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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노동당 기관지

2013. 7. 창간준비호 https://newjinbo.org

창간준비호

인터뷰 | 김혜경 고문

“하수구 뚜껑 하나도 정치 아닌 것이 없다” 특집 | 지역에서 현장에서 6.23 미완의 재창당

창간준비호 https://newjinbo.org


<미래에서 온 편지> 창간준비호 ■ 발행인 이용길 편집인 장석준 편집팀 김민하 노정 박권일 이상엽 정철수 최백순 디자인 오혜진 ■ 등록일 2013년 6월 11일 등록번호 마포-라00403 발행일 2013년 6월 30일 주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1-12 비금빌딩 7층 전화 02) 6004-2027 팩스 02) 6004-2001 이메일 jinbonews@gmail.com 홈페이지 www.newjinbo.org ■ 값 10,000원


‘미래에서 온 편지’는 영국의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작가, 미술가인 윌리엄 모리스가 1891년에 낸 소설 제목 『News from Nowhere』 을 우리말로 의역한 것입니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는 ‘에코토피아 뉴스’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와 있습니다.

nowhere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유토피아’라는 말의 원래 의미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하지요. 윌리엄 모리스의 소설도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언자적인 안목으로 2050년의 녹색 사회주의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대회에서 원로언론인 김중배 선생이 축하 연설에 이 소설을 인용하며 그 제목을 ‘미래에서 온 편지’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아름다운 의역이라 사람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었고 어느 지역 당조직에서는 소식지 이름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관지에 ‘미래에서 온 편지’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한국 사회의 답답한 현재에 햇살을 들이는 미래의 틈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고 보니 nowhere는 now+here(지금 여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미래가 되기 위해, 이 편지를 띄웁니다.


목차

005

여는말

006

이상엽 포토에세이 <2008년, 그리고 5년 뒤>

010

6.23 미완의 재창당

011

당명쇼크: 강령 통과, 당명 부결 | 최백순

014

아직은 집에 갈 때가 아니다 | 김민하

017

진보신당 새 강령 톺아보기 | 장석준

025

특집 1 <지역에서 현장에서>

026

서촌 꼬뮤니따 <혁이네> 이야기 | <혁이네> 고미숙

030

먹어야 싸운다, 밥이 연대다 | 희망밥차 유용현

034

작은 손 모아 적정기술 만든다 | <작은손> 안병일

038

우리동네 사랑방 만들어지기까지 | 인천서구 민중의집 조병하

042

더디지만 한걸음씩 | 광주 민중의집 윤영대

046

특집 2 <여성 진보정치 열전>

046

"하수구 뚜껑 하나도 정치 아닌 것이 없다" 우리들의 왕언니 김혜경(1부) | 심재옥


055

초록 리포트 • 밀양의 전쟁 | 김현우

062

노동 리포트 • "아버님 댁에 케이블방송 놔드리셨어요?" | 김예찬

065

정책 포럼 • 통상임금 논란, 산별임금 전환의 계기 되어야 | 홍원표

072

정치의 품격 • 안철수와 최장집의 교집합은? | 한윤형

080

당원권장도서10선 •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지성의 힘! | 양솔규 외

091

먼 좌파 이웃좌파 • 세상에는 어떤 좌파정당들 있나 | 장석준

095

책 속의 책 • 다른 세상 다른 경제, 협동조합이 만든다 | 김성훈

099

구라파통신 • 진보신당 유럽당원모임을 소개합니다 | 엄형식

104

청년이 진보다 • 뉴비(Newbie), 동작구 당원협의회에 침투하다 | 유검우 • 새 당명에 숨 불어넣으려면 비전 보여줘야 | 이승한

110

재창당 특집만화 • 아듀, 진보신당 | 김재수

114

노래의 꿈 • 다시 찾은 노래의 꿈 | 민정연

118

무지개칼럼 • 네두익 교회 <금주의 설교노트> | 성정치위원회 박자민

120

미디어비평 • 일베 그리고 그들만의‘팩트’| 미래에서온편지

122

소리다운 • 이달의 음원 다운로딩 가이드 | 장석원

124

당원의 일상 • 제주에서1 | 조성일


여는말

<미래에서 온 편지> 창간준비호를 띄웁니다 장석준 | 진보신당 부대표, 기관지창간준비팀장

드디어 종이 기관지가 당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 3월 대표단 산하에 기관지창간준비팀을 처음 구성하고 나서 석 달 만입니다. 하지만 진보신당이 처음 창당한 때로부터는 무려 6년만입니다. 기관지창간준비팀은 4-5월 동안 기존 온라인 기관지 <정치신문 R>을 통해 두 차례 커버스토리 제작을 ‘훈련’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원 여러분께 종이 기관지 발행 주기와 판형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를 통해, 통상적인 시사주간지 크기와 두께로 월 간 기관지를 내는 것이 현실적이면서도 바람직하겠다는 결론에 도 달했습니다. 내용은 이론지나 소식지보다는 당원들도 쉽고 흥미롭 게 읽을 수 있고 주위에도 주저 없이 권할 수 있을 만한 대중지 성 격을 지향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제호는 당원 공모를 통해 ‘미래에서 온 편지(약칭 미래편지)’라 정했습니다. 이상의 내 용은 당대회 전에 당원 여러분께 배달된 당보를 통해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내는 첫 호는 아직 창간호는 아닙니다. 창간호 전 단계의 창간준비호입니다. 창간호는 8월 말에 ‘9월호’로 내려 합니다. 이 번 창간준비호는 정기당대회 끝난 직후에 발행되는 만큼 당대회 결과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재창당이 완수되지 못해 실망과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지 당원들의 지역 뿌리 내 리기 작업을 전하는 이번호 특집은 우리들의 발걸음에는 어떠한 동요도 없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박정희 독재 시절 가장 밑바닥 운동에서 시작해 지금껏 꿋꿋이 진보정치 한 길을 가시는 김혜경 고문의 이야기 역시 우리에게 당당히 제 갈 길을 가라는 격려로 다가옵니다. 창간준비호가 당원 여러분을 찾아가고 나면 당원 평가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으로 창간호를 내려 합니다. 기관지창간준비 팀도 기관지위원회와 산하 편집진으로 제 꼴을 갖춰가려 합니다. 정기구독과 홍보, 투고 등 당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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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한 걸음이 길을 엽니다. 미래가 됩니다. 우리는 길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 사람과 자연이 공존 가능한 지구생태계, 차별과 소외 넘어 모두가 평등한 세상,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없는 길을 만들고, 스스로 길이 됩니다. 그래서 진보신당의 꿈은 곧 <미래에서 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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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포토 에세이

2008년, 그리고 5년 뒤 2008년은 내게 무척이나 의미있는 과거다. 그해 2월 25일 17대 대통령으로 이명박이 취임했으며 3월 16일 진보신당이 창당했다. 오랫동안 세계 오지를 떠돌던 카메라를 거두어 다시 우리 땅에 초점을 맞췄다. 용산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고, 촛불의 바다를 감상했으며, 4대강의 폐허에 놀라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지켜봤다. 그리해 지난 5년이 어떤 사회인지, 무엇인 문제인지, 무엇을 바꿔야할지도 기록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진보신당이 지나온 시간과 공간이다. 이제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사진 글 이상엽 | 사진가


콜트콜텍 대전공장 앞마당에서 타오르던 장작불. 위장폐업 이후 인천과 대전의 기타 노동자들은 지금도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다. 아니 그들 스스로 기타 예 술가가 되어 노동과 삶을 합치하고 있다.

불 속에서 사람이 타 죽었다. 자본의 욕망이 쌓아올리려 했던 용산의 마천루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 죽어간 이들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한미 FTA는 인민들의 광범한 저항을 불렀다. 시청 앞에서 광화문까지 촛불로 뒤덮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거대한 물결은 표표히 이곳을 휩쓸고 지나가 버렸다.

충남 공주의 공산성 앞 금강. 4대강 개발. 공식 사업비만 22조. 추가 유지비 최소 10조. 증발해버린 세금은 누군가의 호주머니에 들어갔을 것이다. 정권과 자본의 한 몸은 염치 따위는 세금처럼 증발시켜 버렸다.


충남 서산의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제 노동할 수 있는 이들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안정과 의미를 박탈당했다.‘노동의 소외’ 는 신자유주의 앞에 고색창연한 옛 문장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하는 노동은 노동이 아닌 것일까?

서울 충무로. 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 아주 오래된 길은 우리 인류가 저 멀리 아프리카를 탈출하던 6만 년 전부터 존재했다. 길이 안보이고 길을 헤매는 것은 옛 길을 잊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가는 길은, 이미 우리 앞에 놓여있다.


6.23

미완의 재창당

사진: 박성훈


6.23 미완의 재창당

당명 쇼크 6.23 당대회에서 강령 가결, 당명 부결 최백순 | 서울 종로중구당원협의회 위원장

지난 23일 과천시민회관에서 열린 재창당대회에서 ‘당명 결정의 건’이 부결되었다. 당원전수조사를 통해 당 대회에 상정된 ‘녹색사회노동당(약칭 노동당)’과 수정동의안으로 제출된 ‘무지개사회당’, 두 개의 당명 모두 제석 대의원 2/3의 찬성을 얻지 못한 것. 이로써 진보신당 재창당대회는 강령 하나만 통과된 채 미완으로 끝났다.

당명 제정 어떻게 진행됐나 당명제정은 당원들의 자발적인 추천으로 시작했다. 자신이 선호하는 당명을 공모하는 형식이다. 이 후 당원선호도 조사를 거쳐 총 다섯 개의 당명을 1차적으로 확정했다. 총 49개의 당명이 응모되었으 며 1인 1표의 경우 순위구별이 어렵다는 당 대회준비위의 판단에 따라 1인 3표의 방식을 채택했다. 다 섯 개의 당명은 좌파당, 노동당, 사회민주당, 사회당, 녹색사회노동당의 순서대로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 개의 당명은 전국위원회에서 1인 2표를 기명으로 투표해 세 개의 당명으로 압축했다. 노동당, 녹색사회노동당, 좌파당이다. 세 개의 당명은 다시 당원 전수조사를 통해 녹색사회노동당으로 확정 됐다. 제적 대의원 10%의 동의로 수정동의안을 제출할 수 있다는 당규에 따라 무지개사회당이 추가 로 제출됐다. 그리고 두 개의 당명이 당 대회에서 모두 부결됨으로서 당명제정이 실패한 것이다.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친 걸까? 당 대회준비위는 “당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단계적으로 선호 당명을 압축하는 것”이 아래로부터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는 방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곧바로 드러났다. 자신이 선호한 당명이 컷오프에서 탈락할 때마다 당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반발은 여러 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 확대되기 에 이르렀다. 이것은 내가 선호한 당명이 왜 적은 지지를 받았는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절차적인 문 제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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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미완의 재창당


패찰을 들고 발언 요청하는 나도원 문화예술위원장. (사진: 박성훈)

최초의 문제제기는 선호도를 조사할 당시에 “왜 몇 위까지 컷오프를 한다고 공지하지 않았는가?” 하 는 것이었다. 실제로 선호도 조사를 위한 공지에는 ‘몇 위까지’라는 컷오프 규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조사 이후에 당 대회준비위가 5위까지만 당명을 확정하자 그 이후 순번의 당명을 선호하는 당원들이 ‘절차’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왜 5위까지인가 하는 것이었다.

선호도 조사라는 방식에도 문제제기가 있었다. 선호도라는 방식을 채택한 것은 “순위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일정한 숫자의 당명을 압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호비율은 공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순위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당명후보가 49개나 되었기 때문에 1차적 으로 압축하는 순위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록 1차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순위 는 순위다. 1차에서 3위를 기록한 사회민주당이 전국위원회에서 컷오프로 탈락하면서 ‘선호’라는 의 미는 무의미해졌고, ‘순위’가 최대 논란이 되었다. 다양한 의견을 아래로부터 모으자는 계획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모두에게 불신을 초래하는 결 과를 낳았다. 오히려 단순한 과정을 통해 당 대회로 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논란은 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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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왔을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절차상으로는 단순한 과정으로 진행하되 그 안에 다양한 참여가 가능한 ‘내용과 방식’을 채워 넣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전수조사에 포함된 세 개의 당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49개의 당명이 당원들에 의해 제안되었지만 크게 세 가지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먼저 ‘노동’의 의미를 포함한 당명들이다. 노동당을 비롯해 노동사회당, 그리고 노동의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는 평등당 등도 같은 흐름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녹색’과 관련된 당명들이다. 특이한 것 은 녹색의 경우는 다른 의미의 단어들과 조합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녹색사회노동당을 비롯해 초록사회당, 녹색좌파당 같은 경우이다. 이것은 당원들이 녹색에 다른 단어를 조합했다기보다 다른 단어에 녹색을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당의 주요가치 중에 하나인 녹색이 당명에도 포함되기 를 선호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좌파와 무지개라는 단어를 포함한 당명이다. 전자의 당명은 당의 성 격을 분명히 인민들에게 드러내자는 것이고 후자의 당명은 당의 다양한 가치를 당명으로 집약하자는 의미이다.

전국위원회에서 세 개의 당명을 확정한 후 당원전수조사까지는 약 한달 간의 시간이 있었다. 전체 일 정에서 보면 짧은 기간은 아니다. 또한 중앙당은 전 당원을 대상으로 특별당보를 배포하는 등 세 개 의 당명에 대한 홍보를 진행했다. 하지만 의외로 당원들은 세 개의 당명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다. 실 제로 전수조사를 위해 로그인을 한 당원들이 “마음에 드는 당명이 없다”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경 우가 다양한 경로로 확인되었다.

실패한 당명 제정,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앞으로 개최될 예정인 당대회는 당 대회준비위가 설치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당 대표단은 7월 중에 임시 당 대회를 열어 당명 제정을 다시 추진한다는 입장을 일단 밝힌 상태다. 물론 당 대회에서 부결 된 원안 성격의 녹색사회노동당을 다시 상정하자는 의견은 아니다.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 전과 같은 복잡한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당규에 따라 당 대의원들이 자유롭 게 당명을 제안하는 방식과 전국위원회에서 단일한 당명이나 복수의 당명을 제안하는 방식 중 하나 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당 대회를 다시 개최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이 의견은 당 대회에서 당명 이 부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재창당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당명이 문제가 아니라 재창 당의 내용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내용을 채워 재창당을 다시 추진하는 것이 대 의원들이 당명을 부결시킨 본래의 의미라는 주장이다. 대표단의 결정이든, 다른 의견이든 당명제정을 포함한 재창당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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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미완의 재창당


6.23 미완의 재창당

아직 집에 갈 때가 아니다 김민하 | <미디어스> 기자

당 대회가 끝났다. 새로운 강령을 결정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나 당명 결정 안건의 원안이 부결된 것에 대해 상심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명의 개정은 지도부가 내세운 재창당 일정의 ‘화룡점정’이 되어 야 했으나 당명에 대한 결정이 미뤄짐으로써 재창당 일정의 마무리도 불투명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녹색사회노동당’ 당명 지지한 까닭은 대의원은 아니지만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녹색사회노동당(약칭 노동당)을 지지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녹색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우리 당의 지향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2008년 소위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고수해 온 우리의 구호는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였 는데, ‘녹색사회주의’는 이러한 구호의 의미를 담고 있는 명칭이라고 판단했다. 2008년 당시 당명이 진보신당연대회의로 결정되고 당의 진로와 관련한 내부의 논의가 격화되면서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라는 구호가 담고 있는 의미도 일정 부분 퇴색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정신을 지키 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러한 가치를 반드시 ‘당명’에 담아야만 하는 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별도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어차피 대세로 판단된 ‘노동당’으로 결정될 것이라면, 좀 더 ‘가치’에 대한 지향을 명확히 한 당명이 선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것 역시 녹색사회노동당을 지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 기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전수조사’ 결과에서의 1위는 노동당이 아니었다. 마치 아무도 원하지 않 는 것처럼 다뤄졌던 녹색사회노동당(약칭 노동당)이 당대회 원안으로 제출되는 상황을 접하고 그것 에 대한 인정 여부는 별개로 스스로 실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안 결정 그 이후가 더 중요했다 나는 몇몇 지인들을 통해 전수조사에서 녹색사회노동당이 당대회 원안으로 결정된 이후 상황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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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회장 로비를 가득 채운 당원과 대의원들. (사진: 박성훈)

하다고 주장해왔다. 당원들의 마음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당명은 없다. 이번 사태의 진정한 문제 는 당의 핵심 활동가들이 당원들의 마음을 흔쾌히 얻을 수 없는 당명이라도 그것을 지지해야만 하는 어떤 당위를 제공하기 위한 담론투쟁을 벌이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긴 당명의 길이, 녹색당에 대한 실례, 녹색사회주의라는 표현의 모호함에 대한 지적 등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그러한 각각의 주 장에 대한 소박한 반론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모든 단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이것을 고수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절박한 이유를 당원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진보정치 전반의 지리멸렬, 정파 간의 갈등, 모험주의적 맹동, 당 체계의 이상 등을 원인으로 지 목하는 목소리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비유하자면 이미 ‘상수’들이었다.

나 또한 이런 실패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 중 하나라는 자각을 가진다. 한 명의 당원으로서, 또 녹색 사회노동당(약칭 노동당)의 지지자로서도 큰 책임을 느낀다. 주변에 나름의 설득논리를 들이밀었으 나 가장 친한 친구 한 사람마저 설득해내지 못했다. 고민과 노력의 부족이다.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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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미완의 재창당


당대회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러 반응들을 찾아보다가 가결로 인해 상처를 받을 사람들을 생각 해 찬성표결을 하지 않았다는 두 명의 대의원을 발견했다. 아마추어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으나 이 아수라장 같은 판에서 그들의 순진한 태도는 나름 높이 살만한 데가 있다. 이런 대의원이 두 명에 그치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즉,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당명을 쟁취해야 하는 어떤 열정을 불어넣는 데 실패한 것이다.

재창당‘완수’ 할 것인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인가 이후 전망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는 어찌됐든 다른 형태로라도 당명을 개정해 재창당을 완수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재창당을 실패로 규정하고 지방선거 준비에 돌 입하자는 것이다. 나는 두 의견 다 최소한의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명 결정이 부결된 직후 상황은 그야말로 처참한 것이었다. 누구는 울었고, 누구는 분노했고, 누구 는 후회했다. 그런 절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의 미래에 대한 구상을 다시 한 번 가다듬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녹색사회노동당을 제안한 당사자인 김종철 전 부대표는 페이스북 덧글들을 통해 여 러 사람들을 위로하려 했는데, ‘김종철’에 대한 많은 불만을 갖고 있지만, 그 상황에서 그가 내놓은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만은 우리가 평가해주어야 할 매우 중요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본다.

나 역시 당명 개정 안건의 부결 직후 SNS공간 등을 통해 ‘우린 아직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썼는데, 이 것도 그런 차원의 얘기였다. 아직은 집에 갈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돌진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당원 모두의 지혜를 기대한다 이제 당명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의 전당적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서 제안 된 당명이 당대회에 의해 거부된 지금, 이제와서 누가 어떤 수단으로 무슨 새로운 당명을 제안할 수 있단 말인가? 또 그런 제안을 한들, 그 과정이 정치적으로 매끄러울지 장담할 수도 없다.

하지만 기왕에 시작된 재창당 일정을 ‘마무리’하는 절차는 어떤 형태로든 필요하다고 본다. 재창당을 둘러싼 논의는 강령과 당명의 개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결 의를 다지고 이를 내외에 공표하는 것이 재창당의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부디 당원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당명을 다시 정하는 것이든, 2014년 지방선거를 실질적으로 준비 할 수 있는 묘안을 내놓는 것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재창당을 마무리 하는 과정을 현명하게 밟을 수 있었으면 한다. 당원 모두의 지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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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미완의 재창당

새 강령 <진보신당연대회의 선언>톺아보기 새 강령,‘평등 생태 평화 공화국’ 을 만드는‘사회주의 정당’분명히 장석준 | 부대표

강령은 당의 이념과 노선, 기본 정책 방향을 정리한 문서다. 한 당의 강령을 보면, 그 당의 색깔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정당은 저마다 강령을 갖고 있다. 새누리당에도, 민주통합당에도 강령이 있다. 하지만 강령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역시 진보정당이다. 진보정당은 세상을 바꾸자는 정당이고,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담은 게 진보정당의 강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 강령을 준비하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있었다. 새 강령 제정은 진보신당과 사회당 이 통합하면서 약속한 사항 중 하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신당의 현 강령이나 통합 전 사회당 강 령이 무슨 큰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간 진보신당이 겪은 혼란은 결코 강령 탓이 아니다. 강령에 어긋나는 정치 행태가 문제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새 강령은 진보신당 강령, 사회당 강령, 더 거슬러 올라가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 과 단절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이를 충실히 계승한다. 다만 여러 변화된 상황, 즉 2008년 금융 공황 으로 시작된 지구 자본주의의 위기, 생태계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산, 1기 진보정당운동의 굴절 과 변질 등을 반영해 새로운 강조점을 찾고 중요한 몇몇 내용을 보완했다. 또한 분량이나 표현 방식 을 좀 더 간단명료하게 다듬었다. 새 강령은 작년에 진보좌파정당추진원회 강령당헌연구팀이 제출한 보고서의 권고를 대부분 수용했 다. 그 권고에 따라 강령에 당의 이념과 노선 그리고 기본 정책 방향의 대략적인 정리만을 담았다(보 통 강령의 ‘전문[前文]’이 담고 있던 내용). 진보신당 강령 ‘본문’에 담긴 것과 같은, 좀 더 상세한 기본 정책 내용들은 이후 당 발전 과정에서 당원 토론을 통해 채워나가자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새 강령 은 구 진보신당 강령이나 예전 민주노동당 강령보다 훨씬 간명한 문서가 되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보완으로,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 사회당 강령, 현 진보신당 강령을 새 강령의 ‘부속 문서’로 채택했다(역시 강령당헌연구팀 권고 사항). 이들 부속문서는 곧 우리의 역사 속 강령들 이며 당원 교육 및 토론의 가장 기본적인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이것은 재창당한 당이 진보정당운 동 전통의 계승자임을 확인하는 의미도 갖는다. 그럼 새 강령의 가장 중요한 내용적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진보정당운동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시대에 우리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 성격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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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의와 제국주의, 성차별적 사회 구조와 생태 파괴 문명에 맞서 싸우며”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 주의, 소수자 운동과 결합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으로 정식화한다. 즉, 우리 당은 <사회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의 정당>이다. 이것은 이념적 차원의 정리이고, 이것을 계급적 성격을 중심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새 강령은 “자본과 노동이 대립하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항상 노동의 편에 선다” 그리고 “억압과 차별, 배제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에 맞서는 이들과 더불어 싸운다”고 천명한다. 사실 이런 표현은 스웨덴 사회민주당 강령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좌파정당 강령의 전통적 문구이기 도 하다. 둘째로, 진보정당운동의 혼란상에 대한 분명한 자기 입장을 제시한다. 우선 “1987년부터 시작된 1기 진보정당운동은 일단락”되었음을 명시한다. 1기 진보정당운동의 실패는 “진보정당 주역들의 오류와 한계 때문”이다. 새 강령은 그 ‘오류와 한계’를 크게 두 축에서 정리한다. 하나는 “자유주의 정당 의 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중의 삶의 현장과 괴리된 채 기성 정치의 협소한 틀에 갇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관성과 단절하는 게 우리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의 당면 목표를 표어 수준에서 정식화한다. 생태주의, 여성주의 등과 결합된 사회주의라 는 궁극 지향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을 지금 우리 세대 안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해 갈지 잠정적 중간 목표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과거에 이러한 목표를 ‘사회국가’, ‘사회연대국가’ 등으 로 표현한 바 있고, 요즘 대중적으로 널리 회자되는 말은 ‘복지국가’다. 새 강령은 기존 진보신당의 표어를 이어받아 이를 “평등 생태 평화의 새 공화국”으로 정리하고 있다. 자본 국가를 넘어서 노동 해방, 보편 복지를 실현하는 <평등 공화국>이고, 압축적인 자본주의 근대화 가 낳은 상처들을 치유하는 <생태 공화국>이며, 한반도의 항시적 준전시 상태를 넘어서는 <평화 공 화국>이다. 우리의 새 강령은 진보 세력을 혁신하고 재편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관철해야 할 핵심 이상이자 원칙 이다. 단지 형식적인 문서 몇 장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무기다. 새 강령에 대해 당원 여러분의 보다 많은 관심과 토론이 있기를 부탁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보신당연대회의 선언

자본주의의 쳇바퀴 속에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위기의 시대,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 세계적 경제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지구 생태계 위기의 시대, 그들이 세계 경제의 유일 대안으로 떠받들어온 신자유주의는 이제 지구 곳곳에서 침체와 혼란만을 낳고 있다. 이 혼돈 속에서 인류 역사상 민중이 쟁취했던 민주주의의 성과는 후퇴하고 있다. 또한 한계를 모르고 계속되던 성장은 지구 생태계를 뒤흔들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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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위기의 근원에는 자본주의가 있다. 자본주의는 오로지 이윤을 위해 인간을 착취하고 지구를 수탈하는 체제다. 자본주의는 성별위계, 군사주의, 인종주의 같은 또 다른 지배 질서와 결합해 불평 등과 억압, 소외를 지속한다. 결국 자본주의 아래서 인간성과 자연은 끊임없이 파괴된다. 이러한 자 본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위기의 시대를 끝낼 수 없는 지금, 우리의 궁극 과제는 자본주의 극복 뿐이다.(①)

① 우리는 여전히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약육강식의 사회,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 하는 인간 상실의 세상에 살고 있다. 이는 바로 자주적 민족통일국가를 좌절시킨 분단의 역사와 만물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주노동당 강령) 오늘날 진화를 거듭한 자본주의는 모든 노동과 생산관계는 물론 인간의 삶 전체를 금융이라는 유령의 제물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신자유주의의 세계에서 맹목적 경쟁원리는 치명적 내분을 부르고, 자본은 암 세포가 숙주를 파괴하고 자기도 소멸하듯 총체적 파국을 향해 질주한다. 우리는 이 위기를 오직 자본의 지배 자체를 극복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 (진보신당 강령)

한국 사회의 위기 양상은 특히 더 심각하다. 분단은 한반도를 항구적 전쟁 위험에 빠뜨리며 자본주의 에 맞설 대안이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아왔다. 근대화 이후 압축 성장 과정은 한국 사회를 폭력과 투 기, 학벌 경쟁과 토건 개발의 포로로 만들며 공동체를 파괴했다. 이런 가운데, 부와 권력은 계속 재벌 대자본과 그 동맹 세력에게 집중되었고 생산의 주인인 민중은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다. 그나마 민주 화 투쟁으로 쟁취한 형식적 민주주의도 국가 권력을 좌우하는 재벌과 초국적 자본의 힘 앞에 한없이 무력하기만 하다. 다수 민중은 더 많은 성장만이 해결책이라는 그들의 약속을 믿으며 묵묵히 자본 축적의 톱니바퀴로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양극화와 삶의 붕괴, 생태계 파괴뿐이다. 자본이 강요한 경 쟁과 배제는 민중의 삶을 위협함과 동시에 이런 위협에 대항할 민중의 단결력을 끊임없이 약화했다. 이러한 자기 파괴의 달음질을 하루빨리 끊어내고 기득권 세력과 민중의 권력 관계를 뒤집지 않고서 는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다.

진보신당연대회의는 위기의 시대를 넘어설 사회주의 대전환을 위해 탄생했다 위기의 시대는 거대한 전환을 요구한다. 진보신당연대회의는 대전환을 실현할 정치적 무기가 되기 위 해 탄생했다. 진보신당연대회의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성별위계 구조와 생태 파괴 문명에 맞서 싸 우며,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과 결합된 사회주의를 추구한다.(②)(③) 우리의 궁 극 목표는 모든 개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발전을 통해 만인의 발전을 추구하는 공동체이며, 이를 위 해 평등·생태·평화·연대의 가치를 실현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일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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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민주노동당은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인류의 오랜 지혜와 다 양한 진보적 사회운동의 성과를 수용함으로써,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 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강령) 우리의 과제는 이 모든 진보적 운동의 역사에서 좋은 것을 배우고, 과오를 교정하며, 한계를 극복하면서 인류 진보의 역사를 이어나가는 일이다. (중략) 새로운 진보 운동은 자기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 및 뭇 생명과의 참된 만남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진보신당 강령) 진보신당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남성 지배 체제와 생태 파괴 문명을 극복하고 평등, 생태, 평화, 연대의 새 세상을 열고자 한다. (진보신당 당헌 전문) ③ 민주적 사회주의의 이상은 우리의 핵심 가치인 자유, 평등, 연대가 실현된 자유롭고 평등한 인민의 사회이며, 이것이 우리 당의 역사를 이끌어왔다. 이런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만인이 착취, 억압 및 폭 력 없이 그래서 사회적, 인간적 안전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시민적,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경제, 국가 및 사회 구조가 필요하다. 소련형 국가사회주의가 무너졌다고 해서 민주적 이상주의의 이상이 반박당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핵심 가치를 향한 사회민주주의의 지향이 옳았음이 분명히 입증된 것이다.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가 연대에 기반한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의 비전으로 남아 있다고 이해한다. 그것의 실현이 앞으로 계속될 우리의 과제다. 우리 행동의 원칙은 사회민주주의다. (독일 사회민주당 강령) 우리는 위기의 다양한 시나리오가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철폐하고 생산 양식과 생활 방식을 변혁하며 전 지구적 연대를 실천하고 성별 적대를 극복하며 삶의 모든 영역을 민주화하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바꿈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만인이 스스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결정하며 연대에 기반한 사회에서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사회주의 사회를 추구한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경제에서 자본주의적 소유의 지배를 극복하는 것이며 법치에 의한 복지국가를 확립하는 것이다. (독일 좌파당 강령) 우리 강령의 밑바탕에 흐르는 이념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사회, 정치적 체제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브라질의 역사, 정신, 문화적 경험에서 나왔으며 브라질에서 실현 가능한 것 에 기초하고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 창당 선언)

이는 과거의 이념과 운동을 손쉽게 답습하는 것일 수 없다. 우리는 그 이상과 원칙은 이어받으면서도 역사적 한계와 오류는 반드시 넘어설 것이다. 사회의 역할을 국가가 대리하여 결국 국가기구에 과도 한 권력을 집중시킨 국가사회주의는 더 이상 대안이 아니다. 복지국가라는 빛나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를 훼손하는 자본의 힘을 제압하는 데 실패한 사회민주주의의 한계 또한 극복 대상이다.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현실사회주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성장 강박과 성별위계 역시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 우리는 철저히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한다. 기존의 국가기구는 민중의 참여와 결정이 관철되는 방향 으로 철저히 변화시키고, 노동 현장과 생활 현장에서 민중 참여와 자치를 꽃피운다. 주요 생산수단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회적으로 소유 ‧ 운영한다. 우리는 국가사회주의의 폐해를 넘어서기 위해 생산 및 소비 주체들의 자주적 결정과 협력을 실현할 것이다. 경쟁과 이윤 추구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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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과 연대, 민중의 필요와 생태적 지속가능성, 국제 호혜의 원리에 따라 시장을 사회의 통제 아래 둔다. 이러한 우리의 궁극 지향은 단지 먼 훗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여기, 지금 당장의 실천 속 에 구현해나가야 할 살아 있는 원칙이다. (④)

④ 우리는 민중을 억압하는 모든 국가기구와 법, 제도를 완전히 폐지할 것이다. (중략) 또 가정과 직장 을 비롯한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비민주적 행태를 청산하고 아래로부터의 민중권력을 창출해 나간다. (중략)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삶에 필수적인 재화 와 서비스는 공공의 목적에 따라 생산되도록 한다. 지난날 국가사회주의 사회의 형식적 국유화의 한계를 거울 삼아 시장적 요소를 적절히 통제 활용하는 가운데, 노동자를 비롯한 생산 주체들이 생산수단을 민 주적으로 점유하고 계획, 생산, 분배, 유통에 참여하도록 하여 경제의 효율성과 안정성, 공공성을 기한다. (민주노동당 강령)

이런 나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민중이 정치권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는 민중의 자기지배가 아니라 자본의 국가지배를 위한 제도로 전락했다.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뜻을 온전히 대표할 수 있도록 대의제를 지속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리 고 좁은 의미의 정치적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 노동현장과 생활현장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 또 주요 생산수단은 사회적으로 소유되어야 하며, 경쟁 원리 대신 공공성과 연대의 원리에 따라 시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진보신당 강령)

진보신당연대회의는 대중정당, 운동정당, 생활정당으로 진보정치의 새 문을 연다 진보신당연대회의는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온 인간 해방을 위한 모든 노력, 그 성과와 기억을 계승한 다. 자유와 인권의 이념을 상식으로 정착시킨 근대 민주주의 혁명과 함께,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과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실현하려 한 사회주의 운동이 우리의 뿌리다. 또한 우리는 지배와 차별, 불의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다양성 존중의 가치를 일깨워준 여성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 그리고 소 수자 운동의 전통을 이어받는다. 진보신당연대회의는 동학농민혁명, 3.1 운동을 비롯한 제국주의 치하와 해방 정국의 민족해방운동, 4 월 혁명과 부마항쟁, 광주항쟁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 등 빛나는 민중 투쟁의 역사 를 계승한다. 특히 인간 존엄성과 이를 위한 행동의 가치를 온 몸으로 일깨워준 전태일 열사의 삶과 정 신은 우리가 항상 돌아가야 할 정신의 고향이다. 우리는 이러한 투쟁의 대의를 독자적인 정치적 구심 과 대안을 세워 실현하고자 한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노력과 그 결실인 진보정당운동의 계승자다.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은 그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러한 성과를 무색케 하는 정체와 혼 란, 분열과 변질이 뒤따랐다. 위기는 더욱 심각해지는데도 진보정치는 좀처럼 대안으로 부상하지 못 하고 있다. 그간 진보정당 주역들의 오류와 한계는 자유주의 정당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대중의 삶의 현장과 괴리된 채 기성 정치의 협소한 틀에 갇혔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1987년부터 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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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진보정당운동은 막을 내렸다. 이제 녹슨 1기 진보정당운동의 오류와 한계를 딛고 새로운 진보정 치를 제대로 세우는 과제가 진보신당연대회의에 있다. 진보신당연대회의는 노동자, 농민, 빈민, 중소영세상공인의 정당이며, 여성, 청소년, 장애인, 이주노동 자, 성소수자,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실현하는 정당이다. 진보신당연대회의는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고통 받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투쟁하는 모든 이들의 정당이다. 자본과 노동이 대립하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항상 노동의 편에 선다. 억압과 차별, 배제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에 맞서는 이들과 더불어 싸운다.(⑤) 우리는 언제나 개방되어 있고, 또한 더 넓은 우리를 계속 찾아 나설 것이다.

