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들의 사진사>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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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5

Out of the Photography

NO. 2


대중문학과 본격문학, 대중사진과 본격사진

40세,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December 2015 NO.2

25번째 사진

p.6

p.22

오독오독

The Strange Land

모스크바 이즈마일로프와 붉은 광장

반납 예정일

대답없는 질문

p.34

p.46 이제는 사진가로 변신할 시간

Square the circle 까마귀는 눈이 없다

p.64

p.94 기념사진, 당신의 무엇입니까? 25번째 사진

p.104

사진적 체질


미국의 컨트리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노래 하나 소개한다.

그녀의 노래 속에서 후렴은 반복되고 질문은 줄기차게

Looking at it now, it all seems so simple. (지금 돌이켜 보면, 모든 게 단순했던 것 같아)

어에서 ‘Out of’는 안에서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다. 사나

We were lying on your couch, I remember (우리는 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었지, 난 기억해)

위험을 벗어날 수 있고, 우리를 가둔 어두운 상자 밖으

You took a Polaroid of us (넌 폴라로이드 사진에 우릴 담았고) Then discovered (그때 발견했던 거야)

계속된다. Are we out of the woods yet? 알다시피, 영 운 짐승들이 많은 숲 밖으로 나가야(out of the woods) 로 나가야(out of the box) 다른 생각,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무리 질문을 해봐야 해답이 없는(out of the question) 일이라고 해도 우리는 질문을 멈출 수가 없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온통 흑 백이어도 우리는 선명한 칼라 속에서 빛나고 있으므로,

편집서문

The rest of the world was black and white (세상에 남은 건 온통 흑백이었지만)

‘out of’의 질문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이어지는 노

But we were in screaming color (우리들은 선명한 칼라 속에 빛나고 있다는 걸)

고가 났을 때를 기억하고(Remember when you hit the

And I remember thinking (그리고 난 이런 생각도 했지)

의 나이를 지나 40세를 훌쩍 넘어섰을 수도 있다. 우리

Are we out of the woods yet? (우린 아직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 건가?)

의 어둠, 피곤한 일상, 더 이상 춤출 엄두가 나지 않는 나

Are we out of the woods yet?

든 여러 갈래의 길들과 수많은 선택들... 그러나 우리는

래 가사처럼, 우리는 ‘지나치게 브레이크를 빨리 밟아 사 brakes too soon) 있을 지도 모른다. 어느새 우리는 청춘 는 여전히 숲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회 이, 애써 문밖을 나서고도 어디로 가야할지 결정하기 힘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춤을 추기 위해 우리를 가로막고

Are we out of the woods yet?

있는 방 안의 가구를 옮기기로 결정했던 그 날들을(We

Are we out of the woods?

decided, to move the furniture so we could dance).

Are we in the clear yet? (우리는 아직 위험한 걸까?)

과거라는 시간도, 숫자에 불과한 나이도, 우리의 사진마

Are we in the clear yet?

저도 ‘Out of’를 멈추는 순간에 우리는 다시 틀에 박힌 상 자 속에 갇힐 것이므로, 당신과 내게 보내는 새해 기원은

Are we in the clear yet?

이 말로 대신하련다. 당신 안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사진

n the clear yet, good. (그래, 아직)

안에서 사진 밖으로 나오기를. Out of the Woods! Out of the Photography!


글•사진

40세,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25번째 사진 선착장은 배가 출발하는 곳인가? 도착하는 곳인가? 사십은 출발하는 나이인가? 도착하는 나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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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기타 등등의 삶 이 나이쯤 되면 무언가를 만들 줄 알았고, 남길 줄 알 았다. 지금까지 대단한 일을 하지도 못했고 새로 대단 한 비상을 꿈꾸지도 못한 채 평범한 일상 속에 누구에 게나 주워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주 이르지도 그렇 다고 아주 늦지도 않은 지금, 주인공이 아니라 기타 등 등이 되어.

‘사십’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는 왠지 나에게만 무겁

@2013 매일 해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어디서 떠오르냐가 문제다.

게 느껴진다. 고작 응석이라는 것이 사진 몇 장이 다다. ‘오십’이라는 숫자가 내게 오기 전 지금 이 순간을 남기 는 것이 다행이다 위로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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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한 때는 세상과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야 내가 특별해 보일 것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을 자유 10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숲이 생성되 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들이 가진 자연스러움이 부 러워 나 또한 자연스러움의 환상에 사로잡힌다. 아무 것도 숨길 필요도 없다, 자유롭다, 즐겁다. 나도 그들과 하나 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착각이자 거짓이지만, 그래도 그 누구 앞에서든 아무렇지 않은 자유로움을 갈 구하는 나. 그리고 이내 현실 속 나의 초라함과 마주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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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고백 , 창피함과 부끄러움

사회초년 시절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창피함을 몰랐다. 창피함을 모른다는 것은 어쩌면 실패에 대 한 두려움 혹은 무언가를 잘못했어도 그에 따른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뜻이다. 막무가내로 밀어 붙 이는 열정과 다시 시작하면 될 거라는 희망만이 공존했다. ‘젊은 시절에 열정과 투기가 없다면 무엇이 남 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무리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내가 주인공이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조직 생활에 익숙해지니 열정은 눈치로 바뀌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핑계 아 닌 핑계를 찾아 안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고 말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라는 논리가 모든 상황을 무마시키는 느낌이다. &lt;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gt;라는 책을 보면서 ‘적어도 나만큼은…’ 이란 말을 곱씹었던 다짐은 도 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비겁하지도 그렇다고 정의롭지도 못하다. 기껏 SNS에 자아비판이 나 자기고백을 하며 나름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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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본질은 보지 못하고 화려함만을 꿈꿨던 내가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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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어쨌든 흘러간다. 어쨌든 살아간다. 대단하지 않지만 초라하지도 않도록 .

