 그 자체다.

한국의 어느 기자라는 사람은“<적기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불리며 사람들의 분노의 감정을 계속 고조시켰다. 이 땅에선 <적기가>가 울려 퍼지는 곳에선 늘 피가 흘렀다. <적기가>는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분노한 인간을 양산하는 노래이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노래 역시 창작자를 떠난 순간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 의해 그 의미가 완성 된다. <적기가> 역시 나라에 따라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기도 하면서 수십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래임에도 저 기자는 매우 일방적으로 <적기가>를 매도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붉은 깃발 The Red Flag>을 일어로 번역했던 아카마쯔의 설명이 더 와 닿는다. "심한 탄압의 아래에 있었던 당시의 사회운동의 감정과 이 노래가 갖는 비장한 멜로디가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적기가>가 울려 퍼지는 곳

영국 노동당은 1945년 총선에서 이겼을 때 하원 의사당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승리를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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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피가 흐른 게 아니라 민중의 눈물과 피가 흐르는 곳에서 <적기가>가 울려 퍼졌다는 게 바른 시각일 것 이다.

부를 수 없는 노래는 없다, 부르지 않는 노래가 있을 뿐 방송심의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꽃다지의 <Hey, Mr. Lee>의 노랫말은 이명박이 당시에 펼치고 있던 정책을 나열했을 뿐이다.‘제 멋대로 고집불통 쇼를 한다’ 는 표현이 개인비방과 인신공격이라는 이유로 방송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방송국 심의실에“단지 MB가 하고 있는 일들을 나열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인신공 격이냐? 부적합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오히려 체제 부정하고 비판하는 <fighter>가 방송 부적합 판정 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은“체제비판은 많이들 하고 있잖아요.”그렇다면 <적 기가> 류의 노래 역시 금지곡 리스트에서 풀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들에게 이 말은 먹히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한국사회는 현재 많은 영역에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음악 쪽이라고 그냥 내버려둘까? 사전심의제의 칼 날이 서슬 퍼렇던 20세기처럼 대중음악, 대중문화를 옥죄어 올 것 같다는 건 나만의 예감인가? 그 시절 선배 예술인들이 이구동성으로‘사전 심의에 걸리지 않도록 내 속에서 먼저 검열을 하고 있었다’ 는 고백 을 21세기의 예술인들이 되풀이하지 말란 보장이 있을까? 나만 결연히 싸워 이기면 되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부를 수 없는 노래가 있다면 그건 정부 당국의 어느 기관에서 정할 문제가 아니다. 지상에서 널리 불리든 지하에서 숨어 불리든 이쪽저쪽 모두에게서 외면당하든 대중들이 선택할 일이다. 불려서는 안 되는 노래 는 없다. 다만 우리가 부르지 않는 노래가 있을 뿐이다. 노래를 그냥 내버려두어라.

* <적기가>의 유래와 역사에 관한 내용은 민영찬 교수의 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적기가>가 울려 퍼지는 곳에 피가 흐른 게 아니다. 민중의 눈물과 피가 흐르는 곳에서 <적기가>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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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기가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원쑤와의 혈전에서 붉은 기를 버린 놈이 누구냐 돈과 직위에 꼬임을 받은 더럽고도 비겁한 그 놈들이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붉은 기를 높이 들고 우리는 나가길 맹세해 오너라 감옥아 단두대야 이것이 고별의 노래란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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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수의 DIY 공작소

