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


움직일 수 있다. 말을 할 수도 있다. 눈도 멀쩡하게 깜박일 수 있었다. 가 위와는 다르다. 하지만 저를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추어있다. 후루야 레이는 자 신의 세계가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린 것을 알아챘다. 갑자기, 어째서? 컴퓨터의 실행 사운드와도 비슷한 것이 들렸다.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네모난 창이 떴다. VR 안경 따위는 끼지 않았다. 후루야의 눈앞에는 선택을 종용하는 두 가지의 버튼이 그려진 하나의 영역만이 높은 명도를 가 지고 있었다. YES or NO. 뭘 의미하는 걸까? 사각형의 창 안에는 오로지 두 개의 선택지뿐이었다. 후루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꿈이라도 꾸는 모양인듯 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도 리스크는 없겠지. 가볍게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후루야는 작은 것에서 굳이 부정을 하고 싶지 않았다. YES 버튼을 눌렀다. 세상이 천천히 되돌아왔다. 기묘한 일이었다.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후루야는 홀로 자리에 우뚝 서서 시간의 흐름을 지켜봤다. 그 뒤로도 희한한 일의 연속이었다. 후루야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경중 을 따지지 않고 흰 창이 떴고, 선택지를 누를 때까지 세상이 멈춰버린다. 처 음의 단순하던 선택지처럼 가벼운 것부터 앞으로의 일정을 정하는 중요한 일 까지도 버튼을 눌러야 했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에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아 니었다. 후루야가 내심 이런 중한 일에는 또 창이 뜨겠거니 하고 기다리고 있 으면 일어나지 않기도 했다. 몇 날 며칠을 시달리다 보니 이제는 실험을 하게 됐다. 혹시나 어떤 종류의 이스터에그 따위가 있나 하고 주변을 수도 없이 뒤 돌아봤고 선택지를 누르지 않고 버텨보기도 했다. 이제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 비를 하지 않는다. 정지된 시간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리고 선 택지는 두 가지.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선택이라는 것은 살아가면서, 하루에도 수 십 수백 번은 하는 일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마치 게임마냥 일어나는 일들은


매우 생소했다. 현실이 현실 같지 않았다. 하루는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 봐도 고통은 선명했다. 후루야는 데스크에 앉아 턱을 괴고 모니터를 노려봤 다. 어쩌면 이제는 병원에 가봐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조직의 괴멸 직전까지도 후루야는 발을 담그고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 지도 버번으로 살고 있었다는 뜻이다. 후루야는 지난 휴일에 봤던 어떤 예능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살인귀나 악당의 역할을 오래 하다 보면 그 배역에 물 들어 사고가 변하기도 한다고. 후루야도 종종 자신의 생각에 깜짝 놀라곤 한 다. 그리고 그것은 시각적으로 와 닿을 때 더욱 자극적인 법이었다. 후루야는 자신의 어깨를 거칠게 치고 지나간 남자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곧바로 창이 떴다. 따라간다. 가지 않는다. 뭘 뜻하는 거야. 따라가서 뭘 할 건데. 그런 생 각을 하고 있으니 지직거리며 글씨들이 픽셀화되어 깨어지고 재구축되었다. 따라가서 처리한다. 하지 않는다. 고민할 것도 없이 하지 않는다를 눌렀다. 심 장이 두근두근 뛰는 소리가 머리 안쪽에서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후루야는 발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숨을 뱉는 소리가 크게도 울렸다. 아무래도 정신에 이 상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후루야는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이 었다. 오늘은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회식이 있었기 때문이 다. 아침에 깨고 나서도 술기운이 영 달아나지 않아 운전할 여력도 없었고 혹 시나 단속에 잡힐 알코올이 남아있을까 걱정이 되어 두고 왔었다. 개찰구를 지나기 전 또다시 창이 떴다. 이제는 익숙한 알림음에 후루야는 고개를 들었 다. 이대로 돌아간다. 와 바깥으로 나간다. 두 가지의 선택지. 뭘 의미하는 걸 까? 심적으로 피곤해졌다. 돌아간다를 선택하려던 후루야는 무언가 깨달았다. 바깥으로 나간다의 선택지의 우측 하단 끄트머리가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 다. 색이라곤 없는 회색 조의 도화지에 유일한 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라이는 묘한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버번은 라이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 렇게 느꼈다. 그와 만난 건 그가 라이라는 코드네임을 받고나서 반년쯤 흐른 후였다. 물론 버번이 그를 알게 된 건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검은 조직의 코드네 임은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라이가 조직의 눈에 들었 다는 것은 진작 버번의 눈에도 띄었다는 의미였다. 조직의 말단에는 실제로 몇 년이고 코드네임도 부여받지 못한 채로 활동하는 인간들도 많았는데, 버번 은 그 중에 실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전부 파악하고 있었 다. 라이는 비교적 빠르게 코드네임을 받은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아주 정출挺出한 인간은 아니었다. 특기는 저격으로 그 솜씨만큼은 인정받고 있는 듯 했지만 조직 내에는 이미 저격에 뛰어난 인물이 키안티나 코른을 비롯해 몇은 있었다. 상부의 인정을 받아 정식 조직원이 되긴 했으나 버번의 기준에 따라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크게 경계할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착실히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소리에 따라 더 조사할 필요가 있 겠다고 생각할 즈음, 진에게서 명령이 떨어졌다. 버번은 거기서 라이를 처음 만났다.