⑤ 자본과 노동의 갈등에서 사회민주당은 항상 노동의 이해를 대변한다. 사회민주당은 반자본주의 정당 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남을 것이다. 사회민주당은 경제·사회적 권력에 대한 자본의 요구에 대해 항상 대 항세력 역할을 해왔다. (중략) 사회민주당은 민중운동의 한 가지로서 발전해왔으며, 민중운동 내에서의 당 활동이라는 실천 수단은 여 전히 우리 정치 활동의 주축으로 남아 있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강령) 어떤 정당들은 자신들의 정책이 모든 시민들에게 다 이로운 것이라고 설득하려 듭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 실과 거리가 멉니다. 좌파당의 정책도 만인에게 다 이로울 수는 없습니다. 복지제도에 납세하길 꺼려하고 자신의 풍부한 소득을 차라리 사적인 소비에 쓰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좌파당의 정책으로 손해를 볼 것입 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 결정권도 더 적은 현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 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정당에 투표해야만 합니다. 대기업이 보다 많은 영향력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 사람 이라면 우리 당으로부터 어떠한 지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스웨덴이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원조를 줄여야 하고 외국인 망명자 입국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편이 아닙니다. 환경보다는 이윤 극 대화가 더 고려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 당의 정책으로 행복해지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좌파당에 투표하는 것으로 불의와 싸우는 과업에서 면제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의 과제는 사회 변혁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대의 기구는 대표를 선출한 민중들로부 터 고립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의 활동은 의회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의 일상생활에서도 이뤄집니다. (스웨덴 좌파당 2002년 총선 공약집)

진보신당연대회의는 한국 사회의 변혁을 바라는 모든 이들과 함께 집권을 향해 나아가는 대중정당이 다. 진보신당연대회의는 기성 정치 문화를 혁신하며 아래로부터 민중 권력을 건설하는 운동정당이다. 진보신당연대회의는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고 일상에서 진보적 삶을 실현하는 생활정당이다. 우리는 권위주의, 관료주의를 배격하고 당 운영에서 민주주의를 철저히 실현하여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당 안에서부터 먼저 실현해나간다. 우리는 진보정치의 이념과 운동의 재구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 며, 전 세계 모든 진보적 정당 및 사회운동 세력과 연대한다.

평등·생태·평화 공화국에서 미완의 혁명을 다시 시작하자 이제 진보신당연대회의는 평등·생태·평화의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는 길에 나선다. 우리는 재벌·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자본 국가를 넘어 평등 공화국을 건설한다. 평등 공화국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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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보편 복지를 향해 나아가며, 불안정 노동, 성차별, 학벌 사회 등 일체의 차별과 배제를 철폐한다. 우리는 화석 및 핵 에너지 의존, 토건 만능, 농업 파괴 등 자본주의 근대화가 강요한 한계를 넘어 생 태 공화국을 건설한다. 생태 공화국은 에너지, 산업 및 생활양식 전반의 녹색 전환을 통해 압축 근대 화의 상처들을 치유한다. 우리는 분단에 따른 일상적 전쟁 위험을 넘어 평화 공화국을 건설한다. 평화 공화국은 평화 체제 수 립, 비핵지대화 등을 통해 한반도를 평화 확산의 거점으로 탈바꿈시키며, 근대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 서는 새로운 민주적 정치체를 형성하는 방향에서 통일을 모색한다. 평등·생태·평화 공화국은 민중이 주인 되는 참 민주 공화국이다. 자본 권력의 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민주화 염원의 되살림이며, 민주주의의 확대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걸림돌을 해체하는 출발점 이다. 따라서 평등·생태·평화 공화국 건설은 00당의 길이자 또한 미완의 민주화 혁명을 다시 시작 하려는 모든 이들의 길이다. (⑥)

⑥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중략) 민주노동당은 민족분단 으로 인한 대립과 반목을 종식시키고, 7천만 민족의 소망에 따라 화해와 평화의 자주적 민족통일국가를 건 설한다. (중략)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의 질곡을 극복하고,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를 건설한다. (중략) 민주노동당은 인간의 물질적 부를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어떠한 시도도 거부하며, 인간 이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유지하면서 생태계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추구한다. (민주노동당 강령) 우리는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고 통일된 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평화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통 일은 낡은 국가주의와 맹목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더 크고 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남과 북의 국가기구를 지양하고 근대적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서서, 나라 안팎의 모든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참여하여 만들어나가야 할 자유로운 만남의 공동체가 바로 미래의 통일된 나라인 것이다. (진보신당 강령) 우리의 목표는 신자유주의 이전의 복지 국가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신자유주의를 넘 어 국민 모두에게 좋은 경제, ‘대안 경제’를 수립하는 것이며,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의 기본복 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통하여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신자유주의 때문에 껍데기만 남은 1987년 헌법을 넘어 국민 모두의 나라, 국민의 사회경제적 공통성이 보장되는 ‘사회적 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 다. 우리의 목표는 전란의 시대를 끝내고 동북아와 한반도의 ‘비핵ㆍ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일, 국외 파병 이 없고 대체 복무가 가능한 ‘평화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다. 생태 위기에 직면하여 우리의 목표는 산업 시대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산업 시대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보장된 새로운 ‘생태 사 회’를 수립하는 것이다. (사회당 강령)

그 길에 진보신당연대회의가 손을 내민다. 내가 만든 것을 빼앗기는 데만 익숙했던 우리들에게, 노동 자 민중에게, 자본주의 피해대중에게, 함께 이 길에 나서자고. 우리가 함께 만들 평등·생태·평화 공 화국에서 진보의 새 시대를 꽃피우자. 우리가 새 길을 만드는 순간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미래의 새로운 공화국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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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연대회의의 길 1. 자본 권력의 겉치장이 되어 온 대의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민주화하는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직접 참여를 확대하 여 지역사회와 노동 현장에서부터 연대와 협동의 대안 정치 공동체를 실현한다. 2. 정부의 구조와 기능을 평등, 생태, 평화 공화국의 방향으로 재편하고 국가 관료 기구를 민중의 민주적 통제 아래 둔다. 3. 남북한 민중의 삶을 개선하고 남한과 북한의 양 체제를 모두 지양하는 진보적 통일을 추구하며, 그 출발점으로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4. 호전적이고 국수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맞서 미국 등 강대국 중심 국제 질서를 극복하고 녹색평화외교를 통 해 모든 인류가 공존하는 평화협력의 국제 연대를 실현한다. 5. 반인권 악법과 억압적 국가기구들을 철폐하고 경찰, 검찰, 법원 등 사법을 민주화하며, 모든 시민의 정치 경제 사 회적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한다. 6.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넘어 경제 활동의 전 영역에 다수 대중의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확대하며 생태적 지속가 능성을 보장하는 새로운 탈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전환한다. 7. 보편적 복지, 평생 복지, 공공 복지, 민중 참여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복지를 원칙으로 사회복지를 확대하고, 모든 시민에게 교육, 의료, 주거 등을 기본권으로 보장한다. 8. 학벌사회를 타파하여 한국 사회를 입시지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유아부터 대학을 넘어 성인 교육까지 공교육을 확대하여 경쟁 대신 자아의 실현과 발전, 사회적 연대를 위한 교육을 실현한다. 9. 노동 기본권을 완전히 보장하고 노동자 사이의 모든 차별을 철폐하며,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노동을 선택하고 통제하여 건강한 삶과 자기 계발을 위한 노동이 되도록 한다. 10. 소농과 가족농 중심의 생태 농업을 복원하고 도농 연대,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를 통해 농업과 농촌을 회생시켜 우리의 생존과 새로운 사회의 주요한 터전이 되도록 한다. 11. 토건국가를 해체하고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녹색 전환을 정치와 경제, 사회 전 영역에서 실현하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핵발전과 핵무기를 철폐한다. 12. 성별에 의한 위계와 분업을 타파하고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며, 정치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 성주의 가치와 관점을 구현한다. 13. 성소수자에 대한 비합리적이고 반인권적인 차별을 철폐하고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존중하며 누구나 자유롭게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진보적 성정치를 실천한다. 14. 이주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 정치 난민 등 다양한 이주민들에게 모든 권리를 선주민과 평등하게 보장하는 사회 를 추구한다. 15. 장애인에 대한 일제의 차별을 철폐하고 다양한 장애인 특성을 고려하여 동등한 일상활동과 완전한 참여의 권리 가 보장되도록 실천한다. 16. 연령과 세대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을 배제하고,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 청년의 자아실현 권 리, 노인의 평안한 노년을 보낼 권리를 보장한다. 17.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자율시간 확대 그리고 문화시설과 자산의 공공성을 확보하여 시민 모두가 주체로서 자유 롭고 풍요로운 창조적 활동을 누리고 문화예술인이 창작권과 생존권, 그리고 노동권을 보장하는 문화민주사회를 향해 나아가자. 18. 자본과 권력의 지배에 맞서 언론의 공공성을 지키며, 보편적 접근권과 표현의 자유 보장으로 언론을 대중의 일 상 활동의 일부로 되돌리고 지식 네트워크 사회의 진보적 가능성을 실현한다. 19. 과학기술 개발에 대중이 참여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통제하며 지식재산권을 사회화하여 과학기술과 지식이 자본 과 권력의 것이 아닌 민중의 자산이 되도록 민주화하며 공유한다.

부속문서 구 민주노동당 강령(2000년 제정) / 구 사회당 강령(2006년 제정, 2009년 일부개정) /구 진보신당 강령(2009년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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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지역에서 현장에서

오랜시간 삶의 현장에서 진보정치의 밀알을 묵묵히 뿌리며 함께 성장해온 진보신당 활동가들이 있다. 동네라디오부터 민중의집, 밥차에 이르기까지 그 형식도 다양하다. <미래에서 온 편지>가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실어나른다.


지역에서 현장에서 01

서촌 꼬뮤니따 ‘혁이네’ 이야기 고미숙 | 종로중구당원협의회

당원들의 연대와 지지의 손길로 채워진 카페 혁이네가 누상동 골목길에 자리한 지 여덟 달이 되어간다. 혁이네 문 앞에는 상자텃밭이 여름을 향해 서 무성해져가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종종 머물게 한다. 서울의 명물이 돼 가는 서촌 여행에 나선 사람 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고, 손자의 손목을 잡고 시장을 가던 할머니가 멈춰 서서 꼬맹이의 키 높 이로 허리를 숙이고 채소의 이름을 알려주기도 한다. 커피보다 유명세를 타는 기타강습을 위해 문을 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그만 오세요’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이제 막 시작은 동양화채색 강좌는 곧 기타강습보다 명물이 될 것 같은 예감을 느끼게 한다.

‘서촌 꼬뮤니따 혁革이네’라는 이름은 공동작품이다. 이름을 지을 때 최백순 위원장과 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혁이네’라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카페는 ‘진보신당 종로 지방선거 프로젝트’였고, 서 울시당 부위원장인 구자혁동지가 2012년 총선을 지나면서 일찌감치 출마 결의를 하고 있었다. ‘혁革이 네’는 구자혁의 끝 글자와 ‘혁명’의 중의적 의미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이 이름에 당사자인 구자혁동지가 오글거린다며 반발했다. 이름을 놓고 밀당을 하면서 구자혁동지가 내세운 것이 ‘서촌 꼬뮤니따’였다. 그래서 두 개를 합쳐서 이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민중의집이 대세인 진보신당에서 우리 당협이 카페를 선택한 것은 당협의 역량과 지역의 특성을 고려 한 판단이었다. 민중의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의 역량만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분위기도 받쳐주어 야 한다. 그러나 종로에는 주민단체나 지역 사회단체가 거

‘서촌 꼬뮤니따 혁革이네’라는 이름은 공동작품이다. 구자혁의 ‘혁’이자 ‘혁명’의 ‘혁.’ 그러나 당사자인 구자혁 동지가 오글거린다며 반발했다.

의 없고, 당협도 당원의 참여가 활발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문화공간을 겸한 카페였다. ‘진보’자가 붙은 당이 난무하기 전에 우리 당협의 핵심사업 은 찾아가는 정기소식지였다. 2,3개월에 한번씩 소식지를 만들어 골목 상가를 돌았다. 한번 갔던 곳은 반드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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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알려 나갔다. 이제 당협의 핵심 사업으로 ‘주민을 찾아 가는 소식지’에 ‘주민이 찾아오게 하는 카 페’를 하나 더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카페로 적당한 공간을 찾아서 몇 달을 골 목을 돌아다녔다. 주민들 속으로 스며들 공간이며 동시에 진보신당 종로중구 당원 의 공간으로 적절한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나는 주민들과 눈인사를 자연스 럽게 나눌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야 하 고 동시에 진보신당의 정신에 맞게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당원 모임도 할 수 있는 공 간. 그런 곳을 찾아 몇 달을 골목을 돌고 또 돌아다녀서 지금의 혁이네를 찾아냈다. 카페 전경. 4월초에 만든 상자텃밭. 도시텃밭 3년의 경험으로 제법 능숙하게 텃밭을 가꾸는 덕에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중이다.

카페의 꼴을 갖춰나가는 과정은 과분하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가장 먼저 구로 당원

이 인테리어를 맡아 적색과 녹색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간판은 문화예술위원회의 손문향동지 가 칠을 해주었다. 테이블과 의자, 컵, 조명, 소품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다. 그 소품들 하나하나가 당 원들의 선물이다. 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으로 자금이 바닥난 우리는 필요한 물건들을 찜하고 당원 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며 선물 목록의 구매링크를 이메일로 발송했다. 겉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모두들 기꺼이 결재를 해주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컵, 커피포트, 주전자, 온갖 소품들이 도착했다. 혁이네는 곳곳이 당원들의 연대의 손길로 채워져 있는 공동작품이다.

서촌 꼬뮤니따 혁이네 사용설명서 혁이네는 커피와 차를 파는 곳이다. 커피값은 2천원 이상 자율기부 방식을 택했다. 강좌나 행사라면 주민들이 이유 없이 들어오기 어렵다. 찻집, 그것도 가격이 제법 저렴한 찻집은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쉽다. 커피 내리는 방법은 바리스타를 초빙해 두어 시간 정도 배웠다. 그리고 서로가 모르모트가 돼 주었다. 구자혁동지와 둘이서 매일 커피를 내려서 서로에게 먹였다. 그러다보니 대충 커피맛이 나기 시 작했다. 지금은 커피 맛이 없다는 말을 듣지는 않는다. 기타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은 혁이네서 타주는 핫초코, 아이스초코, 블루베리라떼가 맛있다고 집에 가서 자랑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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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 서촌 꼬뮤니따 ‘혁이네’ 이야기


바리스타를 초빙해 커피 내리는 법을 배웠다. 서로를 모르모트 삼아 매일 커피를 서로에게 먹였다. 그러다보니 대충 커피맛이 나기 시작했다.

혁이네는 주민들의 모임장소다. 공간대여비는 3시간에 2만원. 거의 공짜 수준이다. 주민모임이라 이름 붙일만한 첫 모임은 배화유치원 느티나무를 지키려는 어머니들의 작당 장소로 쓰 였다. 당원들의 회의장소, 노조나 노동자모임의 회의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생일잔치 장소로 쓰일 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는 데 적색과 녹색의 시트지로 꾸민 실내에 풍선을 몇 개 달고 나 니 그럴듯한 파티장소가 되었다.

혁이네는 문화공간이다. 기타교실, 일식도시락, 동양화채색이 지금까지 하고 있거나 했던 강좌이다. 이 강좌들이 활발해지는 과정을 보면 카페가 주민들 속에 스며드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 까페에서 첫 강좌로 바리스타 교실을 열었을 때 관심을 보인 사람이 두셋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강좌에 참여하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우리끼리 커피를 배우는 시간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야 했다. 기타교실과 일식도 시락 강좌 광고를 붙이고 다섯 명이 모이면 시작하겠다며 그 다섯 명을 기다리는데 두 달이 넘는 시간 을 흘렀다. 그나마 다섯 명을 채우지 못하고 강좌들을 오픈하기로 결정해야 했다.

일식도시락 강좌는 세종호텔에 근무하는 당원이 귀한 휴일을 혁이네를 위해 내주었다. 강사의 열정적 인 진행으로 참여자들의 만족도는 최상급이었고, 기타교실은 밀려드는 강습생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휴학중인 학생당원이 보조로 나서기로 했다. 동양화채색은 홍보 한 달을 넘지 않아 강좌를 시작할 수

동양화채색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손문향당원과 강습생들. 강사의 열정적인 강의 덕에 혁이네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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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그리고 이 강습생들이 이제는 다른 강습생을 물고 오는 정도까지 되었다. 인문학 공부를 하고 싶은데 회원을 모아달라는 주민도 있다.

차 마시러 오는 손님이 적어서 재정난에 시달리는 것만 빼면 나름

혁이네는 ‘당’의 주민사업을 위한 공간이다. 당원들의 생활정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고 있다.

대로 주민의 모임공간이자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셈이 다. 주민회원 대부분은 강습비를 아끼기 위해 후원가입을 하지만 몇 사람은 정말 혁이네를 좋아해서 제 집처럼 편하게 드나들고 있기도 하다. 손님이 너무 적다고 우리보다 더 걱정을 해주기도 한다.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청운·효자·사직동 일대를 서촌이라 부르는데, 이곳을 무지하게 사랑하는 주 민들이 만든 서촌주거공간연구회(서주연)라는 곳이 있다. 혁이네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혁 이네 대표는 서주연에 공을 들였다. 지역사업 파트너로 진보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마을단체가 필요하 기도 했고, 그 이전부터 지역단체 중에 가장 관심있게 지켜보던 단체이기도 했다. 그 덕에 서주연 부부 회원이 입당하는 경사를 맞기도 했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당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주민 사업에 혁이네를 잘 이용하고 있다.

녹색만 가득한 혁이네를 붉게 물들여줄 당원들의 발길을 기다리며 4월에 들어서며 카페 앞을 텃밭으로 만들었다. 상자와 쓰레기통을 이용해서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모 종은 꼭 동네화원에서 샀다. 친해진 주민들을 불��� 비빔밥을 해먹고 수확한 채소를 지나는 주민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채소의 씨앗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하고, 주민들과 서촌에 상업 자본이 침투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도 하고, 녹색 생활에 대해 반짝반짝한 지혜들을 나누 기도 한다.

그러나 혁이네는 ‘당’의 주민사업을 위한 공간이다. 주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목적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당비로 운영되는 우리 당원들의 공간이다. 카페를 열 때 소망했던 것은 당원들이 퇴근 후 지친 발걸음을 향하게 하고, 주말의 여유를 부려놓 게 하고, 당원으로서의 자기실현을 펼치는 공간으로 혁이네가 자리 잡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 당원들보다 다른 동네 당원들이 이 공간을 더 잘 이용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안 타깝기 그지없다. 문화예술을 하는 당원들, 청년당원들이 심심찮게 찾아와 세미나, 공연연 습 등으로 잘 쓰고 있지만 정작 우리동네 당원들의 발길은 아쉽다. 서촌꼬뮤니따 혁이네가 활동가만의 공간이 아니라 당원들의 생활정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구 하는 중이다. 일식도시락강좌에 참여한 성대 학생과 청년당원들. 주민들 사진을 게재해도 초상권침해로 고소당하지 않을 그날을 위해 더 열심히 주민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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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 서촌 꼬뮤니따 ‘혁이네’ 이야기


지역에서 현장에서 02

먹어야 싸운다, 밥이 연대다 희망밥차 | 유용현

지난 2010년 초여름, 진보신당 강남서초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박희경(루시아) 동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동희오토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양재동 본사 앞에서 노숙투쟁을 시작했다 고 했다. 동희오토는 정규직이 단 한 명도 없는 회사. 비정규직노조를 세우려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지 금까지도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난생처음 현대기아차 본사 앞을 가본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노동자들은 텐트도 치지 않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비닐 한 장을 깔고 노숙투쟁 중이었다. 그들과 함께 앉아있으려니 기가 막히 고 속도 상하고, 무엇보다도 일찍 함께하지 못해 너무나 미안했다.

2012년 2월 쌍용차 희망텐트. 왼쪽에 보이는 여성이 루시아 박희경 당원. (사진: 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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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진짜로! 동희오토 뿐만이 아니다. 재능교육 학습지, 기륭전자, 콜트콜텍, ..... 사람보다 자본이 먼저인 야만의 시대에 투쟁사업장의 노동자 들은 길거리에서 잠을 자고 주변 식당을 전전하며 끼니를 해결하 고 있었다. 그들과 초복에 삼계탕을 함께 먹으면 어떨까? 추석에 도 집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갈비를 구워먹을까? 희망사항으로만 끝날 뻔 했던 우리의 바람이 현실이 됐다. 창동에

초복에 삼계탕을 함께 먹으면 어떨까? 추석에도 집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갈비를 구워먹을까? 우리의 바람은 ‘갈비연대’로 현실이 됐다.

서 식당을 운영하는 윤종철 당원과 여러 동지들이 힘을 모아 2010 년 추석 ‘갈비연대’를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장기투쟁사업장인 재능교육, 기륭전자, 그리고 동희오토를 잇는 삼각연대! 이를 필두로 진보신당 당원들의 자발적인 투쟁먹거리연대인 ‘갈비연대’가 수도권을 돌며 본격적으로 연대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설날 ‘진보서울투어버스’가 GM대우 인천공장-국민체육진흥공단- 홍익대학교-재능교육-발 레오공조 농성장을 쉬지않고 달렸다. 겨울에는 ‘진보 바리스타’가 출동, 맹추위 속에서 고생하는 동 지들과 따뜻한 커피를 나눴다. 돈에 쩐 정몽구 회장만 빼고 노동자들과 전을 부쳐먹는 ‘진보쩐데이’ 가 열렸는가 하면, 1박2일 재능 떡만두국갈비데이, 진보주먹밥데이, 희망만두 & 진보리카노 등으로 이어졌다.

“우리사주, 아니 우리차주를 공모합니다!” 당원들의 자발적 실천과 든든한 후원으로 일구어낸 이 모 든 연대활동에 딱 하나 아쉬운 게 있었다. 식자재와 물품 을 실어나를 차량을 수배하느라 항상 애를 먹었던 것. 그 러다 2011년 말, 갈비연대의 거두인 ‘삼출이와 대치(윤종철 당원의 필명)’ 형이 귀가 솔깃해질 만한 정보를 들고 왔다. 갈비연대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었던 화평동왕냉면 본사

희망버스의 차주는 진보신당 당원들이다. 한푼 두푼 모금하여 앰프와 전기발전기까지 갖추었고 투쟁현장에서 방송차, 무대차로도 활약 중이다.

의 사회공헌팀에서 사용하던 만두 찌는 트럭이 매물로 나 왔다는 것이다. 당장 모금을 시작했다. 당 게시판에서 ‘우리차주 공모’를 시작하자마자 열화같은 응원이 이어졌다. 이 렇게 당원들이 한푼 두푼 모은 돈이 670만원. 동지들의 고마운 모금 덕분에 차량뿐만 아니라 앰프와 스피커, 전기발전기까지 갖추게 되었고 희망밥차는 투쟁현장에서 방송차, 무대차로 전방위적인 활약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밥차를 마련하면서 먹거리연대에 획기적인 변화가 왔다. 수도권 넘어 전국의 투쟁사업장 을 누빌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투쟁 당시 진보신당 희망밥차는 전국적으로 전개된 먹거리연대에 한 축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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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 먹어야 싸운다, 밥이 연대다


선거 때 희망밥차는 유세차로도 맹활약했다. 2012년 총선 당시 청와대 앞 유세 모습. (사진: 박성훈)

희망버스 당시‘만두 납품차 코스프레’로 경찰 검문 뚫고 들어가 김진숙 지도위원의 85크레인 고공농성과 함께 희망버스들이 부산 영도로 몰려들었던 한진중공업 정 리해고 철폐투쟁 당시 에피소드가 있다. 박정민 당원과 함께 밥차에 만두를 가득 싣고 열 시간을 달려 부산에 도착했는데, 경찰이 영도 진입로를 다 막아놓은 것이다. 경찰 저지선을 어떻게 뚫을까 고민하 며 뺑뺑 돌다가 결국 영도다리에서 검문에 걸려버렸다.

3~4년을 부산에서 살았다는 박정민 당원이 사투리에 자신있다며 ‘현지인’ 흉내를 내기로 미리 합을 맞춰놓은 터. 그런데 경찰은 갑자기 운전석 쪽으로 다가와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어쩌겠는가,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살아본 내가 감쪽같은(?) 부산사투리로 “아아니, 만두 납품하러 왔는데 교통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지금 뭐하는 거요? 뒤에 만두 잔뜩 실려있는데 다 쉬면 책임질거요?” 호통을 쳐서 경찰 검문을 무사히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만두며 조리기구며 짐이 잔뜩 실려있던 탓에 밥차가 언덕빼기에서 맥을 못추어 700m 가량을 줄줄 내려오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희망밥차가 전국을 누비고 다니면서 만들어낸 에피소드는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라다. 심장 철렁한 대 형사고도 있었다. 작년 울산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철탑농성장을 가던 중에 트럭 뒷바퀴 네 개 중 세 개가 다 터져버렸다. 갈지자로 휘청거리던 밥차는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가드레일에 부 딪치고서야 다행히 멈췄다. 사방으로 튕겨나간 짐들을 주우러 나왔더니 뒤에서는 덤프트럭들이 전 차 선을 메운 채 나란히 오고 있었다. 전복되었으면 모두 황천길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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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밥차 운짱 유용현 당원. (사진: 박성훈)

희망밥차의 희망 2012년 총선에서 희망밥차는 진보신당 노동부문비례대표로 출마했던 정진우(현 부대표) 후보의 선거 차량으로 변신하여 시청광장과 청와대, 투쟁사업장으로 달려갔다. 진보신당이 표만 얻기 위한 선거정 당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비를 맞던 정당임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희망밥차의 문제의식은 밥상공동체 ‘희망식당 도르리’와도 나란히 맞닿아있다. 수익뿐만 아니라 진보 신당이 추구하는 가치도 함께 나눈다.

‘갈비연대 숯돌이’ ‘희망밥차 운짱’에 이어서, 얼마 전 부천에서 밥상공동체 ‘희망식당 도르리’를 열었 다. 희망밥차의 문제의식은 도르리와도 나란히 맞닿아있다. 도르리의 수익 중 일부를 열악한 투쟁사 업장과 나누고, 진보신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역주민들에게도 알려나가자는 것이다. 진보신당이 재 창당을 통해 다시 도약하는 지금, 희망밥차도 ‘시즌 투’를 준비하고 있다. 변함없는 당원 동지들의 관 심과 지지, 그리고 연대를 부탁드린다.

희망밥차를 하면서 만난 노동자들이 밥먹다 말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벼랑 끝으로 몰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그들에게는 우리가 준비한 보잘 것 없는 밥 한 끼조차도 위안이 되었나보 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거리에서 유인물을 돌리는 노동자들을 만나면 우렁찬 목소리로 ‘화이팅’ 한 번 외쳐주기를. 시간과 형편이 허락된다면 농성장에서 희망밥차와도 함께 해주 기를. 먹어야 싸우고, 함께 먹는 밥이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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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 먹어야 싸운다, 밥이 연대다


지역에서 현장에서 03

작은 손 모아 적정기술 만든다 안병일 | 작은손 적정기술협동조합 이사장

바이오디젤과 태양열뿐만이 아니다. 전기 없는 시골에서 쓸 수 있는 ‘항아리 속 항아리 냉장고,’ 오염 된 식수를 걸러주는 초간단 필터 ‘라이프 스트로우,’ … 생활환경 속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환경파 괴 없이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발명품, 이것이 적정기술(適正技術, Appropriate Technology)이다. 가 난한 나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위기의 시대를 준비하는 노하우이기도 하 다. 인간이 소외되지 않고 노동을 통해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어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이라고도 불린다.

