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15호 (201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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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한 것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 후 세 번의 대선에선 아예 대선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됐 다. 2002년 대선과 2012년 대선에서는 후보단일화에서 패배했고, 2007년 대선 고건은 창당을 준비하다 가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이처럼 현재 한국의 선거제도는 무당파든 좌파든 제3후보가 선전하고 성과를 내기 힘든 성격의 것이다. 사실 제3정치세력으로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했던 건‘충청도 지역주의’정당들 뿐이었다.

안철수 현상, 그 텃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무당파 제3후보’ 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비록 안철수를 지지했을 때만 큼 열정적이지 않을지라도, 그를 지지했던 이들은 이제 반기문을 쳐다본다. 오히려 그 열망의 저변은 더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일까. 과거의 제3후보들은 주로‘영남의 비(非)여권 성향 지지자’ 들이 그 기반이었다. 그들은 김영삼 의 3당 합당으로‘야당 선택지’ 가 사라진 것에 대한 불만은 가졌지만 차마‘호남당’ (이라고 그들이 생각한 민주당)은 찍을 수 없었던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1992년의 김대중은 정주영과의 단일화를 고려하

지 않았고 1997년의 김대중은 이인제가 영남 표를 깨주는 바람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런데‘안철수 현상’ 부터는 다른 현상이 감지되었다. 안철수는 오랫동안 친노(親盧) 세력이 강세를 보 였던 수도권 중간층에게도 한때 인기가 있었고, 무엇보다 친노 세력에 반감을 가진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의 지지를 받았다. 이는‘수도권과 호남에 거주하는, 반(反)새누리 성향이나 현재의 제1야당에 불만이 많 거나 그들의 승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야당 지지자’ 의 지지로 읽혔다. ‘안철수 현상’ 이 보여준 건 이젠 무당파가 너무 많아져 새누리당 지지자나 민주당 지지자와 비슷한 규 모를 형성할 정도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정당이 다수 시민들을 대의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현실에서‘안철수 현상’ 은 자라났다. 어느 쪽도 지지할 수 없는 이들 의 숫자가 많은 것은 여전한 현실이다.

한국 사회의 정당이 다수 시민들을 대의하 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현실에서‘안철수 현상’ 은 자라났다. 비록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든 이후 그 정당은 이 들의 지지를 붙드는 데 실패했지만, 어느

쪽도 지지할 수 없는 이들의 숫자가 많은 것은 여전한 현실이다. 반기문의 39.7%라는 지지율도 이들의 총 합, 즉‘영남의 비(非)여권 성향 지지자’ 와‘수도권과 호남에 거주하는, 반(反)새누리 성향이나 현재의 제1 야당에 불만이 많거나 그들의 승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야당 지지자’ 의 합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제대로 된 정당 조직이나 거점지역을 가지지 못한‘무당파 제3후보’ 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현실은 여전하다. 그렇다고‘무당파 제3후보’ 에 대한 열망이 실체가 없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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