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기관지 창간호

Page 71

죽음의 기로에 놓였던 황인화 씨. 낯선 이들이 천의봉 씨를 곁에서 부축하고 사진을 찍는 동안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 서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건강이 괜찮은지 내내 걱정했던 그였다. 무대 위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는 이들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가 금년에는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라간 철탑이었는데 정몽구 회장 이 정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니 밀려오는 것은‘두려움’ 이었다고 최병승 씨는 말을 꺼냈다. 하늘에 서 바라본 한국사회는 정말“개 같은 세상” 이었다고. 그러나 이 지긋지긋한 땅을 밟고 다시 싸워보겠 다고. 우리가 왜 296일 동안 저 철탑 위에 매달려있어야 했는지 세상 사람들이 조금은 알아줬으면 좋 겠다 했다. 그의 목소리는 크고 당당했다. 울지 않겠다 하더니 정말 울지 않았다. 형이 이야기할 때 동 생은 곁에서 계속 울고 있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얼마나 고난의 연속 이었는지 그는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부둥켜 안았다. 고공의 좁은 틈바구니에서 시간 과의 전쟁을 함께 치러낸 사람들, 곁에서 뒤척이는 소리, 아파하는 소리, 우는 소리 같은 것들을 서로 는 기억하고 있을 사람들. 그들의 몸과 마음은 아주 예민하게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차장 을 돌면서 고마운 이들과 인사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안쓰러움과 다행스러움 이 교차되어서였을 것이다. 그들이 경찰서로 떠난 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였다 다들 흩어졌다. 그날 울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였다. 40도의 열기 속에서 남은 사람들은 철탑위의 살림들과 밑의 살림들, 그리고 천막, 밥을 해먹었던 냄비나 식기 같은 것들을 정리했다. 황인화 씨도 소나기처럼 땀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천막을 걷고 있었다. 그에게 인사했더니 웃으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저녁이 되면 이들은 아쉬움이나 고단 함, 미련, 이런 것들을 텅 빈 이곳에 그대 로 둔 채 하나 둘 철탑 밑을 빠져나갈 것이 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달래면 서, 함께 싸워온 사람들과 수고했다며 소 주 한 잔 기울일지도 모르겠다. 아래로 쳐 진 어깨를 서로 두드리면서 힘내자고, 힘 내자고. 296일 동안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살았던 철탑은 다시 전기가 돌고, 사람의 흔적들을 차차 지워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워지지 않는 것은 하루하루를 메우던 사람들의 그 길고 모진 시간들이었 다. 누군가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 것에는‘희망’ 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에 그 모든 장면들 이‘희망’ 으로 남겨지기를. 우리 모두 그 기억들을 포기하지 않기를.

7월 20일 철탑이 있는 울산으로 전국의 희망버스들이 모 였다. 그들은 밤 늦도록 철탑 아래 공터(주차장)에서 함께 문화제를 했다.

노동르포 69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