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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번.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한 단서의 실마리를 좀 잡은 거 같아요.” “호오, 어떤?” 어린 시절 별명이 제로라고 했어요. 꼬마의 목소리는 내 귓가를 지나 머릿속을 울렸다. 어린 아이들의 별명 짓 기는 상당히 단순하고 1차원적이다. 이름에 Zero, 즉 0과 관련된 단어가 들어 간다면 그 아이의 별명은 제로가 되는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 지만, 어깻죽지의 표식이 조금 반응하는 것 같았다. ……카이 씨, 아카이 씨! 꼬마의 목소리에 조금 멍해져있던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제 얘기 듣고 있어 요? 아, 미안. “버번은 아무래도 우리 편이 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Zero. 단순히 어린 시절의 별명이기도 하겠지만, 그 조직을 뜻하기도 하잖 아요?” “…….”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어라, 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공안경찰의 속칭. 단순히 버번, 아무로 토오루의 어린 시절 별명이 제로라 고 해서 생각한 것은 아니에요. 그 뛰어난 통찰력, 하이바라를 죽이려 하지 않았던 행동, 그리고 FBI 요원들에게 날을 세우면서 말했던 ‘나의’ 일본에서 나가주지 않겠냐는 그 말. 모든 것을 조합해보면 버본은 공안에서 잠입한 스 파이, 라고 저는 생각해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무엇이 불안한 거니, 꼬마야.” “아직 들킨 건 아니지만,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버리기라도 하면……” “그럴 일은 없어. 언제 한번 말한 적 있잖나.” “…….”


언제부터인지 후루야의 일과는 매우 단조로워졌다. 깨어있는 동안 기계처럼 업무를 보고, 끼니를 챙기고, 다시 업무를 계속하다가 정신력의 한계에 다다 를 때 쓰러지듯이 잠 든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작성해야 할 서류 는 이미 끝낸 지 오래였어도 잠들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정신은 또렷 해졌다. 다른 이에 비해서 잠이 적은 편인 후루야에게도 불면증은 치명적이었 다. 살아있는 시체들이 근무하는 본청에서도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충고가 고맙긴 했어도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원 인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이 불면증의 원인이 번 아웃 신드롬 따위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루야 레이는 주어 진 일에 허우적거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가 헤쳐 온 길은 범인이라면 들어설 엄두도 내지 못 할 만큼 험한 가시밭길이었으니까. 새벽 세 시. 후루야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방향도 없이 번져가는 생 각을 접어 두어야 할 시간이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이대로 잠 이 들기를 바라는 건 사치였을까?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이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오리털이 가득 채워진 폭신한 이불도 소용없었다. 왼팔을 이불 밖으 로 내밀었다. 차가운 공기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그대로 사이드 테이 블을 더듬어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나운서의 음 성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춥지만 날이 맑아 겨울의 대 삼각형이 뚜렷하게 보일 텐데요, 꼭짓점이 되는 시리우스와 프로키온, 베텔게우스를 찾 아 직접 관측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 날씨였습니다. 보통 때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을 뉴스 한 조각이었다. 그런데 도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후루야는 외투를 걸쳤


다. 조금이라도 몸을 더 움직이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변명을 해보지만 정답은 알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의 버튼을 누르면서도 홀린 듯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옥상에 들어서자마자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뒤집어져서 시야가 가려질 정도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람을 피할 곳을 찾던 후루야는 구석에 놓인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봤다.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적중률이 바닥을 기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이렇게까지 빗나갈 줄은 몰랐다. 낮게 깔린 먹구름에 가려 별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찬바람 에 한 줌 남아있던 잠까지도 멀리 달아난 상황이었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추위에도 후루야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조금씩 구름이 걷혔다. 검푸른 색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별들 가운데서 도 유난히 눈에 띄는 별이 있었다. “저게 시리우스…….” 얼어붙은 입술 사이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일 밝게 빛나는 별도 후루야의 마음을 밝혀주지는 못했다. 시리우스. 다른 말로 큰 개 자리 알파 성. 인간의 상상력은 대단해서, 단순한 점 몇 개를 이은 것에 별자리라 는 거창한 이름을 달아주고, 상징적인 의미까지 부여하곤 했다. 후루야도 그 런 점에서 다를 바 없었다. 큰 개 자리를 보며 FBI의 개라고 칭했던 그를 떠 올렸으니까. 이런 데에서까지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다니, 기분이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 너무나도 한심했다. 그렇지만,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불가항력이었다. 복잡한 마음과는 별개로 시리우스는 변함없이 빛나 고 있었다. 후루야는 손가락 으로 큰 개 자리를 몇 번이고 그려냈다. 코끝이 아려오는 건 분명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는 양 눈꼬리를 슬쩍 내린 아카이가 어딜 자꾸 보길래, 뭘 보나 했지. 어딜 그렇게 볼까... 창가 비스듬히 몸을 기댔다. 후루야 군은 내 무엇을... 찰나 모 든 소리가 잠겼다. 초록색 눈과 긴 속눈썹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인 마냥 짙었 다. 목덜미를 감춘 검은 셔츠가 잔바람을 맞아 살짝 기울었다. 튀어나온 광대 아래 진 그림자 역시 창백하다, 말을 잇는 대신 등을 뉘여 아카이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시야 가득 든 허연 얼굴은 예전과 한 치 다름없이 창백하다. 문 득 목이 간질거렸다. 소리가 찼다. 뱉으려다 삼켰건만 당신은, 한 마디가 먼저 튀어나와 버렸다. 응, 늪이 대답했다. 소리가 밀려왔다 나갔다. 여기서는 안 돼요, 했다. 늪은 그렇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야해요, 말했다. 마침내 늪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태껏 잡아먹힌 그림 자들이 그 턱 아래 있었다. 어디 갈까. 처음 듣는 제안이었다. 사람들 눈이 없는 곳, 소리가 멀어졌다 돌아왔다. 파 도 같았다. 사람들 눈이 없는 곳? 천천히 말을 되뇌인 늪이 2층 갈까, 팔을 펼쳤다. 다들 취했어, 2층으로 가자.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거야. 그런 사람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아카이는 그렇다고 말했다. 믿었다. 그래요, 무작정 그 등 을 따랐다. 척추 모양을 따라 검은 창틀 자국이 나있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말은 하지 않았다. 2층은 서늘했다. 들어와, 늪이 무심히 말했다. 끈 적이지 않았다. 발이 매이지도 않았는데 거부하지 못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어, 체향이 짙었다. 체향이 짙었다. 그제야 정신을 잡아 문을 닫고는 여기에는 정말 아무도 안 옵니까? 조심스 레 물으니 그렇지, 다들 취했잖아? 너와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도 나중에서나 조디가 알아챌 걸. 우리 얘기가 그렇게 오래 걸릴 종류인가? 덤덤한 답이 돌