어둠 속에서도‘노동당’반짝반짝

LED 당깃발 만들기 정리 : 곽동건 서울 동작구 당원

노영수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2010년 10월부터 동작당원협의회에서 상근을 시작하여 현재 사무국 장으로서 각종 사업들을 열정적으로 진행 중이다. 손재주와 실험정신을 살려 지금까지 대형 당 깃발을 계 속 제작해왔다. 특히 이번에 만든 노동당 LED 깃발은 노영수의 DIY 중 역대 최대 규모의 작품이다. 하지 만 지금 그의 최대 관심사는‘뜨거운 연애’ 다. 최근 그의 페이스북 계정은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없어질 것만 같은 사진과 글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어 주위 솔로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LED 깃발 제작 과정 1. 본격적인 깃발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깃발 크기와 깃 발디자인, 도안을 구상합니다. 이에 맞게 재료를 구입하면 됩니다. 재료 : 깃발 천, 하이퍼플렉스LED(인터넷 오픈마켓 등에서 구입, 개당 100원꼴), 발 포고무원단(EVA폼이라고도 함, 인터넷 오 픈마켓 등에서 구입, 두께 2mm), 전선, 배 터리, 배터리 박스, 커터 칼, 양면테이프, 폼 보드

2. 깃발에 들어갈 도안을 출력하여 글자 모양 을 따라 잘라줍니다.

3. 발포고무원단을 도안에 부착하고 발포고 무 원단 뒷면 전체에는 양면테이프를 발 라 둡니다.

4. 도안에서 LED가 들어갈 선을 따라 잘라줍 니다. (발포고무 원단과 양면테이프도 나 머지 부분은 다 잘라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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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발라둔 양면테이프를 이용해 깃발 천 위에 자리를 잡고 발포고무원단을 부착합니다. 깃발 뒷면에는 폼보드를 놓고 발포고무원 단 모양을 따라서 LED 다리를 꽂아줍니다. 이때 LED 다리의 극성을 한 방향으로 맞 춰줘야 합니다.(LED를 잘 관찰하시면 모양 으로 극성의 방향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6. 준비해둔 전선의 피복을 벗깁니다. 깃발의 뒷면을 보면 LED 다리가 꽂혀 있습니다. 같은 극성의 다리끼리 전선으로 감아 연 결합니다. (전선으로 한 번 돌려 감고 LED 다리를 납작하게 휘어주면 고정이 쉽습니다.)

7. 전선으로 감아 연결한 모습입니다. 연결이 끝나면 똑같은 모양으로 발포고무원단을 잘라 깃발 천의 뒷면에 부착해줍니다. (발 포고무 원단이 피복 역할을 해 연결 부분 을 보호해줍니다.)

8. LED에서 나온 전선을 극성에 맞춰 배터리 박스에 연결한 후 배터리를 삽입하면 불이 들어옵니다. 이번에 제작한 노동당 깃발에 는 총 800여 개의 백색 LED를 사용하였 고 납축전지로 6V전압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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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니 칼럼

가을은 과일의 계절? 버섯의 계절!

가을이 과일의 계절이라지만 우리 약초꾼들은 가을에 과일 보다 버섯을 먼저 찾게 된다. 왜냐하면? 1년에 딱 한 철만 맛볼 수 있으니까! 송이버섯과 능이버섯, 싸리버섯은 가을을 대표하 는 식용버섯이다. 흔히들 1능이 2표고 3송이 라고 하는데, 그 기준의 첫째는 향이요 둘째는 질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1송이 2표고 3 능이 라고도 하는데, 결국 먹어본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달라 질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가을 버섯 중에서 인공 재배되지 않

이재기 충남도당·약초꾼·목공공방 일꾼

는 송이버섯·능이버섯·싸리버섯을 소개하고자 한다.