그 임무 이후 버번은 라이와 종종 팀을 이루게 되었다. 때로는 스카치도 함께였다. 처음 라이를 보았을 때 받았던 느낌은 단순한 첫인상에서 끝나지 않고 그를 만날수록 강해졌다. 인간관계에 대해 제법 자신하는 버번조차 그 느낌이 뭔지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웠다. 객관적으로 볼 때 라이는 주변에 사람이 많을 것 같은 인물은 아니었다. 뾰족하게 올라간 눈꼬리와 짙은 다크 서클, 검은 장발, 창백한 피부에 항상


떠있는 무표정은 누구든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말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타인에게 상냥하지도 않았으니 이쯤 되면 곁에 사람이 있는 게 이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는 곁에 두기에 나쁜 인물은 아니었 다. 성격이 살갑진 못해도 사귀기 나쁜 것과는 달랐고, 일처리에 있어서도 맡 은 바에 빈틈이 없었다. 그리고 의외로 주변 분위기에 맞춰주는 면도 있었다. 버번도 그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주는 묘한 느낌 역시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로 토오루는 물의 온도를 뜨겁게 맞춰 놓고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마 음은 준비가 되었어도 몸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탓인지 갑작스럽게 머리 위로 떨어지는 뜨거운 물에 피부가 조금 놀란 듯 했다. 하지만 아무로는 개의치 않고 그 뜨거운 물에 자신의 몸을 씻어 내렸다. 몸에 손은 대지 않고 그저 물을 맞고만 있자니, 뇌가 물의 뜨거움 때문에 녹아버릴 것 같았지만 차 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 계속 맞고 있다 간 피부에 화상을 입을 것 같았으니 물의 온도를 적당히 맞추고 몸을 씻기 시작했다. 몸을 씻으면서 잊으려고 했지만, 자꾸만 카페에서 코난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라서 미칠 것 같았다. 울어 줄 사람은 충분히 울었어요. 아무로 씨 빼고. 자신을 그저 조직의 멤버로 알고 있을 때 보다 더 가까워지고 친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차갑고 살벌하게 말하는 소년은 처음이었다. 아무 래도 그의 죽음 탓이겠지. 좋게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하지만 그의 죽음 자체 가 좋게 넘어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소년의 말에 구멍이 나버린 심장에 물이 침투하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이대로 계속 욕실에 있다간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아 아무로는 욕 실 밖으로 나왔다. 밖에 놓여져 있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처음 욕실에 들어 갈 때부터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평소 샤워 할 때 걸리던 시간의 두 배 정 도는 더 걸린 것 같았다. 수도세 이런 건 어찌 되어도 좋은 문제였고, 오늘의 기억을 물로 씻어 내리려고 했던 제 자신이 바보 같아서 한숨만 푹푹 나왔다. 자자.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을 맞이하자. 그가 이번에도 죽은 척 하고 숨어 버린 거라면, 내가 찾아내면 돼. 그도 사람인 이상 흔적을 완전히 감춘 채 숨 는 것은 불가능 하니까.