갑자기 들이치는 큰 소리에 후루야는 놀라 잠에서 깼다. 그가 채 정신을 차 리기도 전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소음은 그쳤다. 어두운 곳에서 후루 야가 본 것은 문틈 사이로 들어오던 빛과 방을 나서는 누군가의 뒷모습이었 다. 두어 번 억지로 눈을 깜빡여 정신을 차리면, 후루야는 자신이 있는 곳이 기차의 객실 안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고개를 돌려 맞은편 침대와 그 아래 의 칸까지 확인하면 두 자리 모두 커다란 배낭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후루야 를 놀라게 한 큰 소리는 그들이 객실을 나서면서 여닫은 문틈으로 들어온 소 리였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안심하는 기분으로 후루야는 목에 힘을 빼고, 풀 썩, 다시 베개 위에 머리를 눕혔다. 어느새 잠에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후루야의 마지막 기억은 덜컹, 덜컹, 하는 지속적이고 작은 소음을 들으며, 객실 사람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것이다. 모두가 잠에 들면 머리맡의 전등을 켜고, 역에서 구입한 책이나 읽으며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얼마나 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법 깊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하고 소리를 죽인다고 해도 이런 좁은 기차 객실 안에서 작은 움직임도 제법 큰 소리를 내는 법이다. 그 들이 방을 나서기 전까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을 텐데 후루야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잠시 누워있던 후루야는 머리맡의 전등을 켰다. 깨어 보내야 하는 밤은 길 고,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 쉬웠다. 몸을 일으켜 발치에 아무렇게나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이국의 언어로 쓰인 책은 청소년을 위해 쉬운 말로 풀어쓴 고전 이었다. 후루야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낯선 언어로 더듬더듬 읽어나갔 다. 읽기 쉽게 글씨의 크기도 여백도 넉넉하게 편집된 책인데도 책장이 넘어 가는 속도가 느렸다. 후루야에게 익숙하지 않은 언어이기도 했지만, 후루야가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후루야에게는 훨씬 이전부터 신


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결국 책을 내려놓고, 덮은 이불을 걷고, 차가운 쇠파 이프 계단을 딛고 내려와 후루야는 기차 바닥 위에 섰다. 덜컹, 덜컹, 규칙적 인 기차 소리와 함께 간간히 후루야의 몸도 흔들렸다. 후루야가 켠 전등의 불 빛도 닿지 않는 후루야의 침대칸 바로 아랫자리에, 어디에서나 잘 자고 그만 큼 쉽게 깨는 남자가 잠에 들어 있다. 아카이 슈이치. 빛이 모자란 곳인데도 아픈 사람처럼 창백하게 흰 얼굴이 보였다. 역에서부 터 몸이 아픈 기색을 보이며 감기약이나 비타민 같은 것들을 사던 것을 보았 다. 언제나 기척에 민감하던 사람이 후루야가 지척에 서 있는데도 아무런 반 응이 없었다. 그것이 먹은 감기약 때문이든, 그동안 쌓인 피로 때문이든, 후루 야는 제 안에 품어오던 의문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을 텐데,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이 사람은 자신과 함께 있어주는 걸까, 하고.