“이거 웬 통이에요?” ,“폐식용유는 뭐하게요?” 2010년 11월, 내 손으로 에너지를 만들겠다며 당 사무실에 바이오디젤 장비를 설치하고 폐식용유를 들 여놓자 당 간부들이 내뱉은 첫마디다. 그리고 내 생애 최초로, 그것도 내 손으로 에너지라는 것을 만 들었다. 작은손 적정기술협동조합(이하 작은손)은 이렇게 당에서 그 씨를 잉태했다. 올해 4월 14일 창립총회를 마친 작은손은 아홉 명의 조합원 중에 일곱 명이 당원들로 구성되었다. 이 름 그대로 적정기술을 이용해 대안에너지를 만드는 방법과 장치들을 보급하는 경제조직이자 기술자 집단이다. 지향으로 본다면 핵과 화석연료가 만든 ‘전기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정기술을 무기로 로컬 에너지정치를 실천하는 집단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다만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니 신념과 삶 을 일치시키기 위해 협동조합을 선택한 것이다. 최초의 고민은 진보신당의 탄생과 더불어 대부분의 당 활동가들

어떻게 하면 핵과 화석연료가 만든 ‘전기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적정기술을 무기로 로컬 에너지정치를 실천하는 협동조합을 세우다.

이 겪었을 실패한 진보정치에 대한 정치적 활로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라는 비슷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한다. 개인적으론 참 형편 없고 지지리도 못난 반쪽짜리 붉은 진보였던 내 자신을 보게 되 는 충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중앙당 하청 계열사 방식의 중앙정치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고, 끊임없이 반복 되는 백화점식 사업과 과도할 정도로 연대활동이 진행되지만 그 것이 당의 기반확장과 전망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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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게다가 당 활동이 평당원의 일상생활과 전혀 일치하지 못하는 “머리는 크고 몸뚱이는 작은” 우 리 자신의 현실부터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반성이 있었다. 그래서 방향을 뒤틀어 ‘지역’을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막연하 게나마 지역에서 진보신당이 비비고 누빌 새로운 정치영역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에 방점을 두었 다. 그러던 중 충남지역 녹색영역의 조건과 현실을 분석하다가 새로운 전망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 다. 지역운동의 ‘블루오션’을 발견한 것이다.

에너지자립과 적정기술, 지역운동의 블루오션이다 그간의 녹색운동, 녹색정치는 환경단체와 시민운동이 주도하며 그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어 왔고, 대 부분 사회고발, 정책제안, 이슈 파이팅, 캠페인 등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 와 기후변화의 위험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자립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 실함에도 정작 에너지자립을 위한 실질적 운동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당이 먼저 나선다면 충분히 주도할 수 있는 영역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시기적으로도 적정기술과 에너지자립 운동을 본격화하는 게 매우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화석연료와 핵에 기반 한 최첨단

지구의날을 맞이해 아산의 한 아파트에서 대안에너지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작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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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명 - 제목


지역에서 녹색정치의 교두보를 마련하려면? 결국 필요한 건 실력이었고 그 실력은 바로 기술이었다. 그러다 바이오디젤에 눈이 꽂혔다.

대용량 기술을 거부하며 지역에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녹색에 너지를 만드는 적정기술운동을 좌파정당(활동가)들이 먼저 시작해 야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세우게 된다.

이런 이유로 처음부터 협동조합을 목표로 두진 않았으며, 지역에 서 녹색정치 영역에서의 교두보를 확실하게 마련하겠다는 목표와 그 목표를 현실화할 수 있는 실력을 단계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계 획을 세웠다. 결국 최종적으로 남는 건 실력이었고, 그 실력은 바

로 기술이었다. 그러다 바이오디젤이 눈에 꽂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대안에너지와 관련한 적정기술 을 당원들과 나누기 위한 활동들이 시작되었고, 좌파정당(활동가)이 충남지역에서 생태운동, 에너지 자립운동, 대안에너지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기 위한, 아니 그것을 넘어 중심적 위치에 서서 주도하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더불어 당내에 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하는 계기와 당원들과의 새로운 소통의 내용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했다. 이렇게 작은손은 대안에너지 운동에 대한 ‘실력’을 키우는 공 간이자, 동시에 녹색시민들을 만나는 기회와 시민들의 녹색감수성을 자극하는 좌파정당의 대중적 접 촉면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2010년 충남도당 녹색위원회를 구성하고 당원들을 모았다. 2012년에는 (가 칭)녹색에너지 적정기술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원들의 관심을 모으고자 했다. 그러나 관점과 방 향의 차이로 논의가 공전되었고, 결국 당원들의 ‘관심’만으로는 일이 성사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소위 ‘미친놈’을 찾거나, 만들어서 중심을 형성하고자 했다. 그렇게 1년 여간 열심히 꼬시기를 시도한

2013년 초록세상 만들기 당원한마당에 등장한 로 켓화덕. 장작 한묶음으로 닭 28마리 삶기 도전! (사진: <작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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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디젤 워크숍 교육 생들이 직접 바이오디젤 을 만들어 자기 차에 넣 고 있다. (사진: <작은손>)

결과 아홉 명의 조합원이 탄생한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들 맡은 분야별로 과제를 척척 수행해 나가고 있으며, 수준 높은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 당내에 든든한 대안에너지 적정기술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막 시작이라 특별히 내세울 것은 없지만 대안에너지, 마을 만들기 운동과 관련해 실제 지역에서 진행되는 사업과 연관된 적정기술 협동조합, 충남지역의 다양한 대안에너지 교육과 캠페인, 보급을 안 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적정기술 협동조합, 에너지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주택 에너지효율 화 사업을 담당할 적정기술 협동조합을 구체적 사업으로 정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바이오디젤과 바이오가스 워크숍, 천연페인트 교육을 협동조합의 이름으로 개최 했다. 얼마 전엔 당 녹색위 차원에서도 워크숍을 진행해 당 활동공간에 태양열온풍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내손으로 만드는 대안에너지 워크숍을 통해 비(非) 전력 적정기술 장치를 직접 만들어 보는 기회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환경의 날과 지구의 날과 같은 행사 때에도 어김없이 참가하여 지역 에 대안에너지 자립의 실현가능성을 알리는 데에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하고 파괴적인 산업기술이 아닌 자연과 호흡하며 사람냄새 풍기는 불편하 지만 작고 대안적인 기술을 보급하는 작은손 적정기술협동조합! 지역에서 대안에너지를 배우고자 할 때 우리의 당을 찾을 수밖에 없는 통로이자 무기이다.

현재 작은손은 설립등기와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공식적 활동에 돌입했다. 작은손의 주요한 장기는 현재 바이오디젤과 바이오가스, 천연페인트, 수격펌프 등이다. 6월부터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하자센타 와 함께 천연페인트 워크숍을 진행하여 국내에 적정기술 천연페인트 보급사업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 며, 전환기술 사회적협동조합이 진행하는 비(非) 전력 적정기술 창업교육에도 참여하여 새로운 영역에 대한 기술을 익히며 또 한 차례의 상승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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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 작은 손모아 적정기술 만든다


지역에서 현장에서 04

우리동네 사랑방 만들어지기까지 조병하 | 인천서구 민중의집

약간 울먹이며 서구 민중의 집 집들이 고사를 지낸다. 누구 말대로 그동안 인천지역에서 노조/노동/문 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리고 조금은 낯선 석남동 이곳에서 민중의 집 공사기간 내 기 웃기웃 하시던 주민들이 모였다.

“민중의례를 하겠습니다. 얼마전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신을 하고 지금 치료중인 동지를 생각하며 묵 상을 올리겠습니다”

당이 점점 어려워지는 가운데, 민중의 집 준비모임 태동하다 2011년 11월. 진보신당은 다시금 어려움에 처한 시기로 기억한다. 몇몇 진보신당 인천시당 서구당협 당 원들이 모여 민중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진보정당의 한계를 말하고, 지역정치 활동의 반성을 이야기 하고,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들을 털어 놓는다. 무엇보다 도 진보신당과 민중의 집 관계에 대한 논쟁이 격했던 것 같다.

2012년 5월. 총선을 전후로 초동모임에 함께 했던 몇 사람이 지지부진함에-사실은 진보신당의 감각에 실망을 했을지도 모른다-같이 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 때 서구 민중의 집 준비위 결성을 서두르 게 된다. 순전히 진보신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준비위 활동에 들어간다. 예산 도 없이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건설경로를 설정하고 공감대를 만들어갔다.

통합-독자 논쟁과 2012년 총선을 거치면서 초동모임 참여자들이 떠나다.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준비위 결성을 서두르다.

우선적으로 진보신당 서구당협 당원들과 공유해야 했다. 물론 우리가 가진 자산이라면 당원들 밖에 없었지만. 지역의 노동조 합과 공동으로 텃밭을 임대해서 1년간 만남을 가지고 민중의 집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얘기했다. 그리고 함께 일군 배추로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김장나눔을 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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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들과의 만남(왼쪽), 민중의 집 준비모임(오른쪽). (사진: 인천서구민중의 집)

다른 곳에선 밥상으로 많은 사람들과 조금은 고급스럽게 만남을 가졌지만, 우린 지친 당원들과 투박 한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금요술상을 해 나간다. 전태일을 다시보고, 쌍차 다큐를 보고, 파업전야를 보고, 이주민들과 철거민들과 술한잔 기울였다. 말그대로 금요일은 갈 곳없는 사람들의 불금의 장소가 되어 갔다. 거기서 옛 영창악기 노동자였던 사람이 민중산악회를 만 들어 이젠 시산제를 치를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민중의 집에 대해서 점점 더 공감대가 무르익 어 가는 시간이기 충분했다.

“무료노동상담 하는 곳 맞나요?”동네 주민들 찾아오기 시작하다 3층 허름한 공간이었지만 무료노동상담 배너를 보고 찾아오신 분들이었다.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 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여전한데, 동네 주민들은 이곳에 까지 올라와서는 함께 서 류작성하고 고맙다고 하고 가시는 것을 보았다. 가난하고 소외된 노동자들은 가까운 곳에 갈 곳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조직된 노동자들을 만나다. 어떻게 하면 조직된 노동자들에게 민중의 집을 소개하고 이후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도중 공동교육을 하게 된다. 제안서를 만들고 강사를 섭외하고 ‘서구 지역 노동조합과 함께하는 공동교육’을 6강에 걸쳐 했다. 서구지역 20여개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 중 8개 노동조합이 참여하고 서구 민중의 집과 만났다. 낮은 수준이지만 지역 노동조합도 민중의 집에 대 해서 알게 된다.

2012년 11월. 준비위원회는 새벽에 회의를 열고 이젠 더 이상 민중의 집 건설을 미룰 수 없음을 결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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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 우리동네 사랑방 만들어지기까지


다. 공간 마련을 위한 재정목표를 세우고 이사계획을 세우고 공간의 위치, 환경, 인테리어, 개소식 및 창립총회 일정 등을 논의하게 된다. 4개월간 지역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설명회를 하게 된다. 회의 는 잦아지고 목표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과연 시기에 맞춰 건설할 수 있을까를 놓고 또 한번 다투기 도 한다. 그러나 지금 민중의 집은 건설되어졌다. 재정적, 물적으로 함께 해 주신 분들이 많다. 미안하 기도 하다.

2013년 4월. 집들이를 부담스럽게 마쳤다. 사흘이 지난 지금, 민중의 집 이곳저곳에 손 볼 때가 아직 많 다. 스물여덟살의 젊은이가 배고프다고 들른다. 세아이의 엄마가 들른다. 동네 목사님이 들른다. 일흔 일곱의 할머님이 들렀다. 택시노동자가 들러서 무엇이 가장 힘든가라고 묻자 “돈이지 뭐”라고 한다. 2013년 5월. 이제 서구 민중의 집은 창립총회를 준비한다. 1년 반을 함께 고생한 준비위원들 다시 난관 에 부딪힌다. ‘진보정치 구현’ 문구에 대한 두 가지 의견이 나누어진다. 한 번에 결정하기 힘든 문제(?) 라 다음 회의로 넘긴다. 결국에는 ‘생활정치’로 절충이 된다. 휴~

개소식 이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몸은 어른인데 정신장

“진보신당이 하는 거래...” “진보신당이 하는거래서 회원 가입은 어려운데....” “내년이 선거인가?...” “정치적 성격을 좀 죽여....”

애가 있어 약물 치료중인 사람 수복이, 민찬이...잠시도 가만히 있 질 않는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 공장에서 해고된 사람, 장애인 을 둔 부모, 빚을 진 사람, 노동상담이 필요한 사람, 심리상담이 필 요한 사람..... 지역공부방에 다니는데 한부모 가정 애들만 다니는 곳이라 떳떳하게 말하는 초등학생 아이들까지 이곳을 이젠 자기 집 드나들 듯 한다. 당연 우리의 당원들은 퇴근하면 들러 소주를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산악회, 공동교육 등을 진행하다가 드디어 민중의 집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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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마흔 세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개최하다.

한잔 하는 주막이 되어 버렸다.

2013년 6월. 아직 우린 준비가 많이 되어 있지 않다. 마흔 세 명이 참석한 창립총회....대표단과 운영위 원 감사를 선출하고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결정했다. 모두가 고마운 사람들이다.

지금은 정규직 노동조합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할 방안, 장애인과 그 부모들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들도 계속 구상하고 있다. 당원들과 함께 할 방안도 당연히 필요하다. 민중의 집은 가난하고 소외된 노동자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만나는 공간인 동시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주민-노동자들이 하나가 되는 노동조 합이기도 하다. 이 공간에서 서로 잘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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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 우리동네 사랑방 만들어지기까지


지역에서 현장에서 05

더디지만 한걸음씩 윤영대 | 광주 민중의집

진보정당 운동의 실패로 광주지역의 경우 소수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자와 대중을 대상으로 과거처럼 운동을 한다는 것은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조용히 시기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광주시당에 남은 활동가들의 고민은 깊어졌고 2기 임원진 구성과 광주시당의 깃발을 지키기에도 버 거웠다. 당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바닥을 쳤고 더욱 힘들었던 것은 분당으로 상처입은 당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졌다.

진보정치에 대한 믿음은 바닥을 치고 2004년 무렵 진보정치의 지역거점 필요성, 노동운동과 지역 대중이 소통하는 부분에 고민하는 광주지 역 일부 활동가들이 유럽민중의집과 마포민중의집에 대해 몇 차례 논의한 전력이 있었다. 진보신당 광주시당 창당 과정에서도 지역거점 운동을 고민하였으나 이를 실현하기에는 정치적 일정 과 실천의지 부족으로 폐기될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2기 임원진 구성에 동참한 활동가 당원들을 중심 으로 지역거점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핵심 공약사항으로 당원동지들에게 제시하였다. 그리고 2012년 총선을 준비하면서 당내 논의에 돌입하였고 재정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활동 당원들의 노력이 결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총선 이후 광주민중의집 추진위가 구성되고 중앙당 차원의 교육도 진행하면서 당내 논의와 토론에 돌입하였다. 광주시당의 경우 두 가지 주장이 있었는데 첫째, 지역거점 운동을 위해 광주시당 사무실과 광주민중의 집을 하나로 묶어서 사업 추진을 주장한 부분과 둘째, 단체들과 사무실을 함께 공유하면서 민중의집 형태의 사업을 전개하자는 안이었으나 이에 대한 내부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는 광주민중의 집과 광주시당 사무실이 각기 독립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역거점운동의 필요성은 과거 운동의 반성에서부터, 새로운 운동을

과거의 운동을 반성하고 새로운 운동을 모색… 중장기적 전망 속에서 민중의집 탄생하다

모색하는 과정에 지역 주민들과 노동자들이 소통하는 공간이 필요 하였고 광주시당의 중장기적 발전전망이 결합되어 광주민중의집이 탄생된 것이었다. 광주민중의집에서 활동하는 회원들과 누구를 대상으로 어떠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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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만 무성했던 옥상화단을 밭으로 일구었다.

을 진행할 것인가, 많은 고민과 토론을 하였다. 그래서 청소년, 문화, 노동, 도시농업으로 사업을 압축 하였다. 다만, 욕심을 부리지 말자,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데 사업을 정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 다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첫 사업으로 2012년 여름 전남대학교 대학원생의 재능기부와 지역노동조합 후원으로 청소년 인문학교 실을 시작하여 초등학생의 경우 ‘프리드어클“을 6개월 진행하였으며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철학교실 을 3회 진행하였다. 그리고 잡초가 무성한 옥상화단 20평을 밭으로 일구어 도시농업을 꿈꾸기 위해, 옥상텃밭 사업을 진 행하여 배추와 무을 심어 김장도 하였다. 수요밥상을 몇 차례 진행하였으나 자원 부족과 투쟁 사업장이 없는 관계로 정지된 상태이다. 미용봉사 및 전기설비 재능기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장애인, 서민아파트를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전 개하였으나 정착하지 못하였다. 2012년 12월 기준 회원이 70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광주민중의집 유지를 위해 재정사업을 꾸준 히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2012년을 평가하고 2013년 1월부터 그동안 진행한 사업 분석을 통하여 운영위원분들의 노력으로 미용봉사는 광주성심병원과 장애인 나눔센터와 협약하여 매월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광주민중의집 공간을 활용하고자 하는 단체들에게 교육공간을 제공하여 생협차원에서 발도르프 교 육을 12월까지 진행할 예정으로 현재 교육을 하고 있으며 주하주 공동대표 재능기부로 12명이 참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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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 더디지만 한걸음씩


지역대학과 함께 여름방학 청소년 철학교실, 옥상달빛 음악회, 노조지회장 초청하는 국민연금 바로알기 교육도 준비 중

여 주하주 통기타 교실이 매주 목요일 운영되고 있다. 이병훈 공동대표(노무사) 운영위원 중심으로 5월부터 매주 수요일 체 불임금, 산재, 개인회생 길거리 상담을 전개하고 있다. 도시농업위원회에서 옥상 텃밭에 20여 가지 채소를 심어서 회원 들과 매주 토요일 삼겹살 파티를 하고 술집을 운영하는 회원들은 필요한 만큼 수확하여 가져가고 있다. 이제 옥상에는 넘쳐나는 채소들 덕분에 회원들이 소통하는 공간

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운영위원분들이 지인들을 조직하여 회원이 150명이 되었다. 6월 사업이 바쁘게 진행되고 있다. 여름방���을 대비하여 전남대학교철학연구소, 지혜교철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여름방학 청소년 철학교실을 준비 중이며, 옥상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작은 음 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회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월례강좌를 개설하여 6월에 국민연금관리공단 노조지회장을 초청하여 국민 연금 바로알기 교육 진행이 결정되었고 더 아나가 길거리 상담에 국민연금 바로알기 캠페인도 공동으 로 전개고자 제안한 상태이다. 하반기 사업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도시농업위원회의 노력으로 500개 화분이 확보되어 9월 ~10월에 꽃 축제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있다. 지금 옥상에는 꽃꽂이를 하고 있으며 이 사업을 성공시 키기 위해 회원과 운영위원들이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 그래서 연대하는 노동조합에 아름다운 꽃을 기증하려고 준비 중이다. 더디지만 천천히 가자. 광주민중의집이 백화점식 사업으로 나열되어 있지만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 서 진화해 갔으면 좋겠다. 재정적 어려움이 있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진보운동, 노동운동의 장기적인 전망에 제시하고 지역과 연 대한다면 이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이 광주민중의집에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운영위원들의 미용봉사(왼쪽), 주하주 통기타교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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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2013년 임시당대회

일 시 | 2013년 7월 21일(일) 14:00 장 소 | 서울 관악구청 8층 대강당 안 건 | 1. 당명 결정의 건

2. 당헌 제정의 건


특집 2

여성 진보정치 열전 1

“하수구 뚜껑 하나도 정치 아닌 것이 없다” “빈민운동의 대모” 김혜경 고문의 이름 앞에 항상 붙는 수사다. 개미마을에서 출발하여 창신동 이주반대투쟁 승리, 난곡 의료협동조합 운동, 소속정당도 없던 시절 오로지 주민들의 지지만으로 지방자치 1기 기초의원에 당선되고 재선까지 했다. 남성정치인이라면 책을 한 권 써도 모자랄 만큼 치열하고 드라마틱한 삶이지만, 우리는 정작 김혜경을 잘 모른다. 진보신당 여성위원회에서 시작하는 “여성 진보정치 열전” 그 첫 번째 인물로 김혜경 고문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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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왕언니 김혜경(1부)

인터뷰ㆍ정리 | 심재옥, 최혜영(여성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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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진보정치 열전 1


“인터뷰는 무슨, 밥이나 한 끼 먹으러 와요”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는 여자치고 손 크지 않은 여자 없다. 닭볶음에 잡채, 온갖 종류의 전을 부치 고 신 김치 밖에 없다며 새 김치도 손수 담그셨다. 우리는 인터뷰는커녕 자리에 앉자마자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했고 비명에 가까운 감탄사를 날렸다. 그 모습에 김혜경 고문은 ‘더 먹어라, 다 먹고 가라’ 라며 새끼들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미처럼 행복해하셨다. 당대표를 위시한 주요활동 가들이 탈당한 후 말 그대로 비상상태였던 2011년 가을, 몸도 마음도 편치 않은 와중에 진보신당 비 상대책위원장을 맡았을 때도 ‘지지리 가난한 당’의 상근자들이 허기져서 다닌다며 늘 측은히 여겼던 당신이다.

인터뷰를 다녀와서 다시 돌아보니, 김혜경 고문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먹는 얘기’는 핵심이다. 먹어야 산다. 나 혼자만 먹는 게 아니라, 함께 먹어야 산다. 60년대엔 넝마주이 공동체 개미마을에서 전과자와 부랑자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시커먼 남자들에게 밥을 해먹이면서 천주교교리를 가르쳤 다. 난곡 도시빈민들의 삶 한가운데 뛰어들었을 때는 점심 굶는 주민들과 함께 ‘국수모임’을 만들었 다. 평생을 함께 먹고 함께 사는 법을 궁리하고 실천하며 살았던 이 대범한 여성의 삶은 도대체 어떻 게 시작된 것일까.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신고 개미마을 휘젓다 “신앙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전혀 달랐을 거야.” 김혜경은 천주교인이다. 지금이야 한국 기독교회가 온갖 궂은소리를 듣지만 기실, 예수는 혁명가였으며 초기 기독교 사상에서 공동체 운동은 그 시작이 며 줄기이자 그 자체다. 김혜경에게 신앙 또한 그런 것이다. 열여섯 살부터 인천 화수동 성당을 다니 며 신앙생활에 몰두했던 그녀는 스무 살, 성당에서 협동조합 교육을 처음 받고서 깊은 감동을 받았 다. 노동조합도 없던 시절, 영국의 방직공장 여성들이 밥을 먹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고 공동체를 꾸렸다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녀는 자기 삶의 청사진을 어렴풋하게 그려나가기시작했다.

개미마을에서 그 청사진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개미마을은 60년대 사직터널 근처에서 형성된 무허 가 판자촌으로 부랑자와 넝마주이들이 살던 곳이다. 67년,

“신앙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아주 달라졌을 거야” 스무 살, 성당에서 협동조합 교육을 처음 받으면서 공동체 운동의 잠재력에 놀라다

스물 네 살의 나이에 국제 가톨릭 형제회에서 3년 동안 트 레이닝을 받으면서 개미마을에 들어가 밥도 해주고 재활용 분리작업도 도우며 교리를 가르쳤다. 작고하신 김수환 추 기경은 당시 ‘단발머리 딸랑거리면서 시커먼 남자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던’ 김혜경을 보고 놀라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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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도 참 겁이 없었어. 전과자도 많고, 나보다 나이도 많은 남정네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거든. 67년 성탄절에는 백여 명 모였는 데 그중 마흔 명이 영세를 받았어. 스물네 살 먹은 여자애가 미니스커 트에 하이힐을 신고 단발머리 딸랑거리면서 뛰어다니니깐 김수환 추 기경이 ‘현장에 들어가 살 사람은 사라(김혜경의 세례명)밖에 없다’며 지역사회 조직가훈련 프로그램에 덜컥 추천을 해줘버린 거야.”

창신동 빈민촌 속으로 들어가다 ‘단발머리 딸랑거리며’ 빈민촌을 뛰어다니던 김혜경.

1969년, 연세대 도시문제 연구소가 생기면서 ‘지역사회 조직가훈련’

프로그램이 개설되었다. 막 산업화가 시작되던 한국이 번민 구제활동을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사회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후원하는 조직가 양성 프로그램이 만들어 진 것이다. 한국 교회의 각 교단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여섯 명을 선발했는데 가톨릭 에서는 故 김수환 추기경의 추천으로 김혜경이 들어가게 됐다.

“근데 그게 참 싫었어. 난 개미마을 넝마주이들이랑 같이 가평에서 밤나무, 잣나무 심어서 공동체를 만들고 살고 싶었는데, ‘지역사회 조직가훈련’은 또 뭐야. 추기경님 추천이라 억지로 면접을 보러 갔 는데 오재식 선생이랑 박형진 목사 등등이 주르르 앉아서 ‘너 왜 이거 할려고 하냐’ 묻길래, ‘나 사실 하기 싫은데 추기경님이 추천해서 왔어요’라고 대답했을 정도였어.” 추기경의 추천인데다 딱 6개월만 훈련 받으면 된다는 말만 믿고 69년 1월 3일 창신동 꼭대기에 방을 잡아 이사했다. 훈련비로 매달 13,000원을 받았다. 당시 9급 공무원의 월급이 1,1000원이었으니 결코 작은 금액은 아니다. 훈련은 고되었다. 빈민촌에 직접 들어가 살면서 그들을 조직하고 그 내용을 보 고서로 써내면 강의실에서 여섯 명이 둘러앉아 토론하고 수업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고 창신동 집으 로 돌아가면 생활이 곧 ‘실습’이었다.

교육을 담당한 ‘미스터 화이트’는 토론과 상황극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주민들 간에 싸움이 나 면 어떻게 할지, 철거용역들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지 끝없이 물음을 던지면서 훈련생들을 매섭게 몰 아세웠다. 담배도 그때 배웠다. “한국 노동자, 빈민들, 가난한 사람들 술 담배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야, 근데 니들이 조직가가 돼 가지고 술 안마시고 담배도 못 피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 냐?” 여섯 명이 나란히 앉아서 양담배 물고 6개월 동안 훈련을 받으니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미스터 화이트의 훈련방식이 썩 좋다고 볼 수는 없으나 빈민현장 속으로 철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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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진보정치 열전 1

“밤나무 잣나무 심고 개미마을 사람들이랑 자립 공동체 일구며 평생 함 께 사는 게 꿈이었는데”


연세대 도시문제 연구소에 개설되었던 지역사회 조직가훈련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통해 김혜경은 본격적인 빈민운동 조직가로 거듭났다.

스며들기 위한 그들의 치열한 노력과 열정만큼은 참으로 대단했던 것 같다.

“얼마 전 돌아가신 오재식 선생이 이 교회운동에 관여하면서 빈민조직가 프로그램이 탄탄하게 뿌리 를 내리기 시작했어. 미국에서 공부할 때 사울 알렌스키 밑에서 훈련을 받았대. 그때 같이 공부했던 조지 타드라는 목사가 있는데 그 제자인 미스터 화이트

미스터 화이트는 현장 상황을 연출하면서 끝없이 물음을 던졌고 훈련생들을 매섭게 몰아세웠다. 강의실과 산동네를 오가며 교육과 현장생활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라는 사람한테서 내가 훈련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나는 사울 알렌스키의 후계자인 셈이지.”

사울 알렌스키는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라는 책 을 통해, 오재식은 얼마 전 한겨레 신문의 “현장을 사 랑한 조직가 오재식”이라는 연재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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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그러니까 김혜경은 6개월의 훈련을 통해 세계적인 조직활동가의 계보를 잇는 뼈대있는 조직가, 제대로 훈련된 현장활동가로 거듭난 것이다.

“들어가서 살아보니 가난이 보이더라고” 69년이면 박정희의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마무리되던 무렵이다. 집집마다 식구가 열 명 안팎, ‘둘만 낳아 잘 키우자’는 가족계획 캠페인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서울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청계천 판자촌이나 창신동 산동네로, 뚝방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방을 쪼개고 판자로 서너 개씩 이어, 지붕은 하나인데 들어가 보면 방이 열 개나 되는 집도 있었다. 시골에서 아는 사람이 올라온다고 하 면 방 하나 늘려서 세를 주는 식이다. 산골짝 곳곳에 판자촌이 줄줄이 이어지니 주거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6개월 동안 교육받은 게 그런 거야, 가난한 사람들이 과연 돈이 없어서 가난한 건가? 그게 아 니라면 근본 원인이 어디서부터 나온 건가? 나라의 정책이 잘못돼서 그렇게 된 거다, 정치구조부터 시작해서 경제구조와 사회구조,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찾아나가는 그런 의식화 과정을 집 중적으로 훈련받은 거지. 그때 그 훈련을 받으면서 내 인생이 완전히 확 바뀌었어.” 겨울이 되면 노인들이 길에서 미끄러지기 일쑤다. 왜일까. 공동수도가 몇 개 없으니 산 아래에서부터 물을 길어다 먹는다. 열 중 아홉은 물을 흘리고 지나가니까 바닥이 얼고, 그러니까 자꾸 미끄러지는 것이다. 들어가서 직접 살아보니 문제와 원인,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창신동에 투입된 그해 1월, 서울시에서 산동네 빈민들을 집단으로 다른 곳에 이주시킬 계획이라는 정 보를 입수했다. 창신동과 청계천 등지의 빈민들을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지금의 성남)으로 내몰아 수 도권 위성도시를 만든다는 것. 당시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 부소장이 서울시 도시계획2부시장이었는 데 도시문제연구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여섯 명을 잘 활용하면 주민들을 잘 설득시킬 수 있을 거 라는 속셈으로 자료를 내준 것이다.

김혜경의 생각은 달랐다. 창신동에 실제 살고 있는 사람 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공동수도와 공중화장실, 미장원 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하나같이 깜 짝 놀라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피난 와서 자리 잡은 지가 벌써 몇 년인데 쫓아낸다고? 철거하고 싶으면 하라 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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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 빈민들을 집단이주시킨다고?” 서울시의 빈민촌 집단이주 계획을 입수하고 창신동에서 철거반대 투쟁을 조직하다.


주민들의 의사를 확인한 뒤부터 산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훑어 내려오며 사람들을 조직했다. 한 달 정도 열심히 뛰어다니며 조직하고 있는데 자진 이주하라는 계고장이 떨어졌다. ‘3월 1일까지 자진이 주 안하면 강제로 철거하겠다’는 3차 계고장까지 나왔다.

혹시나 하고 엄마들 대여섯 명을 데리고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며 광주를 찾아가봤다. 가서 보니 산은 밀어버렸고 붉은 흙덩어리가 나뒹구는 허허벌판에 불도저만 왕왕대는데,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엄마들을 모아서 서울시장과 직접 담판을 지으러 가기로 했다.

창신동 엄마들 700명, 시청 앞에서“철거반대”외쳐 D-day는 2월 27일. 전날에 낙산공원에 쫙 모여서 점검집회를 하고, 서울시장하고 만날 엄마들 대표 스무 명을 뽑았다.