해가 지고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낡은 호텔의 뒤편, 조용한 골목길에 어울 리지 않는 하얀 스포츠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버번은 시동을 끄고 노트북을 꺼냈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더 허름해 보였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 았다. 오늘 여기 온 목적은 다른 데 있었으니까. 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이 교 대하는 시각까지 20분, 늦어도 15분 안에 인트라넷에 저장된 데이터를 수정해 야 했다. 단순하다면 단순한 방법을 쓸 생각이었다. 며칠 전, 호텔 전 직원의 개인정보를 빼 내어 키 로깅 프로그램을 숨겨놓은 메일을 발송했었다. 부주의 한 누군가가 메일을 열어 본 순간부터 전송되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은 어 렵지 않았다. 외부인의 접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지 VPN에 접속한 뒤에 는 별다른 보안 프로그램 이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10분 남짓한 시간 안에 인트라넷에 저장된 데이터 를 모두 변조할 수 있었다. 초 단위로 카운트다운 을 하며 움직인 것이 무색했다. 메일 서버를 외부와 연결해 놓지 않았다면 더 까다로웠을 텐데, 보안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단 한 곳을 제외하면 모든 객실이 예약되어 있을 것이다. 어두워진 골목길을 헤드라이트가 밝게 비 추었다. 프런트 데스크에는 무기력한 표정의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조금 전에 데 이터가 바뀌었다는 건 꿈에도 모를 테지. “어서 오십시오. 성함이?” “아무로 토오루입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가명을 내뱉었다.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남자가 곤란 한표정을 지었다. “음.... 트윈 룸으로 예약하셨군요.” “네, 그렇습니다만. 뭔가 문제라도?” “대단히 죄송합니다. 전산시스템에 오류가 생겼는지, 지금 남아있는 객실이


13층의 더블 룸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놀라지 않는다면 의심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마치 큰일이라도 일어 난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죄송합니다.” 눈을 내리깔았다. 고민에 빠진 듯이 카운터 위를 톡톡 두드렸다. 이 정도면 적당하다 싶을 때 말을 꺼냈다. “어쩔 수 없네요. 더블 룸이라도 괜찮습니다.” “아, 예. 그러면 남아있는 더블 룸으로 객실을 배정해드리겠습니다.” “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프린터가 움직였다. 잠시 후 남자가 몸을 숙여 인보 이스를 내밀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객실은 1304호이고, 엘리베이터는 오른편에 있습 니다.” 결제를 마치고 받은 열쇠를 확인했다. 예상했던 숫자가 적혀 있었다. 가볍 게고개를 숙이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다섯 명이 채 타지 못할 만큼 비좁았다. 천장에는 보안 카메라가 달려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데이터베 이스를 통째로 폐기할 작정이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불투명한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반대편 끝에 있는 문 앞에 설 때 까지 어떤 방해도 받지 않았다. 문고리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철컥, 하는 소 리와 함께 잠금이 풀렸다. 객실 안은 담배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있는 점을 제 외하면 여느 호텔과 다를 바 없었다. 버번은 담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흐릿한 연기가 스며들어 머릿속이 탁해지는 기분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다른 때라면 발을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조건을 고려해서 결정한 저


격 포인트가, 하필 흡연실이 었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조금이라도 쉬고 싶 어 침대에 털썩 누웠다. 부옇게 일어나는 먼지들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뇌가 맑은 공기를 갈구했지만 창문을 열 수는 없었다. 뒷세계에 적을 둔 사람들은 저격에 민감했다. 단 한 발의 총알이라도 경계하며 움직일 텐데, 저격이 가능 한 위치에서 수상한 낌새가 보인다면 잠적해버릴 것이 분명했다. 진은 자그마 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특히, 어떤 점이 그를 자극한 건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더 날이 서 있었다. 조직에 잠입한 뒤로 하루하루가 칼 날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무엇 하나 빠짐없이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적대적인 시선을 받는 것은 익숙했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 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느릿하게 두 번, 짧게 한 번, 잠깐 쉬 고. 짧게 두 번, 느릿하게 한 번, 다시 짧게 한 번. 평범한 사람이 들었다면 조금 특이한 노크였을 것이다. 하지만, 버번은 그 안에 담긴 뜻을 읽을 수 있 었다. 알파벳으로 바꾸면, G-I-N. 진이 보낸 건가? 버번은 조용히 리볼버를 꺼 내 들고 문 옆에 다가갔다. 체인이 있었지만 쓸 생각은 없었다. 조직원이 아 니라면 자신을 제거하는 것이 주목적일 터. 폭탄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 를 상대로 공간에 제약을 두는 것은 불리했다. 손잡이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이마에 총구를 겨눴다. 반격할 틈 따윈 주지 않았다.