송이버섯은 조선소나무가 밀집한 마사토 지형에서만 난 다. 그러다 보니 그 산출지가 매우 제한적이다. 송이버섯 이 많이 나는 지역은 산주(국가 또는 개인)가 송이철에만 임대료를 받고 불하하기 때문에 함부로 입산할 수 없다. 임대받은 사람이 산중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면서 산을 지킨다. 따라서 애호가들은 송이가 드문드문 나는 임대 하지 않은 곳을 찾아 새벽부터 부지런히 발품을 판다. 송이버섯을 딸 때는 새벽에 손전등을 비추면서 찾는다. 솔밭에 볼록 튀어나온 송이버섯을 쉽게 찾기 위함이다. 그리고 송이버섯을 찾기 위해서는 몸 을 바싹 낮춰서 위를 쳐다봐야 한다. 몸이 뻣뻣한 양반네들은 절대 찾을 수 없다. 자신을 낮추 는 자에게만 송이는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송이버섯은 날 것으로 참기름소금장에 찍어 먹는 것이 제일이다. 밥에 넣어 먹어도 좋고, 전골 로도 좋고, 소주에 넣어 흔들어 마셔도 좋다. 두고두고 먹으려면 고추장에 박아서 장아찌로 먹 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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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이버섯은 참나무가 밀집한 바위산의 7부 이상 지대에서 난다. 능이가 나는 곳은 더덕처럼 그 향이 주변으로 퍼지기 때문에 눈으로 찾기 보다 는 코로 찾는다 한다. 능이버섯은 마치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크고 넓으며 거무튀튀한 표면에 수많은 돌기가 돋아 있어서 모르는 사 람들은 독버섯으로 여기기 딱 좋다. 요즘 산지가 아닌 도시에 능이버섯전골 음식점이 생겨서 성업 중이다. 이들 음식점에서 재료로 쓰는 능이버섯은 거의 중국산이다. 그렇다고 먹는데 께름찍해 할 필요는 없다. 중국산이라 해도 어차피 자연산이고 수입할 때는 냉동상태로 들여오는 것이라 안심하고 즐겨 먹어도 무방하다. 능이버섯은 데쳐서 쭉쭉 찢어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것(능이회)이 제일이요, 전골이나 닭백숙도 일 품이며, 데친 물을 냉장보관하여 각종 탕류의 육수로 쓰면 오래오래 먹을 수 있다.

싸리버섯은 참나무가 밀집한 잔돌과 마사토 지형에서 주로 난다. 그 생 김새가 싸리비 처럼 생겼다 해서 싸리버섯인데 그 종류가 다양하다. 따 라서 식용버섯도 있고 약한 독버섯도 있어서 반드시 데쳐서 울켜 먹는 것이 안전하다. 싸리버섯은 볶아 먹는 것, 된장찌개로 먹는 것, 전골로 먹는 것이 좋다. 재차 강조하건대 싸리버섯은 반드시 끓는 물에 데쳐서 찬물에 하루이상 울켰다가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열 중 아홉 번은 설사하기 때문 이다. 그렇지만 그 맛과 향은 일품이다.

송이·능이·싸리버섯은 모두 재배가 불가능하고 자연산 밖에 없다. 사람이 재배하는 게 아니라 하늘 이 키워주는 생물이기에 정해진 가격도 없다. 사먹으려면 돈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을에 한두 번 쯤은 직접 버섯산행에 동행하기를 권한다. 산행 후에 송이버섯을 넣고 끓인 라면은 기본적으로 2만원짜 리 라면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직접 산행하지 않고는 어디 2만원짜리 라면을 먹어 볼 수가 있겠는가!?

10월 버섯 산행

이재기 당원은 평택당협 당원들과 함께 매월 약초산행을 합니다. 10월엔 버섯산행입니다. 함께 하고픈 모든 당원들에게 열려있습니다. 10월 13일(일) 오전 8시 충북 단양IC에서 출발합니다. (문의: 이재기 010-8030-8815)