“지금은 현수막도 멋있게 쫙 깔지만 그땐 그런 게 어디 있나. 애기 기저귀감 가져다 동대문 가서 “김 현옥 시장 만나 달라” 써가지고, 막대기도 없어서 돌돌 말아가지고 뒷짐 지고 가기로 했지.“ “버스 한 번 안 타본 엄마들도 많아서 다같이 ‘행동지침’을 꼼꼼히 만들었어. 92번 버스를 타고 광화 문까지 간다, 애들 하나씩 다 업고 간다, 애 없는 사람은 남의 집 애 빌려서 업고 간다. 12시 땡 하면 ‘김현옥 시장 나와라’ 소리친다. 대표 나와라 하면 누구누구가 나간다. 서울시장실이 2층에 있는데 만 약에 지하로 간다든가 1층으로 간다고 하면 쫓아가지 말라.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니까 쫓아가 면 안된다 등등. 나도 지금 돌아보니까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다 했을까 끔찍한 거야, 그 엄혹한 군 부독재 시절에.“

엄마들 700여명이 서울시청으로 몰려간 사건이 뉴스를 탔다. “지금 서울시청 앞에서 부녀자들이 김 현옥 시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고. 노조처럼 조직화된 집단도 아니고 엄마들 700명이 애들 하나씩 달고 모였다니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 이미 ‘미스김’으로 불렸던 김혜경 고문의 활약이 아니 었다면 그런 사건이 가능했을까? 인터뷰 자리에 함께 했던 여성위원회

69년, 엄혹하던 군부독재 시절에 엄마들의 가두시위! 기저귀감 떼어 현수막 만들고 애 업고 시청 앞으로 모였다. 무려 700명이나.

멤버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날 엄마들이 죄다 잡혀가서 종로경찰서와 동대문경찰서에 수용됐거 든. 근데 유치장에서 애기들이 젖 달라고 빽빽 울어대지, 다른 한쪽에서 는 기저귀 갈아야 한다고 난리를 치지, 그 와중에 애기 빌려준 엄마들이 우리 애 내놓으라고 울어대지, 경찰서가 너무 시끄럽다고 스무 시간 만에 풀려났어. 그 다���날로 동대문구청장하고 종로경찰서장이 좌천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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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때부터 남자들하고 일 안해. 남자들하고 일해서는 절-대 세상을 못 바꾼다는 신념이 생긴 거지”

단계적 철거에 98% 주민 재정착, 40년 전의 완벽한 승리! 놀란 서울시에서도 구청직원들을 보내 주민들과의 협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웃지 못할 상황은 그 다 음에 터졌다.

“재미있는 게, 엄마들이 열심히 싸웠잖아. 그 다음부터는 엄마들이 관하고 담판 들어가려니깐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아빠들을 내세웠어. 엄마들 열 명, 아빠들 열다섯 명으로 대책위를 구성했지. 근데 구청 사람들이 아빠들한테 막걸리 먹이고, 여관에, 극장에, 접대하면서 회유한 거야. 아파트 입주권 5 장을 줄 테니 이것만 팔아도 어디 딴 데로 이사할 수 있다, 책임지고 50명만 이주시켜라. 아빠들이 ‘헬 렐레’ 넘어갈 뻔하는 걸 엄마들이 고발을 한 거야. 자기 남편을 고발하는 거지. 우리 남편이지만 못 믿겠다. 남자들에게 일 맡겨 놓으니 이런 식이야. 중간에 이런 문제 생겨서 주민총회 열어서 대책위에 서 남자들 다 짤라버렸어. 나는 그 때서부터 남자들하고 일 안 해. 남자들하고 일해서는 절-대 세상을 못 바꾼다는 신념이 생 긴 거지. (좌중 폭소!)”

그때부터 엄마들로만 구성된 대책위가 구청과의 협상에 들어갔 다. 형편이 나은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철거하되 주민들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에 가수용 시설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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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적으로 철거하되 가수용 시설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개발이 끝난 뒤에는 98%의 주민들이 입주했다. 1969년의 일이다.


김혜경 고문의 삶에서 '먹는 예기'는 핵심이다. 먹어야 산다. 나 혼자만 먹는 게 아니라, 함께 먹어야 산다. 진수성찬을 대접받은 인터뷰팀.

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져 창신초등학교 옆 운동장과 시장 바로 위 공터에 텐트를 쳐 가수용시설을 설치했다. 공동수도, 공동화장실도 마련했다. 그리고 개발이 끝난 뒤 주민들은 시민아파트 28개동에 48세대씩 입주했다. 98%의 주민들이 입주했으니 창신동의 이주 반대싸움은 완벽한 승리를 이뤄낸 것 이다.

나는 정말 놀랐다. 내가 서울시의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이명박 시장의 뉴타운 개발이 붐을 이뤘었 는데 그 때도 우리는 단계적 철거와 순환식 개발, 가수용 단지를 요구로 내걸고 싸웠다. 그러나 그 요구는 철저히 무시되었고 심지어 나중에는 용산참사와 같은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이미 40년 전 에 단계적 철거와 순환식 개발, 가수용시설이라는 투쟁 성공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더니 우리 선배들의 투쟁이 오롯이 역사였다는 것을 왜 이제 야 알게 되었을까. 선배들의 삶을 제대로 아는 것부터가 우리들이 해야 할 공부라는 걸 깨달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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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리포트 /


초록 리포트 /

밀양의 전쟁 김현우 | 진보신당녹색위원장

지난 5월 말,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와 한전의 협상안이 타결됐다. 매일같이 어르신들이 쓰러져 실려나가던 급박한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한국사회의 근본적 모순과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톺아볼 필요가 있다. 진보신당 김현우 녹색위원장이 5년동안 벌어졌던 그리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밀양의 전쟁’을 돌아보았다.

전기 쓰는 데 따로, 만드는 데 따로 전체 전력공급의 70% 이상이 핵발전과 화력발전에서 나온다. 그런데 전기를 쓰는 곳과 만드는 곳은 서로 멀리 떨어져있다. 화력발전소들은 충남 해안가, 핵발전소 단지는 전남 영광과 부산 기장, 경북 경주와 울진에 자리잡았다. 결국 최대한 멀리, 전력 손실을 줄이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전기를 수송 하기 위해 고압 송전선로를 사용할 필요가 생긴다. 가장 고압의 송전선로는 765kV 용량인데, 현재는 당진에서 신서산, 신안성으로 오는 선로와 울진에 서 신태백에서 승압하여 신가평을 지나 역시 신안성에서 만나는 선로가 만들어져 가동되고 있다. 쉽 게 짐작할 수 있듯이 신안성과 신가평 모두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전력 허브다.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입장은 경남 울주에 새로 짓고 있는 신고리 핵발전소 3호, 4호기 등에서 생 산할 전력을 대구 경북 쪽으로 수송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154kV나 345kV 선로로 부족하기 때문에 765kV 송전선로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계획된 송전선로의 송전탑 161개 중 69개 가 하필이면 밀양시의 4개 면을 지나도록 설계되었고, 한전은 전원개발촉진법의 도움으로 토지를 강 제 수용하고 선로 아래 좌우 3미터 면적만을 공시지가로 보상했다. 그리고 2007년 11월, 정부는 신고 리-북경남변전소 756㎸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승인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밀양 주민들은 2008년 7월, 송전선로 백지화 요구 첫 궐기대회를 시작으로 반대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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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밀양 사람들만 반발하고 싸웠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진즉에 만들어진 765kV 지역에서도 주민들의 애끓는 저항이 있었거니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신 고리-밀양-창녕변전소의 송전선로가 이어지는 부산 정관과 경북 청도에서도 주민들의 투쟁이 이어졌다. 다만 밀양은 너무도 피해가 크고 넓어서, 그리고 나이

신고리 핵발전소 3호, 4호기에서 생산할 전력을 대도시로 보내기 위해 세우는 고압 송전탑. 그 161개 중 69개가 밀양시의 4개 면을 지나게 됐다.

드신 분들의 삶의 위기가 너무도 절박하기 때문에 이 른바 ‘국책 사업’에 몸을 날려 반대했던 것이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765kV 송전탑은 수도권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고압송전탑인 154kV보다 열 여덟 배가 많은 전기 를 수송한다. 그만큼 전자파와 자기장 소음도 강하고, 140미터에 이르는 탑신이 산과 들을 가로지르 기 때문에 당연히 농사는 물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 사람의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땅값이 떨어져 서 팔 수도 없고, 밤나무에 약을 칠 수도 없게 된다. 보상을 둘러싸고 마을 사이와 주민 사이의 관계 가 파탄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밀양의 어르신들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 것은 반대 투쟁 와중에 충남 당진 지역을 방문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화력발전소에서 765kV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마을들은 생명력 을 잃고 주민들은 황폐해져 있었다. 당진 주민들은 밀양의 주민들에게 송전탑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하나는 고압송전선로의 끄트머리에는 핵발전소가 존재한다는 발견이었 다. 밀양 주민들은 고압송전탑의 정체와 본질을 알게 되었다.

‘밀양의 전쟁’ 해가 가득하다는 뜻의 지명인 ‘밀양.’ 정말이지 갈 때마다 밀양 시내는 햇볕이 따갑고 밀양강은 아름 답게 흐른다. 그러나 조금만 북쪽 산자락으로 걸음을 옮기면, 부북면, 상동면, 단장면, 산외면의 각 마을에서는 지난 5월 그야말로 전쟁이 펼쳐졌다. 사실 이 전쟁은 한전이 송전탑 공사를 추진한 지난 8년 동안 계속된 것이었다. 지난 해 1월, 산외면 보라마을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사망을 계기로 이 전 쟁은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아무리 억울해도 어떻게 자신의 논 앞에서 스스로 분신을 할까? 앞서 이야기한 사정들이 배경이 되었 거니와, 한전과 용역 직원들의 그야말로 인면수심의 폭력과 횡포 앞에서 이 노인은 자신이 직접 뭔가 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노인의 죽 음을 통해 그 동안 한전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아니 폭력으 로 공사를 진행해왔는지 그리고 국가는 어떻게 이를 방관하 고 용인하여 국책 사업이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을 자행해왔 는지가 조금씩 알려졌다. 다큐집단 “복지갈구화적단”이 만든 <밀양의 전쟁>에는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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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벌목을 막으려 나무줄기 아래로 지팡이와 팔다리를 밀어넣으면 건장한 젊은 직원들은 전기톱을 들이댔다.


[그림] 한국의 전력계통도 (2013년)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벌목을 막으려 나무줄기 아래로 노인들이 필사적으로 밀어 넣는 지팡이 와 팔다리에 전기톱을 들이대는 건장한 젊은 직원들, 지친 할머니들을 개를 부르듯 다음 나무로 좇아 와 보라며 조롱하는 소리, 공사에 저항하는 비구스님을 성폭행하고 지방의원을 트럭 아래에 결박하고 폭행하는 무법천지의 현장들 말이다. 작년 몇 차례에 걸친 탈핵

긴급 탈핵희망버스가 달려간 5월 24일, 우리가 십여 명이라도 있었던 탓인지 공사가 멈췄다. 하지만 우리가 떠나자 한전은 빗속에서 다시 공사를 강행했다.

희망버스가 갈 때마다, 밀양 어르신들이 그토록 반갑고 고마워 하셨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몇 십 명 안 되는 우리들이 었지만 어르신들은 이제 살 수 있겠다, 이길 수 있겠다며 주름 진 얼굴 가득 희망의 웃음을 발산하셨다.

이치우 어르신 분신 사건으로 인해 작년 9월 24일 송전탑 공 사가 중단된 이후 8개월만인 지난 5월 20일, 한전은 공사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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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발표하고 전격적으로 밀양 4개 면의 모든 송전탑 공사현장으로 직원들을 올려보냈다. 이번에는 공사 현장의 안 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전투경찰까 지 대동했고, 주민들은 헬기가 공수한 포크레인의 바퀴 아래에 드러누워 며칠 을 버텼다. 칠순 팔순의 할머니들이 웃 통을 벗고 피눈물을 흘렸고 며칠 사이 에 십 수 명의 노인들이 응급실로 후송 되었다. 탈핵희망버스 집회 중 눈물을 터뜨린 밀양 주민들. (사진: 박성훈)

서울과 부산 등에서 매일같이 마음을 졸이던 당원과 탈핵활동가들이 긴급 탈핵희망버스를 출발시킨 것은 5월 24일 금요일 저녁이었다. 밤 사이 밀양으로 모인 이들은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같이 각 공사 현장으로 올라갔다. 날이 밝을 무렵 주민들이 조를 짜서 올라오고, 한전 직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현장에 도착했다. 우리들이 십여 명씩이라도 있었던 탓이었는지 이 날은 전경들도 안 올라오고 공사 도 강행되지 않았다. 이틀간의 시한부 평온도 주민들에겐 너무도 소중했다. 우리들은 어르신들의 어 깨와 팔다리를 주물러드리고, 함께 웃으며 노래했다. 그러나 우리들이 떠난 주말이 지나자 한전은 빗속에도 다시 공사를 시작했고 주민들은 밤을 새며 산 위를 지켰다. 여론도 끓어올랐고 한전과 정부도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숨 가쁜 전투는 5 월 29일, 국회에서 여야와 한전, 밀양대책위가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하여 문제를 풀도록 합의하면서 일단 휴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밀양이다, 송전탑은 우리 일이다 이로써 밀양 송전탑 문제는 한전과 대책위가 각 3명, 여야와 상호가 합의하는 인사를 포함하는 총 9 명으로 구성되는 전문가협의체가 40일 동안 활동을 통해 내놓을 결론에 맡겨졌다. 전문가들을 믿을 수 있을지, 협의체가 민주적으로 운영될지 염려되는 바가 많지만 주어진 기회를 통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전으로서는 전문가협의체 자체가 내키지 않은 선택인 면이 있고, 왜 올해 안에 반드시 765kV 송전탑 공사를 해야만 하는지 증명해야 할 책임도 부여받고 있다.

예상컨대 한전은 전력대란에 대비하는 안정적 전력예비율 확보를 이유로 대며 밀양 송전탑의 불가피성 을 강변할 것이고, 대책위 측에서는 신고리 5, 6호기의 신규 건설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기존 345kV 선 로 활용 등 다양한 대안이 가능함을 주장할 것이다. 이는 한국의 어디까지 핵발전을 확대해야 하는지, 어떠한 송배전 구조가 적절한 것인지, 지역의 희생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전력 정책 전반에 대한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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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긴급탈핵희망버스 포스터

고 넓은 논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전문가협의체 활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단정하긴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밀양 이후’의 송배전 정책 을 포함하는 전력 정책은 그 전의 것과 같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은 송전선로 보상 범위를 확대하는 등 관련 법률 개정으로 문제를 풀어보고자 하지만, 이는 밀양 주민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 리다. 그 정도의 보상 확대가 주민들의 삶을 벌충할 수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보상을 확대하면 앞 으로는 765kV 송전선로의 경제성이 턱없이 떨어지기 때문에 신규 추진이 어려워진다는 딜레마에 봉착 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투쟁을 통해 스스로의 정당성을 인식하고 경험한 밀양 주민들은 승리를 확신 하고 있으며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밀양의 가장 큰 힘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사실 그 동안은 반핵/탈핵운동에서도 밀양의 문제를 그다지 주목하지는 않았다. 반핵운동은 당장 위험 이 되는 노후 핵발전소 문제, 핵폐기물 처리장과 신규 핵발전소의 문제, 핵무기 위협의 문제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양의 투쟁은 탈핵투쟁에서도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송전선로의 추진이 어려워진다면 발전소를 만들어도 소용이 없게 됨을 한전과 정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핵발전소의 화장실이라 할 핵폐기물 처리장을 해결할 수 없음에 더하여 핵발전의 핏줄이 확보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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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희망버스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할머니. (사진: 박성훈)

밀양에서 어렵다면 신울진에서 봉화를 거쳐 강 원을 지나게 하려는 765kV 신규 건설 방안도 곤란해진다. 삼척과 영덕에 새로 핵발전소를 지 어도 그 전기를 강원도와 경북에서 쓸 리가 없 는 마당에 765kV 선로를 만들지 못한다면 발전

밀양의 투쟁은 탈핵투쟁에서도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핵발전의 핏줄이 확보되지 않으면 발전소를 지어도 소용이 없음을 한전과 정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 건설 계획 자체를 보류해야 할 것이다. 경기 도 안성의 765kV 초대형 변전소 부지 선정 문 제도 이미 주민 반발 소식이 언론을 타고 있다.

이제까지 한국 정부의 핵발전 건설 비용 산정에서 송전선로 건설 비용은 철탑과 전선의 재료값 더하 기 인건비에 불과했고, 때문에 핵발전이 싼 에너지라고 우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적 비용까 지 감안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밀양 주민들은 고사하고 국회조차 결정할 ���한이 없었던 전력 수급에 관한 여러 결정의 문제가 에너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거론되게 될 것이다. 대도시와 대공장 에서 쓰는 전기 때문에 밀양의 어르신들에게 참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함과 함께, 밀양에서 열어젖힌 새로운 민주주의와 탈핵의 현관문에 대해 감사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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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리포트 - 밀양의 전쟁


노동 리포트 /

아버님 댁에 케이블방송 놔드리셨어요? TV에는 안나오는 비정규직 케이블 기사들의 눈물 김예찬 | 서울시당 대협부장

씨앤앰, 티브로드, CJ케이블넷, HCN 등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케이블TV 방송사들이 있다. 드라마, 예능, 음악방송, 영화 등 손쉽게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케이블TV. 그러나 시청자 들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는 설치·A/S 기사들이 실제로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 은 적다.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보험가입도 퇴직금도 기대 못해 일반적인 케이블 방송사들은 영업・설치・A/S 업무를 직접 관리하지 않고, 하청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 규모를 축소하면서, 이들을 외주업체로 내보낸 것이다. 이 외주업체에서 일하는 노동 자들은 주당 평균 56시간, 월 27일을 일하고 한 달에 2~3일 쉬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 노출 되어있다. 언제일지 모르는 A/S 업무를 위해 야근하고, 휴일 당직 근무 역시 기본이지만, 시간외근로수당을 지 급받지도 못한다. 가정집을 직접 방문하여 설치를 하다 보니 하루 운전 시간이 배달 노동자 뺨치지만, 사고 위험이 높은 직종이라 보험 가입도 힘들다. 다행히 사고 없이 퇴직하더라도 퇴직금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

이처럼 위험하고 불안정하게 일하는 케이블 방송사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서울 지역에서만 수천 명에 달한다. 여기에 하청에 대한 재하청, 특수고용 등 각종 악질적 고용 형태들을 더하면 수만 명 단위로 올라갈지도 모른다.

언제일지 모르는 A/S 업무를 위해 야근하고 휴일 당직 근무 역시 기본이지만, 시간외 근로수당을 지급받지도 못한다.

원청인 케이블 방송사, 하청 협력업체, 재하청 특수고용직... 다단계 하도급 사슬 속에서 원청은 인건비를 점차 삭감하고 있고, 하청업 체들은 입찰 단가를 계속 낮춘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확고한 권력 을 쥔 케이블 방송사는 가입자 유치까지 하청에 떠맡기며, 결국 노 동자들은 설치, 수리 뿐 아니라 가입자 확대를 위한 영업까지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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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다.

시청자들이 안방에서 편히 시청하는 케이블 방송의 이면에 이와 같은 노동자들의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 실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다행스럽게도 씨 “기술은 기본이다! 영업은 생존이다! 하자하자 실천하자!” 라는 문장 속에서 설치/AS 기사들에게도 영업을 강요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앤앰과 티브로드에서 이러한 노동 현실을 개선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매년 수천억 원의 영업 이익을 내는 케이블방송사들이 주주 배당과 수익 올

리기에는 열중하면서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에는 인색한 현실, 케이블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를 바꿔나가기 위해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케이블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화되고 본격적인 투쟁에 나서면서 케이블 방송 업계의 불합리 한 관행과 기본적인 노동 인권도 보장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실태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충 격적인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만성화된 장시간 노동은 기본이며, 티브로드에서만 15 년을 일했는데도 아직 비정규직인 신세라거나 장비를 고장냈다는 이유로 페널티로 월급이 무려 140만원이 나 깎인 경우도 있었다. 조회 시간에 영업 실적이 좋은 사람에게 2만원 짜리 상품권을 지급하고, 막상 월급 날에는 ‘기 지급금’이라는 이유로 월급 2만원을 까서

다행스럽게도 씨앤앰과 티브로드에서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사측은 매년 수천억 영업 이익을 내면서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에는 인색한 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동자들이 나선 것.

주었다고 한다. 점심 먹을 시간이 따로 주어지지 않아 운전 중 샌드위치로 식사를 때우기 일쑤다.

“아이들하고 주말에 동물원 한 번 가보고 싶어서” 지난 4월 18일, 티브로드 본사 앞에서 투쟁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결의대회의 부제는 “케이블 비정규 직 노동자의 인간 선언”이었다. 이날 발언한 어느 조합원은 “주말에 아이들하고 동물원 한번 가고 싶 어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평일에도 밤 10시에나 퇴근하는데다가, 주말에도 당직을 서다보니 아이들이 깨어있는 모습을 언제 봤는지도 가물가물하다고 했다. 그렇게 일하는데도 야간/당직 수당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다고 한다. 티브로드 작업복을 입고 수년을 일했는데 티브로 드 본사에서는 자신들의 고용 책임이 없다고 발뺌한다. 인간이 아니라 일하는 기계로 취급 받으며 살 아온 지난 시간들에 대해, 너무나 분노스러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스 로 인간임을 선언하고, “사람답게 살아보자!”며 떨쳐 일어났다. 80년대에나 외쳤을 법한 “근로기준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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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리포트 - 아버님 댁에 케이블방송 놔드리셨어요?


준수하라!”는 구호가 자연스레 등장할 정도다.

박근혜 정권은 출범 이후 계속해서 이른바 ‘창조 경제’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 ‘창조경제’가 정확 히 뭐하자는 얘기인지는 아무도 속시원하게 설명 하지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의 중요 한 모델은 방송통신 융합 IT기업”이라며 창조경 4월 18일 티브로드 본사 앞에서 열린 케이블 비정규직 티브로드 지부의 결의대회

제의 상에 대해 아주 모호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창조경제의 모델이라는 방송통신 융합 IT기업, 이는 곧 ICT 산업(방송 통신 컨텐츠, 플랫폼, 네트워 크)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인 케이블 방송사는 여기서 ‘플랫폼’ 사업에 속한다. 이러한 케이블 방송사들은 2100만에 달하는 유료방송 가입가구들을 디지털 방송과 온라인 콘텐츠 어플리케이션 시장으로 끌어들여 시장을 확대하려 들고 있다. 이름도 요상한 새 정부 부처 미래창조과학부가 생겨나자 마자 논란이 되었던 것이 바로 이러한 SO의 인허가권 문제였다.

‘을’에도 들지 못하는 케이블 비정규직, 그들이 뭉쳤다 2100만 유료방송 가입가구 시대를 연 것은 현장 일선에서 직접 영업, 설치, AS, 철거 업무에 종사하며 발로 뛴 케이블 방송 노동자들의 공로라 할 수 있다. 창조경제의 핵심이 ICT 진흥에 있다면, ICT 진 흥에 대한 보상은 이러한 케이블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모호한 수사와 알맹이 없는 계획들로 가득찬 박근혜 정권의 ‘창조경제’ 속에, 대기업과 대주주들의 이윤 잔치 속에 케이블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은 찾아볼 수 없다.

‘갑’의 횡포, ‘을’의 분노가 사회적 현상으로 회자되는 가운데, ‘을’에도 들지 못하는 케이블 방송 비정 규직 노동자들은 스스로 뭉쳐서 싸우기를 선택했다. 노동조합을 설립한지 채 두 달이 안되어 노조탄 압과 부당 노동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수년 간의 억눌림 끝에 떨쳐 일어난 케이블 방송 비정 규직 노동자들의 당당한 투쟁은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병’과 ‘정’들의 연대와 지지로 승 리로 향하기 위한 한 발짝을 더 내딛을 힘을 만들어낼 때이다.

박근혜 정권이 말하는 ‘창조경제’의 플랫폼에 해당되는 것이 곧 케이블방송이다. 그 플랫폼 아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과 싸움이 있다. 64


정책 포럼 /

통상임금 논란, 산별임금 전환의 계기 되어야 홍원표 | 진보신당 정책실장

통상임금이 뭐길래? 통상임금이 논란이다. 논란의 시작은 돈 많은 회장님의 ‘민원’에서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중에 가진 경제인 간담회에서 미국 GM 본사의 대니얼 애커슨 회장이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돼 있는 문제의 해결을 전제로 향후 5년간 한국에 8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며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에서 빼 줄 것을 요구하였다. 도대체 통상임금이 뭐길래 다국적 기업 회장이 ‘80억 달러’ 투자 협 박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통상임금은 야근이나 휴일노동, 출산휴가 수당을 산정할 때 기준이 된다. 근로기준법 제56조(연장· 야간 및 휴일 근로)는 ‘사용자는 연장근로와 야간근로 또는 휴일근로에 대하여는 통상임금의 100분 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남녀고용평등법 제18조(출산전후휴가에 대한 지원) 제1항은 ‘출산전후휴가 또는 유산・사산 휴가를 사용한 근로자 중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 는 자에게 그 휴가기간에 대하여 통상임금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급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통상임금을 어떻게 산정하느냐에 따라 수당이 달라진다. 월급명세서에 달랑 기본급만 찍 히거나 아예 명세서 따윌 못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그 명세서에는 각종 수당과 간혹 ‘보 너스’가 찍힌다. 월급이 들어오면 일단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보너스가 나오는 달이면 살짝 맘이 든 든해진다. 하지만, 보통 일일이 월급명세서 항목을 다 따지진 않는다.

하지만 야근수당을 받을 땐 따져야 한다. 지난달 야근을 10시간 했으 면, 통상임금을 시간급으로 환산한 다음, 이 금액의 1.5배를 받아야 한 다. 이 경우 교통비 등 매달 지급되는 각종 수당은 야근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포함되는가? 된다. 그러면, 석 달에 한번 받는 보너스는? (넉 달이든 두 달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역시 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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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포럼

야근, 휴일노동, 출산휴가 수당을 정할 때 기준이 되는 게 통상임금이다. 통상임금에 따라 수당이 달라진다.


현대차의 경우 기본급 비중이 29.1%에 불과하다. 기형적 임금구조가 통상임금 논란을 부른다.

럼 연말에 돈 많이 벌었다고 주는 성과급은? 안 된다. 정기적으로 비율을 정해서 주는 게 아니라 회사가 맘대로 주는 거라서 안 된 다. 여기까지는 법원의 판단이다.

재계는 생각이 다르다. 각종 수당이랑 석 달에 한번 주는 보너스 도 빼자는 것이다. 실제로 그 동안 빼고 계산했다. 그래서 떼먹은 돈이 재계 추산 연간 38조고, 노동연구원 추산 22조다. GM 대우는 8천억 정도다. 돈 많은 회장님께 서 대통령에게 민원을 넣으신 이유다.

기본급이 낮은 기형적 임금 구조 통상임금 논란이 불거진 것은 기형적 임금 구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하는 사업체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전체임금에서 정액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77.7%고, 초과급여가 5.7%, 특별급여가 16.6%다. 사업체노동력조사는 매월 지급되는 각종 수당을 정액급여로 포함시킨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본급 비중은 77.7%보다 더욱 낮다. 임금구조를 사업체규모별로 살펴보면, 규모가 커질수록 정액급여 비중은 더 낮아지는데,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정액급여 비중이 67%에 불과하다. 대기업의 임금 수준이 높지만, 이는 기본급의 차이 보다는 각종 수당과 보너스 등의 특별급여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에서 2008년 자동차업계 완성차업체 및 부품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낮은 기본

<표1> 사업체규모별 임금 구조 정액급여(%)

초과급여 (%)

특별급여 (%)

전규모(5인이상)

77.7

5.7

16.6

중소규모(5~299인)

82.3

5.5

12.2

1규모 (5~9인)

89.5

2.1

8.3

2규모(10~29인)

84.8

4.1

11.1

3규모(30~99인)

80.2

7.3

12.6

4규모(100~299인)

76.0

7.7

16.3

5규모(300인이상)

67.0

6.2

26.8

※ 자료: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2012년, 사용근로자 5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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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2> 완성차 및 부품업체 임금구성(단위: 세, 년, %) 구분

완성차

1차 부품

평균연령

평균근속

기본급

수당포함통상급

변동급

현대차

40.8

15.7

29.1

35.9

32.2

기아차

-

-

34.0

39.0

25.0

GM대우

39.6

13.4

35.1

39.9

28.3

A사

38.7

11.7

37.4

44.5

28.8

B사

38.2

11.5

36.6

44.3

30.3

C사

41.0

19.0

30.9

36.7

37.9

E사

38.0

7.0

38.2

49.8

21.2

F사

48.0

2.2

44.2

44.2

39.2

2차 부품

급 비중은 훨씬 더 심각하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기본급 비중은 29.1%(약 150만 원 정도다), 통상급 에 포함되는 수당을 합친 경우에도 전체임금의 35.9%에 불과하다. 완성차의 경우 기본급과 매월 정 1

기적으로 지급되는 수당까지 합친 급여가 40%가 되지 않으며, 부품사의 경우도 45% 내외다.

낮은 기본급과 높은 임금유연성 재계는 늘 노동시장이 경직되었다고 주장해 왔다. ‘경직된 노동시장’은 사장 맘대로 손쉽게 해고하고 싶다는 말을 돌려한 것이지만, 경제학에서는 경기 변동에 따른 노동비용 조정이 쉽지 않다는 의미로 쓰인다. 기업 입장에서 노동비용은 ‘고용량×임금’이다. 그러니까 노동비용을 조정하려면 고용량이나 임금 수준을 조정해야 한다. 그게 잘 안되면 노동시장이 ‘경직’된 것이다.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비정규직이 가장 많고, 평균 근속기간이 가장 짧은 나라다. 또한 경기변동 에 따른 고용 조정 속도도 가장 빠르다. 재계의 주장과는 달리 고용 유연성이 매우 높다. 노동자 입 장에서는 고용불안이 매우 심각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임금은 어떤가? 재계는 ‘강성노조’ 때문에 임금 경직성이 심해, 기업의 경기 변동 대처 능력이

, 전국금속노동조합 1 전국금속노동조합/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08,『금속산업의 임금구조와 임금체계 분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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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포럼


떨어져 곧 망할 것처럼 이야기해 왔다.

아래 그림은 각각 2009년 이후 경제성장률과 정액급여, 초과급여, 특별급여 및 전체임금의 인상률 변 화를 나타낸 것이다. <그림1>은 정액급여 인상률 그래프인데, 경기변동과 무관하게 완만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경직돼 있다. <그림2>는 초과급여와 특별급여의 인상률을 보여주는데, 경제성장률 변 화보다 더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매우 유연하다. 만약 전체 임금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면 초과급여와 특별급여의 유연성에도 불구하고

<그림1> 경제성장률 및 정액급여인상률(%) 7.0 6.0 5.0 상용정액급여 (원)

4.0

경제성장률

3.0 2.0 1.0 0.0 2009

2010

2011

2012

<그림2> 경제성장률 및 초과급여·���별급여 인상률(%)

10.0 5.0 2010

0.0

2011

2012

2009 -5.0 -10.0 상용초과급여 (원) -15.0 -20.0

상용특별급여 (원) 경제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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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경제성장률 및 임금총액 인상률 추이(%) 7.0 6.0 5.0 4.0 3.0 2.0 1.0 0.0

2010

2009

2011

2012

-1.0 -2.0 상용임금총액 (원)

경제성장률

전체 임금의 변화는 완만할 것이다. 반대로 기본급의 비중이 작으면 임금 유연성이 커질 것이다. 앞 서 살펴본 바처럼, 기본급 비중이 매우 낮다보니, 기업은 기본급을 그대로 놔둔 채 각종 수당이나 보 너스, 연장노동을 조정해 전체임금 수준을 경기 변동에 따라 조정해 왔다. 아래 <그림3>은 전체임금 인상률 변화를 경제성장률 변화와 비교한 것이다. 경제성장률 변화보다 변화 폭이 크다. 임금 유연성 역시 높은 것이다.