별 한 점 없는 도시의 밤은 정말 하늘이 이렇게까지 단조로울 수가 있나싶 을 정도로 삭막하다. 얼마 안 되는 밝은 빛이 보이긴 하나, 그마저도 단순히 영혼 없이 반짝이기만 할 뿐인 네온사인이나 인공적인 구조물일 것이다. 아카 이 슈이치는 이 거짓으로 가득 찬 밤하늘을 바라보며 책을 덮었다. “아카이, 뭐 해요?” 주변이 적막하기만 한 가운데,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금발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아카이는 이 남자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 다.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후루야는 오늘따라 기분이 꽤 좋은지 보기 드문 미 소를 하고 손에 들고 있던 위스키 병을 흔들었다. 자연스럽게 아카이의 맞은 편에 비어있던 의자에 앉아, 자신의 잔에 위스키를 따르며 후루야는 입을 열 었다. “도쿄에서는 별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쉬워요.” “동감이야.” 아무 생각 없이 말을 주고받던 둘은 눈이 마주치자 꼭 약속이라도 한 듯 킥킥 웃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별로 웃기지도 않았을 이런 일들도 아카이, 그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 된다. 후루야는 아카이의 웃는 얼굴을 좋아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아카이의 밝은 미소는 후루야가 그에게 반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평소 아카이 의 눈동자에 어린 음울한 그림자를 지워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너무 웃어서 급기야 눈물까지 맺힌 후루야를 바라보던 아카이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말을 걸었다. “레이.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 후루야는 그 전보다 훨씬 더 크게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원체 미신을 잘 안 믿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아카이가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후루야의 입장에선 다 큰 삼십대 남자의 입에서 이런 동화 같은 말 이 튀어나왔다는 점이 황당했던 것이다.


후루야 레이는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적부터 기묘한 꿈을 꿨다. 그 꿈은 아 주 작고 사소한 내일의 일부터 후루야의 영역이 아닌, 거대한 미래를 보기도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른바 예지몽이었다. 예지몽을 꾼다고 해서 미래를 바꿀 수 있느냐 하면 그럴 수는 없었다. 운명은 말 그대로 정해진 것이기에 거스를 수는 없었다. 작은 미래를 바꾸고 싶어서 어린 후루야가 어찌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아마 지금의 후루야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바꾸지도 못 할 미래 따위 어째서 보여주는 거야, 하고 소리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의 후루야는 요령이 생겼다. 피할 수 없으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됐다. 연말과 연초를 잇는 1월 1일에는 특별한 꿈을 꿨다. 너무 어릴 때는 기억이 없지만 아마도 인식하기 이전부터 꿈을 꿨을 것이다. 꿈에는 단 한 명의 사람 이 나왔다. 후루야는 그와 함께 성장했다. 꿈속의 상대와는 다양한 일을 했다. 소꿉놀이를 하기도 했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했다. 심신이 점점 성숙해지 자 사춘기 무렵부터는 성적인 행위도 시작됐다. 뭘 했는지는 기억이 생생한 데, 막상 상대의 얼굴과 목소리 따위는 명확히 떠오르질 않았다. 처음엔 꿈을 꿨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억이 선명해져도 얼굴만 은 자세히 보질 못했다. 후루야는 자신의 꿈이 혹시나 운명의 상대를 보여주 는 것이 아닌가 했다. 예지몽이라고 하기엔 매 정초에 상대를 만나는 꿈을 꿔 도, 단 한 번도 그해에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꿈은 여전히 이어졌다. 처음부터 짧은 머리였던 상대가 서서히 머리를 길게 기르기 시작한다는 것도 깨고 나서 알아차렸다. 꿈속에서 후루야는 상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사랑을 말하고 애정을 나누었다. 상 대는 언제나 후루야에게 열려있었고, 마주 안아주며 웃어주었던 것 같다. 영 원 같았던 꿈에서 깨어날 때면 그 날 종일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름도


나이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다니, 영화와도 같은 허무맹랑한 이 야기다. 며칠이 지나면 또 잊은 듯 잘 살다가도 연말이 오면 꿈을 꿀 생각에 다 두근거렸다. 12월 31일에는 어떠한 약속도 잡지 않았다. 일찌감치 목욕재 계를 하고 잠이 드는 매 연말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상대를 만나기 전까 진 그랬다. 남자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의 첫 만남은 그리 좋지 못했다. “버번이라고 합니다.” “아아.” 대답도 긍정도 아닌듯한 모호한 소리에 후루야, 즉 버번의 눈썹이 튀었다. 첫눈에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결이 좋아 보이는 긴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 색, 한 번 안아본다면 확신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던 것이 와르르 무너 졌다. “기본적으로 처음 만났는데, 당신도 자신의 코드 네임 정도는 소개해야 하 지 않겠어요?” “처음.” “네, 처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코드 네임을 말하며 내리깔고 있던 눈을 뜬 라이가 버번과 한참 시 선을 맞췄다. 어떤 맥락으로 하는 말일까. 그의 말이 비꼬는 것처럼 들려 불 쾌한 감정이 일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스카치와 라이, 버번 셋이 조를 이 루어 임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상부에서 명령받았으니까. 스쳐 지나가며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식으로 만나게 된 것은 처음임에도 라이는 굉장히 무신경하고 무표정했다.

월간아무아카_1호_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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