초라한 항변 16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한결같다는 것. 계절이 변하든 세월이 변하든 변함없이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것. 그런 것들이, 그럴 수 있는 자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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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영화 &lt;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gt;에서 벤자민의 양어머니인 퀴니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뿐 마지막 도착하는 곳은 같다.” 마지막 종착역은 같은데, 그 종착역에 어떻게 갈 지를 고민할 때가 있다. 뭔가 특별해야 좋은 삶이라고, 누군가가 알아주길 원하는 삶을 생각했던 세월들이 부끄럽다. 이제는 시간이 가는 대로 시대가 변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함께 흘러가는 삶을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이 아닐까 싶다. 대단하진 않지만 가족, 친구, 동료들과 소소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을 즐기며 행복을 찾는다면 삶이 거꾸로 흐른다 해 도 마지막은 똑같을 것이다.

소심한 기대

“물질에도 자연현상에도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눈에 보이지 않 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거야.” 오래 전에 보았던 &lt;박사가 사랑한 수식&gt;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박사의 대사이다. 추상적이지만 지극히 당 연한 진리. 물질적인 삶을 살고 있고 물질에 의해 감정이 휘둘릴 때도 있지만, 그 물질이 지향하는 본질을 이해하면 물질에 대한 욕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떤 물질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 떤 가슴을 가진 사람인가를 생각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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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욕심을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깊은 애정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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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학과 본격문학,

실제로 대중문학의 다양한 장르 문학들을 즐겨 읽는다. 다만, 각자의 소임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작가가 실제로는 대중문학을 하면서 자신이 본격문학을 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그 점에서 일본 문학계에 던졌던 가라타

대중사진과 본격사진

니 고진의 아래와 같은 조언은 지금의 한국 소설계에도 유효하다. 그렇게 한 국은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나는 작가에게 ‘문학’을 되찾으라고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가 오 글•사진

오독오독

다음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내용 중 일부다. &lt;신경숙의 베스트셀러와 ‘비평의 위

락 작품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

기’&gt;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고, 글을 쓴 이는 문학평론가이자 충남대학교 영어

품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만화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그것이 가

영문학과 오길영 교수다. 신경숙 표절 논란이 뜨겁게 불거진 것은 올 여름의 일

능한 작가는 미스터리계 등에 상당히 있습니다. 한편, 순수문학이라고 칭하

이지만, 이 글은 5년 전인 2010년에 실린 글이다. 오래된 글을, 그것도 긴 글

고 일본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 됩

에서 발췌한 짧지 않은 인용문을 굳이 옮기는 것은 사진하는 이들이 이 글에서

니다” (가라타니 고진, &lt;근대 문학의 종언&gt;, 도서출판 비, 65~66쪽)

‘문학’을 ‘사진’으로 바꿔 읽어보기를 권해서다. (전체 글이 궁금한 분들을 위 해 원문을 링크한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5516 )

나는 가라타니의 지적을 이렇게 읽고 싶다. ‘순수문학이라고 칭하고 한국 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된다. 신경 숙의 많은 애독자들은, 신경숙 문학을 내가 자의적으로 대중문학으로 폄하하

‘내가 보기에 신경숙은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그 경계의 근거에

는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lt;엄마를 부탁해&gt;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에서 이제 대중문학으로 완연하게 넘어

나 &lt;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gt;은 분명 본격문학보다는 대중문학

갔다. 이것은 가치 판단이 아니라 사실 판단이다. 다시 말해 나는 대중문

에 가깝다. 대중문학과 본격문학 사이에 만리장성이 놓인 것은 아니다. 그러

학을 폄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대중문학의 가치를 십분 인정하며

나 분명한 차이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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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하나.

대중사진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감

본격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에 만리장성이 없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작가가 항상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수성에 호소하고 영합한다. 그러나 본격 “&lt;노르웨이의 숲&gt;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는, 이것은 내가 진짜로 하고

문학은 대중의 감수성에 충격을 주고 불 편하게 만든다. 작가가 의식하든 의식하 지 못하든, 대중의 감수성에 충격을 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상상을 넘어선 판매고에 나름 스트레 스를 받았지만, &lt;1Q84&gt;는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작업이고, 내용에 보람도 있었습니다. (…) 소설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시간에 의해 검증받는 것입니 다. 시간의 혹독한 세례를 받는 것.” ( ‘인터뷰 : 하루키를 말하다,’ &lt;문학동 네&gt; 64호(2010년 가을), 533쪽)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대중 의 감수성에 영합할 때, 그래서 얄팍한 인

간단히 말해 제대로 된 본격사진 작가라면 자신의 작품이

기를 얻고 책이 많이 팔리는 것에 만족할

게 물어야 한다. 혹시 자신의 작품이 대중의 감수성에 충

많이 팔린다면 마냥 기뻐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스스로에 격을 주기는커녕 영합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 작가의

때 작가는 통속 작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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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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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대중과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예술