당원의 일상 125


소리 다운

당원들의 유쾌한 청각생활을 지지하는 이 달의 음원 다운로딩 가이드 장석원 음악 블로그 soundz.egloos.com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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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앤힘She & Him,『Volume 3』 여름이 끝났다. 40년 만의 무더위에, 오는 전쟁도 맞받아쳤고, 암튼 뜨거웠다, 유독. 계절 다 지나갔는데 바캉스용 음악을 소개하자니 민망하지만, 변명하자 면‘우리 조국은 식민지’ 라 서양문물이 쬐금 늦게 들어온다. 원산지에서는 이 미 5월에 발표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국내에는 아주 많이 지각 발매했다. 쉬앤힘은‘쉬’ 에 해당하는 조이 데샤넬Zooey Deschanel과‘힘’ 에 해당하는 엠.워드M. Ward의 프로젝트 밴드다. 그러나 엠.워드는 조력자 역할에 머물 뿐 사실상“500일의 썸머”등으로 유명한 배우 데샤넬의 음악적 분신이다. 작곡과 보컬 모두가 데샤넬의 몫이다. 2008년 첫 번째 앨범이 나올 때만해도 이 부업 이 얼마나 오래갈까 했는데 벌써 햇수로 6년차다. 조이 데샤넬의 음악은 복고 풍이라고 설명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싶다. 캐롤 킹이나 필 스펙터 같은 60년대 초반 브릴팝의 향기를 촌스럽지 않게 재현하는 것이 쉬앤힘 사운드의 최대매력 이다. 그러니까 석양이 지는 해변을 손잡고 걸어가는 젊은 연인이 도레미파솔 라시도를 만난 그런 살짝 낯간지러우면서 아련한 사운드? ● 강력하게 밀어주고 싶은 트랙 :“I've Got Your Number, Son” , “Never Wanted Your Love” ,“Hold Me, Thrill Me, Kiss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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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입스The Strypes,『Snapshot』 2012년 데뷔한 아일랜드 출신 4인조 리듬앤블루스 밴드의 첫 앨범이라고 하면 중요 한 뭔가를 빼먹은 거다. 이 친구들 아직 고등학생들이다. 가장 나이 많은 멤버가 우리 나이로 18살이다. 그런데 음악은 롤링 스톤즈, 야드버즈, 애니멀스가 아직 풋내기 취 급받던 시절의 정제되지 않은 리듬앤블루스다. 본격 할아버지 따라하는 손주들. 오죽 하면 국내배급사가 뽑은 광고카피가‘애들 나이 다 더해도 믹 재거 나이가 안돼요’ 겠 는가. 멤버 4명 모두 자기 연주를 앞으로 내세우는 점이 아직 어린 밴드임을 실감케 하나 좋게 말하면 그게 다 에너지다. 옛 음악을 오늘에 맞게 재해석하고 이런 거 없이 그냥 순도 100퍼센트의 리듬앤블루스다. 경륜이 묻어나는 블루스 연주가 필요하면 에 릭 클랩튼이나 들으면 되는 거고. 21세기에 이런 시대착오적인 음악을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스트라입스가 요즘 가장 핫한 밴드 중 하나 라는 사실. 세상사 돌고 돈다지만 순환의 주기가 너무 빠르다. 그만큼‘요즘’음악이 재미없다는 반증이겠다. 벌써부터 다음 앨범이 궁금하다. ● 강력하게 밀어주고 싶은 트랙 :‘Blue Collar Jane’ , ‘What the People Don't See’ ,‘You Can't Judge a Book By the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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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Bob Dylan, 『The Bootleg Series Vol. 10 - Another Self Portrait』 밥 딜런의 공식 외전격인 오피셜 부틀렉 시리즈도 벌써 10번째 모음이 나왔다. 이번에는 69년부터 71년까지 3년간의 미공개 녹음들이 대상이다. 1970년 벽두 딜런은“Self Portrait” 라는 비장한 제목의 앨범을 공개했다. 그런데 이 앨범은‘자화상’ 에 걸맞은, 아티 스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라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물건이었다. 발표당시 미 국의 대중음악지“롤링스톤Rolling Stone” 에 실린 리뷰의 첫 문장은‘이 쓰레기는 또 뭐 냐what is this shit?’ 다.“Another Self Portrait” 라는 이름에서 읽히듯 새 음반은 쓰레 기 취급당한 70년작의 복권을 노리고 있다. 확실히“Self Portrait” 에서 가장 수준 떨어지 는 곡들을 버리고 거칠지만 생생한 초기 녹음들로 다시 들으니 그런 심한 말을 들을 음악 은 아니다. 그러나 뒤집어서 생각하면 43년 전에는 이런 녹음을 가지고도 고작 그 정도 수준의 앨범 밖에 못 만든 셈이다. 이게 진짜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실수인지 아니면 밥 딜런에 얹어진 시대의 과중한 기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티스트의 의도적인 낯설게 하기 전략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배경을 머리에서 지우고“Another Self Portrait” 를 들으면 위대한 녹음이 묻히지 않고 공개됐다는 안도와 지난 40여년 동안 우리가 이걸 들을 수 없었다는 분노가 35곡 사이를 번갈아 밀려온다. 거장에게 감사와 경의를. ● 강력하게 밀어주고 싶은 트랙 : ‘Railroad Bill’ ,‘Thirsty Boots’ , ‘New Morning’ ,‘Days of '49’ ,‘Time Passes Slowly #2’ , ‘When I Paint My Master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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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접으며