장시간 노동을 부르는 임금 체계 낮은 기본급 구조는 노동시간에도 영향을 준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연구원에 따르면,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2012년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노동자가 정규노동시간 2

에 받은 시간당 임금은 17,924원이고 연장노동을 통해 받은 시간당 임금은 14,163원이다. 근로기준 법 상 연장노동 수당을 1.5배를 주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0.8배를 준 셈이다. 오히려 정규노동시 간 임금보다 적다. 각종 수당이나 보너스 비중이 큰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는 더 심하다. 연장수당 시급이 정기노동시간 시급의 64%에 불과하다. 1.5배는커녕 0.5배에 가깝다.

위의 계산은 임금을 단순히 실 노동시간으로 나눈 것으로 유급휴일을 고려하고 않고 있다. 유급휴일 을 100% 지급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도 초과노동에 지급되는 임금은 통상임금의 95%, 대기업의 경 우 77%에 불과하다. 이런 임금체계에서는 사람을 새로 채용하는 것보다 되도록 적은 인력으로 장시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 김유선, 2013,『통상임금 산정방식 정상화에 따른 경제적 영향 분석과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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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포럼


<표3> 사업장 규모별 노동시간과 임금(시간, 원, %) 월근로시간

월임금

시간당임금 초과근로 수당지급률

초과급여

정액+ 특별급여 ①

정액+ 특별급여 ②

초과 급여

2,996,870

181,290

17,924

14,937

14,163

79.0

94.8

4.0

2,246,176

49,228

12,697

10,581

12,307

96.9

116.3

171.3

8.9

2,599,211

111,775

15,173

12,645

12,559

82.8

99.3

30~99인

166.5

16.7

2,825,245

221,236

16,968

14,140

13,248

78.1

93.7

100~299인

164.2

18.6

3,096,988

257,548

18,861

15,718

13,847

73.4

88.1

300인이상

157.4

16.2

4,149,393

274,502

26,362

21,968

16,945

64.3

77.1

실 근로

초과 근로

정액+ 특별급여

전규모 (5인이상)

167.2

12.8

5~9인

176.9

10~29인

※ 자료: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김유선(2013)에서 재인용, 정책+특별급여(2)는 필자 계산) ※ 정액+특별급여①은 정액+특별급여를 실 근로시간으로 나눈 시간당임금이며 정액+특별급여②는 유급휴일을 소정근로시간에 포함해서 계산한 시간당임금

간 노동시키는 게 훨씬 이익이 남는다. 노동시간은 늘고 고용은 줄어들 가능성이 큰 임금 구조다. 근로기준법은 주당 12시간 이상 연장 노동을 못 하게 하고, 연장노동에는 50% 임금 가중치를 두고 있다. 웬만하면 장시간 노동을 하지 말라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는 휴일노동을 연장노동 한도에 포 함시키지 않았다. 기업은 연장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을 과소 산정해 야근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노동자는 너무 낮은 기본급 때문에 추가 수당, 그러니까 연장 노동이 필요했다. 각 경제주체 에게 장시간 노동을 할 이유가 너무 명백하다. OECD 회원국 중 한국의 노동시간이 가장 긴 이유다.

산별임금체계로의 전환 필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상임금 소송은 기본적으로 체불에 관한 사항이다. 통상임금 과소 산정으로 미 지급된 연장수당이나 육아휴직 수당을 받겠다는 것이고, 연장노동이 많고 상여금 비중이 큰 대기업 에 집중되어 있다. 소송의 핵심 내용이 미지급한 임금채권이고 대기업은 그 동안 과도한 초과이윤을 남겨 왔으며 사내유보금 비율 또한 크다는 점에서 소송은 법원의 판단대로 집행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임금구조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의 임금구조는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고 추가고용을 회피 하게 만든다. 가장 큰 문제는 낮은 기본급과 복잡한 수당 체계다. 기본급을 확대하고 임금구조를 단 순화해야 하는데, 이는 국회나 법원의 영역이 아니라 노사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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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정부와 국회가 방관만 할 일은 아니다. 우선 논란이 되고 있는 통상임금의 불명확성을 정리해야 한다. 법원 판결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란이 지속되지 않도록 해 야 한다.

재계가 임금체계를 개편하려 한다면 노동은 산별교섭을 통해 산별임금체계로 압박하며 맞서야 한다.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해야 기본급 비중 인상도, 노동시간 단축도 가능하다.

재계는 어차피 지급해야 할 임금채권이니 소송까 지 버텨보고, 이를 계기로 임금체계를 유리하게 바꿔보자는 식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는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만 확대시키는 것이다. 임금 체계 개편은 장시간 노동을 줄여 추가 고용을 창출하고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이루 어져야 한다. 그럴 때에만 임금 체계 개편이 고용의 양과 질 모두를 개선하고 노동시장을 긍정적 방 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개별 기업 차원의 소송이나 단체협상으로는 이러한 결과를 기대하 기 어렵다. 재계가 임금 체계 개선에 진정성이 있다면, 최소 산별 단위의 사용자단체를 구성하고 적극 적으로 산별교섭에 나서야 할 것이다.

노동계의 대응 역시 추가 임금 확보가 아닌 장시간 노동관행 축소와 일자리 창출, 임금격차 축소를 핵심 목표로 삼아야 한다. 미지급 임금 채권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 다. 또한 통상임금 범위 확대를 통한 기본급(또는 통상급) 비중 인상은 노사 모두에게 장기노동의 유 인을 줄이고 안정적 소득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노동시장 질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민주노총은 ‘임금격차 해소와 연대임금 강화’를 핵심 기조로 잡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본급 비중 확대, 통상임금 소송 승소 시 보전 임금의 일부를 ‘미조직ㆍ비정규 전략조직화ㆍ투쟁기금’으로 조성하 고, 교섭 요구 과정에서 하청 노동자들과 공동 대응 조직 등을 통해 동일가치노동ㆍ동일임금 원칙을 3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렇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상임금 투쟁이 그나마 노동조합이 조직된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금 체계가 기본급 인상 중심으로 개편된다고 해도, 기업별 교섭 이나 소송으로는 노동시장 내 만연한 성별·고용형태별·기업규모별·연령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어 렵다. 현재의 통상임금 논쟁을 임금체계 개편으로 확대하자는 재계나 정부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은 아니지만, 임금체계 개편 요구를 산별교섭과 연동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의제화 할 필요 가 있다. 지금은 노동운동 진영에게 지혜와 용기, 모두가 필요한 시기다.

3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2013,『통상임금 논쟁의 본질과 대응방향』토론회 자료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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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포럼


정치의 품격 /

안철수와 최장집의 교집합은? 안철수의 ‘새정치’ 최장집의 ‘노동있는 민주주의’ 한윤형 | <미디어스> 기자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이 된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의 선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의문부호가 찍혀있다. 그리고 안철수 의원이 최장집 교수의 영입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에 대해서도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 그간 최 장집 교수의 행보나 싱크탱크 이사장이란 직책의 성격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가 정치권력을 얻기 위 해 이런 선택을 내렸을 거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작년 대선 김종인의 활동이 단순한 ‘노욕’이 아니 라 박근혜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어떤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던 것처럼, 혹은 그 이 상으로 최장집은 안철수를 통해 어떤 가치를 실현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안철수에 대해서는, 그가 정략적 차원에서 최장집 교수의 지원이 필요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최장집의 가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찍힌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최장집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일련의 정치발언의 흐름 속에서, ‘안철수라는 선택’ 에 대한 일관성과 비일관성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노동 중심 진보정당’에 대한 그의 발언은 그 가 여전히 자신의 소신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소신을 실현하는 방법론의 측면에서 그는 ‘안철수라는 선택’을 내린 것일 게다. 그런데 그간 그의 소신은 개혁의 내용 뿐 아니라 방법론의 문제에도 걸쳐 있었는지라, 그가 내세웠던 방법론의 측면에서 이 선택이 정당화될 수 있었는지도 따 져봐야 할 문제다.

안철수로의 환상:‘공감의 슈퍼컴퓨터’ ? 그런데 그의 선택을 평가하기 위해선 먼저 지난 대선 안철수의 ‘새 정치’의 성격과 대선 이후 정계복귀 이후 그것의 변동, 그리고 안철수에 대해 그 지지자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의 내용 등이 맥락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그간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아 왔다. 이 는 실제로 그것이 난해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정치인 안철수가 준비한 콘텐츠가 아직은 빈약하고, 그 의 정치적 위치가 ‘두 개의 떡’을 모두 손에 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안철수 현상’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대의하지 못하는 무당파의 크기가 양당 중 한 정치세력의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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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해진 상황에서 출발했다. 최장집 역 시 바로 그렇게 분석했고, 그래서 그는 ‘안철수 현상’을 카리 스마적 정치인이 정당을 대체하는 포퓰리즘적 현상이라 진단 하면서도 안철수를 비판하기보다는 정당의 책임이 더 크다 보

최장집의 선택은 안철수의 ‘새 정치’의 성격, 그것의 변동, 지지자들의 환상 등을 고려해 평가해야 한다.

았다. 그런데 안철수가 무당파를 대변한다고 했을 때, 그 무당파가 균질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란 것이 문제 였다. 이를테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치적 성향의 중간 정도에 있는 무당파도 있었고, 양당 모두 자 신과 상관이 없다고 믿는 진보적 무당파나 냉소적 무당파도 있었을 텐데, 안철수는 이 모든 지지 세력 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령 제정임 교수와의 대담을 기록한 <안철수의 생각>은 정태인 새사연 원장으 로부터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 있다’는 평을 들었고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경제학자들로부터도 좋 은 평가를 들었다. 그러나 막상 대선후보가 된 후의 발언들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사이에 있는 층을 겨냥했다는 느낌이었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발언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좋게 말한다 면 ’기존의 구도를 넘어서려는’ 시도였으나, 나쁘게 말한다면 ‘양 손의 떡’을 모두 놓치지 않으려는 행보 였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모호한 지향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치권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용했 던 논변의 구조였다. 그의 ‘새 정치’는 일종의 ‘정치혁신’을 요구했다. 그리고 문제가 된 ‘국회의원 정수 축소’와 같은 방안이 그 일환으로 나왔다. 사람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그는 그 제안에 대해 ‘상징적인 것’이라 표현했다. 말하자면 정치혁신은 정치권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며 다가올 경제위기로 인한 고통분담을 정치권이 솔선수범해서 실천하는 것이라 보았다. 일단 기득권을 내려놓고 업무에 있어 국 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때 가서 또 역량을 강화해도 되지 않겠냐는 식이었다. 이런 논변은 좋게 이해해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살아 가는 이의 정치개혁 방안으로는 심히 부족하다고 봐야 한다. 안철수의 발언이 솔깃하다면 이는 우리 가 아직도 전근대적인 ‘관’과 ‘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관이 기득권을 덜어내면 민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아진다는 식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현실을 통해 반추해본다면 정당의 역 량이 약해지면 오히려 사회 각 영역의 인민들을 대의할 길이 막혀 버리며 정치권력에 대한 자본권력의 우위가 강화될 수 있다. 또 이런 견해는 민주주의적 소통이 고려되기보다는, ‘성과’라는 ‘결과’가 중시된다는 점에서 그다지 민주적이지도 않다. 안철수 는 참여정부가 인민의 삶을 개선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 만 참여정부 역시 경제개혁보다는 정치개혁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낳았다는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안철수는 참여정부의 실패라는 결과 위에서 그것을 극복하기 보다는 참여 정부의 노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순진하게 그 출발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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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품격

안철수의 지지자들은 ‘중간 값을 찾아내는’ ‘공감의 슈퍼컴퓨터’의 역할을 기대한다. 안철수 역시 복잡한 힘겨루기를 건너뛰고 ‘상식’으로 횡단하는 투쟁의 방식을 선호한다.


돌아가 기득권 타파를 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안철수의 생각’은 명백하게 최장집 의 견해와는 정반대에 있었다. 그런 안철수에게 지지자들이 기대했던 역할은 일종의 ‘공감의 슈퍼컴퓨터’라 표현할만한 것이었다. 지지자들이 그에게 기대했던 ‘소통’은 민주적이고 절차적인 의미의 소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견 해들 사이에서 ‘중간 값을 재빨리 찾아내는 어떤 능력’이었다. 따라서 대립되는 당파들의 견해들에 공 감하고 그 사이에서 중간 값을 이끌어내는 안철수의 역할은 일종의 ‘슈퍼컴퓨터’가 된다. 가령 이명박이든 안철수든 CEO인 한에서는 결국엔 자신의 판단으로 최종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사 람들의 도식화된 환상 속에서 이명박은 그냥 자기 견해를 밀어붙이고 안철수는 자신과 사원 사이 의 중간견해를 밀어붙인다. 아마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기대하는 바는, FTA는 찬성하지만 이번 한미 FTA는 반대하고, 해군기지를 만드는 것엔 찬성하지만 그걸 하필 강정마을에다 짓는 것엔 반대하는 그런 위치일 거다. 이렇게 소통이 중간 값을 신속하게 찾아내는 능력이 될 때, 사람들은 거기다가 ‘상 식’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안철수는 실제로 이 환상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제주해군기지 결정의 강행에 대해 정부의 사 과를 약속했지만, ‘정부가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존중’하고 기지건설이 법리적으 로 문제가 없었다는 대법원 판결에도 순응한다. 절차와 제도를 만들거나 바꾸기 보다는 그 자신이 나서서 종합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안철수 후보에게 바라는 바는 절차와 제도를 활용한 계 파/정파 간의 복잡한 힘겨루기의 과정을 건너뛸 수 있는 ‘공감의 슈퍼컴퓨터’이며 안철수 역시 이러한 역할을 스스로 자임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 이에게 계파/정파/정당 등의 투쟁은 소모적이며 본인의 ‘상식’으로 횡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득권 세력’에 대한 안철수의 불만이며 투쟁의 방식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상식’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견해의 중간 값 은 결코 빈도수가 높은 답변이 아니다. 가령 5ㆍ16은 긍정하지만 유신을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고, 박정희는 긍정하지만 전두환을 부정하는 이 역시 많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독재정권을 긍정하는 이 는 독재정권의 대부분의 것을 긍정하는 극단으로 가기 십상이며 민주화세력을 지지한다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평균값’(모든 값의 평균)이 ‘최빈값’(빈도수가 가장 높은 값)이 아니라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증표가 된다. 그러나 평균값과 최빈값이 근접하려면 각자의 ‘상식’을 사는 이들 사이에 치열한 논박이 필요하지 신속하게 중간 값을 찾아내고 결론을 내리는 능 력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결국 ‘상식’의 총합은 별로 ‘상식적’이지 않다. 따라서 우리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식의 이름으로 몰상식을 규탄하는 ‘상식의 독재’가 아니다. ‘다른 상식끼리의 소통’이다.

필요한 것은 상식의 이름으로 몰상식을 규탄하는 ‘상식의 독재’ 가 아니라, ‘다른 상식끼리의 소통’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 통은 어떤 절차와 제도를 경유하지 않고 이루어질 수는 없다. 안철수는 여전히 이 부분을 경시하는 태도를 고치지 않았다. 그 는 대선 후 정계복귀 이후에도 ‘공감의 슈퍼컴퓨터’의 환상에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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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한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도 여러 현장을 찾아다녔다고 주장했지만 올해의 정계복귀 이후엔 특히 현장의 목소리를 강조하고 있다. 절차나 제도가 존재해야 할 공간에 안철수라는 슈퍼컴퓨터를 배치 하는 것이다. 여기서 최장집과 안철수의 모순이 생긴다. 최장집은 그간 정당정치를 꾸준히 강조해왔 던 사람이다. 최장집이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려면 안철수라는 슈퍼컴퓨터 대신 절차와 제도, 노동 조합과 정당과 같은 중간단체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최장집은 그저 생각을 180도로 뒤집은 것 일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최장집과 이상이의 발언을 복기하면 : 과정의 개혁과 결과의 개혁 2011년 1월만 하더라도 복지국가 담론이 대세가 되어 진보파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승리할 수 있 다는 희망이 팽배했다. 제주대 이상이 교수가 대표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같은 단체의 경우 ‘복지 국가단일정당론’으로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연합하여 양당제의 한축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도 했다. 과거 최장집은 이러한 흐름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모두가 복지국가를 외칠 때 홀로 반대한 그의 논지는 개혁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에 있었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중심은 산출보다는 정책의 인풋사이드(input side), 즉 투입 측면이 중심이라고 봅니다. 말하자면 특정한 정책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사회로부터 투입할 것인지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반대로 권위주의 하에서의 정책 산출은 최고통치자와 그를 둘러싼 권위를 가진 전문가들이 모여 디자인을 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힘 으로 억압해서 만들고 추진하면 끝입니다. 민주주의는 그게 아닙니다.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자 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정책으로 정치인과 정당을 통해 대표되고 그것이 정책결정과정에 투입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라 하겠습니다.

현재 우리의 복지담론은 인풋 사이드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 정책적 내용이 무엇인가, 여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논의는 모든 정당이 다 할 수 있는 것이죠. 진보파인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얼마든지 복지정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특정의 복지정책내용을 요구하는 사회집단과 교섭하지 않고도 정치인들과 전문가 지식인들이 자유롭 게 좋은 복지모델들을 취사선택해서 좋은 복지프 로그램을 만들어 내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가장 간단한 지표로 노조 조직율이 10%대로 떨어 져있는 오늘의 한국정치현실에서 복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잡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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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품격

최장집 교수에게 ‘노동’은 민주주의의 투입측면을 의미한다. 그는 투입측면이 약화되는 현실에서 무당파를 활용한 반전을 고민한 것이다.


오늘의 한국사회에서의 복지논의는, 한국 민주정치의 특징적인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의 중요한 이해당사자들이 정치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고 정치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당정치의 약화와 집행부의 권력 집중으로 나타납니다. 특정한 정책을 놓고 이해관계를 갖는 집단들이 이익집단이든 노동조합이든 정당이든 조직을 해서 스스로 자 신들의 요구를 말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조직해서 선거에서 표로서 집단화하고, 그들 스스로 가 크든 적든 정치적 행위자가 돼서 정치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 때, 복지 문제는 자연스럽게 제 기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전부 억압되고 있어요. (...)

앞에서 이야기한 ‘민주 대 반민주’ 담론이 갖는 한계도 이러한 상황과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들이 들어오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작동이 어려울 뿐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틀 속에서 권위주의 정치가 반복되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일하는 사람, 노동하는 생산자 집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 에서 지금 정치권이 제기하고 있는 복지는, 특정의 정당, 특정의 정치세력이 집권하기 위한, 그 리고 집권했을 때 그것을 시행하는 방법이 행정기구를 통한 사실상 온정주의적인 복지를 의미 하는 것 이상이 아닐 것입니다.“ 프레시안 기사“빈곤화 문제의 실종, 한국정치의 최대 문제” [최장집 인터뷰ㆍ下]“복지 유행병, ‘보고서 정치’ 의 유산” (2011.1.3.) 중에서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최장집 교수가 ‘노동 없는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에도 그 ‘노동’이 진보정당 이나 좌파담론에서 말하는 ‘노동’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의 ‘노동’은, 차라리 민주주의 이론의 차원에서 ‘투입 측면’을 대표하는 단어에 해당한다. 물론 ‘노동’이란 말이 ‘투입 측면’을 대표 하는 말이 될 수 있는 것도 최장집이나 좌파들이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 다. 하지만 그렇기에 일부 안철수 지지자들이 최장집의 ‘노동 중심 진보정당’을 ‘기존 진보정당 노선’ 이라 비판하는 것도 번지수에 안 맞는 얘기일 수 있다. 안철수와 최장집은 ‘기존 진보정당 노선’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최장집의 주장의 핵심은 정책 결과만 따져 서는 안 되고 투입이 가능한 체제를 만들어내야 민주주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의 의견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정론이지만 사회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그의 제안이 일 종의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가 되어버리는 측면이 있다. 노조조직률이 갑자기 높아질 리도 만무하 고 이해관계자를 정치 영역에 끌어들이는 정당의 투입능

‘제3정당’을 말한 최장집, 최장집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을 들고 귀국길 비행기에서 내린 안철수

력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안철수 현상’은 정당들이 사회문제에 대처 하지 못하면서 무당파의 규모가 민주당에 맞먹거나 능 가할 정도로 커져버린 현실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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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 역시 ‘안철수 현상’을 그렇게 분석했다. 따라서 그는, 투입측면이 약화되는 현실을 보면 서, 이 무당파의 열망을 활용하여 그러한 사정을 반전시키는 방법을 고민했음직하다. 말하자면 ‘과 정의 개혁’에서 ‘결과의 개혁’으로의 전환이다. 그리고 이는 안철수 본인이 작년 대선 과정에서 ‘새 정 치’를 정치개혁 의제로 취급하다가 올해 정계복귀 이후부터는 최장집의 저술과 영화 <링컨>을 참조하 여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결과를 내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게 된 것과 포개진다. 말하자 면 안철수의 ‘새 정치’가 여전히 모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모호성은 각론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새 정치’가 강조하는 포인트 자체는 이미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는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연하지는 않다. 최장집은 안철수가 한국 정치에 기여하는 바는 제3정당을 만들어내고 이를 착근시 키는 것일 거라 연초에 전망했는데, 굳이 귀국길 비행기에서 그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 처들>을 들고 내린 안철수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투입이 아니라 산출의 개혁, ‘결과를 내는 정치’를 말한다면 최장집이 비판했던 ‘복지국가단일 정당론자’들의 견해를 다시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이상이 교수는 노조조직률을 높여야 복 지국가가 오는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가 와야 노조조직률도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입장에 서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서 그는 진보신당의 견해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 견해는 최장집의 견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신당은 노동 없이 복지국가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이 10% 남짓밖에 안 되기 때문에 복지국가가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노 조조직률을 이유로 복지국가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복지국가론’을 내 놓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저는 한국의 조직된 노동이 10%밖에 안 되고, 그 10%도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조직돼 있는 이 현실은 복지국가로 가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제가 노동 없는 복지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노동 있는 복지’를 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여기서의 ‘노동’은 노동자 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10%의 대기업 정규 직 노동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90%에 달하는 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다. 또 이 사 람들은 지역과 시민사회에서 서민이나 시민으로 불 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 하다고 본다. 기존의 노동운동은 이 부분을 포괄하 는 데 실패했다. 앞으로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을 더욱 강화해 나가면 이게 가능해 질 것인가? 저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국가의 제도적 복지와 시장개입을 통한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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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품격

우리 입장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상이 교수가 진보신당의 견해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 견해는 최장집의 견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지 있는 노동’이라고 본다. 즉 국가가 보편적 복지를 제도화함으로써 미조직 노동이 조직될 수 있는 계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복지국가가 있어야만 노동의 조직력도 높아질 수 있다. (...)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10%밖에 안 되는데, 유럽 국가들처럼 50%, 혹은 70~80%가 돼야 노동에 기반을 둔 정당이 만들어지고, 그 정당을 통해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 가. 그러나 이것은 오래된 과거의 논리다. 스웨덴에서는 이미 80년 전에 있었던 방식이다. 80년 전의 스웨덴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를 향한 열망이 어디에서 주로 나오고 있는지 찾아보자. 현대 자동차나 현대 중공업 다니는 정규직 노 동자들로부터 인가, 아니면 거기 다니는 또는 중소기업 다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인가? 누가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이 강할까. 누가 사회적 약자이고, 누가 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나. (...) 그 사람들은 회사에서 기업별 복지에 의존하고 있고, 강력한 조직력을 통해 임금협상이나 단체 협약에서 지속적으로 자기 지분을 따오고 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이대로도 별 문제가 없는 것 이다. 프레시안 기사“복지국가 단일정당 못 만들면 한나라당에 필패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1>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2011.1.11.) 중에서

안철수가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상이의 말을 최장집의 입장에서 번역한다면, “일단 훌륭한 결과물이 나와야 사람들이 훌륭한 결과 물을 산출할 수 있는 투입의 필요성을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고, 결국 투입측면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이상이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민주당을 중심으로 야권이 하나의 정당으로 뭉 쳐 복지국가를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최장집은 그러한 시도는 여전히 ‘위로부터의 개혁’, ‘권위주의 정치’에 불과하다고 볼 것이다.

두 사람의 예언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복지국가단일정당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필패한다는 이상이 의 예언은 적중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복지국가 담론이 투입측면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누리당도 공약을 남발할 수 있었다는 점을 본다면 최장집의 견해 역시 통찰력이 있었다. 그 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까.

최장집이 현실정치에 개입을 하려 한다면 그 역시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낼 정치��� 주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투입측면이 고려되어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정치학자의 언설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다. 사실 최장집은 그간의 저술에서도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등 실천의 문제 를 전혀 도외시하지는 않았다. 결국 최장집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카리스마적 정치인’으로 안철수 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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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정치적 발언의 궤적에서 보자면 그가 추구하는 ‘결과’는 정책내용이 아니라 투입측면 문제의 개선이어야 한 다. 여기에서 최장집의 ‘안철수라는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지 점이 생긴다. 안철수를 통해 ‘노동 중심 진보정당’을 말하는 건 한 정치세력의 정책내용이 아니라 투입측면을 개선하겠다 는 의사이고, 민주당을 통해서는 이를 실현할 수 없으리라는

최장집은 ‘카리스마적 정치인’으로 안철수를 선택했다. 문제는 안철수가 ‘공감의 슈퍼컴퓨터’를 넘어 ‘제도’를 만들어낼 것인가다.

판단에서 나온 전략적 선택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때 최장집의 행보는 또 다시 난관에 봉착한다. ‘노동 중심 진보정당’이 단지 노동 자 친화적 경제정책을 짜는 문제라면 안철수와 최장집과 장하성의 머릿속에서도 기획될 수 있다. 하 지만 이 기획이 그간 최장집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정당의 투입측면의 개선 문제’라고 본다면 필 연적으로 “그걸 어떻게?”라는 질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신당, 안철수의 새 정치는 중간단체의 정치적 매개가 약화되는 한국 사회의 실정에서 어떻게 민주당과는 달리 투입측면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각계각층 사람들을 만나고, 각계각층 사람들을 조직하고, 그들의 요구와 열망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선 아직도 어떠한 구체적 대안도 제출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안철수가 이를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원로 정치학자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역설적으로 평범한 안철수 지지자들의 환상인 ‘공감의 슈퍼컴퓨터’에 근접해 있다. 현재 안철수 의원이 최장집 교수의 발언에 약간의 거리두기를 하는 상황이 최장집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정도의 정치적 행보야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안철수 의원이 지금까 지 서술한 최장집 교수의 문제의식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그래서 한동안은 ‘공감의 슈퍼컴퓨터’ 의 능력을 보여주다가 결국은 그 능력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 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에 달려 있다.

한국 정치의 실정을 볼 때 최장집의 선택은 실천을 위해선 불가피하게 보이는 측면도 있으나, 결코 만만찮은 과제를 남겨두고 있음이 분명히 확인되는 것이다. 최장집의 기획이 필자가 분석한 수준에 서의 일관성을 가지려면, “정책네트워크 내일”은 단지 진보적 정책만을 생산해서는 안 되고 우리 사 회 각 영역의 시민들의 열망과 욕망을 담아낼 수 있는 정당 제도의 개혁안을 구체적으로 제출해야 한 다. 노동조합과 영세상공인단체 등의 중간단체가 대단히 미약한 사회에서 그 정당이 어떻게 사람들 을 대의할 수 있을지를 논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작업의 어려움과는 별개로, 안철수나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다른 구성원들은 최장집의 의 중과 목표를 이해는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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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품격


당원 필독 도서 10선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지성의 힘! 진보신당 기획국장 | 양솔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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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과 ‘유토피아’사이의 긴장 리얼 유토피아

함께 읽을 책

에릭 올린 라이트 씀 들녘 | 18,000원 | 2012년

80년대, 무수히 많이 외친 단어 중 하나는 바로 ‘해방’이었다. ‘해방’을 생각하면 가 슴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그런 어휘였다. 그러나 ‘해방’된 세상이 무 엇인지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말문이 막히곤 했다. 말하자면 ‘해방’은 모두가 합의 한 구체적인 목표라기보다는 낭만적 요소를 흠뻑 머금은 마취제였던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사회학자인 에릭 올린 라이트(Erik Olin

분배의 재구성 브루스 액커만, 필리페 반 빠레이스 외 씀 나눔의집 | 18,000원 2010년

Wright)는 1990년대 초부터 마이클 뷰라보이와 함께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다섯 권의 책을 출간했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둘러 싼 이론적 논쟁을 담은 <분배의 재구성> 역시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일환 중 하나이다.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목적은 다른 게 아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 할 것 같은 ‘해방적 사회변화’, 즉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보통 진보주의자, 혁명가, 급진주의자를 말할 때, ‘이상주의자’라고 칭하지만, 단지

윌리엄 F. 화이트, 캐서링 K. 화이트 씀 역사비평사 | 17,000원

우리가 ‘이상’만을 쫓거나, ‘꿈’을 절대화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한

2012년

현실을 지양하고자 하는 활동은 반드시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 문이다. 예를 들어 ‘참여예산제’, ‘위키피디아’, ‘몬드라곤 협동조합’, ‘무조건적 기본소득’, ‘퀘벡 노동연합 연대기금’ 등을 현실에서의 유토피아적 대안들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들 자체보다는 제도의 형성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사회권력 강화’가 더 욱 중요한 점으로 본다. ‘고요한 소란’, ‘오래된 미래’와 마찬가지로 이 모순에 가 득찬 합성어 ‘리얼 유토피아’는 그렇기에 우 리가 변혁의 과정에서 맞이할 수밖에 없는 ‘꿈’과 ‘실천’ 사이의 긴장을 강조한다. 그 긴장이 우리를 단련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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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당원 필독 도서 10선

부당한 현실에 맞서는 자는 그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을 수밖에 없다. ‘꿈’과 ‘실천’사이의 긴장, 그 긴장이 우리를 단련시킬 것이다.