그런데 당신 눈에 좋은 사진이 당신에게는 좋

은 대중과 괴리되어야 하는가? 예술은 대중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등

은 사진일지 모르지만, 그 사진의 사회적, 예

등의 문제. 팝음악을 들으며 흥겨워하다가도 클래식 앞에선 졸린 것이 웬 만한 우리들의 인지상정 아닌가? 노을색이 멋진 풍경사진 앞에서는 “그림

술적 가치는 별개라는 것을 많은 사진가 선생

처럼 멋져요!” 감동을 받다가도 어려운 개념의 현대사진 앞에서는 “아, 머

님들은 말해주지 않는다.(본인도 모르거나, 아

리 아픈 건 싫어”하고 등을 돌리고 마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어떤

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건지도 모를 일

사진이 좋은 사진이냐고 물으면 많은 사진가들이 이렇게 답하곤 한다. “당

이다. 자신의 사진이 ‘좋은 사진’이 아니어서?)

신 눈에 좋은 사진이 좋은 사진이다”라고.

덕분에 수많은 대중들이 사람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자연스런 빛이 아니라 오만가지 색 을 올려 덕지덕지 화장하고 나앉은 길거리 여

당신 눈에 좋은 사진이 좋은 사진인가? 그렇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 또 내가 싫으면 그만이다. 내 눈으로 보고 즐기고 더 나아가 내 돈으로 사서 내집 벽에 걸어놓는데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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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같은 사진에 찬사를 던진다. 그들의 찬사는 대개 이런 문장으로 표현된다. 어머, 아름다워

무엇인가? 예술성, 개념성, 사회성... 그 따위 복잡한 말들로 내 눈과 마음

요! 한 폭의 그림 같아요! 그리고 그들은 대개

의 위안을 방해할 일이 무엇인가? 더구나 그 그림 한 장, 사진 한 장에 내

묻는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에요? 무슨 카메라

가 감동받았다는데.

로 찍으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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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인용한 글의 일부를 다시 반복한다. ‘대 중문학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감수성에 호소하

녀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다큐사진이라면 차

것은 아니다. 사진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기 때문

라리 대중사진이라 해야 옳다).

이다. 또한 대중이 환호한다고 꼭 대중문학이라

고 영합한다. 그러나 본격문학은 대중의 감수성

고 치부할 수 없는 것처럼, 대중이 좋아한다고 꼭

에 충격을 주고 불편하게 만든다.’ ‘본격문학’이

어떤 이가 만약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때마침

대중사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중이란 그렇

라는 말에 붙은 ‘본격’이라는 말이 생각해보면 좀

아름다운 빛이 은은하게, 혹은 강렬하게 내리는

게 안목이 낮은 자들의 집단이라고만은 할 수 없

우습긴 하지만, 문학에 대중문학이 있고 본격문

자연풍경 속에 올망졸망 모여 일하는 현지인들의

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가장 사진다운 사

학이 있다면, 사진도 아예 그렇게 둘로 나누어 구

뒷모습이나 옆모습을(가끔은 앞모습이라고 하더

진’이라고 일컬어지는 다큐사진이 본격사진이라

분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대중

라도!) 찍어 모아놨다면, 그건 대중사진일까 본격

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때야 할까? 그것이 시대

이 좋아할만한 감수성과 센티멘털리즘에 호소해

사진일까? 시장통이나 골목에 나앉은 노인들과

의 기록물이라고 할 때 ‘기록’이라는 의미는 그저

감상과 추억, 회고에 젖게 만드는데 작용하는 대

가난한 이들의 얼굴을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찍

편집하듯 모아두었다는 뜻이 아니라, 당대의 사

중사진(‘쨍한’ 자연풍경과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

어 모아놓은 사진이라면 그건 대중사진일까 본격

회와 시대성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들이 그저 낭만적으로 묘사된 사진, 달콤한 여행

사진일까? 우리가 잘 아는 아마추어 사진가 전몽

뜻이다. 드러난 현상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사회

사진 류가 여기에 들어가면 어떨까?)과 대중의 감

각 씨가 자신의 딸이 태어나 시집가기까지의 과

적 구조와 시대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수성에 충격을 주고 불편하게 만들어 세상과 대

정을 촬영한 &lt;윤미네 집&gt;은 대중사진일까 본격

는 뜻이다. 1년이 아니라 10년을 한 지역에 머물

상을 고통스럽게 대면하게 하고 그 표피 안에 감

사진일까?

며 찍는다고 해도 스쳐가는 풍경만을 포착해 멋

춰진 무언가를 찾도록 부채질 하는 본격사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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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구도와 색감 속에 집어넣은 사진으로야 본격

말이다(다큐사진만이 이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

사진은 타 장르인 문학이나 음악, 혹은 같은 시

다. 파리 떼조차 쫒을 힘이 없는 아프리카 기아 소

각예술인 미술의 문법이나 논리와 꼭 일치하는

적인 다큐사진,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본격사 진이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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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이 유명한 미술작품이라고 해서, 2015년