재차 걷어찼다. 퍽, 뼈가 부딪힌 듯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평생을 찾아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정보가 바로 여기 있다, 있었 다. 아카이 슈이치, 그게 그 저주스러운 놈이 가진 이름이다. 본명이다! 갈기 갈기 찢어진 쪼가리들을 내려다보는데 문득 문이 열렸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조용히 고개 들어 그를 마주했다. 창백한 얼굴이 있다. 초록색 눈이 뱀처럼 움직인다. 문이 닫혔다. 입이 열렸다. “안녕, 버번.” 지금그런말이나오는가내가4년간너를얼마나찾았는데정말죽여버리고싶었는데 그렇게찾아도안나오더니지금와서이렇게자연스레나를맞아도괜찮은가4년전에도 그랬지스카치를죽였을때도그래스카치를죽였을때도너는언제나그창백하니시체같 은낯짝으로나를우롱했지4년간코빼기도안보이더니이제와서왜나를부르는거야그 죽어버린이름은왜쓰는거야이제나를알면서내본명을알면서내가누군지도알면서네 가죽여버린그남자가누군지도알면서그남자가어디소속인지도알았으면서내가어디 소속인지도알았으면서그렇게태연한낯짝을하는거야내가누구인지알았으면서스카 치가누구인지알았으면서 스카치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알았으면서! 곧장 코트 깃을 잡아 거의 집어던지다시피 넘어뜨리고서는 그 마른 볼을 퍽 내리친 순간 무슨 일인지는 알겠는데, 신음 하나 섞이지 않은 냉정한 말이 올랐다. 알겠다고? 알겠어? 알겠다고? 붉어진 눈앞을 정리할 생각도 하지 않 고 무작정 볼이며 어깨를 퍽퍽 내리쳤다.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언제든 벗어날 능력을 지닌 센티넬이면서 얌전히 맞아 주는 이 행태조차도 고까워 더 힘을 실었다. 입술이 터지고 코가 터져서 피가 줄줄 흐르는데 라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게 더 싫어서 힘을 더 실어 두 드리고 근 4년간 쌓아온 분노를 주체할 길이 없어서 기어이 목에 손을 올리


고 라이는 거부하지 않고 어쩔 수가 없어서 그 목을 더 힘껏 내리 쥐고 마침 내 라이가 몸을 움직이는데 손아귀를 풀 수가 없어서 풀지를 못해서 꼭 누가 붙여놓기라도 한 마냥 이만 악물릴 뿐 손가락은 좀처럼 펴지지가 않아서 마 침내 라이가 숨을 꺽꺽대며 발로 배를 걷어찰 때까지 악 받혀 붙잡고 있었다. 죽을 뻔했어, 그가 담담히 말했다. 다 터져 온전하지 못한 입술이며 코를 손등 들어 슥 훑고는 피곤하다는 듯 소파를 찾아 앉은 라이가 이 모습으로는 처음 만나는군. 자기소개부터 하지, 긴 다리를 처참한 몰골과 어울리지 않게도 우아하게 꼬았다. 아카이 슈이치라고 한다, FBI 소속 SSS 랭크 센티넬이다. 올해 32세지만 이 정보는 필요 없을 것 같군. 내가 40세라 해도 자네는 내 게 존칭 따위는 쓰지 않을 테니까. 이제 자네 소개 좀 해주겠나? 그 망가진 얼굴을 내려다보다 이미 다 들었을 것 같은데, 천천히 마주 앉았다. 그래도 서로 입을 통해 듣는 쪽이 좋으니까. 통성명 정도는 해야지, 한 달 동안 팀이 될 텐데. 갑자기 또 분노가 치민 나머지 테이블을 아카이 쪽으로 걷어차자 이 제 폭력은 그만두게, 대화하다가 상대를 위협하는 게 일본 쪽 대화방식인가? 언짢음 가득한 목소리가 흘렀다. 내가 왜 화내는지 모르겠어, 라이? 굳이 그 호칭을 들먹이니 상대는 양해를 구하기는커녕 어디 쳐볼 테면 쳐보라는 표정 을 하고서 담배를 꺼내 콱 물었다. 성냥을 써 불을 붙이는 버릇까지 그대로라 더 기가 찼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라이. 정말 단 하나도. 말을 곱씹다간 다시 주저앉았다. 불룩이 튀어나온 손등 마디가 까졌는지 욱씬거렸으나 감쌀 생각도 않았다. 뇌를 뜨거이 달구는 숨을 내려 후루야 레이, 이름을 씹어뱉었 다. “29살, 가이드. SSS급. 보다시피 공안 소속이지.”

월간아무아카_2호_샘플  
Read more
Read more
Similar to
Popular now
Just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