기후는 ‘정의’ 의 문제다 함께 읽을 책

기후정의 이안 앵거스, 패트릭 본드 외 씀 이매진 | 20,000원 | 2012년

기후변화 문제만큼 대중들에게 갑작스레 등장해 대세를 점한 담론의 예는 별로 없 는 듯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기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 생태혁명 존 벨라미 포스터 씀 인간사랑 | 19,000원 2011년

히 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기후를 주어진 것으로만 여겼다. 여름에는 덥 고, 겨울에는 춥고, 장마철에는 비가 오는게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당 연한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짧은 시간에 내리는 폭우의 빈도가 많아지고, 제주에 서만 잡히던 자리돔이 해수온도 상승으로 울릉도에서도 잡힌다. 뭔가 대단히 혼란 스러운 상황이 대중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두가 알게 된 변화의 양상은 그러나, 그 원인을 대중들에게 제대로 알려주 지는 못하는 것 같다. 따라서, 어느날 갑자기 나 자신이 이 환경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연출되는가 하면, MB정부와 같이 정부나 지자체가 ‘녹색과 생태’의 수호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기후정의>는 현재의 ‘기후변화’의 주범이 ‘자본주의’ 그 자체이며, 생태적 지속 가 능성은 멈추지 않는 욕망을 생산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준 다. 이 책에는 무수히 많은 저자들이 등장한다. 카스트로와 같은 잘 알려진 인물 뿐만이 아니라 우고 블랑코와 같은 생소한 원주

기후변화의 주범은 ‘자본주의’ 그 자체다. <기후정의>는 생태적 지속가능성이 자본주의 체제와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민운동가도 있다. 이 책에는 90년대 초부터 2009 년까지 기후변화와 관련한 급진적 진단들이 성명 서, 기사, 연설문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총 망 라되어 있다. 보다 넓은 시야뿐만 아니라 보다 적 확한 시각으로 ‘글로벌한 기후정의의 대안’을 모 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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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가능에너지는 가능하다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함께 읽을 책

강양구 씀 사이언스북스 | 15,000원 | 2011년

석유를 값싸게 쓸 수 있었던 시대가 끝났다고 한다. 이산화탄소를 이대로 더 배출 하다가는 기후 변화가 재앙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를 보면 핵발전은 분명 대안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화석 에너지, 핵 에너 지가 아니라면 과연 그 자리를 대신할 에너지원이 있을지 의문이 가는 게 사실이다.

착한 에너지 기행 김현우 외 이매진 | 2010

그래서 에너지 위기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좀처럼 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가 쓴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부제: 원자력과 석유 없는 세상을 준비하는 에너지 프로젝트)는 이런 의문에 답하는 책 이다. 제목부터 재치가 넘친다. ‘아톰’, ‘코난’, 둘 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테즈카 오사무의 ‘아톰’은 이름 그대로 핵 에너지를 예찬하던 시대의 산물인 반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코난’에서 이상향으로 나오는 하이하바 섬은 태양과 바람에

나쁜 에너지 기행

서 에너지를 얻는다. 여기에서 이 책의 당파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 책은 태양 에

이매진 | 2013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너지, 풍력, 바이오매스 등 재생가능에너지 중심으로 우리의 에너지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생활인의 의혹에 대해 하나하나 친절히 답해준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하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쟁점을 미리 들춰내 해명함으로써 대안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높인다. 함께 읽을 만한 책들 도 풍부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 면 누구나 어느덧 에너지 전환의 전도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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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당원 필독 도서 10선

재생에너지에 대한 생활인의 의혹에 대해 하나하나 친절히 답해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에너지 전환의 전도사가 될 것이다.


협동조합 전성시대의 필독서 깨어나라 협동조합

함께 읽을 책

김기섭 씀 들녘 | 13,000원 | 2012년

바야흐로 협동조합 전성시대다. 모두가 ‘협동조합’을 이야기한다. 주식회사 ‘프레 시안’은 문을 닫고 협동조합 ‘프레시안’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협동조합 참 좋다 김현대, 차형석 씀 푸른지식 | 15,800원 2012년

원주에서 목포까지 광범위한 에너지들이 결집해 온갖 종류의 협동조합을 만들고 있다. 단지 UN에서 지정한 ‘협동조합의 해’의 영향만은 아니다. 단지 협동조합 기 본법의 제정으로 인한 붐이 아니다. 근저에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야기한 심각한 위 기상황이 있고, ‘시장’과 ‘국가’라는 협소한 선택지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호 혜적 경제와 대안적 시스템을 일구고자 하는 선한 욕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의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협동조합 붐은 걸으며 묻고 답하는 과 정 없이 현기증나는 질주의 흐름에 내맡겨진 건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모르면 묻고, 돌다리는 두드리고, 초석은 다져야 하는 법. 협동조합의 역사와 정의, 현실 과 미래, 의미를 정치하게 묻고 답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저자 김기섭은 자신이 오랫동안 협동조합 운동을 해 오면서 고민했던 바를 풀어 놓는다. 그렇기에 이 책 은 협동조합에 대한 단순한 소개에 머무르지 않으며, 보다 철학적 물음과, 근본문 제에 대한 질문을 포함한다. 저자는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발전 과정을 분석함과 동시에 협동조합의 ‘거듭남’을 촉구하고 나선다. 지난 시

돌다리는 두드리고 초석은 다져야 하는 법. 협동조합의 역사와 정의, 현실과 미래를 정치하게 묻고 답해보자.

기, 한국의 사회운동은 협동조합운동을 버려두었다. 이제 우리 운동은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이라는 양날개를 넘어, 협동조합을 취하려 하고 있다. 3은 가장 ‘완전한 숫 자’를 의미하고, 그래서 ‘전체’를 일컫는다고 한다. 균형과 긴장의 삼두마차를 이제는 놓치지 말자. 우리 운동을 ‘전 체’로 완성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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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집 <민중의 집>

함께 읽을 책

정경섭 씀 레디앙 | 15,000원 | 2012년

우리 당의 여러 지역조직들은 ‘민중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거점 공간을 만들고 있 다. 옛날 책에는 ‘인민회관’으로 번역되기도 한 이 민중의 집은 유럽 여러 나라의 초기 노동운동, 좌파정당운동 역사에 빠짐없이 등장하곤 한다. 벨기에에서 그랬 고, 스웨덴에서 그랬으며, 이탈리아에서도 그러했다.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 G. D. H. 콜·김철수 옮김 책세상 | 2012년

민중의 집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문화 센터였다. 우리가 아는 문화 센터들처럼 그 기본 설비는 집회실, 오락실, 식당, 정원 등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관청이나 기업이 만들어준 게 아니라 민중이 직접 만든 시설이었다는 점이다. 일단 스스로 이런 시설을 만든 사람들은 이 건물을 통해 자신들이 꿈꾸던 공동체적 삶을 꾸며 나갔다. 노동조합원들은 공장에서 일할 때나 간혹 파업 투쟁을 벌일 때만 서로 만 난 게 아니라 민중의 집의 식당이나 오락실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도 이 장소에 모여 같이 공부하거나 여가 활 동을 벌였다. 많은 경우, 소비협동조합이나 노동자 진료소 등이 입주해 그야말로 생활 공동체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중의 집에 대한 우리말 자료는 찾기 쉽지 않다. 국내 민중의 집 1호인 ‘마 포 민중의 집’을 만들고 민중의 집 운동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해온 정경섭 당원이 이 빈 곳을 메우기 위해 나섰다.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의 민중의 집 사례들을 직접 탐방한 뒤 그 성과를 <민중의 집>(레디앙, 2012)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모아 낸 것이다. 이 책은 한 세기 전 역사를 소개 할 뿐만 아니라 그 유산들이 지금은 어떠 한 도전에 마주하고 있는지도 냉정히 짚는 다. 진보정당운동이 어떻게 지역 생활 현장 에 뿌리 내릴지 고민하는 모든 당원에게 토 론과 실천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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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당원 필독 도서 10선

국내 민중의 집 1호 ‘마포 민중의 집’을 만들고 전도사 역할을 자처해온 정경섭 당원이 유럽 민중의 집 사례를 직접 탐방하고 왔다.


상상하라! 진보적 지방정치 함께 읽을 책

런던 코뮌: 지방사회주의의 실험과 좌파 정치의 재구성 서영표 | 이매진 | 2009년

한국 진보 진영은 여전히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 정도로 바 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이런 우리 상상력의 한계를 깨는 데는 다른 나라의 진보적 새로운 민주주의의 희망: 뽀르뚜 알레그리

지방자치 사례들을 접하는 게 도움이 된다. 그 중 한 사례가 1980년대 초 영국 노

마리옹 그레·이브 생또메 김택현 옮김 박종철출판사 | 2005년

동당 좌파가 이끌던 런던 광역시정부다. 1979년 영국에서는 대처의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신자유주의 중앙정부가 들 어섰다. 반면 2년 뒤인 1981년 지방선거에서는 곳곳에 좌파 지자체가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런던 광역시정부는 노동당 안에서도 좌파이던 켄 리빙스턴이 이끌었 다. 이들은 대처의 중앙정부에 맞서며 과감한 ‘지방 사회주의’ 실험을 펼쳤다. 첫째, 지자체 산하 공공부문을 복지·공공재 영역뿐만 아니라 제조업으로까지 확

머레이 북친의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

대했다. 민간 기업을 인수하여 지방 공기업이나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머레이 북친 서유석 옮김 | 메이데이 2012년

둘째, 관료주의를 비판하고 참여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복지국가의 관료주의적 측 면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복지국가를 비판할 때 좋은 소재가 되어주었다. 이와 달 리 런던 광역시정부는 정책의 기획 및 입안 단계에서부터 집행 및 평가에 이르기까 지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셋째, 전통적 노동운동의 경계를 넘어 서는 다양한 사회운동들과 결합했다. 노동운동 중에서도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새 로이 부상했고, 여성운동·환경운동·유색인운동·성소수자운동 등이 진보적 지자 체의 중요한 동맹 세력이 되었다.

지방정치는 중앙정치로 진출하는 교두보인가? 상상력의 한계를 깨보자. 영국에서 벌어졌던 ‘지방 사회주의’ 실험을 소개한다.

서영표 당원(제주대 교수, 사회학)의 역작 < 런던 코뮌>은 이 사례를 상세히 소개할 뿐 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실천에 던지는 풍 부한 함의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지방선거 를 준비하는 당원들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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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운동의 신화, 이재유와 ‘경성 트로이카’ 경성 트로이카

함께 읽을 책

안재성 씀 사회평론 | 12,000원 | 2004년

80년대 말, 90년대 초 운동에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읽었던 책이 있다. 바로 <파업>이다. 소설가 안재성이 쓴 <파업>은 당시 운동가가 지향해야 하는 삶 과 조직론을 ‘도식적’으로 보여준 노동소설이었다. 좌파들에게 <파업>이 있다면,

이재유 나의 시대 나의 혁명

NL에게는 차주옥이 쓴 <함께 가자 우리>가 있었다. 그래서 경쟁자의 조직활동의

김경일 씀 푸른역사 | 2007년

모습을 알기 위해 두 책을 번갈아 보기도 했었다. 소련이 무너진 후 얼마 있지 않아 안재성은 조용히 사라졌다. 그랬던 그가 2004년 불쑥 나타났다. 바로 <경성 트로이카>라는 생소한 이름의 책을 들고 말이다. 이 책 은 30년대 일제 하 경성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혁명가들의 조직인 ‘경성 트로이카’ 에 관한 소설이다. 경성 트로이카는 러시아어로 세 마리의 말이 이끄는 삼두마차다. 중심 인물은 불 굴의 사회주의 운동가 이재유, 그리고 남부군 총사령관이 된 이현상, 남로당 총책 김삼룡이다. 여기에 여성혁명가 박진홍, 이순금과 매력적인 혁명가 이관술이 등장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임경석 씀 역사비평사 | 2008년

한다. 이른바 ‘국제선’이라 일컫는 코민테른에 대해 자주적이었고, 대중운동을 강 조한 이 사회주의 조직은 조선공산주의 운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경성 트로이카-경성콤그룹-남로당으로 이어 지는 흐름이 소멸하면서 혁명운동의 정통성은 북한 당국이 독점하고 만다. 그러나 영원한 잊혀짐은 없다. ‘사라진 시간’은 안재성의 손으로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되살아났다. 이후 안재성은 <이관술>과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 등에 대한 평전을 쓰면서 ‘경성 트로이카’ 운동가들을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평양고무공장 파업과, 중국 홍군이 대장정에 나섰던 1930 년대. 암흑과 같았던 식민지 조선반도의 심 장 경성을 활보하던 혁명가들의 기개를 느 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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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당원 필독 도서 10선

1930년대 엄혹한 시대에 노동운동을 하던 혁명가들의 조직 ‘경성 트로이카.’ 그 사라진 시간을 소설가 안재성이 복원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공산당 선언

함께 읽을 책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 번역본 다수

<공산당 선언>은 과거에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정당 운동의 바이블이나 마찬가지 마르크스 사용 설명서 다니엘 벤사이드 양영란 옮김 에코리브르 | 2011년

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 책을 100년 전과 똑같은 태도로 읽을 수는 없다. 우리에게 는 한 세기 전보다 훨씬 더 비판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 아지의 무덤 파는 자”라는 낙관을 무턱대고 신앙할 수도 없고 “국가는 부르주아 지의 집행위원회일 뿐”이라는 명제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도 이 문헌이 지금도 필독서의 가치를 지니는가? 그렇다. 무엇보다도 <공산당 선언>이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창 한 문서이자 그것을 가장 단호하게 언명한 문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쓰인 것은 1848년 유럽 혁명을 몇 달 앞둔 1847년 겨울이었다. 1848년 유럽 여러 나라를 휩쓴

왜 마르크스가 옮았는가

혁명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여전히 국왕, 귀족 세력을 몰아내고 자

테리 이글턴 황정아 옮김 길 | 2012년

유주의 체제를 건설하는 게 현안이었다. 이 혁명에서 노동계급은 아직 부르주아지 를 거드는 조연 역할에 머물 운명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혁명을 앞두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책에서, 부르주아지는 실 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적이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새로운 혁명에 착수하기 위해 독자적인 정치 세력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외친 것이다. 너무나 앞서 나간 이 야기였고, 그 당시 사람들이 듣고 싶었던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두 명의 저자는 자신들이 진실이라 생각한 것을 감히 말했고, 그 진실의 드러남을 재촉하기 위해 씨 뿌리는 노동에 나섰다. 오늘날 우리가 <공산당

<공산당 선언>은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창한 문서이자 그것을 가장 단호하게 언명한 문서다.

선언>을 읽으며 새삼 확인해야 할 것은 두 저자가 자신들의 ‘정치’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이 기본 태도 아닐까. 덤으로, 우리 당 새 강령 중 <공산당 선언>에 뿌리를 둔 문구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 도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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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과 사회주의의조우 자유로 가는 길

함께 읽을 책

버트런드 러셀·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 15,000원 | 2012년

20세기의 저명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민주적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인물 이었다. 러셀의 저서들 중 사회주의 이념을 분명히 드러낸 저작은 최근에야 우리말 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1차 대전 와중에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입문 서로 쓴 책 <자유로 가는 길>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 2005년

이 책은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십 수 년 간 서구 세계를 뒤흔들었던 세 가지 좌 파 조류를 검토한다. 그 중 첫 번째는 마르크스주의 혹은 러셀이 파악한 그 실현 형태인 국가 사회주의다. 두 번째는 마르크스주의의 오랜 숙적 아나키즘이고, 나 머지 하나는 20세기 벽두에 프랑스와 미국의 노동운동을 통해 기염을 토하던 생디 칼리슴이다. 러셀은 이 세 흐름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점차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탈자

우애의 경제학 가가와 도요히코

본주의 대안 사회의 밑그림을 그려간다. 그는 이것을 “아나키즘의 진정한 교훈을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9년

흡수한 사회주의”라 부른다. 이것은 국가나 시장을 활용하는 현실적인 길을 취하 면서도 이 모든 노력의 종국적 목표가 바로 모든 개인의 자유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는 사회주의다. 자본의 자리에 다른 어떤 집단을 들이미는 게 목표는 아니다. 주 인이 되어야 할 것은 자유로운 개인들이다. 그래서 책 제목도 ‘자유로 가는 길’이다. 러셀이 이 책을 쓸 무렵 영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구상이 여러 논자들을 통해 제기 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상은 ‘길드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 핵심은 국가 관료 통치가 아니라 노동자 자치를 통 해 산업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러셀은 <자유로 가는 길> 곳곳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가장 바람직한 모델은 길드 사회주의라고 천명한다.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와 는 다른 탈자본주의 대안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러셀의 책은 더없이 좋은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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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당원 필독 도서 10선

러셀이 그려본 대안사회는 “아나키즘의 진정한 교훈을 흡수한 사회주의”이다.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은 자유로운 개인들이다.


“노동인권이 뭐야?” 함께 읽을 책

10대와 통하는 노동인권 이야기 차남호 씀 철수와영희 | 3,500원 | 2013년

여기 또 다른 ‘전설(?)’이 돌아왔다. 저자 차남호는 80년대 후반 인천노동조합협의 청소년 인권 수첩 크리스티네 슐츠-라이스 공현 씀 양철북 | 2010년

회(인노협)와 ‘전노협’, ‘민주노총’에서 기관지 기자와 편집장 등으로 일하며 오랫 동안 한국 노동운동을 기록해 왔다. 지금은 귀농해 농사를 지으면서 그 과정을 평 등사회교육원 <함께하는 품>에 ‘새내기 농사꾼일기’를 연재 하고 있다. 말하자면 성공적으로 노동에서 농민으로 ‘존재이전’에 성공한 셈이다. 최근에는 진보신당 농 업위원회 활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청소년 노동인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빈곤 이 심화되면서 청소년의 노동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각 지역에서 ‘청소년 노동인 권 네트워크’도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10대들’에게 노동인권을 어떻게 설명할 건지 생각할수록 막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청소년들이 알아야 할 ‘노동법’이나 ‘노동권’에 국한된 내용만을 담고 있 지는 않다. 산별노조, 일반노조, 노동자정당 운동, 자본주의와 가치 형성, 테일러 주의, 포드주의, 신자유주의 등의 축적 체제, 노동시장 분절 등 노동사회학이나 노 동조합론 등의 내용을 폭넓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얼핏 보면 과연 10대들이 이 책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의 부제인 ‘노동과 세계’가 더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저자의 딸과 ‘함께 검토’하며, 눈높이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 책은 또한 작은책에 연재되던 ‘천하무적 홍대리’를 그린 홍윤표 화백의 그림, 이 수정 노무사의 감수를 통해 보다 더 완

최근 청소년 노동인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빈곤이 심화되면서 청소년의 노동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성된 형태의 책으로 묶일 수 있었다. 우 리 자식들에게, 예비 당원들에게 책 한권 씩 선물하면서, 우리 미래 노동자세대의 건투를 빌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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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좌파 이웃좌파 /

세상에는 어떤 좌파정당들 있나 좌파정당의 여러 흐름 그리고 새로운 변화 장석준 | 진보신당 부대표

사회민주당, 사회당, 노동당, 공산당, 녹색당 ... 좌파정당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간간히 외신에 이런 이름들이 오르내릴 때마다 먼 곳의 동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정당의 과거 역정이 어떠했는지, 요즘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이들의 고민은 무엇이고 그것은 지금 우리의 고민과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해 풍부한 이야기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이 갈증을 풀기 위해 우선 세계 곳곳에 어떠한 좌파정당들이 존재하는지부터 짚어보자.

작년 총선 당시의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


좌파정당의 고전적 두 흐름 -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좌파정당들은 몇 개의 무리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번째 무리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다. 독일 사회민 주당, 프랑스 사회당, 영국 노동당,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네덜란드 노동당, 스페인 사회노동당 등 유럽의 주요 좌파정당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정당은 대개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좌파정당의 첫 세대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도 더 전인 1860년대에 세계 최초의 좌파 대중정당인 독일 사 회민주당이 등장한 게 그 출발점이었다. 그 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노동 (자)’ 등의 이름을 내건 정당들이 등장했고, 2차 대전 이후에는 이들이 복지국가 건설을 주도했다. 유 럽에서는 지금도 대체로 이들 정당이 여당이거나 제1야당이다. 현재 집권당으로는 프랑스 사회당, 덴 마크 사회민주당, 노르웨이 노동당 등이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유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국제 조직인 ‘사회주의 인 터내셔널’(SI)에는 많은 비유럽권 정당들이 가입해 있다. 그 중에는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성격 이 비슷한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뉴질랜드 노동당, 캐나다 신민주당, 칠레 사회당 등도 있지만, 제 3세계의 좌파 민족주의 운동에서 출발한 정당들도 꽤 있다. 규모가 큰 것만 열거해도, 터키의 공화인 민당, 멕시코의 민주혁명당,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민 족회의 등이 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멕시코 제도혁명당(위의 민주혁명당의 주적)처럼 좌 파정당이라 보기 힘든 부패한 기득권 세력도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사회민주당, 말레이시아의 민주행동당 등이 주요 회원이다. 신자유주의의 절정기이던 지난 20여 년 동안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중 상당수는 ‘제3의 길’, ‘새로운 중도’ 등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이 대표적인 사례였 다. 이 때문에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며 이들 정당은 정권을 잃거나 지지율이 급���했다. 재정 위기 에 휩싸인 그리스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이 그간 소수 정당에 머물던 급진좌파연합(SYRIZA)에 좌파의 대표 자리를 내주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그 공범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이들 정당 내부에서는 ‘제3의 길’ 노선을 청 산하고 과거의 정통 사회민주주의를 새로운 상황에 맞게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 회의 모습. 서 있는 사람은 현 의장인 전 그리스 총리 게오르그 파판드레우(왼쪽) 남아공에서 열린 제24차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대회(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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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녹색당 당원들의 복지예산 삭감 반대 시위(왼쪽), 기후변화 시위(오른쪽)

본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왼쪽에서는 공산주의 정당들이 좌파정당의 또 다른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 다.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향을 받아 혁명 노선을 주창하며 등장한 정당들이다. 제국주의로 인해 고 통 받은 유럽 바깥 세계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아니라 공산주의 정당이 사회에 깊게 뿌리내렸 다. 유럽에서도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한때 공산당이 좌파 제1정당 역할을 했다. 그러 나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지구 자본주의에 편입되면서 공산당은 대개 몰락 혹은 재편의 길에 접어 들었다. 아직도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 활동하는 정당으로는 인도의 공 산당-마르크스주의파, 네팔의 공산당-마오주의파, 체코의 보헤미아 모라비아 공산당, 일본 공산당, 칠레 공산당 등이 주목할 만하다.

새 세대 좌파정당 흐름들 - 녹색 정당, 좌파 재구성 정당 20세기 좌파정당의 두 큰 줄기였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와는 또 다른 전혀 새로운 흐름들도 있 다. 지난 세기 말에 등장한 좌파정당의 새 세대들이다. 그 첫 번째 무리로 들 수 있는 게 녹색 정당들 이다. 흔히 녹색당은 좌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녹색 정당의 첫 성공 사례인 독 일 녹색당(정식 명칭은 ‘녹색당/동맹90’)은 분명 신좌파 정치세력화의 산물이었다. 비록 지금은 사회 민주당보다 더 우경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현실 정치에서 성공한 녹색 정당으로는 그 밖에도 오스트리아의 녹색당-녹색대안, 프랑스의 유럽 생태주의-녹색당, 네덜란드의 녹색좌파 등이 있다. 영국에서는 녹색당이 좌파 성향 유권자가 선거에서 노동당 대신 선택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 기도 하다. 이들 정당에 대한 보다 상세한 소개로는 최백순 당원이 쓴 <미래가 있다면, 녹색>(이매진, 2013)을 참고할 수 있다. 녹색 정당은 한때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유력한 경쟁자로 부상했고 지금도 몇몇 나라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도전자는 이들만이 아니었다. 현실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나자 구 공산주의 정당들이 스스로 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회민주당 왼쪽의 정치 세력 전반이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랫동 안 소수 정파 활동에 머물러 있던 트로츠키주의나 마오주의 세력도 새롭게 대중정당 건설에 나섰다. 이들을 한데 아울러 좌파 재구성(left recomposition) 정당들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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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좌파 이웃좌파


그 선구적 사례는 1980년대 초에 등장한 스페인의 연합좌파다. 이 조직 은 공산당과 여타 좌파 정치조직들이 모인 정당연합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하나의 정당처럼 활동하기도 한다. 이후에 이와 비슷한 형태의 조 직으로서, 덴마크의 적록연합, 핀란드의 좌파연합, 포르투갈의 좌파블 록, 위에서 언급한 그리스의 SYRIZA 등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의 좌파당과 공산당이 ‘좌파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실험에 나섰 다. 이와 달리, 여러 정파들이 모이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하나의 정당으 로 출범한 사례도 있다. 독일의 좌파당, 네덜란드의 사회당(별칭 ‘토마 토당’), 이탈리아의 좌파생태자유, 아이슬란드의 좌파녹색운동 등이 그 런 경우다. 좌파 재구성 정당들은 처음에는 사회민주당 왼쪽에서 주류 좌파를 비 판하는 소수파 역할에 머물렀다. 지지율도 5% 안팎에 그쳤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에 투항하는 모습을 보 이자 점차 양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2008년 미국 금융 위기와 함께 신 “여기에 여전히 삶이 있다”라고 쓰여진 독일 좌파당 포스터(위), 성소수자 권리를 위한 시 위를 벌이는 독일 좌파당 당원들(아래)

자유주의의 전성기가 끝나고 동요의 시대가 시작되자 기회가 왔다. 이 미 이야기한 그리스 사례를 비롯해 현재 프랑스, 덴마크, 포르투갈 등 지에서 좌파 재구성 정당들은 기존에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차지하던 좌파의 대표자 위치를 넘보고 있다. 이게 유럽만의 양상은 아니다. 200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붐 을 일으킨 중남미 좌파 정당들은 좌파 재구성 정당의 아메리카판이라 할 수 있는 세력들이다. 브라질의 노동자당, 우루과이의 확대전선, 베네수 엘라의 통합사회당, 볼리비아의 사회주의운동, 이들 모두는 SI와 거리 를 두고 있다. 남미에서 SI 회원들은 오히려 각 나라에서 구체제의 버팀 목 역할을 하던 정당들(콜롬비아의 자유당이나 베네수엘라의 민주행동 당, 볼리비아의 혁명좌파운동)이다. SI에 속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 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동조할 때 남미 좌파 세력들은 ‘온건’ 노선 이라는 브라질 룰라 정부든 ‘강경’ 노선이라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 든 모두 전쟁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 중남미 신흥 좌파는 ‘상파울루 포럼’이라는 라틴아메리카 좌파만의 독자적인 국제 조직에 모여 있다. 우리 당은 이러한 세계 좌파정당의 여러 흐름들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상황에서 보다 풍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노동자당 후보의 상파울루 시장 당선을 축 하하는 브라질 노동자당 당원들(위), 룰라가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로 나선 89년 대선 당 시 브라질 노동자당 포스터(아래)

사례는 무엇인가?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이제부터 위의 무리들 그 리고 그에 속한 각 정당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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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책 /

다른 세상, 다른 경제 협동조합이 만든다 김성훈 | 다른경제포럼 대표

올해 3월 우리는 ‘다른경제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세상, 다른 경제>라는 팸플릿을 내놓았다. 다른경제포럼은 2010년 11월 진보신당 협동조합 활동가모임으로부터 출발하였으며 이제 11명의 회원을 가진 작은 모임이다. 2011년 분당을 거치면서 구성원 중에는 다른 당 당원이 된 사람도 있어서 우리는 이 모임을 당 내 조직에 국한하지 않고 열어두고 있다. 다른경제포럼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데서 출발했다. 우리는 비록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사회, 임금노동사회에서 먹고살아야 한다. 말로는 자본주의 300년, 신자유주의 30년에 저항해왔다지만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은 오히려 그 것을 지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상황이 우리를 자포자기와 절망의 상태에 빠뜨린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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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책


활동가로서의 삶과 생계의 지속가능성 사이의 갈등 학생운동을 지나 사회에 나왔거나 사회에서 활동가로 살아가고자 할 때 고민하는 핵심지점은 활동가 로서의 삶과 생계의 지속가능성 사이의 갈등이다. 한국사회의 크고 작은 정치결사체조직 또한 이 문제 를 비켜갈 수 없었다. 그동안 노동조합운동과 시민단체는 이 과제에 대해 부족하나마 나름의 답을 제 시하였다. 또한 합법 대중정당노선이 본격화되면서 정당운동 또한 당원들의 당비와 정당보조금을 통 해 일부 상근활동가의 생계를 책임지고자 하였다. 그 외 과거 정파조직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그 일부가 돈을 버는 것으로 역할 분담하여 활동가의 생계를 보장하는 유형도 있었다. 그러나 이 영역은 이미 오 래전에 한계에 다다랐다. 좋게 말하면 일종의 ‘품앗이’이지만 제살 깎아먹기, 혹은 돌려막기이기 쉬웠다.

2007년 사회적 기업이 본격적으로 양산되고 2010년 마을기업이 시작된 최근 5~6년 사이에 사회적 경 제 영역에서 상당수 활동가들이 활약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활동과 생계의 일치를 이루는 일 이지만 이것은 현실에서는 활동가의 삶도 아니고 생계에 충실하지도 못한 이도저도 아닌 삶으로 나 타나기 일쑤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 조직이 국가주도하에 시장경쟁원리에 포섭되는 한계가 활동가의 고뇌로 드러나는 것이다.

생계를 유지하는 과정과 방법에 자본주의 극복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지 만, 하나의 사회엔 비자본주의적이거나 반자본주의적 요소들이 여전히 살아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지키

생계를 유지하는 과정과 방법에서부터 자본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 일상과 진보의 만남은 어떻게 가능할까?

고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생계의 문제라서 정당정치활동보다 수준 이 낮은 것이 아니다. 생계문제에 관철되고 있는 정치의 문제를 의식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저항하면서 동시에 건설해갈 수 있어야 한다. 정당의 보수화, 우경화는 그들의 생존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 그렇게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공투세대가 마을로 들어가면 서 “우리의 이념은 된장이요, 빵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자.

“우리의 이념은 된장이요, 빵이다” 우리는 <다른 세상, 다른 경제>라는 팸플릿을 내면서 그 방향을 2001년 세계사회포럼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찾았다. “다른 세계화는 가능하다”, “다른 세계화는 다른 경제로부터”라는 슬로건을 우리의 것으로 하자고 했다. 이 슬로건으로부터 우리가 제출할 수 있었던 문제의식은 크게 두 가지였 다. 첫째 노동자 결사체운동의 전통 위에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저항과 건설의 동시 구축, 둘째 다 른 사람-다른 경제-다른 정치의 패러다임이었다.

한편 우리는 오랫동안 한국사회 협동조합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속에서 자라지만 자본주의적이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협동조합이라고 여기며 삶으로 선택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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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협동조합운동에서 크게 세 가지의 열쇠말에 집중했다. <결사체 (association)>, <이행 전략>, <생명 사상>이 그것이다. 온 생명이면서 동시에 자기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주체적 생명의 관점에서 자발 적으로 결사한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이행 전략으로서 협 동조합운동을 펼쳐나가자고 했다. 한편 이 협동조합운동은 역사적 으로 임금노동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 결사체 운동에 뿌리를

협동조합운동은 임금노동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 결사체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했다.

두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했다.

이것은 총론에서, 만남강령이라 불리는 진보신당 강령 전문과 만났다. 만남강령이 제시한 서로주체 성의 철학은 나를 비워 너를 모시자는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또 유영모와 함석헌으로 이어지는 씨 사상에 대해 공부하며 노동자 농민, 민중, 시민

이라는 이름의 계급적 주체형성전략을 넘어 역사와 사회는 물론 생명 진화의 결과로서 “나”의 주체성 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자·농민·시민·주민으로서 살아가되 한 사람 한 사람 내 안의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자유를 확장하는 결사체운동을 모색하게 되 었다. 특히 결사체 운동에서도 생활의 결사체에 주목한다.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기반이 있어야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세상, 다른 경제>의 방향과 문제의식은 특별히 새롭거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레 닌주의의 영향을 받아 이 시대를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했던 80년대 운동으로부 터 지금까지 20~30여년을 보낸 활동가들이 다양한 현장을 거쳐 지역사회라는 이름의 변방에서 나름 의 진지를 구축하고자 몸부림칠 때 생겨난 문제의식을 자기 수준에 맞게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팸플릿에 대해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자부심은 정리된 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활동하는 지역사회 자기현장의 생명력에 있었다. 자활공동체·사회적 개인의 권리투 쟁을 넘어 전체의 자리에서 나누고, 내어주고, 함께 쓴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의 근거다.