아이들의 예쁘고 귀여운 모습을 찍은 가족사진들은 어떤가? 블로

한국의 농촌을 오직 ‘만종’처럼 포착해놓았다면 어떨까? 자연의 아

그에 올라오는 수많은 개인 사진들이 &lt;윤미네 집&gt;과 구별되는 이유

름다움과 농부의 순수함, 혹은 노동의 숭고함이 침체된 지역경제에

는 그들의 천진난만하고 행복한 모습 속에 우리 시대 가족의 삶이 윤

무너지고 자본에 잠식당한 우리 시대의 농촌 현실을 드러낼 수 있을

곽조차 드러나지 않는다는 거다. 아마추어리즘을 대표하는 전몽각

까?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를 돌며 가난한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

씨의 &lt;윤미네 집&gt;이 본격사진일 수 있는 이유는 비록 사진의 출발이

망울과 석양 속에 물동이를 이고 집으로 가는 모습을 찍는 것은 어떤

지극히 개인적이요 또 개인의 추억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그 결과

가? “이들은 가난해도 행복하더라.”며 “행복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가 동시대 우리들이 공유할 수 있는 가족사를 대변해 주는 것이기 때

는 식의 상투적인 시선은 비록 선의에 차있을지라도 그들 가난의 뒤

문이다. 그 안에 7~80년대 한국사회 중산층 가족상과 삶의 의미가

편에 도사리고 있는 복잡다단한 국제사회와 사회 내부의 정치경제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석양의 붉은 빛 속에 외면하고 묻어버린다. “아이쿠, 가엾 어라!”와 “그래도 우리는 행복한 거야.” 같은 반응이 전부다. 그 사 진은 그렇게 작동하고 기능하고 만다. 그것이 전부여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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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학이나 대중가요가 그렇듯 대중사진은 그 나름의 역할과 의미와

름다움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거든 이

가치가 있다. 보기에 좋고, 즐겁고, 따뜻하다. 개인에 따라서는 그것으로

시대의 아름다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천

‘힐링’도 한다. 그렇잖아도 척박한 세상에 내집 벽에 피 흘리는 전쟁사진

착해보면 된다. 최소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

이나 지지리 궁상스런 사진, 이해도 안 되는 괴이한 사진을 붙여놓아야 할

럼 말이다. 거기서 작가의 길이 갈린다. 대중사

하지만 굳이 대중사진과 본격사

진을 가지고 한국의 사진을 대표한다고 하지

진이라는 용어를 갖다 붙이는 게 나으리라고

는 말자. 잘 팔린다고 할지라도. 대중에게 잘

하는 이유는 전문가라 자칭하는 이들이 대중

팔린다면 ‘혹시 자신의 작품이 대중의 감수성

의 감수성에 영합하면서 마치 그것이 본격적

에 충격을 주기는커녕 영합하는 것이 아닌가?’

인 다큐사진인 것처럼, 본격적인 예술인 것처

를 자문해 볼 일이다. ‘작가’라거나 ‘사진가’라

럼 호도하지는 말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기존

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 대중에 영합하고, ‘비평

의 패러다임과 기존의 인식을 뒤엎고 충격스

가’나 ‘평론가’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싶은 자

럽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작품, 그것이

들이 그런 작가들에게 영합하는 악순환이 반

예술의 진면목이다. 꼭 사회적인 문제나 시대

복되는 것에 대해, 당신은 책임이 없는가? 시

의 아픔을 주제로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

간의 혹독한 세례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유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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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낯선 오후에 길을 나섰다. 그 길 위에서 생각지도 못한 지독한 갈증을 만났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끊임없이 선택해야 했다.

반납 예정일

어디선가 보았을까, 어디선가 들었을까? 시 한 조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정호승, ‘봄길’ 중에서

The Strange Land

시의 끝자락을 찾을 때까지 나는 길의 끝이 나오길 바라며 걷고 있었다.

@2013, The Strange N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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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The Strange N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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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ange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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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ange Land @2013, The Strange N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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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angeLand

@2013, The Strange N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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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The Strange N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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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The Strange N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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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대답없는 질문

지극히 사적인 출장 보고서 모스크바 이즈마일로프와 붉은 광장

@2006 러시아 전통 민속의상을 입고 민요를 부르는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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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월 러시아의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상쾌했다

@2006 이콘 그림을 소재로 한 마트로슈카들.

모스크바 출장 여섯 번 만에 드디어 시내관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시간 여유가 있다면 가장 먼저 가보리라 했던 곳, ‘이즈마일로프스크’ 벼룩시장부터 들렀다. 이곳은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던 80년대, 생필품이 필요했던 모스크바 시민들이 집안에 보관하고 있던 ‘이콘’이나 골동품을 내다 팔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벼룩시장이다. 유일하게 미국에 맞설 수 있었던 사회주의 최 강국 소비에트 연방이 몰락하며 조상들의 유물을 팔아 빵과 생필품을 구해야만 했던 곳. 시장은 지금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붐볐 지만 러시아로서는 그만큼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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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루블화를 달러로 환산하며 흥정하는 모피가게 아저씨.