형, 잘 가! 그리고 미안해 고(故) 조성배 대전시당 위원장을 보내며 김윤기 대전시당 공동위원장

형, 우리가 처음 만난 게 2006년 겨울이었던가? 처음 사무실로 전화 걸었을 땐 딱딱한 말투에 무지 사무적이었는데, 정작 만나고 보니 정도 많고 수줍음 도 많은 사람이더라. 소주 한 잔이 들어가야 자기 얘 기를 풀어 놓곤 했잖아. 그래도 우리 친해지는 데 그 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 대전에 진보적 장애인운동을 제대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통해서였을 거야. 2007년 여름, 활동보조 서비스 제대로 하자며 형은 일주일 굶고 병원 실려가고 나는 18일 을 굶었지. 이 싸움 시작할 때 모두가 장애인 당사자인 형이 단식하는 것을 말렸는데“대전에 서 진보적 장애인운동이 벌이는 첫 싸움인데 화끈하게 이겨야 한다” 며 모두의 입을 막아 버 렸던 거 기억나? 형은 온 몸의 마비를 견디고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전국에서 처 음으로 2급 장애인과 아동에 대한 활동보조서비스 시범사업을 성과로 남길 수 있었어. 그 싸움을 마무리하고 나서 더 많은 장애인 당사자들과 만나려고 장애인야학을 만들기로 한 거였잖아. 시청 처마 밑에 모여서 결의를 하고 정작 변변한 사무실 하나 구할 돈이 없어서 여기저기 다른 단체 사무실을 떠돌았지. 그마저도 안되면 학생 집으로 직접 찾아가서 수업을 하고. 그렇게 1년을 전전하다 용문동에 자그마한 사무실을 구했을 때, 전국에서 동지들이 달 려오고 형의 어머니와 동생도 찾아와 축하해주던 기억이 아직도 가슴 뭉클해. 형, 우리 지난 세월을 이렇게 같이 살았다. 그치? 형, 정말 고생 많았어. 그래도 난 아직도 형하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형이 내 곁에 없다. 최근에는 교통약 자 이동권 조례 개정 운동도 제대로 해내고, 형이 장애인과 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하는 꿋꿋한 정치인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는데. 형, 미안해. 곁에 있었던 우리가 형을 더 잘 지켰어야 하는데. 끝까지 형이 하고 싶었던 일 들 이제 우리가 해 볼게. 형이 없어서 힘들어도 어디선가 형이 기쁘게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해 볼게. 형 잘가. 고마웠고, 미안해. 128


[노동당 기관지]미래에서온편지 2호  

뒷걸음질은 이제 그만 벌써 두 번째 편지입니다. 어수선한 때에 보내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그 어수선함이 진보정당운동과 직결돼 있어서 더욱 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지난 몇 주 동안의 소용돌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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