기업·마을기업·협동조합 등 이른바 사회적 경제 조직에 몸담고 있더라도 각각의 조직이 목적이 아 니라 이 조직을 통해 이루어져가는 작은 대안적 실험들에 고무되었다. 개인의 권리 투쟁을 넘어 전체 의 자리에서 나누고, 내어주고, 함께 쓰는 일에서 희망의 근거를 발견해가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자본주의 극복,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깃발아래 모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라도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지금 여기서 나로부터 살려내고 살아나도록 할 것이다. 우리 는 당 안팎에서 사회적 경제 조직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만나고자 한다. 그리고 함께 정치경 제 결사체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의 재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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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책


<다른 세상, 다른 경제: 지역사회운동의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 중에서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을 둘러싼 현상에 대한 진단 우리가 ‘사회적 경제’가 아닌 ‘다른 경제’라는 생소한 이름을 꺼내든 까닭은 무엇인가?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가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현실태로서 시장사회와 임금노동사회에 대한 이론 과 실천을 아우르는 대안 모색이라는 그 본래적 의미를 상실하고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 국한하여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의 본래적 의미와 역사적 전통을 살펴보면, 그 자체로 노동운동가, 진보좌파정당 활동가라는 의미까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학자와 연구자들이 사회적 경제를 ‘시장도 국가도 아닌’ 제3의 영역으로 두며 시장과 국가와의 관계에서 분리하여 체제와 시스템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편향과 더불어 경제 및 경 영���에서는 사회적 경제의 ‘경제’를 강조하며, 결사체로서의 사회적 경제 조직을 사업체로만 고려하 여 경제적 지표로 사회적 경제의 성공을 평가하려 한다. 이럴 경우 사회적 경제는 일반 기업과는 다른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한 ‘착한’ 기업일 뿐이며, 그들의 운명은 시장에서 경쟁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족쇄를 씌우게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운동이 민民의 자발적 결속과 연대, 협동의 힘을 모아 새로운 사회 건설 로 나아가지 못하고 국가 주도하에 시장경쟁원리에 포섭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사회적 경제는 “제도와 시장 사이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 결국 현재 한국사회의 사회적 경제 는 시장사회에 대항한 대안경제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제도에 기대어 시장으로 들어감으 로써 국가에 포섭되고 시장에 목숨을 맡긴 불행한 운명의 배를 탔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의 한 부분이라거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게토경제로 호 도하고 폄하하는 이론이나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경제를 잘못 이해하거나 고의적으로 왜 곡하는 처사이다.

사회적 경제는 결사체의 이념과 조직이다. 선구자들의 실험은 공동체를 통해 상호 협동하고 돕는 사 회를 조직하고자 한 것이다. 그들의 이상은 노동자 결사체를 통하여 임금노동사회를 극복하여 모든 이들이 노동의 주체가 되고, 능력과 필요에 따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초기 사회적 경제의 이상을 계승하여 결사체의 이념을 견지하고자 ‘사회적 경제’가 아닌 ‘다른 경제’를 택했다. 지금은 ‘다른’을 세워 ‘사회’와 ‘경제’를 새롭게 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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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파 통신

진보신당 유럽당원모임을 소개합니다 엄형식 | 유럽당원모임 위원장, 벨기에 리에쥬 거주

당의 공론장 역할을 할 기관지에 유럽당원들의 목소리를 안정적으로 담겠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 몹 시 반가우면서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당연히 유럽당원들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의견과 능력이 온전히 당과 기관지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 효과적인 방식을 찾으려면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필요했 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유럽당원들의 멋진 글들에 앞서 여기에서는 유럽당원모임을 소개하고 향후 역할과 전망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08년 한국 진보진영의 지각변동, 유럽 한인사회 뒤흔들어 진보신당 유럽당원모임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 진보적 한인 사회운동의 맥을 잇는 동시에, 진보 신당 창당을 통해 분출된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한국 진보정치운동의 문제의식에 답하면서 출발했습니다. 2008년 벽두부터 시작된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의 재구성에 대한 논의는 민주노동당 유럽지역위원 회 내부뿐만 아니라,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유럽 한인사회 일각에서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 습니다. 보다 광범위한 진보좌파 지향의 한인들이 참여하는 ‘유로진보넷’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거 쳐, 2009년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진보신당 유럽당원모임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10년 이탈리아 피사, 2011년 네덜란드 지일랜드, 2012년 네덜란드 림부르그에서 정기총회를 열었고,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면서 현재까지 진보신당의 깃발을 지켜왔습니다. 특히 2010년 지방선 거 이후 작년까지 지속되었던 진보대통합 논의와 분당의 과정에서 당원들 사이에 일정한 입장의 차 이가 있었지만 온라인, 오프라인 모임과 논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진보신당의 틀 을 거의 그대로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원정투쟁에 연대와 지원 나서다 유럽당원모임의 당원은 2013년 6월 현재 64명으로 주요하게는 독일, 프랑스, 영국에 많이 거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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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파 통신


있고 이외에도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터키 등에도 당원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쾰른, 본, 보쿰, 빌레펠트 등 중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독일 1분회와 프랑크 푸르트 등 남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독일 2분회가 구성되어 있고, 프랑스는 상당수 당원이 거주 하는 파리에 분회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원들의 상당수는 유학생과 박사후연구원 등의 신분이지 만, 교민으로서 현지에서 생활의 터전을 잡은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전업활동가가 없는 상황에서, 특히 학업이나 경제활동으로 대부분의 당원들이 바쁜 일상을 하는지라 당활동은 기본적인 것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분회가 있는 지역에서는 오프라인 모임을 병행하고, 주로 페이스북 그룹을 매개로 한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일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전당적인 토론이 필요할 때는 확대 오프라인 모임이 열리며, 당 지도부나 활동가들의 유럽방문이 있을 때도 당 소식과 한국의 정치현황을 듣고자 소규모 오프모임을 열었습니다. 특히 노동자들의 원정투쟁에 대해서는 많은 노력을 투여하여 연대와 지원을 조직했습니다. 유럽당원 모임은 콜트콜텍, 발레오, 보쉬 등 원정투쟁단에 대한 지원과 연대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당원모임 재 정의 5%는 매년 연대활동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하여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연대활동을 수행할 준비 를 하고 있습니다. 매년 진행된 총회는 언제나 20-30여명이 참석하는 큰 규모의 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당 원들은 총회와 한국 정치사안에 대한 토론을 진행할 뿐만 아니라, 객지생활에서 겪게 되는 외로움과 피곤함을 풀고 재충전을 하게 됩니다. 총회는 당원만 아니라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누구나에게 열린 자리입니다. 2010년에는 금속노조 국제연맹 파견자, 2012년에는 녹색당 당원대표 및 유럽에 안식년 으로 체류하고 있던 연구자를 초청하여 함께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선거 등 주요 국면에서 당원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집단적으로 조직하는 것도 당원모임의 역할이었 습니다. 선거자금을 모아서 보내거나, 지지선언이나 성명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조직하는 것도 작지만 의미있는 실천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학생 노동권 문제 공론화, <두 개의 문> 등 공동체 상영도 외국에 나가있는 당원들의 활동에 대해 종종 여러 정보와 이미지가 겹치면서 일종의 상상력을 발휘 하게 되곤 합니다. 현지 언어도 유창하고, 해당 국가의 좌파정당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고, 유럽 의 좌파적인 복지정책과 노동정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멋진 망명정치인들과 같은 집단을 연상할 수도 있지요. 사실 유럽당원모임 스스로도 이런 상상에서 자유롭지는 않았고 이로 인한 어려움도 있 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4년의 경험들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서로 이해 해온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 교민사회를 중심으로 일정한 기반을 가졌던 민주노동당 유럽지역위원회와 달리 진보신당 유럽당 원모임은 많은 경우 유학생과 젊은 연구원, 그리고 유럽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는 비교적 젊은 세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유럽과 한인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러한 인적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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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총선 당시 유럽 당원들이 보내온 재외국민투표 인증샷

은 유럽 한인사회를 상대로 하는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어렵게 하는 제약조건이 되어 왔습니다. 한인사 회가 종교단체, 한인회, 기업인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적인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것도 진보적 인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데 어려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들은 이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직장인 당원들 중 일정한 수가 유럽 한인사회에 정착하면서 중장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인회와 같은 공조직에서의 활동은 어렵지만 많은 당원들이 해당 지역 유학생회, 전공분야 관련 협 회, 종교단체 등에서 성실하고 건강한 일꾼으로 참여하면서 성실함과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파리 지역에서는 유로진보넷 참여자들을 중심으로 유학생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유학생 노동권 문제를 다루는 모임을 구성하여 한인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독일 당원들은 두 차 례에 걸쳐 <경계도시 2>와 <두 개의 문>의 공동체 상영회를 조직하여 적지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파리지역 당원들도 한국영화제에서의 <두 개의 문> 상영을 통해 관객들과 함께 용산사건에 대한 설 명과 토론을 조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동들 하나하나가 누적되어 당원모임 내부에서도 경험 이 쌓이고, 유럽 한인사회에서도 진보정당의 목소리와 활동이 점점 자리잡아 가리라 생각합니다.

현지 좌파정당과의 교류 현재 유럽당원모임은 현지의 특정정당과 본격적인 교류를 조직적으로 수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여 기에는 몇 가지 사정이 있습니다. 일단, 지난 임시정당적인 성격을 가졌던 시기 동안 진보신당이 해외 좌파정당들과 공식적인 교류를 추진할 여력이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유럽당원모임이 먼저 나서서 특 정정당과 관계를 갖는 것은 다소 복잡한 일이었습니다. 가령 사민당, 좌파당, 공산당, 녹색당 그리고 급진정치그룹 등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어디와 접촉하는 것이 좋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이지요. 또한 당활동에 상당한 비중에 두고 활동하는 활동가를 갖추지 못한 것도 주체의 한계에 속 하는 문제입니다. 개별 당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지 좌파정당 및 운동조직들과 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현지 좌파정 당이나 ATTAC 등 좌파단체들의 지역모임 등에 개인자격으로 참석하고 관계를 만들거나, 현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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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탈리아 피사에서 열린 유럽당협 정기총회(왼쪽), 네덜란드에서 열린 2012년 정기총회(오른쪽)

조합에서의 활동을 통해 노동운동에 직접 참여한 당원도 있습니다. 또한 좌파정당에 대한 연구자로 서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기도 합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이러한 경험과 관계를 어떻게 당과 당원모임의 조직적 활동으로 수렴시킬 것인 지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는 유럽당원모임만의 과제가 아니라 당의 대회협력 정책에 대한 전략 적 고려와 이에 기초한 투자에 비례하여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의 정책부문과 일상적 교류 필요하다 상당수의 유럽당원이 학술/연구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고, 일상생활에서 유럽국가들의 다양한 사 회정책을 피부로 경험합니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정책관련 활동을 자주 요청받는 동시에 당원들 스 스로도 정책분야에 참여하고픈 의욕이 넘칩니다. 개별 당원들이 직간접적으로 당이나 다른 진보정책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였으되, 유럽당원모임 자체에서 공동의 실천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데에는 많 은 어려움을 겪어온 것도 현실입니다. 단순하게는 개개인들이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거나, 각자가 공부하고 연 구하는 내용들이 막상 정당이 원하는 형태로 즉각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참여를 미루기도 합니다. 나아가 유럽에 대한 정보가 매우 단편적이고 편향적으로 소개되거나 막연한 당위와 환상을 바탕으로 황당하게 조합되는 데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기에, 우리 스스로 더욱 조심스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염두에 두더라도 다양한 활동방식이 여전히 열려있습니다. 가령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국의 정보를 취합하여 집단적 글쓰기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SNS를 통해 각자가 쌓아가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모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당의 정책활동에 효 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당 정책부문과 일상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정책위원회 구성원 일부가 유럽당원모임 온라인 그룹에 참여하고 있으며, 차후 당 연구소와 유럽당원모임의 공 동 프로젝트처럼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도 시도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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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인 정당운영 모델의 실험 저 개인적으로는 진보신당 유럽당원모임의 경험 자체를 대안적인 정당운영 모델에 대한 실험이었다고 도 평가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겠지만 유럽당원모임 또한 소위 운동권 경험을 가진 당원들과 그렇지 않은 당원들이 공존하면서 문화적 충돌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왔습니다. 조직활동과 당에 대한 경험과 기대의 차이에서 오는 이러한 문화적 충돌을 해소할 수 있는 일상적인 오프라인 만 남이 거의 어렵거니와 ‘활동가’라고 할 만한 위상의 당원이 거의 없었던 점이 한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유럽당원모임 스스로가 새로운 정당운영 방식을 구축하도록 강제하는 혁신의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와 이에 따른 사회와 개인의 변화는 점차 ‘조직’과 ‘참여’라는 개념의 내용 을 바꾸고 있습니다. 가령 이전에는 오프라인에서 단일한 목소리로 많이 모이는 것이 조직활동의 주 요한 목표였다면, 지금은 다양한 개개인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로지르면서 자신의 가치지향을 스스로의 공간과 시간에서 실현하고, ‘조직’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개인들의 지평이 자연스럽게 겹 쳐지고 연결되는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존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조직활동과 조직적 관계는 훨 씬 느슨해 보이고, 공동으로 함께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달리 해석하면 기존의 진보운동에서 간과되었던 ‘개인’의 차원이 복원되고, 개인의 차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방식의 연대와 참여, 그리고 이를 지속시키는 방법으로서의 새로운 조직적 관계가 등장하 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온라인과 개인들의 활동에 중점을 두었던 유럽당원모임은 오프라인 중심으로 직접적인 활동을 기대했던 당원들에게는 다소 아쉬웠겠지만, 변화하는 사회환경에서 정당조직이 운영될 수 있 는 대안적인 모델에 대한 실험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의 전진에 함께하겠습니다 진보신당이 재창당의 길을 나서려 하고, 유럽당원모임 역시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는 시점에 있습니 다. 여전히 어려운 현실이지만, 적어도 오랜 혼란이 다소간 마무리되고,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보다 집중 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기관지의 창간이 이러한 변화를 알리는 중요한 신호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4년간 부위원장과 위원장으로서의 당직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지난 4년간 우리 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거센 폭풍우 속에 있는 작은 돗단배에 올라탄 사람들처럼 서로 흩어지지 않게, 서로 끌어안고 뭉쳐있는 것이었습니다. 생존과 존재 자체가 투쟁일 수밖에 없었던 시간 동안 많은 당 원들과 지지자들이 힘들어 했습니다. 이제 폭풍구름은 점차 거두어지고, 맑은 하늘도 조금씩 보이지만 여전히 우리가 탄 배는 작고 약하 며, 헤쳐가야 할 바다는 넓기만 한 것 같습니다. 폭풍 속에 잃어버릴까 각자 감추어 두었던 작은 노를 꺼내어 저어야 할 때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유럽당원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특히 기관지를 통해 작은 힘이나마 진보신당, 아니 다시 힘차게 울릴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의 새로운 전진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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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Newbie), 동작구 당원협의회에 침투하다 유검우 | 동작구당원협의회 사무차장

2년 전의 나는 ‘나는 꼼수다’를 들으며 이명박의 부패에 분노하고 ‘노동’을 두려워하는 한 명의 ‘깨어 있는 시민’에 지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의 신봉자였고, 불어 닥치는 ‘청년창업’의 광풍에 편승하여 호기롭게 한 탕 벌려보려는 이 사회의 청년 호구였다. 하지만 나의 정치적 호기심은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문제의 답을 갈구하였고, 결국 트위터라는 공간을 통해 나는 ‘진신류’로 거듭나게 되었다. ‘진 보신당이 사라지지 않도록 힘을 보태야겠다’는 일념으로 작년 1월에 입당한 나는 연고지(?)인 서울시 동작구의 당원협의회를 찾아갔고, 이내 19대 국회의원 동작(을) 예비후보 김종철의 선거캠프에서 일 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스물여덟, 늦깎이 운동권의 삶의 막이 오른 것이다. 아마 꽤 많은 분들께서 지역 당원협의회의 상근 활동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조직의 말단 관료는 어떤 삶을 사는지 잘 모르실 것이라 생각된다. 정치에 관심 많았던 나도 정작 정당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선거는 어떻게 치러지는지 하나도 아는 것이 없었다. 소위 말하는 ‘학출’도 아니었기 때문에 운동권 문 ●

화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는, 말 그대로 뉴비(Newbie) 였던 지난 1

2년 전의 나는 한 명의 ‘깨시민’에 지나지 않았다. 트위터를 통해 ‘진신류’로 거듭나고 동작당협에서 늦깎이 운동권의 삶이 시작됐다.

년 여 간의 경험들을 들려드림으로써 여러분이 당의 현실을 가늠하 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일단 내 활동을 크게 나누자면 셋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선거 운 동, 당협 운영, 지역 운동이 그것이다. 선거가 정당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투쟁의 장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이다. 입당 하고 나서 두 번의 선거를 치렀는데 한 번은 위에도 말했듯 19대 총 선이었고, 또 한 번은 서울시 교육감 재선거였다.

● 뉴비 : 풋내기, 새로 온 사람, 어떤 직업에 대한 무경험자를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주로 게임이나 웹사이트 커뮤니티의 초보, 신참을 지 칭하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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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당협의 특산품인 LED 홍보물 제작이 가장 힘들었다. 나중에 가서는 눈이 아파서 눈감고도 납땜질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김종철 선본을 뛰면서 예비후보 기간에는 후보 수행을 맡아서 했었다. 새 로운 인물이 나타나면 파격적으로 등용해서 곁에 두는 것이 김종철 위원 장의 독특한 용병술이다. 낮에는 선거운동을 하고 밤에는 선전물을 만들 었다. 사람을 많이 쓸 수 없는 진보정당의 선거 운동이란 한 사람이 온갖 역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홍보물 제작, SNS 선전, 출퇴근 선전전, 지역 순회 선전, 까발리야 운행 등. 그 중에서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아무래도 밤새도록 이어지는 홍보물 제 작이었다. 동작당협의 특산물(?)인 LED는 총선 때도 유용하게 쓰였는데, 그 제작에는 어마어마한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눈이 아파서 눈을 감고도 납땜질을 할 수 있을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게 공들여

2012년 총선 당시. 낮에는 김종철 후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위), 밤에는 LED 선 전물을 만들었다(아래).

만든 LED 선전물들은 유권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으나, 바로 며칠 후 민주당 측이 업체에 주문하여 만든 LED 선전물을 착용하고 나와 ‘멘붕’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선거는 결국 패배로 끝났지만 지역에서부터 경험을 쌓아가기로 하고 동작당협 사무2차장으로 본격 적인 상근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협 상근자가 하는 일중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의 관리와 운 영이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매일 일정 수의 당원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소위 말하는 TM 이다. 당원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멤버십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당협 상근자의 몫이다. 동작당협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당원의 날’을 기획하여 당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지역 현안에 대한 대응이 없다면 지역의 정치조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중앙대 구조조정 반대투쟁, 상도4동 철거민 투쟁, 흑석 뉴타운 반대 등이 동작당협이 결합해 온 굵직한 지역 현안들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노량진 컵밥 노점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해 구청과 신경전을 벌였던 게 기억에 남는다. 새벽에 구청의 철거반이 들이닥칠 때를 대비해 노영수 사무국장님과 교대로 한겨울 맹추위의 거리에 나가 형 사마냥 잠복해있었다. 다행히 일이 잘 풀려서 구청은 한 발 물러났고, 컵밥 노점의 이모님은 우리 당 원이 되셨다. 지역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 만, 그에 못지않게 지역 내에서 새로운 운동을 만들 어 가는 것 또한 지역의 활동가로서 중요한 역할이 다. 동작구에선 진보신당 동작당협의 활동가들과 여 타 주민단체들이 모여 이 사업에 결합해서 지난겨울 ‘동작 공동체 라디오 동작FM’이란 작은 마을 방송 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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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컵밥 노점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한겨울에 잠복을 섰다. 다행히 구청이 한발 물러났고 노점상 이모님은 우리 당원이 되셨다.


동작FM은 동작당협의 ‘전초지’가 되어 당내의 활동가들이 지역의 여 러 단체와 함께 호흡하고 의견을 나누는 교류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현재 총 아홉 개의 팀이 일주일에 한 번씩 각자 1시간 분량의 방송을 녹음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각 활동가가 투입하는 역량은 실로 어마 어마하다. 1시간 분량의 대본은 단편 소설 한 편의 길이에 맞먹는데다 가 이를 녹음하기 위해 매주 일정 시간을 투자한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몇몇 팀은 매주 게스트 섭외를 하기도 하는데 이를 위해 서도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 본디 나는 당협 활동의 비중을 줄이고 공동체 라디오를 만드는 쪽에 전념하려고 했으나 당협과 내 사정으로 인해 그렇게 할 수는 없었고, 현재는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 방송의 녹음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일을 했고 즐겁고 보람찬 시간들이었다. 기관지 동작당협의 ‘전초지’가 된 동작FM(왼쪽), 지난 3 월 진행한 탈핵선전전(오른쪽)

에 글을 써 줄 것을 부탁받고선 고민을 많이 했다. 글 자체에 대한 고 민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나와 당의 현실적인 처지에 대한 고민이 컸

다. 모두들 알고 있는 이야기를 굳이 비관적인 마음으로 상기시켜 보자면, 2013년 6월, 곧 역사의 뒤 편으로 사라질 진보신당의 현실은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득표율 1.13%를 기록하고 등록 취소가 되 었으며, 18대 대선에선 실질적으로 두 명의 대통령 후보를 내는 초현실적 행태를 보임으로써 정치적 으로 자폭했다는 것이다. 관성적으로 해오던 일을 계속 이끌어갈 수는 있겠으나 우리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결사체이다. 정치적 전망이 불투명하다면 조직이 무너져갈 것임이 당연한데, 어느 누구도 나서서 조직의 나아갈 길을 솔 직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지역에 집중해야하고 다가올 지방선거에 대비해야 한다 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전망이 있어야 전략을 세울 수 있고, 전략이 있어 야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대체 어떤 전망과 어떤 전략 아래 전투를 펼쳐나가야 할지 지 침이 내려오지 않는 최전선의 병사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과거에 쓰던 전술 교본을 펼쳐 놓은 채 고 작 게릴라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게 당의 현재 모습이다. 상근 활동에 대해 말 하면서 급여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뺀 것은 이미 우리 당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는 자 발적 열정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 비참한 현실은 차라리 받아들이기 편하다. 하지만 명분과 대의가 사라지고 오직 부채감만이 남게 되는 상황만큼은 용납하

우리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결사체다. 정치적 전망이 불투명하다면 조직이 무너지는 것은 자명하다.

기 힘들다. 부디 지도부가 재창당과 함께 당이 나아갈 방 향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자존감을 다시 세워주 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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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前 정책위원회 의장 故 이재영 추모 사업회 진보정당운동을 위해 평생을 노력해 오다가 젊은 나이에 운명한 이재영 前 의장을 추모하기 위한 모임입니다. 이재영추모사업회는 이재영 前 의장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사업과 유가족 지원사업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 이메일·페이스북 | leejaeyoungfoundation@gmail.com 트위터 | @ljyfound 이재영추모사업회 후원회비 납부계좌

100-028-782238 (신한은행) 추모사업회 공동대표

김기준 국회의원 / 김혜경 진보신당 고문 /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 이광호 레디앙 미디어 대표 / 장상환 경상대 교수 / 주대환 사회민 주주의 연대 대표

이재영 약력 - 1967년 서울 출생 - 1986년~1989년 서울, 성남, 안산 등지에서 공장 노동자 조직 활동 - 1989년~1990년 '사회주의자 그룹' 대외협력 활동 - 1991년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준위 포항 지부 교육선전 담당 - 1992년 민중당 경기도당 정책국장, 백기완 선본 경기남부 집행위원장 - 1995년~1996년 진보정당추진위, 진보정치연합 정책국장 - 1997년~1999년 국민승리21 정책국장 - 2000년~2004년 민주노동당 정책국장 - 2004년~2006년 민주노동당 정책실장 - 2006년~2010년 레디앙 미디어 기획위원 - 2010년~2011년 진보신당 정책위의장 - 2012년 12월 12일 암투병 중 운명

후원안내 ●

후원금액은 3천원 이상으로 일시금으로 납부하셔도 되고 매월 납부하셔도 됩니다. 매월 납부하시는 경우 출금일은 27일입니다.

매월 후원하시는 경우 갱신의사를 표명하시지 않는 한 2015년 12월에 후원은 종료됩니다.

후원금액은 CMS 유지관리비를 제외하고 故 이재영님의 유자녀 학자금으로 전액 사용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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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추모


청년이 진보다

새 당명에 숨 불어넣으려면 비전 보여줘야 이승한

작년 9월, 회사를 그만 둔 김에 졸업장이나 따자는 심산으로 5년 만에 학교에 돌아왔다가 희한한 걸 발견했다. 학교에 밉보여 해직당한 학보사 기자들이 사재를 털어 신문을 창간한 것이다. 신기한 마음 에 찾아가 만난 ‘취재부장’은 갓 스물 한 살이 된 후배였다. “당신들끼리 지치지 않겠느냐”는 내 질문 에 후배는 웃으며 “이 정도로 지칠 거면 시작도 안 했다”고 답했다. 단지 취재가 힘들지 않겠냐는 뜻 은 아니었지만, 서른이 코앞인 내가 어린 후배들의 일에 훈수 둘 일은 아니라 생각했기에 그쯤에서 질 문을 거뒀다. 후배가 내게 SOS를 친 건 올해 초였다. 창간 주축 멤버들 중 다수가 개인 사정으로 매체를 떠나게 되 자 후배는 나에게 근심을 털어놓았다. 데스크도 공석이 될 것이고 취재인력도 부족하며 재정적으로 도 어렵다고. 더 듣지 않아도 상황은 명확했다. 누군가 들어가서 기틀을 다시 짜는 걸 도와주지 않으 면 매체는 사라질 판이었다. 후배는 그제야 내가 “지치지 않겠느냐”고 물었던 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 은 눈치였다. 결국 2013년 2월부로, 나는 국민대학교 학생 자치 언론 <국민저널>의 2대 편집국장 직 을 수락했다. 안에서 본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없는 인원을 쥐어짜 기사를 생산하다 보니 기사의 다양성은 꿈도 못 꿨다. 1면부터 8면까지 한 목소리로 학교의 문제점을 고발하기 바빴고, 자연스레 매체 이미 지는 ‘운동권 신문’으로 굳어졌다. 보수 여론이 주류인 학생사회 안에서 <국민저널>은 사실보도만 해도 편향성을 의심받았고, 설상가상 학내 운동권들은 “<국민저널>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 었다. 나는 화급히 수습기자들을 뽑았고, 스포츠와 문화면에

<국민저널>을 백안시하는 여론의 양은 줄어든 대신 그 수위는 훨씬 높아졌다. 딱히 좌파 티를 내지 않아도 ‘운동권 신문’ 으로 굳어졌다.

고정칼럼을 신설했다. 학교를 비판하면서도 어느 정파의 이 익도 대변하지 않도록 기사의 논조를 다듬었다. 내 정파성이 나 정치 지향은 애초에 꺼내지도 않았다. 조직 안에 새누리당 부터 녹색당까지 각양각색의 정치 지향을 지닌 후배들이 모여 있는데, 내가 내 색깔을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강요할 일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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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었으므로. “확실한 논조는 있지만 적어도 팩트를 숨기거나 왜곡하 진 않는다”는 평가들도 드물게 나오기 시작했지만, 냉 정하게 보면 <국민저널>의 입지에 큰 변화는 없다. <국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좌파’ 나‘진보’ 라는 단어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젊은 세대를 설득할 수가 없다.

민저널>을 백안시하는 여론의 양은 줄어든 대신, 그 수위는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학교의 얼굴이나 더 럽히는 것들”, “좌파 이념에 경도된 놈들”, “기관지를 보는 것 같다”는 말에서부터 시작해서 원색적인 욕설, “언론사에 있던 사람이 학교 언론엔 왜 왔냐. 지령을 받고 온 거 아니냐.”는 기이한 음모론, “취 재부장을 죽이러 가자”는 린치성 발언까지, 정말 다채���운 비난에 시달린다. 한 가지 희한했던 것은, 딱히 좌파적인 이야기를 꺼낸 적도 없는 <국민저널>에게 던져지는 ‘좌파’나 ‘진보’라는 단어의 용법이었다. <국민저널>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단어를 그냥 욕설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들의 ‘좌파’, ‘진보’ 타령은 어디서 온 것이며, 이 극렬한 적의는 어디서 온 것일까. ‘좌파’나 ‘진보’라는 단어가 오용되고, 조직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욕설을 먹는 것 은 어쩌면, ‘좌파’나 ‘진보’가 이 세대에게 제대로 된 비전이나 희망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높은 등록금과 취업난에 치여 숨 막혀 하는 학생들이야말로 우리가 대변해야 할 이들이지만, 이들은 우리에게서 희망을 보지 않는다. 이들에게 ‘진보’니 ‘좌파’니 하는 단어는 멸칭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후배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좌파’, ‘진보’의 이미지는 대략 이렇 다. ‘자신과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역사의식이 없다고 몰아세우고, 남들에게 자기희생을 요구해 투쟁 의 소모품으로 소비하는 사람들. 정작 자기들도 정파 이익 싸움 하느라 선거 조작이나 하면서 남에 게만 정의를 촉구하는 위선자들.’ 악의적인 오해와 잘못된 정보에 입각한 인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진보의 이름을 참칭한 채 낙 인찍기와 편 가르기, 자기 보신을 해 왔던 이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 마냥 그럴 수도 없다. 그 추 태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변혁을 위한 여하한 운동은 물론이거니와 ‘좌파’ 나 ‘진보’라는 단어 자체에까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젊은 세대를 설득하는 건 언제까지라도 어려 울 것이다. 최근 새 당명 논의를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한 가지였다. 어떤 이름이 우리의 새 이름으로 선택이 되 든, 그 이름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우리가 대중에게 제대로 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 면 어떤 좋은 단어를 가지고 온다 한들 그 단어는 금세 악의적인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될 것이라고. ‘노동’, ‘진보’, ‘좌파’, ‘사회민주’와 같은 단어들이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비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줄 것인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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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진보다


재창당 특집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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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당 특집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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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당 특집 만화


노래의 꿈 정윤경 작사 정윤경 작곡 꽃다지 노래

나는 누군가의 가슴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나서 아무도 날 찾지 않을 때까지 살다 가지 내겐 작은 꿈이 있어 그대 여린 가슴에 들어가 그대 지치고 외로울 때 위로가 되려해

때론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대 행복할 때 때론 그 사랑이 너무 아파 눈물질 때 때론 지난 세월이 그리워 그대 한숨 질 때 그렇게 난 언제라도 그대와 함께 하려네

한땐 나와 나의 동료들은 거친 세상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의 분노가 되고 희망이 되어 거리에서 온 땅으로 그들과 함께 했지 그땐 그대들과 난 아름다웠어 비록 미친 세월에 묻혀 사라진다 해도 다시 한 번 그대 가슴을 펴고 불러준다면 끝까지 함께 할 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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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꿈

다시 찾은 ‘노래의 꿈’ 쌍차 해고자들이 만든 희망의 차, 꽃다지에게로 오다 민정연 | 문화기획자

‘노래의 꿈’은 악보를 통해 처음 보았을 때 매우 아름다운 노 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절했던 노래입니다. 10년도 훨씬 지 난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지나치게 꽃다지다워서 싫다고 했 었던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합법3집을 준비하던 1999년부터 꽃다지는 기존의 희망의 노래, 밝고 예쁜 노래, 힘차게 팔뚝질

“너무 꽃다지다워서 싫어요” 악보를 통해 처음 보았을 때 매우 아름다운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절했던 ‘노래의 꿈’

하는 노래 말고 다른 노래를 원했습니다. 변하는 세상을 담기 에는 기존의 화법이나 스타일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쿨’한 그 무언가를 원하고 있던 때였는데 ‘노래의 꿈’은 너무 절절하고 착한 게 기존의 꽃다지, 그대로였습니다. 벗어나 고 싶은데….