@2006 자기 작품을 소개하며 작품가를 흥정하는 거리 화가 할아버지.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가게 주인들이 손님을 불러대는 소리가 관광객의 귓전을 두드렸다. 영어가 들리고 때 때로 짧은 중국어가 들렸다. 그리고 어쩌다 한국어까지 동원해 자기 물건을 팔아 보겠다고 호객하는 소리들이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 도 했다. 손톱만한 크기에서 커다란 장난감 배 한 척 만한 크기까지, 각양각색으로 만들어놓은 마뜨로쉬까가 눈에 띄었다. 모스크바의 필수품인 털모자와 러시아 민속의상, 각종 기념품들이 호기심 어린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장사꾼들은 그다지 장사꾼답지 않다. 흡사 우리네 장터에서 자신이 손수 거둔 농산물을 내다 파는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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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장에서는 흥정이 제 맛, 조금이라도 값을 깎아야 재미가 있

‘돈 맛’에 익숙해 있는 자본주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차츰 그

듯 벼룩시장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털모자를 사려는 동료를

들을 변하게 할 것이다. 평생 이윤에 익숙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도와 몇 백 루블을 깎는 흥정에 성공한 이후, 깎는 재미에 빠져

그들이 변하는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일 것이다. 순박한 어르신

아들 녀석에게 줄 러시아 민속의상 한 벌을 반값에 샀다! 반값

들이 벌려놓은 시골장터 소박한 좌판에서 행여 중국산 농산물

흥정에 성공하고 나서는 뭔가 큰일이나 해낸 것처럼 뿌듯한 마

을 직접 키운 농산물이라고 속여 팔며 터무니없는 이윤을 남기

음이 들었다.

는 것은 아닐까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같은 씁쓸함과 미 안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나중에 투어버스 안에서 가이드에게 들어 알게 된 사실 은 그들이 부르는 가격이 거의 정상가라는 것. 러시아에선 아직 ‘바가지’가 없다고 한다. 나 같은 관광객들을 더 자주 대하다 보 면 그들도 머지않아 흥정에서 밀리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고 애 초부터 가격을 두 배 이상 부르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날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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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사진을 찍으려니 포즈까지 잡아주시는 인상 좋은 거리 화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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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러시아는 소련시대의 무채색을 벗어나서 본래의 화려한 색을 되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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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붉은광장 가는 길에 아코디언 연주하며 구걸하는 아이.

@2006 장남감 같은 바실리 성당.

시장에서 나와 붉은 광장으로 향했다. 그 유명한 바실리 성당과

바실리 성당에서 나는 영화 ‘서편제’가 떠올랐다. 딸 송화가 소

크레믈린이 있는 곳, 러시아의 상징이자 모스크바의 중심. 모스

리에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독성 강한 부자(附子)를 넣은 약을

크바는 붉은 광장을 중심으로 도로가 환상형으로 뻗어 있는 계

먹여 눈을 멀게 한 유봉의 집착이 생각났다.

획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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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모스크바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붉은 광장. 여기저기서 기념 촬영을 하느라

@2006 어딜 가나 관광지는 잡상인들의 생활터전임에 틀림없다.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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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족인 타타르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바실

단지 두 명의 개인이 아니라 가혹한 운명에 처해진 러시아 민중

리 성당을 완성한 이반대제는 성당의 두 설계자인 보스또니끄와

이었던 거다.

바르마에게 물었다. “이같이 아름다운 성당을 다시 만들라고 한다면, 할 수 있겠느

러시아혁명을 일구어 내었으나 현실 사회주의의 종말로 대실험

냐?” “그렇사옵니다.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을 끝내야 했던 그들이 다시 옛 영광을 찾을 수 있을까? 바실리

이반대제는 이처럼 아름다운 성당을 다시는 만들지 못하도록 설

성당과 톨스토이와 차이코프스키를 낳은 저력은 여전히 그들 속

계자들의 눈을 뽑아버리라 명령했다.

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유봉의 집착이 소리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었을지는 몰라도 당 사자인 송화에게는 평생의 한으로 남았듯이, 이반대제의 집착 은 아름다운 바실리 성당에 대한 찬미로 남았지만 보스또니끄 와 바르마 두 건축가에게는 뜻밖의 형벌이 되었던 거다.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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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바실리 성당을 다시 한 번 보며 모스크바와 이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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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까마귀는 눈이 없다

Square the circle ‘square’는 네모다. ‘circle’은 원이다. 당신은 원을 네모나게 만들 수 있는가? 주어진 원을 면적이 같은 정사각형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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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the circle 광장은 공간이지만, 시간이다. 광장은 역사이고 문화이므로. 광장은 텅 비어있지만, 사건으로 가득 차있다. 광장은 도시를 대표하고 상징하 므로. 광장으로 가는 길은 광장에서 드러난 이야기들의 드러나지 않은 뒷이야기들이 골목골목 배어 있어서 숨겨진 보석을 찾아가는 탐험 길처 럼 설렌다. 마침내 도착한 광장에는 자랑스러운 역사나 수치스러운 역 사가 모두 세월 속에 나란하고, 그 흔적들이 구석구석 찬란하며, 그 시공 의 틈새에 하나둘 끼어 앉은 현대적인 것들이 적절한 쓰임새와 겸허한 예의범절로 오래된 것들과 어깨를 맞대고 공존한다. 그것이 또다시 새 로운 역사를 만든다. 광장이 아름다운 건 그 때문이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먼 곳으로부터 낯선 이들이 찾아오며, 가 난한 문화예술인들이 적당한 곳에 자신의 자리 한 켠을 마련해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그런 그들을 반기는 사람 들이 하루 중 언제라도 그 앞에 머무르다 간다. 애초에 광장을 만든 목적 이 당대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해도 광장은 난장(亂場)이어야 즐겁고, 기존의 질서가 개입하지 않아야 신이 나며, 서로 다른 것들이 자 유자재로 섞일 수 있어야 무르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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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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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camera

