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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시대다. 여기서‘유신’ 이란 1972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구축한 노골적인 독재체제를 일컫는 말로, 1979년 그의 사망과 함께 끝났다. 그러나 오늘날에도‘유신’ 은 정치의 공간에 심심찮게 불려나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물학적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어서일 테다.‘유신’ 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도를 갖고 꺼내는 단어다. 그런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 으로 전부인가? 오늘날‘유신’ 이란 단어가 대세를 이루는 상황은 누군가의 의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단어가 지금의 상황에 뭔가 잘 들어맞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그것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이 단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자기표현을 거듭하는 중이다. 여기서 유신체제의 근본적인 속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10월 유신은‘효율성의 신화’ 를담 고 있다. 이 체제를 경험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효율성을 위해 희생하지 말아야 할 것들의 목록을 극단적 으로 줄이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세태는 2015년의 현재에 와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를 보면 이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다소의 비약이 필요하지만, 유신체제가 현재 의 정치사회적 측면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보려면 세월호 참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체제적 열등감에서 비롯된‘효율성’ 이라는 신화

10월 유신은‘중화학공업화’ 와 한 쌍이다. 1972년 이른바 10월 유신 직후 1973년 1월 발표된‘중화학 공업화’ 는 다분히 방위산업의 발전을 고려한 위기극복 방안의 성격이 짙었다. 당시 한국경제는 고도성장 의 한계로 인한 내적 모순과 미국의 새로운 대외전략이었던‘닉슨 독트린’등으로 주한미군이 감축되어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중화학공업화’ 를 통한 현대적 무기의 대량생산체제 구 축과‘국민의 과학화’ 를 통한 기술자 및 기능공의 육성으로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안보를 위한 자주국방 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당시 국제정세를 반영한 판단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결국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확실한 우 위를 점하기 위한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성립 직후부터 강력한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북 한체제와의 군사적・경제적 대결을 주저하지 않았다. 당시‘닉슨 독트린’ 으로 상당한 규모의 주한미군 감 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다분히 북한체제를 의식한 정책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중화학 공업화는 정작 1972년 발표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포함돼있지 않았고, 이런 발표가 따로 있으 리라는 사실 자체를 아는 내각인사도 거의 없었다는 정황이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어떤 관점에서 이 상황은‘체제적 열등감’ 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열등감 은 단지 북한과의 관계에서만 확인돼온 것이 아니다.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미 남한의 확고한 우 위가 점해졌기 때문이다. 고도성장기의 체제적 열등감은‘중진국’ 이니‘개발도상국’ 이니 하는 어휘들을 통해 세계경제를 대상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중화학공업화 천명 후, 군사병기를 포함해 정밀기계부터 초대형 제품까지 모든 것을 한 곳에서 만들자 특집 유신을 돌아보다 25

미래에서 온 편지 26호 (201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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