새로운 길 선택한 꽃다지, 절치부심의 세월 그 무렵이 꽃다지에게는 제일 힘든 시기였다고 기억합니다. 99년에 3집을 내고 연이어 2000년에 싱글 2집 ‘오라’를, 2001년에 싱글3집 ‘반격’을, 2002년엔 꽃다지10주년 콘서트를 4천여 명의 관객들과 함 께 하면서 외형적으로는 활발해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그야말로 절치부심의 세월이었습니다. 수만 가지 노래의 길 중에서 어느 길이 우리가 원하는 길인지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은 녹록치 않았습 니다. 새로운 길을 선택했으나 그 길을 뚜벅뚜벅 가지는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가다가 지칠 때면 이전에 가던 그 길로 다시 돌아갈까 하는 유혹도 컸습니다. 새로운 길을 고집하지 않으면 박수 받을 수 있는 길은 아직은 남아있었으니까요. 밝고 힘찬 노래에 길들여진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울림을 어찌 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우리가 설정한 목 표와는 달리 버려야한다고 생각했던 옛 것 그대로 노래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건 음악가로서 참담하기 그지없는 일 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노래의 꿈’을 만났으니 오히려 더 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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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꿈

산전수전, 공중전 다 치르고 만신창이가 되어 본 후 만난 ‘노래의 꿈’은 불과 2~3년 전에 만난 그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만든 자동차 H-20000이 꽃다지에게로 오던 날. (사진: 민정연)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새로운 길의 동반자로 현재의 꽃다지 음악감독인 정윤경을 영입하면서 2005 년 치른 첫 정식 콘서트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에서 이 노래를 첫선 보였습니다. 산전수전, 공중전 다 치르고 만신창이가 되어 본 후 만난 ‘노래의 꿈’은 불과 2~3년 전에 만난 그 노 래가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대 지치고 외로울 때, 때론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대 행복할 때, 때론 그 사랑이 너무 아파 눈물질 때, 때론 지난 세월이 그리워 그대 한숨 질 때’, 그 때 꽃다지의 노래가 분노가 되고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넘어선 생존의 절박함이 있을 때였으니까요.

길어야 2~3년 버틸까 싶었는데 이제 세월도 많이 흘렀으니 고백하자면 이 노래를 처음 선 보이던 순간 객석 맨 뒤 어두운 구석에서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꽃다지도 이제 끝인가 봐요’라며 떠나버린 팬도 떠올랐고, ‘10년 전에 이 공연 의 시작을 같이 한 꽃다지이니까 웬만하면 무대에 올리고 싶은데 요즘 공연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공연자리스트에서 빠졌다’라던 모 기획자도 떠올랐습니다. 잠시 그들에게 꽃다지가 건재함을 보여주 게 되었다는 자부심도 있었습니다만, 더욱 중요했던 것은 꽃다지가 새롭게 가고자 했던 노래의 길을 어쩌면 꽤 괜찮게 잘 헤쳐 나갈 수도 있겠다는 단초를 보았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꽃다지의 음악 여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가수들 라인업이 갖춰져 어느 정도 수준 있는 공연을 해볼 만하다 싶으면 그만 두는 일이 반복되었고, 2011년 4집 음반을 낸 후에 는 98년부터 꽃다지를 지켜온 가수 조성일 마저 그만 두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정말 언제 어떻게 꽃다지 활동을 잘 마무리할 것인가? 그동안 만났던 팬들에게 인사 잘 드리고 활동을 정리할 때가 아주 가까이 와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길어야 2~3년이지 싶었습니다. 그런 데 어쩌다보니 앞으로 10년은 더 노래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2만개의 심장이 2 만개의 희망이 꽃다지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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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개의 심장, 2만 개의 희망을 꽃다지가 받았습니다 H-20000프로젝트 차량을 받을 사연공모 마감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음악감독 정윤경이 “우리도 H-20000 신청하자”라고 했을 때 꽃다지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가 왜?”, 이 한마디였습니다. Q : 쌍용차 해고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지? A : 응. Q :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A : 응. Q : 이 자동차를 자랑스럽게 운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단체이지? A : 응. Q : 자동차가 필요하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는 단체이지? A : 응. Q : 딱이네. 응모자격 있는데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 응모하자! …. A : 그, 그래도 저는 제 스스로가 희망지킴이인데 ‘우리 프로젝트’에 응 모하는 건 내부자 거래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응모할 생각 이 없었습니다. 가수들이 악기 챙겨들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주저주저하며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우리에게’ 기대하며 신청했던 차가 정말로 주어 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차가 앞으로 10년을 타도 끄덕없을 거랍니다. 막

H-20000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꿈 하나로 만든 ‘희망의 차’다. 스물 네 개의 세계가 소멸되는 것을 보면서도 발버둥 쳐온 그 세월이 담겼다.

상 받게 되니 겁이 덜컥 나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던 기름때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린 4년여의 세월,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꿈 하나를 지키려 스물네 개의 세계가 소멸되는 걸 보면서 발버둥 쳐 온 그 세월이 담긴 ‘희망의 차’를 받았는데 어찌 감격스럽지 않고 겁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함께 싸우는 H-20000을 만든 희망지킴이들이 꽃다지를 다시 한 번 크게 불러주시니 심기일전하여 ‘거친 세상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의 분노가 되고 희망이 되어 거리에서 온 땅으로 함께’ 해야겠지요? 결기 넘치는 약속보다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딱 그만큼의 모습으로 누구나 무심하게 '평온한 저 녁'을 맞이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노래하는 음악인으로서 정진하며, 마음이 닿는 날까지, 몸이 허 락하는 날까지, 스스로에게 정직한 음악으로 만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아련한 향수로 기억되는 꽃다지가 아니라 미래의 꿈을 향해 현재의 희망을 나누는 꽃다지일수 있도록 애쓰며, 그 마음으로 오 늘 나누고 싶은 노래는 ‘노래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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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꿈


금주의 말씀: 마음과 정성을 담아‘수도 서울’ 을 봉헌합니다(엠비복음 5:31) 비전 선언문 신실한 제자 되어 두둑이 헌금하는 성령공동체

대한 기불천교 광어회

5대 비전

Christ-Buddhism flatfish sashimi

1.차별금지법 저지

네두익 교회

2.동성애자 치료

Internet rightwing church

3.전 국토 복음화

금주의 설교 노트

제목: 동성애 청정국, 천만 성도의 기도로 지켜내자 말씀: 어떤 남자가 여자와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그 둘은 역겨운 짓을 하였으므로 사형

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죗값으로 죽는 것이다. (레 20:13)

주님께서 역사하신 이래로 성령의 인도하심과 형제들의 믿음의 반석으로 이룬 동성애 청정 국이 한 순간에 무너질뻔했던 지난 몇 주의 시간이었습니다. 호시탐탐 주님의 성전에 도전 해온 종북 좌파들의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는 우리에게 전 국토 복음화의 고삐를 풀어선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 있었던 차별금지법 저지 특별 기도회에 많은 형제들께서 참석해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정성이 주님 계신 곳까지 전해져 마침내 종북좌파의 차별금지법 시도를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천만 성도들은 하마터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어 온 나라가 소돔과 고모 라와 같은 불기둥 속에 고통 받았을 것을 떠올리며 성령의 빛으로 앞으로도 계속될 반 복 음적인 시도를 막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주님께서 세우신 복음의 땅이 더럽혀지고 있습니 다. 뿐만 아니라 그런 시도를 주동하는 자들은 교회에 동성애자들을 차별한다는 누명을 씌 워 주님의 역사에 훼방을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교회에서도 동성애자를 차별 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과 다릅니다. 교회의 역할은 단지 주님의 자손 이며 우리의 형제이지만 잠시 타락의 길에 빠진 형제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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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매주 죄인의 발을 씻어주신 주님을 따르고자 동성애자들이 출입하는 사이트에 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죄 입은 형제들을 직접 만나 기도와 믿음으 로 치료하여 다시금 그들이 이성애자가 되도록 돕고 영원한 유황불의 고통에서 구하고 있 습니다.

이런 복음화 사업,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다면 더 이상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으로 금지되고 처벌된다면 어찌 지금과 같이 타락한 형제들에게 지옥과 고통을 말하며 주 님의 위엄을 떨칠 수 있을 것이며, 성경의 말씀 그대로 그들의 행위가 역겨운 것임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턴 형제들께 이미 반 복음적인 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나라의 이야기를 전해드 리겠습니다. 이미 오래 전 신앙 잃은 자들은 90년대에 동성애를 정신질환에서 제외시켜버렸 습니다. 이후 정신과에서 동성애자를 치료하는 행위는 많은 나라에서 금지되었습니다. 믿음 가진 의사들의 인도적인 의술이 금지되고 나서 동성애자들의 치료는 오로지 교회의 역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교회의 복음화 선교활동도 길이 막히고 있습니다. 2010년 영국에서는 동성 애가 우상숭배나 신성모독만큼 심각한 죄악이라는 것을 알리던 주님의 성실한 일꾼 알파 인 목사가 체포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알파인 목사를 박해한 근거 법률이 바로 차별금지법 의 일종입니다. 또한 아리아 민족의 우수성과(우리 민족이 아리랑 민족이니 우리와 가까운 민족인 것 같습니다) 동성애자들을 불태워 죽이자던 형제가 체포되어 영국의 종북좌파들이 만든 법으로 재판 받아야 했습니다.

차별금지법,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지옥의 문을 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지금은 성령의 도 우심으로 입법을 막았지만 종북좌파들이 장악한 UN인권위의 지적 사항에 따라 우리 정부 가 직접 차별금지법 제정을 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올해 안으로 입법될 정부의 차 별금지법, 우리 주님의 형제 자매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 막아야 합니다, 최소한 동성애가 차별금지법의 보호를 받게 해선 안됩니다. 종북좌파의 공세에 굳건한 신앙을 가 지신 박근혜 대통령의 근심이 크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기불천교 교회의 신자라고 밝히신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합시다. 차별금지법이 가져올 지옥의 고통도 막아냅시다. 그리고 우리 자랑스러운 동성애 청정국 지켜냅시다.

: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명시한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기독교 근본주의 계열의 교회들이 일간지에 동성애 혐오를 조 장하는 전면광고를 버젓이 싣기도 한다. 성정치위원회 박자민 운영위원이 이러한 세태를 풍자하는 칼럼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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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칼럼


미디어 읽기 /

일베 그리고 그들만의‘팩트’ 문제는 역사교육이다? <미래에서 온 편지> 준비팀

요 근래 한국사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집단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한 극우 인터넷 사이트이 다. 일베는 5·18 희생자들의 시신을 두고 ‘홍어 말리는 중’이라고 조롱하거나, 시신이 담긴 관을 두고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일컬어 ‘어머니 홍어 택배 왔어요’라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늘어놓았 다. 일베의 이러한 행태는 몇몇 종편의 5·18 왜곡 보도와 맞물리면서 사회적인 비난을 받았고, 5·18 관련 단체들은 일베를 고소했다. 그렇다면 일베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고, 또 해법은 무엇일까. 몇몇 언론은 역사교육의 부재를 원인으 로 꼽았다. 한겨레는 “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에서 제외되는 등 일선 학교에서 역사 수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면서 학생들의 역사의식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우려는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고 지적했다. 이어 한겨레는 “이 틈을 타고 일베처럼 무지와 왜곡에 기초한 편파적인 논리를 설파하 는 세력이 힘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역사수업 축소, 한국 근현대사 백안시…“역사교육이 문제야!” 오마이뉴스 현장 교사들의 말을 빌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현대사를 아주 짧은 분량으 로만 다룬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과정이 개정됐고 근현대사의 비중이 대폭 축소되었다 는 점도 꼬집었다. 경향 역시 “역사교육과 대학교육이 없어진 틈을 일베가 채운 것”이라며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중·고교 필수과목이었던 역사가 선택과목이 됐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근·현대사나 사 회과학 교육이 없는 점은 이들이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몇몇 방송도 마찬가지다. SBS <현장21>은 두 차례에 걸쳐 일베 현상을 다루며, 필수과목이었던 국사 가 기피과목이 되어버린 현실과 근현대사 교육의 부재를 꼬집었다. MBC <무한도전>은 아이돌들을 데 려다 장학퀴즈를 열고 그들에게 역사를 가르쳤다. MBC <컬

‘일베 현상’ 의 원인은 무엇이고, 또 해법은 무엇일까. 언론 특히 진보성향의 언론은 ‘역사교육의 부재’ 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투의 베란다쇼>에서도 대학생들에게 역사퀴즈를 내고, 대학 생들의 무식을 강조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광주에서는 공무원시험에서 역사 과목의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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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우리가 한국사, 특히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역 사교육을 강화하고 수능에서도 국사를 필수로 지정 하면 일베와 같은 쓰레기 사이트는 역사의 해프닝으 로 사라지게 될까?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아이돌 장학퀴즈 기획, 광주는 각종 공무원시험에 근현대사 과목 포함시켜… 정말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학교교육 무너졌는데 수업 늘린다고 해결되나 일베 현상은 역사교육의 실패가 아니라 교육의 실패다. 한 사회는 사회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교육해 개 인들은 사회화시킨다. 그러나 일베인들은 그 교육을 믿지 않는다. 교육을 믿지 않고 팩트(Fact)를 찾는다.

따라서 우리의 대안은 시험을 통해 아이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교육을 신뢰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5·18에 대해 가르친다면 일베의 팩트와 거리두기를 하게 될까? 아마 자신들이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에 “우리 선생 좌빨인증”이라는 글을 올리지 않을 까. 현재의 공교육은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많은 청소년들은 인터넷 활동을 통해 소속감 을 느낀다. 일베는 특유의 언어와 그들만의 팩트를 공유하며 공동체로 기능한다. 우리가 교육해야할 것은 5·18의 전개과정이나 한국사 사건들이 아니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들릴 때 이성을 통해 반 격할 수 있는 능력이다.

MBC <베란다쇼>가 역겨웠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베란다쇼에 등장한 패널들은 대학생들이 역사에 무지하다는 사실에 한탄하며 자신이 소싯적에 국사 100점을 맞았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단순암기로 무장한 한국의 교육현실이 교육의 가치와 기능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고, 이 틈을 일베의 팩트가 파고 든 게 아닐까.

역사교육이 아닌‘교육’ 의 실패… 본질적 접근 필요해 우리는 역사교육을 악화시키고, 주입식 교육을 통해 공부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면서 무엇을 강요 했던 걸까. 학생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육여건을 마련하지 않은 채 어디에 돈을 쓴 걸까. MBC 무한도전은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아이돌에게 역사를 가르쳤다. 그렇다면 아이돌은 왜 역 사에 대해 잘 모를까. 어렸을 때부터 어딘가에 틀어박혀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사는 아이돌의 모습이 요즘 학생들의 모습은 아닐까. 이러한 문제의식 없이 ‘역사교육을 더 강화해야한다’는 식의 접근은 학생들이 암기해야하는 것이 더 늘어나는 결과 이상으로 이어지지 않 는다. 일베 현상을 한탄하는 언론의 시각이 이러한 본질적인 접근으 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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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읽기

정말 교육해야 할 것은 5·18의 전개과정이나 한국사 사건들이 아니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반격할 능력이다.


소리 다운

당원들의 유쾌한 청각생활을 지지하는 이달의 음원 다운로딩 가이드 장석원 | 음악블로그 <Rubber SOUNDZ> 주인장

추천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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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모어Paramore Paramore 2009년, 창립멤버인 파로형제가 탈퇴, 특히 작곡의 주축이던 리드기타리스트 조쉬 파로Josh Farro의 빈자리 때문에 밴드의 존립이 걱 정스럽던 파라모어의 복귀작. 그러나 단순하게 생존을 신고하는 수준의 앨범이 아니라 팬들의 우려 따위 말끔하게 날려버리는 완성 도 높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여성 보컬인 헤일리 윌리엄스Hayley Williams의 작곡 능력이 떠나버린 멤버들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철 철 흘러넘칠 지경이다. 그러나 밴드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새 앨범의 매력이 아니다. 데뷔 이후 세장의 앨범이 승승장구하 는 동안 꾸준히 밴드를 따라다녔던 이모emo니 팝펑크poppunk니 하는 틀에 박힌 수식어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다양한 시도와 색깔 이 새 앨범의 진정한 매력이다. 2013년 상반기 최대의 성과임에는 틀림없고, 아마도 올해 최고의 록 앨범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안 들으면 후회.

● 강력하게 밀어주고 싶은 트랙 Still Into You / Hate to See Your Heart Break / Ain’t It F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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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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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카즈요시斉藤和義 ワンモアタイム원 모어 타임 아마 한국에서는 사이토 카즈요시의 싱글이라기보다는 『명탐정 코난』의 새 극장판 주제가라고 소개하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게다. 이번 싱글 발표 이전의 3장이 모두 드라마나 영화의 주제가였던 만큼, 이번에도 애니메이션 주제가라는 점이 꽤 일관성 있어 보이기 는 한다. 그러나 이번 싱글의 핵심은 안경 쓴 꼬맹이 따위가 아니라(코난 팬들 미안!), 사이토 카즈요시 데뷔 20주년 프로젝트의 첫 번 째 작품이라는 점이다. 주제가로 쓰인 애니메이션의 배경도 그렇고 발표 시기도 그렇고 여름의 비치파티용으로 최적화된 구성과 가 사가 ‘ワンモアタイム’의 매력포인트. 두 번째 트랙인 ‘Hello! Everybody!’는 70년대 초반 롤링 스톤즈 사운드의 완벽한 복제를 들려준 다. 마지막 트랙인 ‘幸せハッピー(행복한 해피)’는 이마와노 키요시로忌野清志郎, 호소노 하루오미細野晴臣 등이 결성한 전설의 유니 트, HIS의 커버다. 우쿨렐레로 일본전통악기인 샤미센 소리를 재현하는 점이 재밌다. ● 강력하게 밀어주고 싶은 트랙 / 달랑 세곡 들어있는 싱글이라, 전부 다 밀어줍시다!

추천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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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거티John Fogerty Wrote a Song for Everyone 한국인이 가장 많이 아는 팝송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수지 큐’는, 이 노래가 이주일 선생의 오리지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달리, 미국 밴드 CCR의 히트곡이다. 하긴 정작 본고장 미국인들조차도 CCR의 ‘수지 큐’가 원곡이 아니라 커버 버전이라는 걸 잘 모르니까, 이 노래 팔자 한번 참 기구하다. CCR의 프론트맨인 존 포거티가 예순여덟 번째 생일날 발표한 새 앨범 『Wrote a Song for Everyone』은 역으로 자신의 히트곡을 후배들과 함께 재녹음한 것이다. 이 앨범의 목적은 생일 맞은 노땅 아티스 트의 추억놀이가 아니라 CCR의 사운드를 현대화하는 것이다. 불과 40여 년 전의 음악들이 고전 취급 받으면서 ‘클래식 록’이라는 딱 지가 앉는 분위기다 보니 새로운 세대에게 CCR의 유산을 넘기는 방법으로는 꽤 적절해 보인다. 다만 정작 주인공인 존 포거티의 존 재감이 전면에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 앨범의 단점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존 포거티의 신곡 두 개(‘Mystic Highway’, ‘Train of Fools’) 가 잊을만하면 등장해 앨범의 창조자가 누군지 환기시킨다. 오래된 팬이라면 낯익은 멜로디에 반가울 작품이고, 어린 세대에게는 자 기가 좋아하는 음악의 기원이 무엇인지 더듬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앨범 제목이 “Wrote a Song for Everyone”인가 보다. ● 강력하게 밀어주고 싶은 트랙 /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와 함께‘한 Fortunate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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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다운


제주 에서

당원의 일상

조성일 | 민중가수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서귀포 하원마을 집에서 아침 6시 35분쯤 나와 5분정도 걸어가면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그곳에서 학생들 통학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시내버스를 타고 20분가량 잠에 빠져 있거 나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학생들과 꾹꾹 끼여서 가다보면 어느새 부턴가 버스 안에 혼자 남게 되는 데 그쯤이 아마도 효돈이란 곳을 지나가고 있을 무렵 일게다. 거기서 혼자 남아 개인 전용버스마냥 호강을 하며 십여 분가량을 더 가다보면 도착하게 되는 곳이 남원읍 위미2리 정류장이 되겠다. 거기서 다시 털털거리는 중고 스쿠터를 타고 십여 분가량을 들어가게 되면 온통 감귤 밭으로 뒤덮인 곳이 나오는데 그곳 한가운데에 내가 6개월째 차량운전으로 일하고 있는 어린이집이 있다. 오전에 두 시간, 오후에 두 시간. 어린이집 아이들을 아이들 집에서 데려왔다 아이들 집으로 다 시 데려다 주는 일이다. 갓난아이부터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까지 제주 사 투리로 재잘 되는 귀여운 승객들이 내가 운행하는 차량을 타고 내린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엔 차량 안에서 음악도 라디오도 틀지 않고 운행을 했다. 그리고는 모든 차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야 음악을 틀었더랬다. 그러다 일도 익숙해지고 매번 그렇게 다니는 게 너무 따분하단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라 디오를 틀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너무 하루 종일 라 디오와 음악만을 듣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졌다. 이 좋은 곳에서 말이다. 해서 요즘은 오후차량에서 만큼은 음악도 라디오도 틀 지 않고 운행을 한다. 차량 안에서 재잘거리다 노래하다 깔깔깔 웃어대 는, (그것도 제주 사투리로 ) 아이들의 소리에 귀 를 기울이기도 하고 그러다 히죽 혼자 웃으며 맞장구도 쳐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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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한라산과 아래쪽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 그리고 도로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무성한 나무들이 바 람과 함께 술렁이는 멋진 풍경들을 보며 묘한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하는 일이 음악이다 보니 음악을 많이 듣게 되고 노랠 많이 부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떤 날은 내 머리통이 정말 폭발할 것만 같은 때가 있다. 예전 같았으면 뭔지 모를 초조함에 되지도 않는 연습을 더 붙들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모든 걸 덮고 끄고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잠시 시간을 두고 고요함 속에 있다 보면 하나둘씩 내 몸 가까이로 다가오는 소소한 소리들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먼저 새소 리, 살랑대는 바람소리… 난 어느새 문밖으로 나와 의자에 앉아 무성한 삼나무와 그 위로 걸쳐진 구 름, 그 위로 티 없이 펼쳐진 청색 하늘에 넋을 놓고선 한참을 무심히 있곤 한다. 그것으로도 풀리지 않는다 싶으면 스쿠터를 타고 감귤 밭으로 둘러 쌓여있는 지대를 빠져나와 고즈 넉해서 보기에 참 좋은 위미 항으로 향한다. 그곳엔 두 개의 색이 다른 등대가 있는데 빨간 등대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 있고 하얀 등대는 빨간 등대를 바라보며 나아가 있다. 바다를 보고픈 나로서는 자연스레 빨간 등대를 더 많이 찾게 된다. 빨간 등대에 올라 털썩 주저앉아 있다 보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어느새 별생각이 없게 된다. 그게 참 좋다. 정말 완벽한 평화란 이런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하얀 등대 우측 편으로 해안 길을 따라 가다보면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유명해진 서연이네 집이라는 카페가 나온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만해도 태풍에 영화 세트장이 모두 부서져서 형체를 알아 볼 수도 없었는데 지금은 튼튼하게 지어진 서연이네 집이란 이름의 카페로 오픈을 해서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어 있다. 카페가 오픈하기 전까지는 그곳이 나의 조그만 휴식공간이었더랬다. 대충 내가 정 해놓은 곳에 걸터앉아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용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그곳은 뭔가 따듯함을 느끼게 해주는 꽤나 멋진 곳이었다. 한데 카페가 오픈하면서 그곳의 조용함과 소박함은 많 이 사라진 느낌이다. 영화 덕분인지 카페 주변엔 늘어서 있는 여행객 차들과 북적대는 사람들로 매일 채워져 있는 모습이다. 더 이상 그곳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찾아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난 다른 곳을 찾아야 했 다. 현재는 또 다른 괜찮은 곳을 하나 물색해 두었는데 한번 가보고 아직 가보진 못했다. 요즘은 녹 음 준비로 연습을 하는 시간이 늘고 또 몸이 피곤한 것도 있어 많이 나가지를 못한다. 서울에서 내려와 이곳 서귀포에서 침몰해 가던 나를 다시 비우고 채우고 바라봐 주는 시간들을 갖고 있다. 염장 지르자고 이런 글을 쓴 건 아니지만 결국은 염장 지르는 이야기가 된 듯하다. 그렇다고 마냥 이리 좋은 풍경과 사연으로만 지내고 있는 건 아니다. 이 글을 언제까지 쓸 수 있을 진 모르겠지 만 차차 속 쓰린 얘기들도 삐져나오리라 여긴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던 날들이 다 가고 습기의 공포가 엄습해 오는 서귀포 위미 작업실에서.

■ 조성일은 14년 동안 <희망의 노래 꽃다지>에서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제주에 살며 솔로앨범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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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의 일상


당원이 낸 책

장석준의 적록서재 장석준 | 뿌리와이파리 | 432쪽 | 18,000원

2012년 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의 주말 서평 란인 '프레시안 books'에 연재된 동명의 서평들을 묶어 펴낸 책이다. 장석준은 이 서평집에서 서른일곱 권의 책을 읽어나가며 자본주의 를 왜 극복해야 하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근본적 모색 을 시도한다. 첫 장에서 마르크스 사상을 비롯한 자본주의 비판을 다룬 저자는, 이어지는 두 개의 장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려 했던 역사적 시도와 현재의 노력들을 폭넓게 조망한다. 네 번째 장에서 는 새로운 녹색의 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며, 마지막 장에서 는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들이 제시되어 있는지 소개한다. 저자는 자 본주의 너머의 대안을 제시하는 책들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 금 책 읽기라는 역사적 대화에 뛰어들 것을 당부한다.

미래가 있다면, 녹색 최백순 | 이매진 | 272쪽 | 10,000원

우리 시대 진보의 가치와 지향을 대변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이매진 '시시각각'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진보신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고 서점 레드북스의 공동 대표로 일하는 최백순은 해외 녹색 당에 관한 소개나 연구가 거의 없는 지금, 세계 녹색당 중 가장 널 리 알려진 독일 녹색당의 속사정을 들려준다. 창당, 원칙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분열, 녹색 잔 다르크 페트라 켈리의 삶, 녹색당 대표 주자 요쉬카 피셔의 정치 전술, 위기 때마다 독일 녹색당을 살린 날 씨, 성공하고 실패한 적록 연정의 사정들 등등. 저자는 독일 녹색당 의 역사를 통해 녹색과 적색이 대화를 통해 변증법적으로 동맹을 맺는 게 우리 시대 진보의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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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변호사들 ― 대한민국을 뒤흔든 노동 사건 10장면 오준호·민주노총 법률원 | 미지북스 | 296쪽 | 15,000원

이 책은 지난 10여 년 동안 있었던 대표적인 노동 사건들을 골라 소 개함으로써 우리 사회 노동의 현실을 새롭게 진단하는 책이다. 노 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함께 판례와 법조항을 자유자재로 인용 하며 사건의 핵심을 설명하는 변호사들의 이야기는, 노동 사건들 사이에 숨겨져 있던 중요한 맥락을 드러낸다. 지난 10여 년 사이에 만들어진 제도와 법률, 판례 들이 노동3권을 차근차근 무력화해왔 으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노동 문제의 근본 적인 배경이었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생한 현장감을 더한다. 르포르타주 작가 오준 호와 만화가 최규석이 노동자와 변호사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 어크로스 | 308쪽 | 15,000원

세대론 담론의 등장 이전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치 사회 분 야를 넘나들며 가장 많은 글을 쓴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인 저자 한 윤형은 20대의 목소리를 사수하기 위해 분투해야만 했다. 그는 청 년 세대가 가진 냉소와 무기력을 발견했고, 모순 속에 놓인 자신의 20대를 통해 오늘의 청년 세대의 문제를 눈물이 날 정도로 재밌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청년 문제는 ‘대한민국 모든 사회 문제의 총체’ 였고, 냉소는 좌절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것은 후기 자본주의가 만 들어낸 사회적 충격이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디스토 피아적 미래를 상상하게 되면서도, 시대와 사회를 탐구하는 저자의 작업을 통해 세대를 넘어선 사회 문제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이 사 회를 살아가기 위한 ‘청춘의 존재 선언’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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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이 낸 책


진보신당 재정사업

진보신당이 재창당을 통해 당의 기틀을 다시 세웁니다. 새로운 당명을 알리고 전파하기 위해 현수막과 언론광고, 전국순회 등 모든 노력을 다하며 전국의 현장 곳곳으로 달려가겠습니다. 당명 홍보와 기관지 제작비용 마련을 위한 재정사업에 많은 관심과 주문 부탁드립니다.

● 제품구성 - 광천 구이김 : 1박스 8봉지 (1봉지당 6장) - 가격

1만원

- 개별 택배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5개 이상 무료배송 / 5개미만은 착불 ● 주문방법 - 전화 : 02) 6004-2014, 2016 / 팩스 02) 6004-2001 - 이메일 : newjinbo@gmail.com ● 결재계좌 - 신한 100-029-087093 진보신당연대회의 - 단체, 노조의 단체 구매는 할 수 없으며, 당원명의로 입금하셔야 합니다. ● 주문/배송 일정 - 1차 : 6.17~6.28(금) 1차주문 마감, 7월 1일(월) 발송 (당대회시 주문신청서 배부 및 접수 / 판매) - 2차 : 6.29~7.12(금) 2차주문 마감, 7월 15일(월) 발송 - 3차 : 7.13~7.25(목) 3차주문 마감, 7월 26일(금) 발송


<미래에서 온 편지> 창간준비호 ■ 발행인 이용길 편집인 장석준 편집팀 김민하 노정 박권일 이상엽 정철수 최백순 디자인 오혜진 ■ 등록일 2013년 6월 11일 등록번호 마포-라00403 발행일 2013년 6월 30일 주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1-12 비금빌딩 7층 전화 02) 6004-2027 팩스 02) 6004-2001 이메일 jinbonews@gmail.com 홈페이지 www.newjinbo.org ■ 값 10,000원


미래에서 온 편지

노동당 기관지

2013. 7. 창간준비호 https://newjinb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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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혜경 고문

“하수구 뚜껑 하나도 정치 아닌 것이 없다” 특집 | 지역에서 현장에서 6.23 미완의 재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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