세계의 광장들은 으레 그렇다.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홀이라고 불렀다는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이 그렇고, 빅

토르 위고가 감탄했다는 브뤼셀의 그랑플라스가 그렇다. 이 광장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1830년에 설계 된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는 수많은 비둘기들이 모여들고, 비둘기들 수만큼 많은 집회와 행사가 열린다. 물결무늬 타일바닥으로 첫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마카오의 작은 광장 세나도에서도 문화행사와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모여 언제나 붐비고 활기차다. 광장은 차량이 중심이 아니라 엄연히 사람들이 중심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조선시대 광화문 앞에서 지금의 세종로에 이르는 길에는 의정부를 포함해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육조거리가 있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이곳은 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길이다. 이곳에 지금은 광화문 광장이 있다. 광화문 광장 위쪽으로는 광화문 삼거리가, 아래쪽으로는 세종로 사거리를 따라 청계광장, 시청광장이 이어져 명실상

부한 서울 도심을 이룬다. 북악산과 경복궁, 광화문이 일직선상에 놓인 이 길은 서울 한복판답게 늘 차량이 혼잡하지만, 어쩌다 한 번은 차량통행이 완전히 통제되고 사람들이 자유자재로 활개치고 걸어 다님으로써 광화문광장이 비로소 광장다워지는 시간이 있 다. 물론 정말 어쩌다 한 번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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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the circl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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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the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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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그러니까 2015년 팔월의 어느 날이 그랬다. 광화문 광장을 어슬렁거리다가 나는 생각했다. 이 광장이 국경도 없고 언어의 경계도 없고 종교의 편견도 없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찾아와 활활 휘젓고 다닐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아스팔트로 발라놓고 시멘트로 쌓아놓고 전시장에 나란 나란히 가둬둔 박제 된 역사의 재현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이 현대의 시간 속에서 이어받을 것은 이어받고 변형할 것은 변 형해, 즐기고 가지고 놀고 또 계승해줄 그런 전통이 마음껏 발산되는 광장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나는 또 꿈꾸었다. 공영방송사가 마련한 화려한 무대 위에 초청받는 유명 가수나 인기 개그맨이 아니어도 광장 한 켠 어디서든 자신들만의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은 자 노래하고 춤추고 싶은 자 춤추고 연기하고 싶은 자 연기하면서 행위자나 보는 자들이 다 같이 행복해지는 그런 광장을. 그럴 때 나이든 교통경찰이나 이제 막 이십대에 접어든 어린 경찰들이 야광봉과 호루라기를 내려놓고 슬슬 길거리에 주저앉아 서로 농담을 주고 받다가 아무 일 없이 갈 수 있기를. 선남선녀 젊은이들 뿐 아니라 혼자 나온 노인, 갈 곳 없는 노숙자들, 행 색이 초라한 가난한 자들이 누구라도 찾아오고 싶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광장이 이곳이기를. 해질 무렵 광 화문 삼거리를 지나 광화문 광장을 서성이면서 나는 잠시 그런 꿈을 꾸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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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Square the circle

광화문 돌담에 야간 조명이 켜졌다. 광장은 더욱 요란해졌다. 이 날은 광복 70주년의 8월 15일이었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KBS가 마련한 특설무 대에서 펼쳐지는 온갖 공연과 쇼를 보느라 길게 목을 빼고 있었다. 사회자 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자고 제안하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따라했다. 카 메라를 멘 기자들이 높은 구조물 위에 올라가 있었고, 무대에서 쏘아올린 빛 은 광화문 광장에 화려하게 뻗어나갔다. 박수소리에 섞여 아이들과 어른들 의 발길이 바쁘게 오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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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the circle 광화문 광장은 2009년에 완공되었다. 유럽의 광장들처럼 오래된 것이 아니라 이제 고작 6년 된 광장이 다. 이날 아침 대통령이 언급한 바에 의하면 올해가 ‘건국 67년’째인 신생 대한민국이니 광장이 이제 겨우 6년 된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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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광화문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조선 태조 4년 1395년 9월에 경복궁의 정문으로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대원군 때 다시 지었다. 한일합방 이후 일제에 의해 해체되어 비스듬히 자리가 옮겨졌고 그 자리 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졌다. 1995년 김영삼 정권 시절 ‘역 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고, 10년 뒤인 2005년 노무현 정권 때 광화문을 원래대로 복 원하기로 결정되었고, 2010년 광복절에 건립 당시의 모습 으로 복원되었다. 그 전 해인 2009년에 조성된 것이 바로 이곳 광화문 광장이다. 서울시의 설명에 의하면 광화문 광장은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육조거리의 풍 경을 재현하는 광장’, ‘한국의 대표 광장’, ‘시민들이 참여 하는 도시문화 광장’, ‘도심 속의 광장’, ‘청계천 연결부’로 나뉜다. 세종로 사거리와 청계광장으로 이어지는 세종로 @2015

중앙에 고작 길이 555m, 너비 34m로 조성된 길쭉한 광장 이 이렇게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명명되어 있다는 것을 나 는 이번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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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the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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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the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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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동상 주변에는 인공연못과 분수가 있다. 광장 양쪽 가장자리에 흐르는 물은 ‘역사물길’이라고 했다. 역사의 물길이 참으로 졸졸졸 흐른다. 인공수로다. 세 종로에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것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68년이다. 당시 박통은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에 게 지시해 세종로 도로 폭을 확대하고 전쟁으로 파괴 된 광화문을 복원했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때 광화 문의 현판은 박통이 썼다. 이순신은 나라를 구한 영웅 으로 추대 받고싶은 박통에 의해 충효의 상징이자 멸 사봉공의 성웅으로서 세종로 한복판에서 지방 분교

광화문 광장에는 두 개의 동상이 있다. 세종로를 지키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운동장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세워졌다. 누구나 다

그리고 광장을 만들며 30억을 들여 새로 만든 세종대왕 동상. 세종대왕 동상 아래는

아는 얘기다. 어쨌든 21세기에 조성된 광화문 광장에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우는 전시공간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하지만 2015

는 16세기의 이순신 장군이 15세기의 세종대왕 뒷모 습을 바라보며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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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광복절 며칠 전, 세종대왕 동상 아래서 한글단체와 교육단체들이 ‘한글교과서 장 례식’을 열었다. 교육부가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를 추진하겠다는데 반대하기 위해서다.

Square the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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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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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Square the circle 이후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로에 이르는 이 거리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2009년 11월에는 KBS2 드라마 ‘아이리스’를 찍는 다고 일대 교통을 통제하고 대규모 총격 장면을 촬영했다. 2015년 3월에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 피습사건 후 기독교인들이 대 사의 쾌유를 빈다며 광화문 광장에 한복을 입고 나타나 난데없이 부채춤을 추었다. 6월에는 퀴어문화 축제를 반대하며 이들은 다 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북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부채춤을 추어댔다. 참으로 기이한 퍼포먼스여서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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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세종로에 이르는 길에서 일어난 일 중 빼놓을 수 없는

무 아프고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 역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유명한 ‘명박산성’이다. 2008년 미국

사는 지나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형이어서, 광화

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100만 촛불 대행진에 맞서 하룻밤 만 에 완성된 컨테이너 장벽. 그리고 2015년 4월에는 세월호 1주기를 맞아 광화문에 거대한 경찰차벽이 등장했다. 2015년 8 ?15 행사

문 광장 이순신 장군 동산 아래에서는 이 날도 세월 호 참사 500일을 앞두고 토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

로 열렸던 광화문 광장은 11월 14일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었다.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집회에 모여 촛불을 들

노동개악에 항의하기 위해 10만여 명의 국민들이 ‘민중총궐기’라

고 있었고, 그들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는 많은 사람

는 이름으로 모였을 때 또다시 차벽에 의해 봉쇄되었다. 이날 69세

들이 광복 70주년 공연을 보러 아이들을 데리고 나

의 노인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고, 쓰러진 노인에게 경찰

와 뜻밖에 생긴 연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광화

은 물대포를 조준 사격함으로써 쌀값 폭락에 대한 정부 대책을 요 구하러 나온 농민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 다. 차벽에 막혀 광화문 광장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종로구청 입 구에서 당한 일이다.

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한국의 대표 광장’, ‘시 민들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은 쉽사리 공권력 에 둘러싸이고, 이곳에선 여전히 힘없는 설운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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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그리고 대통령과 정부의 말에 의하면

여겨 봐주지 않는 것이다. 평화롭고 경계 없는 광장

건국 67년이 되는 2015년의 광복절. 광화문 광장에

에 대한 나의 꿈은 그렇게 짧게 끝이 났다. 그날 내가

서 울려 퍼지는 축하 메시지와 대한민국 만세 함성

참으로 평화롭게 보이는 광화문 광장 일대를 서성이

속에서 나는 잠시 꾸었던 꿈을 금세 깨고야 말았다.

며 카메라에 담은 것들은 국가가 만든 아주 짧은 신

조성된 지 6년째인 광화문 광장은 짧은 기간 동안 너

기루에 불과했던 것이다.

Square the circle

이 촛불을 밝히고 있어도 언론과 대중은 더 이상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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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 the circle,

원과 면적이 같은 정사각형을 만드는

일. 다른 뜻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는 일. 대한민국의 광장 (Square)은 힘없는 자들에게 활짝 열린 광장, 국가 권력이 국민 을 봉쇄하고 진압하지 않는 민주적인 광장이라는 이 꿈을, 지금 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 먼 꿈을 과연 실현할 수 있을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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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의 버스는 글•사진

항상 낯설다. 양복

사진적 체질

입고 카메라 들고 있는 내 모습도 …

이제는 사진가로 변신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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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 즈 가 향 한 곳 은 어 디 였 을 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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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 가며 카메라 렌즈로 만나는 그녀들과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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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명 렌 즈 가 향 한 곳 은 버 스 정 류 장 이 었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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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진가에서 생활인으로 변신할 시간. 자정의 신데렐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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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준비됐나? 친구야! 잘 찍으래이. 마, 우리가 언제 또 여 오겠나?”

글•사진

25번째 사진

기념사진, 당신의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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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은 함께 한 사람들과 헤어졌을 때, 또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잘 찍은 사진 “병은 신이 주신 잔인한 사랑의 묘약이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순간을 기다리며 그 사랑을 확인시켜 주려 한다. 이 사진은 결국 그들이 함께 한 마지막 사진이 되어버렸다.”

이든 아니든 그 시절 그 시간을 추억하는 묘한 향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시적 관점에서 개인의 향수를 담고 있는 기념사진은 거시 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다큐멘터리의 기본이자 초석이다. 언 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가 분명한 탓에 기 념사진만큼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래서 이제 웬만한 회사, 단체, 기관에서는 사진과 영상으로 지나온 시간을 기록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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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이나 행사 촬영을 할 때 단체사진을 한 방 찍자고 하면 “뭘 그런걸!” 하며 쑥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있다. 잠깐의 쑥 스러움을 이기면 그 사진이 곧 개인의 역사가 되고 기억이 되는 법이거늘! “사랑과 우정 사이? 배경이 중요한가? 우리가 중요하지!”

기념사진이란 것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기억은 어떻게 달라 졌을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지고 오래 추억되 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와 사진을 함께 찍는 행위는 그와 함께 한 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추억하려는 의지이다. 반대로 누군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없애는 행위는 그 와 함께 한 시간을 잊으려는 단호한 결심이자 몸부림이 다. 그렇게 개인의 역사는 사진으로 기록되고 기억되어 개인 을 넘은 우리들의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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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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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 속에 내가 있다. 내 옆에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다 섯 사람, 열 사람이 있다. 그들과 함께 한 기념사진들은 내가 가 장 행복하고 가장 기쁜 날의 역사일 것이며, 나와 함께 한 이들 은 그 시간을 함께 해준 가장 소중한 이들일 것이다.

기념사진은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시간이 세월 이 되고야 마는 그 영속성 속에서 인간과 인간을 추억과 사랑 으로 연결하고, 가끔은 서로간에 흐트러지고 어긋나기도 하는 기억을 바로잡아 주기도 할 것이다. 그 엄연한 기록이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 사랑을 북돋아주는 변치않은 기억이 될 것 은 틀림없다.

자, 오늘, 아니 지금 당장, 곁에 있는 사람들과 사진 한 장 찍어 보는 것이 어떠신지? 기념할 일이 딱히 없다고? 곁에 있는 사 람과 기념사진을 찍는 그 순간을 기념하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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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버지와 함께 한 유일한 기념사진이다. 이제 다시는 아버지와 기념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 그 사실이 사진가인 나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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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없는 질문 언젠가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싶은 것을

오독오독

카드에 써서 남겨 놓는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난 ‘호기심’을 마지막 카드로 남겨 두었다. 아무 것에도 관심없고 아무 것도 신기한 것이 없다면 고민도 없어질까? 재밌을까?

처음부터 오독(誤讀)이었다. 무엇을 알겠는가?

까마귀는 눈이 없다

세상을 오독하고, 그대를 오독하고,

대답이 없더라도 계속해서 물어보려 한다.

사진을 오독하고, 나를 오독했다.

새는 새이되, 몸 전체가 검어서 도대체 눈이 어디에

왜?

온통 오독 투성이다.

붙어 있는지를 알 수 없으므로 ‘새 조 (鳥)’자의 머리

그래서?

그 오독으로부터

부분에서 눈 부분의 한 획을 뺀 새가 ‘까마귀 오(烏)’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까마귀는 눈이 없는 새다. 다시 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 전체가 눈이 되어버린 새다.

25번째 사진 불한당들

The Dream is in your LIFE.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후회하는 것이기에.

나는 한 번에 꿀꺽 넘어가지 않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까마귀처럼 양면성을 가진 새가

이 삶의, 세상의, 단단함을

또 있을까? 재수 없는 흉조라고도 하고

오독오독 씹으련다.

반포보은(反哺報恩)의 효조라고도 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불길한 새이기도 하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신령스런 새이기도 하다. 온 몸으로 눈을 삼아 세상의 양극단을 높이 나는 새. 까마귀가 눈부시게 검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烏 나의 사진이 불우한 천재 작가 에드가 앨 런 포

반납 예정일

(Edgar Allan Poe)의 詩 ‘갈가마귀(The Raven)’처럼,

책을 빌린다.

세상의 모든 불행과 고통과 슬픔 앞에 바쳐지는 노래였으면.

비디오테이프를 빌린다.

‘Nevermore’라는 대답 밖에 들을 수 없으면서도

집을 빌린다.

끝끝내 질문을 멈출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노래.

지금 살고 있는 지구를 빌린다. 지금 사는 시간을 빌린다.

사진적 체질 ‘대충적’ 감각에 의지한 칼라감과 흑과 백의 기우뚱한 균형 속에서 만사의 본질을 탐구하고 싶어 하는 체질을 가진 넘. 나는 누구인가?

우리에겐 반납 예정일이 있다. 반납일이 언제인지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알 수 없는 것이 있기에 간절하고, 진정성 있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오늘도 빌려온 책을 펼치며 묻는다. 나의 반납 예정일은 언제일까?


불한당들의 사진사 작가들은 실명이 아닌 닉네임으로만 활동합니다. 작가 실명과 경력과는 상관없이 오직 이 지면에서의 사진과 글로만

불한 당들 의사 ‘윤주 진사 씨의 로고 잡글 는 씨’에 서제 작됐

존재를 드러내고 발언하겠다는 뜻입니다.

습니

다.

. 다 니 받습 를 고 원 다. 트 니 스 습 게 겠 달 받 매 만 원고 진사는 의 사 의 분들 들 ’ 당 운 러 불한 스 당 ‘불한 론 물


불한당들의 사진이 궁금해?

불한당들의 사진사 (http://issuu.com/ 에서는 책으로 펼쳐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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